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 상 24장 1 7 절 - samuel sang 24jang 1 7 jeol

본문: 사무엘상 24장 1-4절

제목: 셀라하마느곳에서의 하나님을 기억합시다.

   오늘 본문에서는 엔게디 광야에서 다윗에게 일어났던 일을 다루고 있습니다 다윗이 신하들의 말을 따르지 않고 사울 왕을 살려주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우리가 잘 알다싶이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린 후 백성들은 사울 왕 보다는 다윗을 더욱 신뢰하며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후 다윗을 시기한 사울 왕은 다윗을 죽이기로 결심하였는데, 무려 10여년 동안 다윗은 사울 왕을 피해 도망 다녀야만 했습니다. 골리앗을 쓰러뜨릴때가 아직 군대를 갈 수 없는 나이인 청소년기였으니, 다윗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해야 할 청소년 청년시절을 도낭 다녀야 하는 그야말로 비참한 인생 그 자체였습니다 이러한 광야 도망자 생활을 10년 동안 한 다윗의 마음이 어떠하였겠습니까! 무섭고 희망 없는 나날들과 억울함만이 가득하였지 않았겠습니까! 하나님을 위해서 또 조국 이스라엘을 위해서 순수히 행했던 그 일들이 오히려 자신을 도망자 신세로 만들었으니 얼마나 억울하고 또 얼마나 그 마음이 비통하였겠습니까! 그런데, 이러한 절망과 아픔, 억울함들이 가득했던 다윗에게 어느날 사울 왕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그 본문이 오늘 본문입니다.

   사울 왕은 삼천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다윗을 찾으로 나섰습니다. 그러다 뒤를 보러 어느 한 굴에 들어갔는데, 때마침 그 굴에는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사울 왕을 피하여 숨어 있었습니다. 뒤를 보러 온 사울왕은 무방비 상태였고, 그를 지켜주는 군대도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다윗의 사람들은 사울 왕을 죽이라 부추깁니다. 그러나 다윗은 사울 왕을 죽이기는커녕 사울 왕의 겉옷 자락만 베고 돌려보내어 주었습니다. 그것도 오늘 본문 한번만이 아니라 사무엘상 26장에서도 사울을 죽일 수 있었지만 죽이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가장 아름다운 시기를 도망자 신세로 만들고 그래서 억울함과 분노가 가득했던 다윗이었지만 그는 사울 왕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왜 사울 왕을 죽이지 않았겠습니까? 그렇게 억울하고 그렇게 분노가 치밀어 올랐지만 원수인 사울 왕을 왜 죽이지 않았겠습니까?

   오늘 읽은 본문 사무엘상 24장이 있기 전, 사무엘상 23장 24절~29절 말씀을 보면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다윗이 사울 왕을 피해 마온 황무지에 있었을 때입니다 사울 왕은 다윗이 그곳에 숨은 줄 알아 뒤쫓아 갔고 다윗을 에워 싸 거의 다 잡을 지경이었습니다. 사울 왕은 이제 다윗을 잡기만 하면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때에 어느 한 전령이 사울 왕에게 나타나 이르기를 블레셋이 침공하였다는 소식을 전합니다. 하는 수 없이 사울 왕은 다 잡은 다윗을 놓아주고 블레셋과의 전쟁터로 나아가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이때에 있은 일을 다윗은 기억하며 그곳 이름을 ‘셀라하마느곳’이라 번역하면 ‘분리하는 바위’라 부르게 됩니다. 곧 하나님께서 다윗과 사울 왕을 분리 시켜주셨다는 의미에서겠지요. 하나님께서 다윗을 지켜주셨습니다.

   이 일후에 오늘 본문이 나타납니다. 엔게디 광야에서 사울 왕을 죽일 수 있는 찰나였지만 살려준 이야기가 셀라하마느곳에서의 하나님을 체험한 후에 나타납니다. 다윗이 사울 왕을 죽일 수 있었지만 그러하지 않은 이유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지켜주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어떤 어려움과 형편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자신을 반드시 지켜줄 것이라는 셀라하마느곳에서의 하나님을 체험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그 일 이후 모든 일을 순리대로 행하였습니다. 억울하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기름 부은 사울 왕을 죽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억울하고 힘들었지만 그는 참고 견뎌내었습니다. 왜냐하면 앞으로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 하실 것이며, 보호해 주실 것이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다윗의 마음을 노래한 시편이 있는데 바로 시편 31편입니다 시편 31편 15절에 다윗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의 앞날이 주의 손에 있사오니” 셀라하마느곳에서의 하나님을 체험한 후 다윗은 자신의 미래는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두렵거나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신뢰하였습니다.

