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일러스트 레이터 - haeoe illeoseuteu leiteo

고준호는 낯가림이 있는 성격이라고 본인을 설명했다. 밖에 나가는 걸 좋아하지도 않고, 집에 있는 걸 즐긴다고.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그림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대학에 입학했을 땐, 1년을 단축하기 위해서 교수들에게 자신의 그림을 설명했고, 전시를 할 땐 알음알음 인맥을 넓혀 전시 기획자를 소개 받기도 했다. 취업 준비를 할 땐 자신의 그림을 소개하며 회사 맞춤형 메일을 일일이 보냈다. 그는 영국 패션 브랜드 ORLA KIELY에 입사하게 된 것이 그저 운이 좋았다고 말했지만 이는 운이 아니다. 그는 저절로 운이 굴러 들어 오기만을 기다리지 않았다. ‘내 성격이 원래 이래’라는 핑계를 대지 않고 적극적으로 세상에 자신을 드러냈다. 

해외에 나가면 뭐든 변하겠지, 라는 막연한 기대는 어쩌면 안일한 생각일지도 모른다. 끊임없이 찾아오는 고비를 혼자 힘으로 이겨내야 하는 시간은 결코 만만하지 않다. 고준호는 영국 유학 혹은 해외 취업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나가라, 나가지 마라, 라고 단언하는 대신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해라’ 라고 답했다. 결국 나의 강한 마음이 중요한 것이다. 시련이 찾아와 좌절을 하더라도, 영원히 꺾이진 않는 그런 마음. 

인스타그램 아이디가 bekologic이에요. 뒤에 logic, 논리라는 말이 눈에 띄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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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해외 이름이 브라이언 고(Brian ko)거든요. 그걸 줄여서 Beko라고 했는데, 그 뒤에 뭘 더 붙여야 할까 고민되더라고요. 저를 표현할 수 있는 단어는 어떤 게 있을까, 곰곰이 생각하다가 논리라는 말이 떠올랐어요. 제가 그리고 싶은 그림, 제가 생각하는 것들을 보여주기엔 그 말이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했거든요. bekologic은 결국 ‘준호의 논리’라는 말이에요. 

논리를 그림으로 풀어낸다는 게 머릿속에 쉽게 그려지지 않아요. 준호의 논리는 어떤 건가요?

쉽게 말해서 제가 떠오르는 것들이에요. ‘준호’의 논리니까 제가 봤을 때 아름다운 것들, 인상적인 것들을 그림으로 풀어내는 거예요. 풀어나가는 과정을 ‘논리’라고 표현했어요. 

준호의 내면을 외면으로 표출하는 과정인 거군요. 저는 그걸 원심력의 힘이라고 하는데, 준호의 작품은 그게 굉장히 정연하게 표현되어 있는 것 같아요. 국내에선 보기 드문 아트웍을 선보여서 해외에 베이스를 둔 작가일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실제로 해외 생활을 오래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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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준호


네, 중학교 끝나고 바로 인도로 넘어갔어요. 고등학교 시절은 인도 국제학교에서 보내다가, 대학은 영국에서 졸업하고, 중간에 베를린에서도 살고, 취업은 다시 영국에서 했다가 코로나로 한국에 오게 됐어요. 한국에 도착한지는 이제 4개월 즈음 된 것 같네요. 

와, 해외에서도 이동이 잦은 편이었네요. 인도로 넘어간 게 시작이었군요. 인생의 변곡점이었을 것 같아요.

굉장한 변곡점이 되었죠. 사실 처음엔 정말 가기 싫었어요. 그래서 친구들에게 ‘인도는 잠깐 가는 거고, 나는 곧 영국으로 가는 거’ 라고 말했어요.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는데도요. 그때 그렇게 말한 게 진짜 이뤄질 줄은 전혀 몰랐죠. 그때 말한 게 스스로에게도 큰 영향을 줬나봐요. 결국 영국 베이스 국제학교에 가게 됐고, 자연스럽게 영국 대학으로 진학하게 되었어요. 

