악플 경찰조사 후기 - agpeul gyeongchaljosa hugi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었네요.
다행히 좋은 소식으로 글을 쓸 수 있게 되어 조심스레 써봅니다.

상황은,

1. 2021년 12월경 사람이 50명 정도 있는 운동 동호회 단톡방에서,
2. 어떤 분이 자극적인 정치적인 내용을 계속 올렸고(특정 당과 지지자를 비난하는 내용),
3. 그 수위가 점점 더 심해지자 한 분이 정치적인 내용을 게시하는 것에 대해 크게 비난을 하였고,
4. 저도 거기에 거들어 "멍청한 소리 좀 하지 마세요. 그렇게 정치 얘기하고 싶으시면 정치단톡방 가서 좀 해요" 라고 했다가,
5. 저를 포함한 5명이 모욕죄로 고소당해 3월경에 경찰에게 연락을 받았습니다.
6. 그리고 4월 중순에 경찰 조사를 받았고, 얼마 전에 경찰에게서 불송치 처분을 받았습니다.
7. 현재 상대쪽이 경찰의 수사 결과에 이의제기를 한 것으로 보이며, 이로 인하여 검찰로 사건 송치 처리될 것으로 보입니다.
8. (전혀 몰랐는데) 고소인이 유투브도 했더라고요? (구독자수 1만 정도) 전해듣기로는 판결에 무관하게 민사도 무조건 간다고 해서 준비는 하고 있습니다. 일단 불송치됐으니 상대가 승소할 확률은 상당히 낮긴 합니다.

댓글 수위는 정치적 내용으로 희석될 가능성이 있어서 작성하기 조심스럽지만 위 사건의 시발점이 된 댓글은,

"'가' 정당 지지자들이 숨는 이유는 뛰어나지만 나서는 걸 싫어하기 때문이다, 반면 '나' 정당 지지자들은 거짓말로 자기 포장하는걸 좋아한다. 특히 비혼 남성들이 대개 그러더라." 정도입니다.

대강 느낌은 오실겁니다.

저도 처음에 잔뜩 쫄아서 그냥 합의할까 했거든요. 그래서 피의자한테 연락하니까 정신적 피해를 호소한다는 사람이 제가 누군지, 제가 무슨 말을 한지 기억조차 못하더라고요. 찾아보니 여기저기서 어그로 끌고 각 보이는거 다 긁어다가 고소때린거더라고요. 여기서 너무 어이가 없어서 '내가 벌금을 내도 혐의 인정 못한다' 하는 스탠스로 갔습니다. 그게 지금 생각해보면 불송치가 됐으니 신의 한 수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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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강 많이들 궁금해하시는 내용 위주로 작성드리면,

[1. 모욕죄는 수사관과 검사의 의지가 정말 많이 반영되는 편입니다.]
- 모욕성은 흔히들 생각하는 '욕설과 패드립이 들어갔거나, 내용이 상당히 악의적인 악플'인데, 전혀 아닙니다. 공식적으로는 '상대방의 사회적 지위를 격하시킬만한 내용' 이라는 모호한 표현이기 때문에 욕설이 없어도 처벌이 될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최근에 있었던 가평 계곡 사건이 있는데 해당 사건도 조 씨의 고소에 욕 한 마디 없이 송치되서 벌금 물었던 분들이 몇몇 있습니다.

- 특정성도 상대를 추정할 수 있는 내용으로 흔히들 '얼굴 까면 메모장 켜라' 라고 하는데... 그냥 상대방의 주소지나 다른 인적 사항을 알고 있는 것만으로 특정성이 인정된다고 판단하는 경우가 간혹 있습니다. 논리는 "서울특별시 마포구에 사는 김OO이 너 혼자냐, 특정성 인정 안된다" 라고 하는데, 전혀 아닙니다. 물론 법리적인 해석을 잘하여 의견 전달하면 수리가 안되겠지만 일반인인 피고소인이 잘못 진술하고, 고소인이 변호사 써서 저 부분을 잘 설명하면 특정성이 인정되는 판례도 현재 나오고 있습니다.

- 공연성의 경우도 뭐 대충 다섯 명 넘어가면 인정됩니다. 인터넷 댓글이 처벌 수위가 강한 것도 보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겠죠.

- 그래서 저보다 심한 말을 하신 분(병X 이라는 단어 포함)은 그냥 '난 저 놈한테는 돈 한 푼 못준다' 면서 모욕죄에 변호사까지 쓰셔서 결과 기다리는 중이고, 저보다 약한 수위(그런 소리하고도 뻔뻔하지도 않냐?)로 거들으신 분은 또 송치됐습니다. 같이 고소당하신 분한테 이야기 들어보니, 저보다 더한 유도심문에 걸리셨더라고요.

