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의 글 고열 - bing-ui geul goyeol

근데, 아직 아닌가 봐.

윤기의 낮은 음성이 공허한 집 안을 가득 채우자 석진은 쓴웃음을 지었다. 마치 그럴 줄 알았단 듯이.

○○이는 그 아이가 지내 온 과거 덕분에, 타인 혹은 어른들에게 미움받지 않는 법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을 귀찮게 하거나 거슬리게 하는 언행은 절대 행하지 않을 것, 그들이 접했을 때 기뻐하지 않을 사실은 알리지 않을 것, 난제는 무슨 일이 있어도 혼자 해결할 것. 저만의 규율 3개를 만들어 스스로를 통제했고, 지나치게 이른 시기에 철이 들어 있었다.

그렇게 행동하라 배웠고, 그래야만 했다. 누군가의 미움을 사지 않으려면.

이 집 안에서도 다름없었다. 항상 멤버들의 눈치를 최우선으로 살피고, 그들에게 짐이 되는 행동 따위는 하지 않는 것에 필사적이었다. 하지만 이 아이의 위태로운 신념 때문에 결국 일이 터지고야 만 것이다.

팀닥터 석진이 해외 출장을 가고 집을 비운 3년 전의 어느 날, 아이들이 모두 잠든 한밤중에 ○○이가 심한 고열을 앓았지만 누구한테도 알리지 않은 채 다음 날까지 버틴 일이 있었다. 다음 날 새벽 일찍 알바 나갈 준비를 하던 호석이가 정신을 잃은 ○○이를 발견하고 급히 응급실로 달려간 덕에 일주일 동안 입원하는 것으로 사건은 종결되었다.

○○이가 퇴원하고 집으로 돌아왔던 그날, ○○이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윤기에게 혼이 났다. 한 번만 더 우리 눈치 봐가면서 행동하면 가만 안 둘 거라고, 다시는 무리하게 혼자 해결하려 하지 말라고. 물론 그날 이후 그런 행동을 일절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필요한 게 있거나 아픈 곳이 있을 때는 꼬박꼬박 말했다.

그렇게 조금씩 적응해 갔지만, 오늘 윤기한테 아픈 곳을 숨김으로써 아직까지 그들에게 온전히 적응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윤기에게 상기시킨 셈이다.

윤기는 그런 ○○이의 태도에 이질감을 느낀 것이다. ○○이와 자신 사이의 터무니없이 먼 거리감에 대한 이질감을.





"너 방금 혼자 자책했지?"
"아니거든요."
"아니긴 뭐가 아니야."



 한참 동안 생각에 잠긴 윤기를 바라만 보던 석진이 자세를 바꾸며 윤기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윤기는 제 옆에 석진이 있었다는 사실을 잠시 망각했던 건지 어깨를 티 나지 않게 들썩이며 놀램을 표했다.





"○○이가 아무리 어른인 척하고 괜찮은 척해도 아직 상처 많은 애야."
"알아요."
"우리가 더 보듬어줘야 해. 너도 알고 있겠지만 많이 약한 애잖아."



 윤기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어쩌면 윤기는 내심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에게 보금자리 혹은 피난처와 같은 존재가 되어주는 사람이 자신이기를. 그리고 깨달았을 것이다. 언젠가부터 자신의 무의식적인 바람이 그 아이에게 강요되고 있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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