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가지 문제로 한국와 일본의 사이가 악화되고 있는 와중에도 우리는 일본에서 유래된 말들을 사용하고 있다. 얼마 전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의 이윤옥 소장이 낸 책이 화제가 되었다. <오염된 국어사전>이라는 다소 수위 높은 제목의 이 책은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많은 단어가 일본에서 유래된 것들임에도 표준국어사전은 이 단어들의 유래조차 제대로 설명하지 못할 뿐 아니라 한국어로 둔갑시켜놓았다는 것. 이윤옥 소장은 이 책의 제목을 ‘표준국어대사전을 불태워라’라고 지으려고 했다고 말할 정도로 일본말의 찌꺼기가 제대로 걸러지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외치고 있지만, 정작 우리가 쓰는 단어는 일본에서 온 것들이라는 사실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쓰고 있는 단어들은 더 한심하다. ‘가오’, ‘간지’, ‘가다’ 등 일본 잔재 언어들을 일상에서 아무렇지 않게 쓰고 있다. 더욱 큰 문제는 이런 말을 써도 된다, 안 된다를 놓고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에는 일본식 한자어가 상당히 많다. 그런 말들을 다 쓰지 못하게 하면 당장 우리의 언어생활에 많은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염려할 정도다. 다양한 외래어를 쓰고 있는 마당에 일본에서 유래된 말이라고 쓰지 못하게 하는 건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렇다면 우리가 자주 사용하고 있는 일본말에는 어떤 게 있을까? 한국어로 둔갑한 일본어국위선양(國威宣揚) “신하들은 천황을 도와 국가를 지키고 황국신민을 있게 한 시조신을 위로하여 일본을 만세일계에 알려야 한다”고 메이지 왕이 신하에게 내린 말이 국위선양의 골자. 우리가 쓰는 뜻은 ‘나라의 위신을 널리 알리다’라는 정도. 동장군(冬將軍) 매우 혹독한 추위를 뜻하는 이 단어는 일본어에서 유래됐다기보다는 영국 기자가 말한 ‘general frost’라는 단어에서 나온 말이다. 1812년 러시아 전투에서 프랑스군이 패퇴하자 영국 기자가 표현한 단어를 일본이 동장군으로 표현해 사용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일본 단어를 그대로 가져와 사용하고 있다. 잉꼬부부(鸚哥夫婦) 금실 좋은 부부를 이를 때 쓰는 말. 잉꼬라는 새가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냥 앵무새이며, 잉꼬는 앵무새의 일본말이다. 잘 생각해보자. 전통혼례를 치를 때 우리가 올려놓는 한 쌍의 새가 무엇이었는지. 그건 앵무새가 아니라 원앙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부부 금실을 얘기할 때 원앙에 비유했다. 품절(品切) 물건이 다 팔려 없다는 뜻의 품절도 일본에서 유래된 단어. 하지만 이 단어가 일본에서 유래됐다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택배(宅配) ‘자택배달(自宅配達)’의 줄임말이다. 이것 역시 일본에서 사용하는 단어다. 고참(古參)→선임, 수목원(樹木園)→나무동산, 구루병()→곱추, 석패(惜敗)→아깝게 패함. 일상생활에서 쓰이고 있는 일본어다대기(たたき) 일본어로는 ‘타타키’라고 하는데, 우리와 같은 양념이 없는 일본에서는 이 단어가 칼로 다져 만든 요리 등으로 쓰인다. ‘다진 양념’으로 순화해서 사용한다. 찌라시(ちらし) ‘광고 전단지’를 이르는 단어로 일본에서도 광고지 인쇄물을 뜻한다. 가오(かお) 일본에서는 얼굴이나 용모라는 뜻으로 쓰이는데 우리는 ‘뽐’이라는 의미로 사용한다. 유도리(ゆとり) 이 단어를 우리말이라고 알고 사용하는 사람이 많다. ‘여유가 있다’는 일본어로 ‘유토리’라고 읽는다. 우리는 ‘여유를 가지고 신축성 있게 일을 하는 것’을 표현할 때 쓴다. 나와바리(なわばり) ‘자신의 영역’을 말할 때 쓰는 단어로 일본어의 뜻도 같다. 다스(ダ-ス) ‘연필 12자루’를 이를 때 쓰는 말로 이 역시 일본어다. 단스(たんす) ‘장롱’이라는 뜻. 젊은 사람들보다도 어른들이 많이 사용한다. 다시(だし) ‘다시지루’의 준말로 우려낸 국물을 뜻한다. 한자로 쓰면 ‘지루’는 국물을 뜻하는 ‘汁(시루)’로 표기한다. 자부동(ざぶとん) 국어사전에 경상도 사투리라고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방석’을 뜻하는 일본어. 반도(バンド) ‘밴드’를 뜻하는 말로 일본어로는 밴드, 허리띠라는 뜻이다. 분빠이(ぶんぱい) ‘분배’를 뜻하는 일본어. 빠가(ばか) 일본어로는 ‘바카’라고 읽지만 우리는 좀 더 된소리로 발음한다. ‘바보’라는 뜻. 히야시(冷やし) ‘차갑게 만드는 것’을 뜻하는 말로 보통 술집에서 술이나 잔을 차갑게 해달라고 할 때 많이 사용한다. 서서히 고쳐나가야 할 우리의 숙제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일본어가 몇 개 있다. 그것들은 외국 사전에도 등재되어 자연스럽게 쓰이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일본에서 온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사용해도 되는 걸까? <오염된 국어사전>을 쓴 이윤옥 소장은 세계 공용어라는 핑계로 아무 비판 없이 사용하는 오류에 빠져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면서 우리말이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갈지도 모른다는 우려다. 실제로 지금 우리는 수많은 외래어를 마치 우리말인양 사용하며 심지어 그것이 우리말인 줄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자주 사용하는 말을 순식간에 고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서서히 고쳐나가려고 노력하는 게 우리의 숙제 아닐까. 여러 가지 문제로 한국와 일본의 사이가 악화되고 있는 와중에도 우리는 일본에서 유래된 말들을 사용하고 있다. <에스엠라운지>의 모든 기사의 사진과 텍스트는 상업적인 용도로 일부 혹은 전체를 무단 전재할 수 없습니다. 링크를 걸거나 SNS 퍼가기 버튼으로 공유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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