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여 인생을 어떻게 살것인가 텍본 - jeolm-eun-iyeo insaeng-eul eotteohge salgeos-inga tegb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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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오래된 기억은.
언제인지도 가물가물한, 뿌연 안개 속.
귀족적인 기품이 담긴 호화로운 개인실.
그곳에는 호화로운 침대도, 유럽제 의자도 있었다.
하지만 바닥에 앉는 것이 가장 좋았다.
이런 날에는 특히 더.
창으로 보이는 별이 반짝이는 검은 장막.
점점이 흩어진 반짝거림에 눈길을 빼앗긴다.
바깥 세계와 실내를 가르는 창에, 나의 모습이 비친다.
귀족의 아가씨―――
서양식 드레스로 몸을 덮은 청초한 소녀.

당신은 도대체 누구입니까?
소녀「……타이치」

세상은 아름답다.
여기에서 마을을 바라볼 때마다, 이상하게도 항상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아름다운 건 어쩔 수 없다.
상쾌한 여름의 날씨.
한 마디로 형용하기에는 아까울 정도로 아름답다.
이 고개에서의 전망은 언제나 그런 소감이 들게 한다.
고요하게 숨쉬는 나무들 사이로는, 산에 의해 바깥 세계로부터 분리된 하얀 건물들이 보였다.
마을이다.
새롭고 청결하고, 한편으로는 한적한 지방도시…의 변두리.
요컨데 깡촌.
도시의 본체는 험준한 산 건너편에 있다.
덧붙여서 건너편에는 백화점도 있고, 시간만 들인다면 도심으로도 오갈 수 있는 도로가 뻗어 있으며, 대여점은 물론이고 오락실ㆍ책방ㆍ술집ㆍ헬스센터까지 있다.
포식의 극에 달한 문명의 탐스러운 과실이 그곳에 있다.
통칭『도회』.
자, 이쪽은 어떨까.
민가가 산처럼 있다.
산도 산처럼 있다.
그리고 학교가 있다. 이건 하나뿐이다.
그 밖에 눈에 띄는 거라면, 대자연 정도뿐.
도시에서 일하고, 그 수입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소처럼 묵묵하게 일하는 인민들을 맞이하고, 배웅하고, 가끔은 낳기도 하고(어른의 조크①), 밤에는 편안하게 잠재워 주는 것이다.
요컨데 베드 타운(bed town).
같은 도시인데도 말이지.
깊은 정치적 사정이 있나 보다.
그런데 지도상에는 두개의 땅을 분단하는 이 높은 고개가 『언덕』이라고 나와 있다.
아무리 봐도 그런 깜찍한 물건은 아니다.
지도만 보고 문자 그대로 언덕이라고 착각해서 와이프와 마이 선을 데리고 하이킹이라도 온다면, 온가족이 조난당할 게 틀림없다.
도시와의 교통수단은 전철과 비포장 산길밖에 없다.
일단, 반대쪽 고개까지 올라간다면 길은 있다.
다만 굉장히 멀리 돌아가게 된다.
그 정도로 불필요하게 거리가 멀다.
시골입니다.
일전에 우리 반의 사쿠라바라는 놈이,
사쿠라바『이 NEW 바이크로 고개를 재패해 보겠다. 이게 지금의 나에게는 필요한 일이라 생각하니까』
라고 말하며 이를 빛내보이며 떠났던 적이 있다.
그리고.
사쿠라바는 삼일 동안 귀가하지 않았고, 경찰출동으로 이어졌다.
원래는 얼마 전에 산 마운틴 바이크를 가볍게 시험해 보려던 것 같다.
하지만, 그만 탄력을 받아서 옆동네 아이하라시(무지 멀다)에 5킬로를 남겨둔 지점까지 도달하고서는 고장.
차량통행이 적은 고개의 도로를 터벅터벅 나아가던 도중, 현행범으로 체포되었다.
사쿠라바는 같은 반의 키리하라만큼 부자여서, 부모도 과보호가 심하다.
서의 사쿠라바, 동의 키리하라라 불린다.
키리하라는 무사의 집안이라서, 그 아가씨도 귀족집 아가씨다운 엄격한 분위기.
가족 모두가 벌레 씹은 듯한 표정을 짓고 다니고, 말씨가 차갑고, 전체적으로 사랑이 없다.
통칭『하라키리(할복)』
사쿠라바 일가는 정반대로 대범한 일가로, 부친은 맹장염에 걸린 것도 눈치채지 못한 채 죽기 일보직전까지 여행을 했었다는 무훈의 소유자다.
그 천연의 모험혼은, 확실하게 아들에게 계승되었던 것이다.
한밤중이 되어도 귀가하지 않는 아들을 걱정해『제 아들이 유괴당했습니다!』라면서 경찰에게 달려드는 면에서, 사쿠라바 일가의 순박한 천성이 엿보여서 재미있다.
사쿠라바는 관계자에게 무지하게 혼나고, 자전거는 압수당했다.
그리고 학교 내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교내 신문 일면의 자리를 오랫동안 독점하기도 했다.
특히 인터뷰에서 녀석이 말한 내용이 마음에 와닿았다.
사쿠라바『긴급속보! 깊은 숲속의 오지에서 수수께끼의 인공 건축물을 보았다!』
사쿠라바『완전답파 12시간, 절경의 오지에 숨겨진 금단의 오버 테크놀로지!!』
사쿠라바『긴 여정의 끝, 이곳에서 우리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충격적인 사실을 보게 된다!』
말 그대로 생지랄.
풀어서 말하자면 녀석은 귀가 도중, 길을 벗어나 산에 들어갔던 것이다.
아마 지름길로 갈 생각이었겠지.
그리고 우연히, 어떤 시설을 발견하고 흥분했다.
인터뷰는 이후에도 굉장하게 전개되었다.
사쿠라바『비밀기지가』
사쿠라바『충격의』
사쿠라바『무장한 군인들에 의해』
사쿠라바『인류의 상실을 뒤엎는다』
이 인터뷰에서 사용된 단어 베스트 5.
제1위「수수께끼」22회
제2위「충격」19회
제3위「발견」17회
제4위「금단」6회
제5위「전율」4회
교내 신문은 사쿠라바라는 먹음직스러운 사냥감을 철저하게 울궈먹었다.
사쿠라바는 보도의 잔인함을 깨달았다.
그 이후, 스트레스로 일주일 정도 설사를 했다 (기사가 되었다).
8일째 아침에 상쾌한 얼굴로 등교를 했다 (취재당했다).
머리를 금색으로 물들이고서 (특집기사ㆍ이론 반론 오브젝션의 주제가 되었다).
이 후로도, 녀석은 계속 금발 라이프.
아마도, 새로운 내가 되었다는 착각을 자신에게 주입시키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극복했을 것이다.
……그 일 덕분에 나와 녀석은 금은 콤비라고 불려지게 되었지만.
이 이야기는 이쯤 해 두고.
물론 사쿠라바가 말하는 외우주에서 방문한 초 지적 생명체가 극비리에 건축한 시설이란 건 원자력 발전소지만, 이것은 시민들에게 많은 부를 가져왔다.
똥값이던 땅이 순식간에 돈더미로 변했다.
근대화가 진행되고, 문명이 개화했다.
부자들이 생겨나고, 빌딩이 세워지고, 사람이 늘어났다.
땅값은 싸고, 세금도 싸다.
전기세는 공짜.
그래서 거리에는 쓸데없는 조명들이 무수히 있다.
그렇다고 해서, 벤치에 전구를 달 필요는 없었을 텐데.
시에서는 시의 테마를 『치유』라고 정했다.
원자력 발전소 같은 게 건설된 벽지에서 흔히 내거는 테마다.
로코코 양식의 시청 건물은 탐미적인 건물로, 외관부터 내장에 이르기까기 『너를 치유해 주마』라는 엄숙한 오오라가 흘러넘쳐서 방문자를 위축시키고 있다.
조화롭지 못한 대지.
그래서……기분이 좋은 걸지도 모른다.
망가져버린 세계에는, 묘한 친근감이 느껴지니까.
타이치「……」
타이치「아얏」
경쾌한 소리가 났다.
머리가 팍 기운다.
목덜미 부근이 땡기고, 굉장히 아프다.
타이치「……뭐야」
뒤돌아 보자, 그곳에 소녀가 한 명.
타이치「뭐야, 여제(女帝)님인가」
소녀「……」
타이치「여왕 폐하께 문안 드리옵니다」
한 손을 들어 인사한다.
소녀「……」
재치있는 물음에는, 위트가 넘치는 대답이 있어야 마땅하다.
소녀『크와~악! 누가 여제야~, 바보 같은 말 하지 말랬잖아, 잖아잖아!!』
이런 식으로.
하지만 기대했던 대답은 없다.
게다가 맹렬한 노기마저 느껴졌다.
타이치「왜 그래, 키리하라. 반응이 션찮은데」
타이치「혹시 그날? 생리야?」
소녀「…………」
공기가 점점 무거워진다.
하지만 멈출 수는 없다.
타이치「월경」
소녀「쿠로스 타이치……」
분노의 파동이 몰아친다.
타이치「팥밥」
토오코……키리하라 밑의 이름, 마음 속으론 이름으로 부름……의 이마 주위가 찌푸려진다.
소녀「겟!」
원래는『이게!』라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혀가 짧은 탓이겠지.
그녀의 특징적인 말투였다
차가운 부잣집 딸래미로만 보이는 토오코의 말투에 미숙함이 남아있는 건, 굉장히 웃겼다.
그리고.

타이치「……크헉!?」
깔끔했다.
클린히트였다.
피할 틈도 없었다.
올라오는 주먹에 맞아, 몸이 뒤로 젖혀지며 턱 끝이 하늘을 향한다
키 리 하 라 류 오 의 적 극 직 격
게임 같은 가공 이펙트가 뇌리를 스쳐간다.
토오코「……철수하는 거 도와」
낮은 목소리.
계속 깝치면 다음엔 하늘이 아니라 땅바닥에 키스하게 해주지.
은근히 그렇게 말씀하시고 계셨다.
타이치「네, 돕겠습니다 (딱딱)」
키리하라는 말없이 내 귀를 당겨 캠프장으로 향한다.
타이치「앗, 앗, 아파요―ㅅ」
토오코「때린 내 손도 아파」
타이치「그것은 마음을 독하게 먹고 아이를 혼낸 어머니만이 말할 수 있는 대사」
토오코「남자 손이 적으니까 빠릿하게 좀 일해 봐」
타이치「일 했잖아, 합숙중에 많이……」
토오코「마지막까지 풀어지면 안 돼」
타이치「……조금 쉬는 것도 안되나」
내가 전사냐.
타이치「키리하라」
토오코「……왜?」
타이치「합숙, 잘 왔지?」
토오코「…………」
토오코「(흥)」
무시당했다.
대화가 전혀 이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래보여도 오늘은 꽤 오래 이야기하는 편이다.
오늘같이 농담을 주고받는 게 오히려 오랜만이다.
토오코「가벼운 머리」
타이치「네?」
토오코「때릴 때, 텅텅 빈 소리가 났어」
토오코「슬슬 뇌세포를 분열시키지 않으면 어른이 되어서 힘들 텐데?」
타이치「건방진데. 변호사는 데려왔어? 아앙?」
토오코「진짜……지친다……너……」
크게 한숨을 쉬자, 나까지 풀이 죽는다.
조용히 연행당한다.
시선이 힐끔, 비싸 보이는 원피스를 돌돌 감고있는 엉덩이로 향한다.
타이치「탐스러운 복숭아」
안 들리게 중얼거인다.
토오코「만지면 가라앉힌다」
타이치「……」
어, 어디에? (덜덜)
토오코「모처럼의 여름방학을 일주일이나 쓸데없이 보낸 기분이야」
타이치「의역하자면, 즐거운 합숙도 끝나는구나―, 정도일까요?」
토오코「……뇌가 갈라져 있는 거 아냐?」
갈라져 있습니다.
타이치「나는 재밌었는데 말야」
토오코「흥」
타이치「……재밌었던 주제에 (중얼)」
토오코「뭐ㆍ라ㆍ고ㆍ했어?」
타이치「아아뇨 아무 말도, Sir―」
일주일간의 합숙.
몇 번씩이나, 그녀의 웃는 얼굴을 보았다.
매사가 귀찮다는 표정이 디폴트 설정인 토오코다.
틀림없이 재밌었을 것이다.
왜냐면 주루룩 늘어놓은 텐트에서 지냈던.
합숙은 마치 다른 세계 같았으니까.
타이치「아야야야야야얏!?」
귀를 당기는 힘이 세진다.
숲길을 나오자, 광장이 나타난다.
빛이 가득하다.
반짝이는 햇빛.
토오코「정리, 벌써 대강 끝났네」
소녀「이봐요, 거기 놀고 있는 두 사람―」
목소리가 머엉―하게 울려퍼졌다.
독특한 목소리.
우리들의 부장이다.
토오코「전 아니에요 전!」
타이치「아야야야얏, 달리지 마 위험! 특히 내 귀가 위험……앗, 앗, 그렇게 세게 하면 찢어져, 찢어져찢어져찢어져찢어져!! 소중한 곳이 찢어져버려――――――!!」
부장「왓, 뭔가 야한 일을 하고 있어요!?」
부장「정학, 정학이에요~!!」
초조한 듯 떨리는 부장의 목소리.
타이치「와하하」
토오코「이, 이 자식……」
타이치「아얏」
간신히 해방된 내 사랑스런 귀와, 얻어맞은 머리를 동시에 어루만진다.
미소.
타이치「이히히, 아파라」
타이치「자―, 일하자 일하자♪」
토오코「이 놈은……」
가볍게 달린다.
토오코「정말로……」
토오코의 한숨이 쫓아온다.
부장의 등 뒤에는, 모두가 있었다.
둘이서, 모두가 있는 곳으로.
타이치「어―――이!!」
이유없이 소리친다.
광장에서 기재의 정리를 하고 있던 5개의 얼굴이, 일제히 이쪽을 향했다.
시선이 모이자 갑자기 뻘짓을 하고 싶어진다.
셔츠를 벗고 알몸이 되었다.
토오코「꺄앗!?」
등 뒤에서, 아가씨가 놀란 듯이 소리쳤다.
무시하고 알몸으로 달린다.
유두가 바람과 하나가 된다.
다섯 명의 시선을 느낀다. 점점 기분이 고조된다.
타이치「날 봐 줘―――――――――――――――――――――!!」
다섯 개의 얼굴이,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원래대로 돌아간다.
절묘한 호흡의 극상 방치 플레이.
타이치「아핫」
바보같지만, 유쾌해서.
단지 지금이 즐거워서.
합숙이 끝난다.
새학기가 시작된다.
또다시 일상이 찾아온다.
당연한 내일이 찾아온다―――

CROSS†CHANNEL

오늘부터 새학기.
여자의 기척이라곤 없는 당 집에서의 아침은 기상→통학과정에서의 모에요소는 전무하므로, 일일히 귀찮게 생각할 것 없이 바로 밖으로 나왔다.
1개월 반만의 통학.
좋은 날씨였다.
아직 9월초인데도 너무 덥지도 않다.
앞머리가 살짝 눈꺼풀에 닿는다.
그것만이 조금 불쾌.
타이치「잘라버릴걸―……」
우울하다.
색깔 탓도 있지만, 난 별로 내 머리는 좋아하지 않는다.
타이치「하―」
앞머리를 만지면서 통학로로 나왔다.
터벅터벅 걷는다.
이번에 대충 잘라 둘까.
음, 그렇게 하자.
소녀「잇힝」
타이치「유후」
자전거에 올라탄 소녀가, 매우 자연스러운 타이밍으로 내 옆에 붙는다.
비틀비틀, 그래도 능숙하게 밸런스를 유지하며 병주.
내 걸음거리 정도의 속도로 잘도 안 넘어지네.
자전거는 척 보기에도 비싸보이는 타입.
쾌활해 보이는 그녀에게는 잘 어울렸다.
소녀「읏샤」
가볍게 윌리를 한다.
아, 팬티 보였다.
하얗다. 무지 하얗다.
순백이다.
역시 순백은 좋다. 굉장히 좋다.
좀 더 보고 싶어라.
아, 이제 안 보이네.
까비.
소녀「있잖아 타잇짱, 뒷산에 가본 적 있어?」
한 장의 천조각으로 남심을 보기좋게 간지럽힌 소녀는, 목을 빼꼼히 이쪽으로 돌렸다.
타이치「있어. 얼마 전까지 합숙했어」
소녀「여름방학 중에?」
타이치「응」
소녀「……흐―음, 그런가」
타이치「그런가라니, 뭐가?」
소녀「아니, 그 부근에는 말야, 신령님이 있대」
두 사람은 잠시 마주보았다.
그리고 갑자기 동시에.
타이치「와하하하하하」
소녀「아하하하하하」
타이치「와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소녀「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소녀「무지하게 신통력이 강하대」
타이치「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게 하는 신통력?」
소녀「아니, 웃고 싶어지는 건 당연하시겠죠. 나도 사람한테 진지한 표정으로 그런 말을 들으면 웃을 거야」
타이치「그래서 나를 웃기기 위해 진지했던 거군」
소녀「그렇긴 한데……그래도 조금은 진지한 이야기야, 이거」
타이치「신령님이?」
소녀「응」
타이치「신령님은 영어로 말하면 갓이지?」
두 사람은 잠시 서로 마주보았다.
타이치「와하하하하하」
소녀「아하하하하하」
타이치「와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소녀「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소녀「……말 끊지 마 (눈물)」
타이치「알았어알았어, 들어 줄게. 뭐야, 신령님이 뭐라도 했어? 그건 도대체 무슨 신인데?」
소녀「아―, 그건 나나카씨도 몰라요」
타이치「핫……!?」
그 순간, 나는 삘이 왔다.
타이치「이거 대발견. 한자로 쓰는 것보다 히라가나로『나나카(ななか)』라고 쓰는 게 모에하지 않아!?」
나나카「알고 있어」
뒷북이었다.
갑작스런 화제변경에 혼란해하는 타입은 아닌 것 같다.
나나카「거기, 사당 있잖아. 사당」
타이치「사당(ホコラ)은 카타카나로 쓰면 감염성이 높은 병 이름 같지」
나나카「거기, 사당 있잖아. 사당」
두 번이나 넘어가진 않을 것 같다.
타이치「산길 중턱에 있는?」
나나카「응―응―」
나나카「홋!」
자전거가 다시 윌리를 하고서, 뒷바퀴만으로 달려갔다.
뜬금없긴 하지만, 제법 대단한 기술이다.
타이치「나이셔스」
※나이스 + 딜리셔스
나나카「그치―」
뽐내는 듯한 웃는 얼굴.
조금 반했다.
나나카「사당의 신령님은 무지하게 나이셔스해서 말야」
나나카「핵전쟁이 일어나도 지켜줄 정도의 신통력이 있대」
타이치「개구라―」
타이치「어떠한 항암제라도 진심으로 덤벼드는 암에게는 무력한 법이야」
나나카「아니, 논점이 어긋났는데」
타이치「21세기의 신은 좀 더 간편해지고 정교해져야 돼」
타이치「여자친구가 자기보다 근사한 남자에게 죽자사자 매달려서 육체관계가 발생했을 때에, 휴대폰 문자로 그것을 알려주는 신이라던가」
나나카「그런 행위가 긍정될 정도로 권리의식이 조각난 사회는 이미 끝장난 거지」
타이치「일본은 냉정하게 미쳐가고 있어」
나나카「히얏」
이번에는 앞바퀴로 선다.
이건 놀랍다.
타이치「우와, 그 자전거 대단한데!」
나나카「자전거 쪽이냐……」
타이치「태워줘, 태워줘!」
나나카「안돼. 허접 사절」
타이치「너무해」
나나카「전에도 아빠가 맘대로 타버려서 말야―」
나나카「게다가 넘어져서 다 뽀개먹었어」
나나카「아― 졸라 싸웠었지―」
나나카「왜 다쳤냐 하니까 아무 말도 못 하더라」
타이치「……아빠도 힘들겠다」
나나카「엄마한테도 일렀어」
타이치「잔인해」
나나카「아빠 용돈 3개월 동안 삭감」
타이치「국민적 가족상을 떠올리게 하는 심플한 감정의 흐름이군」
나나카「마침 그 때, 아빠는 회사 동료의 컴퓨터에 인터넷으로 장난질을 하기 시작해서……비속어 폴더를 자동 생성하는 프로그램으로 상대의 공개 폴더를 비속어 투성이로 만들어버렸어」
완전 꼬맹이다…….
나나카「그런데 어쩌다 착각을 해서, 상사의 컴퓨터가 비속어 투성이로!」
타이치「와하하하하하!」
나나카「아하하하하하!」
이 녀석 부모 바보다.
나나카「그래서 직장에서 감봉 3개월을 받은 거야. 이젠 엄마도 대폭소!」
타이치「……그런 가족뿐이라면 세계도 평화로울 텐데」
나나카「뭐, 이젠 없지만」
타이치「엥?」
끼익
또 자전거로 윌리를 했다.
아, 팬티 보였다.
재관람!
나나카「이욥」
또 보인다, 앗, 아아앗!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앗!!
순백순백순백순백!!
끼였다끼였다끼였다!!
나도 모르게 흘러나오는 핑크빛 숨결!!!
타이치「우읏」
무릎꿇었다.
나나카「왜 그래?」
타이치「……잠시 지능이 많이 떨어져서 위험했어, 방금……」
나나카「아―, 네 지능은 불완전한 거야?」
타이치「자전거 안장에 닿을 때 기분 좋아?」
나나카「네?」
타이치「아무것도 아냐……잊어 줘」
간신히 이성이 돌아았다.
난 역시 발작적인 에로이벤트엔 약하다.
일어난다.
타이치「자, 학교 가자」
나나카「어째서 몸을 앞으로 굽혀?」
타이치「……그런 유치원생과 같은 순진무구한 어조로 물어보는 거냐」
나나카「?」
타이치「하반신에 지극히 관련된 공간적인 문제에 의해서, 라고밖에 코멘트할 수 없어」
나나카「허리가 아프구나」
타이치「그러니까 청소년은……」
나나카「청소년은 뭐?」
타이치「허리가 아픈 거야」
나나카「흐―음」
좋아, 속였다.
나나카「조심해―, 자손번영이 위험하다구」
타이치「자손번식이야―」
나나카「기막힐 정도로 욕망에 충실한 애구나」
타이치「……갑자기 허를 찔러져서 본심이 나온 거야」
나도 지금 건 반성하고 싶었다.
타이치「어떤 남자라도 귀여운 여자를 보면, 뭉게뭉게 욕망이 목을 뚫고 나와서 레드 스네이크가 되는 거예요」
타이치「레드 스네이크라고요, 레드」
타이치「아, 그래도 평상시엔 블루 스네이크라 안전해요」
나나카「그 중간이 옐로 스네이크?」
타이치「응, 이른바 반발……」
말하고 나서 갑자기 불안해졌다.
조심조심 뒤돌아 보고.
타이치「……어이없지?」
나나카는 생긋 웃는다.
나나카「아니, 기뻐」
타이치「앙?」
나나카「자자, 걷자걷자」
나나카「해면체가 가라앉을 때까지 뒤에서 달려줄게」
타이치「벌써 눈치채고 있었나 이 녀석……」
자전거 사건 때의 사쿠라바처럼 깊은 상처를 입었다.
나나카「오― 학교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나나카「하얗네―, 새 거네―, 돈 좀 썼겠네―」
타이치「전학올래?」
타이치「지금이라면 무시험으로 당일 편입 가능」
나나카「교복은?」
타이치「제, 제가 준비하게게게게게」
나나카「……가슴 주변만 둥글게 잘라낸 교복이겠지?」
타이치「히잇, 그런 귀축스러운 일은 안 해요!?」
타이치「……그냥 스커트 사이즈가 그, 단이 보통보다 3센티 짧은 거밖에 없지만……그, 그거라도 괜찮다면면면면……」
나나카「근성없는 성희롱이네……」
나나카「자 그럼, 난 슬슬 가봐야겠네」
빙글 자전거가 휘전한다. 그 자리에서.
그녀의 운동신경은 대단했다.
나나카「소년, 뒷산의 사당 이야기, 그거 진짜야」
타이치「……에?」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다.
나나카「아무리 노력해도 막힐 때가 있다면……가 봐」
타이치「으, 응……」
갑자기 표정이 흐려진다.
나나카「이런 말을 해도, 뭐가 변하는 건 아니지만 말야」
타이치「나나카……」
나나카「어이, 풀 죽지 말라구, 녀석도 참」
윌리로 그 자리에서 빙글.
한 바퀴를 돌자, 이번엔 웃는 얼굴
나나카「그럼 안녕―♪」
꼬았던 손 끝을 화려하게 풀고는.
그녀는 발 끝을 페달에 걸쳤다.
타이치「아, 하나 질문」
떠나가려는 등에게.
나나카「왜애―?」
타이치「어째서 초대면인데, 내 이름을 알고 있었어?」
나나카「음. 그 질문에 대답하려면……」
하얀 손가락이 나를 휙 가리킨다.
아니, 내 등 뒤다.
뒤돌아 보고, 시야가 학교를 확인하고 나서 수초.
대답이 없다.
시선을 나나카에게 돌린다.
그녀는 사라졌다.
자전거와 함께.
갑자기 증발해버린 건 아닐 텐데.
타이치「…………오잉?」
매미도 울지 않는, 조용한 신학기였다.

타이치「아침인가……」
몸을 일으킨다.
변함없는 내 방이다.
시끄럽게 울고 있는 시계를 멈춘다.
타이치「후암……」
여름방학이 끝난 9월 초순.
실내에는 여름의 열기가 후끈하게 가득 차 있었다.
느릿느릿 옷을 갈아입고, 느릿느릿 가방을 손에 든다.
식탁 위에, 랩이 씌워진 샌드위치가 놓여져 있다.
달걀과 야채와 감자 샌드위치.
고맙게 먹기로 한다.
타이치「음냐」
역시 맛있다.
생활 능력 전무인 나에게 이 음식물은 확실히 복음.
통학 도중에 편의점을 습격하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타이치「항상 맛있는 밥, 잘 먹습니다」
동쪽으로 손을 모으고 머리를 숙인다.
자, 학교다.
오늘도 더워질 것 같았다.
카미사카시는 그 이름대로 고개길이 많다.
학교에 겨우 도착할 때까지, 몇 번 경사면을 넘어갈 필요가 있다.
학교에 가기 위해서 오르락내리락오르락내리락.
그것은 마치 인생의 파란만장함과 같아서, 통행자의 마음과 다리를 무기력하게 하는 것이다.
타이치「힘들어」
익숙해져도 힘들다.
도보는 차라리 낫다.
자전거로 언덕을 넘는 건, 더 힘들다.
자전거는 원래 평지용.
도보보다 더욱 힘든 오르막과, 한순간으로 끝나는 행복한 내리막.
고난의 시간만이 끝없이 계속되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한다.
언덕 꼭대기에서, 상점가와 연걸되는 교차점에 합류한다.
이 끝에는 주택단지가 있고, FLOWERS의 한 명, 야마노베 미키가 살고 있다.
미키는 1학년 후배.
세계적으로 유명한 판타지 작품에 나오는 3인조 속의 마법사 소녀 같은 머리모양을 하고 있다.
얼굴도 뭐, 좀 비슷하고.
마법은 못 쓰지만, 언어의 마법사라고 불린다.
말하기 시작하면 멈추지 않고, 말하려고 하는 걸 멈추는 것도 어렵다.
꼬맹이 주제에 어휘도 풍부해서, 얘기하다 보면 질리지 않는다.
미키는 또 한 명의 1학년 부원ㆍ사쿠라 키리와 자주 붙어다닌다.
롱 헤어의 미키와, 중성적인 모습의 숏 헤어의 키리.
두 사람이 모이면 꽃밭에 온 듯이 그 자리가 빛이 난다.
그래서 FLOWERS (꽃님들).
부의 마스코트적인 존재다.
미키는 미니스커트를 무지 좋아한다. 항상 입고 있다.
게다가 솔직하고 귀엽다. 붙임성도 좋다.
나도 미니스커트를 무지 좋아한다는 걸 놔두고서도, 마음이 잘 맞을 수밖에 없다.
졸업할 때, 교복을 받기로 약속도 해 놨다.
대신에 내 두번째 단추를 주려는 제안은 정중하게 거절당했지만.
타이치「잇힝―」
상점가의 끝자락에 있는 가게에 들어간다
『타자키 상점』
타이치「여보세―요」
안에 말을 걸어본다.
대답은 없다.
타이치「……없나」
타자키 상점은 요 몇일 전부터 계속 부재중이다.
이 가게 주인, 타자키 고이치로씨(47세ㆍ독신)는 자타가 인정하는 철도 매니아다.
자주 가게를 훌쩍 비우고, 머나먼 땅의 지방선 사진을 찍으러 간다.
그리고, 그 사이에도 가게는 열어놓고 있다.
즉 무인상점.
애초에 상점은 심심해서 하는 것 같다.
30대 시절에는 우는 아이가 뚝 그칠 정도로 흉악한 얼굴이었던 타자키씨였지만, 양친의 사후 시간이 지나자, 주름이 잡힌 복스러운 얼굴로 변해갔다.
전 폭주족이었던 난폭한 철도 오타쿠를 선인으로 바꿀 수 있었던 건, 뭐 유산밖에 없겠지.
어쨌든 지금은 복스러운 얼굴을 가진 타자키씨의 가게는, 이웃 주민에 대해서는 제한없이 외상을 주는 보기드문 현지 밀착형 점포다.
가지고 다니는 메모장에 펜을 휘갈긴다.
『9/7, 녹차왕, 130엔……쿠로스 타이치』
놓여져 있는 테이프로 벽에 딱 붙인다.
그곳을 보니, 메모가 몇장 더 붙여져 있다.
타이치「아, 미키 녀석, 벌써 가버렸나」
『9/3, 야채쥬스 활력 GOGO, 110엔……야마노베 미키』
『9/3, 매그넘 리찌, 110엔……사쿠라바 히로시』『톡 쏘네요』
『9/4, 패트병 천연수, 140엔……미야스미 미사토』
『9/5, 야채쥬스 활력 GOGO, 110엔……야먀노베 미키』
『9/5, 킹 도도리아, 110엔……사쿠라바 히로시』『별로 맛 없군요』
『9/6, 야채쥬스 활력 GOGO, 110엔……야마노베 미키』
『9/6, 후추경부, 110엔……사쿠라 키리』
『9/7, 야채쥬스 활력 GOGO, 110엔……야먀노베 미키』
미키, 외상 너무 많다.
정산할 때 힘들겠네.
사쿠라바, 감상 필요없음.
타이치「응?」
그 바보 사쿠라바 것 뒤에 또 한 장의 종이가 있다.
숨겨져 있어?
흥미가 동해서 넘겨보았다.
『9/6, 패트병 천연수X3, 420엔……키리하라』
어머어머.
아가씨, 욕심도 많으시지, 3개씩이나!
부자 주제에 쫀―쫀하게, 쪽―팔리게―.
맨 앞에다 붙여 놓는다.
찰싹
타이치「이걸로 됐고, 자」
가게 안쪽으로 가서, 녹차병을 하나 꺼낸다.
타이치「그럼, 외상으로」
가게를 나온다.
녹차를 목에 흘려넣으면서, 학교로 향했다.

타이치「어머나」
교실에는 선객이 있었다.
창가의 자리.
팔꿈치를 책상에 대고 앉아있는 소녀가, 힐끔 이쪽을 바라본다.
토오코「……」
말없이 시선을 밖으로 돌렸다.
타이치「빠른 등교」
토오코「……」
타이치「게다가 또 사복등교」
타이치「그렇게 더워보이는 옷으로 잘도 다니네」
토오코「……」
무시.
타이치「예이예이」
어깨를 으쓱이고, 토오코의 바로 옆……내 자리에 앉는다.
마치 고슴도치같다.
최근에는, 바늘에 윤기가 나고 있었다.
누구를 상대할 때도 그러니, 별로 상처입을 만한 일은 아니다.
그래도 나를 향한 바늘은……약간의 독을 머금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기분 탓일지도 모르겠지만.
자의식 과잉이란 것일지도.
하지만.
그렇지만.
그렇게 생각한 것만으로.
발작은 일어났다.
타이치「이런. 안되지안되지」
다행히 발작은 작은 거라, 이성이 날아갈 위험은 없었다.
역류한 위액을 꿀꺽 삼키며 느껴지는 오한과 바꿔서, 그 녀석의 머리를 나락으로 밀어넣는다.
괴이한 혓바닥이 지표를 갈랐다.
타이치「있잖아」
토오코「……왜」
귀찮게 좀 하지 말라는 듯한 상태의 토오코.
타이치「엉덩이 부분 찢어져서 팬티 보이고 있어」
토오코「…………!! …………!!」
당황하며 일어나서, 양손으로 엉덩이를 가린다.
타이치「뻥이지롱」
짜―악!!
타이치「커헉」
불의의 싸대기.
슬립 다운.
보기좋게 넘어진다.
타이치「아야야얏」
토오코는 다시 방금 전과 변함없는 자세로 앉았다.
타이치「농담인데」
토오코「……」
상대를 해 줄 생각은 없는 것 같다.
내성적이고 배타적인.
그래도 의외로, 마음의 틈은 많다.
가방을 책상에 두고, 토오코 외에는 아무도 없는 교실을 둘러본다.
아직 수업까진 시간이 있다.
어떻게 할까.


ㆍ屋上に行く (옥상에 간다)


이 시간이라면, 아침 훈련을 하고 있을 것이다.
문화계열 부 주제에 훈련이라 하기도 좀 그렇지만.
타이치「잠깐 옥상에 갔다 올게」
타이치「경우에 따라서는 땡땡이. 담임이 오면, 대출 부탁해」
토오코는 코웃음쳤다.
나를 노골적으로 깔보려고 생각한 걸까.
이런 면이 허술하다고 생각한다.
무시도 제대로 해야 효과가 있는데.
상대의 가치를 줄이기 위해, 이빨도 드러내지 않고 공기처럼 딴청피우는 표정을 계속 유지해야 되는 것이다.
마음가짐에 공격성이 부족하다. 25점.
이건 바로, 그녀가 나를 어떻게 여기는지를 알려주는 것이다.
토오코「……대출? 무슨 잠꼬대를」
타이치「성격이 낙천적일 뿐이야」
평소대로 받아쳐 주고, 복도로 향한다.
타이치「너보다는」
토오코「말은 잘 하네……」
하지만 토오코는, 그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허리를 살짝 들고 이쪽을 노려보고 있지만, 시선도 공허.
타이치「기분 내키면 참가해 봐, 부활동」
토오코「…………」
부모의 원수를 보는 눈초리.
더 이상은 불화밖에 낳지 않는다.
조용히 교실에 나오는……건 접어두고,
타이치「진짜로 사랑하고 있으니까」
교과서(가지고 다닌다)가 날아왔다.
타이치「읏샤」
문을 닫아서 방패로 삼는다.
와하하……인간관계란 참 어려워.

문을 여는데 조금 망설임이 있었다.
이제와서 뭘 꺼리긴, 하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인간은 기분에 따라 움직이는 생물이고, 오늘 아침은 그런 기분이었으니까 괜찮겠지.
나에게 하는 변명은 이걸로 충분하다.
하지만 선배는 어떻게 생각할까.
조금 신경쓰였다.
손잡이를 비틀고, 철문을 밀어냈다.
바람이 불었다.
딱 발을 내민 순간에.
하지만 이상하게도,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눈 앞에 큼지막한 급수탑과 그 옆에 계단이 있고, 그 토대를 공유해서 거대한 안테나가 세워져 있다.
타이치「……헤에」
아직 미완성인 안테나.
부족한 부품과 지식.
그것들을 활발한 의욕만으로 채워가면서, 조금씩 안테나의 모양을 갖춰나왔다.
단 한 명의 소녀가.
그 단 한 명의 소녀는.
지금, 바람에 둘러싸여 안테나와 함께 서 있었다.
부러울 정도로 눈부셨다.
미야스미 미사토.
미사토 선배다.
타이치「선배―!」
선배를 부르자, 불어오는 바람으로 엉망진창이 된 선배의 검은 머리가 크게 살랑거린다.
이쪽을 본다.
강한 바람이, 윤기나는 장발을 세차게 흔든다.
미사토 선배는 안간힘을 써서 머리카락의 흐름을 손으로 막아가며, 얼굴을 보였다.
미사토「……」
이미 강렬해진 태양의 빛 아래에서, 멍한 표정이 일그러진다.
여름날의 아지랑이처럼.
그러기에 그것은, 바로 녹아버린다.
미사토「…………?」
포동포동한 입술이, 말을 만들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귓전에 휘잉하고 휘몰아치는 돌풍이 그 소리를 지워버렸다.
입술의 움직임으로, 무슨 말을 하는 건지는 알았다.
생긋 웃으며 대답했다.
타이치「와버렸어요―!」
미사토「페케군……」
타이치「안녕하세요―!」
양손을 치켜들고 외친다.
그러자, 선배의 눈초리가 내려간다.
저속재생을 한 필름을 보는 듯이, 그 표정이 서서히 온화한 표정으로 변해간다.
미사토「안녕하세요―!」
대답해 왔다.
평소대로의 그녀.
미사토「왜 그러세요―, 페케군―?」
타이치「팬티 보여요―!」
말해 본다.
어차피 제대로 들리지도 않으니.
팬티는 실제로 보이고 있어서, 좀 더 다가가면 이성이 위험할 것 같다.
강풍을 느꼈을 때부터 아이스께끼의 가능성을 충분히 고려한 덕에, 미리 마음의 준비를 끝내 두었기 때문에,
저 무방비해 빠진 육감적인 3학년 여자의 죄많은 허벅지와 다리 사이를 감싸는 남심을 독수리 채어가듯 꼼짝못하게 하는 역삼각형 모양의 정열을 목격해도, 간신히 평상심을 유지할 수 있었다. ※남심을 독수리 채어가듯 꼼짝못하게 하는 역삼각형 모양의 정열……타이치어(語). 여성용 속옷을 의미.
타이치의 커버 가능 연령은 상하로 폭넓지만, 역시 젊은 여성의 팬티가 가장 바람직하다. 일반적으로 순백을 최상으로 하고, 선정적인 색을 최하로 두지만, 상황에 따라 기준은 바뀐다.
그렇지 않으면, 저 육욕의 죄악에 빠지게 유혹하는 3학년 여자의 엉덩이 부근을 보고 나와 같은 짐승이 욕정을 참을 수 있을 리가 없으니.
미사토「뭐라구요―?」
타이치「팬티 팔아주세요―!!」
미사토「빵 만들어 주세요?」
타이치「!!??」
80%는 들리고 있다! (멕시칸 어조)
타이치「저저저저저점심밥, 같이 먹어요―!!」
미사토「오―, 좋아요―!」
빙글빙글 손을 휘젓는 선배.
미사토「그래도 빵은 못 구워요―, 저―」
타이치「그, 그거 유감!」
미사토「미안해요―!」
어떻게든 넘어갔다.
위험했다…….
내 더티한 부분은 선배에겐 비밀이다.
이 사람에게 경멸당하는 건, 조금 괴롭다.
혼자였던 나를……방송부로 이끌어 준 사람이니까.
미사토「그게 볼일이에요―?」
타이치「마침내 부활동 하러 왔어요―!」
미사토「다, 다음에?」
선배가 움찔한다.
타이치「언어의 오묘함이로군요」
미사토「하아……잠깐만 기다려주세요―」
미사토「자, 기다리셨습니다」
양손을 앞에 두고 생긋 미소짓는다.
손의 위치가, 딱 오바타를 가리고 있는 듯이 보인다.
※오바타……타이치어. 가랑이 사이라는 뜻. 이유없이 의인화되어 있다.
뇌 속의 포토○이 기동된다.
0.1초만에 기동. 뇌 속이니까.
우선 패스로 선배의 얼굴 부분을 배경에서 잘라낸다.
아이돌 사진집에서, 비슷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누드사진을 찾는다.
완벽하게 이 포즈를 취하고 있는 사진 한 장이 있었다.
꽤 오래된, 스모선수와 사귀고 갑자기 홀쭉 마르고 가슴이 튀어나오고 하는 등으로 유명해진 아이돌의 누드 사진집이다.
어쨌든, 선배의 얼굴 레이어와 그 사진을 합성한다.
여러가지를 만지작거리며, 접합부의 여분 부분을 애매하게 보이도록 지워간다.
가슴 부분이 실제와는 다르게 느껴져서, 좀 더 포근한 미유를 찾아서 합성한다.
하는 김에 피부가 노출되어 있는 팔과 다리 부분도 선배의 것을 사용한다.
전신을 보면서, 빛의 세기를 조절하고 그림자를 덧그린다.
피부색의 차이는, 얇은 황색의 신규 레이어를 겹쳐서 묘화 모드를 소프트 라인으로 하는 걸로 통일했다.
배경이 없는 건 쓸쓸하니까, 선배의 레이어 밑에 있는 엄숙한 성당의 그림을 썼다.
완벽하다.
10년 쓸 수 있는 딸감, 여기서 탄생.
나는 그것을 곧바로 뇌 속 HDD의『수학숙제』폴더에 있는『S급』폴더에 저장했다.
S→A→B→C→D로 구분되어 있다.
S가 최상. D가 최하.
현실의 컴퓨터에서도 그렇게 구분하고 있다.
그리고 내 유언장 문서에는, 맨 처음에 이렇게 써 있다.
『아무 생각도 말고 HDD를 버려주세요(열람ㆍ분배 절대 금지, 했다간 모든 영력을 다해서 저주))』
수학숙제 폴더만큼은, 결코 사람들에게 들켜서는 안 된다.
왜냐면 수학숙제 폴더야말로, 내 야생본능 그 자체니까.
그래.
수학숙제 폴더는 숨겨진 금단의 성역~SANCTUARY~.
미사토「수학숙제 폴더가 어떻게 됐어요?」
타이치「으으윽!!??」
무의식식중에 말해버렸다―!!
타이치「레이디, 저에게 무언가 부탁하실 건 없으십니까?」
우아하게 손을 잡는다.
선배는 태연했다.
미사토「그래도, 벌써 수업 시간인데요?」
목을 갸우뚱거리는 행위가 실로 범죄적이다.
타이치「수업 따윈」
우아하게 고개를 젓고, 웃으며 말한다.
타이치「지금 당신을 돕는 것 이외에, 그 무엇이 필요하단 말씀이십니까」
미사토「에……?」
당황하는 선배도 멋지다.
타이치「부디 자손번식을 위한 노고를 소생에게 일임하여 주시지 않겠습니까?」
미사토「엣?」
타이치「아와왓」
당황하며 입을 누른다.
생각이 입으로 흘러나오는 버릇, 어떻게 안 될까나.
타이치「안테나, 꽤 모양이 갖춰졌네요」
미사토「네. 노력했어요」
타이치「벌써 완성인가요?」
미사토「……그게, 아직 전혀 안 됐어요」
업자가 세워 줄 예정이었던 안테나.
반입만 된 채로 버려졌다.
미사토「전문가가 아니라서, 느릿느릿 설치하고 있어요」
미사토「본체는 어떻게든 됐지만, 배선이나 기타 조정 같은 건 손도 안 댔고」
타이치「어라라」
유감스럽지만, 나에게도 그런 지식은 없다.
타이치「……도울 수 있는 게 없어 보이네요」
미사토「마음만 받을게요」
힐끔 바라본 선배의 손은, 상처투성이었다.
아―.
고생하고 있구나.
모니터 하나 들지 못하는 가냘픈 팔인데.
타이치「저기, 선배」
미사토「네?」
타이치「왜 혼자서 하려고 해요?」
타이치「다른 부원들도 있는데. 소집하면 되잖아요」
미사토「……음―」
미사토「저, 부장이기도 하고」
미사토「부장이 안 하면 아무도 안 할 거 아녜요?」
타이치「아니, 지금도 아무도 안 하고 있는디요……」
미사토「페케군이 해 주러 왔잖아요」
우와, 강렬한 말.
미사토「그리고 제가 하고 싶기도 하고」
미사토「전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뿐이에요」
미사토「모두하고 같이」
타이치「모두……좋아하는 일만 하고 있는 건 아닐 텐데요?」
미사토「그런가요?」
타이치「그렇게 생각해요」
왠지 모르게.
타이치「실감이 나지 않는 건 아닐까요, 아마」
타이치「이런 상황이니까」
미사토「그건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갑자기 표정이 흐려진다.
다시, 미소가 활짝 피어진다.
타이치「미미미 선배는 강하네요」
※미미미 선배=『미』야스『미』『미』사토의 약어
미사토「…………」
아, 오랜만에 나왔다.
무표정.
차가울 정도로 색깔 없는 시선.
이것이 일단『저, 화나고 있어요』라는 의사표시다.
미사토「그런 선배는 없어요」
타이치「죄송해요, 착각했어요, 미미 선배」
생긋.
미사토「페케군도 참, 이젠 됐어요」
제길 귀엽자너.
하지만 한 글자 늘어난 것뿐인데 왜 싫어할까나…….
예전부터 왜인지 미미 선배라고 부르는 건 괜찮았다.
미사토「그래서 여기에 왔다?」
타이치「네, 뭐어」
선배하고 으쌰으쌰하고 싶다는 게 본심이지만.
미사토「착한 아이네요―」
머리를 쓰다듬어진다.
머리카락을 부드러운 손끝이 휘저어 간다.
앗, 그렇게 섬세하게 가마를 애무당하면……허리가 쑤셔와요(역시 인간 쓰레기).
미사토「왜 그러세요?」
타이치「텐트가 구축되어서요」
미사토「에, 어디에요?」
타이치「미미 선배, 이전 학기에 배운 범위의 수학 공식을 가르쳐 주세요」
미사토「알았어요」
미사토「○X▽□○X▽□……」
거시기가 가라앉음과 함께 직립자세.
타이치「이야, 실례했습니다 마모드아젤」
미사토「갑자기 어조가 신사같아졌어요」
타이치「신사가 생업이니까요」
미사토「그리고 마모드아젤이 아니라 마드모아젤이에요」
타이치「…………」
타이치「자,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미사토「그래도, 벌써 수업 시작시간 지났으니까(=マスカラ(마스카라))……」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양손으로 찰랑찰랑 흔들었다.
선배, 그건 마라카스예요.


ㆍ贖罪させる (속죄시킨다)


선배한테 태클 따윈 불가능해애앳!
타이치「수업시간인가」
종이 치지 않았던 덕분에 눈치채지 못했다.
타이치「땡땡이칠까요?」
미사토「어머, 나쁜 아이가 있는 것 같네요―」
미사토「……그래도 그렇네요」
하늘을 보며, 후우하고 한숨을 쉬었다.
미사토「나쁜 아이, 네요」
타이치「네?」
미사토「아뇨, 아무것도 아녜요―」
미사토「그렇다고 해도, 점심 중엔 더우니까……여기서 작업은 안 할 거예요」
미사토「그러니까 모처럼 땡땡이쳐도, 할 일은 없어요」
타이치「아, 그런가」
일사병이라도 걸리면 큰일이다.
미사토「저녁부터 다시 재기동이에요」
타이치「도와드릴까요?」
미사토「페케군 쪽이 더 강해요」
타이치「네?」
미사토「마음을 분명하게 정리하고, 자기가 할 일을 결정하니까」
갑자기 이야기가 바뀐 것 같다.
타이치「그건 선배도 같잖아요?」
새하얀 얼굴에, 은은한 슬픔이 감돌았다.
울 것같이도 보여서, 가슴이 살짝 미어진다.
그래.
그녀만이, 나를 이런 기분으로 만든다.
평범하고 당연한, 가슴을 펴고 자랑할 수 있는……마음.
이성으로서의 감정인지 어떤지는 모르지만, 나는 이 사람을 좋아한다고 생각한다.
행복하게 해 주고 싶다.
미움받고 싶지 않다.
미사토「왜 그러세요?」
타이치「우와악!?」
눈 앞에 선배의 얼굴이 클로즈업해 있었다.
미사토「왓?」
타이치「깜딱 놀랐어요」
미사토「흠, 깜딱……흠」
왜인지 감탄하고 있다.
타이치「더워졌으니, 교실로 돌아갈래요?」
미사토「그러죠」
방송부의 부장은, 안테나로 다시 한 번 시선을 돌렸다.
타이치「……」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는 모른다.
이 사람은, 그렇게 쉽게 본심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그래서 더욱, 조금 전의 아연실색한 얼굴은 귀중했다.
그녀의 온화한 얼굴은 가면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나는 알아버린 것이다.

매미가 시끄럽다.
이렇게 더운데도.
녀석들은 언제나 기운차다.
타이치「자 그럼」
뭐 할까나, 지금부터.
옥상이 뜨거워지면, 쉴 만한 장소는 그다지 없다.
근처의 교실을 들여다 보자, 역시나 수업중이었다.
1학년 E반.
마치코 선생님이 수업을 하고 있다.
사토 마치코.
신장 173센티의 장신으로 글래머한 다이너마이트ㆍ보디의 소유자로서, 미인에다 도도하고 수수해 보이는 안경도 어울리고, 요염하고 윤기있는 광택을 지닌 롱 헤어가―――
애교를 넘치게 해 줄 뿐만 아니라 매력적이고 풍만한 입술이 매혹적인, 내가 지정한 최강생명체 중 하나다.
교직 2년째.
우리들과 같은 년도에 교사가 되었다.
지금은 완전한 여교사가 되어 있다.
하지만 마치코 선생님은 죄가 깊다.
범죄자이다.
그 죄의 상당수는, 셔츠를 안쪽에서 밀어올리는 풍만한 봉우리에 포함되어 있다고 해도 될 것이다.
보디 자체는 홀쭉한데 가슴의 볼륨만 빵빵해서 당장이라도 넘어져버리지는 않을까, 넘어진 순간의 π모션은 몇만 폴리곤 정도로 좌우 따로따로의 움직임을 보여주며 필시 장관임에 틀림없―――
을 거라는 생각에 듬뿍 빠져버릴 정도로 매혹적인 그녀의 수업을 받고 있을 때 나는 여러모로 절제가 힘들어진다.
내 자리를 보면 이게 또 잔인해서, 흉기와 같은 자리다.
이성을 잃은 14세 소년이 손에 넣은 나이프와 비슷한 정도로 위험하다.
좁은 치마의 안쪽이라는 남자의 군침을 돌게하는 공간에 틀어박혀서,
『이런 좁은 장소에선 제 아름다운 살은 릴렉스할 수 없어요!』
라고 말하는 듯이 빵빵한 히프.
엉덩이의 갈라진 틈에 가로로 다리를 놓은 스커트의 중앙을, 커터로 스―윽 갈라버리고 싶다고 생각한 건 한두번이 아니다.
위험한 여성이다.
나쁜 교장과 교감에 의해, 여동생(같은 학교 재학중인 여학생……밝고 성적이 우수하고 스포츠 만능이라 남녀를 불문하고 인기가 있다)의 약점을 미끼로 협박당하고 성적 학대를 당할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런 프랑스 서원틱한 위기로부터, 나는 언제라도 그녀를 지키고 싶다.
1학년 때, 부담임이 된 마치코 선생님에게 끝없이 성희롱을 반복해서, 마침내 수업중에 울려버리고 3일 동안 무단결근을 하게 해버린 게 지금도 후회된다.
……그리고 나는 정학을 먹고, 선배에게「정학군」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뭐, 그걸로 선배와 친해졌으니 다행이지만.
그건 접어두고.
그 이후로, 마치코 선생님과 나의 접점은 소멸했다.
1학년이 채 끝나기 전에 부담임이 바뀌고, 담당 수업도 없어졌다.
안녕 청춘의 추억이여.
성희롱, 적당히 해 둘걸.
그렇지만 '어차피 미움받을 거라면 좀 더 만져뒀으면 좋았을 걸' 이라고 생각하는 시점에서 나는 이미 인간으로서 끝장난 것일까.
타이치「후―」
어쨌든, 이대로 복도를 어슬렁거리면 누군가에게 들킨다.
식권을 사고 나서 부실로 가자.
완전계획성립.
A정식은 3교시 때에는 품절되기 때문에, 확실하게 먹고 싶을 때에는 1교시가 끝남과 동시에 식당으로 달려야 된다.
그래도 줄은 조금 서야 된다.
2교시에 지각해버리는 때도 있다.
그런 일이 다발하면, 이따금씩『식권 사전 구매 금지령』이 공포된다.
수량을 좀 더 많이 갖추면 될 텐데.
모두가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식권은 수량한정이 철칙.
그러니까 이런 기회를 놓칠 수는 없다.
1교시 도중이라면 줄도 없을 테고.

역시 썰렁했다.
타이치「아줌마, A정식」
무사히 식권을 샀다.
잇힝.
부실에 들어가자, 파이프 의자에 앉아서 잡지를 읽고 있는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타이치「이런이런이런, 토모키 선생님 아니십니까」
타이치「이런 곳에서 우연이군요. 선생님도 그것이십니까? 저도 껴도 되겠죠?」
새끼손가락을 들었다.
토모키「뭐……」
무심한 얼굴로 그렇게 대답했다.
토모키는 방어 시의 애드립이 전혀 통하지 않는 타입이다.
파티 때에는 착한 사람이지만 지루한 남자라고 분류될 것임에 틀림없다.
타이치「땡땡이야? 그런 거야?」
토모키「너야말로」
토모키「우리반은 자습이야」
다시 잡지로 눈을 돌리고, 팩에 담긴 커피우유를 홀짝거렸다.
그렇군.
그래서 빠져나와, 여기서 뒹굴거리고 있다는 건가.
좋은 사람 속성 주제에 나쁜 짓을 하다니.
타이치「식권은?」
토모키「샀어」
타이치「제법인데」
토모키「……」
반응 없음.
어쩐지 힘이 빠졌다.
애초에 방송부엔 캐릭터 분업화가 착실히 진행되어 있어서, 태클 담당인 토모키에게 날카로운 반응은 기대할 수 없지만.
창문에서 밖을 본다.
강한 햇볕.
타이치「덥네, 오늘도」
토모키「냉장고에 하나 더 있어」
타이치「80엔이었던가?」
토모키「응」
타이치「받아」
내밀어진 손에 잔돈을 놓고, 밑에 있는 냉장고를 연다.
토모키「……저기, 모든 동전에 다보탑이 새겨져 있습니다만?」
클레임은 무시하고, 팩을 땄다.
토모키「내참」
그 이상의 태클은 없었고, 권태로운 시간이 흘렀다.
창가 자리에 걸터앉아, 여러가지 모니터와 기재가 놓여져 있는 긴 테이블을 바라본다.
방송부의 기재다.
바로 옆이 방송실이다.
여기는 대기실.
전기가 통한다는 이유로, 소형 냉장고가 놓여있고 게임기가 상비되어 있고 휴대폰 충전기가 일렬로 늘어져 있는 등 교내에서도 굴지의 무법 공간.
타이치「어라, 저거 코드 빠져있는 거 아냐?」
토모키「새로운 컴퓨터를 들여놓을 거라, 조금 배치를 바꿀 거야」
타이치「흐―음」
토모키는 이래봬도 컴퓨터 소년이라, 미키와 자주 CPU니 메모리니 하는 얘기로 꽃을 피운다.
다른 학교에 다니는 한 살 아래의 귀여운 여친이 있고, 첫 만남은 인터넷이었다고 한다.
토모키가 입원했을 때, 한 번 만났던 적이 있다.
병문안을 갔던 때였다.
여친『앗, 저기, 토, 토토토모키 오빠가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고개를 숙인 교복 차림의 베리 큐트한 생명체의 출연에 쇼크를 받은 내 기억은 지금도 가물가물하다.
여친……유카는, 그 뒤에도 토모키를 여러모로 챙겨주고 있다.
분명히 토모키가 요구하면, 입고 있던 속옷이라도 줄 게 틀림없었다.
타이치「……………………」
토모키「아얏! 뭐하는 거야!?」
타이치「갑자기 분해져서……」
토모키「네네, 뭐가? 뭔 말인지 모르겄는디유」
토모키는 개그도 최고로 재미없다.
이런 녀석에게 그런 귀여운 걸이 붙어 있다니, 뭔가 잘못되었다. 분명히.
소녀「……후훗」
웃음소리가 들렸다.
타이치「어라, 있었어?」
방송실에서 온 듯, 안경을 쓴 작은 체구의 소녀가 있었다.
소녀「변함없이 선배님들은……」
토모키「'님'자는 됐어」
후배인 후쿠하라 미유키였다.
타이치「안녕. 잘 지냈어?」
타이치「어머? 어머어머?」
미유키「뭐, 뭐예요?」
경계하면서 말하는 미유키.
미유키「어차피 또 촌스럽다느니 뭐니 그러겠죠?」
타이치「정말로 촌스럽구나」
미유키「아아아아아……」
소녀는 부들부들 떨었다.
타이치「으―음, 넌 말이지―, 어째서 이렇게 촌스러운 걸까―. 어째서 네 헤어밴드는 그렇게 싸구려인 거야? 어째서 눈썹이 이렇게 꿈뻑꿈뻑거리는 거야? 어째서 치마가 더 짧지 않은 거야?」
미유키「꺄아, 치마는 좀」
타이치「으―음」
미유키「목덜미를 부드럽게 어루만지지 말아주세욧, 꺄악, 귀에 손가락 넣지 마세요!?」
애무공격.
타이치「바탕은 좋은데」
미유키「엣……?」
타이치「아깝다, 아까워」
타이치「아까우니까 먹어버려야지」
미유키「하?」
야금
몸을 숙여서, 귀를 덥석 깨물었습니다.
여자아이의 향기가 났습니다.
동화 해설처럼 말해도, 성희롱이라는 건 변함없지만.
미유키「아와아아아아아아아앗!!??」
미유키가 엑스터시에 다다랐다(거짓말).
토모키「……적당히 해, 거기 개구쟁이」
타이치「오, 뭐야뭐야, 여친 있는 주제에 또 다른 사냥감을 노리는 건가?」
토모키「그, 그거하곤 상관 없잖아―!」
타이치「이 라브라치오ㆍ스나이퍼가」
퉷, 하고 쏘아붙인다.
타이치「그래도 내 사랑의 라이플은, 언제나 촌스러운 너를 노리고―――」
시선을 돌린 순간, 방송실의 문이 닫혔다.
자물쇠가 잠겼다.
미유키는 이제 없다.
타이치「으윽」
딴청을 피우며 만화를 읽고 있는 토모키를 노려본다.
타이치「그 상냥함이 인기의 비결입니까?」
토모키「아앙?」
타이치「뭐 됐어. 그것보다 미유키는 어째서 있는 거야?」
토모키「……넌 후배는 아무렇지도 않게 이름만 부르는구나」
타이치「그야 후배잖아?」
정적.
토모키「그런 점은 참 존경스러워」
토모키「……후쿠하라네 반도 자습이래」
타이치「아―, 그렇군」
수수께끼가 풀리자 흥미도 사라졌다.
타이치「또 누가 도망쳤나?」
토모키「……아마도」
의자에 다시 앉는다.
여름의 햇볕은, 아직 실내에는 들어오지 않는다.
타이치「방송부는 좋구나. 이 부실을 쓸 수 있는 것만으로도 좋아」
토모키「그렇지」
독서중인 토모키는 대답도 건성.
타이치「……뭐 읽고 있어?」
토모키「사이코맨」
타이치「야츠카가 죽고, 진범은 마사키야」
토모키「말하지 마―!!」
타이치「말할겨―!!」
토오키「이제 말하지 마, 마수열도의 결말만은 절대로 말하지 마!」
타이치「앤더슨 신부가 아군의 스파이로 잡혀있던 요리코를 구해준다!」
토모키「하지 마」
타이치「언론탄압 반대!」
토모키「배신자―!」
타이치「에피쿠로스 주의자!」
그렇게 치고받는 참에.
자물쇠가 열리고, 얼굴을 내민 미유키가 살짝 소리쳤다.
미유키「선배! 선생님이 왔어요!」
토모키「엣!」
토모키「어라……타이치?」
바보같군, 숨는 게 늦어.
나는 벌써 복도 측에서 사각이 되는 위치에 몸을 감췄다.
토모키는 허둥지둥 우왕자왕하고 있다.
미유키「선배 여기여기!」
몸을 낮추고, 토모키는 방송실로 도망쳤다.
미유키와 함께.
아, 나도 저럴걸…….
제길, 이런 일 정도로 난 안 울어.
문이 잠기는 것과 동시에, 신장 190센티의 근육이 복도를 스쳐지나갔다.
맘모스다.
만다 쥬조. 통칭 맘모스. 체벌의 천재다.
들키면 그냥은 안 끝난다.
예전에, 녀석이 깡통을 한 손으로 탁구공 정도의 사이즈로 짜부시키는 순간을 본 적이 있다.
게다가 녀석의 체벌은, 21세기에 적응되어 있어서 얕볼 수 없다.
흔적을 남기지 않는 고통을 주는 기술에 능통하단 뜻이다.
이걸로 모 아줌마 고소단체도 두렵지 않다는 건가!
맘모스는 피그미 마모셋 정도의 회피력까지 겸비한, 무섭고 교활하고 잔인한 근육인 것이다.
그 거체가 느릿느릿 복도를 지나간다.
도중에, 시선을 방송실로 향한다.
쥬조「……」
그대로 떠나간다.
유인원한테 사냥당해라, 하고 저주한다.
타이치「시베리아의 동토야말로, 너에게 걸맞는 무덤이 될 것이다」
몸을 내민다.
토모키「위험 위험」
미유키「커텐 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복도 쪽 창」
토모키「금지하고 있잖아. 학교도 잘 알고 있으니」
타이치「좋은 수가 있어」
미유키「……」
토모키「……」
타이치「아―, 제군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건 시시한 개그가 아니라 진짜로 좋은 방법이다」
미유키「어떤 건데요?」
타이치「토모키, 컴퓨터를 쓰게 해 줘. 그리고 디카도」
토모키「아―앙?」

적당히 부실에서 짬을 보내고, 교실로 돌아가는 도중.
인기척 없는 복도에서, 처녀가 웅크리고 있었다.
타이치「괜찮으십니까, 아가씨?」
엉덩이에 손을 내민다.
소녀「읏샤!」
순발력을 발휘해, 소녀는 일어났다.
빠른 발로 거리를 둔다.
임전 태세로 이행하는 게 빠르다.
게다가 바닥을 박차는 것과 동시에, 나에게 일격을 가했다.
타이치「……제법 하는데」
소녀「선배야말로」
안면을 노리고 날아온 걸레를 한 손으로 잡고, 조용히 바닥에 내려놓는다.
타이치「어쩐지 오랜만에 만난 느낌이 드는데」
소녀「그렇네요」
영화화된 모 유명 판타지 소설의 히로인 같은 소녀가 서 있다.
안심해도 좋다. 겉모습뿐이다.
타이치「얼마동안 못 만났다고 이름 까먹진 않았겠지?」
소녀「네―」
타이치「그러니까 안심해……」
타이치「존슨」
소녀「적어도 여자 이름으로」
외국인은 이제 됐어요, 라고 하는 듯한 표정.
타이치「실력이 늘었는데, 미키」
미키「넵」
야마노베 미키는 눈물날 정도로 작은 가슴을 폈다.
미키「제 엉덩이는 비싸니까요」
타이치「살짝 닿았는데」
미키「서비스예요」
동요하지 않는다.
타이치「하지만 그 치마를 넘길 때까지는……」
미키「못 넘깁니다 (단호히)」
제법인데.
이젠 허세도 안 통하는군.
타이치「좋아. 이번엔 승리의 영광을 넘겨주지」
미키「에헤」
생긋 웃었다.
우와―, 껴안고 싶어.
타이치「뭐하고 있었어? 청소?」
미키「아, 네, 어쩐지 이 부근이 좀 더러워서」
미키「저, 깨끗한 게 좋으니까요」
없는 알통을 만든다.
타이치「자발적 행동이란 건가, 그거 멋지군!」
타이치「……아―, 알았어알았어, 다 말할 필요 없어 마이 스위트. 어쩔 수 없구나 참, 사인이지? 이 이주잉 타이치의 사인이 갖고 싶은 거야. 내가 지나가는 길에서 청소를 함으로써 간접적으로 재촉하고 있던 거였어」
미키「……아―아―……그건가요」
미키「어쩐지 오랜만이네요―」
갑자기 슬픈 표정을 짓는다.
아니 아주 울 것 같은데.
아니 아주 울 것 같은데.
두 번이나 생각해버렸다.
당황하면 안돼, 냉정하게 대처하는 거다.
산전수전 다 겪은 엘리트 영 어덜트 후보생으로서!
타이치「왜왜왜왜왜왜그러는가, 야마노베양! 그렇게 싫다면 무리하게 참을 필요 없어! 솔직하게 말하면 된다네!?」
목소리가 덜덜덜.
타이치「아아, 울고 있다, 아아아」
눈시울을 닦는다.
나도 따라서 울어버릴 것 같다.
미키「아, 아뇨, 아무렇지도 않아요, Sir―」
미키「눈물샘에서 조금, 청춘의 액체가 흘러나와서……」
타이치「뭐야……」
청춘의 액체냐.
타이치「놀래키지 마」
식은땀을 닦았다.
타이치「그럼 왕자님(나)의 사인은 다음 기회에」
미키「아뇨!」
목이 쉴 듯한 비명.
미키「갖고 싶습니다! 해 주세요!」
타이치「그, 그렇게 갖고 싶었어?」
무심코 뒷걸음질친다.
미키「해 주세요, 해 주세요」
가느다란 목소리에서 나오는『해 주세요』란 말을 연속으로 듣는다.
하복부가 뜨거워졌다.
왜일까?
어째서일까?
내 해면체는 언제나 내 의지를 거스르고 날뛰는 걸까―――
동화 해설처럼 생각해도 흥분은 사라지지 않았다.
타이치「아, 알았어, 그럼 그걸」
미키「넵」
미키는 평평한 가슴팍을 뒤져서, 메이트북을 꺼냈다.
이 학교에서는 신분 증명서를 겸하는 이 수첩을 그렇게 부른다.
그렇게.
아무래도 이 학교 사람들은,『도회』의 역 뒷편에 있는 인기 NO1 고급 업소『메이트북』의 존재를 모르는 것 같다.
회원이 되면 수첩을 받고, 1회 이용할 때마다 공주 도장을 받을 수 있다.
도장을 모음으로 인해, W와 트리플 등의 서비스를 즐길 수 있다.
……트리플이라.
그건 어떤 세계일까.
도원향일까.
태양은 노란색일까.
섰습니다…….
이런 안되지.
여기서 경솔하게 몸을 앞으로 숙이면, 미키에게 들킨다.
미키는 처녀지만, 남자의 생리에는 정통하다.
내가 가르쳐 줬으니까.
앞으로 숙이지 않아도 들키겠지만, 당당하게 서 있으면 폼이라도 나겠지.
미키「……」
아, 지금 살짝 봤다.
미키, 약간 홍조.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시선을 창 밖으로 돌리고, 조금 머뭇거린다.
우왓, 오히려 쪽팔린다. 아무 말이나 해 줘.
차라리 말로 나를 희롱해 줘.
수치가 극에 달하자, 난폭한 파괴신은 진정되어 간다.
실전경험이 없기 때문인지, 막상 이런 상황에서는 약해지는 것이다.
직희롱은 이제 금지.
※직희롱=타이치어. 직접 행하는 성적 괴롭힘. 주로 성기를 노출시켜 이성에게 접촉시키는 등의 소아적 외설 행위. 종류로는 상투틀기, 폭파 스위치, 원샷 낚시질 등이 있다. 상황에 따라서는 치한행위로도 보인다.
아니 아주 완벽한, 나무랄 데 없는 치한행위다.
타이치「미키는 수첩 꽤 자주 쓰나 보네. 너덜너덜하다」
미키「너덜너덜」
무의미한 반복으로 긍정하는 미키.
페이지를 넘기자, 메모란에는 이미 내 사인이 커다랗게 적혀 있었다.
그것도 수 페이지에 걸쳐서 있다.
내 사인을 모으고 있는 것 같다.
정확하게는 제가 모으게 하고 있는 겁니다만.
백지를 찾아서, 그곳에 새 사인을 적는다.
타이치「……」
타이치「저기 말야, 이번엔 내가 사인을 해 주고 싶어서 미키의 뜨거운 마음에 호소한 거지……절대로 괴롭히려고 한 건 아니다?」
미키「싫은 거 아니라니깐요」
타이치「그, 그래?」
사인을 다 적었다.
미키는 부드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분명 싫어하는 기색은 아니다.
다른 페이지를 대충 조사한다.
미키「아―, 데이트 약속이라던가 그런 건 안 써 있어요」
타이치「아 그려」
수첩을 돌려준다.
그 수첩을 아스팔트 같은 가슴팍에 품고,
미키「안심하세요, 미키는 처녀입니다~」
타이치「벼, 별로 그런 걸로 안심하거나 그러진 않는다 뭐」
당황한 나, 소아화.
미키「네네, 알고 있어요」


ㆍ掃除を手傳う (청소를 돕는다)


타이치「청소 도와줄까?」
미키「이번엔 친절한 모드네요」
타이치「네?」
미키「선배한테는 성희롱 모드하고 친절한 모드 두 개의 기능이 갖춰져 있어요. 엣헴」
내미는 것조차 마음대로 되지 않는 평평한 가슴을 쭉 폈다.
타이치「음……」
미키「아, 수줍어한다」
타이치「수줍어하지 않았습니다!」
미키「왜 정색하시나요」
타이치「그보다 청소다. 서둘러, 시간이 없어!」
미키「네―에」
내가 버린 걸레를 주워, 더러운 곳으로 향한다.
피였다.
타이치「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앗!!??」
미키「어?」
타이치「피, 피잖아!」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
걸레로 얼굴을 가린다.
타이치「빠, 빨리 닦아 줘―!」
미키「네네, 잠깐만 기다리세요」
잠시 후.
미키「자, 끝났어요」
타이치「이제 깨끗해?」
미키「괜찮아요」
걸레를 얼굴에서 떼어낸다.
타이치「으―, 피에는 약해서 말야」
미키「그런 귀여운 면도 있으셨군요」
타이치「솔직히 좀 빡셉니다」
힐끔 본 것만으로도, 아직도 기분이 나쁘다.
타이치「도움 안 돼서 미안」
타이치「돼지라고 욕해 줘……」
미키「네……?」
타이치「제발」
미키「……그럼」
미키「돼지는 돼지우리로 꺼져라?」
타이치「큭」
어레인지까지 되고, 의문형인 게 묘하게 더 괴로웠다.
미키「돼지우리보단 양호실 안 가실래요?」
타이치「아니, 괜찮을 거야」
미키「……으―음」
타이치「괜찮아」
미키「그냥 같이 낮잠이나 자죠」
타이치「큭……」
그 제안은 너무 땡기는데.
미키「침대도 딱 두 개 있으니까」
타이치「그럼 나중에 봐」
미키「어라……?」
여행을 떠난다.
타이치「맞다, 미키」
멈춰선다.
중요한 걸 잊고 있었다.
미키「네」
타이치「슬슬 부활동, 활동재개한다는데」

잠시 짬을 보내자.
저녁이 되었다.
선배는 아직 있을까?
기억과 함께, 온도도 풀어진 것 같다.
옥상에서 보이는 남색의 휘장은 벌써 주홍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세차게 불던 바람도 없어졌다.
거세당한 고양이처럼 고요한 황혼 무렵.
아무도 없다.
미사토 선배의 모습을 찾는다.
타이치「아」
안테나가 세워져 있는 바로 그 옆에.
타이치「있다」
자고 있었다.
미사토「……」
규칙적이고 가벼운 숨소리.
그것은 잡음에 지나지 않지만, 이상한 음악성으로 내 머릿속을 이완시켰다.
들이쉬고, 내쉬고, 들이쉬고, 내쉬고.
부드러운 호흡.
꾸밈없는 그녀의 순수한 모습.
그 모습에 거짓은 없다.
더러움도 없다.
잘 때는, 모든 이가 순수한 모습을 되찾는다.
가만히.
선배에게 빼앗긴 시선은, 세계를 덮는 황혼의 선명함조차도 돌릴 수 없었다.
계속.
선배를 보고 있었다.
선망과 동경을 품고.
타이치「……」
얼마나 그렇게 있었을까.
규칙적인 숨소리가 커지고, 눈꺼풀이 떨렸다.
긴 눈썹이 조금씩 움찔거린다.
눈동자가 살짝 열렸다.
타이치「……역시, 선배는 좋아요」
미사토「우……우냐……?」
언어감각이 무뎌진 선배는,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한 목소리를 냈다.
타이치「안녕하세요」
미사토「……쿠로스……군?」
타이치「페케예요」
미사토「페케군……」
선배 전용 닉네임을, 그녀가 복창한다.
미사토「……응, 싫어요……」
미사토「자는 얼굴 보면, 싫어요……」
팔꿈치로 두 눈동자를 가리고 살며시 몸부림.
무방비한 자신의 모습은, 누구나 숨기고 싶어한다.
숨기고 싶다는 것은, 평상시의 자신의 모습에 거짓이 있다는 말.
선배도 그런 걸까.
……냉정한 사고를 지워버린다.
잠시 후, 선배가 몸을 일으킨다.
미사토「언제부터 있었어요?」
타이치「지금 막 왔어요」
미사토「……음―」
의혹의 눈초리.
타이치「진짜예요」
양손을 들고, 항복하는 포즈를 취한다.
타이치「선배한테 거짓말 같은 건 안 해요」
미사토「……」
타이치「그치만, 낮에는 밖에서 자면 위험해요」
타이치「탈수증상이 오거나 일사병이라도 걸리면 위험하니까요」
미사토「우움, 그런가요」
하품을 참는다.
안경이 비뚤어졌다.
무심코 손이 뻗었다.
미사토「에……?」
선배에게 가까이 다가가, 안경을 양손으로 잡고 원 위치로 돌려놓았다.
타이치「이걸로 평소의 선배」
미사토「……정말, 위험해요」
타이치「엥?」
미사토「페케군의 그런 면, 위험해요」
조금 화난 것 같다.
타이치「어디가? 어째서?」
미사토「거울을 보고 생각하세요」
타이치「흐―――응!!」
우와, 눈물나는 말 했어, 이 사람!
타이치「제가 추남이란 말입니까! 으아아아아, 맨날 신경쓰고 있는데―!!」
미사토「에, 그게 아니라……」
타이치「추해……나는 추해요……어무이……」
미사토「아아아, 아니에요, 아니라니까요, 네?」
타이치「어무이가 추하게 낳아서……」
미사토「그―러―니―까」
타이치「괜찮아요, 어차피 전 추하니까요. 대자연의 일부니까요. 구더기니까요」
미사토「아뇨, 그런 건……분명히 처음 만났을 땐 놀랐지만요」
타이치「……」
처음 만났을 땐 놀랐지만요.
타이치「…………」
처음 만났을 땐 놀랐지만요.
타이치「……………………」
처음 만났을 땐 놀랐지만요.
타이치「하, 하하하, 하하하하하……」
미사토「페케군?」
타이치「크아악――――――!?」
타이치「위―잉! 위―잉!」(경보)
타이치「기이―, 기이―, 삐이익!」(구동음)
미사토「왓, 페케군이 이상한 상태로!」
타이치「내 이 름 은 크 리 에 이 터, 인 류 를 지 배 하 는 존 재 다!」
미사토「와, 왓, 페케군이 20년 전 게임의 보스 같은 진부한 창조주로!?」
타이치「어 이 하 여 나 에 게 대 항 하 는 건 가. 나 의 지 배 를 받 으 면, 영 원 한 평 화 를 손 에 넣 을 수 있 거 늘」
미사토「질문이」
타이치「뭔 가?」
미사토「어째서 부자연스러운 옛날 말투로 말하나요?」
타이치「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
미사토「죄송합니다, 역시 됐어요」
타이치「스타 버스터 발사 준비!」
미사토「에잇」
타이치「크헉」

타이치「……핫, 여기는?」
미사토「다행이다. 원래대로 돌아와서」
타이치「이상하네」
미사토「왜 그래요?」
타이치「무지하게 충격적인 말을 듣고, 그 보복으로 인류 멸망 폭탄 스타 버스터를 발사하는 꿈을 꾸고 있었는데……그 동기가 된 충격적인 일이 생각나지 않아서」
미사토「그런 폭탄이었구나……」
타이치「으―음, 뭐였을까」
미사토「페케군은 외모를 너무 신경써요. 인간은 마음이에요」
타이치「외모……?」
아, 맞다.
미사토『처음 만났을 땐(그 끔찍한 모습에)놀랐지만요』
타이치「오오오오오오오오오」
미사토「또……」
타이치「제로니모―!!」
미사토「……누구?」
타이치「우, 히잉, 훌쩍」
미사토「어쩌나……」
선배는 허둥댔다.
타이치「선배―애」
달라붙어 보았다(어거지로).
미사토「……으읏」
순간, 경직되는 선배.
허공을 선배의 양 팔이 헤맨다.
타이치「나도 좋아서, 좋아서 끔찍하게 태어난 건 아니에요……그래서, 적어도 청결하게는 하고 다녀요……사람들을 불쾌하게 만들지 않으려고……훌쩍……」
미사토「아아아아」
선배의 몸에서 서서히 힘이 빠져간다.
미사토「페케군」
살짝 안아주는 선배.
타이치「……」
포근한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깊숙히 묻었다.
교복에서 달콤한 냄새가 났다.
정신이 아찔해진다.
땀 냄새도 조금 섞여 있다.
그게 또 묘하게 향기롭다.
그리고 부드럽다.
한없이 보드랍다.
미사토「……으응……」
스멀스멀 움직이는 내 얼굴에, 선배는 간지러운 듯 침을 꿀꺽 삼켰다.
미사토「저기―……」
우는 척을 계속한다.
미사토「그러니까」
미사토「페케군의 외모는 그렇다 쳐도, 눈은 참 깊고 아름다워요」
잠깐 망설임.
하지만 바로 날려버리고 계속 부비적.
미사토「……갑자기 다가오거나 하면, 그만 두근거려요」
타이치「진짜로요?」
미사토「그래서 거울을 보라고 한 거예요」
타이치「……」
미사토「이제 안 울 거죠?」
타이치「……네」
창자가 끊어지는 심정으로 얼굴을 떼어 놓는다.
다음에 이런 기회가 올 날은 과연 언제쯤일까.
미사토「울보였군요, 페케군은」
타이치「……」
미사토「돌보기가 힘들겠네요―」
제발 돌봐주세요― 하고 마음 속으로는 생각한다.
뜨겁게 돌봐주세요오~.
미사토「제 남동생이라도 될래요?」
타이치「네」
즉결.
타이치「그럼 앞으로도 모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미사토「에?」
타이치「바로 짐 정리해 댁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미사토「네?」
타이치「우선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만, 남매는 역시 한 이불에서 자나요?」
미사토「저, 저기요, 페케군……」
타이치「실은, 쭉 외로웠습니다……고마워, 누나……아니, 공주님이라고 부르겠습니다」
미사토「어, 어쩌지」
먼산을 바라보며 선배는 중얼거렸다.
타이치「농담이에요」
미사토「……」
순식간에 표정이 바뀌는 선배.
미사토「페―케―군―」
타이치「분위기를 바꿔보려고 생각해서」
타이치「실수였나요?」
울상을 지어 본다.
미사토「으」
미사토「……」
한숨.
미사토「정말……치사해」
타이치「치사해?」
미사토「그런 게 있어요」
조금 입이 삐져나와 있지만.
용서해 준 것 같다.
선배는 다정하니까.
이러쿵저러쿵하는 사이에, 슬슬 밤이 되어가고 있었다.
빛의 시간은 끝나고, 어둠이 찾아 온다.


ㆍ歸る (돌아간다)


타이치「그럼, 슬슬 가볼까요?」
미사토「아아, 그러죠」
미사토「마침 귀가 시간이네요」
타이치「어두워지면 자고, 아침이 되면 일어난다」
타이치「인간이라는 건, 원래 그런 존재죠」
미사토「그래요 그래요」
미사토「그럼 오늘의 부활동은 이만 마치죠」
자연스럽다.
타이치「같이 갈까요?」
미사토「방향이 반대잖아요」
타이치「그랬던가?」
미사토「……늑대 아저씨, 제 집 알고 있으면서」
뾰루퉁한 눈.
타이치「먼저 실례하겠습니다 멍」
힘없이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 대신.
선배는 내가 교내로 사라질 때까지, 가슴 앞에다 살짝 손을 흔들어 배웅해 주었다.
가슴이 흔들.

저녁이 되어도 땅바닥은 뜨거웠다.
하지만 못 참을 건 아니다.
관동의 도심부에 비하면 훨씬 나을 것이다.
통풍도 좋고, 습기도 적절하고.
이런 고개길을 몇십 개씩 올라가야 되지만 않는다면 말이지.
게다가 매미의 시끄러움도 더위를 증폭시킨다.
여름에만 활동하던 모 밴드처럼, 녀석들도 이 계절에만 올인하고 있는 것이다.
소년「으앗」
타이치「응?」
누군가가 넘어지는 소리가 났다.
딱딱한 소리와 함께, 내 발 밑으로 스테인레스 지팡이가 굴러왔다.
타이치「어라?」
사람이 쓰러져 있다.
다가가 봤다.
타이치「……저, 괜찮아요?」
소년「아, 감사합니다, 괜찮아요」
이럴 때, 일본인은 바로 괜찮다고 말한다.
실제로는 어떤지 알 수 없다.
갑자기 열이 받는다.
타이치「진짜로 괜찮은 거냐! 그렇게 순간적으로 괜찮은지 어떤지 알 수 있는 거냐!」
소년「어, 어어……응」
그 일본인은 위축되어 고개를 끄덕끄덕거렸다.
타이치「복합골절일지도 모른다고―!」
소년「척 보기에도 멀쩡한데……」
타이치「인류를 얕본 대가를 치루게 해 주마!」
소년「뭔 소리야!」
소년「뭐, 어쨌든 진짜 다친 덴 없다니깐」
그 녀석은 쓴웃음지으며 몸을 일으켰다.
지팡이를 건넸다.
소년「아, 고마워」
타이치「내 탓이니까 됐어」
타이치「긁힌 덴?」
소년「없는 것 같아」
지팡이를 짚고, 몸의 밸런스를 잡는다.
한쪽 다리를 다쳤나…….
타이치「골절?」
소년「그럼 좋을 텐데 말야」
티없이 웃는 얼굴이 온화하게 보였다.
고생한 사람의 얼굴.
소년「어라, 너……그 머리는」
타이치「아아, 이거?」
내 머리카락을 휘감아 본다.
타이치「가발 아냐」
소년「아니, 의심 안 했는데」
소년「근데 염색한 거야? 모근까지 하얗네」
타이치「아냐. 천연」
소년「헤―」
소년「새하얗네」
그렇다.
내 머리카락은, 옛날부터 쭈욱 순백.
솜털 같은 흰색이라고 어떤 사람이 말한 적이 있다.
노쇠한 흰색은 아니다.
윤기를 가진 새하얀 머리카락.
기분나쁠 정도로 자연스러운 백발.
……내가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첫번째 이유.
두 번째 이유는, 머리와 얼굴의 갭이겠지. 쳇.
소년「아, 미안. 신경쓰고 있나 보네」
하지만, 이 녀석은 좋은 녀석이다.
배려를 알고 있다.
그러니 나도 배려해 준다.
타이치「아냐, 전혀」
타이치「옛날엔 좀 그랬지. 그래도 학교가 거기니까」
소년「아아……군죠(群靑)학원?」
타이치「응」
소년「나도 거기 다니게 됐어」
그 녀석은 얼굴을 활짝 폈다.
타이치「오, 나이는?」
일본인은 자신의 생년월일을 말했다.
같은 나이다.
그리고, 동료인가.
타이치「잘 부탁한다」
소년「나야말로. 여러가지 많이 가르쳐 줘」
소년「나, 한쪽 발을 거의 못 쓰니까 말야」
타이치「……그래」
소년「정신적인 문제야. 다친 건 옛날에 다 나았어」
타이치「힘들겠네―. 언제부터?」
소년「아주 옛날부터. 뭐, 이것도 천연이라면 천연이야」
소년「봐, 두께가 다르지?」
청바지를 걷어서 발목을 보여줬다.
타이치「우와, 심한데」
소년「전혀 안 쓰니까―, 근육이 없어진 거야」
타이치「위험하겠는데, 단련 좀 해―」
소년「거의 안 움직여서 말야. 일단, 손으로 조금씩 움직여 주고 있긴 한데」
소년「귀찮아」
타이치「야야!」
소년「아하하하, 농담 농담」
타이치「너, 알고 보니 자학 개그를 즐기는 놈이군」
방심할 수 없는 남자의 등장이다.
소년「뭐야 그건」
소년「학교, 좋은 곳이었음 좋겠다」
타이치「좋은 곳이야」
타이치「우리들 같은 사람들한텐」
소년「그거 좋은데」
타이치「귀여운 여자애들도 잔뜩 있어」
소년「정말임까?」
제대로 된 대화가 불가능한 애들도 많지만.
타이치「특히 마치코 선생님이 좋아. 최고」
소년「이름부터 좋은데! 빨리 보고 싶다―」
타이치「다음번에 내 비장의 마치코 선생님의 앨범을 보여주지」
타이치「A급이야」
소년「A급? 최고 랭크?」
타이치「아니, 위에 S가 있어」
소년「우와, 나하고 같은 등급 설정……」
타이치「너, 너도냐―!」
뭐야, 이 자연스럽게 의기투합되는 놈은.
소년「OK, 어떻게든 해나갈 수 있을 것 같아」
타이치「군죠는 빵빵하고 에로한 안식처지」
소년「이런―, 에로라―, 이거 또 장미빛 인생이 펼쳐지겠군―!!」
타이치「가자―!!」
소년「좋아, 가자!」
소년「뭐랄까, 넌 처음 보는 거 같지가 않네―」
타이치「나도, 너하고는 언젠가 결착을 지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소년「그거 받아 주지」
자신만만하게 말한다.
소년「……그 전에, 마치코 선생님의 데이터 줘」
타이치「OK 전우」
타이치「인종은 다르지만 노력하자, 재패니스」
소년「……아니, 너도 일본인인데, 아무리 봐도」
이것이, 나와 신카와 유타카와의 만남이었다―――

타이치「후우」
식탁 위에 메모가 놓여져 있다.
『저녁 있을지도 몰라』
타이치「와―아, 가자가자―」
내가 차려먹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3분 만에 갈아입고, 허둥지둥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
저녁은 매우 맛있었습니다.

양초에 불을 붙인다.
독특한 빛이 방 안을 밝힌다.
양초는 좋다.
생생한 불꽃을 보면 이상하게 마음이 강하게 끌린다.
이렇게 멍하게 흔들리는 불꽃을 보고 있으면 그만 마음이 거기에 사로잡혀, 언제까지고 언제까지고 졸아버리게 된다.
예전에 그래서 앞머리를 태운 적도 있다.
바로 3분 전의 일이다.
타이치「……탔다……시부렁」
울고 싶다.
어쨌든 일기다.
두꺼운 일기장을 연다.
인생의 기록은 소중한 거야.
오늘은 학교에 갔지만, 수업을 땡땡이쳤다.
토오코가 또 뾰루퉁해 있었다.
분명히 생리다.
하지만 생리라고 괜히 히스테리 부리는 건 좋지 않다.
벌로 이 일기 안에서 심한 짓을 해 준다.
토오코「싫어, 하지 마」
나「헤헤, 싫다고 해도 몸은 정직(생략)」
토오코「앗, 그러지 마, 싫어, 부탁이야」
나「안 돼, 남자가 여기까지 왔으면 이미 물러날 수 없어! 내 자랑스런 라이플로 너라는 타겟을 록 온할 수밖에 없어!」
토오코「싫어―, 몸은, 몸은 싫어―!!」
나「좀만 있으면 즐거워질 거야」
토오코「싫어, 제발!!」
나「뭐라카노, 으랏―차!!」
토오코「……이 짐승!!」
여기서 붉은 장미가 꽂힌 화분 클로즈 업.
이윽고 꽃의 줄기가 꺾이고, 조용히 바닥으로 떨어진다.
화면이 흐려지고, 화이트 아웃.
【완】
복도를 걷다 보니, 미키가 청소를 하고 있었다.
내 손가락 끝은 전광석화처럼 미키의 엉덩이를 노렸지만, 스쳤을 뿐 실체를 느낄 수는 없었다.
미키는 둔해빠져서 지금까지 좋은 만질거리였는데.
이건 중대한 문제입니다, 교장님!
하지만 제자의 실력이 늘어난 것은 솔직히 기쁘다.
스승인 나를 뛰어넘을 날도 멀지 않았다.
오랫만에 부활동을 하러 가서, 미미 선배와 샤바샤바를 했다.
이 날, 나는 하나의 도달점에 다다랐다.
대 감동.
그 외에도 여러가지 일이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좋은 날이었다.


사쿠라바에게 습격당하는 꿈을 꿨다.
사쿠라바『남자라도 괜찮아』
라고 외치며, 달려드는 금발의 귀공자.
하지만 그건 이상하다.
그 당시, 녀석은 금발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으니 냅두고.
최강의 창과 무적의 방패를 장비한 사쿠라바는, 애초에 상식이란 것이 통하지 않는 상대다.
사쿠라바『피임할테니까』
라고 말하며 더욱 다가온다.
피임한다고 말하며 육체관계를 강요해 오는 사쿠라바란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싶었다.
어째서 이런 일이?
일기에 심한 걸 쓴 탓인가?
천벌인가?
인과응보인가?
함무라비 법전인가?
그거하곤 미묘하게 다른가?
어디까지나 꿈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난 패닉 상태가 되어버렸다.
타이치『몸은 싫어―』
타이치『제발!』
타이치『이 짐승~!』
등등을 외치면서, 사쿠라바의 몸을 밀치려 했다.
순결을 건 레슬링.
……뭐 이미 순결하진 않지만.
적은 진심에다가, 콧김도 난폭하다.
진짜로 죽이고 싶다.
퍽퍽 때린다.
한 발이 운좋게 클린 히트.
사쿠라바는 옆으로 굴러갔다.
반듯이 누운 채로 의식을 잃은 사쿠라바의 가랑이 사이가, 갑자기 폭발했다.
사정하나 했더니, 사쿠라바의 하전입자포(자칭)의 끝에서 화려한 꽃다발이 피어났다.
아아.
졸라게 기분나쁜 전개다.
눈을 가린다.
거기서 잠이 깼다.
타이치「……왜날뷁」
애초에 그 녀석한테 사람을 강간할 만한 담력이 있을 리가 없다.
심약한 도련님인 것이다.
기왕 꿀 거면 미사토 선배한테 역강간당하는 꿈이라면 좋았을 것을.
미사토『……이렇게 커져버리는 나쁜 아이한텐 이 채찍으로 잔뜩 벌을 주지 않으면 안 되겠네요!』
너무 멋있다…….
넋을 잃은 채로 옷을 갈아입었다.
아침밥이 차려져 있다.
메모도 있다.
『많이 먹고 잘 다녀와요』
미인 커리어 우먼 무츠미 아줌마는, 요리도 잘 한다.
바빠서 집에는 거의 없지만.
고개를 숙였다.
감사한 마음으로 두꺼운 샌드위치와 야채 쥬스를 먹었다.
시간이 없다.
남은 건 랩으로 싸서 주머니에 넣었다.
먹으면서 가자.
쨍쨍하게 자기주장을 하는 햇빛.
아침부터 이 정도라니.
기운이 빠진다.
어느 정도 걸어가자,
사쿠라바「우갸갸갹―――!!」
사쿠라바의 비명이다.
꽤 가깝다.
개 짖는 소리와 비명이 겹쳐진다.
멀어져 간다.
타이치「과연……」
납득했다.
그리고, 그곳에―――
소녀「하레? 타이치 오빠?」
타이치「안녕」
소녀「아, 좋은 아침이에요」
꾸벅 고개를 숙인다.
근처에 사는 미소녀 유사.
카미사카 좋은 동네.
설명이 불필요할 정도로 귀여운 유사의 양손에서 카레빵이 흔들리고 있었다.
함께 나란히 걷기 시작한다.
오늘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어쨌든 같은 학교로 가는 거니까.
뒤에서『잘" 다녀" 와―!!』하는 허스키한 목소리가 들렸다.
유사의 어머님이다.
조금 살이 찌셨다.
하지만, 매일 즐거운 듯이 살고 계시니 별 상관없겠지.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난 미소녀.
다만 한 가지 난점이 있다면, 세상을 너무 모른다는 것.
그런 유사의 이성 선배 중 가장 친밀한 나에게 맡겨진 책임은 막중하다.
유사「다녀오겠습니다―!」
손을 흔다는 그 얼굴에는 반항기는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1차 성징마저 아직인 건 아닐까하고 생각되는 면도 있다.
이 새하얀 캔버스를 나의 검은 빛깔로 물들이고 싶다고 생각해버리는 건 남자로서 아주 당연한 일이지만 중등부 1학년에 키는 전교생 중 앞에서 세 번째고―――
배운 지 얼마 안 되는 존대말로 더듬더듬 말하는 파릇파릇한 유사의 순정은 보석처럼 너무나 눈부셔서 내 망상 속에서도 더럽힐지 그만둘지의 선택지가―――
언제나 슬픈 고민과 함께 왔다갔다 흔들리고 있지만 그 반복사고 자체가 이미 페도 로리콤의 사고라는 자각은 하고 있다. 하고 있다니깐.
뭐, 어쨌든 흔들리고 있다.
그래, 유사가 손에 들고 있는 카레빵처럼.
타이치「카레빵이네」
유사「그렇습니다」
걸을 때마다 앞뒤로 흔들흔들 흔들린다.
양손을 쭉 뻗고 기운차게 나아가는 유사.
타이치「그거……아침?」
유사「저, 아까 저기에 사쿠라바 오빠가 있었는데」
타이치「응, 있었지」
유사「만나셨어요?」
타이치「아니, 흔적이 있었어」
유사「흔적?」
타이치「뭐, 내가 갔을 땐 없었지만」
유사「곤란하네요」
유사「카레빵 줄려고 했었는데」
길들이려고 했던 것 같다.
타이치「그 녀석, 컴뱃한테 미움받고 있으니까」
유사「요시다씨 댁의 맹견 컴뱃 말이군요」
타이치「녀석은 굉장해. 자력으로 쇠사슬이 묶인 말뚝을 뽑을 수가 있어」
타이치「나가고 싶을 때 나가고, 오고 싶을 때 오는 거지」
유사「컴뱃은 일반인은 공격하지 않아요」
타이치「진짜 사나이란 건 그런 거야」
유사「사나이……였나요……」
타이치「지금은 복실해져버리긴 했지만, 녀석에겐 군인의 피가 흐르고 있으니까」
타이치「인간으로 치면, 전쟁에서 돌아온 후 사람이 좋아진 퇴역군인 비슷한 거지」
타이치「하지만 사쿠라바만은 공격해」
유사「신기하네요」
타이치「신기하지」
느긋한 페이스로 걷는다.
유사「이거 어쩌지……」
유사「배 고프세요?」
타이치「하나씩 먹을까?」
유사「네」
둘이서 카레빵을 먹었다.
타이치「학교 다닐만 해?」
유사「아직 좀」
타이치「왕따 같은 건?」
유사「전혀 없어요! 다행이에요―!」
타이치「그렇겠지」
천하제일 군죠학원. 군죠 만세.
타이치「만일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텐 고등부에 아는 사람 잔뜩 있쪄요―라고 말해버려」
유사「네」
아주 기쁜 것 같다.
유사「이제 있쪄요라곤 안 하는데요」
수줍어한다.
타이치「핫핫하」
옛날 그거 가지고 조금 놀렸던 적이 있다.
타이치「담임은 사카키바라 선생님이었지?」
유사「네」
타이치「좋은 선생님이야. 운 좋네」
취미는 미소녀 피규어 수집이고 살짝 갔긴 하지만.
유사「아하하하, 다행이네요」
유사「……반 아이들도 다들 열심히 살아가고 있어서, 아주 즐거워요」
타이치「그래」
유사「엄마도 계시고요」
타이치「그렇지」
타이치「여차할 때는 그 분이 출동하시면 그만. 와아 유사, 네 인생 무사평안이구나」
유사「그런데……저……」
타이치「응?」
유사「선생님이 교환일기를 쓰라시던데」
타이치「그런 수업 있었지, 옛날에」
교류 HR이었던가.
타이치「나, 반에서 혼자 남아서 말야, 고등부 사람하고 했었어」
유사「아, 저도 혼자 남았어요」
타이치「응?」
유사「저희 반 홀수니까요」
타이치「아아……그럼 선생님하고?」
유사「아뇨, 저기, 그래서 말인데요」
가방 속에서 뒤적뒤적 노트를 꺼낸다.
유사「타이치 오빠한테 부탁해도 될까요?」
컬러풀 그린 노트.
희미한 민트향.
타이치「좋아, 하지!」
양 주먹을 불끈 쥐며 외친다.
유사「……」
타이치「왜 그러는가, 아가씨」
유사「아, 에, 저기……괜찮아요? 좀 더 생각해 보지 않아도?」
타이치「물론이지」
유사「시원스럽게……」
타이치「그 노트가 일기? 첫날 일기는 벌써 썼어?」
유사「네, 넷, 여러가지요」
타이치「여러가지?」
2차 성징 이전 미소녀의 여러가지 일.
이 불건전한 단어의 일람이, 나를 한없이 미치게 만든다.
하지만 유사 앞에서는, 조금이라도 망가지면 안 된다.
일명 이성의 배수진.
타이치「그거 궁금한데」
앞머리를『사르랑』하고 쓰다듬는다.
소녀의 시선이 내 백발을 따라간다.
정신을 차리자 조금 쪽팔려졌다.
그러고 보니 이전에, 코○트 소설에 나오는 왕자님이 분명히 백발의 미남이었던가.
뜨거운 이야기였다.
그렇다 하면 난, 왕자님의 이미지로 인식되고 있는 걸까.
그럼 좋겠는데…….
아니지……얼굴이……안되잖아…….
결국은 소망에 지나지 않는다.
유사「조금 부끄러워요……」
타이치「진지하게 쓴 걸 보고 웃거나 그러진 않아」
유사「……」
오, 지금 건 점수 꽤 딴 거 같은데?
미키한텐 아부를 너무 떨어서 실패했었지만 말야.
끝내는 밑천도 바닥나버렸고.
지금은 단순한 놀이상대로 전락해버렸다.
쉣!
생각하면 할수록 분하다!
이번에야말로 잘 해서, 잘만 되면 다 된 밥상의 미처녀다(의미불명).
이성 이성, 신사 신사.
타이치「그거 받아도 될까, 프로이라인?」
유사「후로이라잉?」
타이치「섬머 웁스」
무심코 어려운 단어를 써버린 나 자신을 여름의 감탄사를 사용해 책망했다.
타이치「귀여운 아가씨라는 뜻이야」
소녀의 눈물을 부드럽게 닦는다.
유사「왜 그러세요? 제 눈에 뭐라도 묻었나요?」
안 울고 있었다.
타이치「사랑스러운 아가씨라는 뜻이야」
유사「에……」
태연하게 넘기는 나.
순간 유사의 얼굴에서, 표정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그리고 장미가 피어나는 것을 방물케 하는 새빨간 부끄러움의 빛깔로―――물들지 않고,
유사「엣취!!」
재채기를 했다.
축축한 재채기였다.
유사「아, 죄옹압……아」
마지막의『아』는 민감한 부분을 들키고 나서 무심코 흘려버린 핑크빛 청춘의 숨결은 결코 아니다.
그녀의 눈이 어느 것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흘러나온, 작은 놀라움의 소리였다.
나와 유사의 사이에, 다리가 이어져 있었다.
한쪽 끝은 내 교복, 딱 복부 근처.
다른 한쪽 끝은, 유사의 코.
즉.
유사「하, 하레?」
콧물다리 완성.
점성이 높은 액체가,
주르―륵
하고 늘어져 현수교를 만들고 있던 것이다.
내 추리는 이렇다.
재채기를 한 박자에 맞춰, 튀어나온 콧물탄은 신칸센보다 빠른 초속으로(진짜) 내 교복에 달라붙었다.
접착력이 강한 액체는 마치 총알처럼 소녀의 비강에서 빠져나와 보통의 경우엔 끊어져버리는 접합부분을 운 좋게 이어서, 다리 완성에 이르렀다.
유사「…………」
유사도 간신히 그 사태를 이해한 것 같았다
안색이 새파래진다.
손끝 하나 움직이지 않는다.
아니, 움직일 수 없는 것이겠지.
젊디젊은 처녀가 자신의 콧물을 이성의……그것도 쾌남아에다 긍지 높은 귀공자(착각)인 나의……의복을 향해 발사해버렸으니.
※일부, 부적절한 표현이 있습니다.
자칫 잘못하다간,
『콧물 공주』
『콧물 아가씨』
등등의 지극히 유치하고 잔인함으로 가득 찬 칭호를 수여받을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언제나 놀릴 거리를 찾고 있다.
상대가 약하면 약할수록.
한없이, 한없이.
유사「아우……앗, 이건……저기……」
극도의 긴장에 의한 현상일까.
왕방울만하게 커진 눈동자에, 눈물이 가득 맺혔다.
안돼!
이 아이에게 새로운 트라우마를 줄 수는 없다.
아틀란티스의 피를 계승한 미남 백발왕자가 나설 차례였다.
소녀가 착란 증세를 일으키는 것보다 빨리, 냉정하게 손수건을 꺼냈다.
그리고 우선, 유사의 코 끝을 닦았다.
유사「……우으?」
이상한 소리를 냈다.
뿌리를 끊고 나서, 몇 번 반복해서 코 밑을 닦는다.
그리고 콧물다리를 철거해 가며, 내 교복을 가볍게 문질렀다.
손수건을 주머니에 넣는다. 넣으려 했다.
유사「아, 안돼, 안돼요!?」
타이치「응―?」
유사「그런 더더더더러운, 아, 그건 안돼요, 버리지 않으면, 저, 저기」
유사「새 거 사드릴게요!」
타이치「됐어」
명랑하게 웃는다.
타이치「자, 가자」
유사「그러니까, 저기, 죄송합니다, 그치만 손수건」
이번에는 진짜로, 엄지손가락으로 눈물을 닦아준다.
타이치「내 손수건은 귀여운 후배를 곤란하게 만들고도 참고만 있을 손수건이 아냐」
유사「……!!」
소녀는 큰 충격을 받았다.
타이치「변상은 됐고, 감기엔 조심하는 게 좋아, 유사양」
땅하고 머리를 가볍게 두드리고, 걷기 시작한다.
유사는 멍하게 서 있었다.
타이치「헤이, 학교 가자고, 아가씨」
유사「……하」
유사「네엣」
종종걸음으로 달려 와,
유사「……」
타이치「응?」
내 손을 잡았다.
귀까지 빨개진 얼굴을 숙인 채로.
귀엽다. 무지하게.
손수건 한 장으로 획득한 소녀의 호의가 그렇게 싸구려로 여겨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동시에 그녀와 으쌰으쌰를 해서 내 아이를 낳게 만들고 싶다고 생각해버린 나는 뇌가 썩어버린 게 틀림없었다. 뒈져라, 뒈져버려라.

토오코가 있었다.
뭐랄까, 맨날 일등이네, 이 녀석.
타이치「안녕」
토오코「……(흥)」
쌩?
쌩이십니까.
타이치「팬티……」
토오코「유치하긴」
타이치「팬티 안 살래?」
토오코「왜 내가 네 팬티를 사야 되는 건데!」
책상을 박차고 일어나는 토오코.
타이치「아침부터 뜨겁구나」
엄지손가락을 세운다.
토오코「……」
토오코는 내 엄지를 꽉 잡고, 가로로 꺾었다.
타이치「꺄아아아아아아악!!」
타이치「바보―, 꺾으면 어떡해―! 이러면 디디알도 마음껏 못하잖아―!」
손목을 같이 꺾었기 때문에 괜찮긴 하지만.
토오코「말 걸지 마」
타이치「어제 티비 봤어?」
토오코「말 걸지 마!」
타이치「……음」
말 걸지 말라고 자꾸 그러니, 말 걸고 싶어진다.
말 걸면 또 말 걸지 말라고 하겠지.


ㆍ話しかける (말을 건다)


타이치「어이, 반항기에 접어든 건방진 아가씨」
토오코「하아……?」
타이치「이걸 주지」
샌드위치를 꺼낸다.
뚫어지게 바라보는 토오코.
토오코「뭐야, 이거」
타이치「팥만두」
토오코「웃기지 마! 샌드위치잖아!」
타이치「알고 있네」
타이치「자」

토오코「……그만 해」
손을 채였다.
샌드위치가 떨어졌다.
줍는다.
타이치「밥은 제대로 먹어?」
토오코「너하곤 상관 없어」
고개를 돌린다.
타이치「자기를 걱정해 주는 인간이 자기밖에 없다는 건, 괴롭지 않아?」
토오코「무슨 말 하는지 모르겠는데」
타이치「다른 사람한테 배려받고 싶다」
타이치「마음을 채우고 싶다」
토오코「……」
타이치「나, 조금은 걱정하고 있는데 말야」
찌릿하고 나를 노려본다.
토오코「말은 잘 하네」
토오코「걱정하고 있는 거라면, 왜, 어째서!」
울컥한다.
타이치「……쿠리하라」
토오코「뭐야!」
타이치「안색이 안 좋은데. 생리야?」
짝!
토오코「장난치지 마!」
고함을 지르고, 교실을 나갔다.
타이치「아, 샌드위치……」
한숨.
타이치「……그렇게 좋은 죽는 법은 아닌데」
별 수 없이, 겉을 털어내고 내가 먹었다.

미키「아, 선배―」
타이치「여어」
벽에 기대어 심심한 듯이 서 있는 미키와 조우.
타이치「왜 그래?」
미키「네―, 뭐, 조금」
타이치「?」
미키「어디 가시는 길?」
타이치「옥상」
미키「……혹시, 부활동인가요?」
타이치「혹시가 아니라 역시」
미키「네―……」
미키는 조금
미키「진짜로 부활동, 하시는 건가요」
타이치「따로 할 일도 없으니까」
타이치「그냥 얼굴만 내미는 거지만 말야」
미키「……」
타이치「같이 갈래?」
미키「아―, 지금은 좀……」
그 때.
근처의 여자 화장실에서 한 명의 소녀가 나왔다.
사쿠라 키리.
FLOWERS의 또 다른 한 명.
단발의 조금 중성적인 여자아이.
키리「…………」
키리는 힐끗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무시했다.
키리「기다렸지?」
타이치「안 녀 엉」
키리에게 국어책 발음으로 인사했다.
키리「……안녕하세요」
내키지 않은 듯 인사를 했다.
당연하겠지.
왜냐면, 난 키리한테 무지하게 미움받고 있으니까.
하지만 미움받는 만큼 오히려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가 없다.
타이치「오늘은 무지하게 덥네요. 역시 이것이―――」
키리「가자, 미키」
미키「키리, 매정해……」
타이치「응, 가자―」
양손을 말괄량이(닭살)처럼 펼치며, 두 사람과 나란히 걷는다.
키리「……쿠로스 선배」
타이치「왜?」
멈춰 선다.
키리「미키하고 갈 건데요」
타이치「그치만 FLOWERS는 트리오, 일심동체잖아」
키리「……칫」
혀를 찬다.
우와아……
뭔가 두근거린다.
타이치「키리, 다음에 데이트 하자. 요즘 재밌는 영화 하고 있더라」
키리「……더위라도 먹으셨나요, 쿠로스 선배」
키리「놀리는 건 그만두세요. 지금부터는 무시할 테니」
타이치「어라」
애초에 진짜로 놀릴 생각은 없었다.
이 정도로 해 둘까. 오늘은.
달콤한 것은 조금씩 핥을 때 더욱 감미로운 법.
한번에 먹으면 질려버린다.
먹는다라?
타이치「이런! 변태!」
내 옆머리를 때렸다.
키리가 의아한 얼굴로 나를 보았다.
그것도 잠시.
키리「가자……왜 그래?」
미키「……배가」
키리「아파?」
타이치「아파?」
미키「아, 찰떡궁합……」
키리「……칫」
키리가 째려 보았다.
……에휴휴.
미키「내가 죽어도……두 사람 다 싸우면 안 돼……윽……」
타이치「미키―! 미키, 안 돼, 아직 죽지 마! 네가 없으면 누가 내 아이를 낳아 준단 말이냐!」
미키「키리가……팍팍 낳아 줄 거예요……」
희소식.
타이치「진짜!?」
키리에게 다가간다.
키리「……미키, 장난은 그만 해」
미키「아잉, 화났어?」
키리「이제 도시락 반찬 안 바꿔 준다」
미키「그것만은 제발―!!」
달라붙는다.
타이치「……결국 꾀병입니까」
미키「아뇨, 배가 아프다는 건……그러니까 즉……정신적인 이유로」
미키「에이 씨, 사이좋게 좀 지내라 니들―」
울었다.
타이치「응, 나? 내가 원인이야?」
미키「샌드위치 재료들의 마음을 생각해 보세요」
타이치「세 개……양손에 꽃?」
차마 3P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타이치「아아, 아닌가……빵이 남자라는 비유니까, 이건 이른바 두 구멍에 동시에 한다는 그것―? AV에서도 거의 본 적 없는 시츄에이션―!」
男女男.
코피날 것 같다.
미키「안되겠네, 이 솔직 외계인」
키리「……미―키」
미키「네네. 그럼 선배, 못 가서 미안해요」
타이치「응, 나도 잠깐 얼굴만 내미는 거니 뭐」
미키「그럼 저희들은 이만」
나는 펜싱 자세를 취한다.
타이치「키리, 지금은 미키를 넘겨주지만……머지않아 반드시 돌려받고야 말겠다」
미키「꺄―악, 삼각관계의 히로인~♪」
키리「……」
무시.
그대로 성큼성큼 떠나간다.
미키가 남아서, 나에게 살짝 귓속말을 남긴다.
미키「……키릿찌도 나쁜 애는 아닌데……죄송해요……」
타이치「됐어」
미키「그 대신, 미키가 그 만큼 선배님을 좋아하니까요」
타이치「오?」
미키「언젠가 키리찡하고 화해해서 성희롱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네요―――」
키리「미키, 빨리!」
미키는 움찔했다.
미키「으히―, 그럼 이만」
타이치「바이바이」
종종걸음으로 키리와 합류함과 함께, 멀어져 가는 두 사람.
방금 그건 나름대로 키리를 생각해서 한 말이었겠지.
웃음이 나온다.
두 사람의 등에 대고 외친다.
타이치「아―, 두 사람 다」
멈춰 섰다. 돌아본 것은 미키뿐이었지만.
타이치「부디 몸 조심」
미키가 활기차게 손을 흔들고, 키리가 힐끔 째려보았다.

안테나의 설치는 전혀 진행되지 않은 듯이 보였다.
타이치「선배?」
미사토「……으응, 으으응?」
타이치「아침부터 자면 어떡해요」
미사토「으응, 안 잤어요」
비틀비틀 몸을 일으키는 선배.
미사토「우선 안녕하세요」
타이치「안녕하세요, 선배」
타이치「한낮에 여기서 자면 햇빛 받아서 죽을 걸요?」
미사토「아, 네, 그렇겠네요, 조심할게요」
치맛자락을 잡아 올려 안경을 닦는 선배.
……팬티 보인다.
잠이 덜 깼습니다, 이 사람.
설마 밤 샌 건 아니겠지?
그걸 물어볼 용기는 없었다.
통통한 허벅지.
요즘 일본의 분위기는.
전 세계적인 규제&풍조에 대항한 일단 로리 닥치고 로리.
일부 미디어 컨텐츠에서는 로리가 등장하지 않는 것 자체가 용납되지 않는 듯하다.
이 쿠로스 타이치, 그런 세상에 한 마디를 던진다!
(그림 ― 로리콤은 병입니다.)
그것은 병입니다.
어린아이도 귀엽지만, 이 허벅지와 옅은 하늘빛 팬티 또한 좋은 것이다.
미사토「냐암……」
안경을 닦으며 하품을 참는 선배.
순수하다.
순수한 선배의 모습이다.
치마가 사르릉 원 위치로 돌아갔다.
선배는 안경을 고쳐쓴다.
미사토「졸려요……」
타이치「그렇네요」
미사토「으―음, 제가 뭘 했었죠?」
타이치「일 주세요」
미사토「왜 뒤돌아서 말해요?」
타이치「입체적인 문제에 의해서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미사토「철학적, 아주 철학적이네요」
실은 무지하게 육체적이고 저속한 이유입니다만.
타이치「부활동하러 왔으니까, 일 주세요」
미사토「아잉……」
선배는 투덜투덜 불평했다.
귀를 기울여 보았지만, 뭐라 하는지 잘 들리지 않는다.
단편적으로,
미사토『고민했던 게 바보같아』
미사토『도망쳤던 게 아니라』
미사토『강아지같아』
미사토『잘 따르는 게』
미사토『별로 방해되는 건』
미사토『사귀는 대상으로는』
미사토『역시 내가 연상이고』
미사토『딸꾹』
마지막은 딸꾹질이었다.
뭔가 이상한데?
언제나 살짝 이상한 면이 매력적인 레이디지만, 오늘은 너무 망가져 있다.
타이치「서, 선배?」
미사토「원고……」
타이치「뭐라고요?」
미사토「원고―해 주세요―」
풀린 눈동자로 그렇게 말한다.
타이치「원고가 뭔데요?」
미사토「군죠학원 방송부 첫 회 방송분 원고예요」
타이치「아아, 저 안테나로 날릴 방송용 대본 말인가요」
미사토「그렇습니다. 필요한 것은 지성과 감동, 눈물과 진실, 듣는 사람의 귀를 한없이 상쾌하게 해 주는 옛 젊은이들의 건전한 문화의 재림을 우리 방송부의 손으로 아니 목소리로 실현시켜 보지 않겠습니까!」
선배의 발 밑에 술병이 잔뜩 널려 있었다.
타이치「오오오오오오오옷!?」
미사토「도덕성의 결여, 지나친 이기적 개인주의, 자신의 나태한 생활을 위해 이용되는 기본적 인권, 이러한 위기들로 인해 오염되고 있는 현대 사회에―――」
미사토「우리 젊은이는 서로간의 건전한 교우관계를 쌓아올릴 수 있는 것일까요? 우리 군죠학원 방송부는, 이 의문에 대해 만족할 만한 대답을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타이치「일본어 잘 하시네요」
미사토「후후훗……」
웃었다.
쥐고 있던 주먹이 흐느적흐느적 허공을 헤매고, 주머니로 들어갔다.
나왔다.
컵 하나를 쥐고서.
타이치「아―아―아―……」
이미 뒤죽박죽이었다.
꿀꺽꿀꺽 마시는 선배의 모습이, 다시금 멋져보였다.
완전히 아저씨다…….
미사토「원고―를, 쓰세요」
반쯤 풀린 눈으로 말한다.
타이치「네, 네에……」
미사토「마감은 일요일입니다」
타이치「네」
미사토「좋아!」
미사토「쿠럼 져는, 원Go를 쑤Get다고 한 당시늘 밋고, 여귀서 쟘See 쟘을 쟈도Lock 하궸쑵뉘―다」
타이치「우짜서 외국인?」
미사토「우―」
바닥에 누웠다.
타이치「니 뭐하노!」
미사토「크흐흐흐흐흐흐흣」
타이치「선배, 선배도 참」
미사토「쿨러덩―」
자고 있나.
그 성실한 선배가 술을…….
타이치「저기, 일단……양호실로 가서 자요」
미사토「페케군, 부탁군……」
부탁해요를 의인화한 말로 선배는 모든 것을 방폐했다.
타이치「정말, 제가 안고서 데려다 줄까요?」
미사토「ZZZ……」
타이치「가슴하고 엉덩이 만져버립니다?」
타이치「일어나면 팬티가 없어져 있을지도 몰라요?」
타이치「일어나면……뭐랄까 오바타가 싸아―하네, 무슨 일일까……어맛, 나 팬티 안 입고 있잖아? 어떻게 된 거지?
뭔가 응큼한 짓 해버린 걸까? 거짓말……그런……싫어……앗, 젖어버렸어……어떻게 된 거지, 나」
타이치「어떻게 된 건 나잖아―!」
내 옆머리를 때렸다.
타이치「쳇……」
어쩔 수 없는 사람이다.
일단 선배의 상체를 일으킨다.
삐걱.
목이 푹 기울었다.
진짜로 자고 있다.
타이치「……아아아, 어쩐지……어쩐지 이상한 기분이……」
꼬옥
안겼다.
내 가슴팍에서 일그러지는 풍선 두 개의 감각.
타이치「감동했다」
다음 감동은…….
등 뒤를 부비적부비적 뒤진다.
브라 후크 발견.
푼다 (소요시간 0.5초).
브라 자체를 벗기고 가슴팍 사이로 슬슬슬― 당긴다.
그 피부에 코 끝을 갖다 댄다.
좋ㆍ은ㆍ향ㆍ기
타이치「……간호비 확실히 받았습니다, 미사토 선배」
브라를 주머니에 넣고, 선배를 업는다.
느리적느리적.
하지만 딱 알맞게 올라 탄 두 개의 감촉이 견디기가 힘들었다.
특히 가슴이.
속옷을 벗긴 생가슴.
콧김도 난폭해지고, 텐트도 구축되었다.
텐트 맨의 탄생이었다.
타이치「자, 가자」
어차피 볼 사람도 없다.

안되지안되지.
등에 닿는 감촉이 너무나 멋져서, 무의식중에 학교 안을 일주해버렸다.
자.
양호실에 사람은 없다.
빈 침대에 선배를 눕힌다.
타이치「안녕히 주무세요 선배, 부디 좋은 꿈을」
타이치「……」
물컹
타이치「자 그럼」
비로소 하루의 시작.
……아냐, 이번엔 볼 만졌다구?

변함없이 무츠미 아줌마의 모습은 없었다.
대신에 메모가 놓여져 있었다.
『저녁이 없는 것도 아냐』
타이치「가자가자~」
헐레벌떡 집을 나온다.

밤에 덥지 않은 게 시골의 좋은 점이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은 적당히 시원하고, 촉감도 부드럽다.
오늘은 쓸 것이 잔뜩 있다.
일기는 물론, 원고도 써야 된다.
원고부터 끝내자.
타이치「……흐―음」
첫 회 방송에 어울리는 문장, 이라.
타이치「…………」
어려워.
쓰고 지우고, 또 쓰고 지우고.
일진 일퇴의 공방.
한 시간 후, 책상에 푹 엎드린다.
어이어이, 쓴 게 두 줄뿐이잖아.
『우리들은 군죠학원 방송부다. 이 방송실은 지금 우리들이 점거했다. 전원 신속히 무장을 풀고―――』
타이치「안돼안돼!」
원고용지를 찢어버린다.
개그를 너무 의식한 덕분에 취지에서 완전히 빗나가버렸다아앗!
진지하게 가자.
조금 미묘한 재미를 첨가하려 하면 이상해져버린다.
타이치「그냥 접자」
오늘밤은 쓸 기분이 아니다.
일기를 쓰자.
감정을 객관화시켜 보자!
카레빵의 카레를 밥에 뿌려먹기 시작한 것은 누구일까?
그런 의문이 언제나 나를 차위한다.
※차위한다=타이치의 오타. 괴롭힌다는 뜻을, 어떠한 차이에서 느껴지는 위화감이란 뜻의 줄임말과 연결지어서 생긴 논리적인 착각.
타이치는 그와 비슷하게 터틀넥을 토탈넥으로 잘못 알고 있어서, 목을 토탈(total)로 덮기 때문에 토탈넥인 거라고 지금도 굳건히 믿고 있다.
알려지지 않은 길을 몇 번이나 반복해서 왕복(往腹)한 듯한 하루의 끝에 아련하고도 허무한 감정이 느껴진다.
※왕복(往腹)=타이치의 오타
보들레르는 말했다.
『신은 죽었다』고.
신의 존재를 의심하는 것은 간단하지만, 신의 장난이라는 것은 실제로 존재해서 불시에 인생에 닥쳐 와, 매일 다니는 길과도 같이 직신적일 것이라 믿고 있던 인생에 갑작스럽게 분기점을 벌려고 한다.
※벌려고=타이치의 오타
예를 들어 교실에서, 고집스러운 여성과 무모한 대화를 펼쳤을 때처럼.
※무모=불필요의 착각
예를 들어 복도에서, 사이 좋은 친구와 사이가 소원한 친구 두 사람을 동시에 만났을 때.
그리고 또 그 두 사람이 우호적인 관계를 쌓고 있을 때.
나는 그 어느 쪽에 대해서도, XXX(지워져 있다)의 높이 솟아오르는 기상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소녀들이 동등하게 가지고 있는 신비의 XXXX로 XXX에 코를 대고 입을 대어 XXXX한 끝에 더할 나위 없는 사랑과 함께―――
느껴지는 XXX를 XXXX하는 것에 대해서는 XXX한 끝에 XXXXXXXXXXXXXXXXX가 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이것은 키르케고르의 명언.
키리양의 그윽한 중성미와 그에 대한 나의 정당한 열정에 대한 언급은 이쯤 해 두자.
인생의 기쁨은 이것뿐만이 아니니까.
그래.
옥상에서 만난 내 인생의 선배이자, 어머니와 같은 포용력으로 만물을 사랑으로 대해 주는 미사토양에 대해서는 아무리 써도 사복은 그치지 않는다.
※사복=타이치의 오타
우선 뭐니뭐니해도 허벅지부터 (이하 검열)
그리고 나의 손에는, 그녀의 몸에 달려 있던 가슴가리개가 남았다.
이미 체온이 없어진 그것을 코에 대고 호흡을 한 순간, 은은한 소녀의 스멜(smell)은 나를 눈 깜짝할 사이에 환상적인 환상 속으로 데리고 갔다.
~FIN~
다 썼다.
시적 센스가 넘치면서도 철학적.
예술의 도시 런던에 태어났었더라면 스타텀에 오를 것이 확실한 문학적 재능이었다.
아니 뭐, 그냥 어려운 말을 쓰는 것만으로도 분위기 잡는 건 쉬우니까.
term이라던지 tautology라던지 irony라던지, 그런 전문 용어도 결코 평이한 일본어로 번역하지 않고 모두 사용해야 한다.
타이치「음」
기지개를 피며 릴렉스한다.
작가라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현대 일본에는 너무 과격해 자체 검열한 부분도 있지만.
그래, 원고도 이런 식으로 가자.
현학적으로 치장한 현란한 그림 두루마리를 전면에 내걸고, 지식인 계층을 대상으로 한 고상하고 섬세한 원고를 만들어 보이겠어.
불끈 솟아나는 의욕으로 다시 펜을 잡았다.


교실에 오자, 아무도 없었다.
언제나 자리에 뾰루퉁하게 앉아 있던 토오코의 모습은 없었다.
타이치「자, 그럼」
신발에서 원고용지를 꺼냈다.
원고는 하룻밤에 다 끝냈다.
빨리 선배한테 보여주고 OK를 받자.
옥상으로.

미사토「페케군」
의혹의 시선에게 마중을 받았다.
타이치「이런, 부장님」
타이치「왜 당신은 가슴팍을 가드하고 있는 거죠?」
미사토「……그건……」
얼굴을 붉혔다.
미사토「저기, 저 어제의 일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데요」
타이치「그렇겠죠」
미사토「서, 설마설마」
타이치「왜, 왜 그러세요?」
시치미를 뚝 뗀다.
미사토「…………」
고개를 숙이고 고뇌하는 선배.
그러나 가슴을 가린 팔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타이치「그보다 저쪽으로 가죠」
선배의 손목을 잡고, 당긴다.
미사토「꺄악!?」
비명을 지르는 선배.
미사토「안돼애애애」
타이치「헤?」
미사토「희……」
타이치「희?」
미사토「희, 희……」
미사토「희생양」
타이치「희생양」
머리 속에서 양이 한 마리 나와, 풀숲으로 돌진했다.
미사토「희생양이 되는 건 싫어요」
타이치「저도 싫어요」
미사토「정신을 바짝 차려야겠네요」
타이치「네에」
타이치「그치만 저, 선배를 희생양으로 삼고 싶었던 건 아니라 그늘로 옮기고 싶었던 것뿐이에요」
미사토「앗, 그런가요, 그럼 그러죠」
간단하군.
이동.
타이치「근데 선배, 어제 술 마셨었죠?」
미사토「아, 에, 아」
미사토「……죄송합니다」
위축되는 선배.
타이치「대단했어요」
미사토「설마 저……취해서……대담한 짓을?」
좋아, 걸렸다.
타이치「네, 그게 말이죠 차마 입에 담기조차 힘든 파렴치 플레이를」
미사토「하읏!?」
선배의 눈이 긴 가로선『X』마크가 되었다.
초 당황 상태다.
미사토「아아아앗!」
타이치「하지만 부디 안심하시길. 제가 잘 처리해, 다른 사람 눈에 띄지 않도록 정리해 두었습니다」
미사토「……아아, 그랬군요……정말 고마워요」
조금은 석연치 않아하면서도, 선배는 고개를 숙였다.
미사토「그런데 저, 도대체 어떤 추태를……」
타이치「듣고 싶어요?」
미사토「……」
망설임.
타이치「뭐하면 제가 책임을 질까요?」
미사토「네?」
이번엔 눈이 점이 되었다.
타이치「아니, 만약 들어버리게 되면 그러고 싶은 기분이 드실 것 같아서」
미사토「하와와왓」
타이치「아니, 냉정하게 생각하면 별 거 아니에요」
미사토「그, 그래요?」
타이치「듣고 싶어요?」
긴 시간 동안, 선배는 눈을 내리깔고 생각하고 있었다.
미사토「…………음」
타이치「정말로 별 건 아니에요」
타이치「저쪽의 안테나용 철사를 써서, 잠시 전라 림보 댄스 촬영회를 이렇게」
미사토「끝났다」
풀썩, 하고 쓰러졌다.
미사토「삼가 춘면(春眠)께, 그 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가공의 편지를 읽었다.
타이치「선배, 정신차려요」
미사토「……이 이상 인생이 나빠지게 될 거라곤 생각 못했었어요……」
타이치「잘 처리했다니까요」
미사토「그래서……브라가……」
타이치「혹시, 집에 못 간 거예요?」
선배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타이치「그럼, 지금은……눈 떴을 때 그대로란 거예요?」
다시금 끄덕.
타이치「그럼」
꿀꺽, 하고 침을 삼킨다.
선배의 지금.
저 얇고 잘 비치는 셔츠 속은.
알몸, 알모오오옴.
오오오오소오오오오옥은알모오오오오오옴!!
……근데, 그러고 보니 세상의 모든 여자의 옷 속은 알몸이지.
뭐, 요컨데……노브라란 것이다.
선배, 꽤 큰 편이니까.
셔츠가 빵빵한 게, 눈에 잘 띄는군.
과연, 어쩐지 좀 이상하더라.
타이치「우선 집에 가서 샤워라도 하는 게 어때요?」
미사토「냄새 나요?」
미사토「학교에서 몸은 대충 씻었었는데……」
아, 좋았을 텐데―, 그 시츄.
일찍 일어났으면 볼 수 있었으려나.
난 어째서 그런 이벤트를 겪을 수 없는 걸까나.
그런 점이 모자라단 말야. 에이로 실격이야.
※에이로=타이치어. 에로 방면에서의 영웅적 존재.
타이치「선배, 저한테 맡기세요」
미사토「?」
나는 교실로 돌아갔다.
가방에서 스포츠 타올을 꺼냈다.
타이치「이걸로 대신하면 되겠죠?」
건넨다.
미사토「페케구운」
감동한 듯 울먹이는 선배.
타이치「무명 천 있잖아요? 그런 느낌으로 두르면 안 비칠 거예요」
미사토「정말 착한 아이구나……」
눈물을 글썽이며, 타월을 받아 든 선배.
미사토「잠깐 기다려주세요. 움직이면 안돼요」
타이치「네―에」
선배는 그늘로 사라졌다.
확 엿보고 싶은 기분도 있었지만, 참았다.
타이치「……」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튀어나온 유방의 끝, 두 알의 산딸기와도 같이「튀어나온」그 봉우리 끝은…….
타이치「아아아아, 바보바보바보! 나 바보!」
몇분 뒤.
미사토「어머나, 페케군, 안녕하세요!!」
겁나게 상쾌한 표정으로 나타났다.
가슴이 흔들흔들,
미사토「오늘도 여름이군요. 아직 더위는 계속될 것 같네요」
타이치「저, 정말 그렇군요」
미사토「그런데, 오늘은 아침부터 무슨 일이에요?」
타이치「어제 의뢰받은 원고를 드리러 왔어요」
미사토「원고? 첫 회 방송용 대본, 써 준 건가요?」
타이치「네」
미사토「페케군, 대단해요. 다시 봤어요」
선배의 표정은 호의와 감탄으로 가득 차 있다.
타이치「아니 뭐~」
나는 꽈배기처럼 꿈틀거렸다.
미사토「볼 수 있을까요?」
타이치「이것입니다」
미사토「그럼」
원고용지를 건네준다.
선배의 눈동자가 순간 진지해진다.
선배의 시선이 가볍게 용지 위를 지나갔다.
타이치「……」
잠시 후.
선배는 고개를 들었다.
만면에 미소. 비유하자면……성모.
성모 강림.
후광을 등에 짊어지고, 그녀는 말했다.
미사토「즐」
타이치「워우―――――――――!!!」
철창에 대고, 나는 거리를 향해 짖었다.
타이치「다시 해 오겠습니다……」
미사토「기대할게요」
맥없이 교사로 내려간다.
타이치「아, 맞다맞다, 타올은 꼭 빨지 말고 돌려주세요」
미사토「네?」
하고 선배가 목을 갸우뚱한 순간.
세워져 있던 여러가지 자재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타이치「OH! 데인져러스!!」
미사토「에?」
이대로는 늦는다!
사다리와 철사, 공구……그런 것들이.
일제히 선배에게 쏟아진다.
쏟아진다―――

미사토「……음……」
선배가 일어났다.
타이치「다행이다……무사해서……걱정했잖아요」
미사토「저 분명히」
타이치「훌쩍, 별 일 아니라 정말로 다행이에요……」
타이치「누나」
미사토「아니에요」
타이치「슬프군요」
원 상태로 돌아온다.
미사토「상황을 알려주세요」
타이치「선배가 다쳤습니다」
타이치「응급처치를 위해 여기로 이동」
타이치「그리고, 방금 정신을 차림」
미사토「다쳤나요, 저?」
타이치「조금요」
미사토「으음……?」
전신을 뒤척이는 선배.
팔에 감겨 있는 붕대.
여기저기에 붙여진 반창고.
미사토「아야야얏, 몸이 아파요……」
타이치「전신에 가벼운 타박상을 입었으니까요」
미사토「……둔한 나」
타이치「크게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에요」
미사토「……고마워요, 페케군. 떨어지는 거 알려 줘서」
타이치「뭘요」
미사토「그럼, 바로 부활동을……」
타이치「이런이런, 움직이지 마요」
말린다.
미사토「왜요?」
타이치「일단 큰 상처는 없지만……」
슬며시 시트를 넘기고, 치마도 넘겼다.
통통한 허벅지가 노출되었다. 통통.
미사토「……………………」
타이치「봐요, 이 통통한 허벅지가 군데군데 찔렸단 말예요. 그러니까 오늘은 부활동도 그만 하고 푹 쉬세요……」
미사토「하후하후」
뻐끔뻐끔 입을 벌린다.
타이치「우앗, 피가 새네요」
피.
타이치「붕대 갈아줄까요?」
고개를 끄덕끄덕.
붕대를 가져와 갈아낀다.
타이치「아니―, 그건 그렇고」
타이치「다리가 참 섹시하시네요」
미사토「제가 할게요」
타이치「어, 안 돼요. 저한테 맡기세요」
미사토「부, 부탁이니까……」
타이치「그치만」
허벅지를 본다.
피가 새고 있다.
큰일이다.
타이치「그치만」
이렇게 아름다운 피가.
흘러나와버리다니.
붉은 피.
피. 피.
현기증을 느끼고, 눈을 감았다.
뜬다.
아아…….
세상은 언제나 애매하다.
거머리들은 만지는 것만으로 붉어진다.
간단하다. 간단한 일이다.
모든 감각이 예민해지고,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게 된다.
가시광선의 폭이 변한다.
시야가 흐릿해지고, 움직이는 것을 민감하게 감지한다.
갑자기 내가 누구인지를 잊어버렸다.
의식이 사라지는 감각.
몸을 움직였다.
신체 감각이 애매하다.
어디부터가 내 몸이고, 어디까지가 내 몸인지 모르겠다.
시야의 중심에 있는 붉은 점.
접근해 본다.
노이즈.
무슨 현상이 일어난 것 같다.
자세한 건 모른다.
체감할 수 없다.
세상과 일체화된, 전지전능한 감각만이 전부다.
노이즈.
뭘까, 이건.
세상 속에 있는 이질적인 것.
붉은 점.
아아.
아아, 알겠다.
나는 착각하고 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정상이라고 일방적으로 정의하고 있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그 모순이, 시야의 구부러짐과 일그러짐을 가져온다.
나올 기회를 얻은 내 안의 짐승이 희열에 몸을 떨었다.
현세와는 다른 법칙ㆍ충동ㆍ배열에 따라 본능을 구축한 짐승이다.
타이치「www^√레vvww^√~~」
나는 소리를 냈다.
노이즈.
이건……뭐지?
의식을 집중시켜라.
알아들어라.
해독해라.
짜맞춰라.
정의해라.
그래.
이건 소리다.
내가 내는 목소리와 같은 종류의 파동.
의식이 수습된다. 소리라는 것만 알면, 해석하기도 쉽다.
***********
미**********
미사토*케****ㄴ?*
미사토「페*…**ㄴ?」
미사토「페케…*군?」
미사토「페케……군?」
아아, 맞다.
미야스미 미사토.
선배다.
선배의 말.
선배의 붉은색이었다.
미사토『항상 혼자네요』
그러므로.
미사토『같이 부활동 하지 않을래요?』
공격을, 금한다.
타이치「정신차려!!」
미사토「왓」
세계가 원상태로.
타이치「…………응」
두통이 난다.
타이치「내참―…….」
하필 이런 타이밍에.
피와 석양의 조합은 정말로 좋지 않다.
울 것 같다.
타이치「내참―, 난처하네요. 와하하」
미사토「흐흑」
마이 비너스, 선배가 울고 있다.
타이치「누구야! 선배를 울린 자식이, 당장 나와!」
도수공권 자세.
타이치「내 가라데를 먹여주지!」
미사토「흐흐흑」
타이치「선배, 누가 그랬어요!?」
선배는 나를 가리켰다.
타이치「나를 때리는 건 너무나도 어려운데―!!」
미사토「페케군? 페케군?」
타이치「아……네?」
미사토「아, 평소의 페케군으로 돌아왔다……」
타이치「영원히 당신의 왕자이길 바라는 타이치입니다」
무릎을 꿇는다.
타이치「제 가라데를 보여드릴까요?」
미사토「가라데니 뭐니 격투기 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없는데요……」
미사토「방금 전 페케군, 로보디안처럼 변해서 무서웠어요」
※로보디안=미사토어. 로봇이란 뜻.
타이치「타이치 로봇인가요?」
미사토「그런 느낌이에요」
타이치「잠시 착란증세가 있었어요」
미사토「……이제 괜찮아요?」
선배는 그 이상 깊게 물어보진 않았다.
타이치「네, 듀얼 부팅된 마이 OS의 체인지는 이미 퀵하게 디 엔드되었습니다」
미사토「하시자키 선생님한테 페케군은 영어 성적이 엉망이라고 들었어요」
타이치「그거보다 선배, 빨리 피를」


ㆍしない (처치하지 않는다)


미사토「뭐, 이런 긁힌 상처 정도야 괜찮아요」
타이치「어, 피가 꽤 많이 나는데요?」
미사토「매달 더 많이 출혈하는데요」
타이치「풉~~~~~」
나는 고전적으로 코피를 흘렸다.
미사토「꺄아―!」
타이치「소꿉친구였던 여자아이가 초경을 맞이했을 때, 그쪽 계열 연애 만화였다면 생생한 이벤트 한두 개 정도가 있을랑 말랑하죠!!」
의식이 어두워진다.
쿠당
미사토「어, 어라? 페케군?」
미사토「저기, 여보세요―!」
그리고.
눈을 뜬다. 하얀 방. 양호실이다.
침대에 뉘여져 있었다.
타이치「그런가……미사토 선배의 초경 이벤트가 일어나서……」
※전혀 아닙니다
타이치「으―음」
날 침대에 눕혀 준 것 같다.
그런 가느다란 팔로.
타이치「아―, 쪽팔려」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타이치「선배의 냄새가 나……」
스―파―스―파―
스―파―스―파―
스―파―스―파―스―파―파― (※슈퍼 인간 쓰레기)
※슈퍼와 스파를 헷갈리셨어요 사모님!!

토모키「타이치―」
복도를 걷고 있으니,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다.
타이치「오, 아직 있었냐?」
토모키「너야말로」
토모키의 얼굴이 가면처럼 보였다.
미묘한 거리를 두고 있는 두 사람.
타이치「부활동하고 있었다」
타이치「요즘 부활동 하고 있걸랑」
토모키「……왜 또?」
타이치「아니, 목적이 있는 건 좋잖아」
토모키「부활동이라면 그 허접한 거?」
군죠학원 방송국의 개국.
타이치「허접한 거 아냐, 아마도」
토모키「타이치가 그런 걸 하다니……뭐랄까, 뭐, 다 이유가 있겠지만 말야」
토모키「또 누구누구 하고 있어?」
타이치「부장」
토모키「……끝?」
타이치「응」
토모키「그거 부활동이 아닌디유……」
타이치「부활동이라 생각하면 어쨌든 부활동이야」
토모키「……요즘 여러모로 바쁘게 움직이는 건 알고 있었지만, 부활동이라」
어깨를 으쓱였다.
타이치「그러는 너야말로. 지금까지 뭐 했냐?」
토모키「부활동」
타이치「와하하」
타이치「……저기, 뭔 말이슈?」
토모키「진짜 부활동」
토모키「한가하면 이쪽으로 와」
타이치「그것도 좋지만……」
토모키「……배신당할 걸」
불쑥 말했다.
타이치「누구한테?」
토모키「부장한테」
타이치「왜?」
토모키「그러니까, 너무 친하게 지내지 않는 게 좋아」
등을 돌리고, 토모키는 떠나간다.
상태가 좀 안 좋아 보이는데.
무슨 일이지?

귀로.
얌전했던 매미들이, 다시 시끌시끌 울기 시작했다.
신카와「어―이」
타이치「음……오오, 타니자키!」
신카와「코노스! 잘 지냈냐」
타이치「아아, 이 코노스 타이치, 비록 면허정지를 먹었지만 건강만은 넘쳐나지」
신카와「그건 이 타니자키 유타카도 같은데?」
타이치「간만에 보는구나, 타니자키」
신카와「그래, 코노스」
타이치「타니자키는 학교 언제부터 와?」
신카와「일단 내일부터야, 코노스」
손에 든 A4 봉투를 휙휙 흔들었다.
학교 관계 서류일 것이다.
타이치「오, 우리 반으로 와라 타니자키」
신카와「코노스, 억지부리지 마. 내가 결정하는 게 아니잖아」
타이치「와하하」
신카와「하하하」
둘이서 박장대소한다.
타이치「근데 말야 타니자키―――」
신카와「……OK 항복이다! 신카와 유타카입니다, 죄송했습니다 쿠로스씨」
타이치「아아, GG냐?」
신카와「계속 할 것 같았으니까」
타이치「집에 가는 길?」
신카와「응」
타이치「어때, 우리 집 놀러올래?」
신카와「가까워?」
타이치「여기서 10분 정도」
신카와「좋은 데 사네. 근데 미안. 다음 번에 갈게」
신카와「사촌 여동생이 말야―, 걔도 군죠 다니는데, 여러가지 가르쳐 주고 있어」
나의 귀,
그런 정보,
놓치지 않는다(훗).
신카와「왜 엄지손가락 세우고 있어?」
타이치「헤이, 거기 Guy」
신카와「뭐, 뭐야?」
타이치「진짜 미안. 사촌 여동생, 이란 말이 들려버렸어」
신카와「그러신가요 아저씨」
타이치「나이는?」
신카와「나보다 한 살 연하」
타이치「사진 있어?」
신카와「……쿠로스?」
타이치「아아, 아냐, 아무것도 아냐. 잊어 줘」
타이치「근데 참, 한 살 차이면 귀엽겠네」
신카와「응―, 뭐, 겉보기만은」
타이치「젠장할」
자연스럽게 목소리가 깔아졌다.
부러움과 질투와……증오로.
신카와「앙?」
타이치「아냐, 혼잣말」
신카와「……그래도, 조금 남자애 같아서 말야」
신카와「굳이 말하자면, 그런 감정은 없어. 뭐랄까 그런 눈으로 보려고 해도 좀 거북하기만 하고」
타이치「좆까지 마―!」
신카와「왓, 뭐야 갑자기」
타이치「그딴 건 구라야! 넌 구라쟁이다! 귀여운 연하의 친척이 있는데? 의식 안 할 리가 있냐! 넌 프랑스 서원 한 권도 안 읽어봤냐!? 말도 안 돼―! 웃기지 마―! 따라서 네가 구라쟁이라는 것이 증명되었다!」
신카와「쿠로스……애석하지만 진짜야」
타이치「싫어, 듣고 싶지 않아!」
신카와「진짜로 여동생 같은 거야. 같이 살고 있고」
동거!?
같은 침대!?
이성의 따스함!!??
타이치「이, 이봐, 그 시츄에이션에는 분명히 누군가의 엄청난 의지가 개입하고 있을 거야」
신카와「……또 야리꾸리한 착각하고 있냐―」
신카와「그 녀석 집에 내가 얹혀살고 있는 거야」
신카와「그러니까 뭐, 남매 같은 거지」
신카와「이번에 아주 이쪽으로 이사했어. 내 다리 문제도 있지만, 그 녀석도 조금 그거라 말야」
타이치「아아……」
그런 일인가.
한번에 납득.
그래서 둘 다 군죠에 다니는 건가.
타이치「어라, 그러면 자넨 동생양을 위해 따라서 전학 온 건가?」
신카와「그렇게 되는 건가. 아니, 나도 뭐 장애자긴 하니까」
신카와「그리고 친동생은 아닌데요……」
타이치「다정한 오빠구먼, 이봐」
신카와「저기, 사촌동생 사정 때문에 따라온 것뿐인데요?」
타이치「선망을 받는다는 것은 그런 거야」
신카와「그런가~? 계속 같이 살면 말야, 생리적인 문제 같은 걸 다 아니까 좀 그렇다고?」
타이치「뭐가 그래?」
신카와「겉모습은 예쁠지도 모르겠지만, 단점이 군데군데 보이니까 별로 예쁘게 보이지 않는다고나 할까?」
신카와「먹는 건 먹고, 나오는 건―――」
타이치「아, 그 다음은 됐어. 꿈은 소중히 간직하고 싶으니까」
신카와「……네 꿈이 뭔데」
타이치「너하고 체인지를 해서 동생양과 으쌰으쌰를 하고 싶다는 것」
신카와「우왓―, 상상만 해도 기분 나쁘다」
타이치「현실적으론 무리지만……」
진짜로 기분 나빠하고 있다, 이 녀석.
에로소설 만세.
타이치「그럼 다음에라도 놀러 와」
신카와「알았어―, 사촌동생도 소개해 줄게」
타이치「진짜?」
나는 부들부들 떨었다.
신카와「……별로 예쁘진 않으니까……너무 기대는 하지 마라?」
별로 예쁘진 않다.
그렇게 말한 녀석의 눈이 썩은 동태 눈깔 수준이었단 건 나중에 밝혀지게 된다.

타이치「……자아」
원고가 있다.
이걸 다 채우려면 어떻게 공략해야 될까.
손이 움직이지 않는다.
펜도 움직이지 않는다.
정체.
타이치「음―음음음」
그래.
장롱 안에서 기모노를 꺼내 갈아입는다.
타이치「……문호 강림」
기분이 중요한 거니까.
그런 짓을 하는 참에.
토모키「어―이!」
현관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타이치「뭐냐?」
토모키「우왁……타이치?」
갑작스럽게 나타난 기모노 차림의 남자에 토모키는 깜짝 놀란 것 같았다.
토모키「엄청난 얼굴이다……」
타이치「좆까」
토모키「미안 착각. 엄청난 옷차림이다……」
타이치「진짜로 착각한 거냐 그건?」
토모키「재패니즈 기모노네」
타이치「재패니즈 평상복이기도 하지」
토모키「평상복이라……대단한데」
토모키「맨날 그런 차림이야?」
타이치「……」
타이치「물론이지」
토모키「대단하네」
토모키는 더욱 더 나를 존경하게 된 것 같았다.
실제로는 두 번째 입는 거지만.
타이치「그런데, 이런 야심한 밤에 무슨 일이냐」
토모키「아니……별로 야심하진 않은데……자, 네 거」
골판지 상자다.
받는다.
타이치「무겁네」
토모키「꽉 차 있으니까」
타이치「내용물은……어두워서 잘 안 보이네」
토모키「우리 부 지급품이야. 여름이고, 그냥 놔 두면 썩으니까」
타이치「먹는 거야?」
토모키「응」
타이치「땡큐」
토모키「뭐 이런 걸로」
토모키「우정은 대가를―――」
타이치「요구하지 않는다」

우리들은 실없이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마주세웠다.
타이치「쿠로스 타이치는 청춘 순정 보이ㆍ시마 토모키를 응원합니다」
토모키「이히」
토모키「아, 맞다」
얼굴이 굳어졌다.
토모키「키리하라가 쓰러졌어」
타이치「……뭐라꼬?」
토모키「정확하게는 쓰러져 있었어」
타이치「그 녀석은 하라키리권의 고수라, 내 가라데로도 쓰러뜨리는 건 쉽지 않을 텐데」
토모키「그렇게 쓰러졌단 게 아냐. 그리고 가라데는 왜 튀어 나오냐」
토모키「그래서 말야……지금은 사쿠라바가 보고 있긴 한데, 당연히 도움이 안 되니……하세쿠라 선배한테 부탁할 수 없을까 해서」
타이치「아아, 알았어」
토모키「바로 부탁해 줄래?」
타이치「알았어, 그럼 잠깐 다녀올게」
샌달을 신고, 그녀의 집으로 간다.
돌아와 보니, 토모키는 아직 있었다.
타이치「알았대. 지금 갔어」
토모키「……빠르닷」
토모키「네 말만은 잘 들어주네」
타이치「그러지 않으면 여러가지 에러가 일어나니까」
토모키「어?」
타이치「그보다, 내 방에 가서 98로 게임이나 하고 갈래?」
98 없지만.
타이치「넌 디스크 교환 담당」
토모키「98이 뭔데? 윈○우즈?」
타이치「거짓말이라 해 줘, 마이 프렌드」
토모키「……뭔 말인지 몰겄슈」
토모키의 개그는 이런 것뿐이다.
타이치「진짜로 98을 모르는 거냐?」
PC소년 주제에.
토모키「적어도 지금까지 들어본 적은 없는데」
타이치「……그래……아니, 나도 뭐 세대는 다르지만……」
타이치「하지만 토모키, 지금의 발언은 60~70년대 이후로 태어난 모든 PC 오타쿠들을 적으로 돌리는 발언이라고?」
토모키「아니……그래봤자 별로 안 무서운데……」
토모키「애초에 60년대에 태어난 원시인들한테까지 일일히 신경 쓸 이유는 없잖아」
타이치「으으으!?」
나는 공포로 떨었다.
타이치「그런 말 하면 안 돼애애~~!!」
토모키「왜?」
토모키는 전혀 무서운 걸 모르고 있다.
타이치「그, 그게 젊다는 거냐? 응? 무모한 젊음이란 정말로 무섭구나, 토모키여」
토모키「그치만 말야……그런 아저씨들은 자기네 커뮤니티에서 자기들이 좋아하는 건○ 얘기나 영원히 하게 놔 두면 되잖아?」
타이치「히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익!?」
수명이 줄었다.

방으로 돌아가 불을 켰다.
여러가지 일로 지쳤다.
타이치「덥다」
에어콘, 빨리 고쳐야 될 텐데.
1층 거실에는 에어콘이 있지만, 거기는 왠지 편하지가 않다.
타이치「목욕이나 할까」
물에 들어갔다.
타이치「으응―?」
너무나 기분이 좋아 잠시 저편으로 날아갔던 의식을, 초인종이 불러왔다.
타이치「이런」
서둘러 나와 몸을 닦는다.
기모노를 입고 현관으로.
타이치「네네―」
타이치「누구신가요?」
유사「저, 저기, 도지마예요」
타이치「그 야쿠자 같은 무서운 성씨와는 반대로 큐트한 목소리는……유사? 열려있으니까 들어와」
문이 슬며시 열리고, 미소녀가 나타났다.
유사「안녕, 하세……요」
눈동자가 열렸다.
그 검디검은 동공에, 내 모습이 비친다.
타이치「안녕」
유사「기모노, 네요」
타이치「아아, 이거? 놀랐어?」
유사「깜짝 놀랐어요……」
타이치「집 안에서만 입는 건데 꽤 좋아」
유사「네―」
타이치「그리고 착용감도 좋고」
유사「저기, 잘 어울려요」
타이치「진짜?」
유사「그게―, 오빠는 머리카락이 하야니까요……색이 잘 맞는 것 같아요」
타이치「그래도 기모노는 흑발이 최고지」
쓴웃음을 짓는다.
타이치「유사가 입으면 더 잘 어울리지 않을까?」
유사「그, 그런……딸꾹」
목소리가 나온 박자에 맞춰 딸꾹질이 나왔다.
유사「딸꾹……딸국……딸꾹……」
타이치「어라라」
유사「딸꾹……, 죄송해요, 딸꾹……」
타이치「안 멈추네」
놀래키면 멈춘다던가.
상대가 키리하라였다면 망설임없이 기모노를 활짝 펼쳤을 텐데.
유사를 놀래키려면…….
타이치「으―음」
타이치「유사, 잠깐 이쪽 좀 봐봐」
유사「딸꾹?」
올려다 본 미소녀의 얼굴에, 내 얼굴을 가까이 가져간다.
5센티까지 접근하고 속삭인다.
타이치「결혼하자」
유사「히이이이이이익!!??」
유사는 얼어붙었다.
1분 정도, 움직임이 전혀 없었다.
딸꾹질은 멈췄다.
유사「저, 저기, 방금?」
타이치「뭐, 일단 들어 와」
유사「저기, 방금?」
타이치「사양말고」
유사「……방금, 무슨 일이 일어났었지……?」
의자에 앉히고, 보리차를 꺼낸다.
유사「부모님은요?」
타이치「오늘 밤엔 안 오실 거 같은데」
유사「엣?」
복잡한 표정을 짓는다.
복잡한 사정을 상상한 것이 틀림없다.
뭐 실제로도 조금은 복잡하지만.
타이치「일이 바쁜 시기엔 회사 기숙사에서 자니까」
유사「아아, 그런가요……」
타이치「자 오늘은 어떤 가슴이 두근거리는 뉴스를 가지고 온 걸까나?」
유사「어쩐지 외국 소설의 등장인물 같은 말투네요」
유사「저기, 저 오늘이 생일이에요」
타이치「헤에, 그랬구나」
몰랐다.
타이치군, 바보.
유사「그래서 말예요, 이거……생일 선물이에요」
포장지에 싸인 그것을 무의식중에 받아 드는 나의 머릿속은『?』로 가득 찼다.
타이치「으으음……일단, 고마워. 근데, 어라?」
생일 선물?
유사「언제나 챙겨주시는 거에 대한 보답이에요」
분명히 꽤 적극적으로 챙겨주고 있다.
아니, 반하게 만들려 하고 있다. 실험적으로.
지금부터 상냥한 이미지를 만들어 놓으면, 외모의 마이너스는 충분히 커버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히카루 겐지의 진위 여부 대 검증』이라는 이 기획은 현재 순조롭게 데이터가 모이고 있다.
성공한 뒤의 계획에 대해 별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건, 지금 깨달았다.
유사「그리고, 교환일기를 내일까지 주셨으면 해서……」
무릎 위, 좀처럼 진정되지 않는 손가락을 열심히 어루만지는 유사.
숙인 고개에 슬쩍 엿보이는 목덜미가 새빨갛다.
성의로 가득 찬 모습.
타이치「모에」
유사「……네?」
타이치「아아, 다 썼어. 가져올게」
유사「네, 네에」
2층으로 향한다.
그녀의 일기와, 그것이 필요.
방 안을 둘러 본다.
유사한테 줄 만한 물건.
인형이라도 있으면 좋았을 텐데, 메르헨과는 인연없는 마이 룸.
메르헨은 커녕.
ONLY 관능.
타이치「안돼, 안돼―」
나라면 뭐를 갖고 싶어할 지 생각해 본다.
유사가 입고 있는 팬티.
자연스럽게 벨트로 가는 내 손을, 강철의 의지력으로 저지한다.
지금까지 쌓아 올린 것을 한순간에 부셔서 어쩌자는 건데.
타이치「안돼」
생일에 어울리는 것. 뭐 없나.
타이치「아」
아니, 이건 아니야.
캐릭터가 너무 달라.
이상한 취미에 눈을 뜨면 곤란하고.
타이치「으―음」
의외성은 있을지도.
이걸로 갈까?
타이치「으으으~음」
아래층에서,
유사「저기―, 타이치 오빠―, 저 이제 가 봐야 되는데요―」
타이치「우웃」
망설일 여유는 없다.
상자와 매뉴얼을 찾아, 봉지에 담았다.
타이치「기다렸지」
유사「아……」
안심한 기색.
타이치「그럼 우선 교환일기하고, 그리고 이건 내가 주는 생일 선물」
유사「…………」
이 아가씨는 놀라면 멍해지는 버릇이 있군.
선물 설명은 다음 기회에.
타이치「자, 그럼 집까지 바래다 줄게」
유사「……………………히익!?」
방금 전의 배 정도로 멍해진다.
타이치「벌써 밤이고, 좀 위험한 사람들도 있으니까」
특히 이 동네에는.
타이치「갈까?」
유사「네, 넷」

밤길을 나란히 걷는다.
유사의 보폭이 짧은 덕분에, 느릿느릿 한가롭게 시간이 흘러갔다.
타이치「맞다맞다, 어머니께 잘 먹었다고 전해 드려」
유사「엄마한테요?」
타이치「항상 맛잇는 식사를 차려주시니까」
유사「……뭐, 그렇네요」
타이치「학교 익숙해졌어?」
유사「그 질문, 매번 하네요, 타이치 오빠?」
타이치「음―, 그런가?」
듣고 보니 분명 그렇다.
타이치「관용어 비슷한 거니까 말야. 대화의 정석이지」
타이치「근데 유사도 참 많이 컸구나」
유사「타, 타이치 오빤 제 어린 시절은 모르실 텐데……」
타이치「무슨 말을, 넌 이제부터 몇 년간 이런 말을 들으며 살아갈 거야」
유사「에헷, 벌써 듣고 있어요」
타이치「처음 만났을 때보다 자란 것 같아. 내 눈으로 봐도」
타이치「일부는 아직 미발달이지만♪」
유사「……하레?」
타이치「지금의 너를 소중히 간직해. 육체적으로」
무리겠지만.
유사「엣? 에엣?」
유사「어려워서 잘 모르겠지만……알았어요」
유사「타이치 오빠가 그렇게 말하니까 노력해 볼게요」
양 주먹을 불끈 쥐었다.
타이치「그래그래」
유사「저기, 고맙습니다, 바래다 주셔서」
타이치「쓴 맛도 단 맛도 모두 본 영 어덜트인 나에겐 당연한 일이지」
손가락을 세워 그렇게 말하자.
유사「강송합니다」
타이치「핫핫하」
황송을 잘못 발음한 걸까나.
귀여워라.
타이치「부디 너 같은 아가씨한테 밤의 침실에서 강습당하고 싶군」
유사「밤의 침실에서요?」
타이치「핫핫하, 뭐, 됐어됐어」
유사「이렇게 누가 바래다 주는 건, 소설 속의 이야기인 줄만 알았어요」
타이치「그래?」
그러고 보니, 유사는 코○트틱한 소설을 좋아했지.
유사「조금 놀랐어요」
타이치「아까도 말했지만, 당연한 일이야」
타이치「세상 속에는 대는 소를 결코 넘봐선 안된다는 일파도 있는데 말야」
타이치「불쌍한 녀석들이지」
대에는 대의, 소에는 소의 장점이 있다.
궁극적으로는 어떤 것이든 상관 없다란 게 마이 철학이다.
유사「……」
역시 선배는 어른이라서 어려운 말을 하는구나, 하고 말하는 듯한 표정.
무언가가 자극당했다.
타이치「하지만『나』는, 사정거리만 긴 남자는 되고 싶지 않아」
※의역……나는 ONLY 누님 속성이 아냐
타이치「미래를 지향하면서도 발 밑도 바라볼 줄 아는 남자가 되고 싶어」
※의역……연상한테 응석부리면서『어린 여자애들』한테도 사랑받는다면 좋을 텐데
타이치「미크로 주의자들에 대한 그런 나의 계몽 과정은, 이른바 하나의 메이크 드라마라 할 수 있지」
※의역……로리콤들한테 잘난 척하고 뻐기고 싶어
타이치「확실히 평평한 판에는 아담함이 있어. 그건 인정하지.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전혀 얘기가 안 돼. 크건 작건, 인간은 질량ㆍ형상적 문제와 항상 직면하고 살아
인생을 살면서 겪은 실패 때문인지, 또는 아직 정신적으로 미발달된 건지……어쨌든 그런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차라리 무로 돌아가는 것을 바라는 흐름은, 나에게는 도피로밖에는 보이지 않아」
※의역……확실히 미유는 (이하 생략)
타이치「형이하학적 가치관에 의하면, 이른바『유』라 하는 건 몇 가지 모델로 분류할 수 있어.
『밥그릇형』『로켓형』등을 필두로『범종형』『처진형』『접시형』등이 있어. 특수한 예로『돌기함몰형』등도 보고되고 있으며……」
문득 유사를 보자, 메모하고 있었다.
타이치「으아아아아아아악, 안돼, 안돼애~!!??」
유사「에, 왜 그러세요?」
타이치「메모하면 안 돼」
유사「너, 너무 어려워서 나중에 찾아보려고 한 건데요……?」
뭐라고!?
방금 전의 데인저러스 워드를 인터넷 등에서 리서치하거나 한다면!!
타이치「위험해! 덮어!」
유사를 껴안고, 전신주 뒤로 숨엇다.
유사「하레엣―!?」
타이치「조용히 해, 여긴 전장이야」
유사「평화로운 일본의 거리 풍경밖에 보이지 않는 여기가 전장!?」
타이치「음. 지금, 솔져 병사의 살기를 느꼈다」
유사「솔져 병사!?」
타이치「CIA나 KGB, 또는 N○K일 가능성도 있다」
타이치「모두 지극히 무력적인 첩보 기관이다」
타이치「특히 N○K는 지극히 흉악해서, 민가를 급습하거나 현금을 강탈한다는 등의 게릴라적 행각을 벌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사「히에에에」
타이치「……갔는가. 좋아, 이제 됐다」
도로로 돌아간다.
마침 지나가던 샐러리맨이 의아한 표정으로 우리를 보았다.
어디선가 야간 경기 중계가 들려오기도 하는 평화로운 밤길이었다.
타이치「미안하다. 그런 연유로, 자네에게 이야기한 내용은 기밀 정보란 것이다. 만약 메모하면 자네의 청순 보디가 위험에 처할지도 모른다」
유사「서, 설마」
타이치「미안하지만, 해당되는 부분을 삭제해 줄 수 있겠나?」
유사「네, 네에, 지울게요, 죄송합니다」
샤프 끝에 달려 있는 지우개로 종이를 슥슥 지워간다.
아아, 더러움 없는 저 깨끗한 지우개, 일부러 안 쓰고 놔 둔 것일 텐데…….
타이치「미안하다」
유사「괜찮아요, 제가 잘못한 거니까요」
가슴이 아팠다.
랄까, 내가 아팠다.

똥땅똥땅
똥땅똥땅
오늘 아침도 옥상에서는 정력적인 부활동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타이치「이봐―――!!」
미사토「네, 넷!?」
내가 일갈하자 사다리 위에서 선배가
풀썩
하고 떨어졌다.
미사토「아야야얏」
타이치「호랑이도 굴뚝에서 씨가 된다더니」
미사토「그, 그런 속담 없어요」
타이치「헤이, 미스 부상자, 하와이워즈 잇 나우?」
의미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이런 건 감성이니까.
미사토「읏」
타이치「그것도 내가 없는 시간대에」
미사토「벼, 별로 몰래 하려고 한 건……그냥 아무래도 신경이 쓰여서요. 오늘 아침엔 5시에 일어나기도 했고」
변명이 잘 떠오르지 않는 듯, 선배는 몸짓 발짓으로 그렇게 설명햇다.
타이치「……배신자」
미사토「아, 아니에요」
타이치「아―아, 미사토 선배는 무정하구나―」
미사토「아아, 그러니까……」
미사토「네, 제가 졌어요. 미안해요」
양손을 들었다.
타이치「오전 7시 50분, 현행범 체포」
미사토「네에♪」
양손을 앞에 내민다.
그 손목에.
찰칵
미사토「……헤?」
아, 저질렀다……그만.
미사토「뭐예요, 이거?」
타이치「수갑……」
미사토「장난감이죠?」
타이치「진짜……」
정적.
미사토「어, 어어어어어떻게 진짜 수갑을 가지고 있는 거예요?」
타이치「파, 파파파파출소에서 사람은 없고 바닥에는 수갑이 떨어져 있길래 가져와버렸는데……」
미사토「뭐야……후후, 정말, 어쩔 수 없네요♪」

타이치「아하하, 미안해―요」
미소 둘.
미사토「열쇠는?」
타이치「아아, 열쇠 말입니까……음……열쇠는 어디 있을까요?」
미소가 딱딱해졌다.
미사토「으―음」
미사토「아하하―」
웃었다.
미사토「미안해요, 페케군. 방금, '열쇠는 어디 있을까요'란 말을 들어버렸네요」
타이치「그렇게 말했으니까요」
무표정이 되었다.
미사토「지금, 당신은 저한테 폭행당해도 할 말이 없는 입장이 되었습니다」
타이치「무, 물론 OK입니다!」
공격당한다.
타이치「후꺅」
미사토「어째서……당신은 그렇게 경솔한 짓을……」
타이치「저, 그만 조건반사로……」
미사토「이런 건 열쇠가 없으면 못 풀잖아요―?」
타이치「뭐뭐. 열쇠를 찾으면 되잖아요, 그쵸?」
미사토「……그 파출소에 있나요?」
타이치「물론이죠. 오늘 가는 길에 찾아 올게요」
미사토「지금 당장 가세요. 알았죠?」
우둑우둑우둑…….
타이치「네엥……당장」
W 아이언 크로가 작열하는 상황에서,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타이치「그치만 제가 올 때까지는 얌전히 있으세요」
미사토「이래서야 옷도 못 갈아입잖아요」
타이치「우선 교실에 있는 건 어떨까요?」
미사토「그러죠……」
함께 옥상에서 내려갔다.
미사토「아무한테도 안 들켜야 할 텐데요……」
타이치「왜요?」
미사토「연행당하는 것처럼 보이잖아요」
타이치「굳이 말하자면 플레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미사토「플레이?」
타이치「3층이죠, 선배 교실?」
미사토「아, 저기예요」
그 때 미키가 나타났다.
미키「하이염!」
미사토「핫!?」
당황하며 손목을 숨기려고 한 선배, 그러나 실수였다.
손목을 가리고 있던 타올이 팔랑 떨어졌다.
가만히 있었으면 됐을 것을.
미키「……」
미키「체, 체포당했다……」
미사토「아니에요, 이건 장난이에요」
미키「……」
미키「저기, 선배」
손을 들었다.
타이치「뭔가, 야마노베 순경」
미키「넵, 오늘은 양호실이 비어 있는 것 같습니다!」
경례하면서, 플레이할 장소를 소개해 주었다.
우우, 좋은 녀석…….
미사토「?」
둔한 선배는 이해 못 했다.
타이치「이야, 고맙네. 자네는 어떤가?」
미키「네, 죄송하지만 전 아직은 처녀이고 싶습니다」
타이치「그거 유감이군. 그럼」
미키「근무 수고하세요―」
꾸벅 고개를 숙여, 우리들을 배웅한다.
미사토「지금 대화, 잘 이해가 안 됐어요」
타이치「알면 안 돼요」
미사토「???」
타이치「그럼」
역 앞.
이라곤 해도, 쬐끄만 곳이다.
번잡하지 않은 건 다행.
파출소는……바로 근처에 있다.
순찰중이란 표지가 걸려 있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열쇠는 바로 발견되었다.
이것도 도둑질이려나?
당연하지.
게다가 경찰물품.
경범죄왕ㆍ아르센 타이치, 최후의 범죄.
타이치「있다」
빨리 돌아가야지.
역 앞에는 인기척이 없다.
원래 주택가와 도회와의 연결 장소에 지나지 않는 이 역은, 사람들의 왕래도 적다.
삭막한 아스팔트 광장에서 희미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다.
차도 전혀 안 보인다.
그래서 길 한가운데로 걷고 있다.
타이치「……」
혼내는 사람은 없다.
어떻게 된 걸까.
예를 들자면, 이런 세계는 어떨까.
어떤 범죄를 저질러도 아무도 비난하지 않고, 또 비난받지도 않는다.
무법 세계.
하지만 여기에 있는 건 나뿐이다.
나만의 세상에서, 어떤 범죄가 존재할까.
없다.
사람과의 접점이 없다면, 대부분의 죄는 의미를 잃어버린다.
이상적이다.
이상 사회라 할 수 있다.
객체라는 것. 집단을 버린다는 것.
그것을 위해 필요한 능력이란 무엇일까?
또, 그에 알맞는 정신 구조는?
인간에게는 여러가지 욕망이 있다.
물을 마시고 싶다는 등의 욕구와는 다른 차원에서 그것은 존재한다.
욕망이란 뭘까.
출세욕.
지식욕.
창작욕.
정복욕.
그것들은 다른 사람에 대해 느끼거나, 또는 다른 사람에 의해 그 가치가 정해지는 것.
욕망이라는 것은 타인의 동의를 얻고 싶다는 감정일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보다 많은 재산을 가지고 싶다.
다른 사람보다 많은 지식을 가지고 싶다.
다른 사람보다 출세하고 싶다.
전제되는 것은 다른 사람.
많은 사람이 가치가 있다고 인정하는 것을 획득하는 것에 욕망의 근원이 있다.
그 뚜렷한 형태 중 하나가 돈이다.
마땅한 이용 목적이 없더라도, 사람은 그것을 원한다.
인간이 욕망과 함께 살 때, 이미 다른 사람의 의식과 가치관에 의해 형성된 세상에 물들게 되고, 또 그 안에서 인격은 형성되어 간다.
그럼 객체라면.
욕망은 어떻게 변질될까?
아니, 다른 사람이 없어진 순간, 욕망은 그 정의를 잃고 욕구로 변화된다.
경쟁자가 없는 레이스는 경주가 되지 못하고, 그러므로 달리는 속도는 필요가 없어진다.
나 혼자만의 세계에서, 지식을 더 쌓고 싶어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보는 사람이 없는 예술을, 그들은 계속 만들 수 있을까?
누구를 정복한다는 것인가?
그래.
혼자가 되면, 사람은 변질된다.
그럴 수밖에 없다.
솟아나는 패배의 감정도, 나쁜 것이 아니게 된다.
죄도 죄가 아닌 세계에서는.
이『눈』은, 그것을 위해 하늘이 내린 능력이라 생각한다.
뒤를 돌아본다.
타이치「……언제까지 뒤를 밟을 작정이야?」
인기척이 없는 광장에서, 목소리는 잘 울려퍼진다.
타이치「볼일이 있는 거 아냐?」
기다린다.
하지만 대답은 없다.
타이치「쳇」
그렇게 내뱉고, 학교 방면으로 걸어나갔다.
일일히 상대해 줄 수는 없다.
인기척은 계속 따라왔다.
걱정해 주는 건 고맙다.
하지만, 그러나.
타이치「난 머리카락이 희니까, 일사병 같은 건 안 걸려!」
어머니에 대한 반항심은 이런 걸지도 모른다.
고맙긴 하지만, 짜증이 느껴지는.
학교 앞까지 와서, 나는 겨우 숨을 돌렸다.
인기척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타이치「……아― 제길, 살 떨려」
매양 겪는 일이지만, 언제나 소름이 끼친다.
저 존재감에는.
타이치「마물입니까」
그것에 가까울지도.
그런 것한테 사랑받는 것도 큰일이다.
드르르르르르르르륵
밥벌레다.
야수같다.
밥짐승이라 하는 건 어떨까.
타이치「먹을 거 냄새가 나……」
휘청휘청, 내 발은 식당을 향했다.

타이치「오―, 비었다」
줄 수가 적다.
항상 열 명 정도 있는데, 오늘은 두 명이다.
더워서 다들 정신적으로 약해진 탓인지 결석이 많다.
그래서 식당도 왠지 모르게 한산했다.
덕분에 경쟁률이 높은 메뉴도 쉽게 얻을 수 있었다.
아니……실은 모종의 커넥션을 쓰기만 하면, 뭐든 간단히 얻을 수 있지만.
하지만 그것은 쓰면 안 된다.
금단의 오의인 것이다.
양날의 검이기도 하고.
아―그건 그렇고, 유사는 참 귀엽다니깐.
B정식 식권을 사서, 카운터로 들고 간다.
목소리「어머 너! 이런 데서 뭐하는 거야!」(98폰)
타이치「우와아아앗!?」
나왔다!
목소리「인사 좋네, 크흐흐」
그렇게 말한 그녀는 판타지 물에 흔히 나오는, 동굴 안쪽에서 늘어지게 술판을 벌이고 있는 이상하게 거대한 도적단 보스(가끔 출입구보다 더 큰 경우도 있다. 개그냐?) 같은 걸쭉한 목소리로 웃었다.
무서웠다.
타이치「놀래키지 마요, 아줌마. 이런 연약한 범생한테」
아줌마「네가 범생은 무슨 얼어죽을. 농담도 좀 작작 해라!」(118폰)
덜컹, 하고 고함이 식당 안에 울려퍼진다.
강화 유리가 부르르 떨렸다(말도 안 돼).
무지하게 주목받고 있는 나.
타이치「……목소리가 커요, 아줌마」
아줌마「보통으로 얘기하고 있는데 왜 그럴까. 여기 애들도 참 이상하다니까!」(94폰)
아줌마「너도 괜히 신경쓰지 마!」(115폰)
타이치「!?」
위험을 느끼고, 한 발 물러섰다.
거대한, 괴이하다고 해도 좋을 손바닥이 휘익하고 눈 앞을 베어갈랐다.
타이치(방금 그건)(스킨쉽?)(직격했다면……)(사망!?)
그만 츠츠이 ○타카의 나나세 시리즈에서 사용된 듯한 심리 표현법을 써버렸다.
뭐랄까 나나세하고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아냐).
아줌마「역시 빠르구나, 넌! 크흐흐」
아줌마「밥 먹으러 온 거지?」
타이치「네, 네엡」
사자에게 먹이를 주는 듯한 기분으로, 식권을 내민다.
아줌마「유사가 늘 신세를 지고 있으니까, 서비스해 줄게」
타이치「하하하, 감사합니다, 하하하」
그래.
이 분이 바로 궁극미소녀ㆍ유사의 친모이시다.
즉 그녀도 몇십 년 뒤에는 이런―――
마망「왜 그래? 휘청거리고」
타이치「쏘리, 그만 현기증이」
마망「그거 안되겠네. 피가 부족해서 그래」
어머님께선 결정하셨다.
마망「자, S정식」
타이치「S도 있었나요?」
마망「널 위해서 만들었지!」(118폰)
식당 안에 울려퍼지는 큰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쑥덕쑥덕…….
쑥덕거림을 받았다.
타이치「……감사합니다만 어머님……」
마망「어머 어머님이라니 그거 기쁘네!」
밥이 두 배로 늘어났다.
마망「있잖아, 너, 우리 딸하곤 어때?」
타이치「핫, 어떻냐고 하신다면?」
마망「잘 길들인 것 같던데!」
타이치「콜록콜록!」
마망「사위라. 좋지. 크흐흐」
타이치「사위!?」
사위라!?
타이치「아니, 잠깐만 기다리세요 어머님!」
마망「괜찮아, 걱정은 필요없어!」
돈까스가 두 개가 되었다.
이것은……뇌물! 떡값입니까?
쑥덕쑥덕…….
타이치「아와와와왓」
씹히고 있다!
나, 지금 겁나게 씹히고 있다!
마망「너도 여러가지로 바쁘겠지만, 어려운 건 생각하지 마」
마망「전부 나한테 맡겨 둬」
건더기는 얇은 미역밖에 없어야 할 된장국에, 왜인지 게가 통째로 들어가 있었다.
쑥덕쑥덕쑥덕쑥덕…….
목소리「……뇌물 증여……」
목소리「낙하산 인사……」
목소리「……내부 거래가」
목소리「뭔가 비합법적인……」
목소리「……신사참배 문제의 당사자……」
타이치「으헉!」
위험하다.
쿠로스 타이치의 체면이 걸린 문제.
돈까스는 네 개가 되었다.
타이치「너무 많아요!」
마망「응? 뭐야, 이 정돈 먹어야지, 남자니까!」
오키나와의 산호를 잡아먹는 가시면류관 불가사리 같은 손으로, 쿠웅―하고 어깨를 두드렸다.
체중의 두 배 정도의 중량감이 나를 바닥으로 밀었다.
타이치「크아아아아악!」
무릎을 꿇는다.
마망「어머 실례! 카하하! 역시 많이 먹어야겠네. 그리고 더 살쪄야 돼!」
타이치「으으으」
유사……빨리 집을 나오지 않으면 돼지가 되어버릴 거야.
보통 사람의 5배 이상의 음식을 가지고, 적당한 곳에 앉는다.
토모키「여전히 막강한 커넥션이네」
C런치 트레이를 든 토모키가 옆에 앉는다.
타이치「토모키 선생이로군」
토모키「뺏어먹고 싶다」
타이치「드셈」
토모키「진짜?」
타이치「이렇게 많이 못 먹어」
토모키「그럼 감사히」
돈까스를 가져갔다.
토모키「아까 사쿠라바하고 빵 먹었는데 좀 부족해서」
타이치「전 운동부라 이거냐」
토모키「운동은 이제 안 하지만 말야」
타이치「근육은 있는 것만으로도 지방을 소모시켜. 그러니까 근육 있는 녀석은 연비가 나쁘지」
토모키「헤에. 그럼 근육 없는 게 좋다는 겨?」
타이치「그건 아니지. 여분 지방을 못 쓰는 체질이 되어버리니까, 적당한 운동은 해 두는 편이 좋아」
토모키「그렇군」
타이치「사쿠라바는 또 카레빵?」
토모키「일곱 개 정도 먹었어」
타이치「우겍」
토모키「여기 식당 업자의 빵이 마이 페이버릿ㆍ카레빵이라면서」
타이치「바보」
토모키「바보지」
먹는다.
타이치「젠장, 먹어도 먹어도 안 없어져!」
토모키「……먹어 줄까?」
타이치「드셈」
토모키「야, 된장국에 게가 들어 있어!」
타이치「……들어 있지」
토모키「무슨 커넥션이냐……」
타이치「세계 최강의 서브 미션, 마스 홀드(사위 굳히기)」
토모키「저 아줌마 딸이란 애하고?」
타이치「그렇다」
토모키「역시, 엄마하고 닮았어?」
타이치「아니, 무쟈게 귀여운 안경 소녀. 나를 잘 따라. 내 말은 전부 믿고, 이뻐 죽겠어」
토모키「뭐야, 문제없잖아」
타이치「아니……」
타이치「스위스 은행에 계좌를 가져야 될 정도의 어그레시브하고 위험한 쟙에 종사하게 될 나는, 역시 위험한 직종에 종사하게 될 소녀와 냥냥해버릴 수는 없는 거야」
토모키「어디서 잠꼬대가 들리네」
토모키「아, 맞다 타이치, 적응계수시험 어땠어?」
타이치「그럭저럭」
보리차를 컵에 따라 벌컥벌컥 마신다.
타이치「졸라 높음. 위험합니다. 담임도 공포에 질려 있던데」
토모키「얼만데?」
타이치「……84%」
토모키「우왓, 그게 편차치였으면 얼마나 좋았겠냐」
타이치「그러게 말이다. 젠장할. 나, 위험해질 지도 모르겠다」
토모키「연구동에서 해부당할지도 몰라」
타이치「헬프 미」
달라붙는다.
토모키「무리야……17%인 나하고는 사는 세계가 달라」
타이치「잠깐 이봐! 어째서 그런 정상인 같은 수친데!」
토모키「……그야, 난 외장이니까」
타이치「아, 그런가……」
타이치「너무 바보라서 낮은 건가 했어」
토모키「네가 그런 말 할 처지냐!」
타이치「아―, 라바(사쿠라바의 별명)도 낮겠지?」
토모키「그 녀석 15라는데」
타이치「그 녀석, 내장이었지? 왜 그 정도 수치인데 군죠로 온 거야?」
토모키「아니, 그 녀석 고입 원서에 군죠를 썼대」
우리들은 얼굴을 마주보았다.
두 사람「하아아아앗!?」
타이치「……이해가 안 돼」
토모키「……동감」
타이치「이 나라도 참 겁나게 얼렁뚱땅이란 말야」
타이치「아, 그보다 너, 빨랑 누나랑 화해해」
타이치「내가 다 불편해 죽겠다」
토모키「그건 누나……누님이 배신했으니까……」
이 녀석 지금『누나』라고 하지 않았나?
……뭐 어때.
타이치「미야스미 선배가?」
토모키와 미미 선배는 남매다.
성씨는 다르지만.
토모키「방송부에 들어간 것도 거의 억지였어. 귀가부나 할려고 했더니, '넌 PC소년이니까 도와 줘'라고 하는데 나참」
토모키「PC소년이니까 도와 달라는 논리야. 어떠냐?」
타이치「에휴휴」
타이치「뭐 어때. 어차피 귀가부 비슷한 거잖아」
토모키「뭐어……어쨌든 농구부도 없으니까―, 여기」
타이치「뛰지도 못하는 놈이」
토모키「뭐얏―」
타이치「포기해. 시끄러운 선배 따윈 없으니까 오히려 마음 편한 거지 뭐」
토모키「귀가부였으면 실컷 만화나 읽으려고 했는데」
토모키「왜 이제 와서 누님하고 사이 좋게 부활동을 해야 되는 건데」
타이치「……시스콤 주제에」
토모키「지금 뭐랬냐?」
타이치「아무 말도―」

그런 연유로, 부활동하는 중.
이 부품은 어떻게 해야 되지?
여긴가?
아니면 여긴가?
타이치「……」
여기로 하자. 왠지 삘이 온다.
미사토「뭔지 알겠어요―?」
타이치「뭐―, 일단은요」
밑에서는 선배가 사다리를 받쳐주고 있다.
미사토「남자가 있으니까 믿음직스럽네요―」
타이치「그렇죠 뭐」
타이치「분부가 있으시다면 언제라도 저를……」
아니 잠깐.
이 사람, 남동생 있잖아.
타이치「……저기, 토모키하고 싸우고 있죠?」
선배의 얼굴이 흐려진다.
미사토「아―, 뭐어……」
미사토「조금 냉전 중」
타이치「토모키도 싸우긴 싸우는구나」
미사토「에?」
타이치「그 녀석, 진짜로 화낸 적이 거의 없으니까요」
선배는 그 말에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미사토「……당연한 건지도 모르죠」
타이치「네?」
미사토「인생은 어려워요. '에잇 빌어먹을'이란 느낌이에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토모키『……배신당할 걸』
타이치「저기, 배신이란 게 뭐예요?」
선배의 미간이 찌푸러졌다.
미사토「토모키가 그런 말을 했나요?」
타이치「네」
미사토「……」
타이치「선배?」
미사토「……음―음―」
선배는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음―음―하고 신음소리를 냈다.
타이치「저기?」
미사토「무슨 말 하는 거예요―정말―!」
사다리를 덜컹덜컹 흔든다.
타이치「와와와왓!?」
미사토「웃기지도 않아요―!!」
타이치「저 떨어져요―!!」
불안한 부활동이었다.

나나카「얏호―, 타잇짱―!」
타이치「어라?」
수수께끼의 자전거 소녀다.
타이치「수수께끼의 자전거 소녀다」
생각한 걸 그대로 말해버렸다.
나나카「생각한 걸 그대로 말하지 말도록」
들켰다.
타이치「이상하단 말야―, 이 여자. 정체도 모르겠고. 본 적도 없는 교복에」
나나카「……갑자기 정색하면서 생각한 걸 그대로 말로 옮기지 말도록」
타이치「나나카란 이름도 진짠지 가짠지」
나나키「……쫀쫀하긴. 그런 거 가지고 일일히 따지지 마」
타이치「무슨 학교 다녀?」
나나카「비미일」
타이치「아, 그려」
무시하고 성큼성큼 걸어나간다.
나나카「오, 하드보일디~」
타이치「걸으면서도 얘기할 순 있잖아」
나나카「뭐 그렇지」
타이치「근데, 오늘은 또 왜?」
나나카「물론 볼일이 있어서지」
휙 손가락질.
나나카「후딱 안테나 만들어!」
타이치「하앙?」
타이치「안테나라니, 미사토 선배가 만드는 그거?」
나나카「그래, 그거」
나나카「이대론 조금 늦는단 말야」
타이치「뭐에?」
나나카「기한에」
타이치「무슨?」
나나카「너 말야―!」
타이치「뭐, 뭐야뭐야」
갑자기 화내고 그래.
나나카「매번 매번이 소중한 인생이잖아! 그런데 괜히 들떠가지고는 매일 매일을 쓸데없이 보내버리고, 그러는 사이에 네 존재 자체가 고정 행동으로 굳어져버린단 말야!」
나나카「가능성이란 건 그런 성질이 있어! 윈○우즈도 안 지워지는 캐시 메모리 때문에 껐다 켜도 에러가 계속 날 때가 있는 것처럼 말야! 게다가 지금은―――」
갑자기 깜짝 놀라며, 입을 다무는 나나카.
타이치「……노이로제냐 이 자슥아?」
나나카「이런 큐티한 소녀한테 이 자슥이 뭐야!」
찰싹―!
타이치「우오홋」
싸대기를 맞았다.
고속으로 회전함과 동시에 비스듬히 튀어올라, 수평해진 상태로 땅바닥에 들이받았다.
타이치「……으……으흐……으브」
이 여자, 설마 코믹 역장을 발생시킬 수 있었을 줄은.
※코믹 역장=타이치과학. 스칼라 전자학과 에테르 우주론, 승등기관 등과 대등한 초과학 이론 중 하나. 모든 물리 현상이 가속됨과 동시에 완화된다.
그 결과, 통상 물리학으로는 설명 불가능한 코미컬한 효과를 발생시킨다. 통계적으로 지기 싫어하는 아동적 객체에 붙어서, 그 캐릭성을 유지하기 위해 작용한다.
나나카「앗……미안……」
타이치「대단한 힘이다……천하를 노릴 수 있는……」
나나카「여자를 그렇게 놀리지 마!」
일으켜 세워졌다.
타이치「아, 아파요……」
나나카「……미안해」
타이치「천하를 노릴 수 있다는 건, 단순한 완력이 아니라 캐릭성을 말한 거였어」
나나카「?」
타이치「네 과학력 덕분에, 그 정도의 공격을 당해도 살아남을 수 있었어」
나나카「뭔 말인지……」
타이치「하지만 좀 더 힘을 줬어도 괜찮을 텐데. 회전이 걸린 채로 대기권까지 간다던가. 뭐 평범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극단적인 방향으로만 가는 것도 되레 꼴사나우니까, 적절하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말야.
요컨데 왕도를 향해 항상 반발적인 입장을 유지하는 행위는 자기과시욕구에 지배당한 순간에 나타난다는 거지」
나나카「네놈은 나하고 대화할 생각이 있는 거냐?」
타이치「……죄송합니다」
저도 뭔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나나카「어쩔 수 없는 녀석」
기가 막힌지, 한숨을 쉬었다.
나나카「아, 뺨에 피」
타이치「어? 역장에서 조금 비껴갔나?」
나나카「아직도 그 역장 타령이냐」
타이치「내 피는 괜찮아」
나나카「……응?」
타이치「아니, 내가 피에 좀 약해서」
그 때 나나카의 얼굴에 깃든 표정을, 나는 잘 표현할 수 없었다.
울 것 같기도 하고, 웃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렇다곤 해도, 가벼워 보이지는 않는 깊은 갈등이 들어 있었다.
나나카「……타이치」
약간 잠긴 목소리가 목소리가 입술에서 새어나옴과 동시에.
그녀의 얼굴이 다가왔다.
젖은 눈동자와 함께.
인간의 의식활동이란 굉장한 것이다.
평범한 만화 주인공이라면,
(어……?)
등의 반응을 보이며 이후에 일어날 사건을 예측하지 못한 채 당황하는 게 고작인데.
현실의 인간인 나의 뇌는『KISS당한다!?』라는 상황상 너무나 뻔한 결말을 쉽게 예측할 수 있는 것이다.
나나카의 얼굴이 5센티 가까이 다가왔을 때는 이미 키스 후에『얼마나 당황한 척을 해야 하나』라는 체면치레 문제에 대해 면밀히 검토하는 중이었다.
……실제로 이런 반응이 더 리얼하지만 세상의 이야기에 거의 나오지 않는 이유는, 너무 리얼해서 이야기성과 잘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란 것을 아마추어인 나도 알 수 있었다.
리얼리티 장난인 것이다, 결국.
내심으로 고개를 붕붕 끄덕였다.
음 근데, KISS는 아직?
낼름
타이치「……」
요염함도 에로도 없는 KISS였다.
혀를 뺨에 대고 핥는 행위를 KISS라고 할 수 있다면.
나나카「침 발라두면 아물겠지 뭐」
타이치「으아아아아아아」
주먹으로 옆머리를 때린다, 때린다, 때린다!!
타이치「고상한 사색의 결말이 김치국이냐! 이 자식, 이 자식! 이런 수치를!」
나나카「자기가 자기를!?」
타이치「뭐가 리얼리티냐! 뭐가 키스냐! 머리 좋은 척 하지 마 나 자식아! 오히려 네가 인간 이하라는 걸 국제적으로 증명당했잖냐!」
나나카「지, 진정해―……」
타이치「죽고 싶어」
나나카「이봐이봐」
타이치「이른바 또 하나의 나란 놈이 쓰레기란 걸 항상 자각하고 있어야 돼」
나나카「……엥?」
타이치「유해한 쓰레기」
타이치「군죠에는 식물인간도 잔뜩 있으니까」
타이치「난 언제나 무서웠어. 누군가를 상처입히지 않을까 하고」
타이치「위험이 있어도 피하지 못한다는 건 그 만큼 무식하다는 뜻이겠지?」
타이치「고양이가 차 앞에 뛰어드는 것처럼」
타이치「……자제해야 해. 항상 주의를 기울이고 있어」
타이치「하지만」
타이치「매일이 즐거워서, 그만 깜빡 잊어버려. 내가 누구인지를」
타이치「난―――」
나나카가 나를 안았다.
이번엔 정말로 허를 찔려서, 예측할 시간도 없었다.
타이치「어……?」
나나카「즐겁다고 말할 수 있다면, 뭐 상관없잖아」
작은 가슴의 부드러움.
소녀의 향기.
이상하게도, 야한 생각은 들지 않았다.
요코에게 안겼을 때의 감각과는 달랐다.
나나카「그 말을 들으니 기뻐. 정말로」
타이치「…………」
나나카「꼭 강해야만 살아갈 자격이 있는 건 아니잖아」
나나카「약한 채로도, 괜찮아」
타이치「약한 채로도……」
알고 있다.
그녀는 무언가를 알고 있다.
타이치「넌」
나나카「나나카」
타이치「나나카……」
모른다.
과거의 어떤 기억에도, 그 이름은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럼 어떻게 그녀는 나에 대해?
나나카「진정했어?」
타이치「……응」
몸을 떼어놓는다.
나나카는 생긋 웃고 있었다.
타이치「……넌」
타이치「날 좋아해?」
나나카「바보녀석」

뺨에 춉을 맞는다.
나나카「그런 게 아니라니깐」
부정하고 나서, 목을 살짝 기울이며 말을 이었다.
나나카「……그래도 뭐, 글―쎄다. 좋아하는 걸지도」
타이치「진짜로?」
나나카「네가 생각하는 '좋아한다'한고는 조금 의미가 다르지만 말야」
타이치「뭐야 그건」
나나카「넌 분명 꼬맹이 때 엄마한테 야한 장난쳤을 타입이야」
타이치「없었는걸 뭐」
나나카「나도야」
나나카「그래도 말야, 의외로 엄마도 그런 걸 꽤 좋아할지도 몰라?」
타이치「야한 장난을?」
나나카「응」
타이치「하지만 어린 아들한테 페딩당하면 쇼크……아니, 오히려 달아오르려나?」
나나카「화학 분해나 돼버려라 이 유해 쓰레기 자식」
타이치「으앙―!」
나나카「그럼, 가 볼까」
타이치「우리 집에 들렀다 가지. 미지근한 물 정도는 줄 수 있는데」
나나카「이히히, 야한 짓 당하고 싶지 않으니까 집에 갈래」
타이치「할게할게, 오면 해줄게」
나나카「위험해 위험해」
그녀는 훌쩍 자전거에 올라탔다.
등 뒤로 가 팬티를 보려고 하는 나.
진청색 부르마였다.
타이치「칫」
……잠깐, 부르마라고?
진정한 성희롱 체육복으로서 여성해방운동으로 인해 벌써 먼 옛날에 멸종했다는 그 부르마!?
타이치「나, 나나카씨……?」
나는 덜덜 떨었다.
소문에 의하면, 그 찰싹 달라붙은 히프는 절품이라고 한다.
나나카「안테나, 후딱후딱 만들어버려」
타이치「핫, 안테나?」
갑작스럽게.
나나카「그게 가능성이니까 말야」
체인이 시원한 소리를 내며 돌아간다.
타이어가 아스팔트를 가르며, 자전거가 달려나간다.
타이치「……뭘까나」

원고를 쓰고 있다.
타이치「히히히」
타이치「히히히히히!」
타이치「히잉―히히히히히!!(울고 있다)」
써지지가 않아―!
첫째날, 나의 재능에 넊을 잃어가며 썼던 때와는 정반대다.
여자「……케―군―……」
누군가가 나를 부른다.
창문으로 밖을 내다본다.
타이치「미미 선배?」
미사토「안녕하세요―」
타이치「무슨 일이에요―?」
미사토「어디 있어요―?」
타이치「2층 창문에서 보고 있어요―」
미사토「캄캄해서 안 보여요―」
타이치「여기선 잘 보여요―」
미사토「어떻게 된 일일까요―」
타이치「글쎄요―?」
미사토「페케군은 굉장히 밤눈이 좋나 보네요―」
타이치「야생동물이라 감각이 날카로워요―」
미사토「어쩐지 멋있네요―」
얘기하면서 휙휙 팔을 흔든다.
저래봬도 꽤 어리다니까.
타이치「그보다, 얼른 들어와요―」
미사토「네―에―」
미사토「아, 촛불♪」
타이치「집필 활동에는 분위기가 중요하니까요, 아가씨」
미사토「그렇군요―」
반듯이 정좌.
미사토「공부라도 하고 있었나요?」
타이치「아뇨, 원고요」
미사토「아아」
타이치「근데, 제 집에는 무슨 용무로?」
미사토「아, 페케군이 자주 도와줬으니까 밥이라도 해 주고 싶어서요」
보따리를 풀었다.
미사토「도시락이에요」
타이치「선배 만세」
미사토「두 사람 분 만들어 왔어요, 같이 어때요?」
타이치「마실 거 가져올게요」

타이치「맛있다」
타이치「선배 요리 잘 하네요」
미사토「그래요? 요리는 시작한 지 얼마 안 됐는데……」
타이치「뭐―, 저도 별로 음식 맛은 안 가리니까요」
미사토「아, 그 말은 좀 너무한데요……」
타이치「아―, 맛있네요. 음, 맛있어」
타이치「알맞게 익었네요. 직접 구웠어요?」
미사토「네. 물론」
타이치「……뭐랄까, 이런 도시락 먹는 거 오랜만이네요」
미사토「그런가요?」
타이치「저……엄마가 없으니까요」
미사토「어머……」
타이치「엄마를 그리워하는 걸지도 모르겠네요, 저」
미사토「페케군」
타이치「선배」
희미한 어둠 속에서 마주 보는 두 사람.
양초의 가냘픈 불꽃이, 그녀의 이마를 붉은 다홍색으로 비췄다.


ㆍボケる (어리광부린다)


좋―아, 나한테 맡겨!
타이치「선배」
미사토「……왜요?」
타이치「저하고 결혼해 주세요!」
엄지손가락을 세우고 말했다.
미사토「우훗」
선배는 마치 천사처럼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ㆍ˚˚ㆍ천사†강림.ㆍ˚˚ㆍ*
미사토「절대로 싫어요♪」
타이치「여보세요 토모키? 나 쿠로스. 응. 방금 너네 누나한테 고백했다 차였다. 진짜야 진짜, 실황중계. 왜냐면 아직 옆에 있걸랑. 우캬캬캬캬!」
「어쨌든 어쨌든 말야, NOW 내 가슴 속은 괴로운 기쁨으로 가득 찼어. 너한테 이 좆같을 기분을 전할 수 있어서 겁나게 기쁘다!! 뒈져버려!!」
미사토「그 휴대폰……배터리 나갔지 않나요?」
타이치「알고 있어요 그런 건!」
쓰러져 운다.
타이치「으아―앙!」
미사토「사귀는 사이도 아닌데 그런 말을 하면……」
타이치「농담으로 한 거긴 했지만 마침 적절한 타이밍이었길래 이때다 하는 3g의 기대로 들떠 있었는데 깨끗하게 거절당한 것 그건 그것대로 가슴이 아픈 거죠!」
미사토「100% 거절당할 타이밍에 고백한 쪽에 문제가 있는 거죠……」
타이치「인생, 한치 앞도 확신할 수 없는 거죠! 지금을 믿을 수밖에 없는 거죠!」
미사토「자, 오이무침 줄 테니까 기운 내요. 그리고 이상한 말투는 그만 써요. 알았죠?」
타이치「저, 저의 사랑은 오이보다 못한 겁니까……」
미사토「페케군한텐 좀 더 멋진 사람이 생길 거예요, 분명히」
타이치「울 것 같아요」
오이에서는 실연의 맛이 났다.
타이치「아, 맞다」
타이치「선배, 잠깐 여기서 기다려 주세요」
미사토「네?」
갔다가.
돌아온다.
양손에 든 그것을 내민다.
타이치「수제 아이스바―!」
미사토「앗, 굉장해요!」
한 개를 건넨다.
미사토「인류의 저력이네요」
타이치「후후후, 감히 말씀드리자면, 이 쿠로스 타이치가 직접 만든 물건입니다」
미사토「차갑다―, 맛있다―♪」
타이치「인류 만세―」
미사토「만세―」
아이스바 만세.
미사토「이건 무슨무슨 재료로 만들었어요?」
타이치「레몬과 설탕과 달걀 흰자 그리고」
타이치「……제 귀여운 2억 마리의 자그마한 원더풀 라이프들」
선배는 정지했다.
왜인지 안경이 스윽 흐려졌다.
미사토「…………」
위험한 분위기였다.
타이치「저기, 농담이에요」
미사토「……그거하고 바꿔주세요」
타이치「아, 네」
미사토「너무 시시한 말만 하다간 쥐도새도 모르게 사라지는 수가 있어요」
억양없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한다.
무쟈게 무섭다.
타이치「아, 앞으로 조심하겠습니다」
미사토「……내참」
뿌연 안경이 순간 맑아졌다.
조절 가능?
무슨 구조로 되어 있을까?
무서웠다.
하지만, 리스크만큼의 성과는 있었다.
간접 KISS!
그것도 쭉쭉 빨았던 아이스바니까 딥 간접 키스.
차분하고 감미롭게 음미하도록 하자.
미사토「도시락 주러 와서 반대로 좋은 걸 대접받아버렸네요」
타이치「훗, 아니 뭐. 그렇게 쉽게 저한테 반해버리시면 안 되죠」
미사토「잘 먹었어요, 페케군. 안 반했어요」
탈력.
미사토「덕분에 시원해졌어요」
타이치「요즘은 맨날 더우니까요」
미사토「덥죠」
타이치「여름이니까 어쩔 순 없지만요」
미사토「……바다, 가고 싶네요」
선배는 창 밖을 보았다.
그 끝에 있어야 할 바다는 어두워서 보이지 않는다.
타이치「그럼 가죠」
미사토「에?」
타이치「내일 낮에 학교 앞에서 집합」
미사토「에하?」
타이치「다른 애들도 다 부를게요, 물론」
미사토「너, 너무 갑작스러운데요……」
타이치「어떻게든 되겠죠!」
엄지손가락을 세웠다.
미사토「그치만……키리하고 하세쿠라가 와 줄까요?」
타이치「음―, 그건 다루기 나름이죠」
타이치「그런 불충한 녀석들을 움직이는 데 성의는 필요없습니다. 약점을 찌르면 되는 겁니다. 와하하」
미사토「……상쾌한 표정으로 그런 심한 말 하지 마세요」
미사토「아, 그치만 작년 수영복, 지금은 안 맞을지도」
타이치「네˝?」
미사토「사, 살 찐 건 아니에요」
타이치「예에, 즉 성장하셨다는 건가요?」
미사토「그래요」
미사토「진짜로 그렇다구요?」
타이치「아니, 그건 별로 의심 안 해요」
아직 가슴은 성장하고 있구나~
선배의 바스트를 마음 속으로 떠올리며 홍조.
미사토「……」
뭔지 모를 악의를 느낀 건지, 가슴 주위를 양 팔로 가린다.
미사토「그래서 수영복이……」
타이치「어떤 걸로 하시겠습니까?」
미사토「갖고 있어―――!?」
타이치「기본은 끈비키니일려나요」
미사토「어째서 갖고 있는 거예요―――!?」
타이치「사이즈는 86의 C컵이시니까, 이 정도가」
미사토「히익!?」
타이치「이 끈와 조개로 만들어진 파렴치 오션 파라다이스는 어떻습니까?」
미사토「그런 거 싫어요!」
타이치「그럼 이것을! 펄 화이트 뇌새 비키니」
미사토「이거, 물도 안 묻었는데 투명한데요……」
타이치「변종으로 로프레스 워픈(Ropeless Wappen) 수영복이란 것이」
미사토「그냥 천하고 반창고잖아요!! 장난해요!!」
타이치「큰 맘 먹고 이런 걸 입어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가슴 부분이 투명 비닐로 처리되어 있어 탑레스를 연출할 수 있는……」
미사토「가, 강간당할 거야」
선배는 얼굴을 가렸다.
타이치「그 외 여성용 훈도시 등이」
미사토「왜 그런 것밖에 없는 건데요!!」
타이치「가장 추천하는 물건은 이것. 인간의 지성을 시험한다, 바보는 볼 수 없는 수영복, 알몸의 여왕님 섬머」
미사토「전라라는 말이잖아요!」
미사토「사절이에요! 사절사절사절사절―――!!」

타이치「왔습니다. 바다입니다」
타이치「그리고, 오늘 이 자리에 섬머 데이를 즐기려고 모인 리비도 넘치는 믿음직한 면면들은 부디 이쪽으로!」
일동 나란히 선다.
미사토「……」
토모키「……」
미키「……」
키리「……」
토오코「……」
타이치「에―, 그럼」
일동 앞을 교관 분위기로 천천히 걷는다.
타이치「이놈이고 저놈이고 아주 장례식에 온 쌍판대기들이구먼 아앙?」
토오코「네가 사람을 속였잖아!!」
타이치「으음―, 기억이 안 나는데」
귓밥을 판다.
토오코「너~이~자~식~」
타이치「왜 투덜대고 그래」
타이치「생리야?」
찰싹!
타이치「크헉」
경쾌한 소리와 함께, 깨끗한 일격이 내 턱을 강타했다.
노 가라데 사범「인간의 육체는 대부분이 수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말하자면 물풍선이지」
노 가라데 사범「그 유연하고 강인한 손바닥에 의해 나오는 밑으로부터 비스듬히 올라오는 일격. 그것은 두개골 내의 체액을 진동시켜, 보통의 주먹 공격을 상회하는 진동을 뇌에 준다!」
타이치「뉘겨?」
…………………….
토오코「갈래!」
타이치「아잉―아잉―」
스윽
토오코「꺄아아아악!? 어딜 잡는 거야!?」
타이치「수영복 팬티」
타이치「이 수영복, 꽤 잘 늘어나네」
토오코「이 치한!」
타이치「오우오우오우오우오우」
모래사장에 잠기는 나.
타이치「……으윽……」
토오코「이, 이 웃기지도 않는 에로 원숭이, 바보 아냐 바보 아냐?」
내려 간 팬티를 고쳐입으며 투덜대는 토오코.
하지만 엉덩이의 균열은 이미 또렷이 봐버렸다.
미사토「……배가」
대인관계의 트러블에 약한 선배는, 이미 그로기 상태였다.
타이치「그럼 지금부터―, 군죠학원 방송부의 해수욕을―, 실시한다―」
타이치「알았냐―, 잘 들어라―. 두 번 안 말한다―. 네놈들은 쓰레기다! 이 지구상에서 가장 입냄새나는 돼지새끼들이다!」
타이치「네놈들 같은 최저 최악의 인간 쓰레기들을 위해 나라가 지불하고 있는 유지비는 결코 싸지 않다. 그것은 투자다, 하지만 전혀 가치있는 투자가 아니다―――」
미사토「신병인가요, 저희들」
토모키「그것도 넘버 텐」
키리「…………실수……」
진절머리가 난 듯, 키리가 고개를 숙였다.
미키「미안해― 속여서. 선배한테 꼭 해달라고 부탁받아서 말야―」
키리「……오늘은……원래 가족들하고 초밥 먹으러 갈 예정이었는데……」
미키「그러지 말고, 선배한테 빚을 져 두면 여러모로 편리하잖아?」
키리「연어알, 성게, 다랑어, 그것들이……」
군대 연설을 무시하고, 키리는 무거운 한숨을 발 밑으로 떨궜다.
미사토「그런데, 키리하라는 무슨 경로로?」
토오코「하세쿠라 선배가 향후에 일에 관해 중요한 이야기가 있다고」
토오코「설마 그런 거물이 쿠로스하고 한패였다니……」
철권이 떨리고 있었다.
미사토「하세쿠라는……쿠로스군하고 어떤 관계일까요?」
타이치「음, 요코짱?」
토오코「요코짱!?」
미사토「요코짱!?」
미키「요코짱?」
토모키「요코짱!!」
타이치「하모니 사중주. 딴♪」
지휘봉을 흔들었다.
토오코「어, 어째서 그런 대단한 사람을 너 같은 쓰레기가 '짱'을 붙여서 부르는 건데!」
타이치「직설적으로 말하는 것에도 정도가 있어」
미키「선배 선배, 질문 질문」
타이치「네, 미키미키」
미키「미키미키입니다. 저기, 혹시 하세쿠라 선배하고 쿠로스 선배는 사귀는 사이인가요?」
토오코「안돼! 그런 건 절대로 안돼!」
미사토「헤에에~, 미녀와 야수~!」
토모키「……두렵다……세상이 어찌 될려고……」
토모키「쿠로스 같은 ○○○한테 여친이! 그것도 하세쿠라 선배 같은 완벽한 쿨 뷰티가!」
타이치「……말이면 다 해도 되는 건 줄 아냐?」
미키「그래서, 어떤가요?」
타이치「……별로 사귀는 건 아냐」
타이치「요코짱은―, 단순한 육체노예♪」
심술궂은 웃음.
미사토「하아……」
미키「교교교교관님―, 미야스미 선배가 기절하셨습니다―!」
토모키「구라다! 구라라고 말해 줘 여호와님―!」
키리「……저기 시마 선배……거짓말일 게 뻔하니까, 그렇게 바다를 향해 전능신한테 기도할 필요는……」
토오코「그, 그 늠름한 하세쿠라 선배가……이런, 이런……에로스한테 더럽혀지고 있다니……아파……머리가 아파……」
이거 파괴력 쥑이는데.
타이치「하낫 둘 셋 넷!」
왠지 기분 좋다―.
사람들이 별 것도 아닌 일을 가지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면 왠지 뿌듯해진다.
타이치「둘 둘 셋 넷!」
토오코「시끄러! 춤추지 마!」
키리「……인과응보란 걸까나. 이건」
미사토「부들부들」
미키「교교교교관 각하―! 미야스미 선배가 거품을―! 거품을―!!」
토모키「무릎을 꿇어! 살려달라고 빌어라! 꼬맹이한테서 돌을 가져오란 말이다!―」(착란중)
미키「아, 그거다……」
타이치「그 대포로 나와 맞설 생각이냐?」
토오코「넌 또 무슨 말 하는 거야……」
타이치「수영복, 걸, 모래사장에 왔으니 당연히 비치발리볼. 자, 이걸 호송하도록」
토모키「꼬맹이한테서 돌을 가져오란 말이다―!」
타이치「이 자식도 끈질기군……」
미키「비치발리볼하면서 가슴 흔들기할 건가요?」
타이치「그래! 역시― 비치발리볼의 진정한 재미라 하면 그걸 빼놓을 수 없지, 내 손으로 일부러 가슴을 혹사시키는 위치에 패스하는 걸 생각만 해도―――」
미키「……여러분, 이런 의도인 것 같으니까 부디 주의를」
타이치「안심하게나, 미키양」
머리를 쓰다듬는다.
미키「으구?」
미키는 이런 걸 싫어하지 않아서 좋다.
하급생 중 최고의 모에 소녀.
타이치「너도 앞으로 3년만 지나면 빵빵해질 거야」
미키「……우와……지, 진짜요?」
수줍어하는 미키.
미키「그렇게 되면 좋을 텐데요」
타이치「난 알 수 있다. 넌 발육한다!」
미키「가, 감사합니당~」
타이치「키리하라는 곧 있으면 성장이 멈추는 나이니까 영원히 평평」
토오코「너―어―」
미사토「음……소란스럽네요……」
아, 부활.
한 손을 집고 일어나자, 가냘픈 몸에 붙은 포근한 유방이 부드럽게 흔들렸다.
타이치「선배는 가슴이 예쁘네요」
미사토「에­˝?」
타이치「아름다워요」
미사토「저기, 쿠로스군……」
소녀「저기―」
타이치「마치 금단의 열매 같군요. 아담이 아니었더라도 따먹어버렸을 것 같아요」
미사토「가, 강간당할 거야……」
주저앉은 채로 몸을 웅크려 벌벌 떠는 선배.
토모키「야야, 그만 해!」
타이치「제길, 그냥 농담이다 임마, 미스터 시스콤 군은 누나한테 조금 불경한 감정을 가지고 있는 거 아녀?」
미키「이번엔 야쿠자네요」
토모키「누가 시스콤인데 누가」
하지만 조금 당황해하고 있었다.
미사토「모, 몸은 싫어~」
소녀「저기, 실례합니다합니다합니다!!!!」
순간.
모든 동작이 멈췄다.
타이치「……유사찡?」
유사「유, 유사입니다. 바바바바바쁘신 참에 죄송합니다」
사과하면서 고개를 숙였다.
유사「저, 저기, 오늘은 초대해주셔주셔서……아얏」
유사「…………(눈물)」
혀를 깨문 것 같다.
토오코「너는 누구?」
유사「네, 도지마 유사예요」
토오코「누구하고 아는 사이야?」
타이치「아―, 나하고」
스윽
타이치「…….방금 그 한없이 마이너스에 기울어진 공기는 무슨 뜻이지?」
미사토「쿠로스군의 친구인가요?」
타이치「여친입니다. 동거하고 있습니다」
유사「……」
지―잉
미키「동」
토오코「거?」
미사토「서, 설마―」
미사토「아니죠, 아가씨?」
유사에게 직접 물어보는 선배.
타이치「에이, 맞다니까요. 같이 사는 거 맞지―?」
유사「……(끄덕)」
키리「……」
토오코「……」
미사토「……하아」
미키「아, 또 기절했다」
타이치「뻥이야♪」
토오코「……그럴 줄 알았어」
타이치「그래도 뭐, 이 정도로 솔직한 여자앱니다. 잘 부탁해요」
미키「유사짱인가요. 전 야마노베 미키입니다」
유사「아, 처음 뵙겠습니다……」
허리 굽혀 악수하는 두 사람을 보면서,
토모키「……가련하도다」
타이치「뭣이!」
이, 이 제비 같은 녀석……유사를……나의 유사를?
요주의 감시 대상으로 결정이다.
타이치「뭐, 어쨌든 잘 왔어」
유사「엄마가 잘 부탁드린다고 하셨어요」
타이치「네네」
새겨듣는다.
타이치「요코가 잘 데려다 줬어?」
유사「아, 네. 그치만 아무 말도 안 하시던데요」
타이치「뭣이―」
유사「제, 제가 혹시 화나게 한 건가요?」
타이치「아니, 원래 그러니까 신경쓰지 마」
타이치「근데, 그 요코는?」
유사「방금 전까지 같이 있었는데, 갑자기 사라졌어요」
타이치「……」
어딘가에 있겠지.
타이치「아, 있다」
저 실루엣, 틀림없다.
게다가 수영복 차림. 아쉽다…….
타이치「……」
일단, 같이 해수욕에『참가』는 해 주는 거군.
타이치「뭐, 어때」
유사「?」
타이치「자, 유사도 왔으니까 놀자」
토오코「참 복잡하기도 하네」
미키「팀 나누죠」
토오코「나도 해야 돼?」
미키「사람 수가」
미키「일단 남자 선배 두 분은 떨어져 주세요」
타이치「남자 선배……잠깐, 뭔가를 까먹은 거 같은데?」
토모키「응, 나도 그래」
타이치「뭐지?」
토모키「으―음」
기억나지 않았다.
미키「키리찡은 여기. 그리고 키리하라 선배하고 미야스미 선배는 저기」
미키「그리고, 체구가 작은 이쪽 팀이 유사짱을 가져가겠습니다」
좋아좋아.
미사토 선배는 저쪽 팀.
흔들 거야―. 흔들어버릴 거야―.
나는 미야스미 선배의 멋진 가슴을 떠올리며 홍조.
타이치「크헉」
미키「……저기, 벌써 시작했어요」
타이치「말 좀 빨리 해 주지」
타이치「아야야, 젠장―, 누구야 방금」
토오코「……흥 (외면)」
저 녀석인가.
타이치「너희 더러운 일본군은 선전 포고 전에 우리들을 기습할 작정이었겠지만」
공을 잡고 일어났다.
타이치「우리 미군은 벌써 옛날에 그 정보를 입수했다!」
토오코「바―보」
타이치「아, 열받는데―, 그 태도, 음, 열받아」
타이치「열받으니까……공격!」
어택.
토모키가 간단히 받아냈다.
칫, 역시 전 운동부.
다시 온 공을, 이번엔 미야스미 선배한테 넘긴다.
미사토「아, 왔다……」
우왕좌왕 갈팡질팡.
리시브한 공이, 쿠리하라 토오코의 후두부에 맞았다.
토오코「흐이?」
미사토「미, 미안해요~」
토오코「……아녜요」
타이치「와하하」
토오코「시끄러! 웃지 마!」
토오코의 서브.
유사 쪽으로.
타이치「간다―」
유사「엣, 앗, 얏?」
안돼, 이대로는 선배와 똑같은 꼴이 날 것 같다.
운동 신경이 좋아보이는 사쿠라 키리에게 눈으로 신호를 보낸다.
타이치(사쿠라)(유사)(도와 줘)
눈빛으로 신호가 되돌아 온다.
키리(어째서)(제가)(그런 일을?)
타이치(그러지)(말고)(운동)(잘)(하잖아?)
키리(귀찮아요)
타이치(잔인)(해)
키리(제)(구역이)(아닙니다)(도와주고 싶으시면)(선배가)
타이치(잔인해)(심술쟁이)(외로운 늑대)
키리(모릅니다)(자신의 일은)(스스로)
라는 식의 토크가 전개되었다.
내 망상일지도 모르지만.
유사「앗, 온다, 온다아앗?」
두려워하고 있다.
안될 것 같다.
미키「제가」
미키가 달려들었다.
달렸다 (미끄러졌다).
보기좋게 (넘어졌다).
미끌―
미키「…………」
얼굴부터 땅으로 주루륵 미끄러진 미키의 출렁이는 엉덩이에 공은 떨어졌다.
토오코「2점째」
타이치「자비를 베풀어 준 것만은 인정해 주지」
미키「셔, 션배애……」
고개를 든 미키의 얼굴이 빨갛다.
타이치「피……난다」
키리「미키!?」
미키「아, 아파~, 이마 아파~」
타이치「피, 피가……피가……」
모래사장에 깨진 유리조각 두 개가 있었다.
피.
등골이 오싹거렸다.
키리「이런, 베였잖아!」
미키「아파……」
유사「죄,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미키「그건 괜찮은데……아파~」
타이치「차, 차―!」
캔 녹차를 키리에게 건네주었다.
키리「뭐하는 거예요!」
타이치「그러니까 차―!」
피를 보지 않으려고, 캔으로 눈을 가린다.
미키「욱씬욱씬거려―!」
키리「으음, 어떡하지, 이런 때는……응?」
키리「모르겠어……어떻게 해야 될 지 모르겠어……」
키리가 당황해한다.
타이치「그러니까 차―!!」
나 역시 당황해서,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미키「아야야야야……으갹―, 피 난다……어떡하지―」
미사토「괜찮으세요!」
토오코「의사 불러올게!」
달려나간다.
타이치「차―――!!」
유사「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미키「피가 줄줄―! 머리 욱씬욱씬―!」
토모키「내, 내가 할 일은? 저기, 내가 뭘 해야 돼?」
이 녀석은 이 녀석대로 혼란상태!
몇 명은 울고, 몇 명은 허둥지둥거리고.
나도 피를 안 보기 위해 좌불안석.
눈을 감았다.
「…………」
누군가가, 내 손에서 캔을 가져갔다.
풀탑이 열리는 소리.
미키의 이마에 부어지는 소리.
미키「후냐?」
타이치「아, 맞다, 그랬지」
토모키「차, 차 같은 걸 부어서 어쩌자고?」
타이치「……녹차에 포함된 카테킨에는 살균효과가 있어~」
타이치「내 가방에 손수건 있으니까, 그걸로 문질러」
토모키「아, 알았어」
눈을 뜬다.
마침 미사토 선배가 손수건을 미키의 이마에 대는 참이었다.
탁.
타이치「미키, 아파?」
미키「조금 욱씬거려요」
타이치「누군지 몰라도 잘했어. 누가 한 거야?」
미사토「그게 저……」
토모키「모르겠어」
타이치「뭣이?」
미사토「정신이 없었을 때 시야 밖에 누군가 있던 것 같긴 했는데」
토모키「나도」
유사「아마 저도……」
그런 슈퍼 닌자 같은 의식 독해 기술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라면…….
그녀다.
주위를 둘러봤지만, 모습은 없다.
당연한가.
그 때, 토오코가 구조원을 데리고 왔다.
모두가 동시에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미키「아, 감사합니다……선배」
타이치「응?」
미키「선배가 계속 차 차 그랬으니까요」
타이치「……나도 당황하고 있었어. 왜 제대로 설명을 못한 걸까」
미키「어쨌든 고마워요……」
타이치「감사는 차 부어 준 사람한테」
미키「선배한테도 하고 싶어요」
눈물을 머금은 눈이 나를 바라보았다.
타이치「……알았어」
타이치「질긴 녀석」
미키「냐옹―」
그리고 미키는 구조원들과 함께 갔다.
키리「전 따라가 보겠습니다. 선배님들은 먼저 가셔도 괜찮아요」
타이치「그럴 수야 없지. 안 그래?」
토모키「응」
미사토「기다릴게요」
키리「……저……감사합니다」
서툴게 인사하고, 미키를 쫓아갔다.
타이치「유사, 저 녀석들 귀엽지?」
유사「네? 그, 그런가요? 다들 어른 같아서……뭐랄까……저만 혼자 어린애라」
타이치「저 두 사람이 섹시해 보인다는 건가」
토모키「그야 유사짱한테는 다들 연상이니까 그렇지」
타이치「……」
벌써 '짱'을 붙이는군.
빠르다?
이 녀석 혹시, 천연 제비 속성?
역시 요주의 인물이다.
마음 속으로 토모키의 감시 레벨을 1단계 높였다.
유사「그치만……좋은 분들이네요. 저 분들도, 선배들도」
타이치「한솥밥을 먹는 사이끼리의 결속력이지. 부러워?」
유사「아, 네, 무척」
타이치「너도 곧 끼게 될 거야」
미사토「……도지마도 혹시 군죠에?」
유사「네, 그렇게 될 것 같아요」
유사「원래는……사립학교에 갈 예정이었지만요」
유사「……적응시험에서 그만……」
타이치「안심하게나. 우리들도 같다네」
미사토「그래그래. 우리 학교, 왕따는 전혀 없으니까 다니기는 편할 거예요」
유사「……네」
토오코「잠깐, 걔가 들어올 무렵엔 우린 없지 않아?」
토오코「바보처럼 들뜨기는」
타이치「낭만을 모르는 녀석은 바닷가 라면집에서 맛 없는 라면이나 먹어라」
토오코「뭐야」
타이치「뭐야―」
토모키「그만들 해……도지마가 떨잖아―」
이봐이봐, 벌써 작업이냐 이 자식.
감시 레벨이 3이 되었다. 4가 되면 제비 사냥 개시.
이 내가 그렇게 가만히 놔둘까 보냐!
타이치「앗!」
나는 넘어졌다.
토모키의 수영복에 손을 뻗었다.
타이치「우왁―」
스륵
시마 토모키. 키 172센티, 몸무게 59킬로, 곧휴길이 12센티.
최종진화과정을 마친 브론트사우르스와도 닮은 박력을 가진 그 신체 기관이 가련한 소녀의 눈 앞에 활짝 펼쳐졌다 (이중으로).
유사「……………………」
토모키「으, 으아아아아아악!?」
유사「……………………」
아버지를 모르는 청순파 소녀는 서서히, 안색 하나 변하지 않은 채, 비명마저 지르지 못한 채……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키리하라는 토모키의 하이퍼 드래곤(명명)을 보고 어딘가로 도망쳐버렸다.
입은 시끄러운 주제에 겁쟁이라니까.
미사토「……투덜투덜투덜」
기절한 유사는 미야스미 선배가 간호했다.
그 선배 역시 기막힘 반 수줌음 반으로 얼굴이 주홍빛이 되어 있었다.
타이치「이런―, 미안」
토모키「조심 좀 해!」
타이치「미안하당께」
토모키「……끝났다」
끝났다끝났다.
타이치「너무 풀죽지 마, 졸업 때까지 동정 보이즈로 남기로 한 맹세를 잊진 않았겠지」
토모키「그러긴 했지만 말이다」
어깨까 푹 숙여졌다.
토모키「하아―……수영이나 할까」
타이치「같이 하자」
타이치「그건 그렇고 토모키여」
토모키「왜」
타이치「난 계속 신경이 쓰였는데」
토모키「음?」
타이치「이건 사쿠라바 아니냐?」
토모키「……으―음」
토모키「맨 처음 소동 때 누군가한테 밟힌 모양이네」
타이치「살아는 있어」
토모키「이 녀석은 그렇게 간단히는 안 죽을 걸」
타이치「어쩐지 한 명이 부족하더라」
토모키「뭐하자는 해수욕이야, 이거」
타이치「재밌긴 재밌잖냐」
그렇게 말하자, 토모키는 한숨을 쉬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토모키「……뭐 그렇지」
즐거운 해수욕은 이걸로 끝.
미키의 얼굴에는 조금 흉터가 남은 것 같았다.
그래도 귀가 길 내내, 미키는 상쾌하기 그지없는 표정이었다.
다친 대신에, 무언가를 얻었다.
그런 표정이었다.
미사토「미안해요, 저 학교에 잠깐 볼일이 있어요」
타이치「볼일이요?」
미사토「부활동 말이에요, 그 준비 좀」
토모키「참 열심히도 하네」
미사토「……토모키는 맨날 비꼬기만 해」
키리「그렇지 않아요」
미사토「에, 그래요?」
미키「미야스미 선배한테 빼곤 그런 말 안 해지―?」
키리「응. 시마 선배는 훌륭하니까」
토모키「칭찬해 주는 건 고마운데, 쑥스러우니까 이제 그만 해」
미키「혼났다」
키리「……혼났네」
얼굴을 마주보고 킥킥 웃는 두 사람.
유사「……후훗」
유사가 어색하게 따라 웃었다.
미사토「그럼, 이만 해산. 수고하셨습니다!」
해수욕……인가.
미키에겐 미안하지만, 별다른 추억거리는 없었다.
추억은 마음을 풍요롭게 해 준다.
그래서, 이런 말도 할 수 있게 해 준다.
타이치「싫은 건 알겠지만, 내일부터 부활동 나와보지 않을래?」
토오코「……에?」
곤혹과 당황함으로, 그녀는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초췌한 그 얼굴이 주홍빛으로 빛나, 어쩐지 비장한 인상을 주었다.

타이치「……으―음」
밤에는 원고 집필.
좀처럼 진척되지 않는다.
흔해빠진 내용.
하지만, 일단은 써 두자.
타이치「재미가 부족한데」
그래.
선배한테 보여줄까.
깜빡하고 있었지만 오늘은 길일.
바로 집을 나왔다.
선배의 집 앞.
노크를 해 봤지만, 대답이 없다.
타이치「선배―!」
역시 반응이 없다.
타이치「당신의 타이치가 왔어요―!」
조―용
부재중인가.
타이치「……」
설마, 아직도 학교에?

타이치「우와―, 있다!」
미사토「왓, 페케군?」
타이치「너무 무리하잖아!」
미사토「미, 미안해요」
타이치「하아―」
역시나 안테나를 설치하고 있던 것 같다.
타이치「이렇게 어두운데 뭔 놈의 작업이에요」
미사토「신경이 쓰여서……안되나요?」
타이치「안돼요」
타이치「그렇게 한가하면, 제 원고나 봐 주세요」
미사토「어머, 벌써 다 썼어요?」
타이치「쓰는 중이에요. 그치만 의견이 듣고 싶어서」
미사토「아―, 그치만 이렇게 어두우니……못 읽겠네요」
타이치「그렇네요」
타이치「이제 됐으니까 집에나 가죠」
미사토「아, 그치만……조금만 더」
타이치「미미 선배……」
미사토「그치만~」
타이치「급하게 해 봐야 얻는 건 없어요」
미사토「……」
타이치「천천히 하면 되잖아요. 아닌가요?」
타이치「시간은 충분히 있으니까요」
타이치「그리고 서두르면……그 만큼 빨리 끝나버리잖아요」
타이치「선배, 그걸 견딜 수 있어요?」
미사토「……」
울 것 같은 표정.
등줄기가 싸늘해졌다.
순간, 내가 금기를 범했다는 걸 깨달았다.
미사토「……저, 도망치고 있는 걸까요?」
타이치「글쎄요」
미사토「그렇게, 보이나요?」
타이치「네」
타이치「작업에 몰두하는 걸로 도망치고 있어요」
안테나를 올려다 본다.
타이치「억지로 일을 만들고……일부러 천천히 진행시키면서」
미사토「……알고 있었나요」
타이치「그게 보통이라고 생각해요」
미사토「에?」
타이치「선배가 하고 있는 일은, 그렇게 이상한 게 아니에요」
타이치「누구든 무언가로부터 도망쳐 본 적이 없는 사람은 없어요」
타이치「하지만 선배처럼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건……괴로운 일이죠」
타이치「여유를 가져보세요」
미사토「…………」
타이치「선배는……30이 넘었죠?」
미사토「…………」
타이치「고도의 자해 증상」
무언의 긍정.
나는 그저, 말을 계속할 뿐이었다.
타이치「혼자서 작업하는 건 좋아요. 하지만 쫓기고 있는 마음상태라면……이대로 혼자서 계속하는 건 위험해요」
타이치「……여차할 때, 여기가 옥상이라는 것부터가 위험해요」
타이치「알았어요?」
미사토「알고, 있어요」
불쑥, 말한다.
타이치「엄청 걱정이에요」
선배는 안경을 벗었다.
눈물을 머금은 눈동자에, 손가락을 가져간다.
미사토「페케군한테 걱정받을 정도로……불안정했던 거군요, 저」
타이치「하하……그렇게 말씀하시면 좀 섭한데요」
미사토「아하하」
미사토「페케군한테 이런 말을 들을 준 몰랐어요」
눈물을 닦는다.
미사토「……고마워요」
타이치「아녜요」
미사토「그치만……모두 뿔뿔이 흩어져서……이대로 모두 사라져버릴 것 같았어요」
타이치「전 안 사라져요」
미사토「그치만, 페케군은 뭐랄까……동기가 불순」
들켰다.
타이치「잇힝」
미사토「그치만 어쩌면 저, 고집부리고 있던 걸지도 몰라요」
타이치「그런데 알고 보니 혼자가 아니었던 거 같은데요?」
미사토「네?」
타이치「이거」
방금 전, 급수탑 아래에서 주운 물건을 보여 준다.
미사토「봉투?」
타이치「예스」
타이치「근데 내용물은 카레빵」
미사토「…………아」
그 뜻을 눈치채고, 입가에 손을 가져간다.
타이치「그 녀석도 요즘 좀 우울한 일이 있는지 얼굴은 잘 안 보이지만」
타이치「그 바보, 자기 친구가 코너에 몰리는 건 가만히 보지 못하는 성격이니까요」
타이치「이런 맛대가리없는 카레빵이나 가져오고」
미사토「그래도 페케군, 기뻐 보여요」
타이치「먹을래요?」
선배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둘이서 카레빵을 먹었다.

타이치「……자아」
아직 기온도 그렇게 높지 않은 오전 중.
혼자서 옥상에 왔다.
안테나와 토대의 철탑을 본다.
분명히 이건……혼자서 할 작업이 아니다.
초보자에 의해 삐뚤빼뚤하게 세워진 안테나.
어찌 보면 오브제같기도 한 모습이었다.
타이치「그럼」
작업에 들어가기로 했다.
그렇다곤 해도, 전문 지식이 없는 건 마찬가지다.
하지만 괜찮다.
미사토 선배한테 대충 설명은 들었으니까.
타이치「분명히……이걸로……이렇게」
…….
………….
…………………….
타이치「젠장, 모르겄다」
쿠로스 타이치, 문명의 이기에는 조금 약함.
토모키「……뭐하고 있냐」
타이치「아니, 이렇게 미리 작업을 해 놓으면 '페케군 대단하네요 감동이에요 젖어버렸어요 뽑뽀―'……뭐 이런 거지. 여어, 토모키 선생」
토모키「뽑뽀―는 또 뭐냐」
토모키「부활동이냐」
타이치「응응」
토모키는 바닥에 철푸덕 주저앉았다.
토모키「자」
타이치「오, 땡큐」
캔 쥬스.
별로 차갑진 않지만.
토모키「……타이치는, 왜 그렇게 열심이야?」
타이치「오, 진지한 질문 청춘 풍미」
토모키「뭐라는 겨」
타이치「졸라 재밌다, 그 개그」
토모키「야야, 이런 거까지 날려 놓곤 시치미 떼지 마」
토모키는 한 통의 엽서를 꺼냈다.
타이치「날렸다고 해야 하나, 우체통에 넣었을 뿐인데」
토모키「……왜 부활동 하는 거야?」
타이치「나도 질문 하나, 괜찮을까?」
진지한 표정으로.
토모키「응?」
타이치「너하고……누나에 대한 건데, 괜찮아?」
토모키「…………」
타이치「진지한 질문이야」
토모키「……OK. 뭔데?」
타이치「음」
조금 주저하다가, 질문을 던졌다.
타이치「어째서 넌 관동 사람 주제에 이따금씩『~겨?』라던가『~유』등의 짝퉁 관서 사투리를 섞어 말해?」
토모키「누님하고 제일 관련없는 질문이야!!」
토모키「갈래……」
타이치「뭐―뭐―, 기다리게나. 로망은 하루로 완성되는 게 아니라네」
토모키「운동시켜줘서 고맙다 타이치군」
타이치「그렇게 열내지 마」
타이치「그러니까 그런 거야. 봐, 목적이 있어야 살아갈 보람이 생기는 거잖아?」
토모키「……보람이라」
토모키「뭐 일단 식량이 없으면 그런 것도 소용없겠지만」
타이치「그리고 이런 게 좀 부러웠었어」
토모키「이런 거라니?」
타이치「청춘 군상 그래피티」
타이치「무슨 맛이라고 생각해?」
토모키「그거 먹는 거야?」
토모키는 일어나서, 안테나 주변을 한 바퀴 돌았다.
토모키「그래서……그것뿐?」
타이치「할 일이 있다는 건 좋은 일이야」
토모키「……딴 일도 많잖아. 물자 탐색, 이라던가」
타이치「적어도 이 부활동에는 희망이 있어」
토모키「절망을 확인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르는데?」
타이치「절망을 확인한다는 희망이 있어」
토모키「……통 모르겠단 말야, 네 생각」
타이치「그―래―?」
토모키「어떻게 그렇게 즐거울 수 있을까」
타이치「헷헤」
토모키「진짜로 모르겠다」
토모키는 팔로 눈가를 비볐다.
토모키「내가 아는 건……이 안테나하고 모바일용 기재의 연결방법뿐」
타이치「당장 부탁해」
토모키「뭐야―, 좀 더 감동 좀 해 봐라―」
타이치「바보, 마음 속으로 울고 있다고. 통곡하고 있어. 눈물 젖은 두만강이란 말이다」
토모키「그렇게는 안 보이는데~」
타이치「남자끼리 부비적부비적거려도 썰렁할 뿐이잖냐, 그런 이벤트를 보고 싶으면 너네 누나를 데려와」
토모키「너무해―!」
타이치「자, 그렇게 정했으면 후딱 일해! 방송 예정일은 내일이니께」
토모키「예이예이」
토모키「그럼 기재, 조달해 올게」
토모키「……타이치?」
교내로 돌아가려던 발을 멈추는 토모키.
타이치「응?」
토모키「……난 분명히 누님하고 화해하라고 할 줄 알았어, 동생이라면 누님을 도와라, 뭐 이런 식으로」
타이치「아니, 남매싸움은 아주 평범한 인생인데 뭐. 내가 왜 말려」
토모키「……」
타이치「용건은 본좌를 도우라는 것뿐」
가슴을 편다.
토모키「……너도 참 거물이야」
타이치「적응계수 80을 오버한 오버로드니까요」
토모키「……그런 오버로드라도, 앞으로도 보통 친구로 대해 줄게」
토모키「그런 거, 별로 안 싫어하니까」
교내로 휙 사라졌다. 도망치듯이.
타이치「별로 안 싫어하니까……푸훗!」
그렇게 말한 토모키는, 순간적으로 인간의 한계 수준까지 얼굴이 빨개져 있었다.
타이치「쪽팔려할 거면 아예 말하질 말던가. 내참」
안테나를 올려다 본다.
타이치「그래도, 이걸로 조금은 진척되겠네」
즐거운 부활동 놀이.
소중한 추억으로 남을 수 있기를.
언젠가, 행복한 꿈을 꾸기 위해―――
꼭.
영원히.
고맙다고 생각하기 위해.
나는 싸우고 있다.

