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해야 쪼개지는 거지 - eotteohge haeya jjogaejineun geoji

어이, 이 선수. 평상시처럼 불러도 상관없지? 벌써 여름방학이 끝나고 새 학기가 시작되네. 참 근래에 보기 힘든 더위였던 것 같지 않소? 태풍이, 폭우가 들이닥쳐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가져다 줬는데, 어떤 사람이 이런 말을 하데. 아무래도 서울 사람들이 저지른 일을 시골 사람들이 엉뚱하게 덮어쓴 것 같다고. 그때는 그 말이 별로 실감이 안 났는데, 남태평양 어느 소국 환경부장관이 텔레비전에서 한 하소연을 보니 정말 명치가 쪼개지는 것 같아 '악!' 소리를 지르지 않을 수 없었네. 석유 한 방울, 연탄 한 장 쓴 것 없는 조그만 섬나라가 왜 북반구의 그 무지막지한 에너지 낭비 탓에 땅을 잃고 난민으로 헤매야 하느냐는 거지. 힘센 자의 평안은 지구 저 건너편 약한 자의 불행을 조건으로 한다는 사실, 역시 현실은 학자들의 말보다 백 배 천 배 강력하였다네.

한미FTA라는 것도 마찬가지 아니겠나. 자네도 NAFTA와 멕시코의 실태를 충격적으로 고발했지. 개인으로서나 시민의 일원으로서나, 일방적 한미FTA 체결에 반대하는 운동가로서나 무척 고맙네. 정말 한미FTA는 누구의 희생을 전제로 한 어떤 집단의 장난일까? 자네는 내가 여러 차례 '한미재계회의'라는 걸 회의하라고 했던 걸 아마 기억할 거네? 양국의 거대 재벌, 다국적기업들의 모임 말일세.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군사·외교·사회 전 분야에 대해 논의하는 거대 테이블, 한미FTA가 바로 이 회의의 주인공, 그 사익과 어찌 무관하겠나? 그래서 제발 좀 이 회의의 실체에 관해 알아보라고 만나는 기자, PD들에게 말했는데, 자네 좀 늦긴 했지만 한번 수고해보면 어떻겠나? 9월초 미국에서 3차 회의가 열린다지만, 솔직히 모든 권력의 결정은 무대가 아닌 막후에서 정해지는 것 아닌가?

그 정도는 훤히 읽어낼 수 있기에 자네를 '선수'라고 말하는 것 아니겠나. 하하. 그러고 보니 자네한테 아쉬운 느낌이 드는 것도 있네. 어떤 술자리에선가, 난 이렇게 자네에게 목청을 높였던 것 같네. 한미FTA가 가져다 줄 양극화의 비극을 왜 멕시코를 통해 에둘러 보여줄 것 있나? 이미 노동의 기회, 삶의 기회를 박탈당한 무수한 다중의 삶이 바로 이곳 서울에 득실대니 가보라고. 몇 천 원 짜리 조잡한 물건을 들고 지하철역과 도심인도를 꽉 채운 행상들과 신자유주의 세계화, 양극화 문제가 어찌 따로 일 수 있겠나? 결국 엄정한 '법질서'와 '공권력'은 이들만 '엄단'하려들겠지? 이들을 거리로 내 몬 자본의 부패, 재벌의 비리는 '국익'을 위하고 '경제에 이바지한 공적'을 고려해 집행유예 되겠지? 그때 자네는 뭘 하고 있겠는가?

