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비안웨스트우드 브랜드 - bibian-weseuteuudeu beulaende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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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ndon - 08. 01. 2018 “I’M A FASHION DESIGNER AND ACTIVIST. YOU ALL KNOW WHAT I’M UP TO, I USE FASHION AS A VEHICLE FOR ACTIVISM TO STOP CLIMATE CHANGE AND MASS EXTINCTION OF LIFE ON 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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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90) XS 38 6 34 2 26 86.8 64.8 89.8
55 (90) S 40 8 36 4 27 86 68 93
66 (95) M 42 10 38 6 28 90 72 97.8
66 (95) L 44 12 40 8 29 94 76 101
77 (105) XL 46 14-16 42-44 10 30 98 80 105
77 (105) XXL 48 16 44 12 31 102 84 109

VIVIENNE WESTWOOD MEN'S

KR

STANDARD

IT

UK/AUSTRALIA

EUROPEAN

US

JEANS

BUST (CM)

WAIST (CM)

HIPS (CM)

95 XS 44 34 40 28-29 35 88 29 73
100 S 46 36 42 30-31 35 88 29 73
100 M 48 38 44 32-33 38.5 96 32 81
105 L 50 50 46 34-35 40 100 34 85
110 XL 52 42 48 36-37 41.5 104 35.5 89
115 XXL 54 44 50 38-39 43 108 37 93
  XXL 56 46-48 52   45 112 38 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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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안 웨스트우드가 말콤 맥라렌과 함께 1971년, 런던의 작은 옷가게에서 시작한 브랜드로 영국과 프랑스의 전통 복식에 기반한 남녀 의류, 가방, 슈즈, 선글라스, 스카프, 액세서리 등을 제작 · 판매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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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안 웨스트우드 브랜드 로고십자가가 달린 푸른색 구슬 모양의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로고의 ORB는 전통을 의미하여, 그 주변의 링은 미래를 의미한다. ‘창조적인 디자인은 전통과의 교류에서 비롯된다’는 디자이너의 철학에 따라 ‘전통을 살려 미래로’라는 뜻을 담고 있으며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1992년 대영제국훈장을 받으며 이 마크 사용을 정식으로 허락 받았다.

카테고리브랜드명브랜드 국적설립자설립연도주요인물
럭셔리 > 패션
비비안 웨스트우드
영국
비비안 웨스트우드
1971년
말콤 맥라렌

목차

  1. 1. 브랜드 정의 및 기원
  2. 2. 브랜드 탄생 및 설립자
  3. 3. 브랜드 역사
  4. 1) 렛잇락 오픈 ~ 펑크 창시(1971~1980)
  5. 2) 첫 번째 컬렉션 ‘해적’ 발표 ~ ‘미니 크리니’ 컬렉션 발표(1981~1986)
  6. 3) 런던으로 회귀 ~ 액세서리 및 속옷 브랜드 런칭(1987~1997)
  7. 4) 앙골로마니아 및 향수 론칭 ~ 현재(1998~현재)
  8. 4.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새로운 기술 및 발명
  9. 1) 펑크 스타일
  10. 2) 영국 복식 전통의 재해석
  11. 5.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대표 상품 라인
  12. 1) 입체적인 드레스
  13. 2) 플랫폼 슈즈
  14. 3) 타탄체크 및 ORB 로고를 새긴 가죽 제품
  15. 6.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광고 및 캠페인
  16. 1) 사진가 유르겐 텔러와의 광고 캠페인
  17. 2) 환경을 생각하는 협업
  18. 7. 브랜드 및 기업 정보
  19. 1) 비비안 웨스트우드 Ltd.
  20. 2) 연관 브랜드
  21. 3) 세계 진출 현황 및 규모
  22. 4) 브랜드 가치
  23. 8. 브랜드 특징
  24. 1) 펑크의 대모, 시대의 아이콘 비비안 웨스트우드
  25. 2) 과거 서양복식의 전통과 이국문화의 믹스매치
  26. 3) 환경문제 및 사회문제에 참여적인 브랜드 비비안 웨스트우드

1. 브랜드 정의 및 기원

비비안 웨스트우드(Vivienne Westwood)는 1971년 비비안 웨스트우드와 그녀의 동업자이자 연인이었던 말콤 맥라렌(Malcolm Mclaren)이 함께 영국 런던(London)의 킹스 로드(King ’s Road)에 연 패션 매장 ‘렛잇락(Let It Rock)’을 모태로 성장한 패션 브랜드다.

처음에는 구제 제품을 D.I.Y.(Do It Yourself)방식으로 리폼(Reform)한 과격한 펑크(Punk) 풍의 티셔츠(T-Shirt)를 제작한 뒤 ‘렛잇락’ 이름의 매장에서 판매하면서 사회에 불만을 품고 있던 반항적인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를 모으기 시작했다. 이후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동업자이자 섹스 피스톨즈(Sex Pistols)와 같은 록그룹(Rock Group)의 매니저였던 말콤 맥라렌의 도움으로 영국의 테일러링(Tailoring)과 프랑스(France)

로코코(Rococo)의 우아한 복식 양식을 접목한 의상을 선보이며 펑크 패션을 창시했다.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말콤 맥라렌과 함께 매장의 이름을 자주 변경했는데, 비비안 웨스트우드라는 이름을 매장 전면에 강조하기 시작한 것은 1990년 런던에 ‘비비안 웨스트우드’라는 간판을 단 매장을 개장했을 때부터였다.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여성 의류 컬렉션 이 외에도 현재 남성 의류 컬렉션, 가죽 제품, 액세서리(Accessories), 향수 등을 선보이고 있다.

2. 브랜드 탄생 및 설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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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안 웨스트우드 공식 인스타그램(Instagram)에 실린 15세의 비비안 웨스트우드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본명은 비비안 이사벨 스웨어(Vivienne Isabel Swire)로 영국 더비셔(Derbyshire)의 글로솝(Glossop) 지역에서 1941년 4월 8일에 세 명의 아이 중 첫째로 태어났다. 그녀의 어머니는 방직공이고 아버지는 구두 제조인이었다.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부모님은 자주성 있고 밝고 현명한 분들이었다’고 회고한다. 어린 시절의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패션에 관심이 많아 1947년 크리스챤 디올(Christian Dior)이 선보인 뉴 룩(New Look)을 아주 인상 깊게 기억하고 있었다고 한다.

10대 시절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종종 직접 옷을 만들어 입었는데 그 중에서는 크리스찬 디올의 뉴 룩을 따라 만든 것도 있었다.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학창 시절 교복도 몸에 붙는

펜슬 스커트(Pencil Skirt)로 개조해 입었다. 그녀는 전쟁 후 근검 절약하는 사회적인 분위기로 인해 옷을 만들 때 가능한 천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일반적인 서양 복식과 달리 천을 많이 재단하지 않은 채로 옷을 만드는 직선적이고 평면적인 기법이 많은

에스닉(Ethnic)한 재단 방식을 활용했고 이는 훗날 그녀가 디자이너가 되고 난 후에도 영향을 주었다.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어머니는 “16세때 이미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남다르게 옷을 입었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싶어요’라고 말했다.”고 회고한다.

