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과 정의의 차이 - gongjeong-gwa jeong-uiui chai

신중섭 강원대 윤리교육과 교수

<< 다시 생각해 보는 ‘공정’과 ‘정의’ >>

신중섭 강원대 윤리교육과 교수

(이 글은 자유경제원이 3월 15일 개최한 세미나에서 발표된 내용입니다.)

오늘 발표는 신문 기사에서 가져온 것과 발표자가 기고했던 글로 구성되어 있다. 발표의 목적은 정의와 공정에 대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생각을 비판적으로 검토해보는 것이다. 발표자는 ‘정의와 공정’과 관련된 ‘객관적 사실’과 ‘심리적 사실’을 구분해 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1. 부패방지 활동 못하는 한국 정부

한국 정부가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부패방지 활동을 가장 못하고 있다는 조사결과 가 나왔다. 한국투명성기구는 세계부패바로미터(Global Corruption Barometer) 중 아시아태평양지역 16개국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이같이 나타났다고 8일 밝혔다. 이번 조사는 2015년 7월부터 올해 1월까지 아시아태평양 16개국의 2만2000 명을 대상으로 대면 또는 전화여론조사로 실시됐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해 9월12일에서 11월3일까지 1000명의 성인을 상대로 조사가 진행됐다.

“정부가 부패방지 활동을 잘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우리나라는 “잘하고 있다”는 응답이 14%, “잘못하고 있다”가 76%로 집계됐다. 대상 16개국 중 자국민에게 부패 대응을 가장 못하는 정부로 인식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다음으로는 말레이시아(62%), 몽골(61%), 일본(60%) 등의 순이었다.

또 “지난 1년간 부패가 증가했는가.”라는 질문엔 우리나라는 “증가했다”는 응답이 50%, “감소했다”는 응답이 17%로 조사됐다. 1위는 중국(75%), 2위는 인도네시아 (65%), 3위는 말레이시아(59%), 4위는 베트남(56%)이 차지했다. 한국은 5위를 기록했다.

“우리나라에서 공공서비스와 관련해 지난 1년간 뇌물을 준 일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선 “그렇다”고 응답한 비율은 3%였다. 뇌물 경험에 대해 그렇다고 응답이 가장 적은 국가는 일본(0.2%)으로 나타났으며 홍콩(2%), 한국(3%), 호주(4%) 순이었다.

“보통의 사람들이 부패와 투쟁해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가”라는 질문엔 우리나라 는 66%가 '그렇다'고 답했다. 호주(80%), 대만(79%), 인도네시아(78%), 캄보디아 (73%), 스리랑카(73%), 태국(72%), 미얀마(72%)에 이어 16개국 중 8번째로 긍정적인 답변을 했다.

한국투명성기구는 “우리나라에 대한 조사는 지난해 9월12일부터 11월3일에 걸쳐서 이뤄졌기 때문에 최순실 사건의 영향이 부분적으로 반영됐다”면서 “국민들은 그때 이 미 정부가 부패 문제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다고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었으며 아시아태평양 국가 중 정부의 부패 대응에 대해 최악의 신뢰도를 보여줬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나라에서 부패 문제에 제대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지엽적인 사항보다는 정경유착, 권력형 부패, 특정집단에 의한 정책포획, 전관예우와 회전문인사 등이 가장 큰 문제임을 인식해야 한다”며 “독립적 반부패기관의 설치, 고위공직자 비리수사처 신설, 청탁금지법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 공익신고자 보호범위 확대를 위한 공 익신고자 보호법 개정 등이 필요하다”고 했다.

2. “한국인 80%, 사회 공정하지 않다 생각”

글로벌 정보분석기업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만 19~70세 한국인 남녀 1천명을 대 상으로 설문한 결과 80.1%가 “한국 사회는 공정하지 않다”고 대답했다. 연령별로는 만 19~29세 청년층에서 '불공정' 인식률이 83.8%로 가장 높았다. “공정한 노력으로 사회·경제적 계층이 바뀔 가능성”을 믿는 사람은 21.3%였다. 만 19~29세 20대 젊은 이들이 보는 역전 확률은 19.3%로 평균보다 낮았다.

