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북한 증거 - cheon-anham bughan jeung-g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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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성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 사회과학연구 학술저널
  • 사회과학연구 제30집 3호
  • 2014.08 99 - 129 (3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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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신여자대학교)
천안함 북한 증거 - cheon-anham bughan jeung-g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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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천안함 피격사건이 발생한지 4주년이 되는 현시점에서 아직도 지속되고 있는 사건에 대한 논란을 증거(Evidence)를 통하여 종결하고자 하는데 목적을 두었다. 천안함 피격사건은 2010년 3월 26일 서해 백령도 인근에서 천안함이 두 동강나며 침몰한 사건이다. 한국정부는 북한해군이 발사한 어뢰에 의해 천안함이 침몰되었고 그 결과 천안함의 승조원 46명을 사망하게 한 책임이 북한에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북한은 자신들의 연루 가능성을 일축하였고 천안함 침몰원인을 둘러싸고 한국 내 진보와 보수 간 논란과 갈등이 야기되었으며 지금도 다양한 분야에서 사건에 대한 진실공방이 진행 중에 있다.
천안함 피격사건은 46명의 사망자, 두 동강난 선체, 화약성분 HMX, RDX, TNT 그리고 쌍끌이 어선에 의해 인양된 북한제조의 CHT-02D 어뢰추진체가 증거로 제시되었음에도 진위의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따라서 본 연구는 법(Law)에서 다루고 있는 증거(Evidence)를 통한 천안함 침몰원인에 관한 실증적 연구를 수행함에 있어 한국정부의 발표와 사건 당사자로 거론된 북한을 비롯한 과학자 등에 의한 이의제기 내용을 중심으로 주요쟁점을 선별하고 쟁점별 본증과 반증, 재 반증 그리고 평가 순으로 분석을 실시하였다.
그 결과 천안함은 북한에서 제조, 사용 중인 CHT-02D 어뢰에 의하여 침몰되었다는 사실관계를 과학적으로 재 증명할 수 있었고 북한의 선전선동과 더불어 사건조사의 주체인 민?군 합동조사본부가 사건진행과정에 있어 정보공개의 제한, 실험조건의 차이, 자료에 대한 신뢰저하, 전문기관(가)의 설명미흡, 과학적 현상에 대한 이해부족, 한국정부의 신중치 못한 대응 등에 의하여 한국 내 보수, 진보 간 진영논리가 오버랩 되면서 혼란과 갈등이 야기되었다는 사실관계를 규명할 수 있었다.

목차

국문초록
Ⅰ. 문제제기
Ⅱ. 이론적 논의 및 선행연구
Ⅲ. 연구방법 및 분석모형
Ⅳ. 천안함 피격사건 증거분석 결과
Ⅴ. 결론 및 정책적 함의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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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북한 증거 - cheon-anham bughan jeung-geo

윤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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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헌

미국 버지니아대학 물리학과 교수

최근에 한 자성체 물질에 대해서 논문 하나를 썼다. 그 물질의 물리적 상태에 관한 논문이었다. 기존의 연구들이 그 상태가 A라고 주장을 해왔다. A가 물리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너무 전문적이니 생략한다. 다만, 어떤 자성체에서 A 상태를 발견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그래서 데이터가 비슷하게만 나와도 A 상태라고 주장하는 것이 유행이 되었다. 그런데 그 연구들의 실험은 ‘간접 증거’에 해당하는 데이터들을 얻는 방식이었다. 게다가 어떤 데이터들은 A 상태가 아님을 보여주는 듯했다. 반해 나의 실험 방식인 중성자충돌 실험은 물질 상태에 관한 ‘직접 증거’를 얻을 수 있다. 그래서 그 물질에 중성자충돌 실험을 한 결과 그 물질의 상태는 A가 아니었고, 다른 상태였다. 그 상태를 B라 하자. B는 A처럼 흥미롭지는 않다. 그러나 직접적인 데이터는 B 상태라고 말해주는데 어찌하겠는가. 결과를 정리하여 한 저널에 투고하였다. 이 논문이 발표가 되면, 학계는 이 자성체의 상태가 A가 아니고 B라고 인정할 것이다. 기존의 간접 증거 데이터들은 B 상태에 기반을 두고 재해석될 것이다. 당연하다. 직접 증거가 결정적이다.

천안함 침몰의 진실에 대한 논쟁도 비슷하다. 2010년 천안함은 한-미 대잠수함 훈련 도중에 침몰하였다. 그 뒤 2개월의 짧은 조사 기간을 끝으로, 중간선거를 코앞에 두고 이명박 정부의 합동조사단은 북한 잠수함이 쏜 어뢰가 폭발하여 천안함이 침몰하였다고 주장하였다. 북한 어뢰설이다. 북한과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고, 70여년 전의 한국전쟁이 아직 종전이 되지 않은 현재, 어떤 사람들에게는 매우 자극적이고 매력적인 설이다.