하지만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멋 부리기를 좋아하는 소녀였을 뿐, 17세가 될 때까지는 예술에는 문외한이어서 미술책을 보거나 영화 구경을 한 적조차 없었다고 한다. 1957년, 그녀의 가족은 런던(London) 북서쪽에 있는 해로우(Harrow) 지역으로 이사를 갔다. 글로솝(Glossop)

그래머 스쿨(Grammar School)을 졸업한 17세의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영국에서 유서 깊고 학비도 비싸기로 유명한 해로 아트 스쿨(Harrow School of Art)에 입학해 파운데이션 코스(Foundation Course, 영국대학입학 예비과정)를 들었으나 예술가가 되기보다는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기 위해 한 학기 만에 그만두고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일했다. 안정적인 삶을 선택했지만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교사 생활 틈틈이 액세서리를 만들어서 벼룩 시장에 내다 팔며 패션에 대한 관심과 열정을 이어나갔다.

1962년, 21세의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댄스 홀(Dance Hall) 매니저였던 데렉 웨스트우드(Derek Westwood)와 결혼해 아들인 벤자민 어서 웨스트우드(Benjamin Arthur Westwood)를 낳고 교사 생활을 그만두었다. 하지만 1965년,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성격 차이로 데렉 웨스트우드와 이혼하고 런던 남부 지역에서 다시 교직생활을 시작했다.

한편 같은 해,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말콤 에드워드(Malcolm Edwards)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말콤 맥라렌이라고 불리던 그의 나이는 당시 18세였다. 예술과 역사에 조예가 깊었던 말콤 맥라렌과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만남은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인생에 전환점이었을 뿐 아니라 훗날 패션, 음악, 그래픽 디자인(Graphic Design) 등 다방면의 문화에 영향을 끼치는 ‘사건’이었다.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말콤 맥라렌은 정말 매력적이었다. 내가 동전의 한 면이라면 그는 다른 면을 내게 보여주곤 했다’고 말하며 “말콤 맥라렌을 만난 후 나에게 여러 문이 생긴 것 같았고, 그 문의 열쇠는 말콤 맥라렌이 가지고 있었다. 내가 처음 런던에 왔을 때

내셔널 갤러리(National Gallery)에 갔는데 당시 나에게 내셔널 갤러리 곳곳의 분위기는 기독교의 십자가를 연상케 하는 무서운 느낌이었다. 나중에 말콤 맥라렌과 다시 내셔널 갤러리를 찾았을 때에는 오히려 내가 접한 훈육의 틀을 깨고 새로운 영감을 얻는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1967년,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말콤 맥라렌과의 사이에서 아들인 조셉 페르디난드 코레(Joseph Ferdinand Corre)를 낳았다. 하지만 틀에 속박된 사고와 관계를 좋아하지 않았던 비비안 웨스트우드와 말콤 맥라렌은 평생 혼인은 하지 않으며 자유로운 관계를 유지했다.

1960년대 중반, 런던 430번지 킹스 로드에는 ‘옥수스(Oxus), ‘그래니 태이크스 어 트립(Granny Takes a Trip)’, ‘헝 온 유(Hung on You)’ 등 몇몇 유명한 옷가게가 자리잡고 있었다. 이 곳에서 판매하는 옷은 주로 에스닉,

히피(Hippie) 풍의 옷들이었다.

하지만 비비안 웨스트우드와 말콤 맥라렌은 이런 에스닉과 히피 스타일의 유행이 한 물 갔다고 생각했다. 당시의 반항적인 영국의 사회적인 분위기에 맞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히피나 펑크 모두 무정부주의적이라는 공통분모가 있으나, 히피들이 입던 의상은 다양한 색상의 자연주의적인 분위기였고, 이와는 반대로 펑크는 검은색 일색이었으며 의도적으로 위협적인 차림을 한 것과 같이 히피와는 전혀 다른 특성을 가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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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안 웨스트우드 공식 인스타그램(Instagram)에 실린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젊은 시절

1969년, 토미 로버트(Tommy Robert)가 운영하는 ‘미스터 프리덤(Mr. Freedom)’이라는 옷가게가 430번지 킹스 로드에 있었는데,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이 곳의 단골 손님이었다.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미스터 프리덤’에서 구입한

레오파드(Leopard) 무늬의 벨벳(Velvet) 소재 바지를 즐겨 입었고, 또 직접 만든 서큘러 스커트(Circular Skirt) 혹은 펜슬 스커트를 짧은 양말, 스텔레토 힐(Stiletto Heel) 구두와 함께 입고 다녔다. 말콤 맥라렌은 이런 비비안 웨스트우드가 ‘화려한 공작새, 걸어 다니는 신호등’ 같았다고 회고한다.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말콤 맥라렌의 권유에 따라 머리를 짧게 자르고 염색까지 했다.

이처럼 독특한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삶의 스타일은 1971년 그녀만의 개성과 철학이 담긴 옷가게 ‘렛잇락’을 여는 데 자양분을 제공했고 그녀만의 패션 스타일은 훗날

펑크(Punk)의 아이콘(Icon)인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의 스타일에도 영향을 미쳤다.

3. 브랜드 역사1) 렛잇락 오픈 ~ 펑크 창시(1971~1980)

1971년 말콤 맥라렌과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430 킹스 로드의 ‘파라다이스 가라지(Paradise Garage)’ 매장 뒷편에 ‘렛잇락’이라는 이름의 가게를 열었다. ‘렛잇락’에서는 런던의 브릭 레인(Brick Lane)에서 열리는 벼룩시장에서 수집한 로큰롤(Rock and Roll) 음반과 미국에서 공수한 빈티지(Vintage) 의상을 판매했다.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부엌에서 검은색 티셔츠나 줄무늬 티셔츠를 찢고, 자르고, 구멍내고, 문질러서 헤지게 하고, 스티치를 넣는 등의 다양한 방법으로 옷을 새롭게 리폼하는 작업을 하고 이를 ‘렛잇락’ 가게에서 판매했다.

말콤 맥라렌과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1972년, 430 킹스 로드 매장의 이름을 ‘투 패스트 투 리브, 투 영 투 다이(Too Fast To Live, Too Young To Die, 죽기에는 너무 젊고 살기에는 너무 타락했다는 뜻)’로 바꿨는데 이는 영화배우

제임스 딘(James Dean)에게서 영감을 받아 지은 이름이었다고 한다. 이 문구는 훗날 1986년 알렉스 콕스(Alex Cox) 감독의 영화 ‘시드와 낸시(Sid&Nancy)’에서 인용되었고, 디자이너들이 티셔츠에 문양으로 새기거나 유명 스타들의 문신에 종종 사용되는 등 청춘의 방황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문구가 되었다. 말콤 맥라렌과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그들의 매장에서 구제 데님과 가죽 재킷(Jacket), 주트 수트(Zoot Suit) 등을 만들어 판매했다.

또한 말콤 맥라렌과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그들의 의상을 수출하기 위해 미국에 갔다. 스트레치(Stretch) 트위드(Tweed) 소재의

캣 수트(Cat Suit), 모조 다이아몬드가 장식된 니트 모헤어(Knitted Mohair) 소재의 브래지어(Brassiere)와 부츠(Boots)를 착용한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사람들의 눈에 잘 띄었는데 그녀의 파격적인 스타일은 뉴욕 패션 업계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말콤 맥라렌과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미국 방문은 체계적인 계획 없이 주먹구구로 진행되었던 탓에 원래 방문 목적이었던 세일즈(Sales)에는 주목할만한 성과를 올리지 못했지만 뉴욕 돌스(New York Dolls)라는 그룹을 만나 뮤지션들과의 네트워크를 쌓는 계기를 제공했다.

