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조영 28회 다시보기 - daejoyeong 28hoe dasibogi

[2] 대표적으로〈한명회〉, 〈서궁〉, 〈장녹수〉, 〈명성황후〉, 〈장희빈〉 등. 해당 작품들은 사실상 KBS 대하드라마라고 봐도 무방하지만, 모두 KBS 2TV에서 "미니시리즈", "특별기획드라마" 등의 타이틀을 달고 방영된 작품들이다.[3] 조선 17대 임금 효종의 일대기를 다룬 드라마이다. 병자호란의 발발과 진행이 본격적으로 다뤄졌다.[4] 대하드라마가 한창 방영되었을 당시 초딩이었던 80~90년대생에게 KBS 대하드라마하면 보통 아빠들이 본방사수했던 드라마로 기억되는 편이다.[5] 1987~1988년 <토지>의 임동진, 반효정, 1990년 역사는 흐른다의 유인촌(야망의 세월과 함께 출연해 수상), 1993년 먼동의 하희라, 1997년 <용의 눈물>의 유동근, 1999년 <왕과 비>의 채시라, 2000~2001년 <태조 왕건>의 김영철, 최수종, 2005년 <불멸의 이순신>의 김명민, 2007년 <대조영>의 최수종, 2014년 <정도전>의 유동근(가족끼리 왜 이래와 함께 출연해 수상). 2022년 태종 이방원의 주상욱[6] 완전히 끊긴 것이 아니라 중간에 20회 이하의 사극, 시대극이 방송되었다. <명가>, <거상 김만덕>, <전우>, <자유인 이회영>이 방송되었으며 2009년 후반기 때 2TV에서 10시 15분에 방영된 열혈 장사꾼부터 '주말 특별기획 드라마'란 타이틀이 붙었는데 <명가>부터 KBS의 주말 특별기획 드라마는 1TV로 옮겨졌으며 시간대도 9시 40분으로 바뀌었고 사극,시대극 위주로 방영됐다.[7] 유튜브 등지에서 올라온 영상들을 보면 외국인들의 댓글도 꽤 자주 보인다.[8] 임시정부 100주년 기념으로 김원봉의 일대기를 그린 드라마는 대하드라마가 아니고 특집드라마를 기획 중이라고 KBS 측이 공식 입장을 밝혔으나 이후 소식이 없어 불발된 걸로 보인다.[9] 현실적으로 여성 시청자가 많은 주말드라마를 남성 시청자 중심의 KBS 대하사극으로 교체하는 건 어렵다. 무엇보다 주말 드라마는 평균 시청률이 25% 이상이기에 지상파 입장에선 작품에 대한 평가와 상관없이 편성을 바꾸긴 불가능한 상황이다.[10] 다만 회차가 진행될수록 실내 촬영에 한해 비디오카메라로 찍기도 한다.[11] 병자호란을 중심으로 효종의 일대기를 다룬 드라마.[12] NHK 대하드라마는 1963년에 시작하였다.[13] <한국 사회와 텔레비전 드라마> - 김승현 & 한진만 저. 한울아카데미. 2001.[14] <드라마, 한국을 말하다> - 김환표 저. 인물과사상사. 2013. p152.[15] 현재 방영 중인 다큐 인간극장과는 별개의 시리즈로, 주로 해방 이후 실존인물의 삶을 2 ~ 4회 분량으로 드라마화하여 방영했으며 한보그룹이 제작지원을 맡았다.[16] 이때는 '광복 50주년 기획드라마'라 했으며, 사극 팬들 사이에선 대하드라마 목록에서 빼기도 한다.[17] <태조 왕건>은 당초 김재형 PD가 연출자로 낙점되었으나 김 PD는 96년 8월부터 98년 5월까지 <용의 눈물> 촬영 당시 조연급 탤런트들로부터 금품을 받은 것이 99년 8월 19일 발각되면서 배임수재 혐의로 불구속 기소되었고 결국 <태조 왕건> 방영 직전에 연출에서 손을 뗐으며 이에 KBS는 99년 12월 26일 끝낼 예정이었던 <왕과 비>를 2000년 3월 26일 종영시켰고 불미스러운 일로 <태조 왕건> 연출 명단에서 빠진 김재형 PD는 99년 11월 26일 서울지검으로부터 징역 2년, 추징금 1612만원이 구형되었으며 이후 타방송사로 처음 옮겨 연출한 SBS 여인천하로 재기에 성공했다.[18] 작가 유동윤씨는 해당 작품 때문에 SBS 왕의 여자 집필을 포기했다.[19] 원래 '불멸의 이순신' 연출자 이성주 PD가 연출자로 낙점되었지만 드라마 2팀장으로 발령되면서 김성근 PD로 연출자가 바뀌기도 했다.