   이러한 다윗과 같은 체험을 한 자들이 신약에서도 등장합니다. 바로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장사되신 후 제자들은 일제히 숨거나 다시 고향으로 내려가 버렸습니다. 혹여나 제자들 역시 예수님을 따른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이유에서 일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그들은 달려졌습니다. 오순절 다락방에서 성령 받은 베드로와 열한 사도들은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을 전파하였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을 죽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회개하라 외쳤습니다. 어찌 예수님을 부인하고 도망가기에 바쁜 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을 전할 수 있었겠습니까 예수님을 전한다는 이유만으로 잡혀갈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들은 그토록 담대히 복음을 전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그들은 그들의 앞날이 어떻게 될 것이라 알게 되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그들은 다윗과 같이 자신의 앞날이 주님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실존을 주님께 맡겼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루살렘에서 복음을 전파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살아가는 시대는 참으로 억울한 일이 많고 우리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때도 있습니다. 최근 코로나로 인하여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희망하기를 포기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희망하기를 멈추어야 되는 날은 없습니다 우리들은 우리의 앞날이 어떠한지 아는 자들입니다. 셀라하마느곳에서의 하나님을 체험한 자들입니다. 우리들은 역사적 예수님을 체험한 자들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성경 말씀을 통하여 부활의 몸으로 제자들에게 찾아오신 그 주님을 직접적으로 만날 수 있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말씀에 순종함으로 우리에게 오시는 부활의 주님을 만나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상황과 형편을 보며 힘들어 하기 보다는 주님을 만나려고 힘써야 할 것이며, 희망을 포기하지 않도록 부단히 우리 자신과 싸워야 할 것입니다.

1 사울이 블레셋 사람을 쫓다가 돌아오매 어떤 사람이 그에게 말하여 이르되 보소서 다윗이 엔게디 광야에 있더이다 2 사울이 온 이스라엘에서 택한 사람 삼천 명을 거느리고 다윗과 그의 사람들을 찾으러 들염소 바위로 3 길 가 양의 우리에 이른즉 굴이 있는지라 사울이 뒤를 보러 들어가니라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그 굴 깊은 곳에 있더니   4 다윗의 사람들이 이르되 보소서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원수를 네 손에 넘기리니 네 생각에 좋은 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시더니 이것이 그 날이니이다 하니 다윗이 일어나서 사울의 겉옷 자락을 가만히 베니라   5 그리 한 후에 사울의 옷자락 벰으로 말미암아 다윗의 마음이 6 자기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께서 금하시는 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7 다윗이 이 말로 자기 사람들을 금하여 사울을 해하지 못하게 하니라 사울이 일어나 굴에서 나가 자기 길을 가니라  

먼저 본문은 하나님과에 대한 마음의 자세가 다윗의 사람들과 다윗과 어떻게 다른지를 보여준다.

다윗의 사람들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네 손에 넘기리니 네 생각에 좋은 대로 행하라는 말씀을 사울을 죽이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으나, 다윗은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인을 죽이는 것은 여호와께서 금하시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다윗은 사울을 도망다니는 와중에도 사울을 나의 주인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다윗이 새로이 기름부음을 받은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슴에도, 이전에 여호와께서 누군가에게 기름을 부었다는 사실이 그에게는 지속적으로 Effective하고 있는 것이다.

다윗에게는 여호와의 기름부으심이 사울의 악행보다도 중요하며, 다윗 자신의 어려움과 고통보다도 더욱 가치 있는 것이며, 주위에 있는 다윗의 사람들의 억울함과 희생보다도 더욱 귀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적으로도 다윗은 사울을 자기의 주인으로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행동은 다윗의 사람들에게 살아 있는 삶의 교훈을 주는 것임에 틀림이 없다.

이런 다윗의 마음, 여호와를 경외하며 동시에 사울의 악행너머에 있는 안타까운 아픔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이 있기에 여호와께서는 그를 새로운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부으셨을 것이다.