한편, 비비안 웨스트우드가 리폼한 티셔츠는 점차 지퍼(Zipper) 장식을 달고 구멍을 보다 크고 거칠게 내는 식으로 진화했고, 종종 여자의 나체 사진을 넣거나 ‘락(Rock)’, ‘퍽(Fuck)’과 같은 도발적인 단어를 새기기도 했다. 이러한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티셔츠는 서서히 기존의 질서에서 벗어나는 반항적인 스타일로 인식되었다.

1974년, 말콤 맥라렌과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매장 이름을 ‘섹스(Sex)’로 바꿨다. 도발적인 매장 이름처럼 이들은 당시의 주류 기성복 문화에 도전하며 특정 계층, 즉 펑크족들에게 어필하는

컬트(Cult) 패션을 창조해갔다. 당시 ‘섹스’ 매장에서 판매하는 주요 의상은 포르노그래피(Pornography)를 연상케 하는 고무와 가죽 의상 등이었고, 기성 세대에게는 금기시되었던 나치(Nazis) 문양을 사용한 옷도 판매됐다.

1976년, 말콤 맥라렌과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가게 이름을 다시 ‘세디셔너리스(Seditionaries)’로 변경했다. 이 곳에서도 역시 가죽 끈 및 지퍼 등을 사용해 성적 페티시즘(Fetishism)을 자극하는 의상을 주로 판매했다. 같은 해, 원래부터 빈티지 음반을 수집하는 등 패션보다는 음악에 좀더 관심이 많았던 말콤 맥라렌은 런던에 펑크 열풍을 일으킨 그룹 섹스 피스톨즈의 매니저로 활동했고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섹스 피스톨즈의 무대 의상을 담당하며 펑크 스타일을 유행시키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훗날 섹스 피스톨즈의 리드보컬(Lead Vocal) 존 라이든(John Lydon)은 ‘비비안 웨스트우드가 무대의상으로 고무 재질로 된 셔츠(Shirt)를 입으라고 해서 진짜 웃겼다’고 언급한 바 있지만 지퍼, 사슬, 안전핀, 클립(Clip), 배지(Badge) 등을 장식한 가죽이나 고무 재질의 의상은 섹스 피스톨즈를 ‘펑크 그룹’으로 각인케 하는 데 중요한 요소였다.

1979년, 430번지 킹스 로드 매장은 다시 ‘

월드 엔드(World’s End)’로 이름을 바꿨다. 이때 매장 인테리어 또한 해적선 모양으로 바뀌었다. 작은 창문, 낮은 천장, 밧줄이 곳곳에 걸려 있는 갑판 모양의 바닥이 특징적인 인테리어였다. 가게 앞에는 12시간이 아닌 13시간을 나타내며 시계 바늘이 일반 시계와 달리 오른쪽에서 왼쪽 방향으로 돌아가는 ‘이상한’ 대형 벽시계를 설치했다. 이 시기 말콤 맥라렌은 좀더 음악에 집중하는 한편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패션 디자이너로서 자의식을 보다 분명히 가지고 고전 의상과 이국 문화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파격적인 ‘펑크 여왕’에서 영국을 대표하는 여성 디자이너로서 서서히 발돋움하기 시작했다.

2) 첫 번째 컬렉션 ‘해적’ 발표 ~ ‘미니 크리니’ 컬렉션 발표(1981~1986)

1981년 봄,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월드 엔드’라는 이름으로 선보이는 첫 번째 패션쇼를 열었다. 이는 1981년 가을/겨울 시즌 컬렉션으로 선보여졌으며 컬렉션의 테마는 당시 비비안 웨스트우드가 심취했던 ‘해적(Pirate)’이었다.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18세기 해적 시대에 주목해 당시의 남성복 재단법에서 영감을 받아 헐렁하고 비구조적인 셔츠, 바지 및 이각모 등을 선보였고 이를 통해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상업성 있는 디자이너로의 가능성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해적 컬렉션은 말콤 맥라렌이 매니저를 담당하고 있던 또 다른 팝 그룹 ‘바우 와우 와우(Bow Wow Wow)’의 스타일링에 사용되었다. 빅토리아 앤드 알버트 미술관(Victoria and Albert Museum)이 비비안 웨스트우드 해적 컬렉션의 독창적인 패턴에 주목해 의상을 구입했었을 만큼 그녀의 컬렉션은 상업성뿐만 아니라 예술성도 함께 갖췄다.

이후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과거의 역사와 문화를 의상에 반영한 컬렉션을 선보였다. 비비안 웨스트우드가 발표한 두 번째 1982년 봄/여름 시즌의 ‘새비지(Savage)’ 컬렉션은 북미 인디언들의 문화에서 영감을 받아 기하학적 패턴의 이국적인 의상들을 선보였고, 1982년 가을/겨울 시즌의 ‘버팔로(Buffalo)’ 컬렉션에서는 페루(Peru) 원주민 여성에게서 영감을 받은 과장되게 풍성한 스커트와 브래지어를 티셔츠 위해 덧입힌 스타일링 등을 선보였다. 이로서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속옷과 겉옷을 겹쳐 있는 대담한 ‘겹쳐 입기’ 방식이나 양쪽의 균형이 맞지 않는 ‘비대칭’ 등을 서구 패션사에서 처음으로 도입한 디자이너라는 평을 들었다.

1982년, 비비안 웨스트우드와 말콤 맥라렌은 킹스로드 거리의 매장에 이어 두 번째 런던 매장을 열었다. 매장의 이름은 ‘노스텔지어 오브 머드(Nostalgia of Mud)’였다. 하지만 이 매장은 1984년에 문을 닫았고 비비안 웨스트우드와 말콤 맥라렌 역시 결별했다.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말콤 맥라렌이 말로만 펑크를 외치고 있다’고 비판했지만 사실 말콤 맥라렌이 모 여배우와 가까워진 것이 결별의 원인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비비안 웨스트우드에게 펑크 패션의 이론적 배경을 제공했던 말콤 맥라렌과 헤어지면서부터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디자이너로서 한 단계 더 성장했다.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새로운 사업 파트너 카를로 다마리오(Carlo d’Amario)를 만나 1984년 이탈리아(Italy)로 작업실과 거처를 옮겼다. 한편, 1983년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파리

오트 쿠튀르(Haute-Couture) 컬렉션에 참가했는데, 영국 디자이너가 파리 오트 쿠튀르 쇼에 선 것은 메리 퀀트(Mary Quant) 이후 두 번째였다.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컬렉션에는 영화 ‘블레이드 러너(Blade Runner)’,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그래피티 예술가 키스 해링(Keith Haring)의 작품, 힙합(Hip Hop) 스타일, 도쿄(Tokyo) 밤 거리의 화려한 네온 사인(Neon Sign) 등 동시대의 문화적 요소들이 다양하게 반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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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 해링의 일러스트를 모티프로 제작된 비비안 웨스트우거드 컬렉션의 초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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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 해링의 일러스트를 모티프로 제작된 비비안 웨스트우드 컬렉션