그리고, 일요일.
옥상.
모든 준비가 끝났다.
타이치「수고하셨습니다」
미사토「……페케군도요」
선배는 조금 멍하게 있었다.
그래서 난 말했다.
타이치「아직 끝난 건 아니에요」
미사토「……그런가요?」
타이치「이 방송국을 쭉 유지시켜야죠」
미사토「……」
미사토「그렇죠」
타이치「잘해봅시다」
미사토「네」
악수.
선배는 공구를 정리해 구석에 두고, 안테나를 올려다 보았다.
미사토「방송, 할 수 있겠네요」
타이치「네」
미사토「방송한다고 해서, 그걸로 모든 것이 잘 풀린다는 보장은 없지만요」
그럴 것이다.
하지만 무의미하지는 않다.
그저 움직이고 싶었던 것뿐이기에.
뭔가를 하지 않으면, 마음의 균형을 잡을 수 없었던 것뿐.
나 또한 그렇다.
그렇지만 내 이유는, 모두와는 조금 다르다―――
미사토「페케군, 원고는 다 썼어요?」
타이치「네, 네에, 일단은……」
실은 다 못 썼다.
선배는 생긋 웃었다.
미사토「그럼, 당신이 DJ를 맡아주세요」
타이치「잉?」
미사토「지금부터 체크할 시간도, 고쳐 쓸 시간도 없으니까요」
미사토「부탁할게요」
타이치「네, 네에」
오히려 잘 된 일인지도 모른다.
왜냐면 원고, 백지니까.
대충 휘갈겨 둬야지.
토모키「타이치―, 기재 옮기는 거 도와줄래?」
타이치「오케이―」
나에게 온 토모키가, 선배를 보고 눈길을 돌린다.
미사토「……」
토모키「……」
시선이 어긋난다.
예전만큼 살벌하지는 않다.
지금은 그걸로 충분.
이제부터 어쨌든 얼굴을 마주보며 살아가게 될 테니까.
시간만은 있다. 싫을 정도로.
그리고 우리들은, 기재를 옮겼다.
옥상에서 모니터하기 위해서다.
첫 회 방송은 옥상에서 한다는 것이 이 기획의 취지였다.
타이치「라바 녀석, 이런 때에도 호쾌하게 농땡이라니」
토모키「……뭐 어제 오늘 일이냐」
타이치「그렇지. 그 바보자식」
사쿠라바「정말이다」
타이치「……」
토모키「……」
사쿠라바「……」
타이치「오옷, 사쿠라바! 왜 여기에!?」
사쿠라바「우정은 대가를―――」
타이치「요구하지 않는다」

우리들은 실없이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마주세웠다.
토모키「아니, 그 말이 왜 나오는데」
타이치「오랜만이다, 라바」
사쿠라바「음」
토오코「……켁, 삼바보」
타이치「오」
토오코까지 왔다.
혼자가 아니다.
등 뒤에, 미키와 키리도 있다.
미키「안―녕하―세요―!」
활기차게 양손을 들고 외쳤다.
그 큰 목소리에, 키리가 눈썹을 찌푸리고 어깨를 으쓱인다.
풍경이 그곳에 있었다.
일곱 명의 일상이라는 이름의.
잃어버렸음이 분명한.
미사토「페케군, 어떻게 된 일이죠?」
선배가 내 옷자락을 꾹꾹 잡아당겼다.
타이치「뭐―, 조금 손을 썼죠」
미사토「손을 쓰다니……그치만 페케군이?」
타이치「전 슈퍼 디렉턴데요 뭐, 그 쯤이야」
미사토「……」
선배는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1분 정도 말이 없었다.
잠시 후.
미사토「전원 집합이네요」
타이치「YES, BOSS」
전원 집합.
이후에 이런 기회가 과연 있을까.
아냐, 이 결속을 이대로 계속 유지해 가면 된다!
……그럼 좋겠지만.
그럴 수는 없다.
그러니까.
지금만의.
추억을.
타이치「주목」
한 손을 들어 모두를 불렀다.
타이치「그럼 방송부의 재집결을 기념해, 지금부터 빵가게를 재습격하겠습니다」
토모키「갑자기 뭔 말이야」
사쿠라바「그럴 줄 알고 카레빵을 먹을 준비를 하고 왔다」
토모키「구라까지 마」
미사토「빵가게라면, 그 전 야쿠자였다는 분이 하고 있는 곳(※)말인가요? 이 일곱 명으로 이길 수 있을까요?」※타자키 상점
타이치「선배도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마요」
토모키「그래도 다 모인 건 확실히 오랜만이네」
토오코「……왜 날 보는데」
사쿠라바「그것은 네녀석이 부활동에 전혀 참가하지 않었던 배신자이기 때문이다」
타이치「네가 할 말이 아냐」
토모키「네가 할 말이 아냐」
살상력 높은 스트레이트에 의한 태클(폭력)이 시간차로 들어갔다.
사쿠라바는 말없이 침몰했다.
참고로 남자 셋의 역할 분담은.
사쿠라바=개그
토모키=태클
타이치=올 라운더
이렇게 정해져 있다.
타이치「그녀의 마음을 녹인 건 나다. 사랑의 힘이지」
토오코「달라붙지 마!」
토모키「……무쟈게 싫어하는데?」
타이치「그치만 몸은 정직할 걸」
토오코「패버린다!」
머리에 팔꿈치 공격을 먹었지만 신경 안 쓴다.
미키「키리하라 선배!」
미키가 토오코의 엉덩이에 달라붙었다.
토오코「으아앗!?」
옥타브 높은 비명을 질렀다.
미키는 엉덩이를 만지작만지작.
토오코「하, 하지 마 야마노베!」
미키「부드러워……너무 부드러워요……」
타이치「키리하라, 넌 겉모습만은 최고다!」
토오코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토오코「이거 놔! 만지지 마!」
미키「선배~」
토모키「성희롱 집단이다」
사쿠라바「응」
토오코「보지만 말고 어떻게 좀 해 봐!」
사쿠라바「개인 사생활에는 개입 못 해」
토오코「네가 무슨 경찰이냐!」
미사토「키리하라, 몸은 이제 괜찮아요?」
토오코「평범한 대화를 하기 전에, 우선 이 원숭이 두 마리부터」
미사토「그치만 얘네들은 본능으로 살아가는 애들이니까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토오코「그렇게 포근한 어조로 말씀하셔도……읏, 잠깐 어딜 만지는 거야!?」
토오코「앗, 싫엇, 잠깐……이제 그만 해―!」
울기 시작한다.
타이치「아……」
미키「아……」
당황해하며 떨어진다.
사쿠라바「훌쩍」
타이치「왜 네가 우냐!」
사쿠라바「그치만 키리하라, 울고 있잖아?」
미키「그래서 같이 울어주시는 거군요」
사쿠라바「매우 슬픔」
토모키「천소(천연소재) 개그군」
타이치「어쨌든 미안, 키리하라」
토오코「…………바보……같아」
손바닥으로 등을 얻어맏았다.
타이치「아야얏!」
채찍으로 맞은 듯이 아팠다.
뭐 당연한 벌인가…….
키리「……하아」
키리가 고개를 휙 돌리고, 한숨을 쉬었다.
타이치「자, 사탕 줄게」
토오코「……필요없어」
턱을 잡고, 강제로 사탕을 집어넣는다. 손가락과 함께.
토오코「으으으으읍!?」
타이치「어머니의 맛을 보여주지」
도망치려 하지만, 턱을 잡고 놔주지 않는다.
토오코「읍……으읍, 읍, 우읍……」
타이치「하―나, 둘―……자아, 이 귀여운 구멍에 사탕이 과연 몇 개나 들어갈까나~?」
토오코「으읍, 으읍, 읍, 읍……흡……읍」
타이치「싫으면 손가락 깨물어도 괜찮아」
멍하게 뜬 눈에, 살짝 적의가 깃들어 있다.
하지만, 손가락으로 입 안을 휘젓고 혀를 꼰 다음에 잡아당기니 눈꺼풀이 스륵 잠겼다.
토오코는 입 속이 민감한 것 같다.
타이치「세―엣, 네―엣……큭큭큭, 간다간다간다」
입 속 깊숙히 집어넣어 마음껏 유린한다.
토오코「으흡, 읍, 으읍……으흥, 으으응……~~~」
타이치「큭큭큭, 어때 달콤하지?」
미사토「아우우우우」
미키「에로에로에사임에로에로에사임……」
토모키「타, 타이치, 그런 짓 하면 안 돼. 너무 야하잖아 (소아화)」
키리「그, 그러니까……이 사람은 위험하다니까요……전……」
사쿠라바「내가 보기엔 기브 미 원 캔디, 그뿐이다」
한 명을 제외하고, 모두가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타이치「큭큭큭……핫!?」
사과할 작정이었는데 어느새 괴롭히고 있다!?
타이치「아, 미안미안」
놓아준다.
스르륵 손가락이 빠진다. 침이 길게 늘어진다.
토오코「……으, 으으……」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나는 토오코.
타이치「뭐―어쨌든, 당분 많이 섭취하고 건강하게 살길 바래」
토오코「하아, 하아……」
잠시 멍하게 있었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나를 찌릿 노려본다.
다람쥐처럼 볼을 눈깔사탕으로 가득 채우고서.
토오코「……바보……바보 타이치」
미키「뭐라 할 말이 없네요」
타이치「음」
키리「……어린애 집단」
미사토「자자, 레크리에이션은 거기까지」
손을 팡팡 두드리는 선배.
토오코「……레크리에이션이 아니라……성희롱」
지적당했다.
미사토「사쿠라, 키리하라」
무관심조의 두 사람을 부르는 선배.
키리「왜요?」
미사토「모처럼이니까, 다시 해 보면 어때요?」
토오코「……」
미사토「부활동이라 해도 별다른 작업도 없고, 그냥 구경하는 셈치고 시간만 때워줄 수는 없을까요?」
키리와 토오코.
두 사람은 서로 가볍게 눈빛을 교차시켰다.
이 두 사람의 위치는, 서로 미묘하게 다르다.
키리「전」
키리「전 미키를 따라왔을 뿐이에요」
미사토「안되나요?」
미키「키리찡……」
키리「……미키가 갈 때까지는 같이 있을 거예요」
미키「에헷」
한 쪽의 공기가 풀어진다.
다른 한 쪽은, 아주 죽상인 채로 정지 상태.
사탕으로 가득 채워진 입을 손으로 막으며, 겨우 말을 만들어 낸다.
토오코「하세쿠라 선배가 오라고 해서 온 것뿐이에요!」
토오코「하지만……그 사람이 없는 것 같으니까……」
가려고 한다.
팔을 잡는다.
타이치「저기, 그거 나야」
토오코「하아?」
타이치「내 이름 쓰면 안 올 거 같아서 말야」
토오코「갈래」
타이치「아잉아잉」
토오코「네가 부른 건 줄 알았으면 애초에 안 왔어!」
타이치「그렇게 화내지 마」
토오코「맨날 그렇게 자기 좋을 대로만 하고! 그 때도!」
토오코「사람을 놀리고 바보취급하고, 가지고 놀고, 넌 그걸 즐길 뿐이잖아! 그래도 내 기분 정도는 조금은 생각해 주면 안돼!? 자기가 상처받지 않는다고 다른 사람도 그럴 거라 생각하면 큰 착각이야!!」
미키「부싸가……」
※부싸=미키어. 부부싸움이란 뜻.
토모키「안 말려?」
사쿠라바「사탕을 먹고 싶다, 타이치」
미사토「변함없네요, 사쿠라바군」
키리「부장이 말려야 될 것 같아요」
미사토「그, 그러죠」
미사토「으음……」
미사토「저기요」
토오코「○&□%▽×◇$#!!」
사쿠라바「효과 0으로 판단됩니다」
미사토「으……」
안 되겠다. 내가 수습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타이치「토오코」
토오코「왜!」
타이치「난 네 화내는 얼굴이 좋아」
토오코「무슨, 말이야?」
타이치「그러니까 앞으로도 계속 사이좋게 싸우자」
토오코「……………………」
허탈한 표정의 토오코.
토오코「……이제 됐어. 피곤해」
타이치「내 맘을 알아줬구나」
토오코「피곤하다고 했잖아. 빨리 부활동이나 하지 그래?」
타이치「네가 가지만 않는다면야」
토오코「……맘대로 해」
긍정과 이해.
손을 잡아당겨, 모두의 곁으로.
토오코는 고개를 숙인 채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타이치「대장, 여차저차해서 잃어버린 일상의 재현에 성공했습니다」
미사토「에?」
타이치「또한, 상처투성이긴 합니다만 인간관계의 수복도 끝냈습니다」
미사토「네, 네에」
석연치 않아 보이는 표정.
당연하지. 그녀들한테도 각자 다른 시점이 존재하니까.
미사토「어쨌든, 오랜만에 다들 모였네요」
타이치「옛썰―」
그리운 일곱 명의 공기.
부활동의 시작이었다.
미사토「페케군, 준비 부탁해도 될까요?」
타이치「네, 맡겨주세요」
타이치「그 전에, 화장실에서 작은 일 좀 보고 오겠슴다」
토오코「조용히 갔다 와, 바보」
타이치「흥―이다」
나중에 또 괴롭혀 줘야지.
사쿠라바「나중에 또 키리하라를 괴롭혀서 기분을 풀려고 생각했나?」
타이치「거, 거기까진 생각 안 했어!」

타이치「후암―」
화풀이로 여자 화장실에서 쌌다.
그것도 토오코가 언제나 쓰고 있는 지정석에서.
타이치「후훗」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손으로 물을 모아 세수를 한다.
거울에 그녀의 모습이 비쳤다.
손이 멈춘다.
타이치「요코?」
요코「……」
타이치「학교 왔었구나. 변함없이 신출귀몰이네」
요코「부활동 놀이, 재밌어?」
대답이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놀랐다.
타이치「……부활동 놀이가 아니라 부활동인데」
요코「하지만, 의미없어」
타이치「그렇지 않아」
타이치「아주 의미있는 일이야. 나를 위해서도, 모두를 위해서도」
웃는다.
그래, 부활동은 실로 의미있다.
요코「……」
타이치「집에 틀어박힐 수는 없는 성격이라서 말야」
타이치「그런데, 그걸 비꼴려고 일부러 왔어?」
요코「비꼰 적……없어……」
목소리가 작아진다.
타이치「교복까지 입고서」
타이치「모처럼인데 해 볼래?」
요코「……」
타이치「부활동 말야. 지금부터 방송할 거야」
요코「그런 장난감으론 아무것도 못해」
타이치「물론 기분만 내는 거지」
요코「의미없어」
타이치「기분을 낸다는 의미가 있어」
요코「……사양할래」
타이치「내가 '부탁해요 참가해주세요'하고 매달리면?」
요코「갈래」
간단했다.
타이치「……」(생각)
타이치「지금 입고 있는 팬티 달라고 하면 줄 수 있어?」
그녀는 치마 속에 손을 넣었다.
타이치「아―, 역시 됐어」
요코「……」
그녀의 움직임이 멈춘다.
전 귀축 게임의 주인공입니까.
타이치「그럼……멀리서라도 괜찮으니까, 보러 와. 넌 사람이 싫을 테지만 말야」
요코「싫은 게 아냐……흥미가 없을 뿐」
담담히 말한다.
지금도 상당히 무리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한테는, 가끔 해야 되는 말조차 하려고 하지 않는다.
타이치「그래도 모처럼의 이벤트니까, 같이 참가하는 것도 좋잖아?」
요코「……알았어」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 그녀는 화장실에서 나갔다.
타이치「그건 그렇고」
잘도 여자 화장실에 들어간 걸 알아챘군…….
역시 슈퍼 여닌자.
화장실을 나온다.
타이치「근데 쿠노이치(여닌자)는 음절을 나눠서『쿠노 이치』라고 부른다는 거 알고 계셨나요?」
미키「처음 듣습니다. 그럼」
그렇게 말하며 엇갈려 화장실에 들어가는 미키.
타이치「저기……여자 화장실에 들어갔던 건 제발 비밀로」
매달렸다.
미키「글―쎄요, 어떡할까나―」
타이치「특히 키리하라한테만은」
미키「그럼 키리찡한테는 말해도 되겠네요?」
타이치「아잉, 그것도 안돼~」
우리 학교 굴지의 2대 냉혈녀 아닙니까.
미키「미키, 나타드 코코 먹고 싶어―요」
타이치「하, 한천(寒天)으로도 괜찮다면」
미키「그럼 이 입은 삐약삐약―하고 열려버릴 것 같은데요」
타이치「부디 자비를!」

타이치「하이하이」
미사토「마침 준비 다 끝났어요~」
타이치「이 초 슈퍼 카리스마 DJ가 등장할 차례군요」
사쿠라바「슈퍼 카리라 하면 바로……」
타이치「에잇!」
돌려차기.
사쿠라바「크헉」
타이치「여자들 앞에서 그런 말 하지 마!!」
토모키「이젠 다들 무슨 뜻인지 안다고」
사쿠라바「……겁나게 아프다」
고통에 강한 사쿠라바는 전혀 움츠러들지 않았다.
미사토「자―아, 삼류 콩트는 그쯤 해 두고 빨리 시작하죠」
세 명「네―에」
남자들은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키리는 조금 떨어져, 우리들을 지켜보고 있다.
미키가 없으면 의지할 곳이 없는 고독한 소녀.
타이치「헤이!」
키리는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돌렸다.
열받아서 발꿈치로 바닥을 쾅 눌렀다.
에휴휴…….
미키「안녕」
아주 자연스럽게 키리의 옆에 선다.
이 두 사람.
키리가 보호자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미키가 중심이다.
겉으로 보이는 관계와 실제 관계가 정반대인 것이다.
그 지배성이 느껴지는 구도에.
마음이 저려왔다.
하지만 지금은 방송할 거리를 생각해야 된다.
원고도 초기원고뿐이고.
그러고 보니, 요코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참가한다고 한 이상, 어딘가에는 있을 것이다.
찾는다.
반경 20미터 이내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은 6개.
하지만 그것과 다른, 희미한 위화감이 있었다.
급수탑.
타이치「있다」
역시나랄까, 급수탑 위에 숨어 있었다.
작은 그림자가 살짝 움직이고 있다.
그녀다.
움직임은 거의 없다.
하지만 희미하게나마 움직인다면, 난 알아챌 수 있다.
이 따분한 세계에서, 난 누구보다도 민감해졌다.
타이치「진짜 흥미없나 보네」
토모키「응? 뭐가?」
타이치「아―, 너한테 말한 게 아녀」
타이치「자― 방송방송」
미키「이 방송, 프로그램 이름은 있나요?」
미사토「음―, 안 정했어요」
사쿠라바「저」
미사토「네 사쿠라바군」
사쿠라바「공포 지옥 방송국」
미사토「에잇」
퍼억
부장 펀치가 사쿠라바에게 내리꽃혔다.
미사토「기각입니다―. 다른 건?」
사쿠라바「아프군~」
토모키「넌 진짜 바보구나」
사쿠라바「그치만그치만, 이런 건 임팩트 승부란 말이다?」
타이치「그럼 한 명씩 대충 말해 볼까」
토모키「응」
타이치「슈퍼 닌자」
미사토「……」
미키「성희롱 무사도」
사쿠라바「음요미군~저자ㆍ유메○바쿠」
토모키「방송 구락부」
내 첫 마디로 방향성이 정해져버린 것 같다.
타이치「슈퍼 닌자」
미키「빙글빙글 찌익― 방송국」
그 자리에 모인 전원이, 사무적이고 의무적으로 미키에게 꿀밤을 먹였다.
미키「아야야……넘해……」
미사토「불건전 금지」
미키「죄성함다」
다시 원점으로.
타이치「슈퍼 닌자」
토모키「그게 제일 맘에 든 거냐……」
사쿠라바「무슨 닌자냐」
타이치「뭐랄까 일단, 초 슈퍼 메가 퓨쳐」
몸짓을 섞어 설명한다.
타이치「10미터 정도의 벽도 뛰어넘을 수 있어. 그리고 애도(愛刀)ㆍ코가라마루를 가지고 슥삭슥삭하고」
토모키「탐관오리를 베?」
그건 너무 시시하지.
타이치「아―」
타이치「마을 처녀를 벤다」
토모키「그건 싸이코야!」
사쿠라바「……싸이코」
미사토「기각」
토모키「조금은 가공 좀 해 봐」
사쿠라바「어렵다」
미사토「마이너스 방향에서 떨어져 주세요―」
선배가 메가폰(있었다)으로 외쳤다.
타이치「으―음」
타이치「미미미 선배의 핑크빛 G스팟」
미사토「에잇」
퍼억
맞았다.
아름다운 중단 정권이었다.
타이치「우헉」
미사토「불건전한 건 안되니까 참아요」
타이치「이잉―」
사쿠라바「DJ는 플라워즈로 하자」
타이치「뭣˝!?」
미키「키리찡한테 물어볼게요」
타이치「그, 그런, 잠깐……」
사쿠라바「걸이어야 한다」
타이치「아―」
그 맘은 알겠지만.
나도 미련이 있어서.
미키「그럼그럼」
달려갔다.
미키「―――」
키리「―――」
돌아왔다.
미키「잠꼬대는 뒤진 다음에 해 이 감셍이들아, 랍니다」
사쿠라바「훗……변함없이 엄격하군」
사쿠라바는 기쁜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 놈은 마조히스트니까.
타이치「근데 감셍이가 뭐야?」
미사토「감성돔을 말하나 보네요. 이상한 얼굴을 한 도미예요」
사쿠라바「이상한 얼굴?」
미사토「이―런 느낌이에요」
(그림 ― 감성돔(도미과 어류) 학명 Acanthopagrus schlegeli 홋카이도 이남부터 일본 각지의 연안과 내해의 모래질 바닥에 서식)
타이치「키리 이 자식, 밤길 다닐 때 정조 조심해라!」
키리「……(흥)」
타이치「크으―, 저 꼬맹이―」
토모키「자자 진정」
사쿠라바「나, 왠지 피곤해졌다」
미사토「당신이 그런 말 하면 어떡해요」
점점 친평화적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반짝 인격 파탄자들의 교류란 이런 것입니다.
타이치「맞다, 키리하라의 의견은?」
토오코「하?」
타이치「일단 부원이니까, 아무거나 말해 봐라 이 가시나야」
토오코「흥」
내키지 않은 듯 콧방귀를 뿜으며.
토오코「……바보's (바보 친구들)」
사쿠라바「이 자식! 돈 좀 있다고 잘도 우리를 깔봤겠다!」
토모키「그건 너야」
타이치「그건 너야」
동시에 동급의 태클(폭력)이 사쿠라바를 매트 위로 침몰시켰다.
토모키「게다가 넌 부자에다 바보잖아. 완전히」
사쿠라바「……미안하다……」
타이치「확실히 이 녀석은 바보지만 그 제안은 수용할 수 없다, 키리하라」
토오코「……흐―ㅇ」
미키「끝이 없을 것 같네요」
타이치「선배의 의견은?」
미사토「……글쎄요」
역시 이 바보들에게 맡겨둘 순 없다고 생각한 걸까.
선배는 팔짱을 끼고 생각했다.
미사토「페케군이 DJ니까……쿠로스 채널」
사쿠라바「안이하다」
타이치「그래도 제일 괜찮은데」
미키「게다가 왠지 모르게 신경쓰이는 그 녀석의 이름이 붙어 있는 점이 베리 큐트!」
미키「……하고 키리찡이 제 귀에 대고 뜨겁게 속삭였습니다」
키리「안 그랬어!!」
멀리서 화내는 키리.
타이치「제길, 본심을 숨겨서 나를 애절하게 만드는 네놈에게 데이트를 신청한다, 사쿠라 키리!!」
키리「안 그랬다니까―!!」
토모키「그쯤 해 두고……쿠로스는 CROSS로 하는 게 어떨까?」
미사토「아아, 영어로?」
선배가 말을 걸자, 토모키는 순간 당황했다.
토모키「……응」
미사토「CROSS CHANNEL인가요. 음, 좋네요」
복잡한 표정으로.
토모키「뭐, 괜찮네……」
미사토「페케군은 어때요?」
타이치「불초 소생의 이름을 달아주시다니, 기쁘기 한량없습니다」
사쿠라바「잠깐」
타이치「뭔가 동지여. 설마 이 퍼펙트 네이밍에 클레임을 걸려는 건방진 속셈은 아니겠지?」
사쿠라바「CROSS CHANNEL보다 CROSS†CHANNEL이 좋을 것 같다」
토모키「모르겠다……이 녀석은 진짜로 모르겠어……」
타이치「좋은데, 그거」
토모키「알아들은 거냐?」
사쿠라바「자신작」
타이치「너치고는 꽤 쓸만한 아이디어라 인정해 주지」
결정.
군죠학원 방송국ㆍCROSS†CHANNEL의 개국이었다.
타이치「좋아 토모키, 방송이다! 보일러에 불을 붙여라!」
토모키「없어」
사쿠라바「키를 우현으로 돌려라」
토모키「배냐!」
어쩐지 토모키의 태클이 사무적이었다.
토오키「바보 트리오」
가시돋힌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타이치「내가 바보가 아니었다면, 적어도 여기에 전원을 모으진 못했을걸」
토오코「?」
미사토「정말로 전원……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아'하고 다소 쓸쓸하게 한숨을 쉬는 선배.
타이치「어쨌든 키리하라, 모처럼 왔으니까 내 유창한 토크에 천천히 빠져 봅시다」
토오코「……왕바보」
먼산을 바라보며, 토오코는 사탕을 입에 던져넣었다.
뿌득뿌득 깨물어 먹는다.
타이치「수줍은 거야?」
밑 쪽으로 얼굴을 들이민다. 입술 간의 거리는 5센티.
토오코「꺄아이야―――!?」
토오코는『꺄아』와『이야』를 융합시킨 참신한 비명을 지르며, 내 얼굴에 주먹을 먹였다.

타이치「그럼, 시작할까」
미키「영상 미디어가 아니라 다행이네요」
타이치「내 말이」
멍투성이인 얼굴을 보일 순 없으니.
준비된 마이크 앞에 앉는다.
초저녁의 서늘한 바람.
그 바람은 부드럽게 옥상을 쓰다듬고, 낮 동안 축적된 열기의 잔향을 빨아갔다.
긴장이 된다.
요코에게 시선을 보내고, 엄지손가락을 세웠다.
요코「……」
바로 엄지손가락을 돌려주었다.
미사토「……하세……쿠라?」
그것을 보고 눈치챈 것은 부장뿐이었다.
타이치「예스」
타이치「전원, 모였어요」
미사토「페케군……이?」
타이치「분명히 부활동 놀이인 건 틀림없지만」
공허하게.
나태하게.
수없이 자신을 속여가며.
타이치「지금이라는 순간에는, 필요한 일이에요」
미사토「……」
선배는 망연자실한 채로, 그 자리에 우뚝 멈춰섰다.
미사토「하지만, 전 그저……」
미사토「그런 대단한 이유로……!」
타이치「괜찮아요, 본심 같은 게 어땠건」
타이치「모두 함께 부활동. 그리고 드디어 끝」
미사토「전……」
여기에 전원 있다.
모두가 여기에 있다.
단순히 방송부원들이 있다는 의미만은 아니다.
무수한 거짓과 속임수 위에 성립된, 인간관계의 잔해다.
그것이 이 세계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수명을, 마음의 붕괴까지의 한계를, 조금이나마 늘려주었다.
토모키「간다, 타이치」
미키「6시까지 앞으로 5, 4……」
미키가 말을 멈추고, 손가락을 하나씩 접어간다.
3.
꿈꾸어왔었다.
2.
이런 평범한 부활동, 보통의 학생다운 일상을.
1.
추억이 있다면, 난 그걸로 좋다.
0.
만족한다―――
숨을 들이쉰다.
원고를 손에서 놓는다.
여름의 향기를 머금은 저녁 바람이, 못된 장난을 치듯 그것을 가로챘다.
미사토「앗?」
원고는 연이어 날아올라, 이리저리 날뛰며 하늘 속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자 방송이다.
타이치「여기는 군죠학원 방송부」
비록 소용없는 짓이라 하더라도.
끈질기게 살아가겠다.
그리고 나는, 힘차게 말을 내뱉었다.

살아있는 분, 계십니까?

CROSS†CHANNEL
(c) 2003 FlyingShine

방송부의 합숙이었다.
우리들 1학년이 진학하고, 행복한 3학년이 졸업하고.
새로운 1학년이 들어오고.
새로 구성된 부원은 일곱 명.
하지만 실은 여덟 명.
'7/8이면 뭐 OK지'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는……어차피 부르기만 하면 바로 오니까.
일곱 명을 모으기 위해.
치뤄야 했던 대가는 싸지 않았다.
여러모로 참 힘들었다.
그 중 한 원인이, 교사가 참가하지 않는다는 것.
왜냐면 이건 정식 부활동이 아니었기 때문에.
학원에는 비밀인 부활동.
들키기라도 하면 조금 시끄러워진다.
하지만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
그렇게 합숙이 끝났다.
일곱 명은 귀로에 접어들었다.
도중에 해가 저물었다.
아주 오랫동안 걸었던 것 같다.
몇 시간 동안이나.
보통 때는 1시간도 안 걸리는 길이다.
지친 탓일까.
아무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일곱 개의 발소리만이 존재하는 세계였다.
이상하게 조용한 산길.
벌레소리마저도 들리지 않는다.
공기마저도 차갑게 느껴진다.
지금은 여름인데도.
어두웠지만, 나에겐 잘 보였다.
길은 잘 보였다.
난 옛날부터 밤눈이 좋았다.
길을 잘못 들었는가 생각할 무렵, 마을로 나왔다.
인류는 멸망해 있었다.

CROSS†CHANNEL

타이치「으챠챠챠!」
기세좋게 집을 뛰쳐나왔다.
문 안쪽에서 준비 자세로 힘을 비축해 둔 덕분에, 몸도 마음도 펄쩍펄쩍.
타이치「네 안녕하세요―!」
평소 같았으면, 여기서 수치 플레이.
출근중인 샐러리맨.
건방진 초딩들.
집단 등교중인 유치원생들.
그런 사람들의 훈훈한 시선이 나를 다정하게 보듬어줘야 하는데.
아무도 없다.
타이치「……후우」
역시, 꿈은 아니었던 것 같다.
타이치「음―」
아냐.
아직 확실한 건 아니다.
저기 여보세요.
타이치「푸풉」
입을 막는다.
인류 멸망이라니!
타이치「우푸푸풉, 푸풉!」
박장대소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인류 멸망이란 소재는 너무 진부하잖아.
벌써 21세기라고요?
너무 진부해요.
불침함 야마토는 침몰해도 일본 열도는 침몰하지 않아요.
타이치「자 그럼」
한바탕 웃고 나니, 갑자기 냉정해졌다.
주위에 사람도 없는데 떠들어 봐야 공허할 뿐이다.
타이치「그래, 유사를 만나러 가자」
요 근처에 사는 초 프리티 소녀의 얼굴을 보지 않고서, 내 하루는 시작되지 않는다.
도지마씨네 집을 찾아간다. 가깝다.
타이치「유사아―, 어―이!」
노크를 하지만, 반응은 없다.
타이치「아무도 안 계세요―!」
그래, 인터폰.
TV까지 달린 방범 기능 내장 인터폰이다.
누른다.
소리가 안 난다.
타이치「……아, 맞다」
전기가 끊겨 있었던 것이다.
TV도.
전화도.
청소기도 냉장고도.
모든 것이 멈췄다.
문을 두드린다.
타이치「시어머님―?」
타이치「유사유사―!」
타이치「아가씨를 받으러 왔습니다―!」
타이치「마망―……」
타이치「유……사……」
문을 두드리던 주먹이, 힘없이 떨어진다.
타이치「으―음」
요시다씨네 집에 간다.
타이치「캬웃!」
맹견 컴뱃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타이치「……」
개집은 텅 비어 있었다.
타이치「개까지?」
그러고 보니, 고양이 한 마리도 못 본 것 같다.
타이치「으―음으―음」
타이치「꽤 체계적인 꿈이네」
꿈이건 아니건 별 상관없었다.
타이치「학교나 가자」
1개월 반만의 통학이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좋은 날씨.
통학 날씨.
통근 쾌락.
하얀 앞머리가, 태양의 빛을 가리며 눈꺼풀에 닿는다.
타이치「잘라버릴걸―……」
우울하다.
색깔 탓도 있지만, 난 별로 내 머리는 좋아하지 않는다.
타이치「하―」
앞머리를 만지면서 고개길투성이인 통학로, 통칭『통학고개』로 갔다.
터벅터벅 걷는다.
그 순간.
나나카「꺄아――――――ㅅ!?」
뭐야!?
쿠당―!
나나카「꺄와와와와와와와와와와와와왓!!」
타이치「우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옷!?」
나는 卍자 모양으로 변해 회전했다.
나나카「브레이크 브레이크!」
타이치「부우우우우우우우우웅!!」
그대로 프로펠러처럼 회전하며 지면으로 돌진했다.
타이치「크허어어억……」
나나카「아―ㅅ, 미안―!」
타이치「어버어버어버어버」
코믹 역장!?
※코믹 역장=타이치과학. 스칼라 전자학과 에테르 우주론, 승등기관 등과 대등한 초과학 이론 중 하나. 모든 물리 현상이 가속됨과 동시에 완화된다.
그 결과, 통상 물리학으로는 설명 불가능한 코미컬한 효과를 발생시킨다. 통계적으로 지기 싫어하는 아동적 객체에 붙어서, 그 캐릭성을 유지하기 위해 작용한다.
타이치「날 죽일 작정이냐!!」
나나카「미안~!」
소녀는 손을 모았다.
타이치「이 처녀가」
퉷, 하고 침을 뱉었다.
나나카「으히」
타이치「너와 메서슈미트에게 모든 것을 건 사람들의 열망을 이해 못 한 거냐!」
나나카「이해하기 싫은데……」
타이치「사람을 프로펠러처럼 회전시키기나 하고」
먼지를 털어내고, 학교로 향한다.
나나카「아, 잠깐만―」
뒤쫓아 온다.
나란히 서서, 자전거에 올라탔다.
나나카「읏샤」
비틀비틀 병주.
근데, 이 처녀…….
나나카「음. 이번에도 침착해서 좋아 좋아」
타이치「……응?」
나나카「타이치는 참 대단하네」
타이치「……앙?」
혹시 위험한 사람?
DANGEROUS?
……뭐 나도 그렇지만.
아니, 우리들 전원이 그런가.
타이치「와하하」
나나카「?」
타이치「……칫」
웃지 말자.
근데 이 처녀는 누구지?
아무리 봐도―――
소녀「읏샤」
가볍게 윌리를 한다.
타이치「읏!!??」
팬티가!?
사고가 정지된다.
돌발적인 에로이벤트에, 나는 약하다.
게다가 이벤트 직전의 기억 일부도 깨끗하고 상큼하게 사라진다.
참 뭐 같은 뇌다.
뭐 어때.
나나카「이야―, 덥네」
타이치「여름이니까」
나나카「신학기, 월요일, 새로운 만남, 헤어짐」
나나카「그리고 사당」
타이치「네?」
사당?
나나카「이 장면이 끝나면 사당에 가는 선택지가 나오길」
타이치「안 나와, 그런 선택지는」
나나카「무정하긴―」
울상을 지었다.
타이치「왜 내가 그런 산 속까지 가야되는 건데. 학교도 가야 되는데 말야」
나나카「학교라고 해도, 사람도 없잖아」
타이치「그렇지 않아」
냉정하게 말한다.
타이치「이건 꿈이니까 학교에 가면 모두 다 있을 거야」
나나카「아뇨, 인류는 멸망했습니다」
타이치「거짓말――――――!!」
나나카「아뇨, 실제로 그렇습니다만」
타이치「안 들려! 그런 SF소설 같은 얘기는 안 들려!」
나나카「SF소설이라」
타이치「자자, 그 얘기는 끝!」
나나카「……매번 매번 정신상태가 다르구나, 타이치는」
타이치「매번이라니?」
처녀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
나나카「묘하게 태연한가 싶더니, 갑자기 현실을 거부하기도 하고」
나나카「그치만 특정 경향으로 굳어지지 않는다는 건, 강하다는 뜻일지도 몰라……」
나나카는 내 멱살을 잡았다 (자전거를 타면서) (곡예 수준).
나나카「그런데 그것 땜에 난 매번 고생하잖아―!」
흔들흔들흔들
타이치「아우아우아우」
나나카「사당 가 줘, 가 달란 말야!」
타이치「No more, No more 폭력!」
나나카「사당 갈 거냐?」
타이치「갈게, 갈게요!」
숨막혀……죽겠다.
나나카「진짜로?」
고개를 끄덕끄덕.
나나카「알았다」
해방된다.
타이치「하아―하아―」
반항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타이치「근데 왜 사당에……」
나나카「아니, 그 부근에는 말야, 신령님이 있대」
두 사람은 잠시 마주보았다.
그리고 갑자기 동시에.
타이치「와하하하하하」
나나카「아하하하하하」
타이치「와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나나카「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나나카「무지하게 신통력이 강하대」
타이치「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게 하는 신통력?」
나나카「아니, 웃고 싶어지는 건 당연하시겠죠. 나도 사람한테 진지한 표정으로 그런 말을 들으면 웃을 거야」
타이치「그래서 나를 웃기기 위해 진지했던 거군」
나나카「그렇긴 한데……그래도 조금은 진지한 이야기야, 이거」
타이치「신령님이?」
나나카「응」
나나카「중요한 이야기야」
타이치「왜?」
나나카「어쨌든 중요한 이야기야!」
역설.
당최 영문을 모르겄다.
타이치「도대체 넌 누구야」
나나카「……누구냐고 물어보신다면?」
타이치「훗,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했나?」
앞머리를『사르랑』하고 쓰다듬었다.
타이치「이 내가 그런 것도 간파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는가!」
나나카「윽」
타이치「이 쓴 맛도 단 맛도 모두 본 엘리트 영 어덜트 후보생, 쿠로스 타이치의 눈을 속이고 싶거든, 당찬 팬티 팔랑 소녀를 데리고 와라!」
휙, 하고 손가락을 들이대며 말했다.
나나카「팔랑」
순간 팬티가 보였다.
타이치「우오오오오오오오오오옷!!」
타이치「우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옷!!」
타이치「빰바야―!」
코피를 내뿜으며, 나는 쓰러졌다.
나나카「허약하긴……」
타이치「어버어버어버」
허를 찔렸다.
나나카「그리고 코피라니. 쌍팔년대 러브코메디 주인공이냐 네놈은」
타이치「비겁한 놈」
나나카「무책임하게 사람을 판단하려 했기 때문이다」
타이치「보통 그런다고」
타이치「만난 적도 없는 처녀가 허물없이 말을 건네면」
몸을 일으킨다.
나나카「만난 적도 없는 건 아냐」
타이치「부정의 연속」
나나카「AT○K냐 네놈은」
타이치「그럼 언제 만났는데?」
나나카「……어려운 질문이구나」
처녀는 먼 산을 보았다.
나나카「잘 대답 못하겠어」
타이치「……방금 전부터 신경 쓰이고 있었는데 말야」
나나카「으뉴?」
으뉴라고 말했다.
역시 얕보지 못하겠군.
타이치「네녀석, 지구인이 아니지?」
나나카「앙?」
타이치「무슨 별에서 왔냐」
나나카「지구」
타이치「구라다, 너 같은 지구인이 있을 리가 있냐―!」
타이치「어째서 그렇게 둥실둥실하고 있는 건데! 이상하잖아!」
나나카「둥실둥실?」
타이치「뭐랄까 이렇게……뭉게뭉게하달까, 두리뭉실하달까, 잘 설명은 못하겠지만 어쨌든 뭔가 달라!」
타이치「핫!? 설마 나를, 나를 그 음란함의 포로로 타락시킨 끝에 나의 정력을 빨아들여서 폐인으로 만들어버릴 작정이냐!?」
타이치「요괴? 요괴냐!?」
난 새끼고양이처럼 떨었다.
나나카「진정」
타이치「후냥?」
안겼다.
타이치「…………」
나나카「조금 불안해진 것 같네. 괜찮아 괜찮아」
꼬옥.
팔의 압력이 가슴의 유연함보다 높아, 내 얼굴이 파묻힌다.
타이치「오오……」
타이치「이것이야말로 실로 어머니의 언덕, 이 2개의 봉우리가 과연 에로마 제국의 발전의 토대가 되어 수많은 나라 속에 그 이름을 떨치게 할 것인가!」
나나카「가슴 만지지 마라」
타이치「오랜만의 가슴……」
나나카「만지지 말랑께」
무릎이 명치에 들어왔다.
몸이 공중에 떴다.
타이치「어걱……」
땅에 꼴아박는다.
겁나게 꼴사나웠다.
타이치「……응―?」
나나카「왜 그래?」
타이치「뭐랄까」
방금 성희롱을 실시한 나의 손을 눈 앞에서 앞뒤로 돌려본다.
타이치「위화감. 아니, 달라. 뭐랄까……으―음」
잘 모르겠다.
여자를 만졌을 때 북받쳐올라야하는 감정이 슈욱하고 시들어간다.
거세당한 것처럼.
나나카「……아팠어?」
타이치「아니」
그렇게 진짜로 걱정해 줘도 좀 곤란.
일어난다.
타이치「이야―, 좋은 걸 갖고 있네」
일단 평소의 경박 언동으로 대충 마무리.
나나카「아니 뭐. 숙녀로서 당연한 일이죠」
타이치「특유의 부드러움과 기품, 그리고 그 안에서는 그윽한 향기가 느껴지는, 근래에 보기 드문 명품이군요」
어디 사는 비평가처럼 말했다.
나나카「과분한 말씀이십니다」
타이치「자, 그럼 이제 냉정해졌으니」
타이치「이름을 말해」
나나카「……이름 안 말했었나?」
타이치「지나가던 처녀라고밖에 안 말했어」
나나카「지나가던 처녀라고 말한 적 없는데……」
나나카「난 나나카」
타이치「난 타이치」
나나카「알고 있어」
타이치「어떻게 내 이름을?」
나나카「비 미 일♪」
수수께끼가 많군.
나나카「그럼 이쯤하고 가 볼까」
타이치「그럼, 본론으로 들어가서……넌 도대체」
나나카「바이바―이」
타이치「잠깐!」
떠나가는 등을 부른다.
나나카「나뉴―?」
윽, 그런 들은 적도 없는 모에 워드를.
분명히『이르쿠츠크ㆍ매니아』처럼 세계적으로도 사용 횟수가 적은 단어임에 틀림없다.
타이치「그런 레어 단어까지 들었으니 이번엔 순순히 보내주겠지만, 어느 별에서 왔는지 정도는 자백하고서 가라!」
나나카「그러니까 지구인이라니깐―」
타이치「구라다, 지구인의 기척이 아냐!」
나는 특기인 가라데의 자세를 취했다.
가라데는 궁극의 격투기다.
나나카「후후훗」
하얀 손가락이 나를 휙 가리킨다.
타이치「?」
아니, 내 등 뒤다.
뒤돌아 보고, 시야가 학교를 확인하고 나서 수초.
대답이 없다.
시선을 나나카에게 돌린다.
그녀는 사라졌다.
자전거와 함께.
갑자기 증발해버린 건 아닐 텐데.
타이치「…………오잉?」
매미도 울지 않는, 조용한 신학기였다.

몇 개의 고개를 넘어 상점가에.
인기척은 없다.
타자키 상점이 보인다.
타이치「……」
일말의 기대와 함께 점내를 엿본다.
하지만, 그곳에 사람의 숨결은 느껴지지 않았다.
타이치「……부재중인가」
타자키 상점은 요 몇일 전부터, 계속 부재중이다.
이 현지 밀착형 점포의 주인 타자키 고이치로씨(47세ㆍ독신)는 자타가 인정하는 철도 매니아.
자주 가게를 훌쩍 비우고, 머나먼 땅의 지방선 사진을 찍으러 간다.
가끔씩 사진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전혀 재미없다.
난 기차에 대한 환상 따위를 갖고 있지 않은 요즘 청소년이니까.
가게는 주인 부재중에도 열려 있다.
멋진 무인상점이다.
20대 무렵 JR (일본의 철도청) 취직에 실패해 시대에 뒤떨어진 야쿠자로 전락해버린 타자키씨였지만(30대까지 이 비행행각은 계속됨), 양친의 사후 시간이 지나자, 주름이 잡힌 복스러운 얼굴로 변해갔다.
전 폭주족이었던 난폭한 철도 오타쿠를 선인으로 바꿀 수 있었던 건, 뭐 유산밖에 없겠지.
어쨌든 손 안의 현금만은 남아도는 타자키씨의 가게는, 이웃 주민에 대해서는 제한없이 외상을 주는 보기드문 현지 밀착형 점포다.
그래서 사람이 없는 건 그렇게 드문 일은 아니다.
그러고 보니, 조금 목이 마르네.
가게 안에 들어가, 녹차 한 병을 꺼낸다.
가지고 다니는 메모장에 펜을 휘갈긴다.
『9/7, 녹차왕, 130엔……쿠로스 타이치』
벽에 찰싹.
그곳을 보니, 메모가 몇장 더 붙여져 있다.
『9/3, 야채쥬스 활력 GOGO, 110엔……야마노베 미키』
『9/3, 매그넘 리찌, 110엔……사쿠라바 히로시』『톡 쏘네요』
『9/4, 패트병 천연수, 140엔……미야스미 미사토』
『9/5, 야채쥬스 활력 GOGO, 110엔……야먀노베 미키』
『9/5, 킹 도도리아, 110엔……사쿠라바 히로시』『별로 맛없군요』
『9/6, 야채쥬스 활력 GOGO, 110엔……야마노베 미키』
『9/6, 후추경부, 110엔……사쿠라 키리』
합숙 중엔 이곳에 여러가지 물건을 사러 왔었다.
타이치「……」
합숙에서 돌아오자, 마을에서 사람은 사라져 있었다.
TV, 라디오……모든 미디어가 먹통이 되고, 또 전기와 수도 등의 시설도 끊겨 있었다.
모두 마비되어 있었다.
못본 척 하기에는 너무나 무거운, 눈 앞의 현실이 느껴졌다.
다들 지쳐서 이야기할 기력도 없었다.
결론을 보류한 채로 헤어졌다.
그리고 오늘.
신학기.
나는 평범하게 등교하려 하고 있었다.

문을 연다.
끊어졌었던 사람의 기척이, 내 뺨을 부드럽게 뺨을 어루만졌다.
창가의 자리.
팔꿈치를 책상에 대고 앉아있는 소녀가, 힐끔 이쪽을 바라본다.
아름다운 장발.
그것은 신경질적일 정도의 손질에 의해 유지되고 있는 위험한 아름다움.
가까이서 보면 알 수 있다.
그 철벽의 관리는 머리칼 한 가닥이 휘거나 떨어지는 것도 용납하지 않았다.
손가락으로 어루만져 보면 모래처럼 살랑 흘러내린다.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무적의 갑옷을 두르고 있었다.
접근하기 어려운 분위기라는 보이지 않는 갑옷.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었을 것이다.
이곳이 군죠학원이란 것.
갑자기 발작하는 클래스메이트.
마치 시체 같은 클래스메이트.
자신의 세계밖에 볼 수 없는 속이 텅 빈 소년 소녀들.
제대로 된 대화가 가능한 사람은,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다.
도처에 서 있는, 감정이 없는 경비원들.
광기에 의해 희화화된 교실이란 세계.
시체의 산에 태엽을 감은 장난감들을 풀어놓은 듯한 잔인한 세계.
적응계수 46, 키리하라 토오코가 그 안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남은 54%를 지켜야만 했다.
타인과 소외되는 것으로 유지되는 자의식.
그런 의미로 보면, 입학 당초에 취한 그녀의 선택은 옳은 것이었다.
지금의 토오코는 당시의 그녀와 닮았다.
허식과 허세와 허영.
그것이 키리하라 토오코라는 인물의 모든 것이라 할 수 있었다.
타이치「헤에, 왔네」
토오코「……」
시선이 창 밖으로 던져진다.
내가 다 민망할 정도의 타이밍에.
완전히 무시 모드.


ㆍ屋上に行く (옥상에 간다)


타이치「……」
새초롬한, 깐깐한 미인의 전형.
지금 얘기하는 건 그만두자.
타이치「옥상이나 갈까나―」
교실을 나온다.
나오기 직전, 시선을 느껴 돌아보자 토오코와 눈이 맞았다.
토오코「……!!」
당황하며 돌린 시선이, 공허하게 밖으로 던져진다.
타이치「……」
굳이 태클을 걸 필요는 없겠지.
살짝 문을 열고, 복도로 나왔다.

이 문을 열면, 옥상이 나온다.
그곳에는 분명 그녀가 있을 것이다.
문을 여는데 조금 망설임이 있었다.
실패할 거란 걸 알고 있던 합숙.
억지로 선배를 끌어냈다.
그것이 그녀를 상처입힐 거라는 것도 예상하고 있었다.
예상하고 있었지만, 일부러 신경쓰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또 다시, 그녀를……선배를 이용하려 하고 있다.
내 마음의 평온을 위해서.
이제와서 뭘 꺼리긴, 하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인간은 기분에 따라 움직이는 생물이고, 오늘 아침은 그런 기분이었으니까 괜찮겠지.
나에게 하는 변명은 이걸로 충분하다.
하지만 선배는 어떻게 생각할까.
조금 신경쓰였다.
손잡이를 비틀고, 철문을 밀어냈다.
바람이 불었다.
딱 발을 내민 순간에.
하지만 이상하게도,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눈 앞에 큼지막한 급수탑과 그 옆에 계단이 있고, 그 토대를 공유해서 거대한 안테나가 세워져 있다.
타이치「……헤에」
아직 미완성인 안테나.
부족한 부품과 지식.
그녀는 그것들을 활발한 의욕만으로 채워가면서, 조금씩 안테나의 모양을 갖춰나왔다.
아니.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의욕인지도 모른다.
그럴 때가, 선배에겐 자주 있으니까.
합숙 전.
그녀는 혼자였다.
부활동은 도피를 위한 마지막 수단이란 걸, 나는 알고 있다.
그리고 지금 또다시, 부활동은 도피의 수단으로 쓰이고 있다.
미야스미 미사토.
미사토 선배는 지금, 바람에 둘러싸여 안테나와 함께 서 있다.
타이치「선배―!」
선배를 부르자, 그 머리칼이 부채가 펼쳐지듯 바람에 휘날린다.
군청빛의 넓은 하늘을 헤엄치는 칠흑의 망토.
미사토「페케군?」
귀를 기울이자, 그녀만이 부르는 나의 이름이 들린다.
부드러운 빨간 입술의 움직임과 함께.
돌풍 속에서 그 속삭임을 알아들은 건 실은 칵테일 파티 효과 때문이지만, 선배와 나의 특수한 관계를 몽상하게 하기엔 충분했다.
행복한 착각이란 것이다.
선배를 향해 가까이 걸어간다.
선배는 미소짓고 있다.
나도 자연스레 헤벌쭉.
시선이 정겹게 이어진다.
그리고 나는 그 부드러운 마음 속에 안겨, 미야스미 미사토라는 지고한 여신에게 다가가고 싶다는 애절한 진심을 마리아나 해구와도 같이 깊숙히 느끼게 되는 것이다.
……………………팬티 보인다.
보인다 보인다!
무쟈게, 무쟈게, 빤히 보인다!
완전히 팬티 팔랑 왕국에 온 듯한 기분!
게다가 본인은 눈치 못 채고 있다!
이런 게 제일 견디기 힘들어!
삐―잉! 삐―잉! (경보)
팬티 팔랑 공화국, 건국 만세!
멋진 나라!
좋은 나라!
영원하기를!
미사토「……………………?」
미사토「……………………응?」
미사토「…………페케군?」
미사토「페케군페케군?」
타이치「핫?」
미사토「여보세요? 왜 그러세요?」
이런, 또 의식이 날아가버렸다.
타이치「아아, 아뇨, 전혀 이상없어요. 예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이상없어요」
미사토「그치만 침 흘리고 있는데요?」
타이치「할복하겠습니다」
셔츠를 벗는다.
미사토「잠깐 잠깐」
미사토「왜 침 흘린 거 정도로 할복하려고 그래요?」
타이치「선배를 더럽혔습니다」
미사토「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모르시는 편이 좋습니다.
미사토「그런데 왜 여기에? 수업은 어쩌고요?」
수업이라고?
문득 정신을 차리고, 선배의 눈을 가만히 바라본다.
타이치「…………」
미사토「아, 알았어요. 땡땡이군요」
엄지손가락을 세우는 선배.
전혀 변함없는.
평소의 그녀였다.
미사토「맞았죠?」
타이치「네, 뭐……」
보통의 궤도를.
벗어나 있었다.
그녀는 받아들이고 있지 않았다.
인간이 소멸했다는, 이 현실을.
그러나 다른 점은 모두 정상.
미사토「땡땡이라니 참 못됐네요―」
타이치「…………」
어제. 합숙이 끝나고 나서 헤어질 때.
그녀가 남긴 말에서 받았던 느낌은 바로 나타났다.
미사토『내일 부활동할 거예요』
이런 간단한 형태로.
미사토「여름방학도 끝나고 신학기, 김빠진 코○콜라 같은 기분을 계속 갖고 있으면 안 돼요」
타이치「……」
미사토「바른 자세로 열심히 수업을 듣고, 학과 외 활동에 힘쓰는 게 일본 남자의 미덕이에요」
타이치「…………」
바보가 다른 사람이 보기와는 달리 행복한 것처럼.
본인만은 행복할 것이다.
미사토「그렇다곤 해도, 첫 날에 수업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오늘은 이쯤 해 둘게요」
그래.
행복하다면, 그걸로 됐다.
누군가가 바라는 자신의 모습이 항상 고결하란 법은 없다.
내 가치관을 타인에게 강요할 정도로, 내가 대단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나야말로 불량품 아닌가.
받아들이고, 협력하자.
그녀의 도피를.
혼자였던 나를……방송부로 이끌어 준 사람이니까.
미사토「그리고, 실은 저도 땡땡이에요」
그녀는 살짝 혀를 내밀었다.
나는 혼신의 의지로, 나에게 명령했다.
연기해라.
타이치「꺄흥」
선배는 눈을 가늘게 떴다.
평소의 미소.
미사토「잠깐 기다려주세요」
내려온다.
그녀의 발이 바닥을 밟을 무렵에는, 그곳에 있는 건 평소의 두 사람.
미사토「네―에!」
타이치「선배, 제 말 좀 들어주세요!」
궁극 격투기 가라데, 그 정권 측중단 찌르기의 자세를 취한다.
※정권 측중단 찌르기=정측단으로 들어가는 정권. 가라데에서 전방위 공격은 기본이며, 특히 정권찌르기는 등 뒤에까지 미치는 넓은 범위를 공격할 수 있다. 그리하여 가라데로는 통상 격투기로는 불가능한 정상단이나 정하단 공격도 가능하다.
※그런 기괴한 공격을 가해야만 하는 상대가 지구상의 생명체가 아니란 건 일단 확실하지만, 그래도 유비무환. 만일 그런 적이 나타났을 때에는 가라데만이 유일하게 저항할 수 있는 수단인 것은 확실하니, 분명히 어느 의미로는 최강. 세상은 어차피 게임이니까.
발을 벌리고 선 스모선수 같은 포즈지만 신경쓰지 않는다.
미사토「뭐, 뭔데요?」
선배도 나를 따라서 뭔지 알 수 없는 자세를 취한다.
타이치「지금까지 땡땡이쳐 왔던 동아리에 참가하고 싶습니다, Sir!」
미사토「뭐라고요―!?」
타이치「수영복에서 체조팬티까지, 쿠로스 타이치가 당신의 부활동 라이프를 음란하게 서포트하겠습니다!」
미사토「상상만 해도 현기증이 나네요!」
타이치「황송합니다!」
미사토「칭찬하는 게 아니에요!」
타이치「그 외의 뜻으로는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미사토「굉장히 머리가 좋네요! 너무 머리가 좋아서, 그만 살짝 맛이 가서 바보가 되어버린 건 아닌가해서 깜짝 놀랐어요」
타이치「천재와 우리들은 종이 한 장 차이라잖습니까―!」
이상한 포즈로 이상한 대화를 하는 두 사람.
응, 이것이야말로 부활동.
타이치「자아, 오일 바르기부터 바스트 마사지, 산딸기 사냥까지 뭐든 가능한 이 사랑스런 육체노예에게 뭐든지 명령해주세요」
미사토「어머」
탄력을 받아 그만 야한 말을 해버렸다.
선배는 야한 말에 엄격하다 (둔하지만).
다행히도, 선배는 생긋 미소지었다.
방금 그 성희롱 발언을 눈치채지 못한 걸까?
천사의 입술이 아버지 하느님의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미사토「여기서 꺼져버려」
타이치「중국 주식에 손을 대버렸던 게 나락의 시작이었어―!!」
펜스 너머로 펼쳐진 티없이 맑은 푸른 하늘에 대고 생생하게 외쳤다.
뭐, 책상 빼고 다 먹는다던 그 중국인도 이젠 아예 없지만.
타이치「안테나, 꽤 모양이 갖춰졌네요」
미사토「네, 노력했어요」
태연하게 대화는 계속된다.
이처럼 나와 선배의 관계성은 매우 굳건하다.
세계가 멸망한 정도로는 깨지지 않습니다.
타이치「벌써 완성인가요?」
미사토「……그게, 아직 전혀 안 됐어요」
업자가 세워 줄 예정이었던 안테나.
반입만 된 채로 버려졌다.
미사토「전문가가 아니라서, 느릿느릿 설치하고 있어요」
미사토「본체는 어떻게든 됐지만, 배선이나 기타 조정 같은 건 손도 안 댔고」
타이치「어라라」
유감스럽지만, 나에게도 그런 지식은 없다.
타이치「……도울 수 있는 건 음란한 서포트 이외에는 없을 것 같네요」
미사토「음란한 서포트 같은 걸 하면 정학먹일 거예요~」
스윽스윽
내 머리를 쓰다듬는 선배.
타이치「으르큐―」
목이 기묘하게 울린다.
미사토「좋아 좋아」
타이치「우―우―」
미사토「앞으로도 말 대신 그런 의성어나 의태어들만 내면서 알기 쉽게 얼굴을 붉히고 질투하거나 과거의 트라우마를 대충 밝혀주기만 해 주세요―」
타이치「제가 굉장히 즉물적으로 되어버릴 것 같아요!」
미사토「대중은 그걸 원해요―」
타이치「대중 따위, 싫어!」
이젠 없지만.
힐끔 바라본 선배의 손이 상처투성이인 걸 눈치챈다.
타이치「우와―!」
손을 잡는다.
타이치「상처투성이!」
미사토「아, 네, 그렇네요……」
타이치「혼자서 하니까 그렇죠」
미사토「…………」
어색하게 눈을 돌리는 선배.
타이치「모두랑 같이 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미사토「모두라 해도……」
선배는 순간 멍해졌다.
타이치「일단 부활동이잖아요. 그러는 게 괜찮을 거 같은데」
미사토「그, 그래도요, 그게 좀 힘들 것 같아서」
타이치「하기 나름이죠. 상대를 공략하는 데 가장 적당한 수단을 쓰기만 하면 됩니다」
타이치「민달팽이를 포섭한 개구리가 뱀도 부리는 자연 현상이 시사하는 바와 같이, 인재를 적재적소로 활용해 상대의 급소를 찌르는 것도 인간 사회에서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타이치「이론적으로는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대가만큼의 수단을 가장 우호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국면에 냉정하게 활용하면 어떤 교섭도 제패할 수 있습니다」
타이치「물론, 국면이 진행됨에 따라 관리의 복잡함과 관리자의 육성ㆍ배치라는 새로운 요소도 고민해야 합니다만」
타이치「이쯤에서 마키아밸리즘에도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타이치「또한, '나의 투쟁'에 기록되어 있듯이 공개적인 정치적 속임수 등의 연극ㆍ드라마적인 고양감을 주는 수단의 존재에 대해 말하자면,
그 존재를 허용한다는 것은 상대가 행복한 착각을 바라고 있다는 측면도 있기 때문에 여러모로 생각해 보는 것이 마이 제3제국의 건설을 위해서는……」
미사토「하와와왓」
선배는 덜덜 떨었다.
미사토「페케군이 굉장히 사악해 보여요……」
이런.
날카로운 말솜씨를 요구받고 있는 요즘 우리들 세대의 사정에 맞춰 쓸데없는 독서만 계속해 온 결과인지, 무심코 기계적인 반복재생이 걸려버렸다.
선배 앞에서는 솔직한 나로 괜찮은데!
그런 연유로 대충 얼버무리기로 했다.
타이치「아앗, 두통이!」
미사토「괜찮아요?」
타이치「수, 숨막혀……어머니!」
미사토「아아, 정신차려요!」
선배의 가슴에 쓰러진다.
타이치「뭐랄까 지금 이상한 외우주의 초지성존재 옴르스가 엣세네파의 예지를 가지고 에르고 영역을 넘어 병렬적 우주 세계관을 침식해 왔어요―!」
미사토「잘은 모르겠지만, 좋은 아이로 계속 남아 주세요―!」
타이치「나가―, 내 안에서 나가―!」
미사토「나가라―」
선배는 협력해 주었다.
타이치「우오―」
타이치「후우……살아난 것 같네요. 하는 김에 대우주의 영적 위기도 해결하고 왔어요」
미사토「굉장히 빠른 전개로 살아낫네요」
타이치「아뇨 뭐. 하하핫. 제 7세계에서 감사하다는 연락이 왔군요」
미사토「신비하네요……」
타이치「그런 연유를 거쳐 평소의 타이치입니다」
국민체조를 하며 평소의 타이치를 어필.
미사토「수고했어요」
타이치「자, 그럼 뭘 할까요?」
미사토「글쎄요―. 그럼……」
미사토「차가운 음료수라도 가져와 줄래요?」
타이치「네! ……근데, 그것 뿐?」
미사토「네. 그 외엔 별로」
타이치「음―」
생각.
타이치「혹시, 방해되는 건가요?」
선배가 당황한 표정으로, 휙휙 손을 저었다.
미사토「그런 건 아녜요. 단지……제가 혼자서 시작한 일이고」
미사토「다른 사람을 말려들게 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
미사토「……」
침묵.
타이치「……」
선배의 부활동은, 그녀만의 것.
그런 생각이 뇌리를 스쳐간다.
미사토「전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 뿐이에요」
미사토「모두하고 같이」
타이치「모두……좋아하는 일만 하고 있지는 않을 텐데요?」
미사토「그런가요?」
타이치「그렇게 생각해요」
예를 들면 토오코.
그녀에게 학교에 올 이유가 있을까?
합숙을 마치고 돌아오니 사람은 없어지고, 문명으로부터도 절단되었고.
무선도 전화도 인터넷도 못 쓰게 되고.
물도 전기도 가스도 끊기고.
그 원인조차도 모른다.
그러므로, 무력한 소년 소녀들인 우리들에게 가능한 일은 일상의 반복뿐이다.
모험도 탐구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불가능하다.
감정이란 마비되기 쉬우니까.
군죠의 인간에겐 특히 그렇다.
현 상황에서 정신적 데미지를 입지 않은 사람이라 하면……요코 정도뿐일까.
그리고……그 소녀.
……는 누굴까?
모르겠다.
아는 것은.
요코와 비슷한, 인간이 아닌 듯한 느낌.
그런 위화감뿐.
『지금』의 나에게는 그것이 한계였다.
뭐 어쨌든.
요코가 인류가 멸망한 것 정도로 동요할 리는 없지.
타이치「지금까지의 생활을 반복할 수밖에 없어요」
미사토「……」
선배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짐짓 싱글싱글거렸다.
타이치「그래서 저도 그냥 등교했어요!」
타이치「그리고 하라키리 토오코도 왔어요」
미사토「키리하라도?」
타이치「멍하게 앉아 있던데요」
미사토「그런가요……」
타이치「뭐, 사쿠라바랑 토모키는 시간이 지나면 안정될 거예요」
타이치「그 녀석들은 이러쿵저러쿵 해도 정상에 가까우니까요」
미사토「……그럼 좋겠네요」
조금 주저하며, 눈시울을 떨궜다.
무리하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
열심히 밝은 척을 하고 있다.
가슴이 아팠다.
타이치「……그럼, 뭔가 도울 일 있으면 말해 주세요」
미사토「아, 네, 그럴 땐」
미사토「꼭 부를게요」
여름날.
선배를 남기고, 나는 떠났다.
문을 열어 교내로 돌아간다.
휙 돌아보자, 그녀는 손을 흔들며 나를 배웅해 주고 있었다.

매미가 시끄럽다.
이렇게 더운데도.
녀석들은 언제나 기운차다.
타이치「자 그럼」
뭐 할까나, 지금부터.
옥상이 뜨거워지면, 쉴 만한 장소는 그다지 없다.
근처의 교실을 들여다 보자, 역시나 수업중이었다.
1학년 E반에서는, 마치코 선생님이 수업을 하고 있었다.
타이치「……」
이젠 그녀와는 표면적인 교류마저 불가능했다.
내가 한 짓이 너무 지나쳤었지.
지금은 이미 타인이다.
어쨌든, 이대로 복도를 어슬렁거리면 누군가에게 들킨다.
인기척이 없는 식당에서 식권을 산다.
부실로.
토모키가 만화잡지를 읽고 있었다.
가볍게 대화를 나눈다.
그러는 중, 맘모스가 지나가 조금 소동이 났다.
녀석이 지나간 뒤.
토모키「위험 위험」
미유키「커텐 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복도 쪽 창」
토모키「금지되고 있잖아. 학교도 잘 알고 있으니」
타이치「좋은 수가 있어」
미유키「……」
토모키「……」
타이치「아―, 제군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건 시시한 개그가 아니라 진짜로 좋은 방법이다」
미유키「어떤 건데요?」
타이치「토모키, 컴퓨터를 쓰게 해 줘. 그리고 디카도」
토모키「아―앙?」
…….
………….
…………………….
타이치「대충 이런데 어때?」
토모키「위장이라, 헤에―」
풀 컬러로 인쇄한『사람없는 부실』의 사진을 유리창 안쪽에 붙였다.
시점이 좀 어긋났지만, 슬쩍 보기만 한다면 어느 정도는 속일 수 있다.
토모키「음, 이거면 안 들키겠다」
타이치「와하하」
뽐내는 나.
그 때 미유키가 화장실에서 돌아왔다.
타이치「화장실 어땠어?」
미유키「아―앙!」
울었다.
미유키「화장실 간다고는 한 마디도 한 적 없는데―!」
타이치「손수건으로 손을 부비적부비적대며 돌아오면 누구든지 알 수 있어!」
토모키「자자」
미유키「알아챘더라도 말하지 마세요」
타이치「안돼안돼! 빈틈이 너무 많아!」
타이치「너무 많아도 안돼! 너무 적어도 안돼!」
토모키「뭐가 기준이냐……」
타이치「올바른 숙녀의 가이드 라인」
미유키「그런 거 되고 싶지 않아요」
나는 순간 멍해졌다.
타이치「무, 무슨 터무니없는 말을」
타이치「벌이다, 떼찌! 떼찌! 떼찌!」
소란을 피우며 미유키의 주위를 돈다.
미유키「으으으」
몸을 떠는 미유키.
제길, 촌스러운 녀석.
그 촌스러움이 나를 자극시켰다.
타이치「떼찌! 떼찌! 떼찌!」
그렇게 외치며 치마를 서서히 들춘다.
토모키「야, 야야」
타이치「만약 망사 팬티를 입고 있다면, 이 녀석의 죄는 용서될 것이다」
타이치「하지―만, 만약 건방지게 싸구려 면팬티 따윌 입고 있다며언」
미유키「아으으으으읏」
키리「하앗―!」
이 목소리는?
타이치「까우우울!?」
키리「이 여자의 적!!」
후방에서의 발꿈치찍기입니까 그런 겁니까.
서서히 내 의식은 흐려지……기 직전에 또렷해졌다.
쿠당
기절해버렸다면 바닥에 얼굴을 꼴아박는 고통을 느끼지 않아도 됐을 것을.
타이치「……크윽……아프잖냐, 하급생」
날카로운 시선이 나를 뚫어지게 쏘아본다.
키리「어느 쪽이 나쁜지 일목요연하니까요」
미유키「저, 저기, 당신은?」
키리「지나가던 전학생」
타이치「오우오우, 멋진 광경이구나, 토모키여」
토모키「부탁이니까 내가 친구라도 되는 것처럼 말 걸지 말아 줘」
토모키는 냉정하게도 자기는 상관없다는 듯이 발을 빼고 있었다.
타이치「칫, 위선자 녀석」
뭐 좋아.
타이치「어이 하급생, 먹어버리기 전에 이름 정도는 들어주지」
키리「치한!」
타이치「날 치환해버리겠다고!?」
토모키「너도 참 한없이 바보구나」
키리「선생님께 보고하겠습니다」
타이치「호, 선생이라. 어떤 선생한테 울며 매달릴 생각일까나, 아가씨?」
키리「아무라도 상관없어요」
키리「이런 건 성희롱이잖아요!」
토모키「……쿠로스하고 알게 된 지 얼마 안 됐지만」
토모키「성희롱이란 단어를 듣는 횟수가 비약적으로 늘어나서 기쁘다. 고마워」
타이치「신경쓰지 마라 마이 프렌드, 다 나의 인덕 덕분이지」
키리「여자의 치마를 당당히 넘기려 하다니……최악!」
타이치「헤에. 거 참 잘났네」
타이치「그래서 그걸 선생한테 고자질하려고?」
키리「그래요!」
타이치「있잖아, 정의의 히로인은 이런 생각은 안 해보는 거야?」
타이치「왜 내가 백주대낮에 당당히, 그것도 사람이 보는 앞에서 치마를 일부러 천천히 들추고 있었는가」
토모키「……그냥 반응을 즐기고 있던 거커헉!?」
정권 측중단 찌르기.
타이치「그리고 왜 이 풍기위원장ㆍ시마 토모키가 그것을 말릴 수 없었는가」
토모키「네에!?」
키리「서, 설마……」
타이치「그 설마다」
타이치「즉 그것은, 내가 이 학원에서 절대적인 권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타이치「그치, 토모키?」
토모키「그러니까 이쪽으로 오지 말랑께」
키리「당신들!」
토모키「이봐! 난 아냐!」
키리「용서 못 해. 절대로 절대로 용서 못 해!」
토모키「애초에 풍기위원 같은 건 없커헉!?」
정권 측상단 찌르기.
타이치「훗훗훗」
주머니에 손을 넣고, 명상하듯이 눈을 감으며 멋진 악역의 포즈.
타이치「즉 그것은, 내가 이 학원에서 절대적인 권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말을 마침과 함께 번쩍 눈을 떴다.
토모키「그거 아까 말했어」
타이치「……」
토모키「너무 빨리 쓴 거 아냐, 방금 그거?」
타이치「…………」
키리「군죠학원에 왕따는 없다고 들었었는데……」
미유키「저기, 왕따당하고 있던 건 아니에요」
키리「……어?」
미유키「저 사람들은 맨날 저래요. 악의는 없어요」
토모키「들이라니……」
토모키는 좌절했다.
타이치「들이라니……」
나는 좌절하려 했다.
토모키「네가 좌절할 이유가 어디 있는데―!」
타이치「난 위선자가 아냐!」
토모키「나도 아냐!」
타이치「해보자는 거냐―!」
배틀 파이트.
토모키「짜가 마키아밸리스트!」
타이치「시스콤 살인사건!」
토모키「저학력 저수입!」
타이치「밑바닥 인생!」
토모키「주식 패잔병!」
타이치「주주주주식 얘기는 하지 마―!!」
키리「내분이!?」
미유키「아―아……」
토모키「너도 사람을 시스콤 DDR의 프로라고 여기저기 퍼뜨리고 다녔잖아!」
타이치「아아 그랬었지! 특히 여자애들한테! 다들 겁나게 좋아하던데!」
토모키「그러고 나서부터 가끔씩 애들이 프로라고 부른단 말야―!」
타이치「사실이잖아!」
토모키「나도 사실이다!」
타이치「제기랄―!」
토모키「뭐라고―!」
뽀까뽀까뽀까뽀까!!
그리고.
우리들은 자멸했다.
토모키「으으으」
타이치「크으으」
복도에 엎어지는 두 사람.
미유키「……양호실 가실래요?」
타이치「아, 아까 그 정의의 편은?」
키리「사쿠라 키리. 정의의 편이 아니에요」
소녀는 우리들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키리「……그리고 당신들에겐, 악의라고 할 만한 것도 없다는 걸 알았어요」
토모키가 눈물을 좔좔 흘렸다.
토모키「나, 난 아무 관계없는데. 타이치 때문에 나까지……」
토모키는 투구풍뎅이의 애벌레처럼 몸을 둥글게 말았다.
토모키「이제 됐어. 날 내버려 둬」
훌쩍훌쩍 운다.
미유키「그러실 것까진……」
키리「이 애도 괜찮다고 하고, 그 꼴사나운 모습을 봐서 이번만은 못 본 척 해드리겠습니다」
타이치「……몸이 움직이기만 하면……두고 봐라……키리란 녀석」
키리는 차갑게 웃었다.
키리「부디 좋으실 대로」
사쿠라 키리와의 만남이었다.

교실로 돌아가는 도중, 처녀가 복도에 웅크리고 있었다.
미키다.
야마노베 미키.
타이치「어―이」
미키「읏!?」
미키는 벌떡 일어났다.
재빠른 행동.
천천히 뒤를 돌아보는 미키.
미키「아, 선배……안녕하세요」
고개를 숙이며 인사.
평소와 별반 다를 바 없는 미키다.
조금 위화감.
미키가, 이렇게 강했었나?
원래 소질은 가지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평소보다 의연해진 듯한.
그런 느낌이 들었다.
타이치「뭐하고 있어?」
미키「청소요」
타이치「나도 했어, 청소」
미키「정조나 정소니 하는 둥의 뻔한 말놀이를 하실 건가요?」
타이치「……아닙니다!」
미키「왜 화내세요」
타이치「……」
미키「왜 입을 다무세요」
타이치「그렇게 일일히 말꼬리 잡지 말란 말이야아아」
미키「와―아, 이겼다―」
미키는 강했다.
타이치「아, 그렇지」
헛기침.
타이치「……인류를 청소했다」
미키「네놈이 범인이냐―!」
타이치「핫―!」
싸우는 두 사람.
타이치「욥」
타이치「홋」
타이치「……핫?」
타이치「오옷!?」
복부에 한 방을 맞아버렸다.
윽, 왠지 세다?
가라데를 익힌 이 나를.
타이치「이 자식」
조금 진지해진다.
미키「슉」
가느다란 다리가 허리보다 높게 들렸다.
바로 다리후리기를 먹이려고 했지만, 하얀 팬티가 슬쩍 보였다.
공격 중지.
남자 타이치, 그에게 눈 앞에 펼쳐진 팬티를 보지 않는다는 연약한 선택지따윈 없다.


ㆍパンツ見る (팬티 본다)


음, 없지.
허리를 숙이고 시선을 내렸다.
발차기가 온다.
가라데의 중단 방어 자세를 취했다.
그 팔 사이를 발 끝이 부드럽게 관통했다.
타이치「오잉?」
말도 안 돼.
이마에 히트.
터이치「어라라?」
나는 기절했다.
…….
………….
…………………….
타이치「핫?」
미키「아, 다행이다. 정신 드셨어요?」
타이치「으, 으―. 나 얼마 정도 기절해 있었어?」
미키「1분도 안 지났어요」
타이치「아―, 드디어 미키한테 졌는가―!」
무릎을 꿇었다.
미키「하핫」
미키「그치만 무지하게 방심하고 계셨잖아요」
타이치「아니―, 그건 나에겐 그 외의 선택지가 없어서 말야―」
타이치「……목숨이 걸려 있는 거와 같았지」
미키「팬티에 목숨을!?」
타이치「쯧쯧쯧」
손가락을 흔든다.
타이치「라이브로 보는 아마추어 걸이 리얼하게 착용하고 있는 팬티란 말이다, 미키양」
미키「그거 아니다……」
타이치「아니긴. 이처럼―――」
팔랑.
애제자의 짧은 치마자락을 잡은 내 사랑스런 손가락이.
미키의 손가락에, 꾹 찝혔다!
타이치「핫, 막혔다!?」
미키「후후후」
충격.
타이치「으―음, 이제 더 이상 가르칠 게 없구나」
나는 가로로 엎어져서 무릎을 말고 새우튀김처럼 둥글어졌다.
타이치「그러므로, 난 이만 은퇴하마」
미키「은퇴라고 하셔도……」
몸이 팔랑팔랑 흔들린다.
미키「스승님―, 기운 내세요」
타이치「됐어. 날 내버려 둬」
미키「또 시작이네 이 사람은」
미키「……」
미키「전혀……변함없는데」
타이치「위?」
프랑스인처럼 되묻는다.
미키「모두들 평소대론데」
목소리가 떨렸다. 갑자기.
타이치「미키미키?」
미키「봐요, 이렇게 손이 떨리고 있어요」
펼친 양손이 땀투성이었다.
마치 무언가를 두려워하는 듯이.
타이치「……왜 그래?」
미키「그건 말이죠, 선배의 알 수 없는 프레셔 비스무리한 거에 눌려서 소심한 미키는 덜덜 떨고 있는 거예요」
타이치「……」
미키「그러니까, 기운 내 주세요」
타이치「음―」
날 격려해 주는 걸까.
상태가 조금 이상한 게 신경은 쓰이지만.
으―음, 그렇다고 어물쩡 넘길 순 없지.
타이치「좋아, 면허를 전수해 주지」
주먹을 뻗었다.
미키「네?」
타이치「수첩을 꺼내보세요」
미키「……아―아……그건가요」
미키「어쩐지 오랜만이네요―」
정말 슬퍼 보이는 표정을 짓는다.
아니 아주 (아니 아주?) 울 것 (울 것?) 같은데.
다중으로 생각해버렸다.
미키는 메이트북을 꺼냈다.
이 학교에서는 신분 증명서를 겸하는 이 수첩을,『도회』의 역 뒷편에 있는 인기 NO1 고급 업소『메이트북』과 관련지어 그렇게 부른다.
근데 아무 관련없자너, 하고 나에게 태클을 건다.
실은 우연입니다.
미키「……훌쩍」
타이치「왜 그래?」
울고 있다.
아니 아주 (아니 아주?) 울고 있는데 (울고 있는데?).
다중으로 생각해버렸다.
타이치「……역시, 꽤 충격이었나 봐?」
미키「네?」
타이치「세계가 이렇게 돼버린 게」
미키「아아……」
미묘한 공백이 있었다.
미키「글쎄요, 그럴지도」
타이치「그렇겠지」
타이치「나도 깜짝 놀랐어. 이렇게 돼서」
미키「선배도?」
타이치「응」
타이치「이젠 13살이나 15살의 싱싱하기 그지없는 처녀들과 만날 기회는 사라져버렸구나」
미키「그거 때문이었냐」
타이치「읏챠」
수첩을 받아든다.
타이치「미키는 수첩 꽤 자주 쓰나 보네. 너덜너덜하다」
미키「너덜너덜」
무의미한 반복으로 긍정하는 미키.
페이지를 넘기자, 메모란에는 이미 내 사인이 커다랗게 적혀 있었다.
그것도 수 페이지에 걸쳐서 있다.
거의 내 사인 연습장에 가까운 꼴이었다.
백지를 찾아서, 그곳에 새 사인을 적는다.
어느새부터 시작한, 우리들의 놀이.
시시한 일이다.
수첩을 돌려준다.
수첩을 받아, 미키는 가슴팍에 품었다.
꼬옥.
잃어버린 일상을, 그 품에 감싸안듯이.
조금 흘러나온 눈물을 슬쩍 닦았다.
와, 나도 참 신사답구나.
미키「감사합니다……」
타이치「뭘」
복도를 둘러본다.
타이치「그건 그렇고, 청소라」
미키「몸을 움직이면 마음이 차분해질 것 같아서요」
타이치「흐―음」


ㆍ掃除を手傳う (청소를 돕는다)


타이치「청소 도와줄까?」
미키는 생긋 웃는다.
미키「사절」
타이치「으아――――――앙」
사절당했다.
깔끔히, 가차없이, 일말의 동정조차 없이.
미키「선배, 피에는 약하잖아요?」
타이치「어, 뭐 그렇긴 한데」
어떻게 알고 있지?
검은 의혹이 피어났다.
0.5초만에 나락으로 도로 밀어넣었다.
미키잖아.
내 소중한, 소중한……꽃님들이잖아.
미키「선배?」
타이치「응. 피에는 약해」
미키「피는 아니지만 그림도구들이 어지럽혀져 있는 것 같아서요」
미키「그래서 청소도 힘든 거예요다」
미키「게다가 이 짧은 치마는 숙이면 팬티가 보이니까, 흥분한 선배에게 맞서가면서 청소하는 것도 상당히 힘든 일이에요다」
타이치「지당하신 말이에요다」
실로 스트레이트한 말투.
마음에 들었다.
타이치「그거 확실히 힘들겠군요다」
미키「전염되셨네요」
타이치「그거 확실히 힘들겠군, 에헴」
미키「서―」
경례했다.
타이치「밥은 먹고 다니나?」
미키「네, 잘 먹고 있습니다」
타이치「그러면 어른인 난 한발 물러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제자의 성장을 바라보며 간접적으로 응원하도록 하지」
미키「서―, 황송합니다」
타이치「그럼 난 이만」
사르랑 앞머리를 쓰다듬는다.
타이치「방해해버렸네」
미키「근무 수고하세요」
타이치「맞다, 미키」
멈춰선다.
중요한 걸 잊고 있었다.
미키「네」
타이치「슬슬 부활동, 활동재개한다는데」
미키「부활동이요?」
타이치「견딜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괴로워지면, 얼굴 정도는 내밀어 봐」
타이치「그러기 위해 있는 부활동이니까」
천천히, 미키의 얼굴에 이해의 기색.
미키「……네」
반가움만은 아닌 무언가가, 그 얼굴에는 스며들어 있었다.


ㆍ屋上に行く (옥상에 간다)


잠시 짬을 보내자.
저녁이 되었다.
선배는 아직 있을까?
기억과 함께, 온도도 풀어진 것 같다.
옥상에서 보이는 남색의 휘장은 벌써 주홍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세차게 불던 바람도 없어졌다.
거세당한 고양이처럼 고요한 황혼 무렵.
아무도 없다.
미사토 선배의 모습을 찾는다.
타이치「아」
안테나가 세워져 있는 바로 그 옆에.
타이치「있다」
자고 있었다.
미사토「……」
규칙적이고 가벼운 숨소리.
그것은 잡음에 지나지 않지만, 이상한 음악성으로 내 머릿속을 이완시켰다.
들이쉬고, 내쉬고, 들이쉬고, 내쉬고.
부드러운 호흡.
꾸밈없는 그녀의 순수한 모습.
그 모습에 거짓은 없다.
더러움도 없다.
잘 때는, 모든 이가 순수한 모습을 되찾는다.
가만히.
선배에게 빼앗긴 시선은, 세계를 덮는 황혼의 선명함조차도 돌릴 수 없었다.
계속.
선배를 보고 있었다.
선망과 동경을 품고.
타이치「……」
얼마나 그렇게 있었을까.
규칙적인 숨소리가 커지고, 눈꺼풀이 떨렸다.
긴 눈썹이 조금씩 움찔거린다.
눈동자가 살짝 열렸다.
타이치「……역시, 선배는 좋아요」
미사토「우……우냐……?」
언어감각이 무뎌진 선배는,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한 목소리를 냈다.
타이치「안녕하세요」
미사토「……쿠로스……군?」
타이치「페케예요」
미사토「페케군……」
선배 전용 닉네임을, 그녀가 복창한다.
미사토「……응, 싫어요……」
미사토「자는 얼굴 보면, 싫어요……」
팔꿈치로 두 눈동자를 가리고 살며시 몸부림.
무방비한 자신의 모습은, 누구나 숨기고 싶어한다.
숨기고 싶다는 것은, 평상시의 자신의 모습에 거짓이 있다는 말.
선배도 그런 걸까.
……냉정한 사고를 지워버린다.
잠시 후, 선배가 몸을 일으킨다.
미사토「언제부터 있었어요?」
타이치「지금 막 왔어요」
미사토「……음―」
의혹의 눈초리.
타이치「진짜예요」
양손을 들고, 항복하는 포즈를 취한다.
타이치「선배한테 거짓말 같은 건 안 해요」
미사토「……」
타이치「그치만, 낮에는 밖에서 자면 위험해요」
타이치「탈수증상이 오거나 일사병이라도 걸리면 위험하니까요」
미사토「우움, 그런가요」
하품을 참는다.
안경이 비뚤어졌다.
무심코 손이 뻗었다.
미사토「에……?」
선배에게 가까이 다가가, 안경을 양손으로 잡고 원 위치로 돌려놓았다.
타이치「이걸로 평소의 선배」
미사토「……정말, 위험해요」
타이치「엥?」
미사토「페케군의 그런 면, 위험해요」
조금 화난 것 같다.
타이치「어디가? 어째서?」
미사토「거울을 보고 생각하세요」
타이치「흐―――응!!」
우와, 눈물나는 말 했어, 이 사람!
타이치「제가 추남이란 말입니까! 으아아아아, 맨날 신경쓰고 있는데―!!」
미사토「에, 그게 아니라……」
타이치「추해……나는 추해요……어무이……」
미사토「아아아, 아니에요, 아니라니까요, 네?」
타이치「어무이가 추하게 낳아서……」
미사토「그―러―니―까」
타이치「괜찮아요, 어차피 전 추하니까요. 대자연의 일부니까요. 구더기니까요」
미사토「아뇨, 그런 건……분명히 처음 만났을 땐 놀랐지만요」
타이치「……」
처음 만났을 땐 놀랐지만요.
타이치「…………」
처음 만났을 땐 놀랐지만요.
타이치「……………………」
처음 만났을 땐 놀랐지만요.
타이치「하, 하하하, 하하하하하……」
미사토「페케군?」
타이치「크아악――――――!?」
타이치「위―잉! 위―잉!」(경보)
타이치「기이―, 기이―, 삐이익!」(구동음)
미사토「왓, 페케군이 이상한 상태로!」
타이치「내 이 름 은 크 리 에 이 터, 인 류 를 지 배 하 는 존 재 다!」
미사토「와, 왓, 페케군이 20년 전 게임의 보스 같은 진부한 창조주로!?」
타이치「어 이 하 여 나 에 게 대 항 하 는 건 가. 나 의 지 배 를 받 으 면, 영 원 한 평 화 를 손 에 넣 을 수 있 거 늘」
미사토「질문이」
타이치「뭔 가?」
미사토「어째서 부자연스러운 옛날 말투로 말하나요?」
타이치「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고!!」
미사토「죄송합니다, 역시 됐어요」
타이치「스타 버스터 발사 준비!」
미사토「에잇」
타이치「크헉」

타이치「……핫, 여기는?」
미사토「다행이다. 원래대로 돌아와서」
타이치「이상하네」
미사토「왜 그래요?」
타이치「무지하게 충격적인 말을 듣고, 그 보복으로 인류 멸망 폭탄 스타 버스터를 발사하는 꿈을 꾸고 있었는데……그 동기가 된 충격적인 일이 생각나지 않아서」
미사토「그런 폭탄이었구나……」
타이치「으―음, 뭐였을까」
미사토「페케군은 외모를 너무 신경써요. 인간은 마음이에요」
타이치「외모……?」
아, 맞다.
미사토『처음 만났을 땐(그 끔찍한 모습에)놀랐지만요』
타이치「오오오오오오오오오」
미사토「또……」
타이치「제로니모―!!」
미사토「……누구?」
타이치「우, 히잉, 훌쩍」
미사토「어쩌나……」
선배는 허둥댔다.
타이치「선배―애」
달라붙어 보았다(어거지로).
미사토「……으읏」
순간, 경직되는 선배.
허공을 선배의 양 팔이 헤맨다.
타이치「나도 좋아서, 좋아서 끔찍하게 태어난 건 아니에요……그래서, 적어도 청결하게는 하고 다녀요……사람들을 불쾌하게 만들지 않으려고……훌쩍……」
미사토「아아아아」
선배의 몸에서 서서히 힘이 빠져간다.
미사토「페케군」
살짝 안아주는 선배.
타이치「……」
포근한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깊숙히 묻었다.
교복에서 달콤한 냄새가 났다.
정신이 아찔해진다.
땀 냄새도 조금 섞여 있다.
그게 또 묘하게 향기롭다.
그리고 부드럽다.
한없이 보드랍다.
미사토「……으응……」
스멀스멀 움직이는 내 얼굴에, 선배는 간지러운 듯 침을 꿀꺽 삼켰다.
미사토「저기―……」
우는 척을 계속한다.
미사토「그러니까」
미사토「페케군의 외모는 그렇다 쳐도, 눈은 참 깊고 아름다워요」
잠깐 망설임.
하지만 바로 날려버리고 계속 부비적.
미사토「……갑자기 다가오거나 하면, 그만 두근거려요」
타이치「진짜로요?」
미사토「그래서 거울을 보라고 한 거예요」
타이치「……」
미사토「이제 안 울 거죠?」
타이치「……네」
창자가 끊어지는 심정으로 얼굴을 떼어놓는다.
다음에 이런 기회가 올 날은 과연 언제쯤일까.
미사토「울보였군요, 페케군은」
타이치「……」
미사토「돌보기가 힘들겠네요―」
제발 돌봐주세요― 하고 마음 속으로는 생각한다.
뜨겁게 돌봐주세요오~.
미사토「제 남동생이라도 될래요?」
타이치「네」
즉결.
타이치「그럼 앞으로도 모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미사토「에?」
타이치「바로 짐 정리해 댁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미사토「네?」
타이치「우선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만, 남매는 역시 한 이불에서 자나요?」
미사토「저, 저기요, 페케군……」
타이치「실은, 쭉 외로웠습니다……고마워, 누나……아니, 공주님이라고 부르겠습니다」
미사토「어, 어쩌지」
먼산을 바라보며 선배는 중얼거렸다.
타이치「농담이에요」
미사토「……」
순식간에 표정이 바뀌는 선배.
미사토「페―케―군―」
타이치「분위기를 바꿔보려고 생각해서」
타이치「실수였나요?」
울상을 지어 본다.
미사토「으」
미사토「……」
한숨.
미사토「정말……치사해」
타이치「치사해?」
미사토「그런 게 있어요」
조금 입이 삐져나와 있지만.
용서해 준 것 같다.
선배는 다정하니까.
이러쿵저러쿵하는 사이에, 슬슬 밤이 되어가고 있었다.
빛의 시간은 끝나고, 어둠이 찾아 온다.


ㆍ手傳う (돕는다)


타이치「그보다, 슬슬 부활동이나 해볼까요?」
미사토「……아」
선배가 가만히 나를 바라보았다.
미사토「도와주러 온 건가요?」
타이치「네」
미사토「그런가요」
나를 향해 또렷하게 고정된 선배의 시선은 흔들리지 않았다.
잠시 후 선배의 얼굴이 활짝 펴진다.
미사토「고마워요, 페케군」
타이치「아뇨, 제국 군인으로서 당연한 일입니다」
경례.
그녀는 생긋 웃는다.
미사토「그치만 유감이네요, 오늘은 벌써 밤이 되었습니다」
미사토「즐거운 부활동 시간은 끝」
타이치「에이―」
미사토「미안해요, 애초에 혼자서 하려고 마음먹은 거라, 시간이 정해져 있지가 않아요」
타이치「그래도 혼자서 언제 끝내려고요? 배선 같은 것도 연결해야 되는데」
타이치「게다가 전원 문제도」
미사토「괜찮아요」
미사토「여자는 담력이에요」
타이치「그럼 남자는 사랑이군요」
타이치「선배, 저, 전―――」
덥썩 다가가려는 순간,
미사토「부활동 종료―!」
타이치「쿠헉」
선배의 손에 안면이 밀리고, 꼴사나운 자세가 되는 나.
『쿠헉』이라는 말까지 해버려서 이젠 마리아나 해구의 밑바닥까지 떨어져버린 듯한 느낌.
미사토「자, 집에 가죠. 라곤 해도, 당신과 저는 집에 가는 방향이 정반대입니다만, 호호호호」
타이치「……뭐―랄까, 조금 찝찝한데요」
미사토「그치만, 오늘은 아주 즐거웠잖아요?」
타이치「음―, 글쎄요―」
미사토「제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을 때 엉덩이 만졌었죠?」
타이치「……」
미사토「만지작만지작―, 굉장히 능숙하게」
미사토「그것도 양손으로」
타이치「…………」
미사토「간지러웠어요」
타이치「~♪」
먼산을 바라보며, 휘파람을 분다.
미사토「남ㆍ자ㆍ아ㆍ이, 정말 어쩔 수 없군요―」
관자놀이 주변을 빙글빙글 누르는 선배.
꽤 아프다.
하기야 속일 수 있을 리도 없었다.
타이치「우우……죄송합니다……」
미사토「뭐, 따지고 보면」
미사토「저도 그 정도의 가치는 있는 여자라는 말이군요」
미사토「아니면 페케군이 색마인 것뿐인가요―?」
타이치「아뇨아뇨아뇨, 굶주리긴 했습니다만 색마라뇨!」
타이치「그런 녀석들과 동급으로 취급하시면 곤란합니다!」
필사적으로 얼버무리는 나의 긴급 개그는 한없이 썰렁하다.
미사토「후후훗」
저녁 무렵의 한층 더 짙어진 오렌지 빛을 배경으로, 선배는 몸을 조금 숙이며 말했다.
미사토「용서해 줄 테니까, 집에 가서 반성하세요」
미사토「그럼, 안녕이에요. 페케군」
학교를 나와, 옥상을 바라보았다.
안테나가 세워져 있다.
그 옆에.
선배는 아직, 그곳에 있다.
작업하고 있었다.
곧 있으면 밤이 될 텐데.
혼자서.
지금에 와서야 간신히.
선배에게 거절당했다는 걸 깨달았다.

저녁이 되어도 땅바닥은 뜨거웠다.
신발 밑으로 열이 전해진다.
하지만 못 참을 건 아니다.
관동의 도심부에 비하면 훨씬 나을 것이다.
통풍도 좋고, 습기도 적절하고.
이런 고개길을 몇십 개씩 올라가야 되지만 않는다면 말이지.
게다가 매미의 시끄러움도 더위를 증폭시킨다.
여름에만 활동하던 모 밴드처럼, 녀석들도 이 계절에만 올인하고 있는 것이다.
신카와「으앗」
타이치「응?」
누군가가 넘어지는 소리가 났다.
딱딱한 소리와 함께, 내 발 밑으로 스테인레스 지팡이가 굴러왔다.
타이치「어라?」
사람이 쓰러져 있다.
다가가 봤다.
타이치「……저, 괜찮아요?」
신카와「아, 감사합니다, 괜찮아요」
이럴 때, 일본인은 바로 괜찮다고 말한다.
실제로는 어떤지 알 수 없다.
갑자기 열이 받는다.
타이치「진짜로 괜찮은 거냐! 그렇게 순간적으로 괜찮은지 어떤지 알 수 있는 거냐!」
신카와「어, 어어……응」
그 일본인은 위축되어 고개를 끄덕끄덕거렸다.
타이치「복합골절일지도 모른다고―!」
신카와「척 보기에도 멀쩡한데……」
타이치「인류를 얕본 대가를 치루게 해 주마!」
신카와「뭔 소리야!」
신카와「뭐, 어쨌든 진짜 다친 덴 없다니깐」
그 녀석은 쓴웃음지으며 몸을 일으켰다.
지팡이를 건넸다.
신카와「아, 고마워」
타이치「내 탓이니까 됐어」
타이치「긁힌 덴?」
신카와「없는 것 같아」
지팡이를 짚고, 몸의 밸런스를 잡는다.
한쪽 다리를 다쳤나…….
타이치「골절?」
신카와「그럼 좋을 텐데 말야」
티없이 웃는 얼굴이 온화하게 보였다.
고생한 사람의 얼굴.
신카와「어라, 너……그 머리는」
타이치「아아, 이거?」
내 머리카락을 휘감아 본다.
타이치「가발 아냐」
신카와「아니, 의심 안 했는데」
신카와「근데 염색한 거야? 모근까지 하얗네」
타이치「아냐. 천연」
신카와「헤―」
신카와「새하얗네」
그렇다.
내 머리카락은, 옛날부터 쭈욱 순백.
솜털 같은 흰색이라고 어떤 사람이 말한 적이 있다.
노쇠한 흰색은 아니다.
윤기를 가진 새하얀 머리카락.
기분나쁠 정도로 자연스러운 백발.
……내가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첫번째 이유.
두 번째 이유는, 머리와 얼굴의 갭이겠지. 쳇.
신카와「아, 미안. 신경쓰고 있나 보네」
하지만, 이 녀석은 좋은 녀석이다.
배려를 알고 있다.
그러니 나도 배려해 준다.
타이치「아냐, 전혀」
타이치「옛날엔 좀 그랬지. 그래도 학교가 거기니까」
신카와「아아……군죠학원?」
타이치「응」
신카와「나도 거기 다니게 됐어」
그 녀석은 얼굴을 활짝 폈다.
타이치「오, 나이는?」
일본인은 자신의 생년월일을 말했다.
같은 나이다.
그리고, 동료인가.
타이치「잘 부탁한다」
신카와「나야말로. 여러가지 많이 가르쳐 줘」
신카와「나, 한쪽 발을 거의 못 쓰니까 말야」
타이치「……그래」
신카와「정신적인 문제야. 다친 건 옛날에 다 나았어」
타이치「힘들겠네―. 언제부터?」
신카와「아주 옛날부터. 뭐, 이것도 천연이라면 천연이야」
신카와「봐, 두께가 다르지?」
청바지를 걷어서 발목을 보여줬다.
타이치「우와, 심한데」
신카와「전혀 안 쓰니까―, 근육이 없어진 거야」
타이치「위험하겠는데, 단련 좀 해―」
신카와「거의 안 움직여서 말야. 일단, 손으로 조금씩 움직여 주고 있긴 한데」
신카와「귀찮아」
타이치「야야!」
신카와「아하하하, 농담 농담」
타이치「너, 알고 보니 자학 개그를 즐기는 놈이군」
방심할 수 없는 남자의 등장이다.
신카와「뭐야 그건」
신카와「학교, 좋은 곳이었음 좋겠다」
타이치「좋은 곳이야」
타이치「우리들 같은 사람들한텐」
신카와「그거 좋은데」
타이치「귀여운 여자애들도 잔뜩 있어」
신카와「정말임까?」
제대로 된 대화가 불가능한 애들도 많지만.
타이치「특히 마치코 선생님이 좋아. 최고」
신카와「이름부터 좋은데! 빨리 보고 싶다―」
타이치「다음번에 내 비장의 마치코 선생님의 앨범을 보여주지」
타이치「A급이야」
신카와「A급? 최고 랭크?」
타이치「아니, 위에 S가 있어」
신카와「우와, 나하고 같은 등급 설정……」
타이치「너, 너도냐―!」
뭐야, 이 자연스럽게 의기투합되는 놈은.
신카와「OK, 어떻게든 해나갈 수 있을 것 같아」
타이치「군죠는 빵빵하고 에로한 안식처지」
신카와「이런―, 에로라―, 이거 또 장미빛 인생이 펼쳐지겠군―!!」
타이치「가자―!!」
신카와「좋아, 가자!」
신카와「뭐랄까, 넌 처음 보는 거 같지가 않네―」
타이치「나도, 너하고는 언젠가 결착을 지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신카와「그거 받아 주지」
자신만만하게 말한다.
신카와「……그 전에, 마치코 선생님의 데이터 줘」
타이치「OK 전우」
타이치「인종은 다르지만 노력하자, 재패니스」
신카와「……아니, 너도 일본인인데, 아무리 봐도」
이것이, 나와 신카와 유타카와의 만남이었다―――

타이치「후우」
식탁 위에 메모가 놓여져 있다.
『저녁 있을지도 몰라』
타이치「와―아, 가자가자―」
내가 차려먹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3분 만에 갈아입고, 허둥지둥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
저녁은 매우 맛있었습니다.

양초에 불을 붙인다.
독특한 빛이 방 안을 밝힌다.
양초는 좋다.
생생한 불꽃을 보면 이상하게 마음이 강하게 끌린다.
이렇게 멍하게 흔들리는 불꽃을 보고 있으면 그만 마음이 거기에 사로잡혀, 언제까지고 언제까지고 졸아버리게 된다.
예전에 그래서 앞머리를 태운 적도 있다.
바로 3분 전의 일이다.
타이치「……탔다……시부렁」
울고 싶다.
어쨌든 일기다.
두꺼운 일기장을 연다.
인생의 기록은 소중한 거야.
학교에 갔다.
아무도 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모두들 와 있었다.
수업 같은 걸 할 리도 없었으니, 그냥 어슬렁거렸다.
토오코가 또 뾰루퉁해 있었다.
이런 상황이라 갈피를 못 잡고 있는 걸까.
옥상에서는 미미 선배가 부활동.
방치되어 있던 안테나를 세우고 있었다.
단순히 놓여져 있는 부품을 조립하기만 하면 되는 것도 아니다.
힘든 작업이다.
하지만 그 힘든 작업이, 선배를 구원한다.
복도를 걷다 보니, 미키가 청소를 하고 있었다.
선배에게 부활동이 있는 것처럼, 미키에겐 청소가 있는 걸까?
모르겠다.
인류 멸망이라는 위기상황이 미키를 각성시킨 걸까.
난 드디어 미키에게 한 방 먹어버렸다.
이건 중대한 문제입니다, 교장님!
하지만 제자의 실력이 늘어난 것은 솔직히 기쁘다.
스승인 나를 뛰어넘을 날도 멀지 않았다.
그 외에도 여러가지 일이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좋은 날이었다.


사쿠라바에게 습격당하는 꿈을 꿨다.
타이치「……왜날뷁」
애초에 그 녀석에게 사람을 덮칠 만한 담력이 있을 리가 없는데.
아침밥이 차려져 있다.
메모도 있었다.
『많이 먹고 잘 다녀와요』
미인 커리어 우먼 무츠미 아줌마는, 요리도 잘 한다.
바빠서 집에는 거의 없지만.
고개를 숙였다.
감사한 마음으로 두꺼운 샌드위치와 야채 쥬스를 먹었다.
시간이 없다.
남은 건 랩으로 싸서 주머니에 넣었다.
먹으면서 가자.
어느 정도 걸어가자,
사쿠라바「우갸갸갹―――!!」
사쿠라바의 비명이다.
꽤 가깝다.
개 짖는 소리와 비명이 겹쳐진다.
멀어져 간다.
타이치「과연……」
납득했다.
그리고, 그곳에―――
소녀「하레? 타이치 오빠?」
타이치「안녕」
소녀「아, 좋은 아침이에요」
꾸벅 고개를 숙인다.
근처에 사는 미소녀 유사.
카미사카 좋은 동네.
설명이 불필요할 정도로 귀여운 유사의 양손에서 카레빵이 흔들리고 있었다.
함께 나란히 걷기 시작한다.
오늘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어쨌든 같은 학교로 가는 거니까.
뒤에서『잘" 다녀" 와―!!』하는 허스키한 목소리가 들렸다.
유사의 어머님이다.
조금 살이 찌셨다.
하지만, 매일 즐거운 듯이 살고 계시니 별 상관없겠지.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난 미소녀.
다만 한 가지 난점이 있다면, 세상을 너무 모른다는 것.
그런 유사의 이성 선배 중 가장 친밀한 나에게 맡겨진 책임은 막중하다.
유사「다녀오겠습니다―!」
손을 흔다는 그 얼굴에는 반항기는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1차 성징마저 아직인 건 아닐까하고 생각되는 면도 있다.
이 새하얀 캔버스를 나의 검은 빛깔로 물들이고 싶다고 생각해버리는 건 남자로서 아주 당연한 일이지만 중등부 1학년에 키는 전교생 중 앞에서 세 번째고―――
배운 지 얼마 안 되는 존대말로 더듬더듬 말하는 파릇파릇한 유사의 순정은 보석처럼 너무나 눈부셔서 내 망상 속에서도 더럽힐지 그만둘지의 선택지가―――
언제나 슬픈 고민과 함께 왔다갔다 흔들리고 있지만 그 반복사고 자체가 이미 페도 로리콤의 사고라는 자각은 하고 있다. 하고 있다니깐.
뭐, 어쨌든 흔들리고 있다.
그래, 유사가 손에 들고 있는 카레빵처럼.
타이치「카레빵이네」
유사「그렇습니다」
걸을 때마다 앞뒤로 흔들흔들 흔들린다.
양손을 쭉 뻗고 기운차게 나아가는 유사.
타이치「그거……아침?」
유사「저, 아까 저기에 사쿠라바 오빠가 있었는데」
타이치「응, 있었지」
유사「만나셨어요?」
타이치「아니, 흔적이 있었어」
유사「흔적?」
타이치「뭐, 내가 갔을 땐 없었지만」
유사「곤란하네요」
유사「카레빵 줄려고 했었는데」
길들이려고 했던 것 같다.
타이치「그 녀석, 컴뱃한테 미움받고 있으니까」
유사「요시다씨 댁의 맹견 컴뱃 말이군요」
타이치「녀석은 굉장해. 자력으로 쇠사슬이 묶인 말뚝을 뽑을 수가 있어」
타이치「나가고 싶을 때 나가고, 오고 싶을 때 오는 거지」
유사「컴뱃은 일반인은 공격하지 않아요」
타이치「진짜 사나이란 건 그런 거야」
유사「사나이……였나요……」
타이치「지금은 복실해져버리긴 했지만, 녀석에겐 군인의 피가 흐르고 있으니까」
타이치「인간으로 치면, 전쟁에서 돌아온 후 사람이 좋아진 퇴역군인 비슷한 거지」
타이치「하지만 사쿠라바만은 공격해」
유사「신기하네요」
타이치「신기하지」
느긋한 페이스로 걷는다.
유사「이거 어쩌지……」
유사「배 고프세요?」
타이치「하나씩 먹을까?」
유사「네」
둘이서 카레빵을 먹었다.
타이치「학교 다닐만 해?」
유사「아직 좀」
타이치「괴롭힘 같은 건?」
유사「전혀 없어요! 다행이에요―!」
타이치「그렇겠지」
천하제일 군죠학원. 군죠 만세.
타이치「만일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텐 고등부에 아는 사람 잔뜩 있쪄요―라고 말해버려」
유사「네」
아주 기쁜 것 같다.
유사「이제 있쪄요라곤 안 하는데요」
수줍어한다.
타이치「핫핫하」
옛날 그거 가지고 조금 놀렸던 적이 있다.
타이치「담임은 사카키바라 선생님이었지?」
유사「네」
타이치「좋은 선생님이야. 운 좋네」
취미는 미소녀 피규어 수집이고 살짝 갔긴 하지만.
유사「아하하하, 다행이네요」
유사「……반 아이들도 다들 열심히 살아가고 있어서, 아주 즐거워요」
타이치「그래」
유사「엄마도 계시고요」
타이치「그렇지」
타이치「여차할 때는 그 분이 출동하시면 그만. 와아 유사, 네 인생 무사평안이구나」
유사「그런데……저……」
타이치「응?」
유사「선생님이 교환일기를 쓰라시던데」
타이치「그런 수업 있었지, 옛날에」
교류 HR이었던가.
타이치「나, 반에서 혼자 남아서 말야, 고등부 사람하고 했었어」
유사「아, 저도 혼자 남았어요」
타이치「응?」
유사「저희 반 홀수니까요」
타이치「아아……그럼 선생님하고?」
유사「아뇨, 저기, 그래서 말인데요」
가방 속에서 뒤적뒤적 노트를 꺼낸다.
유사「타이치 오빠한테 부탁해도 될까요?」
컬러풀 그린 노트.
희미한 민트향.
타이치「좋아, 하지!」
양 주먹을 불끈 쥐며 외친다.
유사「……」
타이치「왜 그러는가, 아가씨」
유사「아, 에, 저기……괜찮아요? 좀 더 생각해 보지 않아도?」
타이치「물론이지」
유사「시원스럽게……」
타이치「그 노트가 일기? 첫날 일기는 벌써 썼어?」
유사「네, 넷, 여러가지요」
타이치「여러가지?」
2차 성징 이전 미소녀의 여러가지 일.
이 불건전한 단어의 일람이, 나를 한없이 미치게 만든다.
하지만 유사 앞에서는, 조금이라도 망가지면 안 된다.
일명 이성의 배수진.
타이치「그거 궁금한데」
앞머리를『사르랑』하고 쓰다듬는다.
소녀의 시선이 내 백발을 따라간다.
정신을 차리자 조금 쪽팔려졌다.
그러고 보니 이전에, 코○트 소설에 나오는 왕자님이 분명히 백발의 미남이었던가.
뜨거운 이야기였다.
그렇다 하면 난, 왕자님의 이미지로 인식되고 있는 걸까.
그럼 좋겠는데…….
아니지……얼굴이……안되잖아…….
결국은 소망에 지나지 않는다.
유사「조금 부끄러워요……」
타이치「진지하게 쓴 걸 보고 웃거나 그러진 않아」
유사「……」
오, 지금 건 점수 꽤 딴 거 같은데?
미키한텐 아부를 너무 떨어서 실패했었지만 말야.
끝내는 밑천도 바닥나버렸고.
지금은 단순한 놀이상대로 전락해버렸다.
쉣!
생각하면 할수록 분하다!
이번에야말로 잘 해서, 잘만 되면 다 된 밥상의 미처녀다(의미불명).
이성 이성, 신사 신사.
타이치「그거 받아도 될까, 프로이라인?」
유사「후로이라잉?」
타이치「섬머 웁스」
무심코 어려운 단어를 써버린 나 자신을 여름의 감탄사를 사용해 책망했다.
타이치「귀여운 아가씨라는 뜻이야」
소녀의 눈물을 부드럽게 닦는다.
유사「왜 그러세요? 제 눈에 뭐라도 묻었나요?」
안 울고 있었다.
타이치「사랑스러운 아가씨라는 뜻이야」
유사「에……」
태연하게 넘기는 나.
순간 유사의 얼굴에서, 표정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그리고 장미가 피어나는 것을 방물케 하는 새빨간 부끄러움의 빛깔로―――물들지 않고,
유사「엣취!!」
재채기를 했다.
축축한 재채기였다.
유사「아, 죄옹압……아」
마지막의『아』는 민감한 부분을 들키고 나서 무심코 흘려버린 핑크빛 청춘의 숨결은 결코 아니다.
그녀의 눈이 어느 것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흘러나온, 작은 놀라움의 소리였다.
나와 유사의 사이에, 다리가 이어져 있었다.
한쪽 끝은 내 교복, 딱 복부 근처.
다른 한쪽 끝은, 유사의 코.
즉.
유사「하, 하레?」
콧물다리 완성.
점성이 높은 액체가,
주르―륵
하고 늘어져 현수교를 만들고 있던 것이다.
내 추리는 이렇다.
재채기를 한 박자에 맞춰, 튀어나온 콧물탄은 신칸센보다 빠른 초속으로(진짜) 내 교복에 달라붙었다.
접착력이 강한 액체는 마치 총알처럼 소녀의 비강에서 빠져나와 보통의 경우엔 끊어져버리는 접합부분을 운 좋게 이어서, 다리 완성에 이르렀다.
유사「…………」
유사도 간신히 그 사태를 이해한 것 같았다
안색이 새파래진다.
손끝 하나 움직이지 않는다.
아니, 움직일 수 없는 것이겠지.
젊디젊은 처녀가 자신의 콧물을 이성의……그것도 쾌남아에다 긍지 높은 귀공자(착각)인 나의……의복을 향해 발사해버렸으니.
※일부, 부적절한 표현이 있습니다.
자칫 잘못하다간,
『콧물 공주』
『콧물 아가씨』
등등의 지극히 유치하고 잔인함으로 가득 찬 칭호를 수여받을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언제나 놀릴 거리를 찾고 있다.
상대가 약하면 약할수록.
한없이, 한없이.
유사「아우……앗, 이건……저기……」
극도의 긴장에 의한 현상일까.
왕방울만하게 커진 눈동자에, 눈물이 가득 맺혔다.
안돼!
이 아이에게 새로운 트라우마를 줄 수는 없다.
아틀란티스의 피를 계승한 미남 백발왕자가 나설 차례였다.
소녀가 착란 증세를 일으키는 것보다 빨리, 냉정하게 손수건을 꺼냈다.
그리고 우선, 유사의 코 끝을 닦았다.
유사「……우으?」
이상한 소리를 냈다.
뿌리를 끊고 나서, 몇 번 반복해서 코 밑을 닦는다.
그리고 콧물다리를 철거해 가며, 내 교복을 가볍게 문질렀다.
손수건을 주머니에 넣는다. 넣으려 했다.
유사「아, 안돼, 안돼요!?」
타이치「응―?」
유사「그런 더더더더러운, 아, 그건 안돼요, 버리지 않으면, 저, 저기」
유사「새 거 사드릴게요!」
타이치「됐어」
명랑하게 웃는다.
타이치「자, 가자」
유사「그러니까, 저기, 죄송합니다, 그치만 손수건」
이번에는 진짜로, 엄지손가락으로 눈물을 닦아준다.
타이치「내 손수건은 귀여운 후배를 곤란하게 만들고도 참고만 있을 손수건이 아냐」
유사「……!!」
소녀는 큰 충격을 받았다.
타이치「변상은 됐고, 감기엔 조심하는 게 좋아, 유사양」
땅하고 머리를 가볍게 두드리고, 걷기 시작한다.
유사는 멍하게 서 있었다.
타이치「헤이, 학교 가자고, 아가씨」
유사「……하」
유사「네엣」
종종걸음으로 달려 와,
유사「……」
타이치「응?」
내 손을 잡았다.
귀까지 빨개진 얼굴을 숙인 채로.
귀엽다. 무지하게.
손수건 한 장으로 획득한 소녀의 호의가 그렇게 싸구려로 여겨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동시에 그녀와 으쌰으쌰를 해서 내 아이를 낳게 만들고 싶다고 생각해버린 나는 뇌가 썩어버린 게 틀림없었다. 뒈져라, 뒈져버려라.

토오코가 있었다.
뭐랄까, 맨날 일등이네, 이 녀석.
타이치「안녕」
토오코「……(흥)」
쌩?
쌩이십니까.
타이치「팬티……」
토오코「유치하긴」
타이치「팬티 안 살래?」
토오코「왜 내가 네 팬티를 사야 되는 건데!」
책상을 박차고 일어나는 토오코.
타이치「아침부터 뜨겁구나」
엄지손가락을 세운다.
토오코「……」
토오코는 내 엄지를 꽉 잡고, 가로로 꺾었다.
타이치「꺄아아아아아아악!!」
타이치「바보―, 꺾으면 어떡해―! 이러면 디디알도 마음껏 못하잖아―!」
손목을 같이 꺾었기 때문에 괜찮긴 하지만.
토오코「말 걸지 마」
타이치「어제 티비 봤어?」
토오코「말 걸지 마!」
타이치「……음」
말 걸지 말라고 자꾸 그러니, 말 걸고 싶어진다.
말 걸면 또 말 걸지 말라고 하겠지.


ㆍ部活に行く (부활동하러 간다)


당분간은 그냥 냅두자.
토오코는 요즘 계속 어딘가 이상하다.
이상한 채로 고정되어버리고 있다.
이런 때는, 선배와 얘기라도 해서 마음을 달래는 거야.

미키「아, 선배―」
타이치「여어」
벽에 기대어 심심한 듯이 서 있는 미키와 조우.
미키는 생각보다 그렇게 큰 충격을 받지 않고 있었다.
안 받은 척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타이치「밥은 잘 먹고 다녀?」
미키「넵, 부활동 덕분에 어떻게든」
타이치「……또 하나의 부활동 말이구나」
미키「네」
정식명칭ㆍ생명유지활동부.
타이치「……키리찡도 들었지?」
미키「네. 꽤 열심히 해요」
타이치「음, 훌륭하군」
미키「선배가 안 드는 게 좀 신기하네요」
타이치「음―, 이보게나. 키리찡은 나를―――」
그렇게 얘기하는 사이, 키리찡이 화장실에서 나왔다.
타이치「화장실 물 나와?」
미키「그그그금단의 질문을―!?」
뿌득
키리는 이빨을 갈았다.
키리「……쿠로스 타이치」
존칭 생략입니까.
그리고 원수 취급입니까.
키리「…………」
차가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키리도 변함없이 평소 그대로였다.
조금 안심.
타이치「키리양, 변함없이 아름다운 피부로군」
손가락을 뻗는다.
키리「만지지 마세요!」
손등으로 가볍게 채였다.
욱씬욱씬욱씬욱씬
타이치「……뭐 어때」
키리「……네?」
타이치「아냐」
앞머리를 쓰다듬는다.
미키「아와왓, 싸우지 마세요」
타이치「싸우다니, 그런 야만스런 짓은 안 해」
타이치「좀 더 우아하게 결투라면 모를까」
키리「……그건 저한테 승부를 걸겠다는 말씀이신가요, 선배?」
타이치「흠. 밤의 결투라면 받아주지」
미키「아핫」
키리「가자, 미키」
키리는 미키의 팔을 당기며, 발을 돌렸다.
타이치「갈래갈래, 나도 같이 갈래!」
나란히 섰다.
세 사람은 무척 사이가 좋다.
유채꽃을 떠올리게 하는 화목한 세자매!
이것은 그런 세자매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
……일 리가 있냐.
키리「선배……」
타이치「들켜버렸네♪」
키리「들키지 않았다고 생각한 거라면 선배는 뇌가 썩으셨나 보네요」
타이치「그치만 내 뇌는 회색인걸」
키리「갈라보지 않으면 모르겠지만요」
타이치「와하하」
키리는 웃지 않았다.
키리「……이런 상황에서, 잘도 들떠계시는군요」
타이치「아니 뭐, 그렇게 칭찬하지 마. 수줍어지잖아」
키리「……」
키리「그래도 전, 알고 있어요. 그러니까」
타이치「호에?」
키리「절대로 방심하진 않겠습니다」
떠나가는 두 사람.
타이치「……하―」
뭘까.
너무나 절박한……저 분위기는.
두 사람의 등에 대고 외친다.
타이치「아―, 두 사람 다」
멈춰 섰다, 돌아본 것은 미키뿐이었지만.
타이치「아―……」
말이 막힌다.
타이치「부디 몸 조심하길」
무난하게.
확실히 문명과 격리된 지금, 건강 관리는 중요하다.
미키가 활기차게 손을 흔들고, 키리가 힐끔 째려보았다.

안테나의 설치는 전혀 진행되지 않은 듯이 보였다.
타이치「선배?」
미사토「……으응, 으으응?」
타이치「아침부터 자면 어떡해요」
미사토「으응, 안 잤어요」
비틀비틀 몸을 일으키는 선배.
미사토「우선 안녕하세요」
타이치「안녕하세요, 선배」
타이치「한낮에 여기서 자면 햇빛 받아서 죽을 걸요?」
미사토「아, 네, 그렇겠네요, 조심할게요」
치맛자락을 잡아 올려 안경을 닦는 선배.
……팬티 보인다.
잠이 덜 깼습니다, 이 사람.
설마 밤 샌 건 아니겠지?
그걸 물어볼 용기는 없었다.
통통한 허벅지.
요즘 일본의 분위기는.
전 세계적인 규제&풍조에 대항한 일단 로리 닥치고 로리.
일부 미디어 컨텐츠에서는 로리가 등장하지 않는 것 자체가 용납되지 않는 듯하다.
이 쿠로스 타이치, 그런 세상에 한 마디를 던진다!
(그림 ― 로리콤은 병입니다.)
그것은 병입니다.
어린아이도 귀엽지만, 이 허벅지와 옅은 하늘빛 팬티 또한 좋은 것이다.
미사토「냐암……」
안경을 닦으며 하품을 참는 선배.
순수하다.
순수한 선배의 모습이다.
치마가 사르릉 원 위치로 돌아갔다.
선배는 안경을 고쳐쓴다.
미사토「졸려요……」
타이치「그렇네요」
미사토「으―음, 제가 뭘 했었죠?」
타이치「일 주세요」
미사토「왜 뒤돌아서 말해요?」
타이치「입체적인 문제에 의해서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미사토「철학적, 아주 철학적이네요」
실은 무지하게 육체적이고 저속한 이유입니다만.
타이치「부활동하러 왔으니까, 일 주세요」
미사토「아잉……」
선배는 투덜투덜 불평했다.
귀를 기울여 보았지만, 뭐라 하는지 잘 들리지 않는다.
단편적으로,
미사토『고민했던 게 바보같아』
미사토『도망쳤던 게 아니라』
미사토『강아지같아』
미사토『잘 따르는 게』
미사토『별로 방해되는 건』
미사토『사귀는 대상으로는』
미사토『역시 내가 연상이고』
미사토『딸꾹』
마지막은 딸꾹질이었다.
뭔가 이상한데?
언제나 살짝 이상한 면이 매력적인 레이디지만, 오늘은 너무 망가져 있다.
타이치「서, 선배?」
미사토「원고……」
타이치「뭐라고요?」
미사토「원고―해 주세요―」
풀린 눈동자로 그렇게 말한다.
타이치「원고가 뭔데요?」
미사토「군죠학원 방송부 첫 회 방송분 원고예요」
타이치「아아, 저 안테나로 날릴 방송용 대본 말인가요」
미사토「그렇습니다. 필요한 것은 지성과 감동, 눈물과 진실, 듣는 사람의 귀를 한없이 상쾌하게 해 주는 옛 젊은이들의 건전한 문화의 재림을 우리 방송부의 손으로 아니 목소리로 실현시켜 보지 않겠습니까!」
선배의 발 밑에 술병이 잔뜩 널려 있었다.
타이치「오오오오오오오옷!?」
미사토「도덕성의 결여, 지나친 이기적 개인주의, 자신의 나태한 생활을 위해 이용되는 기본적 인권, 이러한 위기들로 인해 오염되고 있는 현대 사회에―――」
미사토「우리 젊은이는 서로간의 건전한 교우관계를 쌓아올릴 수 있는 것일까요? 우리 군죠학원 방송부는, 이 의문에 대해 만족할 만한 대답을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타이치「일본어 잘 하시네요」
미사토「후후훗……」
웃었다.
쥐고 있던 주먹이 흐느적흐느적 허공을 헤매고, 주머니로 들어갔다.
나왔다.
컵 하나를 쥐고서.
타이치「아―아―아―……」
이미 뒤죽박죽이었다.
꿀꺽꿀꺽 마시는 선배의 모습이, 다시금 멋져보였다.
완전히 아저씨다…….
미사토「원고―를, 쓰세요」
반쯤 풀린 눈으로 말한다.
타이치「네, 네에……」
미사토「마감은 일요일입니다」
타이치「네」
미사토「좋아!」
미사토「쿠럼 져는, 원Go를 쑤Get다고 한 당시늘 밋고, 여귀서 쟘See 쟘을 쟈도Lock 하궸쑵뉘―다」
타이치「우짜서 외국인?」
미사토「우―」
바닥에 누웠다.
타이치「니 뭐하노!」
미사토「크흐흐흐흐흐흐흣」
타이치「선배, 선배도 참」
미사토「쿨러덩―」
자고 있나.
그 성실한 선배가 술을…….
타이치「저기, 일단……양호실로 가서 자요」
미사토「페케군, 부탁군……」
부탁해요를 의인화한 말로 선배는 모든 것을 방폐했다.
타이치「정말, 제가 안고서 데려다 줄까요?」
미사토「ZZZ……」
타이치「가슴하고 엉덩이 만져버립니다?」
타이치「일어나면 팬티가 없어져 있을지도 몰라요?」
타이치「일어나면……뭐랄까 오바타가 싸아―하네, 무슨 일일까……어맛, 나 팬티 안 입고 있잖아? 어떻게 된 거지?
뭔가 응큼한 짓 해버린 걸까? 거짓말……그런……싫어……앗, 젖어버렸어……어떻게 된 거지, 나」
타이치「어떻게 된 건 나잖아―!」
내 옆머리를 때렸다.
타이치「쳇……」
어쩔 수 없는 사람이다.
일단 선배의 상체를 일으킨다.
삐걱.
목이 푹 기울었다.
진짜로 자고 있다.
타이치「……아아아, 어쩐지……어쩐지 이상한 기분이……」
꼬옥
안겼다.
내 가슴팍에서 일그러지는 풍선 두 개의 감각.
타이치「감동했다」
다음 감동은…….
등 뒤를 부비적부비적 뒤진다.
브라 후크 발견.
푼다 (소요시간 0.5초).
브라 자체를 벗기고 가슴팍 사이로 슬슬슬― 당긴다.
그 피부에 코 끝을 갖다 댄다.
좋ㆍ은ㆍ향ㆍ기
타이치「……간호비 확실히 받았습니다, 미사토 선배」
브라를 주머니에 넣고, 선배를 업는다.
느리적느리적.
하지만 딱 알맞게 올라 탄 두 개의 감촉이 견디기가 힘들었다.
특히 가슴이.
속옷을 벗긴 생가슴.
콧김도 난폭해지고, 텐트도 구축되었다.
텐트 맨의 탄생이었다.
타이치「자, 가자」
어차피 볼 사람도 없다.

안되지안되지.
등에 닿는 감촉이 너무나 멋져서, 무의식중에 학교 안을 일주해버렸다.
자.
양호실에 사람은 없다.
빈 침대에 선배를 눕힌다.
타이치「안녕히 주무세요 선배, 부디 좋은 꿈을」
타이치「……」
물컹
타이치「자 그럼」
비로소 하루의 시작.
……아냐, 이번엔 볼 만졌다구?

변함없이 무츠미 아줌마의 모습은 없었다.
대신에 메모가 놓여져 있었다.
『저녁이 없는 것도 아냐』
타이치「가자가자~」
헐레벌떡 집을 나온다.

밤에 덥지 않은 게 시골의 좋은 점이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은 적당히 시원하고, 촉감도 부드럽다.
오늘은 쓸 것이 잔뜩 있다.
일기는 물론, 원고도 써야 된다.
원고부터 끝내자.
타이치「……흐―음」
첫 회 방송에 어울리는 문장, 이라.
타이치「…………」
어려워.
쓰고 지우고, 또 쓰고 지우고.
일진 일퇴의 공방.
한 시간 후, 책상에 푹 엎드린다.
어이어이, 쓴 게 두 줄뿐이잖아.
『우리들은 군죠학원 방송부다. 이 방송실은 지금 우리들이 점거했다. 전원 신속히 무장을 풀고―――』
타이치「안돼안돼!」
원고용지를 찢어버린다.
개그를 너무 의식한 덕분에 취지에서 완전히 빗나가버렸다아앗!
진지하게 가자.
조금 미묘한 재미를 첨가하려 하면 이상해져버린다.
타이치「그냥 접자」
오늘밤은 쓸 기분이 아니다.
일기를 쓰자.
감정을 객관화시켜 보자!
카레빵의 카레를 밥에 뿌려먹기 시작한 것은 누구일까?
그런 의문이 언제나 나를 차위한다.
※차위한다=타이치의 오타. 괴롭힌다는 뜻을, 어떠한 차이에서 느껴지는 위화감이란 뜻의 줄임말과 연결지어서 생긴 논리적인 착각.
타이치는 그와 비슷하게 터틀넥을 토탈넥으로 잘못 알고 있어서, 목을 토탈(total)로 덮기 때문에 토탈넥인 거라고 지금도 굳건히 믿고 있다.
알려지지 않은 길을 몇 번이나 반복해서 왕복(往腹)한 듯한 하루의 끝에 아련하고도 허무한 감정이 느껴진다.
※왕복(往腹)=타이치의 오타
보들레르는 말했다.
『신은 죽었다』고.
신의 존재를 의심하는 것은 간단하지만, 신의 장난이라는 것은 실제로 존재해서 불시에 인생에 닥쳐 와, 매일 다니는 길과도 같이 직신적일 것이라 믿고 있던 인생에 갑작스럽게 분기점을 벌려고 한다.
※벌려고=타이치의 오타
예를 들어 교실에서, 고집스러운 여성과 무모한 대화를 펼쳤을 때처럼.
※무모=불필요의 착각
예를 들어 복도에서, 사이 좋은 친구와 사이가 소원한 친구 두 사람을 동시에 만났을 때.
그리고 또 그 두 사람이 우호적인 관계를 쌓고 있을 때.
나는 그 어느 쪽에 대해서도, XXX(지워져 있다)의 높이 솟아오르는 기상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소녀들이 동등하게 가지고 있는 신비의 XXXX로 XXX에 코를 대고 입을 대어 XXXX한 끝에 더할 나위 없는 사랑과 함께―――
느껴지는 XXX를 XXXX하는 것에 대해서는 XXX한 끝에 XXXXXXXXXXXXXXXXX가 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이것은 키르케고르의 명언.
키리양의 그윽한 중성미와 그에 대한 나의 정당한 열정에 대한 언급은 이쯤 해 두자.
인생의 기쁨은 이것뿐만이 아니니까.
그래.
옥상에서 만난 내 인생의 선배이자, 어머니와 같은 포용력으로 만물을 사랑으로 대해 주는 미사토양에 대해서는 아무리 써도 사복은 그치지 않는다.
※사복=타이치의 오타
우선 뭐니뭐니해도 허벅지부터 (이하 검열)
그리고 나의 손에는, 그녀의 몸에 달려 있던 가슴가리개가 남았다.
이미 체온이 없어진 그것을 코에 대고 호흡을 한 순간, 은은한 소녀의 스멜(smell)은 나를 눈 깜짝할 사이에 환상적인 환상 속으로 데리고 갔다.
~FIN~
다 썼다.
시적 센스가 넘치면서도 철할적.
예술의 도시 런던에 태어났었더라면 스타텀에 오를 것이 확실한 문학적 재능이었다.
아니 뭐, 그냥 어려운 말을 쓰는 것만으로도 분위기 잡는 건 쉬우니까.
term이라던지 tautology라던지 irony라던지, 그런 전문 용어도 결코 평이한 일본어로 번역하지 않고 모두 사용해야 한다.
타이치「음」
기지개를 피며 릴렉스한다.
작가라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현대 일본에는 너무 과격해 자체 검열한 부분도 있지만.
그래, 원고도 이런 식으로 가자.
현학적으로 치장한 현란한 그림 두루마리를 전면에 내걸고, 지식인 계층을 대상으로 한 고상하고 섬세한 원고를 만들어 보이겠어.
불끈 솟아나는 의욕으로 다시 펜을 잡았다.


교실에 오자, 아무도 없었다.
언제나 자리에 뾰루퉁하게 앉아 있던 토오코의 모습은 없었다.
타이치「자, 그럼」
신발에서 원고용지를 꺼냈다.
원고는 하룻밤에 다 끝냈다.
빨리 선배한테 보여주고 OK를 받자.
옥상으로.

미사토「페케군」
의혹의 시선에게 마중을 받았다.
타이치「이런, 부장님」
타이치「왜 당신은 가슴팍을 가드하고 있는 거죠?」
미사토「……그건……」
얼굴을 붉혔다.
미사토「저기, 저 어제의 일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데요」
타이치「그렇겠죠」
미사토「서, 설마설마」
타이치「왜, 왜 그러세요?」
시치미를 뚝 뗀다.
미사토「…………」
고개를 숙이고 고뇌하는 선배.
그러나 가슴을 가린 팔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타이치「그보다 저쪽으로 가죠」
선배의 손목을 잡고, 당긴다.
미사토「꺄악!?」
비명을 지르는 선배.
미사토「안돼애애애」
타이치「헤?」
미사토「희……」
타이치「희?」
미사토「희, 희……」
미사토「희생양」
타이치「희생양」
머리 속에서 양이 한 마리 나와, 풀숲으로 돌진했다.
미사토「희생양이 되는 건 싫어요」
타이치「저도 싫어요」
미사토「정신을 바짝 차려야겠네요」
타이치「네에」
타이치「그치만 저, 선배를 희생양으로 삼고 싶었던 건 아니라 그늘로 옮기고 싶었던 것뿐이에요」
미사토「앗, 그런가요, 그럼 그러죠」
간단하군.
이동.
타이치「근데 선배, 어제 술 마셨었죠?」
미사토「아, 에, 아」
미사토「……죄송합니다」
위축되는 선배.
타이치「대단했어요」
미사토「설마 저……취해서……대담한 짓을?」
좋아, 걸렸다.
타이치「네, 그게 말이죠 차마 입에 담기조차 힘든 파렴치 플레이를」
미사토「하읏!?」
선배의 눈이 긴 가로선『X』마크가 되었다.
초 당황 상태다.
미사토「아아아앗!」
타이치「하지만 부디 안심하시길. 제가 잘 처리해, 다른 사람 눈에 띄지 않도록 정리해 두었습니다」
미사토「……아아, 그랬군요……정말 고마워요」
조금은 석연치 않아하면서도, 선배는 고개를 숙였다.
미사토「그런데 저, 도대체 어떤 추태를……」
타이치「듣고 싶어요?」
미사토「……」
망설임.
타이치「뭐하면 제가 책임을 질까요?」
미사토「네?」
이번엔 눈이 점이 되었다.
타이치「아니, 만약 들어버리게 되면 그러고 싶은 기분이 드실 것 같아서」
미사토「하와와왓」
타이치「아니, 냉정하게 생각하면 별 거 아니에요」
미사토「그, 그래요?」
타이치「듣고 싶어요?」
긴 시간 동안, 선배는 눈을 내리깔고 생각하고 있었다.
미사토「…………음」
타이치「정말로 별 건 아니에요」
타이치「저쪽의 안테나용 철사를 써서, 잠시 전라 림보 댄스 촬영회를 이렇게」
미사토「끝났다」
풀썩, 하고 쓰러졌다.
미사토「삼가 춘면(春眠)께, 그 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가공의 편지를 읽었다.
타이치「선배, 정신차려요」
미사토「……이 이상 인생이 나빠지게 될 거라곤 생각 못했었어요……」
타이치「잘 처리했다니까요」
미사토「그래서……브라가……」
타이치「혹시, 집에 못 간 거예요?」
선배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타이치「그럼, 지금은……눈 떴을 때 그대로란 거예요?」
다시금 끄덕.
타이치「그럼」
꿀꺽, 하고 침을 삼킨다.
선배의 지금.
저 얇고 잘 비치는 셔츠 속은.
알몸, 알모오오옴.
오오오오소오오오오옥은알모오오오오오옴!!
……근데, 그러고 보니 세상의 모든 여자의 옷 속은 알몸이지.
뭐, 요컨데……노브라란 것이다.
선배, 꽤 큰 편이니까.
셔츠가 빵빵한 게, 눈에 눈 띄는군.
과연, 어쩐지 좀 이상하더라.
타이치「우선 집에 가서 샤워라도 하는 게 어때요?」
미사토「냄새 나요?」
미사토「학교에서 몸은 대충 씻었었는데……」
아, 좋았을 텐데―, 그 시츄.
일찍 일어났으면 볼 수 있었으려나.
난 어째서 그런 이벤트를 겪을 수 없는 걸까나.
그런 점이 모자라단 말야. 에이로 실격이야.
※에이로=타이치어. 에로 방면에서의 영웅적 존재.
타이치「선배, 저한테 맡기세요」
미사토「?」
나는 교실로 돌아갔다.
가방에서 스포츠 타올을 꺼냈다.
타이치「이걸로 대신하면 되겠죠?」
건넨다.
미사토「페케구운」
감동한 듯 울먹이는 선배.
타이치「무명 천 있잖아요? 그런 느낌으로 두르면 안 비칠 거예요」
미사토「정말 착한 아이구나……」
눈물을 글썽이며, 타월을 받아 든 선배.
미사토「잠깐 기다려주세요. 움직이면 안돼요」
타이치「네―에」
선배는 그늘로 사라졌다.
확 엿보고 싶은 기분도 있었지만, 참았다.
타이치「……」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튀어나온 유방의 끝, 두 알의 산딸기와도 같이「튀어나온」그 봉우리 끝은…….
타이치「아아아아, 바보바보바보! 나 바보!」
몇분 뒤.
미사토「어머나, 페케군, 안녕하세요!!」
겁나게 상쾌한 표정으로 나타났다.
가슴이 흔들흔들,
미사토「오늘도 여름이군요. 아직 더위는 계속될 것 같네요」
타이치「저, 정말 그렇군요」
미사토「그런데, 오늘은 아침부터 무슨 일이에요?」
타이치「어제 의뢰받은 원고를 드리러 왔어요」
미사토「원고? 첫 회 방송용 대본, 써 준 건가요?」
타이치「네」
미사토「페케군, 대단해요. 다시 봤어요」
선배의 표정은 호의와 감탄으로 가득 차 있다.
타이치「아니 뭐~」
나는 꽈배기처럼 꿈틀거렸다.
미사토「볼 수 있을까요?」
타이치「이것입니다」
미사토「그럼」
원고용지를 건네준다.
선배의 눈동자가 순간 진지해진다.
선배의 시선이 가볍게 용지 위를 지나갔다.
타이치「……」
잠시 후.
선배는 고개를 들었다.
만면에 미소. 비유하자면……성모.
성모 강림.
후광을 등에 짊어지고, 그녀는 말했다.
미사토「즐」
타이치「워우―――――――――!!!」
철창에 대고, 나는 거리를 향해 짖었다.
타이치「다시 해 오겠습니다……」
미사토「기대할게요」
맥없이 교사로 내려간다.
타이치「아, 맞다맞다, 타올은 꼭 빨지 말고 돌려주세요」
미사토「네?」
하고 선배가 목을 갸우뚱한 순간.
세워져 있던 여러가지 자재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타이치「OH! 데인져러스!!」
미사토「에?」
이대로는 늦는다!
사다리와 철사, 공구……그런 것들이.
일제히 선배에게 쏟아진다.
쏟아진다―――

미사토「……음……」
선배가 일어났다.
타이치「다행이다……무사해서……걱정했잖아요」
미사토「저 분명히」
타이치「훌쩍, 별 일 아니라 정말로 다행이에요……」
타이치「누나」
미사토「아니에요」
타이치「슬프군요」
원 상태로 돌아온다.
미사토「상황을 알려주세요」
타이치「선배가 다쳤습니다」
타이치「응급처치를 위해 여기로 이동」
타이치「그리고, 방금 정신을 차림」
미사토「다쳤나요, 저?」
타이치「조금요」
미사토「으음……?」
전신을 뒤척이는 선배.
팔에 감겨 있는 붕대.
여기저기에 붙여진 반창고.
미사토「아야야얏, 몸이 아파요……」
타이치「전신에 가벼운 타박상을 입었으니까요」
미사토「……둔한 나」
타이치「크게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에요」
미사토「……고마워요, 페케군. 떨어지는 거 알려 줘서」
타이치「뭘요」
미사토「그럼, 바로 부활동을……」
타이치「이런이런, 움직이지 마요」
말린다.
미사토「왜요?」
타이치「일단 큰 상처는 없지만……」
슬며시 시트를 넘기고, 치마도 넘겼다.
통통한 허벅지가 노출되었다. 통통.
미사토「……………………」
타이치「봐요, 이 통통한 허벅지가 군데군데 찔렸단 말예요. 그러니까 오늘은 부활동도 그만 하고 푹 쉬세요……」
미사토「하후하후」
뻐끔뻐끔 입을 벌린다.
타이치「우앗, 피가 새네요」
피.
타이치「붕대 갈아줄까요?」
고개를 끄덕끄덕.
붕대를 가져와 갈아낀다.
타이치「아니―, 그건 그렇고」
타이치「다리가 참 섹시하시네요」
미사토「제가 할게요」
타이치「어, 안 돼요. 저한테 맡기세요」
미사토「부, 부탁이니까……」
타이치「그치만」
허벅지를 본다.
피가 새고 있다.
큰일이다.
타이치「그치만」
이렇게 아름다운 피가.
흘러나와버리다니.
붉은 피.
피. 피.
현기증을 느끼고, 눈을 감았다.
뜬다.
아아…….
세상은 언제나 애매하다.
거머리들은 만지는 것만으로 붉어진다.
간단하다. 간단한 일이다.
모든 감각이 예민해지고,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게 된다.
가시광선의 폭이 변한다.
시야가 흐릿해지고, 움직이는 것을 민감하게 감지한다.
갑자기 내가 누구인지를 잊어버렸다.
의식이 사라지는 감각.
몸을 움직였다.
신체 감각이 애매하다.
어디부터가 내 몸이고, 어디까지가 내 몸인지 모르겠다.
시야의 중심에 있는 붉은 점.
접근해 본다.
노이즈.
무슨 현상이 일어난 것 같다.
자세한 건 모른다.
체감할 수 없다.
세상과 일체화된, 전지전능한 감각만이 전부다.
노이즈.
뭘까, 이건.
세상 속에 있는 이질적인 것.
붉은 점.
아아.
아아, 알겠다.
나는 착각하고 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정상이라고 일방적으로 정의하고 있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그 모순이, 시야의 구부러짐과 일그러짐을 가져온다.
나올 기회를 얻은 내 안의 짐승이 희열에 몸을 떨었다.
현세와는 다른 법칙ㆍ충동ㆍ배열에 따라 본능을 구축한 짐승이다.
타이치「www^√레vvww^√~~」
나는 소리를 냈다.
노이즈.
이건……뭐지?
의식을 집중시켜라.
알아들어라.
해독해라.
짜맞춰라.
정의해라.
그래.
이건 소리다.
내가 내는 목소리와 같은 종류의 파동.
의식이 수습된다. 소리라는 것만 알면, 해석하기도 쉽다.
***********
미**********
미사토*케****ㄴ?*
미사토「페*…**ㄴ?」
미사토「페케…*군?」
미사토「페케……군?」
아아, 맞다.
미야스미 미사토.
선배다.
선배의 말.
선배의 붉은색이었다.
미사토『항상 혼자네요』
그러므로.
미사토『같이 부활동하지 않을래요?』
공격을, 금한다.
타이치「정신차려!!」
미사토「왓」
세계가 원상태로.
타이치「…………응」
두통이 난다.
타이치「내참―…….」
하필 이런 타이밍에.
피와 석양의 조합은 정말로 좋지 않다.
울 것 같다.
타이치「내참―, 난처하네요. 와하하」
미사토「흐흑」
마이 비너스, 선배가 울고 있다.
타이치「누구야! 선배를 울린 자식이, 당장 나와!」
도수공권 자세.
타이치「내 가라데를 먹여주지!」
미사토「흐흐흑」
타이치「선배, 누가 그랬어요!?」
선배는 나를 가리켰다.
타이치「나를 때리는 건 너무나도 어려운데―!!」
미사토「페케군? 페케군?」
타이치「아……네?」
미사토「아, 평소의 페케군으로 돌아왔다……」
타이치「영원히 당신의 왕자이길 바라는 타이치입니다」
무릎을 꿇는다.
타이치「제 가라데를 보여드릴까요?」
미사토「가라데니 뭐니 격투기 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없는데요……」
미사토「방금 전 페케군, 로보디안처럼 변해서 무서웠어요」
※로보디안=미사토어. 로봇이란 뜻.
타이치「타이치 로봇인가요?」
미사토「그런 느낌이에요」
타이치「잠시 착란증세가 있었어요」
미사토「……이제 괜찮아요?」
선배는 그 이상 깊게 물어보진 않았다.
타이치「네, 듀얼 부팅된 마이 OS의 체인지는 이미 퀵하게 디 엔드되었습니다」
미사토「하시자키 선생님한테 페케군은 영어 성적이 엉망이라고 들었어요」
타이치「그거보다 선배, 빨리 피를」


ㆍ手當する (응급처치한다)


미사토「아……」
선배의 아랫도리를 (이번엔 사심없이) 햇빛에 드러냈을 때.
출혈하고 있는 부위……에서……이빨자국을 보았다.
소량의 혈액이 얇게 퍼져 붉은 습기를 머금고 있는 상처의, 주변.
누군가가 상처를 뜯어 먹으려 한 것처럼도 보인다.
아니.
그렇게밖에 보이지 않는다.
타이치「……선배?」
미사토「네?」
타이치「……절 경멸하셨나요?」
미사토「경멸?」
타이치「그」
말이 나오지 않았다.
스스로도 제대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행동과 마음을, 어떻게 해명해야 되는 걸까.
타이치「그러니까」
선배가 후훗 미소짓는다.
미사토「경멸받을 만한 일은 아무것도 안 했어요, 당신은」
타이치「……그런, 가요?」
하지만.
상처를 본다.
선배는 슬며시 치마를 내린다.
미사토「서로 실수한 셈이니까, 없던 일로 하죠」
미사토「부활동, 도와주기도 했으니까요」
타이치「……」
타이치「붕대, 감게 해 주세요」
미사토「……네」
그리고 나는, 선배의 처치를 했다.
이번엔 발작도 일어나지 않았다.
기뻤으니까.
발작을 뛰어넘는 감정을 느꼈으니까.
미사토「간지러워요―」
타이치「죄, 죄송해요……긴장해서」
미사토「붕대 잘 못 감네요―」
타이치「경험이 없어서……」
미사토「가, 간지러워~」
타이치「으으으으~……」
그런 행복한 시간이.
있었다―――
미사토「아!」
타이치「네?」
미사토「제 휴대폰은 어딨죠?」
타이치「휴대폰, 말인가요?」
갑작스런 일상의 단어.
순간 사고가 마비되었다.
미사토「떨어뜨린 것 같네요」
몹시 난처한 표정을 짓는 선배.
타이치「찾아볼게요. 아마 옥상에 있겠죠」
미사토「부탁해요」
양호실을 나와, 옥상으로 향했다.
휴대폰은 바로 찾았다.
어지럽게 늘어진 자재 사이에 굴러다니고 있었다.
타이치「왜 휴대폰 같은 걸」
사소한 의문.
타이치「아니지」
바로 의문을 지운다.
누구나 의지하고 있는 무언가가 있는 것이다.
내가 그렇게 살아가고 있듯이, 선배도 이 작은 휴대폰에 커다란 것을 의지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타이치「이거죠?」
미사토「네, 그거」
얼굴이 확 펴지며 휴대폰을 받는 선배.
미사토「수고했어요. 이걸로 쌤쌤」
타이치「어……?」
나는 차마 웃지 못하고, 표정이 일그러진다.
나쁜 농담을 들은 것 같다.
타이치「뭐랄까, 시원하게 용서해 주시네요」
미사토「저도 군죠 학생이니까요」
미사토「그리고, 또 안 그럴 거죠?」
타이치「……몰라요. 가능성은 있어요」
타이치「발작 같은 거니까요」
미사토「그럼 정상 참작의 여지는 있는 거네요」
타이치「……물러」
미사토「에?」
미사토「미미 선배는 너무 물러요」
타이치「난 대하기 편한 연하 남자애 같은 녀석이 아니에요」
미사토「그치만 하지 말라고 하니까 안 하던데요」
그랬나?
말을 알아듣지도 못했을 텐데.
우연?
그런 게 당연하다.
하지만 과연, 글쎄.
타이치「이대로 선배하고 친하게 지내면 안 되는 걸지도……왜냐면 이건」
선배가 내 말을 가로막는다.
정적의 여름.
너무 조용해, 부활동과 수업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정적이 지배하는 하얀 양호실.
세상이 황혼으로 가득 차자, 흰색으로 칠해진 건물 안은 저항도 못한 채 햇빛에 종속되어 건물 안에 품은 두 개의 이물질을 황혼에게 제물로 바치고 있다.
저녁의 빛깔은, 하루의 어떤 시간보다도 강한 인상을 가진다.
모든 것을 이세계로 옮겨버리는 두려운 것.
멸망의 시간이다.
세계가 다중으로 보이는 시간.
지고 나서 다음날 또 시치미 뚝 뗀 얼굴로 나타난 태양이 어제의 그것과 똑같은 것이라고 누가 보증할 수 있을까.
만약 매일 한 번씩 세계가 멸망하고 있는 거라면.
다음 날이 옴과 함께 되살아나고, 단지 인간만이 그것을 모르고 있는 것이라면.
확인할 방법은 없다.
실제 세계와 인간이 인식하는 세계가 같은 것이란 보증은 어디에도 없다.
그런데 지금, 양호실 안의 작은 공간만이 주홍빛의 침공으로부터 무사한 것처럼 느껴졌다.
평소와 달리, 세계가 선명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미사토「……완벽한 사람 같은 건, 어디에도 없잖아요?」
미사토「누구나 어딘가는 불완전하잖아요」
미사토「일일히 결점이나 실수를 따지고 산다면, 살아갈 수 없어요」
미사토「어때요, 그렇죠?」
타이치「……」
눈물 한 방울이라도 나온다면 꼴사납게나마 폼이 날 텐데.
이상하게도, 그렇게 격렬했던 마음의 움직임은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타이치「……혼자였던 나를 부활동으로 이끌어 준 선배를 존경하고 있어요」
묵묵히 이야기하는 나.
지켜보는 선배.
조용히 시간이 흘러간다.
타이치「미움받는 건 싫으니까, 누군가를 다치게 하고 싶지도 않아요」
타이치「……조금 전의 일은 미안해요」
타이치「하지만 자제할 자신이 없어요」
미사토「어떻게 해야 되나요?」
타이치「네?」
미사토「우선 무슨 점을 조심해야 되나요? 전」
타이치「……그건」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타이치「선배의 피를 보여주지 않으면 돼요」
미사토「상처에 주의하란 말이군요?」
타이치「네」
미사토「그치만 전 안테나를 세워야 되니까 공구도 써야 되고, 상처를 입을 위험이 많은데」
타이치「네, 그러니까 제가 곁에 있지 않는 편이」
미사토「페케군이」
내 말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미사토「힘쓰는 일을 도와주면 되잖아요?」
타이치「……………………」
가슴이 저렸다.
가슴뼈에 둘러 싸인 가슴의 안쪽이 지잉 울렸다.
미사토『항상 혼자네요』
미사토『같이 부활동 하지 않을래요?』
마음 속의 기록에 추가된 그 말은.
압도적으로 따스하고, 부드럽고, 강력했다.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고민을, 타인의 말 한 마디가 해결해버린다.
그것을 위해,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마음과 통하고 싶어하는 거라 생각한다.
말로, 몸으로, 휴대폰으로.
……통신으로.
온갖 수단으로.
서로 접하려고 노력한다.
그것이 사람이다.
미사토「역시 안테나 세우는 거 도와줘야겠어요」
타이치「……네」
좀 부끄럽다.
선배는 생긋 웃었다.
요코는 나를 강한 인간이라고 했다.
그러한 가치 인정은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다.
나 이외의 사람은 모두 대단하다.
언제나 미미 선배는 나를 좋은 기분으로 만들어 주고, 마음대로 움직이고, 매혹시킨다.
그런 일……난 할 수 없다.
곁에 있고 싶다.
시간이 허락되는 날까지.
종말의 날까지.
그리고 아직, 시간은 있다.
타이치「부탁합니다」
미사토「네」
고개를 숙이고,
선배의 손이 탁 놓여지고,
간지러워서,
간신히 웃음이 나오고,
이걸로, 원 상태로.
눈물이 나올 정도로 기뻤다.
선배의 손이 커텐을 걷었다.
순간, 양호실은 오렌지빛에 잠식당했다.

토모키「타이치―」
복도를 걷고 있으니,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다.
타이치「오, 아직 있었냐?」
토모키「너야말로」
토모키의 얼굴이 가면처럼 보였다.
미묘한 거리를 두고 있는 두 사람.
타이치「부활동하고 있었다」
타이치「요즘 부활동 하고 있걸랑」
토모키「……왜 또?」
타이치「아니, 목적이 있는 건 좋잖아」
토모키「부활동이라면 그 허접한 거?」
군죠학원 방송국의 개국.
타이치「허접한 거 아냐, 아마도」
토모키「타이치가 그런 걸 하다니……뭐랄까, 뭐, 다 이유가 있겠지만 말야」
토모키「또 누구누구 하고 있어?」
타이치「부장」
토모키「……끝?」
타이치「응」
토모키「그거 부활동이 아닌디유……」
타이치「부활동이라 생각하면 어쨌든 부활동이야」
토모키「……요즘 여러모로 바쁘게 움직이는 건 알고 있었지만, 부활동이라」
어깨를 으쓱였다.
타이치「그러는 너야말로. 지금까지 뭐 했냐?」
토모키「부활동」
타이치「와하하」
타이치「……저기, 뭔 말이슈?」
토모키「진짜 부활동」
토모키「한가하면 이쪽으로 와」
타이치「그것도 좋지만……」
토모키「……배신당할 걸」
불쑥 말했다.
타이치「누구한테?」
토모키「부장한테」
타이치「왜?」
토모키「그러니까, 너무 친하게 지내지 않는 게 좋아」
등을 돌리고, 토모키는 떠나간다.
상태가 좀 안 좋아 보이는데.
무슨 일이지?

귀로.
얌전했던 매미들이, 다시 시끌시끌 울기 시작했다.
신카와「어―이」
타이치「음……오오, 타니자키!」
신카와「코노스! 잘 지냈냐」
타이치「아아, 이 코노스 타이치, 비록 면허정지를 먹었지만 건강만은 넘쳐나지」
신카와「그건 이 타니자키 유타카도 같은데?」
타이치「간만에 보는구나, 타니자키」
신카와「그래, 코노스」
타이치「타니자키는 학교 언제부터 와?」
신카와「일단 내일부터야, 코노스」
손에 든 A4 봉투를 휙휙 흔들었다.
학교 관계 서류일 것이다.
타이치「오, 우리 반으로 와라 타니자키」
신카와「코노스, 억지부리지 마. 내가 결정하는 게 아니잖아」
타이치「와하하」
신카와「하하하」
둘이서 박장대소한다.
타이치「근데 말야 타니자키―――」
신카와「……OK 항복이다! 신카와 유타카입니다, 죄송했습니다 쿠로스씨」
타이치「아아, GG냐?」
신카와「계속 할 것 같았으니까」
타이치「집에 가는 길?」
신카와「응」
타이치「어때, 우리 집 놀러올래?」
신카와「가까워?」
타이치「여기서 10분 정도」
신카와「좋은 데 사네. 근데 미안. 다음 번에 갈게」
신카와「사촌 여동생이 말야―, 걔도 군죠 다니는데, 여러가지 가르쳐 주고 있어」
나의 귀,
그런 정보,
놓치지 않는다(훗).
신카와「왜 엄지손가락 세우고 있어?」
타이치「헤이, 거기 Guy」
신카와「뭐, 뭐야?」
타이치「진짜 미안. 사촌 여동생, 이란 말이 들려버렸어」
신카와「그러신가요 아저씨」
타이치「나이는?」
신카와「나보다 한 살 연하」
타이치「사진 있어?」
신카와「……쿠로스?」
타이치「아아, 아냐, 아무것도 아냐. 잊어 줘」
타이치「근데 참, 한 살 차이면 귀엽겠네」
신카와「응―, 뭐, 겉보기만은」
타이치「젠장할」
자연스럽게 목소리가 깔아졌다.
부러움과 질투와……증오로.
신카와「앙?」
타이치「아냐, 혼잣말」
신카와「……그래도, 조금 남자애 같아서 말야」
신카와「굳이 말하자면, 그런 감정은 없어. 뭐랄까 그런 눈으로 보려고 해도 좀 거북하기만 하고」
타이치「좆까지 마―!」
신카와「왓, 뭐야 갑자기」
타이치「그딴 건 구라야! 넌 구라쟁이다! 귀여운 연하의 친척이 있는데? 의식 안 할 리가 있냐! 넌 프랑스 서원 한 권도 안 읽어봤냐!? 말도 안 돼―! 웃기지 마―! 따라서 네가 구라쟁이라는 것이 증명되었다!」
신카와「쿠로스……애석하지만 진짜야」
타이치「싫어, 듣고 싶지 않아!」
신카와「진짜로 여동생 같은 거야. 같이 살고 있고」
동거!?
같은 침대!?
이성의 따스함!!??
타이치「이, 이봐, 그 시츄에이션에는 분명히 누군가의 엄청난 의지가 개입하고 있을 거야」
신카와「……또 야리꾸리한 착각하고 있냐―」
신카와「그 녀석 집에 내가 얹혀살고 있는 거야」
신카와「그러니까 뭐, 남매 같은 거지」
신카와「이번에 아주 이쪽으로 이사했어. 내 다리 문제도 있지만, 그 녀석도 조금 그거라 말야」
타이치「아아……」
그런 일인가.
한번에 납득.
그래서 둘 다 군죠에 다니는 건가.
타이치「어라, 그러면 자넨 동생양을 위해 따라서 전학 온 건가?」
신카와「그렇게 되는 건가. 아니, 나도 뭐 장애자긴 하니까」
신카와「그리고 친동생은 아닌데요……」
타이치「다정한 오빠구먼, 이봐」
신카와「저기, 사촌동생 사정 때문에 따라온 것뿐인데요?」
타이치「선망을 받는다는 것은 그런 거야」
신카와「그런가~? 계속 같이 살면 말야, 생리적인 문제 같은 걸 다 아니까 좀 그렇다고?」
타이치「뭐가 그래?」
신카와「겉모습은 예쁠지도 모르겠지만, 단점이 군데군데 보이니까 별로 예쁘게 보이지 않는다고나 할까?」
신카와「먹는 건 먹고, 나오는 건―――」
타이치「아, 그 다음은 됐어. 꿈은 소중히 간직하고 싶으니까」
신카와「……네 꿈이 뭔데」
타이치「너하고 체인지를 해서 동생양과 으쌰으쌰를 하고 싶다는 것」
신카와「우왓―, 상상만 해도 기분 나쁘다」
타이치「현실적으론 무리지만……」
진짜로 기분 나빠하고 있다, 이 녀석.
에로소설 만세.
타이치「그럼 다음에라도 놀러 와」
신카와「알았어―, 사촌동생도 소개해 줄게」
타이치「진짜?」
나는 부들부들 떨었다.
신카와「……별로 예쁘진 않으니까……너무 기대는 하지 마라?」
별로 예쁘진 않다.
그렇게 말한 녀석의 눈이 썩은 동태 눈깔 수준이었단 건 나중에 밝혀지게 된다.

타이치「……자아」
원고가 있다.
이걸 다 채우려면 어떻게 공략해야 될까.
손이 움직이지 않는다.
펜도 움직이지 않는다.
정체.
타이치「음―음음음」
그래.
장롱 안에서 기모노를 꺼내 갈아입는다.
타이치「……문호 강림」
기분이 중요한 거니까.
그런 짓을 하는 참에.
토모키「어―이!」
현관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타이치「뭐냐?」
토모키「우왁……타이치?」
갑작스럽게 나타난 기모노 차림의 남자에 토모키는 깜짝 놀란 것 같았다.
토모키「엄청난 얼굴이다……」
타이치「좆까」
토모키「미안 착각. 엄청난 옷차림이다……」
타이치「진짜로 착각한 거냐 그건?」
토모키「재패니즈 기모노네」
타이치「재패니즈 평상복이기도 하지」
토모키「평상복이라……대단한데」
토모키「맨날 그런 차림이야?」
타이치「……」
타이치「물론이지」
토모키「대단하네」
토모키는 더욱 더 나를 존경하게 된 것 같았다.
실제로는 두 번째 입는 거지만.
타이치「그런데, 이런 야심한 밤에 무슨 일이냐」
토모키「아니……별로 야심하진 않은데……자, 네 거」
골판지 상자다.
받는다.
타이치「무겁네」
토모키「꽉 차 있으니까」
타이치「내용물은……어두워서 잘 안 보이네」
토모키「우리 부 지급품이야. 여름이고, 그냥 놔 두면 썩으니까」
타이치「먹는 거야?」
토모키「응」
타이치「땡큐」
토모키「뭐 이런 걸로」
토모키「우정은 대가를―――」
타이치「요구하지 않는다」

우리들은 실없이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마주세웠다.
타이치「쿠로스 타이치는 청춘 순정 보이ㆍ시마 토모키를 응원합니다」
토모키「이히」
토모키「아, 맞다」
얼굴이 굳어졌다.
토모키「키리하라가 쓰러졌어」
타이치「……뭐라꼬?」
토모키「정확하게는 쓰러져 있었어」
타이치「그 녀석은 하라키리권의 고수라, 내 가라데로도 쓰러뜨리는 건 쉽지 않을 텐데」
토모키「그렇게 쓰러졌단 게 아냐. 그리고 가라데는 왜 튀어 나오냐」
토모키「그래서 말야……지금은 사쿠라바가 보고 있긴 한데, 당연히 도움이 안 되니……하세쿠라 선배한테 부탁할 수 없을까 해서」
타이치「아아, 알았어」
토모키「바로 부탁해 줄래?」
타이치「알았어, 그럼 잠깐 다녀올게」
샌달을 신고, 그녀의 집으로 간다.
돌아와 보니, 토모키는 아직 있었다.
타이치「알았대. 지금 갔어」
토모키「……빠르닷」
토모키「네 말만은 잘 들어주네」
타이치「그러지 않으면 여러가지 에러가 일어나니까」
토모키「어?」
타이치「그보다, 내 방에 가서 98로 게임이나 하고 갈래?」
98 없지만.
타이치「넌 디스크 교환 담당」
토모키「98이 뭔데? 윈○우즈?」
타이치「거짓말이라 해 줘, 마이 프렌드」
토모키「……뭔 말인지 몰겄슈」
토모키의 개그는 이런 것뿐이다.
타이치「진짜로 98을 모르는 거냐?」
PC소년 주제에.
토모키「적어도 지금까지 들어본 적은 없는데」
타이치「……그래……아니, 나도 뭐 세대는 다르지만……」
타이치「하지만 토모키, 지금의 발언은 60~70년대 이후로 태어난 모든 PC 오타쿠들을 적으로 돌리는 발언이라고?」
토모키「아니……그래봤자 별로 안 무서운데……」
토모키「애초에 60년대에 태어난 원시인들한테까지 일일히 신경 쓸 이유는 없잖아」
타이치「으으으!?」
나는 공포로 떨었다.
타이치「그런 말 하면 안 돼애애~~!!」
토모키「왜?」
토모키는 전혀 무서운 걸 모르고 있다.
타이치「그, 그게 젊다는 거냐? 응? 무모한 젊음이란 정말로 무섭구나, 토모키여」
토모키「그치만 말야……그런 아저씨들은 자기네 커뮤니티에서 자기들이 좋아하는 건○ 얘기나 영원히 하게 놔 두면 되잖아?」
타이치「히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익!?」
수명이 줄었다.
그리고 떠올렸다.
작년 이 맘때.
처음 기모노를 입은 날, 유사가 놀러온 일을.

타이치「네네―」
타이치「누구신가요?」
유사「저, 저기, 도지마예요」
타이치「그 야쿠자 같은 무서운 성씨와는 반대로 큐트한 목소리는……유사? 열려있으니까 들어와」
문이 슬며시 열리고, 미소녀가 나타났다.
유사「안녕, 하세……요」
의자에 앉히고, 보리차를 꺼낸다.
여러가지 얘기를 했다.
유사「저기, 저 오늘이 생일이에요」
타이치「헤에, 그랬구나」
유사「그래서 말예요, 이거……생일 선물이에요」
타이치「으으음……일단, 고마워. 근데, 어라?」
유사「그리고, 교환일기를 내일까지 주셨으면 해서……」
타이치「그럼 우선 교환일기하고, 그리고 이건 내가 주는 생일 선물」
유사「…………」
이 아가씨는 놀라면 멍해지는 버릇이 있군.
타이치「자, 그럼 집까지 바래다 줄게」
유사「……………………히익!?」
방금 전의 배 정도로 멍해진다.
타이치「벌써 밤이고, 좀 위험한 사람들도 있으니까」
특히 이 동네에는.
타이치「갈까?」
유사「네, 넷」
그리고, 바래다 줬다.
유사「그 질문, 매번 하네요, 타이치 오빠?」
유사「어려워서 잘 모르겠지만……알았어요」
유사「강송합니다」
강송합니다.
강송.
강추?
아냐.
강습.
강습.
그래, 강습.
격렬하게 공격하는 행위.
아아.
나는 이 말이 좋다.
꿈 속에서 웃는다.
한없이.
조롱한다.
침울한 감정은 바로 심연 속에 삼켜진다.
냉소적인 허무로 이루어진 겉모습이 벗겨지고, 환히 드러난 조각들이……거대한 모체를 이루어 나를 비웃는다.
사고는 하나.
적은 적.
죽이면 죽는다.

똥땅똥땅
똥땅똥땅
오늘 아침도 옥상에서는 정력적인 부활동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타이치「이봐―――!!」
미사토「네, 넷!?」
내가 일갈하자 사다리 위에서 선배가
풀썩
하고 떨어졌다.
미사토「아야야얏」
타이치「호랑이도 굴뚝에서 씨가 된다더니」
미사토「그, 그런 속담 없어요」
타이치「헤이, 미스 부상자, 하와이워즈 잇 나우?」
의미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이런 건 감성이니까.
미사토「읏」
타이치「그것도 내가 없는 시간대에」
미사토「벼, 별로 몰래 하려고 한 건……그냥 아무래도 신경이 쓰여서요. 오늘 아침엔 5시에 일어나기도 했고」
변명이 잘 떠오르지 않는 듯, 선배는 몸짓 발짓으로 그렇게 설명햇다.
타이치「……배신자」
미사토「아, 아니에요」
타이치「아―아, 미사토 선배는 무정하구나―」
미사토「아아, 그러니까……」
미사토「네, 제가 졌어요. 미안해요」
양손을 들었다.
타이치「오전 7시 50분, 현행범 체포」
미사토「네에♪」
양손을 앞에 내민다.
그 손목에.
찰칵
미사토「……헤?」
아, 저질렀다……그만.
미사토「뭐예요, 이거?」
타이치「수갑……」
미사토「장난감이죠?」
타이치「진짜……」
정적.
미사토「어, 어어어어어떻게 진짜 수갑을 가지고 있는 거예요?」
타이치「파, 파파파파출소에서 사람은 없고 바닥에는 수갑이 떨어져 있길래 가져와버렸는데……」
미사토「뭐야……후후, 정말, 어쩔 수 없네요♪」

타이치「아하하, 미안해―요」
미소 둘.
미사토「열쇠는?」
타이치「아아, 열쇠 말입니까……음……열쇠는 어디 있을까요?」
미소가 딱딱해졌다.
미사토「으―음」
미사토「아하하―」
웃었다.
미사토「미안해요, 페케군. 방금, '열쇠는 어디 있을까요'란 말을 들어버렸네요」
타이치「그렇게 말했으니까요」
무표정이 되었다.
미사토「지금, 당신은 저한테 폭행당해도 할 말이 없는 입장이 되었습니다」
타이치「무, 물론 OK입니다!」
공격당한다.
타이치「후꺅」
미사토「어째서……당신은 그렇게 경솔한 짓을……」
타이치「저, 그만 조건반사로……」
미사토「이런 건 열쇠가 없으면 못 풀잖아요―?」
타이치「뭐뭐. 열쇠를 찾으면 되잖아요, 그쵸?」
미사토「……그 파출소에 있나요?」
타이치「물론이죠. 오늘 가는 길에 찾아 올게요」
미사토「지금 당장 가세요. 알았죠?」
우둑우둑우둑…….
타이치「네엥……당장」
W 아이언 크로가 작열하는 상황에서,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타이치「그치만 제가 올 때까지는 얌전히 있으세요」
미사토「이래서야 옷도 못 갈아입잖아요」
타이치「우선 교실에 있는 건 어떨까요?」
미사토「그러죠……」
함께 옥상에서 내려갔다.
미사토「아무한테도 안 들켜야 할 텐데요……」
타이치「왜요?」
미사토「연행당하는 것처럼 보이잖아요」
타이치「굳이 말하자면 플레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미사토「플레이?」
타이치「3층이죠, 선배 교실?」
미사토「아, 저기예요」
그 때 미키가 나타났다.
미키「하이염!」
미사토「핫!?」
당황하며 손목을 숨기려고 한 선배, 그러나 실수였다.
손목을 가리고 있던 타올이 팔랑 떨어졌다.
가만히 있었으면 됐을 것을.
미키「……」
미키「체, 체포당했다……」
미사토「아니에요, 이건 장난이에요」
미키「……」
미키「저기, 선배」
손을 들었다.
타이치「뭔가, 야마노베 순경」
미키「넵, 오늘은 양호실이 비어 있는 것 같습니다!」
경례하면서, 플레이할 장소를 소개해 주었다.
우우, 좋은 녀석…….
미사토「?」
둔한 선배는 이해 못 했다.
타이치「이야, 고맙네. 자네는 어떤가?」
미키「네, 죄송하지만 전 아직은 처녀이고 싶습니다」
타이치「그거 유감이군. 그럼」
미키「근무 수고하세요―」
꾸벅 고개를 숙여, 우리들을 배웅한다.
미사토「지금 대화, 잘 이해가 안 됐어요」
타이치「알면 안 돼요」
미사토「???」
타이치「그럼」
역 앞.
이라곤 해도, 쬐끄만 곳이다.
번잡하지 않은 건 다행.
파출소는……바로 근처에 있다.
순찰중이란 표지가 걸려 있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열쇠는 바로 발견되었다.
이것도 도둑질이려나?
당연하지.
게다가 경찰물품.
경범죄왕ㆍ아르센 타이치, 최후의 범죄.
타이치「있다」
빨리 돌아가야지.
역 앞에는 인기척이 없다.
원래 주택가와 도회와의 연결 장소에 지나지 않는 이 역은, 사람들의 왕래도 적다.
삭막한 아스팔트 광장에서 희미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다.
차도 전혀 안 보인다.
그래서 길 한가운데로 걷고 있다.
타이치「……」
혼내는 사람은 없다.
어떻게 된 걸까.
예를 들자면, 이런 세계는 어떨까.
어떤 범죄를 저질러도 아무도 비난하지 않고, 또 비난받지도 않는다.
무법 세계.
하지만 여기에 있는 건 나뿐이다.
나만의 세상에서, 어떤 범죄가 존재할까.
없다.
사람과의 접점이 없다면, 대부분의 죄는 의미를 잃어버린다.
이상적이다.
이상 사회라 할 수 있다.
객체라는 것. 집단을 버린다는 것.
그것을 위해 필요한 능력이란 무엇일까?
또, 그에 알맞는 정신 구조는?
인간에게는 여러가지 욕망이 있다.
물을 마시고 싶다는 등의 욕구와는 다른 차원에서 그것은 존재한다.
욕망이란 뭘까.
출세욕.
지식욕.
창작욕.
정복욕.
그것들은 다른 사람에 대해 느끼거나, 또는 다른 사람에 의해 그 가치가 정해지는 것.
욕망이라는 것은 타인의 동의를 얻고 싶다는 감정일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보다 많은 재산을 가지고 싶다.
다른 사람보다 많은 지식을 가지고 싶다.
다른 사람보다 출세하고 싶다.
전제되는 것은 다른 사람.
많은 사람이 가치가 있다고 인정하는 것을 획득하는 것에 욕망의 근원이 있다.
그 뚜렷한 형태 중 하나가 돈이다.
마땅한 이용 목적이 없더라도, 사람은 그것을 원한다.
인간이 욕망과 함께 살 때, 이미 다른 사람의 의식과 가치관에 의해 형성된 세상에 물들게 되고, 또 그 안에서 인격은 형성되어 간다.
그럼 객체라면.
욕망은 어떻게 변질될까?
아니, 다른 사람이 없어진 순간, 욕망은 그 정의를 잃고 욕구로 변화된다.
경쟁자가 없는 레이스는 경주가 되지 못하고, 그러므로 달리는 속도는 필요가 없어진다.
나 혼자만의 세계에서, 지식을 더 쌓고 싶어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보는 사람이 없는 예술을, 그들은 계속 만들 수 있을까?
누구를 정복한다는 것인가?
그래.
혼자가 되면, 사람은 변질된다.
그럴 수밖에 없다.
솟아나는 패배의 감정도, 나쁜 것이 아니게 된다.
죄도 죄가 아닌 세계에서는.
이『눈』은, 그것을 위해 하늘이 내린 능력이라 생각한다.
뒤를 돌아본다.
타이치「……언제까지 뒤를 밟을 작정이야?」
인기척이 없는 광장에서, 목소리는 잘 울려퍼진다.
타이치「볼일이 있는 거 아냐?」
기다린다.
하지만 대답은 없다.
타이치「쳇」
그렇게 내뱉고, 학교 방면으로 걸어나갔다.
일일히 상대해 줄 수는 없다.
인기척은 계속 따라왔다.
걱정해 주는 건 고맙다.
하지만, 그러나.
타이치「난 머리카락이 희니까, 일사병 같은 건 안 걸려!」
어머니에 대한 반항심은 이런 걸지도 모른다.
고맙긴 하지만, 짜증이 느껴지는.
학교 앞까지 와서, 나는 겨우 숨을 돌렸다.
인기척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타이치「……아― 제길, 살 떨려」
매양 겪는 일이지만, 언제나 소름이 끼친다.
저 존재감에는.
타이치「마물입니까」
그것에 가까울지도.
그런 것한테 사랑받는 것도 큰일이다.
드르르르르르르르륵
밥벌레다.
야수같다.
밥짐승이라 하는 건 어떨까.
타이치「먹을 거 냄새가 나……」
휘청휘청, 내 발은 식당을 향했다.

타이치「오―, 비었다」
줄 수가 적다.
항상 열 명 정도 있는데, 오늘은 두 명이다.
더워서 다들 정신적으로 약해진 탓인지 결석이 많다.
그래서 식당도 왠지 모르게 한산했다.
덕분에 경쟁률이 높은 메뉴도 쉽게 얻을 수 있었다.
아니……실은 모종의 커넥션을 쓰기만 하면, 뭐든 간단히 얻을 수 있지만.
하지만 그것은 쓰면 안 된다.
금단의 오의인 것이다.
양날의 검이기도 하고.
아―그건 그렇고, 유사는 참 귀엽다니깐.
B정식 식권을 사서, 카운터로 들고 간다.
목소리「어머 너! 이런 데서 뭐하는 거야!」(98폰)
타이치「우와아아앗!?」
나왔다!
목소리「인사 좋네, 크흐흐」
그렇게 말한 그녀는 판타지 물에 흔히 나오는, 동굴 안쪽에서 늘어지게 술판을 벌이고 있는 이상하게 거대한 도적단 보스(가끔 출입구보다 더 큰 경우도 있다. 개그냐?) 같은 걸쭉한 목소리로 웃었다.
무서웠다.
타이치「놀래키지 마요, 아줌마. 이런 연약한 범생한테」
아줌마「네가 범생은 무슨 얼어죽을. 농담도 좀 작작 해라!」(118폰)
덜컹, 하고 고함이 식당 안에 울려퍼진다.
강화 유리가 부르르 떨렸다(말도 안 돼).
무지하게 주목받고 있는 나.
타이치「……목소리가 커요, 아줌마」
아줌마「보통으로 얘기하고 있는데 왜 그럴까. 여기 애들도 참 이상하다니까!」(94폰)
아줌마「너도 괜히 신경쓰지 마!」(115폰)
타이치「!?」
위험을 느끼고, 한 발 물러섰다.
거대한, 괴이하다고 해도 좋을 손바닥이 휘익하고 눈 앞을 베어갈랐다.
타이치(방금 그건)(스킨쉽?)(직격했다면……)(사망!?)
그만 츠츠이 ○타카의 나나세 시리즈에서 사용된 듯한 심리 표현법을 써버렸다.
뭐랄까 나나세하고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아냐).
아줌마「역시 빠르구나, 넌! 크흐흐」
아줌마「밥 먹으러 온 거지?」
타이치「네, 네엡」
사자에게 먹이를 주는 듯한 기분으로, 식권을 내민다.
아줌마「유사가 늘 신세를 지고 있으니까, 서비스해 줄게」
타이치「하하하, 감사합니다, 하하하」
그래.
이 분이 바로 궁극미소녀ㆍ유사의 친모이시다.
즉 그녀도 몇십 년 뒤에는 이런―――
마망「왜 그래? 휘청거리고」
타이치「쏘리, 그만 현기증이」
마망「그거 안되겠네. 피가 부족해서 그래」
어머님께선 결정하셨다.
마망「자, S정식」
타이치「S도 있었나요?」
마망「널 위해서 만들었지!」(118폰)
식당 안에 울려퍼지는 큰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쑥덕쑥덕…….
쑥덕거림을 받았다.
타이치「……감사합니다만 어머님……」
마망「어머 어머님이라니 그거 기쁘네!」
밥이 두 배로 늘어났다.
마망「있잖아, 너, 우리 딸하곤 어때?」
타이치「핫, 어떻냐고 하신다면?」
마망「잘 길들인 것 같던데!」
타이치「콜록콜록!」
마망「사위라. 좋지. 크흐흐」
타이치「사위!?」
사위라!?
타이치「아니, 잠깐만 기다리세요 어머님!」
마망「괜찮아, 걱정은 필요없어!」
돈까스가 두 개가 되었다.
이것은……뇌물! 떡값입니까?
쑥덕쑥덕…….
타이치「아와와와왓」
씹히고 있다!
나, 지금 겁나게 씹히고 있다!
마망「너도 여러가지로 바쁘겠지만, 어려운 건 생각하지 마」
마망「전부 나한테 맡겨 둬」
건더기는 얇은 미역밖에 없어야 할 된장국에, 왜인지 게가 통째로 들어가 있었다.
쑥덕쑥덕쑥덕쑥덕…….
목소리「……뇌물 증여……」
목소리「낙하산 인사……」
목소리「……내부 거래가」
목소리「뭔가 비합법적인……」
목소리「……신사참배 문제의 당사자……」
타이치「으헉!」
위험하다.
쿠로스 타이치의 체면이 걸린 문제.
돈까스는 네 개가 되었다.
타이치「너무 많아요!」
마망「응? 뭐야, 이 정돈 먹어야지, 남자니까!」
오키나와의 산호를 잡아먹는 가시면류관 불가사리 같은 손으로, 쿠웅―하고 어깨를 두드렸다.
체중의 두 배 정도의 중량감이 나를 바닥으로 밀었다.
타이치「크아아아아악!」
무릎을 꿇는다.
마망「어머 실례! 카하하! 역시 많이 먹어야겠네. 그리고 더 살쪄야 돼!」
타이치「으으으」
유사……빨리 집을 나오지 않으면 돼지가 되어버릴 거야.
보통 사람의 5배 이상의 음식을 가지고, 적당한 곳에 앉는다.
토모키「여전히 막강한 커넥션이네」
C런치 트레이를 든 토모키가 옆에 앉는다.
타이치「토모키 선생이로군」
토모키「뺏어먹고 싶다」
타이치「드셈」
토모키「진짜?」
타이치「이렇게 많이 못 먹어」
토모키「그럼 감사히」
돈까스를 가져갔다.
토모키「아까 사쿠라바하고 빵 먹었는데 좀 부족해서」
타이치「전 운동부라 이거냐」
토모키「운동은 이제 안 하지만 말야」
타이치「근육은 있는 것만으로도 지방을 소모시켜. 그러니까 근육 있는 녀석은 연비가 나쁘지」
토모키「헤에. 그럼 근육 없는 게 좋다는 겨?」
타이치「그건 아니지. 여분 지방을 못 쓰는 체질이 되어버리니까, 적당한 운동은 해 두는 편이 좋아」
토모키「그렇군」
타이치「사쿠라바는 또 카레빵?」
토모키「일곱 개 정도 먹었어」
타이치「우겍」
토모키「여기 식당 업자의 빵이 마이 페이버릿ㆍ카레빵이라면서」
타이치「바보」
토모키「바보지」
먹는다.
타이치「젠장, 먹어도 먹어도 안 없어져!」
토모키「……먹어 줄까?」
타이치「드셈」
토모키「야, 된장국에 게가 들어 있어!」
타이치「……들어 있지」
토모키「무슨 커넥션이냐……」
타이치「세계 최강의 서브 미션, 마스 홀드(사위 굳히기)」
토모키「저 아줌마 딸이란 애하고?」
타이치「그렇다」
토모키「역시, 엄마하고 닮았어?」
타이치「아니, 무쟈게 귀여운 안경 소녀. 나를 잘 따라. 내 말은 전부 믿고, 이뻐 죽겠어」
토모키「뭐야, 문제없잖아」
타이치「아니……」
타이치「스위스 은행에 계좌를 가져야 될 정도의 어그레시브하고 위험한 쟙에 종사하게 될 나는, 역시 위험한 직종에 종사하게 될 소녀와 냥냥해버릴 수는 없는 거야」
토모키「어디서 잠꼬대가 들리네」
토모키「아, 맞다 타이치, 적응계수시험 어땠어?」
타이치「그럭저럭」
보리차를 컵에 따라 벌컥벌컥 마신다.
타이치「졸라 높음. 위험합니다. 담임도 공포에 질려 있던데」
토모키「얼만데?」
타이치「……84%」
토모키「우왓, 그게 편차치였으면 얼마나 좋았겠냐」
타이치「그러게 말이다. 젠장할. 나, 위험해질지도 모르겠다」
토모키「연구동에서 해부당할지도 몰라」
타이치「헬프 미」
달라붙는다.
토모키「무리야……17%인 나하고는 사는 세계가 달라」
타이치「잠깐 이봐! 어째서 그런 정상인 같은 수친데!」
토모키「……그야, 난 외장이니까」
타이치「아, 그런가……」
타이치「너무 바보라서 낮은 건가 했어」
토모키「네가 그런 말 할 처지냐!」
타이치「아―, 라바(사쿠라바의 별명)도 낮겠지?」
토모키「그 녀석 15라는데」
타이치「그 녀석, 내장이었지? 왜 그 정도 수치인데 군죠로 온 거야?」
토모키「아니, 그 녀석 고입 원서에 군죠를 썼대」
우리들은 얼굴을 마주보았다.
두 사람「하아아아앗!?」
타이치「……이해가 안 돼」
토모키「……동감」
타이치「이 나라도 참 겁나게 얼렁뚱땅이란 말야」
타이치「아, 그보다 너, 빨랑 누나랑 화해해」
타이치「내가 다 불편해 죽겠다」
토모키「그건 누나……누님이 배신했으니까……」
이 녀석 지금『누나』라고 하지 않았나?
……뭐 어때.
타이치「미야스미 선배가?」
토모키와 미미 선배는 남매다.
성씨는 다르지만.
토모키「방송부에 들어간 것도 거의 억지였어. 귀가부나 할려고 했더니, '넌 PC소년이니까 도와 줘'라고 하는데 나참」
토모키「PC소년이니까 도와 달라는 논리야. 어떠냐?」
타이치「에휴휴」
타이치「뭐 어때. 어차피 귀가부 비슷한 거잖아」
토모키「뭐어……어쨌든 농구부도 없으니까―, 여기」
타이치「뛰지도 못하는 놈이」
토모키「뭐얏―」
타이치「포기해. 시끄러운 선배 따윈 없으니까 오히려 마음 편한 거지 뭐」
토모키「귀가부였으면 실컷 만화나 읽으려고 했는데」
토모키「왜 이제 와서 누님하고 사이 좋게 부활동을 해야 되는 건데」
타이치「……시스콤 주제에」
토모키「지금 뭐랬냐?」
타이치「아무 말도―」
그것은 1년 전의 추억이었다.

그런 연유로, 부활동하는 중.
이 부품은 어떻게 해야 되지?
여긴가?
아니면 여긴가?
타이치「……」
여기로 하자. 왠지 삘이 온다.
미사토「뭔지 알겠어요―?」
타이치「뭐―, 일단은요」
밑에서는 선배가 사다리를 받쳐주고 있다.
미사토「남자가 있으니까 믿음직스럽네요―」
타이치「그렇죠 뭐」
타이치「분부가 있으시다면 언제라도 저를……」
아니 잠깐.
이 사람, 남동생 있잖아.
타이치「……저기, 토모키하고 싸우고 있죠?」
선배의 얼굴이 흐려진다.
미사토「아―, 뭐어……」
미사토「조금 냉전 중」
타이치「토모키도 싸우긴 싸우는구나」
미사토「에?」
타이치「그 녀석, 진짜로 화낸 적이 거의 없으니까요」
선배는 그 말에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미사토「……당연한 건지도 모르죠」
타이치「네?」
미사토「인생은 어려워요. '에잇 빌어먹을'이란 느낌이에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토모키『……배신당할 걸』
타이치「저기, 배신이란 게 뭐예요?」
선배의 미간이 찌푸러졌다.
미사토「토모키가 그런 말을 했나요?」
타이치「네」
미사토「……」
타이치「선배?」
미사토「……음―음―」
선배는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음―음―하고 신음소리를 냈다.
타이치「저기?」
미사토「무슨 말 하는 거예요―정말―!」
사다리를 덜컹덜컹 흔든다.
타이치「와와와왓!?」
미사토「웃기지도 않아요―!!」
타이치「저 떨어져요―!!」
불안한 부활동이었다.

나나카「얏호―, 타잇짱―!」
타이치「어라?」
수수께끼의 자전거 소녀다.
타이치「수수께끼의 자전거 소녀다」
생각한 걸 그대로 말해버렸다.
나나카「생각한 걸 그대로 말하지 말도록」
들켰다.
타이치「이상하단 말야―, 이 여자. 정체도 모르겠고. 본 적도 없는 교복에」
나나카「……갑자기 정색하면서 생각한 걸 그대로 말로 옮기지 말도록」
타이치「나나카란 이름도 진짠지 가짠지」
나나키「……쫀쫀하긴. 그런 거 가지고 일일히 따지지 마」
타이치「무슨 학교 다녀?」
나나카「비미일」
타이치「아, 그려」
무시하고 성큼성큼 걸어나간다.
나나카「오, 하드보일디~」
타이치「걸으면서도 얘기할 순 있잖아」
나나카「뭐 그렇지」
타이치「근데, 오늘은 또 왜?」
나나카「물론 볼일이 있어서지」
휙 손가락질.
나나카「후딱 안테나 만들어!」
타이치「하앙?」
타이치「안테나라니, 미사토 선배가 만드는 그거?」
나나카「그래, 그거」
나나카「이대론 조금 늦는단 말야」
타이치「뭐에?」
나나카「기한에」
타이치「무슨?」
나나카「너 말야―!」
타이치「뭐, 뭐야뭐야」
갑자기 화내고 그래.
나나카「매번 매번이 소중한 인생이잖아! 그런데 괜히 들떠가지고는 매일 매일을 쓸데없이 보내버리고, 그러는 사이에 네 존재 자체가 고정 행동으로 굳어져버린단 말야!
가능성이란 건 그런 성질이 있어! 윈○우즈도 안 지워지는 캐시 메모리 때문에 껐다 켜도 에러가 계속 날 때가 있는 것처럼 말야! 게다가 지금은―――」
갑자기 깜짝 놀라며, 입을 다무는 나나카.
타이치「……노이로제냐 이 자슥아?」
나나카「이런 큐티한 소녀한테 이 자슥이 뭐야!」
찰싹―!
타이치「우오홋」
싸대기를 맞았다.
고속으로 회전함과 동시에 비스듬히 튀어올라, 수평해진 상태로 땅바닥에 들이받았다.
타이치「……으……으흐……으브」
이 여자, 설마 코믹 역장을 발생시킬 수 있었을 줄은.
※코믹 역장=타이치과학. 스칼라 전자학과 에테르 우주론, 승등기관 등과 대등한 초과학 이론 중 하나. 모든 물리 현상이 가속됨과 동시에 완화된다.
그 결과, 통상 물리학으로는 설명 불가능한 코미컬한 효과를 발생시킨다. 통계적으로 지기 싫어하는 아동적 객체에 붙어서, 그 캐릭성을 유지하기 위해 작용한다.
나나카「앗……미안……」
타이치「대단한 힘이다……천하를 노릴 수 있는……」
나나카「여자를 그렇게 놀리지 마!」
일으켜 세워졌다.
타이치「아, 아파요……」
나나카「……미안해」
타이치「천하를 노릴 수 있다는 건, 단순한 완력이 아니라 캐릭성을 말한 거였어」
나나카「?」
타이치「네 과학력 덕분에, 그 정도의 공격을 당해도 살아남을 수 있었어」
나나카「뭔 말인지……」
타이치「하지만 좀 더 힘을 줬어도 괜찮을 텐데. 회전이 걸린 채로 대기권까지 간다던가. 뭐 평범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극단적인 방향으로만 가는 것도 되레 꼴사나우니까, 적절하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말야.
요컨데 왕도를 향해 항상 반발적인 입장을 유지하는 행위는 자기과시욕구에 지배당한 순간에 나타난다는 거지」
나나카「네놈은 나하고 대화할 생각이 있는 거냐?」
타이치「……죄송합니다」
저도 뭔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나나카「어쩔 수 없는 녀석」
기가 막힌지, 한숨을 쉬었다.
나나카「아, 뺨에 피」
타이치「어? 역장에서 조금 비껴갔나?」
나나카「아직도 그 역장 타령이냐」
타이치「내 피는 괜찮아」
나나카「……응?」
타이치「아니, 내가 피에 좀 약해서」
그 때 나나카의 얼굴에 깃든 표정을, 나는 잘 표현할 수 없었다.
울 것 같기도 하고, 웃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렇다곤 해도, 가벼워 보이지는 않는 깊은 갈등이 들어 있었다.
나나카「……타이치」
약간 잠긴 목소리가 목소리가 입술에서 새어나옴과 동시에.
그녀의 얼굴이 다가왔다.
젖은 눈동자와 함께.
인간의 의식활동이란 굉장한 것이다.
평범한 만화 주인공이라면,
(어……?)
등의 반응을 보이며 이후에 일어날 사건을 예측하지 못한 채 당황하는 게 고작인데.
현실의 인간인 나의 뇌는『KISS당한다!?』라는 상황상 너무나 뻔한 결말을 쉽게 예측할 수 있는 것이다.
나나카의 얼굴이 5센티 가까이 다가왔을 때는 이미 키스 후에『얼마나 당황한 척을 해야 하나』라는 체면치레 문제에 대해 면밀히 검토하는 중이었다.
……실제로 이런 반응이 더 리얼하지만 세상의 이야기에 거의 나오지 않는 이유는, 너무 리얼해서 이야기성과 잘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란 것을 아마추어인 나도 알 수 있었다.
리얼리티 장난인 것이다, 결국.
내심으로 고개를 붕붕 끄덕였다.
음 근데, KISS는 아직?
낼름
타이치「……」
요염함도 에로도 없는 KISS였다.
혀를 뺨에 대고 핥는 행위를 KISS라고 할 수 있다면.
나나카「침 발라두면 아물겠지 뭐」
타이치「으아아아아아아」
주먹으로 옆머리를 때린다, 때린다, 때린다!!
타이치「고상한 사색의 결말이 김치국이냐! 이 자식, 이 자식! 이런 수치를!」
나나카「자기가 자기를!?」
타이치「뭐가 리얼리티냐! 뭐가 키스냐! 머리 좋은 척 하지 마 나 자식아! 오히려 네가 인간 이하라는 걸 국제적으로 증명당했잖냐!」
나나카「지, 진정해―……」
타이치「죽고 싶어」
나나카「이봐이봐」
타이치「이른바 또 하나의 나란 놈이 쓰레기란 걸 항상 자각하고 있어야 돼」
나나카「……엥?」
타이치「유해한 쓰레기」
타이치「군죠에는 식물인간도 잔뜩 있으니까」
타이치「난 언제나 무서웠어. 누군가를 상처입히지 않을까 하고」
타이치「위험이 있어도 피하지 못한다는 건 그 만큼 무식하다는 뜻이겠지?」
타이치「고양이가 차 앞에 뛰어드는 것처럼」
타이치「……자제해야 해. 항상 주의를 기울이고 있어」
타이치「하지만」
타이치「매일이 즐거워서, 그만 깜빡 잊어버려. 내가 누구인지를」
타이치「난―――」
나나카가 나를 안았다.
이번엔 정말로 허를 찔려서, 예측할 시간도 없었다.
타이치「어……?」
나나카「즐겁다고 말할 수 있다면, 뭐 상관없잖아」
작은 가슴의 부드러움.
소녀의 향기.
이상하게도, 야한 생각은 들지 않았다.
요코에게 안겼을 때의 감각과는 달랐다.
나나카「그 말을 들으니 기뻐. 정말로」
타이치「…………」
나나카「꼭 강해야만 살아갈 자격이 있는 건 아니잖아」
나나카「약한 채로도, 괜찮아」
타이치「약한 채로도……」
알고 있다.
그녀는 무언가를 알고 있다.
타이치「넌」
나나카「나나카」
타이치「나나카……」
모른다.
과거의 어떤 기억에도, 그 이름은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럼 어떻게 그녀는 나에 대해?
나나카「진정했어?」
타이치「……응」
몸을 떼어놓는다.
나나카는 생긋 웃고 있었다.
타이치「……넌」
타이치「날 좋아해?」
나나카「바보녀석」

뺨에 춉을 맞는다.
나나카「그런 게 아니라니깐」
부정하고 나서, 목을 살짝 기울이며 말을 이었다.
나나카「……그래도 뭐, 글―쎄다. 좋아하는 걸지도」
타이치「진짜로?」
나나카「네가 생각하는 '좋아한다'하고는 조금 의미가 다르지만 말야」
타이치「뭐야 그건」
나나카「넌 분명 꼬맹이 때 엄마한테 야한 장난쳤을 타입이야」
타이치「없었는걸 뭐」
나나카「나도야」
나나카「그래도 말야, 의외로 엄마도 그런 걸 꽤 좋아할지도 몰라?」
타이치「야한 장난을?」
나나카「응」
타이치「하지만 어린 아들한테 페딩당하면 쇼크……아니, 오히려 달아오르려나?」
나나카「화학 분해나 돼버려라 이 유해 쓰레기 자식」
타이치「으앙―!」
나나카「그럼, 가 볼까」
타이치「우리 집에 들렀다 가지. 미지근한 물 정도는 줄 수 있는데」
나나카「이히히, 야한 짓 당하고 싶지 않으니까 집에 갈래」
타이치「할게할게, 오면 해줄게」
나나카「위험해 위험해」
그녀는 훌쩍 자전거에 올라탔다.
등 뒤로 가 팬티를 보려고 하는 나.
진청색 부르마였다.
타이치「칫」
……잠깐, 부르마라고?
진정한 성희롱 체육복으로서 여성해방운동으로 인해 벌써 먼 옛날에 멸종했다는 그 부르마!?
타이치「나, 나나카씨……?」
나는 덜덜 떨었다.
소문에 의하면, 그 찰싹 달라붙은 히프는 절품이라고 한다.
나나카「안테나, 후딱후딱 만들어버려」
타이치「핫, 안테나?」
갑작스럽게.
나나카「그게 가능성이니까 말야」
체인이 시원한 소리를 내며 돌아간다.
타이어가 아스팔트를 가르며, 자전거가 달려나간다.
타이치「……뭘까나」

원고를 쓰고 있다.
타이치「히히히」
타이치「히히히히히!」
타이치「히잉―히히히히히!!(울고 있다)」
써지지가 않아―!
첫째날, 나의 재능에 넊을 잃어가며 썼던 때와는 정반대다.
여자「……케―군―……」
누군가가 나를 부른다.
창문으로 밖을 내다본다.
타이치「미미 선배?」
미사토「안녕하세요―」
타이치「무슨 일이에요―?」
미사토「어디 있어요―?」
타이치「2층 창문에서 보고 있어요―」
미사토「캄캄해서 안 보여요―」
타이치「여기선 잘 보여요―」
미사토「어떻게 된 일일까요―」
타이치「글쎄요―?」
미사토「페케군은 굉장히 밤눈이 좋나 보네요―」
타이치「야생동물이라 감각이 날카로워요―」
미사토「어쩐지 멋있네요―」
얘기하면서 휙휙 팔을 흔든다.
저래봬도 꽤 어리다니까.
타이치「그보다, 얼른 들어와요―」
미사토「네―에―」
미사토「아, 촛불♪」
타이치「집필 활동에는 분위기가 중요하니까요, 아가씨」
미사토「그렇군요―」
반듯이 정좌.
미사토「공부라도 하고 있었나요?」
타이치「아뇨, 원고요」
미사토「아아」
타이치「근데, 제 집에는 무슨 용무로?」
미사토「아, 페케군이 자주 도와줬으니까 밥이라도 해 주고 싶어서요」
보따리를 풀었다.
미사토「도시락이에요」
타이치「선배 만세」
미사토「두 사람 분 만들어 왔어요, 같이 어때요?」
타이치「마실 거 가져올게요」

타이치「맛있다」
타이치「선배 요리 잘 하네요」
미사토「그래요? 요리는 시작한 지 얼마 안 됐는데……」
타이치「뭐―, 저도 별로 음식 맛은 안 가리니까요」
미사토「아, 그 말은 좀 너무한데요……」
타이치「아―, 맛있네요. 음, 맛있어」
타이치「알맞게 익었네요. 직접 구웠어요?」
미사토「네. 물론」
타이치「……뭐랄까, 이런 도시락 먹는 거 오랜만이네요」
미사토「그런가요?」
타이치「저……엄마가 없으니까요」
미사토「어머……」
타이치「엄마를 그리워하는 걸지도 모르겠네요, 저」
미사토「페케군」
타이치「선배」
희미한 어둠 속에서 마주 보는 두 사람.
촛불의 가냘픈 불꽃이, 그녀의 이마를 붉은 다홍색으로 비췄다.


ㆍ迫る (몰아붙인다)


타이치「선배……」
미사토「왜요?」
타이치「절 위해서 이제부터 쭉 된장국을 끓여주지 않을래요?」
왜인지 난 프로포즈를 해버렸다.
미사토「엇」
선배는 당황한다
몸이 굽혀지고, 시선이 어긋난다.
작은 손이 입가로 항하며, 이마에 고민의 주름이 새겨졌다.
미사토「페케군……저……」
타이치「네」
미사토「된장국 못 끓여요」
타이치「이얏호―!」
창문에 대고 외쳤다.
조금 고전틱한 나이스 개그.


ㆍさらに迫る (더 몰아붙인다)


타이치「알겠습니다, 선배……그럼 말이죠, 대신에」
미사토「왜요?」
타이치「야한 짓, 해 본 적 있어요?」
미사토「맥락이 안 맞잖아요!」
타이치「선배가 정말 좋아요」
타이치「그……벚꽃이 흩날리는 입학식 날, 남동생이 죽고 나서 목표를 잃은 저를 구해 준 선배의 한 마디가」
미사토「안 속아요, 그런 얼렁뚱땅스러운 연애 오오라에는 안 속아요!」
미사토「애초에 남동생도 없잖아요!」
타이치「하얀 공에 모든 것을 걸었던 여름, 저는 그 녀석에게서 도망치기 위해 야구를 그만 둘 작정이었습니다」
미사토「아냐 아냐, 야구는 아니에요」
미사토「혹시 지금, 굉장히 야한 일 생각하고 있지 않나요?」
타이치「아니―」
타이치「식욕이 채워졌으니, 남은 게 성욕뿐이라」
미사토「이얏호―!」
선배는 창문에 대고 외쳤다.
미사토「그 이상 다가오면……혀 깨물고 죽어버릴거예요」
타이치「그, 그렇게 싫은 거예요―!?」
울 것 같다.
역시 인간은 외모.
백발의 추악 보이에겐 보통의 연애마저 용납되지 않는 것이다.
그래도 선배라면 열심히 빌면 하게 해 주지 않을까.
다시 한 번 해보자.


ㆍ迫る (몰아붙인다)


미사토「이, 일단 진정해요, 네?」
타이치「……안돼요. 남자가 여기까지 와서 물러날 순 없어요」
미사토「그렇게 말해도오~」
타이치「그 때」
미사토「……에?」
타이치「1학년 때, 내가 혼자였을 때」
타이치「선배가 나한테 말을 걸었었죠, 옥상에서」
미사토「그건……같은 곳에서 우연히 만나서……」
타이치「선배는, 나를 암흑에서 건져줬어요」
타이치「저, 원래는 방송부에 못 들어가던 거였죠?」
타이치「적응계수가 너무 높아서……」
타이치「그래도, 저한테 입부를 권했잖아요」
타이치「손도 써 줬고요. 제가 정식으로 입부할 수 있게」
미사토「……」
타이치「조사했으니까, 다 알아요」
미사토「그건……혼자서, 외로워 보였으니까……건전한……부활동을 통해서……아앗!」
타이치「움직이지 마요, 못 벗기잖아요」
미사토「벗기면 안돼요!」
타이치「벗길 거예요. 단호히」
미사토「아……안돼요, 이러지 마요……안돼」
타이치「사람에게 손을 뻗으면……그로써 관계가 만들어져요」
타이치「감사를 받거나, 호의가 생겨나면서」
타이치「그러니까 내가 선배하고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건……자연스런 일이에요」
미사토「그, 그치만 저……아……안된다니까요……」
타이치「그럼……절 거절할 건가요?」
타이치「저를 원래 있던 암흑 속으로 돌려놓으면 돼요」
타이치「그러면……저도 강요는 하지 않아요」
타이치「억지로 이어지려곤 안 하겠어요」
미사토「……그런 말은……치사해요……」
타이치「네, 치사해요」
타이치「치사해요……전」
어깨 끈을 벗긴다.
단추를 푼다.
미사토「아, 안됏」
손을 잡는다.
타이치「그럼……보기만」
미사토「보기, 만?」
타이치「보기만 할게요, 선배의 가슴을」
미사토「그런 건 당연히 안 되죠……」
단추를 풀어간다.
하나씩 하나씩.
타이치「당신이 나에게 접근했어요」
미사토「……안돼……안돼……안돼……」
타이치「보겠습니다」
블라우스를 벗긴다.
미사토「…………응」
브래지어 위에 손가락을 놓는다.
미사토「시, 싫어」
손가락을 안에 집어넣어, 슬쩍 위로 들어올린다.
하얀 살이 튀어나왔다.
두 개의 구체가 출렁인다.
미사토「으으으으으으~」
타이치「예쁘다」
자연스럽게 말이 나왔다.
타이치「예쁘네요」
잘 갖춰진 모양에, 봉긋하고, 하얀 가슴.
지나칠 정도로 매력적이다.
미사토「……보, 보기만……한다면서……」
타이치「그건 거짓말」
타이치「그러니까 아직 끝은 아니에요」
그런 말을 안 했더라도, 이런 걸 봐버리고 나서 참을 수 있을 리가 있나.
미사토「페케군……너무해……」
타이치「네, 너무해요」
타이치「선배는, 터무니없는 놈한테 말을 걸어버린 거예요」
미사토「이, 이런……불순한……짓을……정학……」
양손으로 만진다.
미사토「꺄……아……」
천천히 주무른다.
미사토「응……으응……읏……」
타이치「굉장한 중량감, 기분 좋아요」
손가락이 묻힌다.
다섯 손가락이 각자 파묻힌다.
피부와 피부가 밀착해, 어슴푸레한 미열을 교환한다.
미사토「……아……아아아……」
가볍게 흔들자, 기분 좋게 출렁출렁 흔들렸다.
손 끝이 성감대가 되어 그 기분을 전해준다.
척수를 경유해서 뇌를 자극하고, 또 같은 길을 되돌아가 허리 주변에서 뜨거운 안개로 변한다.
열정이 가득 차기 시작한다.
계속 주무른다.
열중한 상태로.
미사토「응……으으응……흐응……응……그렇게, 주물거리지 마요……」
아니, 난 계속 주무르고 싶다.
좀 더 주물럭거리고 싶었다.
미사토「아, 아파……아파요……핫, 하앙……으응……」
봉우리의 간격을 좁혀 본다.
골짜기가 착 소리와 함께 닫히고, 육감적인 어둠을 만들었다.
더욱 좁혀 본다.
미사토「……싫어……」
양쪽 유두가 찌그러져간다.
남자는 불가능한 행위.
흥분이 고조된다.
미사토「……으응, 응―……읏……흐응……」
선배의 숨결이 요염하다.
손바닥으로 더욱 푹 눌렀다.
납작하게 눌려진 유방. 하지만 평평하게는 되지 않는다.
그곳에 분명히 존재하는 감촉.
미사토「찌그러뜨리지 마요……」
쭉 잡아당겼다.
가슴을 꽉 움켜쥔 채로.
살이 늘어난다.
미사토「안돼, 끊어져, 끊어져버려요……」
조금 당황하며, 내 양손을 잡는 선배.
선배의 손등에 입을 맞추며, 손가락을 입으로 물어 떼어낸다.
미사토「아……페케군……」
타이치「안 끊어져요」
웃는다.
미사토「……정말……부끄러운 짓만, 잔뜩……전혀 로맨틱하지 않잖아요……」
강하게 주무른다.
유방은 주무르는 방향에 따라, 자유자재로 변형되었다.
미사토「우……장난감 같아……내 가슴……」
타이치「좋네요, 그거. 선배 가슴, 제가 가질게요」
타이치「제가 만지고 싶을 때 만질 수 있게」
미사토「그런……」
타이치「선배한텐 대신에 좋은 걸 줄게요」
미사토「?」
타이치「그치만, 그건 나중에」
이마에 입술을 맞췄다.
안경테를 입으로 문다. 벗긴다.
미사토「아……안돼……벗기지 마요」
타이치「왜요?」
미사토「안 보이는 거, 싫어요……」
그런가.
안경은 낀 채로 하자.
하고 있던 마사지를 계속한다.
미사토「우우우……언제까지 이런 걸~」
타이치「질릴 때까지」
평생 안 질릴 것 같지만.
뭉클뭉클, 요염하게 흔들리는 두 봉우리.
점차 그 살이 달아올라갔다.
타이치「따뜻하네요」
미사토「……………………」
타이치「내 손의 체온이 전해진 걸까, 아니면 선배의 가슴이 흥분해버린 걸까나」
미사토「제 가슴, 그렇게 안 야해요」
타이치「그치만 완전히 땀투성인데요, 아까 전부터」
미사토「싫어……부끄러워서……죽을 것 같아……」
그 말대로, 유방은 부끄러움으로 떨고 있었다.
미량의 땀이 피부를 얇게 적셔 광택을 낸다.
가볍게 감싸안아 살며시 흔들어 본다.
유두가 세차게 흔들린다.
파도에 흔들리는 돗단배처럼.
미사토「……싫어……흔들리는 거, 부끄러워요……」
사실, 이대로라면 계속 이렇게 놀기만 할 것 같다.
가슴을 주무른 것만으로도 사정하고 싶어지다니, 웃기는 얘기다.
타이치「잘먹겠습니다」
미사토「에, 뭐라고요?」
그렇게 속삭이고, 얼굴을 댔다.
새하얀 유방에 찰싹 달라붙었다.
미사토「아얏」
이빨로 살짝 물고, 입의 점막 전체로 꽉 누른다.
미사토「……응…………으읏……」
빤다.
미사토「읏……꺄앗!」
소리를 냈다.
미사토「그, 그만둬요……입으로……그런……히익……꺄아!」
구강을 모두 밀착시키고, 유두 전체를 집어 삼킨다.
침투성이로 만들어 간다.
미사토「싫어……안돼, 요……야해……야해」
살짝 깨물며, 육질을 맛본다.
미사토「으으으, 먹히고, 있어……내 가슴, 인데……」
그 말대로일지도 모른다.
유방이나 음부를 입으로 빨고 싶어하는 건 본능에 가까운 행위.
타이치「그러니까 '잘먹겠습니다'랬잖아요」
미사토「나, 페케군의……먹을 거……」
타이치「맛있네요」
유륜 주위를 그대로 입에 삼킨다.
미사토「으응!」
선배의 턱이 들린다.
하얀 목이 활처럼 졉혔다.
입 안의 사냥감을, 혀 끝으로 쿡쿡 찌른다.
미사토「으응, 핫, 으으으으응~!」
몸이 뒤틀린다.
간지러운지, 도망치려 한다.
놓치지 않는다.
혀를 돌기에 휘감았다.
미사토「흐으응, 응, 그러면, 안……돼요」
세게 빨면서, 입을 떼어간다.
미사토「빠, 빨리고 있어……빨리고, 나오고……」
풍만한 가슴이 입 안에서 나갈 때마다 빨려지는 면적은 적어졌다.
그 강한 흡입력은, 유두만을 노렸다.
미사토「앗, 으응, 아, 아앗!」
내 머리를 꼭 품는 선배.
반사적으로 내 머리를 끌어당긴다.
마치 좀 더 빨아주길 바라는 행위처럼도 보였다.
빠는 힘을 빼지 않은 채, 입을 떼어낸다.
미사토「으으읏!」
커다란 소리가 났다.
선배의 얼굴이, 부끄러움으로 물들어간다.
미사토「……싫어어, 죽고싶어……」
타이치「좀 더 죽여주게 해 드릴게요」
미사토「에……에에?」
나는 반대쪽 유방에도 같은 행위를 반복했다.
미사토「꺄, 으, 으응……아, 아파……뽑혀, 뽑혀요!」
미사토「꺄……안돼, 안돼, 안돼……흐앙, 그렇게 빨면……뽑혀버려요……」
미사토「앗, 응, 으응……하아, 응……저려……요……제, 가슴……이젠 감촉이 없어요……」
미사토「하으으으……또, 또 아까처럼……응!」
미사토「하읏, 너무 세요……그렇게 빨면……제 가슴, 모양이 변해버려요!」
실컷 굴리고, 빨고, 변형시킨다.
타이치「선배 가슴……벌써 끈적끈적하게 돼버렸네요?」
미사토「끈적끈적……너무, 해요……」
타이치「그치만 제 거잖아요」
미사토「페케군……거?」
타이치「내. 선배 가슴은 제 거예요」
미사토「……흑……그런……」
타이치「괜찮죠?」
미사토「…………」
유두를 깨문다.
타이치「대답은?」
미사토「꺅……네, 네에……」
타이치「제대로 말해보세요」
미사토「이건, 당신의 것입니다」
타이치「좀 더 분명하게」
미사토「제 가슴은, 페케군의 것입니다……」
타이치「참 잘했어요」
조금 순서가 뒤바뀌긴 했지만.
그녀의 입술을 빨았다.
미사토「아……」
내 코 끝이 안경에 닿는다.
신경쓰지 않고, 키스를 계속한다.
미사토「응……으응……」
부드러운 접촉.
몸의 힘이 풀려간다.
조금 키스의 강도를 늘린다.
혀를 내밀었다.
미사토「응……」
선배는 조금 놀란 것 같다.
미간이 찌푸려진다.
하지만.
체념하고, 입을 열었다.
혀를 밀어넣는다.
잇몸을 두드리고, 구강에 발을 디밀고, 선배의 혀를 묶었다.
납치하듯이 내 입으로 끌었다.
미사토「으으으으응, 응, 으응……」
어깨를 떨며 참는다.
침이 떨어지는 것도 신경쓰지 않고, 혀를 빨았다.
미사토「응……으흥, 응……으으응……」
놓는다.
혀가 스르륵 원상태로 돌아갔다.
타이치「안돼요, 혀 내밀어요, 선배」
미사토「싫어요, 이런 변태스러운……」
타이치「보통이에요」
미사토「정말로?」
타이치「이 정도는 다들 해요」
미사토「…………」
타이치「자, 내밀어요. 잔뜩 빨아줄게요」
미사토「……」
망설임.
재촉하듯이 턱을 들어올리자,
미사토「……네……에」
체념하고 혀를 내밀었다.
뻗뻗하게 뻗어진다.
빨았다.
미사토「응, 으응―……응, 꺄, 으응……」
뾰족하게 솟은 핑크빛 기관을, 나는 애무했다.
물기를 뱉어내자 두 사람의 타액이 혀 안쪽까지 흘러갔다.
마지막으로 가벼운 키스와 함께, 모든 타액을 저편으로 밀어넣었다.
미사토「흐응……」
타이치「기분 좋았어요?」
미사토「……네」
타이치「더 하고 싶어요?」
미사토「네, 좀 더……페케군하고……」
타이치「알았어요. 언제든지 해 줄게요」
타이치「그치만, 그건 다음으로 미뤄두죠」
미사토「……에?」
타이치「이번엔―――」
손가락을 하복부로 뻗었다.
치마자락을 살랑 쓰다듬으며 내려가 음부에 닿았다.
미사토「어, 어라?」
속옷을 안 입고 있다는 걸, 그녀는 겨우 깨달았다.
타이치「……키스하면서 벗겼어요. 눈치 못 챘어요?」
미사토「아, 그, 그런……」
타이치「으음……벌써 젖어 있네요」
검지의 제1관절이 쑥 들어갔다.
미사토「꺅!」
타이치「선배의 여기, 굉장히 쓸쓸해보여요」
미사토「……무, 무슨 말을……응, 안돼, 더 이상 들어가면……」
타이치「괜찮아요」
주체하기 힘든 감정의 파도.
선배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타이치「이번엔, 여기에 키스해줄게요」
미사토「아아아아아아……」
내 얼굴이 시야 아래쪽으로 내려가는 것을, 선배는 멍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
그리고―――
나는, 미미 선배를 눕혔다.
미사토「……응! 하아아……으읏!」
허리와 허리가 접착된 채로, 움직임이 멈춘다.
선배의 내부는 도톰하고 기분 좋은 출렁임을 가지고 있었다.
타이치「역시……선배야」
미사토「……으……?」
열린 입 안에서 애절한 신음소리가 새어나왔다.
타이치「아파요?」
미사토「……모르……겠어요」
미사토「굉장히……큰 게……들어온……그런 느낌만……」
타이치「선배……」
미사토「저……범해지네요, 처음으로……남자한테……」
그래.
반강제로, 범하고 있다.
내가 선배를.
엉덩이를 어루만진다.
이 안에, 내 것이 들어가 있다.
관능적인 상상.
미사토「앗, 안돼, 이제 안돼요, 더 이상 커지지 말아요……」
타이치「그치만 선배가」
혼자서 할 때엔 찾아오지 않는, 이상한 열정.
미사토「하, 하앙, 찌, 찢어질 것 같아요」
몇 번 움직여 본다.
한계를 넘어 커진 음경이 남김없이 질 속으로 삼켜졌다.
질퍽, 하는 소리가 날 정도로.
관능에 전율이 느껴진다.
정말로, 자칫 잘못했다간 몇 번 움직인 걸로 싸버릴 것 같다.
민감해져 있었다.
그건 선배도 같을까.
미사토「꺄아……아흥, 응, 응―, 응, 으으읏!」
같은 면적이 서로 마찰되고 있다면, 같은 정도로 느껴도 이상하지는 않다.
흥분상태를 지속시키기 위해, 난 느린 속도로 허리를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미사토「아―, 아아아, 응, 으으, 아아아……」
질퍽, 질퍽.
둥근 모양의 자극이 느껴진다.
이 강한 관능은, 선배에게는 다른 형태로 느껴지는 것 같았다.
미사토「……으응, 아, 아―……하앙, 하……」
미사토「큰 게, 너무 커서……」
의미를 알 수 없는 말.
무슨 말을 하고 싶은 지는, 몸의 반응으로 알 수 있다.
점점 강해지는 자극에, 가냘프게 떨리는 어깨와 등.
시트를 꽉 잡은 손가락.
몸 전체에 맺힌 땀방울.
타이치「어떤 느낌이에요?」
미사토「하아? 어떤, 느낌이라 해도……뭐랄까……비집고 들어오는 것 같아서……숨, 막혀요」
타이치「전 기분 좋아요, 미안하지만」
미사토「……기분, 좋아요?」
타이치「선배의 안, 뜨거워요」
미사토「……싫어요……」
고개를 돌렸다.
타이치「고개, 이쪽으로 돌려 봐요」
미사토「……?」
선배가 몸을 비틀자, 억지로 키스를 한다.
이마에 걸린 안경이 비뚤어졌다.
미사토「으흡」
동시에 허리를 깊숙히 집어넣었다.
미사토「아아……」
옅은 비명이, 두 사람의 입 안으로 사라진다.
타이치「갑니다, 선배」
이번엔 상하가 아닌 원 모양으로 움직인다.
미사토「앗……아앗……!」
꾹, 시트를 잡는다.
빙글빙글 돌린다.
질 안의 흐름에 따른 날카로운 자극이 내 음경을 감았다.
미사토「하, 하아, 하……앙, 으응……」
선배의 상체가 어느새 핑크빛이 되어 있었다.
미사토「아아, 그거, 그거―――」
미사토「으으으으으으읏!」
선배는 등을 뒤로 젖혔다.
그 순간 머리로 내 턱 부근을 꾸욱 민다. 강한 힘.
새로운 자극이 견딜 수 없었던 걸까?
상하좌우로 번갈아 가며 찔렀다.
미사토「아, 아앗, 아, 그런, 으응……응―!」
목에서 쥐어짜낸 탁한 오열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 음란한 신음소리는, 나를 더욱 더 흥분시킨다.
다시 빙글빙글 돌린다.
미사토「아―ㅅ!?」
어미가 꺾어진 다급한 비명소리.
그 소리에 맞춰, 비틀듯이 반대방향으로 돌린다.
미사토「꺄악, 싫어! 꺄아, 으, 으으, 앗」
미사토「하앙, 안돼……이제 안돼……」
굉장해, 선배…….
타이치「엄청나게 야한 몸」
미사토「아니에요, 이건……」
손등을 입에 대는 선배.
목소리를 감추기 위해.
나는 계속 움직인다.
젖은 점막이, 질퍽하면서 독특한 촉감을 가미하고 있었다.
천천히 움직이기만 해도 절정에 달할 수 있을 듯한 질이었다.
타이치「좋아요, 선배」
미사토「응, 응, 응, 으……으읏」
필사적으로 참고 있다.
……부수고 싶어진다.
깊숙히 삽입한 채로, 허리를 비틀었다.
미사토「으앗!?」
미사토「아…………안돼……그렇게, 꿈틀꿈틀하는 거, 안돼!」
귀여운 비명밖에 들리지 않는다.
미사토「안돼, 안돼, 안돼」
타이치「난 이게 좀 더 편한데요」
미사토「안돼애애애」
선배의 밑, 땀으로 시트는 흥건히 젖어 있었다.
미사토「으아앙, 앗, 앙……으응」
내가 가지 않기 위한 느슨한 움직임이, 선배에겐 적당한 자극이 된 것 같다.
타이치「……아」
얕은 위치에서, 섬세하게 왕복을 한다.
귀두만이 압박을 받았다.
이거라면 참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미사토「하, 하앙, 하, 하, 하앙, 하아앙, 으응, 앗」
섬세한 움직임은, 섬세한 비명을 가져왔다.
등 뒤에 새롭게 땀이 흐른다.
미사토「하, 하, 핫, 앗, 아, 앗, 아, 앗, 으응―!」
미사토「아, 안돼애애애애」
잠시 후, 선배는 허리를 꾹 눌러왔다.
타이치「……여기, 안돼요?」
미사토「안돼, 너무 느껴져, 안돼, 거기 안돼……떨어져서, 끌려갈 거 같아서……」
말을 잊어버린 듯한 선배의 표현이 묘하게 생생하다.
타이치「그래요」
미사토「으응……」
엉덩이를 품어안은 채로, 우리들은 또다시 키스를 했다.
목덜미를 흐르는 땀도, 혀로 닦아준다.
미사토「꺄……으응……」
타이치「선배의 땀, 좋은 냄새」
미사토「……거짓말, 이에요」
타이치「목덜미, 느껴져요?」
미사토「모르, 으응, 겠어요」
미사토「페케군, 손……」
타이치「네」
손을 모았다.
마주잡는다.
선배가 잡아당겨, 내 손등을 핥았다.
나도 선배의 어깨를 핥았다.
미사토「하앙」
그렇게 희롱한다.
두 사람의 허리 모양처럼, 가슴팍과 등도 밀착시킨다.
땀으로 젖은 몸은, 어렵지 않게 찰싹 달라붙었다.
타이치「미끈미끈……하네요」
미사토「……네」
미사토「저……」
타이치「네?」
미사토「움직여, 줘요」
미사토「……당신의 모습……몸으로 기억하고 싶어요」
이성이 사라진다.
타이치「선배!」
허리를 꺾었다.
접합부가 엉키고, 꼬였다.
미사토「하읏!」
전신의 점막과, 피부와 마음.
모든 것이 하나가 된 기분이 들었다.
비록 착각이라 해도.
점막의 착각이라 해도 상관없다.
움직인다.
페이스는 이제 신경쓰지 않는다.
솔직한 욕망의 속도.
미사토「하앙, 하아……괴, 굉장해……빨라, 빨라요……아아아―!」
산산히 흩뿌려진 욕망이 움직임에도 나타난다.
미사토「앗, 아, 앗, 앗, 아앗, 아아앗!」
미사토「부서져, 부서져, 거기가……!」
타이치「거기라뇨?」
움직이면서 묻는다.
미사토「……거기」
타이치「제대로 말해 보세요」
미사토「보……보○, 말예요……」
망설이면서도, 말하는 선배.
타이치「좀 더」
속도를 높인다.
미사토「꺄악, 안돼, 안돼안돼, 안돼애, 이제, 보○ 안돼, 이상해져……」
미사토「아앙, 앗, 아아아앙, 꺄아, 찢어질 것 같아~!」
귀를 깨문다.
미사토「꺄아악!
타이치「굉장히 느끼네요, 선배……」
미사토「이제, 온 몸이, 이상해……이상해질 것 같아……」
타이치「그걸로 됐어요」
이런 거겠지, 아마도.
미사토「아―, 앗, 응……응……뽑히면……안돼……」
쑤욱쑤욱, 질퍽질퍽.
점막의 소리가 난다.
미사토「……앗, 안돼, 뭔가, 하응, 으항, 뭔가, 올 것 같아……」
안경 밑에 눈물.
닦아주지 않는다.
선배의 마음과도 닮은 안타까움.
미사토「……아―, 아하아, 하……하, 하앙, 하앙, 으흥, 아아아아……」
잠시 후 의미가 있는 말도 사라졌다.
온몸으로 미미 선배를 꿰뚫는다.
미사토「아읏, 아으, 읏, 응……좋……아요……거기, 대단해」
비명이 갈라진다.
타이치「여기?」
미사토「아―, 거기이……아아아아아」
움찔.
사지가 떨린다.
마치 징조처럼.
미사토「아―, 하아, 하아, 하아, 저, 저……저……읏……읏」
선배는 몸동작 하나 안 했다.
그저 전신을 살짝 떨고 있었다.
손가락과 발가락으로 시트를 꽉 잡으며.
그렇게 버티며, 무언가를 견디고 있었다.
미사토「아아아아아……하, 하앙……아앗, 앗, 아아……아……」
세게 움직여도, 작게 신음할 뿐.
좌우운동과 원운동을 그만두고, 왕복운동으로 전환한다.
쾌락이 고조된다.
강한 수축에 눌려, 질벽이 음벽을 쓰다듬었다.
미사토「하앗, 아앗, 아……조, 좋아……녹아버려……나, 녹아, 버려……하아아아아……으으으응!」
속도를 높인다.
미사토「아아앗……아읏, 아, 핫……으으읏! 후아앗……앙, 히잉, 아아, 깊게 들어, 와……으응, 아, 응……대단해, 대단해…………아앗, 하아아」
미사토「……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경련.
미사토「하아아……아아……아아아……히, 이이이이…………」
신음소리는 이미 목소리가 아닌, 배 밑에서 억지로 밀어나오는 소리였다.
허리를 부딪히자, 하얀 엉덩이가 흔들렸다.
그 사이로, 축축한 소리가 쉴새없이 이어진다.
미사토「으……으아…………으아아아아아아아……이, 이런, 나!」
미사토「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아, 하앗, 하아아아…………아, 아앗, 히……아아아아앗!」
미사토「아…………」
중단된다.
그리고.
미사토「아,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모든 관절이 휘어지고, 전신이 굽어졌다.
나는 수축하는 질벽을 이용해, 긴 동작으로 쾌락을 발산시킨다.
천천히 달라붙은 질벽에서 음경을 뽑았다.
미사토「아아아앙……」
선배의 몸에, 내 물건을 댔다.
사정.
보통 때의 3배 정도 나온 것 같다.
그것은 큰 덩어리가 되어, 질질 늘어졌다.
미사토「아아……뜨거워……잔뜩……」
자신의 옅은 핑크빛 피부가 정액으로 더럽혀지는 광경을, 선배는 멍하게 보고 있었다.
정액의 덩어리를 손으로 잡는다.
눈 앞에 내밀고, 손으로 눌렀다.
펼친 다섯 손가락에 끈적끈적하게 휘감겼다.
미사토「정액……하얗네요……응……향기……남자의 향기……으응……」
입에 넣었다.
머리카락을 어루만진다.
미사토「응……좋은 기분……」
눈을 감았다.
타이치「……선배?」
벌써 가벼운 잠소리를 내고 있었다.
미사토「……응……」
1시간.
그녀가 자고 있던 시간이다.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미사토「……아……페케군?」
타이치「안녕하세요」
미사토「아……저, 자버렸네요……꺄」
전라인 자신의 모습을 보고 당황해, 시트로 몸을 가린다.
타이치「거의 기절하는 거 같던데요」
미사토「……싫어……」
부끄러워한다.
타이치「아파요?」
미사토「에……아뇨……얼얼하긴 한데……」
미사토「아……아직 뭔가 들어있는 느낌이……나요……」
타이치「닦아 놨어요」
미사토「어……닦아놔요?」
시트 안으로 시선을 떨궜다.
타이치「전부 깨끗해졌을 거예요」
미사토「으……부끄러워……」
타이치「그렇지 않아요」
타이치「예쁜 몸인데요 뭐」
미사토「……으으으~」
신음한다.
타이치「잠깐 기다려주세요」
밑으로 내려갔다 온다.
타이치「자요」
아이스바. 수제.
미사토「어라……」
미사토「잘먹겠습니다」
함께 먹는다.
미사토「……차갑다. 맛있다」
음.
화나지는 않은 것 같다.
미사토「……해버렸네요」
타이치「그렇네요」
미사토「이런 시기에……」
타이치「위기적 상황에 생존본능이 각성한 거예요」
미사토「……거짓말」
타이치「하하하」
타이치「저기 선배」
미사토「네?」
타이치「내일, 바다라도 갈까요?」
미사토「……바다?」
타이치「둘이서」
미사토「글쎄요」
부활동을 생각하는 걸까.
타이치「휴식도 필요해요」
미사토「……그렇겠네요」
미사토「그럼 내일은 휴일로 하고, 쌩―하고 다녀오죠」
미소.
선배는 이젠 후련해진 듯이 보였지만, 역시 어딘가에 망설임이 있었다.
아무리 해도 이어지지 않는다.
몸을 겹쳐봐도, 여전히.

즐거운 바다였다.
지금도 모두의 떠들썩한 모습이 생각난다.
토오코「꺄아아아악!? 어딜 잡는 거야!?」
타이치「수영복 팬티」
미사토「하세쿠라는……쿠로스군하고 어떤 관계일까요?」
타이치「음, 요코짱?」
토오코「요코짱!?」
미사토「요코짱!?」
미키「요코짱?」
토모키「요코짱!!」
미키「이번엔 야쿠자네요」
미사토「모, 몸은 싫어~」
소녀「저기, 실례합니다합니다합니다!!!!」
토오코「바―보」
유사「엣, 앗, 얏?」
미키「아, 아파~, 이마 아파~」
미사토「……투덜투덜투덜」
타이치「재밌긴 재밌잖냐」
즐거운 해수욕은 이걸로 끝.
미키의 얼굴에는 조금 흉터가 남은 것 같았다.
그래도 귀가 길 내내, 미키는 상쾌하기 그지없는 표정이었다.
다친 대신에, 무언가를 얻었다.
그런 표정이었다.
그 후, 미사토 선배는 방송부용 안테나 반입을 위해 학교로 돌아갔다.
아직 누나와 단절되지 않았던 토모키가 그것을 비꼬았다.
그 시스콤을, 당시 군죠 부속 중학교 3학년생이었던 미키가 놀렸다.
유사가 집단이라는 것에 대해 처음으로 살짝 마음을 열었다.
그런 바다였다.

교실에 얼굴을 내밀자, 토오코가 있었다.
나는 놀라서, 그 자리에 멈춰섰다.
타이치「……키리하라」
힘없는 시선이 마치 내 등 뒤를 바라보듯이 공허하게 떠 있었다.
토오코의 볼이 푹 패여 있었다.
안색도 나쁘다.
머리카락도 흐트러져 있다.
토오코의 생명의 등불은, 명확하게 희미해져 있었다.
관심없다는 듯 책상에 얼굴을 파묻었다.
토오코는 누구와도 접하지 않은 채, 죽어가고 있었다.
인류가 멸망한 이 세계에서.
그녀는 충격을 견딜 수 없었던 걸까.
누구나 마지막엔 혼자서 죽는다.
하지만, 죽기 전까지는 함께 살아가야 되는데.
나는 다가가 말을 걸었다.
가능한 한 다정하게.
그것이 위선이라 해도……상관없다.
나는 위선을 행하기 위해 있는 존재니까.
타이치「싫은 건 알겠지만, 내일부터 부활동 나와보지 않을래?」
토오코「……어?」
곤혹과 당황이 섞여, 그녀는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초췌한 그 얼굴이 주홍빛으로 빛나, 어쩐지 비장한 인상을 주었다.
타이치「응?」
책상에 물통과 샌드위치를 싼 꾸러미를 내밀었다.
해수욕에 싸갔다가 남은 음식이다.
1인분 정도는 있었다.
토오코가 그것을 가만히 바라본다.
타이치「천천히 먹어, 안 그럼 위가 아파지니까」
토오코「……식욕, 없어」
잠긴 목소리.
타이치「좋아 알았어, 어쨌든 먹어」
토오코「…………」
천천히 손이 뻗었다.
꾸러미를 풀고.
살짝 베어문다.
타이치「……천천히 먹어. 물도 있으니까」
토오코「…………읏」
입을 막았다.
타이치「아, 괜찮아?」
토오코「괜찮아, 괜찮다니까」
나를 떨쳐냈다.
행동은 가냘펐지만, 거부의 의사는 명확했다.
타이치「……키리하라」
거북한 공기.
토오코「이거, 가져갈게」
타이치「어?」
토오코「집에서 먹을 테니까」
타이치「그……래?」
토오코「……응」
토오코「고마워」
순순히 감사의 말을 한다.
타이치「나 있잖아……일요일, 부활동하려고 하는데」
타이치「괜찮으면 와 줘」
타이치「SOS 보낼 거야」
타이치「그렇게 멀리 갈 것 같진 않지만」
타이치「지역폭하고 대역폭 조정은 얼마든지 가능하니까」
타이치「그게 새로운 부활동이야」
타이치「……나쁘지 않지?」
토오코「……그래」
약간이나마, 토오코와의 악관계가 수복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타이치「……으―음」
밤에는 원고 집필.
좀처럼 진척되지 않는다.
흔해빠진 내용.
하지만, 일단은 써 두자.
타이치「재미가 부족한데」
그래.
선배한테 보여줄까.
깜빡하고 있었지만 오늘은 길일.
바로 집을 나왔다.
선배의 집 앞.
노크를 해 봤지만, 대답이 없다.
타이치「선배―!」
역시 반응이 없다.
타이치「당신의 타이치가 왔어요―!」
조―용
부재중인가.
타이치「……」
설마, 아직도 학교에?

타이치「우와―, 있다!」
미사토「왓, 페케군?」
타이치「너무 무리하잖아!」
미사토「미, 미안해요」
타이치「하아―」
역시나 안테나를 설치하고 있던 것 같다.
타이치「이렇게 어두운데 뭔 놈의 작업이에요」
미사토「신경이 쓰여서……안되나요?」
타이치「안돼요」
타이치「그렇게 한가하면, 제 원고나 봐 주세요」
미사토「어머, 벌써 다 썼어요?」
타이치「쓰는 중이에요. 그치만 의견이 듣고 싶어서」
미사토「아―, 그치만 이렇게 어두우니……못 읽겠네요」
타이치「그렇네요」
타이치「이제 됐으니까 집에나 가죠」
미사토「아, 그치만……조금만 더」
타이치「미미 선배……」
미사토「그치만~」
타이치「급하게 해 봐야 얻는 건 없어요」
미사토「……」
타이치「천천히 하면 되잖아요. 아닌가요?」
타이치「시간은 충분히 있으니까요」
타이치「그리고 서두르면……그 만큼 빨리 끝나버리잖아요」
타이치「선배, 그걸 견딜 수 있어요?」
미사토「……」
울 것 같은 표정.
등줄기가 싸늘해졌다.
순간, 내가 금기를 범했다는 걸 깨달았다.
미사토「……저, 도망치고 있는 걸까요?」
타이치「글쎄요」
미사토「그렇게, 보이나요?」
타이치「네」
타이치「작업에 몰두하는 걸로 도망치고 있어요」
안테나를 올려다 본다.
타이치「억지로 일을 만들고……일부러 천천히 진행시키면서」
미사토「……알고 있었나요」
타이치「그게 보통이라고 생각해요」
미사토「에?」
타이치「선배가 하고 있는 일은, 그렇게 이상한 게 아니에요」
타이치「누구든 무언가로부터 도망쳐 본 적이 없는 사람은 없어요」
타이치「하지만 선배처럼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건……괴로운 일이죠」
타이치「여유를 가져보세요」
미사토「…………」
타이치「선배는……30이 넘었죠?」
미사토「…………」
타이치「고도의 자해 증상」
무언의 긍정.
나는 그저, 말을 계속할 뿐이었다.
타이치「혼자서 작업하는 건 좋아요. 하지만 쫓기고 있는 마음상태라면……이대로 혼자서 계속하는 건 위험해요」
타이치「……여차할 때, 여기가 옥상이라는 것부터가 위험해요」
타이치「알았어요?」
미사토「알고, 있어요」
불쑥, 말한다.
타이치「엄청 걱정이에요」
선배는 안경을 벗었다.
눈물을 머금은 눈동자에, 손가락을 가져간다.
미사토「페케군한테 걱정받을 정도로……불안정했던 거군요, 저」
타이치「하하……그렇게 말씀하시면 좀 섭한데요」
미사토「아하하」
미사토「페케군한테 이런 말을 들을 준 몰랐어요」
눈물을 닦는다.
미사토「……고마워요」
타이치「아녜요」
미사토「그치만……모두 뿔뿔이 흩어져서……이대로 모두 사라져버릴 것 같았어요」
타이치「전 안 사라져요」
미사토「그치만, 페케군은 뭐랄까……동기가 불순」
들켰다.
타이치「잇힝」
미사토「그치만 어쩌면 저, 고집부리고 있던 걸지도 몰라요」
타이치「그런데 알고 보니 혼자가 아니었던 거 같은데요?」
미사토「네?」
타이치「이거」
방금 전, 급수탑 아래에서 주운 물건을 보여 준다.
미사토「봉투?」
타이치「예스」
타이치「근데 내용물은 카레빵」
미사토「…………아」
그 뜻을 눈치채고, 입가에 손을 가져간다.
타이치「그 녀석도 요즘 좀 우울한 일이 있는지 얼굴은 잘 안 보이지만」
타이치「그 바보, 자기 친구가 코너에 몰리는 건 가만히 보지 못하는 성격이니까요」
타이치「이런 맛대가리없는 카레빵이나 가져오고」
미사토「그래도 페케군, 기뻐 보여요」
타이치「먹을래요?」
선배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둘이서 카레빵을 먹었다.

타이치「……자아」
아직 기온도 그다지 높지 않은 오전.
혼자서 옥상에 왔다.
이른 아침이다.
오후쯤에는 선배도 오겠지.
타이치「그럼」
선배보다 빨리 작업에 들어가기로 했다.
우선 노가다부터.
무거운 짐을 옮기는 것만은, 나도 할 수 있었다.
…….
………….
…………………….
기재를 가지고 옥상에 왔다.
토모키와 만났다.
토모키「타이치……냐」
깜짝 놀란 것 같았다.
타이치「부활동하러 왔냐?」
토모키「……그래」
타이치「선배, 꽤 신경쓰고 있는 것 같아」
토모키「어……?」
타이치「꽤 스트레스가 쌓여 있던 것 같던데」
타이치「그건 집안일 때문이지?」
토모키「…………」
타이치「혼자서 무리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겠고」
토모키「무리라고 해도 말야……」
타이치「도피, 일려나?」
토모키「……」
날카로운 표정.
타이치「……뭐, 네가 알아서 할 문제겠지만……솔직히 네 손을 빌리지 못해서 좀 빡세긴 하다」
토모키「……그럼 타이치는 어째서 도와주는 거야」
타이치「그야, 그 외에 할 일도 없잖아」
타이치「그리고……이런 게 우리들에겐 중요하다고 생각해」
기재를 긴 테이블 위에 놓는다.
연결해야 한다.
타이치「제길―, 이걸 모르겠단 말야」
토모키「……뭐하는 건데」
타이치「아니, 이렇게 미리 작업을 해 놓으면 '페케군 대단하네요 감동이에요 젖어버렸어요 뽑뽀―'……뭐 이런 거지」
토모키「뽑뽀―는 또 뭐냐」
토모키「부활동이냐」
타이치「응응」
토모키는 바닥에 철푸덕 주저앉았다.
토모키「자」
타이치「오, 땡큐」
캔 쥬스.
별로 차갑진 않지만.
토모키「……타이치는, 왜 그렇게 열심이야?」
타이치「오, 진지한 질문 청춘 풍미」
토모키「뭐라는 겨」
타이치「졸라 재밌다, 그 개그」
토모키「……왜 부활동 하는 거야?」
타이치「나도 질문 하나, 괜찮을까?」
진지한 표정으로.
토모키「응?」
타이치「너하고……누나에 대한 건데, 괜찮아?」
토모키「…………」
타이치「진지한 질문이야」
토모키「……OK. 뭔데?」
타이치「음」
조금 주저하다가, 질문을 던졌다.
타이치「어째서 넌 관동 사람 주제에 이따금씩『~겨?』라던가『~유』등의 짝퉁 관서 사투리를 섞어 말해?」
토모키「누님하고 제일 관련없는 질문이야!!」
토모키「갈래……」
타이치「뭐―뭐―, 기다리게나. 로망은 하루로 완성되는 게 아니라네」
토모키「힘 빼줘서 고맙다 타이치군」
타이치「그렇게 열내지 마」
타이치「그러니까 그런 거야. 봐, 목적이 있어야 살아갈 보람이 생기는 거잖아?」
토모키「……보람이라」
토모키「뭐 일단 식량이 없으면 그런 것도 소용없겠지만」
타이치「그리고 이런 게 좀 부러웠었어」
토모키「이런 거라니?」
타이치「청춘 군상 그래피티」
타이치「무슨 맛이라고 생각해?」
토모키「그거 먹는 거야?」
토모키는 일어나서, 안테나 주변을 한 바퀴 돌았다.
토모키「그래서……그것뿐?」
타이치「할 일이 있다는 건 좋은 일이야」
토모키「……딴 일도 많잖아. 물자 탐색, 이라던가」
타이치「적어도 이 부활동에는 희망이 있어」
토모키「절망을 확인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르는데?」
타이치「절망을 확인한다는 희망이 있어」
토모키「……통 모르겠단 말야, 네 생각」
타이치「그―래―?」
토모키「어떻게 그렇게 즐거울 수 있을까」
타이치「헷헤」
토모키「진짜로 모르겠다」
토모키는 팔로 눈가를 비볐다.
토모키「내가 아는 건……이 안테나하고 모바일용 기재의 연결방법뿐」
타이치「당장 부탁해」
토모키「뭐야―, 좀 더 감동 좀 해 봐라―」
타이치「바보, 마음 속으로 울고 있다고. 통곡하고 있어. 눈물 젖은 두만강이란 말이다」
토모키「그렇게는 안 보이는데~」
타이치「남자끼리 부비적부비적거려도 썰렁할 뿐이잖냐, 그런 이벤트를 보고 싶으면 너네 누나를 데려와」
토모키「너무해―!」
타이치「자, 그렇게 정했으면 후딱 일해! 방송 예정일은 내일이니께」
토모키「예이예이」
토모키「그럼 기재, 조달해 올게」
토모키「……타이치?」
교내로 돌아가려던 발을 멈추는 토모키.
타이치「응?」
토모키「……난 분명히 누님하고 화해하라고 할 줄 알았어, 동생이라면 누님을 도와라, 뭐 이런 식으로」
타이치「아니, 남매싸움은 아주 평범한 인생인데 뭐. 내가 왜 말려」
토모키「……」
타이치「용건은 본좌를 도우라는 것뿐」
가슴을 편다.
토모키「……너도 참 거물이야」
타이치「적응계수 80을 오버한 오버로드니까요」
토모키「……그런 오버로드라도, 앞으로도 보통 친구로 대해 줄게」
토모키「그런 거, 별로 안 싫어하니까」
교내로 휙 사라졌다. 도망치듯이.
타이치「별로 안 싫어하니까……푸훗!」
그렇게 말한 토모키는, 순간적으로 인간의 한계 수준까지 얼굴이 빨개져 있었다.
타이치「쪽팔려할 거면 아예 말하질 말던가. 내참」
안테나를 올려다 본다.
타이치「그래도, 이걸로 조금은 진척되겠네」
즐거운 부활동 놀이.
소중한 추억으로 남을 수 있기를.
언젠가, 행복한 꿈을 꾸기 위해―――
꼭.
영원히.
고맙다고 생각하기 위해.
나는 싸우고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일요일.
옥상.
모든 준비가 끝났다.
……그럴 예정이었다.
안테나는 파괴되어 있었다.
타이치「……」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선배가 그렇게 열심히 만들었던 것이.
한순간에.
사고의 일부분이 감정에서 이탈한다.
냉정한 사고에 잠기기 위해.
누가 한 거지?
지금 세계에는 여덟 명밖에 없다.
여덟 명밖에, 없는데.
타이치「선배!」
미사토「…………」
그녀는 파괴된 첨탑 밑에 있었다.
타이치「선배?」
미사토「……」
돌아본다.
날카롭고 신경질적인 반응.
그 어깨를 잡으려 한 내 손이 허공을 가른다.
미사토「……페케, 군」
선배는 쥐어 짜내듯이 말했다.
가슴이 조였다.
나를 부르는 그 말에 담긴 마음이 살짝 엿보였기에.
토모키「타이치!」
토모키「어떻게 된 거야, 이거?」
사쿠라바「……」
두 사람이 함께 나타났다.
타이치「나도 모르겠어」
세 사람의 시선이, 선배에게 향한다.
미사토「……제가 그랬을 리가 없잖아요」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미사토「……자기가 만들고, 자기가 부수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잖아요?」
타이치「뭐」
그런 사람도 있었겠지만.
인류가 생존해 있었을 무렵엔.
잠깐?
선배 자신이 부쉈다?
가능성은 있을 지도.
토모키「……누님, 누님이 부순 거 아냐?」
미사토「에?」
토모키「안테나가 완성되면, 도피처가 사라지게 되니까」
토모키「다시 스스로 0으로 돌린 거지」
그래.
그 말도 일리가 있다.
특히 선배는. 군죠의 인간이니까.
토모키「도망치기 위해, 도망칠 길을 만든 거야」
미사토「잠깐 기다려. 아무리 그래도 그런……」
철문이 열린다.
대화가 멈춘다.
토오코「……?」
토오코였다.
토오코「……켁, 삼바보」
타이치「……」
토모키「……」
사쿠라바「……」
반응이 없는 걸 이상하게 느꼈는지, 토오코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타이치「왜 여기에?」
토오키「하세쿠라 선배가……할 말이 있다는 편지를……」
파괴된 안테나를 바라보았다.
토오코「망가진 거야?」
타이치「부서졌어」
타이치「……누군가에 의해」
토오코「부수다니……누가?」
토모키「뻔하지」
토모키「여기에 있는 누군가에 의해서야」
토오코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토오코「그런」
타이치「별로 유쾌한 이야기는 아니지」
미사토「그래요, 유쾌할 리가 없죠……내가 부쉈다니……말도 안 돼……」
미사토「절대로, 아니에요」
중얼중얼 혼잣말을 한다.
타이치「이 안테나는 원래 방송부 활동용이었지만……지금은 구원신호를 보내기 위해 쓸 예정이었어」
토오코「어, 그래?」
타이치「그렇죠, 선배?」
미사토「……에, 아, 그래요」
화제가 바뀌어, 조금 당황하는 선배.
미사토「그런 의도도 있었어요」
타이치「그게 선배의 부활동이었어」
타이치「꼭 도피라고만 할 순 없어. 목표가 있었으니까」
토모키「…………」
타이치「그러니까, 난 선배를 전혀 의심하지 않아요」
미사토「페케군」
타이치「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요」
미사토「……네」
토오코「잠깐, 왜 혼잡한 틈을 타서 귀를 만지는 건데!」
타이치「이러면 마음이 차분해져」
토오코「그런 건 연인 사이에서나 하는 거잖아!」
어깨를 으쓱인다.
타이치「후후후, 나와 선배는 이른바 영혼의 연인, 소울풀 러브러버―라네」
사쿠라바「……」
토모키「……」
미사토「……」
아무도 웃지 않았고, 태클도 없었다.
타이치「…………」
썰렁.
토오코에게 시선을 보낸다.
타이치(토오코)(토오코)(부탁해!)
토오코「……어? 뭐야? 윙크는 왜 하는 거야?」
토오코는 둔감했다.
타이치「이제 됐어!」
토오코「왜 화내는 건데……」
타이치「OK, 범인 수색은 이제 끝! 자 여러분, 이걸 후딱후딱 고쳐버린 다음에 SOS로 휴먼 드라마!」
미사토「……무리예요」
타이치「어째서!」
미사토「필요한 기재가 모두 불타 있었어요. 수리는 불가능해요」
타이치「불타다니……」
발 밑의 기재를 가리킨다.
미사토「가솔린 냄새가 나요. 그걸 뿌리고, 태운 것 같아요」
할 말이 없었다.
이렇게까지 철저하다니.
타이치「뭐, 뭐어 범인 같은 거 찾아봐야 어쩔 수 없잖아―요」
미사토「전」
미사토「범인이 누군지, 알고 싶어요」
타이치「네……?」
미사토「적어도 전 아니에요. 그렇다면, 당신들 중 누군가잖아요」
말이란 총알과 같다.
한 번 쏘아내면, 돌이킬 수 없다.
빗나가거나, 상처입거나.
미사토 선배의 그 말은, 너무도 간단하게 이해가 되었다.
미사토「당신들 중 누군가가 배신했어요」
상냥해야 할 안경 선배가 그렇게 말했다.
화낼 때도 있긴 있었지만.
굳이 고발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는데.
토모키「사람을……배신자라고 부르지 마!」
갑자기 토모키가 소리친다.
토모키「네가 배신이니 뭐니 하는 건―――」
사쿠라바가 움직인 순간, 토모키가 쓰러졌다.
사쿠라바「……」
때렸어?
사쿠라바가 토모키를?
타이치「어이어이어이어이」
전개를 따라갈 수가 없었다.
토모키「아야야, 뭐하는……」
사쿠라바「……왜 부쉈나」
그 말은, 토모키를 향한 말이었다.
토모키「……」
타이치「방금 뭐라고 했어?」
사쿠라바「왜 부숴야만 했나」
사쿠라바는 진지하게 말했다.
토모키「……무슨 말인데. 난 몰라」
사쿠라바「난 봤다」
사쿠라바「네가 안테나를 부수는 순간을, 봤다」
토모키「……」
미사토「토모키, 너……」
토모키「…………」
토모키의 입가가 부자연스럽게 일그러진 그 순간.
다시, 문이 열렸다.
그 소리는 날카롭게 정적에 균열을 새겼다.
키리와 미키였다.
그리고.
키리는 무장하고 있었다.
키리「움직이지 마!」
전원의 움직임이 멈춘다. 제지당했다.
키리가 손에 든 크로스보우, 그곳에 장전된 화살에 의해.
키리「움직이면 쏘겠습니다. 이건 장난감이 아닙니다」
그 말대로였다.
백 마스터사(社) 제품ㆍ맥스 포인트 크로스보우.
옵션으로 코킹(calking) 장치가 달려 있다.
저건 여성용인가.
그렇다곤 해도 수렵용 무기. 편안한 사용감에 살상력도 충분하다.
아마 누군가의 집에 있던 것일 것이다.
벼락부자가 많은 동네 안의 어느 집에서, 무방비하게.
타이치「……키리찡」
키리「쿠로스 타이치는 특히 움직이지 마!」
키리「제가 지금 당장이라도 죽여버리고 싶은 상대니까요, 당신은」
차갑게 웃는다.
타이치「…………어이어이」
토오코「잠깐,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영문을 모르겠는데?」
토오코「사쿠라도 좀 진정해」
발을 한 걸음 내디딘 토오코를, 왼쪽으로 열다섯 번 슬라이드한 보우의 끝이 가로막았다.
키리「움직이지 마세요」
토오코「잠깐! 난 아무 관계없잖아!」
키리「관계있어요」
전원에게 향해, 키리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키리「저희는 독립합니다」
독립?
사쿠라바「……그 말은?」
키리「카미사카시의 주택가 고개부터, 시청까지의 라인……그곳이 저희들의 영토입니다」
타이치「영토?」
키리「그곳에 있는 식료와 물, 의류와 그 외의 잡화류도 당연히 저희의 것이 됩니다」
토오코「독점하겠단 거야!?」
키리「그렇지는 않습니다」
키리「식료품 등의 가게는 제가 설정한 국경 반대측에도 존재하니까요」
키리「대충 7대 3 정도입니다」
키리「타당한 분할이에요」
타이치「타당하다는 건 알겠어. 하지만 이유는?」
내 물음에, 코웃음치는 키리.
키리「당신들을 신뢰할 수 없어서입니다」
토오코「……」
키리「호우난쵸의 건너편, 사카이 다리 건너편의 잡목림 속에……」
키리「시체가 있었습니다」
소리없는 충격이 주위를 감싼다.
타이치「시체……」
키리「노인의 시체였습니다. 자세한 건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간결한 설명으로 질문을 가로막고, 키리는 말을 이었다.
키리「범인은……이 안에 있다고 전 생각합니다」
타이치「뜬금없는 이야기네」
키리「당신이 가장 의심스러워!」
나에게 크로스보우가 향한다.
당장이라도 쏠 것 같다.
키리「전과가 있는 당신이……가장 유력한 용의자입니다!」
사쿠라바「전과……?」
전과, 라.
분명 맞는 말이지.
키리「다른 사람들에게도 가능성은 있습니다」
키리의 옆에서, 미키가 살짝 고개를 숙이고 있다.
말할 기색은 없다.
그저 빨리 끝나기를 바라고 있는 것 같았다.
타이치「아―, 너희들의 말은 잘 알았다」
타이치「하지만 우리들은 같은 그룹의 동료이자, 인류 최후의 생존자로서―――」
키리의 말이, 내 말을 가로막았다.
키리「동료라고 생각했던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옥상은 순간 싸늘해졌다.
토모키「뭐, 마침 잘 됐네」
매우 냉정한 말.
토모키「어차피, 뭘 하든 잘 될 리도 없고」
토모키「나도 이 인간들하고 사이좋게 지내고 싶었던 것도 아니고」
타이치「그래서, 안테나를 부쉈냐?」
토모키「뭐 그렇지」
토모키「누님이 도망치는 걸 용서할 수 없었어」
미사토「……」
토모키「사람의 도망칠 곳을 뺏고, 자기만 도망치다니」
토모키「다른 사람에게 엄격하다면, 자신한테도 엄격해야지」
담담한 말.
허물없이 말하는 것처럼도 들렸다.
토모키「독립. 뭐 괜찮네, 사쿠라」
키리「……당신들은 신뢰할 수 없어요」
사쿠라바「그걸로 괜찮나, 모두?」
미사토「……」
토오코「……」
토모키「……」
미키「……」
타이치「……」
일곱 명의 일상.
잃어버렸던 것.
우정의 잔해에 지나지 않았던 그것도 지금, 완전히 부서졌다.
결렬. 또는 단절.
그것은 처음부터 존재해 왔고, 다만 보이지 않았던 것뿐이다.
각자, 친구의 연기를 하고 있던 것뿐이다.
아니다.
이런 걸 꿈꾸어왔던 건 아니다.
내가 희미하게 기대해 왔던 건.
아니다.
이런 게 아니다.
단절이 아니다.
평범한 부활동만으로도 괜찮았다.
어디서 잘못된 걸까.
애초에 모든 것이 크게 잘못되어 있었다고도 생각된다.
나라는 존재.
군죠라는 학교.
카미사카라는 마을.
타자키 상점이란 잡화점.
세계라는 전능한 존재.
타이치「다 미쳤어」
나는 살짝 중얼거렸다.
검은 실루엣에 지배된 시야.
그림자들이 말다툼을 하고 있다.
끝내고 싶다.
모두 끝내고 싶다.
잔해마저 남지 않은 지금조차, 참기 어려운 고통이었다.
사람이 멸망하고, 사람들 사이의 마찰이 없어질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은 어떤가.
여덟 명이다.
단 여덟 명이서.
싸우고, 서로 미워하는 건가.
그런가.
나는 진실을 알았다.
깨달았다.
혼자가 아니면 안 된다.
복수여선 안 된다.
객체가 아니면, 인간은 그저 인간일 뿐.
객체.
객체.
객체.
객체가 되려면?
현기증이 왔다.
미키「……죽여, 저 녀석을 죽여!」
미키가 외친다. 이제 아무래도 상관없다.
키리「미키?」
미키「빨리, 빨리 저 녀석을!」
미키「지금 죽여야 돼!」
……아무래도 상관없다. 서로 죽이면 된다.
맘대로 해 봐.
내가 뭘 꿈꿨더라.
그래, 따스한 세상.
따스한 세상이었어.
나 같은 인간 쓰레기도 살아갈 수 있는, 사랑이 넘치는 세상.
그 실현.
……어떻게?
뻔하지.
움직이는 것을.
이 눈으로.
세계에는 동(動)과 정(靜)뿐이다.
동을 정으로 만든다.
그런 생각을, 분명히 하고 있었다.
깨닫지 못한 척 하며 살아왔던 건지도 모른다.
*「*******」
누군가의 목소리.
알아들을 수 없다.
*「****!」
누군지조차 알 수 없다.
뒤를 돌아 보자.
푸욱, 하고 몸이 찔리는 느낌이 들었다.
타이치「……음」
그런가. 하고 생각했다.
묘하게 납득해버렸다.
내 가슴을 꿰뚫는 한 발의 화살.
그런가.
그런가 그런가.
아마 난 움직여버렸을 것이다.
그리고 키리가 날 쏘았다.
참 간단하다.
**「*******!?」
누굴까.
누가 걱정해 주고 있는 걸까?
선배일까.
토오코일까.
미키일까.
사쿠라바나 토모키라면……좀 슬픈데.
미안. 나 죽는다.
도원의 맹세……못 지키겠다…….
뭐, 애초에 깨졌었지만.
하하하.
하하하하.
웃고 싶어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가슴 부근에서, 뭉클한 압박감이 느껴진다.
가슴팍을 보자, 내가 토한 피가 발 밑을 흥건히 적시고 있었다.
이거 큰일인데.
위험해, 진짜로 죽겠다.
죽고 싶지 않은데.
무지하게 살고 싶다고.
야한 짓도 잔뜩 하고 싶고, TV도 보고 싶고, 연재 만화 결말도 보고 싶고.
싫은데, 죽는 건.
아―, 그치만 난 영 어덜트 후보생이니까 어떤 기적의 힘으로 소생할지도 모르겠다.
내 시체에 미소녀가 달라붙어 눈물을 떨어뜨리면, 그 물방울이 닿은 순간 팟―하고 밝게 빛나며 금세 되살아나는 것이다.
감동이네.
그럼, 일단 죽기 전에 뭔가 개그나 남겨주고 갈까.
남자로서 그것은 멋진 일.
말도 안 나오고, 몸도 거의 안 움직이니……그렇게 화려한 건 할 수 없다.
근데, 글고보니 암 것도 못하자너.
우와―, 이대로 죽는 거냐! 싫어―!
아무나 내 머리에 쟁반을 떨어뜨려 줘―!
나에게 웃음을, 웃음을 줘!
우왓, 피가 심한데!
아까보다 퍼졌다. 주위가 완전히 피투성이다.
인간 하나한테서 이렇게 피가 흐르다니……대단한데.
새빨갛다.
색을 분간할 수 있다는 건, 내가 나라는 뜻.
간신히『돌아왔다』는 건가.
음.
좋은 일이다.
갑자기 목 윗부분의 감각이 돌아왔다.
일시적인 현상이겠지.
쇼크상태에서 각 부위의 근육이 회복되고 있었다.
……그렇다곤 해도, 그렇게 오래 가진 않겠지.
벌써 의식이 어질어질하다.
호흡도 부자연스럽게 얕고 약하다.
고통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올려다본 그곳.
붉은색은 한없이 퍼져 있었다.
……내가 그럴 줄 알았지.
그 순간, 나는 죽었다.