[2. 수사관을 유도심문 정말 장난 아닙니다.]
- 솔직히 경찰들 정말 바쁜 사람들입니다. 저도 이번 일로 가장 화가 난건 지금 사이버범죄 벌어지는게 한 두개가 아닌데, 이런걸로 몇 시간동안 조사한다고 수사관이 시간낭비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였습니다. (저희 집도 어머니 중고나라 사기당하셨는데 몇 년째 잡지도 못하고 있거든요ㅠㅠ) 수사관들도 이걸 알고 있으니 사실 모욕죄 정도는 수위있게 조사하지는 않습니다. 문제는 그 방향성이 '피의자가 빨리 죄를 인정하게 해서 혐의 인정시켜서 송치시키는 방향' 이란겁니다.

- 저도 찾아본다고 인터넷 보니 수사관들 유도심문 장난 아니라길래 '아니, 내가 뭐 큰 잘못한 것도 아닌데 유도심문까지 하겠나' 했는데... 진짜 조사받아보니 진짜였습니다.

- 제가 변호사 의견 토대로 계속 빗겨나가니까 공연성 부분을 물고 늘어지려고 했는지, '저 대화내용을 많은 분들이 보셨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으셨나요?' 라고 물으시더군요. 그래서 '단톡방에 있는 사람 말고 더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라고 답했습니다. 그러니 '단톡방에 있는 사람들의 친구나 가족이 더 보지 않겠냐?' 라고 다시 묻더군요. 그래서 '채팅이 많이 올라와서 저 내용만 주의 깊게 볼 것이라고는 생각 안한다.' 라고 답했습니다.
무려 저렇게 답한 결과물이 조서에는 "단톡방에 있는 사람들 외에는 보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채팅이 많이 올라오는만큼 대화 내용에 관심이 많고,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주의 깊게는 봤을 거라고 생각한다." 록 작성되어 있더라고요. 대단하죠? 바로 삭제 요청하니까 수사관이 '이러면 말의 앞뒤가 안맞아서 처벌 가중되실 수 있다' 라고 하셨는데, 그냥 지워달라 했습니다. 상식적으로 누가 가족들 단톡방에서 무슨 내용으로 카톡하는지 보고 삽니까?
이거 솔직히 가불기죠. 대화 별로 없었으면 "대화가 오래 노출되어 있었으니 다른 사람들도 많이 봤을거다" 라고 적을거였잖아요.

- 참고로 다른 분들을 위해 말씀하자면, 가장 대중적으로 많이 사용되는 유도심문이 합의 의사와 형벌 유도입니다. 솔직히 직장인들이면 그냥 더럽고 치사해서 합의 할거냐고 물어봤을 때, '안한다'는 강경한 대답은 안하는 편입니다. 솔직히 정말 자본주의적인 관점에서 볼 때 '처벌로 확률 게임하기 vs 더럽고 치사해서 100만원 내고 말기' 하면 후자 택할 수도 있거든요. 그런데 이게 나중에 되면 "니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합의를 해? 잘못한건 인정한거네?" 가 됩니다.
형벌 유도는 '즉결 심판 될 수도 있으니 그냥 인정하시는게 낫다' 혹은 '이 정도면 그냥 인정하시고 반성의 모습 보이시는게 낫다' 인데, 수사관 혼자서 즉결심판 못 올립니다. 모욕죄로 즉결심판 주는거는 미성년자나 생계 불안 등의 정상 참작 되는 사례 뿐입니다. 외에는 로또급 확률입니다.
처벌 수위는 아무도 모릅니다. 변호사 셋 정도한테만 물어봐도 진짜 심각한거 아니면 '이 정도면 무혐의~벌금이겠네요. 어지간하면 그냥 합의하세요.' 라고 대답합니다. 본인들도 처벌 수위 가챠인거 아는거죠. 조서를 본 결과에 따라 처벌의 수위는 검사가 결정합니다. 수사관은 조사만 하고 보내는 사람입니다. 이 말만 듣고 혐의 인정해버리시면 그냥 인정하는 꼴이 됩니다. 진짜 반성하고 반성하는 자세를 보이는 분들이야 상관없지만, 무혐의를 주장하실 분이면 무조건 조심하세요. 나도 모르게 내 죄를 인정하는 셈입니다.

[3. 스트레스 장난 아닙니다.]
- 니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왜 스트레스를 받냐는 놀라운 질문을 하시는 분들이 계시더라고요. 평소에 전과가 좀 있으셔서 모욕죄 정도는 가볍게 여기시는 분이면 스트레스 안받으실 겁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댓글 좀 썼다가 단발성 모욕죄로 고소되서 오신 분들이거든요. (보통 수위도 별로 안심합니다. 수사관님들이 보여준 내용만 봐도 흔히들 쓰는 가벼운 욕설이나, 비방적 어조 등이 상당수입니다. 인터넷에서야 롤에서 패드립박고 끌려간 애들밖에 없죠.) 갑자기 끌려와서 '너 전과자 될 수도 있다' 하는데 스트레스 안받으면 그게 더 이상하죠.