무엇보다 비비안 웨스트우드가 가장 인정받게 된 계기는 1984년 10월, 파리에서 발표한 1985년 봄/여름 시즌 ‘미니 크리니(Mini-Crini)’ 컬렉션이었다. 당시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발레(Ballet) ‘페트루시카(Petrushka)’에서 영감을 받아 ‘미니 크리니’ 컬렉션을 구상했다고 한다. 패션쇼에는 빅토리아 시대(Victorian Era)의 상징인 크리놀린(Crinoline)이 사이즈가 축소되고 가벼운 플라스틱 소재가 사용된 ‘미니 크리니’로 등장했는데, 이는 귀여운 폴카 도트(Polka Dot) 무늬 스커트, 플랫폼 슈즈(Platform Shoes)와 매치되어 선보여 졌다. 당시 패션계에는 여피(Yuppie) 족을 중심으로 어깨를 강조한 단순하고 남성적인 수트(Suit)가 유행하고 있었는데, 여성스러움과 도발성이 부각된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새로운 컬렉션은 세간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3) 런던으로 회귀 ~ 액세서리 및 속옷 브랜드 런칭(1987~1997)

1987년에 발표된 ‘해리스 트위드(Harris Tweed) 컬렉션은 비비안 웨스트우드가 런던으로 다시 돌아와 발표한 첫 컬렉션이었다. 컬렉션을 통해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영국 신사복에 주로 사용되던 트위드와 영국에서 개발된 개버딘(Gabardine), 니트(Knit) 등 지극히 영국적인 소재를 사용한 의류를 선보였고 여왕의 왕관, 대관식의 망토 등 영국왕실을 상징하는 요소들도 가미했다. 당시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여왕의 코트를 에로틱한 미니 크리니와 결합시켰고, 트위드 천 조각으로 여왕의 왕관을 만들었으며, 대관식의 망토는 저렴한 인조 모피로 만들기도 했다. 이처럼 근엄한 왕실의 상징을 가볍게 표현하는 방식을 통해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해리스 트위드’ 컬렉션은 영국 전통에 대한 애정과 영국 문화의 보수성에 대한 조롱을 동시에 드러냈다는 평을 받았다.

1988년부터 1999년까지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영국은 이교도가 되어야 한다(British Must Go Pagan)’의 연작 시리즈를 선보였다.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이 시리즈를 통해 영국 복식의 전통은 물론 고대에서부터

르네상스(Renaissance) 등 복식 문화의 예술적 가치가 높이 평가되었던 시절의 유산들을 등장시켰다.

이를테면 1988년 봄/여름 시즌에 선보인 ‘파간 원(Pagan I)’ 컬렉션에서는 영국을 대표하는 남성복 소재로 일명 프린스 오브 웨일즈 체크(Prince of Wales Check)’라고도 불리는

글렌 체크(Glen Check) 무늬 재킷과 코르셋(Corset)을 믹스 앤드 매치(Mix & Match)하는 방식으로 쇼에 선보였다. 1989년 가을/겨울 컬렉션 ‘키테라 섬으로의 순례(Voyage To Cythera)’에서는 전통적인 새빌 로(Savile Row) 양식의 트위드 테일러링 재킷과 나뭇잎으로 국부만을 가린 것처럼 보이는 관능적인 타이츠(Tights)를 함께 매치했다.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이 옷을 착용하고 대중 앞에 나타나 다시 한 번 화제를 모았다.

1989년 11월, 유명 패션 전문지 ‘WWD(Women's Wear Daily)’의 편집장이었던 존 페어차일드(John Fairchild)는 비비안 웨스트우드를 세계 6인의 영향력 있는 디자이너 중 한 명으로 꼽았다. 함께 뽑힌 디자이너는

조르지오 아르마니(Giorgio Armani), 칼 라거펠트(Karl Lagerfeld), 이브 생 로랑(Yves Saint Laurent), 크리스찬 라크르와(Christian Lacroix), 엠마누엘 웅가로(Emanuel Ungaro)였다.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항상 자신의 여성복 컬렉션에 남성 모델도 종종 등장시키는 방법으로 자연스럽게 남성복을 선보여왔으나 1990년 7월에 정식으로 첫 남성복 컬렉션을 이탈리아 피렌체(Firenze)에서 열리는 피티 워모(Fitti UOMO, 1972년부터 시작된 세계 최대 규모의 남성복 컬렉션 및 박람회)에서 선보였다. 같은 해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슈즈, 아이웨어(Eyewear), 스카프(Scarf), 타이(Tie), 니트 웨어(Knit Wear), 슈에무라(Shu Uemura)와 협업을 통한 코스메틱 등으로 생산품목을 다양화하고 웨지우드(Wedgwood)와 같은 주방용품 브랜드와 협업을 진행하는 등 왕성하게 활동했다.

1990년 12월,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런던 메이페어(Mayfair)의 데이비스 거리(Davies Street) 6번지에 새 매장을 열었다. 1990년대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패션 사업의 양적 팽창만을 이루었을 뿐 아니라 역사, 문화 예술, 전통을 가로지르며 창조력을 발휘했다.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박물관과 미술관의 소장 자료들을 면밀히 연구하며 이를 새로운 창작의 기반으로 삼았다. 빅토리아 앤드 알버트 미술관의 큐레이터(Curator) 수잔 노스(Susan North)는 비비안 웨스트우드가 18세기 프랑스 복식을 기초로 현대적으로 재창조한 코르셋에 감탄을 표하며 ‘역사에 대한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관심은 다른 디자이너들과는 그 수준이 완전히 달랐다’고 말했다.

1990년과 1991년,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영국 패션 협회(British Fashion Council)에서 선정한 ‘올해의 디자이너’가 되었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생산 기지를 영국에서 이탈리아로 옮기며 ‘나는 지난 몇 년 동안 영국에서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투쟁에 가까운 노력을 해왔다’며 부실한 영국의 생산 기반에 대해 불평하기도 했다.

1992년 역시 비비안 웨스트우드에게 다채로운 한 해였다. 1992년,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컬렉션을 통해 웨딩 드레스(Wedding Dress)를 처음으로 선보였다. 같은 해인 1992년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런던 컨듀이트 거리(Conduit Street) 43번지에 새 매장을 열었고, 스위스의 시계 브랜드인

스와치(Swatch)와 협업해 ‘퍼티(Putti)’라는 이름의 시계를 디자인했다. 또한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Queen Elizabeth II)이 수여하는 O.B.E.(대영 제국 제4급 훈장)를 수상했다. 당시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속옷도 입지 않은 채 속이 훤히 비치는 망사 드레스를 입고 버킹엄 궁전(Buckingham Palace)에 수상을 하러 가서 또 한 번 세간의 화제가 되었다.

같은 해,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25세 연하의 안드레아스 크론탈러(Andreas Kronthaler)와 결혼했다. 이들은 비비안 웨스트우드가 비엔나 응용예술대학(Vienna Academy of Applied Arts)에서 교수로 재직하던 시절, 교수와 학생 사이로 만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안드레아스 크론탈러를 적극 지원했고 그에게 비비안 웨스트우드 남성복 컬렉션을 맡겼다. 이후 안드레아스 크론탈러는 비비안 웨스트우드와 함께 종종 비비안 웨스트우드 광고에 출연하고 있다.

1993년,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여성복을 골드 라벨(Gold Label)과 레드 라벨(Red Label) 두 가지로 나눴다. 또한 스와치와 함께 두 번째 시계인 ‘ORB’를 선보였다.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상징인 왕관과 지구 모양의 로고를 사용한 캐주얼(Casual)한 시계는 이후 꾸준한 인기를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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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적인 타탄 체크를 사용한 1993년 비비안 웨스트우드 컬렉션

한편, 1994년 12월에는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아들 조셉 페르디난드 코레가 아내인 세레나 리스(Serena Rees)와 함께 런던 소호에 란제리 브랜드 아장 프로보카퇴르(Agent Provocateur)를 열었다. 이 브랜드의 모토는 ‘입는 사람뿐만 아니라 그들의 연인에게 매력을 어필하는 란제리’를 만드는 것으로 이후 매우 섹슈얼(Sexual)한 광고 비주얼을 통해 유명해졌다.