가장 오래된 기억은.
언제인지도 가물가물한, 뿌연 안개 속.
귀족적인 기품이 담긴 호화로운 개인실.
그곳에는 호화로운 침대도, 유럽제 의자도 있었다.
하지만 바닥에 앉는 것이 가장 좋았다.
이런 날에는 특히 더.
창으로 보이는 별이 반짝이는 검은 장막.
점점이 흩어진 반짝거림에 눈길을 빼앗긴다.
바깥 세계와 실내를 가르는 창에, 나의 모습이 비친다.
귀족의 아가씨―――
서양식 드레스로 몸을 덮은 청초한 소녀.
당신은 도대체 누구입니까?
소녀「……타이치」
투명하게 빛나는……은발.
허리에 닿을 정도로 길게 늘어진 그 머리칼이 부드럽게 살랑인다.
얼굴은 작다. 마치 인형 같은 몸.
『천사 같은 모습이네』
누구였더라, 그런 말을 한 건.
사모님이던가, 언니들이었던가.
온화한 목소리가 귀에 아른거린다.
태어나고 나서 10년 무렵까지의 기억은, 어쩐지 흐릿하고 황홀한 느낌이다.
『이리 와, 같이 놀자』
거부했던 적은 없었다.
소녀의 옷, 소녀의 몸가짐, 소녀의 말씨.
저택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그 우아한 주인들의, 고상하다고도 유치하다고도 할 수 없는 인형놀이는 지루하진 했지만 불쾌하진 않았다.
그런 이유였다고 생각한다.
창에 비쳐진 내 모습이, 항상 소녀의 모습이었던 건.
그래, 단 하나 기억하고 있는 게 있다. 확실하게.
많은 수의 어린 소녀들 사이에, 단 한 명 웃지 않는 소녀가 있었다.
그녀만이 나와 논 적이 없었다.
소녀의 모습으로 차를 마실 상대를 찾는『나』의 몸은 언제나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었고,
넓은 뜰을 혼자서 산책하는 그녀는, 그런 나를 경멸하듯이 힐끗 쳐다보곤 했다.
흑요석을 떠올리게 하는 맑은 검은색 눈동자로.
동요.
그 시선을 받으면, 언제나 마음이 혼란해졌다.
기쁨 때문일까, 수치 때문일까.
또는 둘 다 이유일까.
거의 동요해 본 경험이 없는 나에게, 그 제어 불가능한 감정의 폭주는 견디기 힘들었다.
그래도 겉으로는, 태연하게 부인들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내 역할은 완수해야만 한다.
역할……인형의 흉내를 내는 일.
살아가기 위해.
그 인형 시절, 그녀와 대화해 본 적은 없었다.
단 한 번도.
넓은 뜰에 초연히 서 있는 그 소녀의 모습만이 강하게 인상에 남아 있었다.
나중에 알았다.
그녀 또한 돈으로 팔려 온 인형이었다는 것을.
싸늘한 공기가 휘몰아친다.
차가워진 복도의 바깥 공기다.
뒤를 돌아보자, 소리없이 열린 문 옆에.
그녀가 서 있었다.
고고한 공주―――
하지만 어떻게 된 일일까.
눈 앞에 있는 소녀는 지저분했다.
아니.
더럽혀져 있었다. 악랄하게.
찢어진 옷. 하얀 피부에 새겨진 찰과상.
입술 끝에는 거무스름한 핏자국.
빙글
시야가 요동친다.
우스꽝스럽긴 했지만 행복했던 인형 시절.
나와 그녀가 동거했던 적은 없다.
기억이 혼란스럽다.
그래……그러니까……그녀가 여기에 있다는 건…….
소란스러운 사모님과 아가씨들. 젊은 하인들.
설탕 과자처럼 달콤한 나날들은, 기억 속에서 빠르게 흘러갔다.
모든 풍경은 색채를 잃고, 칙칙한 회색으로 변해간다.
그녀가 문을 열고 내 방으로 온 시점.
그것은 인형 시절이 아니다.
좀 더 뒤…….
우리들 두 사람에게, 단 하나의 방밖에 주어지지 않았던 시절.
무대는 천국에서 지옥으로.
정신을 차리자, 주위의 가구들은 사라지고 회색의 벽이 나타났다.
침대는 낡아지고.
시트는 더러워지고.
조명은 꼬마전구.
바닥은 갈라진 나무판자.
아름다운 실크 커텐은, 걸레와도 같은 꼴로 변해버렸다.
괴롭고, 무겁고, 비열하게, 너무나 빠르게 지나간 인생의 좁은 길목.
그 같은 처지가 서로 말도 하지 않았던 두 사람을 연결했다.
소녀「타이치」
나의 이름이다.
사모님들은 이 남자 같은 이름에서 한 글자를 빼고, 대신에 여자아이의 이름에 어울리는 한 글자를 붙인 이름으로 나를 불러왔었다.
이치히메.
고상한 이름.
하지만 그녀가 나를 그렇게 부른 적은 없다.
타이치「뭐 마실래?」
내 말에 반응하지 않고, 그녀는 나와의 거리를 좁혔다.
그리고 아주 자연스럽게, 나를 침대에 넘어뜨렸다.
소녀「……」
몸이 닿을 정도로 가깝다.
둘 사이에는 침묵이 감돈다.
호흡이 멈출 것 같았다.
달콤한 향기.
항수도 비누도 아니다.
소녀 자신의 체취.
그 향기는 구토감을 느끼게 하는 악취 속에서, 모든 것을 지우면서 피어올랐다.
부드러운 꽃잎을 닮은 입술이, 다정한 목소리를 냈다.
소녀「매일이 괴로워?」
조금 생각하고, 정직하게 대답했다.
타이치「응」
소녀「아파?」
타이치「아파」
소녀「아무도 안 도와줘?」
타이치「응. 친절한 사람들, 이젠 없으니까」
소녀「아냐. 옛날부터 없었어」
갑자기, 그녀는 차갑게 말했다.
괴로움도 적의도 없다.
그저 차가울 뿐.
타이치「그치만 옛날 주인님들은」
소녀「그들은 약한 존재일 뿐이야」
타이치「……」
소녀「좁은 마음에 여유가 있으면, 친절하게 보일 때도 있겠지」
소녀「하지만 자기가 괴로워지면 바로 도망쳐」
소녀「……소중한 장난감도 내버려두고」
양손이 내 어깨에 얹혀진다.
강하게 붙잡힌다.
소녀「우리 편은 없어. 아무도 도와주지 않아. 우리 스스로 우리들을 지켜야 해」
타이치「……」
그래.
슬프지만.
그것이 진실이다.
약한 어린아이는 먹히기 쉽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검은 욕망이 세상에는 존재한다.
나도 그녀도, 그것을 알고 있다.
힘없는 우리들은, 지혜로 스스로를 지킬 수밖에 없다.
법률상으로『그들』이 우리들의 보호자이기 때문에.
하지만 그 보호자가, 가해자라 한다면?
저항할 수 없다.
넓은 저택과 토지.
그 안에서 무엇을 하는지, 그들의 행위가 밖에 새어나갈 일은 없다.
우리들은―――
'노예'이다.
하얀 손이 내 뺨을 쓰다듬는다.
얼굴이 접근했다.
조금 가슴이 두근거렸다.
하지만 그녀는, 진지한 표정으로 한쪽 뺨을 쓰다듬었다.
소녀「……담배불로 지졌어?」
타이치「조금」
타이치「그래도 미리 크림 발랐으니까 괜찮아」
스스로의 지혜로, 스스로를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
소녀「미안해」
타이치「응?」
소녀「도와주지 못해서」
당황했다.
타이치「됐어, 너야말로……」
그 다음 말은 할 수 없었다.
남자인 나보다 여자인 그녀 쪽이, 훨씬 더 괴로울 것이다.
꼭 안겼다.
타이치「왜 그래?」
소녀「타이치……타이치」
목소리가 떨렸다.
드문 일이다. 언제나 냉정한 그녀가.
소녀「타이치……」
내 귓볼에 바싹 다가온 입술. 귀에 따스한 숨결이 느껴진다.
등골이 순간 오싹거렸다.
허리 주위가 불끈 뜨거워진다.
타이치「!?」
그 부분을 갑작스럽게 압박당했다.
손이다.
한 손으로 누르고 있다.
딱딱한 손바닥이, 위에서 강하게 누르고 있었다.
견디지 못하고 몸을 비틀었다.
소녀「타이치, 우리들은 약해」
검디 검은 눈동자에서 나오는 빛.
거기에 위압당해, 대답조차 할 수 없었다.
소녀「그러니까 손을 잡아야 해」
타이치「손을?」
소녀「일심동체가 되는 거야」
타이치「일심동체……」
소녀「그렇게 되면, 조금 괴롭더라도 참을 수 있으니까」
소녀「난 타이치, 타이치는 나」
입술이 말을 자아내면서 조용히 내려왔다.
타이치「아……」
당황과 혼란, 약간의 부끄러움.
그런 것이 뒤섞여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소녀「타이……치……」
달콤한 타액이 구강으로 흘러오며.
얼어붙어 있던 나를 녹였다.
입술을 떼고, 그녀는 상의를 벗었다.
숨을 삼킨다.
티없이 맑은 달빛의 피부도.
고귀한 가녀림도.
어렴풋하게 비치는 빛에 의해 은빛으로 변한 머리칼에 잠긴, 살아 있는 여신처럼 보이는 신비한 몸도.
모두, 수많은 상처들에 의해 능욕당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그것을,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소녀「난 타이치, 타이치는 나」
계속되는 그 말이, 선명하게 기억에 새겨진다.
아름답게 빛나는 눈동자가 떨렸다.
소녀「미안해……」
소녀「나 말고는 아무도 못 믿으니까」
섬세한 손 끝이, 내 가슴에 닿았다.
가슴팍을 간지럽히는 감각과 함께, 상반신이 벗겨졌다.
타이치「요……코……」
그녀의 이름.
힘겹게 말을 꺼냈다.
애무가 시작됐다.
옅은 분홍빛 꽃잎이, 얇은 내 가슴팍을 지나간다.
타이치「으……」
깃털로 간지럼피는 듯한 감촉에, 저항할 수도 없이 근육이 움찔거렸다.
입술이 지나간 뒤, 투명한 타액이 가느다란 길을 남겼다.
그녀의 머리는, 점차 내려갔다.
이윽고, 내 치마 속으로 들어갔다.
그녀의 손 끝이 내 속옷을 벗기고, 발목까지 내렸다.
타이치「……」
나는 말없이 한쪽 팔로 눈을 가렸다.
이런 때엔, 어떻게 반응해야 되지?
무슨 소리를 내야 되지?
모르겠어.
단지, 뜨거워.
가랑이 사이에 그녀의 입술이 닿았다.
타이치「읏」
몸이 물고기처럼 철퍽였다.
강한 열기를 내뿜으며, 그녀의 입은 내 가랑이 사이에 타액을 흩뿌려간다.
요코「응……」
이곳저곳, 축축하게.
요코「핫……하읏……으읍……」
욕정의 숨결이, 치마 속을 열기로 가득 채워간다.
거기에 호응해 전신이 열을 낸다.
타이치「뜨거워……」
요코「으응, 흐응……으읍……응……」
하반신을 세차게 애무당하며, 서서히 힘이 빠진다.
쾌락에 몸을 맡기고 싶었다.
움직이는 것도 귀찮았기에.
요코「……읍……으흡……응……」
고양이가 물을 홀짝이는 소리와도 닮은 소리가.
파도를 이루어 상반신에 도달하는 저린 감각이.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계속 이어졌다.
잠시 후 하반신에서 북받쳐오르는 관능이, 문득 중단되었다.
타이치「어……?」
몸 감각은 이성의 제어를 벗어난 지 오래 되었다.
하지만 한 곳, 아플 정도로 민감해진 기관이 있었다.
세차게 뛰는 혈액이, 나에게도 느껴진다.
어른들이 강제적으로 가하는 감각과는 다르다.
차갑기 그지없는, 고통없는 학대에 지나지 않는 그 행위와는.
뜨겁다.
온몸이 뜨겁다.
가랑이가 뜨겁다.
녹아내릴 것 같다.
타이치「요……코……」
목소리에 재촉하는 기색이 섞이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안타까운 감정을 풀기 위해 허리를 치켜든다.
불뚝 솟아오른 물건은, 하늘만을 보고 있다.
느끼려 하는 것이다. 치마 안에서.
타이치「쌀 것 같아……」
요코「……」
몸을 가만히 놔 둘 수가 없다.
움찔움찔, 사지가 움직인다.
내 모습은 추악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혀가 내 음경에 닿았다.
타이치「큭!」
요코「응……으응, 으으응―……」
근육을 스치며, 뱀처럼 기어가며 서서히 뻗어가는.
혀가 살아 있는 것 같았다.
뱀처럼 길게 뻗어진 혀가 내 음경을 감으며, 꼭 조였다.
보이지 않는 치마 속에서, 어떤 애무가 그런 착각을 하게 하는 걸까.
요도가 묶여, 정자들도 갈 곳을 잃었다.
열기가 가랑이 사이에서 휘몰아친다.
나선 모양으로 달라붙은 혀는 드디어 귀두에 다다랐다.
설마. 말도 안 된다.
하지만 그렇게 느낄 수밖에 없는 관능에, 몸이 떨린다.
그리고.
삼켰다.
뭔가 모순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요코「으읍」
내 걱정을 없애듯이, 희미한 파열음이 들린다.
틀림없이 삼키고 있다.
요코「읍……으흡……으으응……꿀꺽……으음, 으으으으읍」
더러운 내 몸을, 언제나 동경의 시선으로 바라보단 소녀가 입으로 애무한다.
등골의 오싹함이 멈추지 않았다.
추위 때문도 공포 때문도 아닌 그것은, 의심의 여지 없이 향락의 발작.
'그녀는 요괴가 되어버렸다'라고 생각해 자신을 납득시킨다.
정액을 삼키는 악마 소녀.
소녀 흉내를 거부하지 못하는 나를 벌하고 있다.
그러니 옷 속에서, 어떤 불가사의한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다.
혀 끝이 갈라지거나, 콩나무처럼 한없이 자라날 지도 모른다.
요코「하아……으읍……으으으읍……으으으응, 으응……」
그녀의 손이, 내 양쪽 다리를 잡는다.
드디어 본격적으로 입에 의한 애무가 격렬해진다.
타이치「안돼……안, 돼…….」
이미 한계는 지났다.
하지만, 종지부에는 달하지 않았다.
음경이 묶여 있기 때문인지, 저항할 수 없는 충동의 방문으로, 육체적인 마무리는 아직 찾아오지 않았다.
요코「흐으읍, 으흡, 으으응, 으응, 으읍」
애무는 더욱 더 격렬해지며, 쉴 틈을 주지 않았다.
나는 소리쳤다.
정신이 이상해질 것 같았다.
그것을 예상했는지, 그녀는 내 하반신을 강하게 누르고 있었다.
요코「……으으으으으으으읍」
그리고 빨았다.
고개를 좌우로 이리저리 돌리며, 좁은 입술 속에 있던 음경을 조금 뽑아냈다.
타이치「아아앗!」
그녀의 머리가 스윽하고 빠져나왔다.
동시에, 나를 속박하고 있던 것이 스르륵 풀렸다.
타이치「읏……」
순간, 쌀 것 같았다.
해방되려 하는 짐승.
하지만.
그보다 빨리, 그녀의 손이 움직였다.
손가락 끝이 두 개의 더러워진 신체 기관 사이를 강하게 압박했다.
평평한 그 곳을 압박당하자, 왜인지 체액은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짐승은 손쉽게 거기에 굴복하고 얌전해졌다.
내 힘으로는 막을 수 없는 괴물을, 그녀는 간단히 길들였다.
내 쾌락도.
내 고통도.
본래 주인보다 그녀의 말이 우선.
요코「타이치……」
살짝 얼굴을 붉히고 눈동자를 적신 그 얼굴은, 결심을 굳힌 것 같았다.
허리 밑이 차갑다.
젖어 있다.
그녀가 흘린 타액일까, 내 땀일까, 또는 또 다른 액체일까.
잘 알 수 없었고, 관심도 없었다.
요코「타이치, 하나가 되자」
화려한 내 옷을, 그녀는 난폭하게 찢었다.
무릎을 세우고, 나를 바라본다.
요코「…………」
말은 없다.
양쪽 눈에 비장한 결의를 또렷이 비추며.
그녀는 앞으로 다가와, 입술을 맞췄다.
공격적인 입맞춤.
새에게 쪼이는 듯한 접촉에서, 곧 점막의 밀착으로 이어진다.
그녀가 고개를 숙이고 체중을 실어, 더 깊게 밀착하려 했기 때문이다.
한계까지 엉킨 혀가, 요코의 입 속으로 끌려들어간다.
움직이는 두 혀가, 포옹하며 서로의 몸을 문지른다.
두 사람의 타액이 거대한 덩어리를 이루어 입가에서 흐른다.
서로의 입술을 살짝 깨물며, 교대로 자리를 바꾼다.
길게 뻗어진 혀가, 그녀의 입술 사이로 사라져 간다.
끝이 없었다. 마치 끝없는 늪처럼.
혀가 뽑힐 듯한 착각에 빠져, 무심코 허리가 들린다.
뇌리가 타오른다.
사고가 사라진다.
요코「흐으응……」
이번엔 요코의 혀가, 날카롭게 솟아 내 입술 안에 들어왔다.
'마음대로 해'라고 말하고 있는 듯 해서,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요코를 따라 혀를 빨아본다.
서로의 숨결이, 서로의 얼굴을 감싼다.
요코「으흡……앗, 으으응」
자연스럽게 눈을 감고, 나에게 몸을 맡긴다.
양팔로 그 머리를 감싸안고, 입 안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려 했다.
요코「으으으으응!」
그 때.
소녀는 가냘프게 소리질렀다. 목으로.
당황해하며 내 성욕을 억눌렀다.
빠져나오는 분홍빛의 평평한 물체, 그 끝에 끈끈한 꼬리가 달렸다.
요코는 혀를 내민 채로, 미소짓고 있었다.
길었다…….
평소와는 다른 용도를 보여준 그녀의 혀는, 손가락보다 길게 입 밖으로 늘어져 있었다.
둘 다, 턱 밑으로 물방울을 흘리고 있다.
상대를 애무하며 흐른 타액이었다.
더럽혀도 상관없다.
내 성에 대한 의식이, 조금 망가졌다.
이런 식으로 상대를 더럽혀도.
기뻐해 준다.
좋아하는 사이라면, 서로 더럽히는 것이다.
지식으로는 알고 있던 이성과의 접촉.
그것이 현실과는 다르게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그 작은 변화를 감지했는지, 그녀는 요염하게 말했다.
소녀「……왜 그래?」
나는 말했다.
타이치「네 안에 들어가고 싶어」
그녀는 미소지었다.
그리고.
우리들은 결합했다.


방송부의 합숙이었다.
우리들 1학년이 진학하고, 행복한 3학년이 졸업하고.
새로운 1학년이 들어오고.
새로 구성된 부원은 일곱 명.
하지만 실은 여덟 명.
'7/8이면 뭐 OK지'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는……어차피 부르기만 하면 바로 오니까.
일곱 명을 모으기 위해.
치뤄야 했던 대가는 싸지 않았다.
반면에, 얻은 것은 결코 많지 않았다.
오히려 마이너스 효과였다고 할 수 있었다.
분노.
질투.
미움.
서로 상처입히고 갈라진.
그런 합숙의 시작.
그 중 한 원인이, 교사가 참가하지 않는다는 것.
왜냐면 이건 정식 부활동이 아니었기 때문에.
학원에는 비밀인 부활동.
들키기라도 하면 조금 시끄러워진다.
하지만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자제만 한다면.
그녀가 감시하고 있어만 준다면.
최악의 사태는 피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까지 해서……난 뭘 하고 싶었던 걸까.
미사토「……」
선배를 억지로 끌어내면서까지.
그렇게, 비탄과 고통에 가득 찬 합숙이 끝나고.
일곱 명은 귀로에 접어들었다.
나는 보고 싶지 않았다.
초췌하고, 피로해하며, 서로 시선을 피하는.
그런 타인과 같은 모두의 얼굴을.
그래서 맨 앞에 섰다.
도중에 해가 저물었다.
아주 오랫동안 걸었던 것 같다.
몇 시간 동안이나.
보통 때는 1시간도 안 걸리는 길이다.
지친 탓일까.
아무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일곱 개의 발소리만이 존재하는 세계였다.
이상하게 조용한 산길.
벌레소리마저도 들리지 않는다.
공기마저도 차갑게 느껴진다.
지금은 여름인데도.
어두웠지만, 나에겐 잘 보였다.
길은 잘 보였다.
난 옛날부터 밤눈이 좋았다.
길을 잘못 들었는가 생각할 무렵, 마을로 나왔다.
인류는 멸망해 있었다.

CROSS†CHANNEL

학교에 가 보려고 생각해, 집을 나왔다.
요코가 있었다.
타이치「어라?」
요코「……아, 안녕」
조금 무서워하고 있다.
……너무 괴롭힌 걸까.
타이치「아무 짓도 안 해, 이런 비상사태에 무슨」
손짓을 한다.
미소.
타이치「그런 데 있지 말고, 일로 와」
요코는 조금 안심하고 다가온다.
뺨을 잡았다.
요코「…………」
반사적으로 손이 튀어나갔다.
역시, 표정 하나 변하지 않는군.
하지만 그 포커 페이스는, 기분 탓인지 기막혀하는 것 같았다.
타이치「안녕」
요코「……거짓말쟁이」
타이치「응」
솔직.
타이치「난 아라베스크니까」
요코「……피카레스크를 잘못 말한 것 같아」
타이치「…………」
꾸욱
요코「아파」
표정 하나 안 변하고 아파한다.
타이치「그런 단순한 실수를 저지른 나를 용서할 수 없어」
요코「그럼 자기를 괴롭히면 될 것을……아, 그거 아파, 무척……」
전혀 아파보이지 않았다.
타이치「근데, 무슨 일?」
타이치「이런 낮부터 나타나다니 별일이네. 맨날 어둠 속에서만 사는 줄 알았는데」
요코「이거」
봉투.
타이치「여성용 속옷?」
요코「필요해?」
타이치「아니……글쎄?」
나란 인간은 너무 반사적.
요코「방 안 옷장에 잔뜩 있는데」
타이치「아니, 기왕 줄 거면 입고 있는 걸……」
요코「……알았어」
벗으려 했다.
타이치「됐어! 필요없어!」
요코「……응」
타이치「그렇게 훌렁훌렁 벗어버리면, 옥션에 사진 찍어서 팔아버리고 싶어지잖아」
요코「……그건 싫어」
타이치「네 장의 팬티를 머리에 뒤집어쓰고 하나는 내가 입고 팔찌처럼 양쪽 손목에도 걸고서, 속옷 딸딸이의 향연에 빠질지도 몰라」
요코「그거라면 괜찮아」
괜찮은 거냐.
내가 말했었지.
타이치「저기 말야……이제 정신 좀 바싹 차리랬잖아. 3학년이니까」
요코「그러고 있어」
타이치「아냐. 뭔가 어눌해」
요코「……의외」
요코「타이치는 더 풀어져 있잖아」
타이치「풀어지고 싶은 나이지. 사춘기잖아」
그렇게 말하고, 봉투의 내용물을 확인한다.
타이치「……샌드위치?」
꽤 많이 있었다.
요코「상하는 건 가능한 한 보존식품으로 만들었고, 남은 걸로」
타이치「만든 거냐」
타이치「……맞다, 사람이 없으니 야채하고 과일을 못 먹겠네」
요코「지금은. 앞으로 밭이나 비닐하우스를 몇 개 관리해둘 테니까……두 사람이 살 정도면 어떻게든……」
타이치「여덟 명이야」
손가락을 흔들며 말했다.
타이치「그런 사고방식은 좋지 않아. 인간이 망가진다고」
타이치「우리들, 성실하게 살기로 정했잖아?」
요코「……응」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긴 하는데.
결국은, 내가 말하는 걸 그대로 기계적으로 실행할 뿐이지.
마음에 안 들어.
타이치「고마워. 잘 먹을게. 좀 양이 많은 것 같긴 하지만」
요코「…………」
안면 근육이 (손가락 사이에서) 조금 움직인 것 같았다.
타이치「두 사람 먹을 걸로 보이는 양이네」
요코「…………」
안면근육이 (손가락 사이에서) 조금 움직인 것 같았다.
만지지 않으면, 그 미세한 표정 변화는 도저히 읽어낼 수 없다.
타이치「……」
타이치「두 사람 먹을 걸로 보이는 양이네」
다시 한 번 말해봤다.
요코「…………」
안면근육이 (손가락 사이에서) 조금 움직인 것 같았다.
아―항.
사악한 생각.
타이치「이 2인분 샌드위치……난 이걸……」


ㆍ一人で食う (혼자서 먹는다)


타이치「혼자서 먹을래. 고마워」
요코「……………………」
안면근육이 풀어졌다.
타이치「이야―, 맛있어 보이네」
바로 하나를 꺼내 입에 물었다.
음, 맛있군.
요코「……심술쟁이」
살짝 한숨을 쉬었다.
타이치「그래도 도시락 줄 거면, 그냥 책상에 놓고 가도 됐는데」
요코「발전소에……못 갔으니까……」
타이치「발전소? 에 못 갔어?」
의미를 모르겠다.
요코「…………」
침묵.
제길.
항상 있는 일이지만, 요코는 사건의 개요밖에 말하지 않는다.
자신이 들어도 이해할 수 있는 최소한의 말만 하기 때문이다.
추궁하는 건 가능하지만, 내 질문이나 의문을 명확히 정하지 않으면 이해할 때까지 시간이 걸린다.
타이치「어―, 그러니까 확인하러 가려 했던 거야? 그런 먼 곳까지」
요코「위험했으니까」
타이치「아아, 그려……」
분명히 발전소가 어찌저찌되면 위험하긴 하지.
타이치「그래서, 그 보고를 하러 왔다?」
고개를 끄덕.
타이치「그래……수고했어」
고개를 끄덕.
조금 기뻐 보인다.
손을 뗀다.
그녀의 새하얀 뺨이, 조금 붉어져 있었다.
그건 그렇고.
'못 갔다'란 건 무슨 뜻일까.
절벽이 무너지기라도 해서 물리적으로 못 갔다는 건가.
시설이 들어설 만큼의 땅은 있지만, 그 주변은 완전히 첩첩산중이니까.
하지만 위험하다고 단언한다는 건……확인을 했다는 건데.
음―.
타이치「그 못 갔다는 말은 무슨 뜻?」
사라졌다.
잠시 한눈을 판 사이에.
타이치「하아……」

그리고, 고개길을 걷는 중.
타이치「음?」
타이어가 쉬익하고 지면을 가르는 소리.
위험신호.
타이치「당할까 보냐!」
화려하게 날아올랐다.
쿠당―!
타이치「프로펠러러러러러러러러러!!」
나는 회전했다.
나나카「냐이――――――!?」
와이어 액션처럼 날아갔다.
지면으로 돌진하고도 기세는 사라지지 않아, 샤치호코 같은 체위로 폭주해 도로 너머의 나무와 격돌했다.
나나카「미안 타이치!!」
타이치「……어떻게 내 이름을 알고 있는가……」
나나카「잊어버렸어?」
타이치「응?」
소녀와 눈이 마주친다.
나나카「나, 잊어버렸어?」
타이치「두근」
잊어버렸다.
난 기억상실이고.
옛날에 생명을 빚졌다던가.
왕도승부.
※왕도승부=타이치어. 왕도+승부의 합성어. 정형화된 형식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자세.
타이치「내가 사과하게 만드는 건 조금 어려울걸? 설령 네가 10년 전에 결혼을 약속한 소꿉친구라 해도 말이다」
완고하게 폼을 잡으며 말했다.
나나카「후후훗」
귀여운 애다.
좀 이상하지만.
아니, 좀 많이 이상하지만.
그래도 귀엽다 (인간 쓰레기).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니 성희롱을 해 볼까요.
타이치「하앗」
물컹
가슴을 잡았다.
나나카「……」
타이치「……응―?」
물컹, 물컹
감촉은 있다.
하지만……뭘까, 이 감각은.
타이치「설마 실리콘? 실리콘인가?」
나나카「아핫」
찰싹―!
타이치「아핫」
어째 계속 날아가기만 하네.
타이치「……그래서, 네 이름은?」
나나카「회복이 빠르네」
타이치「익숙하니까」
나나카「나나카라고 합니다」
타이치「나나카짱이구나」
나나카「응. 나나카짱」
치마를 들어 올려 우아하게 인사.
나도 따라해 본다.
거울처럼.
……바보 둘이 보였다.
타이치「……어쨌든 학교 가야지, 걷자」
나나카「오케이―」
본 적 없는 교복.
이 주변 학교 학생이 아닌가.
운동신경은 좋아 보였다.
내가 상당히 느리게 걷고 있는데도, 넘어지지 않고 병주.
척 보기에도 건강 발랄 소꿉친구 미소녀라는 설정이다.
아침에 깨우러 오기도 하는.
타이치「후후후」
멋진데.
나나카「별로 안 떨리나 봐?」
타이치「응?」
나나카「세계가 이렇게 돼버려서」
타이치「……떨고 있어」
안 떨릴 리가 있나.
타이치「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것뿐」
타이치「난 말야……사람이 적으면 적을수록 본성에 가까워져」
나나카「…………」
타이치「지금은 아직 모두가 있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버틸 수 있지만 말야」
나나카「그렇구나」
나나카「타이치는, 자기를 싫어하나 보네」
타이치「……꼭 싫다는 건 아닌데……모르겠어」
타이치「정말로 알 수가 없어. 별 거 아닌 것처럼도 느껴지고」
타이치「……조금은 슬퍼」
나나카는 슬픈 표정을 지었다.
타이치「어헛, 이럼 안 되지」
조건반사적으로 익살을 부렸다.
타이치「여자애를 울릴 때는 성희롱할 때뿐이라고 정했거든」
눈시울을 닦아준다.
나나카「……안 울었어」
타이치「울 것 같았으니까」
나나카「성희롱할 때만이라니 이런 저질」
타이치「애정표현인걸」
나나카「성희롱이?」
타이치「응」
가슴을 편다.
타이치「아름다운 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성희롱을 하는 거야」
타이치「왜냐면 개성이란, 그것이 아무리 정형화된 것이라 해도 그 사람만의 것이니까」
타이치「인간다운 면이니까」
타이치「그리고 나한텐, 진짜로 사람을 사랑한 자격 같은 건 없으니까―……」
그만 실언.
나도 인간이라, 가끔씩 가드가 느슨해질 때는 있는 것이다.
이런이런.
나나카「……흐―음」
나나카「그런 의견은 처음 듣네」
타이치「……처음이라니?」
타이치「예전에 우리 만난 적 있어?」
나나카「있어」
조금 쓸쓸해보이는 표정.
타이치「언제?」
나나카「글쎄?」
타이치「……비밀이란 거군」
나나카「그렇게 되겠네」
타이치「후후후, 자백하지 않으면 치마를 들춰버리겠다」
나나카「그럼 또 날려버리면 되지」
나나카「타이치는 날아가는 거 좋아하나 보네」
타이치「……윽」
강하다.
성희롱에 흔들리지 않는 상대.
타이치「……관뒀다」
나나카「오잉?」
타이치「무반응인 녀석의 치마 들춰봐야 시시해」
타이치「아―아, 표층적이고 공허한 다이얼로그를 지닌 이 쿠로스 타이치님께서 시리어스하기 그지없는 말을 해버렸군―」
그렇게 말하고, 걷기 시작.
나나카「쓸쓸하네」
목소리는 등 뒤, 아주 멀리서 들렸다.
위화감.
돌아본다.
말도 안 되는 거리였다.
3초 전까지 같이 병주하고 있던 나나카였다.
20미터. 한순간에 이동할 수 있는 거리가 아니다.
타이치「뭐……」
나나카「……타이치!」
외친다. 비통한 울림. 그것이 내 가슴을 쳤다.
이번에는 정말로, 나나카는 울고 있었다.
나나카「그게 좋은 일인지 아닌지, 난 모르겠지만!」
나나카「세계를, 모든 것을 원래대로 되돌리고 싶다면……」
하얀 손가락이 나를 휙 가리킨다.
아니, 내 등 뒤다.
학교.
아니……산이다.
합숙할 때 갔던 산길이 있다.
꽤 험난하지만, 정상까지 빠르게 갈 수 있다.
그 도중에는.
사당이 있다.
무엇이 모셔지고 있는지는 모른다.
낡고 지저분한, 작은 사당이다.
일찍이 신을 받을었을지도 모르는 그 장소에.
지금은 다가가는 사람은 없다.
거기에 무엇이 있을까.
그 사소한 의문을 묻기 위해, 나나카에게 시선을 돌린다.
그녀는 사라졌다.
자전거와 함께.
타이치「…………」
매미도 울지 않는, 조용한 신학기였다.


ㆍ學校に行く (학교에 간다)


몇 개의 고개를 넘어 상점가에.
인기척은 없다.
타자키 상점이 보인다.
타이치「……」
일말의 기대와 함께 점내를 엿본다.
하지만, 그곳에 사람의 숨결은 느껴지지 않았다.
타이치「……부재중인가」
타자키 상점은 요 몇일 전부터, 계속 부재중이다.
이 현지 밀착형 점포의 주인 타자키 고이치로씨(47세ㆍ독신)는 자타가 인정하는 철도 매니아.
자주 가게를 훌쩍 비우고, 머나먼 땅의 지방선 사진을 찍으러 간다.
가끔씩 사진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전혀 재미없다.
난 기차에 대한 환상 따위를 갖고 있지 않은 요즘 청소년이니까.
가게는 주인 부재중에도 열려 있다.
멋진 무인상점이다.
20대 무렵 JR (일본의 철도청) 취직에 실패해 시대에 뒤떨어진 야쿠자로 전락해버린 타자키씨였지만(30대까지 이 비행행각은 계속됨), 양친의 사후 시간이 지나자, 주름이 잡힌 복스러운 얼굴로 변해갔다.
전 폭주족이었던 난폭한 철도 오타쿠를 선인으로 바꿀 수 있었던 건, 뭐 유산밖에 없겠지.
어쨌든 손 안의 현금만은 남아도는 타자키씨의 가게는, 이웃 주민에 대해서는 제한없이 외상을 주는 보기드문 현지 밀착형 점포다.
그래서 사람이 없는 건 그렇게 드문 일은 아니다.
그러고 보니, 조금 목이 마르네.
가게 안에 들어가, 녹차 한 병을 꺼낸다.
가지고 다니는 메모장에 펜을 휘갈긴다.
『9/7, 녹차왕, 130엔……쿠로스 타이치』
벽에 찰싹.
그곳을 보니, 메모가 몇장 더 붙여져 있다.
『9/3, 야채쥬스 활력 GOGO, 110엔……야마노베 미키』
『9/3, 매그넘 리찌, 110엔……사쿠라바 히로시』『톡 쏘네요』
『9/4, 패트병 천연수, 140엔……미야스미 미사토』
『9/5, 야채쥬스 활력 GOGO, 110엔……야먀노베 미키』
『9/5, 킹 도도리아, 110엔……사쿠라바 히로시』『별로 맛없군요』
『9/6, 야채쥬스 활력 GOGO, 110엔……야마노베 미키』
『9/6, 후추경부, 110엔……사쿠라 키리』
합숙 중엔 이곳에 여러가지 물건을 사러 왔었다.
타이치「……」
합숙에서 돌아오자, 마을에서 사람은 사라져 있었다.
TV, 라디오……모든 미디어가 먹통이 되고, 또 전기와 수도 등의 시설도 끊겨 있었다.
모두 마비되어 있었다.
못본 척 하기에는 너무나 무거운, 눈 앞의 현실이 느껴졌다.
다들 지쳐서 이야기할 기력도 없었다.
결론을 보류한 채로 헤어졌다.
그리고 오늘.
신학기.
나는 평범하게 등교하려 하고 있었다.

문을 연다.
끊어졌었던 사람의 기척이, 내 뺨을 부드럽게 뺨을 어루만졌다.
창가의 자리.
팔꿈치를 책상에 대고 앉아있는 소녀가, 힐끔 이쪽을 바라본다.
아름다운 장발.
그것은 신경질적일 정도의 손질에 의해 유지되고 있는 위험한 아름다움.
가까이서 보면 알 수 있다.
그 철벽의 관리는 머리칼 한 가닥이 휘거나 떨어지는 것도 용납하지 않았다.
손가락으로 어루만져 보면 모래처럼 살랑 흘러내린다.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무적의 갑옷을 두르고 있었다.
접근하기 어려운 분위기라는 보이지 않는 갑옷.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었을 것이다.
이곳이 군죠학원이란 것.
갑자기 발작하는 클래스메이트.
마치 시체 같은 클래스메이트.
자신의 세계밖에 볼 수 없는 속이 텅 빈 소년 소녀들.
제대로 된 대화가 가능한 사람은,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다.
도처에 서 있는, 감정이 없는 경비원들.
광기에 의해 희화화된 교실이란 세계.
시체의 산에 태엽을 감은 장난감들을 풀어놓은 듯한 잔인한 세계.
적응계수 46, 키리하라 토오코가 그 안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남은 54%를 지켜야만 했다.
타인과 소외되는 것으로 유지되는 자의식.
그런 의미로 보면, 입학 당초에 취한 그녀의 선택은 옳은 것이었다.
지금의 토오코는 당시의 그녀와 닮았다.
허식과 허세와 허영.
그것이 키리하라 토오코라는 인물의 모든 것이라 할 수 있었다.
타이치「헤에, 왔네」
토오코「……」
시선이 창 밖으로 던져진다.
내가 다 민망할 정도의 타이밍에.
완전히 무시 모드.


ㆍ冬子と話す (토오코와 얘기한다)


타이치「빠르네」
토오코「……」
타이치「게다가 또 사복등교」
군죠에 교칙은 거의 있으나 마나.
뭔가 문제가 생기면, 경비원이 바로 나선다.
학생이 스스로를 옭아맬 필요 따윈 없다.
그래서 교복착용 같은 교칙은, 전혀 의미가 없다.
제 아무리 천하의 군죠라 해도, 성장기 소녀를 훌렁 벗겨서 교복으로 갈아입힐 순 없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과 자신을 구분하기 위한 것.
그것은 토오코의 확고한 저항이 틀림없었다.
타이치「모에모에 교복차림이 보고싶어냐―」
토오코「……」
으―음.
이렇게까지 무시가 어울리는 캐릭터도 드물지.
토오코는 이런 상태로 있을 때, 가장 좋은 그림이 그려진다.
나는 옆자리에 앉아, 가만히 얼굴을 바라보았다.
질리지도 않고, 한동안.
타이치「……」
토오코「……」
타이치「…………」
토오코「…………」
타이치「……………………」
토오코「……………………」
타이치「………………………………………………………………」
토오코「……뭐야 정말!」
벌떡 일어났다.
타이치「이런, 예술품이 말하면 안 되지」
토오코「뭐라고?」
타이치「아름다운 그것」
토오코「뭐라는 거야!」
타이치「'~요'라던가 '~구나' 같은 어미는 아줌마틱하니까 그런 말투는 쓰지 마 이미지가 깨진다고」
토오코「무라꼬―!?」
이럼 안되지.
'무라꼬―'라고 말했단 말야.
예술의 임종이었다.
타이치「후―, 시시해」
세계 평화라는 강박관념으로 인해 국제적 왕따가 되어버린 미국인처럼 어깨를 으쓱여보였다.
타이치「너에게 예술의 파괴자라는 두 번째 이름을 주지」
토오코「필요없어!!」
타이치「잘 됐군. 피카소도 그런 말을 들었었다네. 앞날이 기대되는군」
토오코「필!! 요!! 없!! 어!!」
휘파람을 분다.
타이치「아이 무서버~」
토오코「'~구나'라고 내가 언제 말했어!!」
타이치「그렇게 익스클레메이션 마크를 두 개 세트로 쓰지 마」
토오코「무슨 말이야!!」
타이치「푸푸풉―」
토오코「놀리는 거야!? 놀리는 거지! 놀리는 거야―――!!」
방화 완료.
토오코「평범하게 대화해준다는 건 우호의 증거라는 거잖아? 근데 넌 그저 날 놀리려는 목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것뿐이지! 왕바보 주제에 네가 어떻게 날 바보취급할 수 있어!? 믿을 수 없어 믿고 싶지 않아 믿게 하고 싶지도 않아!」
타이치「잘 타오르네」
당신은 최고.
토오코「○×△□$#%&○×△□$#%&!!」
빼꼼히 귀를 기울이고 듣는데.
토오코의 오른손이 떨렸다.
핫!?
퍼억―!!
타이치「크헉」
불의의 펀치.
그 자리에서 쓰러진다.
주인없는 책상과 의자들을 밀어헤치며, 요란하게 굴러갔다.
타이치「아야야얏」
타이치「역시 실전격투술 하라키리권, 빈틈이 없군」
토오코「애초에 너희들 같은 삡삐리리하고 난 사는 세계가 다르다고! 내가 여기 있는 건 잘못된 거고 너희들이 내 옆에 있는 것도 잘못된 거야!」
※삡삐리리 ― 토오코어. 머리 나쁜 사람들이란 뜻.
타이치「둘 다 같은 말 아냐?」
토오코「시끄러!」
타이치「비처녀 히스테리는 참 보기 안좋구나」
토오코「히익!?」
얼굴이 일그러졌다.
토오코「너, 너, 너……네가……그런……말을?」
타이치「듣기 불편하신가요?」
귓밥을 파면서 시치미를 뚝 뗀다.
토오코「불편하고 뭐고……」
낮게 깔린 목소리로.
토오코「머나먼 차원을 넘어……」
천천히 고개를 들며.
토오코「꺼져버려―――!!」
경사스럽게도 쫓겨났다.

이 문을 열면, 옥상이 나온다.
그곳에는 분명 그녀가 있을 것이다.
문을 여는데 조금 망설임이 있었다.
실패할 거란 걸 알고 있던 합숙.
억지로 선배를 끌어냈다.
그것이 그녀를 상처입힐 거라는 것도 예상하고 있었다.
예상하고 있었지만, 일부러 신경쓰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또 다시, 그녀를……선배를 이용하려 하고 있다.
내 마음의 평온을 위해서.
이제와서 뭘 꺼리긴, 하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인간은 기분에 따라 움직이는 생물이고, 오늘 아침은 그런 기분이었으니까 괜찮겠지.
나에게 하는 변명은 이걸로 충분하다.
하지만 선배는 어떻게 생각할까.
조금 신경쓰였다.
손잡이를 비틀고, 철문을 밀어냈다.
바람이 불었다.
딱 발을 내민 순간에.
하지만 이상하게도,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눈 앞에 큼지막한 급수탑과 그 옆에 계단이 있고, 그 토대를 공유해서 거대한 안테나가 세워져 있다.
타이치「……헤에」
아직 미완성인 안테나.
부족한 부품과 지식.
그녀는 그것들을 활발한 의욕만으로 채워가면서, 조금씩 안테나의 모양을 갖춰나왔다.
아니.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의욕인지도 모른다.
그럴 때가, 선배에겐 자주 있으니까.
합숙 전.
그녀는 혼자였다.
부활동은 도피를 위한 마지막 수단이란 걸, 나는 알고 있다.
그리고 지금 또다시, 부활동은 도피의 수단으로 쓰이고 있다.
미야스미 미사토.
미사토 선배는 지금, 바람에 둘러싸여 안테나와 함께 서 있다.
타이치「선배―!」
선배를 부르자, 그 머리칼이 부채가 펼쳐지듯 바람에 휘날린다.
군청빛의 넓은 하늘을 헤엄치는 칠흑의 망토.
미사토「페케군?」
귀를 기울이자, 그녀만이 부르는 나의 이름이 들린다.
부드러운 빨간 입술의 움직임과 함께.
돌풍 속에서 그 속삭임을 알아들은 건 실은 칵테일 파티 효과 때문이지만, 선배와 나의 특수한 관계를 몽상하게 하기엔 충분했다.
행복한 착각이란 것이다.
선배를 향해 가까이 걸어간다.
선배는 미소짓고 있다.
나도 자연스레 헤벌쭉.
시선이 정겹게 이어진다.
그리고 나는 그 부드러운 마음 속에 안겨, 미야스미 미사토라는 지고한 여신에게 다가가고 싶다는 애절한 진심을 마리아나 해구와도 같이 깊숙히 느끼게 되는 것이다.
……………………팬티 보인다.
보인다 보인다!
무쟈게, 무쟈게, 빤히 보인다!
완전히 팬티 팔랑 왕국에 온 듯한 기분!
게다가 본인은 눈치 못 채고 있다!
이런 게 제일 견디기 힘들어!
삐―잉! 삐―잉! (경보)
팬티 팔랑 공화국, 건국 만세!
멋진 나라!
좋은 나라!
영원하기를!
미사토「……………………?」
미사토「……………………응?」
미사토「…………페케군?」
미사토「페케군페케군?」
타이치「핫?」
미사토「여보세요? 왜 그러세요?」
이런, 또 의식이 날아가버렸다.
타이치「아아, 아뇨, 전혀 이상없어요. 예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이상없어요」
미사토「그치만 침 흘리고 있는데요?」
타이치「할복하겠습니다」
셔츠를 벗는다.
미사토「잠깐 잠깐」
미사토「왜 침 흘린 거 정도로 할복하려고 그래요?」
타이치「선배를 더럽혔습니다」
미사토「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모르시는 편이 좋습니다.
미사토「그런데 왜 여기에? 수업은 어쩌고요?」
수업이라고?
문득 정신을 차리고, 선배의 눈을 가만히 바라본다.
타이치「…………」
미사토「아, 알았어요. 땡땡이군요」
엄지손가락을 세우는 선배.
전혀 변함없는.
평소의 그녀였다.
미사토「맞았죠?」
타이치「네, 뭐……」
보통의 궤도를.
벗어나 있었다.
그녀는 받아들이고 있지 않았다.
인간이 소멸했다는, 이 현실을.
그러나 다른 점은 모두 정상.
미사토「땡땡이라니 참 못됐네요―」
타이치「…………」
어제. 합숙이 끝나고 나서 헤어질 때.
그녀가 남긴 말에서 받았던 느낌은 바로 나타났다.
미사토『내일 부활동할 거예요』
이런 간단한 형태로.
미사토「여름방학도 끝나고 신학기, 김빠진 코○콜라 같은 기분을 계속 갖고 있으면 안 돼요」
타이치「……」
미사토「바른 자세로 열심히 수업을 듣고, 학과 외 활동에 힘쓰는 게 일본 남자의 미덕이에요」
타이치「…………」
바보가 다른 사람이 보기와는 달리 행복한 것처럼.
본인만은 행복할 것이다.
미사토「그렇다곤 해도, 첫 날에 수업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오늘은 이쯤 해 둘게요」
그래.
행복하다면, 그걸로 됐다.
누군가가 바라는 자신의 모습이 항상 고결하란 법은 없다.
내 가치관을 타인에게 강요할 정도로, 내가 대단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나야말로 불량품 아닌가.
받아들이고, 협력하자.
그녀의 도피를.
혼자였던 나를……방송부로 이끌어 준 사람이니까.
미사토「그리고, 실은 저도 땡땡이에요」
그녀는 살짝 혀를 내밀었다.
나는 혼신의 의지로, 나에게 명령했다.
연기해라.
타이치「꺄흥」
선배는 눈을 가늘게 떴다.
평소의 미소.
미사토「잠깐 기다려주세요」
내려온다.
그녀의 발이 바닥을 밟을 무렵에는, 그곳에 있는 건 평소의 두 사람.
미사토「네―에!」
타이치「선배, 제 말 좀 들어주세요!」
궁극 격투기 가라데, 그 정권 측중단 찌르기의 자세를 취한다.
※정권 측중단 찌르기=정측단으로 들어가는 정권. 가라데에서 전방위 공격은 기본이며, 특히 정권찌르기는 등 뒤에까지 미치는 넓은 범위를 공격할 수 있다. 그리하여 가라데로는 통상 격투기로는 불가능한 정상단이나 정하단 공격도 가능하다.
※그런 기괴한 공격을 가해야만 하는 상대가 지구상의 생명체가 아니란 건 일단 확실하지만, 그래도 유비무환. 만일 그런 적이 나타났을 때에는 가라데만이 유일하게 저항할 수 있는 수단인 것은 확실하니, 분명히 어느 의미로는 최강. 세상은 어차피 게임이니까.
발을 벌리고 선 스모선수 같은 포즈지만 신경쓰지 않는다.
미사토「뭐, 뭔데요?」
선배도 나를 따라서 뭔지 알 수 없는 자세를 취한다.
타이치「지금까지 땡땡이쳐 왔던 동아리에 참가하고 싶습니다, Sir!」
미사토「뭐라고요―!?」
타이치「수영복에서 체조팬티까지, 쿠로스 타이치가 당신의 부활동 라이프를 음란하게 서포트하겠습니다!」
미사토「상상만 해도 현기증이 나네요!」
타이치「황송합니다!」
미사토「칭찬하는 게 아니에요!」
타이치「그 외의 뜻으로는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미사토「굉장히 머리가 좋네요! 너무 머리가 좋아서, 그만 살짝 맛이 가서 바보가 되어버린 건 아닌가해서 깜짝 놀랐어요」
타이치「천재와 우리들은 종이 한 장 차이라잖습니까―!」
이상한 포즈로 이상한 대화를 하는 두 사람.
응, 이것이야말로 부활동.
타이치「자아, 오일 바르기부터 바스트 마사지, 산딸기 사냥까지 뭐든 가능한 이 사랑스런 육체노예에게 뭐든지 명령해주세요」
미사토「어머」
탄력을 받아 그만 야한 말을 해버렸다.
선배는 야한 말에 엄격하다 (둔하지만).
다행히도, 선배는 생긋 미소지었다.
방금 그 성희롱 발언을 눈치채지 못한 걸까?
천사의 입술이 아버지 하느님의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미사토「여기서 꺼져버려」
타이치「중국 주식에 손을 대버렸던 게 나락의 시작이었어―!!」
펜스 너머로 펼쳐진 티없이 맑은 푸른 하늘에 대고 생생하게 외쳤다.
뭐, 책상 빼고 다 먹는다던 그 중국인도 이젠 아예 없지만.
타이치「안테나, 꽤 모양이 갖춰졌네요」
미사토「네, 노력했어요」
태연하게 대화는 계속된다.
이처럼 나와 선배의 관계성은 매우 굳건하다.
세계가 멸망한 정도로는 깨지지 않습니다.
타이치「벌써 완성인가요?」
미사토「……그게, 아직 전혀 안 됐어요」
업자가 세워 줄 예정이었던 안테나.
반입만 된 채로 버려졌다.
미사토「전문가가 아니라서, 느릿느릿 설치하고 있어요」
미사토「본체는 어떻게든 됐지만, 배선이나 기타 조정 같은 건 손도 안 댔고」
타이치「어라라」
유감스럽지만, 나에게도 그런 지식은 없다.
타이치「……도울 수 있는 건 음란한 서포트 이외에는 없을 것 같네요」
미사토「음란한 서포트 같은 걸 하면 정학먹일 거예요~」
스윽스윽
내 머리를 쓰다듬는 선배.
타이치「으르큐―」
목이 기묘하게 울린다.
미사토「좋아 좋아」
타이치「우―우―」
미사토「앞으로도 말 대신 그런 의성어나 의태어들만 내면서 알기 쉽게 얼굴을 붉히고 질투하거나 과거의 트라우마를 대충 밝혀주기만 해 주세요―」
타이치「제가 굉장히 동물적으로 되어버릴 것 같아요!」
미사토「대중은 그걸 원해요―」
타이치「대중 따위, 싫어!」
이젠 없지만.
힐끔 바라본 선배의 손이 상처투성이인 걸 눈치챈다.
타이치「우와―!」
손을 잡는다.
타이치「상처투성이!」
미사토「아, 네, 그렇네요……」
타이치「혼자서 하니까 그렇죠」
미사토「…………」
어색하게 눈을 돌리는 선배.
타이치「모두랑 같이 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미사토「모두라 해도……」
선배는 순간 멍해졌다.
타이치「일단 부활동이잖아요. 그러는 게 괜찮을 거 같은데」
미사토「그, 그래도요, 그게 좀 힘들 것 같아서」
타이치「하기 나름이죠. 상대를 공략하는 데 가장 적당한 수단을 쓰기만 하면 됩니다」
타이치「민달팽이를 포섭한 개구리가 뱀도 부리는 자연 현상이 시사하는 바와 같이, 인재를 적재적소로 활용해 상대의 급소를 찌르는 것도 인간 사회에서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타이치「이론적으로는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대가만큼의 수단을 가장 우호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국면에 냉정하게 활용하면 어떤 교섭도 제패할 수 있습니다」
타이치「물론, 국면이 진행됨에 따라 관리의 복잡함과 관리자의 육성ㆍ배치라는 새로운 요소도 고민해야 합니다만」
타이치「이쯤에서 마키아밸리즘에도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타이치「또한, '나의 투쟁'에 기록되어 있듯이 공개적인 정치적 속임수 등의 연극ㆍ드라마적인 고양감을 주는 수단의 존재에 대해 말하자면,
그 존재를 허용한다는 것은 상대가 행복한 착각을 바라고 있다는 측면도 있기 때문에 여러모로 생각해 보는 것이 마이 제3제국의 건설을 위해서는……」
미사토「하와와왓」
선배는 덜덜 떨었다.
미사토「페케군이 굉장히 사악해 보여요……」
이런.
날카로운 말솜씨를 요구받고 있는 요즘 우리들 세대의 사정에 맞춰 쓸데없는 독서만 계속해 온 결과인지, 무심코 기계적인 반복재생이 걸려버렸다.
선배 앞에서는 솔직한 나로 괜찮은데!
그런 연유로 대충 얼버무리기로 했다.
타이치「아앗, 두통이!」
미사토「괜찮아요?」
타이치「수, 숨막혀……어머니!」
미사토「아아, 정신차려요!」
선배의 가슴에 쓰러진다.
타이치「뭐랄까 지금 이상한 외우주의 초지성존재 옴르스가 엣세네파의 예지를 가지고 에르고 영역을 넘어 병렬적 우주 세계관을 침식해 왔어요―!」
미사토「잘은 모르겠지만, 좋은 아이로 계속 남아 주세요―!」
타이치「나가―, 내 안에서 나가―!」
미사토「나가라―」
선배는 협력해 주었다.
타이치「우오―」
타이치「후우……살아난 것 같네요. 하는 김에 대우주의 영적 위기도 해결하고 왔어요」
미사토「굉장히 빠른 전개로 살아낫네요」
타이치「아뇨 뭐. 하하핫. 제 7세계에서 감사하다는 연락이 왔군요」
미사토「신비하네요……」
타이치「그런 연유를 거쳐 평소의 타이치입니다」
국민체조를 하며 평소의 타이치를 어필.
미사토「수고했어요」
타이치「자, 그럼 뭘 할까요?」
미사토「글쎄요―. 그럼……」
미사토「차가운 음료수라도 가져와 줄래요?」
타이치「네! ……근데, 그것 뿐?」
미사토「네. 그 외엔 별로」
타이치「음―」
생각.
타이치「혹시, 방해되는 건가요?」
선배가 당황한 표정으로, 휙휙 손을 저었다.
미사토「그런 건 아녜요. 단지……제가 혼자서 시작한 일이고」
미사토「다른 사람을 말려들게 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
미사토「……」
침묵.
타이치「……」
선배의 부활동은, 그녀만의 것.
그런 생각이 뇌리를 스쳐간다.
미사토「전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 뿐이에요」
미사토「모두하고 같이」
타이치「모두……좋아하는 일만 하고 있지는 않을 텐데요?」
미사토「그런가요?」
타이치「그렇게 생각해요」
예를 들면 토오코.
그녀에게 학교에 올 이유가 있을까?
합숙을 마치고 돌아오니 사람은 없어지고, 문명으로부터도 절단되었고.
무선도 전화도 인터넷도 못 쓰게 되고.
물도 전기도 가스도 끊기고.
그 원인조차도 모른다.
그러므로, 무력한 소년 소녀들인 우리들에게 가능한 일은 일상의 반복뿐이다.
모험도 탐구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불가능하다.
감정이란 마비되기 쉬우니까.
군죠의 인간에겐 특히 그렇다.
현 상황에서 정신적 데미지를 입지 않은 사람이라 하면……요코 정도뿐일까.
그리고……그 소녀.
……는 누굴까?
모르겠다.
아는 것은.
요코와 비슷한, 인간이 아닌 듯한 느낌.
그런 위화감뿐.
『지금』의 나에게는 그것이 한계였다.
뭐 어쨌든.
요코가 인류가 멸망한 것 정도로 동요할 리는 없지.
타이치「지금까지의 생활을 반복할 수밖에 없어요」
미사토「……」
선배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짐짓 싱글싱글거렸다.
타이치「그래서 저도 그냥 등교했어요!」
타이치「그리고 하라키리 토오코도 왔어요」
미사토「키리하라도?」
타이치「멍하게 앉아 있던데요」
미사토「그런가요……」
타이치「뭐, 사쿠라바랑 토모키는 시간이 지나면 안정될 거예요」
타이치「그 녀석들은 이러쿵저러쿵 해도 정상에 가까우니까요」
미사토「……그럼 좋겠네요」
조금 주저하며, 눈시울을 떨궜다.
무리하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
열심히 밝은 척을 하고 있다.
가슴이 아팠다.
타이치「……그럼, 뭔가 도울 일 있으면 말해 주세요」
미사토「아, 네, 그럴 땐」
미사토「꼭 부를게요」
여름날.
선배를 남기고, 나는 떠났다.
문을 열어 교내로 돌아간다.
휙 돌아보자, 그녀는 손을 흔들며 나를 배웅해 주고 있었다.

매미가 시끄럽다.
이렇게 더운데도.
녀석들은 언제나 기운차다.
타이치「자 그럼」
뭐 할까나, 지금부터.
옥상이 뜨거워지면, 쉴 만한 장소는 그다지 없다.
근처의 교실을 들여다 보자, 역시나 수업중이었다.
1학년 E반에서는, 마치코 선생님이 수업을 하고 있었다.
타이치「……」
이젠 그녀와는 표면적인 교류마저 불가능했다.
내가 한 짓이 너무 지나쳤었지.
지금은 이미 타인이다.
어쨌든, 이대로 복도를 어슬렁거리면 누군가에게 들킨다.
인기척이 없는 식당에서 식권을 산다.
부실로.
토모키가 만화잡지를 읽고 있었다.
가볍게 대화를 나눈다.
그러는 중, 맘모스가 지나가 조금 소동이 났다.
녀석이 지나간 뒤.
토모키「위험 위험」
미유키「커텐 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복도 쪽 창」
토모키「금지되고 있잖아. 학교도 잘 알고 있으니」
타이치「좋은 수가 있어」
미유키「……」
토모키「……」
타이치「아―, 제군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건 시시한 개그가 아니라 진짜로 좋은 방법이다」
미유키「어떤 건데요?」
타이치「토모키, 컴퓨터를 쓰게 해 줘. 그리고 디카도」
토모키「아―앙?」
…….
………….
…………………….
타이치「대충 이런데 어때?」
토모키「위장이라, 헤에―」
풀 컬러로 인쇄한『사람없는 부실』의 사진을 유리창 안쪽에 붙였다.
시점이 좀 어긋났지만, 슬쩍 보기만 한다면 어느 정도는 속일 수 있다.
토모키「음, 이거면 안 들키겠다」
타이치「와하하」
뽐내는 나.
그 때 미유키가 화장실에서 돌아왔다.
타이치「화장실 어땠어?」
미유키「아―앙!」
울었다.
미유키「화장실 간다고는 한 마디도 한 적 없는데―!」
타이치「손수건으로 손을 부비적부비적대며 돌아오면 누구든지 알 수 있어!」
토모키「자자」
미유키「알아챘더라도 말하지 마세요」
타이치「안돼안돼! 빈틈이 너무 많아!」
타이치「너무 많아도 안돼! 너무 적어도 안돼!」
토모키「뭐가 기준이냐……」
타이치「올바른 숙녀의 가이드 라인」
미유키「그런 거 되고 싶지 않아요」
나는 순간 멍해졌다.
타이치「무, 무슨 터무니없는 말을」
타이치「벌이다, 떼찌! 떼찌! 떼찌!」
소란을 피우며 미유키의 주위를 돈다.
미유키「으으으」
몸을 떠는 미유키.
제길, 촌스러운 녀석.
그 촌스러움이 나를 자극시켰다.
타이치「떼찌! 떼찌! 떼찌!」
그렇게 외치며 치마를 서서히 들춘다.
토모키「야, 야야」
타이치「만약 망사 팬티를 입고 있다면, 이 녀석의 죄는 용서될 것이다」
타이치「하지―만, 만약 건방지게 싸구려 면팬티 따윌 입고 있다며언」
미유키「아으으으으읏」
키리「하앗―!」
이 목소리는?
타이치「까우우울!?」
키리「이 여자의 적!!」
후방에서의 발꿈치찍기입니까 그런 겁니까.
서서히 내 의식은 흐려지……기 직전에 또렷해졌다.
쿠당
기절해버렸다면 바닥에 얼굴을 꼴아박는 고통을 느끼지 않아도 됐을 것을.
타이치「……크윽……아프잖냐, 하급생」
날카로운 시선이 나를 뚫어지게 쏘아본다.
키리「어느 쪽이 나쁜지 일목요연하니까요」
미유키「저, 저기, 당신은?」
키리「지나가던 전학생」
타이치「오우오우, 멋진 광경이구나, 토모키여」
토모키「부탁이니까 내가 친구라도 되는 것처럼 말 걸지 말아 줘」
토모키는 냉정하게도 자기는 상관없다는 듯이 발을 빼고 있었다.
타이치「칫, 위선자 녀석」
뭐 좋아.
타이치「이봐 하급생, 먹어버리기 전에 이름 정도는 들어주지」
키리「치한!」
타이치「날 치환해버리겠다고!?」
토모키「너도 참 한없이 바보구나」
키리「선생님께 보고하겠습니다」
타이치「호, 선생이라. 어떤 선생한테 울며 매달릴 생각일까나, 아가씨?」
키리「아무라도 상관없어요」
키리「이런 건 성희롱이잖아요!」
토모키「……쿠로스하고 알게 된 지 얼마 안 됐지만」
토모키「성희롱이란 단어를 듣는 횟수가 비약적으로 늘어나서 기쁘다. 고마워」
타이치「신경쓰지 마라 마이 프렌드, 다 나의 인덕 덕분이지」
키리「여자의 치마를 당당히 넘기려 하다니……최악!」
타이치「헤에. 거 참 잘났네」
타이치「그래서 그걸 선생한테 고자질하려고?」
키리「그래요!」
타이치「있잖아, 정의의 히로인은 이런 생각은 안 해보는 거야?」
타이치「왜 내가 백주대낮에 당당히, 그것도 사람이 보는 앞에서 치마를 일부러 천천히 들추고 있었는가」
토모키「……그냥 반응을 즐기고 있던 거커헉!?」
정권 측중단 찌르기.
타이치「그리고 왜 이 풍기위원장ㆍ시마 토모키가 그것을 말릴 수 없었는가」
토모키「네에!?」
키리「서, 설마……」
타이치「그 설마다」
타이치「즉 그것은, 내가 이 학원에서 절대적인 권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타이치「그치, 토모키?」
토모키「그러니까 이쪽으로 오지 말랑께」
키리「당신들!」
토모키「이봐! 난 아냐!」
키리「용서 못 해. 절대로 절대로 용서 못 해!」
토모키「애초에 풍기위원 같은 건 없커헉!?」
정권 측상단 찌르기.
타이치「훗훗훗」
주머니에 손을 넣고, 명상하듯이 눈을 감으며 멋진 악역의 포즈.
타이치「즉 그것은, 내가 이 학원에서 절대적인 권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말을 마침과 함께 번쩍 눈을 떴다.
토모키「그거 아까 말했어」
타이치「……」
토모키「너무 빨리 쓴 거 아냐, 방금 그거?」
타이치「…………」
키리「군죠학원에 왕따는 없다고 들었었는데……」
미유키「저기, 왕따당하고 있던 건 아니에요」
키리「……어?」
미유키「저 사람들은 맨날 저래요. 악의는 없어요」
토모키「들이라니……」
토모키는 좌절했다.
타이치「들이라니……」
나는 좌절하려 했다.
토모키「네가 좌절할 이유가 어디 있는데―!」
타이치「난 위선자가 아냐!」
토모키「나도 아냐!」
타이치「해보자는 거냐―!」
배틀 파이트.
토모키「짜가 마키아밸리스트!」
타이치「시스콤 살인사건!」
토모키「저학력 저수입!」
타이치「밑바닥 인생!」
토모키「주식 패잔병!」
타이치「주주주주식 얘기는 하지 마―!!」
키리「내분이!?」
미유키「아―아……」
토모키「너도 사람을 시스콤 DDR의 프로라고 여기저기 퍼뜨리고 다녔잖아!」
타이치「아아 그랬었지! 특히 여자애들한테! 다들 겁나게 좋아하던데!」
토모키「그러고 나서부터 가끔씩 애들이 프로라고 부른단 말야―!」
타이치「사실이잖아!」
토모키「나도 사실이다!」
타이치「제기랄―!」
토모키「뭐라고―!」
뽀까뽀까뽀까뽀까!!
그리고.
우리들은 자멸했다.
토모키「으으으」
타이치「크으으」
복도에 엎어지는 두 사람.
미유키「……양호실 가실래요?」
타이치「아, 아까 그 정의의 편은?」
키리「사쿠라 키리. 정의의 편이 아니에요」
소녀는 우리들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키리「……그리고 당신들에겐, 악의라고 할 만한 것도 없다는 걸 알았어요」
토모키가 눈물을 좔좔 흘렸다.
토모키「나, 난 아무 관계없는데. 타이치 때문에 나까지……」
토모키는 투구풍뎅이의 애벌레처럼 몸을 둥글게 말았다.
토모키「이제 됐어. 날 내버려 둬」
훌쩍훌쩍 운다.
미유키「그러실 것까진……」
키리「이 애도 괜찮다고 하고, 그 꼴사나운 모습을 봐서 이번만은 못 본 척 해드리겠습니다」
타이치「……몸이 움직이기만 하면……두고 봐라……키리란 녀석」
키리는 차갑게 웃었다.
키리「부디 좋으실 대로」
사쿠라 키리와의 만남이었다.

교실로 돌아가는 도중, 처녀가 복도에 웅크리고 있었다.
미키다.
야마노베 미키.
타이치「어―이」
미키「읏!?」
미키는 벌떡 일어났다.
재빠른 행동.
천천히 뒤를 돌아보는 미키.
미키「아, 선배……안녕하세요」
고개를 숙이며 인사.
평소와 별반 다를 바 없는 미키다.
조금 위화감.
미키가, 이렇게 강했었나?
원래 소질은 가지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평소보다 의연해진 듯한.
그런 느낌이 들었다.
타이치「뭐하고 있어?」
미키「청소요」
타이치「나도 했어, 청소」
미키「정조나 정소니 하는 둥의 뻔한 말놀이를 하실 건가요?」
타이치「……아닙니다!」
미키「왜 화내세요」
타이치「……」
미키「왜 입을 다무세요」
타이치「그렇게 일일히 말꼬리 잡지 말란 말이야아아」
미키「와―아, 이겼다―」
미키는 강했다.
타이치「아, 그렇지」
헛기침.
타이치「……인류를 청소했다」
미키「네놈이 범인이냐―!」
타이치「핫―!」
싸우는 두 사람.
타이치「욥」
타이치「홋」
타이치「……핫?」
타이치「오옷!?」
복부에 한 방을 맞아버렸다.
윽, 왠지 세다?
가라데를 익힌 이 나를.
타이치「이 자식」
조금 진지해진다.
미키「슉」
가느다란 다리가 허리보다 높게 들렸다.
바로 다리후리기를 먹이려고 했지만, 하얀 팬티가 슬쩍 보였다.
공격 중지.
남자 타이치, 그에게 눈 앞에 펼쳐진 팬티를 보지 않는다는 연약한 선택지 따윈 없다.


ㆍパンツ見る (팬티 본다)


음, 없지.
허리를 숙이고 시선을 내렸다.
발차기가 온다.
가라데의 중단 방어 자세를 취했다.
그 팔 사이를 발 끝이 부드럽게 관통했다.
타이치「오잉?」
말도 안 돼.
이마에 히트.
터이치「어라라?」
나는 기절했다.
…….
………….
…………………….
타이치「핫?」
미키「아, 다행이다. 정신 드셨어요?」
타이치「으, 으―. 나 얼마 정도 기절해 있었어?」
미키「1분도 안 지났어요」
타이치「아―, 드디어 미키한테 졌는가―!」
무릎을 꿇었다.
미키「하핫」
미키「그치만 무지하게 방심하고 계셨잖아요」
타이치「아니―, 그건 나에겐 그 외의 선택지가 없어서 말야―」
타이치「……목숨이 걸려 있는 거와 같았지」
미키「팬티에 목숨을!?」
타이치「쯧쯧쯧」
손가락을 흔든다.
타이치「라이브로 보는 아마추어 걸이 리얼하게 착용하고 있는 팬티란 말이다, 미키양」
미키「그거 아니다……」
타이치「아니긴. 이처럼―――」
팔랑.
애제자의 짧은 치마자락을 잡은 내 사랑스런 손가락이.
미키의 손가락에, 꾹 찝혔다!
타이치「핫, 막혔다!?」
미키「후후후」
충격.
타이치「으―음, 이제 더 이상 가르칠 게 없구나」
나는 가로로 엎어져서 무릎을 말고 새우튀김처럼 둥글어졌다.
타이치「그러므로, 난 이만 은퇴하마」
미키「은퇴라고 하셔도……」
몸이 팔랑팔랑 흔들린다.
미키「스승님―, 기운 내세요」
타이치「됐어. 날 내버려 둬」
미키「또 시작이네 이 사람은」
미키「……」
미키「전혀……변함없는데」
타이치「위?」
프랑스인처럼 되묻는다.
미키「모두들 평소대론데」
목소리가 떨렸다. 갑자기.
타이치「미키미키?」
미키「봐요, 이렇게 손이 떨리고 있어요」
펼친 양손이 땀투성이었다.
마치 무언가를 두려워하는 듯이.
타이치「……왜 그래?」
미키「그건 말이죠, 선배의 알 수 없는 프레셔 비스무리한 거에 눌려서 소심한 미키는 덜덜 떨고 있는 거예요」
타이치「……」
미키「그러니까, 기운 내 주세요」
타이치「음―」
날 격려해 주는 걸까.
상태가 조금 이상한 게 신경은 쓰이지만.
으―음, 그렇다고 어물쩡 넘길 순 없지.
타이치「좋아, 면허를 전수해 주지」
주먹을 뻗었다.
미키「네?」
타이치「수첩을 꺼내보세요」
미키「……아―아……그건가요」
미키「어쩐지 오랜만이네요―」
정말 슬퍼 보이는 표정을 짓는다.
아니 아주 (아니 아주?) 울 것 (울 것?) 같은데.
다중으로 생각해버렸다.
미키는 메이트북을 꺼냈다.
이 학교에서는 신분 증명서를 겸하는 이 수첩을,『도회』의 역 뒷편에 있는 인기 NO1 고급 업소『메이트북』과 관련지어 그렇게 부른다.
근데 아무 관련없자너, 하고 나에게 태클을 건다.
실은 우연입니다.
미키「……훌쩍」
타이치「왜 그래?」
울고 있다.
아니 아주 (아니 아주?) 울고 있는데 (울고 있는데?).
다중으로 생각해버렸다.
타이치「……역시, 꽤 충격이었나 봐?」
미키「네?」
타이치「세계가 이렇게 돼버린 게」
미키「아아……」
미묘한 공백이 있었다.
미키「글쎄요, 그럴지도」
타이치「그렇겠지」
타이치「나도 깜짝 놀랐어. 이렇게 돼서」
미키「선배도?」
타이치「응」
타이치「이젠 13살이나 15살의 싱싱하기 그지없는 처녀들과 만날 기회는 사라져버렸구나」
미키「그거 때문이었냐」
타이치「읏챠」
수첩을 받아든다.
타이치「미키는 수첩 꽤 자주 쓰나 보네. 너덜너덜하다」
미키「너덜너덜」
무의미한 반복으로 긍정하는 미키.
페이지를 넘기자, 메모란에는 이미 내 사인이 커다랗게 적혀 있었다.
그것도 수 페이지에 걸쳐서 있다.
거의 내 사인 연습장에 가까운 꼴이었다.
백지를 찾아서, 그곳에 새 사인을 적는다.
어느새부터 시작한, 우리들의 놀이.
시시한 일이다.
수첩을 돌려준다.
수첩을 받아, 미키는 가슴팍에 품었다.
꼬옥.
잃어버린 일상을, 그 품에 감싸안듯이.
조금 흘러나온 눈물을 슬쩍 닦았다.
와, 나도 참 신사답구나.
미키「감사합니다……」
타이치「뭘」
복도를 둘러본다.
타이치「그건 그렇고, 청소라」
미키「몸을 움직이면 마음이 차분해질 것 같아서요」
타이치「흐―음」


ㆍスカ―トめくる (치마를 들춘다)


미소짓는 소녀의 가슴팍으로 자연스럽게 손이 뻗었다.
허를 찔린 듯, 미키는 미소지은 채로 손끝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끼익
왠지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사실, 그것은 지구상의 남자 25억에게는(현재는 세 명) 잠겨져 있는 신비의 문.
전 인류에게 밟혀지는 운명인 불행한 대지와 바닥만이 엿볼 수 있는 금단의 성역.
하지만, 그렇게 귀중한 것임과 동시에 동정ㆍ틴가이즈 or 달콤쌉싸름 영 어덜트가 되기 위해선 누구나 빠져 나가야 되는 입구이기도 하다.
다만 그 문은, 사각형이 아니라 삼각형이지만(쌀웃음).
※쌀웃음=타이치표기. (웃음)의 아류. 미국풍의 웃음을 의미.
미국인은 개그를 한 뒤에 자기가 웃는다는 (그게 아무리 썰렁한 개그라도!) 괴상하기 그지없는 습성이 있어서, 특히 시시한 개그를 했을 때 그만 무심코 흘러나온 허무개그라 생각하도록 하는 자학적인 의도를 담아서도 사용한다.
미키「……당했다」
미소지은 채로, 입 주위가 일그러진다.
타이치「미안, 무의식중에 손이」
미키「아뇨, 방심하고 있던 제가 나쁜 거예요」
타이치「저기, 내가 이런 말 하는 것도 좀 그렇지만……그 란제리, 겁나게 섹시하네. 이 오빠는 그만 깜짝 놀라버렸어. 좋은 뜻으로」
미키「황송합니다. 그런데 언제 손을 떼어주실 건가요?」
타이치「그, 그, 그 속옷은, 미키의 청초한, 속옷, 꽃잎이, 청초한, 몸은 정직, 섹시함이, 듬뿍 묻어난, 이렇게, 새끼고양이가」
사고력이 뿔뿔이 흩어진다.
미키「Sir―, 그 이상은 정신적으로도 위험하지 않을까요?」
타이치「아니, 매우 무리다. 이 손은 마치 내 손이 아닌 것처럼 석화돼버렸다. 열쇠를 가진 아이가 자택의 열쇠를 찰칵하는 것처럼 부담없이 풀 수는 없다」
타이치「그건 그렇고……아름답구나」
미키「넵, 말씀 감사합니다. 슬슬 손을 떼어 주시면 더 기쁘겠군요」
타이치「어떤 미소녀 피규어도 이 생기 넘치는 신선함은 재현할 수 없는 법. 교사의 신분으로 피규어계에 그 이름을 떨치고 있는 일류 조형사인 사카키바라 키요시 교사의 실력으로도 그것은 불가능하다!」
미키「……죽여버린다」
타이치「히이이이이이익, 살기!?」
사냥꾼의 눈이었다.
손을 놓는다.
타이치「아, 그치만 꽤 어른스러운 걸 입고 계시네요, 그」
존대말을 써버렸다.
미키「……네에, 뭐」
조금 홍조를 띄는 미키.
미키「그게, 물도 안 나와서 빨래도 못 했는데」
미키「가게에 가니 새 거가 잔뜩 있고」
게다가 공짜.
타이치「그래서……평소엔 안 입는 섹시한 걸 가져왔단 거야?」
미키「……네」
으―음.
근데 어쩌지, 가르쳐주는 게 좋을까.
그냥 냅두는 게 좋을까.
타이치「저, 저기 말야, 미키링」
미키「미키링입니다. 왜요?」
타이치「그 속옷 말야……내가 좀 알고 있는데」
타이치「으―음」
타이치「저기 있지, 그거 장난감 속옷이야. 오픈 쇼츠 또는 포니 쇼츠라고 하지」
미키「하?」
타이치「으―음 그러니까 말야, 어른의 말야, 장난감 말야, 속옷 말야」
손가락을 콕콕 찌른다.
타이치「그러니까……뭐―즉, 안 벗기고 빠구리를 뜰 수 있도록 비밀스런 부분이 갈라져 있는 거야」
타이치「이것도 뭐, 일종의 쇼트컷이라고 할 수 있지!」
검지손가락을 세우며, 만면에 미소.
그러자.
미키「……………………」
다다다다다다다다닷
달려갔다.
화장실로 사라지고 나서 1분.
돌아왔다.
미키「이이이이거이거이거이거어어엇!?」
타이치「아마 넌 아토믹 잡화(구 키무라 잡화점)에서 속옷을 조달한 거 같은데, 거기 보통 속옷하고 성인용 속옷을 같이 팔고 있어. 생각해 봐, 그 주변이 주택단지잖아? 아마 젊은 부인들을 노린 라인업일 거야」
타이치「저도 자주 이용하고 있습―죠」
이빨을 빛내며 엄지손가락을 세웠다.
미키「으히―――!?」
가랑이 사이를 앞뒤로 황급히 가렸다.
타이치「진정해」
타이치「그치만 그런 걸 입고 치한하고 만나면 꽤 큰일나겠는데」
미키「후와와와아」
미키는 가랑이 사이를 누르며, 머뭇머뭇 다리를 좁혔다.
타이치「……근데」
타이치「키리찡이 이걸 알면 어떻게 될까나―」
가공의 담배를 피웠다.
미키「앗, 선배, 설마!?」
타이치「그 결벽증인 키리가 알면, 우히」
타이치「플라워즈도 해산인가?」
미키「냐옹―!?」
달라붙는다.
타이치「……미키미키가 이러언 야한 속옷을 입고 있다니. 불결해」
타이치「도시락 반찬도 안 바꿔줘」
미키「그것만은 제발―!!」
타이치「그렇다면 내 말을 듣겠는가!」
미키「처녀를 내놓으라는 것만 아니라면~」
타이치「좋아. 그럼 명령한다」
머리에 손을 얹는다.
미키는 조금 움찔했지만.
싫어하진 않는다.
타이치「청소를 해라」
미키「……에?」
타이치「아니, 양자택일이다」
타이치「청소냐, 할짝할짝이냐!」
미키「할짝할짝이라 하시면?」
타이치「음, 할짝할짝이란……」
타이치「뭐, 이런 행위지」
타이치「다리와 다리 사이에 얼굴을 파묻고, 할짝할짝, 할짝할짝……」
미키「페팅이잖아요!」
미키「할짝할짝처럼 귀엽게 불러도 소용없어요! 페팅이에요!」
타이치「하고 싶다―, 할짝할짝」
미키「싫어―――, 할짝할짝은 싫어―――!!」
타이치「키리한테 미움받느냐, 아니면 할짝할짝! 전쟁이냐, 평화냐!」
미키「네, 저기, 청소는? 청소는 안되나요?」
울상을 지으며 거수.
타이치「흠. 청소를 선택하겠다?」
미키「청소는……그냥 청소죠?」
타이치「아니, 청소인 건 틀림없지만, 닦는 곳이 좀……흐흐흐」
미키「정조 종료」
미키는 쓰러졌다.
미키「바람이 말을 걸어온다. 길고도 짧았던 처녀의 나날. 오늘, 난 어른이 된다. 가장 바라지 않던 형태로―――」
가공 프로그램의 나레이션을 읽었다.
타이치「농담이야」
미키「훌쩍훌쩍, 적어도 다정하게 해 주세요……」
타이치「농담이라니깐」
타이치「자, 대걸레」
건넨다.
미키「……?」
미키「대걸레 플레이를?」
타이치「에로 쪽에서 멀어져」
아직 미키는 어리둥절해 있었다.
타이치「청소하고 있었잖아?」
고개를 끄덕.
타이치「그럼, 신속히 청소를 재개하게나」
타이치「원하는 대로」
미키「네……」
미키「고마워요」
뭘.
내가 싼 똥을 내가 치웠을 뿐인데.
타이치「이 쿠로스 타이치에게 반하는 것을 허가한다」
미키「허가 취소합니다」
타이치「갓뎀!」
타이치「그럼 난 이만」
사르랑 앞머리를 쓰다듬는다.
타이치「방해해버렸네」
미키「근무 수고하세요」
타이치「맞다, 미키」
멈춰선다.
중요한 걸 잊고 있었다.
미키「네」
타이치「슬슬 부활동, 활동재개한다는데」
미키「부활동이요?」
타이치「견딜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괴로워지면, 얼굴 정도는 내밀어 봐」
타이치「그러기 위해 있는 부활동이니까」
천천히, 미키의 얼굴에 이해의 기색.
미키「……네」
반가움만은 아닌 무언가가, 그 얼굴에는 스며들어 있었다.


ㆍ敎室に行く (교실에 간다)


토오코는 여전히 교실에 멍하니 있었다.
누구와도 얘기하지 않는다.
부활동에 참가하지도 않는다.
목적도 없이, 단지 거기에 있다.
타이치「……」
정답이다.
인간으로서는 올바른 행동이다.
갑자기 모든 것이 사라졌다.
관성의 법칙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
생각하면 짓궂은 일이었다.
제대로 된 인간들은 모두 깨끗이 사라지고, 우리들만이 살아남았다.
타이치「키리하라」
토오코「……」
흐음.
타이치「다이얼로그」
토오코「?」
순간 의아한 표정을 짓지만, 바로 사색의 감옥으로 틀어박히는(척을 하는) 토오코.
타이치「다이얼로그!」
좀비처럼 말한다.
타이치「다이얼로그, 다이얼로그」
타이치「다이얼로그!」
토오코「뭐야―!」
대화의 좀비.
아니, 좀비스런 대화.
……뉴?
뭐 어때.
타이치「대화대화. 회화회화. 필요필요」
몸짓을 섞어 역설한다.
토오코「……필요없어」
타이치「대화 없이는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아」
토오코「……그런 거 몰라」
토오코「말 걸지 마」
토오코「넌 나 같은 게 어찌되든 아무 상관없잖아!」
타이치「그렇지 않아」
타이치「예쁜 키리하라가 좋아」
토오코「그게! 좋아하는 상대한테 할 짓이야!?」
타이치「응」
토오코「거짓말!」
타이치「진짜야」
토오코「그치만, 그치만……」
말이 막힌다.
토오코「말 걸지 마」
대꾸하는 걸 포기한 것 같다.
불완전 연소.
말 걸지 말라고 자꾸 그러니, 말 걸고 싶어진다.
말을 걸면, 또 말 걸지 말라고 하겠지.
타이치「으―음」


ㆍ話しかける (말을 건다)


타이치「이봐, 우울한 아가씨」
토오코「……」
안색이 좋지 않았다.
타이치「……밥은 먹고 다녀?」
토오코「뭐야 아까부터!」
조금 기분이 상한다.
난 진심으로 걱정하는 건데.
타이치「안색이 안좋아」
타이치「식욕이 없어도, 억지로라도 먹어 두는 게 좋아」
타이치「정신보다 몸이 우선이니까」
토오코「쓸데없는 참견!」
타이치「요리 잘하잖아」
예전에 그렇게 말했었다.
토오코「……놔 둬」
고개를 돌리려고도 하지 않는다.
타이치「어쩔 수 없는 녀석」
타이치「자, 손 내밀어」
토오코「……손?」
타이치「손 내봐」
토오코의 얼굴이 마치 형사 같은 의혹으로 가득 찼다.
진짜 형사는 의심스러운 게 있어도 표정에 드러내진 않겠지만.
토오코「……또 이상한 걸 잡게 할 작정이겠지」
타이치「헷, 예전에 그런 짓을 한 적 있는 듯한 말인데」
퉷, 하고 가공의 침을 뱉는다 (사회성 부족).
토오코「했었잖아!」
타이치「……어?」
순간 멍해졌다.
토오코「했었잖아했었잖아, 꾹―꾹 쥐게 했었잖아」
타이치「그런 적이 있었던가―?」
맹구 같은 어조로 말한다.
토오코「시침떼지 마!?」
타이치「기억이 안 나는데요―?」
토오코「거짓말! 그 얼굴은 분명히 기억하고 있어!」
타이치「무슨 얼굴?」
토오코「난 아직도 그 감촉이 손에 남아 있는데~!」
부들부들 떨었다.
토오코「게다가 너! 그걸 사람 머리 위에 올려놨던 적도 있었잖아!」
타이치「상투틀기입니다」
금단의 비술, 상투틀기.
타이치「귀족의 놀이」
토오코「성범죄자의 놀이겠지!! 귀족은 그런 짓 안 해!!」
타이치「자기도 밝히는 주제에」
토오코「뭐―――」
창백했던 얼굴이 더 새하얘졌다.
타이치「내 손가락으로―――」
토오코「네놈이 시켰었잖아――――――!」
퍼퍼퍼퍽―!
타이치「YOU WIN!」
나는 춤췄다.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졌다.
타이치「이것이 나의 임무라고는 해도……아프다……아프다고……」
일어나, 어질러진 책상과 의자를 정리한다.
토오코「……」
토오코는 다시 원래 자세로 돌아와 있었다.
형상기억합금 수준의 몸가짐이었다.
귀족의 피인가.
타이치「저기, 키리하라 아씨」
토오코「……」
한숨.
타이치「네네, 무시할 거면 무시해도 상관없는데」
타이치「자, 손」
억지로 손을 잡는다.
토오코「잠깐……」
바스락바스락
타이치「어머니의 맛을 보여주지」
손바닥에서 구르는, 눈깔사탕 세 개.
토오코「아」
타이치「안심해. 내 2억 마리의 자그마한 원더풀 라이프들은 안 들었으니까」
타이치「휴가중이라(쌀웃음)」
토오코「……그러시겠지」
꼬옥.
토오코는 사탕을 잡았다.
타이치「당분을 적당히 섭취하면 당분간은 견딜 수 있을 거야」
작은 거지만 세 개 정도면 괜찮겠지.
타이치「식욕이 없어도, 먹을 걸 입에 넣는 습관은 유지하도록」
토오코는 가만히 주먹을 바라보고 있었다.
토오코「……넌 항상 그래」
토오코「다정한 척하고, 바보 취급하고, 차갑게 대하고, 화내고」
토오코「정말 모르겠어」
얼굴을 가린다.
토오코「……상관하지 마, 부탁이니까」
타이치「네―에」
혼났다.

저녁이 되어도 땅바닥은 뜨거웠다.
신발 밑으로 열이 전해진다.
하지만 못 참을 건 아니다.
관동의 도심부에 비하면 훨씬 나을 것이다.
통풍도 좋고, 습기도 적절하고.
이런 고개길을 몇십 개씩 올라가야 되지만 않는다면 말이지.
게다가 매미의 시끄러움도 더위를 증폭시킨다.
여름에만 활동하던 모 밴드처럼, 녀석들도 이 계절에만 올인하고 있는 것이다.
신카와「으앗」
타이치「응?」
누군가가 넘어지는 소리가 났다.
딱딱한 소리와 함께, 내 발 밑으로 스테인레스 지팡이가 굴러왔다.
타이치「어라?」
사람이 쓰러져 있다.
다가가 봤다.
타이치「……저, 괜찮아요?」
신카와「아, 감사합니다, 괜찮아요」
이럴 때, 일본인은 바로 괜찮다고 말한다.
실제로는 어떤지 알 수 없다.
갑자기 열이 받는다.
타이치「진짜로 괜찮은 거냐! 그렇게 순간적으로 괜찮은지 어떤지 알 수 있는 거냐!」
신카와「어, 어어……응」
그 일본인은 위축되어 고개를 끄덕끄덕거렸다.
타이치「복합골절일지도 모른다고―!」
신카와「척 보기에도 멀쩡한데……」
타이치「인류를 얕본 대가를 치루게 해 주마!」
신카와「뭔 소리야!」
신카와「뭐, 어쨌든 진짜 다친 덴 없다니깐」
그 녀석은 쓴웃음지으며 몸을 일으켰다.
지팡이를 건넸다.
신카와「아, 고마워」
타이치「내 탓이니까 됐어」
타이치「긁힌 덴?」
신카와「없는 것 같아」
지팡이를 짚고, 몸의 밸런스를 잡는다.
한쪽 다리를 다쳤나…….
타이치「골절?」
신카와「그럼 좋을 텐데 말야」
티없이 웃는 얼굴이 온화하게 보였다.
고생한 사람의 얼굴.
신카와「어라, 너……그 머리는」
타이치「아아, 이거?」
내 머리카락을 휘감아 본다.
타이치「가발 아냐」
신카와「아니, 의심 안 했는데」
신카와「근데 염색한 거야? 모근까지 하얗네」
타이치「아냐. 천연」
신카와「헤―」
신카와「새하얗네」
그렇다.
내 머리카락은, 옛날부터 쭈욱 순백.
솜털 같은 흰색이라고 어떤 사람이 말한 적이 있다.
노쇠한 흰색은 아니다.
윤기를 가진 새하얀 머리카락.
기분나쁠 정도로 자연스러운 백발.
……내가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첫번째 이유.
두 번째 이유는, 머리와 얼굴의 갭이겠지. 쳇.
신카와「아, 미안. 신경쓰고 있나 보네」
하지만, 이 녀석은 좋은 녀석이다.
배려를 알고 있다.
그러니 나도 배려해 준다.
타이치「아냐, 전혀」
타이치「옛날엔 좀 그랬지. 그래도 학교가 거기니까」
신카와「아아……군죠학원?」
타이치「응」
신카와「나도 거기 다니게 됐어」
그 녀석은 얼굴을 활짝 폈다.
타이치「오, 나이는?」
일본인은 자신의 생년월일을 말했다.
같은 나이다.
그리고, 동료인가.
타이치「잘 부탁한다」
신카와「나야말로. 여러가지 많이 가르쳐 줘」
신카와「나, 한쪽 발을 거의 못 쓰니까 말야」
타이치「……그래」
신카와「정신적인 문제야. 다친 건 옛날에 다 나았어」
타이치「힘들겠네―. 언제부터?」
신카와「아주 옛날부터. 뭐, 이것도 천연이라면 천연이야」
신카와「봐, 두께가 다르지?」
청바지를 걷어서 발목을 보여줬다.
타이치「우와, 심한데」
신카와「전혀 안 쓰니까―, 근육이 없어진 거야」
타이치「위험하겠는데, 단련 좀 해―」
신카와「거의 안 움직여서 말야. 일단, 손으로 조금씩 움직여 주고 있긴 한데」
신카와「귀찮아」
타이치「야야!」
신카와「아하하하, 농담 농담」
타이치「너, 알고 보니 자학 개그를 즐기는 놈이군」
방심할 수 없는 남자의 등장이다.
신카와「뭐야 그건」
신카와「학교, 좋은 곳이었음 좋겠다」
타이치「좋은 곳이야」
타이치「우리들 같은 사람들한텐」
신카와「그거 좋은데」
타이치「귀여운 여자애들도 잔뜩 있어」
신카와「정말임까?」
제대로 된 대화가 불가능한 애들도 많지만.
타이치「특히 마치코 선생님이 좋아. 최고」
신카와「이름부터 좋은데! 빨리 보고 싶다―」
타이치「다음번에 내 비장의 마치코 선생님의 앨범을 보여주지」
타이치「A급이야」
신카와「A급? 최고 랭크?」
타이치「아니, 위에 S가 있어」
신카와「우와, 나하고 같은 등급 설정……」
타이치「너, 너도냐―!」
뭐야, 이 자연스럽게 의기투합되는 놈은.
신카와「OK, 어떻게든 해나갈 수 있을 것 같아」
타이치「군죠는 빵빵하고 에로한 안식처지」
신카와「이런―, 에로라―, 이거 또 장미빛 인생이 펼쳐지겠군―!!」
타이치「가자―!!」
신카와「좋아, 가자!」
신카와「뭐랄까, 넌 처음 보는 거 같지가 않네―」
타이치「나도, 너하고는 언젠가 결착을 지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신카와「그거 받아 주지」
자신만만하게 말한다.
신카와「……그 전에, 마치코 선생님의 데이터 줘」
타이치「OK 전우」
타이치「인종은 다르지만 노력하자, 재패니스」
신카와「……아니, 너도 일본인인데, 아무리 봐도」
이것이, 나와 신카와 유타카와의 만남이었다―――

타이치「후우」
식탁 위에 메모가 놓여져 있다.
『저녁 있을지도 몰라』
타이치「와―아, 가자가자―」
내가 차려먹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3분 만에 갈아입고, 허둥지둥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
저녁은 매우 맛있었습니다.

양초에 불을 붙인다.
독특한 빛이 방 안을 밝힌다.
양초는 좋다.
생생한 불꽃을 보면 이상하게 마음이 강하게 끌린다.
이렇게 멍하게 흔들리는 불꽃을 보고 있으면 그만 마음이 거기에 사로잡혀, 언제까지고 언제까지고 졸아버리게 된다.
예전에 그래서 앞머리를 태운 적도 있다.
바로 3분 전의 일이다.
타이치「……탔다……시부렁」
울고 싶다.
어쨌든 일기다.
두꺼운 일기장을 연다.
인생의 기록은 소중한 거야.
학교에 갔다.
아무도 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모두들 와 있었다.
수업 같은 걸 할 리도 없었으니, 그냥 어슬렁거렸다.
토오코가 또 뾰루퉁해 있었다.
이런 상황이라 갈피를 못 잡고 있는 걸까.
옥상에서는 미미 선배가 부활동.
방치되어 있던 안테나를 세우고 있었다.
단순히 놓여져 있는 부품을 조립하기만 하면 되는 것도 아니다.
힘든 작업이다.
하지만 그 힘든 작업이, 선배를 구원한다.
복도를 걷다 보니, 미키가 청소를 하고 있었다.
선배에게 부활동이 있는 것처럼, 미키에겐 청소가 있는 걸까?
모르겠다.
인류 멸망이라는 위기상황이 미키를 각성시킨 걸까.
난 드디어 미키에게 한 방 먹어버렸다.
이건 중대한 문제입니다, 교장님!
하지만 제자의 실력이 늘어난 것은 솔직히 기쁘다.
스승인 나를 뛰어넘을 날도 멀지 않았다.
그 외에도 여러가지 일이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좋은 날이었다.


사쿠라바에게 습격당하는 꿈을 꿨다.
타이치「……왜날뷁」
애초에 그 녀석에게 사람을 덮칠 만한 담력이 있을 리가 없는데.
아침밥이 차려져 있다.
메모도 있었다.
『많이 먹고 잘 다녀와요』
미인 커리어 우먼 무츠미 아줌마는, 요리도 잘 한다.
바빠서 집에는 거의 없지만.
고개를 숙였다.
감사한 마음으로 두꺼운 샌드위치와 야채 쥬스를 먹었다.
시간이 없다.
남은 건 랩으로 싸서 주머니에 넣었다.
먹으면서 가자.
어느 정도 걸어가자,
사쿠라바「우갸갸갹―――!!」
사쿠라바의 비명이다.
꽤 가깝다.
개 짖는 소리와 비명이 겹쳐진다.
멀어져 간다.
타이치「과연……」
납득했다.
그리고, 그곳에―――
소녀「하레? 타이치 오빠?」
타이치「안녕」
소녀「아, 좋은 아침이에요」
꾸벅 고개를 숙인다.
근처에 사는 미소녀 유사.
카미사카 좋은 동네.
설명이 불필요할 정도로 귀여운 유사의 양손에서 카레빵이 흔들리고 있었다.
함께 나란히 걷기 시작한다.
오늘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어쨌든 같은 학교로 가는 거니까.
뒤에서『잘" 다녀" 와―!!』하는 허스키한 목소리가 들렸다.
유사의 어머님이다.
조금 살이 찌셨다.
하지만, 매일 즐거운 듯이 살고 계시니 별 상관없겠지.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난 미소녀.
다만 한 가지 난점이 있다면, 세상을 너무 모른다는 것.
그런 유사의 이성 선배 중 가장 친밀한 나에게 맡겨진 책임은 막중하다.
유사「다녀오겠습니다―!」
손을 흔다는 그 얼굴에는 반항기는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1차 성징마저 아직인 건 아닐까하고 생각되는 면도 있다.
이 새하얀 캔버스를 나의 검은 빛깔로 물들이고 싶다고 생각해버리는 건 남자로서 아주 당연한 일이지만 중등부 1학년에 키는 전교생 중 앞에서 세 번째고―――
배운 지 얼마 안 되는 존대말로 더듬더듬 말하는 파릇파릇한 유사의 순정은 보석처럼 너무나 눈부셔서 내 망상 속에서도 더럽힐지 그만둘지의 선택지가―――
언제나 슬픈 고민과 함께 왔다갔다 흔들리고 있지만 그 반복사고 자체가 이미 페도 로리콤의 사고라는 자각은 하고 있다. 하고 있다니깐.
뭐, 어쨌든 흔들리고 있다.
그래, 유사가 손에 들고 있는 카레빵처럼.
타이치「카레빵이네」
유사「그렇습니다」
걸을 때마다 앞뒤로 흔들흔들 흔들린다.
양손을 쭉 뻗고 기운차게 나아가는 유사.
타이치「그거……아침?」
유사「저, 아까 저기에 사쿠라바 오빠가 있었는데」
타이치「응, 있었지」
유사「만나셨어요?」
타이치「아니, 흔적이 있었어」
유사「흔적?」
타이치「뭐, 내가 갔을 땐 없었지만」
유사「곤란하네요」
유사「카레빵 줄려고 했었는데」
길들이려고 했던 것 같다.
타이치「그 녀석, 컴뱃한테 미움받고 있으니까」
유사「요시다씨 댁의 맹견 컴뱃 말이군요」
타이치「녀석은 굉장해. 자력으로 쇠사슬이 묶인 말뚝을 뽑을 수가 있어」
타이치「나가고 싶을 때 나가고, 오고 싶을 때 오는 거지」
유사「컴뱃은 일반인은 공격하지 않아요」
타이치「진짜 사나이란 건 그런 거야」
유사「사나이……였나요……」
타이치「지금은 복실해져버리긴 했지만, 녀석에겐 군인의 피가 흐르고 있으니까」
타이치「인간으로 치면, 전쟁에서 돌아온 후 사람이 좋아진 퇴역군인 비슷한 거지」
타이치「하지만 사쿠라바만은 공격해」
유사「신기하네요」
타이치「신기하지」
느긋한 페이스로 걷는다.
유사「이거 어쩌지……」
유사「배 고프세요?」
타이치「하나씩 먹을까?」
유사「네」
둘이서 카레빵을 먹었다.
타이치「학교 다닐만 해?」
유사「아직 좀」
타이치「괴롭힘 같은 건?」
유사「전혀 없어요! 다행이에요―!」
타이치「그렇겠지」
천하제일 군죠학원. 군죠 만세.
타이치「만일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텐 고등부에 아는 사람 잔뜩 있쪄요―라고 말해버려」
유사「네」
아주 기쁜 것 같다.
유사「이제 있쪄요라곤 안 하는데요」
수줍어한다.
타이치「핫핫하」
옛날 그거 가지고 조금 놀렸던 적이 있다.
타이치「담임은 사카키바라 선생님이었지?」
유사「네」
타이치「좋은 선생님이야. 운 좋네」
취미는 미소녀 피규어 수집이고 살짝 갔긴 하지만.
유사「아하하하, 다행이네요」
유사「……반 아이들도 다들 열심히 살아가고 있어서, 아주 즐거워요」
타이치「그래」
유사「엄마도 계시고요」
타이치「그렇지」
타이치「여차할 때는 그 분이 출동하시면 그만. 와아 유사, 네 인생 무사평안이구나」
유사「그런데……저……」
타이치「응?」
유사「선생님이 교환일기를 쓰라시던데」
타이치「그런 수업 있었지, 옛날에」
교류 HR이었던가.
타이치「나, 반에서 혼자 남아서 말야, 고등부 사람하고 했었어」
유사「아, 저도 혼자 남았어요」
타이치「응?」
유사「저희 반 홀수니까요」
타이치「아아……그럼 선생님하고?」
유사「아뇨, 저기, 그래서 말인데요」
가방 속에서 뒤적뒤적 노트를 꺼낸다.
유사「타이치 오빠한테 부탁해도 될까요?」
컬러풀 그린 노트.
희미한 민트향.
타이치「좋아, 하지!」
양 주먹을 불끈 쥐며 외친다.
유사「……」
타이치「왜 그러는가, 아가씨」
유사「아, 에, 저기……괜찮아요? 좀 더 생각해 보지 않아도?」
타이치「물론이지」
유사「시원스럽게……」
타이치「그 노트가 일기? 첫날 일기는 벌써 썼어?」
유사「네, 넷, 여러가지요」
타이치「여러가지?」
2차 성징 이전 미소녀의 여러가지 일.
이 불건전한 단어의 일람이, 나를 한없이 미치게 만든다.
하지만 유사 앞에서는, 조금이라도 망가지면 안 된다.
일명 이성의 배수진.
타이치「그거 궁금한데」
앞머리를『사르랑』하고 쓰다듬는다.
소녀의 시선이 내 백발을 따라간다.
정신을 차리자 조금 쪽팔려졌다.
그러고 보니 이전에, 코○트 소설에 나오는 왕자님이 분명히 백발의 미남이었던가.
뜨거운 이야기였다.
그렇다 하면 난, 왕자님의 이미지로 인식되고 있는 걸까.
그럼 좋겠는데…….
아니지……얼굴이……안되잖아…….
결국은 소망에 지나지 않는다.
유사「조금 부끄러워요……」
타이치「진지하게 쓴 걸 보고 웃거나 그러진 않아」
유사「……」
오, 지금 건 점수 꽤 딴 거 같은데?
미키한텐 아부를 너무 떨어서 실패했었지만 말야.
끝내는 밑천도 바닥나버렸고.
지금은 단순한 놀이상대로 전락해버렸다.
쉣!
생각하면 할수록 분하다!
이번에야말로 잘 해서, 잘만 되면 다 된 밥상의 미처녀다(의미불명).
이성 이성, 신사 신사.
타이치「그거 받아도 될까, 프로이라인?」
유사「후로이라잉?」
타이치「섬머 웁스」
무심코 어려운 단어를 써버린 나 자신을 여름의 감탄사를 사용해 책망했다.
타이치「귀여운 아가씨라는 뜻이야」
소녀의 눈물을 부드럽게 닦는다.
유사「왜 그러세요? 제 눈에 뭐라도 묻었나요?」
안 울고 있었다.
타이치「사랑스러운 아가씨라는 뜻이야」
유사「에……」
태연하게 넘기는 나.
순간 유사의 얼굴에서, 표정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그리고 장미가 피어나는 것을 방물케 하는 새빨간 부끄러움의 빛깔로―――물들지 않고,
유사「엣취!!」
재채기를 했다.
축축한 재채기였다.
유사「아, 죄옹압……아」
마지막의『아』는 민감한 부분을 들키고 나서 무심코 흘려버린 핑크빛 청춘의 숨결은 결코 아니다.
그녀의 눈이 어느 것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흘러나온, 작은 놀라움의 소리였다.
나와 유사의 사이에, 다리가 이어져 있었다.
한쪽 끝은 내 교복, 딱 복부 근처.
다른 한쪽 끝은, 유사의 코.
즉.
유사「하, 하레?」
콧물다리 완성.
점성이 높은 액체가,
주르―륵
하고 늘어져 현수교를 만들고 있던 것이다.
내 추리는 이렇다.
재채기를 한 박자에 맞춰, 튀어나온 콧물탄은 신칸센보다 빠른 초속으로(사실) 내 교복에 달라붙었다.
접착력이 강한 액체는 마치 총알처럼 소녀의 비강에서 빠져나와 보통의 경우엔 끊어져버리는 접합부분을 운 좋게 이어서, 다리 완성에 이르렀다.
유사「…………」
유사도 간신히 그 사태를 이해한 것 같았다
안색이 새파래진다.
손끝 하나 움직이지 않는다.
아니, 움직일 수 없는 것이겠지.
젊디젊은 처녀가 자신의 콧물을 이성의……그것도 쾌남아에다 긍지 높은 귀공자(착각)인 나의……의복을 향해 발사해버렸으니.
※일부, 부적절한 표현이 있습니다.
자칫 잘못하다간,
『콧물 공주』
『콧물 아가씨』
등등의 지극히 유치하고 잔인함으로 가득 찬 칭호를 수여받을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언제나 놀릴 거리를 찾고 있다.
상대가 약하면 약할수록.
한없이, 한없이.
유사「아우……앗, 이건……저기……」
극도의 긴장에 의한 현상일까.
왕방울만하게 커진 눈동자에, 눈물이 가득 맺혔다.
안돼!
이 아이에게 새로운 트라우마를 줄 수는 없다.
아틀란티스의 피를 계승한 미남 백발왕자가 나설 차례였다.
소녀가 착란 증세를 일으키는 것보다 빨리, 냉정하게 손수건을 꺼냈다.
그리고 우선, 유사의 코 끝을 닦았다.
유사「……우으?」
이상한 소리를 냈다.
뿌리를 끊고 나서, 몇 번 반복해서 코 밑을 닦는다.
그리고 콧물다리를 철거해 가며, 내 교복을 가볍게 문질렀다.
손수건을 주머니에 넣는다. 넣으려 했다.
유사「아, 안돼, 안돼요!?」
타이치「응―?」
유사「그런 더더더더러운, 아, 그건 안돼요, 버리지 않으면, 저, 저기」
유사「새 거 사드릴게요!」
타이치「됐어」
명랑하게 웃는다.
타이치「자, 가자」
유사「그러니까, 저기, 죄송합니다, 그치만 손수건」
이번에는 진짜로, 엄지손가락으로 눈물을 닦아준다.
타이치「내 손수건은 귀여운 후배를 곤란하게 만들고도 참고만 있을 손수건이 아냐」
유사「……!!」
소녀는 큰 충격을 받았다.
타이치「변상은 됐고, 감기엔 조심하는 게 좋아, 유사양」
땅하고 머리를 가볍게 두드리고, 걷기 시작한다.
유사는 멍하게 서 있었다.
타이치「헤이, 학교 가자고, 아가씨」
유사「……하」
유사「네엣」
종종걸음으로 달려 와,
유사「……」
타이치「응?」
내 손을 잡았다.
귀까지 빨개진 얼굴을 숙인 채로.
귀엽다. 무지하게.
손수건 한 장으로 획득한 소녀의 호의가 그렇게 싸구려로 여겨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동시에 그녀와 으쌰으쌰를 해서 내 아이를 낳게 만들고 싶다고 생각해버린 나는 뇌가 썩어버린 게 틀림없었다. 뒈져라, 뒈져버려라.

토오코가 있었다.
뭐랄까, 맨날 일등이네, 이 녀석.
타이치「안녕」
토오코「……(흥)」
쌩?
쌩이십니까.
타이치「팬티……」
토오코「유치하긴」
타이치「팬티 안 살래?」
토오코「왜 내가 네 팬티를 사야 되는 건데!」
책상을 박차고 일어나는 토오코.
타이치「아침부터 뜨겁구나」
엄지손가락을 세운다.
토오코「……」
토오코는 내 엄지를 꽉 잡고, 가로로 꺾었다.
타이치「꺄아아아아아아악!!」
타이치「바보―, 꺾으면 어떡해―! 이러면 디디알도 마음껏 못하잖아―!」
손목을 같이 꺾었기 때문에 괜찮긴 하지만.
토오코「말 걸지 마」
타이치「어제 티비 봤어?」
토오코「말 걸지 마!」
타이치「……음」
말 걸지 말라고 자꾸 그러니, 말 걸고 싶어진다.
말을 걸면, 또 말 걸지 말라고 하겠지.


ㆍ話しかける (말을 건다)


타이치「어이, 반항기에 접어든 건방진 아가씨」
토오코「하아……?」
타이치「이걸 주지」
아침의 샌드위치를 꺼낸다.
뚫어지게 바라보는 토오코.
토오코「뭐야, 이거」
타이치「팥만두」
토오코「웃기지 마! 샌드위치잖아!」
타이치「알고 있네」
타이치「자」

토오코「……그만 해」
손을 채였다.
샌드위치가 떨어졌다.
줍는다.
타이치「밥은 제대로 먹어?」
토오코「너하곤 상관 없어」
고개를 돌린다.
타이치「자기를 걱정해 주는 인간이 자기밖에 없다는 건, 괴롭지 않아?」
토오코「무슨 말 하는지 모르겠는데」
타이치「다른 사람한테 배려받고 싶다」
타이치「마음을 채우고 싶다」
토오코「……」
타이치「나, 조금은 걱정하고 있는데 말야」
찌릿하고 나를 노려본다.
토오코「말은 잘 하네」
토오코「걱정하고 있는 거라면, 왜, 어째서!」
울컥한다.
타이치「아, 지금은 별로 화나게 하려 한 건 아닌데」
짝―
뺨을 맞는다.
전혀 아프지 않았다.
토오코「……으으……」
토오코는 나를 때린 뒤, 풀썩 주저앉았다.
타이치「저기?」
토오코「……으응…………」
눈시울을 누르는 그 얼굴이 새파랬다.
타이치「……토오코」
곁에 앉는다.
토오코「이름 부르지 마……」
쥐어 짜내듯이 말한다.
그 순간, 이마에 땀이 맺혔다.
타이치「어디 아파?」
토오코「……」
타이치「이런 상황이잖아. 휴전하자」
이제 의사는 없으니까.
타이치「토오코!」
토오코「앞이 안 보여……」
실명?
순간 오싹해진다.
타이치「다른 덴?」
토오코「기분이 나빠. 울렁거려……토할 것 같아」
타이치「토할래?」
토오코「……싫어」
타이치「그럼 누워 봐」
뉘였다.
토오코는 저항하지 않았다.
타이치「눈은 어때?」
토오코「새카매……」
실명일까.
그거라면 차라리 다행.
위험한 질병이나, 내장과 관련된 큰 부상보다는 낫다.
타이치「침착해. 동요하지 말고」
토오코「…………괜찮아」
타이치「요 몇일간 몸에 이상은 없었어?」
토오코「없었어」
타이치「눈에 극약을 넣었던 적은?」
토오코「없어」
으―음.
원인이 뭘까.
토오코「아……」
타이치「왜 그래?」
토오코「조금씩 보여」
안도.
타이치「그럼 빈혈이겠네」
토오코「빈혈?」
타이치「그런 증상이 날 때가 있어. 기분 나쁜 것도 그것 때문이야」
토오코「그래……」
타이치「기분 나쁜 건?」
토오코「조금……편해졌어……」
타이치「……정말로, 제대로 먹고 있어?」
토오코「…………」
무언은 부정을 나타내고 있었다.
타이치「식욕이 없어서?」
토오코는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토오코「……여름엔 입맛이 없어」
타이치「하지만 빈혈이 일어나는 건 안 좋아요, 선생님」
타이치「오늘은 뭐 먹었어?」
토오코「…………」
아무것도 안 먹었나…….
타이치「자, 모래와 마녀」
토오코「……어?」
타이치「샌드위치」
타이치「모래와 마녀를 끼워 먹었다는 신화가 유래야」
유래&어원을 중시하는 찐따 녀석들이 속을 듯한 나이스 구라.
토오코「…………」
토오코는 눈시울을 비볐다.
타이치「눈은 어때?」
토오코「보여」
타이치「자」
토오코의 손이 천천히 올라가, 그것을 잡았다.
타이치「좋아좋아」
토오코「나 애완동물 아냐……」
태클에도 힘이 없다.
타이치「손수 만든 거라고」
부스럭부스럭 랩을 벗기고, 살짝 입에 물었다.
토오코「……차가워」
타이치「아침에 만든 거니까」
토오코「커서 못 먹겠어」
타이치「내 거니까」
토오코「겨자가 너무 많아」
타이치「매운 거 좋아하니까」
토오코「…………」
타이치「그래서, 맛 없다고?」
토오코「…………맛있어」
타이치「그럼 천천히 먹어」
토오코「훌쩍」
코를 훌쩍거렸다.
분한 것 같다.
에휴휴.
토오코「읏」
입가를 손으로 막았다.
타이치「토할래?」
고개를 젓는다.
억지로 꿀꺽 삼킨다.
토오코「……뭐 마시고 싶어」
타이치「마이 수통」
타이치「멸망 세계의 필수품」
건넨다.
토오코「……」
꽤나 주저하다가,
입을 대고,
통을 들어올렸다.
목이 튀어나와, 수분을 섭취한다. 왕성하게.
타이치「……물 정도는 마시고 있지?」
토오코「그치만, 물이 안 나오잖아」
타이치「타자키 상점」
토오코「……갔었는데」
토오코「돌아오는 도중에 넘어져서, 고개 밑으로 전부 떨어트렸어」
타이치「덜렁이냐 넌」
타이치「가게에서 다시 가져오면 되잖아」
토오코「……그럼 또 메모 써야 되니까」
토오코「다른 사람들한테 들키면……」
타이치「앙?」
그런 이유만으로?
체면 문제만으로?
타이치「네 생명이 우선이잖아!」
토오코「그치만」
울 것 같았다.
타이치「하―, 키리하라 선생, 그건 좀 심한 개근데?」
토오코「섬세한 거야!」
타이치「사람이 사라졌으니, 그런 가치관은 이제 의미가 없어」
모든 것이 허용된다.
요구되는 것은.
살아가는 힘.
그것은 순수한 객체로서의 인간.
모든 욕망이, 지금까지 하찮게 여겨왔던 욕구에게 지배된다.
토오코에게 그것이 가능하리라곤 생각되지 않는다.
아니.
난 이미 알고 있다.
토오코의 처절한 약함을.
눈치챘다.
이 녀석은 이젠 한계란 것을.
인류가 멸망하고, 가족도 사라지고, 그 넓은 저택 같은 집에서.
혼자서.
타이치「……지금부터, 여덟 명이서만 살아가야만 돼」
토오코「……………………」
침묵이 무겁다.
토오코「모두 죽을 거야」
타이치「죽지」
누구든 죽음에서 도망칠 수는 없다.
타이치「문제는 언제, 어떻게 죽는가야」
토오코「이런 건……말도 안 돼……사람들이……사라지다니」
타이치「하지만 현실이야」
몰아세웠다.
타이치「세계는 인간을 지워버렸어. 우리들만이『사람들』이야」
토오코「난 견디지 못해……」
타이치「으―음」
이 흐름은…….
별 수 없을 것 같다.
연관된 것이다. 내가 원해서.
내가 토오코와 쌓고 싶었던 관계는, 결코 벌꿀과 같은 달콤한 것만은 아니었지만.
이 무너지기 시작한 소녀를 방치한다는 선택은 없었다.
도중에는 괜찮다.
하지만……종반에 다다르면?
어쩌지?
나는 어쩌지?
이제 도망칠 곳은 없다.
토오코 루트라고도 할 수 있는 흐름을 타고 갈 때까지 가서, 거기서 모든 것이 붕괴된다 해도.
이번에는 그 종말까지 함께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완숙이 되는 고통에 시달리면서.
타이치「도무지 견딜 수 없다면」
토오코「어……?」
토오코는 민감하게 반응했다.
입을 꼭 악문다.
토오코「……도무지, 뭐?」
타이치「아니, 그거, 전부 먹어도 돼」
일어난다.
타이치「있잖아」
토오코「……으구?」
샌드위치를 먹고 있는 토오코.
타이치「왜 인간이 멸망했다고 생각해?」
창 밖을 본다.
무엇을 기대하고 물어본 건 아니다.
토오코「멸망하지 않았어」
어처구니없게도 철학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토오코「……점점 옅어지면서 사라져버린 거야」

밤에 덥지 않은 게 시골의 좋은 점이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은 적당히 시원하고, 촉감도 부드럽다.
타이치「……배고파」
적당히 혼잣말을 하며, 일기를 써나간다.
꾸르르르르르르르르륵
밥벌레가 요란벅쩍하게 포효를 한다.
마치 자신을 둘러싼 분수를 모르는 녀석들에게 적의를 드러내는 사자처럼.
밥벌레『임마, 밥 처먹어! 처먹으라고!』
타이치「시끄러. 뭐야 너, 개그하냐?」
밥벌레『배고파! 아무거나 처먹어! 배고파 뒤지겠다고!』
타이치「성질 급한 녀석. 하기와라 사쿠타로의 시에 나오는 낙지처럼 네 다리라도 먹어. 전부 먹으면 영원의 존재가 될 수 있을 거야」
밥벌레『좆까지 마! 깔보는 거냐!』
타이치「그렇다면 어쩔 건데? 응?」
밥벌레『패주는 수가 있지!』
타이치「해 봐, 공상의 산물 주제에」
밥벌레『놀라지 마라! 난 스위트하게 자란 연예인 뺨치는 외모의 야쿠자라고?』
타이치「후―, 그거 멋진데. 하지만 너의 스위트 가이 흉내도, 육체라고 하는 우리 안에서는 실형 판결로 유치장에 들어간 연예인 뺨치는 놈에 불과하다는 걸 잊지 마」
밥벌레『이 자식, 듣자듣자 하니까!』
뭐, 나 정도의 인간이면 이렇게 관념적인 존재와도 의사소통이 가능한 것이다.
그런 걸 일반적으로는 싸이코라고 하지만 그런 거지만.
신경 안 써! (울고 있다)
타이치「하지만 진짜로 배는 고프군요」
아무거나 먹자.
아래층으로.
냉장고 안은 텅 비어 있었다.
뭐 전기도 안 들어오니, 아무것도 보존하진 못하지만.
찬장을 뒤진다.
빵도 없다.
육포도 없다.
꿈과 희망이 있다.
……이건 완전히 암울해지기 전까지는 아무 도움도 되지 않기 때문에 버린다.
후추가 있다.
감자도 있다.
소스를 손에 넣었다.
소금을 손에 넣었다.
설탕을 손에 넣었다.
타이치「맛있겠다!」
책상 위에 그것들을 늘어놓는다.
타이치「잘먹겠습니다―!」
사각……사각…….
면도할 때와 비슷한 소리를 내며, 소금을 뿌린 생감자를 갉아먹었다.
타이치「호―, 이것이 생감자의 풍미인가, 우갸갹……적당히 단단하고, 마치 돌처럼……」
타이치「켁, 이딴 걸 어떻게 먹어! 시부럴!」
던졌다.
타이치「퉷퉷, 싹까지 먹어버렸다! 독인데! (사실)」
그리고 나는 눈치챘다.
타이치「먹을 게 없어!?」
순간 멍해진다.
타이치「그래,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푸풉!」
굶주린 민중이 들으면 틀림없이 포복절도할 나이스 개그다.
그런 정도의 아량이 백성에게도 있다면.
타이치「그런 연유로 피자를 시키겠습니다」
전화를 걸었다.
타이치「실례합니다 쿠로스입니다만 더블치스페 M 한 판……」
※더블치스페=현실어. 더블 치즈 스페셜의 약자. 진짜로 이렇게 부른다.
타이치「멸망했었지 참」
풀썩 쓰러져 운다.
타이치「아―, 아직 제패하지 못한 메뉴가 있는데―!!」
인생 후회투성이.
타이치「그래, 감자가 있었지」
그걸 삶으면 된다.
밖으로 나갔다.
서바이벌 만화를 참고해서 화덕을 준비한다.
타이치「다 됐다……」
삶는 건 귀찮아서, 굽기로 한다.
여기서 간단 버터 감자 만드는 법.
불을 지핀다.
춤춘다.
돌을 달군다.
감자에 하나 하나 이름을 붙인다.
호일에 싼 감자를 창자가 끊어지는 심정으로 돌에 던져서 올려놓는다 (풍미가 늘어난다).
기다린다.
운다.
기다린다.
눈물을 닦는다.
기다린다.
슬픔을 참고 견뎌 인간으로서 성장한다.
기다린다.
기다림을 멈춘다.
밥벌레를 멈춘다.
꺼내서 접시에 찍는다.
버터……는 없으니까 소금을 뿌린다.
버터 감자가 아니잖아? 하는 사소한 의문은 생략한다.
먹는다.
타이치「아뜨뜨」
하지만 맛있다.
살아 있구나, 나.
현관 앞에서 사람이 쓰러지는 것이 보였다.
타이치「푸훕」
달려간다.
키리하라 토오코였다.
토오코「으으으」
난 감자를 꾸역꾸역 먹으며, 토오코를 내려다보았다.
토오코「으으으」
난 두 개째의 감자를 먹기 시작한다.
토오코「……아무나……」
난 세 개째의 감자를―――
토오코「빨리 도와줘……」
타이치「말했다」
토오코「으으……」
괴로워 보인다.
타이치「왜 그래?」
토오코「……먹을 거 냄새가……」
타이치「흠. 그 냄새를 더듬어 여기까지?」
토오코「…………」
반응이 없었다.
타이치「…………」
난 세 개째의 감자를 다 먹고서, 토오코의 몸을 잡아 일으켰다.
우적우적우적
토오코가 감자를 먹는다.
타이치「……」
소금도 안 치고.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는 듯이.
사납게, 용맹무쌍하게, 철저하게 먹는다.
생각해 보니, 사람 앞에서 먹는 걸 부끄러워하던 토오코.
이런 모습은 보기 드물다.
타이치「……닛타」
토오코「……우적……우적」
타이치「……카사이」
토오코「……우적……우적」
타이치「……우가진」
토오코「……아까부터 뭐라는 거야?」
타이치「네 혈액이 된 생감자 나라의 무고한 백성들의 이름이다」
토오코「하앙?」
감자 부스러기를 뺨에 묻히고, 토오코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타이치「신경쓰지 마」
타이치「생명은 돌고 도는 거니까」
합장.
토오코「……하?」
타이치「괜찮아괜찮아」
잠시 동안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다시 덥석 물었다.
토오코「……우꺄악」
사지가 뻣뻣해진다.
타이치「자 물」
패트병을 건넨다.
토오코「꿀꺽꿀꺽……」
남김없이 마신다.
토오코「아구아구」
다시 먹기 시작한다.
어른스러워 보이지만 역시나 꼬맹이야, 이 녀석…….
일고여덟 개 정도 먹어치우고, 토오코는 겨우 한숨을 돌렸다.
토오코「……차분해졌어」
타이치「그거 잘됐네」
토오코는 매무새를 정돈했다.
고개를 숙이고, 눈을 힐끔 치켜떠 나를 본다.
그리고, 나도 토오코를 본다.
가만히 본다.
토오코「……보지 마」
얼굴을 붉히고 푹 숙인다.
귀여웠다.
조금 두근거렸다.
타이치「아, 아니 뭐. 네가 째려보길래 그만」
토오코「고맙다고 하려고 한 거야!」
타이치「아―, 네, 천만에요」
토오코「응……」
재시도.
토오코「고, 고, 고」
토오코「……고, 마워」
어색했다.
타이치「됐어」
타이치「설마 굶고 있을 거라곤 생각 안 했어」
토오코는 더욱 얼굴을 붉혔다.
타이치「집에 음식 없었나요?」
토오코「있었는데……」
토오코「어떻게 조리해야 될지 몰라서」
타이치「네?」
타이치「그치만 옛날에 요리 잘 한다고……」
토오코「미안해……」
토오코「그거, 거짓말……」
타이치「거짓말!」
두―웅.
토오코「미안」
타이치「어라, 근데 옛날에 도시락도 만들었지……」
토오코「가정부 아줌마가 만든 걸 내가 만든 거라고 한 거야」
두―웅두―웅.
타이치「가정부라니……몇 살이신데?」
토오코「45살 정도……」
두―웅두―웅두―웅.
타이치「……아줌마의 도시락에……난……두근거리며……」
토오코「미안해……」
타이치「너무해」
나는 쓰러져 울었다.
그런데.
타이치「그럼 집에 고기나 통조림 같은 건 있지?」
토오코「통조림이 뭐야?」
타이치「리얼리―!?」
통조림의 존재를 몰라?
통조림이란 단어를 몰라?
토오코 백과사전에는 통조림이란 두 문자가 없어?
어? 아니 뭐 부자란 건 알고 있었지만……에, 정말인가요?
타이치「캐비어는 통조림에 들어 있는 거 아냐?」
덜덜 떨면서 묻는다.
토오코「병이 있어. 매주 외국에서 나무상자 안에 넣어서 보내 와」
일상적으로 먹고 있어어엇!?
타이치「케이크가 없으면 캐비어와 빵을 먹으면 되는 거냐 부자 녀석아!」
토오코「왜, 왜 화내는 거야? 그리고 케이크라니……???」
타이치「캐비어여―! 이런 가치를 모르는 여자에게 먹히다니! 오오오!」
의인화해서 동정했다.
토오코「왜 우는 거야」
타이치「그러니까! 그 멋진 캐비어는 어떻게 된 건가 묻는 거야!」
토오코「이번주는 안 왔어. 어제 안 왔으니까」
타이치「지난주 건?」
토오코「지난주엔 전혀 안 먹어서 안 뜯었는데……버렸어. 상할 거 같았거든」
타이치「간다!!」
내 몸은 팟하고 젖혀졌다.
그대로 땅바닥에 쓰러진다.
토오코「꺄앗!? 왜 그래?」
그 자세를 유지한 채로, 전신을 경련시킨다.
타이치「캐비어……버렸다……좀 있으면 상하니까……상하기 전에 버렸다……」
토오코「입에서 거품이!?」
타이치「내가 중국 주식으로 한푼 두푼 모았던 전 재산을 날려버렸는데……」
타이치「넌 캐비어를 버렸다고!!」
토오코「뭐가 뭔지 모르겠어……」
타이치「그러니까 부자는!」
토오코는 고개를 숙였다.
토오코「……돈 같은 거, 이젠 의미 없잖아」
타이치「그야 그렇지만」
토오코「쿠로스는 요리 잘해서 좋겠어
타이치「요리랄까, 그냥 구웠을 뿐인데」
보통 아무나 하잖아.
사이토 타○오의 도움도 있었지만.
토오코「……귀찮아. 그저 살기 위해서 노력해야만 한다니」
부자의 발언.
이 여자의 집에는, 가정부가 있다.
흔히 말하는 메이드.
토오코 아가씨.
즉, 스스로 무언가 하지 않아도 수동적으로 살 수 있었던 것이다.
타이치「키리하라는 혼자선 살아갈 수 없는 거구나」
토오코「……시끄러」
힘없는 반론이 그걸 긍정했다.
타이치「수동적인 녀석……」
토오코「저기」
타이치「응?」
토오코「……여기 살면 안 돼?」
귀를 의심했다.
진짜로 약해져 있구나, 이 녀석.
그렇게 말했겠다.
달리 의지할 상대가 없는 건 확실하고.
필연적으로 나밖에 없는데.
우와, 복잡.
하지만 토오코와 난―――
으으으으으 (고뇌).
타이치「조, 좋아」
토오코「에!」
제안한 본인이 놀란다.
토오코「저, 정말?」
타이치「……」
타이치「토오코를 굶주리게 할 수는 없잖아?」
토오코「방금 그 침묵은……」
타이치「밥의 유혹에 홀려 헤롱거리는 굶주린 하라키리 늑대를 바깥에 풀어놓은 채로 둘 순 없으니까」
토오코「…………」
가드했다.
타이치「……응?」
공격은 없었다.
토오코「저, 저기, 바로 갈아입을 옷 가져올게」
타이치「뭐엇!?」
토오코「바로 올게」
달려나갔다.
타이치「웨이트! (기다려!)」
발목을 잡았다.
콰당―!
토오코「어버어버어버……」
토오코는 땅바닥과 키스했다.
잔디라 다행이다.
타이치「잔디라 다행이다」
진심으로 안도했다.
토오코「코가……매일 빨래집게로 세운 내 코가……」
그런 짓을 하고 계셨습니까.
토오코「뭐하는 거야!?」
타이치「진짜로 여기 살 거야?」
토오코「살 거야! 벌써 결정했어!」
타이치「게다가 부끄러움도 없이……」
타이치「넌 사람을 퍽퍽 때리는 지기 싫어하는 성격의 부잣집 아가씨지만 가만히 보면 나를 묘하게 따르는 추종적인 히로인이란 말야!!」
토오코「……의미를 모르겠어」
사르랑하고 뒷머리를 쓰다듬었다.
타이치「방금 전까지 얌전하고 기특했건만!」
토오코「다짐을 받았으니 이제 얌전할 필요는 없지」
타이치「아―아, 아아아아―아, 날 속였군―!」
토오코「경찰이 없으니까 칼도 당당하게 가져올 수 있겠네」
타이치「으으윽!?」
그 요도(妖刀) 하라키리마루를 우리 집에!?
타이치「히이이이이이이이익, 사람 살려―! 여기 칼을 겁나게 잘 다루는 무사 아가씨가 있어요!!」
토오코「사람, 이젠 아무도 없잖아」
그랬습니다!
토오코「그리고, 잘 생각해보니 이건 정당한 권리야」
타이치「엉?」
토오코「안 된다고 말할 거면, 내놔」

한 손을 내밀었다.
타이치「『옆집 사는 야한 여동생 18세』라면 이미 반납했는데……」
토오코「에로 비디오 따위 안 빌려줬어!」
토오코「더 소중한 거야. 자, 내놔」
휙휙
더 소중한 것.
타이치「『두근두근 부르마 스쿨』도 반납했을 텐데……」
토오코「매니아 비디오도 안 빌려줬어!!」
토오코「내 소중한 거! 네가 뺏어갔잖아!」
타이치「아아」
고개를 크게 끄덕.
타이치「뭐더라?」
토오코「치매야 넌!?」
토오코「……………………처녀 말야」
타이치「보○?」
쿠당―!
토오코「고막을 쑤셔버릴라―!」
타이치「꺅―」
만용 작렬.
토오코「어쨌든 살 거야! 살 거라고! 짱박혀서 눌러앉고……살 거야! 이미 결정! 가결!」
타이치「한 명으로 과반수 처리―!?」
토오코「바로 짐 가지고 올거야!」
발뒤꿈치를 돌렸다.
타이치「잠깐잠깐」
토오코「또 뭐야?」
타이치「……음―」
어쩔 수 없나.
타이치「……어떻게든……그 선에서 납득하지……음, 좋아」
토오코「투덜대고 있어」
타이치「OK, 자네의 입국을 허가하지」
타이치「단 오늘은 너무 이르다. 내일로 하지 않겠나」
타이치「방 청소 같은 거도 안 했고」
토오코「그, 그렇겠네……」
타이치「내일 올 거면, 나도 짐 옮기는 거 도와줄 테니까」
토오코「정말?」
환하게 퍼지는 토오코 스마일.
타이치「……응」
나의 예술이…….
토오코「어쨌든, 바로 가서 준비해야겠어」
타이치「그래」
토오코「갈게」
터벅터벅.
토오코「그럼 내일 봐. 가던 대로 학교로 갈 테니까」
타이치「네네」
토오코「꼭 와!」
타이치「네네」
점점 작아지는 토오코.
나는 계속 천천히 손을 흔들었다.
귀찮게 됐네…….


교실에 들어간다.
토오코「아, 타이치……」
달려온다.
'목욕 먼저 할래요 아니면 밥부터?'라고 말할 듯한 기세와 태도다.
타이치「목욕하면서 밥을 먹겠다」
토오코「……후아?」
타이치「안녕」
토오코「아, 안녕」
타이치「진짜로 왔네」
토오코「당연하지」
타이치「……짐은?」
토오코「집」
토오코「그러니까, 갈 때 같이 가자?」
타이치「네―에」
으―음.
권태감이랄까.
속도위반 결혼을 앞둔 건달 22살이 딱 이런 기분일까나.
토오코「짐, 뭐 가져갈까 고민하면서 여기저기 찾아 봤어」
토오코「그랬더니 낡은 사진이 나오더라?」
기쁜 듯이 말한다.
타이치「호오, 낡은 사진이라」
타이치「낡은 사진이라면, 나도 잔뜩 가지고 있어」
토오코「정말? 가지고 있었구나」
타이치「……」
낡은(발매금지판) 사진(집)이라면, 나도 잔뜩 가지고 있어.
거짓말은 안 했다고.
토오코「안 버려서 다행이다……벽에 붙여두려고」
토오코「벽이 꽉 찰 정도로 있었어」
타이치「헤에―」
놀라 본다.
토오코「후훗」
팔짱을 꼈다.
급전개!
제길, 역시 이 여자는…….
난 도구가방에서 아이템을 꺼냈다.
※도구가방=타이치굿즈. 타이치가방이라 불린다. 캔버스지로 만들어진 배낭형 가방. 비밀 도구가 잔뜩 들어 있다.
그것을 잽싸게「장착」했다!
타이치「이걸 봐라, 키리하라」
토오코「팔찌?」
아가씨는 바라보았다.
토오코「……닭살 커플……반대……」
토오코「닭살 커플 반대」
붙여서 말하는 토오코.
타이치「그렇다. 난 닭살 커플이 환경에 미치는 중대한 영향을 주목하고, 강경한 태도로 그 행위의 규제 및 억제에 힘쓰고 있는 입장이다」
타이치「팔짱 금지」
뿌리친다.
토오코「하, 항상 있는 일이지만……무슨 말하는 건지 모르겠어」
타이치「사람 앞에서 노골적인 애정표현은 삼갈 것」
토오코「사람 같은 거, 이제 없잖아……」
타이치「조금 있어」
토오코「우―」
불만스러운 듯.
타이치「키리하라, 네가 전형적인 지기 싫어하는 성격의 부잣집 아가씨인 건 좋아」
토오코「하아?」
타이치「하지만 조금만 응석부리면 너무 늘어져! 눅눅하단 말야! 좀 더 철저한 고집쟁이 성격으로 가자! 수줍어할 때도 의연하게. 그 쪽이 모에……키리하라를 위해서야」
토오코「으, 응……」
타이치「넌 보석 같은 여자야」
어깨에 손을 얹고 말한다.
토오코「엣 (두근)」
타이치「그 반짝임은 다이아몬드보다 밝고……하지만 슬프게도, 다이아몬드는 탄소라 불로 태우면 타버리지. 갓뎀. 일생을 걸쳐 축적한 부를 다이아로 보존하는 행위의 어리석음을 잘 알아둬야 한다는 거야」
머리카락을 잡고 코 끝에 가져가, 향기를 즐긴다.
토오코「???」
타이치「일장일단. 그걸 알아 둬, 나의 멋진 숙녀여」
토오코「잘 모르겠지만, 알았어」
타이치「알아주었는가」
토오코「……타이치, 부끄러워하는구나. 사람 앞에서 그러는 거」
타이치「아네?」
너무나도 빗나간 이해에, 아내와 동의어로 들릴 수도 있는 반문이 입을 통해 나왔다.
토오코「귀여운 면도 있네」
찰싹, 하고 등을 얻어맞는다.
귀여움받고 있어?
이 추형 공포증으로 널리 알려진 쿠로스 타이치라는 존재가, 귀여움받고 있어?
용납할 건가, 그것을?
안되지!
타이치「이봐 키리하라!」

뽀뽀당했다.
뺨이었다.
내 두근두근 회로는 순간 멈췄다.
토오코「……에헤헤」
쑥쓰럽게 웃는다.
이, 이…….
제기럴!
귀엽잖아!
토오코「꺄?」
안아버렸다.
큭, 허를 찔렸다.
하지만 이제 유혹당하지 않아!
토오코「……야옹야옹」
그런 의성어에 넘어갈 거 같냐 이 내가!
토오코「야옹야옹」
토오코가 고양이를 흉내내며, 가슴팍을 펼쳤다.
타이치「후냥~~♪」
바로 넘어갔다.
닭살 커플 여기에 강림.

화장실 갔다오는 길.
토모키와 조우했다.
타이치「토모키―――」
토모키「타이치」
타이치「와하하, 수업 땡땡이쳤다네. 수업 중의 복도는 독특한 세계로군」
토모키「허무하니까 관두자……」
힘없는 토모키.
타이치「공허해야 지금의 우리들답지」
토모키「맘 편하네―, 타이치는」
토모키「이제 사이코맨 다음 편은 못 읽는단 말야」
쓴웃음.
타이치「……그래」
토모키보다 먼저 읽어서 내용을 알려줄 수도 없게 되었군.
토모키「근데, 학교엔 뭐하러?」
타이치「이노센스ㆍ라이센스를 소지한 난 세상에 남겨진 10대들의 취약한 마음의 변화를 연출하기 위해 통학이라는 일상적 습관을 반복하는 행위로 정신의 허무를 비롯한 수동적인 부분을 그려내려 하고 있는 거다만」
토모키「10대들의 비뚤어진 부분에만 사로잡인 사상이네」
토모키「아직 열혈 코시엔 소년 같은 녀석들도 꽤 있잖아」
타이치「아, 그들은 포스트 모던이란 분류 속에서는 관찰 가치가 있는 인간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제외다」
휙휙 손을 젓는다.
토모키「아하하하하, 그건 그렇네―」
타이치「와하하하하, 그치―」
삐딱한 농담.
토모키의 이런 독설도 좋다.
토모키「타이치 덕분에 오랜만에 웃었어」
타이치「도움이 되어서 다행이군요」
타이치「부활동은 어때?」
토모키「훔쳐먹기 대왕이 참가하지 않은 덕분에 순조로워」
타이치「……하하하―」
내 얘기다.
토모키「타이치네는 내일 들를게」
타이치「오케이. 땡큐」
토모키「됐어」
토모키「우정은 대가를」
타이치「요구하지 않는다」
상쾌한 미소, 하얀 이빨, 마주세운 엄지손가락을 꾹 맞댄다.
토모키「그러고 보니……」
토모키「부활동은 하고 있어?」
타이치「아니, 훔쳐먹기 대왕이라며 거부당했잖아……너한테」
토모키「아니, 이쪽 말고」
순간, 말이 막힌다.
토모키「……옥상 쪽 말야」
타이치「아아, 미미미 선배」
타이치「아―, 그 동안 못 갔어……여러가지 일이 있어서」
토모키「그래……」
토모키「뭐, 그게 더 좋을지도 몰라」
토모키「……좋아, 응」
등을 돌리고, 토모키는 떠나간다.
상태가 좀 안 좋아 보이는데.
무슨 일이지?

귀로.
얌전했던 매미들이, 다시 시끌시끌 울기 시작했다.
신카와「어―이」
타이치「음……오오, 타니자키!」
신카와「코노스! 잘 지냈냐」
타이치「아아, 이 코노스 타이치, 비록 면허정지를 먹었지만 건강만은 넘쳐나지」
신카와「그건 이 타니자키 유타카도 같은데?」
타이치「간만에 보는구나, 타니자키」
신카와「그래, 코노스」
타이치「타니자키는 학교 언제부터 와?」
신카와「일단 내일부터야, 코노스」
손에 든 A4 봉투를 휙휙 흔들었다.
학교 관계 서류일 것이다.
타이치「오, 우리 반으로 와라 타니자키」
신카와「코노스, 억지부리지 마. 내가 결정하는 게 아니잖아」
타이치「와하하」
신카와「하하하」
둘이서 박장대소한다.
타이치「근데 말야 타니자키―――」
신카와「……OK 항복이다! 신카와 유타카입니다, 죄송했습니다 쿠로스씨」
타이치「아아, GG냐?」
신카와「계속 할 것 같았으니까」
타이치「집에 가는 길?」
신카와「응」
타이치「어때, 우리 집 놀러올래?」
신카와「가까워?」
타이치「여기서 10분 정도」
신카와「좋은 데 사네. 근데 미안. 다음 번에 갈게」
신카와「사촌 여동생이 말야―, 걔도 군죠 다니는데, 여러가지 가르쳐 주고 있어」
나의 귀,
그런 정보,
놓치지 않는다(훗).
신카와「왜 엄지손가락 세우고 있어?」
타이치「헤이, 거기 Guy」
신카와「뭐, 뭐야?」
타이치「진짜 미안. 사촌 여동생, 이란 말이 들려버렸어」
신카와「그러신가요 아저씨」
타이치「나이는?」
신카와「나보다 한 살 연하」
타이치「사진 있어?」
신카와「……쿠로스?」
타이치「아아, 아냐, 아무것도 아냐. 잊어 줘」
타이치「근데 참, 한 살 차이면 귀엽겠네」
신카와「응―, 뭐, 겉보기만은」
타이치「젠장할」
자연스럽게 목소리가 깔아졌다.
부러움과 질투와……증오로.
신카와「앙?」
타이치「아냐, 혼잣말」
신카와「……그래도, 조금 남자애 같아서 말야」
신카와「굳이 말하자면, 그런 감정은 없어. 뭐랄까 그런 눈으로 보려고 해도 좀 거북하기만 하고」
타이치「좆까지 마―!」
신카와「왓, 뭐야 갑자기」
타이치「그딴 건 구라야! 넌 구라쟁이다! 귀여운 연하의 친척이 있는데? 의식 안 할 리가 있냐! 넌 프랑스 서원 한 권도 안 읽어봤냐!? 말도 안 돼―! 웃기지 마―! 따라서 네가 구라쟁이라는 것이 증명되었다!」
신카와「쿠로스……애석하지만 진짜야」
타이치「싫어, 듣고 싶지 않아!」
신카와「진짜로 여동생 같은 거야. 같이 살고 있고」
동거!?
같은 침대!?
이성의 따스함!!??
타이치「이, 이봐, 그 시츄에이션에는 분명히 누군가의 엄청난 의지가 개입하고 있을 거야」
신카와「……또 야리꾸리한 착각하고 있냐―」
신카와「그 녀석 집에 내가 얹혀살고 있는 거야」
신카와「그러니까 뭐, 남매 같은 거지」
신카와「이번에 아주 이쪽으로 이사했어. 내 다리 문제도 있지만, 그 녀석도 조금 그거라 말야」
타이치「아아……」
그런 일인가.
한번에 납득.
그래서 둘 다 군죠에 다니는 건가.
타이치「어라, 그러면 자넨 동생양을 위해 따라서 전학 온 건가?」
신카와「그렇게 되는 건가. 아니, 나도 뭐 장애자긴 하니까」
신카와「그리고 친동생은 아닌데요……」
타이치「다정한 오빠구먼, 이봐」
신카와「저기, 사촌동생 사정 때문에 따라온 것뿐인데요?」
타이치「선망을 받는다는 것은 그런 거야」
신카와「그런가~? 계속 같이 살면 말야, 생리적인 문제 같은 걸 다 아니까 좀 그렇다고?」
타이치「뭐가 그래?」
신카와「겉모습은 예쁠지도 모르겠지만, 단점이 군데군데 보이니까 별로 예쁘게 보이지 않는다고나 할까?」
신카와「먹는 건 먹고, 나오는 건―――」
타이치「아, 그 다음은 됐어. 꿈은 소중히 간직하고 싶으니까」
신카와「……네 꿈이 뭔데」
타이치「너하고 체인지를 해서 동생양과 으쌰으쌰를 하고 싶다는 것」
신카와「우왓―, 상상만 해도 기분 나쁘다」
타이치「현실적으론 무리지만……」
진짜로 기분 나빠하고 있다, 이 녀석.
에로소설 만세.
타이치「그럼 다음에라도 놀러 와」
신카와「알았어―, 사촌동생도 소개해 줄게」
타이치「진짜?」
나는 부들부들 떨었다.
신카와「……별로 예쁘진 않으니까……너무 기대는 하지 마라?」
별로 예쁘진 않다.
그렇게 말한 녀석의 눈이 썩은 동태 눈깔 수준이었단 건 나중에 밝혀지게 된다.

토오코「……정말!」
귓전에 들리는 고함소리에 정신을 차린다.
타이치「네, 네에?」
토오코「멍―했어. 무시했어. 상처입었어」
타이치「저기」
타이치「나한텐 멍―할 권리도 없어?」
토오코「……미야스미 선배 생각했겠지」
타이치「남자 생각했어」
토오코「!!??」
토오코는 충격에 싸였다(보이는 그대로).
토오코「남자……싫어……그런……(홍조)」
타이치「뭐라카노」
최악이었다.
게다가 완전 어긋난 방향.
타이치「꿈꾸는 아가씨여, 너무 꿈꾸지 마」
토오코「……삼바보가 평소에 그런 분위기가 있었다면, 조금은 꿈이 있었을 텐데」
타이치「안돼 그만!」
기분 나쁘다.
그 두 놈을 상대로 순애 러브 스토리라니.
타이치『……』


ㆍ櫻庭を誘う (사쿠라바를 꼬신다)


사쿠라바『타이치, 나를 진심으로 만들지 마』
쿠우우우웅!
타이치 「어―째서 그런 기분 나쁜 생각을 하는데, 친구야 친구, 평범한!」
토오코 「기분 나쁘라고 한 게 아니라―. 적어도 삼바보가 척 보면 그렇게 보인단 거야」
타이치 「……날 포함시키지 마」
토오코 「나참, 아직도 미운오리새끼 모드야?」
타이치 「시꾸러!」
심각한 문제라고.
자학 개그로 간신히 버티고 있는데.
확실히……외모의 문제는 아닌 건지도 모르겠지만…….
알고 있지만, 의식 개혁은 그렇게 간단히 되지가 않는다.
왜냐면,
왜냐면 말야…….
타이치 「어쨌든」
타이치 「기분 나쁜 생각을 한 벌!」
토오코 「엣?」
딴따라―!
그런 효과음이 어디선가 들렸다.
토오코 「……아아앗!!」
타이치 「우―쌰!」
치맛자락을 잡고 토오코의 머리 위에 올린다.
지금, 토오코의 야시시함은 보통이 아니다!
게다가 여기는 도로.
자, 어쩔 거냐 토오코!
어쩔 거냐아아아, 진검 사무라이 아가씨! (예고편 흉내)
실은.
맞을 걸 각오하고 있었고, 기대도 하고 있었다.
하지만.
토오코 「……………………」
새촘한 눈으로 날 바라볼 뿐.
살짝 얼굴을 주홍빛으로 물들이면서.
건성으로 누른 손에, 진심으로 치마를 방어하려는 의지는 없다.
아니 아예 환히 다 보이네.
타이치「왜……화……안……내?」
토오코「……그치만, 아무도 안 보고……」
타이치「그!」
입술이 떨린다.
타이치「그렇지 않을 거야!?」
토오코「왜 치마 들춘 사람이 화내는 거야?」
타이치「슬슬 열이 받지?」
타이치「자, 너의 기술을 보여줘」
토오코「……놔 줘, 못 걷겠어」
토오코「그리고……부끄러워」
화끈
타이치「화끈이라니……」
타이치「그것뿐?」
끄덕, 하고 소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호.
니체는 말했다.
'토오코는 죽었다'라고.
태클.
토오코라는 존재가 죽었다는 것은 아니다.
토오코를 이루고 있던 성질 급한 고집쟁이 부잣집 아가씨라는 거대한 최대공약수적 가치관이 상실된 것이다.
토오코의 개성 일부가 죽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토오코는 현실적으로 되어버렸다. 또다시.
하지만 나는 항상 이를 빠득빠득 가는 토오코를 좋아하는데.
왜냐면, 그 때가 가장 안정되어 있으니까.
좋아, 이렇게 됐으니―――
타이치「금단의 오의를 보여주지」
토오코「그만 놔 줘―……싸―해서 왠지 허전해」
타이치「좀 더 싸―싸―하게 만들어주지. 팬티를 벗기고 냅킨을 두르지 못하게 만들어주지」
토오코「……잠깐, 이대로 잡아당기려는 건―――」
타이치「랏차―」
그리고 나는,
금단의 비기를 사용해,
속옷을 내렸다.
발목까지.
모자이크 빨리! 빨리빨리!
오오 벌써 처리한 건가, 역시 일처리가 빠르군!
생존이 달린 문제인걸!
타이치「오우, 토오코! 세 시 봉! (아주 멋져!) 세 시 봉! (아주 멋져!)」
특기인 프랑스어를 구사해, 나는 토오코의 음부를 절찬했다.
토오코「……」
토오코「……………………」
토오코「게에에에에에엣!!」
『이게』라고 말하고 싶었겠지.
혀가 짧은 탓.
키스해 보면 더 잘 느껴진다.
혀를 조금만 빨아도, 바로 말려올라가기 때문에.
그치만 반면에, 그녀의 입 안은 용광로처럼 뜨겁다.
혀도 크림처럼 부드럽고, 맛을 보면 감칠맛이 난다.
난 토오코와의 라브라치오한 나날을 떠올리고 볼에 홍조.
※라브라치오=타이치어. 입술 애무 전반을 의미하는 것……같다. 유래 불명. 러브+펠라치오라 생각된다.
그리고.
토오코「이 저질――――――!!」
쿠당―!
타이치「이거야이거―――!!」
날아오르면서 나는 생각했다.
지금은 없는, 신카와 유타카라는 남자에 대해.

그리고 우리들은 키리하라 저택에 도착했다.
토오코「우선, 이것만!」
이것만.
그 녀석은 그렇게 말했다.
리어카 세 대분 정도가 있었다.
그래서 키리하라 가의 커다란 캠핑카를 쓰기로 했다.
이래봬도 운전은 할 수 있다.
주행만화로 배웠으니까.
……보던 것과는 상당히 달랐다.
여러가지 일이 있었지만, 일단 토오코에겐 트라우마가 생겼다.
두 번 다시 내 차에는 안 타겠다고까지 말했다.
나도 동감이다.
이야―, 안전벨트하길 정말 잘했지.
어쨌든『우리 집 근처까지는 차로 갈 수 있었다』는 것 덕분에, 그곳에서 이동하기만 하면 끝.
그렇다곤 해도 거리로 치면 수백 미터는 됐지만.
나와 토오코는 리어카를 찾았다.
토오코는 아가씨답게 리어카라는 걸 앞쪽에 장바구니가 달린 자전거라고 착각하고 있어서, 서민의 대표로서 가슴만지기를 해 주었다.
얻어맞았다. 좋은 일이다.
그리고, 내가 찾아낸 리어카로 세 번 왕복.
피로 노곤.
그런 나를 더욱 더 넉다운시킨 것은 토오코의 말이었다.
방에 안내하자마자 한 말.
토오코「……뭐야, 이 창고?」
거기서 힘을 다하고, 와르르 무너졌다.
타이치「아―!! 피곤해―!!」
토오코「……고마워. 전부 해 줘서」
빌어먹을!
분노한 채로, 토오코에게 클레임을 걸었다.
타이치「도대체가 넌 무사 집안 딸이니까 육체 노동 정도는 할 수 있잖아! 이제 와서 내숭 부려봤자 이미 본성은 다 드러났다고! 으푸푸푸푸푸풋!」
토오코「……가녀린 여자한테 뭘 시키려는 거야. 바보같긴」
조금 기분이 상한 듯.
토오코는 눈 같아서 부드럽게 대해주면 바로 살랑살랑 녹아버리니까, 절대로 약한 표정은 짓지 않기로 결심했다.
타이치「……목욕하고 싶어」
토오코「할 수 있어!?」
얼굴이 환하게 빛난다.
하지만 그러나.
타이치「……그런 사치를 부릴 수 있겠냐. 물은 귀중품인데」
토오코「에―……」
타이치「라고 말하고 싶지만, 할 수 있어」
토오코「정말!?」
이렇게 좋아한다는 건…….
타이치「혹시, 계속 안 씻었어?」
토오코「……아, 아냐!」
타이치「진짜로?」
몰아붙인다.
토오코「뭐, 뭐야」
밀려난다.
타이치「이 스멜 매니아가 한번 확인해 볼까」
토오코「잠깐, 거짓말, 안돼, 오지 마!」
타이치「크크크」
귀축 웃음을 짓고, 난 사냥감을 방 구석으로 몰아넣었다.
타이치「무슨 쁘와종을 뿌려 줄까나?」
토오코「……히익」
단정한 용모가 파랗게 질린다.
토오코「오지 마……그, 그 이상 오면……」
타이치「오면, 어쩔 건데? 무력한 부녀자 혼자서 어떻게 저항한다는 거지? 이 현역 최강 가라데가ㆍ매스 쿠로스를 상대로」
변태 신사 어조로 토오코에게 물어 보았다.
토오코「……체취를 들킬 바에는」
찰칵
칼집이 철컥이는 소리가 났다.
토오코「베겠다」
타이치「꺄악―!!」
타이치「그, 그건 요도 하라키리마루!?」
짐은 분명히 검사했는데, 언제 가져온 거지!!
설마, 시공간의 저편에서……!?
토오코「실례야!」
토오코「……애도ㆍ이마코테츠야」
토오코「무쌍직전영신류……단수 없음」
타이치「안 땄어?」
토오코「땄을 리가 없잖아!」
토오코「하지만 칼은 좋으니까 잘 베어져!」
타이치「거합도의 이념에 반하는 거잖아 그건!」
진정한 거합도란, 사람에게 베이지 않고 사람을 베지 않고, 자신을 닦아나가는 길…….
토오코「수치를 들키지 않는다면, 아무래도 상관없어!」
타이치「웨이트! 웨이트!」
난 순간 미국인이 되어서 토오코를 말렸다.
타이치「OK 알았어, 장난은 그만둘게. 너도 그 거시기한 것 좀 치워 줘」
토오코「으―」
토오코의 눈은 이글이글 불타고 있었다.
실로 검귀의 눈빛.
토오코「……냄새 안 맡을 거지?」
타이치「안 맡아 안 맡아」
목숨 아까워.
토오코「……그치만」
타이치「저기, 여기서 두 집 옆에 있는 집 목욕탕에 물이 차 있거덩……그걸로 목욕할 수 있어」
토오코「……」
천천히, 토오코는 방문 쪽으로 다가갔다.
자세는 풀지 않는다. 과연 검귀.
토오코「…………」
뒷걸음으로 머뭇머뭇 복도로 나가, 그대로 오른쪽으로 슬라이딩하는 토오코.
타이치「다, 다녀오세요……」
토오코「……………………」
도끼눈이 복도로 사라졌다.
30분 후.
토오코「다녀왔어♪」
건강 발랄하게 돌아왔다.
살기도 함께 씻어낸 건지, 오자마자 찰싹 달라붙었다.
타이치「……어서 와」
토오코「아이 참, 타이치 좀 땀 냄새 나!」
죽일까……이 녀석.
토오코「땀 정도는 닦고 다녀―, 정말―, 칠칠맞긴」
타이치「……난 페미니스트니까 페미를 때리진 않겠지만 성희롱은 하겠어 에잇」
토오코「왜 화났어?」
타이치「너라면 안 화나겠냐!」
타이치「……이제 됐어. 씻고 올래」
토오코「다녀오세요♪」
돌아오자, 방 안이 정돈되어 있었다.
타이치「엥……?」
토오코「어서 와, 타이치」
타이치「이, 이건?」
토오코「깨끗해졌지?」
토오코「둘이서 살 거잖아. 정리해 뒀어」
타이치「무츠미 아줌마 같은 일을 하다니……」
덜덜 떨었다.
토오코「그렇게나 더러웠는걸? 당연히 해야지」
사르랑―하고 아가씨식 뒷머리 넘기기를 하는 토오코.
『나 잘했지?』하고 말할 듯한 오오라로 가득 차 있었다.
아니,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는데.
타이치「분명히 깨끗해지긴 했는데……핫!?」
난 침대 밑을 들춰봤다.
없다!
타이치「내 비밀 책이!!」
우선 바라본 곳은, 책상 위.
이따금 여자들은 그런 짓을 한다.
하지만, 없다.
타이치「이봐 키리하라, 여기 있던 내 누드 데셍용 서적은 어디 갔어?」
고식적인 나.
토오코「아아, 사진 실려있던 책?」
타이치「응」
토오코「태웠어」
타이치「빰바야―!」
나는 빳빳하게 일직선 자세로 넘어졌다.
일어났다.
타이치「태웠어!? 버린 게 아니라……태웠어!?」
토오코「뭐랄까……보고 있으니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타이치「학술서를 태워버리다니! 넌 진의 시황제냐! 제 3제국이냐!」
토오코「그치만 침대 밑에 깔려 있었으까, 필요 없는 건 줄 알고……그리고 왠지 야한 책들 뿐이었고……그……여자들 알몸이라던가……」
타이치「그러니까 그게 학술이란 거야!」
토오코「그, 그래?」
타이치「인간의 근원적 미를 육체에서 찾지 않으면 어디서 찾겠는가! 자신이 조각한 조각상에게 사랑에 빠져버린 고대 피규어 오타쿠의 사연을 배우고 부끄러워하도록!」
타이치「그리고 너는 후회할 것이다. 서적이 자연발화하는 화씨 451도의 세계에서 말이다. 즉 초열지옥에 던져진다는 말이다! 학술서를 태운다는 것은 그런 일이다! 이 인류의 적!」
손을 빙글빙글 돌리며, 계속해서 토오코에게 손가락을 들이대었다.
토오코「그런 말을 해도……그리고 나도 고민했었다구」
토오코「하지만……왠지 보다 보니까……굉장히 열이 받아서……」
토오코「예전에, 세상엔 에로책이란 것이 있다고 들었거든」
타이치「두근」
토오코「난 계속 여학교여서 몰랐지만……그……남자는 그걸 보고……그걸……망상한다던데」
타이치「두근두근」
토오코「그치만 그런 건 안돼.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데, 다른 사람을 보고 망상하는 건 안 좋아」
토오코「응, 안 좋아」
타이치「혼자서 납득하지 마……」
타이치「쳇, 어쩔 수 없지」
토오코「그래. 지난 일인걸」
덮쳐버릴까……이 녀석.
타이치「덮쳐버릴까……이 녀석」
성인 군자처럼 정직한 나.
토오코「저기, 슬슬 배 고프지 않아?」
타이치「못 들었수?」
토오코「어쩔래? 또 감자 먹을 거야?」
타이치「아니, 오늘은 분명……」
그러는 중에.
토모키「어―이!」
현관에서 목소리.
토오코「저 목소리……시마?」
타이치「설명하기 귀찮으니까, 잠깐 가만히 있어 줘」
토오코「아, 다른 방 둘러봐도 돼?」
타이치「부디 편하실 대로」
1층으로.
토모키에게서 짐을 받았다.
타이치「식료품이다―」
토모키「소중히 먹도록」
타이치「음, 부활동 수고가 많네. 힘들겠지만,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를 베푼다는 자기만족이 자네를 성장시킬 것이네」
토모키, 피곤한 듯 웃는다.
토모키「……기분이 풀리는 건 사실이야」
방으로 돌아온다.
토오코는 없었다.
타이치「후후훗」
타이치「크크큭……」
자연스럽게 웃음이 나온다.
타이치「깨끗한 방이군. 음. 정말 상쾌한데」
타이치「침대 속의 에로책과 바꿔서 얻은 정돈……하지만 토오코양, 자네는 너무 물러」
그것은 미끼인 것이다!! (쿠캬캬)
진품 중에 진품은……다른 곳에 고이 숨겨져 있다.
척 보니, 장롱에 있는 코스프레 의상 컬렉션에는 손 대지 않은 것 듯.
즉 토오코의 므흣 능력은, 아직 미숙하다는 것이다.
※므흣 능력=타이치어. 보호자 및 교사의 무의식적인 불건전 물품 감지능력.
여성 속옷류는, 지금은 주인 없는 누나 방의 장롱 속.
나뭇잎을 숨기려면 숲 속으로.
타이치「그리고 나의 영혼의 일부인 진품 북들은……훗」
훈련을 받은 슈퍼 닌자라도 눈치챌 수 없는 곳!
보아라, 벽에 숨겨진 경악의 은폐 금고를!!
인류 건축공학의 절정으로 만들어진 극한의 프라이버시 공간을!!
예전에 요코와 함께 외화놀이로 한탕 벌었을 때 만든 물건이다.
내화내열 은폐금고『비밀천국』!
※비밀천국=상품명
벽에 파묻힌 손잡이를 빙글 돌렸다.
오른쪽으로 밀었다.
그러자 금고의 입구 등장.
비밀번호는 안 적어놨다.
내 머리속에만 있다.
즉, 설령 루팡이라 해도 조사는 불가능하단 것이다.
9991.
찰칵, 하고 잠금이 풀리는 소리가 났다.
이 숫자는 타이치라는 이름에서 땄다.
타(太)=많다, 그래서 백 단위 중 가장 높은 999. + 타이치의 이치(一)에서 1.
나름대로 머리를 썼으니, 생일보다는 알아내기 힘들 것이다.
구멍에 손가락을 넣고, 정사각형 문을 열었다.
……텅 비어 있었다.
타이치「내 영혼이―――!!??」
부들부들부들부들!!
경련했다.
타이치「어버버버버버버」
입에서 무언가가 나왔다.
※무언가=엑토프리즘
토오코「꺄악, 왜 그래, 입에서 하얀 게 나오고 있어!?」
타이치「……에핫?」
정신을 차린다.
타이치「크오오오오옷!!」
빠져나오려 하는 그것을, 양손으로 잡고 집어삼킨다.
토오코「……들어간다……」
타이치「부ㆍ활!」
히어로 포즈를 취했다.
타이치「아니 키리하라! 어떻게 된 거야! 이 숨겨진 공간의 내용물은 어떻게 했어? 아니 애초에 어떻게 찾았어!」
토오코「어떻게라니……뭔가 이상한 오오라가 느껴져서……찾아보니까 금고가 나오고……그래서 타이치란 이름에서 떠오르는 숫자를 눌렀더니 열렸어……」
천재 므흣소녀!?
타이치「내용물은?」
토오코「그러니까」
토오코「태웠어」
타이치「전부!?」
토오코「응」
타이치「전부!?」
나는 두 번 물었다.
토오코「으, 응」
타이치「이, 이, 이」
토오코「이발소?」
타이치「이 수수께끼의 공간이 내 자아의 일부였다는 걸 몰랐던 거냐―!!」
토오코「뭐랄까……여자애가……묶여 있기도 하고……학교 수영복 같은 것도 입고……」
토오코「왠지 이상해서, 특히 신경써서 태웠어」
토오코「걱정 마. 저런 거, 이젠 필요없으니까」
생긋 웃으며,
토오코「……데셍 모델, 내가 해줄 수도 있어」
타이치「하와와와와와와왓」
모르고 있어.
모르고 있어어어!!
내 영혼이! (영혼이!)
불길에! (불길에!)
내 영혼이! (영혼이!)
불길에! (불길에!)
재는 재로! (먼지는 먼지로!)
먼지는 먼지로! (영혼으로!)
불타라 불타라, 나의 영혼!
지금은 구할 수 없는, 전설, 궁극의 E책 A책!
타올라라 타올라라, 여기는 지옥 일번가!
내 영혼이! (영혼이!)
불길에! (불길에!)
네 영혼도! (영혼도!)
불길에! (불길에!)
함께!
타이치「굿바이!!」
랩으로 마음껏 절망한 후, 다자이 오사무가 창작의 고통으로 질렀을 법한 절규를 지르며 난 기절했다.
의식의 밑바닥에서.
작년 이맘때가 떠올랐다.

타이치「네네―」
타이치「누구신가요?」
유사「저, 저기, 도지마예요」
타이치「그 야쿠자 같은 무서운 성씨와는 반대로 큐트한 목소리는……유사? 열려있으니까 들어와」
문이 슬며시 열리고, 미소녀가 나타났다.
유사「안녕, 하세……요」
의자에 앉히고, 보리차를 꺼낸다.
여러가지 얘기를 했다.
유사「저기, 저 오늘이 생일이에요」
타이치「헤에, 그랬구나」
유사「그래서 말예요, 이거……생일 선물이에요」
타이치「으으음……일단, 고마워. 근데, 어라?」
유사「그리고, 교환일기를 내일까지 주셨으면 해서……」
타이치「그럼 우선 교환일기하고, 그리고 이건 내가 주는 생일 선물」
유사「…………」
이 아가씨는 놀라면 멍해지는 버릇이 있군.
타이치「자, 그럼 집까지 바래다 줄게」
유사「……………………히익!?」
방금 전의 배 정도로 멍해진다.
타이치「벌써 밤이고, 좀 위험한 사람들도 있으니까」
특히 이 동네에는.
타이치「갈까?」
유사「네, 넷」

그리고, 바래다 줬다.
유사「그 질문, 매번 하네요, 타이치 오빠?」
유사「어려워서 잘 모르겠지만……알았어요」
유사「강송합니다」
강송합니다.
강송.
강추?
아냐.
강습.
강습.
그래, 강습.
격렬하게 공격하는 행위.
아아.
나는 이 말이 좋다.
꿈 속에서 웃는다.
한없이.
조롱한다.
침울한 감정은 바로 심연 속에 삼켜진다.
냉소적인 허무로 이루어진 겉모습이 벗겨지고, 환히 드러난 조각들이……거대한 모체를 이루어 나를 비웃는다.
사고는 하나.
적은 적.
죽이면 죽는다.


즐거운 등교.
인데.
토오코는 뾰루퉁해 있었다.
타이치「……」
토오코「……」
타이치「…………」
토오코「…………」
타이치「저기」
토오코「……흥」
배리어가 쳐져 있었다.
타이치「으―음」
오늘 아침부터 계속 이런 상태였다.
어젯밤은 쭉 기절해 있었기 때문에, 전혀 이유가 집히지 않는다.
예상되는 거라면, 기절해 있는 사이에 몽유병처럼 뭔가 해버렸다던가…….
타이치「……으―음」
가능하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이미 절정으로 삐져있었으니까.
타이치「어―이」
토오코「……」
안되나.
혼자서 성큼성큼 가버리는 토오코.
쫓아간다.
옆에 선다.
잔뜩 화난 토오코는, 아예 내 쪽을 보려고도 하지 않는다.
이건 이거대로 아름답지만, 원인이 명확하지 않은 게 좀 걸린다.
한 손을 펼쳐, 가슴을 슬쩍 만져보았다.
토오코「잇!?」
타이치「넌 가슴이 전혀 없구나!」
토오코「닥쳐――――!!」
타이치「아가씨――――!!」
천천히 회전하면서 옅은 능선을 그리며 날고 있었지만 머리 일부가 지면과 접촉한 순간 급격하게 제동이 걸려 굴렁쇠처럼 변해서 고속회전하며 대지를 가로질러 그대로 부메랑 같은 기세로 잡목림 속으로 돌진했다.
타이치「하라키리권……무적의 격투술……」
토오코에게 거합도와 무술을 전수하신 할아버님(고인)도, 무적의 귀신이라 불렸었지.
무술계에선 대단한 유명인으로, 소를 맨손으로 때려잡은 영상이 인터넷에 퍼지기도 했다.
토오코「……그르르르」
그리고 이 녀석은 그 손녀.
약할 리가 없었다.
타이치「미스 토오코, 왜 화내시는 겁니까?」
토오코「……흥, 바보!」
아, 좋은 느낌.
하지만 화내는 이유를 모르겠는데.
타이치「키리하라씨, 전 자기가 생리라고 해서 다름 사람에게 화풀이하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
토오코「가녀린 소년 어조로 추잡한 소리 하지 마」
토오코「그리고 생리 아냐!」
타이치「음. 내 데이터에 의하면, 키리하라의 주기는 아직 일주일 정도 남았―――」
퍼억!
타이치「……크헉」
맞았다.
토오코「왜 그런 것까지 아는 거야! 죽어버려!」
타이치「그런 말씀 안하셔도 지금 죽을 맛인데……」
토오코「몰라!」
모른다니…….
타이치「남자하고 살기 시작한 바로 다음날부터 화를 내는 건, 아무리 나라도 이유를 모르겠는데」
토오코의 안색이 주홍빛으로 확 달아올랐다.
부끄러움은 아니고, 분노로.
토오코「네 가슴에 묻지 그래!?」
터벅터벅터벅
먼저 걸어간다.
내 가슴이라니…….
남자라서 평평한데.
……그렇지만은 않나.
내 가슴에 묻는다.
토오코가 언제 삐진 걸까.
어제 여기로 올 때까지는 분명히 싱글벙글하고 있었다.
그리고, 분명히 내 영혼의 일부가 화형에 처해지고―――
지끈
현기증이 났다.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자식을 잃은 슬픔이란 이런 것일까.
이제 난, 서적에 의지할 수 없다.
가공으로 만들어 낸 몇 명의 아이돌들이 뇌리를 스쳐간다.
타이치「안녕히……」
이만 접고, 토오코.
어제는 분명히, 충격을 받고 그대로 기절해버렸다.
저녁도 안 먹었지.
아침도 안 먹었다.
참고로 매우 배가 고프다.
띵동
타이치「그거군」
아가씨가 기분 우중충인 이유를 알아냈다.
그렇다면 풀어주기는 간단.
원인을 알아내니, 이젠 지금의 뾰루퉁 상태를 즐길 여유까지 생기는군.
타이치「~♪」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길을 걸어갔다.
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마치 우리들을 환영한다는 듯.
예전에는 감옥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유일하게 안심할 수 있는 장소다.
사람은 없다.
어디에도 없다.
다만 학교만이, 군죠학원만이, 사람들이 모이는 곳.
사람들이 모여 과거를 그리워한다.
솔직히, 인류가 멸망하니 상당히 괴롭다.
버티기 힘들 거라 생각한다. 대부분의 인간들은.
나에게는 복음이지만, 그들에게는 좌절과 고통없는 죽음.
그리고 토오코는 우리 집에 올 수밖에 없어졌다.
얄궂다.

식당에 왔다.
인기척이 있었다.
타이치「누구냐?」
대답이 없다.
부스럭 소리가 나는 쪽으로 다가간다.
사쿠라바「……」
사쿠라바였다.
차가운 바닥에 주저앉아서, 조금씩 어깨를 들썩이고 있었다.
무언가를 먹고 있는 것 같다…….
탐욕스럽게.
타이치「?」
등 뒤에 선다.
타이치「라바?」
불러보자,
사쿠라바「……타이치이이」
타이치「꺄악―――!!」
무심코 발차기를 날렸다.
돌려차기.
뾰족한 발 끝이 사쿠라바의 안면에 박힌다.
사쿠라바「……」
사쿠라바는 말없이 쓰러졌다.
바로 일어났다. 노 데미지.
사쿠라바「뭐하는 건가」
쿨하게 말했다.
타이치「네놈이 기분 나쁜 표정을 짓고 있었으니까」
사쿠라바「……훗, 의외군」
분명히 한자를 틀리게 썼을 거라 확신했다.
왜냐면 이 녀석 바보인걸.
타이치「뭐 먹고 있었어?」
사쿠라바「응, 보다시피」
타이치「……카레빵이라」
사쿠라바가 좋아하는 음식.
식당에 남아있던 것 같다.
사쿠라바「왜인지 여기에 박스째로 남아있었다」
사쿠라바「아무도 안 먹어서, 내가 먹기로 한 거다」
타이치「맛 없으니까 안 먹는 거지, 그거」
사쿠라바「훗」
타이치「그 '훗'하고 웃는 거 하지 마. 짱난다」
사쿠라바「상해버리니까」
개무시.
이미 사쿠라바의 주위엔, 무수히 많은 포장지가 늘어져 있었다.
사쿠라바「너도 어때?」
타이치「필요없어」
사쿠라바「그런가」
사쿠라바「난 나의 정의를 결코 너에게 강요할 생각은 없다」
타이치「고마워」
사쿠라바는 대화의 맥락 따위는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사쿠라바「인사는 됐다」
미소.
카레빵을 덥썩 물었다.
타이치「아침부터 이렇게 많이 먹었냐……」
사쿠라바「응, 인생의 마지막 카레빵이 될지도 모르니까」
열심히 먹는 사쿠라바.
이미 그것은 카레빵과의 전투에 가까웠다.
그런데.
그러고 보니 여긴 식당.
타이치「……다른 빵은 없어?」
사쿠라바「있었다」
타이치「왜 과거형이냐?」
다 먹은 걸까.
사쿠라바「카레빵 이외엔 필요없으니까 버렸다」
발차기를 날렸다.
죽일 작정이었다.
사쿠라바「……훗」
연수를 찔렀다. 사쿠라바는 막대기처럼 굴러갔다.
타이치「……어째서 넌 맨날 그런 식이냐」
사쿠라바「인사는 됐다」
태연하게 일어나서 말했다.
타이치「내 말 듣는 거냐!」
타이치「엇다 버렸어!」
사쿠라바「까먹었다」
안면에 정권.
타이치「……이런 위기상황에 너 같은 친구가 있어서 정말로 든든하다」
사쿠라바「신경쓰지 마라」
범죄적인 딴청피우기였다.
그에 비교하면 아직 나는 풋사과.
타이치「아예 없는 거냐―!」
겹겹히 쌓인 상자를 뒤진다.
타이치「있다」
고로케빵이다.
사쿠라바의 허술함 덕분에, 상당히 남아 있었다.
타이치「꽤 있잖아」
사쿠라바「그런 일도 있을 수 있지」
타이치「이거, 전부 가져간다」
사쿠라바「마음대로 해라」
식료품을 간단히 손에 넣었다.

역시나 토오코는 거기에 있었다.
타이치「빠른 등교」
토오코「……」
타이치「게다가 또 사복등교」
타이치「그렇게 더워보이는 옷으로 잘도 다니네」
무시.
타이치「예이예이」
어깨를 으쓱이고, 토오코의 바로 옆……내 자리에 앉는다.
옆모습을 바라본다.
무시하는 것 같아도, 이쪽을 의식하는 걸 알 수 있었다.
타이치「어제밤엔 미안했어」
타이치「네 말대로, 내 가슴에 물어봤어」
타이치「배드였지」
타이치「하지만 이제 괜찮아. 너도 나도 해피」
토오코가 몸을 움직였다.
이쪽을 바라본다.
토오코「……타이치는 항상 그래」
토오코「나 같은 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것처럼」
토오코「바로 혼자서……맘대로 행동하고」
타이치「맞는 말이야. 반성하고 있어」
토오코「조금만 더 신경써주길 바라는데」
타이치「그래서……준비해 온 게 있지」
토오코「준비?」
토오코의 책상 위에, 고로케빵을 듬뻑.
타이치「자, 마음껏 굶주림을 채워!」
토오코「아냐―!!」
꼬르륵―
하지만 토오코의 배는 울었다.
토오코「하읏!?」
타이치「밥벌레」
토오코「이, 이건 아냐!」
꼬륵, 꼬르륵―
밥벌레.
타이치「밥벌레 어게인」
토오코「그러니까 이거 말고!」
타이치「숨겨도 소용없어, 난 밥벌레와 대화가 가능한 인간이라고?」
토오코「…………네?」
타이치「어쨌든 넌 지금 배가 고픈 것이다」
타이치「참고로 나도 고파」
타이치「그래서 1교시 수업은 고로케빵으로 하겠습니다」
봉지를 찢어, 빵을 꺼냈다.
다행히도, 상하지는 않은 것 같다.
타이치「하는 김에 화해의 시간도 겸하기로 하지」
타이치「……과목으로 치면 도덕일까」
토오코는 어안이 벙벙해했다.
하지만.
토오코「……풋」
바로 웃었다.
토오코「수업이란 단어 들은 거, 오랜만이야」
타이치「매일 학교는 왔었잖아. 혼자서 수업하고 있던 건 아니었어?」
토오코「……그럴지도」
빵을 잡았다.
토오코「어제 저녁, 기대하고 있었는데」
타이치「아, 너 혹시 날 간편 요리사로 부려먹으려고 우리 집에……」
토오코「아, 아냐!」
토오코「……같이 밥 먹을 수 있을까 해서」
타이치「지금 먹고 있잖아」
토오코「……네네. 모르면 그냥 계속 모른 채로 있어」
타이치「?」
토오코「잘먹겠습니다!」
화내면서 먹기 시작.
토오코「……맛있어」
타이치「배고플 때는 뭐든 맛있지」
토오코「……그거 때문만은 아냐」
찌릿하고 곁눈질.
타이치「다른 이유 있어?」
토오코「그……분위기 같은 것도 중요하잖아」
타이치「그렇지. 잘은 모르겠지만」
토오코「그러니까, 으음……그래, 맛도 모를 정도로 슬플 때 같은 거 있잖아」
타이치「아주 맛있는데. 소스가 풍부해」
질겅질겅 씹으면서 말했다.
토오코「그러니까그러니까, 같이 먹는다는 것만으로도 뭔가 다르게 느껴지지 않아?」
타이치「그런―가?」
토오코「읏……」
토오코「만약 내가 여기서 사라지면, 타이치도 외로워한다던가……」
타이치「어, 벌써 다 먹었어? 그럼 내가 전부 먹어버린다?」
토오코「그러니까 좋아하는 사람하고 같이 먹으면 맛있는 거라고 계속 말하고 있는데 왜 몰라주는 거야 날려버릴 거야―――!!」
타이치「벌써 날아가고 있어―――!!」
토오코「……둔탱이」
타이치「여자의 마음은 영어와 같지. 전혀 알 수가 없거덩」
토오코「하―아, 여학교 있을 때 꿨던 꿈 같은 건 전혀 안 이뤄지네」
타이치「남자들의 꿈도 안 이루어져」
토오코「무슨 꿈?」
타이치「……전원 미처녀에 전원 레즈에 자매덮밥 같은 이벤트가 일어난다던가」
토오코「불결해」
타이치「불결하다 하지 마! 드림이란 말야!」
토오코「남자들은 그런 비뚤어진 망상만 해?」
타이치「이 정도가 비뚤어진 거면, 스쿨부르는 알파 켄타우리 별에 사는 외계인이겠다」
토오코「스쿨부르?」
타이치「몰라도 돼」
아니, 알면 안 돼.
타이치「지금은 입수할 수도 없지만 말야」
토오코「?」
목을 살짝 갸우뚱.
타이치「자, 네 꿈은 뭐야?」
뺨에 가득찬 빵으로 다람쥐처럼 볼을 부풀리며 물었다.
토오코「……그만 해, 그런 얼굴 하지 마」
타이치「왜?」
토오코「그런 겨울잠 자는 거 같은 타이치 보고 싶지 않아」
타이치「……겨울잠 자는 다람쥐인 나도 타이치는 타이치인데」
타이치「결국 어째서 아가씨가 삐지신 건지는 여전히 수수께끼네」
토오코「……………………」
오?
얼굴을 붉혔네?
토오코「……흐윽」
우와.
울기 시작.
나는 여자의 눈물에 약하다.
타이치「아아아, 울고 있어……어쩌지」
안절부절안절부절
토오코「……안 기뻐」
타이치「어?」
토오코「안 기뻐 안 기뻐」
또다시 토오코 아가씨의 고집 타임이 시작.
타이치「뭐가 안 기쁘단 건데? 내가 할 수 있는 거면 뭐든지 할게」
고개를 드는 토오코.
토오코「타이치는, 나하고 사는 게 안 기쁜 거야」
반전 서술 트릭!?
내 얘기였냐!
타이치「아―앙?」
토오코「……어, 어제도 아무 짓도 안 하고……」
타이치「기절해 있었잖아, 너 때문에」
타이치「잠깐, 아무것도 안 했다? 그게 화내는 이유?」
어, 그 말은…….
토오코「뭐야!」
타이치「섹스하고 싶었어?」
주먹을 쥐고 엄지를 폈다 (양손 다).
토오코「……………………」
타이치「……………………」
토오코는 말없이 주먹을 날렸고, 나도 말없이 주먹을 맞았다.
아름다운 예정조화였다.
그리고 다시 빵을 먹는 토오코.
토오코「……훌쩍」
울상을 짓는다.
타이치「…………」
진짜로 순진하다니깐.
세상이 멸망했는데도, 느긋하게 밝히기나 하고.
분명히……토오코는 나 외엔 도망칠 곳이 없다.
그렇게 만든 건, 바로 나다.
내 장난이, 그렇게 만들었다.
응보…….
또는 책임일지도.
어느 것이든, 마지막까지 함께 해야 할 의무는 있었다.
타이치「좋았으!」
토오코는 움찔했다.
토오코「……뭐야」
타이치「결정했어. 나, 토오코의 왕자님이 되겠어」
토오코「…………………………………………에?」
무지 딱딱한 표정.
타이치「걱정 마. 네가 심층의식 속에서 왕자를 기다리고 있다는 걸 난 알고 있어」
타이치「요 컴온」
토오코는 피곤해 보이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타이치「그럼……한판 떠 볼까요」
피곤해 보이는 눈은 왕방울이 되었다.
토오코「호엣!?」
타이치「자, 벗어」
토오코「어어어어?」
눈이 하얗게 질린다.
좋아, 이쯤에서 토오코 취향의 마무리 대사를 해 볼까.
토오코「미스 토오코, 유에게 QI (구애)」
마무리.
토오코「저, 저, 저……정말로 할 거야?」
타이치「당연」
토오코「…………」
수줍어했다.
타이치「왜 그래. 밥을 먹었으니 성욕을 채워야지」
손을 당긴다.
토오코「그렇게 3대욕구를 순서대로 채우는 건 싫어―――!!」
타이치「좋아, 그럼 적당히 으쌰으쌰해서 무드를 높여 보자고」
토오코「그런 것도 싫어!」
타이치「강하게 미는 게 좋구나?」
내 눈이 번쩍하고 빛났다.
옷에 손을 가져갔다.
타이치「자자자」
벗기기 시작.
어깨 밑으로 옷을 내린다.
토오코「저기, 그게, 학교, 학교니까, 앗, 아아아아~???」
당황해하고 있다.
안쓰럽게.
타이치「걱정하지 마. 자 후딱 벗고, 아담한 가슴과 핑크빛 유두를 나에게 보여 줘」
토오코「아, 안돼애애――――――!!」
푸욱!
타이치「까울」
나는 기절했다.

정신이 들자, 토오코는 없었다.
타이치「으음」
처음하는 것도 아니면서.
……연애질도 참 어렵다.
화장실로.
쏴아―. (싸는 중)
타이치「후우」
요코「……아무 의논도 없이」
타이치「으으으읏!!??」
죽을만치 놀랐다.
타이치「……요, 요쿄」
요코「연애질이라고 하려는 거야?」
억양없는 어조로 그렇게 말했다.
타이치「근데 말야, 기척도 없이 등 뒤로 다가오는 거 그만두지 않을래?」
요코「……」
타이치「혹시 심장마비라도 걸리면 어쩔래」
요코「……타이치의 심장이……그렇게 간단히 멈출 리……없어」
타이치「실례야!」
요코「나한테 숨기고, 뭘 하려는 거야?」
타이치「왜 네 허가를 받을 필요가 있는데?」
거울 속의 눈동자가, 미묘하게 습기를 머금는다.
정말로 미묘하게.
타이치「그리고 네가 말한 대로야. 연애질」
타이치「네가 그렇게 지켜보고만 있어 주면, 별 문제는 없잖아. 내 놀이생활에 일일히 트집잡힐 이유는 없잖아?」
살짝 그녀가 동요한다.
요코「……하지만, 타이치는 예전에도 이런 일을 하고서……실패했어」
타이치「그 때하곤 상황이 달라」
타이치「그리고 난, 토오코한테 꽤 많은 책임이 있고」
타이치「……만약에, 대강 자리가 잡히면 토오코도 어느 정도는 자립할 수 있게 될지도 몰라. 그 때 일단 정리해 두면 되잖아」
요코「……그럴 가능성은 낮아」
타이치「그러니까 만약이라고 했잖아」
요코「…………」
납득한 건지 아닌지.
표정없는 저 얼굴에서는 알아낼 수 없다.
그녀는 기본적으로 철저한 포커페이스.
기본적으로는.
요코「욕구를 참지 못하는 거라면」
타이치「그 얘기는」
거칠게 가로막는다.
타이치「그만 두자. 지금 나는 토오코하고 사귀고 있으니까」
요코「……그래」
갑작스럽게 그녀는 떠나갔다.
시야에서 사라짐과 동시에, 그 독특한 존재감도 사라졌다.
기척을 지운 것이다.
그런 일도 가능한 녀석이다.
타이치「하아아아……」
지친다.

토오코「아, 타이치, 다행이다」
돌아와 있었다.
타이치「잠깐 화장실 갔다 왔어」
토오코「응」
타이치「난데없는 말이라 좀 그렇긴 한데」
토오코「……응, 뭐?」
부드럽게 미소짓는다.
끌어안았다.
토오코「꺅, 왜, 왜 그래?」
타이치「……토오코는 강해져야 돼」
토오코「무슨 말이야?」
타이치「지금은 함께 있어줄 수 있지만, 영원히 그럴 수는 없으니까」
토오코「에……그 말……」
토오코「……또?」
목소리가 떨린다.
타이치「으」
양심이 쑤신다.
타이치「그, 그게 있지, 우리 가계는 단명이라서 말야! 아버지는 젊어서 우주방사선병으로 돌아가시고, 숙부는 흑사병이었고, 할아버지는 괴질에, 증조할아버지는 후천성 면역 결핍증이었다고?」
토오코「……흑……흐윽……타이치, 또 나를……내버리려는 거지……」
타이치「아니라니깐! 그게, 나도 지금 살짝 백혈병에 걸려 있다고! 그러니까, 토오코가 내 뼈를 거둬줬으면 좋겠다고나 할까!」
약한 나.
토오코「같이 있고 싶어……있어 줘……쭉 있어 줘……」
타이치「있을게있을게, 눌러 앉을게!」
얼굴 전체에 키스를 한다.
이마, 뺨, 입술.
쪼아먹듯이.
눈물이 맺힌 눈시울에는, 계속해서 물방울이 흘러넘쳤다.
……짜다.
토오코「……흐흑……그럼……더……더 안아 줘……」
타이치「네네」
토오코「쭈욱」
타이치「……네네」
시키는 대로, 팔에 힘을 준다.
안 좋은 패턴 같긴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치만 뭐 솔직히.
지금과 같은 토오코도, 매력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그래. 이 정도까지는, 괜찮아…….
타이치「……내일, 바다 갈래?」
토오코「바다?」
울먹이는 목소리로 반문.
타이치「몇 명 꼬셔서, 옛날처럼」
토오코「아―, 작년에도 갔었지」
토오코「재밌었어」
타이치「무지하게 화내지 않았었나?」
토오코「그건 타이치가 야한 짓만 잔뜩 하니까……」
토오코「그래도」
토오코「성희롱은 싫었지만, 말을 해줘서 기뻤어」
타이치「……」
타이치「제길……」
꼬옥
토오코「꺄?」
타이치「토오코는 귀엽단 말야, 젠장헐」
토오코「……뭐야, 그거……그래선 안 된다는 거 같잖아」
타이치「연애는 승부야. 반한 쪽이 지는 거고」
토오코「그럼, 걱정 안 해도 돼」
토오코의 고개가 푹 숙여진다.
토오코「……내가 진 걸로 할게」
안돼 그런 말을 해버리면!
『↓』
『→』
『↑』
와―우!!
토오코「……어라?」
토오코「어라, 어라라?」
허리를 이리저리 움직이는 토오코.
아아, 그렇게 자극을 주면 내가 더.
토오코「자, 잠깐 타이치도 참!」
타이치「……무리야」
토오코「뭔가 조금……튀어나오는……으읏」
타이치「무리라니깐 그러네」
참을 수 있을 리가 없지.
타이치「무리였어, 토오코」
토오코「조, 좋은 무드였는데~~~!」
타이치「미안해」
토오코「바보, 변태, 멍청이!」
타이치「뭐든 말해 봐」
토오코「사람이 고민하고 있는데, 그런 생각만 하고 있었다니!」
토오코「최악!」
타이치「……아니, 생각하고 있던 건 아냐」
토오코「그럼 왜 그런 상태가 된 건데!」
타이치「그건……남자의 슬픈 본성이며, 사고와는 별개의 깊은 영역에서 발생하는 견딜 수 없는 충동이며 비바람 몰아쳐도 이겨낸다네」
토오코「어쨌든 야한 생각이잖아!?」
타이치「이의 있소! 여자에겐 너무 좋은 향기가 납니다!」
토오코「햐, 향기라니……」
순간 주저.
타이치「토오코의 체취가……새콤달콤해서……나, 흥분해버린 거야」
토오코「이, 이거 놔!」
뺨을 가볍게 뒤로 밀었다. 상체가 젖혀졌다.
타이치「에헴」
토오코「이―거―놔―아!」
조금 전까지 안아달라고 하던 입이, 지금은 놓으라고 하고 있어!
아무리 온화한 나라도…….
화 남!
토오코의 허리를 감싼 팔에, 힘을 꽉 준다.
그대로 내 쪽으로 잡아당기며, 볼록한 부분을 갖다 댔다.
토오코의 하복부에, 커진 물건을 밀어넣는다.
토오코「싫엇!」
타이치「처, 처음도 아니면서!」
토오코「싫어싫어!」
타이치「아가씨, 그만 단념하세요!」
토오코「싫어―!」
타이치「네에? 네에?」
토오코「절대로 사 절 이 야!」
나와 토오코는, 알파벳『Y』자를 만들며 옥신각신했다.
한 시간이 지났다.
타이치「하아하아……」
토오코「하아하아……」
일진일퇴의 공방은, 교착 상태에 빠져 있었다.
나도 그렇지만 녀석도 꽤 피로한 상태.
하지만 토오코의 팔은 내 안면을 꽉 누르며, 내 입술을 가로막은 채로 꺾이려 하진 않고 있다.
타이치「……아주 강간범 취급이네」
토오코「다를 게 없잖아……」
타이치「삽입할래」
토오코「그게 강간이란 거야!!」
많이 지쳐서, 말의 맥락 같은 건 사라진 지 오래였다.
토오코「여자는 남자를 위한 구멍이 아냐!」
타이치「그런 타지마 ○코 같은 말을 하다니!」
타이치「이건 사랑이라고!」
토오코「얼굴이 육욕 투성이야!」
타이치「욕구를 부정하지 마. 자연의 파도야」
토오코「넌 그 파도에 자기가 휩쓸린 거잖아!」
제길, 이대론 결말이 안 나겠는데.
타이치「OK, 그럼 이렇게 하자」
타이치「나도 삽입은 포기할게. 그러니까 너도 하나 포기해」
토오코「……뭘 말야?」
교섭 테이블에 나왔다.
하기야 꽤 지쳤겠지.
하지만 인류가 멸망한 이 상황에서 삽입도 안 하고 부비적대기만 한다는 건 이미 말이 안 된다.
타이치「삽입 이외의 방법으로 날 만족시키면 되잖아」
토오코「의미 모 르 겠 어」
내 얼굴을 손톱으로 찔렀다.
타이치「아야얏, 이게!」
복수로, 엉덩이를 어루만진다.
토오코「꺄아앗!?」
타이치「이대로 공멸할 생각이냐!」
토오코「크……그건 네가」
타이치「그러니까 교섭이랬잖아. 실전은 포기했어. 남은 건 너 하기 나름이야. A든 허벅지든 입이든 손이든 상관없으니까, 마음에 드는 서비스 방법을 골라! 자!」
토오코「……으으」
울상.
토오코「으아~앙! 왜 실전이니 서비스니 그런 얘기가 된 거야? 전혀 아름답지 않아, 음험해, 꿈이 없어―――!」
타이치「에잇, 그것이 성별차이라는 거야! 남자는 말은 듣지 못하지만 지도는 읽을 수 있다고―!」
토오코「에, A란 건 또 뭔데?」
타이치「A란」
난 항문 성교에 대해 정확하고 유창하게 해설했다.
토오코「……죽어도 싫어――――――!!」
저항이 강해졌다.
토오코「싫어―, 할아버지――――――!!」
타이치「네 할아버님도 이런 일을 해서 자손을 만든 거라고!」
토오코「그래도 아냐~~~!」
타이치「그리고 할아버님은 꽤 애널을 좋아하셨다고?」
토오코「거짓말 하지 마!」
손톱이 손톱이 아아 손톱이.
거짓말이긴 하지만.
타이치「OK, A도 됐어」
타이치「이래선 끝이 안 나겠다. 지정해주지. 입으로 해 줘」
토오코「……이, 입으로?」
저항이 약해진다.
토오코「……입은……키스하고 말할 때 말곤 하고 싶지 않아」
꼬르륵
타이치「호오……음식을 먹지는 않는다는 건가?」
토오코「말꼬리잡는 타이치는 싫어」
타이치「그럼 내 물건에 키스해 줘」
타이치「그것도 키스잖아?」
토오코「으―, 으―, 으―」
타이치「아―, 넌 입으로 해주니까 좋아했던 주제에 자기가 하긴 싫다는 거냐! 정말 비겁한 여자군, 무사 걸의 체면을 더럽히지 마라!」
※무사 걸=타이치어. 여자아이를 구분하는 말의 일종. 무사 같은 여자아이란 뜻.
※현재 지구상에 한 명. 하지만 멸망 전에도 한 명이었다고 전해진다.
※뭐든 세분화해서 카테고리로 만드는 게 좋다는 건 아니라는 교훈이 포함되어 있다.
토오코의 얼굴이, 순간 새빨개졌다.
토오코「뭐, 뭐, 뭐뭐뭐뭐뭐뭐뭐」
토오코「다르잖아, 그거하고 이건!」
타이치「같아. 서로의 성기를 자신의 일부라고 생각하는가 아닌가가……난 그렇게 생각해서 토오코한테 해줬어……하지만 토오코는 거의 안 해줬어……그러니까」
토오코「……」
타이치「아름다운 사랑을 노래하기엔 너무 억지스럽잖아, 으응?」
토오코「…………」
침묵.
고뇌.
번민.
그리고.
토오코「……알았어」
울상을 짓고 말한다.
토오코「알았어, 하면 되잖아, 하면」
타이치「와―아」
펠라 한 번에 이 고생.
역시 토오코다웠다.
토오코의 손으로 지퍼가 내려졌다(그렇게 하게 시켰다).
지퍼가 내려짐과 동시에, ♂돌기가 빠져나왔다.
토오코「……으……」
망설임.
토오코「왜, 왠지……전보다 커진 것 같아……」
타이치「성장했어」
타이치「토오코의 가슴하곤 정반대지」
토오코「……시, 시끄러……」
토오코「저, 정말로 하는 거야?」
타이치「물론」
타이치「이미 여기까지 왔으니 물러설 수 없어. 남자의 생리, 잊어버렸어?」
토오코「그런 거 기억할만큼……밝히진 않는걸……」
타이치「그랬던가?」
아아, 그 이후로 이벤트가 일어나서…….
토오코「아, 아마, 이렇게, 던가?」
물건에 손이 다가간다.
음경에 손가락이 감긴다.
슥슥 움직인다.
토오코「……기분, 좋아?」
타이치「……으―음」
타이치「터치 애무도 분위기에 따라선 좋지만, 지금은 자극이 필요하니까 이것만으론 그다지」
토오코「자극이라니……」
타이치「우선 입에 꿀꺽」
토오코「그게 먼저였구나……」
타이치「아니, 처음은 키스부터야. 끝부분에 쪽하고」
토오코「으, 응」

조금 주저하면서, 토오코는 귀두에 키스했다.
타이치「밑으로 내려가면서, 쪼옥쪼옥」
토오코「응……쪽……쪽……」
타이치「좀 더 밑으로, 쭈웁쭈웁」
토오코「…………으―……쪽, 쭙……」
타이치「온 몸을 모두, 츄베룹츄베룹」
토오코「으읍, 온몸이라니……쪽, 쭙……츄……저기, 언제까지?」
타이치「아직아직」
토오코「으으으……쪽, 쭈웁……으응……응……뜨거워」
타이치「밑쪽에 있는 음모, 갖고 싶으면 하나 줄까?」
토오코「필요없어……쭙……으응……츄, 츕……낼름……」
타이치「침은 뭍어도 괜찮아. 오히려 뭍여」
토오코「그런, 더러워」
타이치「토오코에게 나온 게 더러울 리 없잖아」
토오코「그, 그래?」
고전적이면서도 효과적인 말이다.
토오코「쭈우웁, 쪽, 츄웁……응, 앗, 쪽……뜨거워, 츄우웁……할짝……」
습기와 함께, 열기가 늘어났다.
타이치가방에서 센스를 꺼내, 넓게 펼쳤다.
고개를 치켜들어 석양을 보니, 선명한 붉은색.
운치있다.
타이치「슬슬 입 안에 넣어보자」
타이치「이빨은 안 닿게 해. 무지 아프니까」
타이치「특히 넌 캐릭터 속성상 송곳니가 날카로울 것 같으니까, 주의해 둬」
토오코「? 으, 응……」
머뭇머뭇거리며, 토오코는 귀두를 입에 넣었다.
타이치「구역질 나?」
고개를 좌우로 젓는다.
타이치「그럼, 좀 더 깊게 넣을 수 있겠어?」
토오코「…………응……으읍」
내 말에 따른다.
……전부 삼키는 건 불가능했다.
8할. 아니, 7할 정도인가.
쾌락을 얻기에는 충분하다.
타이치「응. 충분해」
타이치「그럼 입 안의 공기를 빨아내듯이 해 봐, 입 점막이 전체에 달라붙는 감각을 의식해서」
토오코「으, 으읍……」
타이치「아야야. 이빨, 조금 닿았어」
토오코「미안해……」
타이치「침은 되도록 많이 내는 게 좋아. 편해지니까」
난 기분 좋아지고.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
타이치「그리고, 깊숙히 들이삼켜서 뽑는 듯한 이미지로, 고개를 움직여 봐」
토오코「응, 츕……으흥……낼름……으응」
신음소리 같은 소리를 내며 천천히 입을 움직인다.
강하게 들이마신다.
뜨거운 입 속.
가르쳐 준 대로, 침은 많았다.
타이치「침 흘려도 돼」
토오코「읍~, 으읍, 으응, 응……아으읏……할짝……낼름, 츄, 츄룹」
바로 침이 입 밖으로 흘러내렸다.
타이치「혀, 돌릴 수 있으면 돌려 봐」
토오코「……읍……주문만 잔뜩짬낼름, 츕……읍, 으응……」
타이치「……다음엔……토오코의 주문도 들어 줄게」
토오코「응, 으읍, 으으응, 응―……츄, 츄웁……」
강한 흡입.
음경이 스르륵 빨려들어간다.
끼인 입술이 잡아당겨온다.
구강 전체가 찰싹 달라붙어, 유사성교감각을 전해준다.
찰싹 달라붙은 끈끈한 점막을 귀두가 왕복한다.
타이치「……좋아, 토오코」
토오코「응, 으응, 으으응, 츕, 으응, 응―」
가끔씩 요염하게 콧소리를 냈다.
굉장히 기분 좋아서, 쌀 것 같았다.
타이치「……토오코, 어때, 내 물건은?」
토오코「흐응……어, 어떠냐니?」
뱉어내고, 당황해한다.
타이치「딱딱해, 아님 부드러워?」
토오코「……따, 딱딱해」
타이치「다른 사람하고 비교하면 어때?」
토오코「다, 다른 사람 건 몰라」
타이치「그럼 뜨거워, 차가워?」
토오코「……일부러 물어보는 거지?」
정답.
타이치「후후후」
토오코「……뜨거워……굉장히」
타이치「왜 그렇게 된 거 같아?」
토오코「그건……」
귀부터 목덜미까치 핑크빛으로 물든다.
'자기 때문에 흥분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토오코「……응……으응……」
다시 삼킨다.
방금 전보다, 입 속의 온도가 늘어난 것 같았다.
행위도 보다 열정적으로.
토오코「응, 으응, 낼름……으으응, 응―……츄웁……츕」
토오코「아흣, 대단해……타이치 거……어쩐지 이상한 기분이 들어……」
타이치「좋은 현상이야」
토오코「앙, 츕, 츄웁……으응, 응, 응, 응」
타이치「좀만 빨리 움직여 볼래?」
음경을 입에 문 채로, 살며시 고개를 끄덕.
그 머리에 손을 얹고, 앞뒤로 움직인다.
토오코「응, 응, 응」
끈끈하게 달라붙는 토오코의 입.
볼록 튀어오른 뺨.
타이치「입만 쓰면 힘드니까, 손으로 같이 해도 돼」
토오코「응……흐응?」
음경에 묶인 손가락을, 입의 움직임에 맞춰 움직인다.
타이치「더 세게, 그래, 그 정도로 해도 안 아파」
토오코「…………」
떨리는 눈동자.
우는 것처럼도 보이지만, 아니다.
녹아내리고 있을 때의 눈.
욕정의 시선이었다.
토오코「응? ……흐읏……커……졌네……?」
타이치「토오코의 입이 좋아서 그래」
토오코의 머리를 끌어당겨, 입 안 깊숙히 삽입한다.
토오코「으응…………~~~」
별다른 저항 없이 받아들이는 토오코.
그리고, 앞뒤로 흔들었다.
토오코「응, 응, 응, 응, 응, 응……으응……으읍, 으으읍」
뒷쪽에 밀착된 혀가, 낼름낼름 음경을 핥았다.
다시 사정감.
타이치「……슬슬 쌀 것 같아」
토오코「으읍, 응, 으응……으으읍, 읍, 츄웁……츄웁……」
안 들리는 것 같다.
아―.
나온다.
토오코「꺄아?」
귀두가 구강에서 빠져나왔다.
푸슉, 하고 정액이 튀었다.
입술을 정액과 타액의 혼합액체로 연결한 채로, 사정은 계속되었다.
토오코「앗……너무 많아……뜨거워」
압 안으로, 코 끝으로, 눈꺼풀로.
내 배설물은, 토오코를 남김없이 더럽혔다.
타이치「……몸에 좋은 거야」
토오코「에?」
타이치「이거」
멍해 있는 토오코의 얼굴에 뭍은 정액을 손가락으로 닦아준다.
타이치「입 벌려봐. 아―」
토오코「에……아…………아―」
입 안에는, 소량의 정액이 이미 있었다.
그곳에 손가락을 집어넣는다.
타이치「빨아봐, 자」
토오코「으, 으응……낼름, 낼름……으읍, 읍……으으읍」
손가락을 빼낸다.
목이 희미하게 움직였다. 삼킨 것 같다.
타이치「무슨 맛이야?」
토오코「……응……모르겠어……」
후우, 하고 숨을 돌린다.
타이치「좋아, 깨끗해졌다」
토오코「타이치, 귀축……」
타이치「알고 있어」
끌어안고, 얼굴을 어루만졌다.
타이치「그런 나를, 토오코는 받아줬잖아?」
토오코「귀축이라 좋아하게 된 건 아닌걸」
토오코「……처음부터, 진지하게 대해 주었으니까」
진지하게, 라.
그냥 실험이었다곤 못 말하겠는데.
말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숨겨야 한다.
속여야 한다.
마지막까지.
토오코를 위해서.
타이치「토오코……」
껴안았다.
자연스럽게, 책상으로 넘어뜨렸다.
토오코「아……타이치……하는, 거야?」
타이치「하고 싶어」
목덜미에 입술을 가져간다.
어깨끈을 내려 가슴을 노출시킨다.
토오코「꺄앗……응……으응」
이리저리 몸을 비틀었다.
분위기는 이미 ON.
처음의 약속 같은 건 이미 상관없었다.
치마 밑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속옷 속에 손가락을 넣자, 희미하게 습기가 있었다.
토오코「꺄아……으응……싫어……」
살며시 발목까지 내린다.
저항은 없다.
만져본다.
타이치「이제 괜찮을 것 같네」
토오코「…………으읏」

머리가 부딪혔다.
엎드린 토오코에게, 체중을 실었다.
토오코「흐응……으응……」
약간 저항이 있었지만, 비교적 순조롭게 들어갔다.
오랜만에 느끼는 토오코의 안.
좁다. 변함없는 감촉.
타이치「토오코……」
토오코「타이치……」
타이치「괜찮냐 괜찮은 거냐?」
토오코「그러니까, 그런 말 하지 마!」
토오코「……밝히는 건 이제 됐으니까, 제대로만 해 줘……」
무드 우선.
이런 타입이 타이타○처럼 애인과 함께 바다로 떨어진다니까.
타이치「……네―에」
뭐, 비위를 맞춰주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
움직이기 시작한다.
토오코「……으응, 으앙……커, 다래……」
천천히 밀어넣는다.
8할 정도 넣으니, 끝에 도착했다.
토오코「싫어……꽉 차, 있어……?」
전에는.
전부 들어갔던 거 같은데.
토오코는 성장하지 않고, 난 성장한 것이다.
빼낸다.
후끈후끈한 질벽이, 음경 전체를 자극한다.
다시 집어넣는다.
부드러운 왕복.
토오코「아읏……으응……타이, 치……하앙……」
토오코의 표정이 풀린다.
쾌감에 싸여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움직임에 변화를 준다.
살짝 비틀어, 리듬을 깨트리는 듯한 깊은 움직임.
토오코「하앙, 앗, 으응……싫어, 소리, 나와버려……」
토오코의 노출된 등이, 순식간에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무릎을 세워 천천히 가려 했던 것을 바꾸고, 등 뒤로 밀어넣을 체중을 실었다.
토오코「아앙, 으으으으응」
아코디언처럼 접었다 펴지는 토오코의 다리.
이따금, 깊숙히 들어가기도 했다.
토오코「흐읏……으앙, 아, 아……아, 아파……배가, 아파, 타이치……」
가장 깊숙한 곳에서, 몸을 굽혀 어깨를 핥았다.
토오코「후아아아앙……히읏……」
목덜미에 싸―하고 닭살이 돋았다.
질이 수축되고, 입구가 강하게 조여졌다.
입술이 닿을 정도로, 목을 계속해서 핥는다.
토오코「으아앙, 앗, 앗……」
누운 토오코의 오른쪽 어깨가 위로 들추어졌다.
빈 공간에 손을 넣어 유방을 만진다.
아담한 크기.
땀범벅으로 열기를 품고 있었다.
책상에 찰싹 달라붙어 있던 탓이겠지.
피부가 마치 시루떡처럼 손에 찰싹 달라붙었다.
유두를 살짝 잡아당긴다.
토오코「꺄앗」
타이치「느꼈어?」
토오코「……으, 응……그치만, 전부, 느껴져……앗, 흐응……」
허리를 열심히 움직인다.
토오코「흐응, 으으응, 응……읏, 아아앙……하으읏!」
쾌락의 계단을 올라가고 있는 토오코.
신음소리가 코를 통해 애절하게 울려퍼진다.
손을 엉덩이에 대고, 그 가는 허리를 서서히 끌어당겼다.
작은 엉덩이었다.
어린아이를 범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질은 나에게는 조금 헐렁해서, 착각은 중복되었다.
하지만 두깨는 그렇다 해도, 토오코의 질 속은 흠쩍 젖어있었다.
움직임을 멈추고, 내부의 감각에 집중해 본다.
토오코「하―앙, 하―앙, 하―앙」
벽의 수축이, 페니스의 이곳저곳을 끌어당기고 있었다.
타이치「……기분 안 나쁘지?」
토오코「괜찮아……」
세게 찌르자, 바로 표정이 안좋아진다.
내장이 약한 건지도 모른다.
깊숙히 넣을 때는, 천천히 움직일 필요가 있었다.
천천히, 공을 들여서.
토오코와 섹스를 한다.
타이치「토오코가 좋아하는 거 해 줄게」
토오코「에……?」
허리를 빙글 회전시킨다.
토오코「꺄아앗!?」
엉덩이를 흔들며, 질 속을 탐한다.
토오코「꺄앗, 그거 안돼, 하지 마……아아아아아……아―, 앗, 으응……안돼애애」
달콤한 목소리.
토오코를 느끼게 하는 데에 열중한다.
강도를 조절하기 위해, 입구 부근까지 빼고서 적은 간격으로 왕복한다.
토오코「아아앙, 앙, 아앙……앗, 앗, 응~~~~」
귀두의 끝으로, 울퉁불퉁한 부분을 비빈다.
토오코「읏, 읏, 읏……으앙, 이제, 안돼……너무 빨라, 안돼……」
온 몸이 땀투성이.
원피스가 젖어, 피부에 달라붙는다.
무릎이 애처로울 정도로 후들후들 떨렸다.
타이치「토오코」
그리고 다시 깊숙히 삽입.
안쪽을 쿡 찔러버렸다.
토오코「으아앙……?」
그리고 또다시.
뒤로 빼면서, 엉덩이의 중심을 자극했다.
토오코의 상체는 위로 젖혀졌다.
턱이 튀어오르고, 발 끝이 땅을 박차며 허리가 위로 떠올랐다.
토오코「……꺄아, 아아아아아아아아아~~~~~~」
가녀린 비명. 오래 이어졌다.
하지만 멈추지 않는다.
빙글빙글빙글.
토오코「앗, 앗, 아아아~~~, 뭐, 하는, 거……야? 안돼, 안돼, 안돼애애애~……아―, 안돼~……」
빙글빙글빙글.
토오코「앗, 앗, 앗앗앗」
등이 더욱 더 활처럼 휘어졌다.
토오코「아읏…………아……………………흐응, 아아아아아앗!!」
도달했다.
질이 수축되며, 나를 짜부러트리려 한다.
간지럽다.
하복부가 후끈 달아올라, 기분이 좋아진다.
사람과 이어지는 것은, 이렇게나 기분 좋은 일이다.
토오코「하아……하―, 하아」
가만히 나를 바라본다.
몸이 하나로 이어졌지만, 더욱 더 가까워지고 싶다고 그 눈이 말한다.
그래.
섹스조차도, 순간적인 접촉에 지나지 않는다.
두 명의 인간이 하나가 될 수는 없다.
그런 욕구가, 세상을 움직인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타이치「……미안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토오코「……꺄아, 거짓말……안돼」
움찔움찔 등이 떨린다.
그 피부 밑으로, 가녀린 근육이 드러난다.
천천히 몇 차례 왕복.
그것만으로도, 차가워졌던 토오코의 몸에 다시 불이 붙었다.
토오코「으앙, 아앙……안돼……아까, 나…………아아앗」
털썩, 하고 책상에 푹 엎드린다.
무릎의 힘이 빠져서, 그만 빠질 뻔했다.
하반신을 밀어서, 단단히 지탱시킨다.
아직 뺄 생각은 없었다.
타이치「……갔었지?」
귓전에 대고 속삭인다.
토오코「흐아앙」
그것만으로도 토오코의 등골은 떨었다.
타이치「……다시 한 번 아까처럼 되면, 갈 것 같다고 제대로 말 해야 돼」
토오코「싫어……그런 거……」
타이치「그치만, 그렇게 말 안하면 모르잖아?」
토오코「그래도……」
달콤한 목소리가 사랑스럽다.
타이치「안돼. 말해」
토오코「…………으―」
강제로 동의를 얻고는, 허리를 쑥 밀어넣었다.
간당간당하게 걸치고만 있던 음경이, 주변의 벽을 헤쳐나가며 움직인다.
토오코「……으으읏」
그대로 리듬을 탄다.
피하려고 하는 가느다란 허리.
손으로 붙잡고, 침략해 들어간다.
토오코「흐끄으으읏……읏……」
조금 패턴을 바꿔서, 변칙적으로 찔러 본다.
좁은 질 안을 귀두가 종횡무진 누빈다.
토오코「으으읏, 읏, 앙, 으앙? 앗? 아앗, 꺄아앗……앗, 안돼, 안돼, 응~~~」
축축한 그 감촉.
몸 속의 심지에 불이 붙는다.
토오코「싫어, 또, 커졌어……」
질이 꽉 조여진다.
거기에 밀려, 대량의 애액이 방출된다.
허벅지를 타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내 하복부도 많이 젖어 있었다.
지린 건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토오코의 애액이었다.
뒷쪽으로 흘러가버린 것 같았다.
타이치「굉장히 잘 느끼네, 토오코」
그 말과 함께, 갑작스럽게 안쪽으로 밀어넣었다.
귀두는 바로 벽과 부딪쳤다.
길이 짧아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반대로, 질 안이 유연해진 듯한 느낌도 들었다.
너무 빠르지 않을 정도로 세차게 허리를 움직여.
깊숙히 찔러넣었다.
토오코「……읏……아읏……으으으읏~~~읏~~~~으읏!!」
다급한 신음소리.
타이치「갈 거 같아?」
토오코「……가, 갈 거 같아……갈 거 같으니까……천천히, 천천히 해 줘……세게 하지 말고……」
그런 말을 들으면.
타이치「세게 하지 말라면, 이렇게?」
『좋아하는 것』을 해 줘야지.
토오코「~~~~~~~~~」
소리도 없이.
토오코는 절정에 달했다.
성기의 수축.
꾸욱, 꾸욱, 하고 산발적으로 조여왔다.
타이치「아, 좋아좋아, 기분 좋아」
음부에서 대량의 체액을 역류시킨다.
토오코「하읏, 핫, 핫, 핫……하으응, 끄읏, 핫」
거친 숨결.
거기에 맞춰, 수축운동도 서서히 가라앉는다.
타이치「……또 간다고 안 말했어」
토오코「흐앙, 으응, 그치만, 타이치가……하아앙……」
타이치「이렇게 흥분해 있는데」
목덜미를 깨물었다.
토오코「흐아아아앙」
타이치「고양이같아」
토오코의 땀은 계속 흘러나와, 아무리 핥아도 끝이 없었다.
타이치「이번엔 꼭 간다고 말해야 돼?」
토오코「으언, 이에 안돼애」
혀가 굴러가지 않는 듯.
귀엽다.
한 손을 가랑이 사이로 가져간다.
끈적끈적해진 그곳에 집어넣는다.
머지않아 손 끝은 후끈한 열기의 중심을 찾아냈다.
타이치「찾았다」
작은 돌기는, 반쯤 노출되어 있었다.
손가락으로 세게 잡아당긴다.
토오코「……히잇!!??」
허리가 움찔하고 튀어올랐다.
너무 셌나?
가볍게 튕기는 걸로 전환한다.
토오코「아아아아아아……」
애절한 목소리.
몇 번 없는 토오코와의 경험을 떠올려, 강도를 조절한다.
이쯤에서 허리도 쓴다.
천천히 부드럽게, 전후좌우로.
토오코「아으, 아, 아아아, 아아아아아아아아……」
클리토리스, 전후좌우로, 클리토리스.
규칙적으로 괴롭힌다.
토오코「아, 안돼……움직이면, 안돼……」
느린 움직임.
그런데도 토오코는 숨이 끊어지기 직전.
타이치「안돼, 아직 가면」
토오코「읏, 으으으~, 읏―……으앙, 아, 응……」
또다시 오른쪽 어깨가 들린다.
토오코의 상태가 좋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토오코「앗, 으으읏……」
타이치「바로 가지 마, 천천히 하고 있으니까」
껍질이 벗겨진 달걀처럼 하얀 엉덩이에, 허리를 문질러간다.
맨들맨들하고 아담했다.
모에 엉덩이었다.
그 모에 엉덩이를, 안쪽에서 세차게 휘저었다.
토오코「후아아앙……안돼……안돼애」
완전히 생기를 잃은 몸이, 내가 흔드는 대로 경련한다.
조금 안쓰럽기도 했다.
하지만.
마음껏, 섹스를 하고 싶었다.
토오코「후아, 후앗, 아아아아―…………읏…………으읏」
또 갔다.
책상에 달라붙은 얼굴이, 웃음과도 고통과도 닮지 않은 빛으로 물든다.
질질 흐르는 침이, 책상에 가득했다.
타이치「……아―, 정말―」
타이치「간다고 또 안 말했어」
토오코「미, 미안애…………훌쩍……히잉」
타이치「내참」
음경을 뽑았다.
철퍽, 하고 조금 놀랄 정도의 애액이 흘렀다.
반투명하고, 조금 탁한 빛이었다.
몸을 길게 뻗어, 고개를 이쪽으로 돌림과 함께 키스를 한다.
토오코「으읍……으으응……」
입 속의 침을 빨아내 준다.
타이치「자, 혀 내밀어 봐」
토오코「응……으응, 츕……낼름……츄웁……」
타이치「입 속, 조금 건조한데?」
토오코「흐아―, 하―……목, 말라……뜨거워……」
혼잣말처럼 말했다.
뒤쪽에 있는 가방에서 수통을 꺼낸다.
내 입에 물을 넣고.
키스를 했다.
토오코「으으응……으읍……아응……꿀꺽, 꿀꺽……으응……」
다시 물을 마신다.
토오코의 입 속으로 흘려보낸다.
토오코「응―, 응, 응, 으읍, 응……흐응」
후우, 하고 한숨을 돌린다.
토오코는 반쯤 자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대로 자게 놔둬도 곤란했기에.
타이치「……미안」
쑤욱
토오코「……아……」
다시 삽입했다.
타이치「꼭 간다고 말 해야 돼?」
토오코「……아, 아아아……」
괜찮을까…….
이렇게 연속해서 한 적은 없었는데.
타이치「자―아, 흔들흔―들」
젖어서 맨들맨들해진 질 속을 꿰뚫는다.
토오코「아아아아아아……아으……흐읏」
책상다리를 깨물었다.
타이치「자자, 위험하니까 놔」
토오코의 후두부를 농구공처럼 잡고 잡아올렸다.
토오코「아으아으……아아아……」
손을 떼어내자, 토오코의 머리는 축 늘어졌다.
타이치「이런이런」
인형입니까.
스핑크스처럼 양손을 가지런히 뻗게 해서 상체를 고정시킨다.
……으―, 나도 빨리 싸버려야 될 텐데.
힘들군요…….
타이치「그럼, 간다?」
토오코「가는……거야?」
그게 아니라.
자궁 근처로 되돌아가기 위해, 허리를 밀어넣는다.
안쪽.
토오코「……아―, 아?」
타이치「이 주변이 제일 느껴지나 보네, 토오코는」
아랫배 주변을, 음경을 이용해 좌우로 흔들었다.
토오코「……읏, 으읏, 앗, 앗, 앗, 아아아아~읏~~~」
타이치「나도 조금밖에 안 남았는데……」
귀두를 질벽에 대고, 가볍게 빙글빙글 흔든다.
토오코「아읏, 앗, 응……녹아버려……녹아……히으읏…………안돼애애~……」
으―.
낮게 깔린 신음소리가, 꽤나 강렬하게 성감을 자극한다.
슬슬 왔다.
타이치「……갈까?」
토오코「……흐아, 흐아……응, 갈래, 갈래……」
타이치「그럼 가겠습니다」
허리를 빠르게 왕복했다.
꾸욱, 하고 더욱 더 강렬한 압박이 왔다.
토오코「앗, 으으으……가……아, 아, 아……가, 갈게요……으으으으응!!」
간신히 말했다…….
만족감과 피로가 함께 몰려든다.
나도 가야지…….
마지막까지 멈추지 않고 계속 움직였다.
토오코「응~~~, ~~~~~~」
견갑골을 내밀고, 양팔을 뻗으며 몸을 젖히는 토오코.
또다시 절정에 달한 듯.
그리고 나도.
타이치「……음」
허리를 감싸안고, 안에 사정했다.
토오코「……앗……가……가, 갈 거 같아…………아아…………응……」
꽤 힘차게 나온……것 같다.
다른 사람의 사정을 본 적이 없어서 잘은 모르겠지만.
토모키와 사쿠라바는 욱씬하는 느낌으로 나오는 것 같다.
나는 힘차게 분출하는 느낌.
그 물총 같은 물건이, 토오코의 자궁을 두드리고 있는 걸까.
토오코「아으……아으……으으……」
몸을 떼어낸다.
타이치「……아―, 미안」
토오코는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토오코「…………하앗……하으읏……흐앙……죽을, 것 같아……」
기절해 있었다.
타이치「……」
뻐끔뻐끔대는 토오코의 입에 손가락을 넣어 본다.
토오코「……응, 츕……츄웁……으으응……」
빨았다.
타이치「……………………」
다들 같은 생각하고 있지?
『다 큰 어른』의 신분으로『야겜』을 하고 있는 분들이라면, 틀림없이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토오코의 입에, 페니스를 스윽 가져갔다.
토오코「……응……으응……할짝……으응……응―……」
타이치「와아」
겁나게 기분 좋A!
타이치「요도에 남은 것도 다 빨아」
입이 씰룩거렸다.
무아지경으로, 토오코는 그 말에 따랐다.
토오코「……응……응……으으응……츄우, 츄웁」
와―우!
이 배덕감이 참을 수가 없다니까.
토오코「낼름……츄웁……츕……으응……」
오오, 깨끗해졌다.
타이치「만세―, 만세―」
수통을 입에 댄다.
운동 후의 물은 맛있었다.
무심결에 문 쪽을 바라보았다.
지―――잉
타이치「…………우풉!!??」
물을 뿜었다.
히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익!?
들켰다, 들켰다아아아아아아!!
언제부터, 언제부터야!?
타이치「아와와와와와왓」
우왕좌왕.
기운 잃은 쥬니어도 우왕좌왕.
왕년의 명작 영상 스릴러의 프로모션 비디오 같은 움직임을 전신과 곧휴로 재현하면서, 나는 당황해했다.
요코「…………」
입술이 움직인다.
읽어버렸다.
배 신 자
타이치「히이이익」
계속 움직인다.
이 원 한 을 어 떻 게 풀 어 야 할 까
주, 죽는 거야!?
얼굴을 가린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주살공격은 없었다.
타이치「어라?」
다시 보자, 이미 그녀는 사라져 있었다.
타이치「……봐 준 건가……」
그녀라는 공포의 감시자를 잊고 있었다.
어머니가 아들의 에로책을 찾아내는 기술에 필적하는 감지능력을 지닌 초강적을.
타이치「일단 살았다」
다시 수통의 물을 마신다.
목이 컬컬하다.
무심결에 토오코를 바라보았다.
노출된 히프에, 매직으로 낙서가 쓰여져 있었다.
타이치「우풉!」
재분출.
그런 짧은 시간에!
게다가 전혀 기척도 없이!
슈퍼 닌자?
뭐라고 쓴 걸까…….
본다.
『음란여자 정액변기』
타이치「음침해!!」
여자의 질투는 무섭다…….
우선, 토오코의 차림새를 정돈해 주기로 했다.
체액을 닦아내고, 옷을 바로잡고.
속옷은……가져가기로 했다.
아―, 엉덩이의 글자……유성이다.
타이치「으―음」
자기는 못 볼 테니, 놔둬도 상관은 없겠지만.
토오코「……응…………타이, 치……」
타이치「…………」
미술실로 간다.
교무실에서 시너를 가지고 돌아온다.
희석해서 걸레에 묻혔다.
닦는다.
닦는다.
닦는다.
통통한 엉덩이가 부활.
타이치「미안해……토오코」
꼬르르르르르르륵
밥벌레다.
마치 야수 같았다.
밥짐승이라고나 할까.
타이치「배고파……」
그리고.
꼬르르르르륵
토오코의 배에서 났다.
타이치「……풋」

타이치「오―, 한산하네」
경비원 수가 적다.
항상 열 명 정도 있는데, 오늘은 두 명이다.
더워서 다들 정신적으로 약해진 탓인지 결석이 많다.
그래서 식당도 왠지 모르게 한산했다.
덕분에 경쟁률이 높은 메뉴도 쉽게 얻을 수 있었다.
아니……실은 모종의 커넥션을 쓰기만 하면, 뭐든 간단히 얻을 수 있지만.
하지만 그것은 쓰면 안 된다.
금단의 오의인 것이다.
양날의 검이기도 하고.
아―그건 그렇고, 유사는 참 귀엽다니깐.
B정식 식권을 사서, 카운터로 들고 간다.
목소리「어머 너! 이런 데서 뭐하는 거야!」(98폰)
타이치「우와아아앗!?」
나왔다!
목소리「인사 좋네, 크흐흐」
그렇게 말한 그녀는 판타지 물에 흔히 나오는, 동굴 안쪽에서 늘어지게 술판을 벌이고 있는 이상하게 거대한 도적단 보스(가끔 출입구보다 더 큰 경우도 있다. 개그냐?) 같은 걸쭉한 목소리로 웃었다.
무서웠다.
타이치「놀래키지 마요, 아줌마. 이런 연약한 범생한테」
아줌마「네가 범생은 무슨 얼어죽을. 농담도 좀 작작 해라!」(118폰)
덜컹, 하고 고함이 식당 안에 울려퍼진다.
강화 유리가 부르르 떨렸다(말도 안 돼).
무지하게 주목받고 있는 나.
타이치「……목소리가 커요, 아줌마」
아줌마「보통으로 얘기하고 있는데 왜 그럴까. 여기 애들도 참 이상하다니까!」(94폰)
아줌마「너도 괜히 신경쓰지 마!」(115폰)
타이치「!?」
위험을 느끼고, 한 발 물러섰다.
거대한, 괴이하다고 해도 좋을 손바닥이 휘익하고 눈 앞을 베어갈랐다.
타이치(방금 그건)(스킨쉽?)(직격했다면……)(사망!?)
그만 츠츠이 ○타카의 나나세 시리즈에서 사용된 듯한 심리 표현법을 써버렸다.
뭐랄까 나나세하고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아냐).
아줌마「역시 빠르구나, 넌! 크흐흐」
아줌마「밥 먹으러 온 거지?」
타이치「네, 네엡」
사자에게 먹이를 주는 듯한 기분으로, 식권을 내민다.
아줌마「유사가 늘 신세를 지고 있으니까, 서비스해 줄게」
타이치「하하하, 감사합니다, 하하하」
그래.
이 분이 바로 궁극미소녀ㆍ유사의 친모이시다.
즉 그녀도 몇십 년 뒤에는 이런―――
마망「왜 그래? 휘청거리고」
타이치「쏘리, 그만 현기증이」
마망「그거 안되겠네. 피가 부족해서 그래」
어머님께선 결정하셨다.
마망「자, S정식」
타이치「S도 있었나요?」
마망「널 위해서 만들었지!」(118폰)
식당 안에 울려퍼지는 큰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쑥덕쑥덕…….
쑥덕거림을 받았다.
타이치「……감사합니다만 어머님……」
마망「어머 어머님이라니 그거 기쁘네!」
밥이 두 배로 늘어났다.
마망「있잖아, 너, 우리 딸하곤 어때?」
타이치「핫, 어떻냐고 하신다면?」
마망「잘 길들인 것 같던데!」
타이치「콜록콜록!」
마망「사위라. 좋지. 크흐흐」
타이치「사위!?」
사위라!?
타이치「아니, 잠깐만 기다리세요 어머님!」
마망「괜찮아, 걱정은 필요없어!」
돈까스가 두 개가 되었다.
이것은……뇌물! 떡값입니까?
쑥덕쑥덕…….
타이치「아와와와왓」
씹히고 있다!
나, 지금 겁나게 씹히고 있다!
마망「너도 여러가지로 바쁘겠지만, 어려운 건 생각하지 마」
마망「전부 나한테 맡겨 둬」
건더기는 얇은 미역밖에 없어야 할 된장국에, 왜인지 게가 통째로 들어가 있었다.
쑥덕쑥덕쑥덕쑥덕…….
목소리「……뇌물 증여……」
목소리「낙하산 인사……」
목소리「……내부 거래가」
목소리「뭔가 비합법적인……」
목소리「……신사참배 문제의 당사자……」
타이치「으헉!」
위험하다.
쿠로스 타이치의 체면이 걸린 문제.
돈까스는 네 개가 되었다.
타이치「너무 많아요!」
마망「응? 뭐야, 이 정돈 먹어야지, 남자니까!」
오키나와의 산호를 잡아먹는 가시면류관 불가사리 같은 손으로, 쿠웅―하고 어깨를 두드렸다.
체중의 두 배 정도의 중량감이 나를 바닥으로 밀었다.
타이치「크아아아아악!」
무릎을 꿇는다.
마망「어머 실례! 카하하! 역시 많이 먹어야겠네. 그리고 더 살쪄야 돼!」
타이치「으으으」
유사……빨리 집을 나오지 않으면 돼지가 되어버릴 거야.
보통 사람의 5배 이상의 음식을 가지고, 적당한 곳에 앉는다.
토모키「여전히 막강한 커넥션이네」
C런치 트레이를 든 토모키가 옆에 앉는다.
타이치「토모키 선생이로군」
토모키「뺏어먹고 싶다」
타이치「드셈」
토모키「진짜?」
타이치「이렇게 많이 못 먹어」
토모키「그럼 감사히」
돈까스를 가져갔다.
토모키「아까 사쿠라바하고 빵 먹었는데 좀 부족해서」
타이치「전 운동부라 이거냐」
토모키「운동은 이제 안 하지만 말야」
타이치「근육은 있는 것만으로도 지방을 소모시켜. 그러니까 근육 있는 녀석은 연비가 나쁘지」
토모키「헤에. 그럼 근육 없는 게 좋다는 겨?」
타이치「그건 아니지. 여분 지방을 못 쓰는 체질이 되어버리니까, 적당한 운동은 해 두는 편이 좋아」
토모키「그렇군」
타이치「사쿠라바는 또 카레빵?」
토모키「일곱 개 정도 먹었어」
타이치「우겍」
토모키「여기 식당 업자의 빵이 마이 페이버릿ㆍ카레빵이라면서」
타이치「혀가 썩었군」
토모키「혀가 썩었지」
먹는다.
타이치「젠장, 먹어도 먹어도 안 없어져!」
토모키「……먹어 줄까?」
타이치「드셈」
토모키「야, 된장국에 게가 들어 있어!」
타이치「……들어 있지」
토모키「무슨 커넥션이냐……」
타이치「세계 최강의 서브 미션, 마스 홀드(사위 굳히기)」
토모키「저 아줌마 딸이란 애하고?」
타이치「그렇다」
토모키「역시, 엄마하고 닮았어?」
타이치「아니, 무쟈게 귀여운 안경 소녀. 나를 잘 따라. 내 말은 전부 믿고, 이뻐 죽겠어」
토모키「뭐야, 문제없잖아」
타이치「아니……」
타이치「스위스 은행에 계좌를 가져야 될 정도의 어그레시브하고 위험한 쟙에 종사하게 될 나는, 역시 위험한 직종에 종사하게 될 소녀와 냥냥해버릴 수는 없는 거야」
토모키「어디서 잠꼬대가 들리네」
토모키「아, 맞다 타이치, 적응계수시험 어땠어?」
타이치「그럭저럭」
보리차를 컵에 따라 벌컥벌컥 마신다.
타이치「졸라 높음. 위험합니다. 담임도 공포에 질려 있던데」
토모키「얼만데?」
타이치「……84%」
토모키「우왓, 그게 편차치였으면 얼마나 좋았겠냐」
타이치「그러게 말이다. 젠장할. 나, 위험해질 지도 모르겠다」
토모키「연구동에서 해부당할지도 몰라」
타이치「헬프 미」
달라붙는다.
토모키「무리야……17%인 나하고는 사는 세계가 달라」
타이치「잠깐 이봐! 어째서 그런 정상인 같은 수친데!」
토모키「……그야, 난 외장이니까」
타이치「아, 그런가……」
타이치「너무 바보라서 낮은 건가 했어」
토모키「네가 그런 말 할 처지냐!」
타이치「아―, 라바(사쿠라바의 별명)도 낮겠지?」
토모키「그 녀석 15라는데」
타이치「그 녀석, 내장이었지? 왜 그 정도 수치인데 군죠로 온 거야?」
토모키「아니, 그 녀석 고입 원서에 군죠를 썼대」
우리들은 얼굴을 마주보았다.
두 사람「하아아아앗!?」
타이치「……이해가 안 돼」
토모키「……동감」
타이치「이 나라도 참 겁나게 얼렁뚱땅이란 말야」
타이치「아, 그보다 너, 빨랑 누나랑 화해해」
타이치「내가 다 불편해 죽겠다」
토모키「그건 누나……누님이 배신했으니까……」
이 녀석 지금『누나』라고 하지 않았나?
……뭐 어때.
타이치「미야스미 선배가?」
토모키와 미미 선배는 남매다.
성씨는 다르지만.
토모키「방송부에 들어간 것도 거의 억지였어. 귀가부나 할려고 했더니, '넌 PC소년이니까 도와 줘'라고 하는데 나참」
토모키「PC소년이니까 도와 달라는 논리야. 어떠냐?」
타이치「에휴휴」
타이치「뭐 어때. 어차피 귀가부 비슷한 거잖아」
토모키「뭐어……어쨌든 농구부도 없으니까―, 여기」
타이치「뛰지도 못하는 놈이」
토모키「뭐얏―」
타이치「포기해. 시끄러운 선배 따윈 없으니까 오히려 마음 편한 거지 뭐」
토모키「귀가부였으면 실컷 만화나 읽으려고 했는데」
토모키「왜 이제 와서 누님하고 사이 좋게 부활동을 해야 되는 건데」
타이치「……시스콤 주제에」
토모키「지금 뭐랬냐?」
타이치「아무 말도―」
그것은 1년 전의 추억이었다.

