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림 길 해석 - singyeonglim gil haeseog

- 신경림

사람들은 자기들이 길을 만든 줄 알지만

길은 순순히 사람들의 뜻을 좇지는 않는다.

사람을 끌고 가다가 문득

벼랑 앞에 세워 낭패시키는가 하면

큰물에 우정 제 허리를 동강 내어

사람이 부득이 저를 버리게 만들기도 한다.

사람들은 이것이 다 사람이 만든 길이

거꾸로 사람들한테 세상 사는

슬기를 가르치는 거라고 말한다

길이 사람을 밖으로 불러내어

온갖 곳 온갖 사람살이를 구경시키는 것도

세상 사는 이치를 가르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그래서 길의 뜻이 거기 있는 줄로만 알지

길이 사람을 밖에서 안으로 끌고 들어가

스스로를 깊이 들여다보게 한다는 것은 모른다.

길이 밖으로가 아니라 안으로 나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에게만 길은 고분고분해서

꽃으로 제 몸을 수놓아 향기를 더하기도 하고

그늘을 드리워 사람들이 땀을 식히게도 한다.

그것을 알고 나서야 사람들은 비로소

자기들이 길을 만들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 (1990)

시어 풀이

우정 : 일부러(방언)

이해와 감상

 이 시는 밖으로 나 있는 '보이는 길'만 보는 사람들과 안으로 나 있는 '보이지 않는 길'을 아는 사람을 대비하여 결국 '내면의 길'을 찾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소중한 것인지를 드러내고 있다.

 이 글의 화자는 직접 드러나 있지 않으나, 길과 사람들의 관계에 대하여 생각하고 있으며, 진정한 길의 의미를 알지도 못한 채 오만하게 행동하는 사람들을 비판하면서 내면을 가꾸는 것의 소중함, 즉 자신의 삶과 내면에 대한 성찰의 중요성을 표현하고 있다.

 이 시는 대상을 관조적으로 바라보며 그 의미를 사색하고 있으며, 시적 대상을 의인화하여 비판적 시각을 드러내고 있으며, 대비적 의미를 지닌 대상을 통해 주제 의식을 표출하고 있다.

 먼저 1~6행에서는 이 사람의 뜻만을 좇지 않는다고 한다. 화자가 하고 싶은 말은 1~2사람들은~좇지 않는다에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여기서 세상 사람들은 세상 이치를 모르는 어리석은 자로, 17행에 나오는 아는 사람과 대비된다. 그들도 길(인생길)을 만들지만, 그 길은 삶의 과정에서 사람들을 시련에 빠뜨리기도 하고 인간의 오만이 그릇된 것임을 깨우쳐 주기도 한다. 7~12행까지는 사람들의 길에 대한 통념을 말하는 부분이다. 여기서는 사람들의 말을 인용하면서 시상을 전개하는데, ‘이 사람들의 뜻을 좇지 않는 것에 대해 세상 사는 슬기를/ 가르치는것이고, 또 다양한 외부 세계를 경험하게 하여 세상 사는 이치를 가르치기 위해서라며 뒤늦게나마 그럴듯하게 변명하고 있다.

 한편, 13~19행에서는 내면을 성찰하게 하는 길을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13~15행에서는 에 대한 화자의 인식이 전환되고 있다. ‘그래서길의 뜻이 거기 있는 줄만 알지거기는 밖에 나 있는 외부, 즉 온갖 것을 경험하게 하여, ‘세상 사는 이치를 가르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화자는 길이 사람을 밖에서 안으로 끌고 들어가/ 스스로 깊이 들여다보게함으로, 길이 외부가 아, 오히려 내면의 세계로 끌어들여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게 한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에 일침을 가한다. 그러면서 이 사실을 아는 사람에게만 길이 주는 혜택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 20~21행은 안으로 난 길의 뜻을 깨달은 후에는 자기들이 길을 만들었다고 말하지 않는다.’는 것과 같이 침묵하며 겸손해진다. 이들이야말로자연 혹은 삶과 인생 앞에 겸손한 사람들이다.

 이 시는 길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를 통해서 길의 온전한 의미를 밝히고 있다. 밖으로 난 길만 인식하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길을 만들었다고 생각하고 함부로 길에 나섰다가 낭패를 겪는다. 이를 보고 사람들은 길이 세상 사는 슬기를 가르친다고 말한다. 그러나 길의 진정한 가르침은 외부적 상황에서만 오는 것은 아니다. 길을 걸으며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사람들은 자신을 깊이 들여다볼 기회를 얻는다. , 안으로 난 길을 걷는 사람들은 그 안에서 기쁨을 느끼고 스스로 겸손함을 지니게 된다. 시인은 사람이 길을 만든다.’라는 일반적 인식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시인의 세상살이에 관한 시적 탐구와 무관할 수 없다. 이 말은 자기 자신을 겸허하게 돌아보지 않은 문학은 그것이 제아무리 거창한 얘기를 하더라도 진실을 담을 수 없다는 의미이다. 자신이 살아온 삶의 무게와 깊이로 감당하기 어려운 말과 언어를 남발하는 것이 얼마나 공허한 것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이러한 그의 태도는 90년대 민족문화의 자기갱신과 관련해서도 깊은 울림을 준다. 그것은 70, 80년대의 역사적 산물이었던 민족 문학의 성과를 부단한 자기성찰을 통해서 '내면화'해야 한다는 일종의 방향 전환을 암시하고 있다.

작자 신경림(申庚林, 1936 ~ )

 시인. 충북 충주 출생. 1955문학예술<낮달>, <갈대>, <묘비> 가 추천되어 등단하였다. 1973년에 펴낸 첫 시집 농무(農舞)는 우리 민족의 정서가 짙게 깔린 농촌 현실을 기초로 하여 민중들과 공감대를 이루는 시로 평가받고 있다. 시집으로 농무(1973), 새재(1979), 달넘세(1985), 남한강(1987), 우리들의 북(1988), (1990) 등이 있다. 주로 농촌을 배경으로 우리의 현실과 한, 울분, 고뇌 등을 다룬 시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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