말에 대한 책임을 졌군요. 런던에 있는 킹스턴 대학교에서 일러스트과를 전공했죠. 알아보니 시각 디자인 쪽으로 굉장히 유명한 학교더라고요. 입학이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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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준호


맞아요. 인도는 아무래도 미술 교육 시스템이 많이 빈약하거든요. 학원이나 아틀리에가 없었어요. 기초를 배울 수 있는 공간이 거의 없다시피 했죠. 전 초등학생들에게 미술을 가르쳐주던 선교사 분에게 배웠어요. 그분은 입시미술을 가르쳐주지 않았어요. ‘그리고 싶은 대로 그려라’ 라는 가르침만 있었을 뿐이죠. 그렇게 영국 킹스턴대학교에 입학했는데, 전혀 딴 세상인 거예요. 나름 인도에선 잘 그린다고 자부했는데,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싶더라고요. 그때 참 많이 좌절했어요. 이 길은 내 길이 아닌가, 라는 생각까지 들고. 처음엔 열정이 넘쳤거든요. 대학 교수님에게 ‘저 그림 잘 그린다’ 라면서 따로 연락하기도 했어요. 원래는 파운데이션 코스를 밟았어야 했는데, 어필한 덕분에 1학년에 바로 입학할 수 있었죠. 포트폴리오를 들고 가서 PT를 하기도 하고, 정말 열심이었어요. 그런데 입학하고 나니, 전 우물 안 개구리였던 거죠. 제가 전혀 몰랐던 스타일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굉장히 많았어요. 처음엔 이에 좌절했지만, 점점 제 안에 있던 그림에 대한 인식이 넓어져 가는 걸 느꼈어요. 시야가 넓어지는 경험이었습니다. 

거의 독학으로 하다가, 영국에 넘어가서 상상도 못했던 그림들을 본다면 굉장히 좌절했을 것 같아요, 저라면. 그럼에도 그림을 포기하지 않으셨네요. 오히려 시야를 넓히는 경험으로 승화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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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그림 그리는 게 정말, 정말 좋아요. 어렸을 때부터 그림에 대해선 잘하고 싶고 지기 싫고 눈에 띄고 싶었어요. 처음엔 워낙 베이스가 없는 상태로 가서 다른 영국 자국 학생들에 비해 이해도가 부족했던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곧 이를 악 물게 되더라고요. 지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림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 느껴져요. 해외 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자연스레 다양한 문화를 접하게 되죠. 해외 경험이 작품에 영향을 준 부분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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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죠. 독일에서 잠깐 생활을 했을 때 독일 특유의 젠더가 모호한 컬처들을 보게 됐어요. 그런 도시의 분위기를 녹여내 전시를 진행 하기도 했고…. 인도에서는 인도 특유의 다채로운 색감을 익히고, 영국에서는 자유분방함을 얻었어요. 그런 조각들을 한국 문화를 그리는데 쓰면서 지금의 화풍이 된 것 같아요. 

해외에서 오랜 시간 생활하게 되면 견문이 넓어진다는 장점이 있지만, 동시에 어디서도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있더라고요. 특히 10대 시절 다양한 문화권을 경험한 사람들은 정체성을 정의 내리기 어려워하고, 어디를 가도 항상 이방인의 느낌이 든다고 들었어요.

굉장히 공감해요. 저는 2년마다 사는 곳이 바뀌는 징크스가 있어서 더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문화적 혼란을 계속해서 겪다 보니, 한 곳에 정착하는 게 꿈이 됐어요. 

다양한 문화를 겪으면서 생긴 혼란을 아트적으로 승화하는 능력이 참 출중한 것 같아요. 고준호의 그림을 보면 시리즈마다 다른 문화가 베이스가 되더라고요. 그 중에 코리안 캐릭터스 작업은 한국을 배경으로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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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요. 저희 할머니께서 한국 무용을 하시거든요. 아침마다 노래를 틀고 춤을 추시는데, 제가 놓치고 있던 아름다움을 발견한 기분이었어요. 제 근본이기도 하잖아요. 외국인들 눈에 단순히 ‘동양적이다’ 라고만 인식되지 않길 바라서 끊임없이 구상했어요. 동양적인 걸 넘어, 한국적인 걸 표현하기 위해선, 그리고 이를 색다르게 그려내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코리안 캐릭터스 시리즈를 그리게 되었죠.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작업은 ‘Contact’예요. 사이언 컬러는 일러스트에서 보기 드물잖아요. 그걸 포인트로 넣으니 색의 구성이 다양하지 않아도, 단조로워 보이지 않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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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해요. (웃음) 색을 배치할 때 웬만하면 3색을 넘어가게 사용하지 않아요. 전체적으로 3색의 범주 안에서 작품을 그리고, 보여주고 싶은 색이 있다면 힘을 줘서 포인트로 넣어요. 넓게 시야를 가지면서 주제를 확실하게 보여줄 수 있도록 하는 편입니다. 