타이치「오―, 한산하네」
경비원 수가 적다.
아니 없다.
토오코「한산한 게 아니라, 없잖아」
타이치「후……」
아직 멀었군. 그 생각은 내가 먼저 했다네.
어쨌든 식당은 한산했다.
덕분에 경쟁률이 높은 메뉴도 쉽게 얻을 수 있……을 리는 없다.
주방 안쪽엔 사람이라곤 전혀 안 보이고.
토오코「……근데, 이런 데 와서 뭐하려고?」
타이치「아니, 고로케빵만 먹으면 질릴 것 같아서 말야」
사쿠라바가 있던 곳 근처.
있었다.
타이치「…………」
사쿠라바는 죽어 있었다.
사쿠라바「……으으……」
타이치「계속 먹고 있었냐?」
바보다.
카레빵은 수북히 남아 있었다.
빵을 하나 집는다.
포장을 뜯고, 먹는다.
타이치「흐음」
상한 것 같지는 않다.
타이치「……그러고 보니 월요일부터 있었다는 건, 반입은 일요일 밤에 했다는 말이지?」
그 순간까지 인류가 생존하고 있었다고 치면, 벌써 4일인가.
음식이 상하지 않는 건 왜지?
모르겠다.
타이치「자, 안 상한 것 같아」
토오코「아, 확인해본 거구나……」
타이치「그럼 뭐라고 생각했어?」
토오코「……으, 으응, 아무것도 아냐」
혼자 먹는다고 생각한 건가, 요 녀석.
타이치「내가 네 뷰티 궁디를 유지하는 데 얼마나 고생했는데……」
토오코「엣, 뷰티 궁디……는 뭐야?」
토오코의 이마를 두드린다.
타이치「뷰티 궁디, 뷰티 궁디!」
토오코「아, 아얏, 아파」
타이치「자 빵」
토오코「뭐가 뭔지……도통……」
당황해하며, 빵을 입에 덥썩.
토오코「……매워」
타이치「매운맛이니까」
토오코「물 마시고 싶어……」
입을 막는 토오코.
매운 걸 잘 못 먹는 녀석이다.
수통을 가져왔다.
타이치「자」
토오코「아」
수통을 흔들며, 입구를 바라보는 토오코.
타이치「……왜 그래?」
토오코「많이 줄었네」
타이치「? 됐어, 마셔. 난 필요없으니까. 물은 많이 있고」
토오코「……물 마셨었지?」
타이치「응, 마셨는데?」
토오코「…………그랬구나」
뭘 신경쓰는 거지?
설마!?
간접 키스를?
심장박동이 강해졌다.
직접 보는 건 처음이었다.
토오코「……간접 키스, 네」
타이치「…………」
타이치「……………………」
토오코「……타이치?」
타이치「오오오오오오오옷!!」
토오코「왜, 왜 그래?」
유두를 잡고 비틀었다.
토오코「꺄아앙!?」
타이치「리플레이, 플리―즈」
침몰한다.
토오코「……거긴 스위치가 아냐!!」
타이치「그렇구나……」
토오코「게다가 리플레이라니……?」
타이치「방금 그 대사, 다시 한 번 해달라고」
일어난다.
타이치「자, 리플레이」
토오코「…………시러」
'시러'라고까지 했다.
호화 디너.
타이치「역시 필요해」
토오코「뭐가?」
타이치「잠깐만」
교실에 간다.
돌아온다.
타이치「비디오카메라」
배터리는 아직 있다.
설치.
스위치 온.
타이치「자, 다시 한 번 방금 전의 대사를, 큐」
토오코「뭘 하고 싶은 건데!」
타이치「…………아앙?」
토오코「반문하지 마!」
토오코「내가 이상한 말 한 거 같잖아」
타이치「어, 그치만……기록해도 안될 건 없잖아?」
토오코「왜 기록할 필요가 있는데!」
타이치「……보존해 두고 싶으니까?」
하고, 고개를 갸우뚱.
토오코「왜 의문형인데 네가 하고 있는 일이잖아! 그리고 왜 보존해 두고 싶은데!?」
토오코「왜? 내가 이상한 말 했어!? 그렇게 빙 돌려서 바보취급할 정도로 이상했어? 그렇게 웃겼어!? 나……난 이렇게나 고민했는데, 넌 날 웃음거리로 만드는 일 말고는 흥미없는 거지!?」
불이 붙어버렸다.
타이치「아―, 이보게, 좀 진정하게나……」
토오코「○×△□$#%&○×△□$#%&!!」
우와아.
별 수 없지.
타이치「너와의 추억을 기록해 두고 싶었어!」
뚝, 하고 토오코의 입이 멈춘다.
토오코「……정말?」
타이치「지금 이 행복한 시간을, 언젠가 되돌아 볼 수 있게 말야」
타이치「하하……역시 안되는 건가?」
순박청년『실수했네』식으로, 후두부를 친다.
타이치「나, 토오코를 정말로 좋아하니까 그건 정말이니까……영원히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해 두고 싶었어」
토오코「타이치……좋아해!」
꼬옥
안겨왔다.
타이치「토오코! 결코 싫어하지 않겠어」
토오코「…………에?」
타이치「아아, 토오코!」
토오코「아아……타, 타이치」
진화 성공.
토오코『앗, 으으으……가……아, 아, 아……가, 갈게요……으으으으응!!』
갑작스런 Fuck.
비디오카메라의 재생 기능이었다.
게다가 볼륨 만빵.
토오코「……어……내 목소리?」
토오코『응~~~, ~~~~~~』
팍유!?
내 사고는 정지했다.
토오코「자, 잠깐잠깐!!」
몸을 떼어낸다.
토오코「사쿠라바!?」
사쿠라바가 카메라 앞에 앉아, 가만히 영상을 보고 있었다.
사쿠라바「…………」
불러도 반응이 없다.
차분히 보고 있다.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사쿠라바의 등 뒤에서 내장 모니터를 계속 엿보는 토오코.
토오코『……앗……가……가, 갈 거 같아…………아아…………응……』
정사씬 리플레이.
토오코「꼬, 꼬꼬꼬꼬꼬?」
타이치「닭?」
토오코「이거이거이거이거!?」
앵무새였다.
토오코『아으……아아……으으……』
타이치「……아하하하」
타이치「실은 방금 그거 촬영했었어……아하하―!」
토오코「……」
토오코의 분위기가 변한다.
토오코『…………하앗……하으읏……흐앙……죽을, 것 같아……』
모니터 안에서, 토오코는 축 늘어져 기절했다.
그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녀는 보았다.
토오코『……응……으응……할짝……으응……응―……』
타이치『요도에 남은 것도 다 빨아』
토오코『……응……응……으으응……츄우, 츄웁』
토오코『낼름……츄웁……츕……으응……』
타이치『만세―, 만세―』
타이치「…………」
토오코「…………」
대치하는 두 사람.
기우뚱
공간이 일그러졌다.
토오코나 생긋 웃는다.
지, 짐승의 기척!?
아니 살기!?
식당 전체에 휘몰아치고 있어!!
토오코「…………세―」
뭐라고 중얼거리고 있다.
착란 증세?
귀를 기울여 본다.
토오코「……세―……만세―, 만세―, 만세―, 만세―」
희미한 웃음을 지으며 기계적으로 내 말을 반복!?
위험해!
사쿠라바「하나 신경쓰이는 게 있는데. 진지한 이야기다」
사쿠라바가 손을 들었다.
명을 재촉하고 있었다.
사쿠라바「이건 합성인가? 아니면 진짜―――」
말하는 도중 갑자기, 사쿠라바가 쓰러졌다.
일어나지 않는다.
스위치가 끊어져버린 것처럼.
잘 보니 토오코의 손이 사쿠라바를 향하고 있었다.
하지만 건드린 기척은 없다.
단지 손을 갖다 대었을 뿐이다.
타이치「기(氣)로!?」
토오코「만세―, 만세―, 만세―, 만세―……」
타이치「하, 하와와왓」
찰칵
어느새 하라키리마루도 소환되었어어어어어어!?
마사무네『토오코의 분노가 정점에 달한 그 순간, 4.35광년 너머에서 시공을 초월해, 요도 하라키리 블레이드는 불과 0.05초만에 시공간도약을 한다!』
타이치「누구야 넌!!」
인류 멸망했잖아!
토오코「……만세―, 만세―」
타이치「부, 부디 자비를!」
후기 카지와라 ○키의 작품에 나오는 히로인이 자주 썼던 항복의 말과 함께, 나는 엎드려 빌었다.
하지만.
타이치「맑았는데 갑자기 폭풍이?」
마사무네『뽑으면 폭풍우를 부른다, 그것이 요도 하라키리ㆍ블레이드』
타이치「그러니까 누구냐고 넌!」
환청 주제에!
토오코「쿠로스 타이치……」
타이치「그치만! 토오코가 내 에로책을 전부 태워버렸는걸! 대신으로 쓸 딸감이 필요했단 말야!!」
토오코「두 동강으로 만들어주지」
이등분당한다?
난 하난데!
타이치「이렇게 되면……나도 가만있을 순 없지! 전수방위!」
같은 지침을 내걸었던 나라가 예전에 있었지만, 난 영해에 당당히 침입해 온 괴선박에게 위협 하나 제대로 못 하지는 않는다!
카메라와 함께 가져온 타이치가방에서, 마이 대거를…….
어라, 없네?
집에 놓고 왔나아아아아아―!?
대신에 난 TV 리모콘을 꺼내, 토오코에게 겨눴다.
타이치「움직이면 미약한 적외선을 발사하겠어!」
……그래서 어쩌라고―!
토오코「……」
적, 공격 태세.
타이치「히이익!」
리모콘을 버리고 머리를 팔로 감쌌다.
하지만……공격은 없다.
눈을 뜬다.
칼을 내리치는 토오코의 모습.
비디오카메라가 천천히 두 개로 나뉘어졌다.
절단되어 있었다.
타이치「후냐~앙! 내 하이테크 도촬 기재가―!!」
토오코「……악은 멸망했다」
타이치「그런―!!」
내 목덜미에 칼.
토오코「……죽는 것보단 낫잖아?」
타이치「성은이 망극하옵니다」

가는 길, 토오코의 짐을 들고 갔다.
타이치「……으―아―」
토오코「파이팅, 타이치―♪」
타이치「예―이」
거역할 권리는 없었다.
짐은 가벼웠다.
하지만 고개길이라 힘들다.
토오코「~♪」
편하시겠수―.
그래도, 별로 화 안 내서 다행이다.
토오코 「저기, 타이치?」
타이치「예이?」
토오코「바다 진짜로 갈 거야?」
아아.
그걸 기대하고 있었나.
즐거운 일이 있으면, 사람은 행복해진다.
죽을 때는 어차피 모두 혼자서 죽는데.
고독이란 것.
그것을 잊기 위해, 즐거움이란 것이 있는 것이다.
타이치「……갈까?」
토오코「응!」
타이치「둘이서 가는 거하고 여럿이 가는 거, 어느 쪽이 좋아?」
토오코「어, 여럿이라니?」
타이치「뭐, 가고 싶은 녀석만 꼬시지」
토오코「……있을까?」
타이치「글쎄」
사쿠라바는 괜찮고.
토모키는 어떨까. 생존부 활동이 바쁘려나.
미사토 선배는 부활동이 있고.
미키는 아마 OK.
키리는 좀 힘들겠지만, 미키가 간다면 따라오겠지.
요코는 논외로 치고.
타이치「몇 명쯤은 가겠지」
토오코「타이치는……어느 쪽이 좋아?」
토오코「모두 가는 거하고, 단 둘인 거하고」
힐끔, 하고 내 옆모습을 보는 토오코.
연애에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둔해서 그런 건지.
이런 면은 솔직히 많이 좋다.
타이치「……」
그러고 보면, 난 토오코를 꽤 좋아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타이치「하핫」
토오코「?」
타이치「그럼 내일은 모두 같이 가고, 토오코하고는 다음주 금요일에 가자」
환하게 빛나는 표정.
토오코「그래, 그게 좋겠다」
토오코「도시락 싸가야겠다」
타이치「……내가 만드는 거지?」
토오코「도와줄게」
타이치「으―음, 하지만 하라키리마루는 우리 부엌에서 쓰기엔 너무 길 텐데」
토오코「안 가져왔잖아, 칼은!」
소환할 수 있자너…….
토오코「음―, 그래도 지금부터 사람을 모으는 게 가능해?」
타이치「어차피 밤에 할 일도 없고」
타이치「그리고 나, 야행성이라서. 밤이 더 좋아」
토오코「야간형이란 거지?」
타이치「……발음은 약간 다르지만」
타이치「뭐, 어쨌든 맡겨 둬」
토오코「……」
토오코「저기, 짐 반씩 나눠 들까?」
어머어머.
타이치「됐어. 이 정도야 뭐」
토오코「그럼, 이렇게 도와줄게」
팔짱을 껴 왔다.
타이치「어머」
토오코「후후후」
전혀 도움이 안 되자너…….
뭐, 어때.
토오코「~♪」
그 행복해 보이는 옆모습을 보고 있는데, 붉은 석양 때문에 악의가 부풀어오른다.
……각인시켜 주고 싶어진다.
희망이 없는, 이 세계와 우리들의 말로를.
눈을 꾹 감는다.
석양은 좋지 않다.
세계의 파멸을 느끼게 하는 빛깔.
매일 한 번씩 세계가 멸망하고 있는 건 아닐까, 옛날엔 그렇게 생각했었다.
타이치「……아」
고개 위에.
그녀가 있다.
자전거 소녀.
나나카「……………………」
반듯이 팔을 뻗었다.
손가락 끝이, 어딘가를 가리키고 있다.
보았다.
산?
캠프장으로 향하는……산길 방면이다.
시선을 돌리자, 이미 소녀는 없었다.
타이치「…………오잉?」
토오코「다음주엔 머리 자르자」
토오코「산뜻하고 짧게 잘라버리자. 웃으며 살면 건강해질 거야」
토오코「미국의 농촌 사람들처럼 살고. 그리고 디저트로 옥수수를 먹는 거야」
타이치「그래」
토오코에겐 안 보인 것 같았다.
바로 앞에 있었는다.
조금 이상.
타이치「……근데, 왜 옥수수?」
토오코「옥수수가 정식 디너에서 나오면 어떻게 먹게?」
타이치「어? 나이프하고 포크로?」
토오코「응」
타이치「그걸 나이프로 자르는 건 어려울 텐데……」
토오코「그치만 디저트로 나오면?」
타이치「으―음……」
토오코는 생긋 웃는다.
토오코「손으로 먹어도 괜찮습니다」
타이치「……그렇구나」
토오코「그럼 바나나는 어떻게 할 거 같아?」
타이치「손으로 벗기지」
토오코「땡, 틀렸습니다」
타이치「나이프로 잘라?」
토오코「응」
타이치「……으엑―, 매너 한번 참」
토오코「그렇게 살다 보면, 곧 사람들도 늘어날 거야」
토오코「모두들 돌아올 테니까」
그런 희망을 품는 방법도 있지.
타이치「아니면, 우리들이 낳는다던가」
토오코「……」
타이치「……」
키스하고 싶어진다.
우아하게 토오코의 턱을 잡았다.
토오코「……짐승」
아작
타이치「아야야야얏! 손가락 물지 마!」
저녁으로 통조림을 잔뜩 먹었다.

즐거운 바다였다.
지금도 모두의 떠들썩한 모습이 생각난다.
토오코「꺄아아아악!? 어딜 잡는 거야!?」
타이치「수영복 팬티」
미사토「하세쿠라는……쿠로스군하고 어떤 관계일까요?」
타이치「음, 요코짱?」
토오코「요코짱!?」
미사토「요코짱!?」
미키「요코짱?」
토모키「요코짱!!」
미키「이번엔 야쿠자네요」
미사토「모, 몸은 싫어~」
소녀「저기, 실례합니다합니다합니다!!!!」
토오코「바―보」
유사「엣, 앗, 얏?」
미키「아, 아파~, 이마 아파~」
미사토「……투덜투덜투덜」
타이치「재밌긴 재밌잖냐」
즐거운 해수욕은 이걸로 끝.
미키의 얼굴에는 조금 흉터가 남은 것 같았다.
그래도 귀가 길 내내, 미키는 상쾌하기 그지없는 표정이었다.
다친 대신에, 무언가를 얻었다.
그런 표정이었다.
그 후, 미사토 선배는 방송부용 안테나 반입을 위해 학교로 돌아갔다.
아직 누나와 단절되지 않았던 토모키가 그것을 비꼬았다.
그 시스콤을, 당시 군죠 부속 중학교 3학년생이었던 미키가 놀렸다.
유사가 집단이라는 것에 대해 처음으로 살짝 마음을 열었다.
그런 바다였다.

타이치「그럼, 슬슬 자 볼까요」
토오코「멍」
타이치「음―, 토오코는 부잣집 따님 주제에 체스를 못하네」
기지개를 켠다.
토오코「……멍」
10승 0패였다.
바다를 갔다오고 나서 왜인지 토오코가 우울해 보이길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승부를 걸었던 것이다.
타이치「야식 먹을래?」
토오코「멍」
고개를 좌우로 젓는다.
타이치「그럼 자자」
타이치「자, 이리 와」
부드럽게 부르자, 토오코는 얼굴을 붉혔다.
토오코「……머엉」
침대에 올라온다.
껴안는다.
타이치「음―」
목덜미에 키스를 한다.
토오코「……멍……응……머엉」
타이치「근데 말야」
토오코「……멍?」
타이치「왜 멍멍거리고 있어?」
토오코「네가 체스에서 진 벌로 개 말을 하라고 했잖아!!」
타이치「아―, 그랬던가」
까먹고 있었다.
타이치「그럼 계속해」
토오코「……저기……그 전에 하나 질문이 있는데요……언제까지 해야 되나요?」
타이치「체스에서 토오코가 이길 때까지……」
토오코「개인 채로 죽는구나!」
고개를 가렸다.
타이치「그럼, 지금부터 한 시간 동안 야한 짓을 해서, 토오코가 한번이라도 안 느낀다면 용서해 줄게」
토오코「……」
토오코「변태」
토오코「변태변태」
타이치「우히」
토오코「변태변태변태」
타이치「그 말씀대로입니다, 아가씨」
토오코「……한 시간?」
타이치「예스」
턱을 잡고 팔꿈치로 기댄다. 검토.
야한 짓을 할 때, 대개 한 시간 동안은 서로 여기저기 만진다.
조급할 필요는 없고, 시간은 썩을 정도로 있으니, 당연한 순서.
토오코에겐 그것이 모든 판단 자료다.
토오코「알았어」
토오코「간단해 보이네」
이 말이 실수였다.
불이 붙었다.
타이치「호―, 그렇습니까」

타이치「자자, 남의 집에 왔으면 손님은 바닥에서 자야지」
토오코「……으으으, 바닥이 딱딱해서 잠이 안 오는데……구두쇠」
타이치「여자가 옆에서 자고 있으면, 밤새도록 야한 장난만 칠 수밖에 없어」
토오코「수밖에 없다니……」
타이치「잠이 안 오면, 아무 방 침대나 써도 돼」
토오코「……으―」
고민하고 있었다.
눈동자가 슬펐다.
나도 마음도 슬프게 느껴졌다.
타이치「후, 불복인가?」
토오코「알았어……여기서, 잘게」
제길, 귀엽자너.
떨어져 자고 싶지 않은데.
그래도 방심하면 안된다.
토오코는 점점 망가져 간다. 녹아버린다.
마치 사탕처럼.
그러니 천천히 천천히, 오랫동안 핥아야 된다.
……사라지지 않도록.
토오코「……타이치, 너무해」
쭉.
타이치「잘 자―」
토오코「딱딱해……아파……훌쩍」
바닥에 깐 얇은 이불에 몸을 덮는 토오코.
나도 누웠다.
공기가 가라앉는 것 같았다.
창 밖에서 별빛이 무수한 기둥을 이루며 빗살무늬를 그린다.
별세계 같았다.
토오코「저기……타이치……」
등으로 말한다.
타이치「응?」
토오코「쭉, 함께 있을 수 있을까……?」
타이치「싫다고 해도, 끈질기게 있어 줄게」
토오코「……후훗, 그럼 괜찮으려나」
타이치「왜 그런 말을 해?」
토오코「그치만, 사람들이 사라졌잖아? 우리들도 언젠가……」
타이치「……」
토오코「사라질 거면, 적어도 함께 사라지는 게 좋은……데……」
토오코는 잠들었다.
함께, 라.
깊이 생각한 적은 없었다.
사람이 사라진 이유에 대해.
왜 사라진 걸까?
어떻게 사라진 걸까?
설명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요코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마도 모를 것이다.
그녀를 가지고도, 원인을 추측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니.
창 밖으로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러니 이 여덟 명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상처입히고, 사랑해가며.

타이치「후아암……」
기상.
토오코「쿠울쿠울」
옆에서 토오코가 자고 있었다.
편안한 숨소리.
푹 잠들어 있는 듯.
타이치「으음」
밤중에 맘대로 기어들어왔나 보네.
죄 많은 여자.
내 공약대로 성희롱을 할 필요가 있었다.
마침 발기해있는 상태라, 자연스러운 성욕이 스으윽 허리를 아프게 하고 있었다.
타이치「…………」
이렇게 했다.
타이치「……음……」
깨물지는 않겠지.
앞뒤로 움직여 본다.
토오코「응……으응……」
별로 기분 좋지는 않다.
직접적인 자극이 없기 때문인가.
하지만 흥분도는 만빵.
내 아침의 생리현상은, 바로 성욕 그 자체로 변했다.
짧은 혀를 물건 끝으로 쿡쿡 찌른다.
토오코「응……츕……응, 츕……」
빨아들였다.
기쁜 행동이다.
천천히 앞뒤로 왕복하자, 더 강하게 빨았다.
토오코의 유아적 버릇인가.
손가락을 빨듯이, 강하게 빤다.
젖을 줄 때 아기들은 놀랄 정도로 세게 빤다고 하는데.
그런 느낌이었다.
토오코「으응, 으읍, 응, 응……으응」
빼내려고 할 때마다, 더 강하게 빨린다.
밀어넣어 보니, 슉 하고 들어간다.
잠시 후, 군침이 베개를 적시기 시작한다.
토오코「응―, 응―……으으응……으응……」
상당히 좋은 느낌이다.
흥분해 있기도 했기에, 비교적 빨리 쌀 것 같다.
타이치「좋―아좋―아」
토오코「으흡……응, 으읍……응―, 응―, 으으읍」
뾰족한 혀 끝으로, 귀두를 쿡쿡 찌른다.
강제로 입 속으로 빨아들이려 한다.
타이치「으」
센 힘.
하지만, 그게 또 좋다.
허리를 뺀다.
깨우지 않게 천천히.
토오코「으으응, 으으응―」
토오코는 싫어했다.
집어넣는다.
토오코「응, 으흡, 으응, 응―――」
토오코는 좋아했다.
뺨 쪽으로 갖다대 본다.
갑자기 측면에 느껴진 압박감으로, 토오코는 눈섭을 찌푸렸다.
반듯하게 만드려고 입을 우물거렸다.
턱 윗부분으로 이동시켜 본다.
그곳은 좋은 감촉이었다.
토오코「으응, 으흡, 으응……응응……응―?」
당황해하고 있다.
들려진 혀의 밑을 쿡쿡 찔렀다.
토오코「으흡」
싫어했다.
위에 있지 않으면 불안하겠지.
돌아간다.
토오코「으으응, 응응, 으읍, 응, 응―, 응, 츕, 츄웁, 으으으응―」
토오코「츕, 츄윱, 낼름, 으응, 으흡……츄웁……앙……응……」
토오코「응, 응―, 할짝, 츄웁……흐으응……으읍……응, 츕……」
본능에 따라, 토오코는 빨기를 계속했다.
타이치「……음」
또다시 혀로 찔러왔다.
급소가 찔리는 그 감각에, 허리 안쪽이 쑤신다.
……깨어 있을 때보다 더 잘하는 거 같은데…….
토오코「으읍……츄룹, 츕, 츕……낼름……」
타이치「아―」
신음해버렸다.
아랫배가 후끈후끈 따근하다.
'골수에 스며든다' 라고나 할까.
행복했다.
토오코「응―, 으응, 으읍, 읍……하읍……낼름낼름……흐아」
한 번 뱉어내고, 움츠러든 입술로 귀두를 빨았다 뱉는다.
막대사탕을 먹는 듯한 움직임.
맛은 없겠지만.
토오코「으으읍……으읍……으으응……」
다시금 흡입.
전체가 감싸여, 찌릿찌릿 저인다.
토오코「응―, 응―, 으으응, 츄웁……응……흐응……응……」
타이치「으으―」
토오코「흐응, 으응, 응, 으으응, 으으으으으응……츄웁」
서서히 성감이 고조되는 것이 느껴진다.
이대로 입 안에…….
허리를 움직인다.
흡입 타이밍에 맞춰, 최고의 자극이 느껴지도록.
토오코의 입은 침으로 질퍽.
토오코「으으응, 으응―, 읍, 응, 츕……츕, 츕, 츄웁」
가끔씩 살짝 깨물었다.
그 고통마저, 나에겐 감미로웠다.
세밀한 애무 속에서, 이빨과 혀와 입술의 감촉이 서로 섞였다.
타이치「……토오코」
자연스럽게 빨라지는 허리 움직임을,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토오코「응, 으읍, 흐으응……응―……응―……츕, 츄웁……낼름, 읍……으으으응, 으으으으으응……」
흡입소리가 늘어났다.
좀처럼 나오지 않는 모유에, 어머니를 재촉하듯이.
귀두에서 새어나오는 얼마 안 되는 체액을, 열심히 핥는다.
토오코「응, 으읍, 츕, 츕, 츄웁……」
요도로부터 나오는 그것을, 계속해서 혀로 찔러서는 받아 마신다.
타이치「와―우」
이거 겁나게 기분좋다.
허리가 빠질 정도로.
토오코「으으으응」
도망치는 가짜 유두에, 토오코는 불만스러워 했다.
부드럽게 깊숙히 넣어준다.
토오코「앙, 으읍, 읍……츕―, 츕―」
점차 앞뒤운동에 익숙해져가는 건지.
토오코도 흡입 사이클을 맞추게 되었다.
빠지면 들이마시고, 밀어넣으면 혀를 쓴다.
완전한 수면 학습, 본능 만세.
나도 한계의 8부능선을 넘었다.
슬슬 위험.
타이치「이제 밀크의 시간이에요」
그렇게 속삭이자, 알아들은 건지 토오코의 볼이 이완되었다.
타이치「더 세게 빨아 보렴」
토오코「흐읍……응, 츕, 츄우우우우우웁」
우와, 강렬.
토오코「츄웁, 츕, 으으으으으으으으응……낼름……응, 츄우우우우웁」
아아, 이제 당장이라도 쌀 것 같다.
부드럽게 피스톤.
토오코「츕, 츕……으으응, 츄웁」
요도가 거의 진공 상태가 된 듯한 느낌이다.
토오코「응, 으응……으읍……응―」
토오코「츕, 으으으으으응, 으으으으으으으으응」
입으로 압박당하고, 애무당하고, 삽입당하고.
토오코「읍, 으흡……으으읍」
귀두를 움츠려든 혀가 빼내는 것과 동시에, 나는 사정했다.
토오코「……으으으읍, 응―――」
망설임 없이, 목이 움직인다.
끈끈하고 삼키기 어려울 그것을, 침과 섞어서 식도로 전달한다.
토오코「츄웁, 츕, 츄웁」
요도에 남은 것까지, 전부 빨아내려 한다.
그 엄청난 쾌락에, 현기증이 났다.
살짝 허리를 움직였다.
토오코「읍……으응」
귀두가 목 안쪽에 닿는다.
토오코의 혀가 닿지 않는 그곳에서, 괄약근을 꾹 눌렀다.
남은 정액이 힘차게 내뿜어졌다.
토오코「……으읍……으으응……」
그것마저 요구하면서, 하얀 목은 움직였다.
타이치「……하아―」
힘들었다.
빼낸다.
혼합된 액체로 끈적거리는 육봉을, 티슈로 닦았다.
토오코「…………으응」
토오코가 희미하게 눈을 떴다.
전광석화로, 나는 바지를 올렸다.
토오코「……타이치……어디?」
타이치「눈 앞」
토오코「응―?」
침대 옆에 서 있는 나를, 목을 돌려서 보았다.
토오코「……좋은 아침, 타이치」
타이치「응」
좋아, 안 들켰다.
토오코「응……타이치」
일어난다.
안겼다.
타이치「!?」
토오코「……타―이치♪」
키스를 하려 했다.
타이치「&%#&%#%!?」
토오코「……에?」
의아한 표정.
위험해.
삐지기 일보직전.
토오코「왜 피해―」
토오코「아침 키스란 말야―」
다시 다가왔다.
타이치「아아, 모닝 키스……OKOK, 잠깐만 기다려 줘」
먼 산을 바라본다.
목이 감겨 있어서, 도망칠 수도 없다.
토오코「에―이, 도망치지 마」
토오코의 이마에 키스했다.
타이치「자, 옷 갈아입자」
토오코「그런 건 안 돼. 제대로 해야지」
큭…….
타이치「제대로?」
토오코「입에 키스. 아침엔 그러는 거야」
타이치「아아, 입……입입……」
정액을 싼 입.
타이치「좋아, 하자. 눈 감아」
토오코「……으, 응」
스윽 올려진 토오코의 얼굴은, 행복 가득 꿈 가득한 밤나무.
코 끝에 입술을 댔다.
타이치「쪽」
토오코「……타이치, 거기 코」
타이치「미안―. 토오코의 입이 어딨는지 잠시 까먹어서 말야」
토오코「무슨 말이야」
타이치「여기던가?」
뺨.
토오코「타―이―치―, 적당히 안 하면……」
타이치「OK, 여기구나. 자」
입술 옆. 한계선이다.
토오코「…………응―」
겁나게 불만스러운 얼굴.
토오코「알았어, 이빨 닦고서 하고 싶은 거구나. 신경쓰여서」
타이치「그런 거야―, 미스 토오코. 프랑스 출신의 나쁜 버릇이라서 말야―, 하하하하」
토오코「알았어. 그럼 같이 닦자」
타이치「그래, 이빨이 부러질 정도로 닦자고!」
토오코「빈틈」

타이치「……………………!!」
순간적으로 혀와 혀가!?
우와아아아아아아!!
하지만 비명도 지를 수 없었다.
토오코「응, 타이치……좋아해……응, 으읍, 으응……」
우오오오오오오옷!!
토오코「낼름낼름낼름낼름~」
혼합.
타이치「으으으으으으으응!?」
토오코「응―――, 으으응」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서서히 입술을 깨물어 왔다.
타이치「으푸풉!?」
인과응보.
그 네 글자가 뇌리를 스쳐갔다.
그리고 최후에는,
타이치「……읍, 으읍……」
침이 흘러들어왔다.
타이치「……………………오오」
정신을 잃는다.
토오코「어, 어라? 타이치? 잠깐만 타이치!?」
토오코「……그치만 놀랐어……타이치가 나하고 키스해서 기절하다니」
타이치「그려그러……」
토오코「후후후」
토오코는 묘하게 기뻐했다.
토오코「타이치는 의외로 잘 느끼는 거 아냐?」
타이치「큭……」
굴욕이다.
토오코「M처럼 말야」
타이치「……시끄러, 이 펠라 머신」
토오코「어? 뭐야 그건?」
타이치「됐어!」

옥상.
오고 나서 놀랐다.
타이치「……뭐랄까……」
토오코「다 됐어……」
안테나.
배선.
라이브용 방송석과 텐트까지 준비되어 있다.
타이치「선배가 혼자서?」
하지만 그 선배는 없었다.
토오코「…………」
타이치「네가 섹스에 탐닉하고 있을 때, 선배는 혼자서 건전히가 그지없는 부활동을 하고 있던 거라네 토오코여」
토오코「왜, 왜 나만 나쁜 건데……」
타이치「으―음, 그건 그렇고 깜짝 놀랐어」
토오코「……미야스미 선배는 어디 가셨을까?」
타이치「안 보이네」
토요일이라 쉬는 걸까?
하지만 분명, 군죠 커뮤니티 FM국의 개국 예정일은 내일이었을 텐데?
그 때.
멀리서 토오코가 손짓했다.
타이치「왜―?」
접근.
토오코「이거이거」
타이치「아……」
미사토「……쿠울~」
자고 있다.
타이치「쭉 혼자서 했겠구나」
그 때문인지, 선배는 조금 피곤해 보였다.
안경도 비뚤어져 있고.
교복은 흐트러져 있고.
타이치「……」
코를 갖다대 스멜을 확인한다.
타이치「조금 달콤한 느낌의 땀냄새가―――」
토오코「그만 둬」
리얼한 소리가 났다.
타이치「오우」
뇌진탕이 일어날 것 같았다.
토오코「여자의 여러가지 냄새 같은 거에 흥미 가지면 안 돼」
여자의 여러가지 냄새, 이 단어만 듣고도 이미 한계.
타이치「질문」
거수.
토오코「네, 타이치」
타이치「토오코는 제 앞에서 방귀를 뀐 적이 없는데요, 어디서 뀌고 있나요? 또 그 때, 어느 정도 그걸 의식하고 피하는 건가요?」
토오코「방귀란 게 뭐니?」
당당히 말했다.
타이치「……강해졌군」
토오코「이상한 말을 하네」
오오, 토오코가 내 성희롱을 받아넘기고 있어…….
감동.
타이치「후후후」
토오코「후후후」
라이벌처럼 서로를 바라보며 실없이 웃는다.
미사토「……냐음……」
타이치「아, 일어났다」
머리 위에서 이상한 대결을 하니 깨는 것도 당연한가.
타이치「헬로―, 선배. 타이치예요」
미사토「……어라……페케군?」
타이치「당신만의 타이치예요」
토오코가 굉장한 눈빛으로 째려보았지만 신경쓰지 않는다.
타이치「빨라고 하시면 빨게요. 자, 부디 빨라는 명령을」
토오코「타―이―치―!」
타이치「우오오오오」
후두부 아이언 크로가 굉장히 아팠다.
하지만 참는다!
미사토「저기……여긴 왜 왔어요?」
타이치「……예에, 선배의 아름다운 자는 모습을 보려고요」
토오코「두고 보자」
토오코가 등 뒤에서 중얼거렸다.
타이치「그건 농담이고, 상황을 보려 왔어요」
미사토「상황을?」
타이치「대강 준비된 것 같네요」
미사토「네, 네에」
토오코「……저기, 미야스미 선배, 혼자서 이걸 하셨어요?」
미사토「네……왜냐면」
그 다음 말을, 선배는 꼴깍 삼켰다.
당황스러운 기척이 한동안 얼굴에 머물러 있었다.
그래서 그녀가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건지 알았다.
미사토「왜냐면, 제 일이니까요」
타이치「당신의 일. 즉 저의 일이기도 하다는 거죠」
손을 잡는다.
손등에 키스한다.
미사토「저기……」
토오코「…………」
핫?
타이치「야야, 하라키리마루는 안돼!」
폭풍우가―!?
미사토「꺄악, 왜 갑자기?」
타이치「요도……수백년 동안 사람의 피를 받아 온, 불길한 원념 때문이에요!」
토오코「……아브톨, 다무랄, 옴니스, 놈니스」
뭐, 뭔가 불길한 주문을 외우고 있습니다!!
타이치「스톱―! 스톱―!」
토오코「나와 함께 멸망할지어다……」
타이치「No More 폭주!!」
타이치「OKOK, 진정해. 우리들 사이잖아?」
토오코「……그래……」
알아준 건가.
토오코「내가 옆에 있는 것도 신경 안 쓰고 여자를 꼬실 정도의 각별한 사이구나……」
타이치「하와왓」
토오코「괜찮아. 안심해」
생긋 웃는다.
토오코「이 칼은 굉장히 잘 베어지니까, 네 번뇌만을 베어줄 거야」
타이치「그, 그런 건 키쿠치 ○유키의 소설 속에서나 나오는 이야기예요!」
토오코「……날라리……바람둥이……색마……밝힘증……변태……치한……호색한……색욕광……」
타이치「아, 아아아아아」
모든 에로죄가 나에게!
미사토「안경, 안경……」
내가 일촉즉발의 위기에 휘말린 그 무렵, 선배는 느긋하게 안경 이벤트를 발생시키고 있었다.
우와―, 어서 촬영해!
하지만 죽는걸―!
촬영욕구와 생존본능이 다툰다.
……찍고 싶다!
촬영욕구가 이겼다.
네가 이기면 어쩌잔 거냐.
타이치「큭, 죽을 순 없지!」
토오코의 어깨를 감싼다.
고육지책. 아니, 육욕지책인가.
타이치「토오코, 아이 아이 아이 아이 아이 러브 유」
토오코「엇?」
쪼옥―
토오코「으응, 응, 으읍……응……아흡……응…………응……으으응……싫어, 혀 넣지 마……아응……읏, 츕……싫어, 느끼기 싫어……싫어어어어……」
슈퍼 딥 키스.
아니 구강 성교에 가깝달까.
미사토「하와와왓. 안경, 안경」
촬영하고 싶어―!
하지만 지금은 마이 텅 (내 혀)에 집중.
토오코「아읍……응……으으응, 응……응―……읏……아으, 아, 으읍……혀, 빼, 줘……응……츄웁……츄웁……」
미사토「하와하와하왓. 안 보여요 안 보여요」
뽀뽀와 안경.
토오코「으츕……츄웁……아응, 응, 으응……타이치이……앙, 침, 흘리지 마……앙, 마실게, 마실테니까, 간지럽히지 마……으응……꿀꺽, 으읍, 으으으응……흐아, 못, 마시겠어……으응……」
미사토「히잉, 못 찾겠어요―」
속편ㆍ뽀뽀와 안경.
토오코「으으응, 응, 츕, 츄우웁……안돼, 나도, 빨래……타이치 혀……, 빨래……응, 츕, 츄우웁……으으으응……」
미사토「앗……이런, 이건 파티용 코주부 안경이잖아요……이거 말고……」
속속편ㆍ뽀뽀와 안경.
토오코「아응, 손가락 넣지……마……앗, 흐앙, 응……으응, 알았어, 빨게……아읍……읍, 츕, 츕, 으으으응」
미사토「음. 이건 뭘까요? 아, 야간 작업용 암시 고글……」
계속계속ㆍ뽀뽀와 안경.
토오코「……싫어……으응, 으응……응……츕, 츄우웁……, 흐앙, 그렇게 빨면, 빨면……응, 으으응」
토오코「응―, 응―, 으……으으으응, 응…………으으으으응~~~~~~!!!」
추르륵
느낀 걸까.
내 팔 안에서, 축 늘어지는 토오코.
미사토「아, 찾았다!」
미사토「장착입니다」
치잉―
미미미 선배의 부활.
미사토「……키리하라, 왜 그래요?」
타이치「감기 걸린 거 같아요」
미사토「얼굴이 빨갛네요. 그리고 땀도 흐르고」
미사토「큰일이에요, 몸을 움찔움찔 떨고 있어요」
타이치「아아, 이건 액……으흠……액시온 반응이에요」
미사토「……엑시온 반응?」
미사토「그거 위험한 병이에요?」
타이치「별 거 아니에요」
타이치「이야―, 발견되면 좋겠네요, 암흑물질」
미사토「……?」
미사토「빨리 하세쿠라한테 진찰받아야 되지 않을까요?」
타이치「그러죠. 데려갈게요」
업는다.
토오코「……응……타이, 치……」
귓전에 뜨거운 한숨이 느껴진다.
집에 가자마자……논스톱 빠구리가 예상된다.
내려가기 전에, 뒤를 돌아본다.
선배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타이치「저, 저기―?」
미사토「네, 네에?」
타이치「……내일, 부활동 참가해도 될까요?」
선배의 눈동자가, 살짝 커진다.
타이치「얘도 데려갈게요」
턱으로 등 뒤의 토오코를 가리킨다.
미사토「아……네, 그러세요……」
타이치「그럼―, 갈게요」
문 쪽으로.
미사토「저, 저기」
불러세웠다.
타이치「우잉?」
그러자 그녀는 필사적인 표정으로.
미사토「꼬, 꼭……」
미사토「꼭 와요!」
다시 말했다.
큰 목소리.
나도 큰 소리로 대답했다.
타이치「라져―!」
집에 오자마자.
토오코「타이치……!」
현관에서 달려들었다.
타이치「네네」
토오코「……응, 하앙♪」
옷을 벗는 것조차 귀찮아, 키스를 하며 이어졌다.
세 번 결합하고서, 토오코는 기절했다.
밤이 될 때까지 눈을 뜨지 않았다.

정원에다 밥솥을 준비한다.
쌀이 먹고 싶었다.
전기밥솥은 못 쓰니까, 냄비로 지어야 한다.
이쯤에서 맛있는 밥 짓는 법.
①자신을 믿는다
②쌀을 담는다
③쌀 한 알 한 알이 고귀한 생명을 가지고 있다
④그 무수한 생명으로, 인간은 살아가고 있다.
⑤하지만 어떤 생명이든 언젠가는 대지로 돌아가게 된다
⑥대지는 생명과 같으며, 생명은 또한 대지와 같다
⑦머지않아, 또다시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기 위해―――
⑧장편 SF소설『가이아의 여행』완결
⑨쌀을 씻고, 20분 정도 물에 불린다.
⑩여름엔 이상하게 겁나게 매운 카레가 먹고 싶지
⑪불을 지핀다
⑫불꽃을 가만히 바라보면서 위험한 사상에 몸을 던지거나 자신을 구하고 죽은 전우를 생각한다 (택일)
⑬다 지어졌으면 불을 끄고 10분 정도 뜸을 들인다
⑭슈퍼 라이스 여기에 탄 생
타이치「다 됐다」
토오코「……타이치, 다행이다……거기 있었구나」
토오코가 왔다.
불안한 표정.
왜인지 눈시울이 빨갛다.
타이치「여, 일어났구나」
토오코「…………응」
고개를 끄덕.
나에게 다가와, 등 뒤에서 내 목에 팔을 감았다.
꾸욱
토오코「……있잖아?」
귓전에서 속삭인다.
고개를 돌려, 키스를 한다.
바로 혀를 내밀어서…….
토오코「잠깐……안돼」
입술을 떼어냈다.
토오코「……이럴 땐, 입만 맞추고 싶어」
타이치「흐―음」
토오코「그럼 다시. 프렌치 키스」
타이치「프렌치 키스?」
토오코「응」
타이치「알았어」
쭈우웁
처음부터 힘 만빵
토오코「으읍!?」
쭈웁, 쭈우우웁, 츄웁, 츄우우웁, 쭈우우우우우우웁~~~
입술 괴롭히기.
'뽁' 소리가 나게 혀를 빼낸다.
토오코「…………」
발정했다.
타이치「……할래?」
토오코「그, 그얼 기운 없어」
조금 발음이 이상했다.
토오코「……속옷 갈아입었는데……」
우와, 방금 그것만으로 젖은 걸까.
토오코「프렌치라고……했는데……」
타이치「그러니까 방금 그게 프렌치 키스」
토오코「어……그래?」
타이치「그래. 혀를 단단히 꼬아서, 서로의 입을 성기처럼 음란하게 탐닉하는 게 프렌치ㆍ키스야」※과장
타이치「그러니까 프렌치ㆍ토스트는 저질 음식이지」
토오코「싫어, 자주 먹었는데……」
부끄러워함.
토오코「캐비어 발라서」
타이치「캐비어 얘기는 이제 됐어」
토오코「……가벼운 키스는 뭐라고 해?」
타이치「음―, 소프트 키스 정도일까」
토오코「그럼, 그거 해 줘」
타이치「응, 알았어」
입술이 겹친다.
이번엔 장난 없이.
토오코「……응」
달콤한 분위기가 되었다.
남자는 이런 무드가 성욕과 직결하기 때문에, 끝마무리가 중요하다.
토오코「좋은 냄새」
타이치「배 고프세요?」
토오코「…………응」
조금 수줍어하며.
수줍음이란 얼마든지 느껴도 괜찮은 거라고 생각한다.
타이치「그럼 먹자」
토오코「우와, 밥이네」
타이치「최소한 전기밥솥보다는 맛있을……지도」
요즘 전기밥솥들은 성능이 좋으니까.
타이치「반찬은 레토르트 카레와 통조림입니다」
토오코「응, 알았어」
같이 먹는다.
토오코「아, 아얏……뜨거워」
타이치「고양이 혀?」
토오코「혀가 약한 거야……」
타이치「약하긴 약하지」
여러가지 면에서.
얼굴을 붉히는 토오코.
웬일로 반응이 없다.
타이치「그 약점이 있는 한은, 키스할 때마다 속옷이 더러워질걸」
토오코「으, 으, 으~」
숫가락을 입에 문 채로 분해한다.
토오코「……부, 분해~」
타이치「와하하」
토오코「……그래도, 맛있어」
타이치「싸구려 레토로트 카렌데?」
토오코「그래도……좋아하는 사람하고 먹으면 맛있는 거야. 어떤 거든」
타이치「그래」
토오코「쭉, 이렇게 지내면 좋을 텐데」
타이치「……」
밤은 조용히 깊어 간다.
아무런 사람의 기척도 없이.

그리고, 일요일.
옥상.
모든 준비가 끝났다.
……그럴 예정이었다.
안테나는 파괴되어 있었다.
타이치「……」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선배가 그렇게 열심히 만들었던 것이.
한순간에.
사고의 일부분이 감정에서 이탈한다.
냉정한 사고에 잠기기 위해.
누가 한 거지?
지금 세계에는 여덟 명밖에 없다.
여덟 명밖에, 없는데.
타이치「선배!」
미사토「…………」
그녀는 파괴된 첨탑 밑에 있었다.
타이치「선배?」
미사토「……」
돌아본다.
날카롭고 신경질적인 반응.
그 어깨를 잡으려 한 내 손이 허공을 가른다.
미사토「……페케, 군」
선배는 쥐어 짜내듯이 말했다.
가슴이 조였다.
나를 부르는 그 말에 담긴 마음이 살짝 엿보였기에.
토모키「타이치!」
토모키「어떻게 된 거야, 이거?」
사쿠라바「……」
두 사람이 함께 나타났다.
타이치「나도 모르겠어」
세 사람의 시선이, 선배에게 향한다.
미사토「……제가 그랬을 리가 없잖아요」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미사토「……자기가 만들고, 자기가 부수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잖아요?」
타이치「뭐」
그런 사람도 있었겠지만.
인류가 생존해 있었을 무렵엔.
잠깐?
선배 자신이 부쉈다?
가능성은 있을지도.
토모키「……누님, 누님이 부순 거 아냐?」
미사토「에?」
토모키「안테나가 완성되면, 도피처가 사라지게 되니까」
토모키「다시 스스로 0으로 돌린 거지」
그래.
그 말도 일리가 있다.
특히 선배는. 군죠의 인간이니까.
토모키「도망치기 위해, 도망칠 길을 만든 거야」
미사토「잠깐 기다려. 아무리 그래도 그런……」
철문이 열린다.
대화가 멈춘다.
토오코「……?」
토오코였다.
토오코「……켁, 삼바보」
타이치「……」
토모키「……」
사쿠라바「……」
반응이 없는 걸 이상하게 느꼈는지, 토오코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타이치「왜 여기에?」
토오키「하세쿠라 선배가……할 말이 있다는 편지를……」
파괴된 안테나를 바라보았다.
토오코「망가진 거야?」
타이치「부서졌어」
타이치「……누군가에 의해」
토오코「부수다니……누가?」
토모키「뻔하지」
토모키「여기에 있는 누군가에 의해서야」
토오코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토오코「그런」
타이치「별로 유쾌한 이야기는 아니지」
미사토「그래요, 유쾌할 리가 없죠……내가 부쉈다니……말도 안 돼……」
미사토「절대로, 아니에요」
중얼중얼 혼잣말을 한다.
타이치「이 안테나는 원래 방송부 활동용이었지만……지금은 구원신호를 보내기 위해 쓸 예정이었어」
토오코「어, 그래?」
타이치「그렇죠, 선배?」
미사토「……에, 아, 그래요」
화제가 바뀌어, 조금 당황하는 선배.
미사토「그런 의도도 있었어요」
타이치「그게 선배의 부활동이었어」
타이치「꼭 도피라고만 할 순 없어. 목표가 있었으니까」
토모키「…………」
타이치「그러니까, 난 선배를 전혀 의심하지 않아요」
미사토「페케군」
타이치「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요」
미사토「……네」
토오코「잠깐, 왜 혼잡한 틈을 타서 선배 귀를 만지는 건데!」
타이치「이러면 마음이 차분해져」
토오코「그런 건 연인 사이에서나 하는 거잖아!」
어깨를 으쓱인다.
타이치「후후후, 나와 선배는 이른바 영혼의 연인, 소울풀 러브러버―라네」
사쿠라바「……」
토모키「……」
미사토「……」
아무도 웃지 않았고, 태클도 없었다.
타이치「…………」
토오코에게 시선을 보낸다.
타이치(토오코)(토오코)(부탁해!)
토오코「……어? 뭐야? 윙크는 왜 하는 거야?」
토오코는 둔감했다.
타이치「이제 됐어!」
토오코「왜 화내는 건데……」
타이치「OK, 범인 수색은 이제 끝! 자 여러분, 이걸 후딱후딱 고쳐버린 다음에 SOS로 휴먼 드라마!」
미사토「……무리예요」
타이치「어째서!」
미사토「필요한 기재가 모두 불타 있었어요. 수리는 불가능해요」
타이치「불타다니……」
발 밑의 기재를 가리킨다.
미사토「가솔린 냄새가 나요. 그걸 뿌리고, 태운 것 같아요」
할 말이 없었다.
이렇게까지 철저하다니.
타이치「뭐, 뭐어 범인 같은 거 찾아봐야 어쩔 수 없잖아―요」
미사토「전」
미사토「범인이 누군지, 알고 싶어요」
타이치「네……?」
미사토「적어도 전 아니에요. 그렇다면, 당신들 중 누군가잖아요」
말이란 총알과 같다.
한 번 쏘아내면, 돌이킬 수 없다.
빗나가거나, 상처입거나.
미사토 선배의 그 말은, 너무도 간단하게 이해가 되었다.
미사토「당신들 중 누군가가 배신했어요」
상냥해야 할 안경 선배가 그렇게 말했다.
화낼 때도 있긴 있었지만.
굳이 고발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는데.
토모키「사람을……배신자라고 부르지 마!」
갑자기 토모키가 소리친다.
토모키「네가 배신이니 뭐니 하는 건―――」
사쿠라바가 움직인 순간, 토모키가 쓰러졌다.
사쿠라바「……」
때렸어?
사쿠라바가 토모키를?
타이치「어이어이어이어이」
전개를 따라갈 수가 없었다.
토모키「아야야, 뭐하는……」
사쿠라바「……왜 부쉈나」
그 말은, 토모키를 향한 말이었다.
토모키「……」
타이치「방금 뭐라고 했어?」
사쿠라바「왜 부숴야만 했나」
사쿠라바는 진지하게 말했다.
토모키「……무슨 말인데. 난 몰라」
사쿠라바「난 봤다」
사쿠라바「네가 안테나를 부수는 순간을, 봤다」
토모키「……」
미사토「토모키, 너……」
토모키「…………」
토모키의 입가가 부자연스럽게 일그러진 그 순간.
다시, 문이 열렸다.
그 소리는 날카롭게 정적에 균열을 새겼다.
키리와 미키였다.
그리고.
키리는 무장하고 있었다.
키리「움직이지 마!」
전원의 움직임이 멈춘다. 제지당했다.
키리가 손에 든 크로스보우, 그곳에 장전된 화살에 의해.
키리「움직이면 쏘겠습니다. 이건 장난감이 아닙니다」
그 말대로였다.
백 마스터사(社) 제품ㆍ맥스 포인트 크로스보우.
옵션으로 코킹 장치가 달려 있다.
저건 여성용인가.
그렇다곤 해도 수렵용 무기. 편안한 사용감에 살상력도 충분하다.
아마 누군가의 집에 있던 것일 것이다.
벼락부자가 많은 동네 안의 어느 집에서, 무방비하게.
타이치「……키리찡」
키리「쿠로스 타이치는 특히 움직이지 마!」
키리「제가 지금 당장이라도 죽여버리고 싶은 상대니까요, 당신은」
차갑게 웃는다.
타이치「…………어이어이」
토오코「잠깐,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영문을 모르겠는데?」
토오코「사쿠라도 좀 진정해」
발을 한 걸음 내디딘 토오코를, 왼쪽으로 열다섯 번 슬라이드한 보우의 끝이 가로막았다.
키리「움직이지 마세요」
토오코「잠깐! 난 아무 관계없잖아!」
키리「관계있어요」
전원에게 향해, 키리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키리「저희는 독립합니다」
독립?
사쿠라바「……그 말은?」
키리「카미사카시의 주택가 고개부터, 시청까지의 라인……그곳이 저희들의 영토입니다」
타이치「영토?」
키리「그곳에 있는 식료와 물, 의류와 그 외의 잡화류도 당연히 저희의 것이 됩니다」
토오코「독점하겠단 거야!?」
키리「그렇지는 않습니다」
키리「식료품 등의 가게는 제가 설정한 국경 반대측에도 존재하니까요」
키리「대충 7대 3 정도입니다」
키리「타당한 분할이에요」
타이치「타당하다는 건 알겠어. 하지만 이유는?」
내 물음에, 코웃음치는 키리.
키리「당신들을 신뢰할 수 없어서입니다」
토오코「……」
키리「호우난쵸의 건너편, 사카이 다리 건너편의 잡목림 속에……」
키리「시체가 있었습니다」
소리없는 충격이 주위를 감싼다.
타이치「시체……」
키리「노인의 시체였습니다. 자세한 건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간결한 설명으로 질문을 가로막고, 키리는 말을 이었다.
키리「범인은……이 안에 있다고 전 생각합니다」
타이치「뜬금없는 이야기네」
키리「당신이 가장 의심스러워!」
나에게 크로스보우가 향한다.
당장이라도 쏠 것 같다.
키리「전과가 있는 당신이……가장 유력한 용의자입니다!」
사쿠라바「전과……?」
전과, 라.
분명 맞는 말이지.
키리「다른 사람들에게도 가능성은 있습니다」
키리의 옆에서, 미키가 살짝 고개를 숙이고 있다.
말할 기색은 없다.
그저 빨리 끝나기를 바라고 있는 것 같았다.
타이치「아―, 너희들의 말은 잘 알았다」
타이치「하지만 우리들은 같은 그룹의 동료이자, 인류 최후의 생존자로서―――」
키리의 말이, 내 말을 가로막았다.
키리「동료라고 생각했던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옥상은 순간 싸늘해졌다.
토모키「뭐, 마침 잘 됐네」
매우 냉정한 말.
토모키「어차피, 뭘 하든 잘 될 리도 없고」
토모키「나도 이 인간들하고 사이좋게 지내고 싶었던 것도 아니고」
타이치「그래서, 안테나를 부쉈냐?」
토모키「뭐 그렇지」
토모키「누님이 도망치는 걸 용서할 수 없었어」
미사토「……」
토모키「사람의 도망칠 곳을 뺏고, 자기만 도망치다니」
토모키「다른 사람에게 엄격하다면, 자신한테도 엄격해야지」
담담한 말.
허물없이 말하는 것처럼도 들렸다.
토모키「독립. 뭐 괜찮네, 사쿠라」
키리「……당신들은 신뢰할 수 없어요」
사쿠라바「그걸로 괜찮나, 모두?」
미사토「……」
토오코「……」
토모키「……」
미키「……」
타이치「……」
일곱 명의 일상.
잃어버렸던 것.
우정의 잔해에 지나지 않았던 그것도 지금, 완전히 부서졌다.
결렬. 또는 단절.
그것은 처음부터 존재해 왔고, 다만 보이지 않았던 것뿐이다.
각자, 친구의 연기를 하고 있던 것뿐이다.
아니다.
이런 걸 꿈꾸어왔던 건 아니다.
내가 희미하게 기대해 왔던 건.
아니다.
이런 게 아니다.
단절이 아니다.
평범한 부활동만으로도 괜찮았다.
어디서 잘못된 걸까.
애초에 모든 것이 크게 잘못되어 있었다고도 생각된다.
나라는 존재.
군죠라는 학교.
카미사카라는 동네.
타자키 상점이란 잡화점.
세계라는 전능한 존재.
타이치「다 미쳤어」
나는 살짝 중얼거렸다.
검은 실루엣에 지배된 시야.
그림자들이 말다툼을 하고 있다.
끝내고 싶다.
모두 끝내고 싶다.
잔해마저 남지 않은 지금조차, 참기 어려운 고통이었다.
사람이 멸망하고, 사람들 사이의 마찰이 없어질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은 어떤가.
여덟 명이다.
단 여덟 명이서.
싸우고, 서로 미워하는 건가.
그런가.
나는 진실을 알았다.
깨달았다.
혼자가 아니면 안 된다.
복수여선 안 된다.
객체가 아니면, 인간은 그저 인간일 뿐.
객체.
객체.
객체.
객체가 되려면?
현기증이 왔다.
미키「……죽여, 저 녀석을 죽여!」
미키가 외친다. 이제 아무래도 상관없다.
키리「미키?」
미키「빨리, 빨리 저 녀석을!」
미키「지금 죽여야 돼!」
……아무래도 상관없다. 서로 죽이면 된다.
맘대로 해 봐.
내가 뭘 꿈꿨더라.
그래, 따스한 세상.
따스한 세상이었어.
나 같은 인간 쓰레기도 살아갈 수 있는, 사랑이 넘치는 세상.
그 실현.
……어떻게?
뻔하지.
움직이는 것을.
이 눈으로.
세계에는 동과 정뿐이다.
동을 정으로 만든다.
그런 생각을, 분명히 하고 있었다.
깨닫지 못한 척 하며 살아왔던 건지도 모른다.
*「*******」
누군가의 목소리.
알아들을 수 없다.
*「****!」
누군지조차 알 수 없다.
뒤를 돌아보자.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이해할 수 없었다.
단지.
해석조차 불가능한 감정에, 지배당하고 있었다.
**「****!?」
*「**……」
**「*******」
**「******……」
무수한 노이즈.
알아들을 수 없다.
나는 이동한다.
이동할 수 없었다.
노이즈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펜스에 접근한다.
펜스를 누르자, 그물벽이 서서히 제거된다.
하늘.
하늘에 가려고 했다.
**「******!!」
더 큰 노이즈가, 등 뒤에서 들렸다.
세계가 주홍빛으로 물들었다.
색.
주홍이란 색을, 난 볼 수 있었다.
귓전에 느껴지는 바람.
바람을 가르며, 날고 있는 나.
타이치「……하하」
나는 게 아니다. 떨어지고 있다.
게다가 개그도 아니다.
리얼 낙하.
이노센스 10대의 필살기, 라이프 다이브 어필이었다.
뭐, 난 어필할 것도 별로 없지만…….
제기랄.
왜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다시 시작하고 싶어, 정말로.
정말로.
슬슬 충돌인가?
젠장―, 곁에 누가 있었으면 좋을 텐데.
『내 주마등이 켜지고 있어』
와 같은 영 어덜트에게 어울리는 쿨한 말과 함께, 천천히 눈을 감고 나의 끼를 마음껏 발휘하면서 스크린 너머로 어필할 수가 있

가장 오래된 기억은.
언제인지도 가물가물한, 뿌연 안개 속.
귀족적인 기품이 담긴 호화로운 개인실.
그곳에는 호화로운 침대도, 유럽제 의자도 있었다.
하지만 바닥에 앉는 것이 가장 좋았다.
이런 날에는 특히 더.
창으로 보이는 별이 반짝이는 검은 장막.
점점이 흩어진 반짝거림에 눈길을 빼앗긴다.
바깥 세계와 실내를 가르는 창에, 나의 모습이 비친다.
귀족의 아가씨―――
서양식 드레스로 몸을 덮은 청초한 소녀.
당신은 도대체 누구입니까?
소녀「……타이치」
투명하게 빛나는……은발.
허리에 닿을 정도로 길게 늘어진 그 머리칼이 부드럽게 살랑인다.
얼굴은 작다. 마치 인형 같은 몸.
『천사 같은 모습이네』
누구였더라, 그런 말을 한 건.
사모님이던가, 언니들이었던가.
온화한 목소리가 귀에 아른거린다.
태어나고 나서 10년 무렵까지의 기억은, 어쩐지 흐릿하고 황홀한 느낌이다.
『이리 와, 같이 놀자』
거부했던 적은 없었다.
소녀의 옷, 소녀의 몸가짐, 소녀의 말씨.
저택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그 우아한 주인들의, 고상하다고도 유치하다고도 할 수 없는 인형놀이는 지루하진 했지만 불쾌하진 않았다.
그런 이유였다고 생각한다.
창에 비쳐진 내 모습이, 항상 소녀의 모습이었던 건.
그래, 단 하나 기억하고 있는 게 있다. 확실하게.
많은 수의 어린 소녀들 사이에, 단 한 명 웃지 않는 소녀가 있었다.
그녀만이 나와 논 적이 없었다.
소녀의 모습으로 차를 마실 상대를 찾는『나』의 몸은 언제나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었고,
넓은 뜰을 혼자서 산책하는 그녀는, 그런 나를 경멸하듯이 힐끗 쳐다보곤 했다.
흑요석을 떠올리게 하는 맑은 검은색 눈동자로.
동요.
그 시선을 받으면, 언제나 마음이 혼란해졌다.
기쁨 때문일까, 수치 때문일까.
또는 둘 다 이유일까.
거의 동요해 본 경험이 없는 나에게, 그 제어 불가능한 감정의 폭주는 견디기 힘들었다.
그래도 겉으로는, 태연하게 부인들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내 역할은 완수해야만 한다.
역할……인형의 흉내를 내는 일.
살아가기 위해.
그 인형 시절, 그녀와 대화해 본 적은 없었다.
단 한 번도.
넓은 뜰에 초연히 서 있는 그 소녀의 모습만이 강하게 인상에 남아 있었다.
나중에 알았다.
그녀 또한 돈으로 팔려 온 인형이었다는 것을.
싸늘한 공기가 휘몰아친다.
차가워진 복도의 바깥 공기다.
뒤를 돌아보자, 소리없이 열린 문 옆에.
그녀가 서 있었다.
고고한 공주―――
하지만 어떻게 된 일일까.
눈 앞에 있는 소녀는 지저분했다.
아니.
더럽혀져 있었다. 악랄하게.
찢어진 옷. 하얀 피부에 새겨진 찰과상.
입술 끝에는 거무스름한 핏자국.
빙글
시야가 요동친다.
우스꽝스럽긴 했지만 행복했던 인형 시절.
나와 그녀가 동거했던 적은 없다.
기억이 혼란스럽다.
그래……그러니까……그녀가 여기에 있다는 건…….
소란스러운 사모님과 아가씨들. 젊은 하인들.
설탕 과자처럼 달콤한 나날들은, 기억 속에서 빠르게 흘러갔다.
모든 풍경은 색채를 잃고, 칙칙한 회색으로 변해간다.
그녀가 문을 열고 내 방으로 온 시점.
그것은 인형 시절이 아니다.
좀 더 뒤…….
우리들 두 사람에게, 단 하나의 방밖에 주어지지 않았던 시절.
무대는 천국에서 지옥으로.
정신을 차리자, 주위의 가구들은 사라지고 회색의 벽이 나타났다.
침대는 낡아지고.
시트는 더러워지고.
조명은 꼬마전구.
바닥은 갈라진 나무판자.
아름다운 실크 커텐은, 걸레와도 같은 꼴로 변해버렸다.
괴롭고, 무겁고, 비열하게, 너무나 빠르게 지나간 인생의 좁은 길목.
그 같은 처지가 서로 말도 하지 않았던 두 사람을 연결했다.
소녀「타이치」
나의 이름이다.
사모님들은 이 남자 같은 이름에서 한 글자를 빼고, 대신에 여자아이의 이름에 어울리는 한 글자를 붙인 이름으로 나를 불러왔었다.
이치히메.
고상한 이름.
하지만 그녀가 나를 그렇게 부른 적은 없다.
타이치「뭐 마실래?」
내 말에 반응하지 않고, 그녀는 나와의 거리를 좁혔다.
그리고 아주 자연스럽게, 나를 침대에 넘어뜨렸다.
소녀「……」
몸이 닿을 정도로 가깝다.
둘 사이에는 침묵이 감돈다.
호흡이 멈출 것 같았다.
달콤한 향기.
항수도 비누도 아니다.
소녀 자신의 체취.
그 향기는 구토감을 느끼게 하는 악취 속에서, 모든 것을 지우면서 피어올랐다.
부드러운 꽃잎을 닮은 입술이, 다정한 목소리를 냈다.
소녀「매일이 괴로워?」
조금 생각하고, 정직하게 대답했다.
타이치「응」
소녀「아파?」
타이치「아파」
소녀「아무도 안 도와줘?」
타이치「응. 친절한 사람들, 이젠 없으니까」
소녀「아냐. 옛날부터 없었어」
갑자기, 그녀는 차갑게 말했다.
괴로움도 적의도 없다.
그저 차가울 뿐.
타이치「그치만 옛날 주인님들은」
소녀「그들은 약한 존재일 뿐이야」
타이치「……」
소녀「좁은 마음에 여유가 있으면, 친절하게 보일 때도 있겠지」
소녀「하지만 자기가 괴로워지면 바로 도망쳐」
소녀「……소중한 장난감도 내버려두고」
양손이 내 어깨에 얹혀진다.
강하게 붙잡힌다.
소녀「우리 편은 없어. 아무도 도와주지 않아. 우리 스스로 우리들을 지켜야 해」
타이치「……」
그래.
슬프지만.
그것이 진실이다.
약한 어린아이는 먹히기 쉽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검은 욕망이 세상에는 존재한다.
나도 그녀도, 그것을 알고 있다.
힘없는 우리들은, 지혜로 스스로를 지킬 수밖에 없다.
법률상으로『그들』이 우리들의 보호자이기 때문에.
하지만 그 보호자가, 가해자라 한다면?
저항할 수 없다.
넓은 저택과 토지.
그 안에서 무엇을 하는지, 그들의 행위가 밖에 새어나갈 일은 없다.
우리들은―――
'노예'이다.
하얀 손이 내 뺨을 쓰다듬는다.
얼굴이 접근했다.
조금 가슴이 두근거렸다.
하지만 그녀는, 진지한 표정으로 한쪽 뺨을 쓰다듬었다.
소녀「……담배불로 지졌어?」
타이치「조금」
타이치「그래도 미리 크림 발랐으니까 괜찮아」
스스로의 지혜로, 스스로를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
소녀「미안해」
타이치「응?」
소녀「도와주지 못해서」
당황했다.
타이치「됐어, 너야말로……」
그 다음 말은 할 수 없었다.
남자인 나보다 여자인 그녀 쪽이, 훨씬 더 괴로울 것이다.
꼭 안겼다.
타이치「왜 그래?」
소녀「타이치……타이치」
목소리가 떨렸다.
드문 일이다. 언제나 냉정한 그녀가.
소녀「타이치……」
내 귓볼에 바싹 다가온 입술. 귀에 따스한 숨결이 느껴진다.
등골이 순간 오싹거렸다.
허리 주위가 불끈 뜨거워진다.
타이치「!?」
그 부분을 갑작스럽게 압박당했다.
손이다.
한 손으로 누르고 있다.
딱딱한 손바닥이, 위에서 강하게 누르고 있었다.
견디지 못하고 몸을 비틀었다.
소녀「타이치, 우리들은 약해」
검디 검은 눈동자에서 나오는 빛.
거기에 위압당해, 대답조차 할 수 없었다.
소녀「그러니까 손을 잡아야 해」
타이치「손을?」
소녀「일심동체가 되는 거야」
타이치「일심동체……」
소녀「그렇게 되면, 조금 괴롭더라도 참을 수 있으니까」
소녀「난 타이치, 타이치는 나」
입술이 말을 자아내면서 조용히 내려왔다.
타이치「아……」
당황과 혼란, 약간의 부끄러움.
그런 것이 뒤섞여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소녀「타이……치……」
달콤한 타액이 구강으로 흘러오며.
얼어붙어 있던 나를 녹였다.
입술을 떼고, 그녀는 상의를 벗었다.
숨을 삼킨다.
티없이 맑은 달빛의 피부도.
고귀한 가녀림도.
어렴풋하게 비치는 빛에 의해 은빛으로 변한 머리칼에 잠긴, 살아있는 여신처럼 보이는 신비한 몸도.
모두, 수많은 상처들에 의해 능욕당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그것을,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소녀「난 타이치, 타이치는 나」
계속되는 그 말이, 선명하게 기억에 새겨진다.
아름답게 빛나는 눈동자가 떨렸다.
소녀「미안해……」
소녀「나 말고는 아무도 못 믿으니까」
섬세한 손 끝이, 내 가슴에 닿았다.
가슴팍을 간지럽히는 감각과 함께, 상반신이 벗겨졌다.
타이치「요……코……」
그녀의 이름.
힘겹게 말을 꺼냈다.
애무가 시작됐다.
옅은 분홍빛 꽃잎이, 얇은 내 가슴팍을 지나간다.
타이치「으……」
깃털로 간지럼피는 듯한 감촉에, 저항할 수도 없이 근육이 움찔거렸다.
입술이 지나간 뒤, 투명한 타액이 가느다란 길을 남겼다.
그녀의 머리는, 점차 내려갔다.
이윽고, 내 치마 속으로 들어갔다.
그녀의 손 끝이 내 속옷을 벗기고, 발목까지 내렸다.
타이치「……」
나는 말없이 한쪽 팔로 눈을 가렸다.
이런 때엔, 어떻게 반응해야 되지?
무슨 소리를 내야 되지?
모르겠어.
단지, 뜨거워.
가랑이 사이에 그녀의 입술이 닿았다.
타이치「읏」
몸이 물고기처럼 철퍽였다.
강한 열기를 내뿜으며, 그녀의 입은 내 가랑이 사이에 타액을 흩뿌려간다.
요코「응……」
이곳저곳, 축축하게.
요코「핫……하읏……으읍……」
욕정의 숨결이, 치마 속을 열기로 가득 채워간다.
거기에 호응해 전신이 열을 낸다.
타이치「뜨거워……」
요코「으응, 흐응……으읍……응……」
하반신을 세차게 애무당하며, 서서히 힘이 빠진다.
쾌락에 몸을 맡기고 싶었다.
움직이는 것도 귀찮았기에.
요코「……읍……으흡……응……」
고양이가 물을 홀짝이는 소리와도 닮은 소리가.
파도를 이루어 상반신에 도달하는 저린 감각이.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계속 이어졌다.
잠시 후 하반신에서 북받쳐오르는 관능이, 문득 중단되었다.
타이치「어……?」
몸 감각은 이성의 제어를 벗어난 지 오래 되었다.
하지만 한 곳, 아플 정도로 민감해진 기관이 있었다.
세차게 뛰는 혈액이, 나에게도 느껴진다.
어른들이 강제적으로 가하는 감각과는 다르다.
차갑기 그지없는, 고통없는 학대에 지나지 않는 그 행위와는.
뜨겁다.
온몸이 뜨겁다.
가랑이가 뜨겁다.
녹아내릴 것 같다.
타이치「요……코……」
목소리에 재촉하는 기색이 섞이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안타까운 감정을 풀기 위해 허리를 치켜든다.
불뚝 솟아오른 물건은, 하늘만을 보고 있다.
느끼려 하는 것이다. 치마 안에서.
타이치「쌀 것 같아……」
요코「……」
몸을 가만히 놔 둘 수가 없다.
움찔움찔, 사지가 움직인다.
내 모습은 추악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혀가 내 음경에 닿았다.
타이치「큭!」
요코「응……으응, 으으응―……」
근육을 스치며, 뱀처럼 기어가며 서서히 뻗어가는.
혀가 살아있는 것 같았다.
뱀처럼 길게 뻗어진 혀가 내 음경을 감으며, 꼭 조였다.
보이지 않는 치마 속에서, 어떤 애무가 그런 착각을 하게 하는 걸까.
요도가 묶여, 정자들도 갈 곳을 잃었다.
열기가 가랑이 사이에서 휘몰아친다.
나선 모양으로 달라붙은 혀는 드디어 귀두에 다다랐다.
설마. 말도 안 된다.
하지만 그렇게 느낄 수밖에 없는 관능에, 몸이 떨린다.
그리고.
삼켰다.
뭔가 모순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요코「으읍」
내 걱정을 없애듯이, 희미한 파열음이 들린다.
틀림없이 삼키고 있다.
요코「읍……으흡……으으응……꿀꺽……으음, 으으으으읍」
더러운 내 몸을, 언제나 동경의 시선으로 바라보단 소녀가 입으로 애무한다.
등골의 오싹함이 멈추지 않았다.
추위 때문도 공포 때문도 아닌 그것은, 의심의 여지 없이 향락의 발작.
'그녀는 요괴가 되어버렸다'라고 생각해 자신을 납득시킨다.
정액을 삼키는 악마 소녀.
소녀 흉내를 거부하지 못하는 나를 벌하고 있다.
그러니 옷 속에서, 어떤 불가사의한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다.
혀 끝이 갈라지거나, 콩나무처럼 한없이 자라날 지도 모른다.
요코「하아……으읍……으으으읍……으으으응, 으응……」
그녀의 손이, 내 양쪽 다리를 잡는다.
드디어 본격적으로 입에 의한 애무가 격렬해진다.
타이치「안돼……안, 돼…….」
이미 한계는 지났다.
하지만, 종지부에는 달하지 않았다.
음경이 묶여 있기 때문인지, 저항할 수 없는 충동의 방문으로, 육체적인 마무리는 아직 찾아오지 않았다.
요코「흐으읍, 으흡, 으으응, 으응, 으읍」
애무는 더욱 더 격렬해지며, 쉴 틈을 주지 않았다.
나는 소리쳤다.
정신이 이상해질 것 같았다.
그것을 예상했는지, 그녀는 내 하반신을 강하게 누르고 있었다.
요코「……으으으으으으으읍」
그리고 빨았다.
고개를 좌우로 이리저리 돌리며, 좁은 입술 속에 있던 음경을 조금 뽑아냈다.
타이치「아아앗!」
그녀의 머리가 스윽하고 빠져나왔다.
동시에, 나를 속박하고 있던 것이 스르륵 풀렸다.
타이치「읏……」
순간, 쌀 것 같았다.
해방되려 하는 짐승.
하지만.
그보다 빨리, 그녀의 손이 움직였다.
손가락 끝이 두 개의 더러워진 신체 기관 사이를 강하게 압박했다.
평평한 그 곳을 압박당하자, 왜인지 체액은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짐승은 손쉽게 거기에 굴복하고 얌전해졌다.
내 힘으로는 막을 수 없는 괴물을, 그녀는 간단히 길들였다.
내 쾌락도.
내 고통도.
본래 주인보다 그녀의 말이 우선.
요코「타이치……」
살짝 얼굴을 붉히고 눈동자를 적신 그 얼굴은, 결심을 굳힌 것 같았다.
허리 밑이 차갑다.
젖어 있다.
그녀가 흘린 타액일까, 내 땀일까, 또는 또 다른 액체일까.
잘 알 수 없었고, 관심도 없었다.
요코「타이치, 하나가 되자」
화려한 내 옷을, 그녀는 난폭하게 찢었다.
무릎을 세우고, 나를 바라본다.
요코「…………」
말은 없다.
양쪽 눈에 비장한 결의를 또렷이 비추며.
그녀는 앞으로 다가와, 입술을 맞췄다.
공격적인 입맞춤.
새에게 쪼이는 듯한 접촉에서, 곧 점막의 밀착으로 이어진다.
그녀가 고개를 숙이고 체중을 실어, 더 깊게 밀착하려 했기 때문이다.
한계까지 엉킨 혀가, 요코의 입 속으로 끌려들어간다.
움직이는 두 혀가, 포옹하며 서로의 몸을 문지른다.
두 사람의 타액이 거대한 덩어리를 이루어 입가에서 흐른다.
서로의 입술을 살짝 깨물며, 교대로 자리를 바꾼다.
길게 뻗어진 혀가, 그녀의 입술 사이로 사라져 간다.
끝이 없었다. 마치 끝없는 늪처럼.
혀가 뽑힐 듯한 착각에 빠져, 무심코 허리가 들린다.
뇌리가 타오른다.
사고가 사라진다.
요코「흐으응……」
이번엔 요코의 혀가, 날카롭게 솟아 내 입술 안에 들어왔다.
'마음대로 해'라고 말하고 있는 듯 해서,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요코를 따라 혀를 빨아본다.
서로의 숨결이, 서로의 얼굴을 감싼다.
요코「으흡……앗, 으으응」
자연스럽게 눈을 감고, 나에게 몸을 맡긴다.
양팔로 그 머리를 감싸안고, 입 안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려 했다.
요코「으으으으응!」
그 때.
소녀는 가냘프게 소리질렀다. 목으로.
당황해하며 내 성욕을 억눌렀다.
빠져나오는 분홍빛의 평평한 물체, 그 끝에 끈끈한 꼬리가 달렸다.
요코는 혀를 내민 채로, 미소짓고 있었다.
길었다…….
평소와는 다른 용도를 보여준 그녀의 혀는, 손가락보다 길게 입 밖으로 늘어져 있었다.
둘 다, 턱 밑으로 물방울을 흘리고 있다.
상대를 애무하며 흐른 타액이었다.
더럽혀도 상관없다.
내 성에 대한 의식이, 조금 망가졌다.
이런 식으로 상대를 더럽혀도.
기뻐해 준다.
좋아하는 사이라면, 서로 더럽히는 것이다.
지식으로는 알고 있던 이성과의 접촉.
그것이 현실과는 다르게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그 작은 변화를 감지했는지, 그녀는 요염하게 말했다.
소녀「……왜 그래?」
나는 말했다.
타이치「네 안에 들어가고 싶어」
그녀는 미소지었다.
그리고.
우리들은 결합했다.


붕괴 직전이었던 방송부의 면면을 모아, 합숙을 하기에 이르렀다.
상당한 노력이 필요했다.
방송부의 정식 부원은 현재,
하세쿠라 요코
미야스미 미사토
쿠로스 타이치
사쿠라바 히로시
시마 토모키
키리하라 토오코
야마노베 미키
사쿠라 키리
까지 여덟 명.
이 여덟 명은……합숙 직전까지 거의 관계가 끊겨 있었다.
우선 요코는 타인에게 흥미가 없기 때문에, 부활동 참가 같은 건 하지 않는다.
사쿠라바는 원래 방랑벽이 있어서, 정기적으로 부활동을 하러 온다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시마는 미미 선배와 냉전중.
토오코는 나와 냉전중.
미키는 붙임성만은 좋지만, 키리 때문에 부와는 거리를 둔 상태.
키리는 날 싫어하고.
나도 왠지 모르게 가기가 귀찮아서.
미미 선배 혼자, 온갖 잡일을 도맡아 하고 있던 것 같다.
나는 불끈 일어나, 모두를 모았다.
다소 무리한 수단으로.
작년 해수욕 때도 비슷한 방법을 썼다.
일단 불러내기만 하면 장땡이었으니까.
결국 예년 실시되었던 여름 합숙을 감행하게 되었다.
……대실패였다.
교사에게 비밀로 한 탓도 있었지만.
토모키『……누님 탓이잖아!』
키리『불쾌해요』
미키『……그만 해요―, 싸움은―』
타이치『잠깐, 잠깐, 속이고 말고 하는 문제가 아니잖아!』
토오코『어쨌든 속였잖아!』
미사토『그러니까……싫었어요……모두 함께라니』
말다툼.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인간관계는 그대로.
오히려, 한층 더 갈라지기만 했을 뿐.
비탄과 고통으로 가득 찬 채 합숙은 끝나버렸다.
몇일 동안, 우리들은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따로따로 만나면, 대화는 가능하긴 했다.
하지만 여러 명의 소원하던 인간관계가 겹쳐져서, 분위기는 최악이었다.
이번에 미미 선배의 도움을 받았었는데.
덕분에 선배의 신뢰마저 잃어버리게 되었다.
선배는 나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일곱 명은 귀로에 접어들었다.
나는 보고 싶지 않았다.
초췌하고, 피로해하며, 서로 시선을 피하는.
그런 타인과 같은 모두의 얼굴을.
그래서 맨 앞에 섰다.
빠르게, 걸었다.
도중에 해가 저물었다.
아주 오랫동안 걸었던 것 같다.
몇 시간 동안이나.
보통 때는 1시간도 안 걸리는 길이다.
지친 탓일까.
아무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일곱 개의 발소리만이 존재하는 세계였다.
이상하게 조용한 산길.
벌레소리마저도 들리지 않는다.
공기마저도 차갑게 느껴진다.
지금은 여름인데도.
그 순간,
세계가 흔들리는 것 같았다.
같은 풍경이, 다른 측면에서 본 것처럼 느껴졌다.
일단 멈췄다.
과연 앞으로 가도 되는 것일까.
하지만 나는 전진했다.
미사토「페케군―……」
등 뒤에서, 선배의 목소리가 쫓아왔다.
하지만 나는 전진했다.
도망쳐 갔다.
이 때 만약『다시 보았』더라면.
또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더다면.
우리들은 길을 잘못 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생각한다.


CROSS†CHANNEL


월요일……인가.
7시.
기상할 시간이다.
하지만!
일어나지 않아도 된단다, 얘야―――
그런 다정한 그랜드 마더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 녀석은 너를 잡아먹으려고 하는 거야!―――
그건 할머니가 아니자너. 울프지.
그런 연유로 자도 OK.
타이치「후후후」
행복하다.
인류가 멸망했다느니 어쩌니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내 행복감은 한없이 신의 경지였다.
요코「……타이치」
요코「타이치. 일어나」
타이치「으~~~응」
요코「안 일어나면 야한 짓을 할래」
타이치「……쿠울」
요코「……알았어」
부스럭
부스럭부스럭
요코「응……으읍……」
요코「츕, 츄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웁!!」
타이치「끄아아아아아아아아앗!!」
하반신에 폭발적인 관능이.
순간적으로 폭발했다.
타이치「……어……어버어버어버」
어라, 나……몽정했네.
뭔가 굉장한 자극이 있었던 거 같은데.
요코「……응……읍……음……」
타이치「엥?」
이불 속에 누군가 있다!
츄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웁!!
쾌락의 폭발. 두 번째.
타이치「아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
나는 새우처럼 펄쩍 튀어올랐다.
타이치「그, 그만 해―!」
이불을 치웠다.
요코가 있었다.
타이치「와―ㅅ!?」
발로 찼다.
요코「읏」
뒹굴, 하고 굴러갔지만 바로 균형을 잡는 요코.
팬티와 파자마를 잽싸게 올렸다.
타이치「뭐하는 건가 자네!!」
요코「펠라치오」
타이치「이런 짓 하지 말라고 했잖아!」
요코「……성행위는 안 한다고 했지만, 펠라치오는 포함하지 않았어」
타이치「보통 펠라치오도 성행위에 포함돼!」
요코「……룰을 멋대로 고치는 건 비겁하다고 생각해」
타이치「누가 비겁한데!」
제길, 내 정자를 빨려버렸다.
악마 녀석!
이대로 당하고 있을 수는 없지!
타이치「뭐하러 왔어!」
요코「……도시락」
봉투를 건넸다.
타이치「너네 동네에선 도시락과 함께 펠라치오 서비스도 하는 거냐? 아앙?」
요코「왜인지 2인분」
타이치「말을 들어!」
타이치「……아니, 됐다……상식을 모르는 인간에게 상식을 요구하는 것도 삽질이니」
겁나게 피곤하다. 생기가 빨린 탓이다.
요코「보고할 게」
타이치「……이잉?」
옷을 갈아입기로 했다.
타이치「으―, 팬티가 침하고 정액으로……」
벗어 던졌다.
그녀가 보고 있는 건 부끄럽지 않다.
굳이 말하자면 아무래도 상관없다.
요코「닦아줄게」
타이치「어, 됐어 그런 건……내가 할……」
요코의 손에 로션병이 쥐어져 있었다.
타이치「내 반경 2미터 이내에 접근하지 마!!」
우뚝, 하고 다리가 멈춘다.
타이치「……전립선 마사지를 하려고 했군?」
요코「아니오」
타이치「평소 괴롭힘당한 것의 보복입니까?」
요코「아니오」
타이치「그럼 어째서 그런 짓을 하는 겁니까, 당신은?」
요코「……좋아하니까」
타이치「캐구라―!!」
나는 모 인공위성에 탑재된 인류와 그 역사가 기록된 플레이트에 그려진 전라 성인 남성과 같은 포즈를 취하며, 그녀의 말을 부정했다.
타이치「전립선 마사지로 나를 포로로 삼으려 했군?」
요코「아니오」
타이치「큭, 이 반동 자식……죄를 인정하지 않는군」
타이치「이제 됐어」
새 팬티를 찾는다.
요코「자, 여기 있어」
타이치「응」
받는다.
좀 차가웠지만, 그냥 입었다.
타이치「……응?」
그건 금속제 속옷이었다.
찰칵, 하고 엉덩이에서 자물쇠를 잠그는 듯한 소리.
뒤를 돌아보자 요코가 주저앉아서 뭔가를 하고 있었다.
타이치「뭐하는……」
요코「열쇠……잠궜어」
타이치「……」
타이치「왜?」
요코「안 잠그면 벗겨지니까」
타이치「그러니까 왜 팬티에 열쇠를!?」
요코「정조대니까」
타이치「저……」
정조대.
타이치「하왓, 안 벗겨져!?」
요코「열쇠 없으면 안 벗겨져」
타이치「열쇠!」
달려들었다.
요코「꿀꺽」
열쇠는 혀와 함께 사라졌다.
타이치「우오―!?」
타이치「왜, 어째서!?」
요코「……지난주의 타이치는 야했어」
요코「안돼, 그런 건」
타이치「지난주엔 자위밖에 안 했습니다요!」
요코「그 지난주가 아냐」
요코「어쨌든 눈에 거슬려, 강력 저지」
타이치「……뭐라는 거야……게다가 열쇠까지……삼키다니……」
요코「이제 안 벗겨져」
타이치「관장해버릴라 이런 썅썅바」
요코「……상관없는데, 지금 해봐도 소용없다고 생각해. 그래도 괜찮다면, 얼마든지 해」
당했다.
이 녀석, 아마 자력으로 열쇠를 토해낼 수 있겠지.
금붕어를 산 채로 삼켰다가 뱉어내는 아저씨처럼.
좆됐다.
겁나게 좆됐다.
매우 좆됐다.
요코「진정해, 나의 타이치. 정조대를 입힌 데는 이유가 있어」
타이치「생사를 함께 해 온 전우에게 정조대를 입혀야만 할 이유가 도대체 뭔데?」
요코「……오늘 아침에, 잠깐 조사하고 왔는데」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이야기하는 악마.
요코「발전소에 갈 수가 없었어」
타이치「정조대를 입힌 이유」
요코「그거하고 사당의 정보로, 대충 파악할 수 있었어」
타이치「정조대를 입힌 이유!」
요코는 짐꾸러미를 뒤졌다.
뭐가 뭔지.
요코「타이치, 이거」
새 노트 묶음을 건네받았다.
타이치「……지금 제시된 정보와 아이템이 서로 이어지지가 않는데」
설명부족에도 정도가 있지.
요코「그리고……여러가지가 이상해. 그러니까 좀 더 본격적으로 조사해 보고 싶어」
요코「……그러니까 내가 지켜보지 않는 동안, 타이치가 이상한 짓을 안 하도록 정조대를」
타이치「아아……」
풀썩.
그런 일인가.
요코「낮에는 돌아올게」
그래서 2인분 도시락인가.
……어쩐지 요코가 적극적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나.
특별히 자극될 만한 일은 안 했는데.
뺨에 입술을 맞추고, 방을 나갔다.

타이치「하아」
로보트처럼 통학을 개시했다.
가랑이 사이엔 위화감.
스쳐도 아프다.
게걸음이 되어버린다.
타이치「그렇다면 게걸음이 어울리는 호쾌남……그걸로 갈까」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나막신을 질질 끌면서 응원단 깃발을 바닥에 떨어뜨리지 않는 것뿐이었다.
고개로 걸어나가는 순간,
타이치「음?」
타이어가 쉬익하고 지면을 가르는 소리.
위험신호.
타이치「……훗, 어설퍼!」
꼭두새벽부터 펠라치오 세례를 받은 이 몸이시다.
막 싸고 난 뒤라 전신이 민감해져 있었던 것이다!
즉 그것은, 위험을 감지하는 능력도 날카로워졌다는 말이다.
타이치「하―앗!」
어떤 공격이든, 사전에 예측한다면 회피는 간단.
쿠당―!
타이치「쌩――――――!!」
보행에 방해를 주는 정조대만 없다면!!
나나카「미안―――!」
공중에서 사이드 체스트를 어필하면서, 잡목림 속으로 돌진했다.
나나카「괜찮아―?」
타이치「……정조대가 지켜줘서 괜찮아」
나나카「하앙?」
타이치「쪼잔한 반어법이야. 신경쓰지 마」
잡목림에서 나와, 먼지를 턴다.
물론 여전히 게걸음.
나나카「게―」
타이치「……게라고 부르지 마」
무신경한 녀석.
나나카「이번주도 건강해 보이네」
타이치「또 뜻 모를 말을」
타이치「하지만 난 사정을 알아야겠어, 토미에!」
나나카「나나카야, 타이치」
타이치「우선 완벽하게 모르는 사람이 내 이름을 알고 있는 건 어떻게 된 일이지?」
나나카「신경쓰지 마」
타이치「쓰고 싶어」
운동신경은 좋아 보였다.
난 도보에다 게걸음으로 저속인데, 넘어지지 않고 병주.
척 보기에도 건강 발랄 소꿉친구 미소녀라는 설정이다.
아침에 깨우러 오기도 하는.
타이치「그래서, 용건은? 존재감 없는 분」
나나카「존재감이 없어?」
타이치「없어. 약해. 흐물흐물」
나나카「잘은 모르겠지만, 기척 비슷한 거야?」
타이치「응. 게다가, 네가 인간이 아니란 것도 내 뇌 속의 심의 위원회에서 이미 밝혀냈어」
나나카「핫, 그런 것까지……너무 예민한데 타이치」
타이치「훗」
아침 펠라의 생각지 못한 효능이었다.
타이치「이 탐지능력에 내 뛰어난 추리를 더하는 것만으로도, 네 정체까지도 알아낼 수가 있었지」
나나카「우와, 정말?」
타이치「넌 전갈자리……그러므로 전갈자리 V861별에 사는 지적 생명체가 아닐까하고 난 추측하고 있다」
나나카「블랙홀이야, 거기」
타이치「……」
나나카「대충 때려 맞췄지?」
타이치「……뭐. 그게 일이니까」
나나카「매번 힘들겠네」
타이치「매번이니 이번주니. 도대체 무슨 말이야. 우리 초면이잖아」
나나카「몇 번이나 부딪쳤는데?」
타이치「아냐, 그런 일 없어」
기억에도 없고.
기억상실도 아니고.
나나카「……뭐, 그건 그렇다 치고」
나나카「그래도 한 번 정도 사랑이 싹트는 것도 재밌을 거 같은데―」
굉장한 말을 했다.
타이치「어……저에게 마음이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이 매부리코인 저에게?」
나나카「어디가 매부리코야? 평범해 보이는데」
타이치「휘어 있어. 척 보면 알잖아」
나나카「전―혀」
타이치「이상하네……」
나나카「조금 휘어 있는 것 같기도 한데……신경쓸 정도는 아닐 거야」
풀썩
타이치「역시 그렇군……휘어 있었어……」
어느 순간부터, 코가 굽어지는 것이 신경쓰였다.
……성숙과 함께 자아를 의식하고, 자신을 싫어하게 되었을 무렵과 같은 시기다.
타이치「으―――음」
나나카「뭐야뭐야」
글쎄.
주위로부터의 온갖 악의와 원망.
그런 것들을 너무 의식한 나머지, 핑계거리를 외모에서 찾아버리게 된 걸까.
어디선가 읽은 듯한 그런 학설.
타이치「뭐, 어때, 외모 같은 건. 전형적인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텍스트로는 평범하다고 묘사되면서도 그림에서는 꽃미남들인 것이 변할 리는 없고」
나나카「……자자, 자기학대는 그만두고」
나나카는 정치적 판단을 내린 비서 클래스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
타이치「그래서, 너는 이 인류 멸망 증후군과 무슨 관계가 있는 거지?」
나나카「무관계」
타이치「거짓말이야……분명히」
나나카「진짜야. 인류는 지맘대로 멸망했습니다.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순간 소녀를 바라보았다.
타이치「……알고 있었어?」
나나카「봤어」
타이치「봤어!?」
나나카「응. 봤어」
나나카「세계는 있지, 천천히 멸망해 갔어」
타이치「천천히?」
타이치「천천히라면 어느 정도?」
나나카「음―, 글쎄. 시간 감각이 없어져서 말야」
타이치「이상한데. 우리가 합숙 가기 전에는 정상이었단 말야」
타이치「합숙은 2박 3일이었으니까……3일 동안에 멸망했단 거야?」
나나카「아니」
나나카는 고개를 저었다.
나나카「……더 걸렸어」
타이치「그거 이상한데. 이치에 맞지가 않아」
나나카「시각 차이의 문제라고 생각해」
타이치「앙―?」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나나카「뭐, 지나간 일을 귀찮게 생각해봐야 어쩔 수 없잖아」
타이치「그건 그런데……인류가 이렇게 간단히 사라지는 것들이었나?」
나나카「어디선가 무언가가 일어났다, 난 그렇게 생각해」
나나카「그냥 감이지만 말야」
타이치「어디선가?」
나나카「말로는 잘 설명할 수 없는데……」
나나카「어디선가 큰 파도가 일어나서, 그것이 쫙―하고 퍼진 거라고 생각해」
나나카「내 지각능력으로는 그게 한계」
타이치「……너는……신이야?」
그녀는 쓴웃음지었다.
나나카「아냐아냐. 그렇게 대단한 건 아냐. 아무것도 못 해」
나나카「……아무것도 모르고 말야」
타이치「그럼, 왜 내 앞에?」
나나카「……음, 그건……좀 말하기 힘들어. 말할 자격이 없으니까. 미안해」
타이치「자격……이라」
그런 생각, 잘 안다.
내가……친구들와 함께 평범하게 살 자격이 없는 것처럼.
그래서 군죠로 보내져 왔다.
사람을 상처입히니까.
나는 위험하니까, 친구를 만들 자격은 없다.
그리고 그것은……옳은 일이다. 압도적으로.
타이치「그럼 억지로는 안 물을게」
나나카「……응, 미안해」
타이치「됐어」
타이치「그건 그렇고, 아무것도 모르겠네」
나나카「그 애가 분발하면, 수수께끼 그 자체는 풀릴 거야」
타이치「그 애? 요코 말야?」
나나카「……썩 마음에 들진 않지만 말야」
입술을 삐죽 내민다.
타이치「싫어하는구나」
나나카「그런 건 아닌데……왠지 모르게 맘에 안 들어」
타이치「흐―음」
나나카「청소시킨 다음에 창틀을 손가락으로 쓸어서 지저분한 데를 지적해 줄거야」
타이치「시어머니 같네」
나나카「시어머니라……나쁘진 않네」
타이치「뭐야 그건」
나나카「타이치」
목소리는 상당히 뒤편에서 들렸다.
타이치「?」
말도 안 되는 거리였다.
3초 전까지 같이 병주하고 있던 나나카였다.
20미터. 한순간에 이동할 수 있는 거리가 아니다.
타이치「……」
나나카「이게 제일 효과적인 거 같아서 말야」
타이치「잠깐, 너……」
역시.
인간이 아니다.
나나카「……사당, 알고 있지?」
타이치「사당이라니」
요코『그거하고 사당의 정보로, 대충 파악할 수 있었어』
관계가 있다.
나나카「알고 싶으면, 저기!」
하얀 손가락이 나를 휙 가리킨다.
아니, 내 등 뒤다.
학교.
아니……산이다.
합숙할 때 갔던 산길이 있다.
꽤 험난하지만, 정상까지 빠르게 갈 수 있다.
그 도중에는.
사당이 있다.
무엇이 모셔지고 있는지는 모른다.
낡고 지저분한, 작은 사당이다.
일찍이 신을 받을었을지도 모르는 그 장소에.
지금은 다가가는 사람은 없다.
거기에 무엇이 있을까.
그 사소한 의문을 묻기 위해, 나나카에게 시선을 돌린다.
그녀는 사라졌다.
자전거와 함께.
타이치「…………」
매미도 울지 않는, 조용한 신학기였다.


ㆍ祠に行ってみる (사당에 간다)


사당……이라.
그것도 학교에 간다는 의지를 꺾으면서까지.
좀처럼 일어나기 힘든 일이다.
사람에겐 무수한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체로, 그 가능성은 당사자의 개성에 지배된다.
사람들은 대개 같은 선택지를 고르는 것이다.
다만.
같은 상황을 몇백 번 반복했을 때, 확률적으로 돌발적인 행동을 취할 때도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돌발적인 행동을 취하려 하고 있었다.
바로 전날에도 이곳을 지나갔다.
절망과 함께.
그리고 지금, 다시 산을 오르고 있다.
사당에 가기 위해서.
목적은 없다.
사당에 가는 것이 목적이라 할 수 있었다.
그 소녀……나나카라고 했던가.
그녀가 이곳을 가리킨 이유.
그것을 알 수 있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인적이 끊어진 지 오래 된 탓인지.
사당으로 이어진 길은 풀에 덮여버려 보이지 않았다.
감에 의지해 전진한다.
잠시 후.
타이치「찾았다」
무심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생물의 기척과 함께, 세계에서 소음은 사라졌다.
하지만 사당 주위는, 보다 더 고요했다.
숙연한 공기.
기온마저 낮아진 것 같았다.
기묘한 긴장감에, 목이 바싹 말라붙는다.
소리를 내면 안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사당에 다가간다.
타이치「……」
분명히 이상했다.
무언가가.
구체적으로 어떻다고 말하긴 힘들지만.
이 장소는 이상하다.
이성 깊숙한 곳, 누군가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이상하지만, 위험하지는 않아 보였다.
물끄러미 사당을 관찰했다.
커다란 반석 위에, 작은 사당이 올려져 있는 형태다.
문은 여닫이식.
인줄로 봉인되어 있었다.
안을 꼭 봐야겠다.
사악한 괴물이 봉인되어 있을 가능성도 있다.
아니, 그건 아니겠지만…….
21세기, 세기말을 지나 인류 멸망까지 이르는 전개가 호평받고 있는 오늘날, 그렇게까지 뻔하진 않을 거라고 별다른 근거 없이 생각했다.
문에 손을 가져간다.
연다.
타이치「……이건」
놀랐다.
별다른 장식 없는 어슴푸레한 그 안에는, 괴물도 없고 낡은 항아리도 단검도 수정구슬도 없었지만…….
노트가 쌓여 있었다.
여섯 권 정도.
큰 특징없는 학생 노트다.
미스 매치라는 건가.
허를 찔렸다.
타이치「……제법인데」
어디 사는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노트를 꺼낸다.
표지에는 매직으로 숫자가 적혀 있었다.
권수일려나.
1이라고 적힌 노트를 펼쳐본다.
…….
………….
…………………….
월요일
오늘은 학교에 갔지만, 수업을 땡땡이쳤다.
토오코가 또 뾰루퉁해 있었다.
분명히 생리다.
하지만 생리라고 괜히 히스테리 부리는 건 좋지 않다.
벌로 이 일기 안에서 심한 짓을 해 준다.
토오코「싫어, 하지 마」
나「헤헤, 싫다고 해도 몸은 정직(생략)」
토오코「앗, 그러지 마, 싫어, 부탁이야」
나「안 돼, 남자가 여기까지 왔으면 이미 물러날 수 없어! 내 자랑스런 라이플로 너라는 타겟을 록 온할 수밖에 없어!」
토오코「싫어―, 몸은, 몸은 싫어―!!」
나「좀만 있으면 즐거워질 거야」
토오코「싫어, 제발!!」
나「뭐라카노, 으랏―차!!」
토오코「……이 짐승!!」
여기서 붉은 장미가 꽂힌 화분 클로즈 업.
이윽고 꽃의 줄기가 꺾이고, 조용히 바닥으로 떨어진다.
화면이 흐려지고, 화이트 아웃.
【완】
복도를 걷다 보니, 미키가 청소를 하고 있었다.
내 손가락 끝은 전광석화처럼 미키의 엉덩이를 노렸지만, 스쳤을 뿐 실체를 느낄 수는 없었다.
미키는 둔해빠져서 지금까지 좋은 만질거리였는데.
이건 중대한 문제입니다, 교장님!
하지만 제자의 실력이 늘어난 것은 솔직히 기쁘다.
스승인 나를 뛰어넘을 날도 멀지 않았다.
오랫만에 부활동을 하러 가서, 미미 선배와 샤바샤바를 했다.
이 날, 나는 하나의 도달점에 다다랐다.
대 감동.
그 외에도 여러가지 일이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좋은 날이었다.
타이치「이건……」
내 일기였다.
계속되는 페이지를 넘겼다.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
틀림없이 일기였다.
하지만.
타이치「이상해」
다음 페이지.
화요일.
감정을 객관화시켜 보자!
카레빵의 카레를 밥에 뿌려먹기 시작한 것은 누구일까?
그런 의문이 언제나 나를 차위한다.
※차위한다=타이치의 오타. 괴롭힌다는 뜻을, 어떠한 차이에서 느껴지는 위화감이란 뜻의 줄임말과 연결지어서 생긴 논리적인 착각.
타이치는 그와 비슷하게 터틀넥을 토탈넥으로 잘못 알고 있어서, 목을 토탈(total)로 덮기 때문에 토탈넥인 거라고 지금도 굳건히 믿고 있다.
알려지지 않은 길을 몇 번이나 반복해서 왕복(往腹)한 듯한 하루의 끝에 아련하고도 허무한 감정이 느껴진다.
※왕복(往腹)=타이치의 오타
보들레르는 말했다.
『신은 죽었다』라고.
신의 존재를 의심하는 것은 간단하지만, 신의 장난이라는 것은 실제로 존재해서 불시에 인생에 닥쳐 와, 매일 다니는 길과도 같이 직신적일 것이라 믿고 있던 인생에 갑작스럽게 분기점을 벌려고 한다.
※벌려고=타이치의 오타
예를 들어 교실에서, 고집스러운 여성과 무모한 대화를 펼쳤을 때처럼.
※무모=불필요의 착각
예를 들어 복도에서, 사이 좋은 친구와 사이가 소원한 친구 두 사람을 동시에 만났을 때.
그리고 또 그 두 사람이 우호적인 관계를 쌓고 있을 때.
나는 그 어느 쪽에 대해서도, XXX(지워져 있다)의 높이 솟아오르는 기상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소녀들이 동등하게 가지고 있는 신비의 XXXX로 XXX에 코를 대고 입을 대어 XXXX한 끝에 더할 나위 없는 사랑과 함께―――
느껴지는 XXX를 XXXX하는 것에 대해서는 XXX한 끝에 XXXXXXXXXXXXXXXXX가 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X.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이것은 키르케고르의 명언.
키리양의 그윽한 중성미와 그에 대한 나의 정당한 열정에 대한 언급은 이쯤 해 두자.
인생의 기쁨은 이것뿐만이 아니니까.
그래.
옥상에서 만난 내 인생의 선배이자, 어머니와 같은 포용력으로 만물을 사랑으로 대해 주는 미사토양에 대해서는 아무리 써도 사복은 그치지 않는다.
※사복=타이치의 오타
우선 뭐니뭐니해도 허벅지부터 (이하 검열)
그리고 나의 손에는, 그녀의 몸에 달려 있던 가슴가리개가 남았다.
이미 체온이 없어진 그것을 코에 대고 호흡을 한 순간, 은은한 소녀의 스멜(smell)은 나를 눈 깜짝할 사이에 환상적인 환상 속으로 데리고 갔다.
~FIN~
틀림없는 평상시의 내 패턴이다.
하지만 이상하잖아.
내가 쓴 일기라면, 기억에 남아있어야 할 텐데.
분명히 가끔씩 쓰긴 했지만…….
타이치「……아냐」
전혀 기억에 없다.
여기에 쓰여져 있는 내용은, 기억에는 없는 일들.
내가 기억상실일 리는 없다.
오히려 쓸데없는 일까지 기억하는 타입.
만약 소꿉친구와 결혼 약속이라도 했다 치면, 훗날 수상한 직업에 종사하다 적의 손에 잡혀 자백제를 주사당해 폐인이 되었다 해도, 그 일만은 결코 잊지 않을 정도의 추억 헌터이기도 하다.
뭐, 기억력은 좋은 편이다.
기억이 안 나는 일이라 하면……아마도 출산의 장면 정도.
타이치「와하하 (쌀웃음)」
이미 멸망한 미국인이 좋아할 만한 센스였다.
자 그럼.
계속 읽어나간다.
수요일.
흠. 다음.
목요일.
그리고 금요일.
오늘은 바다에 갔다.
작년에는 모두와 함께 간 바다.
금년에는 굉장히 쓸쓸했다.
어색했지만 그것이 서로의 관계를 쌓아올리리라 믿어, 접하려 했던 작년.
즐거웠던 시절만이 생각났다.
그 때 이후로 단 1년 후, 우리들은 소원해졌다.
서로에 대한 관심을 잃어버렸다.
여러가지 일이 있던 탓이다.
하지만, 이유는 그것뿐만이 아니다.
……우리들의 마음에도, 문제가 있었다.
그리고 지금, 세계에는 우리들만이 있다.
이 짓궂음으로 가득 찬 구도는 도대체 무엇일까.
밤, 미사토 선배를 보러 갔었다.
가는 길에, 그 나나카라는 소녀의 말을 떠올리고 사당을 보러 갔었다.
난 밤에 더 움직이기 편하다.
이상한 체질이다.
여러가지 의문은 있었다.
하지만 결론은 나오지 않았다.
나나카의 의미 깊은 행동에 비해, 사당에서 별다른 건 보이지 않았다.
다만, 거기에는 한 장의 종이조각이 있었다.
요코의 메모였다.
새 메모다.
『모든 기록을 여기에 보존해 줘』
언제나 그렇지만, 이유와 설명은 없었다.
그녀는 완성도가 너무나도 높은 인간이기 때문에, 타인과의 의사소통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과묵하고, 불필요한 말을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너무 과묵해서, 영문을 알 수 없을 때도 많다.
하지만, 그녀가 하는 일에 실수는 없다.
꼭 해야되는 일이겠지.
나는 집으로 돌아가, 오늘까지 쓴 일기를 가져오기로 했다.
그러니까 이 일기는, 이걸로 마지막이 된다.
1권은 이렇게 끝났다.
2권.
내용은 거의 같았다.
월요일부터 시작되는 그저 그런 일상.
그리고 토요일에 사당으로.
3권. 4권. 5권.
그 패턴이 반복되어 있었다.
내용에는 다른 점도 있었다.
예를 들어 FLOWERS와 만나는 타이밍이 다르거나, 미미 선배와 토오코를 대하는 반응이 다르거나.
하지만 대체로는, 동일한 일주일을 반복하고 있는 것 같았다.
마치 같은 시간을 몇 번이나 다시 겪는 것처럼…….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이 일기가 가리키는 가능성에는 몇 가지가 있다.
①나에게 있는 또 하나의 인격이 일기를 썼다
②미래의 내가 쓴 것이 여기에 와 있다
③같은 시간을 반복하고 있다
①은 아니다. 보증한다.
원숭이에게 타자기를 치게 한다고 셰익스피어가 나올 일은 없기 때문이다.
②도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불가능한 일이다.
③―――
적어도 이 다섯 권의 일기가 가리키고 있는 것은, 그 가능성이었다.
요코의 그 메모는, 1권에 끼워져 있었다.
굉장히 오래된 메모였다.
몇 년쯤 전에 썼던 것 같았다.
모든 기록을……이라.
뭐, 일기를 가리키는 것이겠지.
그런데, 왜 그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일기에는 기본적으로 금요일 이후의 기록은 없다.
4권에는 예외로 토요일까지 있었지만.
이것은 즉, 토요일 이후 무슨 일이 일어나 다시 처음부터 강제로 재시작된다는 말이다.
재시작 지점은 월요일일까. 일요일일 가능성도 있다.
일요일은 대개 우울해서, 일기를 안 썼기 때문이다.
아마도 난 높은 확률로 같은 행동을 취했을 것이다.
아냐, 잠깐만.
타이치「세계가 되풀이되고 있다고?」
웃기지도 않는 이야기.
하지만, 지금 상황은…….
결론을 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결론이란 종착점에서의 되짚어보기.
정점에 도달하기까지의 판단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일단은 내가……아니 세계가, 같은 일주일을 끝없이 루프시키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만 생각해 두자.
루프에는 룰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주관적 기억의 삭제.
일기가 중단된 이후, 적어도 세계는 다섯 번 이상『되감겼을』것이다.
동시에, 내 기억도 완전히 되감겼다.
이건 단정할 수 있었다.
내 기억에 빠지거나 불분명한 부분은 없다.
요코는 여닌자라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 사실을 눈치챘다.
그리고 나에게 메모를 남겼다.
왜일까.
즉 요코도, 되감김과 함께 기억을 잃어버리니까―――
그러므로 다른 녀석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미미 선배, 토오코, 미키와 키리, 사쿠라바, 토모키…….
타이치「그렇군」
현재 상황의 귀찮음을 눈치챘다.
기억이 리셋된다.
즉.
지금 이렇게 간신히 진실에 다다른 기억도, 주말에는 리셋.
다음주(문자 그대로의)에는, 아무런 의문없이 월요일을 살아가는 내가 있는 것이다.
내가 다시 진실에 도달하려면, 우연에 이끌려 이 사당에…….
타이치「……우와」
싸구려 권총을 연사해야만 하는 상황인가.
좌절했다.
룰은 또 하나 있다.
그것은 이 사당이, 어째서인지 루프의 영향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
이 장소에 있는 한, 주관적 시간은 유지되는 것이다.
타이치「……요코, 어떻게 확인한 거지?」
노트가 있었다면 이해는 가능하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도대체 어떻게 사당의 특이성을 알아챈 걸까.
보통 사람의 행동력으로 탐구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물론 그녀는 보통 사람이 아니지만.
타이치「요코라면 가능할까……」
지금도 여러가지를 조사하고 있는 것 같고.
타이치「자 그럼」
사당 안에 들어가보기로 했다.
좁다.
변신 로보트처럼 손발을 구부리지 않으면, 안에 들어가기는 불가능하다.
그런데 그 나나카라는 여자애는 누굴까.
타이치「으―음」
판단 재료는 거의 없다.
쾌활해 보이고, 이상한 교복을 입고 있고, 자전거를 타고 다니고, 늘씬한 다리, 탱탱한 엉덩이, 옷에 가려져 있지만 평균치는 넘은 바스트…….
타이치「앗, 이런」
체적이 증가했다.
이렇게 커지면, 사당에 들어가기 어려워지잖아!
그렇게 생각했지만, 간단히 들어갈 수 있었다.
타이치「……투덜투덜투덜」
들어오긴 들어왔지만, 몸은 거의 움직일 수 없었다.
내 몸이 정사각형이 되어버린 듯한 감각이 느껴진다.
문을 닫아 보았다.
타이치「완성」
뭐가 완성인데.
전혀 의미가 없다.
바로 밖으로 나왔다.
타이치「……학교 가야지」
나머지는 천천히 생각하자.


ㆍ一年敎室 (1학년 교실)


키리는 학교에 와 있을까.
월요일에 그녀를 보았다는 기록은 없었다.
4층. 1학년 교실.
키리가 있다.
바깥의 풍경을 보고 있다.
가냘픈 체구.
근육은 그다지 없었지만, 생생한 생명력이 가득 차 있다.
비스듬하게 보이는 옆모습은 차가워 보일 정도의 우수로 잠겨 있고.
이마를 가리고 있는 흑발이 살랑하고 물결친다.
젊은 생명력을 얇고 여린 유리 속에 품은……사랑스러운 소녀.
상처를 입으면 조각을 떨어뜨려, 때로 사람을 상처입히기도 한다.
하지만 좁은 어깨로부터 이어지는 뒷모습은 가녀리기 그지없어, 실로 무방비하게 보였다.
……덮치고 싶어질 정도로.
내 존재를 눈치채지 못한 것 같다.


ㆍ聲をかかる (말을 건다)


타이치「헬로, 미스 이노센스」
온몸이 굳어진다.
긴장감이 등 뒤를 덮었던 것이다.
천천히 뒤를 돌아본다.
느린 동작으로 몸을 움직이며, 소녀는 비로소 공격태세를 갖췄다.
고개가 돌려짐과 함께, 차가운 시선.
타이치「안녕」
키리「……무슨 일이시죠?」
목소리가 무겁다.
최대한으로 낮게 깔린 음색.
타이치「별 일은 없는데―――」
키리「그럼」
내 말을 끊으며 키리는 말했다.
키리「부디 물러나주시죠」
어깨를 으쓱여 본다.
타이치「역시 있어. 볼일」
키리의 눈이 좁혀진다. 날카롭게.
타이치「미키양은 없나?」
키리「……없습니다」
타이치「안 왔어?」
키리「……없습니다」
대화를 이어갈 생각은 없는 것 같다.
난 다시 어깨를 으쓱였다.
타이치「달리 갈 만한 데도 없을 텐데」
키리「네, 없습니다」
가까이 있는 의자에 앉는다.
타이치「아니 그게―, 생리통이 와서 말야. 거참 우울한 시기야. 봐, 인류까지 멸망했잖아」
키리「……」
가만히 보고 있다.
내 일거수일투족을 경계하고 있는 듯하다.
타이치「미스ㆍ이노센스는 말야―」
키리「사람을 그런 이름으로 부르지 말아주세요」
타이치「키리찡은 말야―」
키리「친한 사이처럼 부르지 말아주세요」
타이치「후우」
어깨를 으쓱인다. 세 번째.
타이치「나, 겁나게 미움받고 있는 것 같네」
키리「……」
자리에서 일어난다.
키리「……」
경계가 강해진다.
순간 움찔했다.
겁나게 귀엽다.
새디스틱한 매조인 난, 이런 캐릭터에게 새티스펙션.
타이치「후후……」
키리「……?」
실없이 웃는 나. 당황해하는 키리.
허리를 숙이고, 언제든지 도망칠 수 있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나는 조금 이동해, 어느 자리 앞에 멈춰섰다.
타이치「여기던가, 키리 자리가?」
키리「이름으로 불리고 싶지 않아요……」
키리「……당신 따위한테」
나이프.
날카롭게 꽃혀오는.
타이치「사쿠라 자리」
느긋한 동작으로, 자리에 앉으려 했다.
키리「안돼!」
다급한 비명.
우뚝 멈춰섰다.
타이치「왜유?」
키리「……더러워지니까요」
잘못한 것을 들키기라도 한 듯, 한층 더 낮아진 목소리.
타이치「흐―음. 그럼 어쩔 수 없지」
앉았다.
키리「아―――」
타이치「이야―, 덥구나 여름은. 노다 오부가나구나」
키리「……」
타이치「무반응?」
키리의 어깨가 떨리고 있었다.
그렇게나 분한 걸까.
굉장히 싫어하는 것 같다.
키리「뭐하러 오신 건가요」
난 싱긋 미소.
타이치「미스 이노센스의 이노센스한 순결」
키리「……가 주세요」
타이치「아직 아무 짓도 안 했는데」
키리「이 이상 더 하실 일이 있으신가요?」
타이치「글쎄에―」
고민한다.
유리를 만지면 지문이 뭍어버리는 법.
망설임.
타이치「에잇, 됐어」
키리「…………」
무시.
무시 또는 나이프.
타이치「잡담이나 하자」
키리「가 주세요」
어깨를 으쓱였다. 네 번째.
타이치「아, 수업도구 가져왔네」
키리의 가방 안을 맘대로 뒤진다.
타이치「오늘은 입학식만 하는데. 하항―, 첫날에 교과서를 전부 가져와서 학교에 놓고 다니는 타입이구나?」
키리「맘대로 보지 마세요. 가방 만지지 마세요」
어깨를 으쓱였다. 다섯 번째.
어깨가 슬슬 저려온다.
역시 사쿠라 키리.
미스 이노센스란 칭호를 가진 소녀.
타이치「내가 뭘 해도 넌 상처입는구나」
키리「……」
타이치「피곤하지도 않아?」
키리「누구……탓인데……」
목소리가 떨렸다. 분노로 인해.
평소에는 좀 더 초연한데, 역시 인류멸망.
키리도 상당히 동요해서, 마음의 벽이 흔들리고 있는 것 같았다.
타이치「내 탓일지도 모르겠네」
킥킥 웃는다.
어깨를 으쓱인다.
흔들흔들하고 빠르게 어깨를 들었다 내리고 들었다 내리는 코미컬한 움직임.
키리「……나가 주시지……않겠나요?」
격양되는 분노를 필사적으로 참고 있었다.
타이치「……네엡」
너무 화나게 했다.
이만 가자.
타이치「아, 맞다, 점심 같이 먹지 않을래?」
키리는 무반응이었다.
타이치「……안되나. 그럼 안녕. 미키찡한테 안부 전해줘」
교실을 나왔다.

미키「선배」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타이치「여―」
타이치「청소 끝났어?」
미키는 움찔했다.
미키「어, 어떻게 제가 청소를 하고 있었단 것을……」
미키「보셨어요?」
이런.
일기 정보. 극비.
타이치「……굳이 비밀로 할 필요도 없으려나」
미키「비밀이라 하시면?」
타이치「아―아냐, 혼잣말」
됐어, 당분간은 덮어 두자.
일기로는 분명히 성희롱을 했었지.
……나도 참 욕구가 왕성하구나.
어떻게 할까.


ㆍセクハラ&サイン (성희롱 & 사인)


좋아, 원작에 충실하자.
분명히…….
복도를 걷다 보니, 미키가 청소를 하고 있었다.
내 손가락 끝은 전광석화처럼 미키의 엉덩이를 노렸지만, 스쳤을 뿐 실체를 느낄 수는 없었다.
미키는 둔해빠져서 지금까지 좋은 만질거리였는데.
이건 중대한 문제입니다, 교장님!
하지만 제자의 실력이 늘어난 것은 솔직히 기쁘다.
스승인 나를 뛰어넘을 날도 멀지 않았다.
흠, 전광석화로 엉덩이라.
그렇다곤 해도 일기의 내용은 그뿐이라 자세한 건 모르겠지만.
타이치「에잇―」
의욕없는 기합.
과 함께 손을 뻗는다.
미키「읏!?」
미키의 눈이 반짝 빛난다.
꾹!
네 손가락이 끼어버렸다.
미키「허벅지, 거기 허벅지, 거기 허벅지……」
간질간질한 힘이 저항한다.
타이치「네 엉덩이를 이 손가락이 간지럽혀서는 안 되는 거다, 아시겠소?」
미키「모르겠사옵니다, 그런 횡설수설, 이 미키는 모르겠사옵니다~!」
타이치「안심하시오. 간지럽힐 뿐이고, 실체는 느껴지지 않는다오」
미키「영문을 알 수 없사오는 말을……」
간질간질간질
타이치「이건 중대한 문제입니다, 교장님!」
결말이 안 나서 예정을 서둘렀다.
미키「……교장님???」
타이치「OK알았다. 그만두지」
손을 뺀다.
미키「여전히 난봉꾼이시군요」
미묘하게 경계하고 있다.
빈틈이 없는 처녀로 자란 것이다.
타이치「실력이 늘었구나」
미키「아뇨」
타이치「옛날엔 간단히 만졌던 그 엉덩이가, 이제는 쉽사리 건드릴 수 없는 것이 된 것 같구나」
미키「아뇨아뇨아뇨」
타이치「하지만 제자의 실력이 늘어난 것은 솔직히 기쁘다. 스승인 나를 뛰어넘을 날도 멀지 않았다」
국어책 읽기.
미키「방금 전부터 조금 요상한 말을 하고 계신데요」
타이치「신경쓰지 마. 난 예정조화 만세니까」
미키「……네―」
멍해 있었다.
바로 생긋 웃는다.
미키「정말로, 여전하네요」
미키「이런 상황이 됐는데요」
타이치「그렇지도 않아」
타이치「시체도 없고, 문자 그대로 사라졌을 뿐이라」
타이치「아무래도 실감이 안 나」
미키「그렇죠」
타이치「개나 고양이도 안 보이고, 매미도 안 울고」
타이치「근데 인간은 몸 속의 미생물이 없어지면 안 되는 거 아닌가?」
미키「몸 속에 있는 것들은 무사한 거 아닐까요?」
타이치「그렇겠지」
미키「혹시 무지 얼렁뚱땅한 설정인 건 아닐까요」
타이치「예를 들면?」
미키「음―」
기도하듯이 마주댄 손을 이마에 대고, 미키는 생각했다.
귀여웠다.
타이치「그 자세 좋네」
미키「감사. 예를 들면……꿈을 꾸고 있다던가요」
타이치「결국은 꿈이라」
그건 좀 뻔한데.
미키「너무 뻔하네요」
오오, 동지.
타이치「현실감이 없는 건 분명히 꿈같긴 하지만」
타이치「내 예상은 이래」
타이치「FS현상!」
미키「……플라잉……시, 시……샤……」
미키「샤베트, 인가요?」
타이치「아냐」
미키「플라잉……샤……샤」
미키「샤렛」
타이치「하늘을 나는 비행접시. 유감, 땡」
미키「플라잉~……샤……샤……」
미키「샬록」
타이치「홈즈냐. 녀석이 익힌 일본식 레슬링ㆍ바리츠는 나도 인정하는 굉장한 격투기지」
미키「……실존하는 거였나요, 그거?」
타이치「가라데와 쌍벽을 이룬다」
미키「둘 다 전혀 들어본 적이 없는데요」
타이치「환상의 아츠니까」
미키「???」
타이치「특정 조건을 만족한 상대밖에 이길 수 없어」
미키「……허접 무술이잖아요」
타이치「게임이란 건 원래 파고들면 다 그런 거야!」
흥분했다.
미키「그런 거였나요……」
타이치「특정 상대한텐 겁나 강해요」
지구상에는 없는 생물체도 많지만.
타이치「미키의 가라데도 꽤 많이 늘어났어」
미키「쭉 주입식 교육을 받아온 그것은 가라데라는 영문을 알 수 없는 격투기였습니까!?」
타이치「영문을 알 수 없는은 뺍시다!」
미키「……충격을 받았어요」
타이치「음」
미키「플라잉 샤이」
갑자기 돌아온 대화.
타이치「하늘을 날아다니는 부끄럼쟁이. 그림으로 그리면 무지 웃길 것 같네」
미키「그래서 결국 FS현상이란 건 뭐예요?」
타이치「미안, SF현상이었어. 실수」
미키「……………………」
제대로 허를 찔린 듯한, 형용하기 어려운 표정을 지었다.
타이치「조금 이상한 현상이란 뜻으로……」
미키「아, 이제 됐어요. 그만하면 알겠어요」
타이치「……아, 그래……?」
미키「요약하면 '모르겠어'란 거네요」
타이치「과학은 무력하니까」
타이치「그런 연유로 사인의 시간입니다」
타이치「귀여운 왕자의 스탬프 사인 랠리. 미키미키는 몇 개나 모았을까나―?」
미키「네, 미키미키입니다. 사인을 받는 것은 오랜만입니다」
타이치「여름방학이었으니까」
수첩을 받는다.
메이트북이다.
초대 교장이 유명한 업소『메이트북』에서 지나친 쾌락에 의해 깨달음을 얻었다 해서 그렇게 불리는 거짓말이다.
타이치「……」
수첩은 내 낙서로 메꿔져 있었다.
백지를 찾아서, 그곳에 새 사인을 적는다.
타이치「20개를 모으면 굉장한 서비스가」
미키「……야한 장난이겠지」
타이치「응, 뭐라고 했어?」
미키「아뇨」
타이치「자, 할당량은 대충 이 정도로 완수」
타이치「……그렇게 해서, 할당량 완수입니다」
미키「……?」
타이치「맞다맞다, 먹을 건 충분히 있으신가요?」
미키「네. 괜찮아요」
미키「요리재료가 있냐고 물으신다면, 대답하기 좀 그렇지만요」
쓴웃음.
타이치「점심은 통조림?」
미키「식빵하고 통조림이에요」
타이치「……빈곤한 점심이구나」
미키「하하핫」
타이치「……그렇게 해서, 할당량 완수입니다」
미키「……?」
타이치「맞다맞다, 먹을 건 충분히 있으신가요?」
미키「네. 괜찮아요」
미키「요리재료가 있냐고 물으신다면, 대답하기 좀 그렇지만요」
쓴웃음.
타이치「점심은 통조림?」
미키「식빵하고 통조림이에요」
타이치「……빈곤한 점심이구나」
미키「하하핫」


ㆍサンドイッチあげる (샌드위치를 준다)


타이치「별 수 없지. 이걸 주마」
타이치가방에서 샌드위치를 꺼낸다.
미키「이건?」
타이치「신화 속에서 모래와 마녀를 끼워 먹었다고 전해지는……」
미키「샌드위치요?」
선공을 당했다.
타이치「으윽―, 그렇다!」
미키「화내고 있어……」
타이치「먹어랏!」
미키「엇, 정말요? 선배 밥은?」
타이치「난 얼마든지 조달해올 수 있어」
타이치「……2인분 있으니까, 키리찡하고 같이 먹어」
미키「고맙긴 한데요……그」
타이치「……방금 전 키리찡한테 점심 같이 먹자고 꼬셨는데 완전히 무시당했어」
미키「우와―, 이 사람은 인류가 사멸했는데도 아직 키리찡 괴롭히기를……」
미키는 덜덜 떨었다.
타이치「인류가 멸망한 정도로, 난 변하지 않아」
모노로그로 말했다.
미키「역시 영맨……」
타이치「영 어덜트 후보생이라네. 착각하지 말게」
미키「차이를 모르겠어요」
타이치「영 어덜트란 것은, 쓴 맛도 단 맛도 모두 본 남자 중의 남자. 즉 내가 목표로 하는 이상적인 어른상」
타이치「실수없이 일을 해내 부하로부터는 존경받고, 상사조차도 위축시키는 슈퍼 엘리트. 그리고 주말에는 해변으로 떠나 도시의 번잡함을 잊고, 밤에는 서재에서 바이론의 시집을 정독하며 코냑을 즐기는 것이지」
미키「……소녀들을 대할 때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장래에까지 환상을 가지고 계셨군요」
타이치「너무 그렇게 칭찬하지 마 밋키―」
미키「밋키입니다. 칭찬 안 했습니다」
타이치「뭐, 지금은 아직 후보생이니까 아직은 멀었지만」
타이치「언젠가 꿈을 이룬다면 키리찡도 분명 나에게 헤롱헤롱……」
미키「미운오리새끼는 대부분 미운 어른이 된답니다~」
다정하게 말했다.
타이치「너무해!」
쓰러져 운다.
타이치「그치만 살아가는 데는 희망이 필요한걸」
미키「네네, 울지 마세요~」
타이치「……어쨌든, 그 샌드위치를 밋키가 손수 만든 거라 속이고 키리찡한테 먹여 주세요」
미키「……저기, 받는 주제에 이런 말 하는 것도 좀 그런데」
미키「최음제 같은 건 안 들어있죠?」
타이치「……………………」
아찔할 정도로 신뢰받지 못하고 있었다.
미키「이만 가볼게요」
타이치「음」
미키「아, 맞다」
떠나가던 미키가, 문득 뒤돌아보았다.
미키「미미 선배, 부활동 재개했다는 거 알고 계세요?」
타이치「헤에―」
그 안테나 얘기다.
모르는 척을 해 둬야겠지.
타이치「평화유지활동은 아니고……으음, 토모키가 하고 있는 생명유지부하고는 별도로?」
미키「아뇨, 방송부의……그거요, 라디오국」
타이치「아아……커뮤니티 FM국 어쩌고 하던 거?」
미키「넵」
타이치「사정 때문에 중지되지 않았었나?」
미키「안테나, 다시 세우고 계시던데요?」
타이치「우와, 위험한데―」
도중까지는 만들어져 있다곤 하지만.
미키「사다리 위에서 버둥버둥하고 계셨어요」
타이치「버둥버둥이라……」
미키「상당히 아슬아슬하던데요」
타이치「……아―, 역시 충격을 받았던 걸까」
미키「그렇겠죠」
우리들은 얼굴을 마주보며, 힘없이 웃었다.
미키「서로, 열심히 살아 봐요」
타이치「그래」
미키「아직은 제 자신이 사랑스러우니까요―」
미키「그럼」
폴짝, 하고 한 손을 들고 미키는 떠나갔다.
타이치「그건 그렇고, 부활동이라」

문을 밀어서 연다.
저항이 있었다.
반대편에서 눌리고 있나?
강하게 민다.
문 건너편에서, 약한 난기류가 흩어졌다.
바람이었던 것이다.
안테나.
그럭저럭 모양이 갖춰져 있다.
지향성이나 파장 등, 여러가지 조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런 지식은 나에겐 없다.
선배도 자세하게는 몰랐지만, 공부를 한 것 같다.
그 선배는……없었다.
공구.
사다리.
서적.
바람에 흩날리는 크림빵 봉지.
작업을 하고 있던 흔적만이 남아 있었다.
24시간 작업하고 있는 건 아닌가.
안테나를 바라보았다.
텅 빈 주변을 둘러싸고, 높이 솟은 건물.
전파를 날리기엔 딱 좋은 환경이었다.
커뮤니티 FM이라는 지역 밀착형 라디오 방송이 있다.
원래, 학교 부활동으로 할 정도로 시시껄렁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건물의 입지와 군죠학원의 임직원들, 지역 유지들의 넘치는 호의.
그런 것들이 결합된 이야기었다.
준비는 착실히 진행되고 있었지만, 어느 어쩔 수 없는 사건에 의해 중단되어버렸다.
반입된 안테나는, 1년 동안 그대로 방치되게 되었다.
그런 사정이 있는 물건이었다.
아마 그들이 FM군죠에 요구하고 있던 것은 열심히 살아가는 소년 소녀들의 희망 넘치는 사랑 컨텐츠였겠지만.
죄송, 군죠에 그런 건 없습니다.
애초부터 삽질이었던 것이다.
미사토 선배는, SOS 계획을 세웠다.
일요일 밤에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인류가 소멸해버린 것을 확인하고 나서였다.
마침 안테나가 있으니까, 완성시켜 신호를 보내보려는 시도는……잘라 말해 현실성이 부족했다.
사실, 선배는 많이 약해져 있던 것 같다.
도피는 점차 사람을 약하게 한다.
그리고 선배는 원래도 충분히 약한 사람.
미사토「페케군?」
등 뒤.
뒤를 본다.
타이치「헬로―. 선배」
미사토「헬로―예요……으―음, 무슨 일이에요?」
타이치「상황을 보러 왔어요」
선배는 포근하게 미소지었다.
미사토「그런가요」
타이치「당분간 안 왔었는데, 꽤 많이 하셨네요」
미사토「오래 전부터 틈틈이 해 왔으니까요」
그래.
방송부가 자연붕괴하고 나서 지금까지.
선배는 혼자서 모든 것을 해내고 있었다.
점심시간의 DJ.
각종 방송.
모든 것을.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
키리는 나를 적대시하게 되었고,
토모키는 누나를 피하게 되었고,
미키는 우물쭈물 쓴웃음,
토오코도 나를 무시하기 시작하고,
보기좋게 와해.
사쿠라바만이 평소와 변함없었다.
변함없이 땡땡이를 쳤다.
나는 그래도 선배 주변을 멤돌았지만.
그녀는, 내 도움을 거절했다.
타이치「……그랬군요」
미사토「그건 그렇고, 깜짝 놀랐어요」
타이치「그렇죠―」
미사토「사람들이 모두 사라져버리다니」
타이치「조용하네요」
미사토「무척 무척 조용해요」
타이치「어디 갔다왔어요?」
미사토「잠시……배가 고파서요」
타이치「벌써 낮이네요. 식료품은 잘 찾았어요?」
미사토「아아, 집에 갔었어요. 먹을 건 충분히 있으니까요」
타이치「아―, 학교 땡땡이―. 부장이 땡땡이―」
미사토「아, 아니에요, 이건 땡땡이 아니에요」
초조해한다.
규칙을 중시하는 사람이니까.
타이치「정학, 정학이에요」
미사토「정학은 싫어―, 이력에 흠집이―」
타이치「정학! 정학!」
미사토「정학은 안돼요―」
함께 하는 잡담.
이것이 지금 우리들의 최단거리였다.

점심은 역시 여기서 먹고 싶었다.
사쿠라바「여어, 타이치」
카레빵 사쿠라바였다.
겁나게 매운 이 식당의 카레빵을 좋아하는.
타이치「인류 멸망해도 카레빵」
사쿠라바「……먹을래?」
타이치「즐」
사쿠라바「이걸 다 먹으면, 이제 두 번 다시 못 먹겠구나」
표정이 흐려졌다.
사쿠라바의 뒤에, 빵 봉지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타이치「……이거 언제 반입된 거야?」
사쿠라바「어제 아닌가?」
어제.
분명히 반나절 동안 빵은 판다.
기본적으로 휴일 이외엔 항상 운영되고 있으니까.
입학식 때도 빵은 반입되었다.
그래.
즉 어제까지, 세계는 유지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타이치「그건 그렇고 양이 적은데」
상자 갯수는 평소의 10분의 1도 되지 않았다.
사쿠라바「입학식이라 반땅했겠지」
타이치「그렇다 해도……적어」
사쿠라바「그리고 난, 인류가 멸망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타이치「뭐라고?」
사쿠라바「아마 시민 전원이 숨바꼭질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것이 나의 예측이다」
타이치「그건 망상이야」
타이치「그리고 예측이란 말은 쓰지 마. 네가 생각을 할 수 있는 뇌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잖아」
사쿠라바「훗……깐깐한 녀석」
타이치「만족스럽게 미소짓지 마」
사쿠라바「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사쿠라바「시간이 지나면, 모두 돌아올 것이다. 내 계산에 의하면 말야」
타이치「…………나도 낙천주의자긴 하지만, 너에겐 긴장감 따윈 세포 레벨에서 찾아봐도 안 보이는구나」
사쿠라바「훗」
어째서 상처입은 소년소녀들 속에 이 녀석이 있는 걸까.
진심으로 의아하다.
사쿠라바가 그런 나에게 카레빵을 건넸다.
사쿠라바「먹어라」
타이치「필요없어!」
격침.
결국, 학교에 와도 할 일은 없었다.
집에나 갈까.
하지만……이렇게 느긋해도 괜찮을까?
일요일 이후, 세계는 되감긴다.
타이치「……」
난 무엇을 해야 되는 걸까.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처음 그 사실을 알았을 때, 요코는 어떻게 생각했을까.
어떤 기분으로, 그 메모를 남긴 걸까.
맥이 풀린다.
이 사람들 없는 황량한 세계에서 아무리 열심히 살아봐야.
전부 헛수고.
열심히 부활동을 해도, 식료품을 조달해도, 도피해도.
일주일.
그리고 종말.
아무리 열심히 살아봤자―――
……의미가 있는 걸까.
공허한 생각.
바닥에 주저앉는다.
타이치「……」
어쩌면, 이 세계는 나의 이상향일지도 모른다.
치명상이 치명적이지 않은 세계.
일주일 전으로 되풀이.
누구를 상처입혀도, 누구와 함께 지내도.
리셋.
토오코와 사이좋게 지낸 후엔 미미 선배와.
키리와.
미키와.
기분 내키면 요코와.
사쿠라바와.
……그건 아니고.
눈이 따끔거렸다.
내 눈은 이상하다.
일상생활에 지장은 없지만, 때때로 세계가 이상하게 보인다.
타이치「어째서……나 혼자가 아닌 걸까?」
피폐해진 마음에, 한동안 움직일 수가 없었다.

작년 초여름이었다.
신카와 유타카와 만난 것은.
매미가 시끄럽게 우는 여름이었다.
우연히 부딪쳤다.
묘하게 대화가 잘 풀리고.
마음이 맞았다.
군죠에는 완전히 자신의 세계 속에서만 살아가고 있는 녀석들도 있다.
사람을 쉽게 상처입히는 녀석도 있다.
어느 무렵부터, 세상은 미친 사람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그들 대부분이 사람들을 상처입힌다.
마음의 병은, 단지 자기 자신만의 문제가 아니게 되었다.
원인은 알 수 없다.
정부는 몇 가지 대책을 세웠지만, 그 내용은 널리 보도되지는 않았다.
'지하에서 움직이고 있다'고 요코는 말했다.
자세한 이유는 불명.
적어도, 세계가 점차 광기에 잠겨가고 있다는 것은……내 가슴으로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군죠학원은 존재했다.
격리시설로써.
유급은 일상다반사.
하지만 몇 년이 지나도 증상이 나아지지 않는 녀석들은, 새로운 시설로 보내진다.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타인과의 접촉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혼자서 살아갈 힘은 없지만, 당사자의 마음은 이미 사람의 그것과는 크게 어긋나버린 것이다.
그래서.
군죠에서 친구를 만드는 것은, 조금 어렵다.
대화가 성립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한 반에서 10명 정도일까.
제대로 된 대화가 가능한 녀석들은.
신카와『OK, 어떻게든 해나갈 수 있을 것 같아』
타이치「…………」
누가 나빴던 걸까.
나일까.
아니면 그 녀석일까.
결론은 나오지 않는다.
눈물도 나오지 않는다.
아직,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집으로.
타이치「후우」
아무도 없다.
무츠미 아줌마의 모습은 없다.
내가 빨리 오는 날엔 따스하게 마중을 나와 주시고.
저녁을 만들어 주시고.
식탁을 요리로 가득 채우는 걸 좋아하시고.
남성적인 요리.
직업의 영향일까.
호쾌하고, 파워풀하고.
농담을 주고받고.
좋은 분이었지.
하지만 지금, 책상 위는 텅 비어 있다.
요리가 김을 내뿜을 일은 없다.
타이치「……배고프네」
타자키 상점에서 컵라면을 가져왔다.
먹자.
으윽, 가스렌지가 안 켜져.
정원에 조그만 파티용 공간이 있으니, 거기서 불을 지피면 되겠지만.
타이치「구차너― (귀찮아)」
그냥 생으로 먹기로 했다.
바삭바삭 (면)
꿀꺽꿀꺽 (물)
바삭바삭바삭 (면)
꿀꺽꿀꺽꿀꺽 (물)
바삭바삭바삭바삭 (면)
스슥……(건더기 스프)
타이치「……허무해」
난 정말로 식사를 하고 있는 걸까.
역시 인류멸망, 빡세군.
여러모로 불편한 걸.

양초에 불을 붙인다.
일기를 쓰기로 했다.
왠지 모르게 헤밍웨이 풍으로.
일기를 쓰려고 대학노트를 찾았지만, 어디에도 없었다.
타이치「응?」
분명히 몇 권 사둔 게 있었는데.
타이치「음―」
금고 안에 있나.
일단 조사해 본다.
금고엔 기본적으로 에로책이 수납되어 있다.
내화금고라, 설령 집이 불타더라도 나의 에로스는 보존되는 것이다.
조사를 위해, 금고를 열었다.
…………………….
30분 후, 금고를 닫았다.
공책은 없었다.
타이치「후우」
이런,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해버렸다.
나참……이 금고 안만 들여다 보면……흐흐흐.
죄 많은 핑크빛 금고 녀석.
근데, 노트는 어디로 갔을까. 짚이는 데가 없는데.
기억상실인가.
타이치「드디어 나에게도 주인공스런 설정이 생기는 것 같은……아, 맞다」
요코에게 받은 노트.
베스트 타이밍.
……뭐랄까, 거의 신의 경지랄까.
비닐을 벗긴다.
자, 써 볼까.
타이치「……」
펜이 없네.
안 보인다.
타이치「금고 안에 있나?」
다시 금고를 연다. 펜을 찾기 위해.
…………………….
40분 후, 금고를 닫았다.
펜은 없었다.
사랑이 있었다.
타이치「……후우우~」
모처럼 서둘렀는데, 연사하면 의미가 없지♪
얄미운 유혹의 상자!
펜은 책상 밑에 떨어져 있었다.
일기를 쓴다.
사전이 보고 싶었다.
하지만 사전이 없었다.
타이치「……」
금고를 연다.
…………………….
1시간 27분 후, 금고를 닫았다.
타이치「……후」
나도 참, 너무 화끈하단 말야.
특대 사이즈 궁극 베개(상품명)은, 아무래도 품질이 너무 좋아서.
벌써 10시가 지나 있었다.
타이치「우옷!?」
특대 양초도 어느새 꺼져있었다.
이런, 너무 허탈하게 시간을 보내버렸다.
그러니까 이런 상품들이 문제란 말야…….
자, 일기 써야지.
새 양초에 불을 붙이고, 노트를 바라본다.

눈을 뜬다.
햇빛이 창문을 넘어 들어오고 있었다.
간만에 푹 잔 것 같다. 꿈 하나 안 꿨다.
시간은……7시.
학교에 갈 필요는 없다.
하지만, 몸은 움직였다.
식사 준비는 되어있지 않았다.
당연하지.
미인 커리어 우먼 무츠미 아줌마는 요리도 잘하셨지만, 이젠 없다.
나를 받아주시고.
요코에게도 역시 아무것도 안 묻고 지낼 곳을 마련해 주시고…….
아무리 감사해도 부족할 정도다.
효도도 하기 전에, 사라져버리셨다.
책상 위에, 종이봉투가 두 개 놓여져 있었다.
내용물은……샌드위치.
요코인가.
1인분 봉투와, 2인분 봉투.
아침용과 점심용이다.
점심용이 2인분.
이런 면은 귀엽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사람과 대화하는 일에 전혀 익숙하지 않았다.
혼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타입이기 때문에.
10년 지기인 나를 대할 때도 어색하다.
노력만 한다면, 좀 더 완벽해질 수도 있는데.
타이치「……잘먹겠습니다」
그래도.
동쪽의 집을 향해, 손을 마주댔다.

이 길에서 유사와 자주 만났다.
나를 잘 따랐다.
포근한 존재였다.
지금의 내가 이루어지기까지, 나도 여러모로 고생을 해 왔다.
유사의 존재는, 나를 잘 달래주었다.
그런 그녀도 이젠 없다.
사쿠라바「여어」
사쿠라바였다.
타이치「여어」
사쿠라바「배 고프다」
타이치「아침 안 먹었냐?」
사쿠라바「1교시 수업에 대비하고 있다」
타이치「……카레빵 먹는 게 수업이냐?」
사쿠라바「카레빵이 사라지는 그날까지」
쿨하게 말했다.
타이치「레토로트 카레라도 먹으면 되잖아」
사쿠라바「카레는 싫다」
타이치「……………………」
알 수가 없다……이 놈은 정말로…….
어째서 군죠로 온 걸까.
적응계수가 높은 것도 아니고.
역시 부모의 재력으로 압력을 넣어…….
타이치「의미가 없어―」
사쿠라바「응?」
타이치「지금 너란 존재의 무의미함을 깨달은 참이야」
사쿠라바「뭐얏……아버지는 나야말로 세상 그 자체라고 말씀하셨단 말이다?」
타이치「네 아버지는 너무 물렁하셔!」
사쿠라바「이상한 말이군……」
타이치「컴뱃이 사라진 게 참 안타깝다」
사쿠라바「훗……덕분에 난 간편 통학」
타이치「넌 더 고생을 해야 돼. 너의 썩는 돈으로 고생을 사. 그리고 고생을 하면서 더 큰 정신적 충격을 받아」
사쿠라바「어려운 주문이군」
사쿠라바와 터벅터벅 등교한다.
그 때.
사쿠라바「헥스!」
타이치「육각형!?」
사쿠라바「훌쩍……여름 감기인가」
재채기였다.
사쿠라바「음」
사쿠라바의 눈이 어느 것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흘러나온, 작은 놀라움의 소리였다.
나와 유사의 사이에, 다리가 이어져 있었다.
한쪽 끝은 내 교복, 딱 복부 근처.
다른 한쪽 끝은, 라바의 코.
즉.
사쿠라바「훗……」
실없이 웃는다.
콧물다리 완성.
점성이 높은 액체가,
주르―륵
하고 늘어져 현수교를 만들고 있던 것이다.
재채기를 한 박자에 맞춰, 튀어나온 콧물탄은 신칸센보다 빠른 초속으로(진짜) 내 교복에 달라붙었다.
접착력이 강한 액체는 마치 총알처럼 더럽고 지저분한 사쿠라바의 비강에서 빠져나와 보통의 경우엔 끊어져버리는 접합부분을 주인의 끈덕진 성격을 방물케 하는 접착력으로 보관 유지시켜, 다리 완성에 이르렀다.
사쿠라바「…………」
녀석도 간신히 그 사태를 이해한 것 같았다.
상큼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손끝 하나 움직이지 않는다.
아마 지금 이 녀석이 생각하고 있는 건 '콧물을 내뿜었더니 코가 상쾌해졌다'……대충 이런 거겠지. 내기해도 좋다.
타이치「이봐……코찌질이」
소아성으로 가득 찬 칭호를 수여해 줬다.
사쿠라바「으앙―?」
극도의 이완 작용에 의한 걸까.
사쿠라바는 헤벌쭉해 있었다.
이 자식!
이 녀석에게 새로운 트라우마를 심어줘야 되겠다.
조금이라도 군죠 학생답게 만들어야지.
아틀란티스 제국의 피가 끓어올랐다.
사쿠라바의 반응보다 빨리, 냉정하게 손수건을 꺼냈다.
그리고 우선, 사쿠라바의 코 끝을 닦았다.
사쿠라바「……우뉴?」
졸라게 기분 나쁜 모에 목소리를 냈다.
뿌리를 끊고 나서, 몇 번 반복해서 코 밑을 닦는다.
그리고 콧물다리를 철거해 가며, 내 교복을 가볍게 문지른다.
손수건을 주머니에 넣……지 않고, 사쿠라바의 면상에 꾹 눌렀다.
사쿠라바「오오오오오오오오옷!?」
타이치「응―?」
사쿠라바「이건……좀……더럽지……않나?」
타이치「괜찮아」
명랑하게 웃었다.
타이치「너니까」
빙글빙글 눌렀다.
사쿠라바「오우오우오우오우」
빙글빙글빙글빙글
사쿠라바「오우오우오우오우」
실로 지옥의 광경.
타이치「내 손수건은 귀여운 나를 울다 지쳐 쓰러지게 만들고도 참고만 있을 손수건이 아냐」
음침한 음색으로 말했다.
사쿠라바「……으으윽!」
사쿠라바의 몸이 움찔 떨렸다.
점액의 감촉에 그만 혼이 빠진 것 같다.
손수건을 붙인 채로, 땅바닥에 쓰러진다.
타이치「육각형을 만드는 것도 좋지만, 여름 감기에는 조심하게나, 사쿠라바군」
콰직, 하고 사쿠라바의 머리를 밟고 걸어나갔다.
타이치「쳇……」
사쿠라바「또 너와의 추억이 하나 늘었구나」
태연하게 옆에서 걷고 있었다.
타이치「데미지를 좀 입으란 말야!!」
손수건 한 장으로 사쿠라바와의 우정을 획득해버렸다.

복도에 키리가 서 있었다.
타이치「키리찡……」
찌릿한 시선이 느껴졌다.
질 수 없이 나도 째려보았다.
파바바바바바바바밧!! (심리 효과)
시선 응수.
압박감 넘치는 적의가 서로 충돌해 중간 지점에서 휘몰아친다.
저 꼬맹이가!!
품 속으로 손을 넣는다.
무기를 꺼내겠다고 말하듯.
사실은 젖꼭지가 가려웠기 때문.
키리「……으읏!」
키리는 과민하게 경계하며.
스윽, 하고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녀석도 무기를!
타이치「큭」
난 품 속에 손을 넣은 채로, 안광을 한층 더 강화시켰다.
찌릿찌릿찌릿찌릿찌릿!!
키리도 주머니에서 손을 꺼내지 않는다.
교착상태.
퀵&드로우.
먼저 움직인 쪽이 당한다.
그 때 미키가 손을 흐느적거리며 나왔다. 화장실에서.
미키「와―――앙, 화장실 갔다온 사이에 아수라장이 되어 있어―――!!」
타이치「지금 도와줄게 미키!」
미키「붙잡혀 있다는 설정이 되어 있어……」
키리「도망쳐, 미키」
미키「아니, 그러니까……」
키리가 허리를 숙인다.
타이치「……훗」
난 어깨의 힘을 뺐다.
손도 뺐다.
키리「……」
빈 손.
손을 흔들며, 무기가 없다는 것을 알린다.
타이치「장난은 여기까지, 키리찡」
타이치「난 무장하고 있지 않아. 자네도 무의미한 허세는 그만 두게나」
'그만두게나'라고 말하는 내 모습은 한없이 멋있었다.
순애 귀족이란 별명은 허명이 아니었다.
키리「…………」
키리가 손을 뺐다.
크로스보우가 쥐어져 있었다.
타이치「……냐?」
백 마스터사 제품 맥스 크로스보우―――!
타이치「잠깐잠깐잠깐잠깐」
타이치「이건 이상해! 그런 사이즈의 물건이 주머니에 들어갈 리가 없잖아!」
키리「…………」
말없이 크로스보우를 나에게 겨누고 있다.
스코프 너머로, 키리가 내 심장을 노리고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오싹한 시선이 느껴졌다.
타이치「어린 시절 그렇게나 변신 로보트를 가지고 싶어했던 내 마음을 노리고 있어!?」
키리「움직이지 마세요. 쏩니다」
미키「아와와왓」
미키미키도 당황.
타이치「항복 항복!」
양손을 든다.
키리「아, 쏘기 쉬워졌다……」
화살촉이 순간 앞으로 다가왔다.
타이치「노―! 노―! 야메뗗―!」
고개를 빙빙 흔든다.
울 것 같다.
아니 울고 있었다.
미키「키리찡, 키리찡! 안돼, 체포된단 말야!」
키리「경찰 이젠 없잖아」
미키「아, 그렇구나」
미키「호에―……」
얌전해졌다.
타이치「납득하지 마―!」
키리「무릎을 꿇고, 손을 머리 뒤로」
타이치「네엡」
따른다.
키리「……다음엔 어쩌지?」
미키와 속닥속닥 대화한다.
하지만 나에겐 들린다.
미키「무장해제는 어때?」
키리「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
미키「……」
고민.
미키「그럼, 이건 어때?」
속삭인다.
키리「……알았어」
키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키리는 쿨하게 보이면서도, 실은 미키에게 상당히 의존하는 면이 있다.
그래.
거기에 활로가 있었다.
미키미키는 분명 오랫동안 귀여워해줬던 날 선처해줄 것이 틀림없다.
키리「땅바닥을 기면서 멍하고 짖어보세요」
타이치「미키미키―!!」
미키「이히히」
사악한 웃음.
난 성희롱의 복수를 당하고 있었다.
키리「빨리」
타이치「크, 크윽……」
별 수 없지.
땅바닥에 엎드린다.
타이치「……멍」
미키「의욕이 느껴지지 않아서 다시」
타이치「꺅―!!」
부끄러움 폭발.
쉽다고 하면 쉬운 일이지만.
막상 해보니 괴로웠다.
키리「다시 하세요, 선배」
타이치「멍, 멍멍멍!」
타이치「자 어떠냐 불만 있냐!」
미키「누가 네 번이나 짖으라고 했어, 라고 해봐」
타이치「야야!」
키리「누가 네 번이나 짖으라고 했나요?」
타이치「OK 알았어. 자, 누구 신발을 핥으면 되지? 아앙?」
미키「개긴다?」
타이치「핥게 해 주십시오, 공주님」
이마를 바닥에 댔다.
미키「신발이 더러워지니까 됐습니다」
타이치「야야!」
미키「……자아, 다음은 누드 쇼예요~」
미키가, 미키가 악마로!
미키「하의를 벗으세요」
타이치「싫어―, 몸은 싫어―!」
미키「생명과 정조, 어느 쪽이 중요하신가요, 선배?」
강자의 여유에 눈을 뜬 미키였다.
타이치「히―잉」
팬티 차림이 된다.
키리가 얼굴을 붉혔다.
타이치「다음은 뭐야?」
미키「뻔하죠」
미키「전 하의를 벗으라고 했습니다」
타이치「…………」
타이치「정말 괜찮아?」
진지하게 말한다.
타이치「이것을 노출한다는 것의 의미를 알고 있어?」
미키「이 상황에 몰리고서도 협박입니까?」
타이치「어리석군. 넌 이 녀석의 두려움을 모르고 있어」
타이치「이것은 그 크로스보우처럼 초심자도 간단히 제어할 수 있는 귀여운 물건이 아니라고?」
타이치「온 세상의 막이라는 막, 처녀라는 처녀를 무한히 먹어치우는……마물이지」
타이치「한번 해방되면, 세상에서 처녀의 광채가 사라지게 되어버린다」
미키「……또 헛소리를」
키리「저기……나도 별로 안 보고 싶어……」
미키「키리찡은 가만히 있어」
키리「……으, 응」
풀이 죽는 키리.
미키는 진심이다.
타이치「……모든 것을 무로 돌릴 작정인가?」
미키「그렇다 한다면?」
타이치「너, 너란 녀석은……그러고도 과학자냐!」
미키「과학이란 파헤치는 것. 과학이란 금단의 영역을 침범해가는 것」
키리「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미키「결과를 걱정하는 과학에 의미는 없어요, 교수님」
타이치「큭,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군」
미키「그렇다, 아인슈타인처럼」
타이치「어쩔 수 없지……」
난 젖꼭지를 만졌다.
타이치「이 폭파 스위치를 사용하게 될 줄은」
키리「……………………」
키리는 크로스보우를 두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미키「폭파 스위치?」
타이치「그렇다. 나는 이 녀석을, 이 악마의 굗휴를 세상에 해방시켜서는 안된다」
미키「……」
타이치「모든 숙녀에게 안식을. 여보 아이들아, 미안하다……못난 아비를 용서해라!」
타이치「……응?」
타이치「어떻게 된 일이지, 이건? 장치가 작동하지 않는다니?」
미키「……후훗, 당신의 행동 정도야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고요, 폐하!」
키리「배역이 바뀌었어……」
화장실에서 나온 키리가, 느릿느릿 크로스보우를 다시 쥐었다.
타이치「배선을……제길! 이럴 수가!」
미키「절대절명이군요」
타이치「후……」
타이치「잊었나, 젖꼭지는 두 개라는 것을!」
미키「읏!?」
타이치「과학에 빠져 인간을 소흘히한……미키군, 자네의 패배네!」
미키「안돼!」
미키는 키리에게 달려들었다.
키리「엇, 잠깐……?」
이마에 작은 위험신호가 반짝였다.
순간 키리가, 화살촉을 돌렸다.
화살이 나왔다.
타이치「으윽!!!!」
역시 볼 수는 있어도 반응은 할 수 없었다.
뺨을 스쳤다.
타이치「…………」
뒤를 돌아보니, 화살은 복도 벽에 박혀 있었다.
타이치「……………………」
타이치「미미미미……」
미키「미안해요, 교수님」
타이치「교수가 아냐! 겁나게 위험했어! 겁나게 위험했다고 지금!」
미키「……에하하」
타이치「에하하가 아니라네 자네」
우와, 뒤늦게 식은땀이 흘러나오고 있어.
타이치「주, 죽는 줄 알았어……」
미키「죄송해요……」
타이치「아니, 살아있으니 괜찮긴 한데」
타이치「저기 키리찡?」
키리「네, 아, 하……」
키리는 멍해 있었다.
타이치「키리찡은 사과 안 하는 걸까나―?」
키리「……에」
타이치「물론 생명이 걸려 있긴 했지만―, 그러면 위험하잖아―」
키리「……그건」
타이치「그건?」
키리「……………………」
갈등.
타이치「미안하지?」
키리「…………으으」
울상을 짓는다.
그렇게 싫은 건가.
타이치「'죄송합니다'는?」
키리「…………죄……죄송―――」
키리가 말을 내뱉으려는 순간.
난 괜히 장난심이 발동했다.
타이치「역시 싫어. 내 맘대로 사과받을래」
키리「네……?」
타이치「랏차―」
아이스케키―!
그런 의태어가 들렸다.
키리「하으읏???」
키리「어, 어라? 어라라?」
타이치「보았는가!」
타이치「이것이 바로 치마 들추기의 오의, 파라슈트ㆍ데스ㆍ센텐스!」
타이치「스커트에 엑세스하는 손가락 끝이 옷에 닿는 그 순간, 전신의 관절 24개소가 동시구동되는 것에 의해, 여자의 하반신에 매혹적 폐쇄 공간 안에 미약한 난기류를 발생시킨다」
타이치「이 작용에 의해, 들춰진 스커트는 낙하산 장력으로 유지된 채 통상의 치마 들추기의 수배에 달하는 체공시간으로 속옷을 환히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
미키「……선배는 인간이 아니시군요, 이미」
타이치「하지만, 그 기나긴 적나라 타임에 의해 수치도는 비약적으로 상승해, 낙하산 효과의 지속시간의 임종은 내 생명에 대한 사형선고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목숨을 건 비기, 그것이 이 파라슈트ㆍ데스ㆍ센텐스!」
미키「……변태짓 하기도 참 힘드네요」
키리「어, 어째서 다시……아아앗?」
키리는 허겁지겁 치마를 누르고 있었다.
하지만, 한쪽을 누르면 반대쪽이 더욱 더 높게 들춰졌다.
앗싸리 놔둬도 치마는 출렁거리며, 속옷을 계속 노출시킨다.
마치 밑쪽에서 바람이 불어오는 것처럼.
타이치「반간지계. 지금까지 아군이었던 것이, 앞으로도 아군일 보장은 없는 것이다」
타이치「이 교훈을 잘 새겨두게나, 키리찡」
키리「치, 치마가……출렁출렁 흔들려, 잠깐, 뭐야 이거!?」
미키「굉장하네요―……」
타이치「아름답구나. 키리찡」
엄지손가락을 세웠다.
키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키리찡은 여전히 허둥지둥.
바깥에서 하기라도 하면 부끄러워 죽을지도 모르겠네.
역시 오의.
요코는 전혀 동요를 안 한 말야.
당황을 해야 하는 보람이 있지.
잠시 후, 서서히 치마가 내려갔다.
키리「……하……하아……」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타이치「파라슈트ㆍ데스ㆍ센텐스를 발동하기 위한 시간은 불과 0.05초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 여기서, 그 과정을 다시 한 번 보기로―――」
키리찡의 치마에 손을 댔다.
키리「으럇――――――!!」
미키「오랜만에 발차기가 나왔습니다아아!」
타이치「꺅――――――!!」
뒤꿈치 찍기가 종휭무진하게 회전궤도를 변화시킨다.
발차기로 인해 생긴 난기류 때문이었다.
타이치「오오오오오오오……」
키리「당신은 싸이코예요!!」
싸이코 취급받았다.
타이치「아야얏……」
키리「가자, 미키!」
엄청 화나 있었다.
타이치「……아―아, 가버렸네」
미키「선배의 도전정신은 참 존경스러워요」
타이치「음. 인간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거니까」
타이치「뭐, 너희들도 느긋하게 살렴」
미키「네―엥」
미키「그건 그렇고……사이가 안좋네요, 두 사람은」
마주보며 쓴웃음.
타이치「나하고 키리는 미키미키를 둘러싼 사랑의 라이벌이니까」
미키「네에. 호적수네요」
타이치「……」
호적수라.
키리「미키!」
미키「호―이. 그럼 선배, 언젠가 또 봐요」
손을 흔들며 인사.
미키는 키리 옆으로 달려갔다.

옥상에 와 봤다.
시간은 10시를 지나 있었다.
어차피……수업 따위는 없다.
그저 학교라는 공간을 느끼고 싶었던 것뿐이다.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을, 맛보고 싶었을 뿐.
정신안정제를 복용하듯이―――
옥상에는 아무도 없었다…….
타이치「응?」
하지만 아니었다.
부활동……이란 건가.
안테나를 바라본다.
세계에서 사람이 사라지고.
우리들은 결속할 수도 없는 개인이었다.
결속했다고 해도 무력하단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겠지만.
……뿔뿔이 흩어져버린 지금의 상황에, 마음이 아팠다.
타이치「…………」
직사광선, 안 좋을 텐데.
선배의 옆에 자명종이 놓여 있었다.
선배가 가져온 걸까.
알람을 5분 뒤로 맞춰 놓는다.
이걸로 일어나겠지.
미미 선배에게 잠꾸러기 속성은 없으니까.
추락&자살 방지용 철망을 잡으며, 계단으로 향한다.
타이치「응?」
한 군데, 철망이 흔들리는 곳이 있었다.
가볍게 밀자, 덜컹덜컹 흔들렸다.
체중을 실으면 떨어져버릴 것 같았다.
타이치「위험하네―」
꿈 속에 사는 사람이 많은 군죠에서는 꽤 위험한 문젠데.
타이치「……」
뭐, 지금 남아있는 멤버라면 괜찮겠지.
전원, 일상생활에 지장은 없는 상태다.
천천히 계단으로 향한다.
문을 연다.
등 뒤에서 자명종의 알람소리와,
미사토「으앙?」
선배의 묘한 목소리가 들렸다.
살짝 미소지으며, 문을 닫았다.
자 그럼.


ㆍ部室に行ってみる (부실에 가 본다)


부실.
토모키가 있을 줄 알았지만, 텅 비어 있었다.
아마『부활동』에 정력을 쏟고 있겠지.
그렇다 하면, 지금쯤은 동네를 돌고 있는 걸까.
노트에 의하면, 이 세계는 일주일밖에 지속되지 않으니 녀석의 노력은 쓸데없는 짓이 되어버린다.
하지만, 그것을 가르쳐주고 싶지는 않았다.
토모키의 부활동이, 선배의 부활동과 크게 의미가 다른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 다음은.


ㆍ一年敎室に行ってみる (1학년 교실에 가 본다)


미키와 키리가 있다.
타이치「……먹을 거 없나요?」
미키「유감이네요」
타이치「그 도시락은……?」
라이스.
미트볼.
타이치「자, 잠깐, 어떻게 이런 음식들이……?」
미키「키리찡이 만들었어요. 도시락으로」
타이치「우와, 맛있겠다」
미키「……선배가 드실 건 없어요」
단호.
타이치「꽤 많아 보이는데?」
미키「많죠」
척 보기에도 3인분은 되어 보인다.
키리「하지만 왜인지 선배 건 없네요」
타이치「……으윽」
깐깐한 이노센스.
타이치「그럼 물물교환을 하자」
미키「트레이트군요」
타이치「사탕하고 구미 젤리. 수제품」
두 사람의 눈빛이 변했다.
미키「수제품?」
타이치「음―. 요코가 만든 건데」
타이치「설탕도 적고, 미용 건강에 좋다더라. 구미는 곤약이야. 0칼로리」
두 사람「0칼로리―!?」
…………………….
타이치「와―아」
교환 성립.
미키「어머니의 맛이 나……」
키리「그렇네」
미키「우유맛이야」
키리「그치―」
타이치「스토커의 맛이지만 말야」
미키「볼이……내 볼이……」
키리「으응~~~」
역시 여자애들이란.
덕분에 라이스 획득.
일본인은 역시 밥이지.
타이치「맛있네……키리찡은 요리에 재능이 있어」
키리「……반찬은 레토로트인데요」
타이치「그래도 맛있어」
키리「밥을 안 만들면, 미키가 과자만 계속 먹어서」
미키「과자 맛있는걸」
타이치「밥 먹기가 힘들지」
미키「네에……」
타이치「키리찡 나랑 결혼하자」
키리「불가능합니다」
미키「싫어요, 가 아니라 불가능하다네요, 선배」
타이치「……불타오르는데」
키리「물 뿌려드릴까요?」
타이치「됐어」
미키「과자 더 있어요?」
타이치「있지. 비스켓이라던가, 사블레라던가. 요코 선생님은 과자를 잘 만드니까」
미키「헤에―, 의외네요」
타이치「좋은 보존식품이 되는 것 같아」
키리「……연인, 사이시죠?」
타이치「어, 나하고 요코가?」
미키「그건 미키도 신경쓰이던 일이에요」
미키「밥도 안 넘어갈 정도로요」
타이치「……잘만 먹고 있자너」
미키「으구」
한여름의 대식가 아가씨.
타이치「아니, 같이 살고 있을 뿐이야」
미키「동거」
키리「동거」
두 사람의 하모니.
타이치「아냐. 동거하곤 달라」
타이치「으음, 요컨데 우리들은 부모가 없으니까, 두 사람 모두 무츠미 아줌마가 맡아 주고 계셨어. 아, 무츠미 아줌마는 내 보호자」
타이치「남매 같은 거라고도 할 수 있지만……난 그렇게는 생각 안 해」
요코도 그렇게 안 생각하고.
그래서 쫓겨났지, 요코.
미키「헤에―, 그런 얘기는 처음 듣네요」
키리「……불건전한 관계일 거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니, 실제로는 불건전합니다만.
타이치「뭐―, 대충 그런 거야. 혈연은 아니고」
미키「하세쿠라 선배도 수수께끼가 많은 분이네요」
타이치「그러게 말야」
타이치「자, 특별히 치토세아메를 줄 테니까, 모두 같이 시치고산 무드에 잠겨 보자」
미키「오―, 치토세아메다!」
키리가 가로챘다.
미키「우으―, 뭐하는 거야!」
키리「과자만 먹으면 안돼」
미키「자기도 먹었던 주제에―!」
키리「우선 밥부터 먹어. 건강관리, 앞으로는 너 스스로 해야 된단 말야」
미키「……네―에」
으―음.
키리「왜 그러세요? 야릇한 눈으로……」
타이치「야릇하다 하지 마」
타이치「아니, 좋은 콤비라고 생각해서」
미키「꽃님들이니까요」
타이치「연예계에 데뷔시켜주고 싶을 정도야」
미키「지금 데뷔해 봐야 뭐……」
키리「여덟 장밖에 안 팔리겠네. CD」
미키「밀리언은 꿈 속의 꿈」
키리「그럼 내가 두 장 사 줄게」
미키「그럼 나도 두 장 살래」
키리「열 장」
미키「응, 열 장. 두 자리네」
마주보며 웃는다.
정말로 사이가 좋구나.
그 모습은, 내 마음을 조금 적셔주었다.

집으로 가는 길.
타이치「으―음」
결국, 아무것도 안 하고 하루를 보내버렸다.
리셋이 된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인지.
아무래도 의욕이 나질 않는다.
게다가……학교에 가도 떠들썩함은 느껴지지 않는다.
세상은 텅 비어 있다.
여덟 명은 세상이라 할 수 없다.
영원한 여름.
우리들은, 시간의 소용돌이에 사로잡힌 인류의 잔해일까.
아니면……다른 의미의 존재일까.
고개를 오르는 중, 멈춰선다.
길모퉁이에 있는 잡목림.
떠올린다.
떠올린다…….

신카와 유타카가 잡목림을 바라보고 있었다.
난 그런 신카와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타이치「무슨 일이야?」
신카와는 땀을 흘리고 있었다.
더워서 흘리는 땀은 아니었다.
뒤로 살짝 물러난다.
차가 오고 있었다.
타이치「신카와!」
신카와는 치여 죽었다. 그것은 내 트라우마가 되었다.
……이런 일은 없었고,
타이치「아, 타자키 상점 선전용 트럭이다」
겁나 화려한 트럭이, 시속 30킬로로 천천히 지나갔다.
복스러운 얼굴의 아저씨가 나를 향해『항상 고마워~』하며 손을 흔들었다.
난 단골이니까.
뒤를 돌아보았다.
타이치「쌍팔년대 매니악한 음료수 입하, 항상 고마워―!」
안○사.
멜○ 옐로.
네포○.
후추경부.
게토레○.
전설의 소프트 드링크들.
전 철도 오타쿠라 비지니스도 오타쿠스러운 건지.
어떻게 입하해오는지는 모른다.
어쨌든 신카와는 죽지 않았다.
팔팔했다.
타이치「방금 넌 생사의 기로를 멤돌았다. 내가 여차저차 너의 팔을 잡지 않았다면, 네 회색의 뇌세포는 지금쯤 아스팔트 위에서 그로테스크 영상이 되어 있었겠지」
신카와는 떨고 있었다.
타이치「신카와?」
신카와「아……미안」
정신을 차린다.
신카와「뭐랄까……숲 속을 보다 보면……기분이 굉장히 나빠져……옛날부터 그랬어……이유는 모르지만……」
얼굴을 손으로 가리며, 잠시 동안 멍하게 서 있었다.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헐떡이듯 숨을 내쉬었다.
타이치「…………」
신카와『나, 한쪽 발을 거의 못 쓰니까 말야』
외장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군죠에도 적은 수나마 외적 장애자는 존재했기 때문에.
하지만 유타카는 내장……내적 장애였는지도 모른다. 지금 생각해 보면.
숲 속.
나무에 둘러싸인 폐쇄공간.
나도 그런 곳에는 약했디
옛날, 그곳에서 마음에 상처를 입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 난, 신카와의 기분을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여전히 무츠미 아줌마의 모습은 없다.
당연하다.
돌아가셨으니까.
아니, 돌아가신 건 아닌가.
인류 전원 숨바꼭질 설도 아직 유효하다.
'뇌가 조금 많이 갈라져 있는 거 아냐?' 하고 생각될 정도로 시시한 이야기지만, 부정할 근거는 없었다.
일이고 뭐고 죄다 내팽개치고 숨바꼭질을 하고 있는 거라면, 인류도 참 많이 망가진 거겠지.
멸망멸망 하지만, 실은 사라져버린 것뿐이니.
어쨌든, 다정한 무츠미 아줌마는 보이지 않았다.
집에서 전혀 가족의 냄새가 나지 않았다.
원래 희박했지만,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부엌을 바라본다.
물이 차 있는 세면대 안에, 토마토가 세 개 떠올라 있었다.
타이치「토마토네」
놀랐다.
내가 넣어둔 건 아니다.
바로 먹는다.
신선한 토마토.
입 안에서 과실이 살살 녹았다.
얼굴이 풀릴 정도로 맛있다.
어쨌든 이 집에 음식은 없다.
무츠미 아줌마가 항상 퇴근길에 장을 봐 오셨으니까.
그래서 내가 요리할 기회는 적었고, 재료도 없었다.
그러고 보니 감자가 어디 있던 거 같은데.
책상 위를 보자, 메모가 있었다.
『저녁이 없는 것도 아냐』
요코인가.
먹을 걸로 날 낚으려 하고 있다.
명백하게.
그런 수법에 내가 걸릴 것 같냐,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알 것을.
타이치「다녀오겠습니다」
당연히 걸리지.

양초에 불을 붙인다.
일기를 쓴다.
자세하게 쓴다.
다음주를 위해서―――

수요일.
뉴턴을 비웃듯, 타성의 법칙에 따라 학교에 간다.
고개를 오른다.
매일 다니는 길이지만 숨이 찬다.
걸음은 늦어진다.
간신히 평평한 곳으로 나온다.
타이치「……!」
알 수 없는 예감에, 의식이 가열되었다.
이성보다 빠르게 몸이 움직인다.
재빨리 뒤돌았다!
타이치「…………없네」
사람의 기척을 느꼈는데.
그래……나나카다.
사당에 갔다온 후로, 한 번도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그녀는 이 세계에 일어난 일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왜 나는 나나카를 찾지 않는 걸까.
아마……찾을 수 없기 때문에.
나나카는 찾을 수 없다. 절대로.
그런 느낌이 들었다.

학생의 탈주를 막기 위한 문은, 척 보기에도 갑갑해 보이는 인상이다.
왜 탈주시키면 안 될까.
사람을 상처입힐 가능성이 있으니까.
뭐, 일종의 격리시설이다.
안심해도 돼요, 위험인물들은 사라졌습니다.
온 세상에 여덟 명뿐.
그리고 일반 시민도 사라졌습니다.
그러므로 피해자는 생기지 않습니다.
와하하.
타이치「자, 자학 개그는 이쯤 해 두고」
죽은 조개처럼 열려 있는 문을 지나간다.

가방을 두러 교실로.
타이치「오잉?」
토오코의 모습이 없다.
왔을 줄 알았는데.
창가 자리.
그곳에 아가씨의 모습은 없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하지 말아 줘.
소망에 가까운 바람.
낡은 가방을 두고, 학교를 방황.
시작한 지 3일째 되는『일상』.
하지만 그것은, 공허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래.
1학년 교실에 가자.
미키리 콤비가 있을지도 모른다.
아무도 없다.
교실을 보자, 두 사람의 책상에 가방이 있었다.
오긴 왔다.
교내 어딘가에 있겠지.
그러고 보니, 학교는 키리와 미키의 집 중간지점에 있다.
만날 장소로, 계속 다녀온 학교는 딱 좋은 것일지도 모른다.
무슨 일을 하기 위해서든.
창 밖을 본다.
풀장이 보였다.
타이치「……헤에」
놀고 있었다.
즐거운 듯이.
희미하게 목소리가 들린다.
미키「이얏―!」
키리「아, 안된다니까, 안돼―!」
미키「이런이런―, 피하지도 못하는 거냐―!」
키리「그치만 물 속이잖아, 앗, 머리, 머리카락 젖겠어」
미키「어디가 젖는다고―?」
키리「어쩐지 아저씨같아」
미키「마음은 아저씨야, 으럇―!」
키리「아―, 머리가―」
키리「복수다!」
미키「꺄―!」
행복한 광경을 보고 있었다.
키리「이잇―!」
미키「으랴럇―!」
키리「먹어랏―!!」
미키「우와―……메―롱, 먹기 싫―다」
키리「아, 비트판 사용 금지!」
미키「방패야―」
키리「치사해―!」
미키「머리가 긴 만큼 내가 불리하잖아」
뭐냐 그건.
쓰게 웃어버린다.
키리「그치만, 한 손이 되었으니 공격력은 내려갔어!」
미키「이런―!」
키리「사냥 시간이다―!」
미키「수렵 해금!?」
첨벙첨벙 돌아다니며, 물 속을 헤엄친다.
천진난만하게.
두근
타이치「……!」
심장이 뛰었다.
가벼운 감동이.
무의식중에 심장을 누르고 있었다.
장기에 마음이 있다는 말은 아니다.
내 감정이, 심장을 두드리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기뻤다.
키리「꺄악!」
미키「아하하하핫, 미끄러졌다―!」
키리「다 젖었어……」
미키「메―롱, 둔―탱이」
키리「……그랬겠다」
미키「오효?」
키리「젖었으니까 이제 수영할 수 있다네」
미키「앗, 앗앗, 근접전은 안돼―!」
키리「평형으로 자유형을 이길 거 같아!」
미키「우왕좌왕우왕좌왕」
키리「물에 빠뜨려버리겠어」
미키「싫어―! 젖으면 머리가 해초처럼 된단 말야―!」
키리「해초로 만들어주지―!」
미키「왓, 왓, 위험해」
키리「이얏―!」
미키「냐아―――――――!!」
첨벙이는 물소리.
멈추지 않는 웃음소리.
포근하게 흘러가는 그 시간은, 따스했다.
따스한 세상의 한 장면.
일기에 쓰기로 했다.
이 기분을 잊지 않도록.
나는 계속, 두 소녀가 노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토모키가 있다.
양호실 문 앞에서 서성대고 있었다.
타이치「토모키―」
말을 걸자, 토모키의 등이 움찔했다.
토모키「타, 타이치구나……」
타이치「학교에 있었네」
토모키「아아, 잠깐 상황을 보러……잠깐 일로 와 봐」
타이치「오?」
끌려간다.
토모키「여기면 괜찮겠지」
타이치「왜 이런 구석으로?」
토모키「……아니」
우물거린다.
타이치「근데, 평화유지활동부는 어때?」
토모키「생명유지활동부. 그럭저럭 잘 되고 있어」
토모키「타이치는 먹을 건 괜찮지?」
타이치「뭐. 지금은 넉넉해」
타이치「일주일만 버티면 되고」
토모키「어?」
타이치「혼잣말이라네, 자네는」
타이치「양호실에 볼 일이 있나?」
토모키의 표정이 굳어졌다.
토모키「노, 노우―」
웬 영어래.
타이치「숨기는 일이 있다고 보여」
토모키「없다고 보여」
타이치「……양호실, 토모키, 방과후, 동정……이 네 개의 키워드에서 도출되는 결론은……」
추리의 시간이었다.
토모키「아니, 동정은 관계없잖아」
타이치「어렵군. 이런 때엔 비장의 추리」
토모키「또 이상한 말 하기 시작했다」
타이치「다세계 부연 추리!」
타이치「이것은 각 요소에서 파생되는 무수한 가능성들을 종합해, 그 무한한 선택지 중에서 가장 그럴듯한 것을 임의로 추출하는……양자 컴퓨터 비스무리한 추리법이다」
토모키「때려맞추기 아냐, 그거?」
타이치「그러기 위해서는 사고를 활성화시키는 당분이 필요하다. 자 어서 뱉으세요」
토모키「…………」
타이치「기브 미 껌, 기브 미 초콜렛」
토모키「……타이치, 맨날 사탕 같은 거 가지고 다니면서……」
타이치「그것은 혈당치가 낮아졌을 때를 대비한 긴급용」
토모키「당뇨병이냐」
토모키는 주머니를 부석부석 뒤졌다.
지금은 음식하면 토모키.
아니, 이미, 토모키가, 음식인 것이다! (Tomoki is food)
……시시해.
토모키「자」
진짜로 껌과 초콜렛이 나왔다.
타이치「너, 대단한 녀석이다」
토모키「어……뭐가? 아니, 네가 먹고 싶다고 했잖아」
타이치「이걸로 내 회색의 뇌세포도 무사평안」
토모키「???」
껌과 초콜렛.
동시에 입에 집어넣는다.
토모키「으엑」
타이치「같이 먹으면 더 맛있어」
토모키「그려……」
기막혀하고 있었다.
타이치「아까 하던 추리 말인데」
타이치「다치기라도 했어?」
조금 놀라는 토모키.
바로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돌아왔다.
토모키「응……좀 다쳤어」
토모키「……꼴 좋다」
타이치「네?」
토모키「……아무것도 아냐. 나중에 보자」
떠나간다.
타이치「흐―음」
껌이 달라붙은 초콜렛을 삼킨다.
난 껌을 삼키는 속성의 사람이다.
타이치「……다친 게 아니라, 마음이 다친 거였나」
양호실.
안경 낀 거유의 양호교사가 필요한 공간이다(주로 남자들에게).
안경 낀 거유의 양호교사가 없는 양호실 따윈, 밥 없는 참치와 같은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지금 상황에, 안경 낀 거유의 양호교사를 기대할 수는 없었다.
대신에 요코가 있었다.
타이치「안경 끼고 백의 입어」
요코「……알았어」
침대 쪽으로 사라진다.
돌아오자 안경을 끼고 있었다.
조달이 너무 빠른데.
게다가 왜 침대에서…….
그 다음에, 양호교사가 쓰는 라커로.
안에는 백의가 있었다.
돌아온다.
주문대로 완료.
소요시간 약 10초.
요코「……이걸로 됐어?」
타이치「원더풀」
요코「그래」
인정할 수밖에 없다.
바스트도 뭐, 제법 있고.
백의의 양호교사 요코.
요코 선생님『벗어. 진찰 못하니까』
요코 선생님『밑에도』
요코 선생님『성기능을 진찰할게』
요코 선생님『……안돼. 날 만지면, 그냥은 끝나지 않아』
요코 선생님『……그래……가만히 있어……착한 아이구나……』
타이치「으, 으으……」
꽤 좋은데.
요코「타이치는 지금 날 가지고 음란한 상상을 하고 있다고 보여」
타이치「……」
패배감.
오래 사귀면 이런 게 문제라니까.
타이치「이제 됐어 코스프레」
요코「코스프레를 당하고 있었어……」
불쑥 중얼거린다.
평소의 그녀로 돌아온다.
안경은 다시 침대로 되돌리러 갔다.
타이치「그런데, 왜 여기에?」
요코「……미야스미가 다쳐서」
침대를 바라보았다.
타이치「미미 선배?」
요코「이미 자고 있어」
타이치「……응급처치는?」
요코「했어」
물끄러미 바라본다.
타이치「별일인데……자발적으로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다니」
요코「안 하면……타이치한테 괴롭힘당할 것 같았으니까……」
타이치「역시」
그럼 그렇지.
볼을 양쪽에서 잡아당긴다.
타이치「해도 괴롭혀」
요코「……그렇구나」
단정한 얼굴을, 찰흙처럼 가지고 논다.
요코「하지 마」
하지만 진심으로 저항하진 않는다.
저항할 방법을 모르는 것.
기본 설정이 무시 또는 제거 둘 중 하나니까.
타이치「쭈욱쭈욱」
요코「으―, 으으……」
타이치「볼이 부드럽네」
요코「……아파……너무 아파……」
타이치「볼 같은 걸 가지고 있는 게 나쁜 거야」
요코「억지부리고 있어」
슬슬 질린다.
타이치「그래, 선배 상처는 어느 정도?」
요코「가벼운 찰과상과 타박상. 생명에 지장은 없음」
기분 탓인지 붉어 보이는 볼로, 그렇게 말했다.
타이치「그래」
가만히 보자, 가벼운 숨결.
아프지는 않은 것 같았다.
타이치「잘 자고 있네」
이마에 붙은 머리카락을 쓰다듬는다.
미사토「으응―」
울음소리를 냈다.
모에모에.
이번엔 다른 부분으로 손을 뻗는다.
꾸욱
타이치「으윽!」
요코가 내 손목을 잡았다.
성인 남성 수준의 악력!
타이치「……뭐하는 거야」
요코「타이치는 지금, 가슴을 만지려 하고 있어」
타이치「노, 노우―」
요코 「영어로 말하는 게 수상해……」
요코「타이치가 영어를 못한다는 점도, 중요한 판단 포인트」
타이치「큭, 그렇게까지 날 파악하고 있었다니……」
역시 세상은 모름지기 게임.
요코「내 눈동자가 검은 한은, 이 가슴을 만지게 하진 않겠어」
타이치「이게!」
하지만 접근전에서 승산은 없다.
타이치「이렇게 되면……네 가슴을 만져주마!」
반대쪽 손을 그녀의 가슴을 향해 뻗었다.
요코「……그렇게 나올 줄 알았어」
요코의 두 눈동자가, 자신감으로 가득차 있었다.
파악당했나!
설령 함정이라 해도.
타이치「이대로 만지고야 말겠어!」
그녀의 가슴에 왼손을 갖다 댔다.
피하는 동작도, 막는 동작도 없다.
역시 함정이군.
요코「걸렸다……」
타이치「뭐얏!?」
요코「혼란해 있는 타이치는 눈 앞에 있는 나에게 달려들 거라고……파악하고 있었어」
타이치「이 감촉은, 설마?」
요코「그래……노 브라」
타이치「앗, 아아앗, 뭐얏!?」
부드럽다.
교복 위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소프트 감촉이!
타이치「앗, 아아앗」
순식간에 지능이 사라져간다.
타이치「나, 나의 소피아(지능)가……」
부드러운 가슴을 만짐으로 인해, 내 지성은 분해되어버리는 것이다!
가슴이 탱탱하면 탱탱할수록, 그 분해속도는 가속된다.
타이치「큭, 엄청난……가슴이다……점점 무뇌아가 되어가는 것 같아」
정신을 차리자, 어느새 양손으로 비비고 있었다.
요코「……응……」
뜨거운 신음소리.
그것이 내 귀에 들어와, 이성을 증발시킨다.
상하좌우 사방팔방 동서남북.
아날로그 컨트롤러급의 자유도로, 가슴을 주무른다.
요코「타이……치, 읏……」
타이치「큭, 엄청나게 소피스티케이션한 바스트군……」
요코「뭔지, 모르겠어……아……」
아아아아.
나, 유혹당하고 있어.
점점 유혹당하고 있어.
미사토「후아암~」
선배가 일어났다.
미사토「……안되는데……안경 낀 채로……자면……」
우리들의 치태를 바라보았다.
미사토「에잇―!」
수도가 내리쳐졌다.
유방과 손 사이를 갈라놓았다.
미사토「페케군!」
타이치「네, 넷!」
미사토 「방금 건 옐로 정학이에요!」
휙, 손가락을 들이댔다.
그럼 레드 정학도 있는 걸까…….
타이치「그, 그치만 소피스티케이션한 가슴이었다고요!」
미사토「도시적으로 세련된 가슴이었다 해도 이유가 안 돼요!」
선배는 머리가 숙여질 정도의 큰 동작으로, 내 팔을 내리쳤다.
미사토「오랜만이에요 하세쿠라」
요코「……응」
미사토「정말로……아야야얏」
타이치「괜찮아요?」
미사토「아아, 갑자기 기재들이 무너져서요……」
타이치「요코가 여기로 데려왔어요」
미사토「어머……하세쿠라가?」
요코「데려온 건 내가 아냐」
타이치「그럼 누군데?」
요코「……시마 토모키」
타이치「토모키가?」
아항―, 그래서 그 녀석 아까…….
타이치「선배, 그 녀석이 좀 부끄럼쟁이라……」
미미 선배는 망연자실해 있었다.
타이치「……여보세요?」
미사토「토모키가……날……?」
당혹해하는 것처럼도 보인다.
어느 무렵부터일까.
이 두 사람은, 전혀 말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부실에는 토모키.
선배는 방송실.
서로 같은 공간에 있는 것조차 보기 힘들게 되었다.
누가 봐도 알 수 있었다.
다만 그 이유만을 모를 뿐.
우리들의 불화는, 각각의 사이에도 있었던 것이다.
정신을 차리자 요코는 사라져 있었다.

신카와 유타카는 건강했다. 언제나 대체로.
반응이 빨랐다.
얘기가 끊어지지 않아 좋았다.
센스도 좋았다.
그 신카와가, 언젠가 이런 말을 했다.
신카와『사촌 여동생이 말야―, 걔도 군죠 다니는데, 여러가지 가르쳐 주고 있어』
부러웠다.
게다가 상당히 귀엽다고 한다.
더욱 더 부러웠다. 선망과 질투.
이 두 개가 갖춰지면, 대개 어떤 상대라도 미워할 수 있다. 인간은.
난 그를 미워하지는 않았다.
계속되는 유타카의 말이, 더욱 더 새로운 충격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신카와『진짜로 여동생 같은 거야. 같이 살고 있고』
귀엽고 혈연이 없는 여동생적 존재와 함께 살고 있다.
게다가 후에 들은 바로는, 부모님은 거의 집에 있는 날이 없다고 한다.
이런 시츄를 일반적으로 동거라고 말합니다.
두 사람 모두 군죠에 다니게 된다.
신카와『알았어―, 사촌동생도 소개해 줄게』
신카와『……별로 에쁘진 않으니까……너무 기대는 하지 마라?』
별로 예쁘진 않다.
후에 난, 실제로 그녀와 만나게 되었다.
신카와「그럼 소개할게, 이 녀석이 사쿠라 키리. 가족 같은 녀석이야」
일반적으로 이런 것을 청천벽력이라고 합니다.
신카와「왜 그래, 둘 다 말이 없어서는? 혹시 둘 다 수줍은 거야? 이봐이봐 키리는 그렇다 치고 타이치, 이런 원숭이처럼 난폭한 녀석한테 수줍어할 필요 없어」
키리「유타카, 시끄러……」
키리「……사쿠라 키리, 입니다」
타이치「쿠, 쿠로스 타이치입니다」
어색하게 고개를 숙였다.
타이치「얘, 얘기는 많이 들었어」
키리「……네―」
그 전율의 뒤꿈치의 소유자……였던 것이다.
분명히 복수를 맹세하고 헤어졌었다.
키리의 눈에는, 호의라곤 눈꼽만큼도 보이지 않았다.
아니, 아예 째려보고 있다.
키리「저도 여러모로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타이치「그, 그래?」
나는 긴장하면서, 찻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타이치「이야―, 이 홍차 달콤한데―! 마치 설탕같아, 으음. 게다가 어쩐지 거칠거칠하네. 새로 나온 찻잎인가」
키리「…………」
무반응.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태클이 걸려오는 건, 어느 의미로는 호의를 품고 있다는 뜻이기도 한데.
신카와「아니, 그냥 설탕인데, 그거」
타이치「……그렇군요」
당분이 골수에 스며들었다.
키리「……예를 들어, 상대를 가리지 않고 성희롱을 한다든지」
신카와「그래그래―이 녀석, 굉장하다고. 꽤 무서워」
타이치「아아, 아니, 그건 말이지, 성희롱이라기 보단……그……성적 애정 표현의 일종으로 결코 불건전한 의도는 아니었어」
키리「그런 걸 성희롱이라고 합니다」
타이치「아―, 그랬구나! 하하하……」
보이지 않는 나이프가 날카롭게 꽂혀 온다.
키리「……싫어하는 아이들도 있을 텐데요?」
타이치「아―, 싫어하는 애들한텐 조심한다고? 그런 걸 진짜로 싫어하는 녀석들은, 보면 아니까, 응」
키리「그럼, 미유키는 성희롱을 좋아하는 건가요?」
타이치「아―, 뭐 싫어하던가? 하지만 그건 겉보기에 그런 것뿐이야, 아가씨. 봐, 입으로는 뭐라뭐라 해도 몸은 정직한 것처럼」
키리「……최악」
내뱉어진 작은 목소리.
나에겐 들렸다.
롤케익의 껍질을 벗기는 일에 열중해 있는 유타카에겐 들리지 않았다.
이 자식, 분위기를 못 읽는 거냐.
찌릿하고 아이 사인을 보냈다.
유타카「!」
유타카가 눈치챈다.
그래그래, 나 좀 도와줘!
나는 눈으로 간절히 말했다.
유타카「!!」
유타카는 부장급의 당당한 얼굴로, 맡겨달라는 듯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신카와「아……이런, 흘려버렸네. 나, 냅킨 사 올 테니까, 그 동안 둘이서 얘기하고 있을래?」
키리「그냥 있어」
타이치「있어 줘, 부탁이다」
신카와「?」
아무것도 이해 못하고 있었다.
단 둘이 되면, 거북한 분위기가 폭발해버릴 것 같았다.
키리「저는 미유키가 치마가 들춰지기를 원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타이치「응―, 그, 그래?」
유타카는 다시, 롤케익을 해체하기 시작한다.
이런……쓸모없는 놈…….
키리「그러니까 쿠르소 선배가 하고 있는 일은, 안 좋다고 생각합니다」
단호히 말한다.
냉정하게 보면, 싫은 타입은 아니다.
오히려 좋은……가까워지고 싶은 소녀였다.
조금 기운이 빠진다.
제대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타이치「……사쿠라는 정의의 편이구나」
담담하게 말했다.
키리「그게 나쁜가요?」
타이치「아니, 좋아. 그런 사람들은, 어디에서든 필요하다고 생각하니까」
키리「……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타이치「놀리는 건 아냐」
타이치「지금까지 너 같은 타입은, 내 주위엔 없었으니까」
키리「……그런가요」
힐끔 보니 유타카는 앉은 채로 자고 있었다.
과연 마이 프렌드. 거물이다.
덕분에 조금 진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타이치「군죠는 어때?」
키리「……어떠냐뇨?」
타이치「한 반에 보면, 여러 타입의 녀석들이 있잖아. 말이 통하지 않는 녀석, 주위를 신경쓰지 않는 녀석, 갑자기 날뛰는 녀석, 완전히 정상인 같은 녀석」
타이치「하지만 모두, 세상에 적응할 수 없어서 모이게 된 거야」
타이치「모두 일본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울 비정상인들이야. 물론, 너하고 나도」
키리「……」
타이치「대화 가능한 사람이 몇 명이나 있어? 친구라 부를 수 있는 관계를 만들 수 있는 상대가 몇 명이나 있어?」
타이치「만약 대화가 된다 해도, 그 녀석이 언제 어떻게 폭주할지 몰라. 불안은 항상 따라다녀」
타이치「예를 들면……유리가 깨지는 소리를 들으면, 갑자기 공격적으로 변한다던가. 우리 반에 그런 녀석이 있는데」
키리「방금 전의 얘기와 무슨 관계가 있죠?」
타이치「넌 나에게 정의를 말했어」
타이치「……사리를 분별할 수 있는 상대로, 날 보고 있어」
찌푸러진 미간이 약간 풀렸다.
키리「그런 의미는……」
타이치「그런 의미야」
타이치「내 행동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그걸 지적하고 공격해. 고쳐줘야 한다고 생각해서」
타이치「군죠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성격이야」
타이치「네가 단순히 둔한 녀석인지, 아니면 반대로 날카롭게 내 본성을 파악하고 있는 건지는 몰라」
타이치「그래도……오래간만에, 모르는 사람에게 인간 취급을 받은 것 같았어」
키리「…………」
입을 다물었다.
가만히 보니, 역시 나이에 맞게 귀엽다.
유타카 놈은 역시 동태눈깔.
키리「……그런 말을 하려는 게 아니라!」
타이치「미유키는」
흥분이 잠잠해진다.
타이치「그래봬도 꽤나 심해」
타이치「자세한 사정은 모르지만, 본인이 너무 깊은 고독을 느끼면 증세가 나타나는 것 같아」
타이치「바깥 세상과 접하지 않으면 세상의 윤곽이 희매해지지. 일종의 외로움증이야. 가장 옥상에서 떨어지기 쉬운 타입」
키리「…………」
타이치「알고 있었어?」
키리「……아뇨」
타이치「아마 미유키는 이동될 것 같아」
키리「에……이동이라뇨……?」
타이치「설비를 갖춘 병원 시설에 보내진다는 거야」
키리「그건……」
키리의 얼굴이 하얘졌다.
타이치「생각해 봐, 학교에서는 어쩔 때 고독한 시간도 있잖아? 주변 녀석들이 전부 정상인이라면 신경을 써줄 수 있지만……다들 자기 자신 챙기기에도 바쁘고」
타이치「미유키가 가장 싫어하는 고독한 시간이, 언제든지 생길 수 있어」
예를 들면 방과후. 아무도 없는 교실.
예를 들면 운동장. 아무도 없는 트랙.
예를 들면 교실. 사람이 있어도 사람 간의 연결이 없는, 단절 공간.
타이치「어디에든 공백은 있는 거야」
타이치「미유키가 방송부에 든 건, 우리 부가 자의식을 유지하고 있는 녀석들의 집단이기 때문이야」
타이치「그런 의도를 기초로 방송부는 이루어져 있어」
타이치「다른 부활동 따윈 하나도 없으니까 말야」
어깨를 으쓱였다.
타이치「친구를 만드는 건 힘들어. 하지만 만들지 않을 수는 없어. 왠지 알아?」
키리「……아뇨」
타이치「필요해서야. 마음을 기르기 위해서는」
키리「…………」
타이치「유타카하곤 친구가 됐지. 참 잘 된 일이야」
타이치「미유키하고도 친구가 되고 싶었어. 하지만, 조금 방법이 틀렸던 건지도 몰라」
타이치「그래도 난, 그런 것밖엔 모르니까 말야」
쓴웃음.
타이치「역시 난 참 멍청해」
키리「……그럼……성희롱한 것도……의도적이었나요?」
타이치「그랬지」
정직하게 대답한다.
키리「읏」
타이치「난 이성이 이상하게 느슨해서 말야」
타이치「그래도, 좋은 의도도 있었어」
타이치「그 촌스러운 아이에게 추억 하나쯤 남겨준다면 좋을 텐데 하는」
커피포트를 잡는다.
아직 뜨겁다. 좋은 포트를 쓰고 있었다.
홍차를 컵에 따라서, 그대로 마신다.
타이치「모두 접점을 원해」
타이치「우리들만이 아냐. 다들 원해」
타이치「휴대폰, 인터넷, 편지, 친구」
타이치「그게 다 접점이야」
타이치「거기에 누군가 있다고 기대하고, 말이나 정보나 전파를 발신하는 거잖아」
타이치「난 내가 접하는 상대가 텅 비어 있다고 느끼고 싶진 않아」
타이치「그래서 성희롱을 할 거야. 계속 할 거야」
타이치「……네가 아무리 말린다고 해도 멈추지 않아」
찻잔을 비운다.
타이치「말리고 싶으면 말려. 킥으로든 팔자꺾기로든 69로든」
키리「……69?」
타이치「그런 일로 또다시 너와의 접점이 생긴다면, 좋을 것 같아. 넌 싫을지도 모르겠지만」
키리「……………………」
고개를 숙이고.
소녀는 사색에 잠겼다.
내가 만들어낸, 사고의 미궁에.
내가 뱉어낸 말을 되새겨본다.
마치 내가『불건전하지만 열심히 사는』사람이란 듯한 이미지.
지금은 그런 자기 기만마저, 마음 속 깊이 숨겨두고 싶었다.
키리「납득은 할 수 없어요」
잠시 후 키리는 결연히 말했다.
키리「지금은, 그 정도밖에……」
타이치「그래」
잘했어.
간단하게 속아버리면 안돼.
세상은 너무 더러워져버렸으니까.
키리「그건 그 정도로 하고, 사쿠라 키리입니다」
예의바르게 고개를 숙였다.
타이치「엥?」
키리「사쿠라……키리입니다」
타이치「아, 응. 쿠로스 타이치입니다」
결국, 어색한 대면식이었다.
타이치「자, 그럼 난 슬슬 가볼게……유타카도 자고 있고……」
일어난다.
키리「죄송합니다. 잘 자고 있네요」
타이치「맞다맞다, 만약 윤택한 생활이 필요하다면, 방송부로 찾아와」
키리「……네」
타이치「하지만 오면 괴롭힐 거야. 각오해 둬. 나름대로의 대책을 세워놓고 오도록」
키리「…………」
키리는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그것이 내가 본, 첫 미소였다.
미유키는 1년도 버티지 못하고 가버렸다.
후에 미키와 알게 된 키리는, 둘이 함께 방송부에 들어가기로 했다.
의식은 자유롭게 날아가, 그 당시를 또렷하게 떠올려 낸다.

타이치「오―, 왔구나―」
미키「하이염」
키리「……안녕하세요」
두 사람의 모습은 화단에 심어진 두 송이의 꽃과 같았다.
타이치「FLOWER'S!」
미사토「그건 뭐죠?」
타이치「두 사람의 예명입니다. 방송부에서는 예명이 필요해. 다들 가지고 있지」
미키「후아~」
토모키「또 그런 구커헉」
간신히 말이 끝나기 전에 끊었다.
타이치「토모키는 인모럴, 사쿠라바는 미스터 자경단, 그리고 난 애(愛)귀족」
미키「진짜예요?」
타이치「당연하지!」
미키「그 이름으로 대화해 보세요」
타이치「헤이, 인모럴, 시스콤은 좀 어때? 증세는 여전히 변함없나?」
미사토「시스콘?」
토모키「닥쳐어어어어」
목을 조여왔다.
본인이 있기에, 토모키도 필사적.
타이치「……알았다……항복……항복……나 죽겠다……」
사쿠라바「애귀족답게 사랑(=あい)을 위해 죽는 건가?」
타이치「천국의 마망을『만나러(=あい)』죽을 것 같아……」
미사토「토모키! 폭력은 정학이야」
토모키의 얼굴에 미미 선배가 춉을 넣는다.
토모키「아, 응……」
타이치「……죽는 줄 알았다」
토모키「자업자득이지」
키리「……하아」
키리는 갑자기 지쳐 있었다.
타이치「뭐야 뭐야 그 허약한 꼴은」
타이치「우리 명의상 방송부는 실은 운동부란 말이다?」
미사토「……또 그런 말을……」
타이치「3학년 선배님들이 경사스럽게 졸업하시고, 그 자리를 메꾸듯 들어온 자네들 두 사람에게, 사쿠라바 선생님은 상당한 기대를 가지고 계신다」
사쿠라바「아아」
사쿠라바는 쿨한 포즈로 일어나서는, 주머니에 틀어박힌 채로 안 빼고 있는 손가락에 음료수 캔을 매단 채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쿠라바「오늘은 여러분에게 감나무의 교훈을 말해주려 한다」
타이치「좋았어 선생님!」
미사토「손가락, 피 나고 있어요」
사쿠라바「감나무 종 중에 땅콩이 섞여 있는 것이 있다. 알고 있나?」
사쿠라바는 무시하고 말한다. 아니 안 들리는 거겠지.
미키는 고개를 옆으로 흔들흔들.
솔직하다.
사쿠라바「그 땅콩을 싫어하는 녀석이 의외로 많다」
미키「그렇군요」
사쿠라바「나는 그럴 때마다 그 소인배 녀석들을 용서할 수 없었다. 왜라고 생각하나?」
타이치「넷, 땅콩이 들어가야만 땅콩 섞인 감나무가 되기 때문 아닙니까?」
사쿠라바「그렇다. 싫으면 순종 감을 먹으면 되잖나. 땅콩 섞인 감나무를 놓고 땅콩이 싫으니 어쩌니 하는 나약한 소리는, 땅콩 섞인 감나무의 존엄을 헤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쿠라바「소인배다」
타이치「그렇습죠!」
사쿠라바「그래서 난, 일부러 감나무 땅콩만을 먹고 있다」
타이치「……바보냐 넌」
막판 반전.
사쿠라바「이해해 주었구나」
타이치「사람 말 들어」
사쿠라바「가끔씩 오른쪽 귀가 안 들려」
이건 사실이다.
일상생활에 지장은 없지만.
타이치「날 어이없게 한 너의 그 개그 파워, 옹서할 수 없다」
타이치「너의 사쿠라바라는 성에서, 여왕 폐하의 이름으로 쿠라는 글자를 박탈한다」
사쿠라바「뭐라고?」
타이치「넌 오늘부터 사라바(=헤어질 때의 인사). 잘가 사쿠라바. 안녕 잘가」
언어란 참 재미있다.
사쿠라바「알았다」
토모키「아니, 받아들이면 어쩌자고」
사쿠라바「내 이야기는 이걸로 끝이다」
다시 주저앉고서, 캔을 빼기 위해 손가락을 이리저리 흔들었다.
미사토「……이런 사람들이에요」
정리되고 있었다.
미키「잘 알겠네요」
키리「……」
미사토「버틸 수 있을 것 같나요?」
미키「어떻게든 괜찮을 거 같아요. 그치, 사쿠찡?」
키리「……어떻게든 버텨보라고 선생님께서 말씀하셔서」
미사토「뭐, 강요는 아니니까요……싫으면 빠져도 괜찮아요」
타이치「아잉, 안돼……직장에는 꽃이 필요하단 말야」
미사토「……라네요」
매수를 할까. 척 보니 아직 꼬맹이니, 물건으로 낚는 게 좋겠지.
타이치「매수를 할까. 척 보니 아직 꼬맹이니, 물건으로 낚는 좋겠지. 입부 축하 작전이다」
토모키「또 생각을 말하고 있어, 타이치」
미키「……」
키리「……」
타이치「음―, 좋아 이거다」
타이치가방에서 두 개의 아이템을 꺼낸다.
타이치「야망바 미키 대원!」
미키「잇힝, 야마노베입니다. 넷!」
아이템은 한 장의 색종이.
타이치「자네에겐 그 대스타이자 성형의 프로, 조금 어린 소년들을 좋아하는 터프가이, 마이○ㆍ잭○―――」
미키「사, 사인지인가요!?」
타이치「을 마음의 스승으로 받드는 애귀족ㆍ쿠로스 타이치의 사인을 주지」
억지로 건넸다.
미키「아야야」
타이치「오요요」
타이치「그리고, 사쿠라 키리 대원!」
키리「……네?」
타이치「자네에겐 베이스볼을 지금에까지 이르게 한 빅 맨, 베이○ㆍ루스―――」
키리「……」
타이치「타이치 인형을 선사하지」
미사토「이어지지가 않잖아요」
미사토「정말, 전혀 안 이어져요, 전혀」
선배는 안경을 끼고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규칙적인 사람.
무질서한 것은 가만 보기 힘든 것 같다.
토모키「어쨌든 반응이 없으니 무효」
타이치「……자, 사쿠라양. 비가 와도 눈이 와도 이 인형을 몸에서 떼어내지 말고 잠 못 이루는 밤의 조그만 친구로 삼아도 좋다」
키리「…………」
손도 안 내밀었기 때문에, 달려 있는 끈으로 목에 걸었다.
미키「직접 만드신 거예요?」
타이치「그렇지」
사쿠라바「부지런한 녀석」
미키「땅콩 전문가라 그러신지, 하시는 말도 땅딸막하네요」
세 사람「!!!」
나와 사쿠라바와 토모키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이 개그는 꽤 맘에 든다.
타이치「합격」
토모키「응」
사쿠라바「좋다」
미키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세웠다.
미키「에……어라, 네?」
키리「…………휙」
키리「어라, 안 떨어지네?」
키리는 인형을 버리려 하고 있었다.
타이치「잠깐―!」
키리「읏」
들켰다는 표정.
타이치「버리려 했는가? 버리려 했지?」
이죽거린다.
타이치「유감이군,『타이치 인형을 버리다니 말도 안 돼!』인 것이다!」
키리「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타이치「굉장히 중요한 아이템이거든!」
타이치「그러니까 버리려 해도 소용없다」
키리「……저주인가요?」
미키「와―, 그럼 이 사인도!」
미키는 사인을 창 밖으로 버리려 한다.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린다.
『러브 귀족의 사인』은 버릴 수 없다!
미키「히잉!?」
타이치「와하하하하하하!」
토모키「마법사냐 넌」
미사토「입부 축하가 아니라……입부 저주네요」
앞뒤의 문이 동시에 열린다.
신카와「하이―, 키리 왔어―?」
토오코「잠깐 타이치! 기다리리고 했잖아! 왜 혼자서 가버린 거야!」
동시에 손님.
미사토「와아, 어서와요」
미사토「손님이 두 사람이나. 차가운 차를 내올게요」
허둥지둥 냉장고로.
사쿠라바「오늘 냉장고는 텅 비었다, 부장 선배」
미사토「하읏」
미사토「잠깐 사 올테니까, 잠시만 기다리고 있어요!」
타이치「라져」
토오코「아, 됐어요……그런 거……」
미사토「꼭이에요―!」
팔을 앞뒤로 흔들며, 복도로 사라졌다.
키리「……유타카, 뭐하러 왔어?」
신카와「일단은 인사하러. 그……친척이 신세를 지는 거니까」
키리「됐어. 가버려」
밖으로 내밀려 한다.
토모키「신카와도 입부하려고?」
신카와「어, 난 야구부라서」
미키「야구부 같은 것도 있었나요?」
사쿠라바「항샹 야구 보드게임을 하는, 부원 세 명의 조직이다」
미키「……하예―, 퍼니하네요」
타이치「이 학교 자체가 퍼니하니까」
토오코「아―, 타이치! 너 도대체 어쩔 작정으로 약속을 내팽개치고……」
타이치「아이템은 다른 사람에게 건넬 수 있어」
미키「저기, 키리하라 선배, 이거 드릴게요!」
토오코「에?」
받는다.
토오코「뭐야 이거? 손에서 안 떨어지네? 저, 접착제?」
팔을 빙빙 흔들지만 떨어지지 않는다.
토오코「잠깐, 뭐야 이거!?」
『러브 귀족의 사인』은 버릴 수 없다!
『러브 귀족의 사인』은 버릴 수 없다!
『러브 귀족의 사인』은 버릴 수 없다!
타이치「쓸데없이 버린다 명령을 반복하지 마. 효과음이 시끄러」
토오코「뭔지 몰라 안 들려 그런 소리」
타이치「다른 사람한테 줄 수밖에 없어」
토오코「그럼 네가 책임지고 가져가!」
타이치에게는 줄 수 없다!
토오코「왜야!」
타이치「파티가 아니면 전달은 할 수 없어」
타이치「너와 난 타인과 다름없는 사이이기 때문에, 전달은 못 해」
토오코는 입을 뻐끔거렸다. 금붕어처럼.
토오코「뭐, 뭐, 뭐라고―!!」
타이치「포기하고 얌전히 부원이 되어라」
토오코「열받아――――――!!」
키리「됐으니까 빨리 가―! 부끄러우니까!」
신카와「그치만 잘 하는지 어쩐지 걱정되잖냐―……널 믿을 수가 있어야지……」
키리「잘 할 테니까, 가버려. 괜찮으니까」
사쿠라바「훗, 떠들썩하군, 오늘은」
불쑥 사쿠라바가 중얼거린다.
토모키「오, 캔 빠졌네」
사쿠라바「비눗물의 힘이지」
선배가 쟁반에 컵을 담고, 허둥지둥 돌아왔다.
미사토「차가 없길래, 컵에 수돗물을 담아왔어요―!」
타이치「뭡니까 그건―!」
미키「아하하하하」
웃고 화내고.
조그만 난장판.
이런 것이 좋다.
추억이란 이런 것이어야 된다.
타이치「다들 날 봐! 큰일났어!」
시선이 모인다.
타이치「스트립 킹이 나타났어―!!」
재빨리 옷을 벗어제낀다.
토모키「너잖아!」
발로 차였다.
토오코에게 안긴다.
토오코「꺄아아아아아아아앗!?」
타이치「조금 부족한데. 골반이 만져지네. 좀 더 육감적으로 되도록」
토오코「에이이이이이이이잇!!」
기합이었다.
타이치「크헉―!」
키리에게 안겼다.
키리「남자한테 만져졌어―――!!」
타이치「꺄후―!」
미키「와―이!!」
타이치「크옷―!?」
토오코「미야스미 선배도 해 보세요」
미사토「에, 그, 그치만?」
토오코「땅에 떨어지면 지는 거예요」
내가 공이냐.
미사토「어머 그런」
미사토「이, 이렇게요?」
타이치「랏차―!!」
토모키「마지막엔 기합이 특히 들어가 있네―」
사쿠라바「저것은 타이치의 특별 서비스로 보인다」
미키「사나이군요!」
즐거웠다.
한없이 즐거웠다.
양질의 추억.
결코 잊고 싶지는 않다.
그러길 바랬다.

밤, 일기를 쓰고 있는데.
타이치「응?」
밖에서 부스럭 소리.
양초를 끈다.
창가로.
밖을 본다.
집 앞 도로를 누군가 걷고 있었다.
……키리.
짐을 가지고 있었다.
마침 일기 쓸 거리에 굶주리던 참.
호기심이 발동했다.
1층으로.
멀리서 키리의 등이『보인다』.
쫓아갔다.
이윽고 마을 변두리까지 가서, 키리는 짐을 풀었다.
난 들키지 않게 기척을 숨기고 다가갔다.
크로스보우―――
결코 장난감은 아니었다.
이 나라에서 손에 넣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
연사는 불가능하지만.
방음성이 뛰어나고, 파괴력도 훌륭하다.
키리는 방아쇠를 당겼다.
고목에 화살이 박혔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귀를 스친다.
키리는 새 화살을 꺼낸다.
코킹 장치에 장전을 한다.
어설프다.
하지만, 눈치챘다.
이것은 연습이다.
싸우기 위한.
그럼, 누구하고?
누구하고……일까…….
등골이 순간 오싹해졌다.
타이치「……읏」
요코「쉿」
발이 튀어나가려는 순간, 절묘한 타이밍에 내 어깨에 압박이 가해졌다.
스르륵.
무릎에서 힘이 빠졌다.
타이치「……요……」
요코「조용히」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냉정함을 되찾는다.
작은 목소리로 말을 건다.
타이치「왜 여기에?」
요코「타이치하고 같은 이유」
키리의 행동을 눈치챈 건가.
요코「매일 하고 있는 것 같아」
타이치「……저건 어디서 구했을까?」
요코「매니아」
타이치「아아, 가능하지……」
돈만 있으면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다.
키리는 그 이후, 한동안 훈련을 계속했다.
요코「……잡고 싶어?」
갑작스런 말.
규칙적인 바람 소리 속으로 고요히 빨려들어간다.
그저 귀 속에서만 남아 있었다.
그 말의 오싹한 의미와 함께.
요코『타이치……잡고 싶어?』
요코『잡아 줄게』
타이치「잡다니……」
요코「타이치가 원한다면」
타이치「됐어」
요코「그치만……」
노려본다.
타이치「내 말대로 해줄 거라면, 아무것도 하지 말아 줘」
요코「……알았어」
어깨가 축 내려간다.
타이치「요코도, 인간이잖아……같은, 인간이잖아」
요코「…………」
타이치「적어도 나와 함께 있으면, 반은 인간이잖아」
요코「난」
요코「난 타이치가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요코「타이치는 타이치. 나에겐 그걸로 충분해. 그리고 나도 나. 둘이서 하나」
요코「영원히 함께」
타이치「……그건 약혼이잖아」
미소짓는다.
요코「그래, 약혼자」
가끔씩 웃을 때는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한데.
어째서―――
비탄에 빠지려는 순간, 키리가 움직였다.
나무에 꽃힌 화살을 회수한다.
그리고 다시 쏜다.
그렇게 세 번 반복하고, 키리는 훈련을 마쳤다.
요코「저 실력이라면 상당히 가까운 거리에서 노려지지 않는 한, 괜찮을 거야」
타이치「그런 상황이 되길 바라진 않는데……」
갑자기 사당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다.
타이치「맞다, 요코, 사당 알고 있어?」
요코「……알고 있어」
타이치「이 세계가……」
요코「정보부족」
중간에 말이 끊어진다.
요코「경솔한 생각은 금물」
타이치「그래도」
요코「만약 세계가 반복되고 있다 한다면, 지금 그것에 논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타이치「…………」
입을 다문다.
그녀가 그렇게 말한다면, 그런 거겠지.
하세쿠라 요코는 언제나 정확하니까.
키리가 떠났다.
이제 추적할 필요는 없다.
풀밭으로 나가, 표적이었던 나무를 조사한다.
타이치「…………」
요코「……타이치」
타이치「됐어」
타이치「됐어……」

타이치「……응?」
집에 돌아오자, 발 밑에 골판지 상자가 놓여져 있었다.
내용물은……식료품이었다.
타이치「토모키군」
진짜로 한사람 한사람에게 일일히 배송하고 있었나.
성실한 녀석.
타이치「……아주 도라에○이네」
그만큼 진지하단 거겠지.
진지한 도피.
토모키답다 할 수 있었다.
사과를 입에 물었다. 물컹했다.

토오코의 모습은 없었다.
오늘도.
학교에 올 이유도 없다. 당연한 건가.
조금 아쉽다.
잠시 내 자리에 앉아본다.
잠시, 추억에 잠겨 본다.

신카와「실은 말야, 난 기억 상실증이야」
갑작스럽게, 녀석은 말했다.
타이치「주인공 같군」
신카와「?」
타이치「아무것도 아냐. 잊어 줘」
신카와는 말했다.
소년기의 기억이 없다는 것.
신경공포증이란 것.
숲의 어둠에 병적인 공포를 느끼는 것.
무슨 일이 있었다고 한다. 예전에.
하지만 내용은 모른다고 한다.
키리의 부모님도 가르쳐주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신카와 유타카에겐 가족이 없었다.
모든 것은 암흑 속.
그리고 결국, 키리와 함께 군죠행.
타이치「……아구아구」
난 피자를 먹으면서 들었다.
배달시킨 피자였다.
당시, 난 돈이 겁나게 썩어서 점심식사는 배달로 때우고 있었다.
기본적으로는 마음의 치료라는 명목도 있기 때문인지, 군죠에 교칙은 거의 있으나마나.
피자 배달을 말리면, 정서가 불안정해질 수도 있기 때문에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치료라는 명목으로 사람을 격리시키고 있는 이 학교는, 자의식만 유지할 수 있으면 무법천지였다.
……외딴 섬의 감옥처럼.
타이치「으―음, 그랬구나. 기억 상실증. 으―음」
나는 고찰했다. 그리고.
타이치「OK!」
신카와「그래……뭐 그럴 줄 알았지만……」
타이치「난 기억상실증이 걸린 신카와를 긍정하겠어. 하지만 기억상실증이 아닌 신카와는 사절하겠어」
신카와「…………」
그런 거시기한 분위기에, 키리가 나타났다.
키리「또 둘이 붙어 있네」
타이치「키리찡이다」
키리「……키리찡이라고 부르지 말아주세요」
타이치「그치만 키리찡이잖아」
키리「키리입니다」
타이치「그럼 키리」
키리「허물없이 부르지 말아주세요!」
타이치「그럼 어쩌란 말야」
타이치「그치 유타카?」
신카와「……………………」
자고 있었다.
타이치「바로 자네, 이 녀석」
키리「……옛날부터 그랬어요」
키리「후유증 비슷한 것 같은데……」
타이치「아아, 그 기억상실」
키리「……유타카한테 들으셨나요?」
타이치「좀 전에」
키리「그렇군요……신뢰받고 계시네요」
타이치「응?」
키리「이전 학교에서 친구라곤 없었으니까요. 오빠도 저도」
자주 있는 일이었다.
특히 적응시험의 결과가 나온 직후에.
키리「친구였던 사람들에게도 배신당하고……아무도 믿을 수가 없어지고……」
키리「아무도 상처입히지 않았는데, 모두에게서 상처받고」
타이치「그리고 발작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지」
키리「공격당하면, 방어하는 게 당연한 거잖아요」
타이치「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어」
타이치「하지만 몸을 지키던 맹수가 총을 맞는 게 세상사야」
키리「……우리는 인간이잖아요」
낮게, 키리는 내뱉었다.
분노.
현실을 살아가기엔, 키리는 너무나도 올곧았다.
타이치「세상엔 말야……정말로 인간이 아닌 사람들도 있어」
타이치「가끔씩 주변 사람들 따위는,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고 생각한 적 없어?」
키리「…………」
타이치「난 가끔 그래. 가끔씩. 하지만……항상 그렇게 생각하게 되면 끝이야」
타이치「열심히 살아야 해. 녀석들에게 꼬리를 흔들며, 그 보통 사람들이라는 녀석들에게 아첨하면서라도……살아야 해」
키리「그래서 이상한 행동을?」
타이치「글쎄……특별히 그렇게 생각한 적은 없는데」
타이치「……너도 그렇잖아?」
키리「에……저도, 말인가요?」
타이치「지금 살아있잖아」
키리「전……」
키리「전」
고개를 숙인다. 몸을 웅크린다.
키리「세상이 무서워서, 견딜 수가 없어요」
타이치「어떤 면이?」
키리「……악의가」
키리「모두의 악의가……」
키리「아무도……다정하지 않아……」
떤다.
그래.
그녀 역시, 원해서 여기에 온 건 아니다.
여기에 올 수밖에 없었다.
나라가 그렇게 정했다.
거스르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키리「……인간들은 사라질 땐 깨끗하게 사라질 거라고 생각해요……왜냐면, 세상에는 거의 아무것도 없으니까……」
키리「『아무것도 없는』사람이 더 많아요. 『무언가 있는』사람은 거의 없어요!」
키리「언제 사라져버려도 이상하지 않다고……생각해요」
타이치「그……SF처럼, 인류멸망이라던가?」
키리「그런 거하곤 달라요……그렇게 이유가 뚜렷한 거하고는 다르고……」
키리「꿈에서 깨어난 것처럼」
키리「서로 싸우기만 해서, 무섭기만 한데……」
키리「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것이 사라지고……작은 세상에서……만약 저 혼자만 남겨진다 하면……」
키리「저……전……」
타이치「사쿠라 키리」
이름을 부른다.
가라앉았던 표정의 색이 변한다.
키리「아……죄송합니다……」
타이치「악의도 무섭고, 혼자도 무섭다……라」
키리「……?」
타이치「앉아, 피자라도 먹어」
타이치「마음껏 먹어, 한 놈은 자니까」
신카와「…………」
키리「……네」
천천히 앉는다. 피자에는 손을 대지 않는다.
흔들려 있던 감정의 귀환.
조금 멍해 보였다.
타이치「결국엔 유배지에 보내왔다는 거네」
키리「……유배지인가요, 여기?」
타이치「응」
타이치「하지만 악의는 없어. 따돌림도. 자 봐」
주위를 가리킨다.
점심.
자력으로 식사를 할 수 있는 녀석들이, 묵묵히 식사를 하고 있다.
모임 없이, 모두 혼자서 먹고 있다.
대화도 없다.
나와 유타카만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타이치「다들 평온하게 지내고 있어」
타이치「어느 의미론, 혼자서 살아갈 힘을 가진 녀석들이지」
타이치「사람과 이어질 필요도 없고, 혼자서 완성되어 있어」
타이치「완성된 인류야」
키리「그런 건……이상해요」
타이치「미숙한 사람들끼리 이어지면, 균열이 일어나」
타이치「게다가 그런 건, 보통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거지」
타이치「그러니까, 사람이 완벽해지려면 혼자서 모든 것을 채워야 해」
키리「……」
타이치「안 먹어?」
키리「아……사람이 먹던 거는 못 먹어요……」
타이치「결벽증이구나」
키리「……남자는, 특히……」
타이치「남성공포증이라도 있어?」
키리「아, 이건 별로……그저 왠지 모르게……남자는……불결해서요」
타이치「그건 좀 너무한데」
사춘기의 여자아이가 가지기 쉬운, 단순한 이성의식인가.
불시에 적의가 되기 쉽고, 평소에는 소극적인 성격을 가지고 오는.
키리「…………」(머뭇머뭇)
……지금처럼.
그렇다는 건, 반대로 말하면 야한 일에는 흥미 만빵이라는 뜻이지.
와―아.
타이치「아니, 좋아하면 어쩌자고……」
유타카의 미래의 아내를 빼앗을 순 없지.
키리「저기, 방금 전의 이야기 말인데요……」
키리「악의는 없을지도 모르지만……이 학교는……어쩐지『아무것도 없는』부분이 많은 것 같아요……말을 걸어도,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고」
타이치「그건 특별히 무시하는 게 아냐. 법칙이 다른 거지」
키리「……법칙?」
의문형으로 질문하는 모습이, 또래 애들답게 어려보인다.
이것이 진정한 키리라는 것을 눈치챘다.
이 낯가림이 심하고, 말수가 적은 소녀의.
타이치「채널이 다르다고 할까……교차되지 않는다고 할까……」
설명하기가 힘들다.
타이치「키리찡도 나도, 기본적인 정신상태는 정상이잖아. 그러니까 정상이 아닌 상태의 녀석들과는 규칙이 다른 거야」
타이치「상대의 법칙에 의해 접촉하면, 대화는 성립해」
키리「……어떻게……그런 법칙을……?」
타이치「관찰력만 있으면 돼. 그래……예를 들면」
근처에 앉아 있는 어두워 보이는 안경 낀 여자를 보았다.
실은 그녀와 나는, 교역을 하고 있다.
손뼉을 친다.
시선이 내 쪽으로 향했다.
한 조각의 피자를 내밀었다.
소녀「…………」
흥미를 나타냈다.
잡으려 한다.
조금 멀어서 잡으려는 것을 그만둔다.
반경 30센티의 거리. 이것이 그녀의 성역이다.
소녀「……………………」
고민한 후, 소녀는 도시락통을 건넸다. 나에게.
타이치「OK―」
계란부침을 하나 받았다.
그리고, 대신에 피자를 건넸다.
소녀「……」
우물우물 먹기 시작한다.
타이치「뭐 대충 이런 거야」
키리「……방금 그건?」
타이치「물물교환이 기본이야. 저 애는」
타이치「그 외에는 자신의 세계만 있으면 되지. 그래서 반경 30센티 이외의 사건에는 관심이 별로 없어」
타이치「사방 증후군 증세도 있어. 단순 계산을 굉장히 잘 해. 수백년 후 달력의 날짜와 요일을 물으면 바로 대답해」
타이치「숫자의 바다에 빠져 있는 건 아닐까?」
키리「……그 사람은, 그걸로 행복한가요?」
타이치「당연하지」
타이치「행복의 형태가, 다른 사람과 다를 뿐이야」
키리「……그런 건 싫어요」
키리「악의는 없을지도 모르지만, 전 그런 건 싫어요」
키리「사람들이……모여 있는데……다들 외딴 섬에 갇힌 것처럼……닫혀 있는 건……」
키리「싫어요……」
타이치「…………」
마치 키리는,
저에게 신경써 주세요―――
그렇게 외치는 것처럼 보였다.
타이치「그게 너의 상처구나」
키리「……네?」
신카와가 신음한다.
타이치「오, 오빠가 일어날 것 같네」
타이치「유타카를 좋아해?」
키리「그건……앗, 무, 무슨 말 하시는 거예요」
빨개졌다.
키리「앗, 그러니까, 아니에요」
타이치「알기 쉬워」
키리「아니라니깐요」
타이치「좋겠네 유타카」
키리「……네에?」
유타카가 말없이 일어났다.
눈을 비빈다.
신카와「……이런, 또 자버렸네, 나…………어라, 내 피자는?」
타이치「먹어치웠지」
신카와「뭐, 라고……?」
망연자실.
타이치「그치만 일어날 줄은 몰랐거덩」
유타카는 낮게 신음했다.
하지만, 그 이상 불평하지는 않았다.
신카와「……」
대신에 다른 것에 흥미를 가진 것 같다.
나를 본다.
얼굴을 붉히고 있는 키리를 본다.
팔짱을 끼고 생각한다.
유타카는 다시 키리를 본다.
신카와「OK, 사정은 알았다……그래, 혼담은 정해졌나?」
타이치「내일 결혼식」
키리「안 해요!!」
그런 일이 있었다.

타이치「으……」
눈을 뜬다.
책상에 엎드려서 잔 것 같다.
꿈을 꾸었다.
그리워야 할 꿈.
하지만 기분은 우울해진다.
결국 사람은,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고 있다.
타인과 접함으로 인해 생기는, 여러 욕망 속에서.
흐른 땀을 식히러, 옥상으로 항한다.
안테나가 설치된 곳.
미미 선배는 없다.
다친 것 때문일까.
그녀의 부활동은, 중단되어버렸다.
안테나 밑에는, 기재와 공구 등이 놓여져 있다.
노트가 있다.
본다.
타이치「……………………」
역시.
여러모로 고생하면서 해온 것이다.
SOS라.
안테나를 세워 SOS. 이걸로 끝.
미미 선배다운, 멋진 계획이었다.
미미 선배 혼자라면……못 끝낼 작업량으로 보인다.
도면에 붉은 선이 그어져 있다.
『못 올라가겠어~ (눈물)』
하핫. 역시.
어쩔 수 없지.
사다리를 세워, 그 위로 올라간다.
타이치「여기를……이렇게?」
마무리를 했다.
타이치「좋았어」
타이치「그리고, 다음은……」
도면으로 시선을 떨군다.
『모르는 부분 (눈물)』
『보류예요 (눈물)』
『여기 실수 (눈물)』
『??? (눈물)』
『틀렸을지도……나중에 확인 (눈물)』
『와이어 끊어짐, 대용품을 찾아야……(눈물)』
『(눈물)』
『(눈물)』
『(눈물)』
울기만 하면 어쩌시게요.
타이치「……미미 선배……」
안테나를 본다.
방송국……이라.
SOS의 효과는 둘째치고.
모두 함께 방송을 한다는 것이, 묘하게 가슴을 저리게 했다.
너무나 건전하기 때문에.
건전함과는 정반대에 위치해 있는 우리들의 대치선에 접하려는 것이다.
이렇게.
나는『부활동』을 시작했다.

아무도 없다.
혼자서 도시락을 먹기로 했다.
타이치「후우」
여전히 2인분 도시락이었다.
할 일도 없어서, 다시 옥상으로.
키리가 있었다.
펜스 너머로 바깥을 바라보고 있었다.
데쟈뷰 현상이, 내 의식을 과거로 데리고 갔다.

여름도 끝나려 하고 있었다.
매미들도 한층 더 시끄러워졌다.
귀를 때리는 듯한 울음소리.
마지막 생명을 쥐어짜고 있는 것이다.
생명의 잔재로 물드는 여름.
키리는 옥상에 있었다.
혼자서.
울고 있었다.
뒤를 보고 있지만, 어깨의 떨림을 보면 알 수 있다.
타이치「키리……」
키리「……쿠로스……선배?」
눈물을 숨기려 하지 않는다.
키리「유타카……유타카가……여기서 떨어져서……」
타이치「응……」
알고 있었다.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이 동네에서는.
일반적인 세상에서는 학생 한 명이 투신자살을 하면, 나름대로 화제가 된다.
보호자는 학교를 추궁하고, 누가 나쁜지를 밝히려 한다.
학교는 책임을 회피하려 한다.
군죠에서는 그것이 없다.
세상의 그 누구도 추궁하지 않고, 학교도 도망치지 않는다.
몇 명이 책임을 졌다.
세상에서는 군죠의 위험한 소년 소녀들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슬퍼하는 사람은 극소수.
키리「아무도……아무도……슬퍼하지 않아……우리들이 어떻게……살아왔는데……아무도」
보기 드물게, 흥분해 있었다.
유타카의 죽음으로부터, 벌써 일주일이 지나 있었다.
키리의 비탄은 늦게 온 것이었다.
타이치「있잖아 키리……유타카는, 행복했을까?」
키리「……?」
타이치「그 녀석은 그 녀석 나름대로, 행복했을까?」
흔한 질문.
하지만.
의미는 완전히 반대였다.
키리「……쭉, 괴로워해 왔어요」
타이치「정말로 쭉 괴로워했어?」
타이치「한순간이라도, 행복해한 적은 없었어?」
키리「그건……」
틀림없이 있었을 것이다.
키리「……선배와 친구가 되고 나서는……웃게 됐어요……」
키리「하지만 부족해요」
어조가 강해진다.
키리「우리가 받은 괴로움은, 전혀 되돌려받지 못했어요」
타이치「그럼 키리찡은, 유타카의 인생이 하찮은 것이었다고 생각하는 거야?」
키리「그런 건……아닌데요……」
타이치「……뭐 이렇게 말해도, 슬픈 건 어쩔 수가 없겠지」
나도 헤매고 있었다.
키리를 향한 대응에.
타이치「마음껏 울어」
하늘을 바라본다.
시야를 가리는 순백이, 거대한 뭉게구름이라는 것을 이해하기까지.
타이치「적어도 여름이 끝나기 전까지는」
매미들의 최후와 함께.
그 말은, 키리에게는 만감이 담긴 복잡한 의미로 들렸을 것이다.
키리「……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고개를 숙이고, 내 셔츠자락을 잡고, 소리를 질렀다.
키리「유타카 오빠가……죽었어……죽어버렸어……」
오열.
타이치「…………」
유타카 오빠.
가장 좋아하는 오빠였을 것이다.
한쪽 다리로도 열심히 살아가는.
키리의 부모―――
유타카의 장례식에서 본 두 사람의 표정에는, 가벼운 안도감이 있었다.
키리는 그것을 눈치챘을까?
아마, 눈치채고 있을 것이다.
여러가지 괴로운 일을 당해도, 이제까지 서로를 의지하며 버텨왔을 것이다.
말하자면 반신.
키리는 반쪽인 것이다.
나처럼…….
단지 키리는, 원해서 그렇게 됐다.
지금은 강한 감정에 의해 기력을 박탈당하고 있다.
하지만, 머지않아 슬픔이 약해지면 다시금 또다른 반쪽을 찾아다니겠지.
유타카와 키리.
일심동체였던 두 사람.
키리에게 죄는 없다.
하지만 난……나의 괴물은, 꿈틀대고 있었다.
타이치「키리……」
그 등에 손을 감는다.
격정이 감각을 마비시켜, 키리는 눈치채지 못했다.
키리「으으으……으아아아앙……」
조금씩 정서는 가라앉아 간다.
그 무렵엔, 난 키리를 완전히 껴안고 있었다.
타이치「키리……외로워?」
키리「……?」
타이치「외롭, 겠지」
키리「……쿠로스 선배?」
타이치「난 허무해. 굉장히 말야」
내려다 보자 그곳에는 작은 얼굴.
깊이 있는 흑요석 두 개의 표면을 옅은 소금물이 적시고 있다.
타이치「유타카는 행복했을 거야. 키리도 있었고, 싫은 기억은 잊어버렸으니까」
타이치「마지막까지 행복했을 거라고, 난 생각해」
얼굴을 갖다댄다.
키리「…………에」
조금 당황해한다.
얼굴을 교차하듯이 겹치고.
입술을, 훔쳤다.
키리「…………!?」
온몸으로 거칠게 날뛴다.
강하게 끌어안았다.
키리「……으응」
키리의 숨이 멈췄다.
펜스에 밀어붙여, 입술을 계속 탐한다.
키리「……흐앙……싫어……안돼……」
놀란 감정이 키리의 사고력을 뺏고 있었다.
제대로 된 저항조차 없다.
타이치「외로워?」
키리「……에?」
타이치「외롭지?」
키리「……몰……라요……」
키스한다.
두 번째.
이번엔 잇몸 안쪽으로 진입한다.
동시에 손을 치마 속으로.
키리「응……으, 으으으응!?」
갑자기 저항이 강해진다.
키리는 나를 밀쳐냈다.
키리「그, 그만하세요!!」
타이치「…………」
난 엷은 미소를 짓고 있었을 것이다. 분명.
키리「당신은……」
충격이 서서히 혐오로 변해가는 과정을, 나는 보고 있었다.
키리「으읏!!」
달려간다.
내 옆을 지나서.
삐걱이는 문. 닫히는 문.
타이치「……하하」
얼굴을 손으로 가린다.
역시 이건 안 좋네.
입가가 추악할 정도로 일그러지고 있었다.
키리와는 소원해졌다.
부활동에도 거의 얼굴을 내밀지 않게 되었다.
미키가 억지로 데려온 적은 있지만, 나를 피했다.
대화도 없어지고, 관계는 절단되었다.
그런 일이, 있던 것이다―――

타이치「…………」
그리고 지금.
키리의 말대로, 세상은 깨끗이 싹쓸이되었다.
인간 따윈 간단히『사라진다』라는 것을, 나도 알게 되었다.
아담과 이브까진 아니라도, 적어도 좀 더 완벽한 인간들이 살아남았으면 좋았을 텐데.
이 두 사람은 원래 영원히 살아갈 수 있는 완전함을 갖추고 있었지만,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인해 죄를 지어, 불완전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그래도 천 년을 살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성서를 읽다 보면, 그 자손들은 세대를 거듭할 때마다 수명이 줄어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현대.
우리들은, 건전함조차 잃어버리고 있다.
이런 상처투성이의 인간들을 만들어 놓고, 하느님은 도대체 뭘 어쩔 작정이지.
이런……새카만 감정을 품고 있는 나를.
어차피 세계는 돌고 있다.
되풀이할 수 있다는 것.
극단론①.
전부 죽여도, 전부 리셋.
덤으로 기억도 소멸.
발전성 없는 세계에 있는 것은, 가능성이란 쾌락뿐.
나는 그 열락을 즐기기로 했다.
철망을 뚫고 나오는 욕망.
게임의 시작을 알린다.
타이치「키리찡, 거기는 신카와 유타카가 죽었던 자리야」
키리는 놀라지 않았다.
천천히 뒤를 돌아본다.
타이치「?」
키리가 놀라지 않아서, 반대로 내가 조금 놀란다.
키리「……세계가 이렇게 되고……사람들도 사라지고……」
키리「악의는 사라진 대신에……밀도도 사라지고……」
키리「그래도, 당신은 변함이 없네요」
타이치「…………」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말투가 상당히 호전적이었던 것이다.
키리「……전부터 말하려고 했던 겁니다만」
키리「선배는 어째서, 살아있는 거죠?」
심장에 쐐기가 박혔다.
『저기, 하나 질문이 있는데……왜 지금 당장이라도 안 죽는 거야?』
겹쳐진다.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며.
마치, 옛날에 던진 나이프가 지금 갑자기 되돌아오는 듯한.
아이러니컬한 구도.
키리「자신한테 살아갈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타이치「…………」
키리「당신은, 어두워요」
정확한 비유라고 생각한다.
키리「사람이 아냐. 사람을 닮은 것이 지나지 않아. 사람으로 변해 있어요. 벌레처럼」
키리「변태하고, 사람으로 변해, 사람을 덮치고」
키리「당신은 사람을 상처입히는 존재입니다. 결코 존재해서는 안돼요」
키리「어째서 당신의 적응계수가 80을 넘은 건지, 예전엔 궁금했어요. 하지만 그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당신 안의 사람의 부분은, 문제 그대로 2할밖에 없어요」
쉴새없이 말한다.
지금까지 쌓아올린 사쿠라 키리라는 이미지를 뒤짚는, 선명하고 강한 이미지가 구축되어간다.
언어의 나이프가, 내 정신을 찌르려 하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둔한 칼날밖에 없었던 것이―――
사쿠라 키리의 비장의 무기가 되어!
키리「괴물이에요」
키리「당신의 웃기는 점은, 괴물 주제에 괴물이란 것을 인정하지 않는 점이에요」
키리「사람과 괴물과의 사이에 공감이 싹트고, 사이좋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요? 당신이 평범한 행복을 손에 넣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요?」
키리「말도 안 돼요」
키리「세상에 존재하는 약간의 다정함은, 결코 당신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니, 당신이 가져서는 안 돼요」
키리「사람의 몸을 먹어치우는 기생충을 사랑하는 사람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만약 있다고 해도 그것은 미친 사람이죠」
키리「당신은 항상 자신을 위해서 희생할 사냥감을 찾고 있어요. 전 알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그것을 참고 있었죠. 하지만 세계가 이렇게 되고, 사람의 수가 적어지자, 당신은 참을 수가 없어지고 있습니다」
키리「의태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죠」
키리「사람을 상처입히고 즐기기 위해, 당신의 눈은 언제나 우리들을 향하고 있어요. 그것도 한번에가 아니라, 천천히 공을 들여 즐기려 하고 있어요」
키리「사람도 아니고, 짐승도 아니다」
키리「그럼 뭐죠? 그 무엇도 아닌 당신이야말로, 세상에서 사라져야 했어요.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키리「악의로 가득 차 있던 인류도, 당신 한 명의 생명보다는 훨씬 가치있었어요. 저에게도 물론, 그렇습니다」
키리「두 가지 충고합니다」
키리「우선 당신이 다른 사람과의 접촉으로 인해 진정한 인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착각이에요. 불가능합니다. 인간을 모독하는 사고입니다. 선배만큼 완벽한 괴물은 본 적이 없으니까요」
키리「당신은 가장 완벽한 정신이상자. 광인 중에 광인」
키리「……미친 사람들의 정점이에요」
키리「그리고 또 하나. 우리들에게 손을 대려는 생각은 하지 말하주세요」
키리「만일 선배가 사냥감을 찾아 우리들에게 다가온다면……」
마지막 한 마디를, 키리는 내뱉었다.
키리「사살하겠습니다」
타이치「……………………」
키리「……미키는 절대로, 당신에겐 건네지 않겠어」
키리「뺏기지 않겠어!」
또각또각 신발소리를 내며, 내 옆을 지나간다.
삐걱이는 문. 닫히는 문.
나는 혼자가 되었다.
타이치「…………괴물……」
괴물.
괴물.
괴물.
그 말을 되씹어 본다.
쓴 맛.
이것은 뇌의 맛이다.
뇌가 어떤 종류의 신경전달물질을 분비해, 그 맛이 미각을 관장하는 신경을 조절해 착각을 일으킨다.
괴물.
나를 적절히 표현하는 말이라 생각한다.
타이치「아야얏」
이거, 아픈데.
메마른 마음이 쑤신다.
무수하게 새겨진 칼자국이, 고통을 느끼게 한다.
타이치「제길……욱씬거리네……」
무릎을 꿇는다.
눈 앞이 어두워졌다.
타이치「아―아야……아야야. 아픈데」
모두, 치명상은 아니다.
키리의 나이프는, 내 마음을 효과적으로 찌르지는 않았다.
겉에 미세한 상처를 냈을 뿐.
아픔은 있지만.
장난에 가까웠다.
이전 내가 받은『공격』은, 이런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오랜만에 공격을 받은 듯한 느낌이 든다.
적당한 공격은, 적당한 긴장감을 부른다.
지금은 만취에 가까운 상태.
자리에 그대로 눕는다.
타이치「……사살할거면……그렇게 해 줘……」
타이치「차라리 편하게 해 줘~♪」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의식 부상.
육체 감각의 잠망경을 연다.
뱃속의 상태를 보니, 세 시간 정도 지났나.
자고 있던 건.
그만 온 몸이 얼어버렸던 것 같다.
……여름이라 다행이지.
눈을 떴다.
타이치「…………미키?」
미키「네」
생긋.
미키「미키예요」
타이치「나……」
미키「아, 그냥 누워계세요」
타이치「……무릎베개 해도 괜찮아?」
미키「야한 짓만 하시지 않는다면」
타이치「만약 하면?」
미키「성희롱의 강도에 따라 달라지는데요」
미키「치마에 들어오거나 하면, 사살이에요」
타이치「……안 하겠습니다」
미키「그럼 자, 무릎을 즐겨주세요~」
타이치「음」
적당히 따뜻하고, 부드럽다.
좋은 향기가 났다.
교복의 감촉과, 그 밑에 있는 풍만한 허벅지의 탄력.
극락.
타이치「또 잘 것 같아」
미키「주무셔도 돼요」
타이치「그럼 즐길 수가 없잖아」
미키「후후훗」
미키「……깜짝 놀랐어요. 쓰러져 계시길래」
타이치「잤어」
미키「또 그런 어처구니없는 짓을……」
미키「그래도, 이런 선배가 제일 좋네요」
타이치「……그래?」
미키「재밌고 웃기고, 매일매일 떠들썩해서」
타이치「…………」
미키「조금 쓸쓸하기도 해요」
타이치「나도」
타이치「아무리 그렇다 해도 갑자기 60억에서 8은 좀 아니잖아」
미키「종의 존속에 영향을 주겠네요」
타이치「아니, 그건 아냐」
미키「왜요, 왜요?」
타이치「하하하, 알고 있는 주제에」
엉덩이로 손을 뻗는다.
미키「꾸욱」
찔렸다.
타이치「아, 아얏! 뭐야?」
미키「나이프예요」
컴뱃 나이프였다.
타이치「위험하잖아―! 왜 이런 걸 가지고 있나요!」
미키「키리찡이 가지라고 해서요」
미키「아, 지금 찌른 건 나이프가 아니라 새끼손가락 손톱이에요. 페이크 페이크~」
미키「피는 안 나니까 안심하세요」
타이치「아, 응……」
안도했다.
피는 되도록 보고 싶지 않다.
스위치가 눌리기 쉬워서 위험하다.
타이치「키리찡, 전수방위 태세에 군비를 너무 확장한 거 아닐까?」
미키「미키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타이치「FLOWER'S는 평화의 상징이랍니다」
그 사이에 내 자세는 변해 있었다.
미키의 하복부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접촉하는 옷의 숫자가 늘어나는, 큐티 델타 존.
미키「앗, 앗!」
타이치「이 정도는 그레이 존이지?」
미키「자꾸 그러시면―, 저도 나름대로의 대외정책을 실시할 거예요」
타이치「난 아름다운 삼각형에 매혹된 애귀족에 지나지 않다네」
미키「궤변으로 넘기겠단 거냐. 그렇다면」
봉을 꺼냈다.
미키「귀쑤시개」
그거 좋은데.
홈런급 시츄에이션.
타이치「부탁이야. 아니, 싫어도 해 줘!」
미키「……괜찮아요?」
타이치「내 귀 버진을 빼앗아 줘」
미키「……불쾌한 이미지가」
타이치「두근두근거려요」
미키「뭐, 그렇게 원하신다면」
타이치「부드럽게 해 줘……」
미키「노력할게요」
미키「결과는 보증하지 못하지만요」
……어.
귀에 면봉이 들어왔다.
빙글
타이치「!!!!」
미키「갑자기 큰 거 발견」
푸슉, 콰직, 빙글
타이치「오―노―――!?」
타이치「Pain! Pain!」
하지만 미키는 멈추지 않았다.
미키「후후후후후후, 재밌다~, 오래간만~」
귀쑤시기에 굶주린 자!
미키「에―잇에잇에잇」
우지끈, 쿠직, 휙휙, 지끈지끈지끈지끈―――
타이치「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아픈 정도가 아니다.
이것은 귀 고문, 이유없이 생략하자면 귀고.
휘익, 욱씬, 콰직
타이치「귀가―!!」
요키나와 요리풍 비명을 지르고, 나는 몸을 비틀었다.
미키「아, 움직이면 위험해요」
미키는 정좌를 풀었다.
순간 팬티가 보였다.
행복감에 차는 것도 잠시.
타이치「헤?」
목에 다리가 감긴다.
허벅지가 얼굴을 눌렀다.
타이치「무슨 짓을!?」
이 체위는…….
나는 우주를 느끼고 있었다.
소녀의 허벅지에 싸여.
미키「좋았어. 이히히」
귀에 고문기구(귀이개)가 쑤셔박혔다.
꾸우욱
타이치「꺄우웃!?」
하지만 머리는 고정되어 있었다.
기분은 좋지만 도망칠 수 없다. 도망치고 싶지 않지만 도망치고 싶다.
천국과 지옥.
동시에!!
타이치「후야유우오히에요외헤아우위호야히에와와!?」
고통과 쾌락이.
교대로 내려와, 나를 희롱한다.
미키「아, 보스 몬스터 발견!」
미키「이제부터 공격을 실시하겠습니다」
미키「가자―, 가자―, 스크럼블이다―, 귀쑤시개다~♪」
노래를 부른다.
타이치「#&%&%??」
타이치「고―――야―――!!!!」
오키나와 요리풍 비명이 다시 입에서 흘러나왔다.
미키「큭, 제법인데……좋―아, 반대쪽으로」
타이치「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그 순간, 고통이 쾌락을 넘었다.
타이치「그, 그건 귀지가 아니라 혹시 뇌 아닐까요――――――!?」
그럴 리는 없다.
하지만, 이렇게 단단히 붙어 있으니, 중요한 기관임엔 틀림없다.
오오 미키여, 부디 그 아이를 뽑지 말아 주렴.
타이치「자, 잠깐만! 그건 분명히 인체에 필요한 기관이야! 인간의 신체는 무의미하게 여겨지는 거에도 의미가 있는 거라고! 예를 들면 네가 가지고 있는 큐트한 콩에는 아주 중요한 성적인 의미가―――」
미키「드릴 공격~, 스파이럴~♪」
타이치「이어―――!!」
귀를 의미하는 비명을 (생략).
내 이뇌가!!
뿌지직 소리를 내며 뽑히려 하고 있어!!
타이치「백질 절제 반대!!」
그리고.