‘자신은 어느 계층에 속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중간 계층인 ‘동(銅)수저’를 지목한 사람(46.9%)이 가장 많았다. 이어 흙수저(41.3%), 은수저(10.7%), 금수저 (1.1%) 순이었다. 한국 사회 내 성공 요인(중복응답)으로는 ‘부모의 재력’(88.4%), ‘부 모의 직업이나 사회적 신분’(87.4%), ‘본인의 인맥’(83.9%), ‘본인의 학력’(82.8%), ‘본 인 의지와 노력’(76.9%) 등이 꼽혔다.

한국 사회의 공정성을 저해하는 분야 순위에서는 정치(51.9%)가 불명예스러운 1위에 올랐다. 행정(19.8%), 사법(15.2%), 민간기업(6.7%), 언론(3.6%)이 뒤를 이었다.

3. 한국인의 의식·가치관 조사 결과

문화체육관광부는 ‘한국인의 의식·가치관 조사 결과’를 2013년 12월 18일 발표했다. 이번 조사는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전국의 19세 이상 성인남녀 253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것이다. 앞서 1996년, 2001년, 2006년, 2008년에도 실시됐으며 이번이 5번째 조사이다. 문화부에 따르면 우리 사회에서 경제적 부의 분배가 얼마나 공정하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하는지를 묻는 질문에 대해 ‘공정하지 않다’는 응답이 83.6%로 집계됐다. ‘공정하다’는 응답은 16.4%에 머물러 일반 국민 대다수가 우리 사회의 경제적 부의 분배가 공정하게 이루 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우리 사회의 경제적 양극화에 대해선 ‘심각하다’는 응답이 86.9%에 달했다. ‘심각하지 않다’는 의견은 13.1%에 그쳤다.

우리나라 경제 수준 대비 사회복지 수준에 대해 ‘낮다’는 응답이 64.3%, ‘높다‘는 응답은 35.7%로 각각 집계됐다. ‘정부가 복지에 더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응답은 31.5%로 ‘당사자가 생계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응답 16.5%보다 높게 나왔다. 앞서 2006년도에 시행된 서울대 한국학센터의 ’한국인의 가치관조사 2006‘에서는 ‘정부가 복지에 더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응답이 59.7%였다. 국민들의 정부에 대한 복지 의존 도가 28.2%p 낮아진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문체부는 설명했다.

우리 국민의 행복 수준은 10점 만점에 6.9점으로 2008년 마지막 조사와 같은 수준 이었다. 배우자가 있거나 가구원 수가 많을수록 행복 수준이 더 높아져 ‘가족’이 중요 한 요소인 것으로 나타났다. 행복한 삶을 위해 분야별 중요도를 10점을 척도로 질문한 결과, ‘건강’(9.4점)이 가장 높았다. 다음으로는 ‘배우자’(8.9점), ‘자녀’(8.6점), ‘소 득이나 재산’(8.6점), ‘직장 생활’(8.4점), ‘친구’(8.1점)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분야별로 실제 얼마나 만족하는지 10점을 척도로 질문한 결과, ‘자녀’(8.4점)가 가장 높았고, 그 다음으로는 ‘배우자’(8.3점), ‘친구’(7.8점), ‘건강’(7.8점), ‘종교 생활’(7.2 점), ‘직장 생활’(7.0점)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행복한 삶을 위한 중요도와 현실에서 의 만족도 간 차이는 소득이나 재산이 가장 컸으며, 그 다음으로는 건강, 문화·여가 생활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우리 사회가 어느 정도 신뢰할 수 있는 사회인지에 대해서는 10점 만점에 평균 5.6점에 머물렀다. 국민들은 ‘부모와 자녀’ 관계는 민주적(65.7%)이라고 느끼고 있으나, ‘직장상사와 부하직원 사이’(79.9%), ‘기업가와 근로자 사이’(78.3%), ‘기성세대와 젊 은 세대 사이’(68.0%) 등은 오히려 권위주의적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우리 사회는 남녀가 평등한 사회인가’라는 질문에는 53.4%가 ‘그렇다’고 응답했다. 2008년 당시 30.4%보다 23%p가 높아졌다. 평등하다고 생각하는 남성이 57.2%로 여 성(49.5%)보다 많았다. ‘매장(埋葬)보다는 화장(火葬)을 선호한다.’는 의견은 2008년 대비 12.0%p 증가한 75%로 나타났다. 또 ‘미래를 대비하기보다 현재의 삶을 즐기는 편이 더 중요하다’는 응답도 절반(52%)을 넘었다.