[20] 명가, 거상 김만덕, 전우, 자유인 이회영이 방송됐는데 이중에 그나마 전우가 흥행하였다.[21] 주인공 김춘추 역의 최수종은 낙마 사고와 수술로 3주 동안 뜬금없이 사라지고 목소리만 줄창 나왔으며 그 외에 교통사고도 한 번 당했다. 역시 여자 주인공인 선덕여왕 역의 박주미도 교통사고로 중도 하차해버렸고 홍은희로 교체되었다. 이건 말 그대로 운이 나빴던 것이라서 비난할 수도 없다.[22] 시공간을 초월한 웨딩드레스 상상신이 대표적이다. 이건 드라마 자체보다는 배우의 프로 의식&개념&사극 이해도 부족이라고 봐야겠지만.[23] 중반 이후 종영까지는 줄곧 동시간대 1위였다.[24] 그러나 장영실과 관련된 사료가 매우 부족한 점을 감안해야 한다.[25] 본래 김원봉은 남침을 반대했으나 막상 전쟁이 터지자 부득불 전쟁에 찬성하고 말았다.[26] 대하드라마 제작 중단 직전 장영실의 후속작으로 계획되었던 드라마가 다름 아닌 정조 시기를 배경으로 했던 다산 정약용이었다.[27] 의외로 KBS 역대 대하드라마에서 정조가 등장한 적이 거의 없다. 딱 한번 1991년 작 왕도에서 강석우가 정조 역할을 맡은 바 있지만,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정조가 아니라 홍국영이었다. 여담이지만 의외로 정조 본인을 다뤘거나 정조와 관련된 사극은 MBC에서 더 자주 나온 편이다.[28] 네티즌들은 또 이방원이냐고 하지만 아마 다시 재기에 성공하기 위해서 안정적으로 여말선초 시기를 만든 걸로 추정된다.[29] 일단 사료 자체가 조선시대보다 적고, 사극으로 자주 다뤄진 여말선초에 비해 강감찬과 귀주대첩 정도 빼면 일반 대중에게 생소한 시대라 일부 인물이나 사건을 생략해도 시청자가 아쉬움을 느낄 요소도 덜하다. 거기에 태종 이방원이 이방원과 관련 적은 사건은 생략하거나 최소한만 언급한 것처럼, 이 드라마도 2차와 3차 전쟁 사이도 여요관계나 전쟁 준비 등 여요전쟁 관련에 중점을 두면 분량 문제는 크게 대두되지 않을 것이다.[30] 단적인 예로 삼국기가 한창 편성되었을때 본방송 시청률이 10%대 초중반을 오가는 수준이었고, 재방송이 본방송보다 시청률이 높았다고 한다. 물론 당시 편성시간이 MBC 주말연속극인 사랑이 뭐길래와 아들과 딸과 겹쳤기 때문에 그 여파를 진하게 받은 영향이 크지만.[31] 다만, 왕과 비는 방영 초기에 KBS2에서 재방송했으나 98년 가을개편부터 KBS1로 변경됐다.[32] 일례로 문회원은 MBC 주몽(현도군 태수), KBS 대조영(문무왕), SBS 연개소문(의자왕)에 모두 출연했으며, 박경득도 KBS 대조영(연개소문의 하인)과 SBS 연개소문(왕빈)에 겹치기 출연을 했다.[33] 아역이 성인 역으로 바뀌는 경우는 제외. 일례로 송재호는 왕과 비 초반에 세종으로 특별출연하였다가, 후반부에는 홍응이라는 대신 역으로 출연했다.[34] 왕과 비의 심회 역은 초반에는 한근욱이, 이후에는 이한승이 맡았다.[35] 나한일, 송영창, 정욱 등도 있었지만 이들은 불미스러운 일(나한일-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 위반(이 때문에 MBC에서도 출연금지 상태), 송영창-원조교제, 정욱-유사수신 행위규제법 위반)로 KBS 출연 금지 상태다.[36] 사실 최수종은 KBS 대하사극에 본격적으로 출연하기 전에는 KBS 주말연속극에 자주 출연했었다. 첫사랑, 야망의 전설, 사랑하세요 등등.[37] 이때 출연한 신인 배우들 중 이병헌, 손현주는 현재 한국에서 이름난 거물급 배우들이 되었다.[38] 총집편 2회 포함.[39] KBS 대하드라마 중 드물게 병자호란, 북벌을 다룬 드라마. 조선 효종의 일대기를 다루었다.[40] 총괄편 4회 포함.[41] KBS 대하드라마의 흑역사 1. 원작의 내용을 싹다 갈아버리고 신군부의 집권을 정당화하기 위한 굉장히 노골적인 어용사극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런데 이 내용이 너무 지나쳐서 당시 KBS 내부에서도 논란이 일었다. 