제가 패션에도 관심이 많거든요. 옷도 3색 법칙에 따른 게 가장 예쁘다고 하잖아요. 

마침 영국 패션 회사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활동했었죠.

네, 거기서 웹 사이트 구성, 예를 들면 아마존 셀러 페이지를 구성하는 일 등을 했어요. 오피셜 웹사이트 레이아웃을 디자인하는 일도 같이 진행했습니다. 

아쉽진 않았어요? 아마존 같은 경우엔 판매 페이지에 제약이 굉장히 많은 걸로 알고 있거든요. 지금까지 해온 예술적 감각을 펼치기엔 좁은 캔버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굉장히 좁았어요. 제가 다녔던 곳은 어떤 일이든 최고 권위자의 컨펌을 받아야 진행이 가능한 시스템이었어요. 굉장히 감사했고, 분에 넘치는 자리였지만 순수하게 제 의지대로 움직일 수 없다는 게 조금 힘들더라고요. 그때 일하면서, ‘진심으로 좋아하는 일을 하지 않는 이상 성장하기 어렵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픽 디자이너일이 재밌었지만, 전 그림 그리는 게 더 좋은 사람이었거든요. 그래서 제가 하고 싶은 걸 해야 성장할 수 있다는 걸 알았어요. 한국에 와서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는 이유 중 하나예요. 

그렇군요. 사실 외국인 신분으로 일한다는 게 참 쉽지 않은 일이죠. 자국민보다 두 배 이상을 보여줘야 가능한 거니까요. 해외 직장인으로서 겪었던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이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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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은 소셜라이징, 사교가 굉장히 중요한 사회예요. 문화권이 다르다 보니,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조금씩 있는데 이게 계속 쌓이다 보면 ‘영국 사람이 아니라 대화에 잘 못 녹아드네?’ 이런 시선을 받을 수 있어요. 제가 한국인이라는 걸 완전히 버리지 않는 이상, 메울 수 없는 간극에 지칠 수밖에 없어요. 저는 이런 부분에 대해 배려를 많이 받은 편이었는데, 그럼에도 느껴지는 것들이 있더라고요. 

문화적 차이를 느낄 때마다 이방인인 걸 새삼 실감한다고 하더라고요. 현재 한국에 들어온 가장 큰 이유는 코로나 때문인 걸로 알고 있는데, 맞나요?

네, 가장 큰 이유는 코로나 때문이에요. 진짜, 정말 힘들었어요. 영국에서 일하면서 기반을 다지려고 노력을 많이 했는데, 모든 계획이 코로나로 인해 와르르 무너졌습니다. 취업해서 마냥 행복했는데, 모든 게 불확실해 진다는 게 참 무서운 일이더라고요. 

그렇죠. 지금은 한국에 있지만, 해외에서도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했어요. 해외에서 내 이름을 알린다는 게 쉽지 않잖아요. 이를 위해 했던 노력들이 궁금해요.

해외 일러스트 레이터 - haeoe illeoseuteu leiteo

제가 사교적인 성격이 아니에요. 낯도 많이 가리고. 하지만 사람들에게 저를 알려야 하는 직업이니까 일단 밖으로 나가서 사람들을 만났어요. 예를 들어서, 제가 베를린에서 19년도 10월부터 20년 1월까지 살았는데 그때 운 좋게 전시를 하게 됐거든요. 제 그림을 여기저기 보여주고 다니다가, 전시 기획자를 만나게 되었어요. 그 분이 제 그림을 좋게 보고, 전시에 그림을 걸 수 있도록 했죠. 결국 기회는 직접 찾아가야 생기는 것 같아요. 내 그림을 좋아해 줄 수 잇는 사람들을 내가 직접 찾아 나서는 것, 그게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로서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스타그램에 자신의 그림을 올리는 것을 넘어, 직접 타겟을 설정해 보여줘야 하는 군요.