우리 사회가 더 좋은 사회가 되기 위해 필요한 가치로 ‘타인에 대한 배려’라는 응답 이 10점 만점에 평균 8.7점으로 가장 높았다. 또 우리 청소년들에게 필요한 덕목으로 ‘타인에 대한 배려’라는 응답이 55.4%로 가장 많았다. ‘기회균등 및 공정성의 확 보’(8.5점), ‘윗사람에 대한 존중’(8.5점), ‘사회집단 간 소통’(8.5점) 등도 모두 8점 이 상으로 나타나 더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공통 가치로 설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문 체부는 설명했다.

우리나라의 문화에 대해 자랑스럽다는 응답이 모든 문항에서 80% 이상으로 나왔 다. 문화유산이나 유물 93.1%, 한식이나 한복 92.7%, 충효사상 등 정신문화 85.9%, 케이팝(K-Pop) 등 대중문화 81.5% 등이었다. 특히 케이팝(K-Pop) 등 대중문화에 대 한 자긍심은 2008년도 53.6%에서 27.9%p 높아졌다.

우리나라의 문화 수준에 대해서도 경제 수준 대비 문화 수준이 ‘높다’는 응답은 54.5%로 ‘낮다’는 응답(45.5%)보다 많았다. 문화 분야가 이미 선진국 수준이라는 응 답은 31.5%로 경제(21.2%), 법치(5.2%), 정치(3.5%)보다 크게 높았다. 또 현재 나의 문화·여가 활동에 대해서는 45.6%가 ‘만족한다’고 응답했다. 이는 5년 전 조사에 비 해서는 10.2%p 높은 수치다. 거주 지역의 문화생활 여건에 대해서는 ‘좋다’(48.8%)는 응답보다 ‘좋지 않다’(51.2%)는 응답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4. 낮은 신뢰 사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박용만)는 2016년 10월 26일 “한국의 사회적 자본 축적 실태 와 대응과제 연구”라는 보고서를 통해 “신뢰, 규범, 네트워크 등 우리나라의 사회적 자본이 다른 OECD 회원국과 비교할 때 상당히 낮은 수준”이라며 “한국경제 선진국 도약의 결핍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사회적 자본을 신(新)성장 동력으로 활용해 한 국경제의 저성장을 극복해 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믿을 사람이 없다’(OECD 35개국 중 23위), ‘사법 시스템도 못 믿겠다.’(34위), ‘의지 할 사람 없다.’(34위), ‘사회규범 잘 작동하지 않는다.’(OECD 22개국 중 17위)고 답했 다. 사회적 자본인 신뢰, 규범, 네트워크가 국제사회에서 아주 낮은 것으로 밝혀진 것 이다. 이 보고서는 ‘신뢰’의 자본을 북유럽 수준으로만 쌓아도 4%대 경제 성장이 가 능하다고 분석하면서 ‘信성장론’을 제시했다.

대한상의가 사회적 자본을 토대로 제시한 信성장 경로는 ‘신뢰자본 확충 → 규제 감소 → 기업가정신 고취 → 투자 증가 → 경제 성장’이다. 신성장을 위해서는 기업 들이 가장 먼저 정부, 국회, 근로자에게 신뢰의 자본을 쌓아야 하고, 노조도 내 몫 챙 기기에만 급급할 것이 아니라 대화와 협상으로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정부 역시 ‘이건 하라, 이건 하지 말아라.’는 식으로 일일이 규제할 것이 아니라 네 거티브 방식으로 규제의 틀을 바꾸고, 국회도 토론과 타협을 통해 국민과의 약속을 지켜나갈 때 우리 경제가 재도약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고 밝혔다.

실제, 경제개발협력기구(OECD)가 35개 회원국의 사회신뢰도를 조사한 결과, 한국 은 불신의 장벽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사람들을 신뢰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 에 한국은 26.6%만이 ‘그렇다’고 응답해 전체에서 23위를 차지했다. 덴마크가 74.9% 로 사회신뢰도 순위가 가장 높았고 그 다음은 노르웨이 72.9% (2위), 네덜란드 67.4%(3위) 순이었다. 일본은 38.8%(13위), 미국은 35.1%(17위)였다. 사법시스템에 대한 신뢰도 역시 한국은 27%로 34개국 중 33위를 차지해 최하위권이었다.