자, 그 어뢰설이 맞는지를 과학적으로 살펴보자. 북한 어뢰설이 맞으려면, 당연히 보였어야 할 직접 증거들이 있다. 예를 들면, 어뢰폭발 때 생기는 거대한 물기둥과 시신, 생존 장병들의 고막 손상 등이다. 그런데 그러한 직접 증거들은 전무했다. 대신 천안함 절단면 바로 옆에 있던 형광등은 온전했다. 합조단이 내세운 어뢰설의 증거들은 모두 간접 증거들이었다. 그중 가장 핵심이라고 주장했던 것은 녹슨 ‘1번’ 어뢰 파편과 하얀 분말가루에서 뽑아낸 과학 데이터들이었다. 그 데이터들은 내 분야여서 그 당시에 살펴보았는데, 결론은 그 데이터의 일부가 조작되었다는 것이었다.

물리학에서 적용되는 과학적 방법론을 여기 적용해보자. 어뢰설이 맞다면 당연히 나와야 할 직접 증거들이 없으니 어뢰설은 바로 파기되어야 한다. 그 직접 증거들의 부재와 상충되지 않는 다른 가설들을 살펴보아야 한다. 어뢰설에 대한 간접 증거들은, 다른 가설들을 기반으로 설명이 가능한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침몰의 진짜 원인이 무엇이든, 당연히 있어야 할 직접 증거가 전무한 어뢰설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뢰설은 거짓이다.

다시, 나의 과학연구로 돌아와보자. 그 자성체의 B 상태에 대한 직접 증거를 보여주는 논문이 발표된 이후에도 그 물질의 상태가 A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학계에서 바보 취급을 받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한국에서는 천안함 어뢰 침몰설이 여전하고 더 당연해진 듯하다. 직접 증거도 없이 간접 증거라는 한두가지 데이터를 붙잡고 어뢰설을 주야장천 주장한다. 전말이 전도되어 있다. 일반 사람들이나 수구 언론도 아닌 공정과 진보를 표방하는 언론인들까지. 코끼리의 다리를 붙잡고 나무라고 부르짖는 형국이다. 왜 그럴까. 한국 사회의 과학적 소양의 결핍인가, 아니면 분단이 빚은 우스운 풍경인가.

오는 26일이면 천안함이 침몰한지 5주기를 맞는다. 두 동강 난 선체, 46명의 희생자를 만든 이 사건을 정부는 북한의 어뢰의 공격이 원인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사고 직후부터 제기된 의문은 만 5년을 맞는데도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의혹을 제기했다가 형사고소를 당해 검찰에 기소됐거나(신상철) 징계를 받은(KBS 추적60분) 이들이 여전히 법정에서 진실을 다투고 있다. 최근엔 4년 여 전 방송된 KBS <추적60분> 천안함 편에 내린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중징계(경고)가 부당하다는 법원(서울고법) 판단까지 나왔다. 법원은 정부의 천안함 침몰원인 발표에 제기한 여러 의문에 대해 ‘합리적 의심’이라고 판단했다. 두 번이나 패소한 방송통신위원회는 대법원에 상고해 다시 최종 판단을 기다리게 됐다. 

앞서 천안함 정부발표에 의문을 제기했다가 고소를 당했던 도올 김용옥 박사, 박선원 전 브루킹스연구소 특임연구원,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표 등 역시 검찰이 모두 무혐의 처분했다. 정부와 국방부 외에 사법부와 일부 수사기관 역시 북한의 이른바 ‘1번 어뢰’에 천안함이 격침됐다는 정부 발표를 못 믿겠다는 의문이 잘못이라고 볼 수 없다는 반증이다. 5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천안함 사건은 왜 여전히 ‘믿지 못하는’ 사건이 돼 있는가.

천안함이 정말 어뢰폭발로 침몰했나

정부(민군 합동조사단)는 5년 전 발표한 천안함 침몰원인은 북한의 연어급 잠수정에서 발사한 감응어뢰(음향추적어뢰) ‘CHT-02D’의 수중폭발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합조단이 어뢰피격의 근거로 내세운 것은 이른바 ‘1번 어뢰’로 알려진 어뢰 추진체였다. 이 어뢰는 지난 2010년 5월 20일 합조단의 중간조사결과 발표 닷새 전에 민간어선이 사고해역에서 수거한 것으로 발표됐다. 