한가지 질문이 생긴다.

다윗의 이런 마음은 어떻게 형성되었으며 행동으로 연결될 수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묵상을 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했다. 다윗의 마음을 달라고.

어느때와 마찬가지로 출근중에 다윗의 마음을 물어보았는데, 갑자기 가슴속에 서러움과 연민의 안타까운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을 만큼 가슴을 적셔온다.

다윗의 삶의 내용을 생각나게 했다.

어릴적부터 부모와 형들과는 떨어져서, 홀로 들판에 있는 시간들이 많았으며, 양들을 볼보다가 양 한마리라도 없어지면 아버지와 형들에게 얼마나 야단을 맞고, 되지게 혼나고 질책을 받았던지,,,

하루는 곰이 양을 물어가면 무서워 떨다가 다음 날도 되지게 혼나고 야단 맞고,,,,

그렇다고 억울함을 호소하며, 대꾸하고 변명하는 성품이 아닌 다윗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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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을 지새우며 하늘을 문 밖에는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한가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는 분명 여호와 하나님이 누구인가를 철저히 묵상하고 그 분을 가슴에 담았으며,

하늘문을 열어 달라고 기도하고, 기도하고 또 기도하다가

다음 날 또다시 양 한마리를 물고가는 곰을 먼 발치에서 쫒아가다가 고래고래 욕이라도 실컷하면서,

그는 하나님의 살아계신 능력을 소년의 작은 가슴과 손에 주시라고 간구하고 또 간구했슴에 틀림이 없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강하게 느끼는 어느 날, 임재의 그 날,

그는 곰과 맞장을 뜨기로 결심하고 두 눈을 부릅뜨고 마주섰을 것이다.

골리앗을 한 방에 넘어 뜨렸던 그 짱돌로 곰의 이마가 바로 뚤리던 그 날,

그 뚤림의 승리는 다윗의 영적 승리이며 하늘문이 열리는 창문이 되었던 것이다.

삶의 현장에서 승리해 보진 못한 내용과 묵상은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외로운 양치기로부터 시작된 다윗의 홀로서기, 아니 다윗의 하나님과 함께 서기의 연습,

그는 분명 가족으로 부터의 홀로서기는 하나님의 섭리로 인식하게 된 순간부터

그의 서러운 마음의 회복되었을 것이며, 그 서러움이 감사의 조건임도 알았을 것이다.

사울과 함께 일하는 시간들,

기름부음을 받은 사울로부터 왕궁을 떠나는 시간까지 ,

그 많은 사건들 속에서 다윗은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의 행동과 삶의 내용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철저히 배웠을 것이다. 사울이 왜 기름부음에서 폐위될 수 밖에 없는지, 왜 기름부음을 받았는지, 사울과 같이 하는 그 많은 시간에서 다윗은 분명 인간을 포용하는 방법과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방법을 충분히 체험하였을 것이다.

사울과의 시험을 Pass하고 광야로 떠나는 그 날, 절대로 다윗이 떠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사울,

사울의 마지막 예정된 식사자리에서 사울은 다윗을 이세의 아들은 어디있느냐고 묻는 모습에서 다윗을 대하는 사울의 자세를 볼 수 있다. 어릴적에 이미 Pass했던 종류의 시험이었다.

이런 종류의 시험을 이미 극복한 후 떠나는 다윗에게는 하나님의 기름부으심을 받은 자로써가 아닌 안타까운 연민의 정 밖에는 남은 것이 없었을 것이기에 굴속에서 죽일 수 있는 사울의 겉옷 자락을 가만히 벨수 있는 것이다.

내가 극복해야 할 서러움과 무시당함은 무엇인가 ?

내가 무시당하고 있다고 느끼는 어떤 관계를 얼마전에 극복한 경험이 있다.

그 상황에서 나중에 깨닭은 사실은

상대방은 아무 느낌도 의도도 없슴에도 불구하고,

내 스스로가 같고 있는 열등감 내지는 좀더 잘보이려는 목적 때문에

혼자서 시나리오를 쓰고 각색을 하여 생긴 내용들이었다.

먼저 내 자신의 상처를 하나님 존전에 철저히 고백하며 회복을 위해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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