보고서는 경제 주체간 신뢰를 쌓기 위해서는 ‘사회규범’과 ‘사회네트워크’ 확충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사회적 규범의 작동은 신뢰 제고의 필요조건이지만 한국 의 사회규범지수는 100점 만점에 86.6점(17위)으로 조사대상 평균(88.2점)에 미달하는 수준이다(국제가치관조사, World Value Survey). 일본이 93.8점으로 가장 높았다. 스위스 92.6점(2위), 네덜란드 92.2점(3위), 이탈리아 92.0점(4위), 캐나다 91.4점(5위)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OECD가 평가한 한국의 사회네트워크 수준도 회원국 중 최하위권으로 분류됐다. ‘필요할 때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라는 설문에 ‘그렇다’라는 한국 국민의 응 답은 77.5%에 불과해 35개국 중 34위를 기록했다.국가별로 이스라엘이 97.3%로 1위를 차지했고 아일랜드 96.7%(2위), 덴마크 95.8%(3위), 영국 95.2%(4위), 스위스 95.0%(5위) 등으로 나타났다. 사회네트워크가 활성화될수록 일자리와 투자 등 경제활동 기회도 증가한다는 점에서 사회 자본으로 인식하고 확충하는 노력이 긴요하다는 지적이다.

대한상의는 사회적 자본 축적을 위해 무엇보다 진정성 있는 ‘소통’이 최우선 과제라 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한국경제가 직면한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 “낡은 패러다임을 바꿔야 하지만 경제 활성화와 구조개혁 관련 법안들은 경제주체 간 불신으로 국회에 표류되고 있다”고 밝혔다.

국회에서는 규제를 강화하는 법안들이 폭포처럼 쏟아지고 있다. 20대 국회 개원 이 후(9월15일 기준) 경제 관련 입법발의 중 3분의2가 규제입법으로 밝혀졌다. 보고서는 “경제가 정부 주도에서 민간 주도로 이행된 만큼 자율규범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기업 의 자유로운 운신을 보장해 기업가정신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고 밝혔다.

보고서는 기업의 변화가 가장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기업은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의 윤리규범을 만들어 책임경영의 관행을 실천함으로써 사회적 신뢰를 회복 해야 한다.”며, “지속가능성장, 사회복지 확대 등 사회문제 해결에도 관심과 참여를 넓혀야 국민적 지원이 뒤따를 것이다.”고 강조했다.

5. 공정한 사회, 정의로운 사회는 어떤 사회인가

공정과 정의

우리는 유난히 ‘공정’과 ‘정의’에 대한 관심이 높다. 여론 조사에 따르면 우리 사회가 불공정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공정하다고 믿는 사람들보다 훨씬 많다. 사람들은, 대통령을 탄핵까지 몰고 간 최근의 사건들은 그동안 우리 사회가 얼마나 불공정했는가를 보여주는 실증적인 사례라고 믿는다. ‘수저 계급론’이나 ‘헬 조선’과 같은 말들은 우리 사회가 불공정하고 정의롭지 못하다는 것을 확증하는 사례라고 할 수도 있다. 왜 우리 사회가 이렇게 불공정하고 정의롭지 못한 사회가 되었을까? 우리 사회가 과 거와 비교하여 더 불공정하고 정의롭지 못한가 아니면 다른 나라와 비교하여 그런가? 그러면 도대체 공정이란 무엇이고 정의란 무엇인가? 공정과 정의에 대해 다양한 철 학적 논의가 존재하고, 공정과 정의의 관계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견해가 있지만, 여 기서는 공정은 절차와 관계된 것으로, 정의는 샌델이 지적한 것처럼 ‘사람들이 소중하 게 생각하는 소득과 부, 의무와 권리, 권력과 기회, 공직과 영광과 같은 것들의 분배와 관련된 것’으로 제한하려고 한다. 이렇게 생각하면 정의를 논의할 때도 공정의 문 제가 제기된다. 정의에는 ‘소중히 여기는 것’을 분배하는 절차가 개입되기 때문이다.