타이치「!!!!」
난 오르가슴에 달한 열녀처럼, 움찔하고 경련했다.
머리가 고정되어 있어서, 사지가 지렁이처럼 물결쳤다.
미키「얏호, 빼냈다……우와―, 크다―, 대단해―, 이겼다―」
죽는 건가…….
하지만 이걸로 해방되었다.
타이치「무, 무릎베개와 허벅지도 만끽했으니, 이, 이만 일어나야지」
하지만 미키는 말했다.
미키「자. 그럼 반대쪽 귀도 제압해 볼까요」
타이치「……………………네?」
미키「자―아, 자아, 이쪽 에어리어엔 어떤 강적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허벅지가 뒤틀린다.
행복!
행복한 틈을 타, 뒤집어졌다.
이쑤시개가 쑤셔박혔다.
타이치「꺄아――――――!?」
나름대로의 대외정책……무서워!
그리고.
타이치「……후아아아아……」
처녀 관통 기절 쌍구멍 고문에서 해방된 것은, 10분 후였다.
인생에서 가장 긴 10분이었다.
미키「만족 만족♪」
미키「볼래요? 결과?」
타이치「됐슴다……」
타이치「오오, 잘 들린다」
미키「엄청 막혀 있었어요」
타이치「다른 세계에 온 것 같아」
미키「제 귀쑤시개로 기뻐해 준 건, 선배가 처음이에요」
그렇겠지…….
아니, 결코 기쁘진 않은데.
타이치「오히려 내 강력한 번뇌력 덕분에 참을 수 있었다고나 할까」
미키「호에?」
타이치「호에호에호에」
웃었다.
타이치「근데 넌 키리찡 찾고 있던 거 아냐?」
미키「아아, 어디 있는지 아세요? 왠지 안 보여서요」
타이치「세 시간 전까지 여기 있었는데」
미키「왜인지 오늘은 좀처럼 만날 수가 없어서요」
타이치「흐―음」
정서가 불안정하기 때문일까.
타이치「혼자 있고 싶었던 걸지도」
그러고 보니 유타카가 죽은 날이구나. 오늘은.
아아, 맞다……그래서.
타이치「……뭐, 오늘은 그냥 놔 두지 그래?」
미키「네에」
미키「……무슨 말 들으신 거 있나요?」
미키「아니 키릿찌한테 뭔가 야한 짓 하셨죠?」
타이치「안 했어유」
사투리로 부정한다.
미키「진짜예요?」
하려고 했던 건 확실하지만.
타이치「난 신사라네」
미키「하려고 했지만, 심한 말을 듣고 포기했다?」
타이치「…………」
미키「역시」
제자에게 간파당하는 스승.
타이치「뭐……내가 크레이지라는 걸, 여러가지 표현으로 설명해 줬어」
미키「그건……」
타이치「뭐 사실이니까」
미키「…………」
사실, 조금 풀이 죽어 있었다.
미키「선배는……다정한 모드일 때는 좋아요」
타이치「병 주고 약 줄 작정이군. 백전노장인 나다, 쉽게는 속지 않아!」
미키「겁나게 헤롱대시고 있는데요」
아아, 난 참 정직해!
타이치「그럼 나하고 결혼할까!!」
미키「왜 화내면서 구혼하는 걸까……」
미키「음―, 뭐, 좋아요」
타이치「어, 진짜?」
미키「키리찡이 좋다고 한다면」
타이치「임파서블―!」
타이치「그래도 일단, 이 자리에서 문서로 확인해 줄래?」
미키「……그런 게 안되는 거라니깐요」

집에 가는 길.
나나카「헤―이」
옆에 나나카가 있었다.
홀연히 나타난 듯한…….
타이치「아, 나나카……」
나나카「잘 지냈어―?」
타이치「그런 건 됐고, 그 사당 말야―――」
안겼다.
타이치「으그?」
나나카「즐겁다고 말할 수 있다면, 뭐 상관없잖아」
타이치「아니, 말 안했는데」
그리고 대화에 맥락이 없는데요.
뭐지 이 깜짝 감동 이벤트는…….
하지만, 그건 그렇다 치고.
작은 가슴의 부드러움.
소녀의 향기.
이상하게도, 야한 생각은 들지 않았다.
요코에게 안겼을 때의 감각과는 달랐다.
나나카「그 말을 들으니 기뻐. 정말로」
타이치「아무 말도 안 했는데……」
나나카「꼭 강해야만 살아갈 자격이 있는 건 아니잖아」
타이치「안 듣고 있슈?」
나나카「약한 채로도, 괜찮아」
타이치「사람 말을 들어!」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타이치「가슴 감촉은 아주 좋았어」
나나카「……너무 정직하네」
타이치「하지만 영문을 모르겠는데」
나나카「미안, 착각했어」
타이치「뭐하고?」
나나카는 고개를 흔들었다.
나나카「다른 거하고」
타이치「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
나나카「안테나 건설에 착수한 거 같던데, 진행은 어때?」
타이치「저기 말야」
나나카「우이?」
타이치「좀 알게 말해. 우선……우선 말야」
나나카「우선?」
타이치「그래, 여러가지 물을 게 있는데」
나나카「그럼 한 가지 질문만 답변해 줄게. 어떤 거라도 대답해 줄 수 있어」
타이치「패, 팬티 색깔은?」
나나카「오늘은 흰색. 하지만 조금 귀여운 거. 브라하고 같은 세트야」
타이치「순백이닷」
소녀의 속옷을 무심코 떠올린다.
나나카「그럼 질문은 이걸로 마치겠습니다」
타이치「으악―, 이런―, 세계의 수수께끼가―!」
반사적으로 질문해버렸다!
타이치「난 바보야!」
나나카「그리고 야하지」
타이치「……취소 안돼?」
나나카「안돼―」
팔로 X표를 그리는 나나카.
나나카「다음 기회에」
타이치「다음이라니, 난 이제 이 대화를 잊어버린단 말야」
나나카「호오. 눈치채셨군요」
타이치「눈치챘지. 하지만 눈치챘을 뿐, 왜 이렇게 된 건지, 인류는 어떻게 된 건지, 모르는 것 투성이야」
나나카「왜 이렇게 된 건지는 나도 몰라」
타이치「……그, 그런가염?」
고개를 살짝 갸우뚱거리며, 귀엽게 물어본다.
나나카「그래염」
고개를 살짝 갸우뚱거리며, 귀엽게 대답받았다.
나나카「뭐……그냥 이렇게 됐다고밖에 말할 수가 없네요」
나나카「이유를 생각하려 해도, 전―혀 알 수가 없어―요」
타이치「에이―」
나나카「꽃다운 여학생에게 뭘 기대하는 거니」
타이치「하지만 말야, 이상하잖아!」
나나카「음, 뭐가?」
타이치「보통 너 같은 역할은 좀 더 얌전한 캐릭터가 하는 거잖아!」
나나카「……아앙?」
타이치「넌 지기 싫어하는 성격의 소꿉친구 캐릭터 비스무리하니까, 거기에 걸맞게 유저들의 요청사항에 따라 내 옆집에서 매일 아침 날 깨우러 오란 말야!」
손가락을 휙 내밀었다.
나나카「……니 바보 아이가」
타이치「엄청난 미스캐스팅이야!」
타이치「그저 위치만 바꾸면 뭔가 특별해지리라 생각한 거냐, 이 단세포야」
타이치「그런 걸 표층적인 사고라 하는 거야」
타이치「변화를 원한다면, 뿌리채 바꿔 봐. 지금까지 아무도 했던 적 없는 캐릭터를 만들어 보라고!」
나나카「그 말 모조리 반사」
타이치「전 표층적인 안티테제에만 정신이 팔린 단세포입니다―!!」
쓰러져 울었다.
나나카「울지 마 울지 마, 젊은이」
타이치「……뭐, 이렇게 됐으니 그저 다음 기회에 같은 질문을 해 주길 바랄 뿐이야」
나나카「그게 좀 의외로 힘들어」
타이치「어, 그래?」
나나카「다른 사람들은 일요일 밤의 시점에서 이미 마음상태가 정해져 있으니까, 매번 비슷한 행동을 하는데 말야」
나나카「타이치는 매번 달라」
나나카「……사태를 중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고나 할까」
타이치「으―음」
그럴지도.
나 자신을 위해서라면, 타인은 적은 편이 좋다.
그러니까 지금 상황은 그렇게 나쁘진 않다.
전혀 불안하지 않다 하면 거짓말이지만…….
타이치「모르겄슈」
나나카「그래」
어쨌든 지금은 대화.
자전거로 윌리를 하고 있는 나나카를 바라본다.
이 녀석은……기억이 리셋되지 않는다.
타이치「저기 말야……」
나나카「질문은 금지」
타이치「윽」
나나카「말한 건 지켜야지」
나나카「별로 숨기려고 하는 건 아니지만……말야」
나나카「……조금, 무서워」
타이치「무서워?」
나나카「전부 알려주는 게, 무서워」
나나카「타이치가 벽에 몰릴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쾌활했던 표정이, 불안함으로 물든다.
타이치「……그래」
뭐 약속은 약속이지.
나나카「……」
타이치「……」
뻘쭘해져버렸습니다.
분위기를 풀어보려 했다.
타이치「저기……질문은 아닌데, 아까 그 속옷 얘기 말야」
나나카「응, 왜?」
타이치「브라는 프론트 후크였으면 좋겠는데요」
나나카는 눈썹을 찌푸렸다.
나나카「프론트 후크라니……이 꽃다운 여학생 나나카가?」
타이치「응」
나나카「……이유는?」
타이치「그게, 여자애하고 첫밤할 때는요, 브라를 벗기잖아요」
※첫밤=타이치어. 첫날밤이란 뜻.
타이치「만약 프론트 후크면, 봉우리 사이에 손가락을 넣어 멋있는 핑거 스냅으로 후크를 푸는 그 순간을 노려 해방되는 탱탱한 쌍계곡이 태앵하고」
타이치「……」
타이치「탱탱한 게 태앵, 하고―――」
나나카「반복하지 마」
나나카「네가 생각하는 거만큼 재밌는 개그가 아냐」
타이치「그……그러니까 그, 흔들리는 모양을 감상할 수 있기 때문에, 입니다!」
나나카「즐」
그런 바보 같은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우리 집.
타이치「……놀다 갈래?」
나나카「아니, 그냥 갈래」
문득 생각한다.
어디로 돌아가는 걸까, 나나카는.
타이치「그럼, 나중에 봐」
나나카「타이치!」
이름이 불리고.
고개만 돌려, 등 뒤를 시야에 담았다.
나나카는 고개 위에 있었다.
굉장히 멀다.
순간이동이라도 한 듯한.
나나카「타―이치」
꽤 많이 떨어져 있는데도, 목소리는 선명하게 귀에 들렸다.
타이치「어, 아, 왜?」
당황해버린다.
나나카는 틀림없이―――
자전거 옆에 선 채, 한 손을 높이 들었다. 하늘을 지탱하는, 그 미소.
나나카「다음주에 봐」
손을 흔든다.
타이치「아, 응……」
나도 손을 흔들었다.
타이치「다음주에, 봐」
나나카는 자전거에 탔다.
머지않아 소녀의 모습은 고개 둔턱을 미끄러지듯 내려가 안 보이게 되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반대편 둔턱을 오르는 모습을 볼 수는 없었다―――

타이치「자 그럼」
양초에 불.
일기장을 펼친다.
오늘 일어난 일을 적는다.
묵묵히.
가능한 한 정확하게.
타이치「?」
재빨리 양초를 끈다.
이번엔 밖에서, 가벼운 발소리.
창 밖으로 얼굴을 내민다.
……키리다.
아무도 없는 거리를 걸어가고 있다.
아마도, 어제와 같은 일을 하려는 거겠지.
나무에 박힌 타이치 인형은 가련하게도 증오의 대상으로.
봐야 허무할 뿐이다.
타이치「……큭」
갑자기 등골이 서늘해진다.
싸늘하게 척수를 쓸어오르는 감각.
소리없는 공포.
하지만 그것도 잠시.
거짓말처럼 한기는 사라져버렸다.
돌아온 방의 따스함이, 내 몸을 포근하게 덮는다.
이건……뭐지.


ㆍ霧を追う (키리를 쫓아간다)


쫓아가 보자.
싫은 예감이 들었다.
굉장히 싫은 예감이.
이쪽이려나.
방금 전의……그 기척.
알고 있다.
난 그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자전거 발견.
잠금장치는 없다.
탄다.
어제의 장소로―――
풀숲에 도착한다.
키리는……없다.
여기 온 게 아닌 걸까.
어제, 키리가 연습하던 부근을 뒤져 본다.
짐 발견. 와 있다.
이동한 걸까.
타이치「……」
심호흡한다.
눈을 꾹 감고, 눈꺼풀로 안구를 압박한다.
수정체 안쪽에서, 스위치를 누른 듯한 이미지가 생성된다.
별 거 아니다.
명도가 급격히 변했을 때, 동공이 서서히 변하는 것을 의도적으로 가속하고 있을 뿐이다.
뜬다.
밤이 밝아졌다.
초목의 미세한 움직임이 깨끗한 시야에 나타나고 있다.
고양이눈―――
감각 또한 예민해져 있었다.
타이치「맘에 안 든단 말야……쳇」
내가 다른 사람이 된 듯한 감각이 들기도 한다.
그 때.
잡목림 안쪽.
거기에서 희미한 기척을 느꼈다.
키리「……꺄앗」
비명이 들렸다.
타이치「!」
뛴다.
시야에 드러난 광경은.
전율과 기억을 동시에 불러일으켰다.
제길!
요코의 눈, 진심이다.
타이치「멈춰!」
요코「……타이치」
놀라는 기색은 없었다.
아마, 내 접근을 눈치채고 있었을 것이다.
키리「……읏」
그 틈을 타 키리가 움직인다.
하지만 요코는 방심하고 있지 않았다.
손목을 휙 돌려, 밑으로 쳐진 벨트를 회전시킨다.
일회전.
쥐고 있던 벨트의 한쪽 끝을 놓는 순간, 끼어 있던 돌이 원심력으로 인해 튀어나갔다.
키리「으읏!」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타이밍이었다.
갑작스런 행동에 의식이 팔린 순간을 찌르면, 사람은 순간적으로 대처할 수 없게 된다.
돌은 키리의 종아리를 정확하게 맞혔다.
키리「윽!」
주저앉는 키리.
다리를 움켜쥐고, 이를 악문다. 통증이 심할 것이다.
등골이 싸늘해진다.
저건 투석이다.
예전에는 목동들이 양을 지키기 위해 사용한 기술.
키리가 손에 들고 있는 크로스보우에 비하면, 너무나도 원시적인 무장.
아니, 무장이라 할 것도 아니다.
하지만……그 위력은 절대적.
끈에 돌을 끼우고 돌려서 던진다.
단지 그것뿐이다.
압축공기도 화약도 가스도 사용하지 않아, 추진력을 조절하는 것은 끈의 길이와 회전수밖에 없다.
공기마찰까지 고려한 총탄.
미세한 숫자까지 조절 가능한 포신.
악조건 속에서 장시간 계속 사용할 수 있는 신뢰성.
사람을 죽이기 위해 개발된 연구.
그 정점에 달한 총기에게는, 물론 비교가 될 수 없다.
하지만 그녀는……달랐다.
선천적으로 축복받은 유전자를 지닌, 외형은 가녀린 소녀에 지나지 않는 그녀의 내부 근육은 성인 남자를 능가한다.
단순한 완력은 아니다.
민첩함, 반사신경, 기동력.
그런 면에서 보아, 여자라는 점은 전혀 핸디캡이 되지 않는다.
하세쿠라 요코는 언제나 빠르고 소리없이 움직인다.
다루기 힘든 투석기를, 손발처럼 쉽게 다룬다.
키리가 가진 크로스보우에, 화살은 장전되어 있지 않다.
……반격을 했던 거겠지.
크로스보우는 분명 무서운 무기.
하지만 지금, 키리에게는 방패 대신조차 되지 못한다.
화살을 장전할 틈조차 없이, 돌에게 몰리고 있다.
아니.
살아있는 것도 기적이다.
요코의 첫 일격은 무방비로 맞았을 텐데, 그래도 잘 버텨온 것이다.
요코「…………」
두 번째 돌을, 벨트에 끼운다.
손목에 스냅을 넣어 원을 그린다. 그 순간.
키리「잠……깐……」
키리의 얼굴이 새파래진다.
키리「어, 어째서……당신이……?」
요코「타이치를 죽이려 했으니까」
키리「!?」
요코「타이치를 죽일 연습을 하고 있었으니까」
키리「……그, 그래서……절 죽이는 건가요……?」
요코「……」
더 이상 대화에는 응하지 않는다.
아아, 저건『잡을』때의 눈이다.
요코『뭐가 무서워? 무서운 거, 잡아 줄까?』
내가 싫어하는 것을 언제나『잡아』주었다. 그녀는. 언제나.
이 세상에서 없애버렸다.
헌신적인 정도가 아니다.
거의 이기적일 정도의 호의.
키리「아아……」
회전수가 늘어난다.
날카로운 바람소리.
눈 앞에서 부풀어오르는 파괴력 앞에, 키리는 공포로 떨고 있었다.
확실한 죽음.
그것을 키리는 믿을 수가 없던 것이다.
회전력은 이미 충분한 운동 에너지를 돌에 전달했다.
원래 그녀의 실력이라면, 일회전 후 쏠 수도 있다.
하지만 위력은 다소 떨어진다.
덕분에 키리의 다리도, 심각한 상처를 입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머리에 맞으면, 그 땐 죽는다.
확실히 끝낼 생각인가.
회전수는 여전히 늘어나고 있다.
이번엔 아픈 정도로는 끝나지 않도록.
키리「그, 그만……」
크로스보우를 얼굴 앞에 대고, 흐느껴 울었다.
이것이 키리의 한계인가.
타이치「거기까지」
키리 앞에 선다.
키리「어……?」
회전이 멈췄다.
요코「저건, 살려두면 타이치한테 위해를 끼쳐」
타이치「뭐 어때, 그 정돈」
타이치「어차피 리셋되잖아」
요코「…………」
타이치「그냥 놔 줘」
요코「……안돼」
타이치「요코」
크게 이름을 부른다.
하지만 물러나지는 않는다.
요코「잡을래」
타이치「안 잡아도 돼」
요코「비켜」
타이치「안 비킬래」
등 뒤에서, 키리가 숨을 죽이고 지켜보고 있었다.
목숨을 구한 안도감과, 그것이 나에 의해 행해졌다는 위화감.
요코「하지만……」
망설인다.
타이치「나를 핑계로, 사람을 죽이는 걸 원하지 않아」
타이치「죽이고 싶으면 너만의 핑계를 찾아」
그녀는 풀이 죽는다.
요코「…………그치만, 타이치를 위해서……난……」
나를 위해.
내 이름을 대고 키리를 죽인다.
그것이, 결과적으로 나를 상처입힌다는 것을 모르는 채.
타이치「……항상 그래. 자기 생각만을 강요하고」
타이치「그게 귀찮을 때도―――」
요코가 손목을 꺾었다.
타이치「!!」
옆쪽에서 목을 뻗어 대화를 듣고 있던 키리.
그 얼굴 앞으로 손바닥을 가져간다.
다음 순간, 통증과 함께 돌이 날아왔다.
키리「꺄악!?」
타이치「……아야」
요코가 새파래진다.
요코「아……미안……잘못했어……」
타이치「배신이야」
요코「……어……저기……그러니까……」
타이치「대화 중에 내 허점을 찌르려 하다니」
불쾌했다.
이건 진심으로.
타이치「……또야」
움찔, 그녀의 어깨가 떨렸다.
타이치「소중하다고 말하지. 사랑한다고 말하지. 호의를 강요하지」
타이치「……하지만, 여차할 때는 배반해」
타이치「또야?」
요코「아냐, 그건……타이치 몸의 안전이……」
안절부절.
타이치「그 얘기는 이제 됐어!」
내 일갈에, 어린아이처럼 움츠러들었다.
요코「……미, 미안해……」
꺼질 듯한 목소리.
타이치「어쨌든 키리는 죽이지 말아 줘」
요코「…………」
요코「……그치만, 타이치를 죽이게 놔둘 수는 없어」
요코「그것만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어」
타이치「……내가 그렇게 쉽게 죽진 않아」
타이치「키리하고 나하고는, 격이 다르잖아」
요코「하지만……타이치는 가끔……」
타이치「가끔?」
요코「죽음에 대한 저항감을 잊어버리잖아」
타이치「뭐, 이런 상황에선 괜찮겠지」
분명히, 나에겐 그런 면이 있다.
자랑은 아니지만 정서불안정인 것이다.
타이치「그럼 약속할게. 이번 주에 한해서는 죽지 않겠어」
타이치「온 힘을 다해 몸을 지킬게. 그 대신, 너도 끼어들지 마」
요코「……………………」
타이치「납득하지 못하겠다면, 인연을 끊을 수밖에 없어」
요코「싫어……그건, 싫어……」
즉답이었다.
요코「알았어……그럴게」
요코「하지만, 감시는 하겠어」
타이치「맘대로 해」
요코「사쿠라 키리의 무기를 줘」
타이치「들었지? 줘」
키리「네……?」
타이치「크로스보우하고 나이프 같은 거 갖고 있잖아」
타이치「꺼내 줘, 안 그러면 죽어」
키리「…………」
말없이, 키리는 무기를 전방으로 내던졌다.
요코가 줍는다.
요코「무장은 금지. 만약 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면 적의가 있다고 보겠어」
키리「…………」
키리는 내 등 뒤에서 나오지 않았다.
타이치「맞다……다음주에도, 좀 살살 부탁해」
요코「우―」
불만스러워 보였다.
타이치「부탁이니까」
요코「……으, 응, 알았어」
……간단.
그리고 그녀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기척이 함께 사라진다.
타이치「후우」
키리「……」
긴장의 단계가, 하나 내려간다.
하지만 아직 0은 아니다.
타이치「……………………」
등 뒤에서, 긴장의 발생원이 아직도 오오라를 내뿜고 있다.
서서히 분노로 변해가는 그것을 의식하며,
타이치「……다친 덴?」
키리「왜」
내가 도와준 것에 대한 당황과 분노.
감정이 뒤엉켜, 소리치고 싶은 것을 필사적으로 참고 있는.
그런 목소리였다.
키리「왜……구해준 건가요……」
타이치「왜냐고 해도……좀 곤란한데」
타이치「돕고 싶었으니까, 그걸론 안될까?」
키리「장난치지 마세요……」
타이치「……장난치는 건 아닌데」
타이치「뭐, 글쎄. 이해는 안되겠지」
타이치「싫어하는 상대에게 도움을 받는다는 게」
키리「……」
타이치「정말로 날 죽일 생각이었어?」
키리「…………」
타이치「나참, 곤란한데」
키리「당신은 너무 위험해요」
타이치「위험?」
키리「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사람을 가지고 노는 당신은」
키리「이런 상황에서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당신은」
갑자기 목소리가 커지는 키리.
바로 톤을 낮춘다.
키리「……반 재미로, 사람을 죽이고 있어요」
공기가 가라앉는다.
증오가 스며들었다.
키리가 내뱉은 증오가.
타이치「흐음, 잘 봤네」
한숨을 쉰다.
키리「……?」
타이치「너한텐 사람을 보는 눈이 있어」
키리「무슨……?」
타이치「내가 가장 위험하다고 생각했잖아?」
키리「……그래요……하지만, 위험한 건 당신만이 아니었어요」
타이치「요코?」
키리「……아무것도 안 했는데……날 죽이려……」
키리「다, 당신들은 동류예요……그러니 같아요」
동류는 아냐.
부정하고 싶었지만, 키리는 이해할 수 없겠지.
잠자코 있자,
키리「왜 절 구해준 거죠?」
다시 질문해왔다.
키리「놔뒀으면 좋았을 텐데」
키리「제가 당신을 적대시하고 있다는 건……알고 있을 텐데」
키리「절 도와도 아무 이득도 안 생기는데」
타이치「아니아니, 만화에선 이런 식으로 동료를 늘려 가잖아」
분노가 팽창했다.
키리「전 당신의 동료 따윈 되지 않아요!」
감정적으로 나오면 패배.
그런 규칙을 자신에게 적용시키고 있던 것 같은 키리가, 스스로 언성을 높였다.
타이치「나의 위기……」
키리「얼버무리지 마세요!」
타이치「음, 좋은 태클이야」
키리「으……」
이를 악물었다.
타이치「살려준 이유, 생각났어」
키리「생각났다니……」
신경 안 쓰고 말한다.
타이치「키리가 죽으면, 미키가 슬퍼하잖아」
키리「…………」
키리의 약점이다.
타이치「뭐, 대충 그 정도로 해 두지」
키리「바보 취급해……항상」
타이치「이게 내 아이덴티티야. 다른 나는 없어」
타이치「그런데 말야, 키리찡」
일단은 말이지.
타이치「이 상처, 좀 봐 주지 않을래?」
키리「왜 제가 그런 일을」
타이치「피 나잖아?」
아까 전부터, 손가락을 타고 흐르는 피를 의식하고 있었다.
타이치「난 피에 약하단 말야」
타이치「그리고 이 상처, 널 구하다 생긴 거고」
키리「그치만, 그건 쿠로스 선배가 멋대로……」
타이치「목숨도 구해 줬는데 상처 정돈 봐 줘」
단호히.
키리「……알겠습니다」
순순히.
키리「빚은 지고 싶지 않으니까요」
타이치「닦아 줘」
키리「하지만……치료할 만한 게……」
손수건을 꺼내, 상처를 닦는다.
타이치「아얏, 좀 아파」
키리「아……죄송합니다……」
반사적으로 사과하는 키리.
키리「그치만……다른 건」
타이치「으, 아야야, 욱씬거리네, 출혈과다로 죽을 것 같아」
키리「으, 음……」
타이치「다정하게 어루만져 줘」
키리「아……에……???」
당황.
타이치「이럴 때 미키찡이라면, 낼름낼름 핥아줄 텐데」
키리「핥아요……?」
타이치「상처가 쓰려……아야야, 이거 아프네」
키리「그……그런 거……하고 싶지 않은데……」
타이치「부탁해」
키리「알겠, 습니다」
키리「당신한테 빚은 지고 싶지 않으니까요」
머뭇거리며, 혀 끝이 상처에 닿았다.
키리「응……읍……」
뜨겁다.
그리고 끈끈했다.
로션이라도 바르고 있는 것 같았다.
희미한 통증이 있었지만, 그게 더 좋다.
키리「낼름……응……할짝……음……응」
부드럽게 상처를 핥는다.
손바닥이 찌릿하고 달콤하게 저린다.
그 감각이 어깨로부터 척수로 들어가, 등골을 지나 꼬리뼈까지 전해졌다.
하복부가 뜨거워진다.
타이치「좋아, 키리」
키리「낼름……으응, 응, 낼름, 으응……하아」
가끔씩, 혀를 떼고 뜨겁게 한숨을 돌렸다.
타이치「손가락도 깨끗하게 해 줘」
키리「응……으으응……으흥, 낼름……응, 응, 응……하, 으응」
낼름낼름 혀가 움직이며, 내 손바닥을 핥아간다.
혀가 손가락으로 내려온다.
그 혀를 손가락 두 개로 잡는다.
키리「으응? 시, 싫어……아응……안돼……」
키리는 손가락을 떼어냈다.
타이치「미안, 좀 간지러워서」
키리「……그런……가요……」
얼굴을 붉히고, 고개를 돌린다.
타이치「피 다 닦았어?」
키리「……아직, 좀」
타이치「그럼 부탁해」
손가락을 내밀자, 키리는 머뭇거리며 입술을 갖다댔다.
키리「할짝, 할짝……으응, 흐응, 응……아흥……」
숨을 내쉬지 않아서인지, 숨이 차는 것 같다.
서 있는 나.
무릎을 꿇은 채, 손가락을 빨고 있는 키리.
그 키리가.
수위가 올라간다.
검은 물이 점점 차오른다.
이럼 안되는데.
잠시 후 키리는 혀를 떼어놓았다.
키리「……끝났습니다」
타이치「땡큐」
피도 멎어 있었다.
타이치「……요코가 한 말, 아마 진심일거야」
키리「?」
입가를 닦으며, 키리는 어깨를 으쓱였다.
타이치「이제 무기는 금지. 안 가지고 다니는 게 좋아」
타이치「계속 가지고 다니면, 아마 진짜로 공격할 걸」
키리「…………」
어깨가 살짝 떨린다.
공포로.
타이치「나도 뭐, 애들을 어떻게 할 생각은 없어」
타이치「네가 말한 대로, 쓸모없는 놈이긴 하지만……친구를 상처입힐 생각은 없어」
키리「정말, 인가요?」
타이치「응」
타이치「그리고 지금은 다친 미미 선배 대신 안테나를 세우고 있는 중이야」
키리「안테나……그 방송용……」
타이치「그걸로 SOS를 보낼 거야. 알고 있지?」
키리「……사람 따윈, 이미 없어요」
키리「TV도 안 나와요. 라디오도. 인터넷도. 전화도」
키리「아무것도 전해지지 않는데……누가 살아있단 거예요」
그뿐만이 아니다.
세상은 앞으로 나아가는 일조차 방해받고 있다.
영원한 일주일.
나에겐 감미롭게까지 들리는.
타이치「……합숙……시시했지?」
타이치「무리하게 계획하고, 열심히 일곱 명을 모으고, 구슬리기도 하고 거짓말도 했는데……」
타이치「완전 꽝이었지」
웃어버린다.
키리는 괴물이라도 보는 눈초리로 날 바라보고 있다.
타이치「최악의 기분으로 해산했었어」
키리「……당신이 꾸민 일이잖아요?」
타이치「그래, 내가 꾸몄지」
키리「모두의 상처를 찌르기 위해」
타이치「아냐」
타이치「다들 화해하길 바랬어」
타이치「옛날 같은 관계로 돌아가고 싶었어」
키리「……거짓말이에요」
타이치「진짜야」
키리「화해할 기회를 만들기 위해서, 합숙을 하고 사람들을 모았다는 건가요?」
타이치「그래」
눈을 깜빡인다.
수면이 잔잔하게 흔들린다.
키리「못 믿겠어요……그런 말은」
타이치「뭐, 됐어」
타이치「요컨데, 결속하는 게 중요하단 거야」
타이치「어디서든 좋아. 부활동에서든 합숙에서든」
타이치「한정된 기재로, 함께 안테나를 만들고, SOS를 보낸다」
타이치「그런 희망 정도는 있어도 되잖아」
키리「……당신이……그렇게 훌륭한 사람일 리가 없어」
타이치「응, 전혀 안 훌륭하지」
타이치「하지만, 그건 그거, 이건 이거」
한 문장 안에 지시대명사를 네 번이나 사용한다는, 근대 일본어 표현이 추구하는 미학에 반하는 겁나게 꼴사나운 관용어를 사용해, 난 말을 꺼냈다.
타이치「훌륭하진 않지만, 사이좋게 지내는 건 아름답잖아」
키리「……」
타이치「맞다, 완전히 까먹고 있었는데, 네 상처는?」
키리「아, 괜찮아요……만지지 마세요」
타이치「안 만지면 모르잖아, 읏차」
장딴지.
부어 있었다.
타이치「……내출혈이네. 좋은 부분에 맞았어」
타이치「걸으면 아프겠지만, 별 건 아냐」
타이치「그 외엔?」
키리「어깨를……」
타이치「벗어 봐」
키리「!?」
키리「여, 역시 짐승……」
어깨를 감싸며, 뒷걸음친다.
타이치「저기저기, 농담이야.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마」
키리「그렇게 미키를 비롯한 사람들한테 성희롱을……하고 있는 거네요」
타이치「미키는 말야―, 진짜로 싫은 건 딱 부러지게 거절한단 말야?」
타이치「그건 안돼―, 라고 낄낄 웃으면서 날 실컷 패는데?」
키리「……미키가?」
타이치「그러면 나도, 강요는 안 해」
타이치「여러모로 접촉을 해 가면서 경계선을 조절해 가는 게, 대인관계라는 거잖아? 아냐?」
키리「……아름다운 말로 치장하네요……결국은 성희롱을……」
타이치「키리찡은 너무 진지하단 말야」
타이치「어깨 만진다」
키리「에……꺅」
살짝 만져보니, 아파했다.
타이치「……이건 위험한 데에 맞았네」
타이치「어느 정도 아파?」
키리「……별로……팔도 잘 움직여요……」
타이치「머리 위로 들어 봐」
따른다.
타이치 「뼈에는 이상이 없는데」
키리「……선배가, 힘을 너무 주고 있어요」
타이치「그렇게 힘 안 줬는데」
키리「……남자들은, 다들 힘이 세잖아요……시마 선배도, 그렇게 가는 팔로도 혼자서 모니터를 들어 올리고」
타이치「……그 녀석은 전 농구부라서……못 뛸 뿐이지 근력은 그대로 남아 있으니까」
아아, 키리는 CRT 모니터 하나 혼자서 못 들어올리는구나.
힘이 너무 약한데.
부실에 있는 건, 좀 크긴 하지만.
어깨를 만질 때도 너무 가늘어서 놀랐다.
얇은 접시 같아서, 자칫하다간 깨져버릴 것 같았다.
방송부에서 팔씨름 대회를 열면, 최하위가 되지 않을까.
타이치「……하아」
가녀린 소녀.
타이치「파스 정도는 붙여 둬」
키리「……굳이 말씀 안 해주셔도, 알아요」
말에도 힘이 없다.
타이치「좋아, 그럼 집에 가 볼까」
일어난다.
타이치「자, 가자」
마지못해하며 따라온다.
키리「아얏」
타이치「역시 아픈 거구나. 어부바해 줄까?」
열 손가락을 좌우로 꺾는다.
키리「……싫어, 오지 마」
진짜로 무서워한다.
타이치「농담이었는데」
키리「혼자서 갈게요」
타이치「혼자가 되면 요코한테 습격당할 걸?」
키리「……………………」
말이 없어졌다.
타이치「자, 가자」
등 뒤로, 터벅터벅 따라오는 가벼운 발소리.
자전거는 버려 두고, 걸어서 가기로 했다.
타이치「……좋은 밤이네」
대화는 없었다.

타이치「금요일인가」
세계가 되감기기까지, 앞으로 3일 정도.
기억이 사라지고 모든 것이 리셋.
……쬐까 떨린다.
그건 죽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는 게 아닐까 싶다.
이 일주일 동안은, 지면의 기록으로밖에 남겨지지 않는다.
내가 그것을 기억할 수는 없다.
결코.
타이치「……」
옛날.
이런 게임을 했었다.
롤플레잉.
무대는 미래.
세계는 황폐해지고, 사람들은 돔 도시에서 살고 있다.
야생 동물은 몬스터로 변해, 사람들을 덮친다.
주인공은 몬스터 헌터.
일상적인 퀘스트로부터, 서서히 세계를 지배하는 존재와의 싸움으로.
롤플레잉에서는 보통, 캐릭터가 전투에서 패배하면 마법이나 과학 등으로 되살아날 수 있다.
주인공은 몇 번 죽어도 주인공이며, 파티가 전멸해서 게임오버가 되지 않는 한, 완전한 파멸은 일어나지 않는다.
당연히, 주관 기억은 보존된다.
하지만 이 게임은 달랐다.
주인공 뿐만 아니라, 캐릭터가 죽으면 그것은 완전한 죽음이었다.
다른 동료는 도시로 돌아와, 사망자의 클론을 세이브 포인트 기능을 겸하는 시설에 요청한다.
거기서는 직전 세이브 데이터의 주인공이 펑하고 제작된다.
그리고 아무도 아무런 의문을 가지지 않고, 모험은 계속된다.
충격이었다.
세이브 이후, 죽은 주인공의 고유시간은 전혀 보존되지 않았다.
같은 주인공인데도, 다른 인간이라고 생각하며 플레이했다.
게임은 난이도만 높고, 밸런스는 망가져 있었다.
하지만 선명한 죽음의 이미지가 항상 따라다녀, 나는 홀린 듯이 계속 플레이했다.
결말은 주인공의 자폭.
타이치「……좌절인데」
내가 그것을 체험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면 나는 몇 명째인 걸까.
다섯 명째.
과연 그럴까.
기록에 없으니, 그것을 알 수단은 없다.
오늘은 덥다.
바다라도 가고 싶은 기분.
그러고 보니, 작년엔 바다에 갔었지.

즐거운 바다였다.
지금도 모두의 떠들썩한 모습이 생각난다.
토오코「꺄아아아악!? 어딜 잡는 거야!?」
타이치「수영복 팬티」
미사토「하세쿠라는……쿠로스군하고 어떤 관계일까요?」
타이치「음, 요코짱?」
토오코「요코짱!?」
미사토「요코짱!?」
미키「요코짱?」
토모키「요코짱!!」
미키「이번엔 야쿠자네요」
미사토「모, 몸은 싫어~」
소녀「저기, 실례합니다합니다합니다!!!!」
토오코「바―보」
유사「엣, 앗, 얏?」
미키「아, 아파~, 이마 아파~」
미사토「……투덜투덜투덜」
타이치「재밌긴 재밌잖냐」
즐거운 해수욕은 이걸로 끝.
미키의 얼굴에는 조금 흉터가 남은 것 같았다.
그래도 귀가 길 내내, 미키는 상쾌하기 그지없는 표정이었다.
다친 대신에, 무언가를 얻었다.
그런 표정이었다.
그 후, 미사토 선배는 방송부용 안테나 반입을 위해 학교로 돌아갔다.
아직 누나와 단절되지 않았던 토모키가 그것을 비꼬았다.
그 시스콤을, 당시 군죠 부속 중학교 3학년생이었던 미키가 놀렸다.
유사가 집단이라는 것에 대해 처음으로 살짝 마음을 열었다.
그런 바다였다.

하지만 부활동이 있어서 말야.
선배의 도면.
이 푸념 리스트가 문제점이라 치고, 이것을 해결하면 발신 가능한 시설이 된다고 믿자.
선배를 믿는 거다.
믿는다. 아름다운 말이다.
갈증을 해소시켜 준다.
작업 개시.
더운 날씨에서의 작업이 계속된다.
난 햇볕에는 제법 강하다.
머리가 하얘서.
이것만으로도 상당히 달라진다.
그런 연유로 한여름에도 작업은 계속된다.
잠시 후.
타이치「……응?」
키리잖아.
펜스 옆에 서서, 풍경을 바라보고 있다.
날 눈치채지 못하고 있나.
그럴 리는 없다. 소리를 크게 내며 작업하고 있으니까.
타이치「어―이, 키리―!」
불러보자.
키리는 느린 보폭으로 걸어 왔다.
키리「뭐죠?」
타이치「아니……특별히 볼일은 없고……」
키리는 흥미없다는 듯 힐끔 안테나를 바라보았다.
키리「……부활동, 정말로 하고 계셨네요」
타이치「뭐 그냥」
타이치「이렇게 더우니, 바다라도 가고 싶은데」
타이치「작년엔 갔었지. 기억 나?」
키리「……네」
타이치「재밌었어. 미키한텐 미안하지만」
키리「……네」
의외로 순순한데.
왠지 상태가 이상하다.
타이치「……무슨 일이야?」
키리「그게……하세쿠라 선배가……」
타이치「요코가……감시하고 있어?」
키리「네, 네에……」
키리의 손이 떨리고 있다.
그렇게 다부졌던 애가.
두려움으로.
몰라볼 정도로 위축되어 있었다.
키리「그래서」
키리「그래서……」
목소리가 떨린다.
보고 있을 수 없었다.
미성숙한, 아름다운 유리공예 같던 여자아이가.
만지면 더러워지고, 잡으면 망가질 듯한 가녀림이 있었는데.
이렇게……안절부절해 하다니, 어떻게 된 일이야.
요코가 조금 원망스럽다.
아아, 또 가라앉고 있구나.
업 된 상태로 유지할 수 있을 때는 괜찮다.
그렇지 않을 때, 내 마음은 가라앉아 간다.
깊은 부분.
눈으로 보이지 않는 심연.
빛의 따스함을 잊게 하고, 그저 객채로서 살아가게 하는 장소.
마음이란 것이 필요없는 장소.
오래 있으면, 얼어붙은 마음은 퇴화해버리고, 남는 것은 순수한 사는 의지.
자신이 심해에 사는 존재라 착각한다.
그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세상에, 나 혼자만 남는다면.
아무도 상처입히지 않으니까.
타이치「……키리, 부활동 좀 도와 줘」
갑작스런 제안은, 키리의 눈동자를 동그랗게 만들었다.
키리「부활동?」
타이치「그래」
타이치「……혼자서는……못 끝내겠어……도와 줘……」
선배로부터 이어받은 푸념을, 하급생에게 그대로 실행했다.
키리를 사다리 위에서 작업을 시킴으로, 팬티 팔랑 랜드 건국이라는 행복도 기대하고 있는 나였다.
타이치「팬티는 좋지……」
키리「방금, 뭐라고 하셨어요?」
타이치「안테나가 E형이라는 기종이라고」
키리「팬티라고 들렸는데요」
타이이「안 했어 그런 말」
휘파람을 분다.
키리「……뭘 해야 되나요?」
타이치「도와줄 거야?」
키리「명령인가요?」
타이치「……아―, 뭐―, 그렇지―」
키리「빚은 갚고 싶으니까, 도와드리겠습니다」
타이치「와―아」
키리「단!」
내 말을 멈추고, 강한 어조로.
키리「화해할 생각은, 전혀 없어요」
타이치「괜찮아 괜찮아」
타이치「그것도 인생이지」
키리「지시해주세요」
타이치「음 그럼―, 우선 이걸 봐 줘」
도면을 건넸다.
잔뜩 긴장한 표정.
1분 후에는, 우거지상이 되었다―――

미사토「하, 하에~」
선배가 왔다.
타이치「아, 선배」
사다리 위에서 인사.
키리「……안녕하세요」
미사토「후와~」
타이치「모에단어 연발이네요」
타이치「하지만 그 둘은 좀 낡았는데」
타이치「22세기를 살아가는 모에 아가씨라면 유앙―, 이라던가, 유용― 정도는―――」
미사토「시인 나카하라 츄야잖아요. 맞죠?」
날카로운 표정으로.
타이치「……컥, 알고 있네요」
미사토「나카하라 좋아해요」
타이치「아, 아니, 온고지신이랄까 왕정 복고랄까……옛 것을 토대로 새로운 것을 만들듯이」
미사토「뭔지 모르겠어요」
타이치「우선……퇴원 축하해요」
미사토「아―, 그렇게 대단한 상처는 아니니까요」
타이치「아프진 않아요?」
미사토「……괜찮아요, 그치만」
가만히 바라본다.
나도 선배의 아름다운 가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미사토「저, 저기, 왜 안테나를?」
가슴을 양팔로 가리며, 질문을 했다.
타이치「……심심풀이예요」
미사토「심심풀이라면……」
타이치「심심풀이죠」
미사토「……으」
불만스러운 표정.
타이치「전 건전하고 건강 그 자체니까, 적극적으로 살고 싶어요」
타이치「그리고 결국에는, 쓴 맛도 단 맛도 모두 본 영 어덜트로 변태해 가는 거예요」
미사토「벼, 변태!?」
다시금 가슴을 감싼다.
좋겠다 선배는.
자기 가슴을 맘껏 만질 수 있어서.
타이치「그게 아니에요!」
안테나의 반대쪽에서, 키리가 숨을 몰아쉬고 있다.
타이치「아, 맞다. 물어보고 싶은 게 잔뜩 있어요」
도면을 건넨다.
타이치「여기 있는 메모가 잘 이해가 안 돼서」
키리「끝나면 이쪽도 부탁드려요, 부장 선배」
미사토「네, 네에」
타이치「그리고 배터리는 어떻게 하죠?」
미사토「에, 학교에 있는 차에서……끌어올까 하고」
타이치「그건 남자 일이네요. 사쿠라바한테 시킬게요」
미사토「에, 그치만 사쿠라바군이 꼭 도와준다고는……」
타이치「도우라고 하면 도울 거예요, 아마」
타이치「그 녀석 어차피 시간은 썩을 테니까」
미사토「아니, 그게 아니라……」
선배의 본심은 알고 있다.
부활동은, 자기 혼자만의 도피였다.
모두 함께 하면, 선배의 갈증은 해소되지 않는 것이다.
오래 해서, 시간이 걸린다면 그걸로 된다.
무한정 몰두할 수 있기 때문에.
타이치「저기 선배, 이건 완성해서 SOS 발신하면 그걸로 끝인가요?」
미사토「네에, 일단은……」
도피도 함께 끝난다.
그래서 이 사람은, 혼자서 작업을 해 왔던 것이다.
끝나지 않도록.
타이치「SOS를 보내고, 바로 응답이 오리라고는 할 순 없죠」
미사토「네에……」
타이치「지역폭 문제도 있을 테고……」
타이치「FM전파만이 아니라, 핸디 무전기로도 보내 볼까요?」
미사토「네에……」
타이치「그럼 신호도 생각해야겠네요」
미사토「아아, 그렇죠……」
타이치「방송국 같은 거예요」
타이치「개국하고, 반응이 있을 때까지 쭉 유지해나가야 돼요」
미사토「…………아」
타이치「바바지겠네요」
미사토「…………」
선배의 얼굴에, 밝은 빛이 스쳐간다.
미사토「그렇겠네요, 분명히」
미사토「응, 그럴 지도……」
미사토「바쁜 건, 좋은 일이죠?」
타이치「당연하죠」
타이치「그리고, 모두 함께 하는 게 재밌잖아요」
타이치「셋이서 하면, 하루만에 끝날까요?」
키리「……저, 좀 힘들어요. 전혀 알 수가 없어서」
타이치「으―음. 메카니컬에 해박한 미소녀가 있었다면」
미사토「왜 성별 지정을……」
그 때, 타이밍 좋게 가벼운 발걸음 소리가 접근해 왔다.
미키「키리찡―, 있어―?」
문을 열고, 미키 등장.
타이치「빙고―!」
미사토「에……뭐가요?」
사정을 말했다.
미키「후이―, 건전한 일을」
타이치「자네의 하이테크 지식이 필요하다」
미키「PC라면 몰라도, 무선은 몰라요」
타이치「성적 좋잖아」
미키「전문기술에는 도움 안 돼염」
타이치「어려운 책도 이해 가능하잖아」
미키「아니, 아니아니아니……」
미키「뭐랄까, 은근슬쩍 멤버에 끼워지려 하는 나……」
힐끔 단짝을 바라본다.
미키「키리찡까지 있네」
키리「……미안」
미키「사과 안 해도 되는데……좀 놀랐어」
미키「키리찡, 그럼 그건 어떻게 할 거야?」
키리「……미안」
미키「중지?」
키리「……응. 그게……좀 사정이 있어서」
타이치「그거라니?」
그것. 가녀린 소녀들의 그것.
비밀의 그것.
미키「사정을 알고 싶으세요?」
키리「미안, 그 얘기는 여기서는 좀」
말하고 싶지 않은 이야긴가.
미키「흐―음. 그럼……」
미키「냐―?」
고양이 소리를 냈다.
키리「……냐아」
미키「냥냥냥냥」
키리「……냐―옹」
미사토「고, 고양이어?」
타이치「그런 것 같네요……」
우리들은 두려워했다.
덜덜 떨고 있는 우리 둘을 무시하고, 미키와 키리는 냥―냥거리고 있다.
잠시 후.
미키「과연……그런 일이 있었군요」
납득하고 있었다.
타이치「그걸로 통한 거유?」
요즘 젊은이들은 언어까지 창조하고 있는 것인가!
미키「그럼 그럼, 군대도 없는 나라처럼 되어버리겠네」
키리「……응. 그래서 좀 무리일 것 같아」
미키「군대까지는 아니더라도 방어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무기를 소지하면?」
어딘가의 섬나라 얘기 같다…….
타이치「잘은 모르겠지만, 내가 관련된 얘기 같은데」
타이치「미키찡도 나이프 같은 거 가지고 다니지? 그건 버리는 게 좋을 거야」
미키「있으면 편리한데」
키리「나이프도 갖고 있었어?」
미키「냐―」
키리「아, 미안」
타이치「겁나게 편리하네, 그거」
문법은 어떻게 되어 있을까.
미키「일상의 각종 상황에서 활용할 수 있어요」
타이치「……으―응, 뭐 키리찡한테 주거나 그러지만 않으면 괜찮을 지도?」
미키「넵. 그럼 그러죠」
미키「이야―, 그건 그렇고 키리찡하고 선배가 화해라니……세상 참 말세네요」
키리「화해한 거」
타이치「……같아」
미키「흐―음」
미키「선배, 잠깐 여기로」
손을 잡힌 채로, 안테나에서 떨어진다.
대화가 키리에게 들리지 않는 위치.
타이치「……왜?」
미키「대강의 사정은 들었는데요」
그 고양이어, 대단한데.
미키「선배는 그걸로 괜찮아요?」
타이치「괜찮냐니?」
질문의 의도를 잘 모르겠다.
미키「분명히 키리찡은, 선배를 조금……꺼려하는 것 같아서……」
타이치「싫어했지. 확실히 말하면」
미키「아하하……뭐」
쓴웃음.
미키「실은, 키리가 둘이서만 떨어져 따로 살자고 말했었어요」
타이치「어, 왜?」
미키「키릿찌, 인간 불신이라서요. 그래서, 이런 무질서한 상황이 되면, 선배 같은 사람의 곁에 있는 건 위험하다나요」
이야―, 좋은 판단력인데, 키리찡.
미키「그래서……그……선배를 말이죠」
타이치「가상 적국으로 설정했다고?」
미키「……네」
풀이 죽는다.
미키「이유는……키리찡도 안 말해줬는데요, 언젠가 갑자기 그렇게 말하더라구요」
타이치「음」
미키「요즘은 좀 노이로제 기미도 보여요」
미키「……그런 키리찡하고,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으세요?」
불안한 듯, 미키는 물어보았다.
타이치「응, 내가 키리하고 잘 지낸다는 약속으로, 요코가 손을 빼 줬으니까」
미키「하세쿠라 선배는……선배를 다치게 하면?」
타이치「어디선가 난데없이 나타나지」
미키「히어로 같네요」
타이치「그렇지. 난 히로인」
미키「얼굴도 이쁘장하시고」
타이치「……이 얼굴로 좋은 꼴을 본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타이치「혐오당하고 거부당하고 오해받고」
미키「……그런가요」
타이치「그럴 땐, 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았어. 사람하고 대화하는 게 싫었어」
미키「지금은 완전 반대지만요」
타이치「양식이니까」
미키「네?」
타이치「……필요한 거니까 말야」
타이치「먹을 것이 싫더라도 안 먹으면 죽는 그런 상황」
타이치「마음 속으로 여러모로 고민하고, 먹기로 했어」
타이치「사람들이 나를 좋지 않게 생각하는 건, 얼굴 탓이라고 생각했어. 특히 신경쓰인 건, 눈이야」
미키「눈?」
타이치「눈이 타인하고 다른 것 같아서……아니, 얼굴형도 평범한 것 같지가 않아서……」
미키「조금 멋있어요. 핸섬하지는 않지만요」
타이치「다들 그렇게 말해주지만 말야」
미키「하아, 그게 선배의 마음의 상처군요」
타이치「음―, 이건 새발의 피의 적혈구 같은 거고, 진짜는……」
이런이런, 하고 나를 말린다.
타이치「어쨌든 그렇게 됐으니, 요코가 손을 빼게 하기 위해 키리는 무력한 채로 있어야 되는 겁니다」
미키「이야기가 부―웅」
타이치「그런 연유로 키리찡을 빌리겠습니다」
미키「저기……괴롭히지는 말아 주세요? 알아서 하시긴 하겠지만요」
타이치「……선처하겠습니다」
미키「그럼, 저도 도와드릴게요」
이렇게.
미키도 참가하게 되었다.

아무도 없다.
요 몇일 동안, 토오코를 못 본 것 같다.
타이치「싫은 건 알겠지만, 내일부터 부활동 나와보지 않을래?」
독백한다.
토오코가 있었으면, 이렇게 말하려고 했던 것이다.
청춘 놀이를 할 거라면, 전원이 좋지.

오늘은 일기도 술술 써졌다.
참고로『일기를 기록하다』는 문법상의 오류가 아냐.
일기는 명사니까.
등등 쓸만한 액자가 될 듯한 것들도 끄적끄적 적어간다.
※액자=타이치오타. 지식이 옳다. 타이치는『지식은 액자와 같이 나를 물들여 준다』비스무리한 말을 어디선가 듣고 착각하고 있다.
가능하다면 일요일에는 전원 집합시키고 싶다.
아―, 일요일은 일기를 못 쓰는데.
그래도, 그런 광경을 한 번은 봐 두고 싶다.
리셋이란, 생각해 보면 굉장히 무서운 현상이다.
죽음과 동일한.
그러니까……적어도…….
타이치「불러나 볼까……」
우체국으로 간다.
강습, 우체국.
엽서를 30장 정도 약탈한다.
오는 길엔, 여봐라는 듯 파출소 앞으로 갔다.
간 김에 파출소도 약탈해 둔다.
들어가는 것은 처음이었다.
타이치「호―, 이게 파출소 안이구나―」
권총 같은 건 없을까.
수갑이 있었다.
그 외에 쓸만한 건 없다.
타이치「가자」
이런 짓이나 하고 있을 시간은 없다.
서둘러 돌아간다.
엽서를 쓴다.
타이치「그럼……」
여러분들께.
공사다망한 밤이다.

타이치「……자아」
아직 기온도 그렇게 높지 않은 오전 중.
혼자서 옥상에 왔다.
안테나와 토대의 철탑을 본다.
분명히 이건……혼자서 할 작업이 아니다.
초보자에 의해 삐뚤빼뚤하게 세워진 안테나.
어찌 보면 오브제같기도 한 모습이었다.
타이치「그럼」
작업에 들어가기로 했다.
…….
………….
…………………….
타이치「젠장, 모르겄다」
쿠로스 타이치, 문명의 이기에는 조금 약함.
토모키「……뭐하고 있냐」
타이치「아니, 이렇게 미리 작업을 해 놓으면 '페케군 대단하네요 감동이에요 젖어버렸어요 뽑뽀―'……뭐 이런 거지. 여어, 토모키 선생」
토모키「뽑뽀―는 또 뭐냐」
토모키「부활동이냐」
타이치「응응」
토모키는 바닥에 철푸덕 주저앉았다.
토모키「자」
타이치「오, 땡큐」
캔 쥬스.
별로 차갑진 않지만.
토모키「……타이치는, 왜 그렇게 열심이야?」
타이치「오, 진지한 질문 청춘 풍미」
토모키「뭐라는 겨」
타이치「졸라 재밌다, 그 개그」
토모키「야야, 이런 거까지 날려 놓곤 시치미 떼지 마」
토모키는 한 통의 엽서를 꺼냈다.
타이치「날렸다고 해야 하나, 우체통에 넣었을 뿐인데」
토모키「……왜 부활동 하는 거야?」
타이치「나도 질문 하나, 괜찮을까?」
진지한 표정으로.
토모키「응?」
타이치「너하고……누나에 대한 건데, 괜찮아?」
토모키「…………」
타이치「진지한 질문이야」
토모키「……OK. 뭔데?」
타이치「음」
조금 주저하다가, 질문을 던졌다.
타이치「어째서 넌 관동 사람 주제에 이따금씩『~겨?』라던가『~유』등의 짝퉁 관서 사투리를 섞어 말해?」
토모키「누님하고 제일 관련없는 질문이야!!」
토모키「갈래……」
타이치「뭐―뭐―, 기다리게나. 로망은 하루로 완성되는 게 아니라네」
토모키「운동시켜줘서 고맙다 타이치군」
타이치「그렇게 열내지 마」
타이치「그러니까 그런 거야. 봐, 목적이 있어야 살아갈 보람이 생기는 거잖아?」
토모키「……보람이라」
토모키「뭐 일단 식량이 없으면 그런 것도 소용없겠지만」
타이치「그리고 이런 게 좀 부러웠었어」
토모키「이런 거라니?」
타이치「청춘 군상 그래피티」
타이치「무슨 맛이라고 생각해?」
토모키「그거 먹는 거야?」
토모키는 일어나서, 안테나 주변을 한 바퀴 돌았다.
토모키「그래서……그것뿐?」
타이치「할 일이 있다는 건 좋은 일이야」
토모키「……딴 일도 많잖아. 물자 탐색, 이라던가」
타이치「적어도 이 부활동에는 희망이 있어」
토모키「절망을 확인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르는데?」
타이치「절망을 확인한다는 희망이 있어」
토모키「……통 모르겠단 말야, 네 생각」
타이치「그―래―?」
토모키「어떻게 그렇게 즐거울 수 있을까」
타이치「헷헤」
토모키「진짜로 모르겠다」
토모키는 팔로 눈가를 비볐다.
토모키「내가 아는 건……이 안테나하고 모바일용 기재의 연결방법뿐」
타이치「당장 부탁해」
토모키「뭐야―, 좀 더 감동 좀 해 봐라―」
타이치「바보, 마음 속으로 울고 있다고. 통곡하고 있어. 눈물 젖은 두만강이란 말이다」
토모키「그렇게는 안 보이는데~」
타이치「남자끼리 부비적부비적거려도 썰렁할 뿐이잖냐, 그런 이벤트를 보고 싶으면 너네 누나를 데려와」
토모키「너무해―!」
타이치「자, 그렇게 정했으면 후딱 일해! 방송 예정일은 내일이니께」
토모키「예이예이」
토모키「그럼 기재, 조달해 올게」
토모키「……타이치?」
교내로 돌아가려던 발을 멈추는 토모키.
타이치「응?」
토모키「……난 분명히 누님하고 화해하라고 할 줄 알았어, 동생이라면 누님을 도와라, 뭐 이런 식으로」
타이치「아니, 남매싸움은 아주 평범한 인생인데 뭐. 내가 왜 말려」
토모키「……」
타이치「용건은 본좌를 도우라는 것뿐」
가슴을 편다.
토모키「……너도 참 거물이야」
타이치「적응계수 80을 오버한 오버로드니까요」
토모키「……그런 오버로드라도, 앞으로도 보통 친구로 대해 줄게」
토모키「그런 거, 별로 안 싫어하니까」
교내로 휙 사라졌다. 도망치듯이.
타이치「별로 안 싫어하니까……푸훗!」
그렇게 말한 토모키는, 순간적으로 인간의 한계 수준까지 얼굴이 빨개져 있었다.
타이치「쪽팔려할 거면 아예 말하질 말던가. 내참」
안테나를 올려다 본다.
타이치「그래도, 이걸로 조금은 진척되겠네」
즐거운 부활동 놀이.
소중한 추억으로 남을 수 있기를.
기억에는 남지 않겠지만.
이런 가능성도 있다는 것을, 일기에 남겨두고 싶다.
미키「안―녕하―세요―」
타이치「부실 가서 새 목장갑 좀 갖다 줄래?」
미키「갑자기 부려먹히는 나……」
교내로 사라진다.
미사토「안녕하세요」
타이치「어깨 주물러 주세요」
미사토「아, 네」
미사토「주물럭주물럭」
어깨 맛사지를 받으며 작업.
미사토「별로 안 뭉쳤는데요」
타이치「기분이 좋아요」
미사토「주물럭주물럭」
미사토「근데, 어째서 제가 어깨를 주무르는 거죠」
눈치챘다.
타이치「무심코」
키리「……왔습니다」
타이치「굿모닝 키스를 해라」
키리「에……………………?」
미사토「그런 걸 강요하면 안 돼요―」
타이치「허걱―!」
가볍게 보이면서 육중한 일격이었다.

미키「목장갑, 가져왔어요―」
미키「핫, 자고 있어!?」
미키「사람을 멋대로 부려먹고, 자기는 자고 있어어어어」
미키「……바지 내리기 형에 처하겠습니다」
미키「질질―」
미사토「잠깐 야마노베, 팬티도 내려가고 있어요」
미키「질질질―」
미사토「잠깐잠깐!」
미키「그치만, 여자가 여기까지 와서 물러날 순 없어요」
미키「이대로 밀고 갈 수밖에 없어요」
미사토「말하는 폼이 페케군 같아요……」
미키「스승과 제자니까요」
미키「키리찡키리찡, 봐봐, 뭐 보여?」
키리「보기 싫어!」
미키「영―차 영―차……」
미키「우왓―, 나왔다―, 피융하고, 뭔가 나왔다―!!」
미키「나와버렸어요―!」
미사토「그러니까 내가 말했는데―!」
키리「우선 좀 덮어 봐―! 신경쓰여―!」
움찔움찔
타이치「……으, 으응……」
소란스러움에 눈이 떠졌다.
미키「냐옹―, 이제 접근할 수 없어요―!」
미사토「도, 돌이킬 수 없는 짓을」
키리「미키가 했으니까, 책임 져!」
미키「무리무리, 물리적으로 무리! 처녀잖아. 이럴 땐 연장자이신 부장선배가」
미사토「저, 저도 처녀예요! 연장자 같은 건 관계 없잖아요―!」
미키「……선배도 미경험인가요?」
키리「나, 나도야……절대로 못 해……」
미키「처녀들한테 저 물체는 너무 잔인해요!」
시끄러운데.
일어난다.
묘하게 시원했다.
바람이 피부에 사무칠 정도로 강하게 느껴졌다. 감긴가.
타이치「저기―?」
세 사람의 시선이, 일제히 이쪽을 향했다.
그리고 일제히 움찔했다.
타이치「무슨 일이신가요, 아가씨들, 훗」
신사적으로 물어보았다.
세 명「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앗!?」
귀를 찌르는 비명×3.
잽싸게 도망치기 시작했다.
거기에 나도 잽싸게 뒤쫓았다.
타이치「왜 그러시나요, 아가씨?」
미사토「오, 오지 마세요―! 다가오지 마요, 싫어―, 기분 나빠―!!」
타이치「에―――――――――――ㄱ!!」
거절.
거절당했다.
난 또다시, 거절당하고 있다.
사람들에게 혐오받는 운명.
타이치「제기랄――――――――――!」
열받아서 계속 쫓아간다.
울 것 같았다.
타이치「머리가 하얀 게 그렇게 이상하냐―!」
미키「그런 건 전혀 신경 안 써요―! 아―, 오지 마―! 꺄아―!」
타이치「내가 그렇게 기븐 나쁘냐―!」
미키「앗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꺄―꺄―꺄―!! 흔들린다―!! 흔들린다―!!」
이 녀석만은 재밌어 보인다.
타이치「내 마음도 애절하게 흔들리고 있어―!!」
키리「시, 싫어, 싫어싫어싫어싫어, 싫어――――――――――!」
타이치「그렇게 싫냐―!」
타이치「인격면에서 미움받는다면 어쩔 수 없지만, 겉모습만으로 혐오하다니 인간으로서 최악이야―!」
목표를 바꾼다.
타이치「우랴앗―――――――!!」
키리「싫어―――――――――――」
타이치「이봐이봐, 손이 닿을 것 같은데 키리씨!」
미키「아―, 키리찡이 능욕당한다―!」
미사토「가면 안 돼!」
미키「그치만 키리찡이……키리찡이―!」
미사토「이미 못 구해요……」
미키「그런, 이대로는 키리찡의 정조가……」
미사토「사쿠라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서, 도망치죠!」
미키「키리찡……미안……널 안 잊을게」
키리「잠깐 거짓말이지!? 선배! 미키―! 너무해―!」
타이치「포기해라 사쿠라 키리……아니……애노예ㆍ사쿠라 키리!」
펜스까지 몰아붙였다.
키리「으, 으, 윽~」
반 울상이다.
계속 다가간다.
키리「으, 으, 으……마, 만지지 마 치한――――――――!!」
타이치「크악―!」
폭주한 키리에게 일격을 맞았다.
타이치「으윽」
몸을 일으키자, 세 사람은 허둥지둥 교내로 내려가는 중이었다.
타이치「……으으……으으으」
울었다.
굴욕의 눈물이었다.
이렇게 슬픈 일이.
인간의 가치는 외모인 것인가.
평소에 귀엽다고 말해 줬던 것도……전부 거짓말이었나.
하얀 머리. 독특한 홍채를 가진 눈동자. 코도 조금 휘어 있을 지도.
기이한 풍모로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바꿀 방법이 없잖아!
마이클처럼 성형하라고 해도.
애초에 눈동자하고 머리카락을 성형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리고……그건 패배를 인정하는 것 같아서 싫다.
아아~.
사람들에게 거절당하는 것은 정말로 괴롭군…….
뭣때문에 개그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는 건지, 가끔씩 알 수가 없어진다.
난 옛날이야기의 주인공처럼 모두에게 사랑받는 존재가 되고 싶을 뿐인데.
가끔씩 기분이 업돼서 아주 조금 오버할 때도 있지만.
있지……만……말야…….
타이치「오오」
오열.
세상은 한없이 잔인했다.
고개를 숙인다.
자○가 보였다.
타이치「이건 뭔교!」
게다가 정신적으로 시달린 탓인지 빳빳해져 있었다. 난 마조니까.
바지하고 팬티는.
타이치「우왓, 저런 데에?」
아까 쓰러졌던 곳.
입는다.
타이치「그렇구나……곶츄를 내밀어서구나……」
조금 위안이 된다.
타이치「그건 그렇고, 왜 하반신을 벗고 있었을까……난」
수수께끼가 많은 사건이었다.
근데 잠깐.
타이치「……다 봤다……세 사람이」
죽고 싶어졌다.
이런 때이먈로 포지티브ㆍ띵킹!
타이치「풀 전개로 폭주한 덕분에, 화성인이라는 것이 안 들켰잖아!」
사쿠라바「가성인가?」
타이치「성장기니까」
토모키「흐―음. 그랬구나. 몰랐어」
타이치「언제 왔냐」
다시 쓰러져 울었다.
………….
이제 내 대인관계는 우직쾅쾅.
토모키「지금 막 왔어. 자, 여기 맞지?」
두 사람은 기재를 들고 있었다.
사쿠라바「걱정하지 마라 타이치」
타이치「뭘 말여……」
사쿠라바「사이즈와 팽창율의 관계 때문에, 아무리 커도 반드시 여분의 껍질이 생긴다」
타이치「그딴 위로 들어도 안 기뻐!」
토모키「일단 이건 어떻게 해?」
타이치「오, 땡큐. 대충 놔 둬. 그리고, 책임을 지고 연결해 줘」
토모키「부려먹힌다……은근슬쩍 부려먹힌다……」
토모키「그거 말고 필요한 건?」
타이치「배터리가 필요할 것 같은데. 교내에 있던가?」
토모키「합숙 때 썼던 거 없나?」
타이치「또 텐트가 필요해. 기재가 열에 약하고, 비 와도 좀 그러니까」
사쿠라바「텐트라면 여기에 세 개 있는데」
타이치「뭐라구Yo? 어디에Yo?」
일부러 오버해서 물어본다.
토모키「미안하지만 다 파악했어」
나도.
사쿠라바「우리들의……바지 속에」
타이치「와하하하하!」
토모키「아하하하핫」
사쿠라바「후후후」
그래도 받아준다.
삼바보, 저질 개그 원츄.
토모키「그럼 그거겠네?」
타이치「어, 뭐가뭐가?」
토모키「푸훗……보, 보통 땐 접어서 보관해 둡니다」
타이치「와하하하하하!」
사쿠라바「하하핫」
연이어 받아준다.
사쿠라바「그리고, 높이에 개인차가 있기도 하다」
토모키「푸훗!!」
타이치「그리고 또, 원터치 텐트란 것도 있잖아. 피융 하고 튀어오르면서 지어지는 작은 텐트. 그것처럼 흥분을 하면 순간적으로 훌륭한 진지가 구축―――」
토모키「……푸……풋!!」
사쿠라바「……크흐흐」
서로의 어깨를 두드리며, 배꼽을 잡는다.
타이치「특허 따자 특허」
사쿠라바「바이오 기술을 응용한 텐트로군」
토모키「배, 배 아프다」
타이치「그리고, 히트 상품이 돼서 인터뷰에 출연해 아이디어의 동기를 물어보면……'곧휴입니다'라고 대답을―――풋!」
나까지 터져버렸다.
사쿠라바「……키키킥」
토모키「그, 그만, 그만, 복근의 한계가……」
셋이 함께 숨을 돌렸다.
타이치「그러니까, 제대로 된 텐트 말인데」
이야기를 원래대로 돌린다.
토모키「아―……그러고 보니 작년 부 예산 사용예정에 있던 거 같은데. 그걸로 샀었나?」
타이치「미안……그거 나 때문에 다 날렸어」
토모키「어?」
사쿠라바「……신카와 유타카 사건 말이다」
그 한 마디로, 숙연해지는 공기.
토모키「……그랬었지」
타이치「뭐, 나한테 여러모로 책임이 있었으니까」
사쿠라바「신경쓰지 마라」
사쿠라바「네가 혼자서 해낼 수 있는 남자라고, 난 믿고 있다」
타이치「나 혼자 하게 냅둘 작정이냐!」
타이치「애초에 뭘 위해 엽서를 보낸 건데 내가!」
사쿠라바「신뢰. 아름다운 말이다」
토모키「겁나게 얍삽하게 들리는데……」
타이치「에잇, 됐으니까 텐트하고 배터리를 당장 줏어 와!」
사쿠라바「그럼 난 배터리를」
토모키「난 텐트군……혼자서 들 수 있을까?」
타이치「차로 운반하지?」
토모키「……면허 없는데……아, 맞다」
타이치「후후훗, 짭새는 없다네 마이 프렌드」
애초에 멋대로 방송국 만드는 것부터가 이미 범죄입니다.
토모키「운전 해 보고 싶어. 차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타이치「매뉴얼 차가 더 쉬울 거야」
토모키「매뉴얼?」
타이치「응. 페달 세 개 달린 거」
타이치「직원용 주차장에서 찾으면 나올 거야. 페달 두 개는 안 돼. 그건 초보자가 굴리기엔 꽤 위험하니까」
토모키「오케이―」
타이치「그럼 라바는 배터리군」
사쿠라바「아아, 맡겨 둬」
사쿠라바「하나 질문이 있는데」
타이치「응?」
사쿠라바「그건 어떻게 생겼나?」
타이치「토모키, 사쿠라바도 끌고 가. 그리고 텐트하고 배터리 둘 다 부탁해」
토모키「……응, 그럴게」
사쿠라바는 혼자 쓰기엔 한없이 쓸모없는 남자였다.
두 사람은 떠났다.
타이치「그럼」
슬슬 점심인가.
배가 고팠다.
요코의 도시락이 있지만……사정에 의해 2인분.
누구하고 먹을까.

2학년 교실……부재.
토오코는 정말로 어떻게 된 걸까.
엽서를 못 본 걸까.
……부잣집 따님이니 우편함 같은 건 자기 손으로 확인 안 하는 건지도 모른다.
게다가 이런 상황에, 설마 편지가 오리라고는 생각 못 하는 거겠지.
나중에 상태를 보러 가보자.

그리고, 1학년 교실.
방금 전과 배경이 비슷하지만, 우연일 것이다.
플라워즈는 없다.
다른 교실도 찾아 볼까.
없다.
여기도 똑같다.
책상의 기울기 상태까지 비슷하다.
그럼, 다음.
칠판 지우개의 위치까지 똑같다.
이런 걸 동일성이 있다고 한다.
그래도, 우연일 것이다. 그럴 것이다.
우선 미키도 키리도 없다.
……진짜로 도망친 건가.
어디서 먹을까.
키리 자리에서 먹어 주지.
오늘은 주먹밥이었다.
김도 뿌려져 있고, 꽤 맛있어 보인다.
타이치「잘먹겠습니다」
야금야금
키리「……왜 제 자리에서……」
타이치「어서 와」
키리「저기……거기……제 자리……」
타이치「그렇구나. 앉을래?」
키리「…………자리가……」
타이치「아아, 그렇지. 미안」
다른 의자로 바꿔 다시 앉는다.
마주치는 얼굴.
키리「……저기」
타이치「드시게나. 2인분이 있다」
키리「……미키가 조달해 오기로 해서……」
타이치「하나 정돈 괜찮잖아?」
키리「……네에」
손을 뻗는다.
돌파 성공.
뭐, 키리도 요즘 많이 약해졌으니까.
타이치「칼날처럼 무기가 될 만한 건 만지지 마」
키리「……네」
키리「죽고 싶지는 않으니까요」
타이치「음음. 요코는 세니까 말야. 행동적이고」
키리「……그 분은, 왜 그렇게 투석을 잘 하는 거죠?」
키리「이상해요, 분명」
타이치「웬만한 건 다 잘해」
타이치「근본적인 완성도가 다르달까」
뭘 해도 순식간에 익숙해진다.
키리「특수한 훈련이라도 받았나요?」
타이치「아―, 받긴 받았지. 언젠가 꽤 오랫동안 외국에 가서 현지 군사 교관을 고용했었어」
키리「군사……」
놀란다.
타이치「투석도 그 때 배웠나. 어쩌면 양치기한테서 배운 걸지도」
타이치「아직도 아파?」
키리「……그다지」
타이치「그거 다행이네」
타이치「그 외에도 여러가지를 하고 있는 것 같아」
타이치「인생의 대부분을 거의 자기 훈련에 쓰고 있는 것 같아」
타이치「나도 일단은 격투가지만, 도저히 상대가 안 돼」
키리「격투 같은 것도 하셨나요?」
잘 물어보셨습니다.
타이치「가라데라 하지」
키리「……몰라요」
타이치「엇?」
키리「공수도의 짝퉁인가요?」
타이치「아니야 임마!」
키리「꺄앗」
타이치「……아, 미안……그만 열이 받아서……」
키리는 3미터 정도 도망쳐, 전투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타이치「이리 와, 안 잡아먹으니까」
불안해하며 돌아온다.
타이치「자자, 먹자먹자. 전 상냥해요」
공수도의 짝퉁이란 말을 들으면 그만 빡돌아버리는 나이기도 했다.
키리「……」
타이치「말은 안 했지만, 아마 총기도 쓸 수 있을 거야」
타이치「격투로 해도, 접근전이 되면 아마 순식간에 죽어버리지 않을까나. 여러가지 비기도 가지고 있고, 지난번엔 엄청 비싼 나이프도 샀었지」
키리「……그런……아무리 그래도 죽이기까지……」
타이치「자기도 날 죽이려 했으면서」
키리「…………」
타이치「뭐―, 그런 건 신경 쓰지 마」
키리「선배는……아무렇지도 않은가요?」
키리「저, 당신을……증오하고 있어요」
키리「목숨을 신세지고,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 이상, 이런 상황은 어쩔 수 없죠」
키리「하지만……당신이 싫다는 건 변함없어요」
타이치「흠」
키리「그건 착각하지 말아주세요」
타이치「안 해. 그걸로 괜찮다고 생각하니까」
키리「……하지만, 같이 밥 먹으면서……친해지려 하시는 건」
타이치「가까이서 보고 싶을 뿐이야」
키리「……가까이서? 뭘요?」
타이치「키리찡을」
생긋.
키리「노, 놀리지 마세요!」
조금 홍조.
타이치「보석은 만지는 게 아냐」
타이치「보고 즐기는 거지」
키리「……선배에겐, 분명히 그런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요」
키리「마음에 안 들어요. 그렇게 여자를 가지고 놀고 싶으시면, 하세쿠라 선배하고 그러시면 되잖아요」
키리「저희들은, 당신을 위한 장난감이 아니에요」
타이치「안돼. 요코는 자아를 안 가지고 있어」
키리「네……?」
타이치「도망치고 있는 거지. 옛날부터 그랬어」
타이치「불안해하고 있어」
키리는 의외라는 듯한 눈초리로 바라보앗다.
키리「……전 선배님들의 관계를 이해 못하겠어요」
타이치「뭐, 너무 신경쓰지 마잉」
나와 요코의 히스토리는, 그렇게 즐거운 추억은 아니다. 그 무엇도.
타이치「장난감으로 쓰기에는, 죽도 밥도 안 된달까나」
타이치「……지금이 최선이야」
키리「무슨 뜻이죠?」
타이치「으―음……」
생각한다.
하지만 적절한 해석이 떠오르지 않는다.
애초에 키리찡은 나를 대부분 파악하고 있으니, 새삼스럽게 설명할 필요도 없겠지만.
타이치「아아. 그리고, 되도록이면 내 곁에 있는 편이 좋아」
키리「네……?」
타이치「단단히 말해 뒀으니까 괜찮을 거라 생각하지만, 내가 한눈을 팔 때 키리찡한테 뭘 할 가능성도 있고」
타이치「나한테 안 들키게 키리찡의 목을 따버릴지도 모르고」
키리는 목덜미를 감쌌다.
키리「……모, 목을……」
부들부들 떤다.
타이치「목숨을 위해, 내 곁에 있어야만 한다……뭐 이러면 되잖아」
키리「……물론, 그렇습니다만……」
타이치「화해라기 보단 휴전 비슷한 느낌이네」
키리「…………」
타이치「그런 연유로, 오늘부턴 사이좋게 싸우자」
왼손을 내민다.
키리「……네」
마지못해하며, 키리는 오른손을……내밀었지만 악수를 할 수가 없다.
순간 발끈해하며, 손을 뒤로 뺀다.
키리「…………놀리시는 건가요」
타이치「그러니까 농담에 일일히 화내지 말아 줘」
제대로 오른손을 내밀어, 키리의 오른손을 잡는다.
가늘고 여린 손.
분명히 무기 같은 건 어울리지 않는다.
요코라는 위험한 관문을 지나, 조금은 관계가 개선된 것 같다.
타이치「그럼 휴전조약을 축하하는 주먹밥 파티를」
미키「조달 완료―!」
미키「……어라아?」
타이치「수고」
미키「왜 같이 있어요?」
타이치「내가 꼬셨어」
미키「……무서운 사람이다……적마저도 아군으로……」
타이치「이것이 삼고초려라는 거지」
키리「……아냐……」
미키「아―, 다른 거 먹고 있어―, 이 대량의 식량은 어쩔 거야―?」
미키는 토트팩의 내용물을, 책상 위에 우당탕 쏟아놓았다.
산처럼 책상 위에 쌓였다.
타이치「오오오오오옷」
타이치「전부 과자잖아!」
미키「에헷」
키리「……통조림 같은 건?」
미키「다 떨어졌어」
타이치「으―음. 과자로 점심을 때우다니……슬프다」
미키「그런가요?」
타이치「건강에도 안 좋아」
미키「그래도 미키는 과자 만세」
키리「난 벌써 배불러」
타이치「미안, 나도」
미키「……에―」
미키「그럼 혼자서 먹을거다 뭐」
삐졌다.
키리「……살쪄」
미키「……」
미키「살쪄도 과자 만세」
감자칩을 뜯는다.
타이치「내심으론 신경쓰네 뭐」
미키「그치만그치만~」
키리「울지 마……」
타이치「자, 그럼 이 주먹밥을 주지」
성인 남성용 사이즈니까, 미키에겐 딱 맞을 것이다.
내가 좀 부족하지만……뭐 어때.
미키「와아아, 주먹밥이다아아~」
주먹밥을 쥔 손에 매달린다.
타이치「먹고 싶어―? 응―?」
높이 쳐든다.
미키「앗, 먹고 싶어요―」
타이치「호이호이」
오른쪽.
미키「아우우~」
타이치「으랴으랴」
왼쪽.
미키「우아아~」
키리「……괴롭힘이다」
타이치「……자」
미키「아아, 맛있쪄」
허겁지겁 먹기 시작한다.
과자의 산이 남겨졌다.
타이치「……여자들치곤 불안한 식생활인데. 맨날 이래?」
키리「통조림이나 빵으로 때워요」
타이치「야채 먹어」
키리「없어요」
타이치「자, 토마토. 딱 두 개 있어」
미키「아아―, 토마토다~」
타이치「응―? 먹고 싶어?」
미키「먹고 싶슴다!」
타이치「호이호이」
오른쪽.
미키「아우우~」
타이치「으랴으랴」
왼쪽.
미키「우아아~」
키리「……역시 이 사람은……짓궂어」
타이치「후우」
키리「으응~~~」
미키「시큼해~」
키리「그래도 맛있어……」
미키「눈물날 것 같아」
키리「살아있길 잘했어」
미키「냐옹~」
어떤 식생활을 하고 있는 거야, 이 둘.
미키와 키리가 입을『*』모양으로 하면서 토마토를 먹는 모습을 곁눈질로 바라보며, 나는 수통으로 목을 축였다.
타이치「케헥, 쿨럭!」
보고 있어 보고 있어!!
빤히 보고 있어!!
질투의 화신…….
나에게 알려주려는 듯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건……위협이겠지.
여닌자니까 원래 은밀도는 높으니.
나 따위한테 들킬 그녀가 아니다.
미키「왜 그러세염?」
타이치「……우리들은 이치하라식 첩보술로 감시당하고 있어」
미키「이치하라?」
타이치「Eㆍ이치하라를 정점으로 하는, 실력 좋은 여닌자 집단에 전해지는 스파이 기술이야」
미키「?」
키리「꺄아아아아앗!?」
키리도 본 것 같다.
키리「선배, 서, 선배……어, 어라어라……」
타이치「괜찮아, 내 옆에만 있어」
키리「……네, 네에……」
미키「엥? 엥?」
키리「어, 어라……」
키리가 손가락을 내민다. 미키가「우잉?」하며 바라본다.
요코의 모습은 없다.
미키「……어? 아무것도 없는데, 왜 그래?」
키리「지, 지금 분명히……선배?」
타이치「시무라 현상이야. 미키는 이미 물리적으로 요코를 관측할 수 없어」
※시무라 현상=타이치 물리학. 안정되어 있는 특정 상황에서 발생하는 관측현상의 일종. 보이는 것은 보이지만, 안 보이는 것은 안 보이게 속성이 설정되어, 그것이 물리적으로 반영된다. 상황 안에 큰 변화가 일어나면 속성은 대개 사라진다.
아아아, 보고 있어…….
키리「……큭」
키리는 심하게 긴장하고 있었다.
반사적으로 그 어깨를 안는다.
움찔, 하고 요코의 눈초리가 떨렸다.
이것은 겁나게 드문 일입니다.
키리「……으, 으으으……」
키리는 긴장하고 있어서, 내 자연스러운 행동을 눈치채지 못했다.
새끼고양이같다.
타이치「……가는 어깨네」
사랑스러운 반면, 부수고 싶다는 욕구.
그 둘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었다.
……손을 뗀다.
타이치「키리찡, 조심해」
키리「……어떤 것을?」
타이치「위해는 끼치지 않는다 해도, 괴롭힐 가능성이 있어」
키리「괴, 괴롭혀? 구체적으로 어떻게요?」
타이치「으―음……꽤 음험할 거라 생각해」
타이치「쪽팔리게 하거나, 장난으로 끝나기 직전까지 성희롱을 하거나」
키리「……선배가 하는 거하고 똑같잖아요」
타이치「윽」
키리「……역시……신뢰할 수 없어」
키리는 미키의 곁으로 돌아갔다.
아아아, 동성에게 빼앗겨버렸다.
타이치「이 녀석」
미키를 원망해 본다.
미키「……네에에?」

자 그럼.
부활동은 다른 사람들한테 맡기고.
토오코를 줏어와 볼까요.
차로 가자.
교무실에서 열쇠를 가져와, 맞는 차를 찾는다.
타이치「우와……」
주차장은 참혹해져 있었다.
마치 폭주 자동차가 뺑소니를 반복한 것처럼.
타이치「전부 찌그러져 있어……」
저기는 범퍼가 떨어졌다.
나무가 부러져 있다.
앞유리에 거미줄 모양 금이.
타이치「……토모키 선생……」
신의 경지로 운전 재능이 없는 토모키였다.
타이치「역시 초보자한테 미션은 무리인가, 크크크」
그에 비하면 나야 뭐, 타는 법은 제대로 알고 있습니다요.
인간으로서의 격 차이라는 거지.
열쇠가 맞는 차에 탑승한다.
남자니까 당연히 미션.
자동변속.
여성용이었다.
타이치「퉷, 한번 가 보자고!」
거칠어진 나였다.
조금 기합이 들어갔다.
반 클러치에서 시원하게 엑셀로 연결했다.
이런, 눈 앞의 차에 부딪혀버렸다.
안전벨트 하길 잘했다.
일단 후진하자.
타이치「백 기어, 백 기어가……」
타이어 등 뒤의 나무를 분질러버렸다.
타이치「안 좋은데~」
이런 실수, 백만 번에 한 번도 없는데. 초 레어 이벤트다.
재시도.
이런, 기어가 후진인 채였다.
백만 분의 일에 백만 분의 일을 곱하면……얼마여.
뭐 좋아.
눈부실 정도로 기적적이다.
비싸 보이는 찬데……미안, 지금은 죽은 사카기바라 교사.
앞으로 나간다.
앗차차, 사이드 브레이크를 넣고 있었다.
푼다.
쿠당, 하고 차가 급발진한다.
옆에 일렬로 늘어서 있던 차 옆구리를 들이받으며, 범퍼를 박살내버렸다.
꽤나 효율적으로 부숴버렸는걸.
이런―, 교장의 페라리도 심한 꼴이 됐는데.
타이치「……」
뭐, 어때. 이런 위험한 학교에서 펠라하는 게 나쁘지.
※펠라하다=타이치어. 두 개의 뜻이 있다. ①페라리의 주인이 되는 것. ②(전략)
천천히 전진. 우회전.
타이치「좋아」
엔진이 멈췄다.
타이치「…………」
재시도.
후진했다.
타이치「……」
뼈저리게 생각하지만, 역시 안전 벨트는 필수야.
타이치「굴하지 않고 GO!」
차가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다.
타이치「……으―음」
바이오리듬이 불안정한 것 같다.
타이치「하지만 일본 차도 참 약하네」
이런 차로 미 서부 경찰에 배치되는 건, 꿈 속의 꿈.
기껏해야 방수차로 동원되어 박살나는 정도가 고작.
요코가 창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타이치「……뭐야?」
창문을 연다.
요코「내려」
내린다.
요코「기다려」
타이치「……응」
땅바닥에『の』자를 써 가며 기다리자, 안에서 차가 스르르 나왔다.
물 흐르듯 빠져나와, 눈 앞에 정차.
요코「타」
조수석에 탄다.
요코「어디 가고 싶어?」
타이치「……키리하라 성입니다 감사합니다」
타고 가게 되었다.
슬픈 마음으로 가득 찼다.

토오코의 집은 크다.
너무 커서 태양의 빛을 가려, 그 일대는 어둠밖에 보이지 않는다.
난 밤눈이 좋지만, 왜인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인류가 사라져버린 지금, 그 정도의 불가사의 현상은 신경쓸 만한 가치도 없지만.
안에 들어간다.
당연하게도 갑옷 등이 놓여져 있다.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창문이 막혀 있기 때문에 새카맣다.
이래서는 아무리 밤눈이 좋아도, 시야확보는 불가능.
저택을 더듬더듬 배회한다.
미로 같았다.
토오코의 방은 어딜까.
2층일까.
계단을 올라간다.
왜인지 좀비가 나올 듯한 저택이다.
타이치「토오코―!」
대답은 없다.
목소리는 저택의 호화로운 융단에 빨려버렸다.
방을 하나하나 확인한다.
귀찮다.
……요코보고 따라오라 할 걸.
그러면서, 무수히 많은 문 하나를 열자.
빛이 반짝였다.
타이치「……………………」
창문은 열려 있었다.
슬그머니 들어온 바람이, 방 안을 돌아 나간다.
그래서일까.
썩은 냄새는 나지 않았다.
타이치「……토오코」
만지고 싶지 않았다.
혐오감은 아니다.
그 모습이 눈부시게 보였기에.
잠자는 공주를 떠올리게 하는 우아함.
군죠의 토오코는 혼자였다.
원래는 부자들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적응계수 조사 시험에 걸려, 여기에 왔다.
……저택과 함께.
적응계수는 백분율로 나타난다.
토오코는 46.
군죠에서는 중간 정도.
절반은 보통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고고하던 시설의 토오코는, 긍지와 굴욕으로 뒤범벅되어…….
아름다웠다.
대화를 거절했다. 교사들에게도.
학교에 와도 교복을 거부하고, 안에 틀어박혀 사람을 거부하고.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누구에게도 지배받지 않고.
하지만 마음 속은, 사람에 대한 갈망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그래서 난, 바로 거기에 끌려버렸다.
그리고 지금, 토오코는 침대 위에서 작고 아름다운 손을 쥐고 있었다.
스스로 그렇게 되었을까.
자는 듯이 떠났을까.
분명히, 그랬을 것이다.
비극적인 결말이라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는.
하지만 슬픔조차 뛰어넘는 압도적인 존엄함에.
나는 감동해, 우두커니 서 있었다.
타이치「……그런가」
혼자서 떠났다.
그 토오코가……혼자서.
타이치「제법인데……토오코」
쇠약일까. 약일까. 아사일까.
그것은 모른다.
알고 싶지도 않다.
한 가지 할 수 있는 말.
화려한 침대에 누워, 시간을 멈춘 듯 누워 있는 토오코의 모습은, 꿈과 현실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환상적인 광경이었다.
축복을.
문을 닫는다.
어둠 속에서 홀로.
저택을 나오기로 했다.
리셋이 되면, 다시 그녀를 만날 수 있다.
그 사실이 뇌리에 스쳐간 것은, 저택을 나오기 직전이었다.
고귀함도, 되풀이되면 반짝임을 잃어버린다.
토오코의 결의와, 외로움과, 투쟁들도.
……울렁거렸다.
더럽혀진 듯한 기분이었다.
그럼, 나는 무엇을 위해…….
토오코를 떼어버린 걸까.
돌아오는 길의 차 안에서도, 울렁거림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럼 다시 부활동.
화장실에 들어간다.
자연스럽게 여자 화장실에 들어가는 나.
거울을 본다.
내 얼굴이 비치고 있다.
하얀 머리.
독특한 모양의 눈동자.
굳이 말하자면 추악.
내 눈으로 봐도, 그렇게 보인다.
잘생겼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여자같다고.
뭐, 그렇겠지.
그래서『그런 짓』을 당한 거고.
내 의견은 다르다.
이 얼굴은 어딘지 모르게 이질적이고, 두렵기 그지없다.
생기가 없고, 사람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다.
……인형.
한스ㆍ벨머의 구체관절인형.
아름답지만, 오싹한 기분……어둠을 포함하고 있다.
어둠을 좋아하는 자들이 애착을 가지는 것은 당연.
그리고 나도 또한, 같은 어둠에 삼켜져버렸다.
하지만 난……평범함이 좋다.
인간은 긴 역사 속에서, 어떠한 윤리를 만들어내려 하는 걸까.
밝고 어둠이 없는 건전함일까.
……그건 착각이 아닐까.
밀어넣을수록, 어둠은 응축되는 게 아닐까.
심연의 어둠에서 태어난 것.
그것을 과연,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검디 검은 사람들의 머리칼이 부럽다. 부러워서 견딜 수 없다.
물들이려고도 해 봤다.
하지만 두발의 성장은 빠르다.
새로 자란 부위로부터 금새 백색이 침공해 온다.
검은 털에 덮여 축 처진 회색을 볼 때마다 의식해버린다.
모두 장식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지금의 내가, 완전한 장식물로 있기 위한.
섬뜩한 얼굴.
구토가 난다.
그렇게 보이는 것은, 자기혐오 탓도 있을 것이다.
타이치「……」
아아, 위험한 정신상태다.
토오코의 일을, 난 너무나도 잘된 일이라 생각하고 있다.
퇴폐를 사랑하고 있다.
너무 가라앉으면, 안 되는데.
칸막이에서 소리가 났다.
타이치「…………」
망설임없이, 발이 향한다.
키리「……어?」
변기에는, 키리가 있었다.
아연실색해 있었다.
새파래진 얼굴.
몸상태가 좋지 않은 것 같다.
변기의 입구를, 양손으로 가로막듯이 자리를 잡는다.
이제 못 도망치겠네, 키리.
타이치「왜 그래?」
타인같이 들리는, 시원스런 목소리.
마음이 급속도로 진정된다.
평정을 되찾아 간다.
시야가 날카로워진다.
세밀한 디테일을 구별할 수 있게 된다.
분명 동공도 변화하고 있을 것이다.
암흑 속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두 눈.
여기는 조금 어두우니, 키리에게도 보일 것이 틀림없다.
움찔, 하고 키리의 손가락이 움직인다.
민감하게 반응해버린다.
타이치「왜 그래?」
키리「저, 저기……」
이상한 공기.
키리도 느끼고 있다.
내 말이 너무 부드러워서, 당황해하고 있다.
키리「……기분이……나빠서……」
타이치「그거 큰일이네」
타이치「괜찮아?」
키리「……네……저기……저……」
타이치「응?」
키리「……저기……생리……마무리가 안 좋아서……」
타이치「헤에. 그랬구나」
타이치「몰랐어」
떨고 있다.
유리공예.
아름답고 섬세한.
이노센스.
타이치「어떻게 안 좋아?」
키리「전체적으로 불안정하고……주기가 일정하지 않고……」
타이치「아아, 네 나이쯤에는 대체로 그래」
아름다운 유리.
타이치「성장 도중이라, 호르몬 밸런스가 성숙되지 않은 탓이야」
나의 유리.
타이치「특히 키리는 체격이 작아서, 성장이 늦어지는 것 같으니까」
안으면, 깨진다.
키리「……그……런가요……」
안지 않으면, 탁해진다.
유리가 흙으로.
타이치「응응」
아름다움은, 손상된다.
키리「방금 전 끝난 것 같은데……잔혈이……많아서……」
평범해진다. 평범한 여자가.
타이치「응, 그래서?」
지금만의 키리.
키리「그 때……자주 빈혈이……」
타이치「흐응. 그래, 그 잔혈이란 건……」
언제나 아름다웠다.
고민할 때도
타이치「지금도?」
지금도.
키리「……히익……」
표정. 명백한 공포.
심연의 암흑이, 칸막이에 가득 찬다.
타이치「지금도 아파?」
키리「……뭘……하시려고……?」
지금까지 짓고 있던 희미한 웃음을, 싹 지웠다.
타이치「……내 질문에 대답해」
키리「싫어……」
초조해진다.
초조해지고, 만지고 싶어진다.
조금씩 높아지는 충동.
갈등 비슷한 것은 있다.
하지만 저항하는 이성은, 눈꼽보다도 작다.
역부족이라 할 수 있었다.
타이치「대답해」
키리「……저리……가요……」
이 가녀린 예술을, 왜 지금까지 방치해 뒀을까.
타이치「대답하면, 가 줄게」
키리「…………」
키리「지금……도……아파요」
함부로 만지면, 지문이 찍혀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타이치「흐음, 그럼」
타이치「그 허벅지 사이로 흘러내리는 게, 그거야?」
키리「……!?」
놀라는 키리.
눈치채지 못했던 걸까.
긴장으로 감각이 마비되어 있는 것 같다.
타이치「……진한 피네」
봐버렸다.
피를.
이런 정신상태에서.
그래도.
상관없다.
키리를, 영원으로 만들자.
밀크 크라운.
한 방울이 만들어내는, 순간의 조형.
유리공예인 키리 역시, 부서지는 순간이 최고.
최고―――
타이치「진한 피야」
키리「아, 아아, 싫어, 싫어……」
거리를 좁힌다.
키리「싫어, 싫어싫어……오지 마, 오지 마……」
새끼고양이처럼 떨고 있다.
타이치「이 지구상에서, 얼마만큼의 새끼고양이가 괴로워하며 죽어가는지 생각해 본 적 있어?」
허벅지를 만진다.
얇은 피부. 내려앉는 손가락.
찢어버릴 것 같다.
몸 속으로 꾹 밀어넣는다.
키리「꺄아아앗」
고통과 전율.
목소리가 일그러진다.
가청영역을 벗어날 정도로 높고 가늘다.
타이치「고양이가 다섯 마리를 낳고, 한 마리는 주워진다. 행복하게 산다. 해피 엔드」
손가락을 미끄러지게 한다. 안쪽으로.
타이치「두 마리는 굶주림과 추위로 죽는다. 괴롭다. 마지막에는 정신이 나갔을지도 모른다」
피를 만진다.
물컹물컹한 것이, 마치 정액같다.
타이치「한 마리는 어디론가 걸어가다가, 들개에게 물려 죽는다. 괴로움은 적을지도 모른다. 다만 삶의 의미는,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들개의 한끼 식사」
타이치「그 개가, 형제나 어미 고양이를 잡아먹게 될 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는 단언할 수 없다」
손가락을 들어올렸다.
키리에게 갖다 댄다.
키리「……하, 하, 하아……」
호흡이 얕고 거칠다.
심한 땀.
딱하게도.
타이치「남은 한 마리는 어떻게 됐을까?」
키리「하아, 하아, 하아……」
키리의 시선은 손 끝에 고정되어 있었다.
타이치「……차에 치여 죽었어」
타이치「새끼 고양이니까 한 방에 꽥」
타이치「괴로움도 없지만 의미도 없어」
타이치「의미도 없다고……」
타이치「그런 죽음이야」
타이치「그런 일이, 지금까지 몇 번이나 되풀이됐을까?」
타이치「입을 열어」
키리「……하앗」
말이 이어지지 않는다.
타이치「입을 열어 줄래?」
키리「심한 짓, 하지 마세요」
간신히 말한다.
타이치「입을 열면 심한 짓은 안 해」
타이치「자, 아―」
키리는 입을 벌렸다.
손가락을 집어넣는다.
키리「으으으읍!」
타이치「……빨아. 그래……그래, 착하지」
손가락을 뺀다.
타이치「세상은 고통과 불행, 그런 걸로 가득 차 있어……」
타이치「굉장히 불안해지지」
타이치「그래서 이어지고 싶어. 한시라도 빠르게, 잠시라도 길게」
타이치「그렇게 이어지지 않으면, 잔인한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한 평범함을 알 수가 없어지니까」
타이치「하지만 충분하게 차 있는 녀석들은, 전부 눈이 멀어서」
타이치「자기는 고독하거나 무섭지 않다고 말해. 자기가 얼마나 유능한지는 자랑스럽게 말하지」
타이치「그런 녀석들은, 쓰레기야」
타이치「진정한 고독도 모르고, 평범하게 살아가기 위한 마음도 이미 손에 넣었어」
타이치「먼 세상의 사람들이지」
타이치「우리들같이, 마음이 성장하지 못한 인간과는 달라」
타이치「먼 세상에만 있을 때는 좋지만……다가와서, 우리들을 잡아먹으러 하잖아?」
타이치「너도 잘 알고 있을 거야」
얼굴을 가까이 하며 말한다.
키리「……아으, 아, 하아……」
흐트러져 있다.
일시적인 것이겠지만.
타이치「네가 말했지. 세상이 무섭다고」
타이치「정의란 녀석들을 위한 정의야」
타이치「우리들을 위한 좋은 것이라곤, 무엇하나 없어」
타이치「그래도, 살고 싶잖아……그치?」
짙은 선혈.
검붉다.
키리의 허벅지에, 입술을 댔다.
혀를 내밀었다.
키리「……싫어어어어어어엇」
핥아 간다.
가련할 정도로 떨리는 하반신을, 양팔로 감싸안는다.
키리「흐, 흐윽, 흑……으아아아앙……」
다리를 타고, 가랑이에 다다른다.
속옷은 이미 다 버려져 있었다.
일어난다.
키리가 나를 본다.
두려움과……미량의 적의.
그것은 본격적으로 증오하기 위한 사전 준비.
미워하면 돼.
쉽게 다시 시작할 수 있어.
어차피 우리들 고유의 존엄은, 주말과 함께 전부 없었던 걸로 되니까.
타이치「……」
상체를 기울여, 벽으로 밀어붙인다.
키리의 속옷에 손을 뻗는다.
목덜미에 혀를.
키리「……짐……승……」
새어나오는 말이 신음소리로 들린다.
속옷 사이로 손가락을 넣어, 음부를 찾았다.
키리「……겠어……」
키리「죽이……겠어……」
키리「선배를, 죽이……겠어요」
타이치「하핫」
나는 하반신을 노출시키고, 더욱 밀착해 나간다.
키리는 눈을 꾹 감았다.
칸막이에 무언가가 던져지며, 딱딱한 소리가 났다.
본다.
캔이 회전하면서 날아오고 있었다.
벽에 튕기고, 바닥으로 떨어져 간다.
그 광경은 굉장히 느리게 보였다.
의식이 극한까지 가속.
캔은 날지 않는다. 누군가가 던졌다. 누가? 지금 생각할 필요는 없다. 던진다. 의도. 의도를 가지고 던졌다. 목적은? 캔을 던지는 것에 의해 기대할 수 있는 효과. 던진 캔이 효과를 발휘.
작열? 투척하는 무기? 수류탄 등. 좁은 실내. 파괴력 증가. 죽음? 죽음. 죽음. 범위 공격. 회피 불가능. 위치 관계. 나는 확실히 죽음. 나는 죽음. 확정.
키리는.
입은 열려 있다. 눈은 감고 있다.
키리의 귀를 막으며, 머리를 감싸안았다.
작은 머리다.
귀엽구나, 키리는.
1초가 무한으로 느껴졌다.
무한의 순간, 키리를 사랑스럽다고 느꼈다.
그리고 그것은 터졌다.
실내가 새하얘졌다.
굉음. 압력이 등에 몰아친다.
키리「읏!!?」
가슴 속에서, 키리가 움츠린다.
난 움츠리는 정도로 끝나지 않았다.
눈이 따가웠다.
귀가 마비되었다.
전신이 경직되고 있었다.
움직일 수 없다.
이것이……폭사.
위화감을 느낀다.
모든 감각이 박탈당하고 있다.
지각할 수 없다는 것은, 이렇게나 불안하다.
상황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다.
목덜미가 잡혔다.
등 뒤로 넘어진다.
누군가가 받쳐 주고 있다.
아아…….
그리운 향기다.
옛날부터 변함없다.
그녀의……희미한 단맛.
요코「……」
하세쿠라 요코―――
복도로 끌려나온다.
타이치「아……방금 그건……?」
간신히 혀가 풀렸다.
몸은 어딘지 모르게 이상하다.
손발이 땡기는 듯한 감각이다.
요코「……플래쉬 뱅」
타이치「플래쉬……폭탄?」
요코「이른바 스턴ㆍ그레네이드. 특수 섬광 수류탄」
타이치「아아」
그런가.
어디선가 본 캔이라 했더니.
타이치「……옛날의……그거군」
요코「응」
귀엽게 미소지었다.
그녀와의 추억 이야기는, 이런 것뿐이다.
요코「이성은……되찾았어?」
타이치「응……괜찮아」
요코「미안해……거친 방법을 써서」
타이치「됐어」
어쩔 수 없는 처치였을 것이다.
타이치「그런데, 왜 일부러 말려 줬어?」
요코「…………」
타이치「별로 내 위기였던 것도……」
그 때 눈치챘다.
그래, 내 위기라서 도와준 것이 아니다.
내가 키리와 이어지려 하고 있었기 때문에, 였던 것이다.
그것도……가장 순수한 나로서.
질투.
질투에 지나지 않는다.
기분이 순간 가라앉는다.
타이치「어째서 넌……타락하려는 거야」
요코「……그치만」
타이치「또 그치만?」
타이치「혼자서도 살 수 있는 주제에」
타이치「나 따위는 필요없는 주제에」
요코「……필요해」
요코「반쪽만으론, 살아갈 수 없어」
타이치「난 반쪽 따위가 아냐」
요코「……타이치」
논리적인 대답은 없고, 단지 머리를 꼭 껴안았다.
키스를 당했다.
훌륭한 테크닉으로.
저항은……하지 않았다.
요코「타이치, 설 수 있어?」
타이치「응……」
오감은 거의 회복되어 있었다.
타이치「교복이 먼지투성이네」
요코「……조금 땀 냄새가 나」
타이치「매일 똑같은 거 입으니까」
요코「…………」
무표정으로 기막혀한다.
타이치「어, 보통 그러지 않아?」
요코「……불결」
타이치「그럼―날 피해도 돼」
요코「…………」
무표정으로 슬퍼한다.
타이치「토오코도 매일 같은 옷 입고 다녔잖아」
요코「그건 같은 옷을 몇 벌씩 가지고 있으니까……」
타이치「뭐어?」
키리「……으……」
비틀비틀, 키리가 나왔다.
타이치「키리……」
키리「……쿠로스……타이치」
적을 보는 눈이었다.
……당연한가.
키리「잘도……」
키리「잘도, 잘도!」
슬픔의 눈물은 아니었다.
시달리고, 빼앗기고, 희롱당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감정.
……순수한 분노.
의분이었다.
키리「역시……당신은……당신들은……」
키리「미쳤어!」
타이치「……」
요코「……」
요코가 나이프를 꺼냈다.
대형 나이프다.
키리의 얼굴이 창백해진다.
타이치「잠깐」
요코「……분노에 사로잡혀 있어, 타이치에게 위험해」
타이치「약속을 깰 거야?」
요코「그치만」
키리「뭘 이제와서」
끼어든다.
키리「……어차피……살아 있어봐야, 당신들의 먹이가 될 뿐이잖아!」
타이치「어떻게 변명해야 좋을 지 모르겠지만……」
타이치「미안!」
사나이다운 깔끔한 사과라며 자화자찬.
키리는 순간 굳어졌다. 하지만, 바로 굴욕으로 표정으로 일그러진다.
키리「……이해……못하겠어」
키리「뭐예요, 그건……뭐예요, 당신은?」
키리「이해 못해, 이해 못하겠어요!」
키리「……이제……됐어요……」
흐트러진 가슴팍을 움켜쥐고, 달려갔다.
타이치「잠깐만 기다려」
무시.
요코「……타이치……너무 물러」
뒤쫓으려 하자,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타이치「뭐 어때. 어차피 반복되는 거」
타이치「내 고유시간 같은 건, 무의미하잖아」
타이치「일기의 정보량을 늘리기 위해서도, 여러모로 해 봐야 돼」
요코「그것만으로 움직이고 있다면 좋아……하지만 지금의 타이치는 달라」
요코「타이치는, 부서진 장난감을 너무 소중히 하고 있어」
타이치「죽을 때까지 너만 마주보고 살라고?」
요코「응, 옛날처럼」
타이치「……다른 누구와도 이어지고 않고」
타이치「작은 고리 안에서, 쭉……」
요코「크기는 주관적인 거야」
요코「100명의 가족과 사는 것과, 나와 사는 것에 큰 차이가 있는 건 아냐」
요코「타이치의 판단기준은, 평범함을 너무 의식하고 있다고 생각해」
요코「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분석에서 오는 법인데」
타이치「……평범한 게 뭐가 나쁘단 거야」
요코「타이치에겐 안 맞아」
요코「그녀들은, 한때의 장난감밖에 되지 못해」
요코「……질리고. 바로 버려」
요코「타이치 자신이, 버리고 싶어 해」
타이치「…………」
그럴 지도 모른다.
방금 전처럼.
그녀가 하고 싶은 말은, 잘 안다.
그래도.
타이치「이번주는 내 맘대로 하게 해 줘」
요코「……알았어」
타이치「이제 오늘은 가도 돼」
요코「그렇게 억지로 돌려보내려 하지 않아도……」
타이치「지켜보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고 있어. 왜냐면, 위험했다고 해도 내일은 일요일이야. 파멸의 날이라고? 무리해도 괜찮잖아?」
요코「……고유의 시간」
타이치「응?」
요코「지금의 타이치가 고유의 시간을 살고 있듯이, 나 역시 고유의 시간을 살고 있어」
요코「지금의 당신과 대면하고 있는 것은 지금의 나뿐. 당연한 일이지만……」
요코「고유의 나의 소망은, 다음주와는 달라」
요코「그러니까, 그……」
호소하듯이.
요코「우리들은 매주 죽고 있어」
요코「객체의 사망. 즉」
요코「매주, 다른 우리들이라는 것……」
타이치「……!」
나와 같은 생각을.
요코「다른 주에 있는 내가 어떻게 될지, 아는 것은 아니지만……」
눈물.
요코「여러가지 가능성 중에, 타이치가 나에게 다정하게 대해 주는 건……있어?」
타이치「그건……모르겠는데」
요코「노트에는, 그런 패턴은 없었어」
요코「……바라는 것을 얻지 못하고 무산될 뿐」
타이치「그 얘기는 나중에 하자」
요코「나중은 없어」
요코「난 부족한 채로, 사라질 뿐」
요코「안녕, 하게 돼」
타이치「……그래」
요코「미안해……이제 방해 안 할게……」
발을 돌린다.
요코「그래도, 이것만은 기록해 둬」
등 뒤에서 말한다.
요코「……어디에 가도, 당신을 이해해 주는 사람은……없어」
그 말은 무거운 돌이 되어, 뱃속에 박혔다.
타이치「……………………」
복도를 걷는 모습이, 점이 되어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았다.
결코 싫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그녀의 소망에는, 모순이 너무 많다.
두 명의 선이 교차할 일은, 아마 없을 것이다.
키리를 찾자.
무엇을 위해.
사죄.
아니면…….
모르겠다.
충동에 자극을 받아, 교내를 방황한다.

선배와 미키가 있다.
토모키와 라바는 아직 안 온 것 같다.
타이치「미키」
미키「아, 키리하라 선배는 어때요?」
심장이 살짝 뛴다.
하지만, 그 정도에 그쳤다.
타이치「……쌩쌩하던데. 쌩쌩하게 미움받았어」
미키「잇힝, 예상대로네요」
타이치「나도」
둘이서 웃는다.
타이치「작업 어때?」
미키「여차저차예요」
타이치「……그건 좋은 거야 나쁜 거야?」
미키「여차저차 되지 않을까? 이런 느낌이에요」
타이치「괜찮네」
미키「그런데 말이죠, 방금 전 교내에서 폭발음이 들렸어요」
타이치「풉」
그야 울렸겠지…….
미키「저, 방금 전까지 미미 선배하고 얼싸안아 반쯤 울으며 부들부들 떨고 있어서, 그만큼 진척이 늦어졌어요」
타이치「우와―, 귀여운 광경이네」
미키「그게 뭐랄까……사실, 화장실에 가고 싶었는데 무서워서 교내에 못 들어갔어요」
타이치「내 눈 앞에서 싸 준다면, 간이 화장실을 가져다 주지」
미키「우와아……괴로워……」
머리를 감싼다.
근데, 이럴 상황이 아니지.
타이치「자. 실은 그거 내가 한 거야」
미사토「그, 그랬나요……결국, 그건 뭐였죠?」
안경이 비뚤게 기울어져 있었다.
진짜로 떨고 있던 것 같다.
타이치「자명종이에요」
미키「……결함상품이네요」
타이치「그래서 버렸어」
미사토「그랬군요……다행이다……테러 같은 게 아니라」
타이치「테러할 사람도 없는데요 뭐」
미키「아, 그럼 화장실 갔다 올게요!」
새처럼 파닥파닥 손을 파닥이며, 미키는 달려갔다.
타이치「잘 씻고 와―!」
미키「알아서 잘 할 거예요―!」
타이치「큰 거? 작은 거?」
미키「작은 거예요―다!」
혀를 내밀며, 교내로.
타이치「……그런 연유로, 저도 이만」
미사토「페케군」
차분한 음성.
타이치「네?」
미사토「……감사를 해야 되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저」
타이치「감사?」
미사토「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어디 가려고요?」
타이치「네에, 키리찡을 잠깐 찾아 보게요」
미사토「또 괴롭혔군요?」
마치 가벼운 사건이라도 되는 듯.
타이치「……네, 조금요. 미안해요」
미사토「아뇨, 그쪽이 더 중요하니까, 제대로 사과하고 오세요」
타이치「그럴게요」
그렇게, 또다시 나는 거짓말을 했다.

키리의 기척을 더듬는다.
이쪽으로 걸어갔으니까……교실인가.
교사는……나가지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
1학년 교실로.
그리고―――
있었다.
무방비한 등은 변함이 없다.
우선 말을 건다.
타이치「……저기―, 키리찡?」
난 뭘 하고 싶은 걸까.
모겠다.
사죄.
파괴.
모른다.
모르는 내가,
키리「……」
뒤를 돌아보며, 키리는 말했다.
키리「당신은, 더러운 살인자예요」
담담하다.
이미 하급생에게 들을 말은 아니다.
타이치「……뭐, 뭐어 화는 얼마든지 내도 되는데……저기?」
키리「화?」
키리「그런 단순한 감정이 아냐」
키리「당신은……적이에요. 당신은―――」
조용한 목소리.
조용한 표정.
조용한……고발.
키리「유타카를 죽였죠」
타이치「…………」
타이치「곤란한데」
타이치「……어떻게 그런 걸?」
키리「전 알고 있어요」
키리「당신이 그 날, 옥상에서 유타카와 얘기했던 걸」
타이치「…………」
알고 있었다.
알고 있었다, 알고 있었다.
키리가 그 일을 알고 있었다.
타이치「그 날?」
안돼.
마음이 급속히.
얼어붙어 간다.
키리「유타카가 죽은 날 말이에요」
키리「……쭉, 의심했었죠」
키리「하지만……알 수 없었어요」
키리「그래서 당신과는 연관되고 싶지 않았죠」
키리「하지만, 당신이 먼저 다가왔어요」
키리의 두 눈에는, 확신이 있었다.
그것은 이미 활활 불타올라, 동공에 공격적인 빛으로 머물러 있었다.
타이치「잠깐만. 좀 이상하지 않아?」
타이치「……만약 내가 유타카를 죽였다 하면, 너한테 말을 걸 거라고 생각해?」
키리「……안 걸 거라고 생각해요」
키리「보통은」
타이치「분명히……나도 보통은 아니지만」
키리「우리들은 당신의 희생양에 지나지 않았어」
키리「당신은, 굶주림을 채웠을 뿐」
키리「사람의 평범함 따윈 아무래도 상관없겠죠. 당신은 그런 존재예요」
키리「……인간의 마음을 먹는, 괴물이에요」
타이치「…………」
너무 멋대로 말하는데.
타이치「저기 말야……나하고 유타카는 친구였어. 죽일 이유가 없어」
키리「동기 따윈 불필요해요」
키리「배고픔에 이유 따윈 없죠」
타이치「음~~~」
고개를 기울인다.
타이치「그럼, 왜 굳이 유타카를 사냥감으로 삼아야 했던 걸까? 만약 내가 괴물이고, 타인을 사냥감으로 삼고 있다고 해도, 남자보다는 여자가 더 편할 것 같지 않아?」
키리「……프라이드 치킨의 성별을 신경쓰나요?」
타이치「음……」
이렇게 말하면 또 저렇게 받아치고.
키리「적어도……당신이 저를 보는 눈은……그랬어요」
타이치「그건 그러니까―……그게―」
타이치「남자니까, 여러모로 끓어오르는 게 있잖아」
키리「그건, 달랐어」
타이치「경험 있어?」
키리「……없어요. 하지만, 이질적인 것 정도는 분간해요」
그런가, 키리.
보는 눈이 있구나.
악의를 파악하는 힘이랄까.
지나치게 날카로운 통찰력.
그 눈으로 본다면, 세상이 무섭다는 것도 이해가 된다.
상황증거와 직감으로, 의문의 여지 따윈 없어진 거겠지.
키리「……쭉 의심해 왔어요」
키리「하지만, 요 몇일……전 당신에게 마음을 허락했어요」
키리「그것이 분해……」
키리「그래도」
키리「그걸로 당신의 정체를 알았어요」
창 밖에 손을 늘어뜨렸다.
키리「당신은……」
들어올린다.
꾸러미.
창틀 건너편에 기대 놓았던 걸까.
천을 풀자,
키리「더러운 살인자예요」
타이치「……」
두 개……아마 미키의 몪일 것이다.
보기좋게 함정에 걸려든 나, 그런 구도.
키리「움직이지 마세요」
타이치「이런 말을 하는 건 남자로서 쪽팔리지만……요코가 화낼 걸」
키리「상관없어요」
키리「당신만 제거할 수 있다면」
타이치「으―음」
키리「제 다음은 누구죠? 부장 선배? 키리하라 선배? 아니면……미키?」
타이치「……아무도 사냥하지 않아」
의연하게 자의식만 유지하고 있어 준다면.
사람은 사람을 요구하는 존재지만.
자신을 상대에게 맡긴다면, 끝이다.
그렇게 되기 전에, 거리를 둘 수밖에 없다.
세상은, 따뜻하지 않으니까.
그것을 키리는 이해하고 있을 텐데.
이 모순……알고 있는 거야, 키리?
키리「믿을 순 없네요」
무기를 들어올린다.
이 거리라면 맞을 것이다.
키리가 연습하고 있던, 나무와의 거리가 떠오른다.
빗나가긴 어렵다.
타이치「……날 죽이면, 키리도 죽는데?」
키리「상관없어요」
웃는다.
키리「왜냐면, 어차피 세계는 이미 끝났으니까요」
타이치「네가 싫어하는 사람들은 없잖아」
키리「……없어지길 바란 건 아니에요」
키리「바르게 있어 주기를 원했던 것뿐이에요!」
키리「……당신도……」
타이치「…………」
순수한 살의.
그것은 작은 키리를 둘러싸는 결정이 되어 감돈다.
내가 죽으면, 키리도 죽는다.
각오한 채로.
토오코와 같다.
그것을 좋다고 생각하는 내가 있다.
반면, 사람을 그리워하는 나도 있다.
추억을 갖고 싶다.
기록하고 싶다.
마음에 새기고 싶다.
추억만 있으면, 그 눈부신 보석만 있다면―――
……난, 정말로 인간의 마음을 양식으로 살아가는 괴물일지도 모른다.
키리「죽기 전에, 남길 말은 있나요?」
통보를 하는 키리의 손은, 안쓰러울 정도로 떨리고 있다.
두렵다.
사람을 죽이는 것이 두렵다.
힘껏 팽팽해진 마음.
그 불안과 이성의 풍선을 터뜨리려면, 조그만 자극으로도 충분하다.
바늘 정도의.
……살아날 방법은 있다.
그냥 죽어줄까하고도 생각해 본다.
망설인다.


ㆍ受け入れない (받아들이지 않는다)


……무리다.
죽음을 받아들일 수는 없다.
분명히 난 내가 싫다.
모든 것이 싫다.
내 추악함, 욕망이 싫다.
키리가 가진 증오 이상의 자기혐오.
하지만……자살할 거라면 이미 했을 것이다.
살자.
그러지 않을 거면……뭘 위해 싸워온 건가.
살자, 설령 키리를……부수게 된다 해도.
타이치「……하나 질문이 있는데, 옥상에서 나하고 유타카가 있는 걸 본 건……너야?」
키리「네, 그렇습니다」
키리「당시에는 아무것도 몰랐죠」
키리「하지만……지금은 알아다」
키리「조금 전 화장실에서 했던 것처럼, 유타카를……몰아붙였죠」
키리「자신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타이치「어떻게?」
키리「……유타카의 다리를 괴롭히거나……여러가지겠죠」
키리「구체적으로 듣고 싶지는 않아요」
키리「이제 됐나요?」
여전히, 손은 떨리고 있다.
죽이기 전에, 키리가 먼저 지쳐버릴 것 같다.
타이치「하나 더 될까? 좀 긴 이야긴데」
키리「……하세요」
저 내심은 과연 어떨까.
그것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평안하게, 키리는 말했다.
타이치「……앉아도 돼?」
키리「네」
타이치「키리도 앉지?」
키리「…………」
무시.
뭐 좋아.
난 이야기를 시작한다.
타이치「하세쿠라라는 집이 있었어, 옛날에」
타이치「큰 집이었지. 서양식이고. 키리하라 집을 열 배 정도 크게 한 듯한」
타이치「대부호였어」
타이치「난……어린 시절에 어머니를 잃고, 거기에 거두어졌어」
타이치「그 집에서 일하는, 어머니의 먼 친척뻘 되는 관리인 부부에게 말야」
타이치「낡은 풍습이 존재하는 집에서」
타이치「하인의 아이는, 역시 하인이었어」
타이치「난 어린애였으니까, 그 집 아이들의 놀이상대 비슷한 역할이었지」
타이치「요코는 그 집의 막내였어」
…….
………….
…………………….

그녀는 언제나 혼자였다.
가족이나 하인 누구와도, 친해지려 하지 않았다.
고고한 공주―――
난, 그녀를 속으로 그렇게 부르고 있었다.
말을 나눈 적은 없다.
신경은 쓰이고 있었다.
저택이 어떤 사람들에게 유지되고, 어떤 경위를 더듬어 이런 상황이 되었는지, 나는 모른다.
다만 그곳은, 시간의 흐름에서 격리된 낙원 같은 장소였다.
사는 사람들도, 속세를 초월한 사람들.
때때로 나는 그녀들의 초대를 받고,
몸치장을 하고, 차를 즐기고, 사람을 초대하고, 산책.
매월 초에는 대략의 서적ㆍ의류ㆍ기호품이 도착했다.
넓은 정원.
정원사들도 있었다.
인가와 떨어져, 땅값이 싸다는 것을 감안해도 지나치게 광활했다.
어린 나에게, 저택은 광대한 세상 그 자체였던 것이다.
실제로, 저택 시절 이전의 기억은 없다.
세상과 저택은 같은 크기였다.
어느 무렵부터인지, 난 사모님들에게 귀여움을 받게 되었다.
여자 같은 생김새라며.
또한 내 흰 머리카락과, 가까이서 봐야 아는 이상한 빛을 내는 눈동자도, 그녀들을 만족시켜주었다.
소녀가 입을 법한 (그것도 아주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다녔다.
그리고 차의 상대.
어린아이가 차 맛을 알 리는 없다.
그래도 같이 어울렸다.
설탕 과자처럼 달콤했던 사람들에게, 거스른다는 선택은 없었다.
……싫지도 않았고.
그렇게 어린아이들을 목마태우고 머리카락이 잡아당기는 장난감 업무에서 벗어난 나는, 새 일로써 인형 업무에 착수하게 되었다.
그런 나를, 그녀……고고한 공주는 싸늘한 시선으로 보고 있었다.
아니, 보지도 않았다.
흥미가 없다는 듯, 시선은 언제나 나를 스쳐 지나갔다.
하세쿠라 요코.
막내딸.
하지만 가족에게는, 그렇게 귀여움받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오히려 미움받고 있었다.
분명히 그녀는, 몽환 세계의 주민인 사모님들과는 다른 세계에 살고 있었다.
……현실이라는 세계에.
한 번, 청소용 인부로 불려갔던 적이 있다.
인형 시절 이전의 일이다.
하인들 틈에 섞여 청소를 도왔다.
출퇴근하는 사람들은 안 썼기 때문에, 다반사였다.
10시와 3시에 티 타임을 1시간씩 비워 놓고, 차례로 방을 청소해 나갔다.
저녁에는 그녀의 방에 도착했다.
처음으로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다.
요코『……여기는 됐어』
짧고 담담했다.
기능적.
하지만, 매력적이었다.
힐끔 쳐다본 방 안은, 전혀 여자 방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많은 수의 컴퓨터.
사방의 벽을 덮고 있는 책장과, 그걸로도 부족해서 바닥에 산더미처럼 쌓인 서적.
넓은 공작대와, 연마된 공구.
꽤 넓은 방 안은 잡다한 지식과 기술로 가득 차 있어, 비밀기지를 연상시켰다.
역시 단 하나뿐인 이질적인 사람은, 다른 세계에 있던 것이다.
예쁜 옷을 입고, 여자아이의 말씨를 쓰며 차 상대를 하고 있을 때, 하세쿠라 요코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다.
말수가 적은 노부인이 대답했다.
막내아들의 딸이라고.
젋고 쾌활한 부인이 대답했다.
원해서 태어난 아이가 아니라고.
수다스런 세자매가 재잘거렸다.
도련님과 젊은 하녀와의 숨겨진 사랑 이야기와, 그 전말을.
누구도 따르지 않고 사랑을 모르는 아가씨의 배경과, 머지않아 찾아올 비극적 결말.
하세쿠라의 피를 가졌지만 하세쿠라의 일원은 아닌, 그런 오점에 대한 한탄.
요컨데 버려진 아이었던 것이다.
아무도 그녀에게 말을 걸지 않고, 그녀 또한 누구에게도 말을 걸지 않았다.
종기였다.
그녀의 친아버지인 도련님이란 인물은, 해외에 유학을 갔다고 한다.
어머니인 하녀는……죽었다.
아무것도 될 수 없는 소녀.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소녀.
상처입는다?
반대. 상처입지 않았다.
하세쿠라 요코는 강했다.
전혀 개의치 않았다.
아마 눈치채고 있었을 것이다.
세계가 모형정원이란 것을.
인형생활 틈틈이, 나는 도서관에 다녔다.
영향을 받은 건지도 모른다.
귀부인들에게는 예절과 차를 배웠다.
하지만 지혜와 기술과 진실은, 그곳에는 없었다.
그것을 채우기 위해, 쓰는 사람이 적은 도서실에 틀어박혔다.
요코와는 자주 만났다.
여전히 대화는 없다.
어딘지 모르게 거북해서, 내가 먼저 다가가진 않았다.
좋아하기는 했지만, 사이가 좋아지고 싶다고 바라지는 않았다.
내 미적 경향은, 이 무렵에 확립된 것 같다.
뭐라고 해야 하나……자립하는 것에 매료되었다.
혼자서 살아가는 것과, 힘에.
지식과 기술에는, 그런 힘이 있다.
사람은 모인다.
모이는 것을 갈망한다.
그리고 동시에, 성역을 가지려 한다.
침해되지 않는, 자신만을 위한 장소를 바란다.
그러나 사람과 접하면 경계선은 흔들린다.
영토는 줄어들이고 하고 늘어나기도 한다.
불쾌.
모순.
일반적인 가치관으로는, 호화로운 천 명의 군대보다, 한 사람의 영웅이 사랑받는다.
유일한 절대자. 영웅.
사람이 바라는 것.
동경이라는 형태를 취한, 갈망에 지나지 않는다.
혼자서 살고 싶은 건지, 모여서 살고 싶은 건지.
쓸데없는 이야기는 이쯤 해 두고.
도서실에서 그녀가 읽은 책을 따라 읽었다.
동경으로.
또는 소녀의 완벽함에 대한 질투로.
서적의 내용은 너무 어려워서 거의 알 수 없었다.
그래도 계속 읽었다.
도서관에서는 몇백 번이나 만나고, 엇갈렸다.
한 번의 대화도 없는 공간을, 우리들은 공유해 나갔다.
그런 시절이, 몇 년 동안 계속되었다.
그리고.
낙원에는 붕괴가 찾아온다.
이것은 인류 최초의 낙원부터 이어져 온 것이므로, 피할 수 없는 섭리일 것이다.
붕괴.
구체적으로는, 저택의 당주인 하세쿠라씨의 급속한 몰락에 의해.
비극은 시작되었다.
하세쿠라 가의 사람들은 사라졌다.
하인들은 남겨졌다.
하세쿠라 대신에 들어온 것은, 신흥 대부호와 그 친족들이었다.
난폭한 사람들이었다.
남녀노소 골고루 들어왔다.
전원이 난폭한 기질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이 온 지 3일만에, 하녀 한 명이 폭행당했다.
사건이었다.
그래도 여기는 모형정원이었다.
폐쇄된 공간.
독자적인 질서가 생겨났다.
광대한 토지에 둘러싸인 저택쯤 되고 나면, 치외법권을 가진다.
날마다 어떤 향연이 펼쳐졌을까.
저택의 방 중 하나는, 원래는 무도회에 사용되던 홀이었다.
하세쿠라가 사람들은 조그만 파티를 좋아해서, 자주 사용되곤 했다.
난폭한 사람들은, 여기에서 다른 무도회를 열었다.
고상한 대화도 양질의 요리는 없었고.
대신에 타락과 퇴폐가 채워졌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젊은 하인 부부가 있었다.
아내가 윤간당했다.
아니.
연이어 윤간당했다.
온갖 방법으로 육체를 배출구로 사용해, 종속시켰다.
남편은 저항했다.
아내를 살리려 경찰에 연락을 했다.
경찰은 개입하지 않았다.
아마 귀찮았을 것이다.
특별히 매수된 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저택의 인터넷으로 조사해 봤다.
경찰의 이러한 대응에 의해 간과된 범죄는 무수히 많았다.
민간의 권리의식이 비대해짐에 따라, 쉽사리 개입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사소한 실수를, 부모의 원수를 대하듯 추궁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이다.
움직이지 않는 게 제일.
분명 태만이지만.
불완전한 인간의 조직에게는, 이 정도가 한계라고 난 생각한다.
성실함은 필요하지만.
자신을 돕는 것은, 자신의 유능함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화도 나지 않는다.
커다란 손해를 입지 않았다는 가정 하에, 타인의 서툰 솜씨나 얕은 견식에 화를 낸다는 행위는.
마음의 일부를 타인에게 위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그것이 보통.
평범하다는 것이다.
사람의 한계에 기인한, 불합리하고 불완전한 룰에 몸을 맡기는 일이기도 하다.
……따뜻한 요람일 리는 없다.
특히 폐쇄 공간에서는, 정상적인 윤리마저 빛을 바랜다.
난폭함이 일상으로 변하기 쉽다.
거기에 맞서려면, 강인한 자아.
흔들리지 않는 자아 시스템이 필요했다.
……그녀처럼.
그럼 다시 이야기로.
아내는 위안부가 되어, 임신을 당하고 낙태를 당했다.
남자들을 기쁘게 하는 방법을, 잔뜩 몸에 익혔다.
그녀는 안 웃게 되었다.
하인들의 일에도 참가하지 않게 되었다.
의류 착용을 금지당해도, 그녀는 선선히 따랐다.
그녀의 몸에는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질나쁜 문신이었다.
성기를 가리키고, 그 소유자는 남편이 아니라고 새겨 놓았다.
난폭한 사람들은, 그 방면에 상당히 유능했다.
서서히 마음도 가라앉았다.
남편은 최후의 수단을 썼다.
아내를 데리고 도망친 것이다.
3일만에 붙잡혔다.
남편은 죽었다.
아내가 윤간당하고 있는 자리에서.
시체는 뜰에 묻혔다.
남자들은 킥킥거리며, 벚나무 뿌리 밑에 시체를 묻었다.
모두 윤리가 파괴된 사람들이었다.
어느 날, 한 명의 남자가 가족을 데려왔다.
신캐릭터 등장.
유아 성애자였다. 쌍검술과 새디스트라는 두 개의 옵션을 달고 있었다.
새디스트라서 S라 부르겠다.
난 S의 눈에 띄었다.
다시 여자아이의 차림을 하게 하고, 무도회에 참가시켰다.
이번에는 차가 아닌, S의 욕망의 상대를 했다.
S는 다른 사람에게 시키는 것도 좋아했다.
여자아이 같은 나를, 게이와 상대시켰다.
반 장난으로 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가끔씩 눈을 떠버리는 사람도 있었지만.
무도회에서는 어떤 지독한 행위를 하는지가 주목을 받는 포인트였다.
초등학교의 왕따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집단 안에서는, 이런 일은 상당히 높은 확률로 발생한다.
뭐, 디메리트란 것이다.
사물에는 메리트와 디메리트가 반드시 있다.
표면적인 선악을 넘어서.
머지않아 S의 S수위는 급상승.
어린아이를 데려왔다.
S의 아들이다.
학교에서는 왕따를 당하고 있었다……고 한다.
난교의 분위기에 압도당한 것도 잠시, 나를 보고는 미소지었다.
이상 흥분 현상일까.
시키는 대로, 오히려 적극적으로 그 녀석은 참가했다.
피를 확실히 이어받았는지, 그 재능은 바로 발휘되었다.
조숙한 정력과 더해진 탓도 있었겠지만.
바로 열중하기 시작했다.
난 모두에게 웃음거리가 되었다.
몇주간이나.
난 계속 공격을 받았다.

타이치「그 아들이란 게, 유타카야」
키리「……………………」
키리는 반응하지 않았다.
손의 떨림은 멈춰 있었다.
차분해진……것은 아니었다.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다.
화살촉이 나에게서 벗어나 있는 것도, 신경쓰지 못하고 있다.
타이치「그리고, 눈치챘을지도 모르겠지만, S란 건 신카와의 이니셜이기도 해」
키리「……무, 무슨 말을……?」
반웃음.
감정마저 컨트롤되지 않는 듯한 모습.
타이치「그 녀석도 어린 나이에 그런 걸 알아버려서, 이미 제대로 된 인생은 못 살 거라 생각했어」
타이치「결국은 변태나 싸이코가 될 줄 알았지」
키리「거짓말!!」
갈라지는 목소리.
키리「거짓말, 거짓말거짓말거짓말!! 거짓말 하지 마! 미쳤어요!? 그런 말도 안 되는……」
타이치「사실이야」
다시 키리의 손은 떨리기 시작한다.
키리「그럴 리 없어! 유타카가 그런 짓을 했을 리가 없어!」
타이치「그런 일이 있었고, 유타카는 그런 짓을 하고 있었어」
타이치「가장 의욕적이었지」
웃는다.
타이치「뭐 어린애니까, 어른 여자를 강간하는 건 힘들었을 거야. 거시기도 어린애한테는 상당히 큰 충격이―――」
키리「닥쳐!!」
찢어질 듯한 목소리.
키리「그런 이야기, 들은 적도 없어! 쭉 함께 살아오면서, 그런 일이 있었다니. 말도 안 돼……믿을 수 없어―――」
타이치「기억상실」
키리는 입을 뚝 다물었다.
명탐정이 된 기분이다.
타이치「수수께끼는 풀리는 거야, 키리찡」
키리「……그건……기억이 없는 건……」
타이치「그리고 나, 그 녀석이 왜 다리를 다쳤는지 알고 있어」
키리「……네?」
타이치「그 자리에 있었으니까」
키리「……그럼……선배는……그걸 알고?」
타이치「아녀?」
타이치「난 유타카가 살아남았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고……유타카란 이름도 잊고 있었어」
타이치「……그 녀석하고 만난 건 우연이야」
타이치「나도 여장하고 있었으니까……유타카도 못 알아봤던 것 같지만」
하지만 유타카는 살아남았다.
타이치「그리고 뭐, 여러가지 일이 있어서 나도 풀려나고……우여곡절 끝에 여기까지 온 건데」
타이치「생각해 보면 당연해」
타이치「유타카도 나도, 그 일로 마음이 부서지지 않았을 리가 없어」
타이치「만나는 건 필연이었을 거야」
키리「……그런……잔인한 사람이 아니야……못 믿겠어」
타이치「유타카가 누군지 안 건, 친해지고 나서부터야」
키리「……그래서……죽였어요?」
뭐, 이젠 얼버무리는 건 안 통하겠지.
나도 말하고 싶어졌다.
타이치「바로 살의가 끓어오른 건 아냐」
타이치「과거의 일이고」
키리「그러면……!」
흐름이 역전하기 시작했다.
감정의 물결이 파도를 이뤄, 나를 적시고 반대편으로 밀어닥친다.
키리.
먼저 공격한 건, 네 쪽이야.
타이치「괴로워하고 있으면, 봐 주려고도 했어」
타이치「하지만 나와 놀고 있을 때의 그 녀석은, 행복해 보였어」
키리「……!!」
키리「그 날……저한테 질문한……행복하냐는 건……?」
타이치「잘 기억하고 있네」
타이치「응. 그런 의미야」
지금 다시, 같은 질문을 던진다.
타이치「있잖아 키리……유타카는, 행복했을까?」
흔한 질문.
하지만.
의미는 완전히 반대였다.
키리「……쭉 괴로워해 왔어요!」
키리「친척들에게 버림받아……거칠어지고……」
타이치「정말로 쭉 괴로워했어?」
타이치「한순간이라도, 행복해한 적은 없었어?」
키리「그건……」
타이치「있었겠지」
키리는 대답하지 않는다. 고개를 숙인다.
무기도 아래를 향하고 있다.
적의도 살의도 느껴지지 않는다. 시든 꽃.
가녀린 몸에, 체념이라는 독이 가득 찬다.
타이치「그야 그렇겠지. 과거에 저지른 짓을 깨끗이 잊어버리면, 마음도 깨끗해지는 법이야. 당연히 행복해지겠지!」
타이치「그래서 생각나게 해 줬지」
키리「……그만……」
키리는 귀를 막으려 한다.
타이치「막지 마!」
손이 멈춘다.
타이치「맑은 날이었지」
타이치「네가 본 대로, 그 때 옥상에서 전부 이야기했어」
키리「……으……」
타이치「그 녀석은 말했어. 어떻게 해야 용서해 줄래?」
타이치「용서하고 말고도 없어. 저지른 죄는 영원히 그대로야. 건드릴 수는 없어. 변질시킬 수도 없어. 나도 그걸 따질 생각은 없었어」
타이치「……그저, 하나 의문이 있어서」
타이치「물어봤어」
타이치「저기, 하나 질문이 있는데……왜 지금 당장이라도 안 죽는 거야?」
타이치「……라고」
키리「아아아……」
타이치「그랬더니……그 녀석 진짜로 자살해버렸어」
키리는 주저앉았다.
그 옆에 따라서 앉았다.
내 얼굴에는, 씁쓸한 웃음이 새겨졌다.
타이치「뭐가 어쨌든, 진실은 하나뿐이지」
앞으로 한 방만 더하면 부서진다.
그걸 알고 있지만, 난.
귓전에 대고 속삭인다.
진짜 칼날을 꽂기 위해.
타이치「네 오빠는 더럽고 역겨운 쓰레기 강간 원숭이야」
키리「……………………」
뚝, 하고.
키리의 안에서 실이 끊어지는 것을 느꼈다.
결코 다시 이어지지는 않는다.
5분 정도 조용한 시간이 흘렀다.
키리는 울지도 않았다.
눈물은 스트레스를 체외로 흘리는 것이라는 설이 있다.
키리는 울지 않았다.
……깊은 절망 속에 가라앉아 버려서.
마음 속에 뭉친, 가슴의 응어리가 가라앉아가고 있다.
나는 차분하게 기다렸다.
바로 옆에서.
긴 시간.
키리「……왜……」
타이치「응?」
키리「왜……안 말하셨나요」
타이치「키리한테?」
키리「……네」
타이치「키리가 유타카를 너무나도 그리워하고 있었으니까」
타이치「그게 또 순수해보여서 말야」
타이치「퓨어랄까, 허무하달까」
타이치「그래도……깨끗해지만은 않았지. 녹슬어 갔어」
타이치「어중간했지」
키리「……?」
키리는 이해 못하고 있었다.
당연하지.
타이치「약한 주제에, 공격적이고」
타이치「그런 거, 난 좋아해」
타이치「알아? 난 너를 좋아해」
키리「……선배……가? 거짓말……」
타이치「난 방금 전부터 진실만 말하고 있어」
키리「그치만……이상해요……유타카를 원망하면서……그러면서 왜 저를?」
타이치「원망 같은 건 안 했어」
키리「……네?」
타이치「그보다 말야, 키리는 쭉 나를 살인자 취급했었지」
표정이 흐려진다.
키리「……그건……어쩔 수 없었으니까……」
키리「아무도 진실 같은 건 안 가르쳐 줘서……스스로 생각할 수밖에 없어서」
키리「그리고……아직 못 믿겠어요. 그 유타카가……」
타이치「어린아이의 윤리관에, 너무 많은 걸 기대하는 건 안 좋아」
교사투로 말한다.
타이치「덕분에 실컷 차이고 미움받고 참 힘들었지」
키리「…………」
긴 침묵.
키리의 안에서, 정신상태가 응급처치받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방향이 정해진다.
키리「……어떻게 해야……?」
타이치「네에?」
키리「어떻게 해야……되나요?」
타이치「꼭 하고 싶어?」
키리「왜냐면……전, 저희들은, 선배에게, 부당한……」
저희들, 이라.
유타카의 책임까지 짊어지고.
타이치「글쎄」
어쩔까.
키리「사과하면, 용서해 주실 건가요?」
타이치「별로 사과할 필요는 없는데 말야」
타이치「맞다, 그럼」
타이치「……내가 하는 말, 뭐든지 들을래?」
키리「……」
끄덕. 고개를 아래로 흔든다.
키리의 머리에 손을 얹는다.
그대로 옆얼굴을 어루만지며, 귀에 손가락을 넣는다.
키리「응……」
어차피 하루밖에 남지 않은 세계.
마음껏 해 보자.
이제, 무엇을 지킬 필요도 없으니까―――
타이치「진짜로?」
키리「……그걸로……용서받는다면」
타이치「어디 사는 램프의 정령처럼, 소원은 3개까지라고 하진 않겠지?」
키리「……네」
키리「제가……할 수 있는 일이라면」
너무 기운이 빠졌지만 뭐.
타이치「난 매니아니까, 키리의 USED 교복을 바치라고 요구할지도 모르는데?」
키리「……네……에……좋으실 대로」
우오―.
귀여워―.
타이치「입고 있는 속옷하고 장식물까지도야」
키리「……그런 것까지……」
울상짓는다. 하지만.
키리「……알겠, 습니다……」
……애노예 탄생.
설마 진짜로 그런 걸 가지게 될 줄은.
타이치「살아있길 잘 했어」
하지만 남은 시간은 앞으로 1일.
타이치「……위험한데」
서둘러야지.
난 서둘로 다음 스탭으로 넘어갔다.
타이치「그, 그럼, 야한 일을 시켜 볼까나?」
키리는 움찔 떨었다.
키리「……어느 정도……야한 일을?」
타이치「으음……」
타이치「살떨리는 느낌, 일까나」
키리「……네?」
타이치「키, 키리가 날 증오해 왔던 것만큼은 해야지」
좀 억지였다.
키리「저를……그……안는 건가요?」
타이치「미, 미정이야」
당연히 안게 된다.
하지만 말하기가 좀 그렇다.
타이치「우선, 거기 서 봐」
키리「지, 지금부터?」
시간은 없다.
가급적 신속하게 에로신 GO.
교단에 세운다.
타이치「그럼, 지금부터 야한 일을 하겠습니다」
키리「……」
키리는 말이 없다.
부끄러움으로 귀까지 빨갛다.
지금부터 어떤 파렴치 체험을 강요당할지, 불안해하는 것 같았다.
나도 불안했다.
인간 한 사람을 마음대로 한다는 것은, 꽤나 압박감이 큰 일이다.
뻘쭘 모드로 전환되어버렸다.
방금 전 같은 강경 모드는 단시간밖에 유지할 수 없는 것이다!
타이치「자, 자아, 키리」
귀축 토크도 더듬더듬.
타이치「으음……그럼, 우선 고백 타임이다」
키리「고백?」
타이치「내가 지금부터 질문할 테니까, 제대로 대답해야 돼?」
키리「네, 네에」
타이치「으―음……초경을 시작한 때는?」
키리「……여, 열셋입니다」
타이치「그래」
키리「……」
타이치「……」
대화가 안 이어져…….
좀 더 오버를 떨면서 쪽팔리게 해야 되는데.
타이치「열셋에 생리라! 꽤 조숙한데!」
키리「……에……그런, 가요?」
타이치「이 음란 D컵 보디 녀석……어, 아, 안 그래? 열셋은 빠른 거 아냐?」
뻘쭘한 나.
키리「모르겠어요……다른 사람한테 할 얘기도 아니라……」
키리「그리고……D컵은 아닌데……」
타이치「으음」
질문을 바꾸자.
타이치「처음으로 남자를 따먹은 건 언제지, 응?」
키리「……아, 아마……지금부터」
아참 그랬지.
그 외에 여자가 부끄러워할 만한 질문.
타이치「그래, 자위! 자위는 어때! 일주일에 몇 번이나 해?」
키리「자위가……뭐죠?」
타이치「뒷구멍의 맛까지 알고 있다니 이 미스ㆍ셀프 플레져 녀석……어, 에, 방금 뭐라고 했어?」
키리「자위란 게?」
난 호호호 웃었다.
타이치「아가씨 농담도 참」
키리「……?」
타이치「……내참 싫다니깐……딸딸이」
키리「딸딸이?」
타이치「뭔지 몰라?」
키리「……네」
성에 둔감한 체질인가.
타이치「혼자서 야한 짓 하는 거라면 알까?」
키리「그거……말이군요」
타이치「어때?」
키리「이, 있어요……」
좋아. 좋은 느낌.
타이치「후후후, 일주일에 몇 번?」
키리「지금까지의 인생에서 두 번뿐……」
타이치「주 6회라니 그거 엄청난 열성이로군 주 5일 근무제도 반납하는 근면함에 보너스를 주고 싶어지는구나 이 변태 프로 음란 녀석……어, 인생에서 두 번?! 진짜야!?」
소리지른다.
키리「네, 네에……」
타이치「왜 그렇게 적어! 수녀냐 넌!」
키리「그, 그렇게 말씀하셔도……별로 기분도 안 좋았고……」
타이치「두―웅!」
무 모에.
안돼, 아무리 해도 업되지가 않아.
타이치「……조, 좋아. 다음 스텝으로 넘어가자고 다음」
키리「네, 네에」
타이치「멋진 쇼타임은 끝났다. 이제부터는 실전이다. 너의 순결과 나의 육욕, 어느 쪽이 진짜인지 시험하는 것이다」
키리「???」
음. 나도 뭔 말인지 모르겠다.
그래도, 가자!
타이치「치, 치마……마이너스……킥……이콜, 뭐게?」
키리「……마이너스? 킥?」
타이치「다음 질문에 대답하세요」
타이치「치마―킥=?」
키리「으, 으음……어, 어려워요……」
타이치「키리는 내가 치마를 들추려 했더니 발로 찼었지. 그러니까……」
키리「보통 그래요……」
타이치「보, 보통 그러나?」
키리「치마를 들추고 싶으신 건가요?」
타이치「아니, 키리가 들춰 줘」
키리「네?」
타이치「스스로 보이는 거야. 실시!」
키리「스스로라니……」
타이치「서둘러. 시간이 없어!」
키리는 치마를 누르며 망설였지만, 잠시 후 각오를 굳혔다.
막이 올라가는 듯한 느린 동작으로, 치마를 들어올린다.
타이치「……오오, 팬티다……」
고생한 만큼, 기쁨도 컸다.
키리「이, 이제 됐나요?」
타이치「무슨 말이야! 아직 서장인데!」
타이치「엔딩까지 긴 여정이 기다리고 있다고. 자, 그대로 가만히 있어」
키리「이, 이런 거……이상해요」
타이치「좋은 속옷이네」
키리「……감사합니다」
타이치「아주 잘 어울려. 실로 키리다운, 청초한 건강미가 잘 살아나고 있어. 쭉 뻗은 두 다리 위로, 둥그스름한 가랑이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감싸는 구조는 아주 시원해, 사람에게 청량감을 전달하는 것은 어려운데, 아주 좋아」
키리「……평론하지 말아주세요……」
타이치「자 그럼」
다음으로.
팬티의 다음이라 하면 뻔하지.
타이치「……속옷을 다운로드하겠습니다」
키리「네? 다운로드라뇨?」
타이치「팬티를 내리겠습니다」
키리「네엣?」
타이치「뭘 놀라고 그래」
키리「그런 일까지……」
타이치「해야지. 난 해야 돼. 좀 더 차분히 해야 좋겠지만, 시간이 없어서 말야」
키리「시간이라니……조금 전부터 무슨 말씀을?」
타이치「그런 게 있어. 그보다 넌 오늘 안에 내 애인형이 되어 줘야겠어」
키리「애, 애인형……」
타이치「손은 그대로 두고 있어」
키리의 속옷, 옷자락 속에 손가락을 넣었다.
타이치「다른 이름으로 대상을 저장합니다」
천천히 정확하게 내려간다.
마치 임금과 금리처럼.
속옷이 가볍게, 스르륵 다리를 타고 미끄러져 내려간다.
키리「시, 싫어……보여요……」
타이치「어디가?」
키리「소, 소중한 곳이……」
계속 내려간다.
아직 음부는 노출되지 않았다.
한쪽 끈이 간신히 골반에 걸쳐 있다.
중심부는 가랑이 사이에 밀착되어, 꽉 끼어 있었다.
기분 탓인지 움푹 들어가 있어, 그 형태를 나타내고 있는 듯했다.
1센티, 손가락을 내린다.
속옷이 밑으로 끌려간다.
벗겨진다는 생각에, 키리의 온몸이 팽팽하게 긴장하고 있었다.
타이치「……이 정도만 하고 봐 줄까」
키리에게서 안도감이 느껴진다.
그 순간.
난 단숨에 손가락을 발목까지 내렸다.
키리「꺄앗!?」
나왔다!!
타이치「후후후, 저것이 태양계 제 3 혹성ㆍ치부인가……」
키리「……부, 부끄러워……으으, 흐윽……」
울려버렸다.
연약하다.
타이치「키리는 털이 별로 없네」
키리「그런 말, 하지 말아 주세요……」
타이치「하지만 너무 엉켜있지 않고, 매끄럽게 흘러내리고……예쁘네. 마치 빗으로 빗은 것 같아」
키리「으으으」
타이치「게다가, 부드러운 팬케이크 같은 음부……그만 정의의 사도가 되어버릴 것 같아」
나는 근거리에서, 키리의 음부를 물끄러미 관찰했다.
키리「……응……그런……」
입김을 내뿜어 본다.
키리「으응, 숨결, 안돼, 안돼, 요」
대퇴부가 떨린다.
나는 입을 모으고, 숨을 날카롭게 해 키리의 음부에 자극을 더한다.
키리「으응……그런 거, 이상해요……흐응……응……으응」
간지러운지, 하반신이 움찔움찔 떨린다.
타이치「그치만, 키리의 여기, 전혀 성장 안 한 어린애 같은 걸」
얼굴의 빨개짐이 화악 늘어난다.
키리「그, 그건, 무슨?」
타이치「딱 닫혀 있어서, 여자애답다는 느낌이야. 돌출부도 거의 안 나왔고……」
키리「보, 보통은 다른……가요?」
타이치「좀 더 활짝 펼쳐져야지. 이렇게―」
키리「꺄앗」
우와, 너무 귀엽네. 반할 것 같아.
안돼, 가지고 싶어졌어.
타이치「……키리의 처녀, 가져도 될까?」
키리「히잇」
순간 말이 막힌다. 하지만 담담하게,
키리「그럴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키리「부끄러운 곳을 보이고……안기고……그걸로, 용서받을 수 있다면……」
타이치「……난 별로」
용서하거나 안 한다거나, 그런 건…….
하지만.
글쎄.
난 유타카를―――
그런 의문을 강제로 지워버렸다.
타이치「이제 내려도 돼」
키리는 치마를 내렸다.
타이치「다리 올려 봐」
한쪽 다리를 올리게 하고, 속옷을 빼냈다.
가볍게 빼내고는, 코 끝으로 가져간다.
키리「아, 안돼」
타이치「음―, 좋은 향기」
키리「그만, 제발 그만하세요」
타이치「……네네」
타이치「하지만 이건 가져가겠어. 다운로드했으니까」
오른쪽 주머니에 저장했다.
타이치「그리고, 어차피 더 부끄러운 일을 할 건데?」
키리「…………저, 저기……여기서?」
타이치「응」
키리「수영, 하고 싶은데요……」
타이치「안돼」
가장 재밌는 부분인걸.
타이치「창가로 가」
키리「네, 네에……」
창가에 세운다.
타이치「……지금, 키리찡은 팬티를 안 입고 있지」
키리「당신이……벗겼으니까요……」
시선을 돌린다.
타이치「이제부터, 키리찡은 쭉 나와 같이 있는 거야. 알았지?」
키리「……네」
타이치「오늘 밤부터 우리 집에서 자」
키리「알겠, 습니다」
타이치「그리고, 속옷은 이제 입으면 안 돼」
키리「……안된다뇨……그럼, 어떻게?」
타이치「계속 노팬티로 있는 거야」
당연하게 말한다.
타이치「키리찡은 팬티를 입을 권리가 제한되었어」
키리「그, 그런, 만약 누구한테 들키면」
타이치「……두근거리겠지?」
키리「안 그래요」
타이치「분명 그럴 거야」
키리「아니에요. 그런, 그럴 리가 없어요」
나는 웃음을 꾹 삼켰다.
매몰차지 못한 면이 귀엽다.
타이치「자 그럼」
치마 속에 손가락을 넣었다.
갈라진 곳에 손가락을 가져간다.
타이치「……음. 조그만 틈새에서 열기가 불어나오고 있어」
타이치「들어갈게」
천천히 비비며, 손가락을 밀어넣는다.
쑤욱, 하고 살이 갈라졌다.
키리「……읏!」
키리는 까치발을 든다.
도망치려고 허리를 든다.
하지만 도망칠 수 없다.
손가락을 살 속으로 넣어간다.
키리「……아, 무서워, 무서워」
내 어깨에 매달린다.
타이치「괜찮아」
키리「아파, 그거 아플 것 같아요……」
타이치「괜찮다니깐」
손가락은 자극이 너무 센 걸까.
빼낸다.
나올 때, 클리토리스를 손가락이 간지럽혔다.
키리「꺄읏」
민감하다.
타이치「그럼, 좀 더 부드럽게 해 줄게」
키리「……에……에, 네?」
난 키리의 치마 속으로, 얼굴을 넣었다.
키리「아, 아아아……거짓말……」
타액으로 충분히 적신 혀를 내밀고.
키리「흐아아아아앙!?」
살에 문질렀다.
딥 키스.
혀 끝이 뜨거운 공간에 둘러싸여 있다.
엄청난 체온.
키리의 다리를 벌리고, 머리를 움직인다.
날카로운 혀로, 키리의 갈라진 틈으로 들어간다.
소녀의 향기가 물씬 났다.
키리「……으으으으읏」
신음하고 있다.
커닐링구스의 감각은 처음이겠지.
혀 끝은 키리의 문을 조심스럽게 열어간다.
내 입이, 여성의 성기로 변해간다.
키리「꺄앗, 꺄아아……앗, 아앗, 으응!」
머리 위에서 들려오는 가는 목소리.
키리「앗, 빠, 빨지 마세요, 빨면 싫어어」
타이치「안 빨면 반들반들 윤활유가 나올 수가 없잖아」
키리「그, 그런 거, 없어요……」
없는 건 아니다.
타이치「나오게 해 줄게」
키스를 재개한다.
키리「흐으읏, 아으, 아아아……하, 하아, 아, 안에 들어와……꺄아앙……응―!」
머리가 눌린다.
멈춰지지는 않는다.
낼름낼름 핥는다.
국을 젓듯이 휘젓는다.
내벽이 깨끗이 씻어진다.
씻기라도 한 건지, 냄새는 거의 나지 않았다.
키리「핫, 하앙, 으으응」
안쪽까지 깊숙히 파고든다.
키리「으으으으으으으으으응……」
반응은 다채롭다.
요도를 빨아보면.
키리「꺄아!? 꺄, 안돼, 안돼, 안돼요」
상당히 당황.
키리「나와, 나와버려요……제, 제발……더러워요……」
중단한다.
난 변태니까 더럽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뭐……즐거움은 나중을 위해 남겨두자.
요도 위.
콩알 발견.
빨아들인다.
키리「앗!!??」
파뭍혀 있던 그곳을, 키리는 알고 있었을까.
키리「아, 아, 아……?」
핥는다.
축축한 혀 끝으로, 이리저리 자극했다.
키리「꺄앗, 꺄앗, 핫, 하, 하앙, 뭐, 뭐야?」
타이치「……클리토리스야. 지저스. 삐삐삐삐삐삐」
살짝 깨문다.
키리「꺄아……아앙! 아―――!」
허리가 도망치려 한다.
양팔로 엉덩이를 꾹 안는다.
안 놓친다니깐.
공격의 속도를 높였다.
키리「……꺄아앗, 으아아아앙」
허리가 휘청휘청.
하지만.
타이치「잘 안 젖는데?」
처음이라 그런가.
키리「하―, 하―……」
느끼고는 있는 것 같은데.
시험 삼아 손가락을 넣어 본다.
키리「……아, 아얏……」
아퍼하는 걸까.
일단, 몸을 떼어낸다.
치마 속에서 나온 나. 안심하는 키리.
분위기 문제일까.
타이치「……양호실로 가서 할까?」
키리「네……좋아요……」
제대로 안 하면 힘들 것 같다.
타이치「그 전에 이걸 잊었네」
키리「네……으으응?」
진짜 키스를 했다.
타이치「?」
감촉이 다르다.
이질감.
가벼운 키스로 끝내려 했지만.
혀를 밀어넣어 본다.
키리「으으으으으으응!」
이를 악물고,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한 손으로 가볍게 키리의 턱을 잡는다.
타이치「안돼, 열어」
키리「……기, 기분 나빠요……」
타이치「다칠지도 몰라」
타이치「열어」
차갑게 말한다.
키리「……」
나란히 배열된 문이 열린다.
혀가 방문한다.
축축했다.
타액이다.
양이 많다.
점도도 높다.
키리「으흥, 응……아흡」
혀를 빙빙 감는다.
부드러운 입술. 혀.
감고, 잡아당긴다.
키리「흐응, 흐응, 으응, 으응……으―ㅅ」
눈의 초점이 흐릿하다.
퍼스트부터 딥은 좀 그런가.
혀를 흡입.
키리「으으으으으으응!?」
반사적으로, 양 어깨에 손을 얹는다.
혀는 점액같았다.
얇은 피부로 덮인, 끈끈한 젤리.
이빨을 꼭 물어버리면 터질 것 같았다.
그 달콤한 맛을 본다.
키리「으응, 응, 으으읍, 응, 응, 으~~~~」
추욱, 하고 허리가 내려갔다.
그 순간 가랑이 밑으로 손을 내려 지지한다.
역방향 원샷 낚시질 형태.
등 뒤로 다가가, 가랑이 사이에 손을 넣고 들어올리는 거친 기술.
여자애게 할 때 가장 즐겁다.
그리고 확실하게 정학을 먹는다.
타이치「이런이런, 왜 그래?」
키리「……흐아……아흥……아……」
어라.
한 손에 의식을 모은다.
……젖어 있었다.
타이치「……?」
아까까지는 별로 안 젖었었는데.
어떤 생각이 들어, 다시 키스를 해 본다.
츄우츄웁낼름낼름낼름
키리「으으응, 읏, 하읏, 으으응~, 츕, 으응, 읏, 핫, 하아……」
타액이 매끈하게 흐르고 있었다.
로션처럼.
윗입술을 살짝 물어본다.
키리「앗, 흐응, 싫어……」
울상.
아니 그보다 이것은.
느끼고 있었다.
성욕을 느낀 듯한 표정이었다.
키리「하응, 하, 아앙……」
아랫입술을 깨물며 생각했다.
키스에 약한 걸까.
구강으로 혀를 넣는다.
혀를 깔대기삼아, 타액을 흘러넣는다.
키리「읍? 으으으으읍!?」
타이치「마셔」
입을 손으로 막는다.
키리는 좌우로 고개를 흔든다.
싫은 것 같다.
타이치「안돼. 마셔」
포기했는지, 턱을 앞으로 내밀었다.
목이 움직인다.
타이치「그럼 제 2탄♪」
키리「으으으으으응~!!」
나도 체액은 많은 편이다.
타이치「자, 마셔」
삼킨다.
타이치「제 3탄~」
키리「그만, 하세요……이런 거, 변태잖아요……으흡, 응, 츄웁……으으으……」
변태 맞습니다.
키리「응……으응, 꿀꺽……」
입술을 뗴어낸다.
키리는 한숨을 돌린다.
타이치「맛있어?」
키리「……맛있지는, 않아요」
타이치「그렇겠지」
키리「저기……양호실에 간다는 건?」
타이치「응. 그냥 안 갈래. 대신에 시키고 싶은 일도 생겼고」
키리「시키고 싶은 일?」
나는 가랑이를 노출시킨다.
타이치「핥아」
키리「……………………네?」
타이치「핥아 봐」
키리「그, 그걸……요? 그치만 그거……그건……」
타이치「그렇지. 아랍권에서는 티팀이라 불리는 남성의 상징이자, 파로스 신앙에서의 숭배 대상이자 우상이며, 남성 그 자체를 가리키는 주적 기관이지」
구라입니다.
키리「그치만 그건 그건 남자들의 그게 그걸 어떻게……으읍!?」
억지로 들이밀었다.
타이치「괜찮아. 해는 없어」
키리「으으으으으읍!?」
뱉어내려 하고 있다.
타이치「……안 해주는 거야?」
움직임이 멈췄다.
타이치「난 심한 녀석이니까, 이것도 심한 짓이지. 그야 뭐」
타이치「그래도……아픈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아서, 이러고 있는 거야」
이건 진심.
타이치「……키리, 부탁해」
키리「……으으으」
포기했나.
키리는 움직임을 멈췄다.
타이치「으음, 이빨은 안 닿게 해. 그리고……」
기본을 지도했다.
타이치「그럼, 해 볼래?」
키리「으음……읍, 으읍……으으응」
서서히 박자에 맞춰 움직여 간다.
앞뒤로 머리가 슬라이드된다.
남자의 생리 같은 건 모르는 터라, 그 움직임은 서툴고 비효율적이었다.
그래도 기분 좋다.
키리「응, 으읍, 츄웁……으읍……아흐, 낼름, 츕……응, 하읏, 으으으응」
혀가 달라붙는다.
물건에 엉겨붙는, 타액의 중량이 느껴진다.
거의 로션이었다.
쉽사리 미끄러진다.
키리「으읍, 으응……으흡, 흐읏, 흐, 으으응…………츄, 츕……낼름……」
들이마신다.
가르쳐준 대로.
서툴지만, 성실하다.
사쿠라 키리.
난 너의 소중한 가족을 빼앗아버린 녀석인데.
나와 유타카의 관계에, 키리는 전혀 상관없는데.
스스로 짐을 짊어지고, 나에게 용서를 구하고 있다.
……미안해.
사냥을 하는 사자는, 어쩌면 토끼와 사이좋게 지내고 싶은 걸지도 모른다.
잡아먹은 후에, 후회해버리는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눈 앞에서 부지런히 움직이는 걸 보면, 덮칠 수밖에 없다.
본능이니까.
키리「츄웁, 낼름……응, 으으응……」
타이치「좋아, 턱이 피곤해질 때까지 그렇게 리드미컬하게……」
키리「……응, 읍읍읍읍읍읍읍읍……푸핫, 으응응, 읍읍읍……으으응~」
때때로 목을 기울여 가며.
키리「읍읍읍읍읍읍읍읍」
미끈미끈한 구강을 왕복시킨다.
타이치「……기분 좋아, 키리」
끈끈한 점막.
이대로 영원히 있고 싶다.
일단 빼낸다.
걸쭉한 타액이 길게 늘어졌다.
뺨에 갖다 댄다.
키리「……하아, 하, 하아……」
거부는 없다.
페니스가 뺨을 변형시키는 것을, 잠자코 받아들이고 있다.
타이치「피곤해?」
키리「……아뇨」
타이치「그럼, 아―」
입을 연다. 온순하게.
페니스를 삽입한다.
7분 정도가 한계다. 그 이상은 부담이 된다.
타이치「들이마시면서, 방금 전처럼 움직여」
머리를 쓰다듬는다.
키리가 움직였다.
키리「으으으……」
앞뒤로 슬라이드.
거기에 맞춰, 콧김이 물건의 상부를 쓰다듬는다.
흥분과 쾌락이 부풀어오른다.
키리가 해 주고 있다는 것이 크다.
그 키리에게.
키리에게 먹이고 싶어졌다.
타이치「……한 번 갈 것 같은데. 가도 될까?」
타이치「네 입에 싸도 돼?」
키리「……으으」
입에 문 채로, 키리는 슬픈 듯 고개를 끄덕인다.
싼다는 말의 의미조차 거의 이해 못 하고 있겠지.
타이치「그럼, 간다」
허리를 조금씩 흔든다.
입 안 깊숙히, 귀두를 문질러 간다.
타액의 점도 때문인지.
점막 위에, 두께 5밀리의 수액이 덮여 있는 것 같다.
키리「응, 으응……으으읍, 으읍, 낼름, 으흡, 흐아……싫어」
빠질 것 같은 귀두를, 입술 위에 문질러준다.
키리「아, 그런, 읍……」
밀어넣었다.
키리「으흡……」
타이치「자, 빨아 봐」
키리「흐아……읍, 으읍, 하읍……츕, 낼름……츄웁~」
거의 다 왔다.
빨기 쉽도록 느슨하게 움직인다.
입 안의 흡착력이 좋다.
그리고 사정.
키리「으흡……응, 으읍……으으읍……읍, 꿀꺽……꿀꺽……」
삼키고 있다.
어차피 삼키게 하려 했지만.
정액은 키리의 타액과 별 차이없는 점도다.
저항은 의외로 약했던 걸지도 모른다.
키리「……으읍, 꿀꺽……」
전부 다 삼켰다.
타이치「……삼켰구나」
키리「네에……」
입에 문 채로 대답한다.
타이치「잘했어」
뺨을 쓰다듬는다.
키리는 별다른 감정없이 눈을 감았다.
키리의 입은……성기 그 자체다.
하지만 이건 말하지 말자.
뺀다.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타이치「이 정도면 괜찮으려나」
창가에 손을 대게 한다.
키리「이, 이런 자세로……?」
타이치「응」
작은 그곳에, 물건을 댄다.
키리「싫어……무서워……요」
타이치「응」
그렇겠지.
살짝 만져 본다.
준비는 되어 있었다.
살짝 열리고, 따뜻하고, 이완되고.
……젖어 있다.
키리「살살……살살 해 주세요……부탁이에요……」
간절히 바란다.
하지만 아무리 뭐라 해도.
타이치「응」
이라고밖에 대답해줄 수 없다.
밀어넣는다.
키리「앗……아, 아아……」
일정한 속도로.
키리「아얏!」
꿰뚫는다.
저쪽편으로.
키리「……아……들어갔어……들어……갔어……」
키리의 타액과 애액이, 통과의 저항을 줄여주고 있었다.
그렇게 아파하는 것 같지는 않다.
타이치「다행이다, 안 아파서」
키리「하아, 하, 하아……」
그래도 키리는 충격으로 축 늘어져 있었다.
느릿느릿 앞뒤로 개시.
느껴졌다.
질 속에 공기는 없고, 빨려들어가는 느낌이다.
키리「아읏……하, 하앗, 아……앗, 앗……앗」
질을 넓히는 감각으로, 사방으로 움직인다.
키리「아읏, 앗, 으으……아으!」
안쪽으로 넣어 본다.
얕다.
완전히 풀린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키리의 모든 것을 정복할 수 있었다.
타이치「……조금은 익숙해졌어?」
키리「모르, 겠어요……하앗……하아」
타이치「좀 더 돌려 볼까」
키리「에? ……아으……아……하앙!」
키리의 좁고 뜨거운 구멍.
나는 행위에 열중한다.
그저 생물적인 요철에 지나지 않는 기관을, 쉴새없이 끼워맞춘다.
어린아이가 블록을 가지고 놀듯이.
키리「아으……아, 아아……하앙! 아아……으항, 아아……으응, 아……읏, 으읏」
키리「핫, 하아, 으읏……하아앙……응……아으, 앗, 아앗, 앗……응, 응, 응, 아앗!」
점차 목소리가 습기를 띤다.
코에 걸려, 기분 탓인지 허스키하게 들린다.
찔리는 행위에, 급속하게 익숙해져 가고 있다.
폐에서 공기를 내뿜는 리듬도 안정되어 가고.
그런 키리를 망가뜨리고 싶어서, 깊숙히 찌른다.
키리「꺄읏!」
고개를 돌린다.
안쪽에 닿았다. 하지만 더 밀어넣는다.
키리「……하으응」
허리와 허리가 밀착한다.
키리「아, 아파……너무, 세게 하지 말아주세요……」
깊숙히 박힌 채로, 글자를 쓰듯이 엉덩이를 좌우로 흔든다.
키리「아, 흐아……아앙……아, 안돼, 싫어……시, 싫어, 싫어」
어린아이가 된 키리.
키리「이, 이런 건 싫어, 너, 너무 깊어요, 으응, 하앗」
타이치「키리」
등 뒤에서 귓볼을 빨며, 달랜다.
내 쪽으로 향하는 작은 입술.
요구하고, 엮어진다.
키리「응……으읍……낼름, 낼름, 하응, 으읍」
끈끈한 혀.
젤리 같은 그것을, 입 안으로 가져와 가지고 논다.
키리「으흡, 으으읍」
키리가 콧소리를 낸다.
뇌가 타오르는 듯, 내 하복부가 발열한다.
키리「앗, 앗, 아앗, 응, 아앗, 아으응~」
키리「빠, 빨라……선배, 빨라요……아앗―!」
창틀에 몸을 내밀고, 키리는 비명을 지른다.
그대로 밀어버릴 듯한 기세로 움직인다.
상체가 밖에 노출되었다.
키리는 창틀에 매달려, 신음과는 또 다른 소리를 낸다.
키리「떠, 떨어, 떨어져요……꺄아, 선배, 떨어……아아아아앗!?」
푸욱, 하고 질이 폭발한 것 같았다.
타이치「우와, 꽉 조여졌다」
내부가 수축되고 있다.
공포가 전신을 위축시키고 있었다.
거기에 취해, 더욱 더 움직인다.
키리「앗, 꺄, 꺄앗, 무서워……무서워, 무서워……그만하세요!」
타이치「꽉 조이고 있으면 안 떨어져」
키리「조이다……뇨?」
얼빠진 얼굴로.
타이치「여ㆍ기」
8자를 그린다.
키리「으으으으읏, 히익, 꺄앗!!」
타이치「자, 엉덩이에 힘 줘」
키리「하, 하으, 하읏」
타이치「그래그래」
움직임을 멈추고, 벗겨진 교복 사이의 투명한 피부를 맛본다.
키리「……하아아……히잉, 으, 응……」
안심을 한 건지.
질이 서서히 이완된다.
그래서, 다시 허리 전체로 밀어냈다.
키리「꺄아아아아앗!」
창틀에 달라붙는 키리.
질 안도 달라붙어 온다.
찌부러질 듯한 압박감.
틈새가 없는 느낌이 독특하고 기분 좋다.
키리「하앗, 떨어져, 떨어져요……으읏!」
타이치「그럼, 좀 더 꽉 조여야겠네」
키리「이제, 무리……힘이, 빠져요……꺄앗!」
벌써 표정은 풀어지고, 쾌감도 허탈도 느껴지지 않았다.
노곤함은 전신을 마비시킨다.
어쩔 수 없지.
키리의 입에 손가락을 넣는다.
키리「아흡, 아으, 낼름, 할짝」
손 끝이 끈적한 점액에 둘러싸인다.
실을 이룰 정도로.
그 끈끈한 손 끝을, 키리의 또 하나의 구멍으로 가져간다.
키리「꺄아……뭐, 뭐를?」
회전시키며 밀어넣자, 순조롭게 삽입되었다.
키리「흐읏!?」
극적인 효과가 있었다.
타이치「……우와, 굉장한데」
안 그래도 좁던 질내가, 더욱 좁아진다.
타이치「자, 이렇게 두 군데에 다 넣어두면 안 떨어질 거야」
키리「……안돼……안돼, 거기는, 거기는! 아아앗!」
작은 엉덩이.
엄지손가락을 끝까지 집어넣었다.
키리「하아아아……싫어……빼세요, 빼……」
움직인다.
다시 키리는 앞으로 밀려난다.
키리「으읏……읏, 아읏, 아아아아아앙, 하앙, 아까보다, 괴로워요, 하읏!」
그건 키리 자신의 몸이 조이고 있는 탓.
키리「앗, 아아. 아아앗! 아아앙, 하아아앙……하앙, 흐아앙, 앗, 이, 이제 그만……꺄아앗」
멈춘다.
키리「하―아, 하―아, 하아아아……」
질 입구가 리드미컬하게 움직인다.
목덜미의 땀을 혀로 핥으며 속삭인다.
타이치「……질이 수축되고 있어」
키리「싫어……몰라요, 그런 거……응……」
입술에서 침이 늘어진다.
타이치「……」
얼굴을 가져가, 입을 맞춘다.
키리 대신에, 늘어진 타액을 끊어준다.
키리「아음, 응, 으응, 츄윱, 춥……으으으으응……으응……아응……」
턱 앞쪽까지 깨끗하게 한다.
키리「아흥……선배……」
눈을 감고, 받아들인다.
이미 키리는 나의 것이었다.
타이치「엉덩이 안도 뜨거워」
엄지손가락을 구부린다.
키리「꺄앗! 그, 그런 말 하지, 마세요……히익!?」
타이치「슬슬……갈 것 같아, 키리」
천천히 움직인다.
키리「하―앗, 핫, 하앙, 아아앙, 가요……?」
타이치「키리는? 갈 것 같아?」
키리「몰, 라요……그런 거, 몰라요, 아앗!」
타이치「안에 쌀게」
구부리면서 밀어넣는다.
키리「아응, 앗, 앗……싫어, 안은……임신해버려……」
타이치「……그럼, 내 아이를 낳아 줘」
키리「……에……아이라뇨……?」
관능으로 녹아내린 얼굴에, 불안함이 지나간다.
타이치「아담과 이브가 되자」
꾸욱, 하고 질이 꼭 조였다.
키리「……그건……저하고……선배가……?」
타이치「…………」
무슨 말을 하는 걸까, 나는.
이 세계에.
이 하늘 아래에.
무슨 희망이 있다고.
사납게 흐리를 율동시켰다.
키리「아읏! 끄읏, 응……앗! 앗, 응, 핫, 하앙! 꺄아, 빨라, 아으으으으읏~~~~~~!」
타이치「……음」
절정과 동시에, 질 안에 사정한다.
키리「꺄웃, 하, 하아……아아앗! 아―ㅅ!!」
가녀린 몸을 등 뒤로 안는다.
세게 안는다.
키리「하, 하아……아으……앗……아……」
딸꾹질을 하듯, 호흡을 가다듬는 키리.
둘이 같이 바닥에 내려앉는다.
키리「흐……흐윽, 읏, 흐으으윽……」
울기 시작한다.
타이치「……키리?」
뒤돌아 보는 얼굴에는, 대량의 눈물.
키리「유타카는……죽을 수밖에 없던……거죠?」
타이치「…………」
키리「……그런 일을 했으니까……죽을 수밖에……없으니까……」
타이치「난」
유타카를―――
키리「선배」
키리가 키스를 요구해 왔다.
겹쳐지자마자, 혀를 내밀어 온다.
내가 아까 한 행위를 따라, 입술 전체를 살짝 깨문다.
가지고 노는 듯, 사랑스러운 듯.
……포기한 듯이.
이렇게.
키리는 나의 것이 되었다.

타이치「안녕하세요―」
미키「……느, 늦어~」
옥상에 돌아왔다.
미키「아, 키리찡은 데려오셨네요」
타이치「데려왔지」
미사토「어쩐지……반들반들해진 듯한……」
타이치「반들반들합니다」
미키「……왜 그래, 키리찡?」
키리「에, 으응, 아무것도 아냐……」
미키「생리 끝났지?」
키리「끄, 끝났는데……」
머뭇머뭇 다리를 꼰다.
미사토「……안색이 안 좋네요, 괜찮아요?」
키리「괜찮아요. 조금 피곤해서……더위먹었나 봐요」
타이치「그거 위험한데. 여름 더위 해소에는 내 특제 흰우유를 마셔야 돼」
수통을 꺼낸다.
미사토「고마워요, 페케군」
수통을 받았다.
이 특제 흰우유는 얼핏 보기에는 단순한 유제품이지만, 맛을 내기 위해 멋진 성분이 들어가 있다.
미키「흰우유?」
미사토「저, 저건 뭐죠?」
타이치「넷?」
하늘을 본다.
뭐야 UFO? 아담스킨가.
미사토「…………줄줄줄줄줄줄」
타이치「아무것도 없는데요?」
미사토「후우, 잘먹었습니다!」
빈 수통을 건네받았다.
타이치「……벌써 다 마시셨군요」
미사토「네에, 세 명이라 금방」
미키「……에? 언제?」
타이치「하하하하」
미사토「후후후후」
타이치「아하하하하하하」
미사토「후후후후후후후」
잘됐다 잘됐어.
미키「저기……제가 보기엔 버린 것처럼 보이읍……」
미미 선배는 미키를 끌어안았다.
미키「으으으으으읍!」
미유 굳히기.
타이치「……버려?」
미사토「자, 한번 보세요! 준비가 많이 됐어요!」
끌려간다.
타이치「네, 네엥?」
미키「키리찡」
키리「응, 왜?」
미키「……아무것도 아냐」
키리「?」
등 뒤의 대화.
조금 신경은 쓰였지만, 의식은 금세 텐트로 향했다.
타이치「아, 라바―」
사쿠라바「라바―. 즉 연인이란 뜻이지」
사쿠라바는 텐트 안에 있었다.
타이치「토모키는?」
사쿠라바「시스콤이 발병해서 귀가했다」
타이치「……그러냐」
사쿠라바「배선은 정리해 두고 갔다. 녀석은 역시 사업가야」
타이치「음」
뭐, 이 정도까지 했으니 걱정은 필요없겠지.
미사토「좀 쉬죠. 목도 마르고」
선배가 소형 냉장고에서 차를 꺼냈다.
타이치「……네? 목이 마르다고요?」
미사토「자, 남은 배터리로 문명의 이기가 부활했어요」
부실에 있는 것보다 작은 냉장고였다.
타이치「헤에―」
토모키군.
미사토「오랜만에 차가운 음료수―!」
미사토「자, 페케군 거예요」
타이치「그건 좋은데요……선배 아까 내 흰우유……」
미사토「건배―!」
타이치「네, 네에, 건배……」
부족했던 건가, 흰우유.
우유에 레몬즙을 섞은 특제 드링큰데…….
뭐, 어때.
텐트 안, 응달에 들어가 차를 마시며 한숨을 돌린다.
타이치「후아―, 시원하네, 키리찡」
키리「네……?」
타이치「수분을 잔뜩 배출한 뒤라 그런가」
키리「콜록, 콜록!」
키리「선배!!」
타이치「하하하」
미키「선배도 오줌 누고 오셨어요?」
타이치「둘이서 싸기 대결 했어. 누구 게 멀리 가나」
키리「안 했어요! 못 해요!」
미키「그, 그런 재밌어 보이는 일을 나한테 비밀로……」
키리「미키……그런 건 전혀 안 재밌어……」
미키「그런가―?」
최근 삼림 파괴에 비할 만큼 급속히 성장하고는 있지만, 미키는 기본적으로 둔탱이었다.
……어라.
타이치「그런데 그렇게 거칠게 움직이면 보이겠다, 키리찡」
키리「……………………」
치맛자락을 누르고, 얌전해졌다.
타이치「하하하」
사쿠라바「그런데 타이치, 내일 방송 말이다만……부장 선배의 말을 듣고 원고를 써 봤다」
타이치「호오, 니가 그런 일을?」
사쿠라바「잠깐 봐 줘. 의견을 듣고 싶다」
타이치「……」
읽을 수 없었다.
타이치「……무슨 언어냐?」
사쿠라바「만일 감청당해도 의미를 알 수 없도록, 다중으로 암호화해 놓았다」
때렸다.
타이치「시부럴―!」
미사토「……아아아, 사쿠라바군한테 시킨 시간이 전부……」
타이치「SOS를 의미불명으로 해서 어쩌잔 거야!」
그 때.
타이치「어라?」
방울소리가 들렸다.
타이치「풍령?」
사쿠라바「……달았다」
사쿠라바「지금부터 다들 여기에 모이면 좋을 것 같아서 말야」
타이치「…………으」
가끔씩 기특한 짓을 한단 말야.
인류도 사라지고.
희망도 있는지 없는지 모른다.
그런데, 정말로……태평한 녀석이다.
타이치「다들 모일 거야」
사쿠라바「그치」
미사토「……잘 부탁해요」
타이치「앞으로 쭈욱」
기쁜 듯, 선배는 눈시울을 숙였다.
미키「그건 그렇고 키리찡이 기운이 없네요―」
키리「그, 그래? 안 그런데?」
타이치「……」
역시 무리하고 있는 걸까.
진실도 행위도, 키리에겐 너무 부담이었을까.
하지만.
앞으로 하루밖에 남지 않았다. 세계는.
키리를 달래줄 수단도 가능성도, 나에게는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집.
언제나 외로운 공간에, 오늘은 꽃이 피었다.
타이치「자, 들어와」
키리「시, 실례합니다……」
키리「우와」
혼돈을 사랑하는 내 방.
손님은 대부분 놀란다.
타이치「앉아」
키리「……어디에 앉죠?」
타이치「자」
파리채를 건넨다.
키리「……네?」
타이치「앉고 싶은 자리에 공간을 만들어」
키리「……………………」
자기책임.
키리는 파리채로 만든 틈새에, 어색하게 정좌한다.
키리「……남자들은 참」
타이치「잠깐만 기다려―」
아래층에 내려가 토마토를 가져온다.
타이치「자, 비타민」
키리「……감사합니다」
토마토를 깨문다.
타이치「편하게 있어. 쭉 살 거니까」
키리「……읏」
우뚝, 하고 움직임이 멈춘다.
키리「쭉……인가요?」
타이치「싫어?」
키리「……모르겠어요」
키리「이미 선배는, 제 첫 상대라서……」
우와아.
키리「그리고, 전 이걸 보상이라 생각하고 있어요」
키리「유타카와 저, 두 사람 몫을」
유타카, 라.
키리는 어디까지나, 그런 생각으로만 나와 함께 있는 걸까.
유타카. 유타카. 유타카.
유타카.
타이치「……토마토, 먹여 줄까?」
키리「네?」
키리의 토마토를 뺏어, 덥썩 문다.
그것을 몇 번 씹고, 키스를 한다.
키리「읍!?」
타액과 함께 흘려보냈다.
키리「……으, 으읍……으읍, 으, 으으으읍」
저항은 처음뿐.
타이치「맛있어?」
키리「……네」
타이치「그럼 더 먹어」
몇 번 반복한다.
끝날 무렵에는, 키리는 상기되어 있었다.
타이치「키리는 나만의 키리야」
키리「……그래요」
타이치「그래도, 슬퍼 보여」
그렇게 말하자, 키리는 억지로 미소지었다.
……일그러질 듯한 표정밖에 보이지 않았다.
꼭 껴안고, 살그머니 밀어 넘어뜨렸다.
키리「아……」
먹다 남은 과일이 바닥에 떨어졌다.

깊은 밤의 신사는 기분나쁘다.
일기를 집어넣는다.
여섯 권째의 노트.
타이치「맞다」
문득 생각한다.
일기로 쓰던 노트는 여기에 안치된다.
일요일 이후에 이 세계는 되풀이된다.
그래서 노트가 사라진다.
월요일에 일기를 쓰려고 해도, 안 보이는 게 당연하다.
사당의 내부는, 정말로 되감김과는 다른 법칙에 의해 분리되어 있는 것 같다.
타이치「그렇군……」
일기는 놓았다.
세이브한 것이다.
마지막 일기를 쓴 순간부터, 나의……나 개인만의 인생이 시작된다.
재시도는 없다.
단 하루, 짧디 짧은 인생이다.
마음껏 살아보고 사라지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일요일.
쾌청.
일기에는 없는 미지의 영역이기도 하다.
이 날, 어떻게 세계가 멸망하는지 나는 모른다.
일주일……짧았다.
순전히 키리를 공략하기 위한 나날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부활동을 재건한 것은 요행이다.
다음의 내가 노트를 보면, 재건의 힌트가 되겠지.
부디 어느 시간이든, 행복하게 보내기를 빈다.
이 구원없는 모형정원 안에서.
타이치「아직 아무도 없네」
둘러본다.
넓은 옥상에 파이프 텐트와 기재.
우뚝 서 있는 안테나.
전파 하나 없는 푸른 하늘.
키리「……파랗다」
하늘을 올려다보는 키리.
타이치「구름 한 점 없네」
키리「네」
하지만 키리의 얼굴에는, 아직 구름이 끼어있는 것 같았다.
둘이서 펜스에 기댄다.
말없이 나란히 서 있었다.
잠시 후.
미사토「안녕하세요」
모두가 왔다.
토모키「……OK」
미미 선배에겐 전혀 말을 걸지 않았지만, 토모키는 왔다.
타이치「땡큐……언제 시작할까요?」
미사토「으음, 특별히 안 정했으니까, 지금 해도 돼요」
사쿠라바「DJ」
타이치「음, DJ……할 사람―」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타이치「미미 선배는?」
미사토「에, 저요? 안돼요, 안돼안돼, 무리예요, 사양할래요」
타이치「미키는?」
미키「……호요?」
쇠고기 육포를 한창 질겅질겅 씹고 있었다.
아름답지 않았다.
……제외.
타이치「토모키」
토모키「괜찮긴 한데 얼마 줄래?」
타이치「…………」
돈 문제가 아니자너 지금.
타이치「사쿠라바……」
사쿠라바「나한테 논리정연한 대화가 가능하리라 생각하나?」
타이치「……잘 알고 있구만」
타이치「그럼……키리」
키리「……네?」
안색이 변했다.
동시에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타이치「DJ」
키리「앗, 안돼, 못해요, 사람 앞에서 말하는 건」
타이치「뭐 어때. 어차피 전부 멸망했으니까 괜찮아」
토모키「희망은 어디 갔냐!」
타이치「크헉」
춉을 맞았다.
키리「위험해요, 안돼요 무리예요……분명히 이상할 거예요」
두려움 만빵.
타이치「이상한 키리찡도 한번 보고 싶어」
손을 당긴다.
키리「안돼―!」
허리를 당긴다.
타이치「……팬티 보일라」
키리「앗!?」
당황하며 치마를 누른다.
몸의 균형이 무너진 키리.
잡아주었다.
타이치「DJ 데뷔 축하합니다」
키리「사람 살려―!」
역시 안되나.
놓아준다.
키리는 잽싸기 미키 등에 숨었다.
약한 녀석.
타이치「알았다고……해 볼까」
나밖에 없었다.
토모키「언제든 괜찮아」
무슨 얘기를 할까.
생각이 잘 안 난다.
의미없는 SOS.
하지만 아무도 그런 생각은 하고 있지 않다.
내 몸이, 타인의 감각으로 멋대로 움직인다.
의자에 앉아, 마이크를 쥐었다.
수동적인 나.
언제나 난 수동적이었던 것 같다.
주위와의 접촉이, 지금의 나를 형성했다.
타이치「으음……이 방송을 듣고 있는 생존자 분, 계십니까?」
타이치「여기는 군죠학원 방송부입니다」
타이치「살아있는 분, 계십니까?」
타이치「여기는 군죠학원 방송부, 생존자는 여덟 명」
타이치「생존자는 여덟 명」
사람은 소중하다.
가족과 친구는 소중하다.
내가 인간으로 있는 한은.
타이치「……전원, 건강상태는 양호합니다」
인간이 아니어도 괜찮다면, 고독해지는 방법도 있었다.
하지만 난 사람이 좋았다.
본능이 아닌, 이성의 괴물이 되고 싶었다.
그렇게 되면, 좀 더 완벽하게 무해한 것이 될 수 있었을 텐데.
부족했다.
접촉이. 사람과의 접촉이.
타이치「으음……」
가족은.
……없다.
모형정원이란 낙원에서, 공기처럼 희박한 사람들과의 교우.
……얼굴도 잊어버렸다.
요코와의 만남.
……그녀는 나를 타인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신카와가 사람들.
……인간이 적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유소년기, 가장 민감한 시기에, 난 사람과 접할 수 없었다.
타이치「옛날에, 저는 죄를 범했습니다」
딸랑, 하고 종이 울렸다.
여섯 명의 시선이 모인다.
타이치「친구를 죽게 했습니다」
사쿠라바「……타이치?」
타이치「직접 죽이지는 않았지만……결과적으로 죽게 만들었습니다」
타이치「그 친구는 옛날, 저를 상처입힌 사람 중 하나였죠」
타이치「기억을 잃고, 제 앞에 나타났습니다」
타이치「기억과 함께 죄도 사라져버린 듯 행동했죠」
타이치「처음엔 저도 몰랐습니다. 꽤 오래 전의 일이었으니까요」
공기가 변한다.
여섯 명의 인간의, 불안과 의문이 소용돌이친다.
곧 가라앉겠지.
괴로운 공기로 변할지도 모르겠지만.
타이치「하지만 그 때,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타이치「실제로 그 녀석에게 받은 상처는, 지금의 저에겐 전혀 대단한 게 아닙니다」
타이치「불초 쿠로스 타이치, 쓴 맛도 단 맛도 모두 본 영 어덜트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타이치「하지만」
키리가 몸을 떨었다.
입가에 손을 대고.
타이치「하지만 저는, 아무리 해도 그 녀석을 친구로서 보는 것이 불가능했습니다」
키리「……읏……」
미키「키리……?」
타이치「물건처럼 봐버리게 되었습니다」
타이치「용서할 수 없다, 그런 감정론과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만」
타이치「제 안에서, 그 녀석의 가치가 변해버린 것은 확실합니다」
타이치「아니……변한 게 아니라……무가치하게 되었습니다」
타이치「흥미를 잃어버린 거죠」
타이치「그 녀석이 자신의 기억을 되찾은 순간, 용서해 달라고 말했습니다」
타이치「어쩌면……용서해 달라고 하지 않았다면, 결과는 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키리「……!」
타이치「하지만, 과거는 바꿀 수 없죠」
타이치「죄는 받아들이거나 그렇지 않거나, 그 둘뿐이라 생각합니다」
타이치「……그 녀석의 죄 자체는……그렇게 대단한 건 아니었습니다」
타이치「평소처럼 농담으로 흘려듣고, 계속 친구로 지낼 수도 있었습니다」
키리「……선, 배……」
눈물.
눈물이라.
그것 또한, 나에게는 없는 것.
타이치「어째서 그 때 '신경쓰지 마'라고 말할 순 없었던 걸까……가끔 생각해 봅니다」
타이치「……그것은 제가, 비뚤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타이치「비뚤어진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타이치「이성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타이치「하지만 이성을 기르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타이치「사람과의 다툼 없이 길러지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타이치「하지만 전, 다투기 위한 친구를 상처입히고 없애버렸습니다」
타이치「……그것이……제 딜레마입니다」
토모키「……」
사쿠라바「……」
타이치「기억이 없어져도, 과거에 일어난 일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타이치「하지만 상처를 입어도, 상처를 입혀도」
타이치「……서로 친구로서 지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
키리「흐윽……흑……」
오열.
미사토「……사쿠라」
여기 있는 사람들은 눈치챘을 것이다.
유타카와 나에 대해서.
하지만 아무도 얘기하지 않는다.
말리지 않는다.
타이치「……제가 두려웠습니다」
타이치「하지만 자살은 할 수 없습니다. 자살만은」
타이치「가끔 제가 인간이 아니었으면 좋았을 거라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
타이치「상처입을 때마다,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타이치「세계에서 사람이 사라지고……일주일」
타이치「혹시 내 탓은 아닐까, 여러모로 생각도 했습니다」
미사토「……」
미키「……」
타이치「터무니없는 놈이니까요, 저」
타이치「그런 저와 항상 어울려주는 친구들 모두에겐, 이른바 감사라는 것을 하고 싶지 않은 것도 아닙니다」
사쿠라바「어느 쪽이냐」
보기 드문 사쿠라바의 태클.
토모키「부정의 연속」
토모키의 기계적인 태클.
타이치「……자신을 위해서라도 괜찮습니다」
타이치「자신을 위해서, 다른 사람을 소중히 대해도 괜찮습니다」
타이치「내일……조금은,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서」
타이치「저에겐 아직 친구가 있습니다」
타이치「관계를 쌓아올리는 것은, 마음을 상처투성이로 만들기도 합니다」
타이치「그것은 괴로울 뿐, 아름답지 못합니다」
타이치「하지만 사람에겐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타이치「그러니, 이 방송을 듣고 있는 분도 아직 어디엔가 있을 거라 믿습니다」
타이치「이곳의 주소는―――」
무선 연락 수단도 알려준다.
이걸로 됐다.
밑천이 떨어지기 직전까지 얘기.
……뭐 이런 건가.
타이치「여기는 군죠학원 방송부, 생존자는 여덟 명」
타이치「다음주에 보죠」
끝났다.
후우, 한숨을 돌린다.
박수.
우선 미미 선배. 그리고 이어서 모두들.
타이치「……」
특별히 말리고 싶진 않았다.
순간 부끄러워진다.
그 낯간지러운 고문을 참기 위해, 나는 뺨을 잡아당겼다.
미사토「네, 잘했어요」
타이치「……하아」
사쿠라바「다음주, 인가?」
타이치「아아, 뭐……그냥 대충」
토모키「뭐 아무렴 어때. 그런 건」
사쿠라바「……그렇지」
미키「멋있었어요―」
일회용 카메라로 사진을 팡팡.
타이치「……하지 마―」
미키「수줍어한다 수줍어한다」
타이치「시꾸랏―」
그리고.
미키「……선배」
키리가 일어났다.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일까.
긴장하며 기다린다.
키리「수」
수.
키리「수고……하셨어요」
고개를 숙였다.
타이치「…………」
마음 속이 북받쳐오른다.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다.
불가사의한, 그래서 더욱 마음이 놓이는, 그런 감각.
마음 속 물줄기의 양이 늘어난 것 같다.
약간.
타이치「……땡큐」
하늘이 순간 하얘졌다.
타이치「……!」
아아, 이 타이밍이구나―――
갑자기 두려워진다.
하지만 동요할 수는 없지.
키리를 안는다.
무릎을 숙이고, 키리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는다.
키리「꺅, 왜, 왜 그러세요?」
미키「우와, 대담한 일을……」
미사토「부, 불순이성정학……」
사쿠라바「참신한 말이다, 부장 선배」
토모키「……역시 타이치는 야하구나」
타이치「김 빠지잖아―! 위로해 줘―!」
두렵다.
내가 사라지는 것이 두렵다.
세이브는 토요일 밤이 마지막.
오늘의 이 기쁨도 참회도 마음의 성장도, 모두 소용없어진다.
무섭다, 무섭다, 무섭다.
키리「……선배……울어요?」
귀가 울린다.
가슴에 파묻힌 양 눈의 끝자락, 세계가 새하얘진다.
새하얘진다―――
타이치「……제길」
최후의 말이었다.

가장 오래된 기억은.
언제인지도 가물가물한, 뿌연 안개 속.
귀족적인 기품이 담긴 호화로운 개인실.
그곳에는 호화로운 침대도, 유럽제 의자도 있었다.
하지만 바닥에 앉는 것이 가장 좋았다.
이런 날에는 특히 더.
창으로 보이는 별이 반짝이는 검은 장막.
점점이 흩어진 반짝거림에 눈길을 빼앗긴다.
바깥 세계와 실내를 가르는 창에, 나의 모습이 비친다.
귀족의 아가씨―――
서양식 드레스로 몸을 덮은 청초한 소녀.
당신은 도대체 누구입니까?
소녀「……타이치」
투명하게 빛나는……은발.
허리에 닿을 정도로 길게 늘어진 그 머리칼이 부드럽게 살랑인다.
얼굴은 작다. 마치 인형 같은 몸.
『천사 같은 모습이네』
누구였더라, 그런 말을 한 건.
사모님이던가, 언니들이었던가.
온화한 목소리가 귀에 아른거린다.
태어나고 나서 10년 무렵까지의 기억은, 어쩐지 흐릿하고 황홀한 느낌이다.
『이리 와, 같이 놀자』
거부했던 적은 없었다.
소녀의 옷, 소녀의 몸가짐, 소녀의 말씨.
저택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그 우아한 주인들의, 고상하다고도 유치하다고도 할 수 없는 인형놀이는 지루하진 했지만 불쾌하진 않았다.
그런 이유였다고 생각한다.
창에 비쳐진 내 모습이, 항상 소녀의 모습이었던 건.
그래, 단 하나 기억하고 있는 게 있다. 확실하게.
많은 수의 어린 소녀들 사이에, 단 한 명 웃지 않는 소녀가 있었다.
그녀만이 나와 논 적이 없었다.
소녀의 모습으로 차를 마실 상대를 찾는『나』의 몸은 언제나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었고,
넓은 뜰을 혼자서 산책하는 그녀는, 그런 나를 경멸하듯이 힐끗 쳐다보곤 했다.
흑요석을 떠올리게 하는 맑은 검은색 눈동자로.
동요.
그 시선을 받으면, 언제나 마음이 혼란해졌다.
기쁨 때문일까, 수치 때문일까.
또는 둘 다 이유일까.
거의 동요해 본 경험이 없는 나에게, 그 제어 불가능한 감정의 폭주는 견디기 힘들었다.
그래도 겉으로는, 태연하게 부인들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내 역할은 완수해야만 한다.
역할……인형의 흉내를 내는 일.
살아가기 위해.
그 인형 시절, 그녀와 대화해 본 적은 없었다.
단 한 번도.
넓은 뜰에 초연히 서 있는 그 소녀의 모습만이 강하게 인상에 남아 있었다.
나중에 알았다.
그녀 또한 돈으로 팔려 온 인형이었다는 것을.
싸늘한 공기가 휘몰아친다.
차가워진 복도의 바깥 공기다.
뒤를 돌아보자, 소리없이 열린 문 옆에.
그녀가 서 있었다.
고고한 공주―――
하지만 어떻게 된 일일까.
눈 앞에 있는 소녀는 지저분했다.
아니.
더럽혀져 있었다. 악랄하게.
찢어진 옷. 하얀 피부에 새겨진 찰과상.
입술 끝에는 거무스름한 핏자국.
빙글
시야가 요동친다.
우스꽝스럽긴 했지만 행복했던 인형 시절.
나와 그녀가 동거했던 적은 없다.
기억이 혼란스럽다.
그래……그러니까……그녀가 여기에 있다는 건…….
소란스러운 사모님과 아가씨들. 젊은 하인들.
설탕 과자처럼 달콤한 나날들은, 기억 속에서 빠르게 흘러갔다.
모든 풍경은 색채를 잃고, 칙칙한 회색으로 변해간다.
그녀가 문을 열고 내 방으로 온 시점.
그것은 인형 시절이 아니다.
좀 더 뒤…….
우리들 두 사람에게, 단 하나의 방밖에 주어지지 않았던 시절.
무대는 천국에서 지옥으로.
정신을 차리자, 주위의 가구들은 사라지고 회색의 벽이 나타났다.
침대는 낡아지고.
시트는 더러워지고.
조명은 꼬마전구.
바닥은 갈라진 나무판자.
아름다운 실크 커텐은, 걸레와도 같은 꼴로 변해버렸다.
괴롭고, 무겁고, 비열하게, 너무나 빠르게 지나간 인생의 좁은 길목.
그 같은 처지가 서로 말도 하지 않았던 두 사람을 연결했다.
소녀「타이치」
나의 이름이다.
사모님들은 이 남자 같은 이름에서 한 글자를 빼고, 대신에 여자아이의 이름에 어울리는 한 글자를 붙인 이름으로 나를 불러왔었다.
이치히메.
고상한 이름.
하지만 그녀가 나를 그렇게 부른 적은 없다.
타이치「뭐 마실래?」
내 말에 반응하지 않고, 그녀는 나와의 거리를 좁혔다.
그리고 아주 자연스럽게, 나를 침대에 넘어뜨렸다.
소녀「……」
몸이 닿을 정도로 가깝다.
둘 사이에는 침묵이 감돈다.
호흡이 멈출 것 같았다.
달콤한 향기.
항수도 비누도 아니다.
소녀 자신의 체취.
그 향기는 구토감을 느끼게 하는 악취 속에서, 모든 것을 지우면서 피어올랐다.
부드러운 꽃잎을 닮은 입술이, 다정한 목소리를 냈다.
소녀「매일이 괴로워?」
조금 생각하고, 정직하게 대답했다.
타이치「응」
소녀「아파?」
타이치「아파」
소녀「아무도 안 도와줘?」
타이치「응. 친절한 사람들, 이젠 없으니까」
소녀「아냐. 옛날부터 없었어」
갑자기, 그녀는 차갑게 말했다.
괴로움도 적의도 없다.
그저 차가울 뿐.
타이치「그치만 옛날 주인님들은」
소녀「그들은 약한 존재일 뿐이야」
타이치「……」
소녀「좁은 마음에 여유가 있으면, 친절하게 보일 때도 있겠지」
소녀「하지만 자기가 괴로워지면 바로 도망쳐」
소녀「……소중한 장난감도 내버려두고」
양손이 내 어깨에 얹혀진다.
강하게 붙잡힌다.
소녀「우리 편은 없어. 아무도 도와주지 않아. 우리 스스로 우리들을 지켜야 해」
타이치「……」
그래.
슬프지만.
그것이 진실이다.
약한 어린아이는 먹히기 쉽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검은 욕망이 세상에는 존재한다.
나도 그녀도, 그것을 알고 있다.
힘없는 우리들은, 지혜로 스스로를 지킬 수밖에 없다.
법률상으로『그들』이 우리들의 보호자이기 때문에.
하지만 그 보호자가, 가해자라 한다면?
저항할 수 없다.
넓은 저택과 토지.
그 안에서 무엇을 하는지, 그들의 행위가 밖에 새어나갈 일은 없다.
우리들은―――
'노예'이다.
하얀 손이 내 뺨을 쓰다듬는다.
얼굴이 접근했다.
조금 가슴이 두근거렸다.
하지만 그녀는, 진지한 표정으로 한쪽 뺨을 쓰다듬었다.
소녀「……담배불로 지졌어?」
타이치「조금」
타이치「그래도 미리 크림 발랐으니까 괜찮아」
스스로의 지혜로, 스스로를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
소녀「미안해」
타이치「응?」
소녀「도와주지 못해서」
당황했다.
타이치「됐어, 너야말로……」
그 다음 말은 할 수 없었다.
남자인 나보다 여자인 그녀 쪽이, 훨씬 더 괴로울 것이다.
꼭 안겼다.
타이치「왜 그래?」
소녀「타이치……타이치」
목소리가 떨렸다.
드문 일이다. 언제나 냉정한 그녀가.
소녀「타이치……」
내 귓볼에 바싹 다가온 입술. 귀에 따스한 숨결이 느껴진다.
등골이 순간 오싹거렸다.
허리 주위가 불끈 뜨거워진다.
타이치「!?」
그 부분을 갑작스럽게 압박당했다.
손이다.
한 손으로 누르고 있다.
딱딱한 손바닥이, 위에서 강하게 누르고 있었다.
견디지 못하고 몸을 비틀었다.
소녀「타이치, 우리들은 약해」
검디 검은 눈동자에서 나오는 빛.
거기에 위압당해, 대답조차 할 수 없었다.
소녀「그러니까 손을 잡아야 해」
타이치「손을?」
소녀「일심동체가 되는 거야」
타이치「일심동체……」
소녀「그렇게 되면, 조금 괴롭더라도 참을 수 있으니까」
소녀「난 타이치, 타이치는 나」
입술이 말을 자아내면서 조용히 내려왔다.
타이치「아……」
당황과 혼란, 약간의 부끄러움.
그런 것이 뒤섞여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소녀「타이……치……」
달콤한 타액이 구강으로 흘러오며.
얼어붙어 있던 나를 녹였다.
입술을 떼고, 그녀는 상의를 벗었다.
숨을 삼킨다.
티없이 맑은 달빛의 피부도.
고귀한 가녀림도.
어렴풋하게 비치는 빛에 의해 은빛으로 변한 머리칼에 잠긴, 살아있는 여신처럼 보이는 신비한 몸도.
모두, 수많은 상처들에 의해 능욕당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그것을,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소녀「난 타이치, 타이치는 나」
계속되는 그 말이, 선명하게 기억에 새겨진다.
아름답게 빛나는 눈동자가 떨렸다.
소녀「미안해……」
소녀「나 말고는 아무도 못 믿으니까」
섬세한 손 끝이, 내 가슴에 닿았다.
가슴팍을 간지럽히는 감각과 함께, 상반신이 벗겨졌다.
타이치「요……코……」
그녀의 이름.
힘겹게 말을 꺼냈다.
애무가 시작됐다.
옅은 분홍빛 꽃잎이, 얇은 내 가슴팍을 지나간다.
타이치「으……」
깃털로 간지럼피는 듯한 감촉에, 저항할 수도 없이 근육이 움찔거렸다.
입술이 지나간 뒤, 투명한 타액이 가느다란 길을 남겼다.
그녀의 머리는, 점차 내려갔다.
이윽고, 내 치마 속으로 들어갔다.
그녀의 손 끝이 내 속옷을 벗기고, 발목까지 내렸다.
타이치「……」
나는 말없이 한쪽 팔로 눈을 가렸다.
이런 때엔, 어떻게 반응해야 되지?
무슨 소리를 내야 되지?
모르겠어.
단지, 뜨거워.
가랑이 사이에 그녀의 입술이 닿았다.
타이치「읏」
몸이 물고기처럼 철퍽였다.
강한 열기를 내뿜으며, 그녀의 입은 내 가랑이 사이에 타액을 흩뿌려간다.
요코「응……」
이곳저곳, 축축하게.
요코「핫……하읏……으읍……」
욕정의 숨결이, 치마 속을 열기로 가득 채워간다.
거기에 호응해 전신이 열을 낸다.
타이치「뜨거워……」
요코「으응, 흐응……으읍……응……」
하반신을 세차게 애무당하며, 서서히 힘이 빠진다.
쾌락에 몸을 맡기고 싶었다.
움직이는 것도 귀찮았기에.
요코「……읍……으흡……응……」
고양이가 물을 홀짝이는 소리와도 닮은 소리가.
파도를 이루어 상반신에 도달하는 저린 감각이.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계속 이어졌다.
잠시 후 하반신에서 북받쳐오르는 관능이, 문득 중단되었다.
타이치「어……?」
몸 감각은 이성의 제어를 벗어난 지 오래 되었다.
하지만 한 곳, 아플 정도로 민감해진 기관이 있었다.
세차게 뛰는 혈액이, 나에게도 느껴진다.
어른들이 강제적으로 가하는 감각과는 다르다.
차갑기 그지없는, 고통없는 학대에 지나지 않는 그 행위와는.
뜨겁다.
온몸이 뜨겁다.
가랑이가 뜨겁다.
녹아내릴 것 같다.
타이치「요……코……」
목소리에 재촉하는 기색이 섞이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안타까운 감정을 풀기 위해 허리를 치켜든다.
불뚝 솟아오른 물건은, 하늘만을 보고 있다.
느끼려 하는 것이다. 치마 안에서.
타이치「쌀 것 같아……」
요코「……」
몸을 가만히 놔 둘 수가 없다.
움찔움찔, 사지가 움직인다.
내 모습은 추악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혀가 내 음경에 닿았다.
타이치「큭!」
요코「응……으응, 으으응―……」
근육을 스치며, 뱀처럼 기어가며 서서히 뻗어가는.
혀가 살아있는 것 같았다.
뱀처럼 길게 뻗어진 혀가 내 음경을 감으며, 꼭 조였다.
보이지 않는 치마 속에서, 어떤 애무가 그런 착각을 하게 하는 걸까.
요도가 묶여, 정자들도 갈 곳을 잃었다.
열기가 가랑이 사이에서 휘몰아친다.
나선 모양으로 달라붙은 혀는 드디어 귀두에 다다랐다.
설마. 말도 안 된다.
하지만 그렇게 느낄 수밖에 없는 관능에, 몸이 떨린다.
그리고.
삼켰다.
뭔가 모순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요코「으읍」
내 걱정을 없애듯이, 희미한 파열음이 들린다.
틀림없이 삼키고 있다.
요코「읍……으흡……으으응……꿀꺽……으음, 으으으으읍」
더러운 내 몸을, 언제나 동경의 시선으로 바라보단 소녀가 입으로 애무한다.
등골의 오싹함이 멈추지 않았다.
추위 때문도 공포 때문도 아닌 그것은, 의심의 여지 없이 향락의 발작.
'그녀는 요괴가 되어버렸다'라고 생각해 자신을 납득시킨다.
정액을 삼키는 악마 소녀.
소녀 흉내를 거부하지 못하는 나를 벌하고 있다.
그러니 옷 속에서, 어떤 불가사의한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다.
혀 끝이 갈라지거나, 콩나무처럼 한없이 자라날 지도 모른다.
요코「하아……으읍……으으으읍……으으으응, 으응……」
그녀의 손이, 내 양쪽 다리를 잡는다.
드디어 본격적으로 입에 의한 애무가 격렬해진다.
타이치「안돼……안, 돼…….」
이미 한계는 지났다.
하지만, 종지부에는 달하지 않았다.
음경이 묶여 있기 때문인지, 저항할 수 없는 충동의 방문으로, 육체적인 마무리는 아직 찾아오지 않았다.
요코「흐으읍, 으흡, 으으응, 으응, 으읍」
애무는 더욱 더 격렬해지며, 쉴 틈을 주지 않았다.
나는 소리쳤다.
정신이 이상해질 것 같았다.
그것을 예상했는지, 그녀는 내 하반신을 강하게 누르고 있었다.
요코「……으으으으으으으읍」
그리고 빨았다.
고개를 좌우로 이리저리 돌리며, 좁은 입술 속에 있던 음경을 조금 뽑아냈다.
타이치「아아앗!」
그녀의 머리가 스윽하고 빠져나왔다.
동시에, 나를 속박하고 있던 것이 스르륵 풀렸다.
타이치「읏……」
순간, 쌀 것 같았다.
해방되려 하는 짐승.
하지만.
그보다 빨리, 그녀의 손이 움직였다.
손가락 끝이 두 개의 더러워진 신체 기관 사이를 강하게 압박했다.
평평한 그 곳을 압박당하자, 왜인지 체액은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짐승은 손쉽게 거기에 굴복하고 얌전해졌다.
내 힘으로는 막을 수 없는 괴물을, 그녀는 간단히 길들였다.
내 쾌락도.
내 고통도.
본래 주인보다 그녀의 말이 우선.
요코「타이치……」
살짝 얼굴을 붉히고 눈동자를 적신 그 얼굴은, 결심을 굳힌 것 같았다.
허리 밑이 차갑다.
젖어 있다.
그녀가 흘린 타액일까, 내 땀일까, 또는 또 다른 액체일까.
잘 알 수 없었고, 관심도 없었다.
요코「타이치, 하나가 되자」
화려한 내 옷을, 그녀는 난폭하게 찢었다.
무릎을 세우고, 나를 바라본다.
요코「…………」
말은 없다.
양쪽 눈에 비장한 결의를 또렷이 비추며.
그녀는 앞으로 다가와, 입술을 맞췄다.
공격적인 입맞춤.
새에게 쪼이는 듯한 접촉에서, 곧 점막의 밀착으로 이어진다.
그녀가 고개를 숙이고 체중을 실어, 더 깊게 밀착하려 했기 때문이다.
한계까지 엉킨 혀가, 요코의 입 속으로 끌려들어간다.
움직이는 두 혀가, 포옹하며 서로의 몸을 문지른다.
두 사람의 타액이 거대한 덩어리를 이루어 입가에서 흐른다.
서로의 입술을 살짝 깨물며, 교대로 자리를 바꾼다.
길게 뻗어진 혀가, 그녀의 입술 사이로 사라져 간다.
끝이 없었다. 마치 끝없는 늪처럼.
혀가 뽑힐 듯한 착각에 빠져, 무심코 허리가 들린다.
뇌리가 타오른다.
사고가 사라진다.
요코「흐으응……」
이번엔 요코의 혀가, 날카롭게 솟아 내 입술 안에 들어왔다.
'마음대로 해'라고 말하고 있는 듯 해서,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요코를 따라 혀를 빨아본다.
서로의 숨결이, 서로의 얼굴을 감싼다.
요코「으흡……앗, 으으응」
자연스럽게 눈을 감고, 나에게 몸을 맡긴다.
양팔로 그 머리를 감싸안고, 입 안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려 했다.
요코「으으으으응!」
그 때.
소녀는 가냘프게 소리질렀다. 목으로.
당황해하며 내 성욕을 억눌렀다.
빠져나오는 분홍빛의 평평한 물체, 그 끝에 끈끈한 꼬리가 달렸다.
요코는 혀를 내민 채로, 미소짓고 있었다.
길었다…….
평소와는 다른 용도를 보여준 그녀의 혀는, 손가락보다 길게 입 밖으로 늘어져 있었다.
둘 다, 턱 밑으로 물방울을 흘리고 있다.
상대를 애무하며 흐른 타액이었다.
더럽혀도 상관없다.
내 성에 대한 의식이, 조금 망가졌다.
이런 식으로 상대를 더럽혀도.
기뻐해 준다.
좋아하는 사이라면, 서로 더럽히는 것이다.
지식으로는 알고 있던 이성과의 접촉.
그것이 현실과는 다르게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그 작은 변화를 감지했는지, 그녀는 요염하게 말했다.
소녀「……왜 그래?」
나는 말했다.
타이치「네 안에 들어가고 싶어」
그녀는 미소지었다.
그리고.
우리들은 결합했다.


붕괴 직전이었던 방송부의 면면을 모아, 합숙을 하기에 이르렀다.
상당한 노력이 필요했다.
방송부의 정식 부원은 현재,
하세쿠라 요코
미야스미 미사토
쿠로스 타이치
사쿠라바 히로시
시마 토모키
키리하라 토오코
야마노베 미키
사쿠라 키리
까지 여덟 명.
이 여덟 명은……합숙 직전까지 거의 관계가 끊겨 있었다.
우선 요코는 타인에게 흥미가 없기 때문에, 부활동 참가 같은 건 하지 않는다.
사쿠라바는 원래 방랑벽이 있어서, 정기적으로 부활동을 하러 온다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시마는 미미 선배와 냉전중.
토오코는 나와 냉전중.
미키는 붙임성만은 좋지만, 키리 때문에 부와는 거리를 둔 상태.
키리는 날 싫어하고.
나도 왠지 모르게 가기가 귀찮아서.
미미 선배 혼자, 온갖 잡일을 도맡아 하고 있던 것 같다.
나는 불끈 일어나, 모두를 모았다.
다소 무리한 수단으로.
작년 해수욕 때도 비슷한 방법을 썼다.
일단 불러내기만 하면 장땡이었으니까.
결국 예년 실시되었던 여름 합숙을 감행하게 되었다.
……대실패였다.
교사에게 비밀로 한 탓도 있었지만.
토모키『……누님 탓이잖아!』
키리『불쾌해요』
미키『……그만 해요―, 싸움은―』
타이치『잠깐, 잠깐, 속이고 말고 하는 문제가 아니잖아!』
토오코『어쨌든 속였잖아!』
미사토『그러니까……싫었어요……모두 함께라니』
말다툼.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인간관계는 그대로.
오히려, 한층 더 갈라지기만 했을 뿐.
비탄과 고통으로 가득 찬 채 합숙은 끝나버렸다.
몇일 동안, 우리들은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따로따로 만나면, 대화는 가능하긴 했다.
하지만 여러 명의 소원하던 인간관계가 겹쳐져서, 분위기는 최악이었다.
이번에 미미 선배의 도움을 받았었는데.
덕분에 선배의 신뢰마저 잃어버리게 되었다.
선배는 나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일곱 명은 귀로에 접어들었다.
나는 보고 싶지 않았다.
초췌하고, 피로해하며, 서로 시선을 피하는.
그런 타인과 같은 모두의 얼굴을.
그래서 맨 앞에 섰다.
빠르게, 걸었다.
도중에 해가 저물었다.
아주 오랫동안 걸었던 것 같다.
몇 시간 동안이나.
보통 때는 1시간도 안 걸리는 길이다.
지친 탓일까.
아무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일곱 개의 발소리만이 존재하는 세계였다.
이상하게 조용한 산길.
벌레소리마저도 들리지 않는다.
공기마저도 차갑게 느껴진다.
지금은 여름인데도.
그 순간,
세계가 흔들리는 것 같았다.
같은 풍경이, 다른 측면에서 본 것처럼 느껴졌다.
일단 멈췄다.
과연 앞으로 가도 되는 것일까.
하지만 나는 전진했다.
미사토「페케군―……」
등 뒤에서, 선배의 목소리가 쫓아왔다.
하지만 나는 전진했다.
도망쳐 갔다.
이 때 만약『다시 보았』더라면.
또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더다면.
우리들은 길을 잘못 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생각한다.


CROSS†CHANNEL


월요일……인가.
7시.
기상할 시간이다.
하지만!
일어나지 않아도 된단다, 얘야―――
그런 다정한 그랜드 마더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 녀석은 너를 잡아먹으려고 하는 거야!―――
그건 할머니가 아니자너. 울프지.
그런 연유로 자도 OK.
타이치「후후후」
행복하다.
인류가 멸망했다느니 어쩌니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내 행복감은 한없이 신의 경지였다.
요코「……타이치」
요코「타이치. 일어나」
타이치「으~~~응」
요코「안 일어나면 야한 짓을 할래」
타이치「……쿠울」
요코「……알았어」
부스럭
부스럭부스럭
요코「응……으읍……」
요코「츕, 츄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웁!!」
타이치「끄아아아아아아아아앗!!」
하반신에 폭발적인 관능이.
순간적으로 폭발했다.
타이치「……어……어버어버어버」
어라, 나……몽정했네.
뭔가 굉장한 자극이 있었던 거 같은데.
요코「……응……읍……음……」
타이치「엥?」
이불 속에 누군가 있다!
츄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웁!!
쾌락의 폭발. 두 번째.
타이치「아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
나는 새우처럼 펄쩍 튀어올랐다.
타이치「그, 그만 해―!」
이불을 치웠다.
요코가 있었다.
타이치「와―ㅅ!?」
발로 찼다.
요코「읏」
뒹굴, 하고 굴러갔지만 바로 균형을 잡는 요코.
팬티와 파자마를 잽싸게 올렸다.
타이치「뭐하는 건가 자네!!」
요코「펠라치오」
타이치「이런 짓 하지 말라고 했잖아!」
요코「……성행위는 안 한다고 했지만, 펠라치오는 포함하지 않았어」
타이치「보통 펠라치오도 성행위에 포함돼!」
요코「……룰을 멋대로 고치는 건 비겁하다고 생각해」
타이치「누가 비겁한데!」
제길, 내 정자를 빨려버렸다.
악마 녀석!
이대로 당하고 있을 수는 없지!
타이치「뭐하러 왔어!」
요코「……도시락」
봉투를 건넸다.
타이치「너네 동네에선 도시락과 함께 펠라치오 서비스도 하는 거냐? 아앙?」
요코「왜인지 2인분」
타이치「말을 들어!」
타이치「……아니, 됐다……상식을 모르는 인간에게 상식을 요구하는 것도 삽질이니」
겁나게 피곤하다. 생기가 빨린 탓이다.
요코「보고할 게」
타이치「……이잉?」
옷을 갈아입기로 했다.
타이치「으―, 팬티가 침하고 정액으로……」
벗어 던졌다.
그녀가 보고 있는 건 부끄럽지 않다.
굳이 말하자면 아무래도 상관없다.
요코「닦아줄게」
타이치「어, 됐어 그런 건……내가 할……」
요코의 손에 로션병이 쥐어져 있었다.
타이치「내 반경 2미터 이내에 접근하지 마!!」
우뚝, 하고 다리가 멈춘다.
타이치「……전립선 마사지를 하려고 했군?」
요코「아니오」
타이치「평소 괴롭힘당한 것의 보복입니까?」
요코「아니오」
타이치「그럼 어째서 그런 짓을 하는 겁니까, 당신은?」
요코「……좋아하니까」
타이치「캐구라―!!」
나는 모 인공위성에 탑재된 인류와 그 역사가 기록된 플레이트에 그려진 전라 성인 남성과 같은 포즈를 취하며, 그녀의 말을 부정했다.
타이치「전립선 마사지로 나를 포로로 삼으려 했군?」
요코「아니오」
타이치「큭, 이 반동 자식……죄를 인정하지 않는군」
타이치「이제 됐어」
새 팬티를 찾는다.
요코「자, 여기 있어」
타이치「응」
받는다.
좀 차가웠지만, 그냥 입었다.
타이치「……응?」
그건 금속제 속옷이었다.
찰칵, 하고 엉덩이에서 자물쇠를 잠그는 듯한 소리.
뒤를 돌아보자 요코가 주저앉아서 뭔가를 하고 있었다.
타이치「뭐하는……」
요코「열쇠……잠궜어」
타이치「……」
타이치「왜?」
요코「안 잠그면 벗겨지니까」
타이치「그러니까 왜 팬티에 열쇠를!?」
요코「정조대니까」
타이치「저……」
정조대.
타이치「하왓, 안 벗겨져!?」
요코「열쇠 없으면 안 벗겨져」
타이치「열쇠!」
달려들었다.
요코「꿀꺽」
열쇠는 혀와 함께 사라졌다.
타이치「우오―!?」
타이치「왜, 어째서!?」
요코「……지난주의 타이치는 야했어」
요코「안돼, 그런 건」
타이치「지난주엔 자위밖에 안 했습니다요!」
요코「그 지난주가 아냐」
요코「어쨌든 눈에 거슬려, 강력 저지」
타이치「……뭐라는 거야……게다가 열쇠까지……삼키다니……」
요코「이제 안 벗겨져」
타이치「관장해버릴라 이런 썅썅바」
요코「……상관없는데, 지금 해봐도 소용없다고 생각해. 그래도 괜찮다면, 얼마든지 해」
당했다.
이 녀석, 아마 자력으로 열쇠를 토해낼 수 있겠지.
금붕어를 산 채로 삼켰다가 뱉어내는 아저씨처럼.
좆됐다.
겁나게 좆됐다.
매우 좆됐다.
요코「진정해, 나의 타이치. 정조대를 입힌 데는 이유가 있어」
타이치「생사를 함께 해 온 전우에게 정조대를 입혀야만 할 이유가 도대체 뭔데?」
요코「……오늘 아침에, 잠깐 조사하고 왔는데」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이야기하는 악마.
요코「발전소에 갈 수가 없었어」
타이치「정조대를 입힌 이유」
요코「그거하고 사당의 정보로, 대충 파악할 수 있었어」
타이치「정조대를 입힌 이유!」
요코는 짐꾸러미를 뒤졌다.
뭐가 뭔지.
요코「타이치, 이거」
새 노트 묶음을 건네받았다.
타이치「……지금 제시된 정보와 아이템이 서로 이어지지가 않는데」
설명부족에도 정도가 있지.
요코「그리고……여러가지가 이상해. 그러니까 좀 더 본격적으로 조사해 보고 싶어」
요코「……그러니까 내가 지켜보지 않는 동안, 타이치가 이상한 짓을 안 하도록 정조대를」
타이치「아아……」
풀썩.
그런 일인가.
요코「낮에는 돌아올게」
그래서 2인분 도시락인가.
……어쩐지 요코가 적극적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나.
특별히 자극될 만한 일은 안 했는데.
뺨에 입술을 맞추고, 방을 나갔다.

타이치「하아」
로보트처럼 통학을 개시했다.
가랑이 사이엔 위화감.
스쳐도 아프다.
게걸음이 되어버린다.
타이치「그렇다면 게걸음이 어울리는 호쾌남……그걸로 갈까」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나막신을 질질 끌면서 응원단 깃발을 바닥에 떨어뜨리지 않는 것뿐이었다.
고개로 걸어나가는 순간,
타이치「음?」
타이어가 쉬익하고 지면을 가르는 소리.
위험신호.
타이치「……훗, 어설퍼!」
꼭두새벽부터 펠라치오 세례를 받은 이 몸이시다.
막 싸고 난 뒤라 전신이 민감해져 있었던 것이다!
즉 그것은, 위험을 감지하는 능력도 날카로워졌다는 말이다.
타이치「하―앗!」
어떤 공격이든, 사전에 예측한다면 회피는 간단.
쿠당―!
타이치「쌩――――――!!」
보행에 방해를 주는 정조대만 없다면!!
나나카「미안―――!」
공중에서 사이드 체스트를 어필하면서, 잡목림 속으로 돌진했다.
나나카「괜찮아―?」
타이치「……정조대가 지켜줘서 괜찮아」
나나카「하앙?」
타이치「쪼잔한 반어법이야. 신경쓰지 마」
잡목림에서 나와, 먼지를 턴다.
물론 여전히 게걸음.
나나카「게―」
타이치「……게라고 부르지 마」
무신경한 녀석.
나나카「이번주도 건강해 보이네」
타이치「또 뜻 모를 말을」
타이치「하지만 난 사정을 알아야겠어, 토미에!」
나나카「나나카야, 타이치」
타이치「우선 완벽하게 모르는 사람이 내 이름을 알고 있는 건 어떻게 된 일이지?」
나나카「신경쓰지 마」
타이치「쓰고 싶어」
운동신경은 좋아 보였다.
난 도보에다 게걸음으로 저속인데, 넘어지지 않고 병주.
척 보기에도 건강 발랄 소꿉친구 미소녀라는 설정이다.
아침에 깨우러 오기도 하는.
타이치「그래서, 용건은? 존재감 없는 분」
나나카「존재감이 없어?」
타이치「없어. 약해. 흐물흐물」
나나카「잘은 모르겠지만, 기척 비슷한 거야?」
타이치「응. 게다가, 네가 인간이 아니란 것도 내 뇌 속의 심의 위원회에서 이미 밝혀냈어」
나나카「핫, 그런 것까지……너무 예민한데 타이치」
타이치「훗」
아침 펠라의 생각지 못한 효능이었다.
타이치「이 탐지능력에 내 뛰어난 추리를 더하는 것만으로도, 네 정체까지도 알아낼 수가 있었지」
나나카「우와, 정말?」
타이치「넌 전갈자리……그러므로 전갈자리 V861별에 사는 지적 생명체가 아닐까하고 난 추측하고 있다」
나나카「블랙홀이야, 거기」
타이치「……」
나나카「대충 때려 맞췄지?」
타이치「……뭐. 그게 일이니까」
나나카「매번 힘들겠네」
타이치「매번이니 이번주니. 도대체 무슨 말이야. 우리 초면이잖아」
나나카「몇 번이나 부딪쳤는데?」
타이치「아냐, 그런 적 없어」
기억에도 없고.
기억상실도 아니고.
나나카「……뭐, 그건 그렇다 치고」
나나카「그래도 한 번 정도 사랑이 싹트는 것도 재밌을 거 같은데―」
굉장한 말을 했다.
타이치「어……저에게 마음이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이 매부리코인 저에게?」
나나카「어디가 매부리코야? 평범해 보이는데」
타이치「휘어 있어. 척 보면 알잖아」
나나카「전―혀」
타이치「이상하네……」
나나카「조금 휘어 있는 것 같기도 한데……신경쓸 정도는 아닐 거야」
풀썩
타이치「역시 그렇군……휘어 있었어……」
어느 순간부터, 코가 굽어지는 것이 신경쓰였다.
……성숙과 함께 자아를 의식하고, 자신을 싫어하게 되었을 무렵과 같은 시기다.
타이치「으―――음」
나나카「뭐야뭐야」
글쎄.
주위로부터의 온갖 악의와 원망.
그런 것들을 너무 의식한 나머지, 핑계거리를 외모에서 찾아버리게 된 걸까.
어디선가 읽은 듯한 그런 학설.
타이치「뭐, 어때, 외모 같은 건. 전형적인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텍스트로는 평범하다고 묘사되면서도 그림에서는 꽃미남들인 것이 변할 리는 없고」
나나카「……자자, 자기학대는 그만두고」
나나카는 정치적 판단을 내린 비서 클래스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
타이치「그래서, 너는 이 인류 멸망 증후군과 무슨 관계가 있는 거지?」
나나카「무관계」
타이치「거짓말이야……분명히」
나나카「진짜야. 인류는 지맘대로 멸망했습니다.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순간 소녀를 바라보았다.
타이치「……알고 있었어?」
나나카「봤어」
타이치「봤어!?」
나나카「응. 봤어」
나나카「세계는 있지, 천천히 멸망해 갔어」
타이치「천천히?」
타이치「천천히라면 어느 정도?」
나나카「음―, 글쎄. 시간 감각이 없어져서 말야」
타이치「이상한데. 우리가 합숙 가기 전에는 정상이었단 말야」
타이치「합숙은 2박 3일이었으니까……3일 동안에 멸망했단 거야?」
나나카「아니」
나나카는 고개를 저었다.
나나카「……더 걸렸어」
타이치「그거 이상한데. 이치에 맞지가 않아」
나나카「시각 차이의 문제라고 생각해」
타이치「앙―?」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나나카「뭐, 지나간 일을 귀찮게 생각해봐야 어쩔 수 없잖아」
타이치「그건 그런데……인류가 이렇게 간단히 사라지는 것들이었나?」
나나카「어디선가 무언가가 일어났다, 난 그렇게 생각해」
나나카「그냥 감이지만 말야」
타이치「어디선가?」
나나카「말로는 잘 설명할 수 없는데……」
나나카「어디선가 큰 파도가 일어나서, 그것이 쫙―하고 퍼진 거라고 생각해」
나나카「내 지각능력으로는 그게 한계」
타이치「……너는……신이야?」
그녀는 쓴웃음지었다.
나나카「아냐아냐. 그렇게 대단한 건 아냐. 아무것도 못 해」
나나카「……아무것도 모르고 말야」
타이치「그럼, 왜 내 앞에?」
나나카「……음, 그건……좀 말하기 힘들어. 말할 자격이 없으니까. 미안해」
타이치「자격……이라」
그런 생각, 잘 안다.
내가……친구들와 함께 평범하게 살 자격이 없는 것처럼.
그래서 군죠로 보내져 왔다.
사람을 상처입히니까.
나는 위험하니까, 친구를 만들 자격은 없다.
그리고 그것은……옳은 일이다. 압도적으로.
타이치「그럼 억지로는 안 물을게」
나나카「……응, 미안해」
타이치「됐어」
타이치「그건 그렇고, 아무것도 모르겠네」
나나카「그 애가 분발하면, 수수께끼 그 자체는 풀릴 거야」
타이치「그 애? 요코 말야?」
나나카「……썩 마음에 들진 않지만 말야」
입술을 삐죽 내민다.
타이치「싫어하는구나」
나나카「그런 건 아닌데……왠지 모르게 맘에 안 들어」
타이치「흐―음」
나나카「청소시킨 다음에 창틀을 손가락으로 쓸어서 지저분한 데를 지적해 줄거야」
타이치「시어머니 같네」
나나카「시어머니라……나쁘진 않네」
타이치「뭐야 그건」
나나카「타이치」
목소리는 상당히 뒤편에서 들렸다.
타이치「?」
말도 안 되는 거리였다.
3초 전까지 같이 병주하고 있던 나나카였다.
20미터. 한순간에 이동할 수 있는 거리가 아니다.
타이치「……」
나나카「이게 제일 효과적인 거 같아서 말야」
타이치「잠깐, 너……」
역시.
인간이 아니다.
나나카「……사당, 알고 있지?」
타이치「사당이라니」
요코『그거하고 사당의 정보로, 대충 파악할 수 있었어』
관계가 있다.
나나카「알고 싶으면, 저기!」
하얀 손가락이 나를 휙 가리킨다.
아니, 내 등 뒤다.
학교.
아니……산이다.
합숙할 때 갔던 산길이 있다.
꽤 험난하지만, 정상까지 빠르게 갈 수 있다.
그 도중에는.
사당이 있다.
무엇이 모셔지고 있는지는 모른다.
낡고 지저분한, 작은 사당이다.
일찍이 신을 받을었을지도 모르는 그 장소에.
지금은 다가가는 사람은 없다.
거기에 무엇이 있을까.
그 사소한 의문을 묻기 위해, 나나카에게 시선을 돌린다.
그녀는 사라졌다.
자전거와 함께.
타이치「…………」
매미도 울지 않는, 조용한 신학기였다.


ㆍ田崎商店に行く (타자키 상점에 간다)


……들렀다 갈까.
타이치「음」
살기.
가게 문에 바싹 붙는다.
안을 엿본다.
적일까 아군일까.
타이치「……산?」
미키「……강」
미키「천상천하?」
타이치「유딩독주」
미키「……들어오세요」
가게 안에 들어간다.
타이치「미키구나……난 또 누구라고」
미키「안녕하세요, 선배」
타이치「살기 같은 걸 내뿜으니까 그래」
미키「폐쇄공간에서 뭔가 나타나면 도망칠 곳이 없어서 싫잖아요」
타이치「그건 그렇지」
옛날 기억을 더듬어 본다.
타이치「교복을 입고 있다는 것은, 학교에 갈 작정인가?」
미키「그렇습니다. 그 외에 할 일도 없고요」
타이치「나랑 똑같구나」
미키「그렇군요―」
천진난만했다.
타이치「나에게도 마실 것을」
미키「여기요」
타이치「여전한 레어리티 높은 드링크 초이스, 고마워」
아는 사람만 아는 음료수 네○였다.
마셔버리자! 한번에!
미키「유통기한 같은 건 안 보시는 게 좋아요」
타이치「케헥!」
기관지에 들어갔다.
타이치「콜록, 콜록!」
미키「스매쉬 히트」
포즈.
타이치「……사람 놀래키지 마!」
미키「죄송합니다―」
배시시 웃는다.
타이치「쳇, 이 처녀가」
내뱉는다.
미키「20살 전까지는 버리려고요」
타이치「20살이나 돼서 뭐하게」
미키「네?」
타이치「영원히 지금 그대로 있어 줘」
타이치「……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지만 무리예요」
그렇겠지.
아니 그보다.
타이치「근데, 누구한테 주려고?」
미키「……네? 으―음……팔콘 카토」
타이치「테크닉 중시로군!」
한탄했다.
일본 유수의 테크니션이잖아.
……못 이긴다.
타이치「팔콘에는 비할 수 없지만, 나도 기술에는 자신이 있어」
미키「선배의 기술은 성희롱뿐이라, 실전에서 도움이 될까하는 불안한 면도 있기 때문에, 죄송합니다만 사절이다」
어미가 해라체가 될 정도의 대범함.
그 거절에, 내 마음은 산산히 박살.
타이치「칫, 그런 말 하면서 사실은 키리찡한테 주려는 거 아냐? 이 음란 처녀」
미키「반대로 키리찡의 처녀를 뺏습니다」
타이치「앗, 그거 나도 같이 하자」
욕망이 다중화하고 있는 나의 불끈도는 82%를 넘었다.
미키「그런 연유로 같이 통학하죠―」
타이치「응, 가자」
손을 잡고 함께 학교로.
타이치「푸른 하늘 아래에서~♪」
미키「사이 좋은 두 사람~♪」
느긋하게 듀엣송을 부르며, 느긋하게 등교했다.
미키「…………」
미키「아, 맞다. 키리찡 마실 걸 까먹고 왔어요」
학교에 다 도착하고서, 그런 말을 했다.
타이치「바보녀석. 수행이 부족하군」
미키「갔다올게요」
타이치「맘껏 고개를 오르락내리락 하고 와」
미키「네―에」
경쾌하게 달려간다.
즐거운 녀석.
타이치「……」

현관으로 이동.
타이치「으―음」
역시 기다려 줘야지.
타이치「……친절함이지」
남자는 친절함.
거짓말도 친절하게.
키리「……?」
키리가 있다.
타이치「어―이!」
키리「읏!」
발끈했다.
깐깐한 처녀 녀석.
키리는 너무나도 처녀답단 말야.
타이치「어디 가?」
키리「……관계, 없어요」
터벅터벅 떠나간다.
터벅터벅 쫓아간다.
보폭은 내가 더 크다.
간단히 따라잡았다.
타이치「미키하고 만나려고?」
키리「따라오지 마세요」
타이치「나도 여기서 볼일이 있어서」
키리「……읏」
빠른 걸음.
타이치「~♪」
나도 빠른 걸음. 휘파람.
키리「…………읏」
걸음이 점점 빨라진다.
쫓는다.
키리「……」
키리는 뛰기 시작한다.
반사적으로 몸이 움직인다.
뒤쫓기 경주.
상점가를 통과.
이 앞은 고갯길이잖아!
키리「오지 마요!」
타이치「왜 도망치는 거야!」
키리「선배가 쫓아오니까요!」
타이치「네가 도망치니까 그렇잖아!」
키리「따라오지 마―!」
왔다―!!
타이치「난, 이, 고개에서, 단련, 되어, 왔지만, 네녀석은, 어떨까!」
키리「하아, 하아, 하아……하앗」
후후후.
벌써 지쳐가는군.
게다가 난 공포에 의해 하룻밤 사이에 하얘진 머리카락 덕분에, 햇빛에도 강하다.
겁나게 유리한 것이다.
고개를 넘어간다.
하나.
키리「하아, 하아, 하앗!」
둘.
키리「헉헉헉」
셋.
키리의 속도가 떨어졌다.
찬스!
타이치「으랴아앗―!」
키리「……오지 마―!」
큭, 의외로 저력이 있는데.
장기전이 될 것 같았다.
타이치「여기가 우리 집―!」
키리「시끄러!」
달려간다.
우리 집 뒷길을 빙 돌아 학교로 돌아가는 코스.
타이치「크오옷!」
정조대가 스쳤다.
아프다!
성희롱할 상황은 아니다!
하지만 성희롱!
타이치「호각이로군!」
투지가 끓어올랐다.
타이치「헉헉」
타이치「헉헉」
타이치「헉헉」
학교 IN!
타이치「헉헉」
신발로 GO!
그대로 2학년 교실로.
콰당―!
키리가 닫힌 문을 열고 뛰쳐나간다.
뒷문으로 나가는 참이었다.
타이치「칫」
쫓아간다.
토오코「……에엣!?」
타이치「아, 없다」
왼쪽 오른쪽 둘 중 하나다!
타이치「……킁킁」
타이치「여기다!」
오른쪽에서 후로랄 향기.
계단을 내려간다.
1층 복도.
키리의 등이 보였다.
타이치「와하하, 네놈의 후로랄 민트가 패인이다아아아아앗!」
키리「칫」
다시 밖으로.
참고로 벌써 한 시간 정도 뛰고 있다.
이것이 여름!
타이치「헉헉」
미키「……아, 선배……」
실연한 마음으로 여행을 떠난 미치코가 탄 심야 급행 열차의 창문을 한때의 잔상이 되어 스쳐가는 하얀 역 안내표를 떠올리며, 미키를 지나갔다.
미키「아자―」
등 뒤에서 목소리와 함께.
타이치「윽!!」
충격.
미끌―!
안면 슬라이딩.
미키「무릎치기」
미키「아하하하하하」
타이치「아하하하하하」
타이치「……랏차」
키스했다. 키스 도둑처럼.
미키「으읍~~~~~~~~~~~!?」
드릴.
미키「읍, 으풉, 읍, 푸앗!?」
바이브.
미키「읍, 으으으으으읍, 읍, 으븝, 으풉, 으읍~~~~, 응, 으으으읍읍……읏, 후아, 으읍―――!!」
진공.
미키「으으으으으으읍, 후아, 후아아앙, 읍, 으―읍, 읍, 수, 수, 숨 막혀……으으으읍~~~~~, 읏, 흐읏, 으으읍, 으흡, 흐읍, 아, 아앗, 아아, 흐으으으으읍!!」
마무리로 믹서 (미키 걸로만).
미키「으으읍, 으―읍, 읍, 우으읍, 음읍, 으응……흐읍, ……아, 싫어, 흐아……헉, 읍, 으읍……안돼, 싫어, 으으으읍, 으으으으으으읍, 읍, 으흡…후아……」
미키「숨, 막혀요……살려주세……살려……으으으으으으으읍~~~~~」
스르륵 탈진해, 무릎을 꿇었다.
미키「……후아~……아으아으……」
타이치「무릎치기」
쿨하게 내뱉었다.
추적을 재개.
그건 그렇고, 미키 녀석.
뛰는 사람의 무릎을 차다니.
요즘 급속히 성장하는 것 같단 말야.
미키「……퍼, 퍼스트 키스가아아아……」
그런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렸다.
자업자득이다.
타이치「헉헉」
에너지를 빨아들여 활기가 생겼다.
키리와 거리가 벌어져버렸지만…….
이 고개에서 단숨에 만회하겠다.
댓쉬!
다만 정조대를 장비중이라, 게걸음 포즈가 되어버렸지만.
타이치「키리, 그것도 도망친 거냐―!」
키리「……윽」
놀라서 푹 고꾸라지는 키리.
키리「으, 으……흐윽……훌쩍」
울상을 지었다.
키리「싫어, 그만……」
상당히 지쳐 보인다.
다리를 질질 끌듯이 뛰고 있다.
따라잡기까지……10초도 안 걸린다.
따라잡아서 어쩔까.
생각 안 했다.
감정의 흐름에 맡길 수밖에 없다.
플라워즈, 더블 퍼스트 키스 강탈―――
사악한 생각.
그래. 그게 좋겠다.
내가 꽃님들을 꺾는 것이다.
타이치「큭큭큭!」
이제는 거의 걷고 있는 키리에게, 손을 뻗는다.
그 순간.
시야 구석에서 그림자 출현.
순간 집중. 슬로 모션으로 본다.
뭐지 저건.
자전거.
자전거라면.
나나카「얏―――!」
타이치「쿠악―!?」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흐려지는 의식.
멀어지는 키리.
나나카「내참……얘는……사당에도 안 가고 쓸데없는 짓만……」
투덜투덜 중얼대고 있다.
…………………….