KBS의 PD, MBC의 기자들이 1호선을 타고 의정부로, 120번을 타고 미아리로 한번 다녀봤는지 모르겠네. 요즘 버스비가 얼마인지, 환승은 어떻게 하는지 알기나 하는가? 너무 비꼬는 투라고, 일방적으로 욕한다고 섭섭해하지 말게. 일제시대 '모던보이', '모던걸'이라는 말들이 유행했지만, 요즘은 '된장녀'인지 뭔지 하는 말이 아이들 사이에 떠돈다지만, 분명 기자사회, PD사회 내부에 '강남보이', '강남걸'들이 많지 않은가? 영등포의 노동계급, 이문동의 빈민, 평택의 농민들로부터 절연된 특별한 취향, 특수한 시각, 특정한 욕망으로 어찌 약자의 슬픔, 권력을 가진 자의 폭력을 제대로 읽어낼 수 있겠나? 대의(代議)할 수 있겠나? 개인적 체험 없는 기자들의 고발, PD들의 비판이 통하리라고 기대하지 말게. 학교에 있는 나도 마찬가지지만, 목소리 좀 낸다고 우쭐해 하면 큰 오산일세. 거리에서, 버스에서, 지하철에서, 그리고 연립주택 골목에서 마주하는 그들의 시선이 그렇게 말해 준다네.  

그랬지. 자네에게 '바다이야기'를 아는지 물었었지. 노동계급의 돈, 빈민의 욕망을 쭉쭉 빨아들이는 저 소름끼치는 빨때 괴물, 그 음흉한 배후에 대해 한번 추적해 보라고 했지. 왜 그때 자네 내 말을 안 들었나? 솔직히 난 그때 사건이 이렇게나 커질지 몰랐다네. 다만 한미FTA와 계급양극화, 노동계급·빈민의 추락이 '바다이야기'의 득세와 무관하지 않다는 직관·심증만 있었을 뿐이네. 천민자본주의의 돈이라는 괴물이 어떻게 다중의 삶, 다중의 삶터를 꿀컥 삼켜버리는지 그 현장을 목격해보라는 권유였는데, 사건은 이제 어디로 튈지 도저히 행방을 모르겠네. 요즘 방송사, 신문사들이 방방 뛰는 것을 보면 가소롭지도 않네. 자네들의 역할이 대체 뭔가? 왜 먼저 사태를 감지하고 예고하려 하지 않았나? 평상시 그리 게으르다가, 냉담하다가, 무지·무감각하다가 이제야 이구동성으로 요란스레 뒷북치니 어찌 보통사람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겠나?

보통사람들을 두려워해야 하네. 다 알고 있다네. 그러면서 자네들이, 나 같은 먹물이 제대로 말하는지 냉정히 지켜보고 있을 따름이라네. 편지가 길어졌네. 자네가 몸담고 있는 프로그램, 방송사가 한참 시끄럽네. 스캔들 핵심에 있는 소감이 어떤가? 다음에 술 한 잔 살 테니 그때 양심고백하게. 허허. 나보고도 뭔가 내놓으라고? 내가 뭘 알겠나. 그냥 주변의 '야담과 실화'나 갖고 낄낄 떠들어보세. 전번처럼 요란하지는 않겠지만, 차분히 지난 여름의 뒷길을 정리하고 다가올 앞길을 함께 내다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 아니겠소? 그때까지 건강하시고, 나는 나대로 설설 움직여 봐야겠소.

 
 
전규찬(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방송영상과 교수)

나는 내가 진짜 학자인지 날라리 교수인지 잘 모른다. '지식인'의 자격이 과연 있는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해야 삶을 평등·평화·평온의 꼴로 바꿀 수 있는지, '不二'의 테제를 어떻게 실행에 옮겨 생태문화사회를 만들지 잔뜩 고민과 생각만 많다. 현재 영상원 교수로, 문화연대 미디어문화센터 소장으로, 그리고 <문화/과학>, <프로그램/텍스트> 편집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한겨레> '미디어전망대'에 칼럼을 기고해 왔다. 안정을 혐오하고 불안을 선호하며, 정태가 아닌 변태를 좋아한다. 절대 옳음의 편집증에 대한 대항의 길로서 레프트를 고집한다. '말꾼'이 아닌 언론인이 되고자 하며, 학계에서 딴따라로 통한다.

보고픈 요즘, 잘 지내나요?