자세한 설명은 해당 문서 참고.[42] 1985년 4월 27일부터 주말로 변경됨.[43]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조사 기준. 한국어 위키백과 등지에서는 46회라 하고, KBS 측은 103회라 주장했다.[44] 86년에 총 20회의 1부를 방영됐고, 이어서 87년에 2부와 총괄편이 방송됨[45] 총집편 2화도 방영.[46] 대하드라마에 웬 외국인 원작이냐 하겠지만 이 사람은 조선에서 일하던 선교사로 자신이 본 사건을 소설로 쓴 것을 드라마화했다. 2021년 2월 9일 기준으로 유튜브 KBS 같이삽시다 채널에 1화 및 마지막화가 업로드됐다.[47] 2부 집필[48] 1, 3, 4부 집필[49] 이 작품으로 1988년 KBS 연기대상과 한국방송대상에서 윤씨부인 역의 반효정이 각각 연기대상과 TV연기상(야자)을 수상했다. 이용 역의 임동진은 6.25 특집극인 환멸을 찾아서로 87년 연기대상을 수상한 것이다.[50] 이 작품과 야망의 세월을 통해 1990년 KBS 연기대상을 수상했다.[51] KBS 대하드라마의 흑역사 2. 이승만, 박정희, 박헌영, 남로당, 김일성, 조선인민군 미화라는 심각한 문제점들로 인해 대하드라마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단 13회만에 조기종영한 조루드라마이다. 사실 김일성의 경우에는 그렇게 멋있게 미화되지는 않았고, 드라마에선 정권을 차지하기 위해서 고군분투하고 자기 부하들을 지키기 위해서 고민하는 평범한 정치인처럼 묘사되었다. 사실 해방 이후로부터 1950년대까지는 전제적인 권력을 휘두르기는 커녕 중국파, 소련파와 권력다툼을 벌였으니 만큼 만큼 이게 고증에 더 맞는 모습이기는 하다. 단지, 이전에 김일성을 등장시킨 매체에서는 극도로 잔인한 인물로 나왔기 때문에 미화처럼 느껴지게 된것(...) 다만 전체적으로 보았을때 이 드라마에 나온 김일성이 가장 현실의 김일성과 비슷하게 그려졌다는 평이 많다. 하지만 박정희가 독립군에 가담한것으로 묘사된건 말 그대로 고증오류에 미화인건 틀림없기 때문에 어차피 실드 못친다.[52] <사설 정감록>[53] 베토벤 바이러스를 쓴 홍자매의 아버지다.[54] 하희라가 이 작품으로 연기대상을, 김진태는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흥행과 별개로 이 작품 이후 예산 문제로 1TV 특집극 김구가 제작되기 전까지 대하드라마 제작이 한동안 2TV 수목드라마 시간대로 옮겨졌다.[55] <세종대왕>[56] 유동근이 연기대상을 수상했다. 여말 선초를 다룬 창작물 가운데 가장 영향력이 큰 작품으로, 이후 같은 시대를 다룬 작품은 그것이 영화든 드라마든 이것의 영향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오죽하면 비교적 최근 작품인 정도전이 용의 눈물의 후예를 자처했을 정도. 사실 후예라기보다는 다운그레이드판이지만 흔히 역대 KBS 대하드라마 가운데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되곤 하며, 한국 사극 전체로 범위를 넓히더라도 가장 뛰어난 작품이라는 의견도 많다.[57] 이 작품으로 1999년 채시라가 연기대상을 수상했다.[58] 잘 알려져있듯이 김영철과 최수종이 2000년과 2001년 연기대상을 수상했다. 서인석은 2001년 연기대상에서 남자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한편 "우리 역사의 사각지대라고 할 수 있는 후삼국시대를 생생하게 되살려 새로운 역사드라마의 지평을 열었다"는 평을 받아 2001년 12월 열린 제 14회 한국방송작가상 드라마 부문 수상의 영예를 안았는데 역대 한국방송작가상 드라마 부문 수상작 중 유일한 정통사극이었으며 이 작품에 앞서 95년 월화사극으로 방영된 2TV 장녹수, 전작 왕과 비 이들 정통사극이 한국방송작가상 드라마 부문(장녹수-8회(96년 3월 개최) 왕과 비-12회(2001년 12월 개최) 후보에 오르기도 했지만 "여러 차례 고증을 무시하여 정통사극으로 거론되기엔 아쉬움이 있었다"(장녹수) " 계유정난의 일부를 미화한다는 논란을 일으킨 것 외에도 대하사극을 여인네들의 궁중암투로 ‘격하’시켰다"(왕과 비)는 등의 이유 탓인지 모두 탈락했다.