공정이란 무엇인가

‘공정’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정치철학적 개념이다. 최근 한 일간지에도 ‘공정’을 문제 삼는 글이 실렸다. 하나는 광고문에 실린 것으로,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 정부의 이중 잣대에 국민들이 분노한다!”는 큰 제목 아래 “정부에 묻는다! 공정한 정책 결정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라는 소제목이 나온다. 이 광고를 낸 단체 들은 오색케이블카 사업을 부결시킨 문화재청의 결정이 ‘공정하지 못하다’고 주장한다. 환경부는 사업을 승인했는데, 같은 정부 기관인 문화재청이 부결시킨 것은 국민의 혼란을 가중하고, 정부 불신을 초래하는 불공정한 결정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공정성은 ‘일관성’과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뿐만 아니라 이 광고는 문화재정이 오색케이블카 사업에 반대하는 단체의 억지 주장에 편승하여 이 사업을 승인하지 않았다는 주장도 담고 있다. 양쪽 말을 모두 들어보고 공정한 판단을 내리 지 않고 한쪽의 주장만을 받아들이는 것을 두고 ‘불공정’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문화재청의 입장을 듣지 않고, 이 광고를 낸 단체들의 주장에 따라 오색케이 블카를 허가하지 않은 결정을 불공정하다고 판단하는 것 또한 ‘불공정한’ 판단이 될 것이다.

같은 날 신문에는 “이정미 대행 첫날 일성은 ‘절차 공정성’”이라는 제목의 기사도 실렸다. 대통령 탄핵 심판 10차 공개 변론이 열린 헌법재판소에서 오갔던 말에 대한 기사이다. 헌재 소장의 퇴임으로 소장대행을 맡게 된 이정미 재판관이 “탄핵심판 사건의 국가적ㆍ헌정사적 중대성과 국민 전체에 미치는 중요성은 모두 인식하고 있다.”며 “심판 과정에서의 절차적 공정성과 엄격성이 담보되어야만 심판 결과의 정당성도 확보될 것”이라고 했다.

이 소장대행의 모두(冒頭) 발언이 끝나자마자 대통령 측의 변호사는 “전임 박한철 소장은 ‘3월 13일 이전에 탄핵 심판 선고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선고 기일을 미리 정한다는 것은 이 사건 심판 결과의 공정성에 대한 심각한 의문이 제기될 우려가 있다.”며 “헌재가 심리 절차의 신속을 강조한 나머지 공정함을 잃어버린다면 이번 탄핵 심판 사건은 우리나라 사법 역사뿐 아니라 세계 사법 역사상 비웃음을 사 게 될까 두렵다.”고 했다. 나아가 이 변호사는 “청구인 (국회) 측에는 예리한 일본도(刀)를 주고, 피청구인에겐 둔한 부엌칼을 주면서 공정한 진검 승부를 하라는 것과 같다.”고 주장했다.

국가적으로 중요한 대통령 탄핵 심판을 두고, 심판 주체인 헌법재판소는 ‘절차의 공정성’을 말하고, 변호인 측은 ‘결과의 공정성’이라는 말을 사용하면서 ‘공정성’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서는 ‘결과의 공정성’이 아니라 ‘결과의 합당성’ 또는 ‘정당성’, ‘타당 성’이 더 적합한 표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정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자신들이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공정한 판결이 아니라는 주장을 하고 싶기 때문이다.

위의 두 사례에서 사용된 ‘공정’은 정부의 판단과 관련된 것으로, ‘공정’은 정부의 의사 결정 과정이 어떤가를 묻는 것이다. 분쟁 중이거나 대립관계에 있는 양자의 입 장을 정부나 정부의 대표 기관이 조정하거나 옳고 그름을 판단할 때 일관된 입장을 견지하지 않거나, 양 편의 말을 모두 경청하여 반영하지 않거나, 같은 조건에서 경쟁 하게 하지 않거나, 한쪽 편을 들 때 공정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 에서 불공정을 내세우는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거나 자신이 원 하는 방향으로 일이 진행되지 않을 때 공정하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공정 한가? 공정하지 않은가는 무엇을 공정성의 기준으로 설정하는가에 달려 있다.

물론 불공정은 국내에서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미자유 협정(NAFTA)나 한미 FTA가 불공정하다고 주장한다. 무역협정의 F에는 free뿐만 아 니라 fair의 의미도 있다는 것이다. 단순한 자유무역이 아니라 공정한 자유무역이 되 어야 한다는 것이다. 멕시코나 한국에 대한 미국의 무역 적자가 높기 때문에 균형을 이루어야 미국에도 이익이 된다는 관점이다. 자유무역은 쌍방 모두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에 성립하고 있다는 통념을 깨고 트럼프는 미국이 일방적으로 손해를 보고 있기 때문에 이것을 바로 잡겠다고 큰소리를 치고 있다. 그동안 서로에게 이익이라고 생각 했던 자유무역을 왜 트럼프는 불공정하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공정성의 기준이 사전에 정해져 있고, 양자가 이 기준에 동의하고, 그 기준을 엄격 히 적용하여 판단하였다면, 그것은 공정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기준이 엄격히 적용되었는가에 대해서 한 쪽이 그렇지 않았다고 주장한다면, 결과의 정당성은 의심을 받는다. 공정한 사회가 되려면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결과가 나오더라도 절차가 공정했다면 그것을 수용해야 한다. 절차가 공정하지 못한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겠지 만, 우리 사회가 불공정하다고 믿는 사람들의 주관적 판단이 널리 퍼져 있는 이유는 결과를 받아들이려는 승복의 정신이 부족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정의란 무엇인가