# Project. 활동가인 당신의 안부를 묻습니다.

Series 1. 활동가 인터뷰 - B편

인터뷰어 : 아니(이동경), 인터뷰이 : 활동가 B 

인화사진 : B / 컨셉 사진 : 아니 / 낙서 : B, 아니


B : 사진기가 좋았던 게, '내가 좋은 순간이 있으면 찍는다'는 미션이 있으니까, 그 순간을 포착하게 되더라고. 카메라가 있을 때만 찍었고. 없을 때가 많았지. 그냥 슝- 나갔다가 걷다가, 아, 지금 카메라가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니면 먹는데, 아, 지금 카메라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니면 우리 강아지 부우랑 있다가, 아, 지금 카메라 갖고 나왔으면 좋았을 텐데!

   '어떻게 지내?' 물으면 안 좋은 이야기만 나누게 됐었거든. 예전에는 그냥 하루를 보냈으면 그 하루가 이 기간에 흡수됐었어. 코로나 때문에 우울했던 기간, 간병하느라 힘들었던 기간,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던 기간. 

   그런데 생각보다 균형이 맞게 가고 있었구나. 좋은 순간도 되게 많았구나, 이 와중에.
 

'부우' 적절한 삶을 원하거든

B : 하루 중에 부우 만질 때 좋고. 부우 산책하다가 좋고. 산을 보고 있을 때 좋고. 

아니 : 아~! 어쩜 이렇게 쪼그마냐. 근데 대부분 부우 사진이네.

B : 그러니까. 부우 적절한... (웃음)

아니 : 이게 뭐야? 부우야? 귀엽다! 

B : 부우가 고양이 됐어. 양치하는 사진이었는데, 빛이 없어져서 양치하는 칫솔이 사라졌어. 

아니 : 이건 크리스마스 같다. 

B : 응. 찍으면서 느꼈는데 얘가 내 행복의 90퍼센트 지분을 차지하고 있더라고. 이 새끼가! 몰랐어.

아니 : 행복 전도사네.

B : 내 롤모델.

아니 : 부우가 하품하는 모습이 많아. (웃음)

B : 맞아! (웃음) 하품하는 게 좋더라. 평소에는 귀한 순간이라고 생각 못 했다? 부우 찍어야지, 부우 하품하는 거 찍고 싶다, 이런 생각에 보고 있게 되더라고. 하품은 계속하는 게 아니니까, 계속 보고 있어야 포착할 수 있거든.

B : 부우는 자거나 하품해. (웃음) 나는 부우가 제일 귀엽거든. 너무 부러워.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어. 너는 사료값 안 벌어도, 맨날 처 자구 하품하는데, 사랑받고 너무 좋겠다! 

  근데 애인은 불쌍하대. 나가고 싶을 때 못 나간다고. 너무너무 자유 의지를 상실한 채 사는 강아지래. 늘 불쌍해해서 어떻게든 한 번 더 데리고 나가려 하고, 혹시 개가 추울까 하고 맨날 이불을 들고. 내가 봤을 땐 부우에게 자신의 좌절된 욕망을 투사하는 거 같아. 

함께 걷는 이 시간이 감사해

아니 : 요즘 애인 건강은 어때?

B : 많이 회복했어. 매일 아침에 한 시간씩 걸어. 열심히 살더라고. 날씨가 좋아가지고. 

  애인이 최근에 그 얘기를 하더라. '빨리 회복해서 빨리 정상의 몸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 수 있는 몸을 만들고 싶었다, 당 같은 건 먹지 않고 빨리 자려는 것도 약간의 신경증적인, 강박적인 거였다'. 그 목표는 어쨌든 다 회복하려고. 내가 원하는 몸이 있는 거지. 

아니 : 그런 상황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게 자신을 받아들이는 거밖에 없었겠어. 

B : 응. 그래서 요즘은 약간 편안해 보여. 왜, 사람이 굴복했을 때 편안한 거 있잖아. '내가 조금 더 식이를 했으면! 무리를 안 했으면! 조절을 잘했으면!'이라는 여지가 사라진 거지. 

아니: 곁에서 마음이 어때?