 
천안함 북한 증거 - cheon-anham bughan jeung-geo
 
천안함을 폭침시켰다는 어뢰추진체 디스크후면에 쓰인 '1번' 글씨. 사진=인터넷공동취재단
 

이 어뢰에 대한 의문은 유성매직으로 씌어진 ‘1번’ 글씨(어뢰추진체 디스크후면)에서부터 나타났다. 군은 ‘1번’을 북한이 어뢰 제조시 작성한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해당 유성매직의 성분은 ‘솔벤트블루-5’로 국내에도 사용되고 있는 시료였다. 북한에서도 이런 매직을 사용하고 있는지에 대한 근거를 내놓지 못해 결국 군은 1번 글씨는 증거에서 배제했다.

또한 이 글씨가 폭발로 발생하는 고온에 타지 않고 남아있을 수 있는지도 의문으로 남았다. 과학적 논쟁으로까지 이어졌다. 어뢰폭발시 팽창한 가스버블이 순간적으로 ‘1번’ 글씨가 적힌 어뢰 뒷부분까지 전달될 때 온도가 약 1000도까지 올라가는데 어떻게 타지 않고 남을 수 있느냐는 문제제기였다(이승헌 미 버지니아대 물리학과 교수). 이에 대해 국방부는 추진체 모터와 프로펠러 부위가 빠른 속도로 뒤로 밀려날 뿐 아니라 바닷물이라 온도가 올라가지 않는다고 반박했으며, 송태호 카이스트 교수는 어뢰 폭발 직후 단열팽창하면서 온도가 낮아져 폭발 0.05초 후엔 열손상을 일으킬 수 없는 130도 정도로 내려갔다가 1초가 되면 28도까지 내려간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밖에 어뢰를 발사했다는 북한 연어급 잠수정은커녕 모선인 잠수함조차 우리 군이 전혀 탐지하지 못한 채 짐작만으로 보고서를 작성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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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조단이 주장하는 CHT-02D 어뢰 설계도와 실제 발견됐단는 어뢰추진체 비교. 사진=합조단 보고서
 

어뢰에 붙은 하얀 분말가루인 ‘흡착물질’이 천안함 선체에 붙은 ‘흡착물질’과 동일한 성분이며 폭발로 인해 생성된 것이라는 합조단의 과학적 분석도 여전히 도마에 올라 있다. 비결정질 알루미늄 산화물(폭발재)이라는 합조단 분석과 달리 정기영 안동대 지구과학과 교수 등은 ‘비결정질 알루미늄 황산염 수산화 수화물’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이는 해수(바닷물)에서 유래된 것으로 폭발로 이런 물질이 생성된다는 연구는 없다. 무엇보다 당시 합조단의 이근득 박사는 합조단이 흡착물질이 폭발재라는 사실을 입증하지 못했다고 인정했다고 서울고법 재판부는 밝혔다. 

폭발의 흔적은 어디에 있는가

1번 어뢰의 진위여부와 관련해 가장 큰 논쟁을 불러온 천안함 사고원인은 폭발에 의해 사고가 난 것이냐 여부였다. 합조단은 보고서를 통해 “북한에서 제조, 사용 중인 고성능 폭약 250kg 규모의 CHT-02D 어뢰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미국의 분석결과는 수심 6~9m, 가스터빈실 중앙으로부터 좌현 3m 위치에서 폭약량 TNT 200~300kg 규모로, 한국의 분석결과는 폭약량 TNT 250~360kg 규모로 분석됐다고 밝혔다. 최소 TNT 200kg 이상의 폭약이 천안함 선저 아래 3~6m 위치에서 폭발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주장은 어뢰가 이렇게 폭발했는데도 어뢰파편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으며, 이런 규모의 폭발로 인한 엄청난 충격파의 흔적을 찾기 힘들다는 의문을 낳았다. 서재정 전 미 존스홈킨스대 교수(국제관계학)·이승헌 버지니아대 교수(물리학)는 “폭발량 250kg 규모의 외부폭발이 있었다면 그 충격파는 천안함과 접촉하는 지점에서 최소한 5000psi(1psi=1평방인치의 사각형 위에 1파운드의 무게로 누르는 힘)의 압력이 가해져 선박을 만신창이로 만들었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더구나 폭발량이 ‘북한제 고성능폭약 250kg 규모’와 ‘TNT 250~360kg’이라고 작성한 합조단 보고서 내용에 대해 당시 책임자였던 황을하 국방과학연구소(ADD) 연구원은 법정에서 “(두 규모가 일치하는지에 대한 근거를) 알 길이 없었다”고 증언했다. 고성능 폭약량의 규모조차 정확히 확인하지 않은 채 보고서를 작성했다는 의문을 남긴 것이다.