해외 일러스트 레이터 - haeoe illeoseuteu leit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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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그런 건 아니겠지만, 저 같은 경우엔 먼저 메일을 보냈어요. ‘나 이런 그림이 있는데, 당신들이 준비하고 있는 걸 난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요. 다 똑같이 메일을 보내는 게 아니라, 그 회사에 조금이라도 맞춰서 보내면 진심으로 회사에 관심이 있다고 생각하고 좋게 봐주는 것 같아요. 실제로 제가 처음 다녔던 회사가 패턴이 유명한 곳이었는데, 제가 회사 패턴을 제 스타일대로 해석해 보여줬거든요. 그걸 굉장히 인상 깊게 봤더라고요. 하나라도 더 어필을 하는 거죠. 나 너한테 관심 있다, 이렇게. 

운이 좋은 게 아니라, 운을 만들어 갔네요. 지금은 이렇게 간략하게 말하지만, 그 당시에는 굉장히 어려운 시간이었을 것 같아요. 인정 받는 것도 쉽지 않았을 테고요.

맞아요. 그래서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를 꼽으라 하면 무조건 베를린 전시를 얘기해요. 군대는 다시 가도, 베를린 전시는 다시 못하겠다고 말할 정도니까요. 순수하게 제가 번 돈으로 열었던 전시라서 더 기억에 남아요. 리포터도 하고, 통번역 일도 하면서 우여곡절 끝에 전시를 열게 됐거든요. 게다가 전 독일어를 전혀 못하는데, 그쪽에선 대부분 독일어로 얘기를 하니까 언어 장벽도 있었어요. 전시를 하기 위해선 출력과 프레이밍 작업을 해야 하는데 말도 어디서 하는지도 모르고, 말도 안 통하니 정말 답답하더라고요. 재정적으로도 힘들었어요. 샌드위치 7개로 일주일을 버티던 기억이 나네요. 

해외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걸 결코 우아하게 생각하면 안 되겠어요.

그래서 제가 해외 취업을 꿈 꾸는 분들에게 항상 하는 말이 ‘강한 마음을 준비해라’예요. 다른 건 다 필요 없어요. 미대를 졸업했다면 이미 실력은 출중하다고 생각하거든요. 힘든 순간이 분기마다 찾아 오는데 그걸 버텨낼 수 없을 것 같다면 추천드리고 싶지 않아요. ‘난 베어 그릴스다’라는 마음으로 임한다면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왕 말이 나온 김에 이에 대해 더 얘기해 볼까요? 언택트 시대이니, 이제 해외에도 자신의 작품을 알리고자 하는 일러스트레이터가 많아졌어요. 해외에서도 활동하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팁을 주자면 어떤 게 있을까요?

해외 일러스트 레이터 - haeoe illeoseuteu leiteo

고준호

제가 팁을 드릴 위치인지 모르겠지만. 하하. 한 마디 하자면, 나라마다 맞는 감성이 있는 것 같아요. 한국과 영국의 감성은 굉장히 달라요. 너무 귀여운 그림이거나, 실험적인 그림은 영국에서 그렇게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닌 것 같아요. 그보단 소셜한 그림들이 인기가 있는 편이에요. 마치 그림이 나에게 말을 건네는 듯한, 그런 그림들이 주를 이뤄요. 이건 제가 생각한 영국의 분위기고 나라마다 원하는 스타일이 달라요. 그렇기에 각 국의 그림 스타일을 파악하는 게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이제 한국에 왔으니, 고준호의 한국 계획을 들어볼까요.

한국에서는 전시 두 개를 진행할 예정이에요. 하나는 온라인이고, 나머지는 6월에 성수동에서 오프라인으로 진행합니다. 아직 한국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어서 이제 자리를 잡아가는 단계예요. 

마지막으로, 해외에서 활동하길 혹은 진학하길 바라는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자유롭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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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준호

제게 개인 사정을 말하며 학교를 영국으로 가는 게 맞을까, 이렇게 묻는 분들이 많아요. 저는 그때마다 본인이 맞다고 생각하면 맞는 거라고 답해드려요. 전 영국에 간 걸 많이 후회했어요. 다시는 영국에 돌아가지 않겠다고 생각할 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제가 선택했던 것들이 맞았더라고요.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했으면 좋겠어요. 만약 진심으로 영국에 뜻이 있고 가길 바란다면 어떻게 해서든 가길 바라요. 정말 세계가 바뀌는 큰 경험을 하게 될 거예요. 그만큼의 열정을 안고 간다면 뭐든 바뀔 거예요. 만약 그런 마음이 아니라면 가지 않길 권합니다. 취업도 너무 걱정 마세요. 이 말을 자주 하는데, 또 하고 싶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