B : 애인과 함께 겪는 거, 개인적으로 감사하다고 생각해. 중년의 삶은 다 겪는 거잖아. 나도 26살에 아팠지만, 그때는 사고처럼 겪었지. 내가 겪었던 게 뭣도 모르고 '어? 어떡해!'였다면, 중년이 되면서 조금씩 삐걱거리는 몸과 불화하고 또 결국 받아들여 가는 것을 옆에서 볼 수 있는 것은 감사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활동가? 나는 내가 활동가라고 생각하지.

B : 나의 문제는, '활동가'라는 상이 너무 옛날 스타일로 잡혀있다는 거야. 잘 해내고 싶어. 완벽이 아니라 내 성에 차게, 내가 부끄럽지 않게. 근데 아픈 이후에 다시 활동하니까 몸을 사리는 거야. 나는 아직도 관리하는 몸이야, 평생. 아닐 경우에는 면역체계가 흐트러지니까. '한 1~2주 푹 쉬고 재충전하지 뭐'가 안 될 수도 있어서. 이게 나한테 불만족이 되는 거야. 주변 동료들 보기에도 너무 민망해. (웃음) 한 명의 활동가에게 1인분만 기대하지는 않잖아. 게다가 사린만큼 성장하지 못해서 기대되는 역량을 못 냈다고 생각하거든. 내가 제일 괴롭지. 근데 또 결국 사려. (웃음) 살아야 되니까. 이런 것들과 같이 가는 상태에서는 상근 활동가 못 하겠다... 우리 단체 '운영지기'가 진짜 독특한 위치인 거 같아. 보통 다 본업이 있지. 내가 활동가로서 100프로 완전하지 못해도, 운영지기로 활동하면서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풀로 남아준 게 참 고마워.

  궁금해, 다른 운영지기들은 자기 정체성을 뭐라고 생각하는지. 본업에다가 자기 삶만 챙기기에도 지금 현대 사회가 '바쁘다 바빠!'인데 더해서 활동까지 하니까. 나는 몸이 쪼개지는 느낌이 들어. 본업이 여성주의와 떨어져 있지 않고 연속선상에 있는데도 그런 느낌이 들었어. 해야 되는 업무 자체가 쪼개지는 거야. 

  과로하는 운영지기를 보면, 농담으로 "아, 덜 해!" 하지만, 덜 할 수가 없는 거잖아. '쉬엄쉬엄해.'라는 말이 공허한 거야. 이미 하기로 한 게 있으면, 그리고 자기가 원해서 하는 거면 다 괜찮은 걸까? 돈 무리, 비 해피의 삶. 사회 탓도 있으니까 개인인 내가 생각을 고쳐먹을 문제는 아닌 거 같지만, 그 와중에 할 수 있는 게 뭘까... 혼자 찾을 수 있는 답은 아닌 거 같긴 해. 

아니 : "구산동 페미니즘 캠프" ? 

B : 그날이야. 난새의 마지막 페미니즘 캠프. 나는 올해가 왜 이렇게 유난히 가혹한가 생각했다? 나한테는 올해가 특별히. 매년 있었지만 더 많은 느낌이야, 투병소식까지 다 하면. 근데 그게 아니라 이제 시작인가?

아니 : 그럴 수도 있겠다. 다 같이 늙어가니까. 단체랑 나이를 같이 먹어가고 있지. 그게 단체에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모르겠어. 젊어지는 느낌은 덜하지 않아? 

B : 덜하지. 세대교체가 되는 느낌은 없지.

아니 : 어. 10년 전에 와서 '어~ 여기 호랑이띠가 많네?' 그랬는데 아직도 호랑이띠가 많아.

B : 다음 호랑이띠가 아니야. (웃음)

아니 : 동갑인 호랑이띠가 여전히 제일 많아. (웃음)

B : 좋은 거 같지 않아?

아니 : 좋으면서도 활동이 계속 이어질까? 이런 생각이 들었어. 근데도 좋은 이유는 같이 나이를 먹어가니까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활동하고.

B : 맞아. 여기서 만날 수 있고.

아니 : 응. 과거의 시간과 관계들이 축적되는 것도 분명히 오랜 회원인 나에게 참 좋고.