눈을 뜨자 내 방이었다.
타이치「으, 으으으……」
미키「안녕하세요」
타이치「아, 미키링이다」
미키「미키링입니다. 실례하겠습니다」
타이치「어라?」
가랑이 사이가 허전하다.
만져 보자, 그 묵직하고 살짝 아픈 정조대의 감촉이 없다.
조금 쓸쓸하다.
고락을 함께 해, 애착이 생긴 걸까.
타이치「미키……말하기 좀 그런데 내가 입고 있던 거……」
미키「뭐랄까 굉장한 걸 입고 계시더군요―」
타이치「하, 하이테크 팬티야」
거짓말을 했다.
미키「머, 멋지다―」
타이치「어두운 곳에서는 센서가 반응해 라이트가 켜질 정도로 하이테크야」
타이치「그래서 바지 안에서는 항상 반짝반짝. 새터데이 나이트 피버지」
하이테크 팬티에 대한 지나친 애정에, 그만 쓴웃음이 나온다.
돈을 들인 애견을 자랑하는 애견주인과 같은 팔불출이었다.
타이치「하지만 아내에게는 호평이야. 침대 안에서도 아들을 찾기 쉬우니까 말야! (쌀웃음)」
※쌀웃음=미국식 스마일. 미국인은 자신의 개그에 셀프 서비스로 웃는 능력을 가졌다.
미키「우와, 성인용~」
타이치「어라, 다른 팬티가 입혀져 있네?」
미키를 본다.
얼굴을 붉히고, 눈을 돌린다.
타이치「……미, 미키……혹시……」
미키「네, 네에……선배가 길에 떨어져 있길래……주웠더니……옷 사이에서 후두둑하고 정조대 파편이……」
정조대란 걸 알고 있자너!!
난 쓰러졌다.
미키「그래서 선배 집까지 질질 끌고 와서……」
우와, 이 전신에 난 생채기는 그 때문인가!
미키「바지를 벗겼더니……피융하고」
왜 바지를 벗길 필요가 있던 거냐!
미키「그 이후로 30분 정도 기억이 없고……정신을 차렸더니 학교 옥상에 있었어요……」
타이치「……」
기억상실하고 도망칠 정도로 불쾌했던 거냐.
미키「다시 돌아와서, 각오를 다지고……이 미키가 제일 어울릴 거라 생각한 속옷을 입혀드린 겁니다!」
타이치「……호오」
바지 속을 본다.
코끼리 팬티였다.
타이치「어울리냐? 이게 제일 어울리냐?」
앞 부분에 봉지가 달려 있어, 코끼리 비스무리한 외형을 더욱 부각시키고 있는데.
팬티라기보단 곧휴 커버다.
미키가 수줍어한다.
미키「그, 그게……한번 남자가 그걸 입고 있는 걸 보고 싶었어요! 만족합니다!」
난 모르는 새에 미키를 만족시키고 있었다.
제길……미키미키에게 농락당한 건가…….
왜 그 때 눈을 안 뜬 걸까, 난.
미키「왜 그러세요?」
타이치「……내가 한심해서」
미키의 얼굴에『?』가 뜬다.
타이치「뭐, 됐어. 그보다 고마워. 아무리 나라도, 땡볕 아래에 쓰러진 채로 있었으면 몸이 망가질 뻔했어」
미키「뭘요뭘요」
타이치「뭔가 답례를 해야겠군」
미키「선배가 느긋하게 지내주시면, 그걸로 만족해요」
타이치「미키……좋은 녀석」
만지작
하는 김에 엉덩이를 어루만진다.
미키「떨어져 코끼리」
타이치「하읏!?」
남자로서 상당한 치욕에 휩싸였다.
타이치「그래그래, 샌드위치가 있었지. 같이 먹자」
미키「공격에 굴하지 않는 선배도 멋져요」
별로 차갑진 않지만, 마실 것도 준비한다.
타이치「마침 점심시간이고」
미키「와아, 잘먹겠습니다」
달려들었다.
와구와구와구
단숨에 먹어간다.
미키「냠냠……신선한 야채가……냠……들어 있네요」
타이치「음」
미키「아무래도 요즘은 야채를 먹기가 힘들어서……」
타이치「야채도 먹어야지」
미키「그렇긴 하지만요」
그러고 보니, 요코가 낮에 돌아온다고 했던 것 같은데.
벌써 와 있을 수도.
충분히 가능하다.
등 뒤!
……없네.
타이치「그런데……어떻게 된 걸까, 이 세계는」
미키「우적?」
타이치「사람들이 사라지고, 그렇다고 시체가 있는 것도 아니고」
타이치「동물도 사라졌고」
타이치「이렇게 살아 있다는 건, 체내의 미생물까지 죽은 건 아닌 것 같지만……참 얼렁뚱땅한 멸망이네」
미키「…………」
반응이 없다.
타이치「미키? 듣고 있어?」
미키「아, 네……너무 맛있어서 그만 정신이……」
타이치「굶주린 녀석」
미키「저기, 야채 좀 가져가도 될까요?」
타이치「그럼그럼」
미키「야채를 먹고 변비와 상관없는 인생이 되면 좋을 텐데―♪」
타이치「조금은 부끄러워하세요, 아가씨……」
컨디션을 알 수 있는 건 좋지만.
미키「근데, 무슨 얘기였죠?」
타이치「인류 멸망의 수수께끼를 쫓고 있던 참」
미키「이미 늦었어요, 저희들」
타이치「……난 그렇게 생각 안 해」
미키「그러면요?」
타이치「인류 전원이 유괴되었을 지도 모르는 거자너?」
미키「……선배는 역시 머리가 좋군요」
타이치「하하하, 너무 칭찬하진 마」
타이치「미키찡은 그래도 꿋꿋하네」
미키「아하하, 멀쩡합니다」
타이치「적응계수 얼마였더라?」
미키「40정도예요」
타이치「그럭저럭이네」
미키「사회생활에는 영향 없고요」
타이치「옛날부터 그 정도?」
미키「네. 어린 시절부터」
타이치「으음, 그래서 군죠로 왔구나」
타이치「……사람을 좀 다치게 하곤 해서요. 그땐 아직 로리였는데도」
타이치「아―로리구나―. 좋구나―로리. 그 때 만났으면 좋았을 걸」
미키「사진 있어요―」
타이치「……얼마야?」
미키「지, 진지한 표정이 되셨는데요……」
타이치「진지하게 갖고 싶으니까. 얼마야?」
미키「……새, 생각해 볼게요」
떨고 있었다.
그것도 잠시.
미키「그러고 보니……입술……빼앗았죠?」
목소리가 낮아졌다.
타이치「음……아아, 그거 말이구나. 아니, 너무나도 절묘한 타이밍에 킥이 들어와서, 조금 열이 받아서 말야」
미키「퍼스트 키스였는데……」
타이치「그, 그런 것 같긴 했어」
타이치「그래도 미키가 너무 날카로운 공격을 해서, 내 마음이 확 불타올랐던 거야」
미키「으으으으―」
잠시 동안 미키는 으―으―거렸다.
미키「……개한테 물린 거라 치고 포기할 수밖에……」
타이치「그, 그러던지」
휙 고개를 들었다.
미키「그래 이 카메라의 내용을 공개해서 시름을 달래볼까」
타이치「그, 그건 일회용 카메라!?」
미키「놀라실 타이밍이 아닌데……」
타이치「응, 그러게. 착각했어」
타이치「뭘 찍었는데?」
미키「선배의 코끼리. 24장 다 찍었어요」
타이치「뭐라―!!」
내 부끄러운 꼴, 치부가!
미키「게시판에, 올려버릴까~, 아 니 면, 뿌려버릴까나~♪」
타이치「하, 하지 말아 줘, 그것만은」
미키「음―, 퍼스트 키스도 뺏겨버렸지―. 역시 공개할까나―」
타이치「부디 자비를!」
미키「제가 하는 말을 들으시겠나요?」
타이치「듣겠습니다 듣겠습니다」
손을 비빈다.
미키「그럼 제 말을 하나 들어주실 때마다, 사진을 한 장씩 드리기로 하죠」
타이치「그런 야겜 같은 요구에도, 이 쿠로스 타이치, 유유낙락히 복종하겠습니다」
미키「후후훗~」
미키「우선 키리찡 괴롭히는 거 금지―」
타이치「네엡―」
미키「사랑 있는 성희롱도 포함이에요」
타이치「네에에엡―」
고개를 숙였다.
주종관계가 뒤바뀌어 버렸다.

그런 연유를 거쳐, 학교에 왔다.
미키의 뒤를 따르며 짐꾼 노릇을 하고 있다.
타이치「근데, 온 건 좋은데 이것들은 어떻게―」
미키「아, 전 여기서 키리하고 합류할게요」
타이치「네엥―」
가방을 건네준다.
미키「기왕이니 이것도 현상해야지」
카메라를 꺼내, 실없이 웃는다.
타이치「……으윽, 난 너의 애노예구나」
미키「그럼그럼」
가벼은 발걸음으로 떠나갔다.
자 그럼…….

결국, 학교에 와도 할 일은 없다.
갈까.
하지만……이렇게 느긋하게 지내도 좋은 걸까.
세계는 멸망해버렸는데.
타이치「……」
난 뭘 해야 되는 걸까.
뭘 할 수 있을까.
수수께끼를 푸는 건 좋지만, 풀 단서는 전혀 없다.
타이치「……응?」
없는 것도 아닌가.
사당―――
나나카도 요코도 언급한 적이 있다.
사당이라.
한번쯤 가 보는 것도 괜찮을 지도.
미키「타이치 선배」
타이치「우응, 미키구나」
키리도 있다.
적의가 풀풀.
타이치「키리, 피곤해 보이네」
키리「……누구 탓인데……하아」
녹초가 되어 있었다.
미키「신학기 첫날부터 사이 나쁜 두 사람을 위해, 미키가 계획을 마련했습니다」
타이치「안 나쁜데, 별로」
키리「나빠요」
단호히.
타이치「으―음……그럼, 역시 사이 나쁘다고 치고. 뭔데?」
미키「부활동이요」
타이치「부활동? 토모키가 하고 있는 그거?」
미키「아뇨, 부장 선배 쪽이요」
타이치「……아아, 그쪽」
일요일 밤.
인류의 흔적이 사라진 세계에서, 우리들은 방침을 정했다.
방관―――
애초에 관계는 끊어져 있었다.
그 외의 길은 없었을 것이다.
그 안에서, 토모키는 식료품의 확보와 배급, 미미 선배는 안테나를 이용한 SOS라는 계획을 세웠다.
합숙의 끝은 말다툼으로 물들어져, 다들 피곤해 있었다.
그래서 두 사람에게 찬성하는 사람은 없었다.
사실, 최근의 선배는 조금 노이로제 기미를 보였다.
내가 억지로 강행한 합숙이, 그 원인이 되었다.
……미안한 마음은 있다.
그 때문에 말을 건네기도 어려웠다.
미키「명령입니다. 사이좋게 부활동을 할 것」
타이치「……알았어」
뭐, 좋겠지. 이견 없음.
미키「키리찡도야!」
팡, 하고 등을 두드린다.
키리「알았다니까……」
이 녀석도 약점을 잡힌 걸까.
미키「말 안 들으면……그 사진을 뿌려버린다?」
키리「으으으……그것만은……」
역시.
타이치「으음, 옥상에 가서 도와주면 되는 거야?」
미키「그렇습니다. 차근차근히, 날뛰지 마시고」
타이치「힘내보지」
키리「화장실……」
미키「아, 키리」
키리는 여자 화장실에 들어갔다.
미키가 따라간다.
나도 따라간다.
미키「……아무렇지도 않게 들어오지 말도록」
쫓겨난다.
화장실과 복도의 경계선에서, 나와 미키는 갈라졌다.
미키「나쁜 버릇이 나왔네요」
미키「키리찡은 싫은 일이 있으면 혼자서 틀어박혀요」
타이치「역시 민감한 10대」
미키「그러니까 먼저 가 주세요」
타이치「음」
타이치「그럼 미키에게 이걸 주지」
꺼낸다.
미키「이건?」
타이치「소형 쇼트 드라이버」
만년필을 반으로 자른 듯한 모양의 공구.
타이치「피킹 툴이야. 유용할 걸. 작지만 내구성이 떨어져서, 시어 라인을 정렬할 때 플레이트가 빠질 가능성이 있어. 조심해」
미키「……왜 이런 걸?」
타이치「취미야. 익숙해지면 보통 자물쇠는 30초면 끝」
미키「그렇군……이런 기술이 있어서……어디에 숨어도 소용없던 거구나……」
작은 목소리.
타이치「어, 뭐라고?」
미키「아뇨―. 일단 빌릴게요. 쓸모는 없지만……」
미키「그런데 열쇠따기 잘하세요?」
타이치「의식이 없어도 할 수 있어」
미키「위험해……이 사람……」
타이치「그럼 이따 봐」
옥상으로 향했다.

문을 밀어서 연다.
저항이 있었다.
반대편에서 눌리고 있었다.
강하게 민다.
문 건너편에서, 약한 난기류가 흩어졌다.
바람이었던 것이다.
안테나.
그럭저럭 모양이 갖춰져 있다.
지향성이나 파장 등, 여러가지 조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런 지식은 나에겐 없다.
선배도 자세하게는 몰랐지만, 공부를 한 것 같다.
그 선배는……없었다.
공구.
사다리.
서적.
바람에 흩날리는 크림빵 봉지.
작업을 하고 있던 흔적만이 남아 있었다.
24시간 작업하고 있는 건 아닌가.
안테나를 바라보았다.
텅 빈 주변을 둘러싸고, 높이 솟은 건물.
전파를 날리기엔 딱 좋은 환경이었다.
커뮤니티 FM이라는 지역 밀착형 라디오 방송이 있다.
원래, 학교 부활동으로 할 정도로 시시껄렁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건물의 입지와 군죠학원의 임직원들, 지역 유지들의 넘치는 호의.
그런 것들이 결합된 이야기었다.
준비는 착실히 진행되고 있었지만, 어느 어쩔 수 없는 사건에 의해 중단되어버렸다.
반입된 안테나는, 1년 동안 그대로 방치되게 되었다.
그런 사정이 있는 물건이었다.
아마 그들이 FM군죠에 요구하고 있던 것은 열심히 살아가는 소년 소녀들의 희망 넘치는 사랑 컨텐츠였겠지만.
죄송, 군죠에 그런 건 없습니다.
애초부터 삽질이었던 것이다.
미사토 선배는, SOS 계획을 세웠다.
일요일 밤에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인류가 소멸해버린 것을 확인하고 나서였다.
마침 안테나가 있으니까, 완성시켜 신호를 보내보려는 시도는……잘라 말해 현실성이 부족했다.
사실, 선배는 많이 약해져 있던 것 같다.
도피는 점차 사람을 약하게 한다.
그리고 선배는 원래도 충분히 약한 사람.
미사토「페케군?」
등 뒤.
뒤를 본다.
타이치「헬로―. 선배」
미사토「헬로―예요……으―음, 무슨 일이에요?」
타이치「상황을 보러 왔어요」
선배는 포근하게 미소지었다.
미사토「그런가요」
타이치「당분간 안 왔었는데, 꽤 많이 하셨네요」
미사토「오래 전부터 틈틈이 해 왔으니까요」
그래.
방송부가 자연붕괴하고 나서 지금까지.
선배는 혼자서 모든 것을 해내고 있었다.
점심시간의 DJ.
각종 방송.
모든 것을.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
키리는 나를 적대시하게 되었고,
토모키는 누나를 피하게 되었고,
미키는 우물쭈물 쓴웃음,
토오코도 나를 무시하기 시작하고,
보기좋게 와해.
사쿠라바만이 평소와 변함없었다.
변함없이 땡땡이를 쳤다.
나는 그래도 선배 주변을 멤돌았었지만.
그녀는, 내 도움을 거절했다.
타이치「……그랬군요」
미사토「그건 그렇고, 깜짝 놀랐어요」
타이치「그렇죠―」
미사토「사람들이 모두 사라져버리다니」
타이치「조용하네요」
미사토「무척 무척 조용해요」
타이치「어디 갔다왔어요?」
미사토「잠시……배가 고파서요」
타이치「벌써 낮이네요. 식료품은 잘 찾았어요?」
미사토「아아, 집에 갔었어요. 먹을 건 충분히 있으니까요」
타이치「아―, 학교 땡땡이―. 부장이 땡땡이―」
미사토「아, 아니에요, 이건 땡땡이 아니에요」
초조해한다.
규칙을 중시하는 사람이니까.
타이치「정학, 정학이에요」
미사토「정학은 싫어―, 이력에 흠집이―」
타이치「정학! 정학!」
미사토「정학은 안돼요―」
함께 하는 잡담.
이것이 지금 우리들의 최단거리였다.
미키「안녕하세요―」
잠시 후 미키가 왔다.
키리를 연행해서.
미사토「……야마노베?」
미키「야마노베 미키입니다. 왔습니다」
미키「자, 키리찡 인사」
키리「……안녕하세요」
미키「목소리가 작다. 안 들려!」
키리「……아, 안녕하세요!」
미키「안녕하세요가 아닙니다. 안녕하십니까―!」
키리「아, 안녕하십니까」
미키「『안』하고 『녕』하고 『십』하고 『니』가 작았다. 다시 한 번!」
찰싹, 하고 엉덩이를 친다.
깐깐해―!
키리「꺄앗……때리지 마……」
키리는 엉덩이를 쓰다듬었다.
나도 쓰다듬고 싶다.
키리「아, 안녕하십니까」
꾸벅 고개를 숙인다.
미키「음음」
미키찡은 할 때는 새디스트였다.
타이치「뭔가 그 인사는! 각도가 4도 부족하지 않은―――가―――」
미키「……섬세한 키리찡은 지금 꽤 많이 스트레스를 받았으니까, 안 건드시리는 게 좋아요」
타이치「진작 알려 줘……」
다운된 나에게, 미키는 뒷북을 쳐줬다.
미사토「저기, 두 사람 다 무슨 일로 왔어요?」
미키「부활동에 참가하러 왔어요」
미사토「아, 그치만……특별히 도와줄 만한 일은……」
미키「참가하러 왔어요」
미사토「저기, 그게, 그치만 지금까지 계속 땡땡이……」
미키「참가하러 왔어요」
미사토「저 혼자서 하려고 생각했으니까, 여러분들이 굳이 안 와도……」
미키「참가하러 왔어요」
선배는 필사적으로 거절하려 했다.
역시 부활동은 도피 목적이었구나.
타이치「예상대로야」
내 인간관찰력은 지금, 한없이 신에 가깝다.
미키「부활동에 참가하러 왔습니다―!」
그리고 미키는 계속 밀어붙였다.
미사토「으음……으―음……」
타이치「현실에서 눈을 돌려도 별 수 없잖아요. 이미 우리들은 여기서 헛되이 죽을 수밖에 없으니까, 포기하고 지금을 즐기죠!」
미사토「정말―, 페케군도 참」
상냥하게.
하지만 강력하게.
미키「자―, 명령을」
미사토「으으음, 곤란하네요」
미키「에헤헤」
미사토「……사쿠라도 같이 하는 건가요?」
키리「저, 전……미키가 억지로……」
미키「불타오르는 성욕」
불쑥.
키리「참가시켜 주세요」
허리를 곧게 펴고, 키리는 말했다.
미사토「……하아, 어쩔 수 없네요」
미사토「그럼……도움을 받아볼까요……」
미키「와―아, 학원 청춘극―! ……키리찡?」
키리「……와, 와―아……학원 청춘극―……하아」
미사토「그런데 왜 갑자기……」
미키「미키 나름대로의 시행 착오의 결과예요. 뭐, 너무 신경쓰지 마세요」
타이치「……결정이네」
미사토「페케군까지 참가하는 거네요」
타이치「죄송합니다……그치만 미키가……」
미키「……귀여운 코끼리」
불쑥.
타이치「제 의지에 따른 선택입니다, 각하」
경례하며 말했다.
미사토「페케군이 갑자기 군인처럼!?」
타이치「무슨 말씀이신가요」
타이치「쿠로스 타이치, 프로이센 정신을 잊은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미사토「전형적인 몽골인종이잖아요」
타이치「왜냐면 일본 프로이센이니까요」
미키「일본 알프스하고 비슷한 느낌이네요」
타이치「그렇습죠」
미키「선배도 키리찡도 저렇게 일하고 싶어하니까, 실컷 부려먹어 주세요」
미사토「……그러죠. 기왕 이렇게 됐으니, 맘껏 부탁할게요」
미키「우선 무거워서 못 가져왔던 필요한 물품들을 운반해 오죠」
악마…….
키리「……무거운 거 못 드는데……」
키리도 울 것 같았다.
일단.
사당행은 중지…….

몇 시간 후.
부활동이 끝났다.
학교를 나와, 옥상을 바라본다.
안테나 꼭대기가 보였다.
그 옆에.
선배는 아직, 그곳에 있다.
타이치「……」
부활동에 힘쓴다.
실로 학생답다.
하지만 그 건전함이, 도피로써 작용하는 측면도 있다.
어쨌든.
타이치「……하아」
지쳤다.
키리「……하아」
키리도 마찬가지.
미키「충실한 하루였어」
그야 그랬겠지.
사람을 부려먹을 대로 부려먹고.
자기는 지휘봉이나 흔들고 다니고.
타이치「그럼 난 이만」
걸어간다.
키리「……잘 가, 미키」
미키「응, 바이바이」
등 뒤에서 발소리.
미키「상점가까지 같이 가죠」
미키가 따라왔다.
타이치「그러십죠―, 원하시는 대로―」
피곤했다.
미키「이야, 현상 다 했어요, 그거」
부활동 중, 미키는 사진부의 부실에서 그 짓을 하고 있었다.
타이치「……잘 생각해보니 보여줄 사람이라 해도 여덟 명 뿐이잖아. 나하고 너를 빼면 여섯 명이야」
미키「키리찡하고 같은 말을 하시네요. 그럼, 부활동 그만 하실래요?」
타이치「……뭐, 기왕 여기까지 왔으니. 맘대로 해」
미키「에헤헤」
미키「선배는 힘 세시네요―」
타이치「그래?」
미키「남자가 영차영차하고 힘 쓰는 거 보는 건 재밌어요. 부활동에 끌어들인 보람이 있네요」
겨우 그런 거 때문에…….
미키「그 근무 태도는 실로 성실. 타자키 상점에서 주스를 사 드리죠」
타이치「하, 하, 하. 감사합니다 땡큐」
얼굴이 자꾸 일그러지네.
이 꼬맹이…….
타이치「뭐, 할 일이 있는 게 좋은 걸까나」
미키「그쵸그쵸」
타이치「귀찮은 일은 천천히 생각하면 되겠지」
미키「……이번주는 학원 청춘 드라마로 가 보죠」
타이치「다음주는?」
미키「음―. 인류의 생존을 위한 남녀 여덟의 여행……이려나요」
타이치「꽤 재밌겠는데」
기왕 이렇게 됐으니.
여덟 명이 0이 되기 전까지는.
타이치「하지만, 난 여기서 평범하게 지내는 게 좋은데」
인류의 의지를 담아, 평범하게 살아 주는 것도 좋겠지.
미키「……그러세요」
도착했다.
미키는 정말로 주스를 사 줬다.
타이치「진짜로 평범한 날 같은 느낌이네」
미키「네♪」
저녁해가 하늘에 물든다.
지금, 인류는 저물었다는 것을 다시금 생각하게 했다.

그리고, 집으로.
타이치「후우」
아무도 없다.
무츠미 아줌마의 모습은 없다.
내가 빨리 오는 날엔 따스하게 마중을 나와 주시고.
저녁을 만들어 주시고.
식탁을 요리로 가득 채우는 걸 좋아하시고.
남성적인 요리.
직업의 영향일까.
호쾌하고, 파워풀하고.
농담을 주고받고.
좋은 분이었지.
하지만 지금, 책상 위는 텅 비어 있다.
요리가 김을 내뿜을 일은 없다.
타이치「……배고프네」
타자키 상점에서 컵라면을 가져왔다.
먹자.
으윽, 가스렌지가 안 켜져.
정원에 조그만 파티용 공간이 있으니, 거기서 불을 지피면 되겠지만.
타이치「구차너― (귀찮아)」
그냥 생으로 먹기로 했다.
바삭바삭 (면)
꿀꺽꿀꺽 (물)
바삭바삭바삭 (면)
꿀꺽꿀꺽꿀꺽 (물)
바삭바삭바삭바삭 (면)
스슥……. (건더기 스프)
타이치「……허무해」
난 정말로 식사를 하고 있는 걸까.
역시 인류멸망, 빡세군.
여러모로 불편한 걸.

양초에 불을 붙인다.
일기를 쓰기로 했다.
왠지 모르게 헤밍웨이 풍으로.
일기를 쓰려고 대학노트를 찾았지만, 어디에도 없었다.
타이치「응?」
분명히 몇 권 사둔 게 있었는데.
타이치「음―」
금고 안에 있나.
일단 조사해 본다.
금고엔 기본적으로 에로책이 수납되어 있다.
내화금고라, 설령 집이 불타더라도 나의 에로스는 보존되는 것이다.
조사를 위해, 금고를 열었다.
…………………….
30분 후, 금고를 닫았다.
공책은 없었다.
타이치「후우」
이런,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해버렸다.
나참……이 금고 안만 들여다 보면……흐흐흐.
죄 많은 핑크빛 금고 녀석.
근데, 노트는 어디로 갔을까. 짚이는 데가 없는데.
기억상실인가.
타이치「드디어 나에게도 주인공스런 설정이 생기는 것 같은……아, 맞다」
요코에게 받은 노트.
베스트 타이밍.
……뭐랄까, 거의 신의 경지랄까.
비닐을 벗긴다.
자, 써 볼까.
타이치「……」
펜이 없네.
안 보인다.
타이치「금고 안에 있나?」
다시 금고를 연다. 펜을 찾기 위해.
…………………….
40분 후, 금고를 닫았다.
펜은 없었다.
사랑이 있었다.
타이치「……후우우~」
모처럼 서둘렀는데, 연사하면 의미가 없지♪
얄미운 유혹의 상자!
펜은 책상 밑에 떨어져 있었다.
일기를 쓴다.
사전이 보고 싶었다.
하지만 사전이 없었다.
타이치「……」
금고를 연다.
…………………….
1시간 27분 후, 금고를 닫았다.
타이치「……후」
나도 참, 너무 화끈하단 말야.
특대 사이즈 궁극 베개(상품명)은, 아무래도 품질이 너무 좋아서.
벌써 10시가 지나 있었다.
타이치「우옷!?」
특대 양초도 어느새 꺼져있었다.
이런, 너무 허탈하게 시간을 보내버렸다.
그러니까 이런 상품들이 문제란 말야…….
자, 일기 써야지.
새 양초에 불을 붙이고, 노트를 바라본다.

눈을 뜬다.
햇빛이 창문을 넘어 들어오고 있었다.
간만에 푹 잔 것 같다. 꿈 하나 안 꿨다.
시간은……7시.
학교에 갈 필요는 없다.
하지만, 몸은 움직였다.
식사 준비는 되어있지 않았다.
당연하지.
미인 커리어 우먼 무츠미 아줌마는 요리도 잘하셨지만, 이젠 없다.
나를 받아주시고.
요코에게도 역시 아무것도 안 묻고 지낼 곳을 마련해 주시고…….
아무리 감사해도 부족할 정도다.
효도도 하기 전에, 사라져버리셨다.
이 집에 제대로 된 음식은 없다.
물만 마셨다.

이 길에서 유사와 자주 만났다.
나를 잘 따랐다.
포근한 존재였다.
지금의 내가 이루어지기까지, 나도 여러모로 고생을 해 왔다.
유사의 존재는, 나를 잘 달래주었다.
그런 그녀도 이젠 없다.
사쿠라바「여어」
사쿠라바였다.
사쿠라바「배 고프다」
타이치「나도다」
사쿠라바「너도냐」
타이치「그렇다」
사쿠라바「슬프군」
타이치「그래, 슬프다」
타이치「이럴 때, 난 일반 가정집에 침입한다」
근처의 민가에 들어간다.
돌아온다.
타이치「월척이다」
보존식품이 잔뜩 있었다.
타이치「봐라, 건빵이다. 게다가 별사탕까지 들어있다」
사쿠라바「……훌쩍」
사쿠라바는 콧물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
타이치「……피난하길 잘했군」
사쿠라바「티슈를 원한다」
타이치「없어」
사쿠라바「……음. 그럼 어쩔 수 없지」
그대로 걷는다.
질질 늘어진 콧물이, 기묘하게 좌우로 춤춘다.
타이치「그렇다고 그대로 그냥 가지 마!」
손수건을 꺼낸다.
사쿠라바「……고맙다」
타이치「주지 마. 절대 돌려주지 마? 그냥 가져」
사쿠라바「빚이 생겼다」
타이치「그건 갚아라」
사쿠라바「응」

복도에 키리가 서 있었다.
타이치「키리찡……」
찌릿한 시선이 느껴졌다.
질 수 없이 나도 째려보았다.
파바바바바바바바밧!! (심리 효과)
시선 응수.
압박감 넘치는 적의가 서로 충돌해 중간 지점에서 휘몰아친다.
저 꼬맹이가!!
품 속으로 손을 넣는다.
무기를 꺼내겠다고 말하듯.
사실은 젖꼭지가 가려웠기 때문.
키리「……으읏!」
키리는 과민하게 경계하며.
스윽, 하고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녀석도 무기를!
타이치「큭」
난 품 속에 손을 넣은 채로, 안광을 한층 더 강화시켰다.
찌릿찌릿찌릿찌릿찌릿!!
키리도 주머니에서 손을 꺼내지 않는다.
교착상태.
퀵&드로우.
먼저 움직인 쪽이 당한다.
그 때 미키가 손을 흐느적거리며 나왔다. 화장실에서.
미키「와―――앙, 화장실 갔다온 사이에 아수라장이 되어 있어―――!!」
타이치「지금 도와줄게 미키!」
미키「붙잡혀 있다는 설정이 되어 있어……」
키리「도망쳐, 미키」
미키「아니, 그러니까……」
키리가 허리를 숙인다.
타이치「……훗」
난 어깨의 힘을 뺐다.
손도 뺐다.
키리「……」
빈 손.
손을 흔들며, 무기가 없다는 것을 알린다.
타이치「장난은 여기까지, 키리찡」
타이치「난 무장하고 있지 않아. 자네도 무의미한 허세는 그만 두게나」
'그만두게나'라고 말하는 내 모습은 한없이 멋있었다.
순애 귀족이란 별명은 허명이 아니었다.
키리「…………」
키리가 손을 뺐다.
크로스보우가 쥐어져 있었다.
타이치「……냐?」
백 마스터사 제품 맥스 크로스보우―――!
타이치「잠깐잠깐잠깐잠깐」
타이치「이건 이상해! 그런 사이즈의 물건이 주머니에 들어갈 리가 없잖아!」
키리「…………」
말없이 크로스보우를 나에게 겨누고 있다.
스코프 너머로, 키리가 내 심장을 노리고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오싹한 시선이 느껴졌다.
타이치「어린 시절 그렇게나 변신 로보트를 가지고 싶어했던 내 마음을 노리고 있어!?」
키리「움직이지 마세요. 쏩니다」
미키「아와와왓」
미키미키도 당황.
타이치「항복 항복!」
양손을 든다.
키리「아, 쏘기 쉬워졌다……」
화살촉이 순간 앞으로 다가왔다.
타이치「노―! 노―! 야메뗗―!」
고개를 빙빙 흔든다.
울 것 같다.
아니 울고 있었다.
미키「키리찡, 키리찡! 안돼, 체포된단 말야!」
키리「경찰 이젠 없잖아」
미키「아, 그렇구나」
미키「호에―……」
얌전해졌다.
타이치「납득하지 마―!」
키리「무릎을 꿇고, 손을 머리 뒤로」
타이치「네엡」
따른다.
키리「……다음엔 어쩌지?」
미키와 속닥속닥 대화한다.
하지만 나에겐 들린다.
미키「무장해제는 어때?」
키리「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
미키「……」
고민.
미키「그럼, 이건 어때?」
속삭인다.
키리「……알았어」
키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키리는 쿨하게 보이면서도, 실은 미키에게 상당히 의존하는 면이 있다.
그래.
거기에 활로가 있었다.
미키미키는 분명 오랫동안 귀여워해줬던 날 선처해줄 것이 틀림없다.
키리「땅바닥을 기면서 멍하고 짖어보세요」
타이치「미키미키―!!」
미키「이히히」
사악한 웃음.
난 성희롱의 복수를 당하고 있었다.
키리「빨리」
타이치「크, 크윽……」
별 수 없지.
땅바닥에 엎드린다.
타이치「……멍」
미키「의욕이 느껴지지 않아서 다시」
타이치「꺅―!!」
부끄러움 폭발.
쉽다고 하면 쉬운 일이지만.
막상 해보니 괴로웠다.
키리「다시 하세요, 선배」
타이치「멍, 멍멍멍!」
타이치「자 어떠냐 불만 있냐!」
미키「누가 네 번이나 짖으라고 했어, 라고 해봐」
타이치「야야!」
키리「누가 네 번이나 짖으라고 했나요?」
타이치「OK 알았어. 자, 누구 신발을 핥으면 되지? 아앙?」
미키「개긴다?」
타이치「핥게 해 주십시오, 공주님」
이마를 바닥에 댔다.
미키「신발이 더러워지니까 됐습니다」
타이치「야야!」
미키「……자아, 다음은 누드 쇼예요~」
미키가, 미키가 악마로!
미키「하의를 벗으세요」
타이치「싫어―, 몸은 싫어―!」
미키「생명과 정조, 어느 쪽이 중요하신가요, 선배?」
강자의 여유에 눈을 뜬 미키였다.
타이치「히―잉」
팬티 차림이 된다.
키리「꺅―――!?」
키리가 움찔한다.
키리「엄청난 속옷……」
난 어제 미키에게 장착당한 ('입혔다'보다 더 삘이 오는 표현) 코끼리 팬티 차림이었다.
미키「어라? 선배 안 씻으셨어요?」
타이치「응」
미키「더러워―!」
키리「불결……」
큭, 위생적인 꼬맹이들.
은근슬쩍 사람을 깔보고 있어.
미키「여름인데도요?」
키리「……인격이 그러니까, 몸도 역시」
타이치「지저분한 녀석은 범죄자 취급입니까?」
키리「여기서 처리해버리는 편이 좋을 지도 몰라……」
타이치「잠깐만!」
미키「음―. 선배의 주가가 많이 내려갔네요」
타이치「하루뿐이잖아? 내일이면 다시 급변할 걸?」
키리「뭔지 모르겠어……」
미키「매일 안 씻으면 보통 이하예요」
타이치「어, 그래? 요코는 그런 말 안 했는데……안 가르쳐 줬는데……」
이 상황은, 같은 또래의 친구들끼리 정보를 교환하지 않으면 독자성이 유지된 채로 성인이 되어버리는 일도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평범한 사람이 되기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미키「어쩌지, 키리찡?」
키리「위험해, 미키」
미키「응, 위험하지」
신호를 보내는 두 사람.
키리「이상하다고는 생각했지만, 설마 이 정도까지라곤……」
미키「그냥 해치워버리자, 저거」
키리「별 수 없지, 그러자」
미키「어차피 이 사람하고 같이 부활동해야 하니까」
키리「그래. 어디서 해치울까?」
타이치「『해치운다』라뇨 무슨 상의중?」
두 명은 나를 무시하고 계속 얘기.
작은 목소리. 단편적으로만 들린다.
미키「사람 눈에 안 띄는 곳」
키리「은밀히」
미키「센 약으로」
키리「단숨에 끝내자」
뭘 쑥덕거리는 거야 저 녀석들은.
타이치「……위험해 보이는 분위기……」
도망칠까.
키리「움직이지 마!」
타이치「히익?」
안돼. 못 도망친다.
더 이상 키리를 자극하는 것도 위험.
미키「선배, 당신의 처분이 정해졌습니다」
타이치「……바지 입어도 될까?」
미키「안됩니다」
타이치「너무해」
미키「잠시 저희들과 동행하시죠」
어디론가 끌려가는 것 같다.
타이치「알았어……겨우 하루 안 씻은 것뿐인데 어쩌다 이런 일이……」
미키「안돼요. 선배는 아무 쓸모도 없으니까, 몸이라도 청결히 하는 게 의무라고요」
미키「근데 선배는 안 씻었죠」
키리「당신은 이상해요. 어려가지 의미로」
이상자 취급.
미키「갑시다」
연행당했다.

그리고
타이치「……저기, 전 어떻게 되는 거죠?」
겁나 불안.
선배는 아직 안 왔다.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말이다.
미키가 급수탑에서 호스를 가져왔다.
키리는 크로스보우로 나를 감시하고 있다.
미키「선배, 옷 벗어요」
타이치「여기서 더?」
키리「……」
찰칵, 하고 크로스보우가 겨눠진다.
타이치「……네엡」
벗는다.
셔츠를 벗는다.
이젠 뭐 코끼리 팬티 달랑 한 장뿐인 나.
타이치「……이것도?」
미키「으―음, 뭐 그건 봐 드리죠」
그리고 미키는, 호스에 달린 홀더를 풀었다.
미키「쨘―!」
강렬한 물줄기가 나를 덮친다.
타이치「우풉」
미키「이럇이럇―」
이런 거였군.
강제 클리닝.
아아, 적어도 강제 마사지였다면.
미키「키리찡, 약을!」
키리「OK」
키리가 뭔가를 꺼냈다.
타이치「윽, 이, 이것은?」
그윽히 풍기는 시트런스 민트향.
바디 클렌져다.
용기를 거꾸로 잡고, 나에게 대충 뿌렸다.
미키「그리고그리고」
두 사람은 수세미를 들고……수세미!
미키「간닷―――!」
키리「에잇, 에잇」
난 갑판처럼 씻겨졌다.
타이치「으아아아아아아아악!?」
따끔따끔해! 따끔따끔해요!
타이치「난 갑판이 아냐!」
제길, 이것도 내 빵빵한 갑빠 때문인가!
세기의 개그.
미키「비누, 비누비누!」
키리「비누, 에잇!」
비누 연사.
조금 두근두근.
난, 너희들을, 비누로, 비누로, 비누로…….
다시 수세미.
고통에 익숙해지자, 별로 아프지 않았다.
오히려, 따끔따끔한 감촉이 상큼하게까지 느껴졌다
키리「미, 미키! 코, 코끼리가!?」
미키「우, 우왓―――!? 코끼리가 울었다―!」
방수.
키리「변태! 변태!!」
타이치「이, 이건 자극을 받아서……어쩔 수 없는……우풉」
미키「북북북북―!」
더욱 열심히 문질렀다.
키리「꺄악, 떨어졌어, 코끼리!」
물줄기에 떨어져버렸다.
미키「아토믹 잡화에서 산 코끼리 커버가!?」
역시 아토믹 잡화였군…….
그 가게 주인 (여성ㆍ미인ㆍ25살), 자기도 변태라서 별의별 걸 다 판다.
미키「봐봐 키리찡, 외계인 같아!」
키리「보면 안돼! 눈이 썩어!」
니들 초딩이냐.
미키「이익―, 방금 꿈틀거리지 않았어―!?」
키리「꺄아――――――!!」
도망친다.
전라로 혼자 남겨진 나.
타이치「……훗」
안구에 습기가.
미사토「후암―, 자 오늘도 열심히……응?」
미사토「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저 반응, 역시 처녀.
타이치「훗」
씁쓸하군…….
타이치「으흐흑」
울어버리기로 했다.
휘익
그런 나에게, 목욕 타올이 날아왔다.
미키「……이야―, 도망쳐버렸네요, 죄송해요」
미키「처녀들한테는 자극이 너무 심했어요. 자 이거」
새 속옷과 교복.
타이치「으윽, 미키……이쁜 녀석」
입는다.
미키「몸도 깨끗해졌고, 잘 됐네요」
타이치「온 몸이 찌릿찌릿하지만 말야」
미키「키릿찌―, 미미 선배, 끝났어요―」
키리「……정말~?」
머뭇거리며 나오는 두 사람.
미키「그렇게 됐으니, 이제 부활동하죠」
생긋 웃었다.
그리고 우리들은 부활동에 매진했다.
아아, 이렇게 간단했구나.
결속이란 건.
내가 고생해서 했던 합숙은 뭐였던 거지.
방식이 나빴던 걸까, 너무 강제적이였던 걸까.
어떻게 사람들을 대해야 되는 걸까.
모르는 것 투성이.
자 그럼.


ㆍ二年敎室に行ってみる (2학년 교실에 가 본다)


교실에는 토오코가 있었다.
책상에 엎어져 자고 있었다.
쭉 여기서 앉아 있던 걸까.
미미 선배나 토모키처럼 부활동으로 도망치는 일도,
나와 같은 안식의 나날들도,
요코와 같은 철벽의 에고마저도 없다.
토오코에겐 도망칠 곳이 없는 걸지도 모른다.
그것은……예전에도 같았다.
인류멸망 이전의 세계에서도.
토오코는 혼자였다.
계속 허세를 부리며 살아왔다.
그래서 한 번 무너지면 겉잡을 수 없다.
가까이 다가가, 말을 건다.
타이치「토오코」
토오코「……」
타이치「토―오코」
토오코「……으으음」
몸을 뒤척.
하지만 안 일어난다.
타이치「샌드위치 먹을래?」
토오코「……식욕, 없어……」
숨소리가 바로 잠잠해진다.
타이치「그래」
괜히 걱정된다.
제대로 밥은 먹을까, 이 녀석.
주머니에서 사탕을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그럼 다음은.


ㆍ保健室に行ってみる (양호실에 가 본다)


사쿠라바가 있다.
침대에 누워 있었다.
배를 내밀고, 호쾌하게 자고 있었다.
사쿠라바「……쿠울―」
코도 곤다.
타이치「사쿠라바?」
사쿠라바「왜?」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타이치「몸이 안 좋냐?」
사쿠라바「카레빵을 너무 많이 먹었다」
깨 있던 거냐.
하지만 눈은 감고 있다.
사쿠라바「카레빵을 네 박스 정도 먹었다」
타이치「바보냐」
사쿠라바「포인트가 많이 쌓였을 거야」
타이치「아니, 우리 식당 포인트제 아닌데」
사쿠라바「사소한 일이다. 난 신경쓰지 않아」
타이치「그건 그렇지만」
사쿠라바「이제 아무것도 못 먹겠다」
타이치「그렇겠지……」
타이치「샌드위치가 있는데」
사쿠라바「쿠울―」
자고 있었다.
혹시 지금까지 한 말도 전부 잠꼬댄가.
타이치「우정은 대가를」
사쿠라바「요구하지 않는다」
엄지손가락을 세웠다.
사쿠라바「쿠울―」
타이치「아무 고민도 없는 거냐, 이 녀석은……」
무서운 놈.

부활동.
그늘에서 미키가 달려들었다.
내 눈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손에 든 우지 서브 머신건의 트리거를 당긴다.
탄알이 발사되었다.
탄알은 그대로 미키의 발밑을 맞혔다.
미키「……큭!?」
미키가 움찔한다.
나무 그림자로 뛰어들어, 응사해 온다.
위험해, 저건 함정이다!
측면에서 미미 선배가 나타난다.
AK47에서 빈 탄창을 떼어냈다.
미사토「사쿠라가 없어요~」
타이치「놓쳐버린 건가요!」
미사토「사쿠라, 몸이 빨라서……」
타이치「큭……안 좋은데」
적을 놓치는 것은 위험하다.
그 때, 키리가 오른쪽에서 굴러왔다.
위험해, 협동공격이다.
키리의 M4A1 커빈이 불을 뿜었다.
미사토「앗, 당했어요―」
타이치「쉿트!」
2대 1.
난 응사하면서 후퇴한다.
포위되면 끝이다.
측면의 미키도 신경쓰인다.
그 때, 등 뒤에서 총구가 들이밀어졌다.
미키「홀드 업」
어, 어느새!
미키「게임 셋이에요」
타이치「아―, 또 당했다―!」
미키「얏호―!」
키리「승리―!」
미키와 키리는 하이파이브를 한다.
타이치「이걸로 4연패……체엣」
부활동은 순조로웠다.
…………이게 아닌데.

집으로 가는 길.
타이치「으―음」
결국, 아무것도 안 하고 하루를 보내버렸다.
아무래도 의욕이 나질 않는다.
게다가……학교에 가도 떠들썩함은 느껴지지 않는다.
세상은 텅 비어 있다.
여덟 명은 세상이라 할 수 없다.
영원한 여름.
우리들은, 시간의 소용돌이에 사로잡힌 인류의 잔해일까.
타이치「……」
모르겠다.
알 수가 없다.

아무 일도 없고, 아무도 없는 집에 돌아온다.
벌레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양초에 불을 붙인다.
할 일은 특별히 없다.
일기를 쓴다.
자세하게 쓴다.
할 일이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수요일.
뉴턴을 비웃듯, 타성의 법칙에 따라 학교에 간다.
고개를 오른다.
매일 다니는 길이지만 숨이 찬다.
걸음은 늦어진다.
간신히 평평한 곳으로 나온다.
타이치「……!」
알 수 없는 예감에, 의식이 가열되었다.
이성보다 빠르게 몸이 움직인다.
재빨리 뒤돌았다!
타이치「…………없네」
사람의 기척을 느꼈는데.

학생의 탈주를 막기 위한 문은, 척 보기에도 갑갑해 보이는 인상이다.
왜 탈주시키면 안 될까.
사람을 상처입힐 가능성이 있으니까.
뭐, 일종의 격리시설이다.
안심해도 돼요, 위험인물들은 사라졌습니다.
온 세상에 여덟 명뿐.
그리고 일반 시민도 사라졌습니다.
그러므로 피해자는 생기지 않습니다.
와하하.
타이치「자, 자학 개그는 이쯤 해 두고」
죽은 조개처럼 열려 있는 문을 지나간다.

가방을 두러 교실로.
타이치「오잉?」
토오코의 모습이 없다.
왔을 줄 알았는데.
창가 자리.
그곳에 아가씨의 모습은 없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하지 말아 줘.
소망에 가까운 바람.
낡은 가방을 두고, 학교를 방황.
시작한 지 3일째 되는『일상』.
하지만 그것은, 공허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나서, 혼자 옥상에 온 건 좋은데.
뭘 할까.
아, 선배다.
미사토「따다다다다당」
서바이벌 게임 연습을 하고 있다.
SMG를 허리에 걸친 선배의 모습은 멋졌다.
참고로 이 총기는, 매년 합숙 때마다 쓰여 왔던 물건이다.
물론, 합숙만 갔다 하면 바로 서바이벌.
BB탄 타입 전동 건도 제대로 갖춰져 있다.
타이치「헬로―」
미사토「엣?」
이쪽을 향했다.
SMG가 물을 뿜었다.
타이치「와풉!」
눈와 눈 사이를 직격.
전동 물총이라 위력이 세다.
미사토「앗, 미안해요……」
타이치「아뇨, 여름의 서바이벌 게임하면 역시 워터 건이죠」
미사토「그러고 보니 신제품이 나왔더라고요, 멸망 전에」
타이치「슬프다……」
타이치「저기―, 그러고 보니 신경이 쓰였는데요」
미사토「네?」
타이치「안테나, 손 안 대도 괜찮아요?」
미사토「…………마, 맞다」
타이치「미키의 페이스에 말리셨군요」
미사토「덮쳐오길래 그만 응전해버렸어요……」
그 때―――
미키「GI 다이!」
돌진해 왔다.
타이치「GI가 아냐―!」
응전하는 나. 그리고 선배.
물총이 불을 뿜었다.
※물총이 불을 뿜었다=신경쓰지 마
타이치「베트남 콤플렉스 녀석이!」
미키「GI 다이!!」
타이치「날 GI라고 부르지 마―!」
키리「죽어랏―!」
타이치「으윽」
제길, 이쪽은 어째 반쯤 진심인데.
타이치「베트남 증후군 걸린 원숭이 녀석……죽는 건 너다!」
난 베트콩의 올바른 의미를 몰랐다!
키리「큭, 건방진 녀석……」
타이치「내가 할 말!」
물총의 탄피가 교차한다.
※물총의 탄피가 교차한다=신경쓰지 마
미사토「정학, 정학!」
미키「으럇―!」
또 부활동이…….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눈 앞의 적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타이치「큭, 총알(물) 가르기!?」
허리에 장착한 탄창에서, 탄알을 재장전한다.
정확히 10초 걸린다.
키리「……훗」
키리가 사악하게 미소짓는다.
정확한 사격을 가해왔다.
몸을 숙이고 달린다.
그렇게 간단히 맞아주진 않지.
하지만 10초는 길었다.
키리가 보다 확실히 맞히기 위해, 접근해 오고 있었다.
마침 장전 완료.
쏜다.
키리「……앗!?」
키리가 휘청거렸다. 좋았어!
다시 한 발.
이것도 빗나갔지만, 키리의 몸자세는 더욱 더 무너졌다.
푹 고꾸라져, 한 발로 뛰며 펜스에 달라붙는다.
펜스가 기울어졌다.
모든 체중을 싣고 있던 키리는, 건너편으로 꺾어지는 펜스와 함께 옆으로 쓰러진다.
타이치「키리!」
달려나간다.
구할 수 있을까.
무리다, 이 거리에선.
그것을 이미 알아버렸다.
키리「어……라……?」
찰캉찰캉, 하고 교복 장식이 소리를 냈다.
펜스의 그물에 스치며 난 소리였다.
떨어지기 직전의 소리.
내 눈 앞에서, 키리가,
미키가,
타이치「!?」
신속했다.
미키가 손을 뻗었다. 키리의 손목을 잡았다.
간신히, 키리는 추락을 면했다.
미키「……키리」
펜스를 잡았던 팔은, 철사에 긁혀 피가 나고 있었다.
키리는 아직 망연자실해 있었다.
…………………….
키리를 일으킨다.
잠시 동안, 다들 멍하게 있었다.
미키「아야야야얏~」
출혈이 심하다.
타이치「이거 양호실에 가 봐야……선배, 부탁해요」
미사토「네」
미키「아, 양호실에는 선배가 가는 거예요」
미사토「에……안돼요, 저 그런 건……페케군 부탁해요」
타이치「예―이」
미키「앗, 제가 업고 갈 수 있을 지도」
타이치「응급처치는 못 하잖아」
미키「아―우」
나도 피에는 약하다.
타이치「뭐, 뭐어, 어떻게든 되겠지」
미키「…………」
아름다운 피.
친구를 구했다.
마음은 아프지 않았다.
이거라면 괜찮을지도 모른다.
우리들이 교내로 돌아가려는 때, 키리가 풀썩 주저앉는 모습이 보였다.
공포는 늦게 찾아온다. 언제나.
미키「우오오―, 욱씬욱씬거려요―」
타이치「참아, 지금 명의를 소환해 주지」
창문을 열고, 휘파람을 불었다.
컴 히어! 요코!
타이치「…………」
안 오네.
다시 휘파람을 불었다.
컴 히어! 요―코!
타이치「……………………」
어라아.
미키「엄청 찢어졌어요, 제 팔」
타이치「아와왓」
별 수 없지, 내가 할 수밖에.
소매를 걷는다.
상처가 난 부분을 본다.
타이치「으……」
역시 피의 향기는 어렵다.
빨래집게로 코를 막았다.
미키「그건?」
타이치「이거오 대어 (이걸로 됐어)」
미키「……설마 치료의 일환?」
멋대로 이해해 줬다.
으음……우선 물로…….
세면기의 물로 피를 씻어낸다.
일단 한숨 돌린다.
미키「……………………」
미키는 나를 관찰하듯이,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소독…….
미키「으갸―」
스며든 것 같다.
하나만 더.
미키「아갸―」
대충 다 됐다.
거즈.
붕대.
붕대 묶기.
소매를 내린다.
타이치「후우」
빨래집게는 이제 필요없다.
타이치「수술 종료」
미키「…………욱씬거려요, 상처가 저리는 것 같아요」
타이치「그건 사랑이야」
미키「이, 이것이 사랑?」
타이치「그것도 트루 러브. 호감도는 89%. 틀림없어」
미키「그렇구나―. 이게 사랑……」
타이치「사랑이 꽃핀 기분은 어때?」
미키「……모르겠어요. 사랑할 틈도 없는 인생이었죠」
타이치「큭, 그거 눈물나는데」
미키「그보다, 피에 약한 선배한테 이런 일까지 하게 해서 미안해요」
타이치「뭘. 의사도 없고, 상처는 위급했으니까. 잘 돌봐 줘」
미키「잘 돌보고 있어요……많이……」
타이치「그럼 됐어」
미키「뭔가 답례를 해야겠네요」
타이치「속옷 한 장만 줘」
미키「……우―오―, 비싸다……」
타이치「농담이야. 키리찡한테 죽을 걸」
미키「그 밖에 필요하신 물건은?」
타이치「음―, 퍼스트 키스는 이미 받았고」
미키「윽, 그랬죠……」
미키미키는 충격을 받았다.
타이치「추억으로 남겨 둬」
미키「싫어도 이 추억을 품고 살아가야 하는 나……」
미키「에로 이외에는 없나요?」
타이치「으―음……데이트……」
불쑥 말한다.
타이치「더블 데이트」
미키「어, 어떤 구성으로?」
타이치「아―, 나하고, 미키하고 키리찡」
미키「여자가 더블인 것 뿐이잖아요」
타이치「그리고, 날 두 사람만이 독차지해 줘」
미키「뭐, 그 정도로 괜찮으시다면」
타이치「괜찮겠어?」
미키「괜찮아요」
양손에 꽃이구나.
미키「……혼자였다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키리찡이 함께라면 일단 OK예요」
타이치「경계받고 있는 것 같네」
미키「그렇습니다―」
미키「선배는, 위험하니까요―」
타이치「하하하하하」
하지만 미키는 모른다.
내가 정말로 위험하단 것을.
충동.
때때로 뒤틀리는 몸.
난 그런 것들과 싸우고 있다.
타이치「미킷찌한테는 여러모로 신세만 지고 있네」
미키「?」
타이치「월요일에도 도와줬고……땡큐야」
미키「……음 뭐……별 일은」
타이치「키리찡 구할 때 움직임이 좋던데―. 다른 사람인줄 알았어」
타이치「정말로……」
몰라볼 정도로 민첩했다.
그런데 미키가 그렇게 빨랐었나?
나를 질질 끌어서 집까지 데려다 놓기도 했고.
그런 힘이 있었던가.
타이치「발차기도 날카로웠고……그러고 보면……」
고민한다.
뭔가 마음에 걸린다.
미키「저, 저기―」
타이치「응?」
미키「……쪽」
뺨에.
요코 이외의 사람에게 당한 것은 처음이었다.
미키「답례 선불이에요」
타이치「거, 거, 거스름돈까지 내놓으세요!」
난 미키에게 달려들었다.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미키「선배―!」
키리를 끌고, 미키가 나타났다.
타이치「여어」
미키「기다렸어?」
타이치「지금 막 왔슈!」
인사 대신으로 멋진 개그를 하는 우리들이었다.
미키「아니―, 설득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려서, 죄송해요」
키리「……설득이라……설득이라……」
키리는 불만 투성이었다.
미키「불타오르는 성욕」
불쑥 말했다.
키리「…………」
얌전해졌다.
키리는 어떤 약점을 잡힌 걸까.
타이치「그럼 어디 갈까?」
미키「산―!」
타이치「……산?」
미키「산 위에서, 세 명이 함께 길거리를 바라보는 데이트!」
타이치「피곤하겠는데. 괜찮긴 하지만」
미키「키리찡도 좋지?」
키리「……좋고 뭐고, 반항할 수도 없잖아」
미키「그럼 GO!」
미키는 오른팔을 내밀었다.
미키「자자, 팔짱 끼세요」
타이치「으, 응……」
그리고, 반대쪽 팔로 키리와 팔짱을 낀다.
키리「……네네」
세 사람이 어색하게 걷는다.
안 맞는 보폭.
어색한 분위기.
어긋난 박자.
그 무엇도, 우리들답기는 하다.
타이치「저기저기, 이런 건 내가 가운데에 와야 되는 거 아냐?」
미키「이걸로 됐어요」
키리와 눈이 마주친다.
흥.
외면당했다.
타이치「……뭐, 어때」
셋이 걷는다.
조금 걷기 어려웠지만, 열심히 노력했다.
미키「서두르지 않으면 해가 지겠네요」
타이치「빨리 가자」
미키「빨리, 빨리」
타이치「빨리, 빨리」
그리고.
타이치「다 왔다」
키리「하아―, 하아―, 하아―, 하아―」
키리는 지쳐 있었다.
미키「오―, 좋은 타이밍!」
미키는 아주 멀쩡했다.
팔팔한 아가씨다.
타이치「어두워지기 전에 도착한 건 좋지만, 어두워지기 전에 가야 되는데」
일단 타이치가방에는 회중전등도 들어 있지만.
미키「석양을 보고 싶었으니까 딱 좋아요」
미키「읏샤―!」
그리고 미키는, 양손에 꽃(하난 나)을 잡아당겼다.
타이치「읏샤」
키리「꺄악」
미키「제일 예쁠 때는 역시 지기 직전일까나―」
아직 30분 정도 남은 것 같다.
키리「……하아, 배 고파」
미키「뭐 먹을 건 없어요, 선배?」
타이치「있어」
건빵 남은 것을 꺼냈다.
미키「그 노련한 복서가 쓸 것 같은 가방, 뭐든지 들어 있나요?」
타이치「타이치가방이니까」
미키「목 말라요」
타이치「자」
수통.
미키「……괴, 굉장해」
갖고 싶은 것 같다.
타이치「비스킷 먹을래?」
요코가 만든 거다.
미키「네! 자, 키릿찌」
키리「으, 응……」
두 사람은 왕성하게 먹었다.
미키「이 비스킷……맛있네요」
키리「정말……부드럽고 달콤해……」
타이치「요코가 만든 비스킷이니까」
미키「사랑받고 있네요―」
타이치「편애받고 있는 거야」
고마움 지수보다 귀찮음 지수가 더 높다.
타이치「그래도 감시 카메라는 안 달아 줬으면 좋겠는데」
내 방.
이제 전기는 끊겼으니까 작동은 안되겠지만.
키리「……근데, 미키는 뭘 기다리는 거야?」
미키「석양이지?」
키리「이게 석양이잖아?」
타이치「미킷찌가 기다리고 있는 건, 여광이야」
키리「여광?」
타이치「해가 진 뒤에 말야, 하늘이 샛노란빛이 되잖아? 잔조라고도 하는데」
미키「그걸 셋이 같이 본다. 좋지 않나요?」
데이트랄까, 동아리 친목회 같은 느낌이다.
미키「냥니냐카냐카냐♪ 냥니냐카냐카♪」
키리「가슴 만지지 마」
뭐, 즐거워 보이니 됐지만.
타이치「……저기, 성욕이 불타오르는 키리찡」
키리「풉!!」
타이치「물 내뿜지 마」
키리「말한 거야!? 보여준 거야!?」
미키「안 보여줬어. 괜찮아 괜찮아」
대충 무슨 일인지는 상상이 됐다.
타이치「두 사람이 처음 부활동하러 온 날, 기억해?」
키리「……네, 일단은」
키리「그런 거, 잊으려고 해도 못 잊어요」
미키「들어가기 힘들었지」
타이치「……음―, 시험이 끝날 때까지는 좀. 적성검사가 있으니까」
자유롭게 입부할 수도 없었다.
희망은 받지만.
군죠는 학교 특성상, 대학식의 엘리베이터 체제다.
키리가 온 건 작년 여름.
미키는 조금 더 후였다.
둘 다 3학년으로 편입되었다.
건물 자체는 같아서, 그 무렵에도 다소 얼굴은 익히고 있었다.
미키「그 땐 재밌었지. 안 잊었어요」
키리「……재밌었나?」
타이치「두 사람에게 멋진 닉네임도 붙여 줬지. 내가」
미키「으―음, 시마 선배가 인모럴이고, 타이치 선배는 애귀족이었던가?」
잘 기억하고 있네.
미키「……애귀족이란 거, 선배 토크에서 자주 나오는 단어죠」
키리「애노예하고 애인형 등……최악이야」
키리「차라리 최악노예로 하면 어떠세요?」
타이치「으음……노예보다 더 최악이라니, 난 겁나게 밑바닥 인생이네」
미키「키리찡 독설―」
타이치「그리고 또, 사쿠라바가 말한 감의 종 설법도 기억 나?」
키리「……푸―――웁!?」
키리가 물을 내뿜었다.
기억하고 있는 것 같다.
미키「그러고 보니, 하나 질문이 있는데요」
미키「사쿠라바 선배 귀가 나쁜 건가요?」
타이치「응, 고막이 터졌으니까」
미키「네!?」
키리「……몰랐어요」
타이치「내가 그랬어」
키리가 눈살을 찌푸렸다.
키리「장난이 심하네요」
타이치「뭐 들어 봐. 원인은 그 녀석이야」
타이치「……내가 아래 학년일 때……음―, 2학년 정도였나. 학원제가 있었어」
미키「지금은 없죠?」
타이치「여러모로 문제를 일으켰으니까」
타이치「그 때도 뭐 규모는 아담했지. 역시 유의식자 수가 적으니까 말야」
※유의식=희노애락, 감정을 가진 상태
미키「……」
키리「……」
타이치「그래서, 역시 기본적으로는 인근 주민들의 도움은 필요했어. 이런 학교에도」
타이치「학원제라고는 해도, 모르는 사람들이 막 몰려오면 불안해지는 녀석들도 많아서, 의논 끝에 연극을 하기로 했어」
타이치「그 때는……셰익스피어였지. 제목은―――」
키리「로미오와 줄리엣」
타이치「……정답」
그랬지.
미키「꽝이네요―」
타이치「음. 이미 광수였지」
키리「……네?」
미키「꽝을 의인화……」
키리「……아아, 그런 뜻……」
타이치「후후후. 미키, 나이스 설명」
미키「아님다」
타이치「결심했다. 앞으로 내 개그를 내가 설명하는 건, 죽을 때뿐이야」
키리「……어느 영화에서 본 대사같아」
타이치「뭐, 어쨌든 셰익스피어였지. 일본명으로 하면……훗, 흔드는 창 정도려나」
미키는 몸서리쳤다.
미키「……방향을 틀려는 의지가 눈꼽만큼도 안 느껴져!」
내 올곧음의 포로가 또 한 명.
타이치「노 트위스트 주의」
난 노련한 복서처럼, 주홍빛 하늘을 바라보았다.
키리「스펠링 맞으려나?」
미키「글쎄?」
타이치「배역을 맞춰 봐!」
미키「……선배가 로미오, 일까나?」
키리「다른 사람들은……그 때 누가 있었는지도 모르고……」
타이치「요코가 바로 윗학년이었어」
미키「그럼, 하세쿠라 선배가 줄리엣」
타이치「땡. 그 반대」
미키「……반전극?」
타이치「그래. 뭐 그 때는 체격도 비슷비슷했으니까, 누가 뭘 해도 괜찮았지」
타이치「그리고 뭐―, 나머지는 연극을 할 만큼 안정되지 않았으니까, 모든 역을 나하고 요코가 했어」
키리「우와……」
미키「그거……학원제 맞나요?」
타이치「뭐, 체면치레지」
타이치「연극 자체는 대성공이었어. 특히 박진감 넘치는 키스가……그 자식……사람들 앞에서……」
키리「이, 이 사람 울고 있어……」
미키「왜 그러세요?」
타이치「제기랄! 그 당시의 나한테는, 아직 노출증 같은 건 없었는데!!」
미키「지금은 있는 거냐……」
타이치「어쨌든, 키스를 나누는 두 사람의 입에서 줄줄 침이 흘러도,
타이치「히로인 역을 맡은 내가 도망치려고 바둥거리고 있는데 주인공이 서브 미션을 굳혀와도,
타이치「치마 밑에서 집요하게 엉덩이를 만져도, 누구 하나 눈치채지 못하는 게 연극의 마력이지.
타이치「연극은 대성공이었어. 난 속옷을 갈아입었지」
키리「……싫어…………」
타이치「그 때 신캐릭터, 사쿠라바 등장~!」
미키「나왔다」
타이치「녀석은 본능에 충실한 남자, 아니, 지나치게 충실한 남자였어」
타이치「사쿠라바는 연극을 보러 왔지. 그리고 한 눈에 반했어」
키리「하세쿠라 선배한테……」
타이치「아니, 나한테」
미키「……」
키리「……」
두 사람「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엣!!」
고막 찢어질 뻔했다.
미키「에―에―, 사쿠라바 선배가 타이치 선배한테―!?」
키리「저기, 그럼 사쿠라바 선배가 여자에게 전혀 흥미가 없다는 소문은?」
미키「꺄아―――! 어떻게 된 걸까―!」
키리「와, 와아앗―」
미키「꺄―꺄―!」
시끄럽긴…….
두 사람「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타이치「묘하게 어우러지는 하모니가 좀 거슬리는데」
타이치「……뭐 어쨌든. 사쿠라바는 그대로 마이웨이 강행. 무대 가장자리에 바로 나타났어. 화단에 심어져 있던 교장의 꽃을 제멋대로 따와서 말야」
타이치「난 놀랐지. 만나고 나서 고백까지 3초. 빨라, 너무 빨랐어」
두 사람이 숨을 죽이고 있다.
……뭐랄까 얘기하기 싫어지는데.
타이치「불행하게도, 그 자리에 요코는 없었어」
타이치「하지만 나는 냉정했지. 왜냐면 난 남자. 사쿠라바의 사랑을 육체적으로 받아들이기에는 내 구멍도 좀 빡센 것 같았어(어른의 조크)」
타이치「그래서 난 내 심볼을 노출함과 함께, 남자라는 것을 증명해 줬지. 이걸 심볼리즘이라고 해」
미키「……거짓말이네」
키리「응, 거짓말」
미키「개그 시시하네」
키리「응, 그래도 참자. 얘기는 재밌는걸」
타이치「……울어도 돼?」
타이치「하지만 사쿠라바는 멈추지 않았어」
사쿠라바『남자라도 괜찮아』
타이치「그리고 그 녀석은 바로 날 덮쳤어. 실은 나에겐, 녀석을 받아들일 수도 있는 구멍이 하나 있었던 거야(어른의 조크)」
미키「우오―――!」
키리「그, 그거……」
즐거워 보이는데 이봐.
타이치「그래서, 내 정조를 지키기 위해 난 손바닥을 휘둘렀어. 그게 녀석의 귀에 맞아서……뭐 좀 다치게 해버린 거야」
미키「아아, 그래서 귀가 좀……」
타이치「나중에 아버지하고 같이 사과하러 왔지. 어쨌든 강간미수니까. 뭐 내 책임은 안 물었어」
타이치「원래부터 사람 말을 안 듣는 녀석이지만, 그거 때문에 더 심해진 것 같아」
타이치「그 뒤에, 사쿠라바가 병원에 옮겨지고……그 날은 일단 그걸로 끝났지만」
타이치「진학해 보니, 같은 반에 녀석이 있었어……」
키리「따라온 건가요?」
타이치「아마……」
미키「그래서, 그 뒤에 두 사람은?」
타이치「아무 일도 없었어! 뭐랄까, 녀석도 별로 내 전각 애스터리스크를 어떻게 할 생각은 없던 것 같아」
※전각 애스터리스크(asterisk)=『*』←이거
미키「플라토닉ㆍ러……」
타이치「스톱」
머리를 움켜쥔다.
타이치「솔직히, 난감함 이외엔 어떤 감정도 없어」
미키「그래서 괴롭히게 된 거군요」
타이치「……그렇게라도 안 하면 어쩌라고」
타이치「게다가 그 녀석, 그냥 놔두면 나한테 이상하게 친절해진단 말야」
닭살이 돋을 것 같았다.
타이치「그런 건 혼자서나 작작……아니, 내가 원하는 건 평범한 인간관계란 말야―, 라고 석양에 외치고 싶은 청소년기야. 자, 끝. 재밌었어?」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끄덕.
미키「엄청, 재밌었어요」
타이치「……미사토 선배도 토오코도 이 얘기를 들을 땐 눈에 쌍심지를 켰지……여자들이란……」
미키「꺄―꺄―」
키리「꺄―꺄―」
이미 두 사람은 꺄―꺄―로 대화하고 있었다.
노란 목소리.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다.
결국, 전원에게 얘기해버렸다.
타이치「……있잖아 미키, 이러는 사이에 슬슬 시간 된 것 같아」
미키「에……아」
저문 해. 그 빛만이 하늘을 뒤덮고.
아지랑이처럼 하늘의 하반신을 붉히고 있었다.
미키「……………………」
타이치「헤에」
굉장한데.
사람이 없어도 세계는 돌아가고 있구나.
키리「……우와아」
압도적이다.
아무 말 없이, 세 사람은 그 경치에 빠져들었다.
잠시 후.
미키「……아하」
엉뚱한 그 목소리는, 웃고 있는 것 같았지만―――
미키「아하, 하하하하하하」
울고 있었다.
우리들의 팔을, 세게 잡아당기며.
미키「아하하하, 히잉, 아핫……아하……으, 으흑……」
키리「미키, 왜 그래?」
미키「예쁘……네……예뻐……으아아아앙……」
타이치「……미키」
우리들은, 미키가 울고 있는 이유조차 모른 채.
그저 난처해할 뿐.
미키「예쁘네, 예뻐……하핫, 히잉, 하…………」
울먹이는 목소리의 배웅을 받으며, 여광의 잔상은 지평선 너머로 사라져갔다.
미키「으아아아아아앙―――」
그저 흐느껴 울뿐이었다.

키리「괜찮아?」
미키「……응……괜찮아……」
미키의 눈물을 닦은 것은, 키리의 손수건이었다.
찰싹 붙어 있는 두 사람.
끼어들 여지는 없다.
난 회중전등으로 앞길을 비춘다.
왜 미키는 여기에 오고 싶어했던 걸까.
왜 세 명이었을까.
왜, 울었던 걸까.
……미키도 여러가지 문제가 있는 게 틀림없다.
뭐, 프라이버시는 너무 신경쓰지 말자.
그러고 보니, 여기는 사당 근처였지.
잠깐 보고 갈까.
타이치「키리, 잠깐 나 들를 데가 있어서……」
회중전등을 건네준다.
타이치「그럼 내일 봐」
키리「어……아, 잠깐」
미키「아, 그쪽은……위험……」
그리고 난.
타이치「겨우 왔네」
그런 힘빠진 말로, 난 감격을 나타냈다.
타이치「꺅―」
발목이 꺾였다. 휘청거리기 시작한다.
순간적으로 벨트에 장착된 루팡ㆍ와이어를 빼내 나뭇가지에 감았다……면 좋았을 테지만, 아쉽게도 평범하게 넘어졌다.
이럴 땐 순순히 넘어지는 게 낫다.
쓰러지는 몸.
타이치「……응?」
지면을 차분히 보니.
발자국.
사당 앞에서 끊어지지 않은 일직선으로, 푹 패인 발자국이 찍혀 있다.
몇십 년을 왕복해야 이렇게 되는 걸까.
발자국을 조사해 본다.
사이즈는 270 정도.
나와 같다.
메이커도 비슷.
타이치「…………」
나와 같은 신발.
토모키 신발은 아니다.
사쿠라바도 아니다.
여자 중에도 270은 없을 것이다.
전원의 신체 데이터를 파악하고 있는 나니까 틀림은 없다.
기억상실에 걸린 나, 또는 내 신발을 신은 누군가가 남긴 발자국이란 말이 된다.
하지만, 사당에 무슨 볼일이 있었을까.
사고에 몰두하려 한 순간―――
타이치「……!」
피냄새가 났다.
희미한 냄새.
거기에 끌리듯, 수풀 속을 헤치고 들어갔다.
바로 위험신호가 울렸다.
타이치가방에서 나이프를 꺼냈다.
크리스 리브의 대형 나이프다.
굳이 말하자면 단검에 가깝다.
물론 휴대는 범죄지만.
범죄라는 개념은 이미 사라졌다.
나에게도 역시 소지는 금지되고 있다.
하지만.
인정받지는 않겠지만, 몸을 지키기 위해 난 이것을 필요로 하고 있다.
사람에게 공격받는 공포를 알고 있으니까.
귀를 기울인다.
감각을 날카롭게 간다.
천천히 걷는다.
찾는 것은 위화감.
있다.
내 눈은 위화감을 놓치지 않는다.
신중하게 우회해, 목표에 다가간다.
……보우 트랩.
소형 크로스보우가 설치되어 있다.
안에 들어가려 하면 작동되는 것이다.
미작동.
이런 짓을 할 거라 짐작되는 건 한 사람밖에 없다.
와이어를 끊고, 크로스보우에서 화살을 빼낸다.
상당히 신중하게 은폐되어 있었다.
설치한 장소도 적당하다.
돌받침대가 살짝 보이는 위치다.
사당에 주의를 팔고 있으면, 죽게 되는 것이다.
은밀하고, 확실함을 추구한 함정.
어디 안쪽을 확인해 보죠, 요코 선생님.
조금 더 나아가자, 와이어 트랩이 설치되어 있엇다.
스네어다. 다리가 걸리면, 머리 위에서 돌이 떨어진다.
파괴.
위험신호가 약해졌다.
이제 없는 것 같다.
그래도 조심조심 나아간다.
마지막 수풀을 걷어내자, 마치 숨겨져 있듯이, 요코가 죽어 있었다.
타이치「……………………」
이 감정을 어떻게 형용해야 좋을까.
경악과는 다르다.
분노와도 다르다.
슬픔도, 비탄도 아니다.
형용 불가능한 감정.
내 마음 속에서 휘몰아친다.
요코가, 죽었다.
가슴을 중심으로 피가 퍼져 있다.
오래된 피다.
응고되고 변색되어, 거무튀튀하다.
만진다. 차갑다.
사후 수일. 이미 몸은 경직되어 있었다.
하지만 부패하지는 않았다.
그것도 기묘한 이야기지만……뭐 아무렴 어때.
타이치「……요코, 죽어버렸네」
아름다운 시체에, 말을 건다.
죽음과는 가장 거리가 먼 요코였는데.
머리카락을 다듬어 준다.
타이치「방심했구나」
하지만 대답은 없다.
내가 말을 건네면, 언제나 작은 동물처럼 기뻐했다.
항상 차갑게 대했는데도.
작은 토끼처럼.
……사실은, 사자도 이리도 될 수 있는 그녀였다.
타이치「깜짝 놀랐어」
시야가 흐려진다.
타이치「……응?」
눈가에 손을 가져가자.
눈물.
대량의.
슬픔은 없다.
그저 얼굴 근육만이 일그러져, 눈물을 짜내고 있었다.
한없이.
타이치「우와, 굉장한데……펑펑 나온다」
신기하다.
육체는 슬퍼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마음은…….
아아.
내 반신이 죽었다.
키리「……선배……당신……」
키리!!
미키「……」
미키도.
순간적으로 나이프를……숨겼지만 의미가 없었다.
이미 들켰다.
그리고……오해받겠지.
키리「살……인자……역시……」
역시.
키리「죽인 건가요?」
타이치「……아냐」
키리「하지만, 나이프 가지고 계시잖아요……」
타이치「수풀 속으로 들어가서 꺼냈을 뿐이야」
타이치「자, 요코의 상처를 봐. 화살이야」
키리「……안 가겠어요……그 쪽으론」
항상 멀리서.
키리는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방심하지는 않겠다는 것 같다.
키리「……방금 전까지……웃으며 얘기했는데……뒤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 짓을……」
내뱉어낸다.
키리「미쳤어」
미키「…………선배」
미키도 충격을 받은 것 같다.
무상한 듯한, 깊은 고민에 빠진 듯한. 그런 얼굴이다.
키리「가자, 미키」
미키「아, 응……」
두 사람은 떠나갔다.
남겨진 나.
타이치「내가 아닌데」
아무래도 상관없지, 이젠.
요코가 죽었다.
의외로, 난 그 사실에 충격을 많이 받았던 것 같다.
사고는 흐려지고, 좀처럼 냉철함을 되찾아주지 않았다.
그것이 나의, 요코에 대한 통곡이었다.

몇 시간 후, 난 귀가했다.
집 앞에는, 토모키가 보낸 식료품이 놓여 있었다.
타이치「……」
요코를 화장했다.
부패하지 않는다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묻었다.
무덤은 만들지 않았다.
죽음은 무(無)이기 때문이다.
입장이 반대라면, 요코는 어떻게 했을까.
내가 누군가에게 죽는다면.
타이치「……」
우선 범인을 찾아 살해할 것이다.
모두 다 죽여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난 그녀를 위해, 그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다.
내가 되고 싶은 건……복수에 미친 악령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음은 아직 들썩거리고 있다.
그래, 일기를 쓰자.
종이에다.
타이치「응?」
밖에서 부스럭 소리.
양초를 끈다.
창가로.
밖을 본다.
집 앞 도로를 누군가 걷고 있었다.
……키리.
짐을 가지고 있었다.
뭐, 상관할 이유는 없지만.
책상으로 돌아온다.
펜을 쥔다.

토오코의 모습은 없었다.
오늘도.
학교에 올 이유도 없다. 당연한 건가.
조금 아쉽다.
잠시 내 자리에 앉아본다.
잠시, 추억에 잠겨 본다.

미키에게 말을 건 것은 내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미키는 원래 학교에서 쫓겨나, 군죠에 보내진 러블리한 어린양이었다.
첫날.
미키는 점심이란 것을 가져오지 않았던……것 같다.
그 정보를 미키와 같은 반이 된 미유키를 통해 획득하고는, 즉시 행동에 나섰다.
우연을 가장한 만남 이벤트를 설정하기 위해서였다.
주변 주민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게 닫힌 정문 앞.
미키는 거기서 꼼짝 못하고 있었다.
타이치「하―이!」
미키「……어?」
타이치「아가씨, 귀엽네. 무슨 일이야? 난처해 보이는데?」
슈―욱, 슈―욱
미키「저, 저기……아뇨……」
타이치「응? 모르는 게 있으면, 군죠의 국어사전이라 불린 쿠로스군한테 뭐든지 물어 봐. 동의어를 잔뜩 가르쳐 줄게. 그 의미까지는 모르지만 말야」
슈―욱, 슈―욱
미키「저기……그럼 하나만」
타이치「OK」
미키「왜 방독면을 쓰고 계세요?」
타이치「패션이지!」
왠지 모르게 맨얼굴은 보여주고 싶지 않다.
일종의 추남 콤플렉스려나.
미키「머리, 하얗네요」
타이치「물들였어」
슈―욱, 슈―욱
타이치「그런 것보다, 좀 더 걱정되는 건 없어?」
미키「문이 닫혀서……점심을 사러 못 가겠는데요」
타이치「흠. 예전 학교에서는?」
미키「급식이었어요」
타이치「신데렐라 걸, 아쉽지만 이곳의 문은 안 열려」
타이치「학생은 수업시간 중엔 밖에 나가면 안 돼」
미키「어……그치만……학생식당에 가봤더니 전부 품절이던데」
타이치「다들 본능이 강하니까. 빠른 사람이 이기는 거야」
미키「……그런가요……감사합니다」
교내로 돌아간다.
타이치「잠깐만 기다려봐」
슈―욱, 슈―욱
타이치「여기 유통기한은 조금 의심되지만 맛있는 빵이 있는데, 어때? 나하고 같이 먹지 않을래?」
미키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미키「……아뇨, 그렇게까진」
타이치「사양은 필요없어. 마음껏 응석부려도 돼」
미키「처음 보는 사람한테 응석부릴 순 없어요……저기, 정말로 괜찮아요……감사합니다」
타이치「에이, 점심 빼먹으면 오후가 힘들어지잖아」
미키「죄송합니다」
명확한 거절.
타이치「……OK. 그럼 이렇게 하지. 먹을 걸 줄 테니까 대신 다른 걸 줘」
미키「…………」
어떻게 도망칠까 고민하는 듯이 보인다.
결국은 단념했다.
미키「다른 거?」
타이치「응. 네 팬티」
떠나간다.
타이치「농담농담!」
미키「저기……저, 혹시 놀림당하고 있나요?」
타이치「내가 놀고 싶은 것뿐이야」
미키「바보가 된 것 같아요……」
타이치「괜찮아. 나도 바보니까」
슈―욱, 슈―욱
미키「……팬티를 다른 사람한테 줄 생각 같은 건 없어요」
타이치「그럼 뭐든지 좋으니까 아무거나 나한테 시켜 봐」
미키「정말로 뭐든 괜찮아요?」
타이치「응」
눈동자가 도전적으로 빛난다.
미키「평생동안 제 뒷치닥거리를 해 줘, 라던가」
타이치「애노예라. 바라던 바야」
가슴이 두근.
미키「역시 방금 거 취소. 대신에 네 발로 걸으면서 개……꺅!?」
『개』라는 단어가 나온 시점에서 이미 완료.
타이치「멍!」
미키「……잠깐, 이것도 취소! 으음, 으음……」
터무니없는 주문으로 쫓아버릴 생각이었던 것 같다.
뭘 모르는군.
이 정도로는, 난 좋아할 뿐이야.
미키의 얼굴이 자신감을 되찾는다.
미키「그럼 그 방독면, 벗어 보세요」
타이치「이거 말이지……으―음」
곤란하네.
내 첫인상은 꽤 불쾌할 텐데.
어쩔 수 없지.
방독면을 벗는다.
타이치「……자」
미키「……………………」
타이치「필터를 뺀 공기는 맛있구나」
미키「천연이네요, 그 머리」
타이치「응」
미키「눈……렌즈 넣었어요?」
타이치「신체적인 결함으로, 홍채가 보통 사람하고 조금 달라」
타이치「……각도를 바꿔서 보면 빛나지?」
미키「네……」
조금 떨고 있다.
눈은 감정을 품고 있다.
보통 사람과 다르면, 불쾌해 보인다.
타이치「……기분 나쁘겠지. 미안해」
미키「아뇨, 별로……」
타이치「이거 때문에, 여러모로 힘든 꼴을 당했어」
담담한 분위기.
타이치「하지만 미소녀와 점심을 같이 먹으면, 분명 이 상처도 치유될 텐데―」
그렇게 말하며, 은근슬쩍 주저앉아 미니스커트 안쪽을 엿본다.
미키「꺄아아앗!?」
타이치「칫. 빠른데」
미키「뭐, 뭐죠……당신은……」
타이치「난 군죠학원의 일영사전이라 불린 현학적인 남자야」
타이치「하지만 조금 밝히는 게 옥에 티」
미키「…………」
잠시 후.
미키「풋」
살짝 웃으며.
미키「……이상한 사람」
타이치「정확한 평가야. 자 어쩔래? 팬티냐, 밥이냐」
미키「즉……전 지금 헌팅당하고 있는 건가요?」
타이치「응―응―」
미키「처음이에요, 그런 건」
타이치「너라면 딱 좋아……5살부터 내 사정거리 안에 포함되지」
미키「변태 아저씨네요」
타이치「그렇슴다」
타이치「그래, 어때, 같이 점심?」
미키「……그럼 저 문을 넘어가서 그 맛있는 빵을 산 가게에서 한 봉지 더 사오세요. 그러면 같이 먹어드리죠」
타이치「알았어」
난 문을 타고 넘기 시작했다.
몇 미터는 된다.
금세 경비원들이 달려나왔다.
하지만, 내가 문을 넘는 게 더 빠르다. 착지.
미키「익!?」
타자키 상점으로.
사고,
돌아왔다.
경비원 몇 명이 학교 밖에서 날 찾아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들을 돌파해, 다시 문을 넘는다.
기동성이 뒤떨어지는 경비원들은, 문을 열 수밖에 없다.
그 녀석들을 무시하고, 미키를 찾는다.
……없네.
교실로 간 걸까.
1학년 교실로 대쉬.
타이치「자 어때, 사 왔다!」
키리「이것도 맛있어」
미키「……고마워―」
타이치「크아아아아아아아악!!」
먹고 있다.
미키「아……방금 전의 변태 아저씨」
키리「……윽, 지난번의 변태」
타이치「저기요」
미키「진짜로 사 올 줄은 몰랐어요……」
타이치「농담은 진지하게가 내 모토야」
키리가 미키를 등 뒤에 감춘다.
키리「또 치마 들추기인가요, 선배?」
타이치「음……지난번의 킥 소녀……난 그저 그 애에게 점심을 사 주려는 것뿐이야」
키리「이젠 필요없어요」
타이치「뭐라?」
키리「제가 잘 챙겨줄 수 있어요. 선배는 관계 없어요」
큭, 정의로운 척하며 실력행사를 하다니……미국이냐 넌!
미키「아, 배도 이제 꽉 찼어요」
타이치「에―――ㅅ!?」
미키「……미안해요」
키리「됐어, 이런 사람한테 사과 안 해도」
미키「어―, 그치만……」
키리「이 학교에서 제일 나쁜 사람이니까」
타이치「……이봐이봐. 그건 아냐」
난 별로 안 나쁜데.
일부러 쿨한 척을 해서 사람들이 다가오기 어렵게 하는 것도 아니고.
언제나 진심.
타이치「……」
쿨한 이미지가 더 나았으려나.
……실수.
타이치「그럼 이 빵은 어쩔 거야?」
미키「……돈 드릴까요?」
키리「우와, 쫀쫀해」
타이치「큭……내가 먼저 말 걸었는데」
타이치「이렇게 되면 억지로라도 여기서 먹어주지!」
난 두 명에게 가까이 다가가 앉았다.
키리「뭐, 뭐하시는 거예요!?」
미키「꺅, 잠깐」
타이치「아―맛있다맛있다. 고기는 상하기 직전이 제일 맛있지만, 상하기 직전의 빵도 의외로 맛있구나―!」
키리「저리 가세요!」
미키「꺅, 잠깐, 아하하……힘들어요」
쓴웃음.
그래도, 그렇게 싫은 것 같진 않다.
타이치「맛있다맛있어, 아, 그 반찬 맛있어 보이네!」
키리「안돼―! 내 도시락!」
타이치「뭐 어때서―!」
말싸움 개시.
미키「아하하하하……뭘까나」
우리들이 말싸움하는 것을, 미키는 복잡한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타이치「으……」
눈을 뜬다.
책상에 엎드려서 잔 것 같다.
꿈을 꾸었다.
그리워야 할 꿈.
하지만 기분은 우울해진다.
결국 사람은,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고 있다.
타인과 접함으로 인해 생기는, 여러 욕망 속에서.
흐른 땀을 식히러, 옥상으로 항한다.
안테나가 설치된 곳.
미미 선배는 없다.
다친 것 때문일까.
그녀의 부활동은, 중단되어버렸다.
안테나 밑에는, 기재와 공구 등이 놓여져 있다.
노트가 있다.
본다.
타이치「……………………」
역시.
여러모로 고생하면서 해온 것이다.
SOS라.
안테나를 세워 SOS. 이걸로 끝.
미미 선배다운, 멋진 계획이었다.
미미 선배 혼자라면……못 끝낼 작업량으로 보인다.
도면에 붉은 선이 그어져 있다.
『못 올라가겠어~ (눈물)』
하핫. 역시.
어쩔 수 없지.
사다리를 세워, 그 위로 올라간다.
타이치「여기를……이렇게?」
마무리를 했다.
타이치「좋았어」
타이치「그리고, 다음은……」
도면으로 시선을 떨군다.
『모르는 부분 (눈물)』
『보류예요 (눈물)』
『여기 실수 (눈물)』
『??? (눈물)』
『틀렸을지도……나중에 확인 (눈물)』
『와이어 끊어짐, 대용품을 찾아야……(눈물)』
『(눈물)』
『(눈물)』
『(눈물)』
울기만 하면 어쩌시게요.
타이치「……미미 선배……」
안테나를 본다.
방송국……이라.
SOS의 효과는 둘째치고.
모두 함께 방송을 한다는 것이, 묘하게 가슴을 저리게 했다.
너무나 건전하기 때문에.
건전함과는 정반대에 위치해 있는 우리들의 대치선에 접하려는 것이다.
이렇게.
나는『부활동』을 시작했다.
작업은 계속된다.
미키와 키리는 좀처럼 안 나타난다.
……당연하다.
오히려, 평소대로 학교에 와 있는 내가 이상하겠지.
그런데 선배는 왜 안 올까.
잠시 쉬기로 한다.
점심……토모키가 보낸 식료품에서 컵라면을 가져 왔다.
옥상에서 물을 끓이며, 오이를 베어물었다.
……뭐랄까, 상상하고 있던 부활동과 다르다.
잊고 있었다.
인류가 이미 사라져버렸다는 것을.
우리들 여덟 명뿐인 세계. 아니, 이제는 일곱 명.
바람 앞의 등불과 같았다.
컵라면에 끓인 물을 붓는다.
먹는다.
미사토「……아아, 페케군」
선배가 왔다.
타이치「안녕하세요. 늦으셨네요」
미사토「네……」
우울해 보였다.
안경도 흐려져 있다.
타이치「쇼킹한 사건이 있었나 보네요」
미사토「네에, 무척」
내 옆에 철푸덕 앉아, 멍하게 하늘을 바라본다.
타이치「……한번 편하게 말해보세요」
미사토「토모키하고 싸워버렸어요」
타이치「하아, 토모키군요. 저도 자주 그래요」
선배는 쓸쓸해 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미사토「그런 싸움하고는 좀 다른 싸움이에요」
타이치「복잡한 가정관계라는 거군요. 먹을래요?」
선배는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미사토「……그래도 하나밖에 없는 남맨데……아무래도 잘 안 되네요」
타이치「토모키는 그래봬도 고집이 세니까요」
미사토「……원인은 저한테 있어요」
말없이 다음을 기다린다.
미사토「저, 잔소리가 많으니까요」
타이치「그런가요?」
미사토「……제가 나쁜 거예요」
자조하며, 앞머리를 쓰다듬었다.
타이치「그럼, 저하고 같네요」
미사토「……그런가요?」
타이치「저도 엄청 나쁜 놈이에요. 그래서 여기에 있는 거지만」
미사토「……후후, 그럼 정학이네요」
타이치「선배와 함께라면」
미사토「그럼 같이 정학 먹고, 나쁜 일을 해볼까요?」
선배는 어린아이처럼 배시시 웃었다.
타이치「좋네요―, 나쁜 일―」
철문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열렸다.
키리「선배, 그 녀석한테서 떨어지세요!!」
키리는 무장하고 있었다.
물론, 물총은 아니다.
미사토「……호에?」
키리「미야스미 선배, 빨리 그 녀석한테서 떨어지세요!」
미사토「네? 그 녀석이라면……페케군? 이런, 상급생한테 그 녀석이라뇨……휴학감이에요」
키리「위험해요, 빨리!」
타이치「…………」
미사토「그 물총은……워터 보우건인가요?」
타이치「진짜예요, 어라」
미사토「후우」
기절했다.
타이치「빠르닷」
타이치「네 탓이야」
키리「……쿠로스 타이치」
키리는 나를 겨눴다.
타이치「또 발끈하기는, 무슨 일이야?」
키리「……키리하라 선배도, 죽였어!」
타이치「!?」
토오코가.
타이치「잠깐, 그 말은……」
키리「선배를 보러 갔더니, 죽어 있었어……당신이 죽인 거예요!」
타이치「난 몰라! 진짜야? 진짜로 토오코가 죽었어?」
키리「하세쿠라 선배, 키리하라 선배……다음은 누구죠?」
타이치「어떻게 죽어 있었어?」
키리「……알고 있는 주제에」
타이치「상처는? 장소는?」
키리「키리하라 선배 집이에요. 자기 방에서」
키리「가슴을 커다란 칼날에 찔린 채……」
키리「범인은 당신이에요, 뻔하죠」
사고의 두절―――
요코의 죽음, 그리고 나의 존재가 키리를 혼란시키고 있었다.
동시에 흥분해 있었다.
설득은 무의미하겠지.
……크로스보우는 위협용으로는 약하다.
연사가 어렵기 때문이다.
빗나가면 끝.
뛰고 있는 사람에게는, 그렇게 잘 맞지도 않는다.
키리를 제압하는 건 간단하지만.
타이치「할 수밖에 없나……」
이런 식의 전재는, 별로 안 좋은데.
키리의 오발을 유도하기 위해, 하반신에 힘을 모았다.
미키「키리찡, 안된다니까!」
미키가 등 뒤에서 키리를 껴안았다.
키리「……아」
화살이 나갔다.
타이치「윽!?」
화살은 30센티 정도 옆으로 스쳐갔다.
등 뒤, 용구를 놓아두는 컨테이너 벽에 꽃혔다.
미키「그러면 안돼」
키리「그치만!」
타이치「……미키, 살려준 건 고맙지만, 좀 더 조심스럽게……」
미키「아, 죄송함다」
키리「오지 마!」
가까이 다가가, 키리의 멱살을 잡는다.
타이치「아무 짓도 안 해!」
타이치「……확 날려버리고 싶지만」
놓는다.
키리는 엉덩방아를 찧는다.
키리「……살인자!」
타이치「앙?」
미키「그만 해 둘 다, 웃는 거다」
키리「살인자! 다음은 누굴 죽일 거야!?」
타이치「……키리, 너……그게 네 단점이야. 애초부터 토오코가 죽었단 것도, 난 방금 알았어. 어떻게 그게 자연스럽게 내가 한 게 되는 거야」
키리「……그럼 또 누가 있다는 거야!」
타이치「……제1발견자인 너라던지」
키리는 눈썹을
키리「내가 그랬을 리가 없어……그런 짓을 할 수 있는 건, 이미 정신이 나간 당신뿐이야!」
키리「죽어, 죽어버려! 그렇게 사람을 죽이고 싶으면 자기를 죽여! 싸이코! 지옥에나 떨어져! 여덟 명밖에 없는……이 세계에서……미쳤어!!」
키리「죽어, 죽어버려! 살인자! ……사람도 아냐!」
차마 들어줄 수 없는 잡음.
그만 맥이 빠진다.
타이치「……아름답지 않아」
평소의 키리를 녹슨 나이프라 한다면.
지금은……물러빠진 통나무 정도일까.
정밀함이 없다.
섬세함이 없다.
키리, 언제부터 그렇게 꼴불견이 됐니.
타이치「…………」
흥미가 사라지잖아.
키리「……그 눈……인간의 눈이 아냐」
눈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이건 공격인가.
공격이네.
스위치를 눌러도 될까.
되겠지 뭐.
……적이라면.
키리를 본다.
없애버릴까?―――
키리「힉……」
『읽은』것 같다. 좋은 안목이야.
순간적으로 창백해진다.
인간은 간단하게 죽는다.
찌를 필요도 없다.
이런 가느다란 목이라면, 간단하게―――
미키「자자―, 거기까지―! 빠밤―!」
미키가 키리의 치마를 들췄다.
키리「꺄앗―――!!」
타이치「……오」
번뇌 각성.
타이치「스트라이프!」
공이 오는 궤도를 정확히 파악하고 우쭐대는 심판의 표정으로, 나는 외쳤다.
타이치「배터 아웃!!」
타이치「후우, 역시 속옷은 스트라이프지」
미키「아―, 돌아왔다 돌아왔다―, 와―아」
키리「……잠깐……무슨 짓이야……바보」
미키「그치만, 선배도 화나 있었고, 키리찡도 이상해서 말야」
미키「그래서 말렸을 뿐이야?」
타이치「음, 난 이만 가야겠다. 토오코가 죽었다는 현장을 잠깐 조사하고 올게」
미키「네, 이쪽의 줄무니 팬티 소녀는 저한테 맡기세요」
타이치「부탁한다」
옥상을 내려갔다.

토오코의 집.
아니……저택.
안에 들어가자, 어두컴컴했다.
창문은 막혀 있다.
회중전등을 꺼내, 토오코의 방으로 간다.
옛날에 몇 번 온 적이 있다.
아버지께 소개당할 뻔했지.
……도망쳤지만.
2층.
방을 하나하나 확인한다.
분명히 이 쯤에…….
무수히 많은 문 하나를 열자.
빛이 반짝였다.
타이치「……………………」
창문은 열려 있었다.
슬그머니 들어온 바람이, 방 안을 돌아 나간다.
그래서일까.
썩은 냄새는 나지 않았다.
타이치「……토오코」
가슴에 칼이 꽃혀 있다.
분명히 타살체다.
칼은 이 저택에 있던 물건인가.
화려한 무늬로 치장된, 장식용으로 보이는 단검이다.
출혈은 있다.
가슴팍에서 시트까지 흥건히 적혀, 검붉게 변색되어 있었다.
하지만.
아름다운 시체였다.
토오코다운, 고고한 시체라고 생각했다.
타이치「…………」
나는 잠시 동안, 그곳에 우뚝 서 있었다.
심장과 함께 시간까지 멎어버린 걸까.
토오코는 마치 정지해버린 것 같았다.
단검을 뽑으면, 당장이라도 일어나 내 무례를 따질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었다.

……누가 죽였을까.
유감이지만, 용의자는 손으로 셀 수 있을 정도다.
키리.
미키.
토모키
사쿠라바.
미미 선배.
그 밖에 숨어 있는 인간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이걸로 전원.
우선 키리.
아닐 것 같다.
제1발견자이긴 하지만.
생각하기 어렵다.
키리의 분노는 진심이었고, 혼란 또한 진실했다.
미키.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동기를 모르겠다.
이미 알리바이 같은 건 의미가 없으므로, 미키가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확실히 알 방법은 없다.
애석하지만, 용의자①.
토모키.
용의자②.
역시 동기는 불명.
사쿠라바.
용의자③. 이하 동문.
미미 선배.
용의자④. 이하 동문.
타이치「으―음」
단서는 거의 없다.
그럴듯한 사람도 동기도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요코를 죽인 사람과, 토오코를 죽인 사람이 동일인물이라 단정할 수는 없다.
……탐정은 어렵구나.

정문 앞에서, 용의자②를 발견했다.
기습심문에 들어간다.
타이치「나이는?」
토모키「……말할 수 없습니다」
역시 토모키.
내 기습에도 동요하지 않았다.
타이치「나이를 말할 수 없다고? 이유는?」
토모키「이유는 말할 수 없습니다」
타이치「이유도 못 말하는 건가?」
토모키「네……죄송합니다」
타이치「질문을 바꾸지. 20살보다 위인가, 아래인가?」
토모키「아래입니다」
타이치「18살보다 아래인가?」
토모키「말할 수 없습니다」
타이치「흐―음. 17살인가?」
토모키「절대로 말할 수 없습니다」
타이치「자넨 고등학생이 아닌가?」
토모키「……그런 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타이치「여고생과 여교생 중 어느 쪽이 더 위험한가?」
토모키「둘 다 위험하다고 들은 적이 있습니다」
타이치「학생증이란 걸 알고 있나?」
토모키「……그런 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타이치「나이는?」
토모키「사춘기입니다」
타이치「……나이 확인도 못하는 거냐」
토모키「어쩔 수 없잖냐―」
심문은 글렀다. 포기.
타이치「그래, 무슨 일이냐?」
토모키「……그냥. 집에 가려던 참이야」
타이치「멍하게 서 있었잖냐. 뭔가 전파라도 수신하는 것처럼」
토모키「……갈게. 집에 가려고 했던 거야」
터벅터벅 토모키는 떠나갔다.
타이치「뭐야 저 자식?」
녀석이 서 있던 곳에서, 주위를 둘러본다.
옥상.
안테나.
그리고.
미미 선배―――
펜스에 매달리듯 바짝 달라붙어서, 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후, 몸을 돌려 안테나 쪽으로 사라졌다.
타이치「?」
그러고 보니 싸우고 있었지, 저 두 사람.
아무래도 사람을 죽일 여유가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미키가 화장실에서 나왔다.
미키「아, 선배―」
타이치「여어, 용의자②」
미키「……네″?」
타이치「나이는?」
미키「말할 수 없습니다」
타이치「나이를 말할 수 없다고? 이유는?」
미키「이유도 말할 수 없습니다」
타이치「흠. 그럼 질문을 바꾸지. 20살보다 위인가, 아래인가?」
미키「아래입니다」
타이치「18살보다 아래인가?」
미키「겉모습은 15살 정도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타이치「누가 주관적인 이야기를 하라고 했나」
미키「네, 죄송합니다」
타이치「18살보다 아래인가?」
미키「별 수 없죠. 진실을 말씀드리죠……윽, 갑자기 배가 아파요」
타이치「적절한 타이밍이군. 쉣!」
타이치「마지막으로 대답해 주게. 자네는 고등학생과 여고생과 여교생에다 학생증인 건 아닌가?」
미키「그 네 개의 단어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타이치「그런가……그럼 마지막으로 나이는?」
미키「10만 15살입니다」
타이치「불로불사?!」
키리가 뒤늦게 화장실에서 나왔다.
키리「쿠로스 타이치!」
눈에 적의가 불타오른다.
키리「미키, 그 사람하고 얘기하면 안돼!」
미키「에―? 왜?」
키리「위험하니까」
타이치「아직도 그런 말을 하는 거야?」
타이치「토오코를 보고 왔어. 분명히 죽어 있더라」
키리「……뻔뻔하기는」
타이치「친구가 죽었어. 복수보다 먼저 드는 감정은 없는 거야?」
키리「그런 거……구, 굳이 말할 필요도 없어요……」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미키「그럼 범인은……」
타이치「우리들 전원이 용의자」
미키「……어쩌죠?」
타이치「전원이 한 곳에 모이는 게 좋지 않을까?」
키리「싫어요!」
타이치「……그렇겠지」
키리「전 미키와 있겠습니다! 당신은 혼자서 멋대로 하세요. 어차피……당신이 범인이니까」
타이치「……뭐 됐어, 그러지」
키리「미키에게도 접근하지 마세요」
타이치「……음―」
타이치「왜 그런 것까지 너하고 약속해야만 되는 거지?」
미키「아―, 또……」
타이치「난 말하고 싶은 상대에게 말할 뿐이야. 상대가 어떻게 반응하는가는, 그 녀석의 자유」
키리「……미키는 안됩니다」
타이치「그건 네가 결정하는 게 아냐」
키리「미키는……제 첫 친구니까요」
키리「……위험에 처하게 만들지는 않겠습니다」
타이치「안 잡아먹는다니깐」
키리「쭉 괴롭힘당하고……그딴 시험 결과 때문에……」
울상짓는다.
우헤…….
순간 맥이 빠졌다.
타이치「그러니까 그건 내 탓이……」
키리「그러니까……전……제 친구를, 지키겠어요!」
타이치「……네네」
이제 키리는 안된다.
여러가지 의미로.
미키「키리찡, 이제 그만 해. 전부 다 선배 탓으로 돌렸다가, 만약 범인이 다른 사람이면 어쩌려고?」
키리「……그럴 리 없어」
미키「그렇게 단정짓지 말라니깐」
타이치「응?」
미키「응―?」
미키와는 이렇게 호흡이 잘 맞는데.
타이치「우선, 사쿠라바 또는 토모키 범인설로 가자」
미키「남자들의 우정이란 좋구나」
타이치「칭찬하지 마, 수줍어지잖아」
타이치「……하, 하지만 만약 미미 선배가 범인이라면……죄, 죄, 죄, 죗값을 치뤄야겠지, 그 범죄적인 보디로」
미키「꺅♪」
키리「……그만……」
타이치「너희들도 조심해. 만약 범인이라면……그래그래 좀 울게 될 거니까」
가공의 담배를 피웠다.
키리「그만 해!」
타이치「……응?」
키리「그러니까, 왜 그렇게 사이좋게 말하는 거야!?」
음…….
키리「위험한데! 위험하다는데!!」
미키「아니……키리찡, 그렇게까지 경계할 필요는」
타이치「난 이제 내가 더이상 살아선 안 될 듯한 느낌이 들어……」
미키「키릿찌 너무했어」
키리「미키는 너무 물러, 이 사람은 자기 누나 같은 사람을 죽인 살인자란 말야」
미키「그건……사실인가요?」
타이치「내가 아냐. 이미 죽어 있었어」
타이치「애초에 나이프로 당한 상처도 아니었잖아」
키리「그런 건 몰라」
난 깊숙히 한숨을 쉬었다.
타이치「하아. 미키, 도와줘……」
미키「키리찡이 나빠」
움찔.
키리「어째서……나, 미키를 위해서……」
미키「아직도 그런 말 하네. 절교해버린다?」
키리「미키……」
타이치「그렇다고 절교라니」
미키「그치만, 전 키리찡의 인형이 아니에요」
미키「……오히려 선배가 더 절 존중해 주고 있잖아요」
키리「!?」
아, 지금 건 효과가 있었다.
미키「친구라면 좀 더 서로 존중해야지. 이런 때에, 왜 불난 집에 부채질하러 하는 거야?」
키리「그치만, 그치만」
미키「자, 선배한테 사과해―」
키리는 이를 악물었다.
상당히 분한 듯.
나를 찌릿하고 째려본다.
키리「……누가, 당신 따위한테!!」
미키「키리!!」
키리는 뒤꿈치를 돌리고, 떠나갔다.
미키「우와, 도망쳤다……」
타이치「꽤 빠른데」
둘이서 키리의 등이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타이치「……그런데 말야, 미키뽕」
미키「미키뽕입니다. 왜요?」
타이치「……키 커졌어?」
미키「그런가요? 전 잘 모르겠는데」
당연하지.
타이치「어라어라, 잘 보니까 가슴도……」
미키「안돼요, 오도리코씨를 만지면」
가슴을 양손으로 가드했다.
타이치「칫」
뭐, 어때.
타이치「이러쿵저러쿵 하는 사이에 벌써 저녁이네」
미키「……이만 가 보죠. 키릿찌도 혼자 가버린 것 같으니까」
타이치「나중에 잘 타일러 줘. 난 못하니까……」
미키「네―에」
미키는 강하다.
이럴 때 평정을 유지할 수 있으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인간의 진가는, 역시 위기가 찾아올 때 발휘되는 것 같다.

집에 가는 길.
나나카「헤―이」
옆에 나나카가 있었다.
홀연히 나타난 듯한…….
타이치「아, 나나카……」
나나카「잘 지냈어―?」
타이치「그런 건 됐고, 그 사당 말야―――」
안겼다.
타이치「으그?」
나나카「즐겁다고 말할 수 있다면, 뭐 상관없잖아」
타이치「아니, 말 안했는데」
그리고 대화에 맥락이 없는데요.
뭐지 이 깜짝 감동 이벤트는…….
하지만, 그건 그렇다 치고.
작은 가슴의 부드러움.
소녀의 향기.
이상하게도, 야한 생각은 들지 않았다.
요코에게 안겼을 때의 감각과는 달랐다.
나나카「그 말을 들으니 기뻐. 정말로」
타이치「아무 말도 안 했는데……」
나나카「꼭 강해야만 살아갈 자격이 있는 건 아니잖아」
타이치「안 듣고 있슈?」
나나카「약한 채로도, 괜찮아」
타이치「사람 말을 들어!」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타이치「가슴 감촉은 아주 좋았어」
나나카「……너무 정직하네」
타이치「하지만 영문을 모르겠는데」
나나카「미안, 착각했어」
타이치「뭐하고?」
나나카는 고개를 흔들었다.
나나카「다른 거하고」
타이치「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
나나카「안테나 건설에 착수한 거 같던데, 진행은 어때?」
타이치「저기 말야」
나나카「우이?」
타이치「좀 알게 말해. 우선……우선 말야」
나나카「우선?」
타이치「그래, 여러가지 물을 게 있는데」
나나카「그럼 한 가지 질문만 답변해 줄게. 어떤 거라도 대답해 줄 수 있어」
타이치「패, 팬티 색깔은?」
나나카「오늘은 흰색. 하지만 조금 귀여운 거. 브라하고 같은 세트야」
타이치「순백이닷」
소녀의 속옷을 무심코 떠올린다.
나나카「그럼 질문은 이걸로 마치겠습니다」
타이치「으악―, 이런―, 세계의 수수께끼가―!」
반사적으로 질문해버렸다!
타이치「난 바보야!」
나나카「그리고 야하지」
타이치「……취소 안돼?」
나나카「안돼―」
팔로 X표를 그리는 나나카.
나나카「다음 기회에」
타이치「으―으으음……실수……」
이때 문득 생각했다.
어라, 이 녀석……혹시 범인 아닐까?
타이치「나나카씨……하나 질문이……」
나나카「이제 안된댔지」
타이치「아, 맞다」
나나카「다음주에 봐. 타이치가 제대로만 한다면, 어떻게든 다다를 순 있을 거야」
타이치「다다른다니 어디에?」
나나카「여기에」
생긋.
타이치「음―――」
역시 중요 참고인 같긴 한데……정보를 못 얻겠네.
나나카「사당 갔었지?」
타이치「응」
나나카「……안에 안 봤지?」
타이치「그러고 보니 안 봤네」
나나카「봐」
타이치「아니, 이제 거기엔 가고 싶지 않아」
나나카「……뭐, 서두를 필요는 없으니까 상관없지만」
타이치「요코가 잠든 곳이니까, 편안하게 놔두고 싶어」
나나카「음―. 그 애는 아마 와 주길 바랄 거야」
……죽은 것도 알고 있군.
타이치「볼 면목이 없어」
요코의 복수도 안하고 있는 나다.
나나카「그건 잔인한 생각일지도 몰라」
타이치「뭐가?」
나나카「똑같이 해주지 못해서 볼 면목이 없다는 거잖아?」
나나카「반대로 하면, 상대방도 자기와 똑같아지길 바란다는 말이야」
타이치「아……그렇구나」
모순을 눈치챈다.
나나카「땅콩 섞인 감나무의 존엄성은 인정하면서, 약한 상대를 약하다고 인정하지 않는 것도 웃긴 거 아닐까?」
타이치「그렇지. 감나무는 사쿠라바지만」
내 과거까지 알고 있다.
뭐든지 다 아네…….
타이치「그럼, 기분 내키면 가 볼게」
나나카「응」
나나카「나도 말야, 인간관계에 자격 같은 건 없다고 생각해」
나나카「타이치도 나랑 같은 생각이라면, 기쁠 것 같아」
타이치「…………」
제길, 귀엽잖아…….
나나카「부활동도 힘내. 친구가 죽어도 힘내. 괜찮아, 다음주에는 웃을 수 있으니까」
타이치「우왓, 불길한 말 하지 마」
타이치「두 명이나 죽었단 말야―」
나나카「아―, 일단 말해두지만 내가 죽인 건 아니다?」
타이치「어――――――ㅅ!?」
나나카「……내가 죽였다고 확신하고 있었구나, 그치?」
타이치「왠지 모르게 불가사의한 힘도 가지고 있는 것 같고, 알리바이나 트릭 같은 걸 무시하고 가볍게 살인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신령 살인사건. 추리 소설도 뭣도 아니지만」
나나카「으―음, 어쩌면 신령하고 꽤 비슷한 건지도 몰라」
타이치「그러는 동안에 어느새 우리 집이네」
타이치「T백 팬티 가질래? 줄까?」
나나카「아니, 필요없어. 주면 바로 버릴래」
타이치「그러냐……」
나나카「갈래. 바이」
문득 생각한다.
어디로 돌아가는 걸까, 나나카는.
타이치「바이바이」
나나카가 탄 자전거는, 고개 건너편으로 사라졌다.
타이치「…………」

타이치「자 그럼」
양초에 불.
일기를 쓰면서, 하루를 되돌아본다.
어제는 요코가 죽었다.
그리고 오늘, 토오코가 죽었다.
타살.
누가 죽였는지는 불명.
키리는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나머지는 나를 제외한 네 명.
이 안에, 살인자가 있다.
타이치「……우울하네」
전혀 모르겠다.
짐작도 가지 않는데.
……범인은 무슨 목적으로, 두 사람을 죽인 걸까.
요코.
화살이었다.
즉 함정 중 하나에 걸렸다는 것이다.
아무리 요코라도, 백 번에 한 번 정도는 실수를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함정을 설치한 사람이, 요코를 죽인 것이 된다.
요코를 노린 건지, 우연히 요코가 걸린 건지는 모른다.
토오코.
단검에 의한 피살.
저항한 흔적은 없었다.
자는 듯이 죽어 있었다.
타이치「……」
사당 앞의 발자국.
내 신발.
그리고 나에겐 사당 앞을 어슬렁거린 기억은 없다.
기억상실도 아니다.
누군가 내 신발을 신고 돌아다녔단 것이다.
또는 같은 신발을 신은 녀석이.
오싹한 생각이 순간 든다.
만약 내가 이성을 잃어버린다면.
다른 사람에게 공격성을 드러내버린다면.
……동기따윈 필요없지 않을까.
애초에 네 명의 용의자들이, 요코를 속일 정도의 함정을 만들 수 있을까.
숨겨진 기술을 가진 사람이 있는 걸까.
가장 납득하기 쉬운 용의자.
……그건 나 자신이었다.
①몽유병
②이중인격
설치되어 있던 정밀한 함정으로부터, ①은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었다.
냉정한 지능이 없으면, 그런 트랩은 만들 수 없다
②인가.
난 사실은 이중인격이었다, 뭐 그런.
그렇다면 기억이 없는 이유도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그런 일은, 나에게는 일어날 수 없다.
이런 상황이라면 내가 두 명이라는 주장이 오히려 타당하다.
타이치「……모르겠다」
일기에는『현시점에서는 상세 불명』이라고 매듭짓는다.
타이치「응?」
재빨리 양초를 끈다.
밖에서 가벼운 발소리.
창 밖으로 얼굴을 내민다.
……키리다.
아무도 없는 거리를 걸어가고 있다.
어제도 봤었다.
수상한 행동.
나에 대한 극렬한 증오로, 가장 먼저 용의자에서 제외한 키리지만…….
좋아, 쫓아가 보자.
도중에 자전거를 발견.
효율적으로 추적.
여기서부터는 자전거는 너무 눈에 띈다.
몸을 굽히고, 서서히 나아갔다.
키리는 짐에서 그것을 꺼냈다.
크로스보우―――
결코 장난감은 아니었다.
이 나라에서 손에 넣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
연사는 불가능하지만.
방음성이 뛰어나고, 파괴력도 훌륭하다.
키리는 방아쇠를 당겼다.
고목에 화살이 박혔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귀를 스친다.
키리는 새 화살을 꺼낸다.
코킹 장치에 장전을 한다.
어설프다.
하지만, 눈치챘다.
이것은 연습이다.
싸우기 위한.
그럼, 누구하고?
누구하고……일까…….
키리에게서 검은 오오라가 나오는 것 같다.
감정을 잃은 눈동자.
기계적인 동작.
맞아도 빗나가도 변함없는 표정.
키리『그러니까, 왜 그렇게 사이좋게 말하는 거야!?』
키리『……누가, 너 따위한테!!』
키리『살인자! 다음엔 누굴 죽일 거야!?』
요코와 토오코의 사건은, 아직 수수께끼가 많다.
하지만.
키리의 동기는, 너무나도 명백했다.
1시간 정도, 그렇게 계속 훈련을 하고 있었다.
키리가 사라지자, 느릿느릿 몸을 일으켰다.
풀밭으로 나가, 표적이었던 나무를 조사한다.

집으로 돌아간다.
신경써서 그런지 피곤하다…….
사쿠라바가 있었다.
타이치「……얌마」
엉덩이에 발차기.
사쿠라바「오오, 타이치」
사쿠라바는 오이를 먹고 있었다.
토모키가 조달해 준 오이다.
타이치「뭐냐?」
사쿠라바「들어 줘」
타이치「뭔데?」
사쿠라바「카레빵에 질렸다」
타이치「……저기」
사쿠라바「그래서 네 집에 와 보니까, 오이가 있더라」
타이치「그러니까 왜 우리 집에 왔어?」
사쿠라바「토모키한테 식료품은 필요없다고 말해버렸다」
타이치「어, 왜?」
사쿠라바「카레빵이 있었으니까」
겁나게 즉흥적인 인생.
타이치「그건 그렇고, 그 거대한 보따리는 뭐야?」
사쿠라바「아아. 난 여행을 떠난다」
타이치「……………………뭐라꼬?」
사쿠라바「여행이다」
타이치「너……이런 상황에서……트레블링 행위에 빠지겠다는 말이냐?」
사쿠라바「그렇다. 여행은 좋다」
사쿠라바는 황홀해졌다.
사쿠라바「이런 시기일수록 더욱 여행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타이치「가만히 짱박혀 있고 싶을 뿐인데……」
사쿠라바「발상의 전환이다」
타이치「그, 그렇군!」
일부러, 일부러 여행을 떠난다라.
사쿠라바가 승리자처럼 느껴졌다.
사쿠라바「그래서, 식료품을 나눠줬으면 한다」
타이치「……뭐 그건 괜찮은데」
토모키상자(배급용 종이박스)에서 음식을 꺼낸다.
타이치「그래, 어디 갈 거냐?」
사쿠라바「안 정했다. 옆 동네에 가고 나서, 다시 생각한다」
사쿠라바「그리고 어쩌면 사람들하고 만날 지도 몰라」
타이치「……흐―음」
생각이 아주 없는 건 아니었군.
타이치「핸디(무전기)는 갖고 다녀라. 다른 전파는 아무데서도 안 나오는 것 같으니까, 아마 연결될 거야」
사쿠라바「아아, 넣었어」
타이치「SSB지? 일단 원거리용 안테나를 빌려줄 테니까, 잠깐 기다려」
사쿠라바「고맙다」
통신 지식은 조금 가지고 있는 나였다.
젓가락과 니크롬선으로 만든, 초장거리 통신용 안테나.
그걸 가져온다.
타이치「자」
사쿠라바「응, 고맙다. 이걸로 외국인과도 쏼라쏼라구나」
타이치「하하하, 말이 통해야지. 사쿠라바, 유감이지만 네놈의 지능으로는―――」
사쿠라바「Could you pay me back the shipping charge? (부탁합니다, 반품 운송료를 지불해 주세요)」
타이치「……어″?」
사쿠라바「What a fiasco it is! (그거 정말로 큰일이군요)」
타이치「……JINJJA?」
아니, 이건 영어가 아니자너.
사쿠라바「뭐 영어라면 어떻게든 되겠지」
사쿠라바「……옛날에는 미국에서 살았으니까, 조금은 할 수 있다」
뭐라고!
이 녀석……설마……2개국어가 가능했다니.
사쿠라바「러시아인을 만나면 너한테 부탁하지」
타이치「으, 으응, 난 실은 러시아어를 잘해!」
사쿠라바「그렇구나」
타이치「하, 하하하, 뭐 열심히 해라, 지, 집에는 언제 올 거냐?」
사쿠라바「오고 싶어졌을 때」
역시.
사쿠라바「그러고 보니 너한테는 돈을 꿨었지」
타이치「아아, 조금 있었지」
사쿠라바「얼마였더라?」
이제 돈 같은 건 의미도 없는데.
이상한 녀석.
타이치「글쎄, 액수는 잘 모르겠는데」
사쿠라바「일단 지갑에 있는 동전들만 주지」
지갑을 꺼낸다.
받았다.
찰랑찰랑 소리가 났다.
타이치「하하, 재벌 2세의 지갑도 빈곤할 때는 있는 것 같군」
사쿠라바는 부드럽게 웃었다.
사쿠라바「뭐어. 부자라곤 해도, 다 그런 거다」
타이치「하하하」
사쿠라바「하핫」
마주보고 웃는다.
꾹, 하고 팔을 교차시켰다.
우정이 깊어졌다.
타이치「어디어디, 얼마나 들어 있을까?」
지갑을 연다.
역시나 지폐는 없었다.
10만엔짜리 금화가 열다섯 개 들어 있었다.
타이치「미스터 엔!!」
졸도.
사쿠라바「왜 그러냐?」
타이치「히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익」
쥐며느리처럼 둥글어졌다.
뭐야 이 지갑!
이런 엄청난 건 처음이야!!
자세히 보니 10만엔 금화뿐이 아니었다.
쇼와 천황 재위 60년 기념 10만엔 금화×8
천황 즉위 기념일 10만엔 금화×7
황태자 전하 혼례 기념 5만엔 금화×2
국제 꽃 박람회 기념 5천엔 주화×4
황태자 혼례 기념 5천엔 은화×3
끝이다.
타이치「뭐냐 이건!」
사쿠라바「좀처럼 가게에서 안 받아주더라」
타이치「당연하지!」
이 녀석……이런 거액을 아무렇지도 않게…….
설마 사쿠라바에겐……10만엔 정도는 큰 돈이 아닌 건가……아닌 건가……아닌 건가……? (메아리)
타이치「핫?」
인류 멸망 전, 아직 돈이 의미가 있던 시절에 사쿠라바를 졸랐더라면.
타이치「우오오오오오오오!」
사쿠라바「왜 우냐?」
타이치「오오오오오오오오!」
하느님은 심술쟁이!
뒤늦게 후회하는 나였다.
사쿠라바「그리고 모자란 건 이걸로 때워 줘」
보따리에서 나무상자를 꺼낸다.
열어 보자 고풍스러운 산수도가 나왔다.
타이치「이건?」
사쿠라바「비싸 보이는 걸 대충 골랐다」
타이치「화가는……으음……감정서가 있네. 덴슈 분히츠라」
사쿠라바「유명한가?」
타이치「조사해 보지」
무츠미 아줌마의 방에서, 백과사전을 가져온다.
타이치「싸구려라면 안 실려 있겠지만 말야」
사쿠라바「그러면 곤란하다. 제일 비싸 보이는 거였는데」
타이치「덴슈씨, 당신 이름 어디 어느 정도유?」
국보 및 중요문화재.
타이치「――――――――――――」
기절.
사쿠라바「어이, 타이치! 타이치!」
…………………….
타이치「너……이게 진퉁이라면……국가에 대한 모독이 되는 거 아냐?」
사쿠라바「그런가? 땔감밖에 안 될 거라고 생각하는데」
문화 파괴자……이 녀석은 문화 파괴자.
난 새끼고양이처럼 떨 뿐이었다.
떨고 있는 동안, 사쿠라바는 갑자기 말했다.
사쿠라바「그런데……너도 같이 가지 않겠나?」
타이치「어……나도 여행?」
사쿠라바「토모키한테도 말해봤는데. 그 녀석은 여기서 할 일이 있는 것 같아」
타이치「뭐 그렇겠지」
사쿠라바「어때?」
타이치「……재밌어는 보이지만」
모두의 얼굴이 스쳐간다.
무수한 수수께끼와 함께.
타이치「미안하다」
사쿠라바「그래」
별로 유감스럽지도 않은 듯한 사쿠라바.
사쿠라바「그럼 이만 간다」
타이치「그냥 내일 아침 가지 그래, 산 넘으려면 위험하잖아?」
사쿠라바「지금 가고 싶은 기분이다」
타이치「아―, 조난당하는 타입」
사쿠라바「그럼 먹을 것도 받았으니, 이만 간다」
타이치「응」
바래다 준다.
타이치「아, 맞다, 뭐좀 물어봐도 될까?」
사쿠라바「응?」
타이치「너, 방송부 안에서 죽이고 싶을 정도로 싫은 녀석 있어?」
사쿠라바「없다. 다들 좋아」
타이치「통 큰데」
사쿠라바「그런 뜻이 아냐. 난 정신적으로 임포텐츠니까, 그런 욕망은 거의 없다」
실은 그랬습니다.
사쿠라바「내 성욕은 그 날, 그 때 너한테 뺏긴 상태다」
기쁜 듯이.
타이치「기분 드러우니까 그만」
사쿠라바「아냐, 나처럼 돌발적인 인간에겐, 성욕 같은 건 없는 게 좋다」
사쿠라바「그만큼 다른 일을 할 수 있으니까」
사쿠라바의 고박이 찢어진 그 날.
이 녀석은 거짓말처럼 침착했다고 한다.
그리고 동시에, 성욕도 잃었다.
뭐가 원인인지는 불명.
실연의 아픔일까, 깨달음을 얻은 걸까.
그것은 본인도 모른다.
타이치「또 하나 질문」
타이치「너, 살인한 적 있어?」
사쿠라바「아니, 없다」
타이치「……그러냐」
타이치「알았다. 갔다 와라」
사쿠라바「응, 안녕이다……」
배웅하면서 생각한다.
저 녀석이 범인이라면, 은근슬쩍 도망치게 놔두는 꼴이 되는데.
그래도 뭐, 어때.
아마 아닐 테니까.
이렇게.
사쿠라바는 사라졌다.

이른 아침.
타성의 법칙으로 부활동을 하러 왔다.
방송국의 준비는 아직도 안 되어 있다.
토모키가 있다.
타이치「안녕」
토모키「……타이치냐」
타이치「무슨 일이냐?」
토모키「……이거, 이제 거의 다 됐구나 해서」
타이치「뭐 선배가 노력했으니까」
타이치「필요한 기재들도 운반했고」
토모키「……언제 끝날까?」
타이치「일요일쯤일 것 같은데. 당초 예정대로라면」
타이치「도와줄래?」
토모키「아니, 할 일이 있어서……」
타이치「사쿠라바 놈, 여행을 떠났어」
토모키「그런 것 같아」
타이치「같이 가자네」
토모키「나한테도 그랬어」
타이치「그리고 난 억만장자가 되어버렸어……」
토모키「헤에」
반응이 약하다.
다른 일에 정신이 팔려 있는 것 같다.
타이치「토오코가 죽었어」
토모키「…………무슨 말이야?」
얼굴이 일그러진다.
타이치「뻥―이야」
토모키「너 임마―!」
타이치「어디 해볼까―!」
토모키「……관두자. 그럴 기분도 아니고」
교내로 돌아가려 한다.
타이치「정말로 안 해―?」
토모키「……누님하고 싸움 중이라서」
타이치「선배, 늦게 오니까 오전 중에만이라도 도와 줘라」
토모키「으―음……모르는 데라도 있어?」
타이치「기재 배선을 모르겠어―」
토모키「어쩔 수 없네」
토모키는 오전중에만 도와주었다.

낮.
토모키와 헤어지고, 혼자서 점심.
인기척 없는 식당.
가져온 식빵에 잼을 발라, 기계적으로 위 속에 집어넣었다.
타이치「……빈곤한 식생활이네」
타이치「응?」
등 뒤로 눈을 돌린다.
아무도 없다.
기분 탓인가.
누가 보고 있는 것 같았는데.

그리고 부활동.
선은 토모키가 연결해 줬으니, 텐트를 치고 긴 탁자를 가져와 기재들을 올려놓았다.
타이치「남은 건 안테난가」
도면에는 아직 문제점들이 남아 있다.
방송에 영향은 없을 지도 모르겠지만.
일단은 부활동인 이상, 정확히 예정대로 끝내고 싶다.
작업.
인기척.
주위를 바라본다.
아무도 없다.
기분 탓……은 아닌데.
만약 그렇다면, 여긴 위험하다. 높은 곳은.
위치가 사다리 위라는 것도 좋지 않다.
사정거리는 둘째치고, 유효 범위가 20미터 정도라 치면.
타이치「이제 하나만 남았는데……」
마침 선배가 왔다.
미사토「늦잠자 버렸어요~」
타이치「생활이 점점 터프해지시네요」
미사토「……하하하. 할 말이 없네요」
미사토「정말로, 이젠 끝이네요……」
타이치「네?」
미사토「아, 텐트네요」
타이치「배선도 다 연결했어요」
미사토「서, 설마 페케군이?」
타이치「네, 선배를 위해서……」
미사토「굉장해요! 마침 그거 때문에 고민했었는데! 페케군은 정말―――」
타이치「라고 말하고 싶지만, 토모키예요」
미사토「……」
우선 말이 멈췄다.
그리고 놀랐다. 정직한 패턴.
미사토「토모키가 도와준 건가요?」
타이치「정확하게는 제가 시켰지만요」
미사토「그래요……그래도……도와준 거네요, 토모키가……」
안도감이 떠오른다.
타이치「잘됐네요」
미사토「……네」
타이치「그런데 선배, 저 조금 배가 아파서……잠깐 교대해도 될까요?」
미사토「네. 여기까지 해줬으니, 이제 혼자서도 할 수 있어요」
타이치「꼭대기에 있는 그거, 나사가 허술하니까 바꾸는 게 좋아요」
미사토「알겠습니다」
타이치「……그럼, 잠깐 싸우고 올게요」
미사토「파이팅―!」
성원에 한 손으로 대답하면서, 난 교내로 들어갔다.
자.
어디 훈련의 성과를 보여주시지.

키리는 빈틈을 노려올 것이다.
식당에서도 옥상에서도, 난 그것을 눈치챘다.
그래서 공격은 없었다.
……끌어들이는 것은 쉬울 것 같다.
화장실에 들어간다.
들어갈 때, 순간 살기가 느껴졌지만……곧 사그러들었다.
복도를 천천히 걷는다.
여러 번 공격을 해오리라곤 생각하기 어려웠다.
확실한 곳에서.
덤벼올 것이다.
……복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오늘은 덥다.
바다라도 가고 싶은 기분.
그러고 보니, 작년엔 바다에 갔었지.

즐거운 바다였다.
지금도 모두의 떠들썩한 모습이 생각난다.
토오코「꺄아아아악!? 어딜 잡는 거야!?」
타이치「수영복 팬티」
미사토「하세쿠라는……쿠로스군하고 어떤 관계일까요?」
타이치「음, 요코짱?」
토오코「요코짱!?」
미사토「요코짱!?」
미키「요코짱?」
토모키「요코짱!!」
미키「이번엔 야쿠자네요」
미사토「모, 몸은 싫어~」
소녀「저기, 실례합니다합니다합니다!!!!」
토오코「바―보」
유사「엣, 앗, 얏?」
미키「아, 아파~, 이마 아파~」
미사토「……투덜투덜투덜」
타이치「재밌긴 재밌잖냐」
즐거운 해수욕은 이걸로 끝.
미키의 얼굴에는 조금 흉터가 남은 것 같았다.
그래도 귀가 길 내내, 미키는 상쾌하기 그지없는 표정이었다.
다친 대신에, 무언가를 얻었다.
그런 표정이었다.
그 후, 미사토 선배는 방송부용 안테나 반입을 위해 학교로 돌아갔다.
아직 누나와 단절되지 않았던 토모키가 그것을 비꼬았다.
그 시스콤을, 당시 군죠 부속 중학교 3학년생이었던 미키가 놀렸다.
유사가 집단이라는 것에 대해 처음으로 살짝 마음을 열었다.
그런 바다였다.

……하지만, 그 결속도 서로를 죽일 정도로 무너져버렸다.
마음이 흔들린다.
왜 이렇게 된 걸까.
분한 마음이 사라지지 않는다.
차라리.
다들 사라져버리면 좋을 것 같았다.
그 후로 난, 대충 거리를 돌아다니며 시간을 때웠다.
공격은 없었다.
겁쟁이였다.

그리고.
돌아왔다.
역시 익숙한 공간이 아니면 불편하단 말야.
아아, 근데.
난 뭘 하고 있는 걸까.
아무도 없다.
얼마 전까지 토오코가 있었다.
사람들이 사라져도, 자신의 행동을 관철하던 토오코.
……자립하는 걸 어려워했지만.
타이치「싫은 건 알겠지만, 내일부터 부활동 나와보지 않을래?」
독백한다.
토오코가 있었으면, 이렇게 말하려고 했던 것이다.
너무 늦은 말이었다.

그리고 다시 옥상에 왔다.
선배가 작업하고 있다.
미사토「읏샤, 읏샤」
목장갑을 끼고 있었다.
말려들게 할 수는 없지.
살며시 문을 닫았다.

대충 이쯤일까.
의자에 앉아 대기.
만화 잡지를 읽으며, 대충 시간을 때운다.
단 주위를 의식한 채로.
다가온다.
살금, 살금.
살의가.
자신이 싫어하는 악의를 주위에 발산하며.
긴장의 끈이 팽팽해졌다.
오지 마.
문이 5센티, 조용히 열린다.
하지만 난 깨달았다.
이 정도의 살의라면, 보통 사람이라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검게 빛나는 화살촉이 나에게 향한다.
넘쳐흐르는 살의.
타이밍을 재고, 옆으로 구른다.
키리「……앗」
화살은 내가 방금 전까지 있던 곳을 통과해 갔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복도로 뛰쳐나간다.
달려가는 키리의 등.
타이치「하하……」
쫓아간다.
이번 숨바꼭질은 월요일에 한 거하곤 다르다, 키리.
희열에 몸부림치는 내가 있었다.
쫓아간다.
키리는 도망친다. 때때로 등 뒤를 돌아보면서.
나를 확인하고, 더욱 속도를 높였다.
……지칠 뿐이야 키리.
정문을 빠져나왔다.
거리로 갈 생각인가.
무기를 든 키리의 속도는, 결코 빠르지 않다.
페이스를 생각하며 쫓아갔다.
화살을 갈아끼우지 못하게, 쉬지 못하게, 적당한 속도로.
이윽고 키리는 산길로.
그건 자멸일 텐데.
그리고.
키리는 사당에서 힘이 다했다.
풀숲에 숨어 있다.
타이치「……키리, 드디어……해버렸네」
선전포고를.
전쟁을.
이 나에게.
타이치「내 적이 되어버렸어」
키리「하아, 하아, 하아……」
가쁜 숨을 필사적으로 가다듬고 있다.
그리고 초조한 듯 화살을 장전하려 하고 있었다.
풀숲 너머.
허둥대고 있을 키리의 모습을 상상한다.
상당히 숙련되지 않은 이상, 위기상황에서 간단하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키리는 여기서 게임 오버.
난 나이프를 뽑았다.
죽일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그래도 뽑았다.
왜일까.
너무나도 강한 본능이, 날 그렇게 행동시켰다.
이성은 뒤로 밀려난다.
조금 불안정해지면 쓸모가 없어지는 게 이성이다.
공포를 주기 위해, 풀숲의 장벽에 일부러 칼날만을 들이밀었다.
키리「……꺅……하, 하아」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공포의 도가니.
그리고 난.
타이치「!!」
몸의 관절을 모두 사용해, 상체를 비틀었다.
제 2발. 칠흑의 화살이, 0.1초 전 이마가 있던 공간을 꿰뚫었다.
이런 타이밍에!
잠시 동안 넋을 잃었다.
5초 정도.
감동과 충격.
키리가 날 완벽히 속였던 것에 대한.
풀숲을 베어가른다.
건너편에……이미 소녀의 모습은 없었다.
길게 자란 잡초를 헤치며, 산길로 돌아가는 소리만이 들렸다.
쫓을 기분은 사라졌다.
타이치「……하하, 제법인데」
죽는 줄 알았다.
죽음.
타이치「두근거리는데」
가슴에 손을 대고 확인했다.
이 흥분.
난 살아있다는 즐거움을, 어두운 방법으로 맛보고 있었다.

일기를 쓰고 잔다.
키리는 오늘 밤에 덮쳐 올까.
난 잘 알아챌 수 있을까.
좋은 꿈을 꿀 수 있을 것 같았다.

야습은 없었다.
……내 홈 그라운드라서일까.
함정이 있을지도 모르니, 무리는 안 하는 걸까.
학교로 간다.
그리고.
토모키가 죽어 있었다.
타이치「…………」
용의자가 줄었다.
그리고 희생자가 늘었다.
타이치「토모키……」
무참한 죽음이었다.
굵고 긴 자재용 철사에 가슴이 꿰뚫려 있었다.
우연……이라기엔, 너무나도 드문 일이었다.
인위적인 것이다, 이건.
그렇다면 범인은―――
타이치「……이제……끝이구나」
세계는, 끝난다.
그런 예감이 들었다.
키리는 이미 망가졌고, 사쿠라바도 돌아올 리 없다.
내가 사람으로 있을 필요는 없다.
……결국, 모든 것은 헛된 발버둥.
미친 사람은 정상인이 될 수 없다.
타인이 이해해주지 않는다면.
이해따윈 안 해줘도 상관없다.
이젠―――
말이 없는 토모키의 시체를 앞에 두고, 난 적막한 공기에 몸을 맡겼다.
모노로그는 필요없다.
난 나를 표현하는 언어를, 급속히 잃어가고 있었다.

키리는 어디 있지.
교내에는 없는 걸까.
집에는 없겠지.
배회. 단지 그뿐.
키리…….
아니, 아무라도 좋아…….
맞다. 선배.
그건 언제나 옥상에 있었다.
없다.
펜스가 휘어져 있었다.
선배는 죽어 있었다.
사람이 떨어지면, 핑크빛의 꽃이 핀다.
타이치「…………」
아아.
피가 퍼진다.
뭐가 뭔지 모르겠다.
아아 이제 진짜로.
지금까지……뭘 위해 고생해온 걸까.
본능을 억눌러가며.
그리고.
회피.
화살이 통과.
키리.
찾았다.
찾았다♪
키리「……살인자!」
키리는 붉은 통을 거꾸로 들었다.
저건 소화기던가.
흰 연기.
타이치「……큭」
시야가 흐려진다.
……익숙해졌다.
키리의 기척.
달려들었다.
손목을 잡는다.
칼이 쥐어져 있었다.
세게 잡는다.
키리「으윽」
키리는 칼을 놓지 않았다.
짐승과 같은 분노를 내뿜고 있다.
더 세게.
키리「으, 으으으윽」
아플 텐데.
이런 가느다란 손목.
간단히 부러진다.
하지만 놓지 않았다.
아아.
토모키의 시체는 봤을까.
내가 한 게 아닌데.
살갖이 닿자, 키리를 갖고 싶어졌다.
키리.
바보같지만, 귀여운 키리.
입술을 맞춘다.
키리「읍, 으으으으으으으으읍!?」
타이치「……」
혀를 깨물렸다.
끊어지진 않았다.
머리가 새하얘진다.
타이치「……키리……범인은 나야」
키리「으윽, 이제 와서!!」
나이프를 쥔 손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타이치「아냐」
키리「……뭐야, 아하하」
조소.
+눈물.
키리의 감정은, 이미 망가져 있었다.
키리「미키를 건들지 마」
타이치「미키야」
타이치「범인은, 미키야」
키리가 멈췄다.
그것은 지금의 키리를 정지시키는 유일무이한 열쇠였던 걸까.
바람이 갈라졌다.
키리「으아아……?」
폐부에서 기묘한 소리가 새어나왔다.
그걸로 치명상이란 것을 알았다.
동시에, 허벅지에 고통이 느껴졌다.
화살이다.
키리의 납작한 가슴을 관통해, 내 허벅지를 맞추고 있었다.
고개를 들었다.
타이치「……역시」
미키「아하하, 선배를 이기는 건 처음이네요」
천진난만했다.
타이치「…………」
키리「……으……어라……? 미키?」
타이치「키리……」
나이프가 떨어진다.
몸을 일으키려 하지만……실패한다.
타이치「아얏」
키리「……날……쏜 거야?」
타이치「응」
키리「누가?」
타이치「…………」
키리「거짓말……쿨럭」
입에서도 피가 흘러내린다.
키리「아, 아파……미키……미」
미키는 가만히 키리의 단말마를 지켜보고 있다.
감정은 전혀 읽어낼 수 없다.
타이치「바보 같은 짓을……친구였잖아?」
미키「…………」
키리가 기침을 한다. 대량의 피.
타이치「넌 누구야」
미키「미키입니다」
타이치「아냐. 미키는 그렇게 강하지 않아」
미키「……단련된 거예요. 선배들한테」
이 녀석…….
타이치「키리……」
키리「미키……어디야? 뒤에 있어? 돌아볼 수가 없어서……」
키리가 몸을 꿈틀거릴 때마다, 다리에 통증이 느껴진다.
그 덕분에.
난 이성을 되찾을 수 있었다.
키리「미키 아니지? 쏜 거……아니지?」
미키「아냐. 나 맞아」
키리「어……?」
키리「……거짓말이야」
타이치「키리」
날 올려다본다.
가슴을 맞은 상태로는, 그 정도가 한계였다.
키리「……무, 죄?」
타이치「그건 아니지만. 난 아무도 안 죽였어. 죽이고 싶지 않았어」
키리「…………」
키리「……죄송……합……」
사죄의 말도 채 완성되지 않은 채.
나는 가만히, 경동맥에 손을 가져갔다.
타이치「자라. 꿈이야. 일어나면 평소의 매일이 기다리고 있어」
모순이 있는 말, 하지만 키리는 웃었다.
키리「아하」
가볍게 조인다. 그걸로 충분.
키리「……아………………」
다정하게, 죽였다.
미키「……!」
타이치「아야……」
시체를 화살과 함께 떼어낸다.
허벅지의 상처는 얕다.
하지만, 이동은 이제 못한다고 봐야 한다.
타이치「……나도 죽일 거야?」
미키「숨을 끊어 준 건가요?」
타이치「응」
미키「다정한 선배」
타이치「나도 죽일 거야?」
미키「네」
타이치「이유는?」
미키「……알고 싶으세요?」
미키「폭주한 선배는, 이성이 사라지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타이치「헤에, 잘 알고 있네」
미키「하세쿠라 선배에 대해서도 잘 알아요」
타이치「……왜 모두를 죽였어?」
미키「안 죽였어요. 전」
타이치「그럼 누가 죽인 건데?」
미키「우연이에요」
타이치「……미키, 장난치지 마. 진지한 이야기야」
미키「정말이에요. 우연이에요. 전 보이지 않는 손이라 부르고 있죠」
타이치「보이지 않는 손?」
미키「가끔씩 이런 일도 일어나는 거예요」
미키「처음엔……하세쿠라 선밴가요. 그 사람이 죽은 건 처음이네요」
미키「함정을 설치한 건 저지만, 죽은 건 처음이에요」
타이치「……그 트랩은 미키였구나」
미키「네. 선배가 알려줬어요」
타이치「안 알려줬어」
미키「훨씬 전이에요. 벌써 몇십 주 전」
미키「그 장소에 사람이 접근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 쭉 경계해 왔어요. 트랩의 목적은 제가 접근자를 파악하는 거였고……함정이 있으면 신중하게 이동할 테니까, 도망칠 시간이 생기죠」
타이치「……그 장소라니?」
미키「그곳만 루프에서 벗어나 있어요」
타이치「루프……」
미키「세계는 이 일주일 동안을 한없이 반복하고 있어요, 선배」
그리고 미키는 말했다.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의 일주일.
세계는 거기까지 다다른 다음, 다시 월요일의 상태로 돌아온다고 한다.
루프.
미키는 그렇게 부르고 있었다.
타이치「믿기 힘든 이야기네」
미키「거짓말할 이유는 없잖아요」
미키「기억도 상태도, 전부 원래대로 되는 거예요」
미키「그러니까 저기 키리찡도, 다음주가 되면 다시 부활해요」
미키「물론, 월요일로 돌아가면 살해당한 기억은 안 남겠지만요」
타이치「그게 진실이라 치고, 어떻게 네가 그걸 알아챈 거지?」
미키「사당만은 시간의 흐름에서 벗어나 있으니까요」
타이치「……즉……사당에 머물러 있던 건가」
미키「일요일이 끝나는 순간만이지만요」
타이치「……그래서 루프를 한다고 치고, 왜 모두를 죽인 거야?」
미키「전 죽을 수는 없었으니까요」
타이치「말이 이어지지 않아」
미키「……제가 처음으로 사당에 대해 알았을 때, 사당 안에는 이미 노트가 있었어요」
미키「노트에는 토요일까지의 매일이 또렷하게 적혀 있었고, 작성자는 선배였어요」
타이치「내가……?」
미키「선배하고 하세쿠라 선배는 이런 루프 현상에 의해 매번 기억을 리셋당하는데도, 상당히 높은 확률로 진실을 알아채는 거예요」
미키「그래도 기억은 사라지니까, 일기의 형식으로 사당에 기록을 남기고……뭐 그렇게 해서 다음주의 자신들이 사태를 파악하기 쉽게 한 거라고 생각해요」
미키「하지만 사당에 있으면, 고유 시간이 유지된다는 건 눈치채지 못했어요」
미키「……다음주가 되면, 전원의 기억은 깨끗이 사라져요」
미키「그래도 그건 죽어서 다시 살아나는 거하고 똑같잖아요?」
미키「아무리 일기를 써도, 리셋되기 전까지의 시간은 유지되지 않는 거잖아요?」
미키「매주 죽는다는 말이잖아요」
타이치「……」
미키「전 그런 건 싫어요」
미키「저라는 고유의 인간을, 쭉 같은 연결선 위에서 살게 하고 싶어요」
미키「세계가 이제 전혀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해도……전, 자각도 못하는 되풀이는 하고 싶지 않아요」
타이치「기분은 알겠는데……그래서 왜 모두를 죽였어?」
미키「그러니까 우연이에요, 그건」
미키「계속 반복하다 보면, 우연히 하세쿠라 선배가 함정에 걸리는 일도 있잖아요?」
타이치「백 번에 한 번 정도는」
미키「그리고, 우연히 토오코 선배가 죽거나, 시마 선배가 죽거나, 미미 선배가 죽거나……하는 일도 있어요」
미키「그게 이번주인 것뿐이에요」
타이치「범인은……네가 함정을 설치했던 가장 처음 사건을 제외하면……우연이란 거야?」
미키「우연은, 가끔씩 보이지 않는 살인자가 돼요」
미키「루프 세계에서는, 가끔이란 건 확정된 사건이죠」
타이치「토오코는 칼에 찔려 있던데?」
미키「저예요」
타이치「아앙?」
미키「토오코 선배는, 매주 높은 확률로 아사했어요」
미키「그리고, 이번주엔 벌써 죽어 있길래 시체에 단검을 꽂아 놓았어요」
타이치「이유는?」
미키「……키리찡의 스위치가 눌리게 하려고」
미키「키리찡이 선배를 죽이게 하려고요」
타이치「……미키……」
미키「아, 선배가 싫다는 말은 아니에요?」
미키「그저……당신은 위험하니까요」
미키「당신도 높은 확률로 폭주한단 말예요」
미키「피를 보면, 잘 이상해지죠?」
타이치「……응」
미키「지금까지는 어떻게든 해서 안정시키려 했어요」
타이치「……하하, 내 뒤치닥거리를 해 줬구나」
미키「네♪」
미키「다정할 때의 선배는 좋아하니까요」
감정이 깃든 것은 순간.
미키「……그치만, 이번주엔 하세쿠라 선배가 죽는다는 불규칙성이 발생했어요」
무표정으로 돌아온다.
미키「그 사람, 거의 인간을 뛰어넘은 능력이라, 제 캠프도 자주 들켰어요」
타이치「캠프는 사당 옆에 있는 거야?」
미키「네. 합숙 때 썼던 걸 빌려서……아, 움직이지 마세요」
타이치「지혈하고 싶어……」
미키「죄송해요……그건 안되겠네요……」
타이치「죽일 거니까?」
미키「……네」
맥이 풀린다.
타이치「……하아……뭐랄까, 뭐 그 얘기가 사실이라면 다시 살아나겠지만」
미키「하세쿠라 선배한테 들켰을 땐 바로 항복했어요. 정보제공만 했죠」
미키「붙어도 이길 수가 없으니까요」
타이치「자기가 제일 소중하단 거구나」
미키「하세쿠라 선배가 사라졌을 때, 당신의 반응은 미지의 반응이었어요」
미키「……키리찡이 악의 노이로제에 걸린 탓도 있겠지만, 눈깜짝할 사이에 이성을 잃으셨죠?」
타이치「응, 그랬어」
미키「저, 죽을 순 없어요」
미키「선배 말대로……전 제가 소중해요, 무척」
미키「누구보다도」
타이치「…………그래」
타이치「그게 네 군청색이었구나」
미키「……네, 그렇게 되겠네요」
미키「다른 사람의 아픔 같은 건 전혀 모르니까요」
미키「사람 흉내만 내면서 살고 있는 거예요」
미키「이거, 키리찡이 언젠가 선배한테 따질 때 했던 말이에요」
타이치「……기억에 없는데?」
미키「아, 그런 전개가 있던 적이 있어요」
타이치「아아, 리셋된 나 말이구나」
미키「선배는 의태해 있는 건 아니에요」
미키「그저……사람으로 있으려 하고 있을 뿐이죠」
미키「그리고, 진짜로 의태한 채로 기생해온 건……사실 저였던 거예요」
타이치「……쭉 사당에 숨어 있으면 안돼?」
미키「……그래도 되는데요……」
미키「따분해서 미칠 것 같던데요?」
타이치「아아……그렇겠지……」
미키「적당히 모두의 정신상태를 유지하고, 하세쿠라 선배하고 교섭하고, 정신을 기울이고……그런 걸 끝없이 반복하는 거예요」
타이치「힘들겠네」
미키「그래도, 그러고 있을 땐 순수한 제 자신으로 있을 수 있었어요……선배하고 바보짓하거나……다 함께 부활동을 하거나……」
타이치「……사당에 있으면, 주관적인 시간은 보호된다고 치고……언젠가 미키가 어른이 된다면?」
미키「……생각 안 했어요」
미키「언젠가는 무리가 올 테니까, 리셋을 해야만 되겠지만」
미키「그건 이미……지금의 저하고는 다른 사람이니까……」
타이치「무서워?」
미키「무서워요」
미키「제가 사라지는 게, 무서워요」
눈물을 흘린다.
미키「이런 아무도 없는 세계에서, 사라지는 게 무서워요」
미키「……그치만」
미키「저, 어쩐지 외톨이처럼 여겨져서」
타이치「…………」
미키「어쩐지, 허무해졌어요」
미키가 무기를 내렸다.
미키「지금 선배하고 얘기하니까, 더 허무해졌어요」
타이치「음. 교장 클래스의 긴 담화였으니까」
미키「……전혀 안 무서워하네요」
타이치「흥미 깊은 이야기였어」
미키「……아하하……역시, 선배는 저보다 굉장한 사람이네요」
타이치「요코가 더 굉장해」
미키「그 사람은……완벽에 가깝긴 하지만……명확하게 정의된 인간 그 자체일 뿐이잖아요」
미키「당신은 달라요」
미키「저하고 같고, 저보다도 괴로운데, 저보다 몇 배나 노력하고 있어요」
미키「포기하지 않고」
가까이 다가온다.
미키「선배?」
타이치「응?」
미키「제가 처음으로 좋아하게 된 사람이에요, 당신은」
타이치「아아, 그거 영광이네」
눈을 감는다.
죽이기 쉽도록.
그리고.
미키「……안녕히 가세요, 다음주에 봐요」
타이치「다음주에 봐」
내 의식은 잠겼다.

타이치「아야야야야……」
통증에 몸을 일으켰다.
타이치「핫, 여기는 마이 시크리트 룸? (내 비밀의 방?)」
아, 옷도 교복이 아닌데.
상처도 치료되어 있다. 게다가 좋은 솜씨로.
요코……는 죽었지.
미키「아, 안녕하세요」
미키가 들어왔다.
타이치「자넨 밋찌―!?」
미키「밋찌입니다. 어감이 좀 거시기하지만」
미키「이 집, 먹을 게 아무것도 없네요. 옆집에서 쌀하고 된장을 훔쳐왔어요」
타이치「아―, 무츠미 아줌마는 좀처럼 요리할 시간이 없었으니까」
필요한 만큼만 사 와서 만들어 왔다.
미키「아파요?」
타이치「아파―」
울었다.
미키「아―, 맞다맞다. 자, 생리약이에요」
타이치「필요없으!」
내던졌다.
미키「아니, 진통효과가 있는데요……이거」
타이치「아, 그렇구나, 미안」
미키「요리를 해봤어요」
타이치「……이 별모양의 거대한 별사탕 같은 물체는?」
겁나게 찌그러진 게, 환상적인 조형미를 연출하고 있었다.
미키「주먹밥이에요」
타이치「재능이 너무 흘러넘쳐서 천재의 영역에 들어갔구나」
미키「네……?」
타이치「어떻게 뭉쳐야 이런 모양이 되는 거야?」
미키「그까이거 대―충」
타이치「신비로운 주먹밥이군」
먹어 본다.
타이치「우와, 맛있어」
미키「안에는 연어알」
타이치「……호오」
꽤 짜다.
피가 부족한 몸 안에 스며든다.
세 개를 게눈 감추듯 먹어치우고.
된장국은 원샷.
타이치「……후우우」
미키「잘도 드시네요」
타이치「다친 덴 아프지만 에로는 가능해, 미키」
미키「조금이라도 궁금한 건 없으신가요?」
타이치「……그럼」
미키「생각 안 한 거냐……」
타이치「왜 날 살려준 거야?」
미키「……음―, 간신히 폭주가 안정된 것처럼 보이길래……그리고」
미키「모든 것을 안 선배하고, 얘기를 하고 싶어서……일까나」
타이치「근데 말야, 내가 기절하기 전에……」
미키「와아―앗―! 그건 무효!」
손을 파닥파닥 흔든다.
미키「그 때는 죽일 작정이었어요!」
타이치「……벌써 들어버렸는데」
미키「으, 으으으~」
얼굴이 빨개진다.
타이치「부끄러운 감정은 있는 것 같네」
미키「그야, 희노애락은 있는 걸요」
미키「다른 사람에게 무관심할 뿐이에요, 흥」
스스로 흥이라 말하고선, 미키는 고개를 휙 돌렸다.
타이치「난 분명히 놀이상대로만 이용되고 있는 줄 알았어」
미키「……그것도 맞긴 맞는데요」
맞는 거냐.
타이치「있잖아……혹시 이 세계에서, 지금 살아있는 건 우리 둘뿐인가?」
미키「사쿠라바 선배……」
타이치「그 녀석 가다가 죽을걸. 아마. 이미 죽어 있을지도 몰라. 꼬라진 다음에 자기 보따리에 머리가 치여서……등등으로」
미키「……그럴 듯하네요」
타이치「많이 적어졌네」
미키「다음주가 되면, 다시 전원 부활이에요」
타이치「나도 사당에 있으면, 지금의 나를 유지할 수 있는 거야?」
미키「네, 그래요. 지금 상태로 살고 싶으세요?」
타이치「으―음」
타이치「이번주의 기억은, 좀 괴로운 게 많아서」
타이치「……뭐랄까, 다들 죽었는데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부분 등이」
미키「…………」
타이치「마음이 울지 않았어」
타이치「……그런 건, 잊어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해」
미키「그런가요」
타이치「만약 세계가 되풀이된다면……계속 폭주해서, 사람들을 상처입힐지도 모르잖아?」
타이치「친구나 가족이나 동료나 좋아하는 사람을」
타이치「수없이 수없이 죽이고……그 기억을 가진 채로 살아가다 보면……」
타이치「분명, 마음이 망가질 거야」
타이치「이미 망가져 있지만, 더 망가질 거야」
타이치「마음이 죽어」
거기까지 말하고, 미키가 고개를 숙이고 있는 걸 눈치챈다.
타이치「아, 미안……」
미키「아녜요」
미키「실제로 그렇게 됐으니까요」
미키「좀 심할 때는, 폭주한 선배한테서 도망치려고 모두를 희생시킨 적도 있어요」
타이치「아―, 그거 미안하네. 다 내가 부덕한 탓이야」
타이치「뭐 자신을 사랑하는 건 정상적인 거야. 딱히 문제없잖아?」
미키「……그래도」
타이치「물론 자기희생도 좋지만, 그런 아름다운 것만 가득차선 안돼」
타이치「세상은 아름다움을 강요해 왔어」
타이치「난 말야, 세상에 받아들여지기 위해 열심히 친근해지려 했지만……몇 년이나 노력했는데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어」
미키「……그런가요」
타이치「뭐랄까, 이런 날 좋아해주는 녀석도 있다는 게 참 고마워」
미키「…………아우」
타이치「유사, 기억나지?」
미키「네」
타이치「왜 그 애가 사라졌을 것 같아?」
일부러 살짝 비틀어 질문을 던졌다.
미키「선배한테 심한 짓을 당해서?」
타이치「정답」
타이치「결국, 난 유사에게 잘 치장된 겉모습만을 보여줬으니까」
타이치「……충격이었겠지」
미키「일곱 번」
타이치「어?」
미키「전 항상 키리찡을 이용해 왔는데요, 본인한테 그게 들킨 횟수예요」
타이치「……꽤 많네」
미키「쬐까 많죠」
타이치「그러고 보니, 월요일의 발차기 날카로웠어」
미키「에헤헤」
타이치「쭉 혼자서 서바이벌하다 보면, 몸도 잘 움직여지나 보네―」
미키「제 재능이 감탄스러워요」
타이치「……그래, 키리찡은 어떻게 했어?」
미키「아니 뭐」
생긋 웃는다.
미키「처음엔 망연자실. 그리고……」
그늘이 진다.
미키「……뭐―, 상응하는 반응을 받았죠」
타이치「괴로웠어?」
미키「……괴로웠……던 것 같아요」
미키「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미키「그래도 습관이 돼서요. 지금까지 콤비였으니까, 쭉 콤비로 지내도 괜찮지 않을까, 뭐 이런」
미키「……마음도요」
타이치「나도 비슷했어」
미키「이야―, 삶이란 건……」
타이치「어렵구나……」
미키「네……」
함께 침울.
타이치「그래, 어쩔래? 이제부터?」
미키「아아, 글쎄요」
미키「굳이 말하자면, 내일 낮에는 사당에 있고 싶네요」
타이치「난 그 세계의 리셋이란 걸 체험해 보겠어」
미키「네, 그럼 전……」
잠시 망설이고 나서, 미키는 몸을 기대왔다.
피했다.
미키「아붑」
침대에 푹 엎어지는 미키.
미키「아야―……야 임마」
타이치「미안, 무심코」
미키「다 취소……」
미키「갈래요. 선배는 그 금고에 있는 저의 상상을 초월하는 레벨의 야한 책으로 혼자서 딸딸이나 치세요」
알고 있어!
아니 그보다.
타이치「잠깐잠깐」
손목을 잡고.
잡아당겼다.
미키「읏?」
바로 품 안.
타이치「미안, 그만 힘이 들어갔네」
미키「……전혀 로맨틱하지 않은데요……」
타이치「와일드가 대세야」
미키「와일드하지도 않은데……거짓말쟁이, 허위광고예요」
타이치「너무 그러지 마」
미키「……하아―, 이제 됐어요, 로맨스는」
타이치「원래 세상이 다 그런 거야」
미키는 한 발짝 어른에 다가갔다.
타이치「좀 어두운데 괜찮아?」
미키「……당연히 어두운 게 좋죠……」
나에겐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옷을 벗긴다.
미키「빠, 빠른 손놀림……저 울어버릴 것 같은데요」
타이치「여자를 벗길 때 방심이란 없어」
미키「최악……」
미키「벗기기 전에……」
타이치「응」
입술.
서로 닿는다.
어긋나지 않게, 착 달라 붙였다.
미키「응……응……」
가벼운 립 토크.
혀를 넣어, 잇몸 부근을 낼름 핥았다.
미키「후냐앙???」
입가에 손을 가져가며, 어안벙벙해 한다.
그리고 조금 울고 있었다.
타이치「뭐 이런 거야」
미키「그런가요……」
타이치「저항은 포기하고 입을 벌리게나」
두 번째. 밀어넣는다.
미키「으읍……아……응, 으응……후아아……으으응…………후읏」
미키「아……옷이 벗겨진다……」
미키가 입가에 흘린 타액을, 스읍 빨아들인 다음.
목덜미로.
미키「우힛……꺄아아아」
상반신을 잔뜩 움츠리며, 미키는 낯간지러운 목소리를 냈다.
팔을 빠져나와, 가슴을 만진다.
미키「아……」
놀란 것 같지만, 저항은 없다.
목덜미를 입술과 코로 애무하면서, 가슴을 만져간다.
내가 알고 있는 미키보다, 조금 봉긋한 가슴.
미키「꺄……응, 으응, 간지, 러워……」
미키「응, 응―, 으응……아……」
귀엽다.
키스마크를 새기자.
미키「앗, 아야……」
어차피 두 사람밖에 없으니 (사쿠라바 제외).
가슴에 파묻힌 채로 어루만진다.
……사실 그럴 정도의 부피는 없지만, 어쨌든 마사지하듯이 데운다.
미키「응……」
타이치「간지러워?」
미키「……별로……」
타이치「바로 익숙해질 거야」
미키「응, 으응……앙……」
쇄골을 이빨로 음미하며, 깨끗한 미키의 상체에 마크를 새겨간다.
미키는 조금씩 익숙해지는지, 서서히 힘이 빠져갔다.
내 움직임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온순해진다.
미키「흐응……앙, 아……꺄……응…………으으응……선배……」
타이치「안겨도 괜찮아」
그렇게 말하자, 미키의 팔이 내 등을 꾹 감아왔다.
타이치「나도 미키한테 안길 테니까」
미키「꺄……으으으으응」
또 키스 마크.
흔적을 남기는 것이, 이상하게 흥분이 된다.
정복욕일까.
그 역시도, 사람과의 연결을 의미하고 있다.
타이치「어때?」
미키「……기분 좋아요……선배 감촉이……」
미키「목, 굉장히 잘 느끼는 것 같아요……저……」
타이치「그럼 더 키스할게」
목과 쇄골 사이에 있는 골짜기가, 남자에겐 없는 시원스런 라인을 긋고 있었다.
혀를 뻗어, 그 아름다운 도랑에 푹 빠졌다.
미키「으읏, 응, 꺄악……응, 하아, 하앙……」
손가락을 아래로.
군살없는 복근 위를 쓰다듬으며, 배꼽을 간지럽힌다.
미키「아아아아……아아……안돼, 선배……배꼽에 넣으면 안돼요……」
넣는다고 생각한 걸까.
웃음을 참으며, 더욱 더 아래로 내려간다.
미키「아…………」
굳어진다.
타이치「괜찮아」
그렇게 속삭이고, 귀에 혀를 넣었다.
미키「으응! 응……아, 안돼, 핥지 마세요, 그런……응……앗」
손가락이 수풀을 통과한다.
응, 수풀.
다시 돌아가, 그 감촉을 즐긴다.
미키「그, 그냥 야한 털이에요……아아……아앙」
타이치「여기 털까지 야한 거야?」
조금 짓궂게 말한다.
미키「……심술쟁이~……」
타이치「하하하」
잠시 동안, 그 살랑거리는 털을 손가락으로 감으며 놀았다.
귀를 삼킨다.
미키「꺗? 아……아……」
오싹하고 목덜미에 닭살이 돋았다.
아―, 귀구나.
깨문다.
뭉클뭉클한 감촉.
미키「으으읏, 으으으으으~~~~~」
이마에 송글 땀이 맺힌다.
상당히 느끼는 것 같다.
가볍게 키스를 하고, 다시 가슴팍으로 돌아간다.
미키「후아, 하아하아……선배……타이치……선배……」
꼬옥.
등의 손이, 옷을 꼭 잡는다.
……등이 조금 땡겼다.
손가락을 스윽, 다리 밑으로 가져간다.
미키「……아……」
검지손가락이 갈라진 틈에 찰싹 덮였다.
중심선이 후끈 달아올랐다.
그리고.
타이치「젖어 있네」
미키「……젖어 있어요」
문지른다.
미키「읏, 으으으으……아우……아앙……하아아, 들어온다, 들어올……것 같아요……」
타이치「응, 들어갈래」
손 끝이 엉겨붙는다.
열린 점막과 체액으로 뒤범벅이 되어 간다.
거미 다리를 떠올리며 더듬어 간다.
미키「꺄읏!」
미키의 무릎이 튀어오르며, 내 옆구리를 친다.
미키「안돼, 열리면, 흐를 것 같아……흘러버려요」
타이치「괜찮아 괜찮아」
소리를 내며, 턱을 빨아들였다.
미키「싫어……안돼요……너무, 기분 좋으……니까……」
미키의 성기와, 내 손가락이 접착해 간다.
절구를 휘젓는 다섯 개의 절굿공이.
질퍽질하게 녹아내린다.
미키「핫, 핫, 아, 으응……응, 드, 들어……온다……끄응」
날뛰는 다리.
손가락을 더 움직인다.
성기에서 흐르는 타액이 엉겨붙어 흘러나왔다.
그것은 손바닥에 쌓이고, 손가락 사이에서 시트로 흘렀다.
미키「아아아아아……」
부끄러운 숨결을 내뱉는다.
타이치「질질 흐르네」
미키「……으……」
축축해진 눈동자가 나를 노려보았다.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용서가 거기에 있었다.
미키「응, 흘려……버렸어요……」
미키「선배도, 여기……흐르고 있는데요?」
타이치「……」
뭐랄까.
키스를 했다.
미키「응, 으으으응, 으흡……응, 읏……뜨거워……선배, 뜨거워요……으읍……으으읍, 응―으으응……」
담담한 키스.
미키와 섞이고 싶어진다
점막만으로는 부족했다.
손가락이 미키의 내부를 휘젓는다.
섬세한 벽.
세로 방향으로 쓰다듬는다.
미키「으응으으으으으으응!?」
허리가 휘어진다.
손가락을 접착한 채로.
미키「응, 으읍, 으으응, 츕, 츕, 으으으응」
미키가 내 혀를 빨아왔다.
가만히 있어 본다.
혀로 사탕을 먹듯이, 조심스럽게 빨아들인다.
미키「응, 으응……응, 으응, 하, 하응……응……」
조용히 허리가 내려간다.
작은 엉덩이가, 서서히 시트로 내려갔다.
미키「후왓……차가워……?」
타이치「네 거야」
부드럽게 가르쳐 준다. 결과적으로는 괴롭히기.
미키의 얼굴은, 온몸의 피를 모은 것처럼 빨개졌다.
미키「벌써……너덜너덜」
타이치「예뻐」
미키「……좋아해요」
타이치「응」
가운데손가락으로 질 안을 쓰다듬는다.
정중히 정중히.
미키의 체액을 닦아내듯이.
미키「읏, 으……흐앙, 아아, 응, 으읏……」
움찔움찔 허리가 들린다.
꽃잎이 흔들리듯이, 움찔거리고 있다.
길게 늘어진 애액은, 뒷구멍까지 적셔버린다.
손가락을 넣고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다.
……허리가 아파질 정도의 열정이, 나를 몰아쳤다.
손가락으로 동그란 모양의 입구를 어루만진다.
미키「우와……뭔가, 뭔가……안돼, 안돼, 뭔가, 안돼! 선배, 위험해요, 거기 위험해, 후아아아앙!」
이상한 말을 하고 있다.
손가락을 빠르게 흔들었다.
입구 주변을 스윽스윽 왕복했다.
미키의 사지가 들린다.
꺾어진 다리와 후두부를 치우고, 등골이 뾰족하게 튀어나왔다.
미키「앗, 안돼, 앗, 아앗, 응, 하앗……아―ㅅ, 아―ㅅ」
그래도 손가락은 계속 움직인다.
미키「……………………」
3초 정도 미키는 말도 호흡도 잊었다.
그리고.
미키「아앗, 앗, 앗, 앗, 아아앗, 응, 앗, 아아아아아아아―――!」
손가락이 꾹 조였다.
수축하고 있다.
덮이고, 풀린다. 그것의 반복.
미키「하―……핫, 하―……아…………응……」
천천히 문질러 본다.
미키「히잇, 으앗, 안돼……」
진짜로 도망치려 한다.
손가락을 뺐다.
난폭한 호흡을 쉬고 있는 입술을, 가볍게 빨았다.
미키「으……하으……하응……」
거의 무의식으로, 미키는 마주닿은 입술을 원해왔다.
얼굴을 떼어놓고, 실의의 한숨.
거의 축 늘어진 미키.
엎드리게 하고, 옷을 벗겼다.
미키의 엉덩이가 닿아 있던 곳이, 산 모양으로 젖어 있었다.
엉덩이 사이에 스며든 애액과, 땀.
흥분하지 않을 수가 없다.
미키「하아―, 하아―, 하아―……」
서서히 호흡을 가다듬으며, 잠에 빠지려 하는 미키.
그 등 뒤로 살그머니 다가갔다.
팔을 감고, 허리를 위로 올렸다.
미키「……하아……하아……선, 배?」
자기가 누워 있다는 것을 눈치챈다.
타이치「들어간다」
미키「으응~」
바로 등 뒤에서 속삭이자, 미키는 달콤하게 신음했다.
긴 애무로 열린 부분에, 조심스럽게 들어갔다.
미키「……으으응……으―, 으으으으―」
저항감에 신음한다.
하지만 젖어 있어서 괜찮았다.
자연스러운 느낌으로, 스윽하고 안쪽에 닿았다.
도중에 희미하게 걸린 것이, 미키의 순결이었을 것이다.
미키「아, 아아아, 아……」
놀라고 있다.
활짝 열린 입.
떨리는 목소리가 새어나온다.
허리를 앞뒤로 흔든다.
찰싹 달라붙는 내벽.
틈새없이 조여 온다.
그 좁은 길을 확인한다.
미키「아으, 앗, 으읏……커다래」
좁아서일까.
미키에게는 분명히 더 힘들게 느껴질 것이다.
허리를 열심히 흔들며 안쪽으로 밀어넣는다.
귀두는 응어리가 진 부분에 닿고 있었다.
타이치「……딱 맞네. 나하고 미키」
미키「싫어……부끄러워……」
물건이 젖는다.
내부에서 분비물이 늘어났다.
각도가 좋았던 건지, 거의 일직선으로 이어져 있는 것 같다.
안에 완전히 감싸인 내 물건도 따뜻하고, 빡빡했다.
움직인다.
처음엔 천천히.
점점 빠르게.
이어지는 움직임으로.
미키「아……아아, 응, 앗, 앗, 앗앗앗앗……읏!」
살짝 찌를 때의 귀여운 스타카토.
짧게 끊어지는 비명의 톤이 날카롭게 올라간다.
미키「후아, 앗, 앗앗앗, 아아아, 응, 꺄앗……으응~!!」
바로 타액을 흘렸다.
쾌활한 미키가 흐트러지자, 달콤한 소녀의 성이 드러났다.
미키「아아아, 아으읏, 아, 끄읏, 아앙, 아아앙!」
한 번 흔들 때마다 작은 엉덩이가, 골반을 받아들인다.
볼기를 때리는 듯한 착각마저 든다.
날씬한 등이, 움직임에 맞춰 흔들린다.
견갑골이 한계까지 튀어오르고, 내려간다.
미키가 한쪽 팔을 당기자, 그 타이밍도 좌우로 변한다.
아름답다.
만져 본다.
젖어 있다.
소립자를 떠올리게 하는 적은 양의 땀이었다.
손가락은 꼬리뼈까지 내려갔다.
미키「꺄으으으으으으읏!」
큰 반응.
질이 강하게 반응했다.
조인다. 조인다. 조인다.
세 번에 걸쳐, 압력이 가해졌다.
미키「아읏, 으아아아아……」
축축해진 부분에서, 애액이 이슬을 이루며 떨어졌다.
뚝뚝 떨어지는 소리가, 귀에 들릴 정도로.
대량으로 흘리고 있었다.
타이치「미키……」
자만할 것 같았다.
미움받고 있다면, 이런 반응을 보이진 않는다.
이런 더러운 나를.
미키는 좋아해주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 좋아한다는 의미는, 아마 일반적인 의미와는 미묘하게 다를 것이다.
하지만.
나조차도 얻을 수 있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다.
격정이 솟구쳤다.
더 이어지고 싶다. 좀 더!
미키「후읏, 핫, 하앙, 아앙, 앗, 앗, 하앙, 하아앙! 으읏……힉, 으읏, 응……우앗, 선배!」
미키가 시트를 움켜쥐었다.
내가 미키에게 살을 박고 있는 것과 같은 이유로.
허리를 비튼다.
글씨를 쓴다.
미키「……아앗!?」
가벼운 바이브가 섞인 신음소리.
동시에, 미키는 한쪽 다리를 일직선으로 만들었다. 쭉 뻗었다.
곧게 뻗어서, 더욱 더 직선을 요구하듯이.
글를를 계속 써간다.
앞뒤 움직임도 섞어서.
미키「읏, 으으읏, 아″, 아잇, 으으으응, 으으으으으응~~~~~~~~!!」
작은 엉덩이가 부들부들 떨렸다.
뒷쪽의 작은 구멍까지, 놀라서 수축하고 있다.
크라우칭 스타트보다 낮은 자세로, 미키는 신음한다.
내가 들어가면, 허리의 무게 때문에 미키는 꺾어진다.
하지만, 펜 끝으로 질 안에 글씨를 쓰면, 금세 엉덩이를 위로 올려 몸을 く자로 유지시켰다.
미키「핫, 하앗, 선배, 안돼, 위험해요, 위험……아아아, 앗, 앗, 아읏, 읏……읏″」
폐를 짜내서, 소리를 내뱉는다.
그런 어눌한 목소리도, 나에게는 감미로웠다.
더욱 더 듣고 싶어진다.
힘차게 율동한다.
미키「읏, 앗, 으으으으……히, 히익……으긋, 그으응……으으으으응!」
미키는 베개를 악물었다.
음란한 소리를 참고 있다.
턱 밑에 손을 가져가, 살그머니 들어올렸다.
미키「후아?」
베개에서 뗀다.
타이치「소리, 내」
미키「그치만……히익」
관능의 딸꾹질 소리에 맞춰, 하복부가 꾹 조인다.
타이치「목소리, 듣고 싶어」
미키의 머리에 코를 가져갔다.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헤쳐가며, 두피를 핥았다.
미키「부, 부끄러운 소리가……」
타이치「안돼?」
미키「……알았어요」
포기하고 눈을 감는다.
미키는 스스로 허리를 뒤로 쑥 내밀었다.
난도 몸을 뒤틀며, 거기에 맞췄다.
완전히 밀착한 하반신을, 서로의 땀이 찰싹 붙였다.
타이치「간다?」
미키「……아……아, 아……」
한번 한번, 각도가 다른 왕복.
그것만으로 미키의 목덜미에 닭살이 돋는다.
그렇게나 많이 느끼는 걸까.
미키 역시……나와 같은 갈망을 가지고 있던 건지도 모른다.
이어지고 싶어하는.
미키「후앙, 하앙, 앗, 앗, 아아아……하앙, 으응!」
미키「싫어, 안돼, 위험해, 잇˝……안돼, 안돼, 이제 안돼, 이제 안돼!」
아직이다.
아직 완전히 하나가 되지 않았다.
미키「아읏, 아, 앗앗앗, 아아아~~~~, 아―――, 응, 으으으응, 아아아아아아아~~~~~!」
성의 연주는 레가토로 변했다.
반듯하게 정렬된 미키의 목소리.
도중의 희미한 공백에서, 미키는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좀 더. 좀 더―――
미키「으으으, 아―, 아아아아아아……아핫, 하앙, 핫……안돼애, 너무 깊어……안돼애애」
체력이 다 떨어져, 미키의 목소리는 애원하는 것처럼 들렸다.
하지만 감도는 떨어지지 않았다.
미키「히익!?」
규칙적인 움직임 중에 가끔씩 허리 글씨를 섞으면, 온몸이 팔짝 뛰어오른다.
미키「아, 아, 아……안……」
갑자기 온몸이 경련했다.
미키「아……………………~~~~~~~~~~~!!」
지금까지와의 차이점은, 등의 움직임으로 알 수 있었다.
한 발짝 늦게, 맹렬한 경련이 내부에서도 일어났다.
타이치「으……」
초 단위로 쉴새없이 몰아치는, 세밀한 수축.
질벽을 종횡무진 돌아다니며, 온몸을 조여온다.
미키의 지배마저 벗어나 날뛴다.
미키「아읏……하아……앗……하앗, 하앗……」
주인인 미키는, 감각의 폭주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잠시 후.
자신의 체중에 의해, 미키의 자세가 무너졌다.
하복부에 손을 집어넣어 받쳤다.
복근이 일정 간격으로 씰룩거렸다.
움직인다.
미키「힉……지, 지금 움직이면……죽을 것 같아요……」
아직은 아니다.
움직임은 더욱 격렬함을 늘린다.
미키「아아아아아……」
절망의 한숨.
흥분은 되고 있다.
하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다.
상처의 아픔이, 날 미묘하게 억제하고 있었다.
몸을 흔들 때마다 전신에 느껴지는 상처의 비명.
하지만.
미키의 내부에 싸지 않고 끝낼 수는 없다.
벽에 바싹 다가간다.
미키「아, 안돼, 거기……앗앗앗앗……으아아……안돼! 너무 빨라요 안돼」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미키「아읏, 앗, 읏, 으앗……저려……와……아아아아앗」
목소리의 리듬도 어긋났다.
미키「선배, 선배, 하아―, 하아아, 아읏, 아아아아아아아」
얼굴이 보이지 않아서 불안한 걸까.
미키「선배, 선배, 타이치 선배……」
머리카락에 코 끝을 갖다댄다.
바로 등 뒤에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미키의 달콤한 향기와, 성기를 쓰다듬는 감촉이 섞여서 뇌를 저리게 한다.
섬세한 벽에 덮인 내부를, 큰 동작으로 왕복한다.
미키「모, 모르겠어……이제, 모르겠어……아아……안돼, 안돼안돼, 선배, 안돼」
중얼거리는 듯한 목소리.
이제 쓰러지고 싶은데, 자극이 있어서 안 된다.
그런 느낌.
난 더욱 더 흥분해, 깊은 삽입을 계속한다.
뿌리까지 넣은 순간, 전신을 감싸안는 섬세한 주름.
녹아내릴 것 같다.
녹아내려, 미키의 자궁으로 흘러갈 것 같다.
그런 감각.
미키「굉장히, 굉장해애애……이상해질 것 같아……」
난 이미 이상해졌는데.
갑자기, 성기 주변이 저린다.
쾌락이 고통을 뛰어넘었다.
타이치「아……갈 것 같다」
미키「……빠, 빨리, 가세요……」
괴로운 듯이 말한다.
미키「미키도 갈래?」
미키「으으으, 무리, 무리예요……」
타이치「안돼, 미키도 가자」
좌우로 흔든다.
미키「히익……그, 그거 안돼……숨을 못 쉬겠어요……」
타이치「이런 거?」
미키「아―안돼애!」
두 사람의 결합부가 뒤틀려, 연결이 어긋난다.
타이치「아……미키……」
뽑히자마자, 풀썩 쓰러진다.
불쌍하지만.
허리를 들어올려, 다시 넣었다.
미키「으으으……」
귀가 빨갛다.
땀도 온몸에서 난다.
체력이 달라서인지, 아무래도 미키에게 부담이 심했다.
허리로 누른다.
미키「아……으으……」
뜨겁게 질퍽거리는 그곳을 음미한다.
미키「아……갈 것 같아……」
타이치「어, 가는 거야?」
미키「갈……것……」
엉덩이가 휙 젖혀진다.
밑에서 내 허리를 들어올렸다.
뿌리까지 꾹 조였다.
쾌락이 늘어났지만, 아직 절정에 달하진 않았다.
미키「하―앗, 하―앗……」
숨이 거칠다.
움직인다.
미키「아―, 하아……하아……선배……으으으!」
미키의 활력을 쥐어짜낸다.
미키「아, 안돼, 안돼, 간다, 가―――」
경련.
그저 떨 수 있는 힘밖에 남지 않았다.
사지가 움직이지 않자, 관능은 체내에서 날뛰어, 미키는 더욱 더 몰렸다.
미키「앗, 또, 또 간다……」
몇 번째일까.
미키는 이미 멈출 수 없게 되었다.
미키「아으……」
말없이 다시 절정에 달한다.
내 관능도, 조금씩 차오른다.
곧 뿜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미키「아, 안돼요, 아……」
물건이 조여진다.
그 압력까지도 이용해 움직인다.
미키「으으으으으」
미키에겐 괴로운 행위.
하지만.
이렇게 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다.
미키「……안돼……죽을……죽을 것 같아……으으읏!」
불규칙한 수축이, 수없이 되풀이된 자극을 전해주었다.
아아―――
내 끝이 왔다.
힘차게 흔들며, 마지막으로 안쪽 깊숙히 밀어넣었다.
싼다.
미키「하아아아……아……으……」
미키의 질이, 그것을 삼킨다.
꿈틀대는 질벽이, 목의 움직임과도 닮았다.
나를 부른다.
미키「하앗, 하앗, 하앗……하으으……하으으……으으……」
이어진 채로, 함께 누웠다.
미키「하, 하아, 하앗……하아」
말을 주고받을 여유는 없다.
미키는 이대로 잘 것 같았다.
타이치「……미키」
꼭 껴안으며, 입술이 닿는 모든 부분에 키스를 했다.
그리고 나도, 그대로 눈을 감았다.

일어나자, 미키는 내 품 안에 있었다.
미키「후암……」
눈이 마주친다.
미키「……꺄아!?」
타이치「야야!」
미키「어, 어라? 이거?」
어째 놀라고 있는데.
타이치「야한 짓 했었잖아」
미키「아, 맞다……맞다맞다」
혀를 내민다.
타이치「너 말야……」
미키「히힛……그치만, 평소 때의 성희롱 이미지밖에 없는 걸요」
타이치「……으―음」
미키「아―아, 나 처녀가 아니게 되어버렸네」
타이치「음. 이제 훌륭한 비처녀다」
미키「으직」
코를 깨물렸다.
타이치「아얏!」
미키「그리고 쪽―!」
달려들었다.
타이치「읏샤」
바로 정면에서 받은 다음, 뽀뽀를 했다.
미키「으응……응―……으으응……」
아침의 타액교환.
……섰다.
미키「으……이, 이건?」
타이치「아니 뭐」
미키「……할래요?」
타이치「하고 싶은데……시간 괜찮아?」
미키「아―……」
미키「그럼 마지막으로 쪽―!」
여자는 뽀뽀를 좋아하는구나.
미키「응―」
일요일엔 자명종을 10시로 맞춰놓지만.
그 보람도 없이 장장 1시간, 미키와 뽀뽀를 했다.
미키「짜―안」
교복을 말끔하게 갈아입은 미키가 나타났다.
미키「말끔 깔끔―」
타이치「음」
미키「타이치군도―, 말끔 깔끔―」
타이치「음―」
함께 목욕을 했던 것이다.
비장의 식수였지만, 어차피 오늘로 끝이니까 상관없다.
미키「……뭐하세요?」
타이치「자」
미키「아―, 차가운 음료수!」
미키「어, 근데 어떻게?」
타이치「목욕할 동안, 소형 냉장고의 급속 모드로 얼렸지」
미키「유리구슬 마개 달린 레몬에이드다」
타이치「타자키 상점에서 80엔」
미키「예쁘다―」
타이치「구슬을 통해 세상을 보면, 반짝반짝 아름답게 빛나지」
미키「여름 기분 나네요」
타이치「음」
둘이서 레몬에이드를 마셨다.
미키「몸도 깨끗해졌고, 레몬에이드도 싹 비웠고, 그럼 슬슬 가볼까요―」
타이치「나도 부활동하러 가야지」
미키「……진짜로 부활동하시려고요?」
타이치「준비는 다 됐으니까」
타이치「그 부러진 안테나로도, 웬만한 곳에는 다 닿을 거야」
미키「저기」
미키「저하고 함께, 같은 시간을 살지 않으실래요?」
물어보는 눈동자.
진지한.
타이치「……미안해」
미키「그런가요」
타이치「잊고 싶어. 어쩐지 뒷맛이 씁쓸해서 말야」
미키「……매주, 선배를 봐 왔어요」
미키「각각의 선배는 동일인물이 아니란 말예요?」
타이치「그렇게 되겠지」
미키「지금 살아서 이야기하고 있는 우리들은, 지금 한 주 뿐인 인물이란 말예요」
타이치「그래도 미키. 하나 잊고 있는데」
타이치「내 이성은, 굉장히 얇아서 부서지기 쉬워」
미키「아……」
타이치「계속 같이 있다 보면, 미키가 위험해」
타이치「미키는 무지 귀여우니까, 그만 무슨 짓을 해버릴 지도 모르고」
머리를 쓰다듬는다.
미키「……맘대로 안 되네요」
타이치「다 그런 거야」
타이치「뭐 응석부리고 싶으면, 언제든지 그때의 쿠로스 타이치에게 의지해 줘」
미키「…………」
대답은 없었다.
타이치「자, 가 볼까」

타이치「도중까지는 같이 가자」
미키「네」
걷는다.
도중에, 미키가 손을 잡았다.
타이치「……응?」
미키「잠깐 빌릴게요!」
타이치「응」
신기했다.
미키의 손은 작고 가늘었다.
이런 손으로, 여덟 명밖에 없는 세계의 조정자로써 살아남아 왔던 것이다.
뛰는 나에게 발차기를 넣은 타이밍도 그렇고.
옥상에서 키리를 살렸을 때의 움직임.
그것은 보통 일은 아니었다.
찰나의 경직을 이겨내고 움직이는 사람.
여기에 보통과 비범함의 차이가 있었다.
계속 살아남아, 자신을 그 경지까지 단련한 미키.
감탄스러웠다.
타이치「그럼, 여기서 이별이네」
미키「…………」
손을 놓지 않는다.
타이치「미키?」
미키「저, 저기―, 으―음」
타이치「아직 얘기하고 싶어?」
미키「네, 실은……」
타이치「실은?」
미키「으음, 그게―, 아―, 분명히……」
정체.
구조의 손길을 내민다.
타이치「그러고 보니」
미키「네」
얼굴이 빛난다.
강해져도 여전히 미키는 순진했다.
타이치「옥상에서 키리를 살려줬잖아?」
미키「네」
타이치「난 눈 하난 좋아서 알았는데」
미키「……네에?」
타이치「그건 타산적인 사람의 움직임은 아니었어」
눈동자가 크게 떠진다.
타이치「그렇게만 말해 둘게」
미키「……………………」
벼락을 맞은 것처럼, 우뚝 멈춰섰다.
타이치「……지금의 미키 그대로 살아 줘. 모처럼 그 상태까지 자신을 유지해 왔으니까」
타이치「미래에서 살아갈 다른 나를, 겁나게 좋은 여자가 된 미키가 위로해 준다면 기쁠 것 같아」
미키「……네, 네에……저, 겁나게 좋은 여자가 될 테니까……」
떨리는 목소리.
타이치「좋아, 그러면 됐어」
타이치「그리고 이건 일기. 사당에 잘 챙겨서 넣어 줘」
받아드는 손에 힘이 없다.
미키「…………네」
고개를 숙여, 마지막 키스.
바로 떨어졌다.
미키「……」
타이치「그럼그럼, 다음주에 봐」
이 인사는 마음에 든다.
쿨하게 마무리짓는 거야.
고상하게 발꿈치를 돌렸다.
신사적으로 걸어간다.
미키「……선배!」
멈춘다.
미키「이번주도―! 신세! 많이 졌어요!」
응원단 식의 인사에, 입가가 미소를 띤다.
타이치「……그래」
미키「다음주에 봐요!」
손을 붕붕 흔든다.
그래그래.
혼자서 살아가는 사람은 힘내야지.
자기 자신을 소중히 여긴다는 건, 때로는 괴로운 길이지만.
극단적이지만.
자기희생은, 반대로 말하면 자신을 위해 모든 걸 바친 행동이라고도 말할 수도 있으니까.
미키는 절대적으로 올바르다.
타이치「여―어」
이렇게, 우리들은 헤어졌다.

자 그럼.
난 옥상에 올라가, 토모키의 시체를 정돈했다.
안테나를 뽑아 주……려고 했지만 이미 경직되어 있어서 불가능했다.
타이치「딱딱한 자식」
글자 그대로다.
의자에 앉히려고 했지만, 역시 경직되어 있어서 불가능했다.
타이치「……으―음」
어쩔 수 없어서 발목을 잡고 어깨를 짓밟아, 억지로 수평으로 만들었다.
뿌지직 소리가 났다.
미안, 토모키 시체.
이미 논 소울 토모키인가.
수평해진 토모키를, 펜스에 세웠다.
타이치「좋아, 토모키. 이걸로 너도 부활동 동료다. 둘이서라도 열심히 해 보자!」
토모키의 시체「…………」
반응이 없다. 마치 시체같다.
아니, 시체자너…….
안테나는 부러져 있었다.
그래, 이제는 알겠다.
토모키는 안테나를 부수려 했던 것이다.
미사토 선배를……누나를 증오한 나머지.
방해하려 했다.
그리고 부러진 안테나가……토모키를…….
선배는 옥상에 와서, 동생의 시체를 보았다.
그리고……떨어졌다.
토모키는 우연히 죽은 것이다.
타이치「내참, 너 때문에 안테나가 짧아져서 힘들단 말이다」
토모키의 시체「…………」
타이치「침묵이냐. 무뚝뚝한 자식」
자 그럼.
토모키의 시체와 즐겁게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부활동을 해 볼까.
마이크의 톤을 조정한다.
전원 ON.
주파수는……손대지 않아도 괜찮으려나.
뭐, 대충 해 두자.
분명히……이걸 이렇게……됐다.
방송 개시.
타이치「으―음……」
타이치「음―, 어떻게 할까」
고민한다.
특별히 할 말은 없는데.
음―.
좋아!
타이치「에―, 여기는……군죠학원 방송부……국명은……에―……레드 스콜피온, 빨갛게 휘어졌습니다. 푹푹 찔러넣고 싶어질 정도네요―」
타이치「오늘은 황천길로부터, 데스 토모키씨를 게스트로 모셨습니다」
토모키의 시체「…………」
타이치「쿨한 샤이 보이군요」
타이치「에―」
타이치「우선 살아있는 분, 계십니까?」
타이치「……만약 계시다면, 어떻게든 살아주세요」
타이치「죽을 때까지는 살아주세요」
타이치「역시 모든 가치관은 살아있어야 성립되는 거겠죠, 데스 토모키씨?」
토모키의 시체「…………」
타이치「겁나게 과묵한 사나이입니다」
타이치「뭐, 죽었으니까 어쩔 수 없지만……」
타이치「인간관계라, 그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아닐까?」
타이치「타인으로부터의 영향이, 우리들을 만들어가는 거야」
타이치「난 그걸 뼈저리게 실감했지만, 너희들은 어때?」
타이치「혼자서 살아갈 수 있다면 되겠지만……그럴 만한 강함이 있다면」
타이치「하지만 대부분의 녀석들은 약하니까. 나도 그렇고」
타이치「정말로 혼자가 되면, 분명히 망가질 거야」
타이치「악의밖에 없는 세상이지만」
타이치「대부분이 악의로 차 있지만」
타이치「……그래도, 사람이 있어」
타이치「나 이외의 누군가가」
타이치「그건―――」
미키「인간은 자기만 좋으면 되는 거예요, 선배」
멈춘다.
본다.
미키.
타이치「미키……?」
미키「노트, 두고 왔어요」
타이치「어, 어라……?」
타이치「시간, 괜찮아?」
미키「별로 안 남았으려나요」
타이치「위험하잖아. 빨리 가야지」
땀투성이다.
뛰어온 걸까.
무엇을 위해.
미키「……아―, 지금 가봐도 시간에 안 맞을 지도?」
타이치「무슨 말이야. 빨리 가!」
미키「제 볼일이 끝나면 갈게요. 저, 저를 굉장히 사랑하는 사람이니까요」
타이치「볼일?」
표정이 긴장된다.
미키「선배, 이 세계는……우리들이 있던 세계가 아니에요」
타이치「뭐?」
미키「이걸 읽어 주세요. 제일 알기 쉬우니까요」
미키는 두꺼운 일기장을 꺼냈다.
미키「52페이지부터」
읽어본다.
○월 ×일
대규모 실종이 확인되기 시작한 지, 불과 1개월.
순식간에 사람들은 사라져가고 있다.
언제 사라지는 걸까.
어떻게 사라지는 걸까.
사라지는 순간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원인을 해명할 틈조차, 인류에겐 없었다.
카미사카시의 인구도, 지금은 반 이하로 줄었다.
학생 수도 줄었다.
쿠로스라는 학생은 여전하다.
위기상황인데도, 여전히 활기차게 살아 있다.
쿠로스는 중환자 중 한 명이지만, 가장 건강해 보인다. 짓궂은 일이다
난 언제 사라지는 걸까.
○월 ×일
학교는 자유등교가 되었다.
학생이 10분의 1로 줄어버려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난 자택에서 피규어만 만지고 있다.
하지만 보는 사람은 없고, 보여줄 사람도 없다.
자기만족에 지나지 않는다.
가족이 사라져서 좋았다.
가족의 소멸을, 난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발전소가 정지되었다. 당연한 일일까.
○월 ×일
피규어를 처분했다.
사람이 사라진 것만으로도, 취미마저 무의미하게 될 줄은 몰랐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안정된 세상.
그것이 취미의 즐거움과 이어져 있던 것이다.
사람을 싫어하는 나 역시, 세상과 이어져 있었다.
유통 기능은 간신히 살아있다.
식료품도 인원수가 줄어든 덕분에 어떻게든 조달되고 있었다.
물물교환이 늘어났다.
갑자기 스테이크가 먹고 싶다.
○월 ×일
거리에 나와도 사람을 거의 볼 수 없게 되었다.
아직 살아있는 사람은 있을까.
난 배회하게 되었다.
TV는 기능을 잃었다.
라디오도 잡음뿐, 뭔가 들리지는 않는다.
조용하다. 미칠 것 같다.
○월 ×일
오늘도 아무하고도 못 만났다.
○월 ×일
운송 트럭이 왔다.
하지만 운전사는 없었다.
샅샅이 찾아봤지만 없었다.
엔진이 걸린 트럭만이 남아 있었다.
두렵다. 난 두렵다.
○월 ×일
트럭의 화물을 꺼냈다.
빵뿐이다.
하지만 카레빵은 필요없다.
내 몪을 나누어 저택으로 옮겼다.
카레빵 케이스는, 학생식당에 가져다 놓았다.
누군가 살아있다면 먹을 것이다.
○월 ×일
오늘도 아무하고도 못 만났다.
○월 ×일
누구 없을까…….
○월 ×일
야마노베 미키를 만났다.
난 환호했다.
하지만 미키는 두려워하고 있었다.
쿠로스가 어떻다고 말했다.
쿠로스가 위험?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야마노베는 도망쳐버렸다.
난 한밤중까지 찾았지만, 발견되지 않았다.
○월 ×일
야마노베가 죽어 있었다. 끔찍하다.
살해당해 있었다. 누군가에게.
쿠로스? 쿠로스가 위험하단 말은 이런 뜻이었나.
분명히 쿠로스는 중증 부적응자이긴 하지만.
뭔가 원인이 있는 것 같다.
난 사람을 만나고 싶다.
내일은 쿠로스를 찾아보려고 한다.
누구든 상관없다.
일기는 여기서 끊어져 있다.
타이치「……이건, 사카키바라의 일기?」
미키「예전에 여러모로 조사했을 때……찾은 거예요」
미키「여긴 이세계예요」
미키「똑같지만, 다른 세계예요」
미키「……원래의 주민이 없는, 텅 빈 세계예요」
미키「저희들은 여기에 내던져진 거예요. 아마, 그 합숙에서 돌아올 때……」
심장이 뛰었다.
합숙에서 돌아올 때.
그럼, 그럼―――
내 눈이―――
타이치「……어디에 있었어?」
미키「아무 집에나 대부분 있어요. 그래도 제일 알기 쉬운 게 그거예요」
미키「이 세계의 선배하고 제가 따로 있었다는 거죠」
미키「그리고, 아마 사카키바라 선생님은 살해당했을 거예요」
미키「학원 복도가 피투성이였으니까요」
타이치「……내가 한 건가」
미키「이 세계의 선배예요」
타이치「내가……」
미키「이 세계의 선배예요!」
타이치「그래도, 나야」
일기를 떨어뜨렸다.
타이치「나참, 정말 쓸모없는―――」
미키「괜찮아요」
안겼다.
미키「그러니까, 진정해요」
같이 안는다.
작은 미키가, 큰 안심을 전해주었다.
타이치「……세계가, 교차하고 있는 거였어」
그 교차점이, 지금의 일주일간의 세계.
황당무계한……SF 같은.
하지만.
타이치「……그런 말을 해주려고, 일부러 돌아온 거야?」
미키「네……」
타이치「의미가 없잖아」
미키「그러고 보니 그렇네요. 지금 알았어요」
타이치「……거짓말」
미키「네」
타이치「바보」
미키「그치만……」
미키「사랑을 했어요」
타이치「……」
미키「선배하고 사랑을 하고……야한 짓을 하고……」
미키「이 선배를 좋아하게 됐어요!」
꼭 껴안는다. 강하게.
미키「지금의, 이 선배를요」
미키「사람을 좋아하게 될 줄은……몰랐어요……」
미키「이렇게 아플 줄은, 몰랐어요!」
미키「가슴이……꾹 조이고」
미키「눈물이 나오고」
미키「콧물이 나오고」
미키「표정이 꼴사나워지고, 마음이 통제불능이 되고」
미키「참을 수가 없었어요」
미키「……따뜻해요」
타이치「고맙긴 한데……그럼 키리찡은 안 좋아했던 거야?」
미키「좋아……했을 거예요」
미키「그치만, 망가져버렸죠……」
미키「키리찡을 몇 번이나 죽였어요」
미키「제가 살기 위해서……무서워진 선배의 의식을 상대하는 건, 키리밖에 없었으니까요」
내 허를 찌르기 위해.
미키「하세쿠라 선배하고 타이치 선배. 이 두 명의 괴물로부터, 필사적으로 살아남아야 했으니까요」
타이치「미안해」
미키「……지쳤어요」
미키「이제 전……죽이고 싶지 않아요」
미키「괴로워요……그건……」
미키「키리찡을 한 번 죽일 때마다, 마음이 몽땅 빠져나가요」
미키「……그런 기억을, 몇 번이나 반복하고……품으며……살아가고……그건……그건」
내뱉는다.
미키「지옥이에요」
미키「그러니까……저……결심했어요」
미키「……모든 것을, 잊기로요」
의연하게 말했다.
결의가 말을 통해 전해졌다.
타이치「……미키는, 착한 아이야」
미키「망가졌는걸요……그리고 사람을 사람으로 생각하지도 않았고……」
타이치「나보다는 착한 아이야」
타이치「나같이 한심한 괴물이 되려면, 미키는 아직 멀었어」
미키「……」
말로.
미키의 마음을 두드려 본다.
노크하듯이.
살며시.
타이치「미키한텐 재능이 없어」
미키「아하하……하하하……」
미키「그런, 가요……하하하……하……으으……」
울먹이며 웃는다.
타이치「……삼인 데이트, 재밌었어」
미키「네……」
타이치「외로웠지, 혼자서 사는 게?」
미키「……별로요. 저, 제 자신이 제일 소중하니까요」
타이치「그것도 거짓말」
타이치「겨우……이해하게 됐는데」
없었던 일로 되어버린다.
고유한 내가 되기 위해서라면, 난 어떤 희생이라도 치를 것이다.
미키 역시, 그렇게 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갑자기, 미키를 존속시키고 싶었다.
타이치「……사당에 가자. 차로 가면―――」
미키「이미 늦었어요」
그 때 갑자기.
하늘이 물들었다.
타이치「!?」
미키「시작했다……」
지금까지 유지해 왔던 미키가.
쌓아올린 미키가.
리셋된다.
진정으로.
진정으로 세계가 되감아진다.
그것은……미키의 주관시간의 삭제. 즉.
부분적인 소멸을 의미한다.
미키가 떨고 있다.
내 품 속에서.
공포.
그렇다.
미키의 공포는, 내 공포보다 클 것이다.
무서운 게 당연하다.
내 머리를 가슴 깊숙히 잡아당긴다.
미키「무섭네―, 계속 안아주실 거죠?」
타이치「안심해. 나도 꽤 무서워」
미키「이렇게 대화한 기억도, 전부 사라지고……」
안은 손으로 등을 두드린다.
타이치「너무 그렇게 생각하지 마」
미키「에우……」
타이치「어떤 식으로 사라지는 거야?」
미키「저도 미경험이라」
타이치「그건 그렇네」
미키「사쿠라바 선배, 어떻게 됐을까요?」
타이치「그 녀석 이미 죽었어. 내 안에서는」
미키「또 그런 애정없는 말을……」
타이치「네가 할 말이냐!」
미키「아하하하하」
마치 일상의 대화같았다.
타이치「내참, 쓸데없이 빡세게 나오긴, 세계란 자식」
미키「저기요, 타이치 선배」
타이치「뭔가, 마이 걸」
미키「좋아해요」
내가 마지막으로 들은 말이었다.

세 개의 손이 겹쳐졌다.
하나는 나.
하나는 토모키.
하나는 사쿠라바.
그렇게 친하지는 않았다.
사쿠라바와는 나름대로의 인연이 있었고.
토모키는 위트가 부족한 남자였다.
난 나대로, 남자 친구들은 처음.
서로 다른 인간들이라, 관계는 이뤄지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다른 인간들이기 때문에, 더욱 마음이 맞는 일도 있었다.
세 사람을 하나로 묶은 것.
……그것은 에로스였다.
부활동의 나태한 대기시간, 갑자기 사쿠라바가 중얼거렸다.
사쿠라바『부르마는 참 좋구나』
이런 혼잣말에 의해 우정의 꽃은 피어났다.
우리들은 부르마 세대는 아니다.
그래서 더욱, 그 멋진 페티시 의류에 열광적인 동경을 품고 있었다.
왜냐면 반바지 따윈 시시한걸.
그런 연유로―――
세 사람「우리는 비록 태어난 날은 달라도, (동정과 학교) 졸업은 같은 날, 같은 때에 하기로 맹세한다」
졸업하는 그 날까지, 동정으로 남기로 맹세했다.
배신은 없음.
사실, 난 이 시점에서 이미…….
하지만, 영혼은 동정이었다.
문제 없음.
훗날 사쿠라바는 살짝 임포텐츠, 토모키는 시스콤이라는 게 판명되었다.
모두 문제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그 때 우리들은『약속』을 하고 싶었다.
우정놀이를, 하고 싶었다.
기념할 만한 상실식은 피치 랜드로 정했다.
메이트북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거긴 안 된다.
내 얼굴이 이미 팔려 있으니까.
세 사람의 손은 언제까지나 겹쳐 있었고, 떨어질 기미는 없었다.
이렇게 우리들은, 어울리게 되었다.

학교에 가려고 집을 나오자, 하세쿠라 요코.
요코「안녕, 타이치」
타이치「응. 그럼, 그런 연유로 바이바이」
도망친다.
등 뒤에서 옷자락을 붙잡힌다.
타이치「꾸엑……」
요코「자, 잠깐 정도는 얘기해 줘도 될 텐데……」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타이치「넌 나한테 종속적이면서, 이따금 허를 찌르려고 한단 말야」
타이치「그런 널 전면적으로 신용할 수가 없어」
요코「적당한 자극 연출」
타이치「날 자기 손바닥 위에서 춤추게 하고 싶겠지만, 그렇게는 안 돼지 같은 여자」
요코「……시마 토모키 비슷. 조금 환멸」
환멸당했다.
요코「상관없잖아. 별로. 타이치, 조금 원숭이 비슷하니까」
타이치「바보 취급하지 마. 난 영장류야」
요코「…………」
바보 취급당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제길, 반항적인데.
괴롭혀 줘야지.
치마를 들췄다.
요코「…………」
타이치「꽤 섹시한 팬티를 입고 계시는데요?」
요코「여자는 언제나 진검승부」
동요하지 않는다.
타이치「팬티 내립니다요?」
요코「……할 거야?」
타이치「안 해……」
요코「어서 와」
으―.
시시해―.
이 여자에겐, 수치심이 없다.
부끄러움이 없다.
소용없다.
그녀에게 내 벚꽃빛 영혼을 이식시키는 건 불가능했다.
육체적으로는 둘째치고.
타이치「그럼 이거다」
타이치백에서 그것을 꺼낸다.
그리고 그녀의 코를 집는다.
산소결핍으로 입을 여는 순간을 기다린다.
요코「……」
5초.
10초.
30초.
1분.
1분 30초.
타이치「……저기, 호흡은?」
요코「…………」
왜 태연한 겁니까?
관두자.
손을 떼어놓자, 그녀는 가볍게 숨을 들이마셨다.
요코「혈중 산소량이 많으면, 오래 숨을 참고 있을 수 있어」
타이치「바다 사나이냐 넌」
요코「뭘 하고 싶었던 거야?」
타이치「……입을 열지 않을까 해서」
요코「아―앙」
간단했다.
타이치「혀 내밀어」
요코「응―」
긴 혀.
타바스코를 뿌린다. 열 방울 정도.
손가락으로 바른다.
부드러운 혀.
게다가 기분 탓인지 표면이 거칠거칠하다.
최고의 핑크 살롱양이 될 소질을 가지고 있었다.
타이치「자, 끝났습니다」
요코「……」
순간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지만.
요코「……으읏」
입을 막고 떨기 시작했다.
벽돌 벽에 기대버린다.
통했다.
보통 사람보다 뛰어난 혀를 가지고 있는 덕분에 민감한 것이다.
타이치「주스 마실래?」
요코「……응, 응……빨리……」
빼앗듯이 가져가서 마신다.
타이치「칠리 주스 맛있어?」
요코「으……」
울타리를 향해 쓰러졌다.
타이치「이겼다……」
오랜만에 완벽히 이긴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자, 학교 가자.
요코「……가기……전에……도시락……이라도……」
달라붙는다.
울상을 지으며 봉지 하나를 건네주려 한다.
조금 죄책감이 들었다.
타이치「……알았어, 가져갈게」
어머니같았다.
어머니는 없지만.
요코「잘 다녀와」
고마웠지만, 솔직하게 기뻐할 수는 없었다.

고개에서 소녀와 부딪혔다.
나나카「꺅……아야야야야……어딜 보고 걷는 거야―, 이 둔탱아!」
타이치「큭……뭐야, 네가 한눈판 게 잘못이잖아―!」
나나카「처음 부딪혔을 때부터 좋아해 왔어!」
안겨온다.
타이치「히에엑! 전개가 너무 빨라!」
이런 급속 전형적 전개를 어디선가 본 거 같은데―.
타이치「……근데 누구시죠?」
나나카「나나카」
타이치「나나카……음, 좋은 이름이네」
나나카「감사」
나나카「뭐 내가 누군가에 대해선, 이어지는 조사를 기다리시고」
타이치「유령 아냐?」
나나카「아―, 아마 아닐 거야」
타이치「척 보기에도 꽤 고스틱인데」
※고스틱=고스트틱한
나나카「아니야. 다리도 있어」
타이치「아니……그건……요즘 고스트들은 대개 다리도 달렸고……」
나나카「뭐 내가 누군가에 대해선, 이어지는 조사를 기다리시고」
억지로 이야기를 돌렸다.
타이치「……상관없지만」
나나카「그럼 명함을 줄게」
받아든다.
JOB 차세대 미소녀
NAME 나나카 ~NANACA~

당신의 하트, 뺏어주ㆍ겠ㆍ어♪
타이치「…………」
어디부터 태클을 걸까?
나나카「흐흥~」
나나카는 완전히 득의양양.
나나카『반해도 돼』
라고 말하는 듯한 후지코급의 표정으로 나에게 곁눈질을 보내왔다.
타이치「나나카, '의'자 잘못 썼어」
나나카「일부러야」
갑자기 진지한 얼굴. 아니 화내고 있다.
타이치「…………」
이 녀석, 위험한가?
민완 영 어덜트로서 이름을 날리고 있는 내가 감지할 수 없는 분위기는 없었다.
그것이 말하고 있었다.
이 여자는 위험하다고.
그치만, 아무리 생각해도 실수인걸. 말도 안 돼―.
하지만……이런 사람들을 더 이상 자극하는 건 좋지 않다.
타이치「그래 너 겁나게 큐트한데, 용건은?」
나나카「이야―, 방금 전엔 상쾌했어―」
순간 기분을 바꿨다.
위험인물 특유의 반응이다.
나나카「그 여자가 괴로워하는 모습!」
킥킥 웃는다.
타이치「봤어?」
나나카「힐끔」
나나카「시원했어!」
타이치「……요코가 싫어?」
나나카「싫은 여자야. 메―롱이다, 메―롱」
타이치「너하고 요코의 관계를 모르겠는데……」
나나카「없어. 만난 적도 없고. 그냥 열받아」
나나카「그래서 오늘 아침은 기분이 좋아―」
타이치「아아, 그러신가요」
나나카「그러니까 이번 주는 안 들이받도록 하겠습니다」
아, 안 들이받아?
의미를 모르겠다.
나나카「안 좋아―, 그런 사람」
타이치「……무지 싫어한다는 건 알겠어」
나나카「게다가, 뭔가 잔뜩 착각하고 있고」
타이치「뭐어……」
어디까지 아는 걸까?
나나카「그런 여자한테……타이치의 처음을 뺏길 줄 알았다면……내가……」
어두워졌다.
타이치「처음?」
나나카「아―, 싫은 일이 떠올랐네. 훠이훠이. 잊어 줘」
타이치「저기요」
나나카「입가심♪」

타이치「…………!」
타이치「왜, 왜, 어째서!?」
나나카「뭐 어때, 닳는 것도 아니고」
타이치「뭐랄까, 묘하게 ……민완 영 어덜트인 이 내가……」
나나카「뭐, 그런 여자는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나나카「타이치, 유혹당하면 안 된다?」
타이치「그야 뭐……안 당할 것 같은데」
정말로 뭘까, 이 사람.
존재하고 있다는 밀도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기척이 없다.
나나카「있잖아, 오늘은 좀 진지해」
타이치「응」
나나카「지금부터 잠깐, 나하고 같이 사당에 가 줬으면 해」
타이치「뭐야? 강간이냐?」
나나카「즐!」
나나카「그런 게 아니라, 진지한 이야기. 사당, 알고 있지?」
타이치「응, 대충」
별로 다가가고 싶은 장소는 아니지만.
왜냐면 그곳은―――
나나카「이런 건 조금 무섭지만……따라와 줬으면 해」
나나카「왜냐면 타이치, 그 여자에 비해 조사가 부족한 걸」
타이치「그 여자라면 요코?」
나나카「……분하지만 우수하긴 해」
타이치「뇌의 사용법 자체부터 다르니까」
타이치「그다지 깊이 생각 안 하는 게 좋아, 그거에 대해선」
나나카「그렇겠네」
나나카「응, 부탁해! 잠깐 따라와 줘!」
손을 잡혔다.
타이치「알았어……가자」
잠시 살펴보니.
그냥 보기에는 친근한 유령.
나에게 위해를 가할 가능성은 적다.
나나카「역시 타이치! 얘기가 통하네!」
엄지손가락을 들었다.

둘이서 산길을 걷는다.
나에게는 어제도 걸었던 길.
타이치「나나카, 괜찮아?」
나나카「아―, 괜찮아 괜찮아! 체력엔 자신 있으니까」
그 말대로, 땀 한 방울 없다.
운동부인 걸까.
타이치「이쯤이던가?」
나나카「좀 더 안쪽」
나나카「맞다, 주변 수풀 같은 데 괜히 들어가지 마. 함정 있으니까」
타이치「수렵용 함정?」
나나카「대충 그런 거. 나중에 해체해두는 게 좋을 거야」
타이치「……위험하네―」
타이치「찾았다찾았다」
타이치「근데, 여기서 뭘 어떻게 해야―――」
나나카는 사라져 있었다.
타이치「어라? 나나카―?」
타이치「어―이, 나나카―!」
타이치「뭐야뭐야. 방치 플레이?」
영문을 모르겠다.
일단 사당에는 왔지만…….
장소만 안내하고 사라지다니, 꽤 암시적인데.
사당을 조사하란 건가?
타이치「……흠」
모처럼 왔는데 아무것도 안 하고 가는 것도 허무해서, 조사해 보기로 했다.
가벼운 기분으로 사당의 문을 열었다.
노트가 빽빽히.
타이치「……우와아」
놀랐다.
별다른 장식 없는 어슴푸레한 그 안에는, 괴물도 없고 낡은 항아리도 단검도 수정구슬도 없었지만…….
노트가 쌓여 있었다.
큰 특징없는 학생 노트 묶음이다.
타이치「……」
꺼낸다.
표지에는 매직으로 숫자가 적혀 있었다.
권수일려나.
1이라고 적힌 노트를 펼쳐본다.
…….
………….
…………………….
대충 다 읽었다.
타이치「……………………아앙?」
타이치「어, 뭐야 이거?」
머릿속으로 정리한다.
타이치「즉……」
①나에게 있는 또 하나의 인격이 일기를 썼다
②미래의 내가 쓴 것이 여기에 와 있다
③같은 시간을 반복하고 있다
타이치「③……이겠지」
여타의 속임수가 있을 가능성은 제외.
뭣보다 이건 내 글씨고.
타이치「세계가 되풀이되고 있다, 그건가」
황당무계하지만, 그렇게 이해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내 유연성이 새삼 고맙다.
인류 멸망과는 이어지지 않지만, 뭔가 관련성은 있을 것 같다.
타이치「그런데……」
어느 노트를 봐도, 들떠 있긴 하지만…….
타이치「어쩐지 전부, 절망적인 발버둥 같은데」
되풀이되고 있다는 기억은 남지 않는 것 같다.
매번 죽어왔다는 것이다.
옛날에 했던 게임처럼.
타이치「…………」
순간, 난 깊은 사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몇 가지 추측과, 의혹과, 진상을 도출해 냈다.
타이치「흠」
사당의 내부 (또는 주변)은, 리셋 효과에서 벗어나 있는 것 같다.
잠시 사당 주변을 조사해 봤다.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타이치「눈으로 봐서 알 정도면 고생은 안 하겠지」
나나카의 존재도 있다.
날 여기에 이끌어 온 존재.
그 애도 알고 있었나?
일기의 기록을 믿는다면, 나나카는 매번 나타나고 있다.
사람같이 보이지 않는 것과도 관련이 있으려나.
노트를 사당에 돌려놓는다.
이건 보존해 두는 편이 좋다.
만에 하나 내가 기억을 잊는다 해도……요코라면 자력으로 진실에 도달할 것이다.
노트를 보면, 지금 내가 생각한 정도의 결론은 순식간에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다.
타이치「아……맞다, 교복」
나나카의 교복.
본 적도 없는 디자인이었다.
이 근방 학교(산 건너편에 하나밖에 없지만)는 아니다.
만일 다음에 만난다면 물어보자.
우선 내가 해야 할 일.
매일을 보내며 일기를 쓰는 것.
정보를 남기면서, 살아남는 것.
그렇게 생각했다.
타이치「기왕 할 거면, 즐거운 편이 좋겠지」
되풀이되는 고독한 세계.
하지만 나에게는, 이상적인 장소일지도 모른다.
자 그럼.
이번주도 열심히 살아보자.
…………………….

타이치「……」
도는 세계라.
이 월요일을, 난 몇 번이나 되풀이해온 걸까.
등등을 생각하는 동안.
미키를 발견.
미키도 나를 발견.
타이치「어―이, 미키ㆍ마―――」
저작권상으로 꽤 곤란한 개그를 하려는 그 순간.
뛰어온다.
나를 향해.
다리를 절뚝거리며.
타이치「왓, 미안! 내가 잘못했어! 소니 보노법이 합법인 줄은 몰랐어!」
미키「으아~~~~~~앙!!」
울었다.
타이치「무슨 일이야!?」
내 가슴에 뛰어들었다.
받아세운다.
미키「선배, 선배선배선배―――――!!」
흐느껴 운다.
미키「아무도 없어요~~~~~~! 이상해~~~~~, 이런 거 분명 이상해요~~~~~~!!」
약하다!!
경험치가 없어서 그런가?
미키「어딜 가봐도 아무도 없어요! 정말로 아무도 없어요, 다 사라졌어요!!」
타이치「어, 어젯밤에 알았잖아?」
등을 두드리며 위로한다.
여자의 눈물에는 약하다.
미키「그치만, 그치만!」
타이치「내가 있잖아」
미키「……으으읏, 네……다행이야……있어서……」
개그였는데.
미키「아침에 일어나니까, 엄마도 없고, 밥도 없어서……그래서 다들 없어지지 않았을까 생각해서……」
타이치「무서워졌구나」
이마를 찧을 듯, 세차게 끄덕인다.
미키「싫어요, 이런 거……저, 싫어요……」
하늘을 바라본다.
타이치「역시 사람이 없으니까 쓸쓸하구나」
미키「……돌아가고 싶어……」
날카로운 말이다.
여기가 본래 세계가 아니라는 것.
세계`라는 것.
미키의 말은 우연이었겠지만.
정곡을 찌르고 있었다.
타이치「돌아가고 싶다라……」
미키「가고 싶어, 가고 싶어요……」
타이치「이거 곤란한데, 어쩌지」
미키를 위로할 방법은 있다.
조금 비겁한 방법.
비슷한 종류인 우리들이라 성립하는 방법.
일주일 한정이니까.
뭐든지 할 수 있다.
사람이 일생을 열심히, 후회없이 살아가려는 것과도 같이.
이 일주일 동안의 고유의 우리들은, 바쁘게 살아가야만 한다.
미키를 유혹할 대사를 몇 가지 생각한 순간.
발차기가 날아왔다.
키리「이얏――――――――――!!」
타이치「까울!」
키리의 발차기가, 날 미키에게서 떼어냈다.
타이치「니 뭐하노!」
키리「치한행위는 그만두세요!」
타이치「치한 아냐!」
키리「치한 100%예요」
타이치「치한 아니라니깐!」
미키「후아아, 키리찡……」
미키가 울상을 짓는다.
그리고 키리에게 안긴다.
미키「흐에에에엥~~~~~~!」
키리「괜찮아, 이제 괜찮아」
어라?
타이치「미키야……내 무죄를 증명해 주지 않겠니?」
미키「으엥, 히잉, 으앙」
흐느껴 울고 있다.
대신에 키리가 나를 찌릿 노려본다.
키리「……용서 못 해」
키리「치한은 절대로 용서 못 해요!」
타이치「아니랑께!」
키리「미키가 울고 있는 게 증거예요」
타이치「어이어이어이어이」
장난이 아닌데.
이렇게 순조롭게 치한죄가 완성되는 건가?
도망칠 수밖에.
대쉬!
키리「앗―, 도망쳤다!」

학교에 도착.
이제 뭘 어쩌지…….
일단 돌아다녀 보자.


ㆍ廊下 (복도)


미키「서언배애……」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타이치「미키……」
눈시울이 붉다.
그 뒤로 계속 운 것 같다.
타이치「이제 괜찮아?」
미키「간신히요―」
타이치「살아남는 거야―, 미키―」
미키「어쩌죠―, 앞으로」
꽤 침울한 분위기다.
미키「밥하고 옷하고 TV하고, 앞으로 어쩌죠?」
타이치「아니, 리셋될 테니까 괜찮아」
미키「우에?」
타이치「뭐 어떻게든 되겠지. 안심해」
미키「……으―」
좌절했다.
타이치「기운 내. 그러고도 내 제자냐」
미키「그치만……이런 건 이상해요……」
타이치「세상이 원래 이상한 거야」
미키「불안해요」
타이치「경기 부흥을 시켜 주지」
미키「경기도 부흥?」
가슴 터치.
물컹
미키「후냥!?」
간단히 만졌다.
엉덩이에 손을 뻗는다.
포옹
미키「우에엣!?」
풍만하다. 부드럽다. 기분 좋다.
무르다. 너무 무르다.
타이치「폭파 스위치!」
등 뒤의 후크를 누른다.
손 끝에 느껴지는 압박과 진동. 밀리 단위로 후크를 벗긴다.
훌렁
미키「아으―!?」
잽싸게 가슴팍을 움켜쥔다.
덜 자란 소년과도 같은 가슴에, 브라는 필요없는 것이다.
원샷 낚시질……은 너무 불쌍하니까 관두자.
타이치「마무리!」
피잉―!!
미키「냐아――――――――――――――――――――――!!??」
기술은 연속으로 전부 먹혔다.
기분 좋을 정도로 무방비한 미키였다.
타이치「기운 났어?」
미키「났―어―요!」
화냈다.
타이치「그럼 됐어」
하는 김에 내 에너지도 충전 완료.
미키「메―롱이다!」
짧은 혀를 내밀며 떠나갔다.
타이치「와하하」

적당한 곳에서 쉬기로 했다.
식당에서 샌드위치를 먹는다.
먹으면서 생각한다.
일주일간의 세계.
이상하게도 저항이 없다.
나에게는 쭉 앞으로 이어지고 있는 세계보다 살기 쉽기 때문이다.
되풀이되는 나날.
문득 생각했다.
생각해버렸다.
한없이 반복되는 일주일. 그 안에, 전원이 화해할 가능성은 없는 걸까?
방송부 여덟 명의 결속은 뿔뿔이 흩어졌다.
누구 한 사람이 나서서 화해를 하려고 해도, 간단하지는 않다.
일기에서 읽은 것이기도 하다.
만약 가능하다면.
……보고 싶다.
요코「자, 차 마셔」
타이치「……음―」
타이치「꿀꺽꿀꺽……푸핫―! 시원하고 맛있네, 한 잔 더―」
플라스틱 컵을 내민다.
그녀는 컵을 받아들고는 말없이 수통의 내용물을 따르는데 하세쿠라 요코가 거기에 나타났다.
타이치「……기척을 지우지 마」
요코「왜?」
타이치「갑자기 옆에 있으면 깜짝 놀라니까」
요코「따로 지우는 건 아냐. 자연스러운 현상」
타이치「……갑자기 목소리가 들리면, 누구라도 놀란다고」
요코「방심?」
타이치「아니, 방심하고 싶으니까」
요코「나태?」
타이치「느긋하게 살고 싶다는 의미야」
요코「……아까워」
타이치「피곤해. 항상 날카롭게 신경쓰다 보면」
요코「그런 걸 일상화하면 괜찮을 거야」
요코「타이치의 생각은, 그저 귀차니즘」
타이치「절교하겠습니다」
요코「……취소할게」
말싸움이 생기지 않는다.
밀고 당기기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트러블이 일어나지 않는다.
받을 뿐,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
마음의 교류가 없다.
타이치「자기 몸의 일부를 사랑하는 듯한 감정이야」
요코「……아냐」
이해는 빠르다.
하지만, 날 이해해주진 않는다.
요코「난 타이치를 사랑할 뿐」
타이치「……뭐, 그런 걸로 쳐 두지」
귀찮아졌다.
어차피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으니.
내가 그녀에 대해, 효과적인 일격을 가할 방법은.
……하나.
그것은 작은 칼날.
하지만 확실히 통한다.
요코도 그 존재를 알고 있다.
그래서 경계하고 있다.
서로 견제하며, 우리들은 살아가고 있다.
타이치「내참」
샌드위치를 베어문다.
꼬르륵
요코「…………」
타이치「……앉을래?」
요코「……괜찮아?」
타이치「맘대로 해」
찰싹 몸을 기대왔다.
2인분 있는 샌드위치의 반을 던진다.
요코「고마워」
타이치「자기가 만든 거면서」
요코「응. 고마워」
타이치「……」
이런 교류. 아무리 많이 이루어져도.
그저 형태를 흉내내고 있을 뿐이다.
그건……나도 같은가.
타이치「뭐, 어떻게든 되겠지……」
…………………….
………….
…….

타이치「호……」
여러모로 움직여 봤다.
월요일의 부활동.
세계 최후의 날에, 모두가 대단원의 막을 맞이하기 위해.
하지만……어려움을 느꼈다.
전원을 화간……이 아니라 화해시키려면, 딱 들어맞는 퍼즐이 필요하다.
사당으로 간다.
대량의 노트.
다 읽지 못할 정도의 양이다.
미키를 처리(관용어)하면, 키리가 안된다.
정보가 많다는 건 좋은 일이다.
하지만 너무 많으면, 해석할 시간이 없어진다.
딜레마다.
난 밤중까지, 머리를 쥐어싸맸다.
요코「타이치」
등 뒤에서 라이트가 켜진다.
회중전등이다.
그리고 요코.
타이치「으으……눈부셔……」
요코「아무리 그 눈이라도, 글씨를 읽으면 안 좋아져」
타이치「응……고마워」
요코「뭔가 발견했어?」
타이치「없어. 정보의 바다에서 끝없이 헤매고 있는 것 같아」
요코「그래, 유감이네」
타이치「요코는 이 노트를……」
물어보다가, 입을 다문다.
그녀에게 의지하게 되는 꼴 아냐.
타이치「됐다. 가자」
일어난다.
노트는 일단 사당에 돌려놓는다.
몇 권은 가져간다. 읽을 수 있을 정도만.
요코「……같이 가도 돼?」
타이치「맨날 감시하고 있는 주제에」
요코「미안해……」

사쿠라바「여어」
타이치「자」
마스크를 건넸다.
사쿠라바「OK」
아무 의문도 없이 장착했다.
사쿠라바「배 고프다」
타이치「아침 안 먹었냐?」
사쿠라바「1교시 수업에 대비하고 있다」
타이치「……카레빵 먹는 게 수업이냐?」
사쿠라바「카레빵이 사라지는 그날까지」
쿨하게 말했다.
기록대로다.
타이치「레토로트 카레라도 먹으면 되잖아」
사쿠라바「카레는 싫다」
기록대로다.
좀 더 진행한다.
사쿠라바「헥스!」
타이치「……육각형 참극」
이것도 기록에 있었다.
발생률은 지금까지 확인한 것만으로도 15% 이상.
일곱 번에 한 번은 콧물다리가 건설된다는 계산이다.
하지만 과거의 어떤 훌륭한 사람(나)은, 마스크를 장착시키는 것으로 회피하는 방법을 고안해 냈다.
사쿠라바「……마스크, 벗어도 되나?」
타이치「그건 허가할 수 없다」
사쿠라바「괴롭구나……인생은」
타이치「내가 하고픈 말이다」

자 그럼.


ㆍ廊下 (복도)


복도에 키리가 있다.
이것도 기록대로.
효율적으로 행동해야지.
타이치「키리―」
키리「읏!」
노려본다.
타이치「음!」
노려본다.
파바바바바바바바밧!! (심리 효과)
젖꼭지가 간지러웠지만 참았다.
미키「후이―, 시원하다―」
잠시 후 미키가 화장실에서 나왔다.
미키「뇨옷――――!?」
방금까지 자신이 하고 있던 행위를 연상시키는 비명이 귀청을 때렸다.
한 발짝 앞으로 간다.
타이치「내가 아무 준비도 없이 여기에 왔을 거라 생각했나?」
그리고, 가슴팍에 손을 집어넣는다.
거기에는 필살의 무기가……있는 건 아니고 그냥 페이크다.
하는 김에 젖꼭지도 긁었다.
위협과 젖꼭지의 가려움을 해소하는, 일석이조의 기술.
키리도 등 뒤로 손을 돌린다.
크로스보우를 꺼내들었다.
타이치「우와아아아아」
대충 놀란다.
그건 그렇고 긴장되네…….
맞아 죽으면 큰일나는데.
흐―음.
그런 선택지도 있을까?


ㆍ降伏 (항복)


타이치「항복하겠습니다」
키리「움직이지 마세요. 쏩니다……어?」
타이치「항복하겠습니다」
벽에 손을 붙이고 다리를 벌리라고 말하기 전에 벽에 손을 붙이고 다리를 벌렸다.
항복 자세다.
미키「약하다……」
키리「……어쩌지, 미키?」
미키「으음……어쩌냐고 물어도……불쌍하잖아」
키리「전혀 안 불쌍해, 이런 사람」
미키「그치만, 키리찡은 무기도 들고 있고 너무 일방적이잖아. 사람한테 들이대면 안 좋아……」
키리「……그치만」
미키「그만하자, 응?」
키리「……알았어」
마지못해하긴 했지만.
타이치「손 내려도 돼?」
키리「……네」
타이치「후―, 고마워, 미키」
미키「아, 아녜요」
착한 아이구나.
자, 그럼 이제 어느 쪽을 거시기할까.


ㆍ美希 (미키)


타이치「미키한테 답례를 해야겠네」
미키「에―, 됐어요, 그런 거……」
하지만 기대감에 머뭇거리고 있는 미키찡이었다.
성욕이 수치심을 몰아낸다.
어느 의미로는, 난 성욕이 있어서 온갖 외압에도 굴하지 않고 살아올 수 있던 것이다.
미키의 손목을 잡는다.
타이치「러브 미 텐더」
손등에 키스.
미키「아와왓―」
얼굴이 화끈해졌다.
미키는 공주님 대접에 약하다.
다시 키스.
미키「아잉 싫어……」
전혀 싫어하는 것 같지 않다.
키리「…………」
키리로부터의 굉장한 압력이 느껴진다.
키스의 비를 내리자.
미키「진수 성찬이네요~」
어깨를 감싼다.
미키「후에?」
머리카락을 잡고, 입술을 맞춘다.
미키「영화다……호화여객선 비슷한……」
타이치「사랑의 세제곱」
미키「잘은 모르겠지만, 상승효과가 굉장하네요」
등 뒤로 다가가, 뺨에 얼굴을 가져간다.
미키「우햐?」
근데 진짜로 안 싫어하네요, 이 사람.
키리「……크윽」
키리로부터의 오오라가 슬슬 물리적인 압박을 띠기 시작했다.
타이치「나, 미키의 매력에 빠져버린 건지도 몰라」
미키「아, 그, 그런가요?」
타이치「눈꺼풀에 먼지가 붙었네, 눈 감아 봐」
미키「……네」
미키「두근두근」
아. 입술도 가능하겠다.
예정 변경.
타이치「응―……」
키리「그렇겐 안 돼!!」
달려들었다.
타이치「왓, 왓?」
미키「꺄아!?」
키리「이 치한―!!」
타이치「꺄―앗」
입술강탈 실패.

지쳤다…….
타이치「뭐랄까……전혀 진전이 없네」
요코「그러게」
신출귀몰. 하세쿠라 요코.
타이치「……봤어?」
요코「전부는 아니지만」
타이치「악취미」
요코「……땀 흐르고 있어」
손수건으로 닦아준다.
타이치「됐어, 땀 정돈」
밀친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세게 저항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타이치「뭐, 상관없지만……」

밤, 토모키가 식료품 상자를 가져왔다.
그 안에서 대충 먹을 걸 꺼내 저녁을 때웠다.
어두운 방에서, 침대에 누워 여러모로 생각한다.
타이치「……」
해피 엔딩 찾기.
이건 그러한 행위일 것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문제를 대강은 이해하고 있는데, 잘 되지가 않는다.
시간은 일주일밖에 없는데.
누구 한 사람과 가까워지는 데, 일주일.
전원이면 7주일.
사쿠라바랑 토모키, 요코는 뺀다 해도.
4주일.
4배의 집중력으로 행동하면 된다……는 것도 아닐 테고.
타이치「어려버……」
결국은 해결책은 내지 못한 채, 잠에 빠졌다.
…………………….
………….
…….

토오코가 없다.
타이치「……맞다」
이 시간대라면 자택에서 쇠약한 채로 있을 것이다.


ㆍ一年敎室 (1학년 교실)


그래.
1학년 교실에 가자.
미키리 콤비가 있을지도 모른다.
아무도 없다.
교실을 보자, 두 사람의 책상에 가방이 있었다.
오긴 왔다.
교내 어딘가에 있겠지.
그러고 보니, 학교는 키리와 미키의 집 중간지점에 있다.
만날 장소로, 계속 다녀온 학교는 딱 좋은 것일지도 모른다.
무슨 일을 하기 위해서든.
창 밖을 본다.
풀장이 보였다.
타이치「……헤에」
놀고 있었다.
즐거운 듯이.
희미하게 목소리가 들린다.
미키「이얏―!」
키리「아, 안된다니까, 안돼―!」
미키「이런이런―, 피하지도 못하는 거냐―!」
키리「그치만 물 속이잖아, 앗, 머리, 머리카락 젖겠어」
미키「어디가 젖는다고―?」
키리「어쩐지 아저씨같아」
미키「마음은 아저씨야, 으럇―!」
키리「아―, 머리가―」
키리「복수다!」
미키「꺄―!」
행복한 광경을 보고 있었다.
키리「이잇―!」
미키「으랴럇―!」
키리「먹어랏―!!」
미키「우와―……메―롱, 먹기 싫―다」
키리「아, 비트판 사용 금지!」
미키「방패야―」
키리「치사해―!」
미키「머리가 긴 만큼 내가 불리하잖아」
뭐냐 그건.
쓰게 웃어버린다.
키리「그치만, 한 손이 되었으니 공격력은 내려갔어!」
미키「이런―!」
키리「사냥의 시간이다―!」
미키「수렵 해금!?」
첨벙첨벙 돌아다니며, 물 속을 헤엄친다.
천진난만하게.
두근
타이치「……!」
심장이 뛰었다.
가벼운 감동이.
무의식중에 심장을 누르고 있었다.
장기에 마음이 있다는 말은 아니다.
내 감정이, 심장을 두드리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기뻤다.
키리「꺄악!」
미키「아하하하핫, 미끄러졌다―!」
키리「다 젖었어……」
미키「메―롱, 둔―탱이」
키리「……그랬겠다」
미키「오효?」
키리「젖었으니까 이제 수영할 수 있다네」
미키「앗, 앗앗, 근접전은 안돼―!」
키리「평형으로 자유형을 이길 거 같아!」
미키「우왕좌왕우왕좌왕」
키리「물에 빠뜨려버리겠어」
미키「싫어―! 젖으면 머리가 해초처럼 된단 말야―!」
키리「해초로 만들어주지―!」
미키「왓, 왓, 위험해」
키리「이얏―!」
미키「냐아―――――――!!」
물이 첨벙이는 소리.
멈추지 않는 웃음소리.
포근하게 흘러가는 그 시간은, 따스했다.
따스한 세상의 한 장면.
일기에 쓰기로 했다.
이 기분을 잊지 않도록.
나는 계속, 두 소녀가 노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그녀들과 타산적으로 교류하려는 행위가, 순간 허무하게 느껴졌다.
타이치「난 그저……보고 싶을 뿐인데」
당연한 듯이, 사람들의 곁에 있는 것을.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만남을.
기억에 남기고 싶을 뿐인데.

침대에 뒹군다.
밝을 동안에 할 수 있는 일은 해두고 싶지만.
의욕이 나질 않는다.
내 바람은 간단한 건데.
공략 노트에까지 의지하면서……3일 동안……결속 하나 되돌리지 못했다.
결속.
방송부 전원이 나란히 하는 부활동.
밝고 즐겁고 건전한, 라디오 방송.
노트는 그 성질상, 결과가 기록되지 않는다.
어떤 방법이 내가 바라는 결말에 가까운 건지, 난 판단할 수 없다.
타이치「목요일, 금요일, 토요일……」
앞으로 얼마나 남았지?
몰랐으면 좋을 걸.
세계가 반복된다니.
타이치「으으으……」
낮게 신음한다.
이상한 세계이자, 안타까운 현실인 지금에 대한 분노다.
겨우 3일 내지는 4일.
타이치「뭘 할 수 있다는 거야……그 정도 시간으로」
주먹을 쥔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감정의 파도가, 내 몸을 뜨겁게 달궜다.
쉴새없이―――
…………………….
………….
…….

난 행동했다.
노트에 있던 기록을 참고해, 그때그때 최적의 행동을 취했다.
행복을 위해.
결속을 쌓아올리기 위해.
친구ㆍ우정ㆍ인연.
그런 눈부신 것들을 위해.

그리고 쓸데없는 하루가 끝났다.
눈꼽만큼의 위선조차 쌓지 못한 채―――
…………………….
………….
…….