- 위에서 상술했듯 워낙 처벌도 조사를 어떻게 받냐, 수사관이 누구냐, 검사가 누구냐에 따라 달라져서 모릅니다. 저도 수사관이 다른 분이었으면 송치 처리됐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 이의제기로 검찰로 넘어간 상태인데 검찰에서는 또 저를 기소 처분할 지도 모르는 일이고요.

- 그리고 정말 길고 지루한 싸움입니다. 저는 좀 빨리 끝난 편인데, 오래 걸리는 분들은 2년 넘게 간 분도 계십니다. 왜냐하면 모욕죄, 명예훼손 등은 하급 범죄라서 경찰이나 검찰이나 최후순위로 미루시거든요. 그동안 받는 스트레스는 오롯이 나의 몫입니다.

[4. 마지막으로]
- 그냥 인터넷에서는 착한 말, 좋은 말만 쓰시라는 겁니다. 저도 멍청한 소리라는 발언이 과하지 않다고 생각할 뿐이지, 나쁜 표현이 아니냐고 하냐면 그걸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사실 피지알 정도면 욕설이나 비방에 대한 필터링이 워낙 잘되는 곳이라, 처벌 수위가 높지는 않을 확률이 압도적으로 크겠습니다만, 그렇다고 처벌이 안되는건 아닙니다. 상술했듯이 모욕죄의 법리적 해석은 상당히 주관이 많이 개입되기 때문에 정말 재수없으면 처벌될 수도 있어요. 저도 사실 피지알이나 다른 사이트에서 키보드 배틀을 하다보면 좀 감정적으로 격해져서 상대방을 비꼬거나 무시하는 뉘앙스로 댓글을 쓰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런 것들이 전부 고소되서 사람 인생 담가버릴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서는 그냥 무슨 소리건 전부 무시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그게 답입니다.

- 참고로 피지알에도 가끔 후방주의 글 올라오는데... 이거 드립 잘못 쓰셨다가 통매음으로 처벌될 수도 있습니다. 2D 보고 섹드립 날렸다가 '댓글보다 기분나빠서 통매음으로 신고'한 사례가 있습니다. (물론 이건 처벌은 안될 확률이 높겠지만, 굉장히 스트레스받고 힘들고 피곤하겠죠.)

- 제 상황을 이야기하니 한 분이 이야기해주시더라고요.

"이제 욕먹을 짓 골라서 하고, 욕먹고 고소하는 것도 컨텐츠가 되어버린 세상이다. 인터넷에 무슨 글을 올리건 그냥 모든 글이 너를 엿먹이려는 의도를 가지고 올라간 것이라고 생각해라. 최고의 방법은 그냥 인터넷을 끊는 것이다." 라는 말이었습니다.

저 말을 듣고나니 내가 진짜 살얼음판 위에서 놀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 이후로 사실 반성이 많이 되어서 말이 많이 착해지는 것은 느꼈습니다. 처음에는 이렇게 고소된게 너무 화가 나고 답답했지만, 시간이 조금씩 흐르니 언젠가 사고 거하게 칠 운명을 이 정도면 싸게 막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모욕죄가 악법이라는 것에 이전부터 동의했고 지금도 여전히 동의합니다. 저는 "상대가 욕하면 나도 똑같이 까면 되지", "말도 안되는 댓글은 신고눌러서 지우면 되지" 로 일관합니다. 이 글이 어떤 분에게는 동의하기 힘들 수 있어서 비판을 하실 수 있는데, 모욕죄 악법이라고 이야기하면서 고소할 생각은 절대 없으니 마음껏 비난과 비판을 하셔도 좋습니다. 그런 말은 그냥 하루 기분 나쁘고 말 일이니까요.

솔직히 형사처벌 없애버리면 민사로는 악플러들 추적하기 힘드니까 형사법으로 남겨놓는거죠. 애초에 대법원에서도 합헌에 대해 5대4가 나올 정도로 애매한 건입니다. 부당이득죄가 있으니 합의금 장사는 막을 수 있다고 하는데, 실제로 처벌된 사례 손에 꼽습니다.

이전에 운영진 분이 피지알에서도 피의자 확정을 위한 정보공개 요구가 많이 온다는 댓글을 봤었습니다. 다들 글과 댓글에서는 늘 조심하시고, 혹시나 모욕죄나 사실적시 명예훼손 등으로 고소당했는데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으면 언제든지 쪽지 주세요. 아는만큼은 최대한 도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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