B : 그런 생각이 들어. 한 단체가 계속해서 젊은 사람들로 바뀌었어, 그럼 이 사람들은 어디로 가? 나는 이런 단체도 있고 저런 단체도 있고. 지금은 30대가 된 그 호랑이띠 전후의 사람들이 있는 단체도 있으면 좋겠어. 새로 또 영하게 생긴 단체가 있잖아. 그 단체들은 그 단체가 잘 되는 게 좋지.

B : 나는 아파서 다시는 활동을 못 할 거라고 생각했었거든. 근데 조금 살만해지니까 활동이 하고 싶은 거야. (웃음) 이게 재밌으니까. 재밌어서 하지, 뭐, 세상을 위해서 하는 것 같진 않아. 나는 여성주의 자기방어 훈련이 제일 재밌었어. 그걸 같이 하던 사람들과 몰려다니는 게. 예전에는 뭐, 돈 꼬라박아가면서 했지. 크루가 몇 명 있었어, 8명 이렇게. 그냥 매주 만나서 몸 훈련하고 쏘다니고 그 힘으로 세상을 살고. 이런 게 재밌었던 거야. 아, 그 20대 초반에 좋은 에너지를 받아서 그나마 내가 살았구나. 사실 여성주의자로 살면서 너무 우울했었는데, 그 에너지로 살았구나. 나는 그걸 함께 하는 사람들을 같이 만들고 싶어. 

아니 : 나도 여성주의 자기방어 훈련이 부흥했으면 좋겠어. 여기 와서 하면 좋은데 너무 멀어. 동네마다 있어서 알음알음 다 모여서 점조직처럼 훈련하고. 계속 수련하지 않으면 잘 모르는 감각인 거 같아.

B : 맞아. 그래서 나는 더 많은 여성주의자가 이걸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거,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됐으면 해. 엄청나게 탑이 아니어도 할 수 있는 만큼 나눌 수 있잖아. 앞으로 계속 하고 싶어. 코로나 잠잠해지면 재밌게 할 수 있는 곳이 있어서 다행이다? 우리 단체 안 없어져야 된다? (웃음)

아니 : 단체는 골골대지만 없어지지 않아. (웃음)

B : 맞아. 콜록콜록 대면서 지금 가고 있지. 그게 목표야, 활동가로서. 재밌을 거 같아.

안부를 묻고 싶은 사람이 있어.

B : 어느 때부터 전화가 오면 약간 긴장을 하는 거야. 보통 전화를 할 일이 잘 없잖아. 맨날 전화하는 사이 말고는. 일 때문에 전화하든지, 아니면 일 터져서 전화를 하든지. 그래서 아니한테 전화 왔을 때도 "무슨 일이야?!" 그랬잖아. 기억나지? 아니가 안부를 묻는다고 해서 아, 그래, 안부를 물을 수도 있지. (웃음) 너무 좋은 행위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때 내가 묻고 싶은 사람에게도 안부를 물었어. 

아니 : 잘했다. 어땠대? 그 사람은?

B : 좋아했던 거 같아. 만나지는 못했고 전화로 물었는데, 좋아했지. 그 사람이 약간 정신없는 거 같아서 얘기는 잘 못 했지만.

아니 : 왜 그 사람이 생각났던 거 같아?

B : 그러게... 그 사람도 자기 판에서 지칠 수 있는 활동을 하고 있어. 늘 마음이 쓰였던 거 같아. 괜찮나? 이렇게. 마음 쓰이는데, 안부 연락이 어느 순간부터 안 되더라고. 잘 지내겠지? 했는데 연락해서 좋았어. 뭔가 이런 거 하는 게 좋구나. 서로 좋구나, 일부러 묻는 게.

(편지를 쓴다)

아니 : 아~ 너무 좋구만! 

B : 결국. 나한테 하는 말이지.

아니 : 그랬으면 좋겠다.

B : 그냥 쉼이랑 퀄리티가 다르잖아. 있지. 이거는 뭐, 최상의 덕담이다.

#본 인터뷰는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2021 예술인파견지원사업 '예술로'의 지원으로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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