4) 앙골로마니아 및 향수 론칭 ~ 현재(1998~현재)

1998년,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캐주얼 라인인 ‘앙골로마니아(Anglomania)’와 향수 ‘부두아(Boudoir)’를 론칭했다. ‘앙골로마니아’는 영국 숭배자라는 뜻이다. ‘부두아’는 ‘안방, 내실’이라는 뜻으로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말을 인용하면 ‘부두아’는 드레스 룸이자 옷을 걸치지 않아도 되는, 여성을 위한 특별한 공간이며 그녀 자신의 단점이나 잠재력까지도 발견할 수 있는 친밀한 공간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

1998년,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샴페인 브랜드

모엣&샹동이 선정한 ‘모엣 샹동 패션 트리뷰트(Moet & Chandon Fashion Tribute)’의 첫 번째 디자이너로 선정되었다. 모엣 샹동 패션 트리뷰트는 모엣&샹동이 빅토리아 앤드 알버트 미술관과 함께 매년 영향력 있는 디자이너를 선정하여 협업 및 전시를 진행하는 권위 있는 행사이다.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이후에도 박물관 전시에 종종 초청되며 20세기 패션사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음을 증명했다.

2000년 4월7일부터 6월25일까지 런던 뮤지엄(The Museum of London)에서는 ‘비비안 웨스트우드 : 로밀리 맥알파인의 컬렉션(Vivienne Westwood: The Collection of Romilly McAlpine)’ 전시가 열렸다. 2003년, 빅토리아 앤드 알버트 미술관에서는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34년 동안의 방대한 작품 세계를 정리하는 대대적인 회고전이 열렸다. 빅토리아 앤드 알버트 미술관의 20세기 패션 분야를 담당하고 있는 큐레이터(Curator) 클래어 윌콕스(Claire Wilcox)는 전시 공간을 2개로 나누고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컬렉션 의상을 연대순으로 전시했다. 이 전시는 빅토리아 앤드 알버트 뮤지엄 전시 사상 유례없는 관객을 동원했다고 한다. 2006년,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영국 패션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D.B.E. 작위(2등급의 작위급 훈장)를 수여 받았다.

한편,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라인을 확장하고 전 세계에 자신의 이름을 내세운 매장을 열었다. 1999년 2월에는 뉴욕(New York) 그린 가(Green Street)에 비비안 웨스트우드 레드 라벨(Red Label)의 매장을 열었다. 같은 해 그녀는 액세서리(Accessories) 라인과 목욕용품(Bath) 라인을 론칭했고 2000년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두 번째 향수인 ‘리버틴(Linertine)’을 론칭했다. 2002년 2월,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홍콩(Hong Kong)에 새 매장을 열었고, 2003년 6월에는 ‘영국 패션 수출상(UK Fashion Export Award for Design)’을 수상했다. 2003년 9월,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이탈리아 밀라노(Milano)에, 같은 해 10월에는 영국 리버풀(Liverpool)에 매장을 열었다. 2004년에는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세 번째 향수인 ‘앙골로마니아(Anglomania)’가 새롭게 선보여졌다. 한편, 2010년 4월,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파트너로 펑크 스타일을 창조하는데 기여한 공이 컸던 말콤 맥라렌이 사망했다.

‘펑크의 여왕’에서 패션계의 대모로 거듭난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자신의 초심인 ‘저항정신’을 잃지 않으며 오늘날까지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2009년,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가을/겨울 컬렉션에 파멜라 앤더슨(Pamela Anderson)을 모델로 세우고 같은 해 비비안 웨스트우드 광고에도 등장시켰다. 파멜라 앤더슨은 과도한 글래머 이미지의 스타로 럭셔리 패션에서는 전혀 선호하지 않는 모델인데,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파멜라 앤더슨을 과감히 기용해 패션 업계의 고정관념을 깨는 파격을 보여줬다. 2013년,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일생을 사진으로 담은 타센(Taschen) 출판사의 한정판 책 ‘허 마제스티(Her Majesty)’의 표지를 디자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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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에 출간한 자서전 ‘비비안 웨스트우드’ 표지

2014년 2월,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그린피스(Greenpeace)와 협력해 북극보호 캠페인 일러스트(Illustration)를 그리고 티셔츠를 판매하며 가수 크리스 마틴(Chris Martin), 가수 팔로마 페이스(Paloma Faith), 배우 조지 클로니(George Clooney), 모델 제리 홀(Jerry Hall) 등을 비롯한 자신과 친분이 있는 유명인들에게 티셔츠를 입도록 장려해 그린피스 캠페인의 홍보를 도왔다. 같은 해인 2014년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자신의 상징이나 다름 없었던 붉은색 머리를 삭발했다. 그 이유는 런던 남부의 기후 변화를 촉진하는 정부의 입찰에 반대하는 자신의 확고한 뜻을 알리고자 함이었고,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삭발한 채 거리 시위에 나섰다.

또한 같은 해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자서전 ‘비비안 웨스트우드(Vivienne Westwood)’를 냈다. 사진가 유르겐 텔러(Juergen Teller)가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런던 자택에서 표지를 촬영했고, 이안 켈리(Ian Kelly) 작가가 집필을 도왔다.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자서전을 통해 유르겐 텔러가 촬영한 자신의 사진 중 쭈글쭈글하게 늙은 자신의 손이 정말 매력적으로 보인다고 언급하며 인공적인 성형 없이 ‘아름답게 나이 드는 법’에 대한 새로운 메시지를 패션계에 남겼다.

4.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새로운 기술 및 발명1) 펑크 스타일

1970년대에는 석유파동으로 인한 국제적인 경기 불황에 따라 실업률이 증가했고 젊은 세대들은 집단적인 좌절, 절망, 분노 등을 느꼈다. 따라서 당시 젊은 세대들은 기존의 체제에 반감을 표시했는데, 이는 기존의 질서를 거부하면서도 경건하고 지적인 분위기를 풍긴 히피와는 달리 반지식주의를 지향한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펑크는 아프리카 모히칸(Mochican)을 차용한 헤어 스타일(Hair Style)에 빨강, 파랑 등 파격적인 색으로 머리를 물들여 외양만으로도 반체제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패션사에서 펑크의 등장은 정확히 1976년 여름, 런던에서 출연했다고 기술된다.

그 중심에 비비안 웨스트우드와 그녀가 파트너이자 섹스 피스톨즈의 매니저였던 말콤 맥라렌이 있다. 이들은 영국 430번지 킹스 로드에 옷가게를 열고, 옷을 찢고 자르고 지퍼나 안전핀, 금속 장식 등을 덕지덕지 붙이고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 ‘나를 죽이시오’, ‘인생은 지루하다’ 등의 과격한 메시지를 새긴 티셔츠를 판매했다. 반항적인 음악과 패션이 공존했던 이 가게는 점차 당시 런던의 젊은이들의 아지트(Agitpunkt)가 되었다.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처음에는 자신의 집 부엌에서 D.I.Y. 방식으로 옷을 만들었는데, 비비안 웨스트우드와 말콤 맥라렌은 이처럼 기존의 옷을 새롭게 재창조하는 행위를 통해 관습을 거부하는 펑크의 한 양식을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펑크 스타일을 만들어내며 ‘펑크의 대모’로 불리는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훗날 디자이너 알렉산더 맥퀸(Alexander McQueen), 존 갈리아노(John Galliano), 장 폴 고티에(Jean Paul Gaultier) 등에게 영향을 주었다.