[59] <칼의 노래>[60] <불멸>[61] 김명민이 연기대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성웅 이순신을 다뤘고 김명민의 열연 덕분에 현재는 좋은 평가를 받고 있지만 방영 당시에는 상당히 비판이 많았던 작품이다. 극단적으로 보는 경우, 대하드라마의 흑역사는 사실상 이 작품부터 시작이라고 보기도 한다. 이전 작품인 '무인시대'가 '정도전' 방영 이전까지 최후의 정통사극이라는 타이틀을 보유할 정도로 이 작품은 정통사극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었다. 한편 이 작품 이후 서울 1945 방영 전까지 대하드라마 제작이 잠시 중단되어 칭기즈 칸 외화를 더빙편성했다.[62] 극의 규모만 놓고 볼 때 지금까지의 작품들 가운데 최후의 대작으로, 이 이후로 제작 환경이 급변해 100회를 넘는 작품이 나오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드라마의 흥행과는 별개로 역사 왜곡, 고증 오류, 미화 등이 매우 심각했다. 최수종이 연기대상을 수상했다.[63] 기존의 대하드라마와 차별화된 작품으로 고정 시청자층인 장년층이 이탈해 시청률은 부진했으며, 전체적인 고증도 썩 훌륭한 작품은 되지 못했다. 그나마 압슬형 고증은 제대로 했다.[64] KBS 대하드라마의 흑역사 3. 고증과 재미를 모두 함께 내다 버렸다(...). 주인공에 대한 과도한 도덕성 강조가 역사적 사실을 곡학아세하는 부적절한 역사인식을 만나면 어떤 참극이 벌어지는지 잘 보여주었다. KBS 대하드라마 중 유일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2TV에 순수 방영한 사극이다. 이 드라마의 실패로 인해 대하드라마는 얼마동안 계보가 끊겨지고 2TV에서 현대극인 "열혈 장사꾼"이 '주말 특별기획 드라마'로 방송됐다. 1990년대 중반에 있었던 1차 중단 시기(먼동 ~ 김구)에 이은 2차 중단 시기가 바로 이 시기이다.[65] <대륙의 한>[66] KBS 대하드라마의 흑역사 4. 건축 양식, 생활 양식, 복식 고증 등은 잘 되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시나리오 작가와 PD의 섣부른 독단적인 결단이 어떠한 참극을 불러오는지 잘 보여준 작품. 그 결과 삼국시대판 막장 드라마가 탄생되었다. 하지만 바닥에는 더 바닥이 있다고 바로 밑의 작품이 공개됨에 따라 이 작품도 재평가를 받고 있다(...).[67] <광개토대제>[68] <태왕북벌기>[69] KBS 대하드라마의 흑역사 5이자 역대 KBS 대하드라마 사상 최악의 망작. 역사 왜곡, 막장 드라마, 질질 끄는 스토리, 어설픈 정치극, 어설픈 감성팔이 등 사극에서 볼 수 있는 온갖 문제점이 총체적으로 모여 있다. 특히 역사 왜곡은 이유가 있어서 한 것이 아니라 정말 몰라서 한 것이니... 답이 없다. 그나마 최고 시청률 20%를 찍은 마지막 대하드라마라는 점에서 약간의 의의 정도는 찾을 수 있을지도.[70] KBS 대하드라마의 흑역사 6. 다만 이 작품 하나만 갖고 흑역사라고 하기엔 너무 부당하고, 삼국전성기 시리즈의 전작 2편들이 개망나니짓을 해놓는 바람에 이 작품도 평가절하되어 버린 것이다. 그리고 동시간대 경쟁 작품이 워낙 인기가 많았던 작품이라 결과 면에서만 흑역사인 것이지 작품성만 놓고 보면 나름의 수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