최근에 여러 가지 원인으로 소득과 부의 격차가 확대되고,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실제 소득이 증가하지 않았거나 원하는 직장을 얻지 못했거나 일자리를 찾지 못한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정의’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졌다. ‘정의’는 법적인 영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지만, 소득과 부의 분배와 관련하여 더 큰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소득과 부의 격차가 큰 사회를 정의롭지 못한 사회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사람들은 부나 소득의 총량의 증가보다 분배에 더 관심을 갖고 그것이 평등하게 분배되지 않았다고 생각되면, 정의롭지 않다고 느낀다. 뿐만 아니라 정의롭다는 판단을 상대적인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것으로 믿는 경향도 있다. 우리가 과거보다 더 정의롭지 못한 사회가 되었다거나, 다른 나라와 비교하여 더 정의롭지 못하다고 판단하지 않고, 무조건 정의롭지 못하다고 판단하기도 한다. 이런 판단이 과연 옳은 판단일까? 부와 소득이 평등하게 분배된 사회가 그렇지 못한 사회보다 더 정의로운 사회일까? 북한이 우리보다 부와 소득이 더 평등하게 분배되고 있다고 한다면, 북한 이 우리보다 더 정의로운 사회일까? 우리 사회에서 과거보다 지금이 부와 소득이 더 불평등하게 분배되었다면, 지금이 과거보다 더 정의롭지 못한 사회일까?

그렇지 않다. 부와 소득이 더 평등하게 분배되었다고 더 정의로운 사회는 아니다. 모든 정의론이 평등을 정의의 기준으로 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샌델이 잘 정리 하였듯이 무엇을 정의의 기준으로 삼느냐에 따라 동일한 상황이 정의로울 수도 있고 정의롭지 않을 수도 있다. 행복을 정의의 기준으로 삼는 공리주의, 자유를 기준으로 삼는 자유주의, 미덕을 기준으로 삼는 공동체주의는 소득과 부의 분배가 정의로운가? 그렇지 않은가를 판단할 때 서로 다른 입장을 취한다. 동일한 상황이라고 할지라도 입장에 따라 정의와 부정의의 판단이 갈린다.

정의 문제와 관련하여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우리가 어떤 정의의 기준을 가지고 판단하는가이다. 우리 사회에서 부와 소득의 격차가 확대되는 것을 보고 우리 사회가 더 정의롭지 않다고 판단하는 사람들은 평등을 정의의 기준으로 삼고 있는 평등주의 적 자유주의 입장에서 정의를 판단하는 것이다. 평등주의적 자유주의자들은 정부가 재분배 정책을 통해 이 격차를 줄이는 것이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불평등을 교정하는 것이 정의롭다고 믿는 평등주의적 자유주의가 많은 사회에서 는 부와 소득의 평등한 분배를 정의의 기준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자유지선 주의자들은 소득 재분배를 위해 정부가 세금을 더 많이 거두는 것은 개인의 사유재산 을 침해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의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어느 사회가 어떤 기준을 정의의 기준으로 선택할 것인가는 철학의 문제가 아니고 정치의 문제다. 정의에 대한 다양한 철학적 이론 가운데 어느 이론을 국가 정책에 반 영할 것인가는 철학적 논의가 아니라 민주주의 곧 선거를 통해 결정된다. 부와 소득 의 평등한 분배를 정의라고 생각하는 유권자가 많으면 그런 정책을 내놓은 정당이나 정치가가 국민의 선택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자유지선주의는 평등주의 정책의 시행 을 정의롭지 못하다고 주장할 것이다. 요약하면 정의는 정의론의 문제이다.