금요일이 되었다.
원래대로라면, 서로의 관계에도 변화가 있는 무렵.
하지만 팔방미인처럼 진행해 온 난, 아무것도 못 얻은 채 시간을 낭비해버렸다.
미미 선배와도, 토오코와도, 키리와도, 미키와도…….
서로의 거리감은, 절망적으로 먼 채였다.
…………………….
반나절 동안 돌아다녔지만, 성과 없음.
타이치「하아」
지쳤다.
정문 앞에 주저앉아, 저녁 때까지 보내기로 한다.
그 때, 익숙한 인기척이 먼 곳에서 접근해 왔다.
요코다.
별일이다. 이렇게 무방비한 건.
요코「……도울 일 있어?」
내 앞에 서서 말한다.
타이치「아니, 지금은……」
그대로 무시하려 했지만, 그만 질문을 해버린다.
지푸라기라도 잡자는 심정이었다.
타이치「요코……어떡해야 다들 잘 될 수 있을까?」
타이치「미미 선배가 하고 있는 부활동에 다들 사이좋게 참가해, 적당히 청춘을 즐기고, 장난치고, 웃는……그런 루트는 없는 거야?」
타이치「문제들을 해결하고, 서로를 존중하고, 희망이 있고……」
타이치「사이좋게 싸우고, 방송용 대본을 함께 체크하고, 다함께 트러블에 대처하고……」
타이치「없는 걸까?」
어쩌면, 그녀라면 알고 있지 않을까.
희미한 희망을 품었다.
요코「없을 거야」
타이치「……」
담담한 요코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차갑게 들렸다.
요코「그럴 가능성은, 어디에도 없을 거야」
요코「타이치가 이 세계, 이 상황에서 전원의 사이를 회복하고 안전하게 부활동을 시행하기 위해선……좀 더 시간을 오래 들이거나, 좀 더 좋은 상태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어」
요코「그 중에 아무것도 타이치는 못해」
요코「절대적인 한계가 있어」
요코「그러니까 아무리 노력해도, 소용없을 거야」
타이치「……그래」
또렷하게 없다는 말을 들었다.
타이치「이런 말하는 건 좀 불공평하지만……차가운 방정식이네, 그건」
그녀는 반응하지 않는다.
멈춰선 채로, 내 말을 기다린다.
타이치「매주, 너덜너덜한 상태에서 시작하고 있다는 말이잖아」
타이치「아무것도 못 이룬 채 끝나고……루프하고……최악의 매일을 몇십 주씩……」
타이치「무슨 장난이야, 그거」
머리를 감쌌다.
내 마음의 공복을 채우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요코「타이치……노트는 저게 전부는 아냐」
갑자기 그녀는 말했다.
타이치「뭐라고?」
요코「더 파멸적인 역사와 가능성을 나타낸 노트도 있어」
타이치「어딨는데?」
요코「……숨겼어」
요코「당신이 상처받지 않도록」
요코「또……포기하도록」
요코「……볼래?」
타이치「……」
파멸적인 역사…….
요코「아무리 발버둥쳐도, 아무리 싸워도」
요코「수많은 가능성 속에서, 당신을 이해해주는 사람은……없어」
요코「있다면, 나뿐」
요코「……이제 슬슬 이해해 줬으면 해」
타이치「이해는 하고 있어」
타이치「하지만, 넌 날 사랑하는 게 아니잖아!?」
외친다.
타이치「뭐야, 이 세계는!」
깊게 숨을 내쉬었다.
분노와 함께.
타이치「있잖아……여긴 이세계야?」
요코는 내 앞에 섰다.
그리고 발 끝으로, 땅바닥에『X』자를 그렸다.
요코「가능성은 두 가지」
요코「하나는, 선형이었던 두 개의 세계축이 교차해 양쪽을 지각할 수 있는 상태가 되어버렸다……SF지」
두 개의 세계가.
비틀리고 교차.
타이치「세계가 겹쳐져서, 이상이 일어났다는 거야?」
타이치「음……그 경우에, 우리들의 원래 있던 세계는? 그대로 유지될 리가―――」
요코「또 하나는, 우리가 있던 세계의 종말이 이것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안이한 구원을, 반만 인정했다.
타이치「…………」
타이치「다세계끼리의 간섭은 있을 수 없다……는 거네. 양자역학에 의하면」
양자역학이라 하면 디랙이지만, 난 원서를 읽은 적은 없다.
애초에 지금의 상황이, 양자역학적 해석에 어울리는지도 의문이지만.
타이치「……방금 말했던 SF쪽 말인데……그건?」
요코「A와 B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된다는 거야. 어느 쪽을 고를 것 같아?」
타이치「……반반이지. 내용을 모른다면」
요코「그래. 우리들은 매일, 무수한 선택지 위에서 살아가고 있어」
요코「예를 들어 걸을 때, 어느 쪽 다리부터 앞으로 내밀까」
요코「밥 반찬을 뭐부터 먹을까」
요코「좀 더 작은 세계에서도, 선택은 이루어져」
요코「온갖 순간에, 무수한 선택을 하고 있어」
요코「세계는 선택에 의해 만들어졌어」
요코「그것도, 극히 확정적으로」
타이치「확정적으로……」
요코「예를 들면 타이치는 A를 고른다. 타이치는 A를 골랐단 것을 자각하고 있다」
요코「하지만 동시에, 같은 세계축에서는 B를 선택한 타이치도 존재한다」
요코「병렬적인 세계의 존재를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지만……」
요코「적어도 디랙의 개념에서는, A선택세계에서 B선택세계를 지각하는 것은 불가능. 역도 성립」
요코「반대로 지각하지 못한다면, 세계 간의 이동은 가능해」
요코「자외선을 볼 수 있는 사람에게는 세계가 완전히 다르게 보이듯이」
요코「다세계를 관측할 수 있는 사람은, 두 개의 세계에 모두 존재할 수가 있어」
요코「관측이 이루어진 순간, 그 세계의 사람이 되어 있다……라고도 생각할 수 있지」
타이치「관측……한다……?」
타이치「세계는 변함없이 그곳에 있고, 즉 보는 사람의 차이라는 건가?」
요코「그런 느낌」
요코「단 다세계관측은, 현재의 이론으로는 불가능해」
요코「우리들 복수가 한번에 이동한 이유도 설명이 안 되고」
요코「그래서 SF」
타이치「……흠」
타이치「두 번째 가능성에 대해선?」
요코「난 그게 진실이라고 생각해」
요코「즉 다른 세계는 관측되지 않았다」
타이치「……음―, 방금 전 SF 해석은 아니라는 거네」
단정한 얼굴이 고개를 끄덕인다.
요코「세계, 시간, 고유의 역사. 모두 일련의 것」
요코「즉……시간도 되감기지 않았다」
타이치「……응?」
타이치「그건 이상한데. 일기에는 월요일부터 토요일 부근까지 기록이 되어 있고……거기서 다시 월요일로 돌아오는데?」
요코「루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에 지나지 않아」
요코「당연히 세계는, 영원히 시간을 반복하고 있는 게 아냐」
요코「이 상황이, 세계의 확정적인 종말이었어」
요코「세계는 교차하고 있지 않아. 이변은 일어나지 않았어. 모두 일련의 사건. 원래 이런 가능성이 허용되는 세계에서, 우리들은 가능성을 따라 당연한 듯이 지금에 이르렀어」
요코「다세계 간의 지각 교착이 일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하나의 길로 나아가고 있을 뿐」
타이치「루프하고 있는 것처럼이라니……실제로 우리들, 몇 번이나 리셋되어 왔고……」
타이치「게다가 원래 세계에서 루프 같은 현상은 안 일어났……」
눈치챘다.
그런가.
타이치「자각할 수 없다……」
루프가 일어난 것을, 우리들은 원래 자각할 수 없다.
사당이란 특수한 장소가 존재하지 않는 한.
루프는 결코 드러나지 않는다.
타이치「세계에는 원래 루프라는 현상이 예정되어 있었어? 인류의 황혼으로써?」
긴 여정의 끝에.
대지가 붕괴하는 것뿐이 멸망은 아니다.
시공간이 흐트러지고, 앞으로 나아가지 않게 되는 것이……임종이란 것이었다.
타이치「하지만……하지만 말야」
요코「특정 조건……지금의 경우엔, 일요일의 특정 시간에 도달한 순간, 세계는 다시 분해된다……라고밖에 말할 수 없어」
요코「공간적으로 기록된 정보에 의해, 분해된 입자가 결집, 월요일의 상태로 돌아온다」
타이치「그러니, 세계에게는 일련의 행동……」
요코「그 증거로써, 사당의 존재가 있어」
요코「노트의 기록 내용은 과거의 존재를 나타내」
요코「과거를 관측할 수 있는 이상, 과거는 있어」
요코「이 세계는, 과거를 허용하고 있다는 거야」
요코「그리고 우리들은, 몇 번이나 분해되고 구축되어서 여기에 있다」
요코「……엄밀하게 말하면, 우리들은 이미 인간이 아닌 거야」
타이치「그럼 뭔데?」
요코「현상」
지나치게 들어맞는 그 말이, 마음을 찔렀다.
이미 인간이 아니다―――
타이치「넌 일련설을 따로 말했지만, 내게는 전자도 비슷한 것처럼 들려. 어느 쪽이 올바른지, 지금은 판단할 수 없겠지만……」
요코「우리에게는 루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어떤지는 조사할 방법이 없어」
요코「……그렇다면 우선은, 지금 있는 이론을 적용할 수밖에 없어」
요코「현 상황에서 세계간의 이동은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므로, 이동이 없다는 가정을 한 후자」
타이치「아아, 그렇군……」
양자역학에서 다세계 해석은, 병렬적 세계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착각이며, 실제로는 좀 더 확정적인 사고실험이다.
그곳에서는 세계 A와 세계 B는 동시에 존재하고 있지만 왕래는 할 수 없다.
왜냐면 동시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이해가 조금 귀찮아진다.
타이치「디랙, 적어도 번역본이라도 있으면 읽어볼 텐데」
요코「만약 기존의 이론을 이탈하고 있다 해도」
요코「일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일이 일어났다. 그뿐이야」
요코「물리의 영역은 넓고, 인간은 아직 그 모든 것을 밝혀낸 건 아니야」
요코「그리고 지금의 우리들에게, 이론은 사소한 일에 지나지 않아」
요코「필요한 건, 뭘까?」
타이치「모르겠어」
요코「이해자, 잖아?」
미소짓는다.
타이치「…………」
요코「타이치의 이해자라면, 여기에 있어」
요코「그 누구도, 당신을 이해해주지 않아」
요코「의태를 하면 할수록……」
그렇다.
당연한 일이다.
사람의 흉내를 내면, 흉내뿐인 존재가 되어버린다.
숨겨진 내면을 들키면 그걸로 끝이다.
생각해 낸다.
타이치「알고 있었어……그런 건」
타이치「이미, 그 순간부터!」

유사「좋은 방이네요」
도지마 유사.
착한 아이였다.
순잔히고 건강한.
마음에 병을 숨기고 있지만, 사람을 상처입힐 줄도 모른다.
유사「저……여기 공식을 모르겠는데요……」
내 눈에는, 달콤한 물.
유사「……타이치 오빠?」
임종은 갑작스러웠다.
갑작스럽게 드러난 나의 내면은, 소녀에게는 맹독이 되었다.
유사「타이치……오빠……맞죠?」
타이치「응, 맞아」
유사「저, 저기……저……」
타이치「예쁘네」
내 눈동자는 빛나고 있었을 것이다.
욕망과 광기로.
타이치「예쁘니까, 옷을 벗어 봐」
유사「…………」
육식동물과 마주쳐본 적이 있다면 안다.
벌겋게 충혈된 두 눈동자가 바라보는 것을.
호의도 악의도 아니다.
한없이 뜨거운 그 시선은……단순한 식욕이다.
인간인 자신을, 음식으로밖에 인식하지 않는 눈.
강렬한 식욕이, 자신을 압박하는 것이다.
때로는 구토를 동반하기도 한다.
그녀처럼.
유사「시……싫어어어어어어어어어!!」
유사「……기분……나빠……」
유사「으……으으……」
웅크려 앉아 구토를 하는 소녀를 내려다보며, 난 그 시시한 결말에 따분해하고 있었다.
부수기 전에 망가진 소녀.
타이치「…………」
그리고, 그녀는 나를 피하게 되었다.
오물을 보는 듯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실제로, 난 오물이었다.
난―――
…………………….

요코「있어봐야 상처입을 뿐」
요코「타이치의 먹이에 지나지 않아」
타이치「시끄러, 그러니까 안다고!」
요코는 침묵을 지킨다.
타이치「그래도 웬만해선 그러진……않아……그러고 싶진 않아……」
타이치「어떻게든 될 거야……」
요코「나만 있으면 돼」
자신의 가슴팍을 누른다.
요코「나라면, 타이치하고 잘 해나갈 수 있어」
새카만 감정이, 하복부에 스며들었다.


ㆍぶつける (내뱉는다)


타이치「잘……해나가?」
타이치「잘 해나간다고……했겠다」
요코「응」
타이치「하하하, 그거 대단한데」
타이치「그럼, 어디 잘 해 줄래?」
악의가, 순수를 꿰뚫었다.
…………………….
………….
…….

토요일.
하지만 내 머리에서는, 요일감각은 이미 사라져 있었다.
타이치「짠」
미사토「어라, 어서와요. 어머 하세쿠라」
미사토「오랜만이에요」
선배는 대걸레를 물통에 던져넣고, 우리를 맞이했다.
요코「……」
타이치「인사」
요코「……안녕」
미사토「무슨 일이에요, 둘이 같이」
나와 요코는, 함께 옥상에 왔다.
타이치「대충 시간 때우려고요」
타이치「견학해도 될까요?」
미사토「재미는 없는데요―?」
피곤한 얼굴로 웃는다.
타이치「아뇨, 선배하고 얘기도 하고 싶으니까요」
요코「……읏……」
미사토「아―, 대환영이에요―」
요코「……으……응…………」
요코가 목소리를 흘렸다.
타이치「꽤 많이 진행됐네요―」
등등의 잡담을 계속하면서, 손가락을 움직인다.
타이치「안테나, 거의 다 됐네요―」
선배는 순간, 표정이 사라졌다.
요코「……………………」
요코「……읏……」
요코「……아……」
그 이상한 상태는, 곧 선배에게도 알려졌다.
미사토「어? 왜 그래요?」
요코「아무것도……아냐……」
타이치「방송국 쪽은 어때요?」
미사토「에, 아―, 글쎄요……빠듯빠듯해요」
두 개의 손가락을 교차시키며 비튼다.
요코「응……하아……응…………읏……」
가운뎃손가락을 안쪽 깊숙히 삽입해, 거칠거칠한 벽면을 어루만진다.
요코「……안돼…………거기……으읏……읏!」
손가락을 겉주름 부근에 있는 돌기로 가져간다.
요코「……응……으응」
손 끝으로 음핵을 가볍게 문지른다.
요코「―――읏」
움켜쥔다.
요코「히익」
미사토「히?」
자극을 약하게 했다.
타이치「이제 방송 가능해요?」
미사토「아아, 기재만 다 연결하면 안되는 건 아닌데요……일단 도면대로 해보려고요」
타이치「다른 전파가 없으니까, 핸디 무전기 쪽도 괜찮지 않을까요?」
미사토「주위에 해변이 있다면 괜찮겠지만요……」
미사토「그래도 이 정도 높이에 있는 안테나하고, 20W의 출력은 꽤 강해요」
타이치「요코는 어떻게 생각해?」
손가락을 꾹 찔러넣은 채로, 움직임만 멈춰서 물어본다.
요코「……그, 그걸로 괜찮을……거……으으……」
미사토「아아, 하세쿠라의 보증이 있다면 든든한데요」
리스타트.
요코「꺄앗」
순간적으로 까치발 자세가 되었다.
미사토「?」
타이치「그렇다면 역시 이 근방에서 전파가 검출되지 않는다는 건―――」
선배의 주의를 대화로 끌어당긴다.
내 모든 신경은 애무로 향했다.
질 안의 성감대에 손가락을 놓고, 핀 포인트에서 진동시킨다.
요코「아아아……안돼……안돼……타이치……」
효과 만점.
허벅지의 근육이 꾹하고 수축되었다.
온몸을 살짝 떤다.
목덜미가 쭈뻣거리고, 닭살이 돋았다.
더욱 더 몰아붙인다.
약점 공격을 일단 그만두고, 질 전체를 손가락으로 문지른다.
요코「응……응……읏……흐앙……응…………」
안에서 습기가 밀려와, 손바닥에 맺힌다.
살에 끼인 손가락을 휙 구부렸다.
요코「응―――으으읏, 으으―――!!」
갔다.
요코「하, 한 번……」
미사토「한 번?」
타이치「요코의 버릇이에요. 의미는 없으니까 신경쓰지 마세요」
미사토「네에……」
요코는 그다지 남 앞에 모습을 보이지 않기 때문에, 다소의 기이한 언동은 허용될 것이다.
요코 역시도, 군죠의 일원인 건 틀림없으니까.
사실, 그 시험의 완성도는 훌륭하다.
이상자를 결코 놓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는―――
자.
뒷주머니에서 기구를 꺼낸다.
A3 네 개로 움직이는 울트라 로터다.
은색의 그 기구를, 요코의 질 안에 넣었다.
이미 젖어 있었기 때문에, 쉽게 들어갔다.
요코「……차가……워……」
미사토「하세쿠라, 몸이 안 좋아 보이네요?」
타이치「항상 이래요. 머뭇거리거나, 소리를 내거나」
타이치「신경쓰지 마세요. 뭐……이게 요코의 군청색이니까요」
미사토「아아, 그렇군요」
간단히 납득했다.
그럼, 스위치 온.
요코「……으읏!?」
다리가 딱 닫혔다.
『차렷』자세를 연상시킨다.
요코「으읏……응……너무 세……」
모터는 제일 약하게 해 뒀다.
그래도 상당한 진동이다.
부드럽게 쾌락을 고조시키는 게 아니라, 강제로 절정으로 이끌어간다.
집어넣을 때 위치를 조정해, 약한 부분에 닿게 했다.
요코「응……읏……읏~~~」
점점 견디기 힘들어지는 듯.
미사토「힘들겠네요」
타이치「뭐, 저도 있으니까요」
선배는 호의적인 미소를 지었다.
강한 바람소리가 모터소리를 지우는 게 다행이었다.
로터의 존재는 전혀 눈치채지 못한 듯.
아, 빠졌다.
다시 밀어넣는다.
요코「……꺄흐읏……읏!」
우뚝 선 까치발 자세.
더 깊숙히 밀어넣는다.
요코「……으으응―――!?」
더 까치발.
스위치 최대.
요코「……으으응……응……~~~~~~~~~읏읏읏읏!!」
갔다갔다.
빠르네.
쥐구멍에 몰리듯 빠르게 절정에 달하고 있었다.
들어올린 뒤꿈치를 바닥으로 내리지조차 못한 채.
요코「……히이……두, 두 번, 째……으으읏!」
간 횟수를 알려주라고 명령해 놓았다.
그건 그렇고 이 로터, 진짜 굉장한데.
보통 로터는 건전지 두 개가 들어가지만, 이건 네 개나 쓰고 있다.
최대로 하면, 지진소리 같은 굉음이 들린다.
그런 것이 질 안에 들어가 있는 것이다.
미사토「얼굴이 빨개요……어머, 굉장한 땀」
타이치「항상 이래요. 오히려 상태가 좋다는 증거예요」
미사토「그런가요……」
타이치「상태가 안 좋아지면, 의사도 어쩔 수 없죠. 이대로만 있어 줬으면 좋겠어요」
미사토「이런 우리들만이 살아남아서……고생이겠네요」
타이치「정말이에요」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끄덕.
요코「……으으응, 으으응, 으으으응, ~~읏!」
요코「세, 세 번째……」
또 갔다.
간격이 짧은데.
전원을 끈다.
요코「……하아, 하아」
온.
최강과 최약을 5초씩 교대로 트는 모드로 전환했다.
요코「……읏……으으……하아……아으……으으으으……」
타이치「이런 시대에서 살아가야 되는 거네요, 우리들은」
미사토「그러게요, 정말 걱정이에요」
요코「아……아……응……타이치……」
울 것 같은 목소리.
또 빠지려 했다.
밀어넣는다.
요코「……아앗……응……」
코드를 쥐고 일부러 아슬아슬한 곳까지 잡아뺀다.
요코「―――으으응!?」
다시 깊숙히 삽입.
요코「으으읏……아아아……」
굉장히 젖은 것 같다.
치마 뒷쪽을 슬쩍 들춰 본다.
엉덩이에서 허벅지에 걸쳐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바닥에도 무수한 물방울이 떨어져, 작은 웅덩이를 이루고 있었다.
그렇게 보는 사이에, 또 빠져나오려 했다.
밀어넣는다.
요코「…………히이익!?」
순간적인 경련. 짧은 비명.
선배도, 한 박자 늦게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조금 압도당한 것 같다.
미사토「무, 무슨 일이에요?」
타이치「딸꾹질이에요」
요코「방금 그걸로……네, 번째……」
요코「……하아, 으으으……힘들어……안돼……이제, 안돼……」
여전히 느끼고 있다.
엉덩이를 쓰다듬자, 근육이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움찔움찔 경련하고 있었다.
요코「……다섯, 번째……으응……꺄아아아앗!!」
애액이 분출하고 있다.
지금 누가 바닥을 본다면, 오줌을 지렸다고 생각할 것이다.
허벅지에서 바닥에 이르기까지,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요코「……읏……안돼……약하, 게…………아읏……」
미사토「어쩐지……두근두근거리는데요……저기?」
왠지 모르게 음란한 것을 느낀 듯한 선배.
타이치「익숙해지면 괜찮아요. 별다른 의미는 없어요」
미사토「그런가요……그럼 괜찮지만요」
요코「……하앙, 응, 읏……하아하아……응…………아…………」
경련.
요코「여섯 번째……」
한없이 가고 있었다.
요코「……으……으으으……일곱 번……째……꺄악!!」
요코「읏, 하아, 하앗……아으―――」
미사토「어머, 땀이」
미사토「이거 쓰세요」
손수건.
요코「하아, 하아, 하아, 하아……」
요코는 움직일 수 없다.
나를 꼭 껴안은 채로 굳어가고 있다.
타이치「자, 받아야지」
요코「하아……무, 무리……조금이라도 움직이면……이제……하으읏……으아앙!?」
요코「……여덟, 번째…………」
미사토「저 카운트는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요……」
타이치「실은 요코는 스트레칭을 안 하면 정신이 불안정해지는 심각한 마음의 병을 가지고 있어요」
미사토「……네에―」
타이치「이렇게 그냥 서 있는 것처럼 보여도, 실은 스트레칭 자세인 거예요」
미사토「그렇군요, 수수께끼는 다 풀렸어요!」
선배는 마음을 놓았다.
미사토「이상하게 몸이 움찔거리는 건 스트레칭 운동, 카운트는 그 횟수, 얼굴이 빨간 건 운동이 효과적이기 때문이군요?」
타이치「역시 선배! 거의 정답이에요」
미사토「에헤헤」
이상하게 몸을 움찔거리는 건 보○가 기분이 좋아서.
카운트는 오르가즘 횟수.
얼굴이 빨간 건 로터가 안 떨어지게 하려고 괄약근에 힘을 넣고 있어서.
……이지만. 이야, 참 아깝게 틀렸어.
미사토「알았어요. 그럼 저, 하세쿠라의 거동은 일절 신경 안 쓸게요. 존중하겠습니다」
타이치「잘됐다, 요코! 선배야말로 좋은 이해자구나」
야누스를 빙글빙글 마사지해 준다.
요코「……으으으으으으…………앗, 안돼……머, 멈추지 않아아……용서……해 줘…………~~~~!!」
요코「아홉 번…………으읏, 바, 바로 또……열 번……」
연속 모드.
미사토「땀, 제가 닦아줄게요」
요코「……아, 안돼……지금 만지면……」
선배의 손수건은, 목덜미(성감대)를 스윽 닦았다.
동시에, 정지시켰던 로터를 다시 깊숙히 안쪽으로 밀어넣었다.
그리고―――점화.
요코「……꺅……앗…………여, 열한 번…………으응, 으……으으으……~~~~~」
나를 껴안으며, 연속으로 절정에 달했다.
동시에, 의식이 육체를 떠났다.
미사토「아, 하세쿠라!」
쓰러진다.
받아세웠다.
슬그머니 로터를 회수.
타이치「아―, 일났네……자주 이래요, 스트레칭을 너무 해서」
미사토「아아, 스트레칭은 꽤 힘든 거군요」
타이치「양호실에서 쉬게 해줄게요. 그럼 이만」
미사토「네, 잘가요」
요코를 업고, 그 자리를 빠져나갔다.

양호실에서 요코를 재운다.
완전히 의식을 잃고 있었다.
타이치「하하하」
이상했다.
분노의 반동으로 느껴지는 이상함이었다.
사람을 이해한다니.
타이치「나, 폭주할지도 모르는데 어디 계속 잘 해봐」
…………………….
학교를 나오기 전, 문득 옥상을 보았다.
미미 선배가 뛰어내리고 있었다.
타이치「……………………」
난 부드러운 선배가, 딱딱한 지면에 들이받혀 부서지는 순간을 보았다.
감정이, 순간 제어불능 영역으로 날아갔다.
…………………….

타이치「으……」
구토.
도중에, 몇 번이나 위액을 삼킨 것 같다.
그저 붉은빛 광경이 눈부셔서였다.
물리적인 이유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정신적……인 것도 아닌 것 같다.
현실의 광경이며, 시야를 물들이는『무언가』. 그 와중에 나는 있던 것이다.
당연히, 난 붉은색을 싫어한다.
보고 있으면, 정신에 극도의 과부하가 걸린다.
고문에 가깝다.
구토는 그런 과부하게 의해 나온 것으로, 말하자면 내……인격을 지키기 위한 방어수단이라 할 수 있었다.
이물질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빨강이 내 의식을 침범한다.
혐오감이, 필터가 열심히 작동한다.
오감이 둔해진다. 아니 사라진다.
몽유병에 걸린 것도 같고, 자고 있는 듯한 나른함도 느껴진다.
강의를 시작한다.
①미미 선배에 대해
내가 요코에게 하고 있던 수치 플레이를, 그녀는 눈치챘을까?
위의 물음은 전혀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
②사쿠라바에 대해
사쿠라바는 저항하지 않았다.
사태를 이해하지 못한 것일지도 모른다.
③키리와 미키에 대해
우선 조심해야 하는 것은, 키리가 무장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또 콤비이기 때문에, 미키 역시 무기를 소지하고 있을 거라 생각된다.
실행은 키리부터다.
공격력이 있는 쪽부터.
하지만 미키의 위험도가 미지수이므로 경계가 필요했다.
미키가 어느 정도의 전력을 가지고 있는지를 조사한다. 가장 우선적인 행동이다.
실행했고, 잘 됐다.
④토오코에 대해
죽어 있었다.
⑤토모키에 대해
죽어 있었다.
시체는 이동되어, 컨테이너 안에 숨겨져 있었다.
옥상의 대걸레통에 가득 차 있던 물은 검붉게 물들어 있었다.
단지 그뿐.
⑥요코에 대해
그녀는 저항하지 않았다.
타이치「아……」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
…………………….
………….
…….
타이치「아……」
해가 저물고 있다.
난 이성을 찾고 있었다.
쭉 미쳐 있던 걸까?
내가 놓여져 있는 상황을 확인한다.
우선, 오늘은 무슨 요일이더라?
뻔하다.
정문을 나온 순간 저녁이 되었으니까.
꼬박 하루가 지난 것이다.
그 하루만에, 난―――
아아, 눈부신 석양이다.
맑은 대기 너머로 보이는, 주홍빛을 베이스로 한 옅은 농담.
문득 내 몸을 내려다보자, 셔츠가 검게 물들어 있었다.
네 사람의 피다.
타이치「……으으……윽, 으으윽……」
짐승처럼 입을 벌려, 페의 밑바닥으로부터.
소리없는 비명을 쥐어짜낸다.
붉은색은 한없이 퍼져 있었다―――
일요일, 이던가.
난 옥상에 혼자, 우뚝 서 있었다.
요코는 거의 저항하지 않았다.
가만히 내 손을 본다.
붉게 젖은 양손.
타이치「…………」
주변에 있는 것은, 요코뿐만이 아니다.
다들, 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분명히 안테나가 부숴져 있었고, 모두가 모여서, 토모키가 범인이고, 키리가 크로스보우를 들어서.
요코가 키리를 *이고.
말리려고 한 모두에게까지, 그녀는 손을 썼다.
*인기계처럼.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난 요코를 *이고.
살아남은 모두에게『괜찮아』라고 말했더니……누구였더라……주운 나이프로, 나를 노린 게.
나를 괴물이라고 말하며.
난 괴물이 아니다.
그래서, 난 그만 *여버리고.
모두를, *여버리고.
미키는 *이기 전에 *었다.
망가져서.
여러모로 망가져서. 힘들었겠다.
그리고 나서 또 한두 명, *인 것 같기도 한데.
*이고 나서 *인 거지?
반대던가?
어느 게 먼저였더라?
기억에 없다.
어제는 뭘 했더라?
이제 생각이 안 나네.
사소한 일이야. 오늘에 비하면.
아아, 나, 다들 *여버렸네.
날 *여줄 사람은 없나?
없어?
난 누웠다.
깨끗한 하늘이었다.
더러운 하늘이었다.
타이치「빨갛구나―――」
이런 나에게서도, 눈물은 나왔던 것이다.
…………………….
………….
…….

청천벽력이었다.
사쿠라바와 재회한 것은, 1학년 무렵이다.
사쿠라바『나, 기억 나?』
타이치『……앙?』
사쿠라바『학원제 연극 때』
타이치『……넌』
사쿠라바『난 사쿠라바 히로시』
사쿠라바『성으로 불리는 건 싫다. 히로라고 불러 줘』
그 얼굴은 분명히 본 기억이 있었다.
싫은 기억이 더해져 있긴 했지만.
…………………….
타이치『만지지 마』
사쿠라바『……신경쓰이나?』
타이치『안 쓰일 리가 없잖아』
사쿠라바『미안하다』
타이치『사과는 됐어. 다가오지 마』
사쿠라바『용서해 줘라』
타이치『즐. 두 번 다시 말 걸지 마』
사쿠라바『그런데 어제 인터넷에서 말야―――』
타이치『…………』
굴하지 않는다. 질리지 않는다. 꺾이지 않는다.
사쿠라바는 그런 녀석인 것 같다.
…………………….
사쿠라바『여어』
타이치『말 걸지 말라니까』
사쿠라바『숙제 했나?』
타이치『귀가 안 들리냐?』
사쿠라바『응, 안 들린다. 한쪽이 말야』
타이치『……앙?』
사쿠라바『너한테 멋진 싸대기를 먹었을 때 좀』
분명히 때렸다.
하지만, 내 정조를 지킨 것 뿐이다.
타이치『……그래서 어쨌다고. 정당방위야』
사쿠라바『당연하다. 넌 나쁘지 않아』
타이치『……』
사쿠라바『내가 미숙했던 거다』
사쿠라바『생각해 보면……감동이었다』
사쿠라바『무대에서 넌, 빛나고 있었어』
타이치『아―그려그려. 고맙네. 기쁘진 않지만』
사쿠라바『안심해. 내 안에, 이제 불순한 것은 없다』
타이치『……글쎄다』
사쿠라바『정말 없다. 이젠. 여러모로 충격을 받아서 말야』
사쿠라바『내 안에서, 제어 불가능한 어떤 것이 사라져버린 듯한 느낌이다』
타이치『그건 네가 임포라는 말이냐?』
사쿠라바『응, 그렇다』
웃으며 넘겼다.
…………………….
사쿠라바『여어, 타이치』
타이치『……너냐……』
타이치『요 며칠간, 네가 안 보여서 후련하던 참인데』
사쿠라바『화석을 파러 갔었다』
타이치『아앙?』
의미불명이었다.
사쿠라바『암모나이트인 줄 알았더니, 풍뎅이 유충이었다』
타이치『……바보냐 너?』
…………………….
점심을 못 산 적이 있었다.
식권도 빵도 매진이었다.
사쿠라바『여어, 혼자냐?』
타이치『……』
와르르르르르
타이치『뭐하는 거냐!』
산더미 같은 매점 빵.
사쿠라바『전 종류 사 왔다』
사쿠라바『제일 맛있는 걸 찾겠다』
타이치『……맘대로 해』
사쿠라바『너도 먹어라』
타이치『필요없어』
사쿠라바『혼자선 다 못 먹으니까 말야』
사쿠라바『어이, 이 카레빵, 겁나게 맛있다고?』
타이치『…………』
먹어 봤다.
타이치『우, 우웨에에에엑』
최악.
타이치『장난까냐!』
사쿠라바『이 커틀릿 샌드는 안되겠군. 자』
먹어 봤다.
타이치『……맛있는데?』
사쿠라바『그런가? 혀가 이상한 거 아니냐?』
그건 너야.
…………………….
군죠의 시스템은 구속 시간이 길다.
수업이 끝나도 30분 동안은 정문이 열리지 않는다.
문 앞에서 대기하는 30분은, 항상 지루한 시간이었다.
사쿠라바『가는 길이냐?』
타이치『……응』
옆에 선다.
사쿠라바『새는 참 좋다. 다음에 다시 태어날 땐, 새가 되겠어』
갑자기 말했다.
타이치『머리는 이미 어딘가로 날아가고 있는 것 같은데』
사쿠라바『하하하』
타이치『……놀리는 줄도 모르는 거냐』
…………………….
방송부원이 되었다.
처음 부실에 얼굴을 내민 날.
타이치『근데, 왜 네가 있는 거냐……』
사쿠라바『너무 좋아하지 마』
타이치『좆까』
참고로 토모키는 조금 늦게 입부했다.
미미 선배가 스카우트한 것 같다.
토모키『시마 토모키라고 하는데……잘 부탁해』
사쿠라바『난 사쿠라바 히로시. 성으로 불리는 건 싫다. 히로라고 불러 줘』
토모키『……아니……그건 좀……』
보기좋게 거절당했다.
…………………….
세 명은 부실에서 규정시간을 보냈다.
항상.
토모키『그러니까, 거기가 아니라고……왜 일부러 잘못 두는 거야』
사쿠라바『이게 더 재밌어 보이니까』
토모키『장기는 승부야』
사쿠라바『난 재밌는 일만 한다』
사쿠라바『어이, 타이치도 어때? 같이 하자』
타이치『……즐』
어깨를 으쓱였다.
토모키『……느낌이 안좋네, 쿠로스는』
사쿠라바『그런가? 난 좋은데』
나에겐 아무리 작은 대화라도 들린다.
하지 말아 줘.
외치고 싶었다.
…………………….
토모키『네 일이었잖아!』
타이치『……해야할 의무는 없는 것 같은데』
토모키『있어, 부원이니까』
타이치『비켜, 시스콤』
모멸을 담아 말하자, 시마 토모키의 얼굴은 순식간에 붉어졌다.
토모키『……이 자식!』
다툼이 되었다.
서로 부여잡고 넘어진다.
어설프긴!
한 대 날린다.
힘조절은 했다.
상처는 안 날 정도로, 하지만 아프게 때렸다.
때리면서, 나는 지루해했다.
시시한 장난에 진절머리가 났다.
문득, 시선을 눈치챈다.
타이치『뭘 보냐』
사쿠라바『그냥 보고 있다』
타이치『재밌냐?』
사쿠라바『청춘이구나』
타이치『…………』
사쿠라바『왜 그래, 기분이 풀릴 때까지 해 봐라. 좀 더 청춘도가 올라갈 거야』
타이치『……』
토모키『……』
일어난다.
타이치『……됐다. 바보같다』
토모키『야, 일은!』
시끄럽긴.
타이치『예이예이……하면 되잖아』
토모키『……그래. 처음부터 그랬으면 좋을 걸』
타이치『이딴 건 모르는데 어쩌라고』
토모키『그럼 물어보면 되잖아』
당연하다는 듯 녀석은 말했다.
찢어진 입술.
아픔으로 얼굴을 찡그렸지만, 토모키는 그것을 내색하지 않았다.
사쿠라바『어이』
타이치『뭐냐』
사쿠라바『……청춘은 벌써 끝났나?』
타이치『……』
타이치『일해』
…………………….
어차피 심심하니, 그냥 도와줄까…….
사쿠라바『여―어』
타이치『여―어』
사쿠라바『……충격이다』
타이치『왜 그래, 또 취재라도 당했냐?』
사쿠라바『고양이가 죽었다』
타이치『앙?』
사쿠라바『차에 치여서 고양이가 죽었다. 좋지 않다. 좋지 않아』
타이치『……치였다니……야……왜 울고 있어?』
사쿠라바『……모르겠다. 아마 고양이 때문이겠지』
타이치『아마라니……』
사쿠라바『멈추지 않는다』
사쿠라바『……멈추지 않아』
의외로 섬세하기도 한 것 같다.
단 사쿠라바 독자적 기준으로.
그리고 잠시 후.
사쿠라바『어이, 충격이다』
타이치『이번엔 뭐냐』
사쿠라바『난 이 학교의 모든 사람한테 놀림당하고 있는 것 같다』
타이치『이제 알았냐?』
경쾌하게 말했다.
타이치『빨리도 눈치챈다』
사쿠라바『……난 그렇게 우스운 남자였나?』
이 녀석은 어쩌면, 악의에 둔감한 건지도 모른다.
정말로.
사소한 엇박자로 망가져버리지 않을까?
당시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론……정반대였다.
사쿠라바는 그 굽히지 않는 강건함으로, 어떤 정신적 참패로부터도 반드시 되살아났다.
심하게 상처를 입으면, 그것을 달래기 위해 황당한 짓을 했다.
여행을 떠나거나, 춤을 추거나, 연주를 하거나.
일주일 정도 걸려서 대체로 부활했다.
……………………
그리고 우리들은, 여차저차해서 어울리게 되었다.
도원의 맹세는, 그 후의 일이 된다―――

학교에 가려고 집을 나오자, 하세쿠라 요코.
요코「안녕, 타이치」
타이치「응. 그럼, 그런 연유로 바이바이」
도망친다.
등 뒤에서 옷자락을 붙잡힌다.
타이치「꾸엑……」
요코「자, 잠깐 정도는 얘기해 줘도 될 텐데……」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타이치「넌 나한테 종속적이면서, 이따금 허를 찌르려고 한단 말야」
타이치「그런 널 전면적으로 신용할 수가 없어」
요코「적당한 자극 연출」
타이치「날 자기 손바닥 위에서 춤추게 하고 싶겠지만, 그렇게는 안 돼지 같은 여자」
요코「……시마 토모키 비슷. 조금 환멸」
환멸당했다.
요코「상관없잖아. 별로. 타이치, 조금 원숭이 비슷하니까」
타이치「바보 취급하지 마. 난 영장류야」
요코「…………」
바보 취급당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제길, 반항적인데.
괴롭혀 줘야지.
치마를 들췄다.
요코「…………」
타이치「꽤 섹시한 팬티를 입고 계시는데요?」
요코「여자는 언제나 진검승부」
동요하지 않는다.
타이치「팬티 내립니다요?」
요코「……할 거야?」
타이치「안 해……」
요코「어서 와」
으―.
시시해―.
이 여자에겐, 수치심이 없다.
부끄러움이 없다.
소용없다.
그녀에게 내 벚꽃빛 영혼을 이식시키는 건 불가능했다.
육체적으로는 둘째치고.
타이치「그럼 이거다」
타이치백에서 그것을 꺼낸다.
그리고 그녀의 코를 집는다.
산소결핍으로 입을 여는 순간을 기다린다.
요코「……」
5초.
10초.
30초.
1분.
1분 30초.
타이치「……저기, 호흡은?」
요코「…………」
왜 태연한 겁니까?
관두자.
손을 떼어놓자, 그녀는 가볍게 숨을 들이마셨다.
요코「혈중 산소량이 많으면, 오래 숨을 참고 있을 수 있어」
타이치「바다 사나이냐 넌」
요코「뭘 하고 싶었던 거야?」
타이치「……입을 열지 않을까 해서」
요코「아―앙」
간단했다.
타이치「혀 내밀어」
요코「응―」
긴 혀.
타바스코를 뿌린다. 열 방울 정도.
손가락으로 바른다.
부드러운 혀.
게다가 기분 탓인지 표면이 거칠거칠하다.
최고의 핑크 살롱양이 될 소질을 가지고 있었다.
타이치「자, 끝났습니다」
요코「……」
순간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지만.
요코「……으읏」
입을 막고 떨기 시작했다.
벽돌 벽에 기대버린다.
통했다.
보통 사람보다 뛰어난 혀를 가지고 있는 덕분에 민감한 것이다.
타이치「주스 마실래?」
요코「……응, 응……빨리……」
빼앗듯이 가져가서 마신다.
타이치「칠리 주스 맛있어?」
요코「으……」
울타리를 향해 쓰러졌다.
타이치「이겼다……」
오랜만에 완벽히 이긴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자, 학교 가자.
요코「……가기……전에……도시락……이라도……」
달라붙는다.
울상을 지으며 봉지 하나를 건네주려 한다.
조금 죄책감이 들었다.
타이치「……알았어, 가져갈게」
어머니같았다.
어머니 없지만.
요코「잘 다녀와」
고마웠지만, 솔직하게 기뻐할 수는 없었다.

고개에서 소녀와 부딪혔다.
나나카「꺅……아야야야야……어딜 보고 걷는 거야―, 이 둔탱아!」
타이치「큭……뭐야, 네가 한눈판 게 잘못이잖아―!」
나나카「처음 부딪혔을 때부터 좋아해 왔어!」
안겨온다.
타이치「히에엑! 전개가 너무 빨라!」
이런 급속 전형적 전개를 어디선가 본 거 같은데―.
타이치「……근데 누구시죠?」
나나카「나나카」
타이치「나나카……음, 좋은 이름이네」
나나카「감사」
나나카「뭐 내가 누군가에 대해선, 이어지는 조사를 기다리시고」
타이치「유령 아냐?」
나나카「아―, 아마 아닐 거야」
타이치「척 보기에도 꽤 고스틱인데」
※고스틱=고스트틱한
나나카「아니야. 다리도 있어」
타이치「아니……그건……요즘 고스트들은 대개 다리도 달렸고……」
나나카「뭐 내가 누군가에 대해선, 이어지는 조사를 기다리시고」
억지로 이야기를 돌렸다.
타이치「……상관없지만」
나나카「그럼 명함을 줄게」
받아든다.
JOB 차세대 미소녀
NAME 나나카 ~NANACA~

당신의 하트, 뺏어주ㆍ겠ㆍ어♪
타이치「…………」
어디부터 태클을 걸까?
나나카「흐흥~」
나나카는 완전히 득의양양.
나나카『반해도 돼』
라고 말하는 듯한 후지코급의 표정으로 나에게 곁눈질을 보내왔다.
타이치「나나카, '의'자 잘못 썼어」
나나카「일부러야」
갑자기 진지한 얼굴. 아니 화내고 있다.
타이치「…………」
이 녀석, 위험한가?
민완 영 어덜트로서 이름을 날리고 있는 내가 감지할 수 없는 분위기는 없었다.
그것이 말하고 있었다.
이 여자는 위험하다고.
그치만, 아무리 생각해도 실수인걸. 말도 안 돼―.
하지만……이런 사람들을 더 이상 자극하는 건 좋지 않다.
타이치「그래 너 겁나게 큐트한데, 용건은?」
나나카「이야―, 방금 전엔 상쾌했어―」
순간 기분을 바꿨다.
위험인물 특유의 반응이다.
나나카「그 여자가 괴로워하는 모습!」
킥킥 웃는다.
타이치「봤어?」
나나카「힐끔」
나나카「시원했어!」
타이치「……요코가 싫어?」
나나카「싫은 여자야. 메―롱이다, 메―롱」
타이치「너하고 요코의 관계를 모르겠는데……」
나나카「없어. 만난 적도 없고. 그냥 열받아」
나나카「그래서 오늘 아침은 기분이 좋아―」
타이치「아아, 그러신가요」
나나카「그러니까 이번 주는 안 들이받도록 하겠습니다」
아, 안 들이받아?
의미를 모르겠다.
나나카「안 좋아―, 그런 사람」
타이치「……무지 싫어한다는 건 알겠어」
나나카「게다가, 뭔가 잔뜩 착각하고 있고」
타이치「뭐어……」
어디까지 아는 걸까?
나나카「그런 여자한테……타이치의 처음을 뺏길 줄 알았다면……내가……」
어두워졌다.
타이치「처음?」
나나카「아―, 싫은 일이 떠올랐네. 훠이훠이. 잊어 줘」
타이치「저기요」
나나카「입가심♪」

타이치「…………!」
타이치「왜, 왜, 어째서!?」
나나카「뭐 어때, 닳는 것도 아니고」
타이치「뭐랄까, 묘하게 ……민완 영 어덜트인 이 내가……」
나나카「뭐, 그런 여자는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나나카「타이치, 유혹당하면 안 된다?」
타이치「그야 뭐……안 당할 것 같은데」
정말로 뭘까, 이 사람.
존재하고 있다는 밀도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기척이 없다.
나나카「있잖아, 오늘은 좀 진지해」
타이치「응」
나나카「지금부터 잠깐, 나하고 같이 사당에 가 줬으면 해」
타이치「뭐야? 강간이냐?」
나나카「즐!」
나나카「그런 게 아니라, 진지한 이야기. 사당, 알고 있지?」
타이치「응, 대충」
별로 다가가고 싶은 장소는 아니지만.
왜냐면 그곳은―――
나나카「이런 건 조금 무섭지만……따라와 줬으면 해」
나나카「왜냐면 타이치, 그 여자에 비해 조사가 부족한 걸」
타이치「그 여자라면 요코?」
나나카「……분하지만 우수하긴 해」
타이치「뇌의 사용법 자체부터 다르니까」
타이치「그다지 깊이 생각 안 하는 게 좋아, 그거에 대해선」
나나카「그렇겠네」
나나카「응, 부탁해! 잠깐 따라와 줘!」
손을 잡혔다.
타이치「알았어……가자」
잠시 살펴보니.
그냥 보기에는 친근한 유령.
나에게 위해를 가할 가능성은 적다.
나나카「역시 타이치! 얘기가 통하네!」
엄지손가락을 들었다.

둘이서 산길을 걷는다.
나에게는 어제도 걸었던 길.
타이치「나나카, 괜찮아?」
나나카「아―, 괜찮아 괜찮아! 체력엔 자신 있으니까」
그 말대로, 땀 한 방울 없다.
운동부인 걸까.
타이치「이쯤이던가?」
나나카「좀 더 안쪽」
나나카「맞다, 주변 수풀 같은 데 괜히 들어가지 마. 함정 있으니까」
타이치「수렵용 함정?」
나나카「대충 그런 거. 나중에 해체해두는 게 좋을 거야」
타이치「……위험하네―」
타이치「찾았다찾았다」
타이치「근데, 여기서 뭘 어떻게 해야―――」
나나카는 사라져 있었다.
타이치「어라? 나나카―?」
타이치「어―이, 나나카―!」
타이치「뭐야뭐야. 방치 플레이?」
영문을 모르겠다.
일단 사당에는 왔지만…….
장소만 안내하고 사라지다니, 꽤 암시적인데.
사당을 조사하란 건가?
타이치「……흠」
모처럼 왔는데 아무것도 안 하고 가는 것도 허무해서, 조사해 보기로 했다.
가벼운 기분으로 사당의 문을 열었다.
노트가 빽빽히.
타이치「……우와아」
놀랐다.
별다른 장식 없는 어슴푸레한 그 안에는, 괴물도 없고 낡은 항아리도 단검도 수정구슬도 없었지만…….
노트가 쌓여 있었다.
큰 특징없는 학생 노트 묶음이다.
타이치「……」
꺼낸다.
표지에는 매직으로 숫자가 적혀 있었다.
권수일려나.
1이라고 적힌 노트를 펼쳐본다.
…….
………….
…………………….
대충 다 읽었다.
타이치「……………………아앙?」
타이치「어, 뭐야 이거?」
머릿속으로 정리한다.
타이치「즉……」
①나에게 있는 또 하나의 인격이 일기를 썼다
②미래의 내가 쓴 것이 여기에 와 있다
③같은 시간을 반복하고 있다
타이치「③……이겠지」
여타의 속임수가 있을 가능성은 제외.
뭣보다 이건 내 글씨고.
타이치「세계가 되풀이되고 있다, 그건가」
황당무계하지만, 그렇게 이해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내 유연성이 새삼 고맙다.
인류 멸망과는 이어지지 않지만, 뭔가 관련성은 있을 것 같다.
타이치「그런데……」
어느 노트를 봐도, 들떠 있긴 하지만…….
타이치「어쩐지 전부, 절망적인 발버둥 같은데」
되풀이되고 있다는 기억은 남지 않는 것 같다.
매번 죽어왔다는 것이다.
옛날에 했던 게임처럼.
타이치「…………」
순간, 난 깊은 사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몇 가지 추측과, 의혹과, 진상을 도출해 냈다.
타이치「흠」
사당의 내부 (또는 주변)은, 리셋 효과에서 벗어나 있는 것 같다.
잠시 사당 주변을 조사해 봤다.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타이치「눈으로 봐서 알 정도면 고생은 안 하겠지」
나나카의 존재도 있다.
날 여기에 이끌어 온 존재.
그 애도 알고 있었나?
일기의 기록을 믿는다면, 나나카는 매번 나타나고 있다.
사람같이 보이지 않는 것과도 관련이 있으려나.
노트를 사당에 돌려놓는다.
이건 보존해 두는 편이 좋다.
만에 하나 내가 기억을 잊는다 해도……요코라면 자력으로 진실에 도달할 것이다.
노트를 보면, 지금 내가 생각한 정도의 결론은 순식간에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다.
타이치「아……맞다, 교복」
나나카의 교복.
본 적도 없는 디자인이었다.
이 근방 학교 (산 건너편에 하나밖에 없지만)는 아니다.
만일 다음에 만난다면 물어보자.
우선 내가 해야 할 일.
매일을 보내며 일기를 쓰는 것.
정보를 남기면서, 살아남는 것.
그렇게 생각했다.
타이치「기왕 할 거면, 즐거운 편이 좋겠지」
되풀이되는 고독한 세계.
하지만 나에게는, 이상적인 장소일지도 모른다.
자 그럼.
이번주도 열심히 살아보자.
…………………….

타이치「……」
도는 세계라.
이 월요일을, 난 몇 번이나 되풀이해온 걸까.
등등을 생각하는 동안.
미키를 발견.
미키도 나를 발견.
타이치「어―이, 미키ㆍ마―――」
저작권상으로 꽤 곤란한 개그를 하려는 그 순간.
뛰어왔다.
나를 향해.
다리를 절름거리며.
타이치「왓, 미안! 내가 잘못했어! 소니 보노법이 합법인 줄은 몰랐어!」
미키「으아~~~~~~앙!!」
울었다.
타이치「무슨 일이야!?」
내 가슴에 뛰어들었다.
받아세운다.
미키「선배, 선배선배선배―――――!!」
흐느껴 운다.
미키「아무도 없어요~~~~~~! 이상해~~~~~, 이런 거 분명 이상해요~~~~~~!!」
약하다!!
경험치가 없어서 그런가?
미키「어딜 가봐도 아무도 없어요! 정말로 아무도 없어요, 다 사라졌어요!!」
타이치「어, 어젯밤에 알았잖아?」
등을 두드리며 위로한다.
여자의 눈물에는 약하다.
미키「그치만, 그치만!」
타이치「내가 있잖아」
미키「……으으읏, 네……다행이야……있어서……」
개그였는데.
미키「아침에 일어나니까, 엄마도 없고, 밥도 없어서……그래서 다들 없어지지 않았을까 생각해서……」
타이치「무서워졌구나」
이마를 찧을 듯, 세차게 끄덕인다.
미키「싫어요, 이런 거……저, 싫어요……」
하늘을 바라본다.
타이치「역시 사람이 없으니까 쓸쓸하구나」
미키「……돌아가고 싶어……」
날카로운 말이다.
여기가 본래 세계가 아니라는 것.
세계`라는 것.
미키의 말은 우연이었겠지만.
정곡을 찌르고 있었다.
타이치「돌아가고 싶다라……」
미키「가고 싶어, 가고 싶어요……」
타이치「이거 곤란한데, 어쩌지」
미키를 위로할 방법은 있다.
조금 비겁한 방법.
비슷한 종류인 우리들이라 성립하는 방법.
일주일 한정이니까.
뭐든지 할 수 있다.
사람이 일생을 열심히, 후회없이 살아가려는 것과도 같이.
이 일주일 동안의 고유의 우리들은, 바쁘게 살아가야만 한다.
미키를 유혹할 대사를 몇 가지 생각한 순간.
발차기가 날아왔다.
키리「이얏――――――――――!!」
타이치「까울!」
키리의 발차기가, 날 미키에게서 떼어냈다.
타이치「니 뭐하노!」
키리「치한행위는 그만두세요!」
타이치「치한 아냐!」
키리「치한 100%예요」
타이치「치한 아니라니깐!」
미키「후아아, 키리찡……」
미키가 울상을 짓는다.
그리고 키리에게 안긴다.
미키「흐에에에엥~~~~~~!」
키리「괜찮아, 이제 괜찮아」
어라?
타이치「미키야……내 무죄를 증명해 주지 않겠니?」
미키「으엥, 히잉, 으앙」
흐느껴 울고 있다.
대신에 키리가 나를 찌릿 노려본다.
키리「……용서 못 해」
키리「치한은 절대로 용서 못 해요!」
타이치「아니랑께!」
키리「미키가 울고 있는 게 증거예요」
타이치「어이어이어이어이」
장난이 아닌데.
이렇게 순조롭게 치한죄가 완성되는 건가?
도망칠 수밖에.
대쉬!
키리「앗―, 도망쳤다!」

학교에 도착.
이제 뭘 어쩌지…….
일단 돌아다녀 보자.


ㆍ部室 (부실)


토모키가 복도쪽 창문에 붙인 위장사진을 다시 붙이고 있었다.
타이치「여―어」
토모키「아, 타이치……」
순간 쪽팔린 듯, 창가에서 떨어졌다.
부실에는 복도쪽에도 창이 달려 있다.
밖에서 감시하기 위해서다.
이유는 뭐 간단.
타이치「……붙여도 의미 없잖아?」
토모키「신경쓰여서 말야. 별 의미는 없어」
의미는 없다, 라.
분명히 그렇다. 실질적으론.
하지만 마음 속으로는?
토모키「그건 그렇고, 진짜로 아무도 없네」
타이치「응, 진짜로 여덟 명뿐인 것 같다」
토모키「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토모키는, 미미 선배를 원망하고 있었지.
친남매인데.
성씨가 다른 건, 여러가지 사정 때문인 것 같다.
집안사정.
타이치「어젯밤의 그거, 진심이야?」
토모키「응?」
타이치「식료품 문제를 네가 맡는다는 거」
토모키「아아, 오후부터 하려고. 학교엔 조금 상황을 보러 왔을 뿐이야」
타이치「식료품이라」
필요없는 것이다.
어차피 일주일 후에 세계는 공전.
만일 죽어도, 되살아난다.
타이치「……」
웅성거린다. 마음이.
안돼…….
마음을 가라앉혀야지.
타이치「우정은 대가를」
토모키「요구하지 않는다」

우리들은 엄지손가락을 마주세웠다.
토모키「……갑자기 뭐야」
타이치「있잖아 토모키」
토모키「응?」
타이치「미미 선배하고……싸우고 있지?」
토모키「응……」
타이치「그럼 이런 상황에서도 계속 싸울 거야?」
토모키「……별로」
그늘이 진다.
토모키「뭘 하든 신경 안 써, 그 사람에 대해선」
완고한 말.
타이치「만화 같은 데에선, 그런 싸움 때문에 여러모로 어긋나는데」
토모키는 몹시 차분한 표정이었다.

적당한 곳에서 쉬기로 했다.
식당에서 샌드위치를 먹는다.
먹으면서 생각한다.
일주일간의 세계.
이상하게도 저항이 없다.
나에게는 쭉 앞으로 이어지고 있는 세계보다 살기 쉽기 때문이다.
되풀이되는 나날.
문득 생각했다.
생각해버렸다.
한없이 반복되는 일주일. 그 안에, 전원이 화해할 가능성은 없는 걸까?
방송부 여덟 명의 결속은 뿔뿔이 흩어졌다.
누구 한 사람이 나서서 화해를 하려고 해도, 간단하지는 않다.
일기에서 읽은 것이기도 하다.
만약 가능하다면.
……보고 싶다.
요코「자, 차 마셔」
타이치「……음―」
타이치「꿀꺽꿀꺽……푸핫―! 시원하고 맛있네, 한 잔 더―」
플라스틱 컵을 내민다.
그녀는 컵을 받아들고는 말없이 수통의 내용물을 따르는데 하세쿠라 요코가 거기에 나타났다.
타이치「……기척을 지우지 마」
요코「왜?」
타이치「갑자기 옆에 있으면 깜짝 놀라니까」
요코「따로 지우는 건 아냐. 자연스러운 현상」
타이치「……갑자기 목소리가 들리면, 누구라도 놀란다고」
요코「방심?」
타이치「아니, 방심하고 싶으니까」
요코「나태?」
타이치「느긋하게 살고 싶다는 의미야」
요코「……아까워」
타이치「피곤해. 항상 날카롭게 신경쓰다 보면」
요코「그런 걸 일상화하면 괜찮을 거야」
요코「타이치의 생각은, 그저 귀차니즘」
타이치「절교하겠습니다」
요코「……취소할게」
말싸움이 생기지 않는다.
밀고 당기기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트러블이 일어나지 않는다.
받을 뿐,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
마음의 교류가 없다.
타이치「자기 몸의 일부를 사랑하는 듯한 감정이야」
요코「……아냐」
이해는 빠르다.
하지만, 날 이해해주진 않는다.
요코「난 타이치를 사랑할 뿐」
타이치「……뭐, 그런 걸로 쳐 두지」
귀찮아졌다.
어차피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으니.
내가 그녀에 대해, 효과적인 일격을 가할 방법은.
……하나.
그것은 작은 칼날.
하지만 확실히 통한다.
요코도 그 존재를 알고 있다.
그래서 경계하고 있다.
서로 견제하며, 우리들은 살아가고 있다.
타이치「내참」
샌드위치를 베어문다.
꼬르륵
요코「…………」
타이치「……앉을래?」
요코「……괜찮아?」
타이치「맘대로 해」
찰싹 몸을 기대왔다.
2인분 있는 샌드위치의 반을 던진다.
요코「고마워」
타이치「자기가 만든 거면서」
요코「응. 고마워」
타이치「……」
이런 교류. 아무리 많이 이루어져도.
그저 형태를 흉내내고 있을 뿐이다.
그건……나도 같은가.
타이치「뭐, 어떻게든 되겠지……」
…………………….
………….
…….

타이치「호……」
여러모로 움직여 봤다.
월요일의 부활동.
세계 최후의 날에, 모두가 대단원의 막을 맞이하기 위해.
하지만……어려움을 느꼈다.
전원을 화간……이 아니라 화해시키려면, 딱 들어맞는 퍼즐이 필요하다.
사당으로 간다.
대량의 노트.
다 읽지 못할 정도의 양이다.
미키를 처리(관용어)하면, 키리가 안된다.
정보가 많다는 건 좋은 일이다.
하지만 너무 많으면, 해석할 시간이 없어진다.
딜레마다.
난 밤중까지, 머리를 쥐어싸맸다.
요코「타이치」
등 뒤에서 라이트가 켜진다.
회중전등이다.
그리고 요코.
타이치「으으……눈부셔……」
요코「아무리 그 눈이라도, 글씨를 읽으면 안 좋아져」
타이치「응……고마워」
요코「뭔가 발견했어?」
타이치「없어. 정보의 바다에서 끝없이 헤매고 있는 것 같아」
요코「그래, 유감이네」
타이치「요코는 이 노트를……」
물어보다가, 입을 다문다.
그녀에게 의지하게 되는 꼴 아냐.
타이치「됐다. 가자」
일어난다.
노트는 일단 사당에 돌려놓는다.
몇 권은 가져간다. 읽을 수 있을 정도만.
요코「……같이 가도 돼?」
타이치「맨날 감시하고 있는 주제에」
요코「미안해……」

사쿠라바「여어」
타이치「자」
마스크를 건넸다.
사쿠라바「OK」
아무 의문도 없이 장착했다.
사쿠라바「배 고프다」
타이치「아침 안 먹었냐?」
사쿠라바「1교시 수업에 대비하고 있다」
타이치「……카레빵 먹는 게 수업이냐?」
사쿠라바「카레빵이 사라지는 그날까지」
쿨하게 말했다.
기록대로다.
타이치「레토로트 카레라도 먹으면 되잖아」
사쿠라바「카레는 싫다」
기록대로다.
좀 더 진행한다.
사쿠라바「헥스!」
타이치「……육각형 참극」
이것도 기록에 있었다.
발생률은 지금까지 확인한 것만으로도 15% 이상.
일곱 번에 한 번은 콧물다리가 건설된다는 계산이다.
하지만 과거의 어떤 훌륭한 사람(나)은, 마스크를 장착시키는 것으로 회피하는 방법을 고안해 냈다.
사쿠라바「……마스크, 벗어도 되나?」
타이치「그건 허가할 수 없다」
사쿠라바「괴롭구나……인생은」
타이치「내가 하고픈 말이다」

자 그럼.


ㆍ屋上 (옥상)


미미 선배는 자고 있었다.
타이치「여보세요―」
미사토「……응―?」
타이치「안녕하세요. 아침이에요. 타이치예요」
미사토「에……아, 정말……」
느릿느릿 일어난다.
으―음, 팬티 볼 수 있겠다.
난 한쪽 무릎을 꿇었다.
여왕에게 충성을 맹세한 기사처럼 (동기야 어쨌든).
미사토「우선 안녕하세요」
타이치「안녕하세요, 선배」
타이치「낮 중에 여기서 자다 보면 햇빛 때문에 죽을 걸요?」
미사토「아, 네, 그렇겠네요, 조심할게요」
치맛자락을 들어올려 안경을 닦는다.
오―.
새끈하다.
겁나게 새끈하다.
선배는 예쁘구나.
미사토「후아암」
치마가 살랑 원래자리로 돌아갔다.
선배는 안경을 다시 썼다.
미사토「졸리네요」
타이치「소하일화니까요」
미사토「들은 적 없는 말이네요……」
타이치「만들었으니까요」
미사토「페케군은 물건을 만드는 재능이 있는 것 같아요」
타이치「……」
미사토「왜 주저앉는 거예요?」
타이치「사랑의 곡사포가 하늘에 구애하고 있어요. 배꼽까지 휘감긴 채로」
미사토「잘은 모르지만, 꽤나 시적으로 들리네요……」
타이치「황송합니다」
미사토「목이 마르네요」
선배는 자기 짐을 뒤졌다.
슈욱
타이치「응?」
술병이다.
미사토「꿀꺽꿀꺽꿀꺽꿀꺽」
타이치「우왁, 맞다!」
뺏는다.
미사토「앗……뭐하는 거예요」
타이치「학교에서 술은 안돼요!」
미사토「할머니댁이 술가게니까 괜찮아요」
타이치「안돼요」
미사토「……알고 있어요」
삐졌다.
미사토「그치만, 이제 지킬 필요도 없잖아요」
타이치「뭐어」
미사토「그래요, 사람이 없으면 규칙 같은 건 의미가 없는 거예요」
미사토「그런데 전, 뭘 위해서……」
머리를 세차게 쓰다듬는다.
타이치「……선배」
미사토「페케군은, 왜 여기 왔어요?」
타이치「상황을 보러 왔어요」
미사토「……왜……이제와서」
타이치「미미 선배가 좋으니까요」
미사토「…………그런……말을……」
코 끝이 빨간 건, 술 때문일까?
미사토「경솔하게 하면 안돼요! 사랑의 말은, 남녀 모두에게 중요한 분기점이 되니까요!」
꾸중들었다.
타이치「아니……그치만, 날 어둠에서 밝은 곳으로 이끌어준 건, 선배니까요」
그저 곁에 있을 뿐인 요코와는 달랐다.
미사토「그런……그냥 말을 걸었을 뿐이에요」
타이치「계기란 건 원래 그렇잖아요?」
미사토「네, 네, 이 이야기는 이쯤에서 그만―」
파닥파닥 손을 흔든다.
……안되려나.
타이치「결혼을 전제로 한 교제를―――」
미사토「맞다, 원고 부탁해요!」
도망쳤다.
타이치「원고요?」
미사토「네, 맑고 정직하고 밝고 건전한 첫 회 방송용 원고작성을 의뢰합니다」
타이치「……음―」
뭐, 당초의 목적이었으니까.
타이치「알았어요」
어차피 노트에, 지금까지의 패턴도 기록되어 있다.
굳이 새 루트를 만들 필요는 없겠지.

지쳤다…….
타이치「뭐랄까……전혀 진전이 없네」
요코「그러게」
신출귀몰. 하세쿠라 요코.
타이치「……봤어?」
요코「전부는 아니지만」
타이치「악취미」
요코「……땀 흐르고 있어」
손수건으로 닦아준다.
타이치「됐어, 땀 정돈」
밀친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세게 저항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타이치「뭐, 상관없지만……」

밤, 토모키가 식료품 상자를 가져왔다.
그 안에서 대충 먹을 걸 꺼내 저녁을 때웠다.
어두운 방에서, 침대에 누워 여러모로 생각한다.
타이치「……」
해피 엔딩 찾기.
이건 그러한 행위일 것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문제를 대강은 이해하고 있는데, 잘 되지가 않는다.
시간은 일주일밖에 없는데.
누구 한 사람과 가까워지는 데, 일주일.
전원이면 7주일.
사쿠라바랑 토모키, 요코는 뺀다 해도.
4주일.
4배의 집중력으로 행동하면 된다……는 것도 아닐 테고.
타이치「어려버……」
결국은 해결책은 내지 못한 채, 잠에 빠졌다.
…………………….
………….
…….

토오코가 없다.
타이치「……맞다」
이 시간대라면 자택에서 쇠약한 채로 있을 것이다.


ㆍ屋上 (옥상)


타이치「안녕하세요―」
미사토「아아, 안녕하세요」
타이치「어때요?」
미사토「전혀 순조롭지 않아요」
타이치「큰일이네요」
안테나를 본다.
사다리 위에 철골과 철사와 공구 등이……이봐이봐, 공구까지 위에 있으면 어쩌자고?
타이치「흐―음, 이게 그 소문의 안테나군」
중얼거리며 사다리 위의 위험물을 바닥에 내려놓는다.
미사토「……저기?」
타이치「아, 이러면 되나―」
안테나 중간에 걸쳐 있던 공구류도 전부 바닥으로.
미사토「잠 덜 깼어요?」
타이치「아뇨, 아주 멀쩡한데요―」
타이치「그럼그럼, 이만이만」
선배는 멍―하게 날 바라보고 있다.
이 타이밍만 피하면, 다치지는 않을 날……것이다.
타이치「아」
……안 다치면 진행이 안 되는 거던가?
타이치「그래도 뭐」
그렇다고 해서, 사고현장을 내버려두는 건…….
타이치「하아」
결국, 공략을 진전시키는 효과는 없을 것 같다.

침대에 뒹군다.
밝을 동안에 할 수 있는 일은 해두고 싶지만.
의욕이 나질 않는다.
내 바람은 간단한 건데.
공략 노트에까지 의지하면서……3일 동안……결속 하나 되돌리지 못했다.
결속.
방송부 전원이 나란히 하는 부활동.
밝고 즐겁고 건전한, 라디오 방송.
노트는 그 성질상, 결과가 기록되지 않는다.
어떤 방법이 내가 바라는 결말에 가까운 건지, 난 판단할 수 없다.
타이치「목요일, 금요일, 토요일……」
앞으로 얼마나 남았지?
몰랐으면 좋을 걸.
세계가 반복된다니.
타이치「으으으……」
낮게 신음한다.
이상한 세계이자, 안타까운 현실인 지금에 대한 분노다.
겨우 3일 내지는 4일.
타이치「뭘 할 수 있다는 거야……그 정도 시간으로」
주먹을 쥔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감정의 파도가, 내 몸을 뜨겁게 달궜다.
쉴새없이―――
…………………….
………….
…….

난 행동했다.
노트에 있던 기록을 참고해, 그때그때 최적의 행동을 취했다.
행복을 위해.
결속을 쌓아올리기 위해.
친구ㆍ우정ㆍ인연.
그런 눈부신 것들을 위해.

그리고 쓸데없는 하루가 끝났다.
눈꼽만큼의 위선조차 쌓지 못한 채―――
…………………….
………….
…….

금요일이 되었다.
원래대로라면, 서로의 관계에도 변화가 있는 무렵.
하지만 팔방미인처럼 진행해 온 난, 아무것도 못 얻은 채 시간을 낭비해버렸다.
미미 선배와도, 토오코와도, 키리와도, 미키와도…….
서로의 거리감은, 절망적으로 먼 채였다.
…………………….
반나절 동안 돌아다녔지만, 성과 없음.
타이치「하아」
지쳤다.
정문 앞에 주저앉아, 저녁 때까지 보내기로 한다.
그 때, 익숙한 인기척이 먼 곳에서 접근해 왔다.
요코다.
별일이다. 이렇게 무방비한 건.
요코「……도울 일 있어?」
내 앞에 서서 말한다.
타이치「아니, 지금은……」
그대로 무시하려 했지만, 그만 질문을 해버린다.
지푸라기라도 잡자는 심정이었다.
타이치「요코……어떡해야 다들 잘 될 수 있을까?」
타이치「미미 선배가 하고 있는 부활동에 다들 사이좋게 참가해, 적당히 청춘을 즐기고, 장난치고, 웃는……그런 루트는 없는 거야?」
타이치「문제들을 해결하고, 서로를 존중하고, 희망이 있고……」
타이치「사이좋게 싸우고, 방송용 대본을 함께 체크하고, 다함께 트러블에 대처하고……」
타이치「없는 걸까?」
어쩌면, 그녀라면 알고 있지 않을까.
희미한 희망을 품었다.
요코「없을 거야」
타이치「……」
담담한 요코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차갑게 들렸다.
요코「그럴 가능성은, 어디에도 없을 거야」
요코「타이치가 이 세계, 이 상황에서 전원의 사이를 회복하고 안전하게 부활동을 시행하기 위해선……좀 더 시간을 오래 들이거나, 좀 더 좋은 상태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어」
요코「그 중에 아무것도 타이치는 못해」
요코「절대적인 한계가 있어」
요코「그러니까 아무리 노력해도, 소용없을 거야」
타이치「……그래」
또렷하게 없다는 말을 들었다.
타이치「이런 말하는 건 좀 불공평하지만……차가운 방정식이네, 그건」
그녀는 반응하지 않는다.
멈춰선 채로, 내 말을 기다린다.
타이치「매주, 너덜너덜한 상태에서 시작하고 있다는 말이잖아」
타이치「아무것도 못 이룬 채 끝나고……루프하고……최악의 매일을 몇십 주씩……」
타이치「무슨 장난이야, 그거」
머리를 감쌌다.
내 마음의 공복을 채우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요코「타이치……노트는 저게 전부는 아냐」
갑자기 그녀는 말했다.
타이치「뭐라고?」
요코「더 파멸적인 역사와 가능성을 나타낸 노트도 있어」
타이치「어딨는데?」
요코「……숨겼어」
요코「당신이 상처받지 않도록」
요코「또……포기하도록」
요코「……볼래?」
타이치「……」
파멸적인 역사…….
요코「아무리 발버둥쳐도, 아무리 싸워도」
요코「수많은 가능성 속에서, 당신을 이해해주는 사람은……없어」
요코「있다면, 나뿐」
요코「……이제 슬슬 이해해 줬으면 해」
타이치「이해는 하고 있어」
타이치「하지만, 넌 날 사랑하는 게 아니잖아!?」
외친다.
타이치「뭐야, 이 세계는!」
깊게 숨을 내쉬었다.
분노와 함께.
타이치「있잖아……여긴 이세계야?」
요코는 내 앞에 섰다.
그리고 발 끝으로, 땅바닥에『X』자를 그렸다.
요코「가능성은 두 가지」
요코「하나는, 선형이었던 두 개의 세계축이 교차해 양쪽을 지각할 수 있는 상태가 되어버렸다……SF지」
두 개의 세계가.
비틀리고 교차.
타이치「세계가 겹쳐져서, 이상이 일어났다는 거야?」
타이치「음……그 경우에, 우리들의 원래 있던 세계는? 그대로 유지될 리가―――」
요코「또 하나는, 우리가 있던 세계의 종말이 이것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안이한 구원을, 반만 인정했다.
타이치「…………」
타이치「다세계끼리의 간섭은 있을 수 없다……는 거네. 양자역학에 의하면」
양자역학이라 하면 디랙이지만, 난 원서를 읽은 적은 없다.
애초에 지금의 상황이, 양자역학적 해석에 어울리는지도 의문이지만.
타이치「……방금 말했던 SF쪽 말인데……그건?」
요코「A와 B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된다는 거야. 어느 쪽을 고를 것 같아?」
타이치「……반반이지. 내용을 모른다면」
요코「그래. 우리들은 매일, 무수한 선택지 위에서 살아가고 있어」
요코「예를 들어 걸을 때, 어느 쪽 다리부터 앞으로 내밀까」
요코「밥 반찬을 뭐부터 먹을까」
요코「좀 더 작은 세계에서도, 선택은 이루어져」
요코「온갖 순간에, 무수한 선택을 하고 있어」
요코「세계는 선택에 의해 만들어졌어」
요코「그것도, 극히 확정적으로」
타이치「확정적으로……」
요코「예를 들면 타이치는 A를 고른다. 타이치는 A를 골랐단 것을 자각하고 있다」
요코「하지만 동시에, 같은 세계축에서는 B를 선택한 타이치도 존재한다」
요코「병렬적인 세계의 존재를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지만……」
요코「적어도 디랙의 개념에서는, A선택세계에서 B선택세계를 지각하는 것은 불가능. 역도 성립」
요코「반대로 지각하지 못한다면, 세계 간의 이동은 가능해」
요코「자외선을 볼 수 있는 사람에게는 세계가 완전히 다르게 보이듯이」
요코「다세계를 관측할 수 있는 사람은, 두 개의 세계에 모두 존재할 수가 있어」
요코「관측이 이루어진 순간, 그 세계의 사람이 되어 있다……라고도 생각할 수 있지」
타이치「관측……한다……?」
타이치「세계는 변함없이 그곳에 있고, 즉 보는 사람의 차이라는 건가?」
요코「그런 느낌」
요코「단 다세계관측은, 현재의 이론으로는 불가능해」
요코「우리들 복수가 한번에 이동한 이유도 설명이 안 되고」
요코「그래서 SF」
타이치「……흠」
타이치「두 번째 가능성에 대해선?」
요코「난 그게 진실이라고 생각해」
요코「즉 다른 세계는 관측되지 않았다」
타이치「……음―, 방금 전 SF 해석은 아니라는 거네」
단정한 얼굴이 고개를 끄덕인다.
요코「세계, 시간, 고유의 역사. 모두 일련의 것」
요코「즉……시간도 되감기지 않았다」
타이치「……응?」
타이치「그건 이상한데. 일기에는 월요일부터 토요일 부근까지 기록이 되어 있고……거기서 다시 월요일로 돌아오는데?」
요코「루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에 지나지 않아」
요코「당연히 세계는, 영원히 시간을 반복하고 있는 게 아냐」
요코「이 상황이, 세계의 확정적인 종말이었어」
요코「세계는 교차하고 있지 않아. 이변은 일어나지 않았어. 모두 일련의 사건. 원래 이런 가능성이 허용되는 세계에서, 우리들은 가능성을 따라 당연한 듯이 지금에 이르렀어」
요코「다세계 간의 지각 교착이 일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하나의 길로 나아가고 있을 뿐」
타이치「루프하고 있는 것처럼이라니……실제로 우리들, 몇 번이나 리셋되어 왔고……」
타이치「게다가 원래 세계에서 루프 같은 현상은 안 일어났……」
눈치챘다.
그런가.
타이치「자각할 수 없다……」
루프가 일어난 것을, 우리들은 원래 자각할 수 없다.
사당이란 특수한 장소가 존재하지 않는 한.
루프는 결코 드러나지 않는다.
타이치「세계에는 원래 루프라는 현상이 예정되어 있었어? 인류의 황혼으로써?」
긴 여정의 끝에.
대지가 붕괴하는 것뿐이 멸망은 아니다.
시공간이 흐트러지고, 앞으로 나아가지 않게 되는 것이……임종이란 것이었다.
타이치「하지만……하지만 말야」
요코「특정 조건……지금의 경우엔, 일요일의 특정 시간에 도달한 순간, 세계는 다시 분해된다……라고밖에 말할 수 없어」
요코「공간적으로 기록된 정보에 의해, 분해된 입자가 결집, 월요일의 상태로 돌아온다」
타이치「그러니, 세계에게는 일련의 행동……」
요코「그 증거로써, 사당의 존재가 있어」
요코「노트의 기록 내용은 과거의 존재를 나타내」
요코「과거를 관측할 수 있는 이상, 과거는 있어」
요코「이 세계는, 과거를 허용하고 있다는 거야」
요코「그리고 우리들은, 몇 번이나 분해되고 구축되어서 여기에 있다」
요코「……엄밀하게 말하면, 우리들은 이미 인간이 아닌 거야」
타이치「그럼 뭔데?」
요코「현상」
지나치게 들어맞는 그 말이, 마음을 찔렀다.
이미 인간이 아니다―――
타이치「넌 일련설을 따로 말했지만, 내게는 전자도 비슷한 것처럼 들려. 어느 쪽이 올바른지, 지금은 판단할 수 없겠지만……」
요코「우리에게는 루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어떤지는 조사할 방법이 없어」
요코「……그렇다면 우선은, 지금 있는 이론을 적용할 수밖에 없어」
요코「현 상황에서 세계간의 이동은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므로, 이동이 없다는 가정을 한 후자」
타이치「아아, 그렇군……」
양자역학에서 다세계 해석은, 병렬적 세계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착각이며, 실제로는 좀 더 확정적인 사고실험이다.
그곳에서는 세계 A와 세계 B는 동시에 존재하고 있지만 왕래는 할 수 없다.
왜냐면 동시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이해가 조금 귀찮아진다.
타이치「디랙, 적어도 번역본이라도 있으면 읽어볼 텐데」
요코「만약 기존의 이론을 이탈하고 있다 해도」
요코「일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일이 일어났다. 그뿐이야」
요코「물리의 영역은 넓고, 인간은 아직 그 모든 것을 밝혀낸 건 아니야」
요코「그리고 지금의 우리들에게, 이론은 사소한 일에 지나지 않아」
요코「필요한 건, 뭘까?」
타이치「모르겠어」
요코「이해자, 잖아?」
미소짓는다.
타이치「…………」
요코「타이치의 이해자라면, 여기에 있어」
요코「그 누구도, 당신을 이해해주지 않아」
요코「의태를 하면 할수록……」
그렇다.
당연한 일이다.
사람의 흉내를 내면, 흉내뿐인 존재가 되어버린다.
숨겨진 내면을 들키면 그걸로 끝이다.
생각해 낸다.
타이치「알고 있었어……그런 건」
타이치「이미, 그 순간부터!」

유사「좋은 방이네요」
도지마 유사.
착한 아이였다.
순잔히고 건강한.
마음에 병을 숨기고 있지만, 사람을 상처입힐 줄도 모른다.
유사「저……여기 공식을 모르겠는데요……」
내 눈에는, 달콤한 물.
유사「……타이치 오빠?」
임종은 갑작스러웠다.
갑작스럽게 드러난 나의 내면은, 소녀에게는 맹독이 되었다.
유사「타이치……오빠……맞죠?」
타이치「응, 맞아」
유사「저, 저기……저……」
타이치「예쁘네」
내 눈동자는 빛나고 있었을 것이다.
욕망과 광기로.
타이치「예쁘니까, 옷을 벗어 봐」
유사「…………」
육식동물과 마주쳐본 적이 있다면 안다.
벌겋게 충혈된 두 눈동자가 바라보는 것을.
호의도 악의도 아니다.
한없이 뜨거운 그 시선은……단순한 식욕이다.
인간인 자신을, 음식으로밖에 인식하지 않는 눈.
강렬한 식욕이, 자신을 압박하는 것이다.
때로는 구토를 동반하기도 한다.
그녀처럼.
유사「시……싫어어어어어어어어어!!」
유사「……기분……나빠……」
유사「으……으으……」
웅크려 앉아 구토를 하는 소녀를 내려다보며, 난 그 시시한 결말에 따분해하고 있었다.
부수기 전에 망가진 소녀.
타이치「…………」
그리고, 그녀는 나를 피하게 되었다.
오물을 보는 듯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실제로, 난 오물이었다.
난―――
…………………….

요코「있어봐야 상처입을 뿐」
요코「타이치의 먹이에 지나지 않아」
타이치「시끄러, 그러니까 안다고!」
요코는 침묵을 지킨다.
타이치「그래도 웬만해선 그러진……않아……그러고 싶진 않아……」
타이치「어떻게든 될 거야……」
요코「나만 있으면 돼」
자신의 가슴팍을 누른다.
요코「나라면, 타이치하고 잘 해나갈 수 있어」
새카만 감정이, 하복부에 스며들었다.


ㆍ我慢する (참는다)


타이치「…………」
하고 싶은 말은 잔뜩 있었다.
하지만, 그녀에게 무슨 말을 해도 의미는 없다.
나는 그저, 해야할 일을 할뿐이다.
…………………….
………….
…….

그리고, 일요일.
옥상.
모든 준비가 끝났다.
……그럴 예정이었다.
안테나는 파괴되어 있었다.
세계에는『여덟 명』밖에 없는데.
미미 선배는 파괴된 잔해 앞에 있었다.
웅크려 있었다.
어깨에 손을 올려놓으려 하자, 피했다.
토모키와 사쿠라바가 왔다.
토오코가 왔다.
사쿠라바가 토모키를 때렸다.
맞은 토모키의 입가가, 부자연스럽게 일그러졌다.
문이 세차게 열리며, 키리와 미키가 나타났다.
살상력을 보유한 키리였다.
그리고 남은 건, 밑으로 굴러가는 것뿐이었다.
밝혀진 진상.
배신당한 관계.
환영보다 무상하고 무른 결속.
아냐.
아냐아냐아냐.
내가 바라고 있던 건 단절이 아냐.
토오코가 죽는다.
잡음이 커진다.
키리가 적의를 나에게 향한다.
그 순간, 난 키리를 죽이고 싶어졌다.
자, 끝―――

복도를 뛴다.
학생들의 웅성거림.
무수한 신발소리.
문이 열리는 소리.
종소리.
무음.
무음.
아무것도 전달되지 않는다.
요코「타이치는 잘 살아남아 왔어」
요코「몇 번이나 몇십 번이나 몇백 번이나 몇천 번이나, 가능성을 찾아 왔어」
요코「하지만 그 안에, 타이치가 원하던 해피엔드는 하나도 없었어」
요코「모두, 배드엔드에 가까운 거였어」
요코「배드엔드밖에 없었어」
요코「……이제 알겠지?」
타이치「…………」
피냄새와 함께, 그녀가 뒤쫓아온다.
타이치「왜 죽였어?」
요코「……당신에겐, 나뿐이야」
요코「그걸 알았으면 좋겠어」
요코「이제 이런 건 끝내자」
요코「그리고, 둘이서 함께 살아가면 돼」
타이치「그럴 순 없어……」
요코「그래」
요코「그럼, 기다릴게. 언제까지나」

저택에서의 나날은, 거무칙칙한 침전물 속에 잠긴 나날이었다.
창문에 비치는 내 모습이 소녀처럼 보인다.
당연하다.
여장하고 있으니까.
룸메이트가 있었다.
하세쿠라 요코.
그녀다.
그리고 밤마다 우리들은 끌려갔다.
아동학대.
하지만 그렇지 않다.
요코도 나도, 명목상으론 그들에게 보호받고 있다.
우리들은 매일밤, 사람들의 열정의 화살에 의해 상처받아왔다.
매일, 매일.
상처입히는 사람과 상처입는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우리들은, 상처입는 자의 말로를 보았다.
참살된 부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살아남는 것을 바랄 뿐이었다.
마음도 몸도, 모든 것이 상처투성이인 채로, 우리들은 살아갔다.
그리고 계약.
마음에 새겨진 생존동맹.
맹세만으로 충분히,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되었다.
그 남자만 안 왔다면―――
능욕이 과격함을 더하자.
우리들은, 계획을 변경했다.
전력은 아이 둘.
그리고 지리.
중요한 것은, 일망타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각개격파하기엔 수가 너무 많다.
불가능을 가능하게 할 정도의 방법이 필요했다.
시간을 들여, 도구를 준비하고, 훈련하고, 관찰하고, 변경하고, 검토하고, 보류하고, 구입하고, 개량하고, 조사하고, 결정하고, 철회하고, 키스를 했다.
우리들이 그들에게 주는 것은 파멸이며, 그때까지 빼앗긴 모든 존엄이 대가다.
그녀의 순결도, 그들에게 뺏기기 전에 처리를 했다.
우리들은 일심동체로, 남매로, 연결된 것이었다.
서로의 연결은, 즐거움을 위한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처리였던 것이다.
계획은 정체를 거듭하면서도 착실히 진행되었다.
그리고 결행의 날.
사망자 열네 명.
아이는, 짐승이 되었다.
그리고 우리들은……해방되었다.
피해자로서.
그래, 가녀린 소년소녀들로서.
불쌍한 희생자.
범인은……,
타이치「굉장히 크고……머리카락이 없는……남자, 였어요」
반인륜적 엽기 사건은, 깊고 어두운 미궁 속에 빠져버렸다.

사당 주변은 언제나 일정한 온도로 유지되고 있다.
난 왜 여기에 왔을까.
지난주 일요일, 합숙 내내 한 번도 온 적은 없는데.
돌아가고 싶었다.
그래, 난 도망치고 싶었다.
이 아무도 없는 세계에서.
모두를 죽여버린 세계에서.
왜냐면 우리들은,
풀숲을 멤돈다.
여기를 통과했었으니까.
통과했다, 라기엔 어폐가 좀 있나.
난 바라보았을 뿐이다.
그 때.
억지로 강행한 합숙이 실패로 끝나고, 전원이 냉랭한 분위기에서 걷고 있었다.
보통 교육기관보다 훨씬 긴 여름방학의, 마지막 며칠간을 소비해 가며.
모두 괴로운 기분이었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도망치듯 맨 앞에서 걷고 있었다.
도망치고 싶었다.
그런 나의 눈이, 포착한 것.
본능적으로, 건너편의 공허한 모습을 느꼈다.
차라리 혼자가 되어버리자고, 그 순간엔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바라보았다.
그러자 세계는, 만화책을 넘기듯이 단번에 변했다.
타이치「……」
내가 두 개의 세계를 관측할 수 있는 자라는 것을.
그리고 세계가, 생각보다 훨씬 엉망진창이란 것을 알았다.
초조한 마음에 휩싸여, 사당을 발로 찼다.
충격으로 문이 열린다.
여기를 여는 건, 호기심 많은 나도 태어나서 처음이다.
안쪽을 엿본다.
순간 움찔한다.
타이치「뭐야, 이거……」
거기에 담겨 있던 것은,
천장까지 빽빽히 채워진, 노트 다발이었다.
타이치「이건……?」
틈새가 없을 정도로, 대학 노트가 틀어박혀 있었다.
한기를 느끼며, 한 권을 꺼내 본다.
움찔했다.
내 글씨잖아.
이것도, 이것도!
타이치「이것도……아, 이것도……」
쓴 기억은 없는데.
활자를 눈으로 쫓는다.
한 권……두 권…….
읽어나갈 때마다, 혼란이 가증된다.
일곱 권……여덟 권…….
어느 정도를 넘은 의문은, 뇌 속에서 순간적으로 유기적 결합을 이루었다.
타이치「……되풀이되고……있어?」
그리고 난,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거나, 관계를 회복하거나, 화해를 하거나 하면서……일정한 확률로, 전원이 결속하는 행복한 결말을 요구했다.
세계는 일주일만에 끝났다.
단 그만큼의 시간.
반복되고, 리셋된다는 것도 알면서도, 또다시―――
우정, 인연, 단결.
말이야 어쨌든.
『그것』을 요구해 왔다.
결과는……잔인했다.
있을 리 없는 해피엔드.
나나카「……타이치」
타이치「나나카……?」
월요일에 만난 소녀.
하지만 노트에는, 그 존재가 항상 나타나 있다.
나나카「타이치」
타이치「……뭐야, 이거……」
타이치「무슨 일이야?」
타이치「……다들……죽었어……」
타이치「그런데, 바로 모든 일이 없었던 일이 되고, 다시 처음부터 재시작한다는 거야?」
타이치「뭐야 그게!」
타이치「셀 수 없을 만큼 도전한 결과가……」
노트 다발의 수만큼, 아니, 기록되지 않은 가능성을 포함하면 이것의 몇 배는 될 것이다.
타이치「이거야?」
그 소란으로 검붉은 혈액이 엉겨붙은 손바닥을, 앞으로 내민다.
타이치「이런 결말밖에 없는 거냐고!!」
타이치「좀 더……기분 좋은 결말은……없는 거야?」
타이치「난 몇 번이나 반복했어?」
타이치「몇 번 되풀이했어?」
타이치「얼마나 지랄해야 끝나는 거냐고!」
타이치「몇 번이나 이런 파멸을 겪어야……도달하는 거야」
타이치「……얼마나……모두를……」
나무를 친다.
타이치「모두, 나에겐 필요하단 말야!」
타이치「……난 한 번이라도, 행복한 결말을 맞은 적 있어?」
타이치「대답해, 넌 알고 있잖아? 전지전능한 힘이 있잖아?」
타이치「이 세계의, 실질적인 흑막이잖아!?」
노려본다.
소녀는 슬픈 표정으로, 나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나나카「타이치……」
타이치「대답해」
나나카「저기, 별로 해피엔드가 아니어도 괜찮잖아?」
나나카「누구하고 따로 사귀어서, 행복해지거나」
나나카「친구하고 놀거나」
나나카「쭉, 영원히, 여기서 놀면 되는 거야?」
나나카「재시도가 무한한 이 세계에서, 타이치는 스트레스 없이 살아도 되는 거야」
나나카「편하잖아?」
나나카「그걸론, 안돼?」
나나카「나도 있고 말야」
나나카「안돼?」
타이치「……행복의 뒷편에서, 모두를 죽일 가능성도 있는 거잖아?」
타이치「내가 안 해도, 요코가 손을 쓸 수도 있어」
타이치「행복한 주말과, 불행한 주말이 동시에 일어나」
타이치「표리부동처럼, 불행하기도 행복하기도 해」
타이치「행복은 아무리 쌓여도 괜찮아. 하지만 죄는……」
노트 다발을 꺼내서 던진다.
그것은 도미노처럼 쓰러져, 땅바닥을 덮는다.
타이치「죄도, 한없이 기록되어 가잖아?」
타이치「그런 세계에서……스트레스 없이 살아갈 수 있겠냐……」
타이치「뭐가 편하단 거야」
타이치「……여긴……지옥이야」
나나카「……타이치」
타이치「뭐가 즐거워서, 친구를 상처입혀야 되는데」
타이치「왜 항상, 참아야만 하는 상황까지 몰려야 되는 건데!」
타이치「내 어디가 대단하다고!」
타이치「세계가 리셋된다면, 내가 지금까지 저지른 죄가 왜 여기에 기록되어 있는 거야!!」
타이치「유타카가 나한테 했던 일은 결코 지워지지 않아」
타이치「죄는, 쭉 그곳에 존재하는 거야」
타이치「그리고 사람이 있는 한, 내 죄는 늘어만 가게 되어 있어」
타이치「그래서 합숙에서 돌아오는 길에, 난 어딘가로 가버리고 싶었어」
타이치「나 혼자밖에 없는 곳에, 가고 싶었어」
타이치「……왜, 모두들 말려든 거지?」
나나카「그건 말야, 타이치」
동정의 표정.
나나카「그건 말야……타이치가 모두를 봐서야」
타이치「……뭐라고?」
나나카「여기에 들어올 때, 타이치는 모두를 봤잖아」
나나카「……혼자가 되는 게 무서워서, 등 뒤를 봤잖아?」
나나카「타이치는 모두를 관측하고, 끌어들였어」
타이치「……내가……?」
나나카「아까 너도 말했잖아」
나나카「타인이 필요하다고」
타이치「상처입히기 위해서?」
나나카「아니」
나나카「내가 나 자신으로 있기 위해서―――」
타이치「난, 나 자신을 별로 안 좋아해……」
나나카「그런 말 하지 마, 바보!」
얻어맞는다.
충격은 전혀 없었지만, 마음은 흔들렸다. 희미하게.
나나카「바보, 바보……」
가슴을 수없이 얻어맞는다.
타이치「……미안」
두 개의 주먹을 가슴에 올려논 채로, 나나카는 말했다.
나나카「분명히 넌, 마음 속에 무서운 걸 기르고 있어」
나나카「인간은 고귀하지 않고」
나나카「세계는 아름답지 않다면서」
나나카「그래도 말야, 타이치는 딱 하나, 아름다운 걸 가지고 있잖아?」
타이치「……아무것도 없어. 그저 검을 뿐이야. 사람을 상처입히는 데 특화된 마음이, 아름다울 리가 없어」
나나카「그래도 그 타이치가, 이렇게 평범하게 화내고 있어」
타이치「……」
나나카「건전한 것을 꿈꾸고, 그걸 흉내내고……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아무도 상처입히지 않고, 살아가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어」
타이치「생각할 뿐이야」
나나카「그래도, 그게 재산이야」
나나카「조금은 자신을 가져」
타이치「……난……난」
나나카「쭉 이 일주일을 살아가도 괜찮아?」
그 말은 따스하게, 가슴에 울려퍼졌다.
아니, 마치.
가슴 속에서 들리는 목소리같았다.
어쩐지 그립다.
타이치「……싫어」
고개를 흔든다.
타이치「……돌려보낼래」
나나카「돌려……보내……?」
타이치「모두를, 원래 세계로 돌려보낸다……고」
나나카「타이치……그건……」
타이치「가능할 것 같아. 방금 생각났어」
타이치「뭐랄까나……그 장소……」
타이치「그 장소가, 가장 관측하기 쉬운 장소인 것 같아」
타이치「빛나는 균열 같은 이미지가 남아 있어」
타이치「나한테밖에 안 보이겠지만」
타이치「그 장소에서라면, 송환시키는 게 가능할 지도 몰라」
타이치「내가 관측함으로 인해서」
나나카「잠깐잠깐!」
나나카「……혼자가 된단 말야!?」
비통한 목소리.
반면에, 나는 몹시 침착했다.
타이치「그걸로, 됐어」
나나카는 순간 말을 잃었다.
타이치「방송국 이름, 크로스 채널이었어」
타이치「내가 쿠로스라서」
타이치「시시한 말장난이지만」
타이치「통신이란 건, 사람과 연결되기 위한 기술이잖아?」
타이치「전화, 무선, 라디오, TV, 메일, 휴대폰, 대화, 편지」
타이치「상대와 하나가 될 수는 없어. 하지만 한순간이라면, 서로 교차하고 교감할 수 있어」
타이치「그게 인간이란 거야」
타이치「채널이 교차한다는 것. 그건……」
타이치「마음의 교류이기도 해」
타이치「겁나게 멋진 작명 센스지. 덕분에 간신히 깨달았어」
타이치「난, 누구와도 교차할 수 없었어―――」
나나카「……」
꼭 껴안기자, 포근한 양지에 누워 있는 듯한 안도감이 들었다.
타이치「나나카……?」
나나카「미안해……그런 것밖에 못 남겨줘서……」
남겨?
무슨 말을 하는 거지?
타이치「남기다니?」
하지만 그녀는, 이미 없었다.
타이치「어……나나카?」
타이치「나나카―――!」
기척도 없다.
완전히 사라져버린 것 같다.
쓴웃음.
타이치「……혼자서 하라는 말인가」
노트를 사당에 돌려놓았다.
타이치「내가 들어갈 공간은 없나……」
그래.
과거의 노트가 있다는 것.
이 사당이, 시간의 흐름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
게이트와 사당이 가까운 곳에 있는 건, 우연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사당 뒷편에 주저앉는다.
그 순간―――
타이치「!?」
왜 갑자기 해가 지지?
타이치「뭐……야, 이거?」
올려다본 하늘.
주홍빛이 농도를 더해간다.
흉악한 진홍색이, 세계를 피빛으로 동화시킨다.
타이치「……으……」
현기증이 났다.
심한, 현기증, 이다.
눈을 감는다.
놀이공원의 커피컵 기구를 탔을 때처럼, 반고리관이 흔들리고 있다.
타이치「아아…………」
그리고 세계는, 저물었다.
…………………….
………….
…….

눈을 뜨자, 아침 특유의 차가운 공기가 피부를 찔렀다.
타이치「이건……」
산길을 올라간다.
전망할 수 있는 위치로.
타이치「사람 기척이 없어……」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를 확인해야지.
산을 내려갔다.
…………………….
타이치「하아, 하아……」
타자키 상점으로 달려간다.
날짜 확인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타이치「……9월……7일」
붙어 있는 메모는, 그것이 가장 최신이었다.
아니, 아직 증명은 되지 않는다.
교실에 뛰어든다.
동시에, 말을 잃었다.
창가 자리.
턱을 괴고 앉아 있는 소녀가, 힐끔 이쪽을 쳐다본다.
토오코「……」
말없이 시선을 밖으로 되돌렸다.
할 말이 없었다.
타이치「살아있어……」
눈을 감는다.
내 기억으로는, 분명히 어제 죽은……소녀.
타이치「아아……」
무릎을 꿇고, 온몸을 감정이 연주하는 전율에 맡겼다.
토오코가 기묘한 시선으로 이쪽을 쳐다보았다.
타이치「이따 보자」
기묘하게 일그러진 미소로 손을 흔들며, 교실을 나왔다.
타이치「……월요일이다」
돌아왔다.
내가 나인 채로, 돌아왔다.
다시 산으로 올라가,
그 장소를 엿보자, 그 특유의 접속감각은 소멸해 있었다.
타이치「으……없어?」
그런 말도 안 되는.
당황해하며, 주변을 찾는다.
타이치「……맞다」
뒤늦게 이해했다.
타이치「특정 시간밖에 접속 못하는 거야」
이유야 둘째치고,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주말에는 판단할 수 있겠지.
알아내지 못하면, 다음 일주일 동안 조사하면 된다.
사당에서 노트를 꺼낸다.
조사해 본다.
이 세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을.
학습한다.
완전무결한 행복이 없어도 상관없다.
모두가 사이좋게 지낸다는 건, 나 혼자의 바람에 지나지 않는다.
개개인의 접촉 안에서, 최선의 것을 얻을 방법은 있다.
그것이, 나의 현재 목표다.
추억을 가슴에 새기고 살아간다.
한 문장으로 설명 가능했다.
나는 원했다.
아무도 상처입지 않는 낙원을.
무츠미 아줌마. 전 그걸 손에 넣어보려고 해요.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나는 눈을 떴다.
만약을 위해, 수풀 안쪽을 확인한다.
좋아.
위상의 어긋남. 그렇게 말해 두자.
내 눈만이 관측할 수 있는 그것은, 건너편 세계로 통하는 송환로.
관측할 수 있는 사람에게만, 진실이 된다.
그곳을 빠져나가면, 돌아갈 수 있다.
사람들로 가득찬 세계로.
하지만. 그래.
난―――
요코의 모습은 없다.
다만 도시락만이 책상에 놓여 있었다.
학교로 간다.
아무도 없는 세계를 걷는다.
사람뿐만이 아니라, 생물 그 자체의 기척이 없다.
가득차 있다는 느낌이 없다.
매미도 울지 않는다.
부자연스러운 공간.
교차한 세계의 중심에서 멤돌고 있는 모순.
불과 여덟 명뿐인 작은 세계.
타이치「……」
나나카도 나타나지 않는다.
나나카「……………………」
자 그럼.


ㆍ學食 (식당)


식당에 왔다.
사쿠라바가 카레빵을 먹고 있다.
이 녀석은 간단하다. 겁나게.
일요일 시점에서 신병을 구속하면 끝이다.
타이치「사쿠라바―」
사쿠라바「응―?」
타이치「일요일 아침, 우리 집에 집합」
사쿠라바「알았다. 걱정 마」
저 말을 믿지는 않는다. 물론.

눈을 뜬다.
햇빛이 창문을 넘어 들어오고 있었다.
간만에 푹 잔 것 같다. 꿈 하나 안 꿨다.
시간은……7시.
학교에 가야지.
사쿠라바「여어」
타이치「자」
마스크를 건넸다.
사쿠라바「OK」
아무 의문도 없이 장착했다.
사쿠라바「배 고프다」
타이치「아침 안 먹었냐?」
사쿠라바「1교시 수업에 대비하고 있다」
타이치「……카레빵 먹는 게 수업이냐?」
사쿠라바「카레빵이 사라지는 그 날까지」
쿨하게 말했다.
기록대로다.
타이치「레토로트 카레라도 먹으면 되잖아」
사쿠라바「카레는 싫다」
기록대로다.
좀 더 진행한다.
사쿠라바「헥스!」
타이치「……훗, 왔군, 육각형 참극」
그렇게 기록되어 있었다.
발생률은 지금까지 확인한 것만으로도 15% 이상.
일곱 번에 한 번은 콧물다리가 건설된다는 계산이다.
하지만 과거의 어떤 훌륭한 사람(나)은, 마스크를 장착시키는 것으로 회피하는 방법을 고안해 냈다.
사쿠라바「……마스크, 벗어도 되나?」
타이치「그건 허가할 수 없다」
사쿠라바「괴롭구나……인생은」
타이치「정말이다」
타이치「그럼, 난 가보마」
사쿠라바「……그래」
타이치「일요일 아침에 우리 집에 집합이다」
사쿠라바「알았다. 괜찮아」
믿어도 될까.

수요일.
학교로.
학생을 탈주시키지 않기 위한 문.
학생을 지키고 있다기 보단, 바깥 세계를 우리들로부터 지키고 있는 듯한.
그런 인상이 들었다.
타이치「또 여기냐」
사쿠라바「……질렸다」
타이치「그렇겠지」
타이치「권태감에 싸인 네놈한테 한 마디 해 두겠는데」
타이치「멋대로 여행 떠나지 마」
사쿠라바「알았다」
타이치「내 허가를 받아」
사쿠라바「알았다」
타이치「그 건성건성한 대답이 불안해! 듣고는 있는 거냐!」
사쿠라바「괜찮다. 네 허가를 받으면 되는 거지?」
타이치「잘 아네」
사쿠라바「모험도 여행에 포함되나?」
타이치「전부 다야!」
사쿠라바「전부라……탐험도 포함되나」
타이치「아 동네를 나가려고 하는 행위 전부를 가리킨다」
사쿠라바「아아, 이해했다」
진짜냐?
사쿠라바「그럼, 하나 질문이 있는데」
타이치「앙?」
사쿠라바「男女男, 이란 글자 말야」
타이치「응」
사쿠라바「흥분되지」
타이치「……임포 자식이」

사쿠라바「타이치~!」
사쿠라바「어이―, 타이치~!」
타이치「뭐야뭐야」
사쿠라바「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타이치「……」
목덜미에 수도.
쓰러지는 사쿠라바.
사쿠라바「……으으, 여행을……」
타이치「아직도 지껄이냐」
타이치「여행은 금지」
사쿠라바「그거 괴롭군……」
타이치「다음주까지 금지다」
사쿠라바「다음주부터는 괜찮나?」
타이치「응. 다음주부턴 OK다. 앞으로 몇일만 참아」
사쿠라바「그런가……음, 알았다」
타이치「갑작스런 놈. 뭐 어제 오늘 일도 아니다만」
사쿠라바「들어 줘」
타이치「뭘?」
사쿠라바「카레빵에 질렸다」
타이치「……얌마」
사쿠라바「자극이 부족해졌다. 뭔가 재밌는 걸 찾으러 간다」
타이치「너한텐 요정의 피가 흐르고 있는 것 같다」
사쿠라바「그리고 어쩌면 사람들하고 만날 지도 몰라」
타이치「……흐―음」
생각이 아주 없는 건 아니었군.
사쿠라바「맞다맞다, 꿨던 돈도 갚으려다」
타이치「아아, 그러고 보니 꿔줬었나……」
사쿠라바「얼마였더라?」
이제 돈 같은 건 의미도 없는데.
이상한 녀석.
타이치「글쎄, 액수는 잘 모르겠는데」
사쿠라바「일단 지갑에 있는 동전들만 주지」
지갑을 꺼낸다.
타이치「……으―음」
사쿠라바「그리고 모자란 건 이걸로 때워 줘」
보따리에서 나무상자를 꺼낸다.
타이치「아, 그건 됐어……그냥 갖고 가」
사쿠라바「그러냐? 돈이 될 텐데」
타이치「그건 안 돼. 어디 박물관에다 기부해야 돼」
사쿠라바「……?」
사쿠라바「있잖아, 다음주의 여행에 대해선데」
타이치「아아, 왜?」
사쿠라바「너도 같이 가지 않겠나?」
타이치「……나도 여행을?」
사쿠라바「어때?」
타이치「……재밌겠네」
다음주.
타이치「좋아, 가 주지」
사쿠라바「좋았어, 둘이 같이 매가 되자」
타이치「참새가 되든 메추라기가 되든 맘대로 해」
사쿠라바「그럼, 난 이만 여행을 떠나기로 하마」
타이치「잠깐!」
타이치「일요일까지 참으라고 했잖아!」
사쿠라바「아아, 미안, 까먹었다」
겁나게 위험하다.
타이치「사쿠라바, 널 체포한다」
사쿠라바「……뭐?」
타이치「긴급 체포다」
사쿠라바「긴급!?」
타이치「그렇다. 그러므로 일요일까지 여기서 살아라」
사쿠라바「음……」
타이치「그러면 너한테, 불쌍한 사쿠라바라는 칭호를 붙여 주지」
사쿠라바「진짜냐. 그거 무지 멋진데. 좋았어」
무지 불쌍했다.
사쿠라바를 묶었다.

그리고 아침―――
눈을 뜬다.
타이치「……」
타이치「사쿠라바, 가자―」
사쿠라바「응……아침은?」
타이치「저쪽에 가서 먹어라」
사쿠라바「알았다……」
타이치「가자」
사쿠라바「……어디 가는 건가?」
타이치「아아, 피크닉이야」
사쿠라바「꽤 단촐한 피크닉이구나」
타이치「응. 그게 컨셉이야」
사쿠라바「다음주엔 여행하는 거다」
타이치「그래 그래」
좋아.
사쿠라바를 그 장소에 데려다 놓는다.
타이치「이걸 가져」
사쿠라바「뭐냐? 라디오냐?」
타이치「쓸만한 목표가 되겠지」
타이치「……그리고, 여기를 똑바로 걸어」
사쿠라바「응」
타이치「천천히!」
사쿠라바「여기냐?」
타이치「응. 거기 좋다. 똑바로……거기서 스톱」
조준 OK.
자, 앞으로 몇 분 안 남았을 텐데.
꽤 빠듯빠듯하네.
사쿠라바「……있잖아, 타이치」
타이치「응?」
사쿠라바「왜 이런 일을 하는 거냐?」
타이치「……」
타이치「왜라, 별 의미는 없어」
사쿠라바「……의미는 있을 텐데」
사쿠라바「그런 눈을 하고 있으니까 말야」
타이치「……뭐?」
사쿠라바「우리는 친구 아니냐」
타이치「……!?」
무슨 말이야 이 녀석은!
놀랐다.
21세기란 말야?
사쿠라바「같이 어울리는 건, 이제 끝인가?」
타이치「사쿠라바……너」
사쿠라바「쓸쓸하구나」
사쿠라바「네가 날 싫어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말야」
타이치「……아냐, 사쿠라바. 그게 아냐」
사쿠라바「이상한 일만 잔뜩 일어나는구나, 요즘엔」
사쿠라바「사람들이 사라지고……」
해가 저물었다.
사쿠라바「……갑자기 황혼이 되고」
시간이 없다.
송환해야 한다.
하지만.
이 바보의 얼굴을, 두 번 다시 못 보게 된다―――
단지 그것뿐인데.
타이치「사쿠라바……」
사쿠라바「그래도 제일 충격인 건, 네가 궁지에 몰리고 있는데, 아무것도 못 해준다는 거다」
타이치「바보자식」
타이치「넌 네 일만 생각해. 다른 사람 걱정은 백 년은 일러. 사쿠라바 주제에 진지한 말하지 마」
사쿠라바「……옛날의 넌, 그런 느낌이었지」
타이치「뭐―――」
사쿠라바「최근엔 쭉 무리하고 있는 것 같아 보이던데」
사쿠라바「그립다」
타이치「……!」
옛날의 나.
이런 순간에 생각나다니.
타이치「……가버려, 바보자식」
반짝―――
나는『관측』을 했다.
눈을 감고, 뜨자―――

사쿠라바「……타이치?」
사쿠라바「……음……방송?」
사쿠라바「타이치? 라디오가……」
사쿠라바「……………………」
사쿠라바「……그런가」
사쿠라바「그런가」

사쿠라바라는『어긋남』은 정상으로 돌아갔다.
타이치「내참」
친구, 라.
요즘 그런 말을 하는 놈이 어딨냐.
어딨냐고…….
타이치「하하하」
우스워서.
타이치「하하하, 하하」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웃어도.
눈 앞이 맑아지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말야, 사쿠라바.
이걸로 된 거야.
이제 그 녀석과는 만날 수 없다.
차곡히 쌓인 기억만이, 나에게 있는 사쿠라바의 모든 것.
타이치「……바―보」
묘한 두려움으로 떨리는 무릎을 꾹 누른다.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았다.
눈꺼풀을 통해, 붉은색이 침입해 왔다.
그리고 또다시, 세계는 돈다―――

그리고, 나는 눈을 떴다.
만약을 위해, 수풀 안쪽을 확인한다.
좋아.
위상의 어긋남. 그렇게 말해 두자.
내 눈만이 관측할 수 있는 그것은, 건너편 세계로 통하는 송환로.
관측할 수 있는 사람에게만, 진실이 된다.
그곳을 빠져나가면, 돌아갈 수 있다.
사람들로 가득찬 세계로.
하지만. 그래.
난―――
요코의 모습은 없다.
다만 도시락만이 책상에 놓여 있었다.
학교로 간다.
아무도 없는 세계를 걷는다.
사람뿐만이 아니라, 생물 그 자체의 기척이 없다.
가득차 있다는 느낌이 없다.
매미도 울지 않는다.
부자연스러운 공간.
교차한 세계의 중심에서 멤돌고 있는 모순.
불과 여덟 명뿐인 작은 세계.
타이치「……」
나나카도 나타나지 않는다.
나나카「……………………」
자 그럼.


ㆍ二年敎室 (2학년 교실)


타이치「헤에, 왔네」
토오코「……」
시선이 창 밖으로 던져진다.
처음 토오코가 군죠에 왔을 때.
이 녀석은, 주위에 높은 벽을 치고 있었다.
사람들을 부하처럼 따르게 했다.
한 눈에 마음에 들었다.
내 취향이었던 것이다.
타이치「야」
토오코「……뭐야?」
타이치「너 부자냐?」
토오코「…………」
무시당했다.
타이치「야」
토오코「……왜」
타이치「너 이쁘네」
토오코「……………………」
살짝 뺨이 씰룩거렸다.
그걸로, 대강의 분위기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토오코는『평소』처럼 그곳에 있다.
매주, 매주.
무수히 많은 토오코와 접해 왔다.
행복과는 거리가 먼 결말만을 보아 왔다.
나와 토오코는 되풀이되어 왔다.
실패뿐이었다. 우스울 정도로.
……말은 필요없는 건지도 모른다.
그저 보고 있기만 하면 되는 건지도 모른다.
그것이 애정이란 걸지도 모른다.
타이치「……」
토오코「……」
타이치「…………」
토오코「…………」
타이치「………………」
토오코「………………」
타이치「………………………………………………………………」
토오코「……뭐야 진짜!」
발끈했다.
타이치「넌 예뻐」
토오코「뭐―――뭐뭐뭐뭣!?」
타이치「하하하하」
……쫓겨났다.
타이치「안되네」
꽤 어렵네.
타이치「평소와 다름없는 결말……인가」
뭐 어때.
느긋하게 가자.

토오코는 여전히 교실에 멍하니 있었다.
목적도 없이, 단지 거기에 있다.
그 외의 아무 일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관성만으로 움직이는 토오코.
타이치「토오코」
토오코「……어……?」
이름을 불린 것에 대한 당혹감.
타이치「두 손을 내밀어 봐」
토오코「……싫어」
좋아. 미끼를 물었다.
타이치「네가 뭘 경계하고 있는지 대충 상상은 돼」
타이치「하지만 이번엔 달라」
토오코「전에도 그런 말 했었잖아!」
토오코「또 속을 거 같니?」
타이치「……곤란하네」
토오코「또 이상한 거 잡게 하려는 게 뻔하지……」
타이치「그냥 인사야. 그런 거 아냐」
토오코「시―잃―어―」
음, 꽤 힘든데.
힘으로 가자. 실력행사.
타이치「손」
억지로 손을 잡는다.
거시기를 잡히고 싶은 충동이 불끈 솟아나지만, 꾹 참는다.
토오코「잠깐……」
그 얼굴이 순간 새파래진다.
손 강간이라도 당할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하고 싶지만, 지금은 안 한다.
타이치「어머니의 맛을 보여주지」
바스락바스락
손바닥에서 구르는, 눈깔사탕 세 개.
토오코「아」
타이치「안심해. 내 2억 마리의 자그마한 원더풀 라이프들은 안 들었으니까」
타이치「휴가중이라(쌀웃음)」
토오코「……그러시겠지」
꼬옥.
토오코는 사탕을 잡았다.
타이치「당분을 적당히 섭취하면 당분간은 견딜 수 있을 거야」
작은 거지만 세 개 정도면 괜찮겠지.
타이치「식욕이 없어도, 먹을 걸 입에 넣는 습관은 유지하도록」
토오코는 가만히 주먹을 바라보고 있었다.
토오코「……넌 항상 그래」
토오코「다정한 척하고, 바보 취급하고, 차갑게 대하고, 화내고」
토오코「정말 모르겠어」
얼굴을 가린다.
토오코「……상관하지 마, 부탁이니까」
타이치「네―에」
혼났다.
목적은 달성했으니 뭐 괜찮지만.

타이치「다정한 척……이라」
적당히 내뱉은 말이겠지만, 정곡을 찌르고 있었다.
작년에도 토오코는 저랬다.
그리고 나 역시, 평소처럼―――
쿠로스 타이치의 토오코 공략은 계속되고 있었다.
나 이외에, 누구도 그녀에게 말을 걸려 하지는 않았다.
악의를 가지고 일부러 무시한 것은 아니다.
군죠에는 대화가 성립되지 않는 사람도 많고, 토오코 자신도 대화를 거절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들, 악의에는 민감하니까―――
그리고 난, 악의를 먹으며 살아가는 존재.
타이치「키리하라, 점심은?」
토오코「……필요없어」
꼬르륵
타이치「그래도……배에서 소리나는데」
토오코「……시끄러워!」
타이치「화내는 것도 귀엽네. 키리하라는 얼굴에 화가 잔뜩 차 있는 게 어울려」
『웃는 것도 귀엽네. 키리하라는 웃는 얼굴이 어울려』의 반대로 말했다.
토오코「닥쳐」
당연히 효과는 제로.
타이치「도시락 안 가지고 다니네. 부자면서」
토오코「……필요없다니까」
타이치「흐―음」
토오코의 눈 앞에서, 도시락을 냠냠 먹는다.
꼬르륵
토오코「…………」
토오코의 페이스는 벌써 레드.
타이치「근데 말야, 식당 이용법은 알고 있지?」
토오코는 고개를 계속 숙이고 있었지만, 잠시 후 살짝 끄덕였다.
토오코「……전에는 기숙사에 있었으니까」
타이치「기숙사 아니면 굶는다는 거야?」
토오코「왜 식사를 하는데 줄을 서야 되는 거야……이유를 모르겠어」
타이치「자연스럽게 그런 말을 하다니 대단한데」
보통은 아니다. 그렇게 생각했다.
타이치「좋아, 나하고 같이 가자」
손을 당긴다.
토오코「어? 돼, 됐어……」
타이치「괜찮아. 미인한텐 친절하게 대하라고 했어」
토오코「또, 또 그렇게 비행기 태우는 말을……」
타이치「넌 마음만 좀 더 열면, 즐겁게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토오코「…………」
타이치「자, 가자」
토오코「자, 잠깐만!?」
그렇게, 일방적인 호기심만의 관계에서.
…………………….
타이치「또 선생하고 문제 일으켰다며?」
토오코「……너한텐 관계없잖아」
타이치「교복도 안 입고」
토오코「인정 못 하겠는걸, 이 학교 학생이 됐다는 걸」
타이치「그치만, 시험으로 가려진 거잖아?」
토오코「그딴 거……」
타이치「그럼 너한텐 사람을 상처입힐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야」
토오코「그런 짓, 했던 적 없어!」
타이치「나도 그렇게 생각해」
토오코「……하앙?」
타이치「나도 그렇게 생각해」
굳이 있다면.
토오코는, 스스로 자신을 망가뜨릴 뿐이겠지.
…………………….
타이치「……넌 군죠가 싫어?」
토오코「당연히 싫지. 왜냐면 난 정상이니까」
토오코「정말 웃기지도 않아」
타이치「……그래? 난 재밌는데」
타이치「편하고」
토오코「어디가……매일 감시당하고……정신이상자 취급받고」
타이치「그래도, 두려움받는 일은 없잖아」
토오코「……나한텐 관계없는 일이야」
타이치「그럼, 나도 싫어?」
토오코「무지 싫어」
타이치「아하하하하하」
…………………….
타이치「진짜로……쭉 혼자 있네」
타이치「친구 안 생길라」
토오코「필요없어」
타이치「방송부 들어올래?」
토오코「……안 들어가」
타이치「음―, 재밌는데」
토오코「왜 날 꼬시는 건데, 다른 놈들도 많이 있잖아?」
타이치「키리하라가 좋으니까」
토오코「……왜, 왜……」
타이치「키리하라가 마음에 드니까」
토오코「……귀찮아」
좋아하고, 무해하고, 네 편이고, 어려워할 것 없다고.
그런 오오라를 계속 퍼부었다.
그건 세뇌에 가까웠다.
…………………….
어느 날, 토오코가 물었다.
토오코「쿠로스는, 왜 여기 있는 거야?」
타이치「……마음이 병들어 있으니까」
토오코「그렇게는 안 보이는데」
타이치「안 보이는 부분이니까」
보일 수 없는 부분이니까.
토오코가 머리를 감쌌다.
토오코「……나, 이제 싫어, 여기……」
토오코「무서워……이 학교……돌아가고 싶어……」
어디로 돌아가고 싶다는 걸까.
분명, 이전 학교는 아니다.
지나가버린 옛 일상의 나날, 일 것이다.
타이치「괜찮아. 익숙해지면 재밌어져」
토오코「못 익숙해져」
타이치「안 익숙해진다고 정한 것 뿐이잖아?」
타이치「키리하라는 귀여우니까,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즐겁게 살아갈 수 있어」
토오코「그, 그런 얘기가 아니잖아」
타이치「귀여워 귀여워」
이마를 쓰다듬는다.
토오코「……놔! 이 바보!」
떨쳐낸다.
하지만 진짜로 싫었다면, 왜 귀까지 빨개진 걸까?
타이치「……음……」
그리고 난, 토오코의 꿈을―――
타이치「쿠울……」

눈을 뜬다.
햇빛이 창문을 넘어 들어오고 있었다.
간만에 푹 잔 것 같다. 꿈 하나 안 꿨다.
시간은……7시.
학교에 가야지.

교실에 들러 본다.
토오코가 있었다.
타이치「안녕」
토오코「……(흥)」
타이치「안색이 안 좋네」
토오코「……너하곤 관계 없어」
매정하긴.
타이치「왜 학교에 온 거야?」
토오코「그것도 관계없어」
타이치「난 알고 있어」
타이치「말을 걸어주길 바래서야」
토오코「……아냐!」
목소리를 높였다.
타이치「그래서 난 말을 걸었어」
토오코「무슨, 말을……그런 건 네가 멋대로 상상하는 것 뿐이잖아!」
타이치「이틀째야. 물만 먹다간 죽어」
타이치「이걸 줄게」
요코 도시락을 건넨다.
토오코「뭐야, 이거」
타이치「속옷이나 원더풀 라이프 용기가 아닌 건 분명해」
토오코「……못 믿겠어」
토오코「넌 맨날 정액 생각밖에 안 하잖아」
타이치「그건 좀 심하다」
충격인데.
타이치「먹을 거야」
타이치「샌드위치하고 팥만두가 들어 있어」
타이치「……팥만두는 찜통에서 찐 거야」
토오코「됐어……필요없어」
타이치「아니 필요해. 먹어」

팥만두를 들이댄다.
토오코「……하지 마」
난폭하게 손을 흔들었다.
팥만두가 떨어졌다.
줍는다.
먼지가 붙은 부분의 껍질을 벗겨내고, 한 입 물었다.
그리고 다시 건넨다.
토오코「너……」
부모의 원수와도 의형제를 맺을 수 있는 필살기.
토오코가 상대라면 간단히 먹힐 것이다.
타이치「자」
토오코「……아……」
받았다.
팥만두를 손에 들고, 멍하니 나를 바라본다.
타이치「자기를 걱정해 주는 인간이 자기밖에 없다는 건, 괴롭지 않아?」
토오코「무슨 말 하는지 모르겠는데」
타이치「다른 사람한테 배려받고 싶다」
타이치「마음을 채우고 싶다」
토오코「……」
입을 다문다.
타이치「나, 조금은 걱정하고 있는데 말야」
찌릿하고 나를 노려본다.
토오코「말은 잘 하네」
토오코「걱정하고 있는 거라면, 왜, 어째서!」
울컥한다.
타이치「아, 지금은 별로 화나게 하려 한 건 아닌데」
짝―
뺨을 맞는다.
전혀 아프지 않았다.
토오코「……으으……」
토오코는 나를 때린 뒤, 풀썩 주저앉았다.
타이치「저기?」
토오코「……으응…………」
눈시울을 누르는 그 얼굴이 새파랬다.
타이치「……토오코」
곁에 앉는다.
토오코「이름 부르지 마……」
쥐어 짜내듯이 말한다.
타이치「휴전하자. 긴급사태야」
토오코「앞이 안 보여……」
타이치「괜찮아. 혈액순환이 나빠져서 그래」
토오코「기분 나빠……토할 것 같아……」
타이치「토할래?」
토오코「……싫어」
타이치「그럼 누워 봐」
무릎베개.
토오코「응……머리가 어질어질해……차멀미하는 것처럼……」
타이치「바로 보일 거야」
토오코「어떻게 아는 거야. 의사도 아니면서」
타이치「너에 대해선 알아」
토오코「아……」
타이치「이제 보여?」
토오코「……응」
타이치「빈혈이야. 가끔씩 그럴 때가 있어」
토오코「조금……편해졌어……」
타이치「입 열어 봐」
토오코「이상한 거 넣을 거잖아, 싫어」
타이치「물이야. 순수한 물」
타이치「먹여주려는 것뿐이야」
토오코「……」
입을 열었다.
물을 붓는다.
토오코「와풋!?」
타이치「아, 미안」
토오코「됐어, 내가 마실래! 내놔!」
토오코「꿀꺽꿀꺽……」
중간 위치에서 항상 고생하는 부차장급 클래스의 물 마시는 폼으로, 토오코는 수통을 비웠다.
위가 자극된 걸까.
꼬르륵
토오코「……지금 건……착각이야」
타이치「알아」
타이치「다 아니까 밥 먹자」
토오코「…………」
간단하게 얼굴을 붉혔다.

토오코가 점심을 먹는 상황이 되고, 얼마 후.
토오코「……오늘은 내가 줄 설래」
그런 말을 했다.
식당에는 익숙해졌다.
하지만 토오코는 항상 내 뒤에 숨어 있었다.
이상한 사람들이 가득했기 때문에.
식판에 받아오기까지 내가 다 해왔다.
토오코의 일은, 자리 잡기.
하지만 그것조차도 무서움 반으로 해왔다.
타이치「줄 선다니……네가?」
토오코「……맨날 너만 했으니까……오늘부터는 나도 설게」
식권을 들고, 카운터로 향했다.
타이치「어머어머……」

토오코「……차가워」
타이치「아침에 만든 거니까」
토오코「커서 못 먹겠어」
타이치「내 거니까」
토오코「겨자가 너무 많아」
타이치「매운 거 좋아하니까」
토오코「…………」
타이치「그래서, 맛 없다고?」
토오코「…………맛있어」
타이치「그럼 천천히 먹어」
토오코「훌쩍」
코를 훌쩍거렸다.
타이치「천천히, 위가 아직 준비가 안 됐을 테니까」
타이치「팥만두 하나 더 있는데, 먹을래?」
토오코「……응」
타이치「식사는 집에서 사람들이 준비해 줬지?」
토오코「……응」
타이치「그 사람들이 사라지면 어떻게 되는 거야?」
토오코「별 일 없어. 아무것도 안 차려질 뿐」
타이치「요리도 못하는 너한테는 죽음과도 같을 텐데」
토오코「……어떻게……요리 못한다는 거 알고 있어……?」
타이치「신경쓰지 마」
토오코「신경쓰여……」
타이치「기분은 어때?」
토오코「좋아졌어……조금」
타이치「배 고프면 우리 집에 와」
타이치「캐비어는 없지만, 감자 정도라면 있으니까」
토오코「……그치만」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안다.
배신의 두려움.
타이치「……그보다 말야」
타이치「왜 인간이 멸망했다고 생각해?」
창 밖을 본다.
무엇을 기대하고 물어본 건 아니다.
토오코「멸망하지 않았어」
토오코「……처음부터 아무도 없었던 거야」
토오코「그렇게 생각하면, 화나지도 않아」
토오코「낙담하지도 않아」
타이치「같은 이유로 날 무시했어?」
시선을 돌린다.
토오코는 시선을 다른 데로 돌렸다.
토오코「……그래」
토오코「그런데도 말을 걸고……웃기지도 않아. 다 알고 있던 주제에!」
타이치「미안해」
토오코「왜 사과하는 거야!」
토오코「너에 대해서……전혀 이해 못 하겠어……」
하염없이.
시간이 흐른다.

감자를 껴안고 정원으로 간다.
서바이벌 만화를 참고해서 화덕을 준비한다.
타이치「다 됐다……」
삶는 건 귀찮아서, 굽기로 한다.
2인분 감자.
기다린다.
현관 앞에서 사람이 쓰러졌다.
키리하라 토오코다.
토오코「으으으」
타이치「……」
토오코를 부축한다.
토오코「……타, 타이치……?」
데리고 간다.
토오코「아, 아으……」
앉힌다.
감자를 입에 넣는다.
토오코「으으읍, 으으으으으으으읍!?」
토오코「혼자서 먹을 수 있어!!」
감자 부스러기를 이리저리 튀면서 소리쳤다.
우적우적우적
타이치「자, 소금」
토오코「뿌려 줘」
타이치「……자」
토오코는 열심히 먹었다.
토오코「……우꺄악」
사지가 뻣뻣해진다.
계산대로다(계산 안 했지만).
타이치「자 물」
패트병을 건넨다.
토오코「꿀꺽꿀꺽……」
남김없이 마신다.
토오코「아구아구」
다시 먹기 시작한다.
일고여덟 개 정도 먹어치우고, 토오코는 겨우 한숨을 돌렸다.
토오코「……차분해졌어」
타이치「그거 잘됐네」
토오코는 매무새를 정돈했다.
토오코「……잘먹었습니다」
타이치「그래」
토오코「그리고……고, 고마워」
어색했다.
타이치「그보다 잠깐 이걸 봐」
토오코「이게 뭔데?」
타이치「통조림이란 거야」
토오코「흐음」
타이치「이걸 따면, 음식이 들어가 있어. 간편한 보존식이야」
토오코「……아, 그렇구나」
토오코「어디서 팔아?」
타이치「편의점」
토오코「편의점……?」
타이치「편의점까지 모르는 거냐!」
토오코「나, 나도 알아……본 적이 없을 뿐이지」
타이치「가자!!」
나는 절정에 달했다.
졸도.
토오코「꺄아앗!? 무, 무슨 일이야?」
타이치「네 부자도는 98% 이상이야」
토오코「어……그런가……잘 모르겠는데……?」
토오코「그리고 이제와서 돈 얘기 같은 거 해봐야……」
타이치「뭐, 그나저나」
타이치「아―아, 그 때 네 집에 데릴사위로 들어갔으면 좋았을 텐데」
발끈한다.
토오코「……그런 불순한 동기로……」
타이치「너도 날 은근슬쩍 부모님한테 소개하려고 했잖아」
토오코「……그랬는데……도망쳤잖아」
타이치「저기 말야, 토오코」
타이치「난 군죠학원 최대 중요 지명 수배범이야」
타이치「그런 인간을 소개해 봐야……네 갓 파더가 인정해줄 리가 없잖아?」
토오코「……타이치는 안 이상한걸」
타이치「그런 말이 나올 정도면 아직이야」
타이치「아직 몽고반점이 안 지워졌어」
토오코「전에도 그렇게 말했었지」
토오코「그래도 모르는 건 몰라……나, 바보니까……」
토오코「다정하게 대해 주면, 그걸로 돼……」
타이치「흐음」
토오코「……귀찮아. 그저 살기 위해서 노력해야만 한다니」
타이치「키리하라는 혼자선 살아갈 수 없는 거구나」
토오코「……시끄러」
타이치「수동적인 녀석……」
토오코「저기」
타이치「응?」
토오코「……여기 살면 안 돼?」
타이치「좋아」
토오코「……그래……어, 에? 저, 정말?」
타이치「좋아」
토오코「저, 저기, 바로 갈아입을 옷 가져올게」
타이치「빨래집게는 있으니까―, 가져올 필요 없어―」
토오코「……으그극!?」
바로 돌아왔다.
가방이 빵빵해질 정도의 짐을 가지고 왔다.
다리는 풀리고, 땀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젓가락보다 무거운 거 든 적이 없지?'하고 놀렸던 기억을 떠올린다.
그랬더니 이 여자, '나이프하고 포크야'하고 받아쳤다. 진지하게.
타이치「무리했네」
토오코「너, 너무 많아서 혼자서는―――」
눈동자를 총총하게 뜨고, 파닥파닥 몸짓을 섞어 가며 설명한다.
이런 면은 역시 귀엽다.
타이치「내일 차로 운반하자」
토오코「면허는?」
타이치「지금 필요해?」
토오코「아, 그렇구나……」
토오코「우선 최소한의 갈아입을 옷만 가져왔으니까, 오늘밤부터 재워 줘」
타이치「같은 방은 싫어?」
토오코「같은 방이 좋아……」
타이치「좁다고 불평하지 마」
토오코「……좁은 게 좋아……더 가까이 있으니까……」
타이치「어……?」
토오코「아, 아무것도 아냐……」
코 끝을 빨갛게 물들이며(어두워서 모르겠지만 아마도), 토오코는 고개를 휙 돌렸다.
제길, 귀엽자너.
하지만 여기서는 어른의 매력으로 냉정하게 대처해 주지.
타이치「그그그그그럼, 아아아아아무것도 하지 마마마말고 자자자자자자자볼까」
우와―앙!
안돼, 침착해라 나.
토오코「저, 저기……」
타이치「응? 네? 왜?」
토오코「목욕하고 싶어」
타이치「음―, 일단 목욕탕에 데워놓은 물은 있는데……미리 받아논 거라도 괜찮다면」
비장의 물이지만, 일주일 동안을 살아가는 페이스는 이미 파악했기 때문에 굳이 상관은 없다.
토오코「그걸로 괜찮아, 빌릴게」
타이치「……자」
침대 위에 정좌해서 생각한다.
안돼.
의욕이 만땅인데.
알기 쉽다.
귀여울 정도로 간단하다.
흔들림없는 반듯한 마음.
순수하니까 저런 일을……할 수 있는 거겠지.
어렵다.
어떻게 해야 될까.
……답은 하나지.
그래.
토오코가 토오코로 있게 하기 위해.
그러기 위해서는, 같이 살아선 안된다.
하지만……조금 정도는……갖고 싶은 것도 있다.
건전한 것을 얻을 수 있을까.
이것은 그걸 위한 나날이다. 성스러운 싸움이다.
토오코「타이치……」
돌아왔다.
타이치「토오코……」
토오코「……깨끗해졌어, 나……」
일어나자마자 바로 안겨들 것 같다.
빠르다. 그리고 위험하다.
옛날 옆 아파트에 유명한 닭살 커플이 살았는데, 헤어졌다가 다시 만났다가 별 쇼를 다 했다.
이웃집에서 불평이 들릴 정도로 싸우다가도, 다시 결합하는 건 순식간.
……설마 내가 그렇게 될 줄은.
그리고 토오코는 내 앞에서 부끄러워하며『깨끗해졌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타이치「응, 그러네」
최고의 미소를 지었다.
타이치「그럼, 자」
침낭을 건네주었다.
토오코「……………………이 통은 뭐야?」
둥글게 말려서 케이스 안에 들어 있었기 때문에, 원 모양.
타이치「넌 모르겠지만, 이건 침낭이라고 자기 위한 봉지야」
토오코의 머리에『?』마크가 뜬다.
토오코「어떻게 봉지 속에서 자는 거야?」
타이치「여자는 남자를 위한 봉지가 아니니까」
토오코「……어렵네, 좀 모르겠어」
알면 안 돼요.
타이치「이걸 쓰면 바닥에서도 그렇게 아프진 않아. 잘됐다, 토오코!」
토오코「거기 침대가 있잖아……」
타이치「이건 내 거」
토오코「……」
타이치「……」
서로를 째려본다.
토오코「의미불명도가 높아졌어……」
타이치「재워준다곤 했지만, 다른 건 약속 안 했으니까」
타이치「그럼 잘 자―」
부드러운 침대에 몸을 묻었다.
주위는 어둡고, 자는 것 외엔 할 일은 없었다.
토오코「어, 잠깐……아직 아무것도……안, 했……」
타이치「쿠울」
토오코「그, 그런……」
타이치「쿠울」
토오코「바보바보바보, 타이치 바보」
타이치「쿠울」
뒤적뒤적
침낭을 펼치는 소리.
몸을 집어넣는 소리.
토오코「으으으……바닥, 딱딱해……」
불평불만.
토오코「…………」
토오코「더워! 여름에 이런 데에 어떻게 들어가!」
토오코「됐어, 그냥 잘래……」
토오코「……흑……딱딱해, 아파……」
잠들 때까지 계속 하염없이 흐느꼈다.
타이치「……시끄러워요……」
토오코가 잠에 빠질 때까지, 난 잠들 수 없었다.
그래도.
손을 뻗어, 눈꺼풀을 스윽 닦아주었다.

일어나자, 토오코가 바닥에서 자고 있었다.
고통스런 표정으로.
토오코「……으으으……」
불쌍하게.
나쁜 꿈이라도 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옷을 갈아입고 학교로 갔다.

학생을 탈주시키지 않기 위한 문.
학생을 지키고 있다기 보단, 바깥 세계를 우리들로부터 지키고 있는 듯한.
그런 인상이 들었다.
옛날 조폭처럼, 내 자리에 앉아 책상 위에 다리를 올려놓았다.
흔들흔들 의자를 흔들다.
할 일이 없다. 진짜로 한가하다.
토오코「타이치……」
꽤나 늦게 토오코가 왔다.
숨을 헐떡이고 있다.
타이치「오, 늦었네」
토오코「……찾았어……여기저기……」
타이치「그렇군, 그래서 늦었구나」
타이치「지각―, 지각―!」
놀리자, 순간 분노하는 토오코.
아니 아마 안 놀려도 결과는 같았겠지.
토오코「왜 혼자 간 거야! 왜 안 깨웠어!?」
타이치「자고 있었으니까」
토오코「깨워!」
타이치「……(고민)」
타이치「미안, 까먹었어」
토오코는 무릎을 굽혔다.
토오코「……정말……울고 싶어……」
타이치「울보」
타이치「그보다 먹을 거 좀 모으자, 배 고파」
토오코「……하아아……」
그리고 나서 두 사람은, 여러 군데서 먹을 걸 찾았다.
주변의 민가와 가게.
푸드를 찾아.
토오코는 낙담해 있었다. 쭈욱.
날 것을 빼면, 먹을 수 있는 건 팩 식품이나 건어물 정도다.
게다가 레토로트도 모르는 토오코한테 일일히 설명을 하고 나니, 시간만 쓸데없이 흘러버렸다.
그래도 둘이서 빈곤한 점심을 섭취할 무렵엔, 기분을 풀었다.
토오코「……쿠로스는 여자 친구들이 많네」
타이치「어? 갑자기 뭐야?」
토오코「오늘 부실 앞을 지나다 보니, 다들 모여서 떠들고 있더라」
타이치「아아, 그랬었지」
토오코「인기 많네」
평범하게 떠들었을 뿐인데.
타이치「……왜 삐져 있어?」
토오코「안 삐졌어!」
화냈다.
타이치「친구라기 보단 부원이고……남자도 있는데?」
토오코「안 보였어……」
타이치「여러명 있었는데. 그래도 말야, 진짜로 내가 인기만점이었다면 여자친구 한 명 정도는 있을 것 같지 않아?」
토오코「어, 없겠지……」
타이치「있으면, 이렇게 너한테 말을 안 걸었어」
토오코「……………………어?」
내 공략은, 착실히 진행되어 갔다.

오후엔 부실을 들렀다.
통풍이 좋아서, 교실보다 시원하기 때문이다.
타이치「추억이네」
토오코「……어?」
타이치「토오코가 부실에 놀어오기까지, 참 고생했었지」
토오코「…………」

가끔씩 부실에 오게 되었다.
타이치「……여어, 왔네」
토오코「심심해서 얼굴만 내민 것뿐이야」
타이치「아무도 없을 때만 오네, 키리하라는」
토오코「……우연이야」
타이치「뭐 앉아. 싸구려 커피를 타 주지」
토오코「……응」
…………………….
실험이었다.
나라는 인간의 붙임성 좋은 행동이, 어느 정도로 세상에 통할까.
어느 정도로 속일 수 있을까하는.
결과에 따라, 앞으로 어떻게 살지도 결정된다.
흉내낼 수 있을까.
애정이나 인연을 모방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 어느 정도는 사람을 마음대로 휘두를 힘이 필요했다.
난 이질적인 존재니까.
두려움받아선 안된다.
추악함이 드러나선 안된다.
내 뿌리 속에 있는 추악함은, 마녀의 이미지로 이어져 있다.
원인은……어린 시절의 동화였던가 뭐던가.
책에서 읽은 마녀 사냥의 역사가 굉장히 선명했기 때문에, 또는『마녀는 진정으로 사악한 존재다』라는 인식을 가진 탓인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백발도 마녀의 특징이다.
이 반짝이는 눈동자도.
그렇게 고민하다 보면 끝이 없다.
타이치「자, 토오코 거」
커피를 건넸다.
싸구려라고 하면서 블루 마운틴을 내는 게 포인트.
토오코「……저기」
타이치「응?」
토오코「타이치라고 부를게」
조금 놀랐다.
처음으로 토오코가 벗어난 것처럼 느껴졌다. 그녀에 대한 내 인식에서.
타이치「……괜찮아. 근데 갑작스럽네」
토오코「그치만 나만 토오코 토오코하고 불리고, 불공평하잖아」
토오코「그러니까 복수」
생긋 웃었다.
타이치「……모쪼록 편하신대로」
쓴웃음을 지었다.
…………………….
타이치「이건 뭐야?」
토오코「……도, 도시락 만들었어……내가 말야」
타이치「헤에―, 이런 서민적인 것도 만들 수 있구나」
토오코「당연하지. 이래봬도 요리는 잘하니까」
타이치「좀 많이 않아?」
토오코「……그러네……좀 많이 만들어서……그러니까 타이치, 특별히 기념으로 남겨도 돼」
타이치「아, 그려……」
기가 찼다.
토오코「……맛있어?」
타이치「응, 진짜 맛있어」
토오코「거, 거기……계란부침은 어때?」
타이치「왠지 이것만 모양이 묘한데……다른 건 깔끔한데 말야」
토오코「으……」
역시.
그 반응에서 진실을 알아채고, 적당한 행동을 선택한다.
타이치「음……아아, 그래도 이게 제일 맛있네」
토오코「정말!?」
타이치「응. 맛있다」
타이치「뭐랄까, 마음이 담겨 있는 것 같아. 음, 맛있어맛있어」
실은 제일 맛없었다.
보이는 그대로.
그런 나날을 수없이 반복했다.
…………………….

반나절이 지났다.
할일없는 시간.
느긋한 시간.
이 말은 무가치하다는 뜻일까?
반대다.
언젠가 이 학창시절 흉내를 낸 토오코와의 시간을, 분명히 다시 생각할 것이다.
토오코「저기, 갈 때 잠깐 가자……약속했지?」
슬슬 집에 가려는 타이밍에, 그녀는 말했다.
타이치「아아, 알았어알았어」
노리는 차는 이미 정했다.
타이치「크크크」
오늘은 교장의 페라리를 몰아봐야지.
키는 교장실에서 슬쩍했다.
분명히 나에겐 운전의 재능은 없다.
하지만, 대신에 넘쳐흐르는 노력의 재능이 있다.
나는 되풀이되는 일주일 속에서, 몇 번이나 차를 대하고 연습해왔다.
지금 그 솜씨는 이미 포뮬러스럽다(?).
펑펑펑!
타이치「자, 가자」
토오코「드라이브같아, 우훗」
조수석에 탄다.
타이치「안전벨트 매」
토오코「……응, 알았어……」
타이치「그럼 출동!」
…………………….
토오코「……이제……타이치하고 드라이브는 안 할래……」
타이치「동감이야」
이게 잘 안 되네.
또 페라리를 박살내버렸다.
타이치「도대체가 타기가 힘들단 말야. 핸들은 꺾자마자 바로 흔들리고, 클러치는 무겁고 기어는 뻑뻑하고……게다가 감속하고 나서 시프트다운을 하면 뭔가 덜컹거리고……불량차야」
재능 없는 걸까……나.
어쨌든 차를 1회용으로밖에 못 쓰는 건 좀 슬프다.
토오코의 저택으로 향한다.
…………………….
토오코「짐, 뭐 가져갈까 고민하면서 여기저기 찾아 봤어」
토오코「그랬더니 낡은 사진이 나오더라?」
기쁜 듯이 말한다.
토오코「안 버려서 다행이다……벽에 붙여두려고」
토오코「벽이 꽉 찰 정도로 있었어」
타이치「헤에―」
토오코「후훗」
팔짱을 꼈다.
난 도구가방에서 아이템을 꺼내, 장착했다.
타이치「이걸 봐라, 키리하라」
토오코「팔찌?」
아가씨는 바라보았다.
토오코「……닭살 커플……반대……」
토오코「닭살 커플 반대」
붙여서 말하는 토오코.
타이치「그렇다. 난 닭살 커플이 환경에 미치는 중대한 영향을 주목하고, 강경한 태도로 그 행위의 규제 및 억제에 힘쓰고 있는 입장이다」
타이치「팔짱 금지」
뿌리친다.
토오코「하, 항상 있는 일이지만……무슨 말하는 건지 모르겠어」
타이치「사람 앞에서 노골적인 애정표현은 삼갈 것」
토오코「사람 같은 거, 이제 없잖아……」
타이치「조금 있어」
토오코「우―」
불만스러운 듯.
타이치「키리하라, 네가 전형적인 지기 싫어하는 성격의 부잣집 아가씨인 건 좋아」
토오코「하아?」
타이치「하지만 조금만 응석부리면 너무 늘어져! 눅눅하단 말야! 좀 더 철저한 고집쟁이 성격으로 가자! 수줍어할 때도 의연하게. 그 쪽이 모에……키리하라를 위해서야」
토오코「으, 응……」
타이치「넌 보석 같은 여자야」
토오코「엣 (두근)」
타이치「그 반짝임은 다이아몬드보다 밝고……하지만 슬프게도, 다이아몬드는 탄소라 불로 태우면 타버리지. 갓뎀. 일생을 걸쳐 축적한 부를 다이아로 보존하는 행위의 어리석음을 잘 알아둬야 한다는 거야」
토오코「???」
타이치「일장일단. 그걸 알아 둬, 나의 멋진 숙녀여」
토오코「잘 모르겠지만, 알았어」
타이치「알아주었는가」
토오코「……타이치, 부끄러워하는구나. 사람 앞에서 그러는 거」
타이치「에잇」
팬티를 내렸다.
토오코「흐익―!」
타이치「흐익―!」
가는 길엔 키리하라 가의 커다란 캠핑카를 썼다.
도중에 사고.
집까지는 아직 수백 미터는 남아 있었다.
그 때, 우연히 그 부근에 있던 자동차의 키는 이미 입수 완료 상태.
토오코「……어쩐지……준비성이 좋네……」
타이치「어쩌다 보니」

타이치「아―!! 피곤해―!!」
토오코「……고마워. 전부 해 줘서」
타이치「됐어」
토오코「목욕, 같이 할까?」
타이치「야한 짓만 안 한다면」
토오코「……」
무표정하지만 그 안에는 어떤 감정이 휘몰아치고 있을까.
토오코「먼저 하고 올래」
타이치「다녀오세요―」
자 그럼.
짐을 뒤진다.
하라키리마루 발견.
정원에 나가.
분질렀다.
대신에 카네이션을 넣어 준다.
꽃은 평화의 상징이니까.
토오코「……말끔」
타이치「응, 말끔하네」
토오코「지금 굉장히 깨끗해졌는데……어때?」
타이치「왔군」
어제보다 스트레이트한 어프로치.
이러나끼 닭살커플 기능 보유자는…….
토오코「저기, 실은 이제 못 참겠지? 타이치, 야하니까」
타이치「마침 임포텐츠가 됐어」
토오코「…………」
타이치「임포텐츠는 독일어야. 공부가 되지? 임포라고 하면 너무 직접적이니까, 약칭은 포텐이라고 부르는 게 어때?」
토오코「……………………」
토오코「내가 싫어?」
타이치「무지 사랑해」
토오코「그럼 왜!」
타이치「사랑하고 있어서야」
토오코「???」
한번 손을 대면 죽도 밥도 안 된다.
여기서 계속 꾹 참을 필요가 있었다.
토오코「……됐어. 손질이나 하고 잘래」
피부 손질인가?
흥미가 생겼다.
타이치「역시 그런 면은 여자답구나!」
타이치「소녀다운 면을 소중히 간직―――」
칼 손질을 하려고 하고 있었다.
타이치「……안돼」
토오코「자」
내 깊고 조용한 비명은 들리지 않았다.
스르륵.
애도를 칼집에서 꺼낸다.
카네이션.
토오코「내 영혼이――――――!!??」
부들부들부들부들!!
경련했다.
토오코「어버버버버버버」
입에서 무언가가 나왔다.
※무언가=엑토프리즘
타이치「안돼!」
토오코「으으으으으으읍!?」
밀어넣는다.
토오코「……하아하아하아」
정신을 차린다.
토오코「잠깐, 이게 어떻게 된 거야!」
타이치「도검류는 반입 금지야 이 바보!!」
토오코「바보가 누군데! 이 칼이 내 영혼의 일부라는 걸 아는 거야!?」
타이치「응, 알고 했으니까」
내뱉는다.
타이치「무기따윈 필요없어요!」
토오코「으……으으으……명검이……」
타이치「새 거 가져오진 마」
토오코는 주늑든 채로 잤다.
하지만.
하지만 말야―――

토오코「있잖아……타이치네 집, 놀러가고 싶어」
타이치「알았어, 언제?」
토오코「……집 쪽이라던지, 어?」
타이치「일 때문에 하숙하고 있어서, 집에는 가끔씩밖에 안 가」
타이치「원래 혼자고」
토오코「……그, 그렇구나……그럼, 다음에 가자」
올 때가 왔다.
실험의 시간.
…………………….
토오코「타이치……나, 처음이니까……저……다정하게 해 줘……」
타이치「응, 알고 있어」
토오코「……좋아……해……」
타이치「응, 알고 있어―――」
내가 그렇게 대했으니까.
내가 세상 속에서 잘 해나갈 수 있다는, 확신 속에서.
그 안도감와 함께, 토오코를 안았다.
토오코「……아……아아앗……」
실험 성공.
그렇게 생각했다.
잊고 있었다.
나도 토오코도, 스스로는 제어할 수 없는 자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극에 달한 퇴폐는, 점점 붕괴로 이끌려갔다.
타이치「……평소에 혼자서는 어떻게 해?」
토오코「어……안 해……」
타이치「하잖아. 토오코는 하고 있어. 난 알아」
토오코「안 해, 정말로……」
타이치「내 손가락으로 시험해 볼까?」
토오코「뭐, 뭘?」
타이치「자위. 어떤 식으로 느끼는가 보게」
토오코「…………으, 응……」
토오코「이렇게……응……타이치 손가락, 길어……」
…………………….
토오코「오늘은……뭐할래?」
타이치「글쎄, 우선 손으로 해 봐」
토오코「……응」
타이치「어때?」
토오코「뜨거워……」
타이치「피가 모여서야」
타이치「더 세게 해도 괜찮아」
토오코「……아……아아……」
타이치「이런 느낌으로 잡고, 세기는―――」
하나하나 가르친다.
더럽히고 싶었다.
여자의 치부는, 본능을 자극하는 존재니까.
그저 보고 싶었다.
그래서 계속 했다.
타이치「……갔어? 손바닥 내밀어 봐」
토오코「……어, 이렇게?」
타이치「응」
토오코「꺅……싫어……나온다……굉장해, 나온다……」
타이치「핥아 봐」
토오코「……이걸?」
타이치「그래」
…………………….
토오코「앙, 아앗……아아앗……으응……싫어, 사람들 오면……」
타이치「상관없어」
토오코「으읏……앗, 아아아……꺄앗」
토오코「……아앙, 타이치……타이치……」
…………………….
변화는 갑자기 찾아왔다.
토오코「……미야스미 선배하고 말하지 마」
타이치「왜?」
눈을 치켜뜨고, 날 추궁하고 있다.
타이치「별로 수상한 일은 안 했는데?」
토오코「싫어. 말하지 마. 그리고 내 곁에 있어 줘」
타이치「……있잖아, 지금 이렇게」
토오코「좀 더……」
타이치「좀 더라니……」
타이치「애초에 부활동을 하고 있으니까 선배하고 얘기하는 건……」
토오코「부활동, 그만 해」
타이치「억지부리지 마」
토오코「미야스미 선배, 방해야……」
타이치「토오코?」
위험해.
토오코「사라지면 좋을 텐데」
그건 위험해.
타이치「토오코, 정신차려」
토오코「……어?」
정신을 차린다.
타이치「진정하고 자아를 유지해. 방금 이상했어」
토오코「아아, 미안해……」
토오코「후후……저기, 다른 건 안 하고 싶어?」
그것은 급경사의 시작.

즐거운 등교.
인데.
토오코는 뾰루퉁해 있었다.
타이치「……」
토오코「……」
타이치「…………」
토오코「…………」
타이치「저기」
토오코「……흥」
배리어가 쳐져 있었다.
타이치「으―음」
오늘 아침부터 계속 이런 상태였다.
타이치「어―이」
토오코「……」
안되나.
혼자서 성큼성큼 가버리는 토오코.
쫓아간다.
옆에 선다.
잔뜩 화난 토오코는, 아예 내 쪽을 보려고도 하지 않는다.
한 손을 펼쳐, 가슴을 슬쩍 만져보았다.
토오코「잇!?」
타이치「넌 가슴이 전혀 없구나!」
토오코「닥쳐――――!!」
타이치「아가씨――――!!」
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마치 우리들을 환영한다는 듯.
예전에는 감옥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유일하게 안심할 수 있는 장소다.
사람은 없다.
어디에도 없다.
다만 학교만이, 군죠학원만이, 사람들이 모이는 곳.
사람들이 모여 과거를 그리워한다.
솔직히, 인류가 멸망하니 상당히 괴롭다.
버티기 힘들 거라 생각한다. 대부분의 인간들은.
나에게는 복음이지만, 그들에게는 좌절과 고통없는 죽음.
그리고 토오코는 우리 집에 올 수밖에 없어졌다.
얄궂다.

역시나 토오코는 거기에 있었다.
타이치「빠른 등교」
토오코「……」
타이치「게다가 또 사복등교」
타이치「그렇게 더워보이는 옷으로 잘도 다니네」
무시.
타이치「예이예이」
어깨를 으쓱이고, 토오코의 바로 옆……내 자리에 앉는다.
옆모습을 바라본다.
무시하는 것 같아도, 이쪽을 의식하는 걸 알 수 있었다.
타이치「어제밤엔 미안했어」
토오코「……전혀 반성 안 하고 있어……」
타이치「아니야」
토오코「……타이치는 항상 그래」
토오코「나 같은 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것처럼」
토오코「바로 혼자서……맘대로 행동하고」
타이치「맞는 말이야. 반성하고 있어」
토오코「조금만 더 신경써주길 바라는데」
타이치「그래서……준비해 온 게 있지」
토오코「준비?」
토오코의 책상 위에, 고로케빵을 듬뻑.
타이치「자, 마음껏 굶주림을 채워!」
토오코「아냐―!!」
꼬르륵―
하지만 토오코의 배는 울었다.
토오코「하읏!?」
타이치「밥벌레」
토오코「이, 이건 아냐!」
꼬륵, 꼬르륵―
밥벌레.
타이치「밥벌레 어게인」
토오코「그러니까 이거 말고!」
타이치「숨겨도 소용없어, 난 밥벌레와 대화가 가능한 인간이라고?」
토오코「…………네?」
타이치「어쨌든 넌 지금 배가 고픈 것이다」
타이치「참고로 나도 고파」
타이치「그래서 1교시 수업은 고로케빵으로 하겠습니다」
봉지를 찢어, 빵을 꺼냈다.
다행히도, 상하지는 않은 것 같다.
타이치「하는 김에 화해의 시간도 겸하기로 하지」
타이치「……과목으로 치면 도덕일까」
토오코는 어안이 벙벙해했다.
토오코「……있잖아, 타이치」
타이치「응?」
토오코「……타이치한테, 난 필요없는 애야?」
타이치「그렇지 않아」
토오코「……그럼……왜 같이 자려고 안 하는 거야」
토오코「별로……하고 싶지 않다고 말한 적도 없잖아……같이 산다는 건, 그런 거 아냐?」
타이치「……타락하고 싶지 않아」
빵을 베어문다.
타이치「지금 이 팽팽해진 이성을, 흐트리고 싶지 않아」
토오코「……이성이라니……」
타이치「넌 자아를 유지할 자신이 있어?」
이런 상황에서.
토오코「……유지 안 해도 돼」
타이치「네가 옛날에 무슨 짓을 했는지, 잊어버린 건 아니지?」
토오코「그건 타이치가……」
타이치「내가 아무리 그랬어도, 보통 그런 짓은 안 해」
토오코「……」
타이치「난 토오코를 분명히 좋아해」
토오코「그럼……」
타이치「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건, 보통 때의 토오코야」
타이치「도도하게, 세상과 싸우고 있는 토오코야」
타이치「그리고, 난 토오코의 도피처가 아냐」
타이치「그러니까, 그건 사랑도 뭣도 아냐」
행위 자체는 별로 상관없지만.
토오코는, 앞으로 혼자서 살아가야만 한다.
그러니 싸울 힘이 필요하다.
토오코「그래서……뿌리쳤구나……」
타이치「뭐어」
타이치「사람한테 의존하는 것도 의존받는 것도, 서툴러서 말야」
타이치「그러니까, 너한테 빠져들고 싶지도 않아」
타이치「하지만 좋아하니까, 토오코가 부서지지 않게 도와는 줄게」
타이치「그런 거야, 아주 간단해」
토오코「…………」
말없이 빵을 베어문다.
토오코「……흐윽」
눈물을 흘린다.
토오코「흐윽……으윽……으, 으으으으……」
허물을 벗기 위해.
화장실에 간다.
타이치「후우」
요코「……타이치」
나왔다.
요코「닭살 커플 반대」
타이치「어……?」
요코「나도 닭살 커플 반대. 타이치하고 같아」
타이치「……아, 그려」
무표정해 보이지만, 눈동자에는 의지가 있다.
타이치「하고 싶은 말은 잘 알았습니다」
타이치「그래, 그 말만 하려고?」
요코「……응」
타이치「근데……」
자기는 어떤데?
타이치「요코」
요코「왜?」
타이치「사랑해. 키스할까?」
요코「……타이치」
먹이를 칭칭 감는 뱀처럼 바로 안겼다.
아이언 크로.
타이치「너한테도 적용시켜 임마」
요코「아아아……아야……아파……그거……미안해, 미안……」

토오코「…………하아」
이걸로 몇 번째일까.
무거운 한숨.
옆에 있는 내 배도 무겁다.
타이치「저기, 바다 갈까?」
토오코「어……?」
타이치「단 둘이서, 내일」
토오코「……그치만……타이치, 나하고는 싫다면서……」
조금 전까지 무시 오오라였던 것이 단번에 날아가는 저 구조가 미슷헤리.
타이치「싫은 게 아냐」
스마일을 짓는다.
타이치「토오코가 또렷이만 있어준다면, 뭘 해도 괜찮아」
토오코「……또렷이……」
토오코「타이치가 하는 말, 어려워……」
타이치「사랑이란 원래 복잡한 거야」
오스카상 클래스의 연기력으로 대충 말하는 나.
토오코「그럼 하나 묻겠는데……날 좋아해?」
타이치「그렇다!」
눈부신 하얀 이빨과 함께, 밀리언급의 미소를 내비췄다.
토오코「하아아」
한숨쉬는 아가씨.
토오코「잘은 모르겠지만……됐어」
토오코「좋아한다고 말해줬으니까」
불쑥 말했다.
타이치「너무 심플한데」
토오코의 반대편으로 향한 내 속삭임은, 수풀 저편으로 사라졌다.
토오코「……이상한 남자를 좋아해버리게 됐단 말야」
조금 기쁜 듯이, 토오코는 기지개를 폈다.
사실은, 호기심에 가깝다.

타이치「금요일인가」
세계가 되돌아가기까지, 앞으로 3일.
오늘도 할 일을 하자.
타이치「라고는 해도……」
바닥을 본다.
토오코가 자고 있다.
밤마다 아픈 듯이 신음해 왔지만, 간신히 익숙해진 것 같다.
푹 자고 있다.
오늘은 이 녀석하고 바다라.
바다는 무드가 좋지.
여러모로 주의해야 한다.
야한 짓을 해버렸을 때, 나를 억제할 자신이 없다.
타이치「힘내자―」
살끼리의 접촉을 집요하게 회피하려 하자, 말다툼이 되었다.
토오코는 삐져서, 혼자로 어디론가 가버렸다.
타이치「……내참, 그런 일 이제 사절이라니까」
그런 일.
급경사와 관련된―――
…………………….
타이치「무슨 일이야, 토오코」
난 토오코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타이치「다들 보는 데서……그런 짓을 하려고 하다니」
토오코「……그치만, 별 관계 없잖아」
타이치「관계 없다니?」
토오코「우리들만 있으면 되잖아?」
타이치「저기 말야……그런 건……」
만져졌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타이치「전철 안에서 키스하는 거하고는 의미가 다르잖아」
토오코「지금 여기서, 해도 괜찮아」
타이치「저기 말이지」
토오코「부끄럽지만」
타이치「내 말을 들어」
토오코「그러면 이해해 줄거라고 생각해, 사람들도」
타이치「……요즘, 토오코는 이상해」
토오코「타이치가 이상하게 만들었잖아」
살며시 웃는다.
타이치「…………」
눈치챘다.
토오코 역시, 군죠에 올만한 이유가 있었다는……당연한 사실을.
그것을 질투라 부르는지, 광기라 부르는지, 난 판단할 수 없다.
하지만 토오코는 조금씩, 손을 쓰기 어렵게 되었다.
먼저 정신을 차린 것은 나.
이후에 좀 더 심해질 거라는 것은, 쉽게 예측할 수 있었다.
늦기 전에 움직이는 게 최선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걸 알면서도, 실행하지 못한다.
초기화하기로 했다.
…………………….

저녁때가 되어, 삐져 있던 토오코를 조금 만졌다.
아주 조금만.
어깨와 어깨를 대고, 바다를 보았다.
그녀의 분노 스타일은 풀리지 않았다.
마음 속과의 모순을 느낀다.
이 정도의 여심은 이해할 수 없었다.

타이치「그럼, 슬슬 자 볼까요」
토오코「멍」
타이치「음―, 토오코는 부잣집 따님 주제에 체스를 못하네」
기지개를 켠다.
토오코「……멍」
10승 0패였다.
바다를 갔다오고 나서 왜인지 토오코가 우울해 보이길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승부를 걸었던 것이다.
타이치「야식 먹을래?」
토오코「멍」
고개를 좌우로 젓는다.
타이치「그럼 자자」
푹신한 침대에 몸을 맡겼다.
토오코「……멍……(눈물)」
딱딱한 바닥에, 토오코는 누웠다.
정적이 소리없이 다가와, 주위를 채운다.
토오코는 자고 있으려나?
타이치「……미안해」
대답은 없다.
하지만 잠시 후.
토오코「저기……타이치……」
등으로 말한다.
타이치「응?」
토오코「쭉, 함께 있을 수 있을까……?」
타이치「……난 언제나 토오코의 마음 속에 있어」
토오코「……후훗, 그럼 괜찮으려나」
타이치「왜 그런 말을 해?」
토오코「그치만, 사람들이 사라졌잖아? 우리들도 언젠가……」
타이치「……」
우리들, 이라.
토오코「사라질 거면, 적어도 함께 사라지는 게 좋은……데……」
조용히 말이 사그라든다. 토오코는 잠들었다.
얼마 동안 잠들 수가 없었다.
생각하지 않고선 견딜 수 없었다.
토오코가 또 혼자가 되었을 때, 회복하는 데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릴까.
회복하는 것 자체가 가능할까.
하지만……그렇다 해도……결심은 변하지 않는다.
타이치「미안해」
다시 한 사과의 말이, 밤의 어둠에 빠져들었다.

토요일이다.
……앞으로 하루.
앞으로 하루다.
타이치「후아암……」
기상.
토오코「쿠울쿠울」
옆에서 토오코가 자고 있었다.
편안한 숨소리.
푹 잠들어 있는 듯.
타이치「……」
밤중에 맘대로 기어들어왔나 보네.
토오코「……쿠울―, 쿠울―」
편안하게 자고 있었다.
타이치「……풋」
어린애 같은 얼굴이다.
뭐, 좋지.

혼자서 밖에 나왔다.
공기가 맑다.
시원하지는 않지만, 덥지도 않다.
열량이 사라져버린 걸까.
확인할 수단은 없지만.
토오코와의 일.
타이치「특별히……뭔가 커다란 추억을 만들진 못했는데……」
붙지도 않고 떨어지지도 않고.
이상적인 거리감을 유지하면 보낸 일주일.
토오코는 망가지지 않았고, 의존하지도 않았다.
의존이 없으니……초기화할 필요도 없다.
초기화……그래, 그건 내 실수였다.
토오코라는 인간을 잘못 파악했다.
지금도 전율이 느껴진다.
…………………….

초기화하기로 했다.
…………………….
토오코「어―――?」
초기화중.
토오코「지금, 뭐라고 했어?」
초기화중.
토오코「……거짓말, 이지?」
토오코「맨날 하는 농담이지?」
초기화중.
토오코「……아핫, 무슨 말하는 거야, 바보」
토오코「안 속을 거야」
토오코「…………」
토오코「……진심이야?」
초기화중.
토오코「……그치만, 좋아했잖아, 우리?」
초기화중.
토오코「……잠깐……너……」
토오코「네가 무슨 말 하는지……알고 있어?」
초기화중.
토오코「절대로……그런 거 인정 못 해……인정 안 해」
토오코「다 말할 거야! 방송부 사람들한테!」
토오코「너희 가족한테도, 학원 사람들한테도!」
토오코「전부, 모조리 퍼트릴거야!」
초기화중.
토오코「……타이치……그만 하자……이런 거 안 좋아해……」
토오코「저기, 쇼핑할래? 옷 사줄게」
토오코「타이치……?」
토오코「잠……깐……」
초기화에 실패했습니다―――
그리고―――
토오코「……타이치……봐……」
토오코「다쳐, 버렸어……타이치……아야얏……아파……」
토오코「진짜로 아파? 죽을 것 같아……」
토오코「……피가 잔뜩 나고 있어……」
토오코「그러니까……다정하게 대해 줘……타이치……」
토오코「더 다정하게……곁에 있어 줘……」
토오코「아파……아파……」
토오코「타이치이이……당장 나와아아아……!」
토오코「이걸 봐, 내 피……보라니까아아아」
토오코「그러면, 또 다정하게 해주고 싶어질 테니까」
타이치「타이치이, 나와아아아아……」
요코가 없었다면.
토오코는 살아있지도 못했을 것이고, 사태는 더 심각해졌을 것이다.
퇴원하고, 복학한 토오코는.
예전처럼……아니, 예전보다 더 완벽하게―――
아름다워져 있었다.
난 토오코의 고독한 모습을, 아름답다고 생각해 왔던 것이다.
얼굴을 가린다.
생생한 붉은 피.
지금도 망막에 스며들 것만 같은.
좋아하잖아.
그녀를.
여차하면 날아가버릴 정도로, 내 윤리는 대단한 것이 못 된다.
선배와 미키와 키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동일한 애착을 가지고 있다.
토오코에게도, 동일하게 좋아하는 마음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그녀가 바라는『좋아함』의 형태는 아니다.
타이치「……끝내버리자, 빨리」
결론이 나오지 않는 그 안타까움에,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그리고 내일은 일요일―――

일어나자, 토오코는 자면서 울고 있었다.
토오코「……흑……스으……」
외로운 걸까.
이마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살짝 쓰다듬어 준다.
나 혼자서, 모든 것을 이룰 수는 없다.
시간은 점심 전이다.
너무 오래 잤다.
타이치「토오코, 토오코」
깨운다.
토오코「우냐……?」
타이치「일어나. 출발할 테니까」
토오코「……에……어디로?」
토오코「잠깐, 어디로 가는 거야?」
타이치「좋은 데」
…………………….
토오코「여긴……?」
타이치「자」
당황하는 토오코를 특정 위치에 세운다.
타이치「……」
가만히 본다.
토오코「저기……뭘 하려는 거야?」
타이치「질문입니다. 솔직하게 대답해 주세요」
토오코「네, 네에……」
타이치「외로워?」
토오코「에……글쎄, 어떨까……」
타이치「사람이 사라져서, 외롭지 않아?」
토오코「……외롭다기 보단……불안한데……」
타이치「가고 싶어? 집에」
토오코「……그야……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다들 그렇지 않아?」
토오코「저기, 뭐하는 거야?」
타이치「다음 질문」
타이치「토오코는 쭉 고독했는데, 그건 어째서야?」
토오코「……어째서냐고……물어도……모르겠어……」
토오코「그냥……분해서……이상자 취급받는 게……그것 때문에, 견딜 수가 없어서……아무도 말을 안 걸어주고……」
토오코「혼자서 있을 수밖에 없었어……」
토오코「그래도, 타이치는 말을 걸어 줬어……」
타이치「……미안해」
그저, 사죄할 수밖에 없다.
타이치「그럼 마지막 질문이야」
타이치「날 좋아해?」
토오코「……으음……」
토오코「응, 좋아해……」
마지막 말이라서일까.
그 평범한 단어가, 가슴에 뭉클하게 와닿았다.
응.
이런 거야.
타이치「그럼 토오코, 오해하지 마」
타이치「이번엔 널 버리는 게 아니니까, 정말이다?」
타이치「잘 살아라」
토오코「……타이치, 아까부터 잘 이해가 안 되는데……」
반짝―――
눈을 감았다.
균열을 볼 수 있는 것은 나뿐이다.
저쪽 세계면서, 이쪽 세계이기도 한 그 장소를 결정하는 것은 나다.
처음에, 모두를 여기로 데려온 것처럼.
돌려보내는 일도, 가능했다.
감은 눈을 뜨고, 다시 보자.
토오코의 모습은 사라져 있었다.

토오코「……도대체 정말……어, 어라?」
토오코「타이치?」
토오코「꺅!?」
토오코「어……라디오? 어느새 주머니에……」
토오코「……왜 들리는 거지?」
토오코「타이치―, 큰일이야, 라디오가!」
토오코「아, 정말……어디 간 거야! 바보!」
토오코「타이치도 참―!」

타이치「안녕 토오코」
이걸로 또, 여러가지 가능성이 사라졌네.
교실에 이제 토오코는 없다.
칼에 베일 일도 영원히 사라졌다.
끈적끈적하게 닭살을 부리는 일도.
얻어맞는 일도.
토오코가 나에게 했던 모든 길이……끊어졌다는 것이다.
이제부터는, 지금까지의 기억을 소중히 간직할 수밖에 없다.
기억을 되새기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타이치「동정하지 마」
나를.
눈꺼풀을 누르며, 손 끝을 부여잡으며.
온힘으로, 떨쳐낸다.
아직 계속이다.
해야만 하는 일이 아직 있으니까.
또, 다음주에―――

그리고, 나는 눈을 떴다.
만약을 위해, 수풀 안쪽을 확인한다.
좋아.
위상의 어긋남. 그렇게 말해 두자.
내 눈만이 관측할 수 있는 그것은, 건너편 세계로 통하는 송환로.
관측할 수 있는 사람에게만, 진실이 된다.
그곳을 빠져나가면, 돌아갈 수 있다.
사람들로 가득찬 세계로.
하지만. 그래.
난―――
요코의 모습은 없다.
다만 도시락만이 책상에 놓여 있었다.
학교로 간다.
아무도 없는 세계를 걷는다.
사람뿐만이 아니라, 생물 그 자체의 기척이 없다.
가득차 있다는 느낌이 없다.
매미도 울지 않는다.
부자연스러운 공간.
교차한 세계의 중심에서 멤돌고 있는 모순.
불과 여덟 명뿐인 작은 세계.
타이치「……」
나나카도 나타나지 않는다.
나나카「……………………」
자 그럼.


ㆍ屋上 (옥상)


문을 밀어서 연다.
저항이 있었다.
반대편에서 눌리고 있나?
강하게 민다.
문 건너편에서, 약한 난기류가 흩어졌다.
바람이었던 것이다.
안테나.
그럭저럭 모양이 갖춰져 있다.
지향성이나 파장 등, 여러가지 조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런 지식은 나에겐 없다.
선배도 자세하게는 몰랐지만, 공부를 한 것 같다.
그 선배는……없다.
공구.
사다리.
서적.
바람에 흩날리는 크림빵 봉지.
작업을 하고 있던 흔적만이 남아 있었다.
24시간 작업하고 있는 건 아닌가.
안테나를 바라보았다.
텅 빈 주변을 둘러싸고, 높이 솟은 건물.
전파를 날리기엔 딱 좋은 환경이었다.
커뮤니티 FM이라는 지역 밀착형 라디오 방송이 있다.
원래, 학교 부활동으로 할 정도로 시시껄렁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건물의 입지와 군죠학원의 임직원들, 지역 유지들의 넘치는 호의.
그런 것들이 결합된 이야기었다.
준비는 착실히 진행되고 있었지만, 어느 어쩔 수 없는 사건에 의해 중단되어버렸다.
반입된 안테나는, 1년 동안 그대로 방치되게 되었다.
그런 사정이 있는 물건이었다.
아마 그들이 FM군죠에 요구하고 있던 것은 열심히 살아가는 소년 소녀들의 희망 넘치는 사랑 컨텐츠였겠지만.
죄송, 군죠에 그런 건 없습니다.
애초부터 삽질이었던 것이다.
미사토 선배는, SOS 계획을 세웠다.
일요일 밤에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인류가 소멸해버린 것을 확인하고 나서였다.
마침 안테나가 있으니까, 완성시켜 신호를 보내보려는 시도는……잘라 말해 현실성이 부족했다.
사실, 선배는 많이 약해져 있던 것 같다.
도피는 점차 사람을 약하게 한다.
그리고 선배는 원래도 충분히 약한 사람.
미사토「페케군?」
등 뒤.
미사토「헬로―예요……으―음, 무슨 일이에요?」
타이치「상황을 보러 왔어요」
선배는 포근하게 미소지었다.
미사토「그런가요」
타이치「당분간 안 왔었는데, 꽤 많이 하셨네요」
미사토「오래 전부터 틈틈이 해 왔으니까요」
그래.
방송부가 자연붕괴하고 나서 지금까지.
선배는 혼자서 모든 것을 해내고 있었다.
점심시간의 DJ.
각종 방송.
모든 것을.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
키리는 나를 적대시하게 되었고,
토모키는 누나를 피하게 되었고,
미키는 우물쭈물 쓴웃음,
토오코도 나를 무시하기 시작하고,
보기좋게 와해.
사쿠라바만이 평소와 변함없었다.
변함없이 땡땡이를 쳤다.
나는 그래도 선배 주변을 멤돌았었지만.
그녀는, 내 도움을 거절했다.
타이치「……그랬군요」
미사토「그건 그렇고, 깜짝 놀랐어요」
타이치「그렇죠―」
미사토「사람들이 모두 사라져버리다니」
타이치「조용하네요」
미사토「무척 무척 조용해요」
타이치「어디 갔다왔어요?」
미사토「잠시……배가 고파서요」
타이치「벌써 낮이네요. 식료품은 잘 찾았어요?」
미사토「아아, 집에 갔었어요. 먹을 건 충분히 있으니까요」
타이치「아―, 학교 땡땡이―. 부장이 땡땡이―」
미사토「아, 아니에요, 이건 땡땡이 아니에요」
초조해한다.
규칙을 중시하는 사람이니까.
타이치「정학, 정학이에요」
미사토「정학은 싫어―, 이력에 흠집이―」
타이치「정학! 정학!」
미사토「정학은 안돼요―」
함께 하는 잡담.
이것이 지금 우리들의 최단거리였다.

선배와 만나는 걸로, 어떤 전개가 이루어질까.
나는 잘 알고 있다.
나의 경험, 그리고 기록.
신중하게 진행할 필요가 있다.
선배에게 다가가서.
선배에게 살며시 접하고.
그리고―――

선배는 자고 있다.
알고 있던 사실이다.
미사토「……」
규칙적이고 가벼운 숨소리
잠시 바라보고 있었다.
이윽고 눈동자가 살짝 떠진다.
미사토「어……어라……?」
타이치「안녕하세요」
미사토「……쿠로스……군?」
타이치「페케예요」
미사토「페케군……」
선배 전용 닉네임을, 그녀가 복창한다.
미사토「언제부터 있던 거예요……부끄럽게」
얼굴을 가린다.
타이치「지금 막 왔어요」
타이치「그보다, 이런 데서 자면 위험해요」
미사토「아아, 네, 괜찮아요, 쿠울」
일으킨다.
타이치「자면 안돼요」
비뚤어진 안경도 바로잡는다.
미사토「하으」
타이치「이걸로 평소의 선배」
겉모습만은.
타이치「잠 깼어요?」
미사토「우웅……졸려……」
타이치「그건 그렇고, 팬티 보이고 있는데요?」
미사토「……앗……!!」
확 깨어났다.
역시 숙녀.
타이치「안녕하세요」
미사토「아, 안녕하세요……아―, 머리 아파―……」
타이치「햇빛을 그대로 맞으면서 자서 그래요. 죽는다고요」
미사토「아뇨, 전 살겠습니다」
타이치「결의는 훌륭하군요」
타이치「하지만 위험하니까 앞으로는 쭉 감시하겠어요」
미사토「……헤에―?」
타이치「즉 이 쿠로스 타이치가 당신의 도피……가 아니라 부활동에 참가하고 싶다는 말이에요」
미사토「부활동 종―료―!」
타이치「부활동 개시―!」
미사토「막 끝난 참인데……」
타이치「뭐 그래도, 가끔씩 놀러오는 것뿐이지만요」
미사토「에이 뭐예요」
타이치「그럼 내일 봐요」
미사토「네, 내일 봐요」
학교를 나와, 옥상을 바라보았다.
안테나가 세워져 있다.
그 옆에.
선배는 아직, 그곳에 있다.
작업하고 있었다.
곧 있으면 밤이 될 텐데.
혼자서.

사람과 접하지 않는 것이, 유일한 삶의 길이라 믿고 있던 그 무렵―――
선배와 만났다.
미사토「안녕하세요!」
타이치「……?」
미사토「항상 혼자네요」
미사토「저, 미야스미 미사토라고 해요」
미사토「같이 부활동하지 않을래요?」
이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최초의 타인.
최초의 누군가.

눈을 뜬다.
햇빛이 창문을 넘어 들어오고 있었다.
간만에 푹 잔 것 같다. 꿈 하나 안 꿨다.
시간은……7시.
학교에 가야지.
이전에, 여기를 어떤 아이와 걸었다.
소녀「하레? 타이치 오빠?」
타이치「안녕」
소녀「아, 좋은 아침이에요」
유사―――
그때는 친구였다.

자고 있다.
자명종을 들어올린다.
12시로 맞춰져 있다.
한밤중까지 작업한 걸까.
졸릴 때까지 움직인 걸까.
그렇게 괴로운 걸까.
자명종 시간을 바꾼다.
미사토「으아으앗」
자리를 박차며 일어났다.
타이치「아침부터 자면 어떡해요」
미사토「안 잤어요?」
타이치「잤어요」
미사토「쿠울」
타이치「이거 봐요」
미사토「아아아……으으으」
비틀비틀 몸을 일으키는 선배.
미사토「우선 안녕하세요」
타이치「안녕하세요, 선배」
타이치「한낮에 여기서 자면 햇빛 받아서 죽을 걸요?」
미사토「아, 네, 그렇겠네요, 조심할게요」
치맛자락을 잡아 올려 안경을 닦는 선배.
고개를 돌린다.
신사, 신사.
미사토「냐암……」
안경을 닦으며 하품을 참는 선배.
미사토「후―, 몸이 나른해요」
타이치「그래요」
미사토「몇 시예요?」
타이치「8시 정도예요」
말없이 누웠다.
손을 베개삼아서.
타이치「죽는다니까요」
굴러다니는 짐 안에는 술병도 있다.
마시고 도피하고 마시고 도피하고.
선배도 참.
타이치「뭐, 그럼 맘대로 도와볼까요」
미사토「ZZZ……」
선배를 업는다.
전혀 일어날 기색이 없다.
아무도 없는 양호실.
빈 침대에 선배를 눕힌다.
타이치「잘 자요 선배, 좋은 꿈 꿔요」
작업을 진행한다.
기나긴 고유의 인생을 거쳐, 기술과 지식은 갖춰져 있다.
선배보다 훨씬 효율적인 시스템을 구성해 진행한다.
땀흘리며 일하는 건 싫지 않다. 기분 좋다.
육체가 자동적으로 움직임과 함께,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옥상을 무대로, 마음이 과거를 회상해 다시 그 충동을 재현하려고 한다.

경비의 눈을 피하는 것은, 내 일과였다.
그 날도 점심시간을 피해 옥상에 와 있었다.
바로 들킬 줄 알고 긴장하고 있었는데, 의외로 사각이었나 보다.
점심시간이 끝날 때까지 혼자서 멍하게 하늘을 보고 있었다.
아무도 상처입힐 가능성이 없는 안식.
다르게 말하면, 누구와도 접촉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1 목표는 사람들 속에서 사는 것이었고, 즐기는 것은 고려하지 않았으니까.
내가 폭탄을 품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사람과의 사귐이란, 나에겐 비싼 쇼핑이다.
대가로 지불해야 하는 것은 지속적인 스트레스.
얻는 것은 과정만 있는 결속. 해피 엔드 생략.
귀찮아진 게 당연했다.
다시 해봐야 절망만 할 게 뻔했다.
고독을 일상화.
내 마음을 둔감하게 하는 것 외에, 무슨 방법이 있을까?
미사토「또 만났네요―, 쿠로스군」
말을 걸어온 것은, 그쪽이었다.
타이치「……」
당황, 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식으로 사람이 다가온 것은 처음이었다.
가슴이 큰 여자였다.
약간의 열정이 느껴지기도 했다.
난 기본적으로 현실의 여자는 귀찮지만, 싫어하는 건 아니다.
여자는 싱글벙글, 내 반응을 기다리고 있다.
떠날 기색은 없어 보인다.
난『가만 놔 둬』오오라를 뿜었다.
미사토「?」
여자는 눈치채지 못했다.
타이치「……어떻게 제 이름을?」
어쩔 수 없이 대답했다. 패배.
미사토「아아, 그런 목소리였군요」
손뼉을 치며, 더 싱글벙글했다.
타이치「어떻게, 제, 이름을?」
끊어서 말한다.
미사토「네. 학생 명부에서 봤어요」
학생 명부랜다.
그렇게 쉽게 볼 수 있는 건가.
아니 보여줘도 되는 거냐, 학교?
난 비꼬아 보기로 했다.
타이치「……탐정 같은 짓을 하시네요. 아니 범죄 아닌가요?」
타이치「고등부에서는 그런 것도 가르치나 보군요」
꽤 쓸만해 보이는 야유였다.
미사토「아우, 날카롭네요」
미사토「그래도 분명 미안한 일이네요」
가볍게 받아넘겨지는 나의 아이러니.
타이치「……」
미사토「사정을 설명하자면 말이죠, 입부 권유예요」
미사토「저, 방송부 사람인데요……」
타이치「알고 있어요」
타이치「낮에 방송에서 자주 들었으니까」
싫어도.
미사토「아아, 그러면 얘기가 빠르네요. 네, 그거 저예요. 점심시간의 DJ」
타이치「비행기 태우는 것도 잘할 줄은 몰랐지만요」
미사토「……잘 못해요……그런 거……」
풀이 죽는다.
타이치「잘 못하면, 안 하시면 돼죠」
대화에 익숙하지 못해서, 이상한 존댓말이 되었다.
미사토「만년 인원 부족이에요」
손바닥을 위로 하고 쭉 내밀었다.
미사토「그래서 쿠로스군을 유혹하고 싶은 거예요」
타이치「……」
타이치「…………훗」
차갑게 웃으려고 했지만 실패하고, 안면 근육이 전기를 맞은 것처럼 경련했다.
……최악이었다.
무표정으로 전환하고, 말한다.
타이치「미안해요. 다른 데 알아보세요」
떠난다.
미사토「아―, 잠깐잠깐!!」
…………………….
그녀에게 이끌려 시작한 부활동.
지금은.
내가 거절당하고 있다.

수요일.
학교로.
학생을 탈주시키지 않기 위한 문.
학생을 지키고 있다기 보단, 바깥 세계를 우리들로부터 지키고 있는 듯한.
그런 인상이 들었다.

미사토「페케군」
의혹의 시선이 나를 맞이했다.
타이치「이런, 부장님」
타이치「숙취는 풀리셨나요?」
미사토「……아직이요. 아야야야야」
미사토「그게 아니라요, 제가 양호실에서 자고 있던 사이에 왜인지 작업이 진행되어 있고……그런 불가사의 현상이 발생중이에요」
타이치「그거 저예요」
미사토「페케군이?」
타이치「선배가 시켜서요」
미사토「엇? 그런 말을 했나요?」
타이치「네, 취해 계셨으니까요. 기억 안 나세요?」
미사토「아아아……」
고민한다.
하는 김에 뻥까도 쳐 둔다.
타이치「그리고 선배가 갑자기 스트립쇼를 시작할 땐 순간 어떻게 되는 줄 알았어요」
미사토「읏!?」
선배의 눈이 긴 가로선『X』마크가 되었다.
미사토「아아아앗!」
미사토「제가 그런 짓을……못 믿겠어요!」
타이치「대충 이렇게……」

미사토「더워, 더워요……옷 못 입고 있겠어요」
선배는 왼손으로 넥타이를 풀며, 3초 후에 오른손을 45도 아래로 넥타이 속에 집어넣어 검지 손가락의 제2 관절까지를 0.62초만에 매몰시켰다.
상반된 양손의 힘이 넥타이의 마찰력을 넘어서, 길이 약 32센티 정도의 목을 감는 부분을 목에서 빼냈다.
다음에 오른손으로 제1 단추 및 제2 단추를 각각 약 2초만에 풀고, 가슴팍을 드러냈다.
미사토「에―잇, 빵빵빵―」
어깨를 양손으로 내리고, 오른손은 다시 블라우스의 단추, 왼손은 치마의 사이드 후크와 지퍼를 풀어갔다.
4.28초 시점에서 블라우스, 7.34초 시점에서 치마.
속옷 차림이 되었다.
미사토「팬티도 벗어버려야지―」
『거시기』부근에서 발목까지 내렸다.
손을 떼고, 음모를 바람에 살랑거리게 하며 브라 후크를 풀었다.
빵빵한 가슴이 컵을 밀어내고, 브라는 공중으로 팔랑 날아올랐다. 활공할 정도의 부력은 못 얻은 채, 잠시 허공을 멤돌다가 바닥에 떨어졌다.
이미 선배가 입고 있는 옷은, 안경과 양말&신발뿐.
안경은 얼굴의 일부이므로, 실제로는 신발 제외 전라였다.
미사토「아무나 봐 주세요, 제 실오라기 하나 안 걸친 모습을, 아무나―」
양팔을 수평하게 뻗고, 왼쪽 방향으로 초속 1회전으로 돌며 6미터 50센티 정도 이동했다.
미사토「모자이크 없는 제 진실한 모습을―」
유감이지만 모자이크는 있었다.
미사토「라――라라라라라――라―라라―♪」
그런 아름다운 선배의 모습을, 난 황홀해하며 바라보고 있었다.
~END~

미사토「……훌쩍훌쩍훌쩍……보면 안된다고 했는데도, 봐버린 거네요」
구석에 풀썩 주저앉아, 야마토 나데시코식 울음.
타이치「그것은 학의 은혜갚기」
미사토「그렇게 정확하게 묘사할 수 있다는 건, 사실이란 거네요!」
타이치「YES」
선배는 쓰러져 운다.
타이치「하지만 부디 안심하시길. 제가 잘 처리해, 다른 사람 눈에 띄지 않도록 정리해 두었습니다」
미사토「……아아, 그랬군요……정말 고마워요」
타이치「아녜요―」
타이치「그리고 원고를 써 왔어요」
미사토「어? 그런 일까지 부탁했었나요?」
타이치「네, 한번 보세요」
대강의 내용은 과거의 것을 차용했다.
미사토「으음……이거 좋네요」
고개를 들며, 미소를 지었다.
미사토「우리들다워요」
타이치「그럼 퇴짜는 아니겠네요」
둘이서 함께 웃는다. 희미하게.
선배의 얼굴이, 흐려진다.
미사토「……결국,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네요」
타이치「무리였던 거죠」
타이치「밤을 새거나, 낮에 너무 무리하면 안돼요. 금지예요」
미사토「으으……후배한테 설교받는 부장이라니……」
선배가 일어나는 것과, 세워놓았던 각종 자재가 움직이기 시작한 건 동시였다.
잡아끈다.
타이치「위험해요」
미사토「에?」
사다리와 철사, 공구……그런 것들이.
불협화음을 연주하며, 바닥에 흐트러졌다.
미사토「아……」
타이치「위험 위험」
미사토「아……고, 고마워요……」
타이치「좀 더 붙어요」
미사토「아, 그, 그치만……」
타이치「좀 더 안 붙으면 위험해요」
미사토「……그런가요……」
선배의 향기.
순간 밀려온 기억이, 실감나는 초여름의 공기와 함께 코 끝에 퍼진다.

미사토「안녕하세요」
꾸벅꾸벅 졸고 있는데, 목덜미에 차가운 감촉.
타이치「……우왓, 뭡니까?」
미사토「차가운 주스 시간이에요」
선배가 캔 두 개를 들고 있었다.
타이치「……」
미사토「사주는 거예요」
타이치「…………」
받아들었다.
타이치「……선배도 끈질긴 사람이네요」
타이치「저한테 너무 관련되지 않는 편이 좋아요」
미사토「왜요?」
옆에 앉는다.
타이치「쓸모없는 녀석이니까요」
타이치「잠시만 한눈팔면, 사람을 상처입히고 싶어지고」
타이치「……위험인물이에요」
미사토「아―……심해 보이네요……」
명부를 봤다면 알고 있을 것이다.
붉은 글씨로 기록된, 내 이름을.
타이치「부활동? 아마 제 참가는 허가 안 될 걸요」
타이치「당신도 군죠의 인간이라면……알고 있겠죠」
미사토「네. 그래서 이렇게 이야기하는 거예요」
타이치「……말만으론 모르는 것도 많아요」
미사토「하나 안 건 있어요」
손가락을 세운다. 진지한 표정.
타이치「……뭔데요?」
미사토「당신은……평범 컴플렉스예요」
타이치「……윽」
맞았다. 훌륭한 인간 통찰력이다. 나이의 힘인가?
어떻게 생각을 해야, 그런 정확한 판단이 가능할 걸까.
난 전율했다.
미사토「그런 얼굴을 하고 있어요」
얼굴이었냐.
난 긴장을 풀었다.
미사토「즉, 건전함을 요구하고 있다는 말이에요」
미사토「……저처럼요」
그녀는 손목의 상처자국을 보여주었다.
희미하게 남아 있는 그것은, 꽤 오래됐다.
타이치「……이건?」
미사토「자해 증상이에요」
미사토「손목을 그어도, 치밀하게 준비하지 않는 이상 사람은 안 죽어요」
미사토「하지만 스트레스가 쌓이면, 전 제 몸을 상처입혀요」
미사토「저한테 스트레스라는 건……잘은 설명 못하겠지만, 완벽하지 못한 거예요」
미사토「어질러진 방이라든지, 안 지켜진 규칙이라든지」
타이치「힘들겠군요」
타이치「세상은 거의 그런 꼴이잖아요」
미사토「그렇죠……스트레스 투성이에요」
미사토「하나부터 열까지 잘 안 풀려서, 저를 상처입히고……」
미사토「가끔은, 다른 사람을 상처입히고」
미사토「그런 딜레마를 가지고 있어요」
타이치「전 달라요」
타이치「전……」
순간 푹 안겼다.
타이치「잠깐」
미사토「괜찮아요, 괴로운 얘기 안 해도」
미사토「……어쨌든, 전 그렇게 한심해요」
미사토「그래도, 평범함을 목표로 분투중이에요」
타이치「선배……는……」
미사토「난무하는 전파, 타오르는 우정, 여러가지 사건, 그리고 화해……당신도 평범한 사람을 목표로, 우리들과 함께 노력해보지 않겠나요?」
타이치「…………」
미사토「군죠학원 방송부는, 자신이 없는 다감한 소년을 모집중입니다」
타이치「……완전 종교 권유네요」
미사토「좋잖아요, 종교」
타이치「이상한 여자」
미사토「에잇!」
타이치「……아얏」

박치기.
미사토「연상인 사람은 선배예요」
미사토「그리고 당신이 마신 주스값은, 부비에서 뺀 거예요」
타이치「……쫀쫀해」
미사토「그러므로 견학할 의무가 있어요. 응, 있어요」
타이치「……치사하다」
미사토「부원이 적어서, 1학년인데도 이리저리 뛰어다녀야 하는 가녀린 아가씨예요」
타이치「큰 가슴이 닿고 있는데요. 이 자세로 괜찮아요?」
미사토「아, 쿠로스군은 그런 거에 흥미가 있나요?」
타이치「저 남잔데요」
미사토「우리 남동생은 아직도 완전 꼬맹이예요」
무방비하다.
너무 무방비해서.
타이치「……하하」
웃어버렸다.
타이치「입부」
미사토「네?」
타이치「……입부할게요」
미사토「어, 정말로 정말로?」
타이치「쭉 가슴에 눌린 채로 협박당하는 것보다 나을 테니까요」
미사토「와아! 해냈다! 나도 참 대단해!」
그래 잘나셨수…….

타이치「반대네요」
타이치「그 때와 반대」
미사토「……그 때……?」
타이치「벌써 까먹었어요?」
미사토「아아……그 때의 일 말이군요」
아무렇지도 않게 나를 가슴으로 압박한 선배.
그 때의 순진함은, 이제 없다.
껴안으면 몸을 뒤척이며 당황한다.
그것은 선배가, 나를 이성으로서 의식해 주고 있다는 뜻.
조금 가슴이 쓰렸다.
미사토「……그런 일이 있던 것도 같네요」
타이치「갑자기 안겨서 놀랐으니까, 복수예요」
미사토「그건……그치만, 어린애라고 생각했으니까요」
타이치「좀 더 경계하지 않으면 상처입어요」
미사토「……제가 다치는 건 괜찮아요」
미사토「다른 사람을 다치게 하는 것보단」
타이치「선배 같은 사람이, 어떻게 사람을 다치게 한단 거예요」
미사토「…………다치게 해요……」
삐진 듯한 목소리, 볼이 불퉁 튀어나온다.
연상의 누나.
지금은.
순진한 소녀.

미사토「저기……」
타이치「와이?」
미사토「왜 다치지도 않았는데 간호받고 있는 거죠?」
타이치「혹시 생채기가 생겼을지도 모르잖아요」
미사토「생겼던가……?」
타이치「뭐 어때요. 피곤해 보이는데, 조금 쉬세요」
미사토「네에……」
타이치「자, 선배 휴대폰」
미사토「아, 고마워요」
타이치「못 쓰는데도 가지고 다니네요」
미사토「……불안해요. 안 가지고 다니면」
미사토「연락이 왔을 때, 바로 받을 수 있어야죠」
타이치「……연락?」
미사토「가족한테서」
타이치「선배의 가족들은……」
미사토「형무소……」
타이치「네″?」
미사토「……범죄자라는 소리예요」
타이치「헤에, 처음 듣는데요」
미사토「자금 횡령에서 탈세까지 골고루 했어요」
여러가지 일이 있던 것 같다.
타이치「저도 성범죄자가 안 되게 조심해야겠네요」
미사토「……안 웃겨요」
타이치「자 그럼」
미사토「?」
타이치「슬슬 주무세요」
미사토「야야야야야야야야한 짓을 당할 것 같아요~」
타이치「그런 실례의 말씀을. 그런 짓은 안 해요」
지금은.
타이치「선배는 편안하게 살아도 돼요」
손바닥으로 눈을 감긴다.

복도로 나온다.
토모키를 찾는다.
바로 찾아낼 수 있었다.
불러세운다.
토모키「타이치구나……」
타이치「누나가 걱정되냐?」
토모키「……어, 아니 그런 게 아니라……무슨 일인가 해서」
토모키「그리고 어차피 관계없어. 부모님은 이혼했고」
토모키「우리들도 각자 다른 쪽 부모님하고 살고 있으니」
다른 쪽 부모?
4인 가족이 전부 뿔뿔이 흩어졌단 소린가?
타이치「그러냐. 토모키는 어느 쪽 부모님?」
토모키「……어머니」
타이치「그럼 선배는 아버지군」
토모키「뭐 그렇지……」
토모키「근데 뭐하고 있어? 둘이서?」
타이치「아아, 부활동하고 있어. 선배하고」
토모키「……왜 또?」
타이치「아니, 목적이 있는 건 좋잖아」
토모키「부활동이라면 그 허접한 거?」
타이치「허접한 거 아냐」
토모키「타이치가 그런 걸 하다니……뭐랄까, 뭐, 다 이유가 있겠지만 말야」
토모키「또 누구누구 하고 있어?」
타이치「부장」
토모키「……끝?」
타이치「응」
토모키「그거 부활동이 아닌디유……」
타이치「부활동이라 생각하면 어쨌든 부활동이야」
토모키「……요즘 여러모로 바쁘게 움직이는 건 알고 있었지만, 부활동이라」
어깨를 으쓱였다.
타이치「너도 어때, 남매끼리 쌍방울로」
토모키「쌍쌍으로」
토모키「……미안하다」
타이치「그러냐」
토모키「……배신당할 걸」
불쑥 말했다.
타이치「상관없어, 별로」
토모키「그래……」
타이치「배신 안 한다는 게, 신뢰의 조건이냐?」
토모키「그야 뭐……」
타이치「그러면 나도 안 되겠네」
토모키「타이치는 배신 안 할 거잖아?」
타이치「아냐아냐, 여러가지를 배신해 왔고 앞으로도 배신할 거고 그리고 해신을 볼 거야」
토모키「……그게 네가 평소에 말하는 하이레벨 개그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건 아니었는데.
타이치「그런 보석 같은 개그가 그렇게 술술 나올 것 같냐」
양보단 질.
토모키「어쨌든, 너무 친하게 지내지 않는 게 좋아. 타이치를 위해서」
타이치「아―니, 친하게 지낼래. 갈 때까지 갈래」
멍해지는 토모키.
토모키「뭐, 뭐냐……간다는 건……」
타이치「골이지」
토모키「골이라니……」
타이치「삽입」
토모키「큭……」
충격을 받는다.
토모키「그건……하지만……」
타이치「인모럴씨는 지나치게 고민이 많군」
어깨를 두드린다.
토모키「토모키입니다!」
타이치「좀 더 순수한 인모럴이 돼라. 너 자신을 위해서」
토모키「이해 불능도 95%」
타이치「난무하는 전파, 타오르는 우정, 여러가지 사건, 그리고 화해……당신도 평범한 사람을 목표로, 우리들과 함께 노력해보지 않겠나요?」
토모키「…………」
타이치「군죠학원 방송부는, 누나에게 성욕을 불태우는 소년을 모집중입니다」
선배에게서 빌린 말.
토모키에게도 가르쳐 주고 싶었다.
토모키「……야 임마」

슬슬 토모키가 온다.
현관에서 대기.
토모키「타이―――」
타이치「잘 왔다. 식료품 땡큐―」
토모키「우왓, 깜짝이야……기모노까지 입고」
타이치「문호 강림」
토모키「맨날 그런 차림이야?」
타이치「물론이지」
토모키「대단하네」
토모키는 더욱 더 나를 존경하게 된 것 같았다.
타이치「난무하는 전파, 타오르는 우정, 여러가지 사건, 그리고 화해……당신도 평범한 사람을 목표로, 우리들과 함께 노력해보지 않겠나요?」
토모키「…………」
타이치「군죠학원 방송부는, 솔직해지지 못하는 시스콤 증후군의 소년을 모집중입니다」
토모키「……그 말 말야……난무하는 전파라는 부분, 왠지 위험해 보이는데」
타이치「그러냐?」
토모키「군죠에서 그건……」
타이치「한 반에서 평균 열 명 정도는 전파에 빠져 헤롱대고 있지……」
토모키「응……」
타이치「그 놈들도 이제 없지만 말야……」
토모키「응……」
타이치「뭐, 어쨌든 음식은 고맙다」
토모키「우정은 대가를―――」
타이치「요구하지 않는다」

실없이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마주세웠다.
이미 의식적이다.
토모키「그럼 간다」
타이치「그쪽 일이 일단락되면, 부활동 같이 안 할래?」
순간, 표정이 딱딱해졌다.
토모키「……배신자하고 부활동따위 하고 싶지 않아」

타이치「네네―」
타이치「누구신가요?」
유사「저, 저기, 도지마예요」
타이치「그 야쿠자 같은 무서운 성씨와는 반대로 큐트한 목소리는……유사? 열려있으니까 들어와」
문이 슬며시 열리고, 미소녀가 나타났다.
유사「안녕, 하세……요」
의자에 앉히고, 보리차를 꺼낸다.
여러가지 얘기를 했다.
유사「저기, 저 오늘이 생일이에요」
타이치「헤에, 그랬구나」
유사「그래서 말예요, 이거……생일 선물이에요」
타이치「으으음……일단, 고마워. 근데, 어라?」
유사「그리고, 교환일기를 내일까지 주셨으면 해서……」
타이치「그럼 우선 교환일기하고, 그리고 이건 내가 주는 생일 선물」
유사「…………」
이 아가씨는 놀라면 멍해지는 버릇이 있군.
타이치「자, 그럼 집까지 바래다 줄게」
유사「……………………히익!?」
방금 전의 배 정도로 멍해진다.
타이치「벌써 밤이고, 좀 위험한 사람들도 있으니까」
특히 이 동네에는.
타이치「갈까?」
유사「네, 넷」
그리고, 바래다 줬다.
유사「그 질문, 매번 하네요, 타이치 오빠?」
유사「어려워서 잘 모르겠지만……알았어요」
유사「강송합니다」
강송합니다.
강송.
강추?
아냐.
강습.
강습.
그래, 강습.
격렬하게 공격하는 행위.
아아.
나는 이 말이 좋다.
꿈 속에서 웃는다.
한없이.
조롱한다.
침울한 감정은 바로 심연 속에 삼켜진다.
냉소적인 허무로 이루어진 겉모습이 벗겨지고, 환히 드러난 조각들이……거대한 모체를 이루어 나를 비웃는다.
사고는 하나.
적은 적.
죽이면 죽는다.
하지만 난 그런 사고조차도, 없애버리고 싶었다―――

똥땅똥땅
똥땅똥땅
오늘 아침도 옥상에서는 정력적인 부활동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입부를 결심한 나였지만, 좀처럼 허가는 나지 않았다.
선배는 여러모로 움직이고 있었다.
나한테 안 들키게.
……바로 눈치채버렸지만 말이지.
부원이 아니어도, 부활동에 참가할 수는 있었다.
분위기에 휩쓸려 말해버린 입부 선언.
바로 후회하고, 취소하려고 했다.
하지만……힘들었다.
나를 졸졸,
미사토「쿠로스군―!」
졸졸,
미사토「안녕하세요―!」
졸졸 따라다녔다.
이윽고, 부실에 있는 횟수가 많아졌다.
미사토「으―음」
미사토「메인보드의……슬롯에……케이블을……읏샤!」
실제, 선배는 부활동의 중심이었다.
제대로 활동할 수 있는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단 둘뿐인.
미사토「베이가……베이로……하드 디스크……으읏, 또 케이블이 안 꽂아져……」
타이치「……하아」
가만히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타이치「아니에요. 이쪽」
미사토「아, 알아요?」
타이치「……이 정도야」
미사토「그럼, 저기, 이쪽은?」
타이치「저기요……왜 완성품을 안 산 거예요?」
타이치「지식도 전혀 없으면서, 편하게 살아야죠」
미사토「이것도 부활동의 일부가 되니까요」
타이치「……음―」
미사토「아, 파직하는 소리가……」
타이치「잠깐잠깐! 비켜보세요」
타이치「그러다가 비싼 부품 다 망가지겠어요」
미사토「아―, 고마워요―」
학교가 부자라 그런지, 부비로 구입한 것으로 보이는 부품들은 고성능 투성이었다.
미사토「헤에―. 잘 하네요―」
타이치「뭐, 다들 이 정도는 하죠」
비꼬기.
미사토「에헤헤―, 우리 동생도 컴퓨터 잘해요」
안 먹혔다.
타이치「……그런가요」
미사토「남자아이는 다르군요」
타이치「연하를 좋아해요?」
미사토「네, 연하 남자아이들은 귀여워요」
타이치「……」
타이치「저도 아줌마는 좋아요」
비꼬기②.
미사토「저도 싫어하진 않는데요, 아줌마는 연애상대는 안 되겠네요」
타이치「당연하죠!」
그만 흥분해버렸다.

타이치「안녕하세요」
미사토「아아……페케군……꺄아」
사다리 위에서 선배가,
풀썩
하고 떨어졌다.
공주님 안기.
미사토「우와……와와왓!?」
타이치「인명구조는 기본」
바로 내려놓는다.
미사토「……고, 고마워요」
타이치「선배, 방금 떨어지는 폼이 고구마벌레 같았어요」
미사토「……그런 거 상상하게 하지 마세요」
우거지상+빨간 얼굴.
타이치「그러고 보니, 벌레도 없어졌죠」
미사토「네, 그나마 그게 다행이에요……」
타이치「매미가 없어져서 조용한 건 좋네요」
미사토「네……」
타이치「그러고 보면―――」
자연으로 둘러싸인 이 동네에는, 매년 많은 매미가 방문한다.
그 외에도 수많은 벌레가 있다.
통통하게 살찐 투구풍뎅이가 가끔씩 집 벽에 애절하게 달라붙어 있기도 한다.
시가지에서 그런 게 보일 정도니, 당연히 흰새우와도 비슷한 유충은 산에 꾸역꾸역 들이차서 해방의 순간을 꿈꾸고 있다.
타이치「그런 얘기를 식당에서 새우를 먹을 때 해서, 끝이 갈라진 스푼을 장비한 토오코하고 싸우기도 했어요」
미사토「……아핫」
미사토「아하하하하하핫」
단 둘이라도, 부활동은 즐겁다.
타이치「……응?」
인기척.
미사토「왜 그래요?」
타이치「아뇨, 잠시 해우소에 갔다올게요」
미사토「어머, 고풍스러워라」
교내로 이어지는 문.
문을 열자, 아래층을 향해 후다닥 뛰어가는 발소리.
타이치「요코가 아니었나……」
인기척을 지우는 방법도 어설펐고.
그렇다면.
타이치「토모키……겠군」
솔직하지 못한 시스템 컴포넌트 자식.
뭐, 어쨌든 화장실이나 가자.
쏴아―. (싸는 중)
타이치「후우」
요코「……짜잔」
타이치「와왓, 나왔다!」
진짜.
요코「안아 줘」
타이치「……응?」
요코「품으로 안기」
요코「공주님 안기」
타이치「……뭐야」
요코「타이치가 그 안경녀를 안았던 방법」
타이치「안경녀라니……」
요코「다양한 안기 방법이 거기에 있었어」
타이치「……전부 봤어?」
요코「공주님 안기」
요코「공주님 안기」
요코「공주님 안기」
본 것 같다.
타이치「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잘 알겠어……」
요코「공주님 안기」
타이치「……하고 싶냐……그 나이에?」
요코「나이는 관계없어」
타이치「……당신은 그런 거 안해도 쌩쌩하지 않습니까」
요코는 무표정하게 풀이 죽었다.
타이치「그보다 잠깐 도와줬으면 좋겠는데……요코는 그런 거 잘 알잖아?」
요코「공주님 안기」
으―음.
타이치「……교섭하잔 거야?」
끄덕.
타이치「알았어, 하자. 하면 되잖아」
요코「결혼식 공주님 안기」
타이치「그런 의미를 알 수 없는 어레인지는 못해」
요코「보통으로 괜찮아……」
타이치「그럼, 이리 와」
요코「…………」
기뻐 보이네.
……속으면 안 되지.
훌쩍
요코「…………」
타이치「……어때?」
요코「……좋아」
타이치「그럼 내려」
요코「안돼, 안돼……」
당황했다.
타이치「더?」
요코「더」
요코「난 아직 만족 못 했어……」
타이치「음―」
이 녀석, 꽤 무거워서 힘든데.
근육은 지방보다 무겁다.
무서운 차세대 아이들의 표준 사양.
……차세대란 말엔 별 뜻 없어.
요코「산책」
타이치「산책이라……」
요코「응……」
만족해했다.
원래부터 이런 솔직한 녀석이었다면, 좀 더 좋아할 수 있었을 텐데.
요코「……좋아」
타이치「아 그려」
슬슬 그녀의 전략이 파악될 것 같았다.
요코「무척 좋아」
타이치「간다」
이동한다.
무거워졌다.
타이치「이젠……됐지?」
요코「아니」
타이치「……음―」
그 후로 10분 가까이 교내를 돌아다녔다.
타이치「아, 아직?」
요코「좀 더」
타이치「으, 으윽」
팔이.
다시 한 바퀴.
타이치「이제 팔이 아픕니다」
요코「조금만 더……」
타이치「시간으로 쳐서 어느 정도여야 만족하겠어?」
요코「약 1시간 정도」
타이치「내 팔 끊어진다」
강제퇴거.
타이치「끝」
요코「……하아」
낙담하고 있다.
어쩔 수 없지. 사랑의 성희롱을 해 볼까.
타이치「그럼 대신에 다른 걸 해 줄게」
요코「뭘?」
타이치「한번 해 보고 싶었던 게 있어」
요코「그건?」
타이치「역목마」
요코「의미를 모르겠어」
타이치「보통의 목마태우기를 연상해 보세요」
요코「네」
타이치「보통, 위쪽 사람의 무릎은 아래쪽 사람의 얼굴 방향과 같이 정면을 바라봅니다만……」
타이치「이걸 휙 반전시켜서, 뒤쪽을 보게 합니다」
타이치「그리고, 아래쪽의 사람은 그대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타이치「역목마」
요코「……………………」
요코「……타이치의 에로 파워는 헤아릴 수가 없어」
타이치「고마워. 자, 해보자」
요코「……그건……굉장히……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해」
웬일로 거부한다.
타이치「OK, 그럼 미미 선배한테 부탁해야지」
요코「앉아……」
간단.
미미 선배가 허락할 리가 없는데 말이지.
타이치「와―아」
요코가 눈 앞에 선다.
요코「……그럼……」
허벅지가 어깨에 올려졌다.
한쪽씩.
그리고 역목마, 완성―――
타이치「오오오오오……」
타이치「오오오오오오오오……」
타이치「우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후회 없음!

작년에도 분명히, 토모키는 미미 선배와 싸우고 있었다.
토모키「그건 누나……누님이 배신했으니까……」
토모키「방송부에 들어간 것도 거의 억지였어. 귀가부나 할려고 했더니, '넌 PC소년이니까 도와 줘'라고 하는데 나참」
토모키「왜 이제 와서 누님하고 사이 좋게 부활동을 해야 되는 건데」
작년과 지금.
두 번의 다툼.
그 질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오늘.
토모키는 혼자서, 빵을 먹고 있었다.
타이치「……여」
토모키「응……빵이라면 거기 남아 있어」
토모키「상했을지도 모르지만 말야」
타이치「응」
상하지는 않았겠지.
하지만 카레빵밖에 없다.
분명히, 가운데 쪽에…….
찾았다, 고로케빵.
토모키「어라, 그런 게 있었냐?」
타이치「조사가 어설프군」
토모키「……교환할래?」
타이치「자」
토모키「땡큐」
토모키는 고로케빵을 먹었다.
타이치「……그거, 방송부 예산에서 나온 빵이야」
토모키「풉, 거짓말하지 마!」
토모키「식당에서 구입한 빵인데요」
타이치「부활동을 도울 의무가 생겼군」
선배 작전.
토모키「안 생겼어!」
타이치「……고집쟁이 녀석」
토모키「도울 이유가 없잖아」
타이치「가족이잖아?」
토모키「……아니, 그러니까 말야……」
순간 느껴지는 짜증스런 기색.
나도 알고 말한 거지만.
흔하디 흔한 인간관계에 대해서.
가벼운 공격은, 쾌락이 된다.
너무 강하면 상처를 입지만.
기본적으로, 사람이 사람에게 접할 방법은 공격밖에 없다.
교우관계란 그 강도를 적당히 조절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닐지.
타이치「가끔은 괜찮잖아?」
토모키「……오늘은 끈질기네. 타이치답지 않아」
그래, 나답지 않다.
토모키「있는 그대로를 사랑하는 게 네 신조 아니냐?」
타이치「있는 그대로를……」
타이치「너, 너……나한테 사랑받고 싶냐?」
토모키「그 말이 아니잖아!」
주접떠는 것도, 자폭하는 것도, 공격은 아니다.
알고 있다. 전부.
난 현관문 앞에서만 떠들고 있다. 방문판매원처럼.
그 안으로 발을 디디는 것이 서투른 나는, 상대의 모든 것을 긍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외의 방법은 없다. 평소라면.
타이치「뭐어, 그렇게 말하니 좀 찔리긴 하네」
하지만 지금은―――
토모키「……타이치도 조심하는 게 좋아, 진짜로」
타이치「왜」
토모키「배신당할 뿐이야」
타이치「예를 들어서 설명해 주지 않으면 모르겠는데」
토모키「……이용당할 뿐이야」
타이치「얼마에?」
토모키「진지하게 들을 생각은 없는 거냐……」
타이치「……미안……시리얼한 공기는 좀 거시기해서……」
토모키「시리어스!」
책상을 두드린다.
타이치「그렇게 발끈하지 마. 생리냐?」
토모키「난 남자야! 이 팥눈깔!」
타이치「파, 팥이라고 하지 마―!!」
영원한 트라우마.
토모키「이게―!」
타이치「우갸―!」
토모키「에잇―!」
타이치「체앳―!」
합의 하에 만드는 찰과상은, 마음을 풍부하게 만든다.
그래서 만족된다.

그런 연유로, 부활동하는 중.
으―음.
여긴가?
아니면 여긴가?
이 구멍은 뭐지? 케이블을 끼우는 건가?
타이치「……」
여기로 하자. 왠지 삘이 온다.
미사토「뭔지 알겠어요―?」
타이치「뭐―, 일단은요」
밑에서는 선배가 사다리를 받쳐주고 있다.
미사토「남자가 있으니까 믿음직스럽네요―」
타이치「그렇죠 뭐」
타이치「분부가 있으시다면 언제라도 저를……」
아니 잠깐.
이 사람, 남동생 있잖아.
타이치「……저기, 토모키하고 싸우고 있죠?」
선배의 얼굴이 흐려진다.
미사토「아―, 뭐어……」
미사토「조금 냉전 중」
타이치「토모키도 싸우긴 싸우는구나」
미사토「에?」
타이치「그 녀석, 진짜로 화낸 적이 거의 없으니까요」
선배는 그 말에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미사토「……당연한 건지도 모르죠」
타이치「네?」
미사토「인생은 어려워요. '에잇 빌어먹을'이란 느낌이에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토모키『……배신당할 걸』
타이치「저기, 배신이란 게 뭐예요?」
미사토「……」
선배의 미간이 찌푸러졌다.
미사토「토모키가 그런 말을 했나요?」
타이치「네」
미사토「……」
타이치「선배?」
미사토「……음―음―」
선배는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음―음―하고 신음소리를 냈다.
타이치「저기?」
미사토「무슨 말 하는 거예요―정말―!」
사다리를 덜컹덜컹 흔든다.
타이치「와와와왓!?」
미사토「웃기지도 않아요―!!」
타이치「저 떨어져요―!!」
불안한 부활동이었다.

미사토「……케―군―……」
선배가 왔다.
오차는 5분 정도.
10분 정도 늦었으면, 상황을 보러 가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타이치「네―에」
미사토「안녕하세요―」
창 아래, 보따리를 든 그녀가 서 있었다.
그리고 예정대로, 도시락을 먹는다.
타이치「맛있다」
타이치「선배 요리 잘 하네요」
미사토「그래요? 요리는 시작한 지 얼마 안 됐는데……」
허물없는 대화.
그리고.
미사토「응……으응……읏……」
섞인다.
여러번 체험한 행위를, 충실하게 따라한다.
익숙해진 만큼, 선배에게 주는 고통은 덜어졌을 것이다.
타이치「내일, 바다라도 갈까요?」
권유.
미사토「……그러죠」
미소.
몸을 겹치는 것만으로는 닿을 수 없는 영역이, 존재하고 있었다.

타이치「금요일인가」
세계가 되돌아가기까지, 앞으로 3일.
오늘도 할 일을 하자.
타이치「선배, 기다렸어요」
미사토「……페케군」
타이치「바다 간다는 약속, 안 잊었죠?」
미사토「바다……그치만 준비 안 했어요」
타이치「제가 준비했어요. 자, 가죠」
미사토「그치만……일요일까지 방송국을……」
타이치「도움을 요청해 놨어요」
타이치「그런 연유로, 바다에 갔다올 테니까 잘 부탁해」
요코「……나, 타이치하고 바다에 간 적 없어」
타이치「다음에 가자」
타이치「우선 이 쨍쨍한 한여름에, 요코는 달랑 혼자서 방송국 준비를 열심히 해. 아, 나 감시하러 오는 것도 금지야」
요코「……편리하게 부려먹힌다……」

타이치「잘 어울리네요」
선배는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미사토「……전 그렇게 안 생각해요……」
타이치「타월로 가리면 모처럼의 매력이 사라지잖아요」
미사토「변태 같은데요……」
타이치「그렇지 않아요」
타이치「선배의 정숙한 차림에, 저 무지 흥분하고 있어요」
미사토「흥분하고 있잖아요」
타이치「그래도, 어울리냐 아니냐를 따지자면 베스트 매치예요」
타이치「야한 남성 백 명에게 물으면, 전부 어울린다고 할 거예요」
미사토「안 야한 남성한테도 물어보세요!」
타이치「안 야한 남자따윈 없어요!」
양팔을 좌우로 흔들며, 나는 외쳤다.
미사토「꿈이 없어……」
미사토「아아, 변태같아요……부끄러워……」
'변태예요 변태예요'하며 선배는 연호했다.
타이치「부끄러워하지 마세요. 변태라니, 터무니없는 오해예요」
타이치「선배는 처음 입는 에로 수영복에 이상흥분을 일으키고 있을 뿐이에요」
미사토「그게 변태예요, 그리고 당신은 바보예요」
흠.
타이치「선배가 변태, 내가 바보. 어울리는 두 사람」
미사토「그러니까 변태가 될 생각은……」
타이치「작년을 회상하며, 비치발리볼을 땡겨 보죠」
올해엔 마음껏 흔들어야지.
가슴=비치발리볼.
이 정리에는 눈꼽만큼의 오류도 없다.
타이치「이얏―」
미사토「으으으……」
타이치「에잇―」
미사토「앗, 으아……」
타이치「선배, 왜 한 손으로 리시브해요?」
미사토「시선을 느껴서예요」
타이치「여긴 우리 둘밖에 없는데요?」
미사토「또 한 사람의 시선이에요!」
좋아, 양손을 안 쓰면 리시브 불가능한 공을 보내주지.
타이치「에잇, 분열마구」
미사토「어, 어떻게!?」
미사토「……아, 아, 아앙!」
선배는 양손을 썼다.
피융
타이치「오―」
최고 밸런스 미유 시간차 상하운동.
미사토「눈으로 겁탈당하는 듯한 기분이 들어요……」
예민한 사람이다.
타이치「그만 어택을 하고 싶어지는 마구」
미사토「아앗, 굉장히 어택을 하고 싶어지는 좋은 공!」
미사토「앗, 에―잇!」
슈웅
완벽 미유 매지컬 롤링.
방금 건 꽤 높은 랭크의 추억이 되었다.
타이치「다음은……」
미사토「이제 그만―! 평범한 게 좋아요―!」
……이 정도로 해 두자.
…………………….
느긋하게 랠리.
타이치「다른 사람하고 무언가를 하는 건 즐겁네요」
미사토「그야 페케군은 즐겁겠지만……」
타이치「부활동 말예요」
미사토「……부활동?」
타이치「사람이 사라지고, 조용해지고, 이제 거의 아무것도 안 남았어요」
타이치「그래도, 즐거워요」
타이치「누군가와 함께 무언가를 하는 건, 즐거워요」
타이치「혼자였으면 힘에 벅찰 뿐이었겠죠?」
미사토「……네」
타이치「선배는 지루하진 않아요?」
미사토「……재미없지는 않아요」
미사토「하지만……전……」
타이치「전?」
미사토「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토스.
볼은 높게 올라, 작은 포물선을 그린다.
타이치「……왜요」
같은 공을 보내준다.
미사토「그저 무언가만을 하기 위한 존재가 된다면 좋을 텐데요」
타이치「로봇처럼?」
미사토「그래요」
타이치「그건 쓸쓸하네요」
미사토「……마음은 고맙지만요」
타이치「인간은 로봇이 될 수는 없잖아요?」
미사토「…………」
타이치「즐거울 때엔, 즐길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높게 공을 띄웠다.
미사토「그럴 여유, 없어요……」
어깨가 내려간다.
탕, 하고 공이 떨어졌다.
타이치「선배?」
열 살은 더 나이를 먹은 듯한 표정으로,
미사토「이건 응보인지도 몰라요」
미사토「제가 한 짓에 대한」
타이치「……」
미사토「청춘을 보내거나 즐길 자격, 사실은 없어요」
타이치「……선배가 그렇게 무거운 죄를?」
미사토「그래요……」
타이치「그런 것 같지는 않은데요」
미사토「에……?」
타이치「미미 선배 정도의 사람이, 그런 죄를 저지를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고요」
미사토「페케군……사람 사정도 모르면서, 그런 말을 하는 건……안 좋아요. 한 번, 몸을 맡겼다고 해서……」
타이치「하지만 선배는, 도망치고 싶어할 뿐이잖아요」
걸어가서 공을 줍는다.
미사토「무슨……!」
타이치「도피를 위한 부활동이었잖아요?」
타이치「그래도 이상한데요. 세계는 이미 이렇게 희박해졌는데」
타이치「저지른 죄도, 후회도, 고통도……전부, 사람과 함께 사라져버렸는데」
타이치「죄의 의미도 처벌도, 이제 없어요」
타이치「도덕이란 건, 한없이 0에 가까워졌어요」
타이치「선배는 거기에 집요하게 매달리고 있어요」
나도 그렇지만.
미사토「……그런 생각은……아니라고 생각해요」
미사토「마음의 상처는 남는 거잖아요?」
미사토「……전, 심한 짓을 해버렸으니까……」
타이치「후회하고 있다고요?」
미사토「…………」
타이치「만약, 그 때로 돌아간다면……선배는 보다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어요?」
미사토「…………」
타이치「그렇다면, 반성따윈 의미가 없어요」
타이치「같은 일이 반복될 뿐이지」
타이치「그렇다면, 선배 역시 못할 거예요」
타이치「……전 그걸 알아요」
미사토「…………」
타이치「사정은 잘 모르지만」
타이치「……선배는, 그저 도피하고 있는 거로만 보여요」
타이치「부활동이 아니어도 상관없겠죠. 분명히」
타이치「이대로 쭉 정체하고 있을 건가요?」
타이치「이런 말에는 저항이 느껴지시겠지만, 그 깊은 죄를 저지른 자신을 긍정하기 위해, 뭔가 손을 써야 하지 않나요?」
미사토「그건……불가능해요」
미사토「이젠 완전히, 불가능해요」
타이치「왜요」
미사토「사람이, 없으니까요」
타이치「그럼 어쩔 건데요?」
미사토「……그런 거……몰라요」
미사토「제가 묻고 싶을 정도예요……」
표정은 가라앉은 채로, 사라져가고 있다.
맑은 얼굴이 무표정해질 정도로.
그 밑에는 고민.
타이치「선배는, 벌을 받아야 해요」
미사토「에……」
타이치「죄를 저지른 자신을, 벌주고 싶지 않나요?」
미사토「그런……건……」
한 발 다가간다.
가까이.
타이치「벌을 드릴까요?」
자동적으로.
미사토「……」
타이치「그걸로 조금은 편해질지도 몰라요?」
미사토「그런 건……이상해요……」
선배는 당황해한다.
타이치「여기로 오세요」
손을 잡고, 데리고 간다.
거절을 하기 위한 틈을 주지 않은 채.
선배도 살짝 비명을 질렀지만, 저항은 하지 않았다.
해안가 집 마루에 걸터앉는다.
미사토「……뭘 하려고요……?」
타이치「있는 몸 그대로 뭔가를 하는 거예요」
꺼낸다.
타이치「빨아주세요」
미사토「힉……」
타이치「햇빛 아래에서 보니까 다르죠?」
미사토「…………빨다니……」
타이치「펠라치오예요」
타이치「자, 빨리」
미사토「남자의 걸……빨다니…………그리고 크기가……좀……」
타이치「아이스께기를 빠는 기분으로 하면 돼요」
타이치「자, 입에 넣어요」
들이민다.
미사토「……읏」
틈새는 넓고, 방비는 허술했다.
침입해 간다.
미사토「응……으읍……응……」
귀두만을 넣은 채로, 핥게 한다.
안으로 도망치는 혀를 쫓아가고 싶은 충동에 휩싸인다.
하지만, 참는다.
미사토「읏, 으응……으으읍……짜……」
귀두의 반을 거의 뱉어내며 말한다.
타이치「바다에 들어갔던 탓일까요. 괜찮죠?」
타이치「계속하세요. 맛이 없어질 때까지, 잘 빨고 있어요」
미사토「……읍……으읍……낼름……응, 응, 으으응……」
아이스께끼란 단어가 영향을 미친 걸까.
느린 움직임이었지만, 혀의 움직임은 적절했다.
혀로 낼름 핥아간다.
큰 자극이 느껴져, 더욱 팽창한다.
미사토「후아, 그렇게 크게 하지 마세요……」
타이치「어쩔 수 없어요」
타이치「자, 계속하세요」
허리를 살짝 밀어넣는다.
입 안에서 뺨이 눌리자, 당황하는 선배.
미사토「응, 으으읍, 으읍……응……」
타이치「어떤 느낌이에요?」
미사토「앙……핫……크고……목이 막혀서……숨막, 혀요……」
타이치「그럼, 혀도 써보세요」
접속사의 기능을 무시하는 듯한 문장으로, 새로운 봉사를 강요한다.
미사토「이, 이렇게요? ……읏, 낼름, 낼름……」
타이치「좀 더 열정적으로 해야 돼요」
구체적인 방법을 설명하자, 선배는 귀까지 빨개지며 거기에 따랐다.
미사토「응, 읍……응, 낼름……츄웁……낼름……츕, 응, 으읍」
머리를 쓰다듬는다.
그리고 잔인한 질문.
타이치「빠는 기분은 어때요?」
미사토「으읍……응, 응, 으응……으흡, 이, 이거, 점점 뜨거워져서……머리가 어질해요」
사고력이 퇴화되고 있는지, 말에 망설임이 없다.
타이치「빨아들이듯이 해 주세요」
미사토「응, 으으응, 츕, 츄웁, 츄우우우우웁……」
볼을 움츠린다.
입 안의 점막이 음경에 닿는다.
그냥 빨아들일 뿐이 아니다.
빼기 직전까지 귀두를 밀어냈다.
그리고 살짝만 삼킨다.
선배는 바로 이해했다.
타이치「음……그런 느낌으로」
미사토「읏, 읍, 츕, 낼름……」
가끔씩 혀도 엉킨다.
타이치「네, 여러가지를 섞어 가면서……잘 하시네요」
미사토「흐아, 응, 으읍, 낼름……츄우우우웁―――아, 또 커졌어……굉장해, 늘어나고 있어……」
미사토「뺨이 터질 것 같아요……으읍……츕, 츕……하아하아」
타이치「그럼, 그 가슴을 써보는 건 어때요?」
미사토「가, 가슴으로?」
이해가 안 된 듯.
타이치「사이에 끼우고, 귀두만 빠는 거예요」
타이치「그 정도 사이즈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미사토「부, 부끄러워요……」
타이치「해봐요, 미미 선배」
강하게 말한다.
타이치「그 가슴은 누구 거죠?」
미사토「아, 아아……페케군 거예요……」
타이치「그럼 어떻게 쓰는지는 제 마음이에요」
미사토「쓰다니……읍……으읍, 아항, 응……으으으응……으으응……」
불필요한 말을 막기 위해, 입을 막는다.
타이치「자, 끼워 봐요」
미사토「아, 아아……뜨거워……이, 이렇게?」
타이치「좀 더 세게」
미사토「네……응……아, 귀두가……츕, 츕……」
타이치「침을 가득 묻혀서 미끈미끈하게 해 주세요」
미사토「네, 네에……응, 낼름……낼름……츕, 츕……으응, 응, 흐앙……」
미사토「낼름, 응, 으으으응, 응, 츄웁……후아, 하아하아……쓴 게……나오고 있어요……」
타이치「기분이 좋다는 증거예요」
미사토「……아아아……으읍……츄웁, 츕, 츕……츄웁, 낼름……츄우우우우우우웁!」
어쩐지 적극적이다.
벌을 받기 바라는 사람은, 원래 그런 건가?
관능으로 달궈져 달아오른 타액이.
가슴에 축축하게 맺혀서 흐른다.
미사토「싫어……내 침에……내 가슴이……축축하게……」
타이치「선배 가슴이 아니잖아요?」
미사토「페……페케군, 거예요……」
타이치「제 가슴을, 좀 더 축축히 적셔 주세요」
미사토「아, 아아아……으으읍~, 으흡, 응……으으응~…………」
더욱 더 열정적으로.
가슴 사이에, 관능의 열이 모인다.
타이치「땀이 나네요. 가슴 사이, 좋은 감촉이에요」
미사토「그런……좋은 감촉이라니……부끄러워……」
타이치「살랑거리고, 푹신푹신하고. 아주 좋아요」
미사토「응, 츄우웁……츄웁, 응, 앗, 하아하아, 으으읍……」
『좋아요』라고 말한 순간, 더 세게 달라붙어 왔다.
조금 아플 정도로.
타이치「음……남자는 귀두 쪽에서 제일 많이 느껴요」
미사토「……아, 그럼……낼름……으으으으으응~」
껍질을 혀 끝이 비집고 열었다.
귀두로 들어가는 혀.
미사토「……응, 여기에도, 제 침이 들어가겠네요……」
타이치「바로 나와버리겠지만요……」
미사토「응, 쭈웁……으응……으으으으응, 응, 앙, 흐응……」
미사토「하아아……가슴, 굉장해……녹을 것 같아요」
타이치「침하고 땀으로 축축하네요」
타이치「꼭 성기같아요」
잊고 있던 부끄러움이 다시 떠오른 듯, 선배의 목소리가 떨렸다.
미사토「읏……너무해……으응, 츕……」
미사토「으으응, 응~, 츕, 아흥……으읍……으으응, 으으으응」
하지만 바로 몰두.
타이치「선배 유두, 딱딱해졌어요」
그걸 잡아당긴다.
미사토「네, 네에……유두, 딱딱해졌어요……」
타이치「왜요?」
미사토「……그건……이게……」
타이치「빠이즈리라고 하는 거예요」
미사토「빠, 빠이즈리가……기분 좋아서……츕, 츄웁……앙……입 안에서, 튀어올라……굉장해……」
타이치「그것만으로 느끼는 거예요?」
미사토「그리고……페케군의……자○, 딱딱하고 뜨거워서……응……」
타이치「그럼, 제 것도 느끼게 해 주세요」
미사토「……아……가슴으로……?」
타이치「문지르면서, 세게 빨아 봐요」
미사토「……아……알았어요……응, 으으응……츕, 츕, 으으응……츄우우우웁……」
순순히.
타이치「네, 좀 있으면 나오니까 계속 빨아요」
미사토「앗, 응, 읍……앙……응……응, 흐으……으읍」
미사토「츕, 츄웁……낼름……응, 앗……으으으으으으응!」
미사토「후아, 앙……으으으응, 응―, 으으으응, 츕, 츄우웁……응~~~, 으으으으으응~~~~~~~~~~~~~!」
달했다.
나는 사정했다.
미사토「으으으으으읍!?」
육체적인 쾌락을 넘어, 선배의 입 안에 싸고 있다는 사실에 등골이 떨린다.
요도를 통과한 정액이, 덩어리가 되어 분출된다.
선배의 입에, 선배의 입에.
달콤한 목소리가 나오는 곳을.
내 정액으로, 더럽힌다.
미사토「……응……아흐……아……꿀꺽…………응……앗?」
사정 도중에 뺀다.
다른 곳도 더럽히고 싶다.
얼굴과 유방에, 뿜어나오는 우유 같은 정액을 뿌린다.
타이치「하아……」
적당히 더러워진, 예쁜 선배.
정액 냄새나는 선배.
……좋다.
타이치「정액, 입 안에 남아 있어요?」
미사토「읍……으읍……」
고개를 끄덕인다.
타이치「혀로 굴려가면서, 잘 음미해 봐요」
미사토「…………읍……읍……으으읍……」
타이치「삼켜요」
미사토「……꿀꺽……꿀꺽……」
다 마신 후, 큰 한숨을 쉬었다.
미사토「아……가슴에도……굉장한 양……」
타이치「네, 잔뜩 쌌으니까요」
유두에까지 흐르고 있다.
타이치「얼굴에 맞은 감상은?」
미사토「…………괴, 굉장한, 냄새예요……」
타이치「아, 좀 남았다」
미사토「엣?」
괄약근을 꾹 조이자, 마지막 한 방울이 튀어나왔다.
미사토「꺄앗?」
그것은 선배의 코 끝에 달라붙었다.
미사토「……앙, 내 얼굴이……질퍽질퍽하게……」
쭉 이렇게 남겨두고 싶은 기분.
촬영 준비를 게을리한 게 후회됐다.
타이치「……자, 얼굴 씻고……계속하죠」
미사토「아직……할 수 있어요……이거?」
미사토「그 때는……한 번만……」
타이치「처음이니까, 부드럽게 했던 거예요」
타이치「하지만, 오늘은 좀 더 무리할 거예요」
타이치「……그러길 바라잖아요?」
귓전에 속삭인다.
미사토「아……그런……」
수통의 물을 끼얹어, 정액을 닦는다.
타이치「일어나서 앉아 주세요」
선배는 느릿느릿 몸을 일으켰다.
안은 채로 삽입하는 순간, 두 사람의 호흡이 멈췄다.
쑤욱 들어간다.
동시에 숨을 내쉬었다.
이어진 순간, 뭐라 말하기 힘든 정복감에 몸이 떨렸다.
아는 사람과 섹스를 한다.
친한 친구나 동료와.
마약처럼 감미로운 체험.
내 주변에 있는 모든 상대와 이어지는 행위로, 난 막대한 양식을 얻는다.
타이치「들어갔네요」
귀를 빨면서,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미사토「……아……네, 네에……안까지……굉장하게……」
타이치「어떻게 굉장해요?」
미사토「배……배 안에서, 모양이……느껴지는 것 같아요……」
타이치「헤에, 성감이 훌륭하네요. 선배 몸, 굉장히 야한 것 같아요」
미사토「그런……!」
타이치「그렇게 잘 느낄 수 있어야 잘 발달하는 거예요. 섹스 능력이」
미사토「……그런 거 몰라요……」
타이치「금방 알게 될 거예요」
미사토「에……꺄악!?」
밀어올린다.
미사토「으으응, 응, 아……갑자, 기……」
생각처럼 움직이지는 않는다.
팔의 힘으로 강제로 흔든다.
미사토「아, 앗, 아응, 하아, 아……」
미사토「이, 이거……깊어……너무 깊어서……아파, 요……하앙, 하아」
타이치「그럼―, 오늘은 이렇게 계속 있죠」
귀에 혀를 넣는다.
미사토「하아앗……그, 그런……앗, 아아, 꺄악……아응, 아아……」
타이치「가슴 쿠션, 기분 좋네요」
찔러넣을 때마다, 유방이 내 가슴팍에 눌렸다.
미사토「아……아으, 앗, 응, 아아아, 응, 앗, 흐, 흔들지 마요!」
타이치「안 흔들면 기분이 안 좋아져요」
미사토「하아아……하아……아……아아, 꺅! 히잉……그, 그런……계속, 이러면……아, 파요……」
안까지 바싹 들어가서인지, 선배는 괴로워 보였다.
타이치「조금 느낌을 바꿔보죠」
선배의 엉덩이를 약간 비틀고, 한쪽 벽을 집중적으로 노린다.
미사토「으으으으으응! ……꺄, 꺄아, 꺄흣……배 안이……아파……」
타이치「하하……」
기분 좋다.
마찰의 감촉은 적고, 직접적인 자극은 없지만.
매달려 있는 선배의 중량감.
찰싹 달라붙는 상체. 유방.
그것이 합쳐져서 정복감을 지속시킨다.
미사토「응, 으으응, 앗, 으응, 으으……꺄아, 안돼……못, 참겠어요……응……제, 제발……좀만……」
타이치「네?」
미사토「화, 화장실에……가게 해 주세요……」
타이치「화장실? 오줌 마려워요?」
미사토「……네, 네에……안에 넣고 돌려지니까……갑자기」
방광을 자극한 걸까?
타이치「알았어요」
미사토「미, 미안해요……」
선배는 어깨에 손을 놓고, 몸을 일으키려 한다.
빼내려고.
도망치려고.
갑자기 마음이 변한다.
타이치「역시 안돼요」
미사토「에……꺄앗!」
손을 놓치고, 선배는 떨어졌다.
화려한 물소리.
미사토「히익, 이이……읏……아읏……으읏……」
지지대를 잃고, 내쪽으로 넘어졌다.
'어째서?'하는 표정으로 나를 본다.
방금 일격으로, 눈동자가 완전히 젖어버렸다.
타이치「역시 지금 그만두는 건 싫어서……」
타이치「여기서 싸세요」
순간, 선배는 이해하지 못했다.
바로 정지.
미사토「아, 아아아아아……아, 안돼요……그런 거……부탁이니까……가게……」
바둥바둥.
타이치「어차피 바다니까, 괜찮잖아요?」
안은 채로, 팔 안에서 날뛰는 감촉을 즐긴다.
미사토「이런 곳에선……안돼, 안돼요」
타이치「그럼, 절 뿌리칠 수 있다면 가도 돼요」
꼭 껴안는다.
미사토「그런……짓궂어요……뿌리칠 리가……」
타이치「그럼, 계속 갑니다?」
미사토「……아, 아아아……」
주저.
미사토「응……으응……하, 하아……빼요……가게 해 줘요……」
다시 날뛰기 시작한다. 하지만 힘은 약하다.
진심으로 뿌리칠 생각은 없지만, 어떻게든 설득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물론 내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
타이치「……그럼 5초만」
팔의 힘을 뺀다.
선배가 느릿느릿 움직인다.
엉덩이를 잡고 허리로 당긴다.
결합이 깊어졌다.
미사토「으으으으으으응!」
타이치「자, 다녀오세요」
다시 힘을 뺀다.
미사토「……」
움직이기 시작하자, 유두를 잡고 비튼다.
그런 일을 몇 번이나 반복한다.
클리토리스를 꼬집고, 야누스를 찌르고, 옆구리를 간지럽히고.
방해를 한다.
미사토「……하앙, 아, 아아아……앙……또, 또! 으응」
최후의 힘을 쥐어짜내 일어나려는 순간 W유두 비틀기로 격추시키자, 선배는 축 늘어진 채로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다.
허리를 돌려, 쾌락을 준다.
미사토「아……아아아……안돼, 빙글빙글 돌리지 마요……오줌, 나올 것 같아요!」
그만두지 않는다.
몰아붙인다.
타이치「이런 야한 몸을 가진 사람이, 오줌을 지릴 리가 없어요」
그렇게 말하자, 선배는 흐느껴 울었다.
울면서, 턱을 들어올려 신음했다.
미사토「흐아아아아아앙, 아앙, 앙……안도, 안……으응……으응」
몸을 비틀어, 빼내려고 한다.
허리를 잡고 당긴다. 밀착.
미사토「하, 하아아아―――으으읏, 응……으응……싫어……정말로……이젠……」
몸을 떨었다.
미사토「……사, 살려줘요……가게 해 줘요……지리는 건 싫어요……」
타이치「괜찮아요」
뭐가 괜찮은 건지, 나도 잘 모르겠다.
그저 열심히 몸을 흔들 뿐이다.
선배는 나뭇잎처럼 흩날렸다.
미사토「그런……안돼요……안, 돼요, 읏……으으응, 아으응……」
미사토「으읏, 으앙, 으응……읏, 시, 싫어……뜨거워……흔들려……이대로……흔들려서, 나와버려요!?」
타이치「~♪」
미사토「으으응……으응, 미안해요, 그만 용서해 줘요, 정말로 안돼요……싫어, 아아앗!」
반응이 변한다.
사지가 흔들리며, 이상한 경련이 나타났다.
미사토「아, 앙, 아아앙, 으응, 으응……아앗, 움직이지 마요……흔들려요……앗, 앗……아앗, 아아……아아아아아아앗……」
비명과도 닮고 애원과도 닮은.
신음소리가 쉴새없이 새어나온다.
미사토「조, 좋아요……이거, 좋아요! 아……아앗……앗……히익!」
타이치「선배」
미야스미 미사토라는 매듭이 풀린다.
그 붕괴하는 모습이, 나를 몰아붙였다.
미사토「히익, 아으……아핫, 꺄아……흐응, 히익, 앗, 꺄아, 앗, 아응!」
소폭의 움직임.
그리고 깊은 밀어넣기.
미사토「읏……」
완급을 조절하면, 자유자재로 비명을 지르게 할 수 있다.
엉덩이 구멍에, 손가락을 넣었다.
미사토「으읏, 아……아아……응~~~~~~~~~~~~~~~!?」
비스듬하게 쥐어짜는 감각으로, 질이 비틀렸다.
수축했다.
동시에,
미사토「하,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싫어어어어어어어어어……」
선배는 실금했다.
오줌을 지리며, 가볍게 느끼고 있었다.
타이치「하하, 하반신이 뜨겁네요. 축축한 게」
미사토「싫어어……싫어……」
타이치「울지 마요, 선배」
눈물을 핥는다.
짭짤하다.
타이치「이대로 계속해줄 테니까요」
미사토「……흐아……에?」
방심한 표정이 귀엽다.
천천히, 허리의 율동을 재개했다.
미사토「앗˝……으읏……안, 돼요……」
미사토「으아앗, 핫, 하앙……안돼, 안돼안돼……안돼, 안돼애애!」
타이치「그럼 천천히 움직일게요」
타이치「자, 천천―히」
미사토「으으으……으읏……」
내 등을 잡아당긴다.
신경쓰지 않는다.
미사토「핫, 핫, 하앗……응……아아……앙, 응……아아아아……」
천천히 움직이자, 거의 녹아들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미사토「으으, 응, 앙, 아앙……안돼요……히이이……이런, 이런……」
타이치「뭐하고 있는지 알겠어요?」
미사토「아아, 하앗……배 안이, 남김없이, 꽉 차, 있어요」
타이치「네네」
타이치「그리고, 선배 약점도 찾아냈어요」
잘 발달한 그곳을, 귀두로 쿡쿡 찔러준다.
미사토「……꺄아아앗!!」
호흡이 멈췄다.
같은 곳을 계속 찔렀다.
미사토「으읏……으흣……꺄, 응, 읏~~~~~~~~~!」
선배는 쉽게 절정에 달했다.
타이치「아하하, 귀여워」
타이치「계속 갑니다」
미사토「으읏……아응……읏……으으응……으응……미, 미안해요!」
사과했다.
뭐에 대한 사과인지는 수수께끼.
타이치「용서 못 해요」
같은 곳을 계속 괴롭힌다.
미사토「미안해요, 미안해요미안해요미안해요……아읏……미안해요……읏˝!!」
허리에 묶은 다리를, 바둥바둥 흔든다.
타이치「안돼요―. 자―, 세게 찌릅니다―. 원 투 원 투」
미사토「……으으으으으으으응!! 안돼―! 용서, 해, 줘, 요오오오……」
이어지는 절정.
……에 달하기 직전에, 찌르기를 그만둔다.
사랑에는 초조함도 필요.
미사토「아? ……하아……하앗……으응……」
매달린 채로, 거친 숨결.
목덜미나 얼굴에 키스를 해도, 반응이 없다.
타이치「어때요?」
미사토「앙, 응, 응, 으응……아아아……이제, 아무것도 모르겠어요……」
타이치「선배……」
타이치「더 느껴도 괜찮아요」
다시 약점을 공략한다.
미사토「으아아앙~, 그런……저……굉장한 일을, 당하, 고……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응!?」
내 쪽도 슬슬 끝이 다가왔다.
허리에 후끈한 열이 모이고 있었다.
미사토「으응, 앗, 꺄, 꺄앗! ……흐아아앙, 앗, 아으응, 앙, 아아앙……하아앙!!」
미사토「아앙, 이거 굉장해, 굉장해, 꺄, 앗, 굉장해……조, 좋아요~~~~~~!!」
미사토「으응, 앙, 안돼안돼, 안돼요, 안돼…………」
불규칙한 호흡.
몸의 반응도, 사지가 각각 따로 움직이고 있다.
미사토「……아…………싫어……」
미사토「응……아……싫어, 안돼……뭔가……오는……」
타이치「간다고 말해요」
귀에 입술을 대고, 그렇게 명령했다.
미사토「가, 가요, 가요, 가……가요……가……꺄악……꺄아아!」
내부를 마음껏 공략한다.
약한 부분만을.
미사토「싫어, 안돼애애! 앗, 가, 가요―――――――――――――――――!!!!」
팔 안에서 날뛰는 살갗.
꼭 껴안아, 피부를 맛본다.
조금 늦게, 나도 절정에 달했다.
선배의 신음소리가 사라질 때에도, 정액은 계속 분출되고 있었다.
…………………….
미사토「……이걸로……용서받는 건가요?」
블라우스의 단추를 잠그며, 선배는 말했다.
몹시 우울해 있었다.
원인은……내가 괴롭혀서, 는 아니겠지.
그녀는 알고 있을 것이다.
아무리 벌을 받아도, 죄는 풀리지 않는다는 것을.
아니, 애초에―――
미사토「전……이걸로……용서받는 건가요……?」
타이치「죄는 결코 용서받지 못해요」
바다를 바라보며, 모래를 발로 찬다.
반짝이는 모래가 발 밑에서 춤을 췄다.
미사토「그럼……어쩔 수, 없네요……」
짧지 않은 침묵 후에 나온, 어두운 목소리.
타이치「……」
내가 좀 더 제대로 된 인간이었다면, 격려해줄 수도 있었다.
그녀의 고민에 대해, 근거없는 논리를 주장하며.
하지만 난 그럴 수 없다.
어쩔 수 없다.
이 길만이 진실이라고, 확신하고 있기 때문에.
침묵이 그 의도를 전해주었다.
미사토「……흐윽……흐으으으윽……」
위로해줄 방법은 없었다.
좀 심한 것 같긴 했다.
선배를 괴롭혀버렸다.
해피 엔드로 가기 위해.
아름다운 트라우마 카운셀링을 할 생각이었는데.
타이치「……어렵네」
얼굴을 가린다.
실수했단 것을 깨달았다.