2) 영국 복식 전통의 재해석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나의 작업은 영국 테일러링(Tailoring)에 기초한다’고 말해왔다.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영국 테일러링의 전통을 현대화하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이어갔다.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1993년 록캐런(Lochcarron)사와의 협업을 하며 자신의 새로운 남편의 이름을 딴 ‘안드레아스(McAndreas)’라는 이름의 고유의 타탄 체크(Tartan Check) 무늬를 개발했고, 이를 1993년 가을/겨울 시즌 컬렉션 ‘앙골로마니아’를 통해 좀더 캐주얼한 분위기로 재해석해 선보였다. 1994년 가을/겨울 시즌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온 리버티(On Liberty)’ 컬렉션을 통해서도 타탄 체크, 킬트 스커트(Kilt Skirt), 아가일 스웨터(Argyle Sweater), 승마복 등 영국적인 분위기를 담은 의상을 선보이며 전 세계에 영국적인 전통 의상을 고루한 것이 아닌, 좀더 젊고 경쾌한 분위기로 알리는 데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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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가을/겨울 시즌 안드레아스 타탄 체크를 사용한 앙골로마니아 일러스트

5.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대표 상품 라인1) 입체적인 드레스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입체 드래이핑(Draping) 방식을 즐겨 사용한다. 이는 패턴을 바닥에 그리고 이에 따라 소재를 재단하고 봉제해 옷을 만드는 일반적인 테일러링 방식이 아니라 마네킹에 천을 대고 직접 주름을 잡고 다트를 넣는 등의 방식으로 완성되기 때문에 비비안 웨스트우드 특유의 풍성한 옷을 만드는 핵심 봉제 기술이다. 특히, 이런 특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은 화려한 드레스다. 2008년, 동명의 TV 시리즈를 영화로 만든 ‘섹스앤더시티(Sex and the City)’에서 주연을 맡은 사라 제시카 파커(Sarah Jessica Parker)는 결혼식 날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화려한 드레스를 입었다. 이 드레스는 금빛이 도는 아이보리 컬러의 코르셋과 광택 있는 재질의 풍성한 스커트, 날렵한 네크라인(Neck Line)이 특징이었다. 이와 같이 여성스러운 동시에 반항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입체적인 드레스는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대표 상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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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안 웨스트우드의 웨딩 드레스, 2014년 가을/겨울 시즌

2) 플랫폼 슈즈

밑창 전체를 높게 한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플랫폼 슈즈는 펑크를 기반으로 한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정체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아이템 중 하나다. 특히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플랫폼 슈즈는 1990년대 중후반 일본에서 크게 유행해 이를 신고 운전을 하던 여성이 자동차 운전을 하다가 교통 사고를 내거나 높은 굽 때문에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는 등 관련된 사고가 속출하는 해프닝이 발생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1993년, 모델 나오미 캠벨(Naomi Campbell)이 40cm가 넘는 높이의 비비안 웨스트우드 플랫폼을 신고 무대에서 워킹 중에 넘어진 사건은 20세기 패션사에서 두고두고 회자되는 중요한 장면이 되었다. 이에 대해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자연스럽게 보이는 것을 싫어한다. 때로는 아픔이나 불편함도 참아야 한다. 멋진 하이힐을 신으려면 발이 아파도 참아야 한다. 그래야 특별해질 수 있다. 자연스럽게 보이는 것은 재미없고 지루하다. 그런 점에서 내 옷이 멋지다.” 이와 같이 플랫폼 슈즈는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디자인 철학이 가장 잘 담긴 브랜드의 대표 상품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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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안 웨스트우드의 플랫폼 하이힐을 신고 워킹 중 넘어진 나오미 캠벨1993년 가을, 겨울 시즌, 나오미 캠벨이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플랫폼 하이힐을 신고 워킹 중 넘어졌다.

3) 타탄체크 및 ORB 로고를 새긴 가죽 제품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ORB 로고와 타탄체크는 20세기 대중들에게 가장 성공적으로 각인된 표식 중 하나이다. ‘전통을 살려 미래로’라는 뜻을 담고 있는 ORB로고는 전통과 현대의 복식 양식을 미스 매치해 새로운 창조물을 내놓는 비비안 웨스트우드를 가장 잘 나타내는 표식이기도 하다. 매 시즌, ORB 로고와 타탄체크를 새긴 가방, 지갑, 명함지갑 등은 유행에 따라 약간의 장식과 중심 컬러를 변형하며 꾸준히 베스트셀링 제품으로 자리잡고 있다.

6.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광고 및 캠페인1) 사진가 유르겐 텔러와의 광고 캠페인

비비안 웨스트우드가 창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펑크는 주류문화가 아닌, 하류문화다.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펑크의 여왕’이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광고에서도 고상한 척, 부자인 척, 멋있는 척 하려는 가식은 떨지 않는다. 오히려 꾀죄죄하고 구겨진 옷을 입은 모델이 뒷골목이나 대형 마트 같은 곳에서 해맑게 웃고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실소를 자아내게 하는 식이다.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광고에는 전문 모델뿐 아니라 디자이너 비비안 웨스트우드와 25세 연하 남편인 안드레아스 크론탈러가 종종 등장하기도 한다.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광고는 주로 사진가 유르겐 텔러가 촬영해왔다.

독일 출신의 사진가 유르겐 텔러는 군대에 가기 싫어 20대 초반에 영국 런던에 정착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또한 비비안 웨스트우드가 기존의 전통과 질서를 타파한 것처럼 유르겐 텔러 역시 기존에 있던 사진의 틀을 깼다. 진지하고 우아한 패션 사진의 전통을 깬 마치 휴대용 조명 하나를 ‘대충’ 터트린 듯 가공되지 않은 사진을 통해 유르겐 텔러는 그만의 독특한 작업 스타일을 구축했다. 심지어 그는 사진에 어떤 보정도 가하지 않고 보정을 즐기는 사진 작가들에게 진지하게 묻는다. ‘플라스틱 같은 인형의 여인들이 섹시해 보이는가?’하고 말이다. 이런 유르겐 텔러 앞에서는 유명 모델이나 연예인이라고 해도 우아함은 기꺼이 포기한다.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우리는 오래 전부터 브랜드 광고 캠페인을 위해 함께 작업했다’며 ‘사진을 찍는 것은 그림을 그리는 것과는 다르다. 하지만 유르겐 텔러는 사진을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찍는다. 유르겐 텔러의 사진이 대단한 또 다른 이유는 사진 속에 표현되는 것이 딱 나 자신이라는 점이다. 사진 속에 표현되는 것들이 정확히 피사체의 모습을 투영하면서도 새로운 모습을 표현하기도 한다’며 유르겐 텔러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드러냈다. 이에 유르겐 텔러는 ‘내가 비비안 웨스트우드를 처음 만나고 사진을 찍었을 때가 아마 20년 전쯤이었다. 나는 순식간에 그녀에게 사로잡혔고 그녀가 하는 모든 일에 대한 확신이 생겼다. 우리는 서로에게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며 비비안 웨스트우드와의 우정을 과시하기도 했다.