그러나 우리가 어느 정의론을 지지하는가에 상관없이 어떤 상황을 정의롭지 못하다 고 판단하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인권을 보장하지 않거나, 자유를 억압하거나, 거주 이전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거나, 빈곤에 시달리는 사람이 많은 사회를 정의로운 사회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인권과 자유의 보장은 부ㆍ소득의 분배보다 우선하는 정 의의 조건이다. 인권이나 기본적 자유는 정의로운 사회가 갖추어야 할 보편적인 가치 이다. 이런 정의의 조건은 공리주의자나 자유주의자, 공동체주의자냐에 관계없이 모두 받아들인다.

6. ‘객관적 사실’과 ‘심리적 사실’ 혼동하지 말아야

공정이나 정의에 대한 논의는 철학적으로 복잡하다. 또한 우리 사회가 얼마나 공정하고 정의로운가를 판단할 수 있는 객관적 기준도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가 공정하지 못하다’는 주장은 대체로 사람들의 주관적인 믿음에서 나온 것이다. “우리 사회는 불공정하다”거나 “우리 사회는 정의롭지 못하다”와 같은 표현은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우리 사회는 불공정하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가 정확한 표현이다. ‘심리적 사실’과 ‘객관적 사실’은 구별되어야 한다. 물론 ‘사람들은 우리 사회가 불공정하기 때문에 불공정하다고 생각한다’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지만, ‘불공정한 것’과 ‘불공정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인식론적으로 명백하게 구별된다. 공정성에 대한 기준을 높이 잡으면 높이 잡을수록 불공정하다고 믿는 사람은 많아진다.

어느 사회에서 ‘정의와 공정의 정도’에 대한 객관적 지표를 찾는 것은 쉽지 않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 각자가 가지고 있는 ‘공정’과 ‘정의’에 대한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우리 사회가 좀 더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대책을 제시할 수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공정과 정의에 대한 강 조는 사회 구성원 사이의 불신만 가중시켜 사회 분열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우리 사회를 좀 더 나은 사회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공정’과 ‘정의’와 같은 추상적이고 철학적인 논의보다는 매년 국제투명성기구에서 발표하고 있는 부패인식지수 (CPI)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부패인식지수는 한 국가의 ‘공공 부분 및 정치부분에 존재하는 부패의 정도’를 측정한 것으로, 여기에서 말하는 ‘부패’는 ‘사적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공적 지위를 남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부패인식지수 는 정부부분의 뇌물이나 부패의 존재여부, 공적 자금 유용, 계약에서 뇌물 제공 관행, 공적 지위를 남용한 공직자의 처벌 정도, 정부의 부패 예방의 효과성, 공직자의 사익 목적 지위 남용 예방 정도, 정치 시스템 내부의 부패 수준, 행정부ㆍ사법부ㆍ경찰ㆍ 군인ㆍ입법부 공직자의 사적 이익을 위한 공적 지위 악용과 남용에 대한 정도가 포함 되어 있다.

2017년 1월 30일 국제투명성기구에서 발표한 2016 부패인식지수에 따르면 우리나 라는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35개 회원국 가운데 29위를 했다. 우리나라의 부패지 수는 100점 만점에 53점이다. 53점은 ‘절대부패에서 벗어난 정도’이다. 70점 이상을 받은 국가들은 ‘사회가 전반적으로 투명한 상태’라는 평가를 받았다. 공동 1위를 차지 한 나라는 덴마크와 뉴질랜드로 90점을 받았다. 상위권에 속하는 나라일수록 1인당 국민 소득이 높다. 부패는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키기 때문에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친 다. 부패는 정부의 핵심 기능을 마비시키고 세금 납부자들의 납세 동기를 약화시키기 때문에 국가 재정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도 있다.

우리 사회가 지금보다 더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가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더 중요한 것은 개인의 자유와 책임ㆍ헌정 질서가 엄정하게 시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가 공정하고 정의롭지 못하다고 하면서 제시되는 많은 현실적 증거들 은 사실 공정과 정의 이전의 부정부패의 문제다. 정부의 고위공직자나 정치인이 자신 의 권력을 이용하여 사익을 추구하고, 이 과정에서 부정부패를 행한다면 이것은 ‘불공 정하거나 정의롭지 못하다’라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범법(犯法) 행위다. 이런 상황 에서 우리에게 시급한 것은 권력의 사사화(私事化)를 엄단하고 법의 지배를 확립하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공공부분’과 권력이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을 최소한 으로 줄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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