또한 이 같은 폭발이 있었는데도 시신의 사인이나 생존자 부상상태에 전혀 그 흔적이 나타나지 않은 점도 의문이다. 합조단은 희생자 40명(6명은 실종) 시신의 사인에 대해 검안결과 ‘정황상 익사 추정’이라고 밝혔다. 당시 시신 검안을 했던 성기룡 전 2함대 의무대장(현직 의사)는 지난해 11월 24일 천안함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대부분 사인은 미상이었다”며 최초로 발견된 남기훈 상사의 사인에 대해 “2~3군데 긁힌 상처가 있었으며 작은 상처 외엔 특별한 것이 없었다… 저 정도로는 사망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천안함 북한 증거 - cheon-anham bughan jeung-geo
 
천안함 승조원 위치. 사진=합조단 최종보고서
 

생존자들의 부상상태에도 폭발로 인해 나타날 수 있는 고막파열이나 화상, 관통상, 파편상 등 심각한 외상은 없었다. 

합조단은 시신과 생존자의 이런 상태를 “버블효과에 의한 현상과 일치했다”고 판단했다. 일각에서는 폭발력이 직접 전달된 특정지점에만 충격이 가해지기 때문에 다른 이들의 상태가 멀쩡할 수 있다(합조단의 민간위원 김아무개씨)는 주장도 있다.

사고순간 목격자, 사고지점, 물기둥과 '분무기 분사'

사고순간 폭발이 발생했다면 목격자 또는 청취자가 있게 마련이다. 천안함 사고로 추정되는 순간의 유일한 목격자는 백령도 초병 박일석, 김승창씨로, 이들은 모두 사고 당일 밤 9시23분경 초소근무중 두무진 돌출부쪽에서 백색섬광을 목격했다고 증언했다. 이 장소는 백령도 서북방 지역으로, 합조단이 발표한 ‘폭발원점’인 백령도 서방 2.5km와는 큰 차이가 있다. 합조단은 보고서에서 이들의 진술을 들어 “수중 폭발로 발생한 물기둥 현상과 일치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들 초병은 물기둥은 보지 못했다고 여러 차례 밝혔다. 

또한 이들 백령도 초병 외에 인접해있는 남쪽 초소의 초병들의 경우 어떠한 진동이나 불빛을 감지하지 못했다고 재판부(서울고법 행정1부)가 밝히기도 했다.

천안함 침몰 당시 좌현 견시병이었던 황보상준씨는 지난 2012년 8월 27일 신상철씨 재판에 출석해 “사고 당시 몸이 떴다가 떨어지면서 얼굴에 분무기로 물을 뿌린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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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안함 일러스트. 일러스트=권범철 만평작가

 

사고시각도 여전히 의문

천안함이 언제 사고가 났는지도 여전히 분명하지 않다. 합조단은 지질자원연구원 및 기상청의 지진파와 공중음파 분석결과 2010년 3월 26일 밤 9시21분57초로 확정했다. 미디어오늘이 확보한 사고당일 TOD 동영상에 천안함이 쓰러져있는 상태로 희미하게 잡힌 시각(TOD상 시각)은 21시20분47초부터 약 10초간이었다. 육안으로는 TOD 상에서 천안함이 쓰러져 두동강이 난 상태인지 분리되기 직전인지는 판별하기 어렵다. 다만 군은 TOD상의 시계가 실제시각보다 1분40초가량 늦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면 이 순간의 영상은 대략 사고시각(21시21분57초)보다 약 30초 정도 이후의 천안함 상태인 것이 된다. 당시 TOD 초병은 재판에 출석해 손목시계를 보고 시간을 맞췄다고 말해 의문을 낳았다. 그러나 천안함이 그 직전에 어디서 어떤 상태로 항해했는지는 나타나있지 않다. 

무엇보다 해경에 접수된 사고시각이 당일 밤 9시15분이었다는 점도 합조단 발표 사고시각인 9시21분57초가 정확한 것인지 의문을 낳는다. 해군작전사령부는 합참에 최초상황 발생시각을 9시15분이라고 보고했다고 심승섭 당시 해작사 작전처장(해군준장)이 법정에 출석해 증언했다.

고 차준석 하사의 여자친구와 나누던 문자메시지가 사고 6분전인 9시16분에 끊긴 점이나 같은 시각 ‘비상이니 나중에 통화하자’며 전화가 끊어진 고 김선명 병장 관련 의문도 정확한 사고시각을 의심케 한다. 이정국 전 실종자가족협의회 대표는 법정에서 이 같은 언론보도에 대해 “통화했다는 사실과 문자메시지를 나누다 끊겼다는 사실만 확인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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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함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