이처럼 비비안 웨스트우드와 유르겐 텔러가 함께 만들어내는 광고 사진에는 주류 문화가 아닌, 비주류 문화지향적인 독특함, 개성이 반영되어 있다. 2013년 봄/여름 시즌 비비안 웨스트우드 광고에는 유명 모델 케이트 모스(Kate Moss)가 등장했는데 이미 ‘주류’가 된 케이트 모스 역시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광고 속에서는 과도한 섹스어필을 통해 비주류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2014년 봄/여름 시즌 비비안 웨스트우드 광고에는 비비안 웨스트우드와 미국 출신의 모델이자 뮤지션인 레슬리 위너(Leslie Winer)가 등장했다. 레슬리 위너의 나이는 베일에 가려져 있지만 한눈에 50은 족히 넘었을 듯 주름이 자글자글한 그녀가 매니시한 분위기의 재킷과 스카프를 두르고 피사체가 된 모습은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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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가 유르겐 텔러가 촬영한 2014년 가을/겨울 시즌 비비안 웨스트우드 광고비비안 웨스트우드와 현재 남편인 안드레아스 크론탈러가 전문 모델인 스텔라 슈나발(Stella Schnabal)과 함께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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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가을/겨울 시즌 비비안 웨스트우드 광고에 직접 출연한 비비안 웨스트우드

2) 환경을 생각하는 협업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이는 대부분 환경을 위한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행보와 동일선상에 있다.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2013년 러시(Lush)라는 코스메틱(Cosmetic) 브랜드와 협업해 유기농 면 소재로 만든 스카프 패키지(Package)를 선보였는데 이는 매년 수십만 톤 발생하는 선물용 포장지를 줄이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또한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멜리사(Melissa)라는 신발 브랜드와 협업하여 젤리(Jelly) 슈즈를 선보이고 있다.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멜리사는 한번 신고 버리는 신발이 아니라 버려지는 신발을 녹여서 얻은 소재로 다시 신발을 만든다는 것에 매력을 느꼈다’고 한다. 환경을 생각하는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경향은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광고에도 반영되었다. 2011년 가을/겨울 시즌 광고 캠페인에서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쓰레기 더미 위에서 광고 촬영을 했는데 이는 버려지는 쓰레기를 재활용하고 아프리카의 자연을 보호하자는 의미를 담은 것이었다.

7. 브랜드 및 기업 정보1) 비비안 웨스트우드 Ltd.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영국의 럭셔리 패션 브랜드로 영국 런던 엘조 가(Elcho Street)에 본사가 있다.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남녀 컬렉션, 가죽제품, 액세서리, 향수, 아이웨어, 웨딩 드레스 등의 제품을 디자인 개발, 생산, 유통 및 마케팅까지 총괄한다. 판매는 전 세계 직영점을 통해 이루어진다.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1992년에 상장되었고 현재 크리스티아노 민치오(Chritiano Minchio)가 CEO를 맡고 있다.

2) 연관 브랜드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현재 비비안 웨스트우드 골드 라벨, 비비안 웨스트우드 레드 라벨, 비비안 웨스트우드앙골로마니아, 비비안 웨스트우드 맨(Man)등의 라인을 보유하고 있다.

· 비비안 웨스트우드 골드 라벨
여성복 중심 라인이다. 여성스러운 실루엣과 영국 전통의 테일러링에 기반을 두어 제작되며 이브닝 웨어도 골드 라벨에서 선보인다.

· 비비안 웨스트우드 레드 라벨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세컨 라벨이다. 골드 라벨에 비해 캐주얼한 분위기이며, 가격 또한 골드 라벨보다 저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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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터 수 드래이(Sue Dray)가 포착해 그림으로 표현한 2015년 봄/여름 시즌 비비안 웨스트우드 레드 라벨 컬렉션의 백스테이지

· 비비안 웨스트우드 앙골로마니아
1970년대 초창기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펑크 분위기를 담아 만드는 캐주얼 라인이다. 젊음과 반항의 정신을 캐주얼한 데님, 저지 등의 소재로 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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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가을/겨울 시즌의 앙골로마니아 컬렉션 광고 비주얼

· 비비안 웨스트우드 맨
남성복 중심의 컬렉션이며 포멀한 디자인, 고급 소재를 사용한 럭셔리(Luxury) 라인이다. 비비안 웨스트우드 맨 라인은 옷감의 선택부터 봉제 작업까지 수작업으로 완성되는 ‘네이비’ 라인과 데님과 같은 캐주얼한 소재를 사용하는 ‘퍼플’ 라인 두 가지로 나뉜다.

3) 세계 진출 현황 및 규모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영국, 중국, 일본, 미국, 프랑스, 쿠웨이트, 레바논, 카타르, 싱가포르, 타이완, 태국, 아랍에미레이트 등 세계 각지에 많은 수의 매장을 두고 있다.

4) 브랜드 가치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위민스 웨어 데일리(Women’s Wear Daily)’에서 선정한 올해의 영국 디자이너(British Designer of the Year)’에 1989년, 1990년, 1991년까지 꾸준히 랭크 되었다.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영국 문화와 패션 산업에 기여한 공을 인정받아 영국 여왕으로부터 1992년 O.B.E에 이어 2006년 D.B.E. 등의 훈장을 수여 받았다.

8. 브랜드 특징1) 펑크의 대모, 시대의 아이콘 비비안 웨스트우드

비비안 웨스트우드 브랜드의 정체성은 동명의 디자이너에게서 비롯된다. 무난하지 않았던 결혼 생활, 파격적인 옷차림 등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대중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과감함으로 늘 화제를 몰고 다녔다.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일상생활에서 보여지는 모습 또한 브랜드가 많은 팬을 거느리는 데 기여했다.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평생 400파운드짜리 좁은 월세 집에서 살았으며, 60세를 넘는 나이에도 자전거를 타고 디자인 사무실에 출근했고, 현재의 남편인 안드레아스 크론탈러가 집을 구한 후에야 자신의 집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1941년 생인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70세를 훌쩍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왕성하게 사회적인 문제에 의견을 내며 시대의 아이콘, 패션계의 오피니언 리더(Opinion Leader)다운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린피스와 같은 환경 단체의 캠페인을 돕고, 자신의 고향이기도 한 스코트랜드 분리독립에 찬성의 목소리를 드높이기도 했다. 또한 아프리카 등지의 빈곤층과 소외된 여성에게 일자리를 창출을 통해 생활에 도움을 주기 위해 길거리의 현수막, 텐트 등을 재활용해 제작된 가방 등 ‘윤리적인 패션 아프리카(Ethical Fashion Africa)’를 2010년도에 론칭했다.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브랜드의 설립자이자 운영자라는 위치와는 상충되게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많은 옷을 쇼핑하지 말 것을 독려하며, 그녀 자신도 방송출연 등으로 대중 앞에 모습을 나타날 때 같은 옷을 여러 번 입고 나와 자신의 패션 철학을 몸소 실천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환경을 위해서는 덜 사고 덜 소비해야 한다. 물건을 살 때 아무 생각 없이 구입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주장하며 케이트 미들턴(Kate Middleton) 왕세자비에게도 공식적인 인터뷰를 통해 ‘같은 옷을 입은 모습을 여러 번 보고 싶다. 좋아하는 옷이 있으면 그걸 다양하게 연출하는 것이 멋진 옷차림이다’라고 언론 인터뷰를 통해 공식적으로 조언하기도 했다.

