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고래 고래 사냥 - beomgolae golae sanyang

지구 역사에서 가장 큰 동물인 대왕고래를 범고래 무리가 추격하고 있다. 존 토터델 외 (2022) ‘해양 포유류 과학’ 제공.

세계 전역에 분포하는 범고래는 돌고래 가운데 가장 큰 포식자로서 늑대처럼 협동 사냥을 한다. 범고래가 자신보다 곱절 이상 큰 수염고래 가운데 가장 큰 대왕고래를 사냥해 잡아먹는 사실이 처음으로 확인됐다.

존 토터델 오스트레일리아 서호주 고래연구센터 연구원 등은 과학저널 ‘해양 포유류 과학’ 최근호에 실린 논문을 통해 범고래가 대왕고래를 죽여 포식한 세 건의 사례를 보고했다. 목격은 호주 서남부 브레머 만 연안에서 2019년 3월과 4월 그리고 2021년 3월 이뤄졌다.

범고래의 대왕고래 사냥 모습 발견 장소. 둥근 점은 범고래, 세모는 대왕고래, 별은 범고래의 대왕고래 포식 목격 지점. 존 토터델 외 (2022) ‘해양 포유류 과학’ 제공.

특히 세 번째 사례는 앞의 두 사례가 어린 고래와 새끼가 표적이었던 데 견줘 건강한 성체 대왕고래를 사냥해 잡아먹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비교적 몸집이 작은 서호주 아종이지만 길이가 18∼21m에 이르러 가장 커야 9m인 범고래보다 2배가 넘는 몸집이었다.

연구자들은 “지금까지 덩치 큰 수염고래의 새끼를 범고래가 잡아먹는 것은 알려졌지만 성체까지 사냥감이 되는지를 놓고 학계에서도 논란이 벌어져 왔다”고 논문에 적었다.

연구자들은 이동 중이던 이 대왕고래를 50마리의 범고래가 습격했는데 여러 마리로 이뤄진 여러 무리가 추격과 물어뜯기, 물 밑으로 끌어들여 익사시키기 등을 교대로 수행하는 전략을 폈다고 밝혔다. 교신저자인 로버트 피트먼 미국 오리건주립대 해양생태학자는 “가장 큰 최상위 포식자가 가장 큰 먹이를 죽이는 지구 최대 포식 현장이었다”고 ‘내셔널지오그래픽’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범고래 무리의 대왕고래 사냥 모습. 존 토터델 외 (2022) ‘해양 포유류 과학’ 제공.

범고래는 수명이 긴 사회적 동물로 오랜 경험과 지혜를 갖춘 할머니를 중심으로 모계사회를 이룬다. 늑대처럼 무리를 지어 소리로 소통하면서 사냥전략을 펴는데 연어부터 백상아리와 향고래까지 대양의 거의 모든 대형 동물을 먹잇감으로 삼는다(▶백상아리와 범고래가 만나면 물범이 ‘웃는다’).

스리랑카 해역에서 2013년 목격된 범고래 무리의 향고래 사냥 모습. 범고래가 향고래 무리로 돌진해 들어간다(A). 향고래는 단단히 뭉쳐 대응한다(B). 물속에서 본 모습. 범고래 두 마리와 뭉쳐있는 향고래 3마리가 보인다(C). 향고래를 공격하는 범고래. 향고래 한 마리가 입을 벌리고 있다(D). 조지나 겜멜 외 (2015) `아쿠아틱 매멀스' 제공.

범고래는 고래 가운데 특히 귀신고래의 새끼를 자주 노리는데 어미가 곁에 있는 동안 사냥하기도 한다. 향고래 등 대형고래의 회유 경로와 생활사에 범고래의 포식이 영향을 끼친다는 주장도 나온다.

연구자들은 범고래의 대왕고래 사냥이 멸종위기로부터의 회복을 가로막지는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포경 이전 대왕고래가 많았을 때의 사냥습성이 되살아난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지구에 지금까지 존재했던 동물 가운데 가장 큰 대왕고래는 1900년대부터 남획으로 멸종위기에 놓였지만 1960년대 이후 조금씩 개체수가 회복돼 2018년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은 세계에 5000∼1만5000마리가 사는 것으로 추산하고 멸종위기 등급으로 평가했다.

인용 논문: Marine Mammal Science, DOI: 10.1111/mms.12906

조홍섭 기자

▲ 바다의 지배자, 범고래의 집단사냥 현장이 카메라에 잡혔다. 18일 데일리메일 호주판은 호주 서부 해안에서 대왕고래 한 마리를 집어삼키는 범고래 75마리가 포착됐다고 전했다.

바다의 지배자, 범고래의 집단사냥 현장이 카메라에 잡혔다. 18일 데일리메일 호주판은 호주 서부 해안에서 대왕고래 한 마리를 집어삼키는 범고래 75마리가 포착됐다고 전했다.

15일 현지의 한 고래생태관광사와 고래 관광에 나선 관광객 40명은 범고래의 집단사냥 현장을 코앞에서 목격했다. 불과 몇 미터 앞에 펼쳐진 사냥터에서 범고래 패거리는 대왕고래 한 마리를 맹공격했다.

몸길이 15m 대왕고래는 분기공에서 쉴 새 없이 분기를 뿜어내며 사력을 다해 도망쳤지만, 한꺼번에 달려든 포악한 범고래 패거리를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먹을 자리를 기가 막히게 눈치챈 갈매기떼까지 가세하면서 바다는 그야말로 전쟁터가 됐다.

쫓고 쫓기는 대왕고래와 범고래 패거리의 추격전은 한동안 계속됐다. 집단사냥에 능숙한 범고래 75마리는 점점 포위망을 좁혀 대왕고래를 고립시켰다. 대열을 이뤄 깊게 잠수했다가 다시 돌아와 공격하는 방식으로 대왕고래의 혼을 쏙 빼놓았다.

빠져나갈 구멍을 찾지 못한 대왕고래는 결국 범고래 패거리의 날카로운 이빨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사냥이 끝나고 피로 물든 바다에서 범고래 패거리와 갈매기떼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여유롭게 포식을 즐겼다.

관광사 측은 “대왕고래가 엉뚱한 시간 엉뚱한 장소에 발을 들였다가 목숨을 잃었다”고 설명했다. 대왕고래와 혹등고래, 밍크고래 등은 보통 북극에서 북쪽으로 헤엄치는데, 서호주 브레머 베이로 진입하는 순간 범고래 패거리의 먹잇감이 된다고 전했다.

이어 “대왕고래는 범고래 본거지를 통과하지 못했다. 어려운 상황이었고 반격도 소용없었다. 대왕고래가 마지막 숨을 몰아쉬는 순간을 목격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가슴 아프지만 연구적 관점에서는 범고래 집단사냥을 목격하는 것 자체가 특권”이라고 말했다.

범고래는 상어나 다른 돌고래, 심지어 저보다 몸집이 큰 혹등고래까지 잡아먹어 ‘킬러 고래’라고도 불린다. 사람 다음으로 안정적인 사회를 형성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해양생물 가운데 최상위 포식자로서, 지능적이면서도 잔인한 사냥 방식으로 유명하다. 지구상에 현존하는 가장 큰 동물로 알려진 대왕고래가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 역시 범고래의 뛰어난 협동력에 있다.

권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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