2) 과거 서양복식의 전통과 이국문화의 믹스매치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정확한 테일러링을 통해 편안함을 제공하는 영국 패션의 특성과 디자인 및 정확한 프로포션의 미적 측면을 중요시하는 프랑스 패션의 특성을 동시에 이해하고 적용하는 디자이너였다.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자신이 태어난 영국의 패션과 프랑스의 문화를 비교 연구하며 영감을 얻었을 뿐 아니라 자신의 디자인 정체성을 만들어나갔다. 화려했던 프랑스와 영국의 옛 복식 스타일을 조합한 결과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의상은 미니멀리즘이 주도한 1990년대를 전후한 패션 경향과는 정반대로 연극적이고 웅장한 특성을 지니게 되었다.

비비안 웨스트우드가 1996년 봄/여름 시즌에 선보인 ‘르 팜므(Les Femmes)’ 컬렉션에서 모델 린다 에반젤리스타(Linda Evangelista)가 입었던 웅장한 치마 사이즈와 극도로 화려한 장식의 드레스는 18세기 로코코 시대의 와토 가운(Watteau Gown)을 비대칭적으로 변형시켜 만든 것으로 전통 패션, 특히 로코코 궁정 문화에서 영감을 얻는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특성을 보여주는 대표작이다. 이는 현재 영국 빅토리아 앤드 알버트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의상에서 또 하나 주목할만한 점은 서구 복식 문화에서 오랫동안 규범으로 확립되어 온 겉옷과 속옷의 개념과 형식을 무시하고 해체시키는 방법을 통해 옛 의상을 진부하지 않게 표현한 점이다. 일례로 1987년 가을/겨울 시즌에 선보인 ‘해리스 트위드’ 컬렉션에서는 비비안 웨스트우드가 코르셋을 처음으로 만들어 선보였고 이를 겉옷과 함께 보이도록 믹스매치했다. 1982년 가을/겨울 시즌에 선보인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버팔로’ 컬렉션에서는 브래지어를 티셔츠 위에 덧입힌 파격적인 스타일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처럼 영국과 프랑스의 전통 복식을 차용하면서도 이국적인 문화에서 영감을 받아 비대칭적이고 자유분방한 ‘겹쳐 입기’ 방식을 도입한 비비안 웨스트우드 컬렉션은 패션 비평가들에 의해 20세기 후반 부상한 포스트모던(Post Modern) 패션의 중요 사례로 꼽힌다.

3) 환경문제 및 사회문제에 참여적인 브랜드 비비안 웨스트우드

최근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디자이너뿐 아니라 환경운동가로도 활약할 뿐만 아니라 쇼를 통해 정치적 목소리를 내고 있다.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패션을 통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다음과 같이 발언했다. ‘패션쇼 피날레에 적힌 문구 하나도 화제가 되는 시대이다. 그러니 이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없다. 방송에 나가 인터뷰(Interview)하는 것보다 파급력이 크니 말이다. 나는 운이 좋게도 패션을 통해 명성을 얻었다. 이 명성이 환경과 인권 운동에 도움이 된다는 게 무척 뿌듯하다’.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2006년 가을/겨울 컬렉션에서 '레오나드 펠티어는 무죄이다(Leonard Peltier is Innocent)'라고 쓴 캠페인 티셔츠를 선보임으로서 FBI 요원 2명을 살해한 혐의로 30년째 복역중인 레오나드 펠티어라는 미국 인디언 인권 운동가의 석방을 요구했고, 2013년 8월 ‘브래들리 매닝(Bradley Manning) 일병의 35년 구형’에 항의하며 런던 내 미국 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했고, 이런 내용을 자신의 컬렉션에도 반영하여 ‘브래들리 매닝을 석방하라(Free Bradley Manning)’는 캠페인 문구를 새긴 티셔츠와 액세서리를 선보였다. 브래들리 매닝 일병은 폭로사이트 위키리크스(wikileaks.org)에 세계 각국의 부정부패 사실이 담긴 외교기밀문서 70만여 건을 폭로한 이후 2010년 5월 불법 체포됐다. 미국정부가 ‘미국의 중요한 외교전문을 유출한 범죄자’로 인정해 그를 감옥에 수감한 것이다.

이에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펑크는 정의이자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시도’라며 브래들리 매닝을 지지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2015년 봄/여름 컬렉션에서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우리는 스코틀랜드(Scotland)가 영국으로부터 분리 독립하는 투표에서 이기기를 바란다. 나는 영국에 대해 상당히 반감이 많다. 영국은 모든 걸 망쳐놨고, 정치인들은 불완전한 자본주의 시장으로 사람들의 생활 수준을 모두 끌어내렸다’라며 스코틀랜드 분리 독립투표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각종 언론 인터뷰를 통해 드러내기도 했다.

한편, 비비안 웨스트우드가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1994년경 환경학자인 제임스 러브록(James Ephraim Lovelock)의 책을 읽은 후부터였다고 한다.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기후 변화에 대한 가이아 이론을 만든 제임스 러브록은 수십억 명의 사람이 이번 세기가 끝나기 전에 기후 변화 때문에 생존을 위협받고, 북극에 사는 소수의 사람들만이 살아남을 거라고 단언했다’며 ‘그 책을 읽고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도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한다.

이후 비비안 웨스우드는 환경 보호 비영리 단체인 쿨 어스(Cool Earth)에 100만 파운드를 기부한 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윤리적 패션(Ethical Fashion) 인사로서의 행보를 시작했다. 2013년 봄/여름 컬렉션에서는 피날레에서 사각 쇼츠(Shorts) 위에 팬티 스타킹(Panty Stocking)을 덧입은 파격적인 모습으로 등장해 ‘기후변화혁명(Climate Revolution)’이라고 쓴 플래카드(Placard)를 흔들었고, 2013년 가을/겨울 컬렉션에서 행주를 재활용해 만든 의상을 선보이기도 했다.

참고문헌

  • 비비안 웨스트우드 공식 웹사이트(www.viviennewestwood.com)
  • Vivienne Westwood』, 2004년, Claire Wilcox 지음 / 출판사 : V&A Publishing
  • 보그닷컴, 『런던 펑크 퀸,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자서전』, 2014년 10월 9일자
  • 매일경제, 『삭발한 ‘비비안 웨스트우드’, 왜?』, 2014년 3월 21일자
  • 매일경제, 『국내 패션계 ‘오피니언 리더’의 부재』, 2013년 8월 22일자
  • 얼루어,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친환경 디자인 Eco Queen』, 2014년 4월호
  • 패션저널, 『이제는 지속가능성장(Sustainable) 패션이다(上)』, 2013년 11월 25일자
  • 네이버캐스트, 비비안 웨스트우드
  • 네이버 지식백과, 패션전문사전, 섹스 피스톨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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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인터브랜드 1974년에 설립된 인터브랜드는 현재 미국 뉴욕에 본사를 두고 있으며, 전 세계 27개국에 40개 오피스를 두고 있다. 인터브랜드는 브랜드 전략 수립 및 언어적, 시각적 크리에이티브(Creative, 네이밍, 슬로건, 디자인, 디지털 등의 제작 활동을 의미)를 통해 기업들의 브랜드 가치 창조 및 관리에 기여하고 있으며, 지난 40여년 동안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 BMW, P&G 등 글로벌 기업의 브랜드 컨설팅을 수행해 왔다. 인터브랜드 한국 법인은 1994년에 설립되었다.

명수진 | 전 ELLE 패션 디렉터/현 패션 컨텐츠 크리에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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