미사토「친한 사이끼린 별명이 있죠」
타이치「네에……」
미사토「서로의 닉네임을 정해보죠」
마치 애완동물 이름을 짓는 듯한 뉘앙스.
내가 애완동물처럼 마음에 든 건 틀림없다.
어쨌든.
그녀의 웃는 얼굴 아래에, 친밀이 있는지 없는지는 알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아직 경계를 하고 있었다.
타이치「그럼……선배」
고민한 결과, 제안한 것은 그런 호칭이었다.
미사토「그냥 선배로는 구별이 잘 안되잖아요?」
타이치「……합리적이잖아요. 미야스미 선배라 부르면 되는 거 아닌가요?」
미사토「으―음, 쿠로스 타이치……니까」
안 듣고 있었다.
미사토「타이치군, 은 좀 시시하죠」
타이치「시시하다뇨, 당신……사람 이름을……」
은근히 신랄한데.
미사토「……쿠로스……크로스……십자……십자군!」
타이치「……취소해주세요 부탁합니다」
고개를 숙였다.
미사토「에―!」
타이치「그런 중세 기사 같은 호칭은 사절이에요」
미사토「그럼……십자……페케……」
미사토「……페케군?」
타이치「그건 또 멍청해 보이는데요」
미사토「아, 그래도 좋은 느낌. 전 마음에 들어요」
페케라고?
기존 상식에『X』가 쳐져 있는 것이었다.
타이치「생각해 보니……페케란 건 쓸모없다는 의미잖아요」
미사토「X라는 의미도 있기도 해요」
미사토「페케라는 기호는, 서로 교차하고 있는 거예요」
타이치「……서로 받쳐주지도 못하고 있죠」
싸늘했다.
타이치「어긋난다는 의미로밖에 안 받아들여지는데요……」
미사토「세상에서 어긋난 우리들도, 언젠가 누군가와 교차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바람이 담겨 있어요」
타이치「……위선이에요」
그리고 억지다.
미사토「자, 전 정했어요. 이제 그쪽 차례」
정해져버렸다.
타이치「하아」
이렇게 되면, 얌전히 따를 수밖에 없다.
그녀와 만난 지 오래되진 않았지만, 파악은 대부분 되어 있다.
타이치「그럼……암컷노예」
미사토「이 법치국가 일본에 노예 같은 건 없어요」
타이치「애노예」
미사토「뭐가 다른 거예요!」
타이치「암퇘지 선배?」
미사토「……그 암퇘지의 후배가 되는 건데요, 괜찮아요?」
타이치「가슴 누나」
미사토「그, 그런 눈으로 내 가슴을……」
타이치「방유예노」
미사토「거꾸로 말하는 이유를 모르겠어요……」
미사토「가슴에서 떨어지지 않을래요?」
주문이 많다.
타이치「……에로 안경 누나」
미사토「거부」
타이치「전부 거부당하고 있잖아요!」
외친다.
쿨한 내 이미지만으론 대응할 수가 없다.
미사토「당신이 이상한 것만 잔뜩 제안하잖아요!」
타이치「그럼 안경녀!」
미사토「보이는 대로네요. 좀 더 고민해 보지 않을래요?」
사람을 십자군이라고 부른 여자의 말치고는 너무 깐깐했다.
타이치「……미미」
미사토「그건?」
타이치「미야스미 미사토에서, 미미」
미사토「아아, 좋은 느낌」
활짝 웃는다.
머리가 나빠 보일 정도로 느슨한 웃음.
하지만.
……묘하게 낯간지럽다.
타이치「세 개 있네. 미미미, 인가」
타이치「쓸 땐 美美美라고 쓸까요?」
미사토「바보 히로인 같은 느낌이……」
나 같은 위험인물한테 말을 건 바보면서.
너무 바보같아서……그만, 다정하게 해주고 싶어진다.
타이치「……미미 선배」
미사토「아, 그거그거, 그게 좋아요」
타이치「그런가요」
미사토「그럼 이걸로 두 사람은 선배와 후배예요」
새끼손가락을 내민다.
좀 아닌 것 같았지만, 그래도 응해줬다. 손가락 걸기.
타이치「그런데 어차피 친근한 이름을 붙여서 혹사시키는 거잖아요.노예제도하고 뭐가 다른 거예요」
미사토「사랑이 있는 강제노동이에요」
미사토「아, 물론 우정 쪽이지만요」
타이치「아무렴 어때요」
어깨를 으쓱였다.

저녁.
일단 헤어졌던 선배가, 그곳에 있었다.
요코는 없다.
미미 선배가 돌아오자, 교대하듯이 떠났을 것이다.
타이치「……」
미사토「……」
시선이 교차한다.
그것은 이어지지 않는다.
아주 잠시, 같은 궤도를 탔을 뿐이다.
나는 우뚝 멈춰서 있고, 선배는 느릿느릿 움직이고 있다.
말없이, 두 사람은 있었다.
아직 선배를 안테나에서 떼어낼 수 있을 것 같진 않다.
마음에 발을 들이밀어야 하는데.
……나 스스로가 그러는 것이……두렵다.

토요일이다.
……앞으로 하루.
앞으로 하루다.
일찍 왔다.
가만히 보자, 작업은 거의 끝나 있었다.
요코를 투입한 것이 컸다.
남은 건 기다리는 것뿐.
토요일.
녀석은 높은 확율로 찾아온다.
하지만.
타이치「……안 오네」
아무리 기다려도, 문이 열릴 기색은 없다.
이윽고 낮이 지나, 선배가 찾아왔다.
미사토「아……페케, 군……」
타이치「미미 선배……」
미사토「……저기, 실은……」
타이치「네, 네에?」
미사토「아……아뇨……아무것도, 아니에요」
타이치「아, 잠깐」
뻗은 손. 힘없이 아래로 내려갔다.
가버렸다.
뭐, 작업은 거의 완성됐으니 상관없지만.
타이치「……실패한 걸까」
궁지.
차라리 억지로 사당에 데려가면―――
타이치「안돼」
그래선, 서로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나만 만족해서는 안되고, 선배만 만족하는 전개도 안된다.
자만일지도 모르지만
교환해야만 한다.
서로 접한 마음의 감촉을 이용해.
그렇게 된다 해도, 어떻게 잘 마무리짓지.
모르겠다.

쭉 기다렸다.
선배도 토모키도 나타나지 않는다.
타이치「……」
쓸데없이 시간이 지나간다.
생각한다.
토모키가 그 때 오지 않았다는 것은, 도울 생각이 없었다는 뜻이다.
즉―――
이상한 소리가 났다.
뚝뚝 끊어지는.
……불안한 소리.
파괴의 소리.
타이치「!?」
자리를 박찬다.
컨테이너를 나온다.
토모키가 있었다.
토모키「……」
커다란 공업용 펜치를 들고 있다.
자전거 체인도 절단할 수 있는 물건이다.
안테나가 부서져 있었다.
타이치「…………」
특히 배선과 기기가.
철저했다.
분노에 휩싸야 되는 대로 부순 게 아니다.
합리적인 사고와 도구에 의해, 기능이 완전히 죽었다.
냉정한 파괴.
타이치「……」
내 존재에는 신경쓰지 않는다.
모형을 조립하는 듯한 열중이, 주변에 대한 경계를 둔하게 하고 있었다.
말없이 다가가, 때렸다.
토모키「……윽!?」
눈동자가 나를 확인하자, 동시에 놀람은 사라진다.
병적인 토모키를 본다.
타이치「…………」
말없이 서로를 때린다.
냉정한 싸움……이라기보단 격투.
5분 후.
이긴 것은 나였다.
근육에 폭탄을 가진 토모키에게, 애초에 승산은 없었다.
토모키「하아, 하아, 하아……」
체념한 듯 무저항이 된 토모키의 위에 올라타, 말을 건다.
타이치「유사, 기억 나냐?」
토모키「……어?」
타이치「이 동네 살던 유사 말야. 날 잘 따랐지. 바다에도 갔었잖아?」
토모키「아아……걔 말야……」
타이치「난 그 애를 대할 때, 항상 가면을 썼어」
토모키「?」
타이치「좋은 면만을 보여주고, 연기하고, 넉살좋게 대했지」
타이치「결국, 유사는 날 따르게 됐어. 나도 유사를 정말 좋아했고」
토모키「……그게……왜?」
타이치「이건 배신이 아닌 거냐?」
토모키「……!?」
진정한 자신을 알면서도, 숨기려 하는 행위.
속이려 하는 행위.
솔직한 자신을 보이려고 하는 일반적인 선행과 상반되는.
그래서 불건전한 일.
타이치「결국, 들켰어」
타이치「나, 그 애한테 미움받아 버렸어」
쓰라린 단절과 함께, 내 실험은 끝났다.
타이치「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속이고 있었으니까」
타이치「……너도 배신을 증오하는 거냐?」
타이치「배신을 용서 못하는 거야?」
토모키「……하지만, 누님은……」
중얼거리듯 말한다.
말은 이어지지 않는다.
차분하지 못한 모습으로, 나를 빤히 보고 있다.
타이치「난 유사를 배신했어. 그리고 단절됐지」
타이치「하지만 그 애가 날 싫어한 이유는, 내가 추악함을 숨기고 있어서가 아냐」
타이치「그 추악함 자체가, 그녀의 생리에 거부됐기 때문이야」
타이치「네가 용서하지 못하는 건, 정말로 배신이야?」
토모키「……」
타이치「너희들이 하고 있는 일, 두 사람 다 그게 그거로 보여」
타이치「부활동을 억지로 만들어서, 거기에 몰두하고」
타이치「사람이 사라졌단 말야?」
타이치「마음의 세계가, 사라졌단 말야?」
희박해졌다.
타이치「그게 무슨 일인지……넌 모르는 거야?」
타이치「인간은 올바르기만 한 존재가 아냐」
타이치「인정하는가, 인정하지 않는가. 그뿐이야」
타이치「인정하고 싶으면, 그런 마음에 이유를 대지 마」
타이치「그러면, 솔직한 마음에 거짓말을 안 해도 되니까……」
토모키「……나도, 그렇게 말하고 싶었어……」
타이치「어?」
토모키「인간은 올바르기만 한 존재가 아니라고, 누님한테!」
타이치「……무슨 일이 있었는지 난 몰라」
토모키「누님은 가족을 팔았어!」
토모키「아버지를 경찰에!」
타이치「……경찰?」
토모키「누님은, 이혼하고 아버지 쪽에 갔어」
토모키「난 어머니한테」
토모키「그렇게 하라고, 아버지도 말씀하셨으니까」
토모키「……아버지는 많이 힘들어하셨어!」
토모키「어머니 위자료하고, 학비하고……」
토모키「어쩔 수 없었어!」
감이 왔다.
타이치「……그래서 범죄를? 금전을 목적으로?」
토모키「금전이 아냐! 그저 살기 위해……필요한……」
토모키「하지만, 누님은 그걸 용서하지 않았어」
토모키「누님이 신고했어!」
선배가.
규칙.
룰.
사람들이 서로 지키는 것.
토모키「……가족들까지 팔아치운 거야……누님은……」
토모키「그 사람은 말야……자기 가치관을 남한테 강요하고 싶어해……」
토모키「그게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바로 이상해져」
토모키「일부러 상처를 내거나……한 일에 매달리거나……」
타이치「상처라니, 자해 증상?」
토모키「그건 누님의 공격이야!」
토모키「자기를 공격하는 걸로, 다른 사람을 공격하는 거야!」
토모키「이 부활동도 그래. 그렇게 혼자서만 틀어박혀서, 싫은 소리만 잔뜩 늘어놓으면서 몰두하고……그건 우리들에 대한 공격이야」
들어맞는다.
부활동=공격.
아아, 그런 거였나
토모키「바로……이상해진다고……상처를 낸다고」
토모키「일부러 상처를 내」
토모키의 두 눈에는 어두운 불길.
적의로 가득찬 불꽃.
토모키는 웃고 있다.
사람을 증오하는 것은, 기분 좋다.
토모키「상처가 나기 쉬운 행동을 해」
토모키「……내가, 왜 농구를 못 하게 된 것 같아?」
타이치「왠데?」
토모키「누님을 감싼 거야. 이건 그 후유증이고」
분한 듯 내뱉었다.
토모키「……누님의 가치관은……규칙이야, 알고 있지?」
토모키「그 사람은……사람한테 자기를 인정받고 싶은 것뿐이야……자기가 기분 좋아지고 싶을 뿐이야……」
타이치「진짜로 싫은 거냐?」
토모키「……무지 싫어」
미사토「토모키……」
내 뒤에, 선배는 서 있었다.
토모키도 눈치챘다.
말은 멈추지 않는다.
전부 털어놓을 작정이다.
토모키「……아무리 친해져도 소용없어, 타이치」
토모키「뭔가가 어긋나서, 누님의 룰에서 벗어나면 끝이야」
토모키「……누님한테는, 인연 같은 건 필요없어」
미사토「토모키……나……」
토모키「사람들이 사라지고, 이제 지켜야 할 룰 같은 건 어디에도 없으니까」
토모키「그러니까……이제 누님은, 이대로 파멸할 수밖에 없는 거야」
세계는 마음의 결합.
룰은 그 잔해.
미사토「……있잖아……토모키……난……」
울먹이는 소리가 나를 지나쳐간다. 토모키를 향해.
토모키「시끄러!」
토모키는 나를 향해 외친다.
난 편리한 벽이었다.
토모키「누나는 배신자야!」
토모키「아버지가 널 감쌌잖아?」
토모키「어머니가 널 버리려 했던 걸 감싸주셨잖아!」
토모키「그 아버지를 배신하고……뭐? 웃기지도 않아……알 수가 없어……」
울고 있다.
봐라.
넌 마음 속으로 누님을 좋아하잖냐.
하지만 그 우는 얼굴은 선배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토모키「아버지, 이제부터 오랫동안 감방에서 지내셔야 돼……」
토모키「그렇게……자기가 소중하다면……」
토모키「혼자서 살면 되잖아」
타이치「……」
마지막 말에, 감명을 받았다.
그래.
마음은 에고야.
에고는, 마음의 경계선을 메꾸는 힘이야.
세상을 차곡히 메우는 무수한 조각. 그 하나하나가, 전부 마음이야.
같은 크기가 아니면 안 된다.
같은 모양이 아니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외부로부터 압력을 한몸에 받게 된다.
대부분은 견디지 못한다.
참고 견딘다면.
그 녀석은 일그러지고 주위를 상처입히고 파괴하고 먹어치우는 괴물이 된다.
곁에 있는 누군가의 마음을 갉아먹으며.
미사토「아……토모키……그러니까……」
온화하게 웃으려 하는 선배.
미사토「나……」
웃음.
미사토「아……」
억지로 참았지만, 결국 입가가 일그러진다.
내가 의식을 되찾는 것과 선배가 지면을 박차는 소리는, 거의 동시였다.
도망쳤다.
일어난다.
토모키에게 손을 뻗었다.
타이치「그러니까 선배는 아버지를 경찰에 팔았단 거지?」
토모키「응, 그래」
토모키「두 번이나 붕괴시켰어」
담담한 어조.
무관심한 척을 하면서, 비난하는 태도.
토모키「첫 번째는……내 상처야. 이거 때문에……어머니는 이상해지셨어」
동성이라서 더욱, 자기 멋대로만 하는 딸로 보인 걸까.
토모키「아버지는 마지막까지 감싸셨어」
토모키「그래서, 우리들은 두 개로 갈라졌어」
몇 초의 공백이 지나고.
토모키「그러는 게 더 좋았어. 어머니는 노이로제에 걸려 계셨으니까……」
떨어지는 게 좋았다.
토모키「그런데……그 사람은, 아버지까지……」
타이치「아아……그렇군」
토모키「타이치?」
타이치「선배의 기분, 잘 알겠어」
토모키「……어?」
타이치「넌 꽤나 건전하니까……잘 모르겠지만 말야」
타이치「의지와는 관계없어」
타이치「우리들은 자동적이야」
토모키「자동적……이라니……그렇게 말해도 말야……」
타이치「그런 증상이 오면, 일정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어」
타이치「정해져 있는 거야」
타이치「아무리 사랑해도, 인연이 있어도 상관없어」
타이치「뇌의 한가운데가 그렇게 하게 해」
타이치「이성으론 제어할 수 없어」
타이치「그래서……정말로 좋아하는 걸, 부숴버리는……거야」
오히려 흥미가 동할 정도로.
칼을 쥔 손으로, 만지고 싶어진다.
타이치「그리고 그런 자신을, 우리들은 대체로 증오하고 있어」
토모키는 말이 없었다. 1분 정도.
토모키「…………타이치……도?」
타이치「너, 내가 누군 줄 아는 거냐?」
타이치「편차치 80을 오버한 남자라고?」
살짝 웃는다.
토모키「그치만 타이치는 괜찮잖아……잘 해나가고 있잖아……?」
타이치「연기」
타이치「전부, 연기」
타이치「나, 유사를 정말로 좋아했어」
타이치「하지만……난, 그런 그 애를, 쭉 괴롭힘만 당해왔던 그 애를……그 사실을 알고서……덮친 적이 있어」
토모키「!」
타이치「이성으로는 알고 있어. 안 되는 일이라고. 하지만, 참을 수 없어」
타이치「정말로, 제어할 수가 없어」
타이치「잊지 마, 토모키」
타이치「군죠에 있는 사람은 다들, 상처를 입으면서 누군가를 상처입히고 있어」
토모키「……………………」
두 사람의 사이로, 바람이 지나갔다.
황야를 가로지르는 건조한 공기.
살을 떨리게 한다.
토모키는 얼어 있는 것 같았다.
타이치「네가 선배를 정말로 미워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타이치「너희 아버지도, 아마 미미 선배를 용서하실 거야」
토모키「……!」
타이치「서로 존중하는 게 기본이지만……그게 안되니까 어쩔 수 없잖아?」
타이치「인간관계하고 이해관계를 같이 따지니까 안되는 거야」
타이치「그냥 좋아하면 돼. 아니냐?」
타이치「……일방통행이라도 괜찮아. 너희 아버지가 그러셨던 것처럼」
토모키「난……」
타이치「천천히 생각해라」
타이치「답은 네 마음 속에밖에 없으니까」
타이치「답이 나오면……내일 아침, 산에 있는 사당까지 와」
토모키「사당……?」
타이치「낮이야. 나하고 선배가, 거기에 있을 거야」
타이치「맞다, 그리고 나 선배하고 섹스했다」
토모키는 멍해 있었다.
토모키「……」
그대로 1분을 기다렸지만, 때릴 것 같은 분위기는 없었다.
떨리는 입술로, 무언가를 중얼거린다.
『그런가』라는 것 같다.
거의 들리지 않았다.
타이치「……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내일 낮에, 사당에 와라」
대답은 없다.
복잡한 표정의 토모키를 두고, 선배를 쫓아갔다.

옥상 이외에는 어디로 가지?
이 패턴은 처음이다.
……설득해야 한다.
설령, 내 상처를 보이게 된다 해도―――
선배의 집은, 닫혀 있었다.
타이치「……여보세요―」
문은 잠겨 있다.
딸 수는 있다. 하지만.
감각을 집중시킨다.
조개껍질처럼 텅 빈 집안, 선배의 작은 기척이 느껴질 것 같았다.
하복부에 모이는 열을 의식한다.
여차하면 제어불능이 되어버린다.
헤맨다.
생각한다.
결국, 돌아가기로 했다.
밤은 안식의 시간이다.
상처입은 몸을, 어둠에 잠겨 치유하는 것이다.
타이치「조용하네……」
창문을 바라보며 밖에 말을 건다.
혹시 선배 공략에 실패한다면.
……또 재시도.
서로 접할 기회는 늘어난다.
나는 아직도, 그런 약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뺨을 때린다.
타이치「제대로 하자」
신속하게.
치명적인 추억을 만들어버리기 전에.
침대에 들어가, 천천히 기분을 가라앉힌다.
격투로 인해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용량이 적은 이성을, 냉각시키기 위해.

타이치「좋아」
하룻밤이 지나자, 나는 평정을 되찾았다.
타이치「가볼까」
일단 보러 온다.
……안 온 것 같다.
집에 계속 있는 걸까.
선배의 집 앞.
잡초가 무성한 정원.
일주일만에 이렇게 되지는 않는다.
아버지가 부재가 된 후, 선배는 전혀 관리하지 않았을 것이다.
왜지?
괴로웠으니까.
뒷문으로 간다.
여기도 잠겨 있었지만, 낡은 디스크 실린더 타입이었다.
열쇠구멍에 기구를 끼워넣고 내부의 텀블러를 움직인다.
잠시 후 철컥 소리가 났다.
타이치「실례하겠습니다―」
놀래킬 목적은 없기 때문에, 내가 침입한 것을 크게 알려준다.
신발을 벗고, 실내로.
1층에 선배 방은 없다.
2층.
방은 두 개뿐이다.
한쪽은 빈 방.
빈 책장과 침대밖에 없다.
그렇다는 건.
타이치「……와버렸어요」
말을 걸었다.
장소는 바뀌었지만, 하는 일은 변함없다.
내가 선배에게 달라붙는다.
하고 싶은 것은 그것뿐.
미사토「……무슨 일이에요」
대답이 있다.
타이치「얘기하고 싶어서요」
미사토「가 주세요」
타이치「어라어라」
미사토「……쿠로스군」
성씨.
타이치「네?」
미사토「부활동은 이제 끝이에요」
미사토「좋을 대로 살아주세요」
담담히 말한다.
타이치「……전, 좋을 대로 살고있어요」
타이치「어느 정도로는 말이죠」
타이치「선배하고 얘기하는 게 좋아요」
타이치「그러니까 잠깐 정도는, 괜찮겠죠?」
미사토「…………」
타이치「선배하고 아버지에 대해 들었어요」
타이치「뭐랄까……뭐 일반적으론, 처절한 기분이 들 것 같아요」
타이치「토모키도 그러는 것 같고」
타이치「틀렸다면 미안해요」
타이치「……하지만 선배는, 아버지를 무지하게 좋아하잖아요?」
숨을 멈추는 기척.
미사토「……왜……그렇게 생각하나요」
그리고 대답.
대화가 성립하기 시작한다.
타이치「선배가 규칙적인 사람이니까요」
타이치「특히 친밀한 사람에게, 신경쓰이는 상대에게, 규범을 요구하니까요」
타이치「저한테 말을 건 것도 그래서잖아요?」
미사토「……」
타이치「그 상대가, 룰을 벗어나려고 한다면……」
타이치「고발하겠죠. 우리들이라면」
미사토「…………」
타이치「좋아해서 괴롭히고 싶은 심리와 비슷하달까」
타이치「인간은, 본질적으로 신경을 쓰거나 쓰지 않거나 둘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타이치「남은 건 전부 부수적인 이유에 지나지 않고요」
미사토「……그런 거 몰라요」
타이치「좋아한다는 거하고, 관여하고 싶다는 건 다른 건가요?」
타이치「흥미가 없다면, 접촉하지 않았을 텐데요」
타이치「보통은, 좋아하게 되면 적당한 거리를 두고 사귀죠」
타이치「하지만, 우리들은 조금 망가졌으니까요」
타이치「……그러고 싶지 않다고 생각해도, 부수거나 상처입혀버려요」
타이치「그건 좋다는 마음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타이치「오히려, 좋아하니까……자기를 봐주길 바래서 하는 거예요」
타이치「선배는 상처입기를 원했어요, 아버지한테」
타이치「그래서 상처입을 만한 일을 했죠」
타이치「그것이 바로, 선배와 아버지의 교신이었어요」
타이치「어때요, 이 추리?」
미사토「……완전히 틀렸어요」
미사토「탐정은 폐업하는 게 낫겠네요」
타이치「거짓말」
타이치「왜 휴대폰을 가지고 다녀요?」
미사토「……버릇이에요」
타이치「연락을 기다리고 있잖아요?」
타이치「아버지의」
미사토「……네」
타이치「만약 연락이 오면, 무슨 말을 할래요?」
타이치「……횡령은 안 좋은 일이라고?」
미사토「아니에요!」
알고 있다.
미사토「전……전 그저……!」
타이치「그저?」
미사토「사과하고 싶어요……사과하고 싶을 뿐이에요……」
타이치「죄송하다고요?」
미사토「죄송하다고……」
타이치「범죄는 올바르지 못한 일이죠. 선배는 올바른 일을 했어요. 그런데 사과하고 싶어요?」
미사토「……그치만……그치만, 그치만……!」
미사토「몰랐으면 좋았을 걸……눈치채지 못했으면……그랬으면, 더 행복해질 수 있었는데……!」
미사토「네, 좋아했어요! 저를 감싸주신 아버지도, 어머니도, 토모키도……다들……!」
미사토「……하지만, 이제 사과할 수도 없어요……」
미사토「엉클어진 채로……사라져버려서……!」
미사토「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어요.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어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으니까요」
미사토「하지만 이제……한계예요」
미사토「죽고 싶어요……지금, 무척……저를 부수고 싶어요……하지만」
미사토「죽는 건, 무서워요……」
미사토「혼자서 죽고 싶지 않아요……」
미사토「그래서……어쩐지……」
미사토「기분 나빠요……살아있는 게……미칠 것 같아요」
타이치「……제가 편하게 해드릴까요?」
미사토「네……?」
타이치「제가 선배를 편하게 해드릴게요」
미사토「……무슨, 말이에요……?」
타이치「선배의 규칙에 해당하는 게, 저한테도 있어요」
타이치「어렴풋이 눈치채지 않았으려나요, 당신은」
미사토「……페케군은……사람을……」
타이치「네」
고양이가 장난치는 듯한, 순진한 충동으로.
미사토「……절, 당신이……?」
타이치「다정하게요」
문을 사이에 둔 당황.
체온조차 전해지지 않는데, 그것이 느껴진다.
미사토「……정말로?」
타이치「네」
미사토「……만약 그게 정말이라면……」
미사토「저……이제……」
미사토「이제, 말이죠……」
조용히, 문이 열린다.

도중에, 두 사람은 말이 없었다.
대화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타이치「여기예요」
미사토「네……」
가끔씩, 그렇게 말을 걸어 확인한다.
선배는 조용히 따라왔다.
시계를 본다.
마침 딱 좋은 시간.
도착.
교차점은 여전히 그곳에 존재하고 있었다.
자욱한 안개와 비슷하다.
타이치「그러고 보니―――」
상관없는 이야기를 한다.
갑자기 시작된 잡담.
선배는 조금 놀라며, 적당히 대답을 했다.
주홍빛의 도래를 기다리는 시간.
빠듯해질 때까지, 모든 시간을 공허한 대화에 소비한다.
타이치「읏샤……슬슬 시작해 볼까요」
타이치「여기예요―」
부드러운 손을 잡고, 이끈다.
손이 차갑다.
두려운 걸까?
적당한 곳에 세운다.
타이치「여기에 서 주세요」
미사토「저기……」
타이치「네?」
미사토「이런 말을 하면……안되는 건지도 모르겠지만요」
미사토「무서워요……」
타이치「그렇겠죠」
그것뿐, 선배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이상한 상황에 혼란해 있다.
타이치「마음을 굳게 가지고, 사람들의 세상에서 살아가세요」
미사토「……사람들의?」
미사토「사람 같은 건……이미……」
타이치「쉿」
입을 막았다.
여기로 누군가가 오고 있다.
풀을 헤치고, 땅을 다리로 박차며.
……뛰어서.
그 녀석은 뛰면 안 될 텐데, 뛰고 있었다.
느긋하게 얘기할 틈은 없겠네.
마지막으로 선배를 빤히 바라본다.
기억에 새겨넣기 위해서.
세계가 분해되기 시작했다.
대기의 밀도가 변하고, 하늘이 저문다.
미사토「……저녁놀?」
뒷걸음질친다.
타이치「부활동, 권유해 줘서 고마워요, 선배」
움찔, 하고 선배의 몸이 딱딱하게 굳는다.
타이치「그것이 당신의 가치관의 강요라고 해도……난 기뻤어요」
타이치「나한테 흥미를 가져줘서, 고마워요」
타이치「평생 안 잊을게요. 당신을, 당신의 말, 당신의 기억을」
미사토「……아프게 하지 말아주세요」
떨리는 어깨. 떨리는 목소리.
안고 싶어진다.
나는 발을 돌리고, 선배와 거리를 두었다.
미사토「……에?」
타이치「미안해요……편하게 해준다는 건, 거짓말이에요」
타이치「괴로워하면서 살아가야 해요, 선배는」
타이치「그곳에 저는 없지만……」
팔을 내밀어, 살짝 손을 흔든다.
타이치「바이바이 선배, 즐거웠어요」
선배가 무언가 말하려는 순간, 나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눈을 뜨자, 이미 그녀는 사라져 있었다.
순간 극심한 피로를 느꼈다.
가슴이 찢어질 것 같다.
타이치「괴로워……」
하지만 눈물은 나오지 않는다.
어중간한 이 기분.
내가 싫어진다.
그 때 토모키가 나타났다.
토모키「누님은……어디?」
갑작스러웠다.
당황해하고 있었다.
뛰어온 탓인지, 땀투성이였다.
타이치「저쪽이야, 저쪽」
토모키「……둘이서 뭐했어?」
타이치「나물을 캐고 있었어」
토모키「……타이치가 데려갔잖아」
타이치「그랬지, 서둘러」
타이치「꽤 심한 상태야, 빨리 도와 줘」
안색을 바꿨다.
토모키「어딘데?」
타이치「저기저기!」
토모키「없는데……?」
좌표가 겹쳐졌다.
타이치「유사한테 미안하다고 전해 줘라」
토모키「앙……?」
타이치「굿 나잇, 시스콤」
타이치「……인모럴에 힘써라」
토모키, 송환.

미사토「……에……페케군?」
미사토「…………」
미사토「저기?」
토모키「누나……」
미사토「토모키? 왜 여기에……」
토모키「얘기를 하자」
토모키「하고 싶은 말이, 있으니까……」
미사토「토모키……너」
토모키「어, 어라?」
토모키「라디오가……」
미사토「전파……가……들어오고 있어?」
미사토「아……」
토모키「누나 휴대폰?」
미사토「……울리고 있어……걸려오고 있어……」
토모키「누구한테서?」
미사토「……아버지……번호……」
토모키「그건……?」
미사토「잘은 모르겠는데」
미사토「꼭……긴 꿈을 꾸고 있던 것 같아―――」
미사토「……여보세요?」

타이치「……하하하」
완수했다.
선배와 토모키는, 이제 없다.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다.
괴롭다.
그저 그립다.
내참.
사당에 걸터앉아, 눈을 감았다.
표현하기 어려운,기묘한 현기증에 둘러싸인다.
세계가 흔들리는 듯한 느낌이 들고, 반고리관이 착각을 일으켰다.
두 사람에 대해서만 쭉 생각하고 있었다.
희미해지는 의식.
무겁게 기능이 정지되는 몸.
모든 것이 분해되고 구성되어가는 과정을, 인간의 지각력은 관측할 수 없다.
간단히 분해되는 세계.
언제 끝나는지도 모른다.
그런 곳에서, 나는 살아가고 있다.
싸움은 계속된다.
또, 다음주에―――

그리고, 나는 눈을 떴다.
만약을 위해, 수풀 안쪽을 확인한다.
좋아.
위상의 어긋남. 그렇게 말해 두자.
내 눈만이 관측할 수 있는 그것은, 건너편 세계로 통하는 송환로.
관측할 수 있는 사람에게만, 진실이 된다.
그곳을 빠져나가면, 돌아갈 수 있다.
사람들로 가득찬 세계로.
하지만. 그래.
난―――
요코의 모습은 없다.
다만 도시락만이 책상에 놓여 있었다.
학교로 간다.
아무도 없는 세계를 걷는다.
사람뿐만이 아니라, 생물 그 자체의 기척이 없다.
가득차 있다는 느낌이 없다.
매미도 울지 않는다.
부자연스러운 공간.
교차한 세계의 중심에서 멤돌고 있는 모순.
불과 여덟 명뿐인 작은 세계.
타이치「……」
나나카도 나타나지 않는다.
나나카「……………………」
자 그럼.


4층. 1학년 교실.
키리가 있다.
섬세한 소녀.
망가지지 않도록, 망가뜨리지 않도록.
……최대한의 추억을.


ㆍ聲をかかる (말을 건다)


타이치「키리」
온몸이 굳어진다.
천천히 뒤를 돌아본다.
고개가 돌려짐과 함께, 차가운 시선.
타이치「안녕」
키리「……무슨 일이시죠?」
낮은 목소리.
타이치「미키양은 없나?」
키리「……없습니다」
타이치「그래」
알고 있다.
타이치「상점가에서 당황해하고 있더라. 좀 불안한 것 같았어」
키리「미키가……?」
타이치「가보지 그래?」
키리는 내 말에 대답하지 않고, 교실을 뛰쳐나갔다.
타이치「잠깐, 이거」
키리「……네?」
타이치「점심. 미키한테 주기로 약속했었어」
거짓말.
하지만 이렇게라도 말하지 않으면 키리는 받지 않는다.
키리「……왜, 당신이……」
타이치「자, 서둘러. 울고 있다고」
의아한 듯 나를 힐끔 쳐다보고, 키리는 떠나갔다.
좋아, 이걸로 됐어.
크게 한숨을 돌렸다.

키리에게는 하루 정도의 여유가 필요할 것이다.
일요일, 세계는 되감긴다.
파괴의 날.
어쩌면, 이 세계는 나의 이상향일지도 모른다.
치명상이 치명적이지 않은 세계.
일주일 전으로 되풀이.
누구를 상처입혀도, 누구와 함께 지내도.
리셋.
토오코와 사이좋게 지낸 후엔 미미 선배와.
키리와.
미키와.
기분 내키면 요코와.
사쿠라바와.
……그건 아니고.
하지만.
가능성이 있고, 리셋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장소가 있다.
완벽한 낙원은 아니다.
그러니까 난―――

작년 초여름이었다.
신카와 유타카와 만난 것은.
매미가 시끄럽게 우는 여름이었다.
신카와『OK, 어떻게든 해나갈 수 있을 것 같아』
타이치「…………」
누가 나빴던 걸까.
운명이나 우연의 탓으로 돌릴 생각은 없다.
누군가는 나빴다. 또는, 모두 다 나빴다.
그것을 인정하면, 결론은 그다지 복잡하지 않다.

눈을 뜬다.
햇빛이 창문을 넘어 들어오고 있었다.
간만에 푹 잔 것 같다. 꿈 하나 안 꿨다.
시간은……7시.
학교에 가야지.
복도에 키리가 서 있었다.
타이치「여어」
키리「……선배」
표정이 경계의 빛을 띄웠다.
화요일에는 대체로 이렇다.
적의로 가득찬 시선.
난 눈을 뒤로 돌린다.
도발적인 말도 하지 않는다.
미키가 나왔다.
미키「어라, 선배」
미키「어제는 잘먹었어요」
미키「자, 키리도」
키리「……난……」
미키「같이 먹었잖아」
키리「그치만……그치만」
갈등.
자존심에 인한.
타이치「됐어 됐어, 내가 만든 것도 아니고」
미키「그래요?」
타이치「요코」
미키「아―, 선배의 이거 말이시군요」
새끼손가락을 세운다.
타이치「이거랄까 저거랄까. 편리한 포○몬스터이긴 하지만」
판권적으로 위험한 개그였다.
타이치「그런 연유로, 자, 같이 아침을 먹자」
미키「어……괜찮아요?」
타이치「괜찮아. 나, 샌드위치는 별로 안 좋아하니까」
미키「미안한데요」
타이치「몸에 안좋잖아. 과자만 잔뜩 먹으면」
미키「……네」
키리가 끼어든다.
도발적인 어조로 말한다.
키리「무슨 목적이 있어서, 이런 일을 하시는 거죠?」
타이치「……목적은 있지」
키리「그건?」
타이치「……키리하고 얘기하고 싶어」
키리「저하고?」
타이치「그냥 얘기하고 싶은 날이 있어. 그 때까지는 신경 안써도 돼」
미키「얘기하고 싶은 날?」
타이치「응, 좀 말야」
등을 돌렸다.
키리「아……」
미키「자, 잘먹겠습니다, 선배!」
등 뒤를 향해, 손을 휙휙 흔들었다.

점심까지 시간을 보낸다.
불필요한 접촉을 해서, 미지의 비극을 일으킬 순 없다.
지금의 지식과 경험을 가진 나, 고유의 나는 죽을 순 없으니까.
낮, 다시 학교로.
여기서 두 사람은 도시락을 먹고 있을……예정이다.
안 먹고 있으면 재시도. 또 다음주에.
몇 번이고 되풀이한다.
그리고―――
타이치「……먹을 거 없나요?」
미키「있긴 있는데요……」
타이치「그 도시락은?」
미키「키리가 만들었어요」
타이치「우와, 좋겠네」
미키「……선배가 드실 건 없어요」
단호.
타이치「꽤 많아 보이는데?」
미키「많죠」
척 보기에도 3인분은 되어 보인다.
키리「하지만 왜인지 선배 건 없네요」
타이치「……으윽」
타이치「그럼 물물교환을 하자」
미키「트레이트군요」
타이치「사탕하고 구미 젤리. 수제품」
두 사람의 눈빛이 변했다.
미키「수제품?」
타이치「음―. 요코가 만든 건데」
타이치「설탕도 적고, 미용 건강에 좋다더라. 구미는 곤약이야. 0칼로리」
두 사람「0칼로리―!?」
…………………….
타이치「와―아」
교환 성립.
미키「어머니의 맛이 나……」
키리「그렇네」
미키「우유맛이야」
키리「그치―」
타이치「스토커의 맛이지만 말야」
미키「볼이……내 볼이……」
키리「으응~~~」
타이치「맛있네……키리찡은 요리에 재능이 있어」
키리「……반찬은 레토로트인데요」
타이치「그래도 맛있어」
키리「밥을 안 만들면, 미키가 과자만 계속 먹어서」
미키「그치만……」
타이치「밥 먹기가 힘들지」
미키「네에……」
타이치「키리찡 나랑 결혼하자」
키리「불가능합니다」
미키「싫어요, 가 아니라 불가능하다네요, 선배」
타이치「……불타오르는데」
키리「물 뿌려드릴까요?」
미키「과자 더 있어요?」
타이치「있지. 비스켓이라던가, 사블레라던가. 요코 선생님은 과자를 잘 만드니까」
미키「……의외네요」
타이치「좋은 보존식품이 되는 것 같아」
키리「……연인, 사이시죠?」
타이치「아니, 같이 살고 있을 뿐이야」
미키「동거」
키리「동거」
두 사람의 하모니.
타이치「동거하곤 달라」
타이치「우리들은 부모가 없으니까, 두 사람 모두 그 집에 신세를 지고 있을 뿐이야」
효율적으로 설명했다.
미키「그랬군요」
키리「……불건전한 관계일 거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미키「하세쿠라 선배도 수수께끼가 많은 분이네요」
타이치「그러게 말야」
타이치「자, 특별히 치토세아메를 줄 테니까, 모두 같이 시치고산 무드에 잠겨 보자」
미키「오―, 치토세아메다!」
미키가 만면에 미소를 짓고.
재빠르게 키리가 가로챘다.
미키「우으―, 뭐하는 거야!」
키리「과자만 먹으면 안돼」
미키「자기도 먹었던 주제에―!」
키리「우선 밥부터 먹어. 건강관리, 앞으로는 너 스스로 해야 된단 말야」
키리「왜 그러세요? 야릇한 눈으로……」
타이치「아니, 좋은 콤비라고 생각해서」
미키「……꽃님들이니까요」
타이치「연예계에 데뷔시켜주고 싶을 정도야」
미키「……지금 데뷔해 봐야 뭐……」
기운없는 미키.
키리「여덟 장밖에 안 팔리겠네. CD」
미키「밀리언은 꿈 속의 꿈」
키리「그럼 내가 두 장 사 줄게」
미키「그럼 나도 두 장 살래」
키리「열 장」
미키「응, 열 장. 두 자리네」
마주보며 웃는다.
정말로 사이가 좋구나.
그 모습은, 내 마음을 조금 적셔주었다.

신카와 유타카가 잡목림을 바라보고 있었다.
난 그런 신카와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타이치「무슨 일이야?」
신카와는 땀을 흘리고 있었다.
더워서 흘리는 땀은 아니었다.
뒤로 살짝 물러난다.
차가 오고 있었다.
타이치「신카와!」
순간적으로 잡아당겼다
바로 그 뒤를, 트럭이 천천히 달려나간다.
내가 말을 걸어도, 신카와는 무반응이었다.
신카와는 떨고 있었다.
타이치「신카와?」
신카와「아……미안」
정신을 차린다.
신카와「뭐랄까……숲 속을 보다 보면……기분이 굉장히 나빠져……옛날부터 그랬어……이유는 모르지만……」
얼굴을 손으로 가리며, 잠시 동안 멍하게 서 있었다.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헐떡이듯 숨을 내쉬었다.
신카와가 잡목림 안에서 본 것.
그것은 분명―――

수요일.
학교로.
학생을 탈주시키지 않기 위한 문.
학생을 지키고 있다기 보단, 바깥 세계를 우리들로부터 지키고 있는 듯한.
그런 인상이 들었다.
교실에 들러 본다.
역시나, 토오코의 모습은 없다.
타이치「음……」
마음이 건조하다.
눈시울을 눌렀다. 귀가 찌잉 울렸다.
이러면 안된다.
내 마음도, 언제 터질지 알 수 없다.
지금 실패하면, 또 머나먼 확율을 향해 여행을 하게 된다.
이곳으로 돌아오는데 몇백 주, 몇천 주를 반복하게 되는 걸까.
비록 자각하진 못하겠지만……그것은 견딜 수 없다.
교실을 나온다.
토오코를 의식에서 내쫓는다.
시작한 지 3일째 되는『일상』.
하지만 그것은, 공허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풀장이다.
타이치「……」
좋아.
예정대로 따라가고 있다.
키리나 미키, 둘 중 하나에 이상이 없다면, 두 사람의 행동은 어느 정도까지는 확정적이다.
고유 시간을 산 미키와 같은 변수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미키「에잇!」
키리「아, 안된다니까, 안돼―!」
미키「아하하하핫, 키리―, 다 젖었어―」
키리「그치만 물 속이잖아, 앗, 머리, 머리카락 젖겠어」
미키「그치만 풀장이잖아!」
키리「그렇긴 하지만―!」
미키「에―잇」
키리「아―, 머리가―」
키리「복수다!」
미키「꺄―!」
행복한 광경을 보고 있었다.
키리「이잇―!」
미키「와―――!」
키리「먹어랏―!!」
미키「먹기 싫지―롱」
키리「아, 비트판 사용 금지!」
미키「방패야―」
키리「치사해―!」
미키「머리가 긴 만큼 내가 불리하잖아」
키리「그치만, 한 손이 되었으니 공격력은 내려갔어!」
미키「왓!?」
키리「사냥 시간이다―!」
미키「아―, 꺅―!?」
첨벙첨벙 돌아다니며, 물 속을 헤엄친다.
천진난만하게.
두근
타이치「……!」
심장이 뛰었다.
가벼운 감동이.
무의식중에 심장을 누르고 있었다.
장기에 마음이 있다는 말은 아니다.
내 감정이, 심장을 두드리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기뻤다.
난『흐뭇하다』고 마음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키리「꺄악!」
미키「아하하하핫, 미끄러졌다―!」
키리「다 젖었어……」
미키「풀장이니까 젖어야지」
키리「……그랬겠다」
미키「……어, 어어?」
키리「젖었으니까 이제 수영할 수 있다네」
미키「앗, 앗앗, 근접전은 안돼―!」
키리「평형으로 자유형을 이길 거 같아!」
미키「우왕좌왕우왕좌왕」
키리「물에 빠뜨려버리겠어」
미키「싫어―! 젖으면 머리가 해초처럼 된단 말야―!」
키리「해초로 만들어주지―!」
미키「왓, 왓, 위험해」
키리「이얏―!」
미키「냐아―――――――!!」
첨벙이는 물소리.
멈추지 않는 웃음소리.
포근하게 흘러가는 그 시간은, 따스했다.
따스한 세상의 한 장면.
마음에 새겨간다.
잊지 않도록.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도록.
나는 계속, 두 소녀가 노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키리와 처음 만난 건, 신카와하고의 재회 전후였다.
신카와에게 사촌동생이 있다는 건 들었지만, 설마 키리일줄은 몰랐다.
어색한 인사.
아직 군죠에 익숙해지지 않은 키리로부터의 비난.
거북한 공기.
난 적응을 못하는 녀석들의 이야기를 키리에게 하고,
키리는 말의 모순을 지적하고,
키리가 그 정의감으로 지키려 했던 소녀의, 미래를 예언했다.
그리고 내가 했던 한 가지 질문.
타이치「친구를 만드는 건 힘들어. 하지만 만들지 않을 수는 없어. 왠지 알아?」
타이치「필요해서야. 마음을 기르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에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한 진실이었다.
후에 미키와 알게 된 키리는, 둘이 함께 방송부에 들어오게 되었다.
의식은 계속 날아간다. 그 당시를 또렷하게 떠올려 낸다.

타이치「오―, 왔구나―」
미키「하이염」
키리「……안녕하세요」
두 사람의 모습은 화단에 심어진 두 송이의 꽃과 같았다.
타이치「FLOWER'S!」
미사토「그건 뭐죠?」
타이치「두 사람의 예명입니다. 방송부에서는 예명이 필요해. 다들 가지고 있지」
미키「후아~」
토모키「또 그런 구커헉」
간신히 말이 끝나기 전에 끊었다.
타이치「토모키는 인모럴, 사쿠라바는 미스터 자경단, 그리고 난 애귀족」
미키「진짜예요?」
타이치「당연하지!」
미키「그 이름으로 대화해 보세요」
타이치「헤이, 인모럴, 시스콤은 좀 어때? 증세는 여전히 변함없나?」
미사토「시스콘?」
토모키「닥쳐어어어어」
목을 조여왔다.
본인이 있기에, 토모키도 필사적.
타이치「……알았다……항복……항복……나 죽겠다……」
사쿠라바「애귀족답게 사랑을 위해 죽는 건가?」
타이치「천국의 마망을『만나러』죽을 것 같아……」
미사토「토모키! 폭력은 정학이야」
토모키의 얼굴에 미미 선배가 춉을 넣는다.
토모키「아, 응……」
타이치「……죽는 줄 알았다」
토모키「자업자득이지」
키리「……하아」
키리는 갑자기 지쳐 있었다.
타이치「뭐야 뭐야 그 허약한 꼴은」
타이치「우리 명의상 방송부는 실은 운동부란 말이다?」
미사토「……또 그런 말을……」
타이치「3학년 선배님들이 경사스럽게 졸업하시고, 그 자리를 메꾸듯 들어온 자네들 두 사람에게, 사쿠라바 선생님은 상당한 기대를 가지고 계신다」
사쿠라바「아아」
사쿠라바는 쿨한 포즈로 일어나서는, 주머니에 틀어박힌 채로 안 빼고 있는 손가락에 음료수 캔을 매단 채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쿠라바「오늘은 여러분에게 감나무의 교훈을 말해주려 한다」
타이치「좋았어 선생님!」
미사토「손가락, 피 나고 있어요」
사쿠라바「감나무 종 중에 땅콩이 섞여 있는 것이 있다. 알고 있나?」
사쿠라바는 무시하고 말한다. 아니 안 들리는 거겠지.
미키는 고개를 옆으로 흔들흔들.
솔직하다.
사쿠라바「그 땅콩을 싫어하는 녀석이 의외로 많다」
미키「그렇군요」
사쿠라바「나는 그럴 때마다 그 소인배 녀석들을 용서할 수 없었다. 왜라고 생각하나?」
타이치「넷, 땅콩이 들어가야만 땅콩 섞인 감나무가 되기 때문 아닙니까?」
사쿠라바「그렇다. 싫으면 순종 감을 먹으면 되잖나. 땅콩 섞인 감나무를 놓고 땅콩이 싫으니 어쩌니 하는 나약한 소리는, 땅콩 섞인 감나무의 존엄을 헤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쿠라바「소인배다」
타이치「그렇습죠!」
사쿠라바「그래서 난, 일부러 감나무 땅콩만을 먹고 있다」
타이치「……바보냐 넌」
막판 반전.
사쿠라바「이해해 주었구나」
타이치「사람 말 들어」
사쿠라바「가끔씩 오른쪽 귀가 안 들려」
이건 사실이다.
일상생활에 지장은 없지만.
타이치「날 어이없게 한 너의 그 개그 파워, 옹서할 수 없다」
타이치「너의 사쿠라바라는 성에서, 여왕 폐하의 이름으로 쿠라는 글자를 박탈한다」
사쿠라바「뭐라고?」
타이치「넌 오늘부터 사라바(=헤어질 때의 인사). 잘가 사쿠라바. 안녕 잘가」
언어란 참 재미있다.
사쿠라바「알았다」
토모키「아니, 받아들이면 어쩌자고」
사쿠라바「내 이야기는 이걸로 끝이다」
다시 주저앉고서, 캔을 빼기 위해 손가락을 이리저리 흔들었다.
미사토「……이런 사람들이에요」
정리되고 있었다.
미키「잘 알겠네요」
키리「……」
미사토「버틸 수 있을 것 같나요?」
미키「어떻게든 괜찮을 거 같아요. 그치, 사쿠찡?」
키리「……어떻게든 버텨보라고 선생님께서 말씀하셔서」
미사토「뭐, 강요는 아니니까요……싫으면 빠져도 괜찮아요」
타이치「아잉, 안돼……직장에는 꽃이 필요하단 말야」
미사토「……라네요」
매수를 할까. 척 보니 아직 꼬맹이니, 물건으로 낚는 게 좋겠지.
타이치「매수를 할까. 척 보니 아직 꼬맹이니, 물건으로 낚는 좋겠지. 입부 축하 작전이다」
토모키「또 생각을 말하고 있어, 타이치」
미키「……」
키리「……」
타이치「음―, 좋아 이거다」
타이치가방에서 두 개의 아이템을 꺼낸다.
타이치「야망바 미키 대원!」
미키「잇힝, 야마노베입니다. 넷!」
아이템은 한 장의 색종이.
타이치「자네에겐 그 대스타이자 성형의 프로, 조금 어린 소년들을 좋아하는 터프가이, 마이○ㆍ잭○―――」
미키「사, 사인지인가요!?」
타이치「을 마음의 스승으로 받드는 애귀족ㆍ쿠로스 타이치의 사인을 주지」
억지로 건넸다.
미키「아야야」
타이치「오요요」
타이치「그리고, 사쿠라 키리 대원!」
키리「……네?」
타이치「자네에겐 베이스볼을 지금에까지 이르게 한 빅 맨, 베이○ㆍ루스―――」
키리「……」
타이치「타이치 인형을 선사하지」
미사토「이어지지가 않잖아요」
미사토「정말, 전혀 안 이어져요, 전혀」
선배는 안경을 끼고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규칙적인 사람.
무질서한 것은 가만 보기 힘든 것 같다.
토모키「어쨌든 반응이 없으니 무효」
타이치「……자, 사쿠라양. 비가 와도 눈이 와도 이 인형을 몸에서 떼어내지 말고 잠 못 이루는 밤의 조그만 친구로 삼아도 좋다」
키리「…………」
손도 안 내밀었기 때문에, 달려 있는 끈으로 목에 걸었다.
미키「직접 만드신 거예요?」
타이치「그렇지」
사쿠라바「부지런한 녀석」
미키「땅콩 전문가라 그러신지, 하시는 말도 땅딸막하네요」
세 사람「!!!」
나와 사쿠라바와 토모키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이 개그는 꽤 맘에 든다.
타이치「합격」
토모키「응」
사쿠라바「좋다」
미키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세웠다.
미키「에……어라, 네?」
키리「…………휙」
키리「어라, 안 떨어지네?」
키리는 인형을 버리려 하고 있었다.
타이치「잠깐―!」
키리「읏」
들켰다는 표정.
타이치「버리려 했는가? 버리려 했지?」
이죽거린다.
타이치「유감이군,『타이치 인형을 버리다니 말도 안 돼!』인 것이다!」
키리「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타이치「굉장히 중요한 아이템이거든!」
타이치「그러니까 버리려 해도 소용없다」
키리「……저주인가요?」
미키「와―, 그럼 이 사인도!」
미키는 사인을 창 밖으로 버리려 한다.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린다.
『러브 귀족의 사인』은 버릴 수 없다!
미키「히잉!?」
타이치「와하하하하하하!」
토모키「마법사냐 넌」
미사토「입부 축하가 아니라……입부 저주네요」
앞뒤의 문이 동시에 열린다.
신카와「하이―, 키리 왔어―?」
토오코「잠깐 타이치! 기다리리고 했잖아! 왜 혼자서 가버린 거야!」
동시에 손님.
미사토「와아, 어서와요」
미사토「손님이 두 사람이나. 차가운 차를 내올게요」
허둥지둥 냉장고로.
사쿠라바「오늘 냉장고는 텅 비었다, 부장 선배」
미사토「하읏」
미사토「잠깐 사 올테니까, 잠시만 기다리고 있어요!」
타이치「라져」
토오코「아, 됐어요……그런 거……」
미사토「꼭이에요―!」
팔을 앞뒤로 흔들며, 복도로 사라졌다.
키리「……유타카, 뭐하러 왔어?」
신카와「일단은 인사하러. 그……친척이 신세를 지는 거니까」
키리「됐어. 가버려」
밖으로 내밀려 한다.
토모키「신카와도 입부하려고?」
신카와「어, 난 야구부라서」
미키「야구부 같은 것도 있었나요?」
사쿠라바「항샹 야구 보드게임을 하는, 부원 세 명의 조직이다」
미키「……하예―, 퍼니하네요」
타이치「이 학교 자체가 퍼니하니까」
토오코「아―, 타이치! 너 도대체 어쩔 작정으로 약속을 내팽개치고……」
타이치「아이템은 다른 사람에게 건넬 수 있어」
미키「저기, 키리하라 선배, 이거 드릴게요!」
토오코「에?」
받는다.
토오코「뭐야 이거? 손에서 안 떨어지네? 저, 접착제?」
팔을 빙빙 흔들지만 떨어지지 않는다.
토오코「잠깐, 뭐야 이거!?」
『러브 귀족의 사인』은 버릴 수 없다!
『러브 귀족의 사인』은 버릴 수 없다!
『러브 귀족의 사인』은 버릴 수 없다!
타이치「쓸데없이 버린다 명령을 반복하지 마. 효과음이 시끄러」
토오코「뭔지 몰라 안 들려 그런 소리」
타이치「다른 사람한테 줄 수밖에 없어」
토오코「그럼 네가 책임지고 가져가!」
타이치에게는 줄 수 없다!
토오코「왜야!」
타이치「파티가 아니면 전달은 할 수 없어」
타이치「너와 난 타인과 다름없는 사이이기 때문에, 전달은 못 해」
토오코는 입을 뻐끔거렸다. 금붕어처럼.
토오코「뭐, 뭐, 뭐라고―!!」
타이치「포기하고 얌전히 부원이 되어라」
토오코「열받아――――――!!」
키리「됐으니까 빨리 가―! 부끄러우니까!」
신카와「그치만 잘 하는지 어쩐지 걱정되잖냐―……널 믿을 수가 있어야지……」
키리「잘 할 테니까, 가버려. 괜찮으니까」
사쿠라바「훗, 떠들썩하군, 오늘은」
불쑥 사쿠라바가 중얼거린다.
토모키「오, 캔 빠졌네」
사쿠라바「비눗물의 힘이지」
선배가 쟁반에 컵을 담고, 허둥지둥 돌아왔다.
미사토「차가 없길래, 컵에 수돗물을 담아왔어요―!」
타이치「뭡니까 그건―!」
미키「아하하하하」
웃고 화내고.
조그만 난장판.
이런 것이 좋다.
추억이란 이런 것이어야 된다.
타이치「다들 날 봐! 큰일났어!」
시선이 모인다.
타이치「스트립 킹이 나타났어―!!」
재빨리 옷을 벗어제낀다.
토모키「너잖아!」
발로 차였다.
토오코에게 안긴다.
토오코「꺄아아아아아아아앗!?」
타이치「조금 부족한데. 골반이 만져지네. 좀 더 육감적으로 되도록」
토오코「에이이이이이이이잇!!」
기합이었다.
타이치「크헉―!」
키리에게 안겼다.
키리「남자한테 만져졌어―――!!」
타이치「꺄후―!」
미키「와―이!!」
타이치「크옷―!?」
토오코「미야스미 선배도 해 보세요」
미사토「에, 그, 그치만?」
토오코「땅에 떨어지면 지는 거예요」
내가 공이냐.
미사토「어머 그런」
미사토「이, 이렇게요?」
타이치「랏차―!!」
토모키「마지막엔 기합이 특히 들어가 있네―」
사쿠라바「저것은 타이치의 특별 서비스로 보인다」
미키「사나이군요!」
즐거웠다.
한없이 즐거웠다.
양질의 추억.
결코 잊고 싶지는 않다.
그러길 바랬다.

그날 밤.
밖에서 부스럭 소리.
양초를 끈다.
창가로.
밖을 본다.
집 앞 도로를 키리가 걷고 있었다.
쫓아갔다.
…………………….
크로스보우―――
결코 장난감은 아니었다.
이 나라에서 손에 넣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
연사는 불가능하지만.
방음성이 뛰어나고, 파괴력도 훌륭하다.
키리는 방아쇠를 당겼다.
고목에 화살이 박혔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귀를 스친다.
키리는 새 화살을 꺼낸다.
코킹 장치에 장전을 한다.
표적을 노린다.
키리「……………………」
장전이 어긋났다.
고의일까, 우연일까.
쏜다.
키리「…………」
키리는 발 밑으로 한숨을 쉬고, 머리를 거칠게 헝클었다.
화난 듯이.
표적이었던 나무에 다가간다.
화살을 회수.
떠나갔다.
나무 옆에 가본다.
타이치「……」
난 우스운 짓을 하는 건 아닐까?
키리는 날 괴물이라 생각하고 있다.
사람의 마음을 먹는 괴물.
지금의 난, 정말로 그런 존재가 아닐까?

키리「이전 학교에서 친구라곤 없었으니까요. 오빠도 저도」
키리「친구였던 사람들에게도 배신당하고……아무도 믿을 수가 없어지고……」
키리「아무도 상처입히지 않았는데, 모두에게서 상처받고」
타이치「하지만 몸을 지키던 맹수가 총을 맞는 게 세상사야」
키리「……우리는 인간이잖아요」
…………………….
키리「전」
키리「세상이 무서워서, 견딜 수가 없어요」
타이치「어떤 면이?」
키리「……악의가」
키리「모두의 악의가……」
…………………….
키리「……인간들은 사라질 땐 깨끗하게 사라질 거라고 생각해요……왜냐면, 세상에는 거의 아무것도 없으니까……」
키리「『아무것도 없는』사람이 더 많아요. 『무언가 있는』사람은 거의 없어요!」
키리「언제 사라져버려도 이상하지 않다고……생각해요」
타이치「그……SF처럼, 인류멸망이라던가?」
키리「그런 거하곤 달라요……그렇게 이유가 뚜렷한 거하고는 다르고……」
키리「꿈에서 깨어난 것처럼」
키리「서로 싸우기만 해서, 무섭기만 한데……」
키리「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것이 사라지고……작은 세상에서……만약 저 혼자만 남겨진다 하면……」
키리「저……전……」
…………………….
타이치「행복의 형태가, 다른 사람과 다를 뿐이야」
키리「……그런 건 싫어요」
키리「악의는 없을지도 모르지만, 전 그런 건 싫어요」
키리「사람들이……모여 있는데……다들 외딴 섬에 갇힌 것처럼……닫혀 있는 건……」
키리「싫어요……」
…………………….
마치 키리는,
저에게 신경써 주세요―――
그렇게 외치는 것처럼 보였다.

타이치「으……」
눈을 뜬다.
꿈을 꾸었다.
그리운 꿈.
키리와 악의의 이야기.
그러고 보니 두 사람이 어떻게 세상에게서 거절당했는지, 난 모른다.
대충 상상은 되지만.
결국 사람은,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고 있다.
타인과 접함으로 인해 생기는, 여러 욕망 속에서.
짓궂다.
마침 딱 좋은 시간이었다.
타이치「슬슬 가볼까」
키리가 있었다.
펜스 너머로 바깥을 바라보고 있었다.
데쟈뷰 현상이, 내 의식을 과거로 데리고 갔다.

여름도 끝나려 하고 있었다.
매미들도 한층 더 시끄러워졌다.
귀를 때리는 듯한 울음소리.
마지막 생명을 쥐어짜고 있는 것이다.
생명의 잔재로 물드는 여름.
키리는 옥상에 있었다.
혼자서.
울고 있었다.
뒤를 보고 있지만, 어깨의 떨림을 보면 알 수 있다.
타이치「키리……」
키리「……쿠로스……선배?」
눈물을 숨기려 하지 않는다.
키리「유타카……유타카가……여기서 떨어져서……」
타이치「응……」
알고 있었다.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이 동네에서는.
일반적인 세상에서는 학생 한 명이 투신자살을 하면, 나름대로 화제가 된다.
보호자는 학교를 추궁하고, 누가 나쁜지를 밝히려 한다.
학교는 책임을 회피하려 한다.
군죠에서는 그것이 없다.
세상의 그 누구도 추궁하지 않고, 학교도 도망치지 않는다.
몇 명이 책임을 졌다.
세상에서는 군죠의 위험한 소년 소녀들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슬퍼하는 사람은 극소수.
키리「아무도……아무도……슬퍼하지 않아……우리들이 어떻게……살아왔는데……아무도」
보기 드물게 흥분해 있었다.
유타카의 죽음으로부터, 벌써 일주일이 지나 있었다.
키리의 비탄은, 늦게 온 것이었다.
타이치「있잖아 키리……유타카는, 행복했을까?」
키리「……?」
타이치「그 녀석은 그 녀석 나름대로, 행복했을까?」
흔한 질문.
하지만.
의미는 완전히 반대였다.
키리「……쭉, 괴로워해 왔어요」
타이치「정말로 쭉 괴로워했어?」
타이치「한순간이라도, 행복해한 적은 없었어?」
키리「그건……」
틀림없이 있었을 것이다.
키리「……선배와 친구가 되고 나서는……웃게 됐어요……」
키리「하지만 부족해요」
어조가 강해진다.
키리「우리가 받은 괴로움은, 전혀 되돌려받지 못했어요」
타이치「그럼 키리찡은, 유타카의 인생이 하찮은 것이었다고 생각하는 거야?」
키리「그런 건……아닌데요……」
타이치「……뭐 이렇게 말해도, 슬픈 건 어쩔 수가 없겠지」
나도 헤매고 있었다.
키리를 향한 대응에.
타이치「마음껏 울어」
하늘을 바라본다.
시야를 가리는 순백이, 거대한 뭉게구름이라는 것을 이해하기까지.
타이치「적어도 여름이 끝나기 전까지는」
매미들의 최후와 함께.
그 말은, 키리에게는 만감이 담긴 복잡한 의미로 들렸을 것이다.
키리「……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고개를 숙이고, 내 셔츠자락을 잡고, 소리를 질렀다.
키리「유타카 오빠가……죽었어……죽어버렸어……」
오열.
타이치「…………」
유타카 오빠.
가장 좋아하는 오빠였을 것이다.
한쪽 다리로도 열심히 살아가는.
키리의 부모―――
유타카의 장례식에서 본 두 사람의 표정에는, 가벼운 안도감이 있었다.
키리는 그것을 눈치챘을까?
아마, 눈치채고 있을 것이다.
여러가지 괴로운 일을 당해도, 이제까지 서로를 의지하며 버텨왔을 것이다.
말하자면 반신.
키리는 반쪽인 것이다.
나처럼…….
단지 키리는, 원해서 그렇게 됐다.
지금은 강한 감정에 의해 기력을 박탈당하고 있다.
하지만, 머지않아 슬픔이 약해지면 다시금 또다른 반쪽을 찾아다니겠지.
유타카와 키리.
일심동체였던 두 사람.
키리에게 죄는 없다.
하지만 난……나의 괴물은, 꿈틀대고 있었다.
타이치「키리……」
그 등에 손을 감는다.
격정이 감각을 마비시켜, 키리는 눈치채지 못했다.
키리「으으으……으아아아앙……」
조금씩 정서는 가라앉아 간다.
그 무렵엔, 난 키리를 완전히 껴안고 있었다.
타이치「키리……외로워?」
키리「……?」
타이치「외롭, 겠지」
키리「……쿠로스 선배?」
타이치「난 허무해. 굉장히 말야」
내려다 보자 그곳에는 작은 얼굴.
깊이 있는 흑요석 두 개의 표면을 옅은 소금물이 적시고 있다.
타이치「유타카는 행복했을 거야. 키리도 있었고, 싫은 기억은 잊어버렸으니까」
타이치「마지막까지 행복했을 거라고, 난 생각해」
얼굴을 갖다댄다.
키리「…………에」
조금 당황해한다.
얼굴을 교차하듯이 겹치고.
입술을, 훔쳤다.
키리「…………!?」
온몸으로 거칠게 날뛴다.
강하게 끌어안았다.
키리「……으응」
키리의 숨이 멈췄다.
펜스에 밀어붙여, 입술을 계속 탐한다.
키리「……흐앙……싫어……안돼……」
놀란 감정이 키리의 사고력을 뺏고 있었다.
제대로 된 저항조차 없다.
타이치「외로워?」
키리「……에?」
타이치「외롭지?」
키리「……몰……라요……」
키스한다.
두 번째.
이번엔 잇몸 안쪽으로 진입한다.
동시에 손을 치마 속으로.
키리「응……으, 으으으응!?」
갑자기 저항이 강해진다.
키리는 나를 밀쳐냈다.
키리「그, 그만하세요!!」
타이치「…………」
난 엷은 미소를 짓고 있었을 것이다. 분명.
키리「당신은……」
충격이 서서히 혐오로 변해가는 과정을, 나는 보고 있었다.
키리「으읏!!」
달려간다.
내 옆을 지나서.
삐걱이는 문. 닫히는 문.
타이치「……하하」
얼굴을 손으로 가린다.
역시 이건 안 좋네.
입가가 추악할 정도로 일그러지고 있었다.
키리와는 소원해졌다.
부활동에도 거의 얼굴을 내밀지 않게 되었다.
미키가 억지로 데려온 적은 있지만, 나를 피했다.
대화도 없어지고, 관계는 절단되었다.
그런 일이, 있던 것이다―――

타이치「…………」
의외로 키리의 예언은 적중했다.
인간들은 깨끗하게 사라져버린 것이다.
자.
타이치「키리」
살며시 말을 건다.
키리는 놀라지 않았다.
천천히 뒤를 돌아본다.
키리「……세계가 이렇게 되고……사람들도 사라지고……」
키리「악의는 사라진 대신에……밀도도 사라지고……」
키리「그래도, 당신은 변함이 없네요」
타이치「…………」
키리「……전부터 말하려고 했던 겁니다만」
키리「선배는 어째서, 살아있는 거죠?」
『저기, 하나 질문이 있는데……왜 지금 당장이라도 안 죽는 거야?』
겹쳐진다.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며.
마치, 옛날에 던진 나이프가 지금 갑자기 되돌아오는 듯한.
아이러니컬한 구도.
키리「자신한테 살아갈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타이치「…………」
키리「당신은, 어두워요」
정확한 비유라고 생각한다.
키리「사람이 아냐. 사람을 닮은 것이 지나지 않아. 사람으로 변해 있어요. 벌레처럼」
키리「의태하고, 사람으로 변해, 사람을 덮치고」
키리「당신은 사람을 상처입히는 존재입니다. 결코 존재해서는 안돼요」
키리「어째서 당신의 적응계수가 80을 넘은 건지, 예전엔 궁금했어요. 하지만 그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당신 안의 사람의 부분은, 문제 그대로 2할밖에 없어요」
쉴새없이 말한다.
지금까지 쌓아올린 사쿠라 키리라는 이미지를 뒤짚는, 선명하고 강한 이미지가 구축되어간다.
언어의 나이프가, 내 정신을 찌르려 하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둔한 칼날밖에 없었던 것이―――
사쿠라 키리의 비장의 무기가 되어!
키리「괴물이에요」
키리「당신의 웃기는 점은, 괴물 주제에 괴물이란 것을 인정하지 않는 점입니다」
키리「사람과 괴물과의 사이에 공감이 싹트고, 사이좋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요? 당신이 평범한 행복을 손에 넣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요?」
키리「말도 안 돼요」
키리「세상에 존재하는 약간의 다정함은, 결코 당신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니, 당신이 가져서는 안 돼요」
키리「사람의 몸을 먹어치우는 기생충을 사랑하는 사람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만약 있다고 해도 그것은 미친 사람이죠」
키리「당신은 항상 자신을 위해서 희생할 사냥감을 찾고 있어요. 전 알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그것을 참고 있었죠. 하지만 세계가 이렇게 되고, 사람의 수가 적어지자, 당신은 참을 수가 없어지고 있습니다」
키리「의태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죠」
키리「사람을 상처입히고 즐기기 위해, 당신의 눈은 언제나 우리들을 향하고 있어요. 그것도 한번에가 아니라, 천천히 공을 들여 즐기려 하고 있어요」
키리「사람도 아니고, 짐승도 아니다」
키리「그럼 뭐죠? 그 무엇도 아닌 당신이야말로, 세상에서 사라져야 했어요.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키리「악의로 가득 차 있던 인류도, 당신 한 명의 생명보다는 훨씬 가치있었어요. 저에게도 물론, 그렇습니다」
키리「두 가지 충고합니다」
키리「우선 당신이 다른 사람과의 접촉으로 인해 진정한 인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착각이에요. 불가능합니다. 인간을 모독하는 사고입니다. 선배만큼 완벽한 괴물은 본 적이 없으니까요」
키리「당신은 가장 완벽한 정신이상자. 광인 중에 광인」
키리「……미친 사람들의 정점이에요」
키리「그리고 또 하나. 우리들에게 손을 대려는 생각은 하지 말하주세요」
키리「만일 선배가 사냥감을 찾아 우리들에게 다가온다면……」
마지막 한 마디를, 키리는 내뱉었다.
키리「사살하겠습니다」
타이치「……………………」
키리「……미키는 절대로, 당신에겐 건네지 않겠어」
키리「뺏기지 않겠어!」
또각또각 신발소리를 내며, 내 옆을 지나간다.
삐걱이는 문. 닫히는 문.
나는 혼자가 되었다.
타이치「……괴물이라」
그 말을 되씹어 본다.
알고 있었다곤 해도.
……괴롭다.

과거의 기록대로, 키리가 나타났다.
쫓아간다.
이쪽이려나.
곧바로 잡목림으로 들어간다.
하나 걱정인 것은.
요코.
과연 예정조화에 따라 움직여 줄까?
만약 그녀가 행동하지 않는다면.
나와 키리의 구덩이는, 메워질 수 있을까?
메워지지 않는다면…….
걱정을 품고, 목적 장소로 간다.
눈을 교환해 둔다.
밤이 밝게 보인다.
키리「……꺄앗」
비명이 들렸다.
타이치「요코, 스톱」
요코「……」
놀라는 기색은 없었다.
아마, 내 접근을 눈치채고 있었을 것이다.
키리「……읏」
그 틈을 타 키리가 움직인다.
요코, 투석.
키리「으읏!」
선수를 찔린 키리는 대처할 수 없다.
돌은 키리의 종아리를 정확하게 맞혔다.
키리「윽!」
주저앉는 키리.
다리를 움켜쥐고, 이를 악문다. 통증이 심할 것이다.
요코「…………」
두 번째 돌을, 벨트에 끼운다.
손목에 스냅을 넣어 원을 그린다. 그 순간.
키리「잠……깐……」
키리의 얼굴이 새파래진다.
키리「어, 어째서……당신이……?」
요코「타이치를 죽이려 했으니까」
키리「!?」
요코「타이치를 죽일 연습을 하고 있었으니까」
키리「……그, 그래서……절 죽이는 건가요……?」
요코「……」
과연 진심일까?
어쨌든, 생각할 시간은 없다.
예정대로 행동할 수밖에 없다.
키리「아아……」
회전수가 늘어난다.
날카로운 바람소리.
눈 앞에서 부풀어오르는 파괴력 앞에, 키리는 공포로 떨고 있었다.
확실한 죽음.
그것을 키리는 믿을 수가 없던 것이다.
눈 앞에서 운동 에너지는 계속 쌓여간다.
키리「그, 그만……」
크로스보우를 얼굴 앞에 대고, 흐느껴 울었다.
키리의 한계다.
타이치「거기까지」
키리 앞에 선다.
키리「어……?」
회전이 멈췄다.
요코「저건, 살려두면 타이치한테 위해를 끼쳐」
타이치「뭐 어때, 그 정돈」
타이치「……괜찮잖아?」
요코「…………」
타이치「그냥 놔 줘」
요코「……안돼」
타이치「요코」
크게 이름을 부른다.
하지만 물러나지는 않는다.
그래도 키리를 죽일 생각인가?
모르겠다.
요코「잡을래」
타이치「안 잡아도 돼」
요코「비켜」
타이치「안 비킬래」
등 뒤에서, 키리가 숨을 죽이고 지켜보고 있었다.
목숨을 구한 안도감과, 그것이 나에 의해 행해졌다는 위화감.
요코「하지만……」
망설인다.
타이치「나를 핑계로, 사람을 죽이는 걸 원하지 않아」
타이치「죽이고 싶으면 너만의 핑계를 찾아」
그녀는 풀이 죽는다.
연기일지도 모른다.
요코「…………그치만, 타이치를 위해서……난……」
나를 위해.
내 이름을 대고 키리를 죽인다.
그것이, 결과적으로 나를 상처입힌다는 것을 모르는 채.
타이치「……항상 그래. 자기 생각만을 강요하고」
타이치「그게 귀찮을 때도―――」
요코가 손목을 꺾었다.
타이치「!!」
옆쪽에서 목을 뻗어 대화를 듣고 있던 키리.
그 얼굴 앞으로 손바닥을 가져간다.
돌이 맞을 줄 알았지만, 빗나가서 등 뒤의 수풀을 베어갈랐다.
키리「꺄앗!?」
타이치「……」
……빗나갔다.
역시 연기군.
협력해 주고 있나?
하지만 왜?
요코「아……미안……잘못했어……」
순간 혼란스러워진다.
그래도 예정대로 진행한다.
타이치「배신이야」
요코「……어……저기……그러니까……」
타이치「대화 중에 내 허점을 찌르려 하다니」
타이치「……또야」
움찔, 그녀의 어깨가 떨렸다.
타이치「소중하다고 말하지. 사랑한다고 말하지. 호의를 강요하지」
타이치「……하지만, 여차할 때는 배반해」
타이치「또야?」
요코「아냐, 그건……타이치 몸의 안전이……」
안절부절.
역시, 연기라곤 해도……제법인데.
둘이서 모든 역할을 다 하기도 했지 참.
자, 계속 잘해 봐.
내심으로 미소짓는다.
타이치「그 얘기는 이제 됐어!」
내 일갈에, 어린아이처럼 움츠러들었다.
…………………….
요코는 떠났다.
키리에게서 무기와, 저항하려는 의지를 모두 빼앗아.
타이치「……………………」
등 뒤에서, 긴장의 발생원이 아직도 오오라를 내뿜고 있다.
서서히 분노로 변해가는 그것을 의식하며,
타이치「……다친 덴?」
키리「왜」
내가 도와준 것에 대한 당황과 분노.
감정이 뒤엉켜, 소리치고 싶은 것을 필사적으로 참고 있는.
그런 목소리였다.
키리「왜……구해준 건가요……」
타이치「왜냐고 해도……좀 곤란한데」
타이치「돕고 싶었으니까, 그걸론 안될까?」
키리「장난치지 마세요……」
타이치「……장난치는 건 아닌데」
타이치「뭐, 글쎄. 이해는 안되겠지」
타이치「싫어하는 상대에게 도움을 받는다는 게」
키리「……」
타이치「정말로 날 죽일 생각이었어?」
키리「…………」
타이치「나참, 곤란한데」
키리「당신은 너무 위험해요」
타이치「위험?」
키리「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사람을 가지고 노는 당신은」
키리「이런 상황에서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당신은」
갑자기 목소리가 커지는 키리.
바로 톤을 낮춘다.
키리「……반 재미로, 사람을 죽이고 있어요」
공기가 가라앉는다.
증오가 스며들었다.
키리가 내뱉은 증오가.
타이치「이제 죽이지 않아」
키리「……네?」
타이치「이제 죽이고 싶지 않아」
키리「무슨……?」
타이치「키리, 나도 내가 무슨 존재인지는 알고 있어」
타이치「이제 파멸은 싫어」
타이치「그런 기억도 싫어」
타이치「그러니까 난 싸우겠어」
타이치「나하고, 싸우겠어」
키리「……………………」
키리「왜……」
키리「왜 절 구해준 거죠?」
다시 질문해왔다.
키리「놔뒀으면 좋았을 텐데」
키리「제가 당신을 적대시하고 있다는 건……알고 있을 텐데」
키리「절 도와도 아무 이득도 안 생기는데」
타이치「생겨」
타이치「키리가 살아서, 내 마음에 영향을 준다면……그게 이득이야」
타이치「전에 말했잖아?」
키리「……아……」
타이치「그리고 키리가 죽으면 미키가 슬퍼해」
타이치「그걸 바라진 않잖아?」
키리「……네」
음.
아주 약간이지만, 솔직한 키리다.
불필요하게 놀리지만 않으면 된다.
타이치「이쯤 해 두자. 키리도 그렇게 쉽게 이해하진 못할 테니까」
타이치「그건 그렇고, 굉장한 위력이네」
투석이 나무에 뚫은 구멍.
내부가 완전히 패여 있었다.
키리「……」
타이치「자, 가자」
키리「쿠로스 선배를……알 수가 없어졌어요」
타이치「그래」
그저 속이고 있을 뿐.
나를 위해서.
키리는, 인간이 한없이 올바른 상태로 있어주기를 바라니까.
타이치「그리고 요코가 한 말, 아마 진심일거야」
키리「?」
입가를 닦으며, 키리는 눈살을 찌푸렸다.
타이치「이제 무기는 금지. 안 가지고 다니는 게 좋아」
타이치「계속 가지고 다니면, 아마 진짜로 공격할 걸」
키리「…………」
어깨가 살짝 떨린다.
공포로.
타이치「내 곁에만 있으면 괜찮겠지만 말야」
타이치「제일 좋은 건, 나하고 적대하지 않는 거야」
키리「……적대하지……않아……?」
타이치「같이 잘해보자는 말이야」
키리「그런……」
타이치「싫어? 하지만 이것만은 어쩔 수 없어. 내멋대로 따라다녀 줄게」
키리「하나만 물어봐도 되나요?」
타이치「응?」
키리「유타카에 대해」
타이치「……아아, 그거 말이지」
타이치「지금이 아니어도 괜찮지 않을까?」
키리「……왜죠? 지금은 안되나요?」
타이치「키리의 마음이 진정된 때가 좋을 거야」
키리「진정된……」
타이치「것 같이는 안 보이니까 말야」
입을 다문다.
키리「저기……지난주의 게릴라 합숙……그건……?」
타이치「아―……시시했지, 그거」
타이치「무리하게 계획하고, 열심히 일곱 명을 모으고, 구슬리기도 하고 거짓말도 했는데……」
타이치「완전 꽝이었지」
웃어버린다.
키리는 괴물이라도 보는 눈초리로 날 바라보고 있다.
타이치「최악의 기분으로 해산했었어」
키리「……당신이 꾸민 일이잖아요?」
타이치「그래, 내가 꾸몄지」
키리「모두의 상처를 찌르기 위해?」
타이치「아냐」
타이치「……그저,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을 되찾고 싶었어」
키리「……못 믿겠어요」
타이치「그렇겠지」
키리「하지만, 의심하지도 않겠어요」
타이치「응……땡큐」
타이치「자, 이제 네 상처」
키리「아, 괜찮아요……만지지 마세요」
타이치「안 만지면 모르잖아, 읏차」
장딴지.
부어 있었다.
타이치「……내출혈이네. 좋은 부분에 맞았어」
타이치「걸으면 아프겠지만, 별 건 아냐」
타이치「그 외엔?」
키리「어깨를……」
타이치「벗어 봐」
키리「!?」
키리「여, 역시 짐승……」
어깨를 감싸며, 뒷걸음친다.
타이치「저기저기, 농담이야.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마」
키리「그렇게 미키를 비롯한 사람들한테 성희롱을……하고 있는 거네요」
타이치「미키는 말야―, 진짜로 싫은 건 딱 부러지게 거절한단 말야?」
타이치「그건 안돼―, 라고 낄낄 웃으면서 날 실컷 패는데?」
키리「……미키가?」
타이치「그러면 나도, 강요는 안 해」
타이치「여러모로 접촉을 해 가면서 경계선을 조절해 가는 게, 대인관계라는 거잖아? 아냐?」
키리「……아름다운 말로 치장하네요……결국은 성희롱을……」
타이치「키리찡은 너무 진지하단 말야」
타이치「어깨 만진다」
키리「에……꺅」
살짝 만져보니, 아파했다.
타이치「……이건 위험한 데에 맞았네」
타이치「어느 정도 아파?」
키리「……별로……팔도 잘 움직여요……」
타이치「머리 위로 들어 봐」
따른다.
타이치 「뼈에는 이상이 없는데」
키리「……선배가 힘을 너무 주고 있어요」
타이치「그렇게 힘 안 줬는데」
키리「……남자들은, 다들 힘이 세잖아요……시마 선배도, 그렇게 가는 팔로도 혼자서 모니터를 들어 올리고」
타이치「……그 녀석은 전 농구부라서……못 뛸 뿐이지 근력은 그대로 남아 있으니까」
타이치「뭐, 파스 정도는 붙여 둬」
키리「……굳이 말씀 안 해주셔도, 알아요」
타이치「좋아, 그럼 집에 가 볼까」
일어난다.
타이치「자, 가자」
마지못해하며 따라온다.
키리「아얏」
타이치「역시 아픈 거구나」
키리「……먼저 가세요. 혼자서 갈게요」
타이치「자, 업혀」
앉는다.
키리「……괘, 괜찮아요」
타이치「빨리」
키리「괜찮다니까요!」
타이치「요코가 있을지도 모르는데?」
키리「……그렇다고 해도……」
타이치「OK. 그럼 선배 명령. 빨리 업혀」
키리「……치, 치사해요」
타이치「빠―알―리」
마지못해하며.
키리는 업혔다.
타이치「집까지 데려다 줄게」
키리「……그건 힘들 것 같은데요……안 무거워요?」
타이치「이게 무거워? 농담해?」
무지하게 가볍다.
걷기 시작한다.
밟히는 초목의 소리가, 사각사각한 게 기분이 좋았다.
타이치「좋은 밤이네. 그치?」
키리「……글쎄요」

타이치「금요일인가」
세계가 되돌아가기까지, 앞으로 3일.
오늘도 할 일을 하자.
현관 앞에서, 키리를 보았다.
신발장 앞에서 멈춰서 있었다.
명백하게 나한테 들키려는 듯이.
말을 거는 게 좋을까나.
타이치「다친 덴 어때?」
키리「……괜찮아요. 조금 따갑지만요」
타이치「집에서 쉬지 그랬어」
키리「아뇨, 그렇게 심하진 않아요」
타이치「미키는?」
키리「……오늘은 안 올 것 같아요」
키리「좀 우울해진 것 같아서」
경험치가 0으로 돌아온 이후, 미키는 약해졌다.
아니, 원래 미키로 돌아온 거지만.
……사람들, 역시 사라졌구나.
타이치「……기운없나 보네, 그 녀석」
키리「네……무리해 왔으니까요, 여러모로」
타이치「덥기도 하고」
태양을 바라보았다.
타이치「바다 가고 싶네」
타이치「작년엔 갔었지. 기억 나?」
키리「……네」
타이치「재밌었어. 미키한텐 미안하지만」
키리「……네」
바다라.
올해엔 안 갔다.
혼자서 가봐야 쓸모가 없으니까.
남은 3일.
난 어두운 충동에 휩쓸리지 않고, 임무를 완수할 수 있을까?
건전한 것이 갖고 싶어졌다.
갑자기.
타이치「바다 갈까?」
키리「……어, 바다요?」
타이치「미키도 꼬셔서. 셋이서」
키리「……미키도……」
타이치「좋아, 가자!」
키리「그, 그렇게 멋대로……」
손을 잡는다.
키리「꺅?」
타이치「미키를 꼬시러 가자」
키리「그치만, 수영복 안 가져 왔어요」
타이치「미키 단지 주변에 있는 잡화점에 있어」
키리「제 의지는?」
타이치「너 말야, 살려도 줬는데 데이트 한 번 정도는 해 줘라」
키리「데, 데이트?」
타이치「양손에 꽃 데이트」
키리「……그, 그런 건……」
타이치「괜찮아 괜찮아, GO!」
키리「아, 잠깐, 선배……」
약간은 강제로.
그리고.
완전히 노이로제에 걸려 있던 미키를 끌어내,
아토믹 잡화에서 필요한 것을 슬쩍하고,
차를 조달해,
바다로 갔다.
타이치「으음, 좋은 바다군!」
승리 포즈.
타이치「그리고!」
미키「……으―」
키리「……으―」
타이치「아―, 좋아, 좋구나!」
청순파에게도 통할 듯한 완벽 사춘기 바디였다.
미키「뭐랄까……시선이 느껴지는데」
키리「느껴지네……」
미키「무슨 일 생기면 지켜줘?」
키리「미안해, 어려울지도」
보디빌더처럼 포즈를 반복하는 나는, 꽤 위협적으로 보인 것 같다.
타이치「그럼 놀아볼까」
미키「아―아―아―, 키리찡 공이다 공―!」
키리「안돼안돼, 지금은 무리야!」
타이치「에잇, 머리카락을 적셔주겠어!」
키리「안돼―!」
미키「아―, 공이 떨어진다―!」
키리「무리라니까―!」
타이치「우왓!」
키리「아, 찬스……에잇!」
미키「오―, 잘한다―!」
타이치「앗―차차차차!」
타이치「우와앗!?」
키리「……푸훗」
미키「아하하하하, 선배 두 번 연속으로 넘어졌다―」
타이치「아―, 놓쳤네」
타이치「서브권은 그쪽이야」
미키「좋―아, 갑니다―! 에잇―!」
타이치「격추!」
미키「아, 잘한다」
키리「나한테 맡겨……에잇」
타이치「오, 제법인데!」
키리「2대 1이니까요, 지지 않아요」
타이치「일단은 안정적으로 리시브」
미키「정밀사격~」
타이치「와풉」
미키「맞았다!」
타이치「어라, 방금 걸로 데미지 몇 점 남았지?」
키리「……앞으로 3점 남았어요」
타이치「위험한데……」
키리「그럼, 서브 갑니다」
타이치「오―, 어디 와 봐!」
미키「피융―」
타이치「야야, 처음 리시브 전까지는 몸에 공격은 없댔잖아!」
미키「에이―, 공격 안 했어요. 말로 했을 뿐이지―」
타이치「이런 비겁한!」
타이치「자, 리시브! 공격 개시!」
미키「옷샤」
타이치「쳇, 빗나갔나!」
키리「에―잇!」
타이치「아, 위험한 코스……」
미키「키리찡 합체공격!」
키리「오케이―」
타이치「와와왓……에잇!」
미키「우와―, 전부 피했다―!」
키리「……원숭이같아」
타이치「나도 간다―! 이봐, 내가 리시브하면 그쪽 공격권은 없어」
미키「아, 미안해요」
타이치「리시브하고서, 상대의 캐치를 노려 나도 공격이다! 에잇―! 1점~!」
키리「꺄악, 잠깐 선배! 그런 찌질한 물은 유효타로 인정 못해요」
타이치「음……슬슬 지친……건가?」
미키「후후훗―, 우리는 교대로 공격해와서 아직도 공격할 수 있지요!」
타이치「……에―잇, 그 정도의 핸디캡은 이미 파악한 상태다―!」
타이치「공격을 못 해도, 공만 받으면 충분해!」
미키「……라는데?」
키리「세네」
미키「응, 무지 세. 맨날 저러지」
키리「그래도 허세네」
미키「응, 속 빈 강정이야」
타이치「이봐―, 본인을 앞에 두고 욕하지 마―!」
미키「멈춰 있다, 저격―!」
키리「저격―!」
타이치「우와왓!」
미키「미키리 팀의 승리―!」
키리「……OK!」
비치발리볼과 서바이벌 게임을 조합한 고도의 놀이를, 우리는 즐겼다.
그리고 점심.
타이치「후아―……필드가 바다 속이라 힘들어―」
미키「미키도요―」
키리「기다렸지?」
키리가 돌아온다.
키리「마침 가스가 있어서, 불을 쓸 수 있었어」
미키「괜찮으려나―, 여기 멋대로 써도」
타이치「괜찮아, 상황이 이런데」
미키「……아―, 그 생각은 별로 하고 싶지 않아요~」
키리「선배, 제 미키를 괴롭히지 말아주세요」
타이치「네 거냐」
키리「그래요. 못 드려요」
타이치「반은 내 거야!」
미키「……분할통치당하는 패전국 같은 몸이 되어가고 있어……」
키리「인정 못 해요」
타이치「내놔―」
미키「와―앙, 아파요―!」
키리「……아」
타이치「와―아, 내 거―」
미키「아뇨, 선배, 이건 키리찡의 승리예요」
타이치「왜! 내가 잡아당겨서 이겼잖아?」
미키「좌우로 끌려가는 아이가 아파하는 걸 보고, 키리찡은 손을 놓았죠……그 다정함이야말로, 진짜 부모의 사랑이에요」
타이치「두―웅」
미키「그런 연유로 키리찡의 승리」
키리「……됐으니까, 빨리 먹자? 식겠다」
타이치「그건 그렇고, 컵라면에 통조림이라니 꽤 빈곤하네」
키리「사치스런 말씀 마세요, 이것도 나은 편이에요」
미키「해안가 가게답게 생겼네요, 라면」
타이치「그러게」
미키「아, 맞다 키리, 저건 뭐야?」
키리「응?」
미키「으―음, 그……」
힐끔 나를 본다.
타이치「들리기 싫은 이야기? 아니면 나한테 고백하려는 이야기?」
두 사람「안 해요」
타이치「……그 하모니가 묘하게 열받는데」
타이치「비켜 줄까?」
미키「아, 괜찮아요」
미키「……냐옹」
울었다.
키리「미―」
미키「그르릉 냐옹」
키리「……냐―냐―」
미키「냐!」
키리「냐―옹!」
미키「냥냥냥」
미키「냐앙……」
키리「……우냥?」
미키「냐―앙……」
타이치「고, 고양이어?」
미키와 키리는 냥―냥―거리며 울었다.
타이치「하, 하와왓……무서버―」
잠시 후.
미키「그렇군. 하루 일찍 끝났구나」
팔짱을 끼고, 고개를 붕붕 끄덕인다.
키리「……미키, 말하지 마」
키리「아, 미안」
타이치「그걸로 통한 거유?」
미처녀 걸즈는 독자적인 언어 체계를 조직해버린 건가!
타이치「나, 나한테도 알려 줘」
미키「……안돼요」
타이치「왜?」
키리「……선배는 고양이같지 않으니까요」
타이치「나 무지 고양이같아!」
미키「에―, 어디가―?」
타이치「좋아, 잘 봐」
눈을 가린다.
반짝―――
타이치「봐, 어두운 곳에서 눈이 빛나!」
지금 우리들이 있는 해안가 집은 어슴푸레했다.
미키「와―, 그리워라―! 거봐거봐 키리찡, 내 말대로지?」
키리「정말이다……빛나고 있어」
타이치「자격은 충분하단 거지」
미키「……신기해라―」
키리「렌즈예요?」
타이치「아니. 천연. 게다가 변환 자유」
눈을 감는다.
반짝―――
타이치「노멀 모드」
미키「우와―, 멋있다―」
키리「멋있……나?」
미키「그거, 어두운 곳에서도 잘 보이죠?」
타이치「응. 밤눈이 좋아져」
키리「고양이같아」
타이치「뭐랄까, 우연히 고양이눈 같은 이상증세가 일어난 거래. 의사의 말로는」
타이치「자칫했으면 어릴 때부터 실명했을지도 몰라」
키리「……그런 건가요」
미키「아, 잠깐 화장실 좀……」
후다다다닥―.
타이치「……나도 화장실」
꾸욱
타이치「우옷?」
키리「…………엿보기는 안돼요」
타이치「체엣」
…………………….
타이치「그래도 미키, 좋아보이네」
키리「……기분전환이 필요했던 거예요」
타이치「미키는 특별히 희노애락에 이상이 있는 것도 아니고」
타이치「지능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정상인하고 거의 같아」
타이치「사람이 사라진 것쯤은 참을 수 있을 거야, 아마도」
키리「……그건 어쩔 수 없네요」
타이치「키리는 안 외로워?」
키리「……전……글쎄요」
키리「악의는 사라졌지만……하지만」
키리「……」
타이치「그래. 우리들의 마음은, 주위 사람들의 압력이 있을 때 비로소 성립되는 거야. 이런 건……역시 안 좋지」
타이치「딜레마야」
타이치「마음이 없으면 사람은 짐승이 돼. 하지만……마음이 있으면 있는대로 또 힘들어」
타이치「지나치게 섬세해, 인간의 마음은」
키리「……평범하게 살았으면 괜찮았어요」
키리「하지만……이런 산 속에 몰아넣어지고……우리들이 나쁘다는 것처럼」
타이치「……뭐, 어쩔 수 없지」
타이치「그 중에 사람을 상처입히는 녀석도 있으니까 말야」
키리「……그렇긴 하지만」
타이치「그래도, 키리는 착한 아이야」
키리「……콜록!」
키리「가, 갑자기 이상한 말……」
타이치「키리의 머리는 푹신할 것 같아」
키리는 자기의 머리를 누른다.
키리「어……그런가요?」
타이치「만져도 돼?」
키리「……야한 기분으로 만지지는 말아주세요」
키리「알 수 있으니까요」
아는 거냐.
머리를 쓰다듬는다.
타이치「……푹신푹신하진 않네. 폭신폭신해」
키리「……차이를 모르겠어요……」
타이치「뭐, 어쨌든 힘내자!」
키리「어……뭘요?」
타이치「세상은 악의로 가득 차 있지만, 거기에는 분명히 키리의 영역도 있을 테니까」
타이치「……무기를 들고 뺏을 필요는 없어. 영역을 말야」
키리「???」
미키「아―, 사이좋아 보이게 놀고 있어―!」
타이치「사이 좋지롱」
안았다.
키리「꼭!?」
꼭?
미키「염장―!」
바동거렸다.
미키「그것도 복잡한 더블 염장지르기―!」
계속 바동거렸다.
그리고 미키가 뛰어들었다.
타이치「왓!」
키리「왓!」
미키「고르릉 냐옹♪」
빙글빙글 돌면서, 몸을 가까이 가져왔다.
타이치「너무 바싹 달라붙으면 흥분해버리니까 그만―……」
미키「바싹바싹」
타이치「야야」
미키「낼름낼름」
타이치「그만―!」
키리「그만해!!」
타이치「아―, 늦었다……」
아자―!
키리「꺄아아!?」
미키「커, 커졌어!?」
키리「싫어――――――!」
미키「미야옹―――――――!」
타이치「……너, 너희들이 세운 오층석탑이잖아―! 책임져―!! 내 잘못 아니니까아아―!!」

미키「재밌었어요―!」
타이치「음. 또 가자」
미키「예입!」
많이 기운을 되찾은 듯.
타이치「아―, 오늘 찍은 사진, 현상하는 데 얼마나 걸릴까?」
미키「빨리 하고 싶으세요?」
타이치「응. 가능하면 내일 밤까지」
미키「빠르다……그럼, 학교에서 현상할 테니까 거기서 드릴게요」
타이치「땡큐. 그럼 안녕」
키리「바이바이」
미키「바이바―이!」
미키가 단지 쪽으로 달려갔다.
타이치「키리도 바래다 줄게」
키리「……감사합니다」
타이치「음―, 배가 고프네」
키리「먹을 건 있으세요?」
타이치「아―, 있어있어. 토모키 상자에도 잔뜩 있고」
키리「……저기……들렀다 가실래요?」
타이치「어?」
키리「저희 집에. 저녁 정도는 드릴게요」
타이치「서비스가 좋네」
키리「……저기, 하고 싶은 얘기가」
타이치「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고?」
키리는 순간, 숨조차 쉬지 않았다.
키리「……네, 그래요」
키리「유타카에 대해서, 듣고 싶어요」
키리「깔끔하게 해 두고 싶어요……그러지 않으면 저, 당신에게 어떤 감정을 가져아 할지……모를 것 같아요」
타이치「그래. 음―」
아냐, 금요일은 너무 빠르다.
타이치「그럼 내일은 안될까?」
키리「내일, 인가요」
타이치「전부 말할게. 점심때 정도에 괜찮으니까 찾아와」
그래, 전부.
솔직하게.
키리「알겠습니다」
타이치「학교로」
키리「네, 쿠로스 선배」
예의바르게 인사한다. 키리답게.
허리를 펴고.
키리「오늘은 신세 많이 졌어요.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운동부 비슷하게.
타이치「응, 바이바이」
우리들은 헤어졌다―――

토요일이다.
……앞으로 하루.
앞으로 하루다.
교실에 얼굴을 내미자, 미키만 있었다.
타이치「키리는―?」
미키「아, 안녕하세요. 키리찡은 아직이에요」
타이치「그래」
타이치「사진 다 됐어?」
미키「지금부터 현상합니다―」
미키「장당 5천엔씩 받을 거예요」
타이치「비싸―!」
미키「아, 점심은 다같이 먹죠」
타이치「그래」
기다리기로 했다.
…………………….
낮이 되었다.
타이치「……두, 둘 다 늦잖아!!」
배 고픈데.
혼자서 먹어버릴까.
오늘은 주먹밥이었다.
김도 뿌려져 있고, 꽤 맛있어 보인다.
키리「안녕하세요, 쿠로스 선배」
타이치「……늦어」
키리「어……점심때가 괜찮다고 하신 건 쿠로스 선밴데요」
타이치「그랬나?」
그랬던 것 같다…….
키리「이야기를 들으러 왔어요」
타이치「뭐, 우선 밥을 먹자」
타이치「자, 2인분 정도는 있어」
키리「네……그럼, 잘먹겠습니다……」
타이치「잘먹겠습니다」
야금야금
타이치「요코는 어때? 괴롭히진 않아?」
키리「……」
타이치「괴롭혔어?」
키리「……집을 나올 때, 문 앞에……」
타이치「앞에?」
키리「……암퇘지, 란 낙서가 써져 있었어요」
타이치「꼬맹이냐……」
타이치「그것뿐?」
키리「지금까지는」
타이치「뭐, 그뿐이라면 괜찮을 거야」
키리「……그 분은, 왜 그렇게 투석을 잘 하는 거죠?」
키리「이상해요, 분명」
타이치「웬만한 건 다 잘해」
타이치「근본적인 완성도가 다르달까」
키리「특수한 훈련이라도 받았나요?」
타이치「아―, 받긴 받았지. 언젠가 꽤 오랫동안 외국에 가서 현지 군사 교관을 고용했었어」
키리「군사……」
놀란다.
타이치「투석도 그 때 배웠나. 어쩌면 양치기한테서 배운 걸지도」
타이치「아직도 아파?」
키리「……그다지」
타이치「그거 다행이네」
타이치「그 외에도 여러가지를 하고 있는 것 같아」
타이치「인생의 대부분을 거의 자기 훈련에 쓰고 있는 것 같아」
타이치「나도 일단은 격투가지만, 도저히 상대가 안 돼」
키리「격투 같은 것도 하셨나요?」
잘 물어보셨습니다.
타이치「가라데라 하지」
키리「……몰라요」
타이치「엇?」
키리「공수도의 짝퉁인가요?」
타이치「……크윽」
고함치고 싶은 걸 필사적으로 참는다.
공수도와 비교당하고, 잠자코 있는 건 처음이다.
타이치「키리양……자네가 에일리언에게 습격당하면, 구해줄 수 있는 건 나뿐이란 말이다?」
키리「에일리언이란 게 있나요?」
타이치「그건 사소한 문제야. 논점의 전환이지」
타이치「그리고, 아마 총기도 쓸 수 있을 거야」
키리는 눈을 꿈뻑거린다.
너무 갑자기 얘기를 돌렸나?
타이치「격투로 해도, 접근전이 되면 아마 순식간에 죽어버리지 않을까나. 여러가지 비기도 가지고 있고, 지난번엔 엄청 비싼 나이프도 샀었지」
키리「……그런……아무리 그래도 죽이기까지……」
타이치「자기도 날 죽이려 했으면서―」
뺨을 쿡쿡 찌른다.
키리「……콜록, 콜록!」
키리「그, 그런 뚜렷한 살의를 가진 건 아니에요!!」
타이치「괜찮아 괜찮아. 난 너그러우니까 용서해 줄게」
타이치「네가 날 싫어하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하니까」
키리「……」
키리「잘 모르겠어요……솔직히」
키리「목숨을 신세지고,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 이상, 이런 상황은 어쩔 수 없죠」
키리「하지만……그것과는 별개로……지금의 선배는……그……잘은 못 말하겠지만……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타이치「……정말로, 넌 보는 눈이 좋아」
타이치「장래엔 인사담당자가 되도록」
양어깨를 팡팡 두드려 준다.
키리「……이전엔 좀 더 가볍달까, 그런 유쾌하지 못한 느낌이었지만……」
키리「지금의 선배는 어딘가 다른 것 같아요」
이런이런, 심각한 얘기가 돼버렸네.
타이치「……아니―, 실패할 순 없으니까 말야」
고개를 끄덕인다.
타이치「지금 리셋이 되어버린다면, 다 포기하고 쾌락을 위해서만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드는데」
리셋이란 단어에, 키리의 미간이 살짝 찌푸러졌다.
타이치「……이제 지겨워, 그런 건」
타이치「적어도 내 약한 마음은, 그렇게 생각해」
타이치「내가 싫어, 난」
키리「……자신이 싫다고요?」
타이치「키릿찌가 생각하는 것하고 비슷한 이유 때문에」
키리「그 말은……」
타이치「하지만, 한 가지 해결 방법을 찾아냈어. 고육지책이긴 하지만」
타이치「……그걸 위해……난……결국 모두를……」
하늘을 본다.
빠져들 것 같은 푸른 하늘이다.
키리「……저기, 유타카는―――」
유타카, 라.
대답하기 어려운 화제였다.
타이치「뭐, 그러니까 앞으론 사이좋게 싸우자」
그렇게 말하고, 오른손을 내민다.
키리「……네, 네에」
당황해하며, 키리도 오른손.
악수.
악수는 평화의 상징.
타이치「그럼 휴전조약을 기념하는 파티다」
미키「조달 완료―!」
미키「……어라아?」
타이치「수고」
미키「벌써 먹고 있어……게다가 맛있어 보여」
타이치「내가 꼬셨어」
미키「……거짓말쟁이―……선배를 위해서 현상까지 했는데―」
타이치「수고!」
미키「우오오―!」
미키는 이 통렬한 배신에 절규했다.
미키「그럼, 이 대량의 음식물은 어쩔 거야―?」
미키는 토트팩의 내용물을, 책상 위에 우당탕 쏟아놓았다.
산처럼 책상 위에 쌓였다.
타이치「식량이라기 보단 과자잖아」
이 녀석은 참.
미키「에헷」
키리「……통조림 같은 건?」
미키「다 떨어졌어」
타이치「으―음. 과자로 점심을 때우다니……슬프다」
미키「그런가요?」
타이치「건강에도 안 좋아」
미키「그래도 미키는 과자 만세」
키리「난 벌써 배불러」
타이치「미안, 나도」
미키「……에―」
미키「그럼 혼자서 먹을거다 뭐」
삐졌다.
키리「……살쪄」
미키「……」
미키「살쪄도 과자 만세」
감자칩을 뜯는다.
미용에는 특히 위험한 건데, 그건.
타이치「내심으론 신경쓰네 뭐」
미키「그치만그치만~」
키리「울지 마……」
타이치「자, 그럼 이 주먹밥을 주지」
성인 남성용 사이즈니까, 미키에겐 딱 맞을 것이다.
내가 좀 부족하지만……뭐 어때.
미키「와아아, 주먹밥이다아아~」
주먹밥을 쥔 손에 매달린다.
타이치「먹고 싶어―? 응―?」
높이 쳐든다.
미키「앗, 먹고 싶어요―」
타이치「호이호이」
오른쪽.
미키「아우우~」
타이치「으랴으랴」
왼쪽.
미키「우아아~」
키리「……괴롭힘이다」
타이치「……자」
미키「아아, 맛있쪄」
허겁지겁 먹기 시작한다.
과자의 산이 남겨졌다.
타이치「……여자들치곤 불안한 식생활인데. 맨날 이래?」
키리「통조림이나 빵으로 때워요」
타이치「야채 먹어」
키리「없어요」
타이치「자, 토마토. 딱 두 개 있어」
미키「아아―, 토마토다~」
타이치「응―? 먹고 싶어?」
미키「먹고 싶슴다!」
타이치「호이호이」
오른쪽.
미키「아우우~」
타이치「으랴으랴」
왼쪽.
미키「우아아~」
키리「……역시 이 사람은……짓궂어」
타이치「후우」
키리「으응~~~」
미키「시큼해~」
키리「그래도 맛있어……」
미키「눈물날 것 같아」
키리「살아있길 잘했어」
미키「냐옹~」
미키와 키리가 입을『*』모양으로 하면서 토마토를 먹는 모습을 곁눈질로 바라보며, 나는 수통으로 목을 축였다.
타이치「…………」
보고 있다 보고 있다.
저 녀석도 참…….
질투의 화신…….
나에게 알려주려는 듯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건……위협이겠지.
미키「왜 그러세염?」
타이치「아니……이치하라식 첩보술로 감시당하고 있을 뿐이야」
미키「이치하라?」
타이치「Eㆍ이치하라를 정점으로 하는, 실력 좋은 여닌자 집단에 전해지는 스파이 기술……같은 건 몰라도 돼」
미키「?」
키리「꺄아아아아앗!?」
봐버렸나.
키리「선배, 서, 선배……어, 어라어라……」
타이치「괜찮아, 내 옆에만 있어」
키리「……네, 네에……」
미키「엥? 엥?」
키리「어, 어라……」
키리가 손가락을 내민다. 미키가「우잉?」하며 바라본다.
요코의 모습은 없다.
미키「……어? 아무것도 없는데, 왜 그래?」
키리「지, 지금 분명히……선배?」
타이치「시무라 현상이야. 미키는 이미 물리적으로 요코를 관측할 수 없어」
※시무라 현상=타이치 물리학. 안정되어 있는 특정 상황에서 발생하는 관측현상의 일종. 보이는 것은 보이지만, 안 보이는 것은 안 보이게 속성이 설정되어, 그것이 물리적으로 반영된다. 상황 안에 큰 변화가 일어나면 속성은 대개 사라진다.
키리「……큭」
키리는 심하게 긴장하고 있었다.
타이치「괜찮아괜찮아. 단순한 심술이니까」
타이치「무시해, 무시」
키리「네……노력할게요. 무시는 자신있어요」
미키「그럼 식후의 과자―!」
결국 먹는 거냐.
키리「저기……쿠로스 선배」
타이치「왜?」
키리「울고 있는데요……」
타이치「신경쓰지 마!」
키리「신경쓰여요……」
타이치「연기야. 속지 마. 로봇한테 사람이 없는 것처럼, 마이클한테도……아니 요코한테도 사람의 마음은 없어」
요코「……………………」
으―음, 시선이 따가운데.

그리고 키리와의 대화 시간.
미키가 은근슬쩍 사라진 틈에, 역시나 키리는 기다리고 있었다.
타이치「자, 가볼까」
키리「아, 그럼 잠시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타이치「그래, 나도 저쪽 화장실에 갔다올게」
타이치「……후우」
중요한 국면이다.
신뢰를 얻어야 하는데.
요코「타이치」
타이치「……너냐」
타이치「어쩐지 협력적이네」
요코「그래?」
타이치「내가 저쪽 화장실로 안 가게 말리러 온 거야?」
요코「……응」
솔직하다.
타이치「내가 키리하고 화해하는 거, 싫지 않아?」
요코「소용없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
요코「하지만, 당신이 바란다면……어쩔 수 없지」
그래?
진심이야?
요코「시간이 걸릴 것 같으니까, 5분 정도는 여기 있어」
타이치「……안 가」
타이치「모처럼 여기까지 안정을 유지했는데, 다 망치고 싶진 않아」
타이치「그리고……수류탄은 사절이니까」
요코「……」
생긋, 웃었다.
가끔씩 보이는, 본래의 하세쿠라 요코.
이렇게나 처절한 인간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타이치「일단 말해두지 않으면 좀 불안해서 말인데, 미안하지만」
요코「……방해하지 마, 맞지?」
타이치「응, 미안」
요코「안 해. 필요한 협력도 해 줄게」
타이치「……그래」
요코「추억을 만들면 좋겠어, 타이치」
모습을 감춘다.
기척을 감춘다.
존재가 사라진다.
보행술의 일종을, 신출귀몰을 현실화한다.
이미 인간이 아냐, 넌―――

1학년 교실로.
심호흡.
자, 속여 보자!
그리고―――
키리「……기다렸어요」
타이치「응」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두 사람의 거리.
지금은 채우지 말자.
키리는 날 거절할지도 모르니까.
키리「우선 저부터 먼저」
키리「전, 당신을 더러운 살인자라고 생각해 왔어요」
타이치「……」
키리「유타카를 죽였죠」
조용한 표정.
키리「유타카가 죽은 날, 전 옥상에 올라갔어요」
키리「그리고, 선배하고 유타카가 얘기하는 걸 봤죠」
타이치「…………」
얼지 마, 내 이성.
……격정은 가라앉고.
키리「그리고 유타카는 죽었어요」
키리「처음엔 눈치채지 못했어요. 하지만 나중에……옥상에서, 당신이……」
그 때의 일인가.
키리「그래서 당신과는 연관되고 싶지 않았죠」
키리「하지만, 당신이 먼저 다가왔어요」
키리의 두 눈에는, 망설임이 있었다.
키리「……그래서 전 생각했어요. 당신이……그……사람의 마음을 먹는 존재가 아닐까 하고」
타이치「흐음」
타이치「……사람의 마음을 부수고, 갈망을 채운다……는 뜻인가?」
키리「……그래요」
불안하게 떨리는 눈동자.
키리「그리고……당신이 저를 보는 눈」
키리「당시의 그 눈은, 절 얼어붙게 만들었어요」
타이치「응……그랬겠지」
날카로운 아이다.
그래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괴롭다.
금세 마음이 오염되어버린다.
그 날카로움이, 이 아이를 군죠로 몰아붙인 것이다.
키리「하지만, 지금의 당신은 모르겠어요. 정체를……아니, 지금 선배가 어떤 상태인지도……」
키리「어쩌면……어쩌면 지금의 당신은……」
창 밖에 손을 늘어뜨렸다.
키리「……하지만 전, 이럴 수밖에 없어요……」
들어올린다.
꾸러미.
천을 풀자,
키리「미안해요, 절 원망하셔도 돼요」
키리「그러니까, 부디 진실을 알려주세요」
타이치「……」
요코, 움직이지 마.
간절히 빌었다.
타이치「결론부터 말하자면―, 넌 그 방아쇠를 당겨도 돼. 너한테는 그럴 권리가 있어」
받아들이자.
나는 지금 또다시, 키리를 먹어치우려 하고 있으니까.
대가를 치르자.
자 키리, 난 목숨을 걸겠어.
전력으로 와봐, 후배.
타이치「유타카의 사인은, 자살이야」
키리「…………」
타이치「하지만 원인은 나」
끝없는 침묵.
잠시 후,
키리「……계속하세요」
우선 1장 클리어, 인가.
타이치「긴 이야기가 될 텐데」
키리「하세요, 선배」
키리「그리고, 절 해방시켜 주세요」
적대냐, 용서냐.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
키리의 마음은, 어느 한쪽밖에 받아들이지 않겠지.
침으로 목을 적시고, 난 이야기를 시작했다.
타이치「하세쿠라라는 집이 있었어, 옛날에」
타이치「큰 집이었지. 서양식이고. 키리하라 집을 열 배 정도 크게 한 듯한」
타이치「대부호였어」
타이치「난……어린 시절에 어머니를 잃고, 거기에 거두어졌어」
타이치「그 집에서 일하는, 어머니의 먼 친척뻘 되는 관리인 부부에게 말야」
타이치「낡은 풍습이 존재하는 집에서」
타이치「하인의 아이는, 역시 하인이었어」
타이치「난 어린애였으니까, 그 집 아이들의 놀이상대 비슷한 역할이었지」
타이치「요코는 그 집의 막내였어」
…….
………….
…………………….

그녀는 언제나 혼자였다.
가족이나 하인 누구와도, 친해지려 하지 않았다.
고고한 공주―――
난, 그녀를 속으로 그렇게 부르고 있었다.
말을 나눈 적은 없다.
신경은 쓰이고 있었다.
저택이 어떤 사람들에게 유지되고, 어떤 경위를 더듬어 이런 상황이 되었는지, 나는 모른다.
다만 그곳은, 시간의 흐름에서 격리된 낙원 같은 장소였다.
사는 사람들도, 속세를 초월한 사람들.
때때로 나는 그녀들의 초대를 받고,
몸치장을 하고, 차를 즐기고, 사람을 초대하고, 산책.
매월 초에는 대략의 서적ㆍ의류ㆍ기호품이 도착했다.
넓은 정원.
정원사들도 있었다.
인가와 떨어져, 땅값이 싸다는 것을 감안해도 지나치게 광활했다.
어린 나에게, 저택은 광대한 세상 그 자체였던 것이다.
실제로, 저택 시절 이전의 기억은 없다.
세상과 저택은 같은 크기였다.
어느 무렵부터인지, 난 사모님들에게 귀여움을 받게 되었다.
여자 같은 생김새라며.
또한 내 흰 머리카락과, 가까이서 봐야 아는 이상한 빛을 내는 눈동자도, 그녀들을 만족시켜주었다.
소녀가 입을 법한 (그것도 아주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다녔다.
그리고 차의 상대.
어린아이가 차 맛을 알 리는 없다.
그래도 같이 어울렸다.
설탕 과자처럼 달콤했던 사람들에게, 거스른다는 선택은 없었다.
……적어도 싫지는 않았다.
지루하긴 했지만, 편했으니까.
그렇게 어린아이들을 목마태우고 머리카락이 잡아당기는 장난감 업무에서 벗어난 나는, 새 일로써 인형 업무에 착수하게 되었다.
그런 나를, 그녀……고고한 공주는 싸늘한 시선으로 보고 있었다.
아니, 보지도 않았다.
흥미가 없다는 듯, 시선은 언제나 나를 스쳐 지나갔다.
하세쿠라 요코.
막내딸.
하지만 가족에게는, 그렇게 귀여움받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오히려 미움받고 있었다.
분명히 그녀는, 몽환 세계의 주민인 사모님들과는 다른 세계에 살고 있었다.
……현실이라는 세계에.
한 번, 청소용 인부로 불려갔던 적이 있다.
인형을 하기 이전의 일이다.
하인들 틈에 섞여 청소를 도왔다.
출퇴근하는 사람들은 안 썼기 때문에, 다반사였다.
10시와 3시에 티 타임을 1시간씩 비워 놓고, 차례로 방을 청소해 나갔다.
저녁에는 그녀의 방에 도착했다.
처음으로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다.
요코『……여기는 됐어』
짧고 담담했다.
기능적.
하지만, 매력적이었다.
힐끔 쳐다본 방 안은, 전혀 여자 방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많은 수의 컴퓨터.
사방의 벽을 덮고 있는 책장과, 그걸로도 부족해서 바닥에 산더미처럼 쌓인 서적.
넓은 공작대와, 연마된 공구.
꽤 넓은 방 안은 잡다한 지식과 기술로 가득 차 있어, 비밀기지를 연상시켰다.
역시 단 하나뿐인 이질적인 사람은, 다른 세계에 있던 것이다.
예쁜 옷을 입고, 여자아이의 말씨를 쓰며 차 상대를 하고 있을 때, 하세쿠라 요코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다.
말수가 적은 노부인이 대답했다.
막내아들의 딸이라고.
젋고 쾌활한 부인이 대답했다.
원해서 태어난 아이가 아니라고.
수다스런 세자매가 재잘거렸다.
도련님과 젊은 하녀와의 숨겨진 사랑 이야기와, 그 전말을.
누구도 따르지 않고 사랑을 모르는 아가씨의 배경과, 머지않아 찾아올 비극적 결말.
하세쿠라의 피를 가졌지만 하세쿠라의 일원은 아닌, 그런 오점에 대한 한탄.
요컨데 버려진 아이었던 것이다.
아무도 그녀에게 말을 걸지 않고, 그녀 또한 누구에게도 말을 걸지 않았다.
종기였다.
그녀의 친아버지인 도련님이란 인물은, 해외에 유학을 갔다고 한다.
어머니인 하녀는……죽었다.
아무것도 될 수 없는 소녀.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소녀.
상처입는다?
반대. 상처입지 않았다.
하세쿠라 요코는 강했다.
전혀 개의치 않았다.
아마 눈치채고 있었을 것이다.
세계가 모형정원이란 것을.
…………………….
인형생활 틈틈이, 나는 도서관에 다녔다.
영향을 받은 건지도 모른다.
귀부인들에게는 예절과 차를 배웠다.
하지만 지혜와 기술과 진실은, 그곳에는 없었다.
그것을 채우기 위해, 쓰는 사람이 적은 도서실에 틀어박혔다.
요코와는 자주 만났다.
여전히 대화는 없다.
어딘지 모르게 거북해서, 내가 먼저 다가가진 않았다.
좋아하기는 했지만, 사이가 좋아지고 싶다고 바라지는 않았다.
내 미적 경향은, 이 무렵에 확립된 것 같다.
뭐라고 해야 하나……자립하는 것에 매료되었다.
혼자서 살아가는 것과, 힘에.
지식과 기술에는, 그런 힘이 있다.
사람은 모인다.
모이는 것을 갈망한다.
그리고 동시에, 성역을 가지려 한다.
침해되지 않는, 자신만을 위한 장소를 바란다.
그러나 사람과 접하면 경계선은 흔들린다.
영토는 줄어들이고 하고 늘어나기도 한다.
불쾌.
모순.
일반적인 가치관으로는, 호화로운 천 명의 군대보다, 한 사람의 영웅이 사랑받는다.
유일한 절대자. 영웅.
사람이 바라는 것.
동경이라는 형태를 취한, 갈망에 지나지 않는다.
혼자서 살고 싶은 건가, 모여서 살고 싶은 건가……사람은 그 어느 쪽에도 YES라고 대답할 수 있다.
쓸데없는 이야기는 이쯤 해 두고.
도서실에서 그녀가 읽은 책을 따라 읽었다.
동경으로.
또는 소녀의 완벽함에 대한 질투로.
서적의 내용은 너무 어려워서 거의 알 수 없었다.
그래도 계속 읽었다.
도서관에서는 몇백 번이나 만나고, 엇갈렸다.
한 번의 대화도 없는 공간을, 우리들은 공유해 나갔다.
그런 시절이, 몇 년 동안 계속되었다.
그리고.
낙원에는 붕괴가 찾아온다.
이것은 인류 최초의 낙원부터 이어져 온 것이므로, 피할 수 없는 섭리일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저택의 당주인 하세쿠라씨의 급속한 몰락에 의해.
비극은 시작되었다.
하세쿠라가의 사람들은 사라졌다.
하인들은 남겨졌다.
하세쿠라 대신에 들어온 것은, 신흥 대부호와 그 친족들이었다.
난폭한 사람들이었다.
남녀노소 골고루 들어왔다.
전원이 난폭한 기질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이 온 지 3일만에, 하인 한 명이 폭행당했다.
사건이었다.
그래도 여기는 모형정원이었다.
폐쇄된 공간.
독자적인 질서가 생겨났다.
광대한 토지에 둘러싸인 저택쯤 되고 나면, 치외법권을 가진다.
날마다 어떤 향연이 펼쳐졌을까.
저택의 방 중 하나는, 원래는 무도회에 사용되던 홀이었다.
하세쿠라가 사람들은 조그만 파티를 좋아해서, 자주 사용되곤 했다.
난폭한 사람들은, 여기에서 다른 무도회를 열었다.
고상한 대화도 양질의 요리는 없었고.
대신에 타락과 퇴폐가 채워졌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젊은 하인 부부가 있었다.
아내가 윤간당했다.
아니.
연이어 윤간당했다.
온갖 방법으로 육체를 배출구로 사용해, 종속시켰다.
남편은 저항했다.
아내를 살리려 경찰에 연락을 했다.
경찰은 개입하지 않았다.
아마 귀찮았을 것이다.
특별히 매수된 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저택의 인터넷으로 조사해 봤다.
경찰의 이러한 대응에 의해 간과된 범죄는 무수히 많았다.
민간의 권리의식이 비대해짐에 따라, 쉽사리 개입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사소한 실수를, 부모의 원수를 대하듯 추궁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이다.
움직이지 않는 게 제일.
분명 태만이지만.
불완전한 인간의 조직에게는, 이 정도가 한계라고 난 생각한다.
성실함은 필요하지만.
자신을 돕는 것은, 자신의 유능함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화도 나지 않는다.
커다란 손해를 입지 않았다는 가정 하에, 타인의 서툰 솜씨나 얕은 견식에 화를 낸다는 행위는.
마음의 일부를 타인에게 위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그것이 보통.
평범하다는 것이다.
사람의 한계에 기인한, 불합리하고 불완전한 룰에 몸을 맡기는 일이기도 하다.
……따뜻한 요람일 리는 없다.
특히 폐쇄 공간에서는, 정상적인 윤리마저 빛을 바랜다.
난폭함이 일상으로 변하기 쉽다.
거기에 맞서려면, 강인한 자아.
흔들리지 않는 자아 시스템이 필요했다.
……그녀처럼.
그럼 다시 이야기로.
아내는 위안부가 되어, 임신을 당하고 낙태를 당했다.
남자들을 기쁘게 하는 방법을, 잔뜩 몸에 익혔다.
그녀는 안 웃게 되었다.
하인들의 일에도 참가하지 않게 되었다.
의류 착용을 금지당해도, 그녀는 선선히 따랐다.
그녀의 몸에는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질나쁜 문신이었다.
성기를 가리키고, 그 소유자는 남편이 아니라고 새겨 놓았다.
난폭한 사람들은, 그 방면에 상당히 유능했다.
서서히 마음도 가라앉았다.
남편은 최후의 수단을 썼다.
아내를 데리고 도망친 것이다.
너무 늦었다.
3일만에 붙잡혔다.
그들은, 남편이 언제 이성을 잃을지 내기를 하고 있던 것이다.
남편은 죽었다.
아내가 윤간당하고 있는 자리에서.
시체는 뜰에 묻혔다.
남자들은 킥킥거리며, 벚나무 뿌리 밑에 시체를 묻었다.
모두 윤리가 파괴된 사람들이었다.
어느 날, 한 명의 남자가 가족을 데려왔다.
신캐릭터 등장. 유아 성애자였다.
쌍검술과 새디스트라는 두 개의 옵션을 달고 있었다.
새디스트라서 S라 부르겠다.
난 S의 눈에 띄었다.
다시 여자아이의 차림을 하게 하고, 무도회에 참가시켰다.
이번에는 차가 아닌, S의 욕망의 상대를 했다.
S는 다른 사람에게 시키는 것도 좋아했다.
여자아이 같은 나를, 게이와 상대시켰다.
반 장난으로 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가끔씩 눈을 떠버리는 사람도 있었지만 (웃음)
무도회에서는 어떤 지독한 행위를 하는지가 주목을 받는 포인트였다.
초등학교의 왕따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집단 안에서는, 이런 일은 상당히 높은 확률로 발생한다.
뭐, 집단심리란 것이다.
사물에는 메리트와 디메리트가 반드시 있다.
표면적인 선악을 넘어서.
머지않아 S의 S수위는 급상승.
어린아이를 데려왔다.
S의 아들이다.
학교에서는 왕따를 당하고 있었다……고 한다.
난교의 분위기에 압도당한 것도 잠시, 나를 보고는 미소지었다.
이상 흥분 현상일까.
시키는 대로, 오히려 적극적으로 그 녀석은 참가했다.
피를 확실히 이어받았는지, 그 재능은 바로 발휘되었다.
조숙한 정력과 더해진 탓도 있었겠지만.
바로 열중하기 시작했다.
난 모두에게 웃음거리가 되었다.
몇주간이나.
난 계속 공격을 받았다.

키리「…………」
타이치「이제부터는, 조금 괴로워진다?」
키리「……네?」
얼빠진 목소리였다.
키리「방금까지 한 게, 괴롭지 않다는 건가요?」
타이치「별로」
키리「선배는……그럼……」
타이치「그리고 망가져버렸지, 나」
키리「거짓말……」
타이치「뭐, 나에 대한 건 됐고. 지금은 유타카 문제야」
키리「네, 에……」
눈물을 닦는다.
타이치「S의 아들이란 게……그……」
얼버무려봐야 의미는 없다.
타이치「음―……유타카, 였던 거야」
키리「……………………」
멈췄다.
손의 떨림과 함께.
물론, 침착해진 것은 아니다.
가련할 정도로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다.
키리「……무, 무슨 말씀을……?」
반웃음.
감정마저 컨트롤되지 않는 듯한 모습.
타이치「잠깐 쉬자」
나는 의자에 앉았다.
키리「……어……네?」
키리의 당황한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
타이치「슬슬 해볼까?」
키리「……네」
느릿느릿, 키리는 일어났다.
이미 무기는 들고 있지 않다.
타이치「질문 있어?」
키리「……유타카가……그, 선배를……?」
타이치「사실이야」
타이치「뭐, 분위기 탓도 있었겠지. 어린 꼬마애가, 아버지한테 반항하긴 어렵잖아?」
키리는 입가를 눌렀다.
타이치「유타카의 불행은, 그런 아버지를 가져버린 거였어」
키리「……들은 적, 있어요……신카와 가문의 소문……그치만……그치만!」
타이치「키리 말대로, 세상에는 악의가 너무 많아」
타이치「유타카는 희생자야」
키리「하지만……그런 얘기, 들어본 적도 없어요. 쭉 함께 살아오면서, 그런 일이 있었다니―――」
타이치「기억상실」
키리는 입을 뚝 다물었다.
유타카가 기억상실이란 것은, 키리도 알고 있을 것이다.
키리의 내부에서, 모호한 채로 방치되어 있던 조각들이 단번에 결합된다.
타이치「그리고 나, 그 녀석이 왜 다리를 다쳤는지 알고 있어」
키리「……네?」
타이치「그 자리에 있었으니까」
키리「……그럼……선배는……그걸 알고?」
타이치「아녀?」
타이치「난 유타카가 살아남았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고……유타카란 이름도 잊고 있었어」
타이치「……그 녀석하고 만난 건 우연이야」
타이치「나도 여장하고 있었으니까……유타카도 못 알아봤던 것 같지만」
타이치「그리고 뭐, 여러가지 일이 있어서 나도 풀려나고……우여곡절 끝에 여기까지 온 건데」
타이치「생각해 보면 당연해」
타이치「유타카도 나도, 그 일로 마음이 부서지지 않았을 리가 없어」
타이치「만나는 건 필연이었을 거야」
키리「……못 믿겠어요」
타이치「유타카가 누군지 안 건, 친해지고 나서부터야」
키리「……그래서……죽였어요?」
타이치「바로 살의가 끓어오른 건 아냐」
타이치「과거의 일이고」
키리「그러면……왜?」
타이치「괴로워하고 있으면, 봐 주려고도 했어」
타이치「하지만 나와 놀고 있을 때의 그 녀석은, 행복해 보였어」
키리「……!!」
키리「그 날……저한테 질문한……행복하냐는 건……?」
타이치「잘 기억하고 있네」
웃는다.
타이치「응. 그런 의미야」
타이치「나는 그걸로, 유타카가 행복하다고 판단했어」
타이치「증오로 불타오른 건 아냐」
타이치「그냥……괜히 찔러보고 싶었을 뿐이야」
키리「……으으……」
타이치「맑은 날이었지」
타이치「네가 본 대로, 그 때 옥상에서 전부 이야기했어」
키리「……으……」
타이치「그 녀석은 말했어. 어떻게 해야 용서해 줄래?」
타이치「따질 생각은 없었어」
타이치「……그저, 하나 의문이 있어서」
타이치「물어봤어」
타이치「저기, 하나 질문이 있는데……왜 지금 당장이라도 안 죽는 거야?」
타이치「……라고」
키리「…………」
타이치「그랬더니……그 녀석 진짜로 자살해버렸어」
키리는 주저앉았다.
다가가서, 속삭여주고 싶은 기분.
꾹 참는다―――
타이치「증오는 없었어」
타이치「하지만……사람을 공격하는 행위로 쾌감을 얻는 녀석들을……난 인정할 수 없었던 거야」
타이치「유타카는 그 어느 쪽도 아니었는데……난……사실은……」
타이치「증오하지 않았다면……그냥 놔뒀어도 괜찮았을 텐데……지금은 이렇게 생각해」
타이치「유타카가 있었다면……난 좀 더, 쓸만한 인간이 되었을지도 몰라」
키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쥐어짜내는 듯한 통곡.
타이치「좋은 녀석으로 변해 있었어, 그 녀석……하지만, 내가 너무 망가져 있었지」
타이치「아무리 겉을 치장해도, 난……키리가 말한 대로 괴물이야」
타이치「그러니까 쓸모없는 놈이야」
타이치「그러니까……난……」
마음은 울지 않는다.
눈물도 나오지 않는다.
그런 나를, 용서할 수 없다
아니.
용서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타이치「미안해, 키리」
키리「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으아,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타이치「당시 그 어두운 분위기에서, 유타카가 자기 자신을 유지하게 위해서는 자기보다 약한 나를 잡아먹을 수밖에 없었어」
타이치「그리고 이번엔 내가, 유타카를 먹은 거지……」
타이치「나하고 유타카는, 서로를 먹어치운 거야, 키리」
키리「……」
키리가 안겼다.
갑자기……꼭 껴안겼다.
키리「죄송해요……」
키리「죄송해요, 죄송해요, 죄송해요!」
키리「죄송해요……」
타이치「사과하지 마. 그럴 문제가 아냐……」
타이치「울어 줘, 내 대신에」
키리의 목소리는 더욱 더 높아졌다.

집.
언제나 외로운 공간에, 오늘은 꽃이 피었다.
타이치「자, 들어와」
키리「시, 실례합니다……」
그런 후에, 키리는 우리 집에 왔다.
키리「우와」
혼돈을 사랑하는 내 방.
손님은 대부분 놀란다.
타이치「앉아」
키리「……어디에 앉죠?」
타이치「자」
파리채를 건넨다.
키리「……네?」
타이치「앉고 싶은 자리에 공간을 만들어」
키리「……………………」
자기책임.
키리는 파리채로 만든 틈새에, 어색하게 정좌한다.
키리「……남자들은 참」
타이치「잠깐만 기다려―」
아래층에 내려가 토마토를 가져온다.
타이치「자, 비타민」
키리「……감사합니다」
토마토를 깨문다.
타이치「편하게 있어도 돼」
키리「……네」
타이치「그래, 할 말이란 건 뭐야?」
키리「보상에 대해서예요」
타이치「보상이라」
예상했던 거긴 하지만.
키리「유타카가 한 일, 그리고 제가 선배에게 해온 태도, 오늘의 살인 미수도 포함해서」
키리「……경찰도 없으니까……선배가 결정해 주셨으면 해요」
키리「유타카와 저, 두 사람 몫을」
타이치「즉 소원을 두 개 들어주겠단 거네」
키리「……몇 개라도 괜찮아요」
키리「죄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요」
타이치「별로 죄라고 할 건 아닌데」
유타카가 한 일은 이미 지워진 셈이고.
타이치「맞다……우선 하나, 부탁이 있어」
키리「뭔가요?」
타이치「내일 아침……나를 잠깐 따라와 줘」
키리「……네, 알겠습니다」
타이치「질문은?」
키리「없어요. 따르겠습니다」
타이치「……음―」
타이치「뭐, 산에 올라가는 것 뿐이야」
키리「산이요?」
타이치「응, 합숙했던 데 있지? 거기까지 갈 거야」
키리「네, 알겠습니다」
됐다.
키리「다른 건 없으신가요?」
타이치「음……다른 거?」
생각 안 했는데.
어쩌지?
키리「뭐든 괜찮아요」
타이치「……그럼」
입술을 댔다.
키리「……!?」
딥&장시간은 위험하다. 수위가 내려가니까.
타이치「이 정도로 끝」
몸을 떼어놓는다.
키리「앗, 저기, 저기?」
타이치「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
키리「그, 그, 그치만」
타이치「괜찮아. 어쨌든 이걸로 소원은 이뤄졌어! 해냈다! 미소녀 킬러. 굉장해―, 멋져―, 오빠!」
쿨 다운.
타이치「……자자. 이만 가봐」
침대에 들어간다.
키리「……선배!」
팔을 잡혔다.
타이치「내일 6시에 우리 집에 와서 날 깨워 줘」
키리「……그러면……여기 있을게요」
타이치「키리씨. 나한테도 사정이란 게……」
키리「……바보 같은 사람」
타이치「으……으읍!?」
이번엔 키리 쪽에서, 였다.

그리고 아침―――
눈을 뜬다.
타이치「……키리?」
없다.
분명히 어젯밤엔…….
키리「안녕하세요, 타이치 선배」
타이치「……타이치 선배, 라」
키리「저기, 아침식사를 준비하려 했는데, 좀……」
타이치「아―, 아무것도 없지 참」
키리「감자가 있었어요」
타이치「으윽, 그렇게 좋은 것이?」
그러고 보니 있었지.
…………………….
키리「쪄 봤어요」
타이치「……호―, 호―호―」
갑자기 식욕이 솟아올랐다.
키리「소금 여기요」
타이치「응, 같이 먹자」
수북한 감자.
키리「맛있네요」
타이치「응, 맛있다. 김이 피어오르네」
키리「버터가 있으면 좋았을 텐데요, 역시」
타이치「뭐어, 좀만 있으면 얼마든지 먹을 수 있을 거야」
키리「에……어떻게요?」
타이치「아……으―음……뭐, 이러저러해서」
키리「???」
타이치「우오―, 잘먹었어」
키리「변변치 못했습니다」
타이치「아, 이런, 빨리 준비해야지」
키리「……아, 산에 간다고 하셨죠」
키리「싸 갈게요, 이거」
타이치「아―, 냅둬냅둬, 몸만 가면 돼~」
키리「네에……」
타이치「근데……왜 가는지 궁금하진 않아?」
키리「……네, 안 궁금해요」
타이치「너무 신경쓸 필요 없어. 죄라는 건, 단순한 개념에 지나지 않으니까」
키리「이런 말을 하면, 혼날지도 모르겠지만」
키리「……저, 조금 기뻐요」
타이치「기뻐?」
키리「선배가 유타카를 친구라고 생각해 주신 게요」
타이치「……아―」
키리「학교에서는 쭉 같이 버텨 왔으니까요」
타이치「일심동체였구나」
키리「네, 그랬죠」
타이치「음―, 유타카가 없어지고……그래서 미키하고 일심동체가 된 거구나」
키리「네」
키리「……비겁한가요, 이런 건?」
타이치「그럴 리 없어. 뭐, 내 보증은 별 쓸모는 없겠지만 말야」
키리「그런 건……」
타이치「자, 등산등산. 가자」
키리「네」

키리「맞다, 선배」
타이치「응―?」
키리「……애노예라는 거, 한번 돼보려고 하는데요」
타이치「풉」
침이 튀어나왔다.
타이치「왜 그래, 키릿찌!」
키리「벌은 필요하잖아요?」
키리「그리고 선배, 자주 애노예 애노예 그러셨잖아요」
키리「불만은 없으실 텐데요」
타이치「있어있어, 그거 농담이었어」
키리「많이 부족하지만, 잘 부탁드립니다」
타이치「부탁받기 싫어!」
키리「아핫」
타이치「……너 나를 놀린 거냐?」
키리「아뇨, 천만에 말씀」
타이치「훗……일단락만 지어지면 또 괴롭혀 주마」
키리「하세요!」
타이치「치마도 들춰주겠어」
키리「하세요!」
타이치「으―음……야한 장난 풀세트를」
키리「하세요!」
타이치「……저기 말야 키리!」
키리「뭐든지 하세요!」
키리「……안되나요?」
타이치「안되는 건 당연히 아니지만……그러면 내가 안되니까」
키리「네……?」
타이치「그리고 그런 거라면, 이미 한 명 있으니까」
키리「아……하세쿠라 선배……」
키리「저기, 하세쿠라 선배하고 타이치 선배는……그……」
타이치「스토킹당하고 있어, 나」
키리「귀찮으세요?」
타이치「무지 귀찮아. 쫓아버리고 싶어」
키리「……그건 어때요?」
타이치「그거?」
키리「제가 그 사람을 쫓아드릴게요」
타이치「……저기저기, 그 녀석은 디피컬트 교단 소속이야……키리찡은 상대가 안 된다고」
키리「특훈할래요. 여러가지 배우고」
타이치「무리야……스토커로서의 재능이 너무 달라」
키리「애노예니까, 사랑으로 승부할래요」
타이치「……음―, 그치만 키리는 겁쟁이에 마음도 약해서……어려울 것 같은데」
키리「……어……그런 건」
타이치「그것도 나에 대한 의존이 되는데?」
키리「…………」
타이치「다 괜찮은데, 나한텐 안돼, 키릿찌」
키리「……그럼, 어떡해야……제가 있을 곳이……」
타이치「키릿찌가 있을 곳, 한 군데 있어」
타이치「지금 가고 있는 데야」
키리「여기가……?」
타이치「자, 다 왔다」
키리「……사당, 이네요?」
타이치「뭐, 그 자체의 목적은 아무래도 좋아. 여기 여기」
키리「……아무것도 없는데요?」
타이치「이거 주머니에 넣어」
키리「라디오인가요? 네……」
타이치「자, 키리……난 여기서 관측하고 있을 테니까, 똑바로 걸어가 줄래?」
키리「네?」
타이치「여기를 똑바로」
키리「알겠습니다……?」
타이치「천천히. 내가 지시하는 자리에서 멈춰 줘」
키리「……네?」
키리「천천―히, 천천―히」
타이치「좀 더 앞」
키리「천천히」
타이치「조금 오른쪽!」
키리「여긴가요?」
타이치「응―응―」
타이치「그대로 미속전진 0.5」
키리「우왓, 모르겠어……천천히, 일려나?」
타이치「거기서 스톱」
키리「네!」
좋아, 자리는 OK.
키리「?」
이제 눈을 바꾸면…….
타이치「있잖아 키리」
키리「네?」
타이치「있을 곳」
키리「네? 뭐라고요―?」
타이치「있을 곳, 키리. 네가 있을 곳을 찾았어」
키리「있을 곳?」
타이치「얘기했잖아? 마음의 딜레마에 대해서」
키리「네에?」
타이치「넌 너무 섬세하고 날카로워서, 보통 사람보다 더 많은 것을 봐버리겠지만」
타이치「그 눈이라면, 소중한 사람을 찾아낼 수 있을 거야」
키리「하핫……황송합니다!」
키리「그치만, 소중한 사람은 이미 있어요!」
타이치「아냐……이제부터, 만드는 거야」
타이치「그리고, 나중에 미키도 보내 줄 테니까」
키리「네?」
타이치「괴로운 일이나, 불합리한 일이나, 악의로 인해서」
타이치「희비가 교차하겠지만」
타이치「그래도 아무것도 없는 것보다, 사람의 세계가 훨씬 나은 거야」
타이치「알았지?」
타이치「그러니까, 힘내」
키리「선배? 아까부터 무슨 말이에요?」
타이치「널 만나는 것도, 이걸로 마지막이 되겠지만」
타이치「너한테 받은 추억은, 고맙게 써 줄게」
키리「의미를, 모르겠는데요……?」
타이치「건투를 빈다!」
경례.
키리의 표정에, 불안함이 깔린다.
키리「무……슨……?」
키리「무슨 일을 하려고 하시는 거예요!?」
키리가 내 쪽으로 뛰어오는 것보다 빨리.
주홍빛이 퍼지고.
그리고.
반짝―――
난『관측』했다.
눈을 감고, 뜨자―――

키리「무슨 일을 하려고 하시는 거예요!?」
키리「……어라?」
키리「어……선배? 어디?」
키리「선배! 선배도 참!」
키리「어라……없어……어라?」
키리「……거리가……어?」
키리「사람들이, 있어?」
키리「라디오가……들어왔다……」
키리「전파가!?」
키리「이건……?」
키리「선배! 선배! 선배! 선배선배선배선배!」
키리「하아……타이치, 선배……?」
키리「……없는 거야?」
키리「거짓말, 왜……」
키리「없어진 거야……」
키리「……영문을, 모르겠어……」
키리「아아아아아――――――――!!」
키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키리「하아, 하아……왜……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타이치「……」
타이치「잘 된 거야, 이걸로」
타이치「키리야―」
한 번 불러 봤다.
당연하지만, 대답은 없다.
타이치「음」
나만이 관측을 할 수 있다.
그리고 다세계는, 한없이 같은 축에 겹쳐진다.
그러니까 키리는 바로 곁에 있는 것이다.
서로를 지각할 수 없는 것뿐.
같은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이어질 수는 없지만.
관측한 순간, 현실에 고정된다.
아니.
모든 가능성이, 처음부터 같은 축에 있었다.
볼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없는가……그것뿐이다.
자.
난 다시 시간을 기다리자.
캠프로 돌아가, 텐트에 들어간다.
금방이다.
잠에서 일어나면,
또, 다음주―――

그리고, 나는 눈을 떴다.
만약을 위해, 수풀 안쪽을 확인한다.
좋아.
위상의 어긋남. 그렇게 말해 두자.
내 눈만이 관측할 수 있는 그것은, 건너편 세계로 통하는 송환로.
관측할 수 있는 사람에게만, 진실이 된다.
그곳을 빠져나가면, 돌아갈 수 있다.
사람들로 가득찬 세계로.
하지만. 그래.
난―――
요코의 모습은 없다.
다만 도시락만이 책상에 놓여 있었다.
학교로 간다.
아무도 없는 세계를 걷는다.
사람뿐만이 아니라, 생물 그 자체의 기척이 없다.
가득차 있다는 느낌이 없다.
매미도 울지 않는다.
부자연스러운 공간.
교차한 세계의 중심에서 멤돌고 있는 모순.
불과 여덟 명뿐인 작은 세계.
타이치「……」
나나카도 나타나지 않는다.
나나카「……………………」


길을 지나, 미키가 살고 있는 단지 방면을 향한다.
고개 밑에서 종종걸음으로 걸어오는 미키.
나를 발견한다.
뛰어온다.
나를 향해.
다리를 절뚝거리며.
미키「으아~~~~~~앙!!」
울었다.
내 가슴에 뛰어들었다.
받아세운다.
미키「선배, 선배선배선배―――――!!」
흐느껴 운다.
미키「아무도 없어요~~~~~~! 이상해~~~~~, 이런 거 분명 이상해요~~~~~~!!」
타이치「……으, 응」
미키「어딜 가봐도 아무도 없어요! 정말로 아무도 없어요, 다 사라졌어요!!」
타이치「그래. 큰일이네」
등을 두드리며 위로한다.
미키「왜 이런 일이……이런 일, 일어나면 안 되는데……」
작은 녀석.
이 녀석이 무적의 미키로 자라는 데, 어느 정도의 행복과 우연과 시간이 필요했던 걸까.
타이치「내가 있잖아」
미키「……으으읏, 네……다행이야……있어서……」
미키「아침에 일어나니까, 엄마도 없고, 밥도 없어서……그래서 다들 없어지지 않았을까 생각해서……」
타이치「무서워졌구나」
이마를 찧을 듯, 세차게 끄덕인다.
미키「싫어요, 이런 거……저, 싫어요……」
타이치「역시 사람이 없으니까 쓸쓸하구나」
미키「……돌아가고 싶어……」
타이치「돌아가고 싶어?」
미키「가고 싶어, 가고 싶어요……」
타이치「그래, 돌아가고 싶구나」
미키「키리찡 보고 싶어요……다른 사람들도……」
손수건을 건넨다.
눈물이 순식간에 스며들었다.
흘러넘치는 소녀의 눈물은, 장력에 의해 진주처럼 둥글게 말아진다.
타이치「키리찡이라」
일주일.
모든 것은 일요일에.
미키「히이이이이잉」
쭉 울고 있었다.
손을 잡고 학교로 데려와버렸다.
타이치「저기 말야, 난 잠깐 볼일이 있는데, 미키는 어쩔래?」
미키「여기서 키리를 기다릴래요」
타이치「……그래」
타이치「그럼 이따 봐」
미키「아, 볼일 보신 다음에 또 볼일 있어요?」
팔을 다급하게 흔들며, 그렇게 말한다.
타이치「없는데」
미키「그럼, 여기서 기다릴 테니까……여기로……」
타이치「기왕이면 교실에서 기다리지?」
미키「……사람도 없는 건물에 들어가고 싶지 않아요……숨이 막힐 것 같아서」
타이치「알았어. 그럼 바로 끝낼게」
미키「아, 손수건도……변상할게요, 돈 이외로」
뭘로.
그만 성희롱 혼이 불끈 솟았다.
타이치「됐어. 내 손수건은 여자를 울린 채로 놔둘 손수건이 아냐」
미키「……훌쩍」
효과 만점이다.

교실.
키리는 없다.
이젠 없다.
몇 번을 되풀이해도, 키리가 나타나는 일은 영원히 없다.
영원이라는 단어마저 모순으로 여겨질 정도로, 나와 키리가 이어질 방법은 없다.
그녀들을 이용해 마음의 양식을 쌓아온 나에게 주어진, 당연한 벌.
벌.
X.
CROSS.
하지만 이제, 교차는 불가능하다―――
타이치「그런데……어떻게 설명하지?」
미키한테.
머리가 아프다.

정문으로 돌아온다.
미키는 무릎에 머리를 집어넣은 채로, 주저앉아 있었다.
타이치「……미키, 나 왔어」
미키「…………선배, 키리가 안 와요」
타이치「쉬는 거 아닐까?」
미키「그럼 집에는……있을까요?」
타이치「글쎄, 어떨까. 밖에 나갔을지도 모르지」
미키「……가볼래요」


ㆍデ―トに誘う (데이트를 신청한다)


타이치「아―, 잠깐잠깐」
미키「네?」
타이치「지금은 일단 나랑 놀자」
미키는 우뚝 멈춰섰다.
역시 경험치가 없는 만큼, 반응이 둔하다.
미키「……둘이서만?」
타이치「둔한 녀석. 그러니까 데이트를 신청하는 거야」
미키「데이트」
무의미하게 반복한다.
타이치「데이트에 제 3자는 필요없어. 둘만 남은 닫힌 세계면 돼」
미키「그렇군요……」
분위기에 압도당해 대강 이해한 것 같다.
타이치「시간은 멈출 수 없어」
타이치「그리고, 키리도 가끔씩 혼자 있고 싶을 때는 있을 테니까」
미키「……네, 그럼」
타이치「좋아, 그럼 학교엔 가지 말고 단지 방향으로 가자」
미키「……아, 그치만 학교 상태를 보고 싶은데요……」
타이치「괜찮아 괜찮아」
미키「냐오옹―」
끌고 간다.
지금의 미키는, 한 번 주저앉으면 돌이킬 수 없게 될 것이다.
약하다.
하지만 평범하다.
평범한 여자아이다.
불안하겠지. 키리가 없어서.
일주일 동안, 기분을 풀어줄 수 있다면 그걸로 좋다.
그녀는 일상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그저 송환하기만 해서는 의미가 없다.
내가 그녀에게서 무언가를 얻을 필요도 있는 것이다.

눈을 뜬다.
햇빛이 창문을 넘어 들어오고 있었다.
간만에 푹 잔 것 같다. 꿈 하나 안 꿨다.
시간은……7시.
학교에 가야지.
미키가 있다.
타이치「또 기다리고 있어?」
미키「……아, 선배」
미키「안 오네요, 무슨 일 있는 건……」
타이치「키리한테서 전언을 받아왔어」
미키「네?」
타이치「요코하고 둘이서, 발전소 쪽을 조사하러 간대」
미키「하세쿠라 선배……하고?」
타이치「응. 그 하세쿠라 선배를, 오늘의 게스트로 초대했습니다」
요코「…………」
미키「……오랜만에 뵙네요」
요코「…………」
타이치「자, 얘기해」
등을 찌른다.
요코「사쿠라 키리와 발전소를 조사한다. 아무한테도 방해받고 싶지 않다」
적에게 말하는 듯이 말한다.
미키「그, 그렇군요……」
반론을 허용하지 않는 박력이 있었다.
미키「키리찡은 지금 어디에?」
타이치「이미 그쪽에 있어」
미키「네!?」
타이치「그런 연유로 만날 수 없어. 그치 요코양?」
요코「……그래」
미키「그런가요……」
슈욱.
타이치「그럼 조사 쪽, 잘 부탁해」
요코「……알았어」
마주보고 경례한다.
그녀의 출연은 이걸로 끝이다.
…………………….
그리고, 요코를 돌려보낸 뒤.
미키「하세쿠라 선배가 저러실 정도면, 문제는 없겠네요……」
타이치「그렇지」
미키「그래도 잘 있구나, 다행이다」
없는 가슴을 쓸어내린다.
타이치「저기, 어디 시원한 곳에서 과자라도 먹지 않을래?」
미키「……과자?」
눈빛이 변했다.
타이치「사탕하고 구미 젤리. 수제품」
눈빛이 변했다.
미키「수제품?」
타이치「음―. 요코가 만든 건데」
타이치「설탕도 적고, 미용 건강에 좋다더라. 구미는 곤약이야. 0칼로리」
미키「0칼로리―!?」
간단했다.
…………………….
미키「어머니의 맛이 나……」
미키「볼이……내 볼이……」
타이치「음음」
수제품 과자를 먹고 미키는 흡족해했다.
미키「하세쿠라 선배도 수수께끼가 많은 분이네요」
타이치「그러게 말야」
미키「연인, 인가요?」
타이치「아니, 같이 살고 있을 뿐이야」
미키「동거!」
타이치「동거하곤 달라」
타이치「우리들은 부모가 없으니까, 두 사람 모두 그 집에 신세를 지고 있을 뿐이야」
타이치「남매 같은 거지」
미키「그랬군요」
타이치「자, 치토세아메도 주지. 같이 빨아서 뾰족하게 만들어 보자!」
미키「와―, 치토세아메다!」
만면에 미소.

미키와 보낸 하루는 즐거웠다.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의 중첩이긴 했지만.
단순한 의미 이상의 무거운 그 가치를, 나는 알고 있다.
남겨진 시간은 적다.
타이치「……이것도 속이는 게 되려나」
하지만 저쪽으로 돌아가면, 키리도 있다.
미키는 용서해 주겠지?
그 미키도―――

수요일.
학교로.
학생을 탈주시키지 않기 위한 문.
학생을 지키고 있다기 보단, 바깥 세계를 우리들로부터 지키고 있는 듯한.
그런 인상이 들었다.
타이치「안녕」
미키「하이요」
타이치「키리라면―――」
미키「아아, 아뇨 오늘은 아니에요」
미키「선배를 기다렸어요」
타이치「후후훗, 그건 뭔가를 기대해도 괜찮다는 뜻인가?」
미키「연애 감정은 0이지만 좋아해요」
타이치「……………………」
멀다.
미키「응……?」
미키「선배, 어쩐지 퀴퀴한 냄새가 나는데요?」
타이치「아아, 이거 향수. 땀의 향기, 스웨트ㆍ민트」
미키「거짓말――――――! 그런 향수가 있을 리 없어――――――!」
미키「어……목욕은요?」
타이치「목욕……?」
타이치「난 신사니까 목욕 필요없어」
미키「……등목이라도……」
타이치「물이 아까운걸」
미키「끄악……그럼……오늘로……?」
타이치「수요일이니까앙, 3일짼가앙?」
얼빠진 어조로 말한다.
미키「하응―」
기절했다.
타이치「괜찮아!?」
나는 윗도리를 벗고 미키에게 덮었다.
미키「와와와와왓!?」
필사적인 저항.
…………………….
미키「……아주 기절도 못하겠네요……」
타이치「미안, 그만 척수반사로」
미키「……무지 위험한 척수」
타이치「뭐 신경쓰지 마. 목욕 안 해도 안 죽으니까」
미키「땀냄새나는 선배는 싫어요」
타이치「……그치만」
미키「이리 오세요」
끌려간다.

미키가 컨테이너에서 호스를 가져왔다.
미키「선배, 옷 벗어요」
미키「자, 아래도」
타이치「알았어」
벗는다.
미키「어, 엄청난 속옷을……」
미키는 새빨개졌다.
타이치「이런 전개는 이미 파악했지!」
타이치「그래서 원작에 충실해 봤어」
옥상에 우뚝 서 있는, 우람한 코끼리 팬티를 입은 나.
호스에 달린 홀더가 풀렸다.
미키「쨘―!」
강렬한 물줄기가 나를 덮친다.
타이치「우풉」
미키「이럇이럇―」
그윽히 풍기는 시트런스 민트향.
바디 클렌져를 뿌렸다.
게다가 통째로.
……그렇게 냄새나나.
미키「선배, 북북 문질러요!」
타이치「네네……」
미키「제가 물을 뿌릴 테니까, 선배는 씻는 일에 집중해 주세요」
타이치「말 못하는 일반미가 되고 싶어……」
미키「쟈규어―」
고양이과의 포유동물을 연상시키는 물소리 의성어가 참신했다.
역시 미키는 내가 발굴한 유망한 루키.
타이치「키리하고는 풀장에서 으쌰으쌰한 주제에, 난 때타올 취급이냐, 체엣」
미키「……」
물줄기가 내 코를 때렸다.
아팠다.
미키「왜 그게 그렇게 되는 거예요―!!」
울렸다.
타이치「내 민감 바디한테 물어 줘……」
미키「이제 몰라요―!」
타이치「하반신은 별개의 생물이라서 말야」
타이치「뭐……하는 김에 여기도 깨끗이 해 둘까」
코끼리 커퍼 위로 곧휴를 가볍게 훑어내고, 단추를 풀려고 한다.
미키「그만둬―! 처녀 앞에서 할 짓이냐!!」
타이치「쿠헉!?」
최대 수압으로, 안면을 얻어맞았다.
그대로 넘어지자, 하늘이 보였다―――

미키는 안 왔다.
떠올린다.
미키와 처음 만난 날을.

미키에게 말을 건 것은 군죠 전체에서도 내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미키는 원래 학교에서 쫓겨나, 군죠에 보내진 러블리한 어린양이었다.
첫날.
미키는 점심이란 것을 가져오지 않았던……것 같다.
그 정보를 미키와 같은 반이 된 미유키를 통해 획득하고는, 즉시 행동에 나섰다.
우연을 가장한 만남 이벤트를 설정하기 위해서였다.
주변 주민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게 닫힌 정문 앞.
미키는 거기서 꼼짝 못하고 있었다.
전학생의 패턴이었다.
타이치「하―이!」
미키「……어?」
그리고, 이러쿵저러쿵 하다가.
미키「풋」
살짝 웃으며.
미키「……이상한 사람」
분위기가 다소 풀리고.
타이치「이렇게 되면 억지로라도 여기서 먹어주지!」
키리「뭐, 뭐하시는 거예요!?」
나와 같은 목적이었던 키리와 다투게 되고.
미키「아하하하하……뭘까나」
우리들이 말싸움하는 것을, 미키는 복잡한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미키는 오지 않았다.
타이치「……별 수 없지」
기분이 가라앉는다.
바람을 쐬고 싶다.
선배가 없는 옥상은, 어쩐지 조용하고 쓸쓸한 장소였다.
타이치「하아―」
큰 대 자로 눕는다.
바람이 내 위를 스치고 지나간다.
깃털처럼 날아가버리고 싶지만, 인간의 몸은 무거워, 꿈쩍도 하지 않는다.
해방은 쉽게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자신의 무게를 자각하게 되어 있다.
타이치「미키, 찾아봐야 되는데……」
눈을 감자, 의식이 희미해졌다.

위화감을 느끼고, 눈을 뜬다.
타이치「…………미키?」
미키「네」
생긋.
미키「미키예요」
눈시울이 빨갛다.
무슨 일 있었나?
미키「아, 그냥 누워계세요」
타이치「……무릎베개 해도 괜찮아?」
미키「야한 짓만 하시지 않는다면」
타이치「만약 하면?」
미키「성희롱의 강도에 따라 달라지는데요」
미키「……절교」
타이치「그거 무서운데. 아무것도 못하겠어」
미키「정말로?」
타이치「응, 무지 무서워, 그렇게 돼버리면 100만 볼트 쇼크를 받을 것 같아」
미키「……그럼―, 누우셔도 돼요」
미키「깜짝 놀랐어요. 쓰러져 계시길래」
타이치「잤어」
미키「또 그런 어처구니없는 짓을……」
미키「그래도, 이런 선배가 제일 좋네요」
타이치「……그래?」
미키「재밌고 웃기고, 매일매일 떠들썩해서」
눈물.
갑작스런 일에, 대응할 방법이 없었다.
타이치「미키……?」
미키「그치만, 선배하고 놀면 놀수록……점점 불안해져서……키리찡도 없고……다른 사람들도……부모님도, 친구들도……」
미키「……훌쩍……일상은, 사라져버리고……」
타이치「……나하고 노는 걸론 부족했던 건가. 뭐뭐, 어쩔 순 없지만……」
미키「그런 뜻은, 아닌데요……」
미키「저, 자신이 없어서……」
타이치「뭐가?」
미키「살아갈, 자신이요」
타이치「바보소리 하지 마. 너를 굳게 믿어」
미키「……훌쩍……무리예요……」
미키「키리찡, 사라졌죠?」
타이치「…………왜 그렇게 생각해?」
미키「그냥……」
미키「그치만, 사람들이 없으니까……그런 생각밖에」
미키「다들 사라졌어요」
미키「그래서 키리도 사라졌어요」
미키「저희들도 언젠가, 사라지는 건가요?」
미키「깨끗이 사라져버리는 건가요?」
타이치「……그럴지도 몰라」
미키「……이거 봐요……아하하하……선배도, 인정했잖아요……」
타이치「있잖아 미키. 누구든 결국엔 죽어」
타이치「넌 언젠가 죽는다고 해서, 지금 살아가는 걸 포기할 거야?」
미키「……그건……」
타이치「사라지면 뭐 어때. 사라질 때까지 살면 되잖아?」
타이치「즐거운 일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미키「……어떤?」
타이치「글―쎄」
타이치「……나하고 같이 산다던가?」
미키「선배하고?」
미키「그건 고백인가요?」
타이치「갖고 싶은 건 뭐든 사 줄게」
내 하이 엔드한 개그를 스로우하고, 미키는 내 눈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미키「야한 짓 하려고 그래요?」
타이치「응」
미키「……으……」
타이치「할 거야, 난, 야한 짓을. 그것을 자신의 존재의미라고 믿는 자가 취해야 할 확고한 태도로 할 거야」
타이치「우리 집의 문턱을 넘은 순간, 넌 비처녀가 되는 거지」
미키「빠르다―……」
압도당한 미키.
타이치「왜냐면 넌 상자 안에 들어간 고양이처럼, 처녀와 비처녀가 동일해지는 상태가 되는 거야」
갑작스런 수마.
타이치「쿠울……」
미키「생각해 볼게요」
미키「앗, 자고 있어……빠르다」
미키「…………정말」
미키「정말, 이상한 사람」
미키「하하, 아하하하……」
미키「아하하하하, 읏, 하하하하……하하……」
…………………….
일어나자, 미키가 미소짓고 있다.
타이치「또 자버렸어?」
미키「네, 쿨쿨」
타이치「미안, 다리 아프지? 일어날게」
미키「그 전에」
눌렸다.
미키「답례를 해드릴게요」
타이치「답례?」
미키「격려해 주신 답례예요」
타이치「그렇다면, 그 완전평면 바디로……」
미키「아뇨, 답례는 귀쑤시기로 해드리겠습니다」
타이치「!?」
타이치「일어날겨!」
미키「안돼」
타이치「그건 위험해!」
미키「이얏―!」
귀에 면봉이 들어왔다.
빙글
타이치「!!!!」
이후의 일은 지옥이었다.
결국, 미키는 우리 집엔 오지 않았다.

타이치「금요일인가」
세계가 되돌아가기까지, 앞으로 3일.
오늘도 할 일을 하자.
타이치「……맞다, 바다에 가야지」
어제 준비하는 걸 까먹었지만, 어떻게든 되겠지.
타이치「바다에 가자」
미키「……네?」
아토믹 잡화에서 필요한 것을 슬쩍하고,
차를 조달해,
바다로 갔다.
타이치「으음, 좋은 바다군!」
승리 포즈.
타이치「그리고!」
미키「빠르다……전개가 빨라……」
타이치「젊으니까!」
미키「으―응, 시원하다―」
타이치「자, 놀자!」
타이치「우옷―!」
미키「에잇―!」
타이치「에잇―!」
미키「으읏―!」
세팍타크로와 수영을 조합한 게임을 즐겼다.
그리고 점심.
타이치「후아―……필드가 바다 속이라 힘들어―」
미키「놀이라기 보단, 체력훈련에 가까운 느낌이네요」
타이치「그 놀이는 실패네」
미키「이동이 수영이라니……맛이 갔잖아요. 그건 인어 전용 놀이예요」
타이치「10대는 원래 맛이 갔으니까」
타이치「자, 다 됐다」
미키「다 됐네요」
둘이서 싸구려 테이블에 턱을 받히고, 두 개가 준비된 그것을 바라보았다.
컵라면.
타이치「후룩후룩후룩」
미키「후우후우후우」
타이치「바다니까 라면도 좋긴 하지만. 좀 허전하네」
미키「……그러게요」
타이치「그거 맛있어 보이네」
미키「카레맛」
타이치「조금만 교환하자」
미키「그래요, 자」
타이치「……아, 맛있다. 그거 하나 더 있나?」
미키「대충 꺼내온 거니까, 한번 찾아보세요」
몇 개는 충격으로 용기가 터져 있었다.
타이치「그러고 보면 컵라면이 몇십 개나 필요하진 않은데」
미키「……그걸 안고 있어서 내 목숨을 건졌단 걸 잊지 말란 말이야」
도중에 사고가 났던 것이다.
무지 화냈다. 울면서.
타이치「아, 이거 맛있어 보인다」
하나를 꺼낸다.
타이치「음……뜨거운 물 넣는 구멍이 없는데?」
타이치「뭐야 이거. 라면이 아니잖아?」
미키「호에?」
타이치「두부……가 아니고 스펀지네……거기다, 끈적한 액체가 안에 스며들어 있고……」
타이치「우왁, 오나컵이잖아!!」
미키한테 던졌다.
미키「끼약?」
명중.
타이치「이 파렴치 처녀! 멍청이!」
미키「뭐하는 거예요―!」
타이치「네가 라면하고 같이 가져온 걸 잘 봐!」
미키「……응―? 뭐예요, 이거?」
타이치「오나컵이야」
미키「오나컵?」
타이치「방금 그 야한 대사는 기억에 새겨넣기로 하고, 그러니까 한 마디로 성인용품이야. 난 별로 안 좋아하지만, 일회용이고, 500~900엔 정도야!」
미키「……사용법을 모르겠는데요」
확 시범을 보여줘 버릴까……이 꼬맹이.
타이치「정말―, 네가 그렇게 무방비하니까 오빠는 걱정이란 말야」
미키「네, 네에……상당한 지식이 쌓이긴 했지만요, 누구씨 덕분에」
미키「제 나이에 오나홀 사용 방법을 알고 있는 여자애는 별로 없거덩요」
타이치「오호라. 오늘은 덥네」
안 덥지만.
미키「……저기, 그보다 눈치채셨어요?」
타이치「응?」
미키「물고기도 해파리도, 아무것도 없어요, 바다」
타이치「……아아, 응. 조개도 없어. 껍질뿐이야」
미키「분홍조개 잔뜩 주웠어요. 예뻐라―. 집에 가져가야지」
타이치「옥토퍼스 기간테우스도 없더라」
미키「……?」
타이치「뭐, 그건 신경쓰지 말자. 과학적으로 따지면 태클걸 게 한두 개가 아냐」
미키「……아니, 태클거는 게 아니라, 외로운 세계인 것 같아서요」
미키「세계는 참 외로운 거구나―해서」
타이치「으―음」
세계는 외롭다, 라.
맞아, 그런 거야.
미키「자, 놀아 볼까요!」
타이치「좋아, 다음은 밤의 레슬링이다」
미키「……그거 섹스라고 하지 않나요……보통」

미키「재밌었어요―!」
타이치「음. 또 가자」
미키「예입!」
많이 기운을 되찾은 듯.
타이치「아―, 오늘 찍은 사진, 현상하는 데 얼마나 걸릴까?」
미키「빨리 하고 싶으세요?」
타이치「응. 가능하면 내일 밤까지」
미키「빠르다……그럼, 학교에서 현상할 테니까 거기서 드릴게요」
타이치「땡큐. 그럼 안녕」
미키「아……」
타이치「응?」
미키「저기,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럼」
단지 방면으로 달려갔다.

토요일이다.
……앞으로 하루.
앞으로 하루다.
미키「안녕하세요, 빠르시네요」
타이치「사진 보고 싶은데」
미키「지금부터 현상합니다. 시간 꽤 걸려요」
타이치「괜찮아, 천천히 해도」
미키「같이 안 하실래요?」
타이치「……아―, 그냥 여기서 멍하게 있을래」
미키「그래요」
조금 풀이 죽었다.
미키「점심, 같이 먹죠」
타이치「응―」
미키가 떠났다.
주말에 대해 생각한다.
다른 일은 필요없다.
건전하게 돌려보낼 뿐.
미키와의 평범한 대화 하나하나를, 마음에 새긴다.
타이치「역시, 가보자」
사진부 부실로 향했다.

타이치「어라라?」
미키「……실례합니다―」
와버렸다.
커다란 짐꾸러미.
비누 향기.
새 교복.
이건…….
미키「선배한테서 이상한 오오라가 나오고 있는데요」
타이치「……어흠, 짐 주세요」
미키「좁아터진 여관이네요―, 지배인씨」
타이치「넵, 광장공포증이 있는 손님들껜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미키「……그래도, 우리 집보다 넓네요」
타이치「야야!」
미키「하와와왓, 굉장한 플로어링」
타이치「이 동네에선 보통이야. 다들 돈이 썩으니까」
미키「저희 집, 마을이 빈곤할 때부터 있던 염가단지라서요」
타이치「아아……그 폐허 말이구나」
미키「엘리베이터도 없어서, 전기가 멈춰도 멀쩡―」
타이치「몇 층이야? 미키네」
미키「……최상층」
타이치「울어도 돼. 넌 울어도 돼」
미키「으아―앙! 이젠 계단 안 올라가도 돼요―」
타이치「불쌍해……」
미키「그럼, 동정도 받았으니 방을 보여주세요」
타이치「여기입니다」
미키「네 방이잖아!」
타이치「남자 집에 온다는 건 이런 거야……으흐흐」
미키「아―, 알았어염……」
타이치「솔직해서 좋아」
미키「저기 선배. 근데 하나 질문해도 돼요?」
타이치「응?」
미키「옆 방은 뭐예요……?」
타이치「아―, 거긴 안돼」
타이치「한번 볼래?」
미키「네?」
갔다.
안색이 변해서 돌아왔다.
미키「……서서서선배 사진이 방 전체에 쫙―!!」
타이치「무섭지?」
미키「무서워요」
타이치「뭐 그냥 놔두자」
타이치「자 그럼, 이 방 바닥이 네가 잘 곳이야」
타이치「자 침낭」
둥글게 말린 침낭을, 미키는 찌푸린 눈으로 보았다.
미키「동거하러 온 여자애를 침낭에 재운다는 건, 도대체 무슨 시츄죠?」
타이치「우리 집에선 손님은 바닥에 재우도록 정해져 있어」
타이치「이불에서 자고 싶으면 나, 쿠로스 타이치의 100가지 시련을 통과해야 되지」
요컨데 섹스.
미키「……」
고민하기 시작했다.
타이치「저기저기」
미키「……」
타이치「미키―?」
미키「……」
타이치「만져버린다」
나를 올려보며,
미키「그러세요」
미키「각오는 하고 왔어요」
진지한 어조여서, 조금 놀랐다.
타이치「으―음……그렇게 말해도 좀 그런데. 농담이었는데」
타이치「그보다, 무섭진 않아?」
미키「무서워요」
타이치「그치?」
좌우로 고개를 흔드는 미키.
미키「아무도 없는 게, 무서워요」
타이치「그거 말이구나」
미키「키리는 어떻게 됐어요? 왜 사라져버린 거예요?」
타이치「몰라」
미키「저도 사라지는 거예요? 선배도?」
타이치「…………」
미키「저, 미칠 것 같아요」
미키「……안아주세요, 선배」
미키「사라져버리지 않게……」
그렇게 말하고, 나에게 몸을 기울였다.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최소한 밤만 아니었다면, 참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두 명을 둘러싼 분위기는, 이미 거절할 수 없는 수준으로 치닫고 있었다.
타이치「……알았어」
가볍게 손으로 등을 감싸자, 미키는 더욱 매달려 왔다.
이것 또한.
추억의 일부―――
살짝 미키를 눕혀서,
키스를 했다.
미키「응……으흥……으응」
작은 입술에 놀란다.
얇고 섬세한 완성도.
축축히 젖어 있어서, 놀랄 정도로 부드럽다.
살짝 깨문다.
쪼아먹는 듯한 키스.
조금씩 각도를 바꾸며, 닿았다 떨어졌다.
미키「간지러워요……조금, 앗……하아……」
키스 중의 말은 바로 패배로 이어진다.
혀를 쑥 집어넣었다.
미키의 몸이 경직된다.
세게 껴안는다. 도망치지 못하도록.
빨고, 빨고,빤다…….
달콤한 혀를 입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옷을 벗긴다.
입술을 떼어내자, 미키는 망설임과 미소를 얼굴에 동시에 짓고 있었다.
목덜미에 입술을 가져간다.
미키「잠깐, 잠깐만요……으~읏」
쇄골이 살짝 들렸다.
타이치「무지 민감하네」
미키「으~~~~~」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린다.
미키「……어쩐지……굉장해요……」
타이치「뭐가 굉장해?」
미키「다른 사람한테 만져진다는 게, 굉장, 해요……꺄흣」
타이치「그래」
입술이 아래로 내려간다.
도중에 나타난 미키의 복근이, 작은 균열을 새기고 있었다.
희미하게 숨을 쉬는 복부가 감동스러울 정도로 아름답다.
그 이유를 생각하는 것조차 귀찮아진다.
미키의 하복부에 다다랐다.
이쪽에도 키스를 한다.
미키「……아아아아……자, 까웅……」
이상한 소리를 낸다.
아직 어린 티가 나는 그곳을, 정성스럽게 적신다.
그 앞에 솟아 있는 돌기를 빨아들인다.
세게.
미키「아얏……너무……세요」
혀로 핥으면, 가끔씩 빨아들인다.
미키「아―, 아야야얏, 뭔가가 빠질 것 같아요~」
타이치「……」
뭔가란 게 뭐니.
조금 힘을 줄인다.
미키「꺄우……꺄……응……아앗……」
이 행위에는, 묘한 재미가 있다.
열심히 가지고 논다.
미키「앗, 하앗……하아……응…………으읏」
질을 맛보는 동안, 미키는 조금씩 숨을 허덕였다.
타이치「아직도 아파?」
미키「……모르겠어요……저려서……끼야아아앗」
혀 끝으로 빙글 돌린다.
타이치「이런 게 더 좋아?」
미키「너무 부드러워도 안돼요!」
……어쩌라고요.
미키「간지러워서……이상해요……」
타이치「그럼 배꼽으로 가야지」
미키「앗……들어갔다……」
무방비한 그 목소리에, 난 흐뭇한 기분이 든다.
열심히 혀를 움직였다.
미키「아……앙, 앗, 아응……응……핫」
미키「응, 으으응……으응, 아읏……아앗, 뭔가가……올라왔어……」
손가락을 사용한다.
미키의 보석을, 가볍게 손으로 잡는다.
미키「으응!? 거기, 잡히면……」
미키「빠, 빠져, 빠져요」
타이치「안 빠져요」
혀를 한계까지 늘려, 깊숙히 밀어넣어 본다.
미키「으으응―――――!!」
등을 젖히며, 미키는 활처럼 휘어졌다.
입 안으로 축축한 습기가 스며들었다.
…………………….
타이치「그럼, 정상위로 넣는다?」
미키「……체위 이름 같은 건 아무래도 좋으니까……너무 아프지 않게……해 주세요」
타이치「정상위니까 괜찮아. 왜냐면 정상이니까」
미키「그래서……정상위……」
타이치「힘 빼」
미키「응……무서워……무서워―」
타이치「간다」
허리를 밀어넣는다.
미키「천천히, 천천히요! 천천히 플리즈!」
타이치「네네, 천―천히 갑니다」
미키「으으으으으으……」
타이치「천―천히」
미키「으으으……으아……아읏!」
빠졌다.
미키「……아얏……」
타이치「역시 아픈가 보네」
미키「으읏……」
눈시울에 눈물이 맺혀 있다.
타이치「하지만 실전은 지금부터야」
『후에―』하고 미키의 눈물이 대량으로 쏟아졌다.
미키「저, 전 벌써 갔어요」
타이치「거짓말하지 마!」
타이치「그래도……힘들면 그만할까?」
미키「아……그것도, 싫어요……」
타이치「그럼 워쩔껴……」
미키「이대로 가만히 있어 주시는 게 제일 좋아요」
타이치「남자하고 여자의 슬픈 차이로구나」
뭐, 어때.
껴안는다.
미키「……읏」
완전히 애들의 인형이네. 난.
껴안기 위한 인형.
미키「……또, 다들……안 나올까요……」
타이치「차라리 만들까?」
미키「어……만든다뇨……설마?」
타이치「움직입니다」
슬라이드 인생.
미키「앗……으으응……으앗, 끌려가……」
혀로는 닿지 않았던 안쪽까지 만져버린다.
미키「앗, 앗……으―, 으으으……」
작은 천 조각에 넣는 기분……거의 그것에 가깝다.
찢어지지 않을까? 하는 불안도 든다.
천천히 움직인다.
끝까지 빼내고 다시 밀어넣을 때, 미키는 눈을 꾹 감고서 참고 있었다.
미키「응, 앗……으응……으읏……으아―, 터질 것, 같아……」
나에게 안기며, 거칠게 허덕인다.
미키「아파……」
분명 피도 날 것이다.
그건 보고싶지 않다.
눈을 돌리기 위해, 입을 맞춘다.
미키「아……」
타이치「미안……나도 터질 것 같아」
허리 안쪽에 폭탄이 파묻혀 있는 기분이다.
쏘고 싶다.
뱉어버리고 싶다.
허리를 꾹 누르자, 귀두가 질벽을 두드렸다.
미키「하아앙……그거……거기……」
얕다. 좁다.
그리고.
타이치「……꽉 끼네」
꽉 묶여 있다.
그 안을, 한없이 흘러나오는 윤활유를 이용해 왕복한다.
미키「으힛, 꺄앗, 아, 아, 응, 하아아……」
가끔씩 당기는 듯한 타이밍을 사이에 두고, 계속 가속한다.
미키「선배, 이, 이제……」
타이치「아직아직」
미키「그런, 으으, 읏, 아응, 응, 읏, 아응」
끈적한 액체가 질을 덮어간다.
삽입할 때의 물소리의 끈끈함이 늘어났다.
타이치「미키의 안, 잘 만들어졌네」
미키「그런 거, 몰, 라요……으으응」
미키의 온몸에서 힘이 빠진다.
미키「하아, 하아, 하아―――아아앗, 앗……응, 으―, 이제, 안돼……」
타이치「조금만 있으면 돼……」
미키「그치만, 이렇게, 격렬할 줄은……」
타이치「이런 느낌이 좋은 거야?」
정밀하게 전환.
미키「앗앗앗앗앗앗앗앗!」
목소리가 튄다. 몸도.
활기를 되찾은 듯이.
타이치「이쯤이려나」
질이 휘어진 각도로 움직인다.
미키「으히―ㅅ, 앗, 아앗, 응, 응, 으~~~~~응」
미키「미끈미끈한 게 들어……꺄앗……왔어요」
타이치「들어가기만 했어?」
귀를 깨물며 속삭인다.
타이치「나왔다 들어가고 있지?」
미키「나왔다, 들어갔다……으읏, 응……하앗……안이, 안이~~~~, 아~~~ㅅ」
미키의 안쪽은 놀랄 정도로 얕았다.
타이치「이런 식으로」
미키「꺗, 앙, 안돼, 벽에, 안돼」
타이치「이런 식이라던가」
미키「꺄아아, 앗, 벽에 대면 안돼요」
타이치「아파?」
미키「아프다기 보다……위험해요……」
이상한 말이다.
타이치「위험한 게 좋은 거야」
온몸으로 미키를 쥐어짠다.
미키「흐앗, 응, 아, 안돼요, 선배 안돼, 안된대도요! ……으읏……으으으으으응!!」
타이치「미안……」
행위의 열이, 머리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멈출 수 없다.
미키「흐앙, 읏……아아앗, 하앙, 응, 아, 아응……」
허리가 음란하게 원을 그린다.
벽이 찰싹 달라붙는다.
뽑으려 하면 수축되어, 꼬리뼈부터 척수까지 저린 느낌이 왔다.
미키「으으읏, 앙, 앗, 앗……아아앗……아응」
미키「아……뭔가 오는 거, 같아요……」
타이치「재능이 있구나」
미키「으응! 무슨……재능인데요……하앙」
타이치「기분 좋아지는 재능」
미키「읏……정말……바보……!」
안겨왔다.
같이 안아준다.
될 수 있는 한, 하나가 되자.
갑자기 미키와 만들 수 있는 추억도 이것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정감이 직전까지 온 것도 눈치챘다.
흥분으로 감각이 둔해져 있었다.
타이치「윽!」
미키의 내부를 끝없이 왕복한다.
그런 공격적인 율동, 리듬.
미키「앗……앗앗앗앗, 안돼, 안돼, 위험해, 응, 응……으으으으으으응~~~~~!」
비명과도 신음과도 닮지 않는 소리.
그 여파만으로도 위대한 생명을 탄생시키는, 쾌락의 덩어리.
타이치「응……」
그것을, 쏘아냈다.
가장 안쪽에.
껴안은 채로, 떨어지지도 못한 채.
서로의 세포의 결합을, 시험하는 것처럼.
계속 토해냈다.
넋이 나갈 정도로.
그리고 무너졌다.
두 사람이 겹쳐진다.
무의식적으로 키스를 하고.
작은 미키를 가슴팍으로 끌어안았다.
미키「아기……생겼……어요……」
타이치「……정말이야야 그거?」
미키「감……이에요……」
타이치「하하……」
농담도 진심도 아닌.
『그』미키와 가까운 감각이 순간 그리웠다.
타이치「미키는 귀여워」
인형을 껴안듯이, 가슴에 달라붙는다.
행위의 열을 가까이서 느낀다.
주위를 감도는 달콤한 체취.
타이치「……미키?」
미키「……………………」
자고 있었다.
타이치「하하하」
느긋하긴.
미키의 몸을 닦고,
창문을 모두 열고,
껴안고.
잤다.
타이치「……하하」
난 깨달았다.
작고 따뜻한.
미키는 그런 존재였다.

미키「네? 피크닉?」
타이치「응―」
일요일.
아침을 먹으면서, 말을 나눴다.
미키「그러고 보니 일요일이네요」
타이치「준비는 해 놨어」
미키「진짜네. 빠르다……」
가방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미키「음―, 그러면 에로 피크닉이겠네요?」
그러면서 웃는다.
타이치「들켰군」
미키「우와, 최악이다 이 사람」
타이치「뭐 어때. 할 일도 없는데」
미키「이 사람, 로맨스만 있으면 좋을 텐데 말이죠」
타이치「로맨스만으로 인생은 살아갈 수 없어」
미키「……노골적이다」
타이치「그러니까 가자. 기구나 코스츔 같은 건 내가 들고 갈테니까」
미키「무, 무슨 짓을 당하는 걸까, 난……」
미키「그것도 산에서」
타이치「글쎄」
미키「으―, 아직 거기가 아픈데―……」

미키「그래서, 전 무슨 짓을 당하는 건가요―?」
타이치「가면 알겠지만……환상의 세계라 말해 둘게」
미키「히잉―(눈물)」
변태스런 내 행동에 익숙해진 탓인지, 미키는 아무 의심도 없이 날 따라와 줬다.
타이치「미키는 부모님 다 계시던가?」
미키「있어요」
미키「빈곤한 부모지만요」
미키「아니, 있었죠」
과거형.
타이치「아, 미안」
미키「아하, 다들 없으니까 괜찮아요♪」
타이치「빈곤한 부모님이라」
미키「한 달 용돈도 찌질해요」
타이치「얼만데?」
미키「3000엔」
우와아…….
적은 편이네.
타이치「아무것도 못 사겠다」
미키「절약이 중요하죠」
미키「부수입은 세뱃돈 정도」
미키「군죠에 간다고 통지받았을 땐, 왜인지 금일봉 비슷하게 잔뜩 받았어요」
미키「그건 도대체 무슨 의미였을까요―!!」
타이치「……글쎄」
모르는 게 약.
타이치「뭐, 어쨌든 다시 절약이 중요해질 거야」
미키「……?」
타이치「다 왔다」
미키「……사당」
타이치「여기야」
미키「이런 곳에서 하는 건가요……거부권은 없어요?」
타이치「없어」
미키「아―앙」
타이치「라디오를 잡으시게」
미키「……무슨 플레이죠?」
타이치「뭐, 저쪽에 가면 상황을 바로 알 수 있게 하려고」
미키「???」
타이치「여기를 걸어, 똑바로 천천히」
미키「??????」
타이치「자자」
미키「뭐가 뭔지……」
타이치「걸어걸어」
미키「네, 네에……」
좋아.
타이치「스톱. 움직이지 마」
타이치「그래, 포즈를 잡아 봐」
미키「어떤?」
타이치「마이 포즈」
미키「……없어, 그런 거 없어……어쩌지」
타이치「대충 해도 돼」
미키「……이런 느낌으로?」
타이치「……………………」
미키「……저기?」
타이치「음, 잘 어울린다」
미키「뭐가 시작되는 걸까……」
타이치「미키, 난 예언하겠어」
타이치「넌 가까운 장래에, 터프가이가 될 거야」
미키「성전환을 한다는 뜻인가요?」
타이치「좋은 여자가 될 거야」
미키「와―」
타이치「경험을 쌓으면 상당한 물건이 될 수 있는 너에게, 조언을 남겨 주지」
타이치「X라는 글자는, 교차로 이루어져 있어!」
미키「……응?」
타이치「어라, 의미 모르겠어? 난 꽤나 감동적인 말을 한 건데」
미키「……교차한다기 보단, 어긋나 있는 거 아닌가요?」
타이치「우왓, 그런 말 하지 마! 사물은 판단하기 나름이라고!」
미키「아하하」
미키「선배는 여전히 속이 깊으셔서, 미키는 잘 이해 못하겠네요」
타이치「으―음」
미키「선배의 첫인상은 이상한 사람이고, 지금 인상도 이상한 사람이에요」
타이치「출세 못했네, 나」
미키「그런 것하고 커플이 되어버린 미키네요, 슬프게도」
타이치「응. 좋은 아이를 낳아 줘」
타이치「아아, 너한테 진정한 성의 깨달음을 가르쳐 주지 못하는 게 유감이야」
진짜로 유감이다.
강조하자면, 초 유감이다.
아쉽다.
미키「저기, 아까 전부터 무슨 말씀을?」
타이치「그럼 안녕」
손을 흔든다.
미키「저기……」
타이치「자, 손을 들어」
미키「네……그치만」
타이치「미소」
미키「어쩐지……」
미키「헤어지는 것 같잖아요」
타이치「그래?」
미키「이상, 해요……선배……」
타이치「난 아마, 미키 같은 딸이나 여동생을 갖고 싶었던 것 같아」
미키의 눈이, 활짝 떠졌다.
그 순간.
해가 저물었다.
타이치「무지 즐거웠어. 잘가 미키」
미키「선배, 싫어요!」
반짝―――
미키가 달려오는 것보다 빠르게,
돌려보냈다.

미키「……아……에?」
미키「선배도 참!」
미키「……어라?」
미키「어라라?」
미키「없어졌어―! 잠깐 사이에!」
미키「타이치 선배, 어디 있어요―!?」
미키「어라, 라디오가 울리네?」
미키「…………에, 어떻게……」
미키「라디오가 울린다는 건, 전파가 닿는다는 말인데……전파가 나온다는 말은……」
미키「아……」
미키「가로등」
미키「사람들이, 있어……」
미키「우와왓, 큰일났다!」
미키「선배, 갑자기 사람들이 라디오로 거리가 됐다니까요!」
미키「없어……어디에……」
미키「먼저 내려갈게요―!!」

혼자가 되었다.
또 세계에서, 한 명의 의식이 사라진 것이다.
그건 그렇고.
타이치「……알아챈 건가」
마지막 순간.
그녀의『싫어요』란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 줄은 몰랐을 텐데.
이런 건……역시 느껴지는 건가.
타이치「진짜로 임신하진 않았어야 될 텐데, 말야」
타이치「아니, 한 쪽이 더 흥분되려나?」
타이치「……어느 쪽일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눈을 떴다.
수풀 안쪽을 확인한다.
드디어 여기를 쓰는 것도 마지막 한 번이다.
남아 있는 것은……한 명.
하세쿠라 요코―――
지금까지보다 더욱 신중하게 해야 한다.
결코 실패란 없다.
……그녀에게 내가 하려는 의도를 들켜서도 안 된다.
그리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유일한 점.
타이치「추억은……필요없어」

도시락이 없다.
패턴이 다르다.
타이치「……」
불안해진다.
모두가 사라짐과 동시에……행동양식이 변했다.
타이치「……뭐야」
혀를 찬다.
나름대로 안 들키게 해온 건데.
그녀는 사랑에 맹목적이니까, 적당히 얼버무리면 될 줄 알았는데―――
너무 허술했던 걸까?
아니……단정할 만한 요소는 아무것도 없다.
타이치「진정해」
어쨌든, 밖으로 나가자.
거기엔 요코가 기다리고 있었다.
타이치「……!?」
웃고 있다.
타이치「너……」
요코「단 둘」
타이치「어?」
요코「……후후후」
요코「단 둘, 타이치」
도망치고 싶어진다.
본능이 그렇게 알린다.
심장고동이 빨라지고, 냉정한 사고가 멀어진다.
프레셔란 것이다.
타이치「……그렇게 좋아?」
의식이 떨리자, 목소리가 갈라진다.
요코「응. 기다려 왔으니까」
타이치「그랬구나……」
요코「저기, 타이치……키스해도 돼?」
타이치「으, 응」
소리도 없이 다가와, 목에 팔을 감았다.
붙잡히고.
먹혔다.
요코「읍……」
서슴없이 침입해온 혀가 입 안을 유린한다.
윗입술을 살짝 깨물며, 입술을 떼어냈다.
요코「그럼, 나머지는 다음에」
그녀는 떠나갔다.
타이치「응, 또, 나중에……」
방심시키는 거다.
이대로, 방심시키자.
어떤 수단이라도 좋다.
그녀를―――
타이치「아……」
정신을 차리자, 샌드위치 봉지가 가슴팍에 안겨 있었다.

타이치「학교엔 왔는데……」
고개를 젓는다.
아무도 없는데.
그래도……잠깐 보고 갈까.
왠지 모르게 낮에 학교에 있지 않으면 불안해지니까.
교실에는 정적이 깔려 있다.
아무 기척도 없다.
공기가 희박해진 듯한 외로움.
오래 있을 자신이 없다.
교실을 나왔다.
교실보다 넓어서, 보다 한산해 보인다.
항상 앉았던 의자에 앉는다.
타이치「후우」
한숨을 돌려보지만, 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고, 그 누구와도 연락할 수 없다.
타이치「삶의 페이스를 좀 더 느리게 잡아야겠네」
그래도 사람이란, 원래 급한 생물인데.
……어렵네.
타이치「아냐, 그 전에」
긴장감을 되새긴다.
타이치「……요코」
안테나.
채 완성되지 못하고 도중하차된 안테나.
선배와도 이제 만날 수 없다.
그녀가 이것을 완성시킬 가능성과 함께 돌아가버렸다.
펜스에는 위험한 곳이 있다.
고쳐지지 않은 채, 세계는 겹쳐졌다.
타이치「……배수관 문제던가」
몇 번을 고쳐도, 이곳만은 습기가 차서 금방 약해져버렸다.
옥상은 학교 안에 있는 것 같지가 않다.
하늘과의 경계선에 있는 이곳은, 이세계같았다.
초록에 둘러싸인, 넓은 거리.
타이치「……응?」
산 중턱에서, 연기가 피어나고 있다.
타이치「닌자 봉화?」
타이치「이건 아니고」
측두부를 때린다.
개그 성분이 아직 좀 남아 있던 것 같다.
타이치「산불인가?」
아니, 가능성을 따지면…….
타이치「아, 요코군」
왜 불을?
타이치「……하앗, 하아……」
느긋하게 살기로 결심하자마자 바로 전력질주.
실로 고난의 길이다.
풀숲에 들어간다.
여기는 사당 근처잖아.
사당 근처에서, 요코가 할 만한 일이라면?
수풀 저편에서 폭음.
풀을 헤치고 달려간다.
타이치「아……」
타고 있었다.
모든 것이 타고 있었다.
모든, 기록이, 불타고 있었다.
이성이 얼어붙으며, 몸만이 전율했다.
타이치「뭐……하는 거야?」
말을 걸자, 지나칠 정도로 솔직한 대답이 왔다.
요코「……태우고 있어」
타이치「태운다니……」
그걸 태워도 되는 거야?
우리들이 같은 시간을 반복해왔다는 것을 증명하는 기록이잖아?
타이치「태우면, 안돼」
긴급 상황이라고는 여겨지지 않는 차분한 어조로, 나는 말했다.
아니, 반 자동적으로 그런 태도를 취하고 있을 뿐, 실제로 나는 상당히 망연자실해 있었다.
대답은 없었다. 의문문이 아니었으니까.
타이치「그만 둬, 그거」
묵살.
그녀는 산처럼 쌓인 노트에 옮겨붙은 불을, 그저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
타이치「저기 말야……」
점차, 마음이 초조해진다.
침을 삼키고 외친다.
타이치「꺼!」
그러자 그녀는 천천히 몸을 돌려, 나와 마주섰다.
요코「그치만, 이제 필요없어」
요코「타이치가 이해할 필요는 없어」
타이치「무슨 말이야……」
이해할 필요가 없어?
내가 이 순환하는 세계에 대해, 알 필요가 없어?
타이치「바보! 그럴 리가 있냐! 끈다!」
나뭇가지를 주워, 불을 꺼뜨리려고 움직인다.
손목을 잡혔다.
타이치「큭……왜……」
요코「안돼」
요코「이미 깊숙히 탔어. 위험해……」
연기를 보고 나서, 상당한 시간이 지났다.
자료의 대부분이 이미 재로 변해 있다.
검은 얼룩처럼 불타오른 종이조각이, 먼지로 변해 피어올랐다.
타이치「말도 안돼, 이런 짓을 하면……」
요코「알 수 없어져」
타이치「그래……만약 죽는다면, 모든 게 되돌아간다고」
분명히 난, 지금까지 잘 해 왔다.
하지만 죽지 않는단 보증은 없다.
병, 사고……돌발적인 폭주.
죽는다 해도, 자료만 있으면 내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런 만약의 보험이, 지금 재가 되고 있다.
나뭇가지를 떨어뜨린다. 손목이 비틀린 탓이다.
타이치「……윽」
요코「필요한 건, 나 혼자만 알고 있으면 돼」
타이치「요코……」
그 때 알았다.
그녀의 의도를.
타이치「……내……생각을……넌」
요코「응, 알고 있었어……타이치는 단순하니까」
타이치「…………」
그리고, 이어지는 생각도 알았다.
타이치「……날 재구성시키려 하는 거지」
요코「응」
지금의 나.
즉, 고유의 인생을 살아남으려는 의지는, 그녀의 목적에는 불필요하기 때문에.
추억을 마음에 새기고, 혼자서 살아남으려 하는 나.
송환하는 사람 중에, 요코 자신이 포함된다는 것을……당연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묵인해 왔다.
당연하다.
다른 모두는, 그녀에게 방해가 될 뿐이었으니까.
나만 있으면 된다.
다만 그것은 지금의 내가 아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다―――
타이치「그리고, 넌 사당에 머물고」
요코「응, 그러려고 해」
타이치「자기만 고유의 기억을 유지하면, 날 조종하는 건 어렵지 않다……」
요코「응, 그래」
마치 선문답같았다.
그녀는 마네킹처럼 웃었다.
싸늘하다.
요코「나, 타이치의 괴롭힘도 많이 견뎠어. 참아왔어」
요코「그러니까 이번엔, 타이치의 차례……야」
요코「그래도, 괴롭게 하지는 않을게」
타이치「그런 걸, 나한테 다 말해도 돼?」
요코「응, 타이치한테 비밀을 만들고 싶진 않은 걸」
타이치「설령 지금의 내가 리셋돼도, 언젠가 자력으로 진실을 알아낼지도 모르는데?」
요코「그렇게 되지 않게 태웠어」
요코「정보가 없는 경우, 타이치가 자력으로 사당의 시스템을 눈치챌 가능성은 낮아」
타이치「…………」
분명히.
처음에 메모를 남겨둔 것은, 요코다.
난 이끌린 것에 지나지 않는다.
요코는 나를 껴안고, 눈동자를 바라본다.
마음 속까지 함께.
요코「타이치. 세상은 정보야」
요코「정보로 지배할 수 있어」
요코「투자도 그렇잖아?」
요코「정보의 왕은, 세계의 왕」
요코「난 그런 존재가 되기 위해 살아 왔어」
요코「……이렇게 되기 전까지」
타이치「…………되면 되잖아, 지금부터라도」
타이치「원래 세계로 돌아가서, 그렇게 되면 되잖아」
어차피 그녀다.
한명 한명 없어지는 방송부 멤버를 보며,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쉽게 결론을 냈을 것이다.
요코「그 외의 다른 목표가 없었으니까, 선택한 것뿐이지……별로 좋은 건 아냐」
요코「그런 것보다, 타이치가 더 좋아」
내 뺨을 쓰다듬는다.
타이치「……미쳤어, 너」
요코「옛날의 얼굴이 됐네. 그리워. 기뻐」
요코「최근의 타이치는, 따분했으니까」
타이치「……말이 많아졌네, 요코는」
차갑게 내뱉는다.
타이치「너야말로, 옛날의 그 초연했던 시절이 훨씬 귀여웠어」
요코「……피차일반」
그녀는 소리내서 웃었다.
타이치「너한테도 만약이란 게 있어. 정보가 사라지면 어렵지 않을까?」
요코「일요일 밤을 사당 주위에서 보내면, 루프가 발생하고 난 그걸 알게 된다」
요코「예비지식이 없다고 해도, 그건 결코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아냐」
요코「그렇다면, 그걸로 충분해」
요코「그리고 우리들의 관계는, 현상이 돼」
요코「우리들이란 현상」
요코「영원히―――」
파직, 하고 튀는 소리를 내며, 불길이 노트의 산을 모두 덮었다.
타이치「넌 이성의 괴물이야」
녹아들 듯한 미소를 유지한 채로, 그녀의 얼굴이 내 입술에 다가왔다.

타이치「……」
침대에 뒹굴어, 천장을 바라본다.
선수를 당했다.
아마도……그 요코 역시, 고유의 시간을 살아왔을 것이다.
그런 느낌이 든다.
어떻게?
정체 지점이 다른 곳에도 있거나, 또는 사당 부근에 숨어 있었거나.
어쨌든 그렇게 꾸준히 일련의 계락을 짜 온 거라면, 상황은 다를 바 없다.
당연히, 내가 요코를 피하고 있다는 건 본인도 알고 있을 것이다.
타이치「위험한데」
어떤 때라도 심각해지지 않는다는 것은 감정을 한 번 잘라내고 다시 붙인 나의 매력 포인트지만, 어떤 때에도 심각해지지 못한다는 결점도 된다.
타이치「하세쿠라 요코……라」
그녀를 송환할 가능성이 극도로 낮아졌다.
그리고 이대로는, 지금의 내가 사라져버린다.
지금 이렇게 내 방에서 편하게 있을 수 있는 것은, 요코가 나를 봐주고 있는 탓이다.
깔보고 있는 건지, 정확한 역량을 살피고 있는 건지.
그녀를 완력으로 제압해, 강제송환한다.
그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요코에게도 야생동물에 가까운 직감이 있고, 대처의 폭도 나보다 훨씬 넓다.
어떤 무기를 숨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타이치「……위험해」
진짜로 위험하다.
지금의 내가 사라져버린다.
『아이덴티티』의 클라이막스다. 위기다.
즉 나는, 이번주 안에 그녀를 포획해 송환시켜야만 한다.
살아남으려면 그 방법밖엔 없다.
타이치「……무리야」
솔직히, 전차에 타도 이길 것 같지가 않다.
타이치「만일……강행한다고 하면」
가장 효율적인 방법과 일정은?
머리를 굴린다.
우선 가장 확율이 높은 날은, 오늘이다.
주말이 됨에 따라, 그녀는 내 행동을 더욱 경계하게 될 것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남은 일수가 적어지는 것.
=지금의 내가 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이 급감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수치상으로는 최대의 가능성을 가진……오늘이 가장 공격에 적당하다.
그녀가 방심할 만한 날이 있다고 쳐도 오늘이겠지.
타이치「……」
하지만 준비하는 시간이 아쉽다.
습격을 위한 준비에는 뭐가 필요하지?
우선……송환할 수 있는 일요일까지, 그녀를 붙잡아 둘 장소가 필요하다.
감금이다.
타이치「무기……」
무기는 어쩌지.
그녀에게 대항하기 위한 무기.
죽일 수는 없다.
송환한 뒤, 그녀는 지속적으로 시간을 살게 된다.
살아있는 상태에서 저편으로 보야만 한다.
타이치「무력화……」
그녀를 일시적으로 무력화하려면.
타이치「스턴 건, 아니면」
마이오토론(myotoron)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방을 뒤진다.
바로 찾았다.
마이오토론은 방음성이 높은 스턴 건의 일종으로, 상대에게 접촉함으로 인해 뇌파를 차단시킬 수 있다.
효과에는 개인차가 있지만, 대개 10분 정도는 손가락 하나 까닥 못 한다.
문제는 상대에게 어떻게 접촉시키냐, 하지만.
그녀를 유혹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몰래 접근하면 금방 들키겠지만.
그러니까 더욱, 정면으로 가서 방심시키면…….
타이치「될 거야」
이걸로 무기는 됐다.
크로스보우처럼 살상력이 강한 무기는 안된다.
만일을 위해, 예비 건전지도 가져가자.
의심받으면 죽도 밥도 안 되니, 중무장은 불가능하다.
그녀에게 접근해, 구속시킨다.
다소의 상처를 낸다 하더라도.
타이치「……문제는……구속 기간인데」
당연히 송환까지 일주일 동안, 그녀를 감금한다.
그 사이, 식사나 화장실 문제도 신경써야 한다.
감금시간에 비례해, 위험은 늘어난다.
타이치「그래도 할 수밖에 없지」
몸을 일으킨다.
되는 대로 빨리 감금방을 준비해야지.
타이치「……좋아」
심호흡.
그녀의 집으로 향하려고.
길을 덮는 어둠으로 한 발을 내디딘 순간, 그곳엔.
그녀가 있었다.
타이치「……」
요코「……」
지금의 심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충격과 경악이 뒤섞인, 폭풍우와도 비슷한 감정.
하지만 태도마저 혼란해지면 끝이다.
타이치「여어」
다가간다.
한 걸음이 무겁다.
거의 기계적으로 움직인다.
타이치「그게 말야, 왠지 배가 고파서」
타이치「요코의 요리를 먹고 싶어서 말야」
타이치「네 요리, 맛있으니까」
타이치「역시 통조림보단 따뜻한 게 좋잖아」
타이치「이젠 아무도 없으니까, 아무리 응석부려도 안 부끄럽고」
타이치「뭐, 지금까지의 난 조금 매정했을지도 모르겠는데」
타이치「이제부터는 좀 더 솔직하게 대하고 싶어」
한 걸음 한 걸음, 그녀에게 다가간다.
연출하고 있는 것은 한치의 오차도 없는, 평소의 나다.
타이치「맞다, 뭣하면 우리 집에 돌아와도 돼」
타이치「둘이서 살아갈 거니까」
타이치「옛날처럼 같이, 하지만 옛날보다는 희망적인 매일을」
타이치「둘이서」
어슴푸레한 베일을 뒤집어쓴 그녀의 입가가, 달빛을 받아 새하얗게 빛난다.
미소.
등골이 얼어붙을 것 같다.
왜 요코가 여기에 있지?
그 이유를 생각하자, 정신이 아득해진다.
지금의 나를 죽이면―――
아무것도 모르는 나를, 다음주에는 얻을 수 있으니까.
타이치「그러니까……」
타이치「난, 널, 쭉 옛날부터」
타이치「어린 시절부터」
한계였다.
땅을 박찬다.
뛰었다.
넘어지는 척을 하며, 작은 돌을 줍는다.
얼굴을 향해 던졌다.
요코는 가볍게 한 손으로 받아넘겼다.
하지만, 이제 거리는 가깝다.
마이오토론을 꺼낸다.
기계 끝이 복부에 닿았다.
뛰어온 기세로 밀쳐버리기 위해 체중을 실었다.
그리고―――
난, 땅바닥에 내팽개쳐져 있었다.
요코가 등에 올라타 있다.
완벽하게 팔을 붙잡고.
손 끝 하나 움직일 수 없다.
왼손과 얼굴로 땅바닥을 누르는 자세로, 난 엎어져 있었다.
타이치「윽……」
요코「자……타이치」
연인처럼 달콤한 목소리가 속삭인다.
요코「타이치하고 나의 궁합은, 딱 맞아」
타이치「으……크윽……」
요코「다른 누가 살아남을 수 있겠어?」
타이치「뭘?」
요코「폭주한 당신에게는 못 이기지만……」
요코「그렇게 돼도, 난 도망쳐 있을 수 있어」
요코「맹수에겐, 맹수 조련사」
요코「타이치에겐, 나」
뺨에 키스.
그리고 목덜미에 손.
조여지고 있다. 순간 호흡이 멈춘다.
불과 몇 초.
내 의식은, 밤하늘보다 깊은 어둠으로 떨어졌다.

타이치「으……」
가벼운 가슴통증. 눈을 뜬다.
타이치「……여긴」
내 방이다.
감금용으로 쓰기 위해 불필요한 것은 치워져 있다.
요코를 위한 장소에, 내가 갖혀 있었다.
타이치「이건 어떻게 된 거지?」
하품을 참으며 묻는다.
요코「……이번주의 타이치는 기억이 남아 있으니까, 구속」
타이치「진짜로 맹수 취급이네」
요코「일주일간의 인내……」
타이치「화장실은?」
요코「기저귀」
타이치「……진심이냐?」
요코「진심」
인간으로서의 존엄이.
요코「괜찮아, 타이치 건 안 더러워」
타이치「아니,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니잖아」
화장실 이동도 안 되는 건가.
요코「자, 밥……」
타이치「한쪽 팔이라도 풀어줘」
요코「미안해, 안돼」
타이치「…………」
어쩔 수 없지.
체력은 필요하다.
타이치「이래서는 못 먹잖아」
요코「아―……」
타이치「……」
다양한 굴욕이다.
뭐, 어차피 다른 사람도 없으니 상관없나…….
…………………….
거의 하루종일 방치되었다.
타이치「제기랄……」
등이 아프다.
잠기운도 거의 없다.
생각할 시간만은 있지만…….
요코가 왔다.
타이치「……뭐야?」
요코「물」
컵을 입에 댔다.
그녀의 한 손이, 턱 밑으로 내려갔다.
마침 목이 마르던 참이다.
마신다.
타이치「?」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다 마셨다.
타이치「저기……물에 약 탔어?」
요코「필요한 약」
부정하지 않는다.
타이치「무슨 약?」
요코「말해도 이해 못할 거야」
타이치「별 거 아닌가 보네」
대답하지 않고, 그녀는 모습을 감췄다.
타이치「밥은―!?」
어라, 빠듯해질 때까지 굶기는 작전?
제기럴.
잠시 후에 또 왔다.
식사였다.
스튜와 빵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손을 많이 써야 하는 요리다.
식욕도 돋구워졌다.
손을 못 쓰기 때문에, 그녀가 먹여주었다.
더러워진 내 입가를, 그녀는 자기 입으로 닦았다.
그녀의 체취.
허리 부근이 근질근질했다.
타이치「후우」
일단 한숨.
굶긴 다음에 체력을 뺏는다는 건 아닌 것 같은데.
식기를 들고 다시 사라졌다.
다시 돌아오고, 김이 나는 물통. 거기에 수건.
타이치「뭐, 뭐야……」
옷을 벗긴다.
타이치「싫어―, 변태―!」
날뛰어보지만 무의미했다.
옷을 벗기며, 유두를 간지럽히기도 했다.
타이치「강간당한다―!?」
짠 수건으로 온몸을 닦았다.
얼굴. 귓속.
팔. 겨드랑이.
배. 등.
엉덩이. 다리.
마지막으로……음경.
타이치「으으으으으」
전부 깨끗해졌다.
요코「……커졌네」
타이치「말해두지만, 성욕 때문에 커진 게 아냐」
요코「알고 있어. 괜찮아」
수건을 물통에 담군다.
요코는 그대로 우뚝 서 있다.
타이치「왜, 아직 뭐 남았어?」
정확히 수직으로 선 내 물건을, 가볍게 만진다.
요코「……커」
손가락이 뿌리에서 귀두까지 타고 올라간다.
요코「타이치 거, 훌륭해」
타이치「으……」
민감해졌다.
피부가 찌릿찌릿했다.
요코「입으로 할게」
숨과 말을 동시에 내뱉은 그녀는, 이미 살짝 뺨을 붉히고 있었다.
달아오른 시선이 나를 향하고 있다.
욱씬, 하고 가랑이 사이가 쑤셨다.
타이치「보통……반댄데……」
팽팽해진 몸은, 평소보다 맹렬해졌다.
이상하게 흥분하고 있었다.
나도, 그녀도.
안돼, 강간 확정인 것 같다.
요코「……타이치……멋져」
요코「응……으읍, 으응, 아, 흐응……응, 으응……」
혀로 빨아온다.
요코「츕……츄웁, 응……으응……응―」
부드러운 자극.
반복한다.
요코「아, 흐읍……낼름, 읍……낼름, 낼름……」
귀두를 가볍게 삼키고, 바로 뱉어낸다.
달아오른다.
타이치「으으……」
요코「흐응……응……응, 으읍, 응」
요코「으응, 으읍, 낼름……앙……으응」
혀와 입술이 서로 얽혀서 몸부림친다.
요코「츄우웁……츕, 츄웁……응, 아흥……」
타이치「으아아……」
낮은 목소리가 새어나온다.
요코「아……낼름……응, 으으응……츕」
달라붙은 입술. 뱀 같은 움직임.
중심선에서 느껴지는 혀 끝이, 육봉에 축축한 흔적을 남긴다.
요코「응―, 으으응―, 으응……츄우웁……응……끈적끈적하게, 됐어, 타이치」
타이치「네가, 한 거잖아」
간신히 목소리를 쥐어짜낸다.
요코「마를 때까지, 빨아줄게. 기뻐?」
타이치「글쎄」
허세뿐이다. 나에겐.
요코「낼름……」
길게 내밀어진 혀.
침이 늘어진 그 핑크빛 살점이, 뿌리에서 귀두까지를 골고루 빨았다.
타이치「우왁……」
등골이 경련했다.
위험하다.
민감한 사춘기인 내 성욕은 무한대다.
빠는 곳을 바꾸어, 수없이 반복되는 애무.
요코「응―, 읍, 으흡……으응……으흡……앙……」
타이치「……윽」
부들, 몸이 떨린다. 멈추지 않는다.
묘하게 온몸이 민감해져 있었다.
이상흥분인가?
요코「타이치 거, 떨리고 있어」
웃는다.
요코「갈 것 같아지면, 말해」
타이치「…………」
요코「응……무척 뜨거워……응……그리고, 흥분해서, 딱딱해지고 있어……타이치……으응」
타이치「큭……」
치밀어올랐다.
나온다.
그리고, 요코는 몸을 떼어놓았다.
따뜻한 수건으로, 침으로 젖은 물건을 닦아낸다.
타이치「……?」
요코「그럼 내일 봐」
생긋 웃고는, 그녀는 방을 나갔다.
타이치「……」
옷 밑으로 탑처럼 솟아 있다.
타이치「아예 죽여라……」
역시 빡세군.
그런데.
타이치「어, 설마 괴롭히는 건가?」
그날 밤, 난 밤중까지 괴로워하고 있었다.

타이치「으으으」
수요일이다.
오늘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타이치「으으으으으」
울 것 같았다.
타이치「아아―, 으악―」
바둥거린다.
타이치「난……난……」
꿈틀거리고.
타이치「오우오우오우오우」
경련하고.
타이치「WC!!」
소망을 털어놓는다
WC. 내가 요구하는 것.
WC. 인간의 존엄.
WC. 인간다움의 9할을 차지하는 것.
노인을 돌보는 고생과, 돌봐지는 노인의 입장, 그 사이에 있는 것을 지금이라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타이치「앗, 앗, 샌다―!! 싫어―, 기저귀는 싫어―!!」
문이 열렸다.
요코「안녕」
타이치「최악의 타이밍이다!」
게다가 수상한 물건을 들고 있었다.
타이치「그, 그건?」
그녀는 물건을 내려놓았다.
물통과……실린더 관장기.
타이치「윽!? 윽!?」
울면서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타이치「인권을, 부디 인권을」
요코「……」
차분해 보이지만, 조금 얼굴을 붉히고 있다.
열정적!?
타이치「Peace to All ass! (모든 엉덩이에게 평화를) Peace to All ass! (모든 엉덩이에게 평화를)」
그녀가 실린더를 손에 쥐었다.
타이치「싫어――――사람도 아냐――――!」
타이치「흑흑」
식사를 가지고, 요코가 돌아왔다.
타이치「흑흑흑……」
난 하염없이 울고 있었다.
요코「자, 아― 해봐」
타이치「……」
단식으로 반항하려고 생각한 참에, 배가 울렸다.
육체의 저항이었다.
결국, 갓난애처럼 밥을 먹었다.
무지 맛있었다.
그리고 아침밥만으론 끝나지 않았다.
그녀의 시선이, 내 가랑이 사이에 머문다.
당연하지만 서 있다.
요코「……이건 아침발기?」
타이치「아니, 피로한 곧휴야」
요코「마사지해 줄게」
타이치「됐어, 그만, 내 곧휴를 만지지 말아 줘. 가만히 냅둬」
잡혔다.
요코「……뜨거워, 화상입을 것 같다……」
타이치「제발 그래 줘」
움직였다.
타이치「~~~」
요코「어때?」
타이치「좋은 날씨네」
점점 속도가 빨라진다.
타이치「……윽」
어제 중간에 끊긴 관능의 불꽃이, 단번에 피어오른다.
등골이 추울 때처럼 저렸다.
요코「귀두에서 뭔가 나오고 있어……재밌어……」
그녀는 혀를 뻗어, 귀두만을 빨아냈다.
요코「쭈웁」
타이치「……으윽」
동시에 부드럽게 음낭을 비빈다.
요코「……써」
타이치「바보」
세게 잡힌다.
남자 수준의 악력이다.
타이치「우와왁」
요코「바보라고 했어」
타이치「응, 그랬어」
요코「상처입었어……」
타이치「개구라」
풀이 죽는다. 연기다.
타이치「당장 음경을 희롱하는 짓을 그만두고, 방을 나가도록」
요코「여기는 그렇게 안 말하는데」
쭤뻐쭤뻐.
그런 소리가 났다.
타이치「내 곧휴는 그렇게 쭤뻐거리지 않아!」
쭤뻐쭤뻐쭤뻐쭤뻐!
무쟈게 내고 있다.
타이치「우갹―!」
움직임은 절묘하다. 쉴새없이 손목의 각도가 변한다.
잡는 자세도 속도 조절이 자유자재로, 가슴에 달라붙은 듯한 강제적인 자극을 준다.
위험해, 이대로는 방금 전의 굴욕에 이어 또다시 체액이 배출되어버린다.
이를 악물고 참았다.
타이치「……윽」
요코「참고 있네」
타이치「글쎄?」
슬쩍 튕긴다.
여유는 별로 없지만.
지금은 참는 게 내 전부다.
요코「……기분 좋지?」
손가락이 스윽스윽 기어다닌다.
압박감이 순간, 아픔과 가려움으로 변한다.
타이치「윽……」
요도를 손가락으로 괴롭힌다.
타이치「으극……」
요코「어때? 아니면, 이런 게 더 좋아?」
초고속 피스톤 운동.
이건 위험했다.
대뇌 중추의 자극 및 성기의 국소 자극에 의해 척수반사 중추가 흥분 상태에 빠져 쾌락 신호가 하복부 신경을 통해 생식기에 보내짐으로 인해 전립선액과―――
특정 종류의 원더풀 세포와의 혼합액체가 요도로 사출되려는 현상이 유발되려 하고 있었다.
타이치「아아……잠깐, 스톱……!」
요코「……알았어」
타이치「어?」
피로한 곧휴를 놔두고, 그녀는 나가버렸다.
타이치「……엉?」
묶여 있던 무력한 나와, 열정의 남은 불꽃만이 남겨졌다.

그리고 밤이 되었다.
탈출할 기회는 없었다.
묶여있던 건 물론이다.
깨무는 정도가 고작이지만.
아무리 이빨이 튼튼해도, 쇠사슬을 끊는 것은 무리다.
무료하게 시간이 흘러간다.
주말을 향해.
타이치「……으」
허리가 쑤신다.
몸도 이상하게 달아오르고 있다.
점점, 이성이 퇴화해가는 것 같다.
생각하는 힘이 약해져간다.
위험한 상황이다.
방에 변화가 부족한 것도 위험했다.
생각밖에 할 수 없는데, 몸이 달아올라 생각조차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고통스런 감옥이었다.
인간은 아무래도, 지루함에 익숙해지지는 못하는 것 같다.
몸도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심장이 팽팽해져, 미칠 정도의 분노가 뻗친다.
자극된 성욕이 지속적으로 몸을 달궜다.
이대로라면 성욕으로 훈제가 되어버릴 것 같다.
타이치「……제길」
괴롭다.
그저 괴롭다.
애초에 고문따윈 필요없다.
흰 방에 가두고 방치하기만 하면 그만이다.
변화없는 시간이 그 녀석을 천천히 상처입힐 것이다.
문이 열린다.
의식하기 싫어도, 시선이 향해버린다.
타이치「아……」
요코였다.
세계에는 이제 그녀밖에 없다.
쟁반에 식사를 담고 왔다.
공복……아아, 배도 고프구나.
타이치「배고파……」
가는 목소리가, 다른 사람 같은 목소리를 냈다.
그리고 난 식사를 했다.
카레였다.
조금 달콤한 그 맛이 위로 스며든다.
그리고 물.
이미 예민한 감각은 사라졌지만, 분명히 약물이 들어있을 것이다.
그래도, 상관없다.
타이치「……한 그릇 더」
요코는 말없이 가져왔다.
타이치「맛있네」
뺨을 쓰다듬어 주었다.
이대로.
생각한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그녀에게 몸을 의지해서.
다음주를 버리면.
이런 인간이라도, 인간임엔 틀림없는데.
아니.
반발심이 끓어오른다.
지금의 나를 버릴 수는 없다.
지금까지 유지되어 온 내 의지가 북받쳐오른다.
모두를 돌려보낸 나다.
여러가지 추억을, 마음에 새겨넣었다……폭탄과 같은 내 안에.
나를 소중히 하자.
존속시키자.
하늘이 무너지는 그 날까지.
살아남자.
그러기 위해서는…….
타이치「잘 먹었어. 가도 돼」
차갑게 내뱉는다.
요코「…………」
그녀는 가지 않았다.
가랑이 사이에 손을 가져간다.
타이치「……만지지 마」
당연히 불끈 솟아있다.
허세다.
거세당하지 않기 위한 허세.
요코「……부어 있어. 터질 것 같아」
타이치「누구 탓인데」
그녀의 자극과, 약의 탓.
가능한 한 또렷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요코「그럼……여기는 안 만지는 게 좋을 것 같아」
손바닥으로, 귀두를 살며시 잡는다.
타이치「……윽」
바로 놓는다.
타이치「놀리는 거야?」
요코「사랑해」
얼굴이 다가온다.
요코「혀 내밀어. 빨아줄게」
사정할 것 같아졌다.
타이치「……됐어」
고개를 돌리려 한다.
턱을 잡히고, 키스를 당한다.
요코「응―――」
타이치「윽……으읍……」
입 안을 마음껏 유린당한다.
도망쳤던 혀도 금세 붙잡혀, 그녀의 긴 혀에 휘감긴다.
굉장한 힘으로 조여서, 침을 쥐어짜낸다.
타이치「으, 으윽……」
제길,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버티기 힘들어졌다.
저항을 그만두고 싶어진다.
하지만.
타이치「윽」
저항을 계속한다.
난, 누군가의 소유물은, 되지 않겠어.
그녀는 세게 빨아내면서, 키스를 마무리했다.
타이치「으읍」
혀가 빠질 것 같다.
순간, 머리가 새하얗게 되었다.
위험해…….
타이치「퉷」
침을 뱉어 본다.
최소한 방심은 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 지금은 극한까지 저항해야 한다.
쓸데없는 발버둥의 끝, 피폐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다시, 키스.
허를 찔렸다.
타이치「으읍―――」
요코「응, 흐응……읍, 츄웁……츄웁……응, 으응, 으으응」
열렬한 펠라치오.
순간적으로 허리가 떠오른다.
입 안의 수분이 모두 빨리는 듯한.
기다란 혀가, 목으로 침입해 온다.
말릴 방법은 없다.
뜨거운 구강이, 열을 쏟아냈다.
그녀의 혀의 맛이 잘 느껴진다.
얽힌다.
기어가는 거머리가 떠올라, 미칠 것 같다.
요코「츕, 츄웁……응, 낼름……츄웁, 응……으응, 으응, 흐으응」
가끔씩 흡입을 섞는다.
소름이 돋는다.
가랑이 사이에 닿는 그녀의 하반신마저, 극도로 민감하게 느껴졌다.
입술을 가볍게 문다.
가벼운 고통과 함께, 내 의식을 태운다.
그리고 더 깊게 넣는다.
요코「응―, 으읍, 읍……으으응, 응……츕, 츕, 츄우우우웁~……」
타이치「……으윽」
키스만으로, 나는 쌀 것 같았다.
그것을 눈치채고, 그녀는 떨어졌다.
타이치「으……」
가랑이 사이에 댄 무릎으로, 우뚝 솟은 음경을 옆으로 눕힌다.
쾌락이 음경 끝을 시작으로 피어올라, 뿌리까지 순환한다.
미칠 것 같다.
요코「침, 흘리고 있어……타이치……」
타이치「……」
몸을 컨트롤할 수가 없다.
요코「……응……아까워……」
그녀가 핥았다.
요코「내 것도 마셔」
다시 입맞춤.
밀려오는, 어이가 없을 정도의 타액.
타이치「으읍」
한없이, 한없이.
요코「응, 응……으응……츕, 으으응……」
타액.
목의 갈증이 풀릴 정도의.
침을 잔뜩 보내고 나서, 부드러운 구강 애무로 바뀐다.
요코「츄웁, 응……응, 흐응, 응……으응, 으으으응」
능숙한 성기로 변한 혀를.
타이치「으……으으……」
난 거부할 수 없었다.
입술이 떨어지자, 적막한 감각에 휩싸인다.
요코「후훗, 귀여워……느꼈어?」
웃고 있다.
요코「……입으로……느끼는구나……으으으으응」
마지막으로 입 둘레를 한바퀴 핥고 나서, 그녀는 일어났다.
타이치「하아, 하아아……」
한숨.
그 쓸쓸한 분위기를 느껴버린다.
옷을 더듬어 내가 사정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고, 그녀는 식기를 들고 나갔다.
타이치「……제기랄!」
외친다.

정신을 차리자 밤이 되어 있었다.
공허함에 빠져 있던 것 같다
타이치「으……」
용변을 보고, 식사를 했던……것 같기도 하다.
그게 오늘 일인지, 어제 일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아무도 없는 방.
빼앗긴 자유.
안개에 휩싸인 듯이, 의식이 새하얘진다.
사고력이 마비되어간다.
오늘은 무슨 요일일까.
아마 목요일?
어제는 무슨 일이 있었더라?
변화가 없으면, 시간 감각은 헝클어진다.
곤란한데.
배가 울린다.
아무래도 공복인 것 같다.
문이 열린다.
그녀였다.
뜨거운 물이 든 물통을 들고 있다.
아아, 목욕이구나.
요코「그럼……몸을 닦을게」
타이치「……맘대로 해」
입으로는 그렇게 말해도, 몸은 정직했다.
요코를 보는 순간, 온몸의 피부가 떨린다.
기대하고 있었다.
세밀하게 가해지는, 강렬한 쾌감을.
그녀가 주저앉는다.
옷을 벗기고, 음경을 가볍게 잡는다.
이미 발기해 있는 그것은,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았다.
하지만 아슬아슬한 단계까지 자극은 조절되고 있었다.
절정에 달하지 못한 채, 나는 희롱당한다.
타이치「으윽……」
벗겨진 가슴팍에, 입술이 다가갔다.
타이치「응……」
요코「……응……츕……낼름……」
유두를 강하게 자극한다.
요코「으응……응……타이치의 유두, 딱딱해졌어……츕, 으응……」
타이치「시끄러……」
요코「여기도……훗……으흡, 응……으으으응……」
음경이 이리저리 흔들린다.
그것도 잠시.
쌀 정도가 되진 않는다.
요코「……앙……응……으으응……낼름……낼름……응―」
혀 끝이 가슴팍을 훑어간다.
목덜미에 다다르자, 꼬리뼈까지 떨렸다.
요코「후훗……지금, 움찔했는데……여기?」
타이치「…………」
요코「으으읍~, 으응, 으으으응~~~, 으흡, 흐읍, 응, 으으응……」
온몸이 열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발산할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
다시 전신 애무로 돌아온다.
요코「응, 으응, 으으……으읍, 츕……응, 아항……으으으으읍~~~」
선언대로, 그녀는 입만으로 온몸을 닦았다.
요코「……깨끗해졌네, 그치?」
타이치「그래……」
……한 곳을 빼고, 말이지.
하지만 평소의 패턴이라면 이쯤에서―――
요코「잘 자, 타이치」

눈 앞에, 그 아이가 있다.
고고한 공주.
항상 변함없이 자신을 유지해 왔던 그녀가, 지금은 흥분해 있다.
타이치「안돼……이런 건……」
난……긴장하고 있다.
계속 접근하면, 그녀의 체취가 느껴지기 때문에.
타이치「왜 이러는 거야」
요염하게 미소지으며, 그녀는 말했다.
요코「이건 계약……같은 날에 죽기 위해, 가슴에 새기는 거야」
타이치「새겨?」
요코「일심동체가 되는 거야」
그리고, 두 개의 작은 그림자가 겹쳐졌다.
…………………….

꿈인가.
옛날 꿈이다.
이런 기억도 남아있었구나.
분명, 처음 그녀하고…….
문득 의식이 또렷해진다.
타이치「아아, 그래……난」
감금당하고 있었지.
창에서 밤하늘이 보였다.
오늘은 목요일, 맞지?
타이치「탈출……탈출해야돼」
그리고, 평소처럼.

타이치「……………………」
아아, 아침이 됐구나.
낮……인가.
시간 감각이 완전히 사라졌다.
식사 시간은 꼭 하루 한 번씩 어긋나서, 배의 상태로도 이제 판단할 수 없다.
1시간과 1분이, 동일한 괴로움 속에서 흘러간다.
정신을 차리자 문고리를 보고 있었다.
방문자를 기다리며.
그리고 눈치챈다.
난 생각보다 깊은 고독 속에 있다는 것을.
겨우 몇일 동안인데?
방에 갇히기만 했는데?
난 지나치게 낙관적이었고, 어렸다.
혼자서 살아가다니.
혼자서 해나갈 수 있다니.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몸이 뜨겁다.
다리를 꼬아보지만, 가랑이 사이의 맥박은 진정되지 않는다.
문고리가 돌아간다.
타이치「……!」
봐버린다.
이제 여유는 없다.
변화. 성욕. 공복.
각종 욕구로, 열병에 걸린 듯이 들뜬다.
타이치「……요……코」
특히 성욕은, 이미 한계다.
온몸이 터질 것 같았다.
우선 물을 마신다.
여러가지 처리를 당한다.
뜨거운 수건으로 몸이 닦였다.
그것이 끝나자, 그녀의 손 끝은 하복부를 쓰다듬었다.
기다렸다는 듯, 페니스가 반응했다.
요코「꿈틀거리네……타이치」
타이치「…………」
반론할 기력은 없다.
요코「눈깜짝할 사이에……끝나버릴 것 같아……」
요코「그러니까……한 번만 빨게」
타이치「!?」
그녀의 구강이, 내 물건을 덮었다.
요코「응……으으응……츕, 츄웁……으으으으으으응, 응, 응……으으으읍……」
타이치「우왓, 왓˝!?」
하반신이 물고기처럼 펄떡거렸다.
나온다!!
요코「자, 끝」
타이치「으윽……」
마음 속으로 신음한다.
반죽음. 지옥.
몸부림치고, 무릎을 꿇고, 이마를 부딪히고, 이를 악문다.
요코「……타이치, 귀여워, 좋아해」
타이치「하……앙……」
그리고 떠났다.
장난감이다.
난, 장난감이다.
아니, 도구인가.
타이치「하하……」
웃기는 인형―――
그리고, 평소처럼.

또 아침이 왔다.
새도 매미도 없는 아침이다.
실감이 없는 아침.
허무.
나비의 꿈.
끝나지 않는 꿈은 없다고, 한없이 되뇌였다.
밤.
어두우니까 밤이다.
눈을 감아도 어둡다.
밤이라고 착각했다가.
뜨면 낮.
깜박임의 여행, 세계를 창조하고 부수고.
한숨이 나왔다.
축적된 미량의 스트레스가, 그렇게 만들었다.
요코「……」
갑자기 요코가 나타났다.
환상인가.
여자의 향기.
현실인가.
요코「어떤 기분?」
기분?
모른다.
생각하기 싫다.
기분따윈―――
사라지고 싶다, 고 생각할 뿐이었다.
그 생각만은 피할 수 없었다.
그리고 또다시 의식의 도약이 일어나고, 교접해 있는 내가 있었다.
요코「……오랜만……타이치하고, 이어지는 거」
타이치「하, 하아……하아……」
그녀의 뜨거운 음부가, 귀두와 밀착한다.
이슬의 감촉이 느껴졌다.
문득 올려다보자, 그녀의 눈동자도 축축히 빛나고 있었다.
차가운 달빛을 받아, 일곱 빛으로 물드는 흑발.
매료된다.
요코「……자, 조금만……넣을게……응!」
그대로 몇 센티 삽입된다.
요코「아……박힌다……박힐 것 같아……」
타이치「아, 아아아……응……」
요코「있잖아?」
타이치「……하아, 크윽……」
이를 악물어 참는다.
역효과밖에 되지 않았다.
다른 행위는 불가능했다.
그리고, 왜 참고 있는지도 알 수가 없어졌다.
요코「이대로……응……다리를 열면……안까지 들어가……」
연기한 말이, 내 사고를 살짝 흔들었다.
타이치「그럼, 그러……던지……」
내 입에서 인간의 말이 나와, 조금 안심한다.
요코「아니, 제대로 말해 줘」
요코「……갖고 싶다고」
타이치「…………」
요코「요구해 줘」
타이치「……갖고 싶어」
요코「하고 싶어?」
타이치「하고 싶어……」
요코「안까지?」
타이치「안까지」
기계적인 대답, 하지만 그녀는 만족한 것 같았다.
요코「그럼……간다……응……으으응, 응……응―――으읏!」
타이치「우와……」
시야가 흰색 일변도로 변했다.
국부를 덮은 열기가, 전신을 자극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요코「……나, 방금 그걸로, 새하얘졌어……응……으응……」
나와 비슷해진 것 같다.
요코「그러니까 천천히, 알았지?」
허리를 내린다.
요코「으으응, 응……아아아아아아아아」
올린다.
내린다.
올린다.
내린다.
질벽을 이용해, 수직으로 우뚝 솟은 부분을 남김없이 감싼다.
그녀와 이어진 게 몇 년만일까.
무츠미 아줌마한테 들킨 게 분명.
맞다, 내 고유 시간을 고려하면, 몇 년전이란 질문은 무의미하다.
실질적인 세월 같은 건 세지 않았으니까.
요코「앙……응……천천히, 천천히……」
살의 압력이.
안쪽의 미세한 벽이.
처절한 관능을 전달해.
터질 것 같아진다.
타이치「으……으윽」
요코「……응……안돼……아직……」
멈춘다.
요코「하―앗, 하아, 하아……뜨거워……배가, 불탈 것 같아……」
타이치「요코」
목소리가 뒤집힌다.
몸이 한번 움찔하자, 터질 듯한 예감이 들었다.
긴장은 저쪽에도 전해졌다.
요코「안에, 싸」
단번에 허리를 내렸다.
폭발.
요코「……으으으응, ~~~~~~~으으읏!」
타이치「아˝ㅅ!」
요코「아……」
방출의 시간이, 이상할 정도로 길게 이어졌다.
쭉 쌓여왔던 정액이, 단숨에 방출된 듯한 느낌이다.
가랑이 사이에서 정수리까지 합심해.
요코「……하……앙……뜨거워……아, 아직도 나와……」
정액의 큰 덩어리를 수없이 토해내는 감각.
요코「응……아직……나오는 것 같아……」
타이치「하아」
간신히 끝났다.
허탈함이 찾아왔다.
요코「……아직 전혀, 만족하지 못했어……」
요코「계속해……응?」
아직 몸은 뜨겁고, 그녀 안에 있는 물건도 단단함을 유지한 채다.
타이치「응……」
그녀가 움직인다.
팔을 쓸 수 없는 나는, 저항할 수 없다.
주도권을 잡지 못한 채로, 계속 받아들인다.
이제 시간이 없다.
그래서 나를 절정에 달하게 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그녀를 받아들이는 일은 없을 테니까.
요코「핫, 핫, 아앗……아앙, 응, 으응, 으……으응, 앗, 하아앗」
두 사람의 애액이 감각은 둔하게 만들었지만, 수없이 움직이자 질의 압력이 여분의 액체를 방출했다.
나와 그녀. 낮고 흐려진 숨결이 겹쳐진다.
복근에 올려진 손이 간지럽다.
요코「응―, 앗, 앙, 응……」
가끔씩 좋은 부분에 닿았는지, 목을 뒤로 젖히고 콧소리를 냈다.
요코「으으응, 으응, 앗……흐아, 하, 아아, 꺄아…」
요코「아으……으읏……으응……」
요코「앗! 하아…응……으응……하아……」
뿜어져나온 애액이 하반신을 적혀서, 차갑다.
하지만 사소한 불쾌감도, 압도적인 쾌락에 휩싸여간다.
질 안이 좁혀졌다.
그녀가 허리를 돌린 것이다.
타이치「아, 윽」
요코「타이치……또, 갈래? 가고 싶어?」
말없이, 끄덕인다.
요코「그럼, 빨리 움직일 테니까……또 싸도 돼……」
말하고 나서, 요코는 움직였다.
머리칼이 잔뜩 흐트러지고, 달빛으로 창백해진 피부에 분홍빛이 퍼져갔다.
라스트 파트에 들어간다.
요코「응, 으응, 으으으으응―――」
두 번째.
내 쪽이 먼저 절정에 달했다.
타이치「……윽」
요코「……하아……앗, 간다……간다……으으읏―――!!」
요코도 따라왔다.
몸을 굽히고, 키스.
요코「하아, 타이치……응……으으응……츕……」
요코「아……넘친다……굉장해……」
아직 발기는 풀리지 않았다.
요코「……아직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행위는 끝없이 계속된다.
절정 때마다 찾아오는 음경의 무거운 떨림이, 당연한 것처럼 느껴졌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요코「으응……응, 핫, 아항, 핫, 하아아……응……아……온다……나도, 또 와……온다……온다―――읏, ~~~~~~으으읏」
활처럼 휘어서, 그녀는 절정에 달했다.
질이 수축되었다.
그것이 최후의 방아쇠가 되어, 사정을 재촉했다.
요코「하앗, 하아, 하아……」
흥분이 떠났다.
엉덩이 밑으로 축축하게 젖은 시트가 느껴진다.
요코「만족, 했어?」
타이치「…………」
요코「몇일이나 조바심나게 했으니까, 기분 좋았나 보네……」
요코「나도, 그래」
요코「응―――」
…………………….

분명……오늘은 일요일이다.
머리가 뚜렷해졌다.
어제, 그래 어제, 모두 토해낸 덕분이다.
욕정이 떠나면, 이성이 돌아온다.
그런 면에서, 요코는 실수를 했다 할 수 있었다.
타이치「……안 풀리네」
쇠사슬은 접합부분이 가장 무르다.
지속적으로 힘을 주어 봤지만, 풀릴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역시 조커밖에 없는 건가.
우울해진다.
한때는 내 반신이었던 상대다.
배신, 이 되는 걸까.
그래도……역시……사라지는 건 싫다.
나에게 진 채로, 한없이 휘둘리는 것도 싫다.
나를 때리는 건 극기라고 쓸 정도로 어렵지만……말야.
난 내가 싫으니까.
싫은 녀석한테는, 지고 싶지 않다.
요코를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상처입힐 수밖에 없다.
그녀에게도, 약점은 있다.
조금만 찌르면 쉽게 붕괴로 이어지는, 치명적인 상처다.
눈을 감는다. 생각한다.
처음 만난 순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를.
눈을 뜬다. 망설임은 없다.
미안, 요코.
난 비겁한 짓을 하겠어.
…………………….
그리고―――

요코「안녕」
타이치「……」
요코「……몸, 닦을게」
요코「마지막 정도는, 깨끗하게 있고 싶지?」
타이치「……」
그리고, 작업을 끝내고 그녀는 말했다.
요코「이걸로 이별」
타이치「……」
요코「현상이 되는 우리들에게, 쓸데없는 감상은 필요없지만……그래도」
요코「……타이치……미안해」
요코「고유의 당신을 그대로 유지할 방법은 없어」
요코「그러니까……마지막으로 하나만 부탁할게」
타이치「……」
요코「같이 가자」
간청.
그녀의 그런 태도에는, 조금 놀랐다.
요코「지금의 개체가 손상되기 전까지는……둘이서 같은 시간을 보낼 수 있어……」
요코「영원하지는 않지만」
요코「우리들에게 유용한 시간이 될거야」
요코「……타이치?」
그 제안은 고맙지만.
난…….
타이치「…………」
요코「……그래」
침묵을 부정이라 받아들이고, 그녀는 살짝 한숨을 쉬었다.
요코「그럼 타이치, 다음주에 봐」
요코「기억은 없겠지만」
그리고 나간다.
입을, 연다.
타이치「……겁쟁이」
우뚝, 그녀는 멈춰섰다.
요코「……어?」
타이치「겁쟁이라고 했어」
타이치「그리고, 배신자」
뒤돌아본 얼굴이, 밀랍인형처럼 보였다.
요코「…………타이치」
웃어준다.
희미한 악의를 담아.
타이치「잊어버린 줄 알았어?」
타이치「충격으로 전부 확 날아가버린 줄 알았어?」
타이치「……기억하고 있어. 전부 말야」
타이치「아니면, 건드릴 리가 없다고 생각했어?」
타이치「내 생각 패턴으로는, 불가능할 것 같았어?」
얼어붙은 소꿉친구에게, 말을 쏘아붙인다.
타이치「난 널 좋아했어……정말로 좋아했어」
기억은, 단번에 유아기로 날아간다.
타이치「도서관에서 만나서, 얘기해본 적도 없는 너를」
타이치「등을 쭉 펴고, 누구와도 사귀지 않고, 그저 자신만을 바라보는」
타이치「그런 널 좋아했어」
타이치「하지만, 사이좋게 지내고 싶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어」
타이치「접촉할 필요는 없었으니까」
요코「…………」
타이치「하지만 넌 어쩔 수 없는 궁지에 몰려, 무너지기 시작했어」
타이치「물론 약간의 동정은 했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알았고, 적어도 당시의 난 지금보다는 훨씬 착실했으니까」
타이치「그래서, 암묵적인 규칙을 깨뜨렸어」
요코「……그만 해」
허약하게 떨리는 목소리.
타이치「말을 건 거지」
요코「타이치」
타이치「난 단 하나뿐인 아군이었지? 그 저택에서」
타이치「그래서, 갑자기 의식하게 된 거고」
요코「……경과 같은 건 아무래도 좋아」
요코「난 타이치를 선택했을 뿐」
자세를 가다듬은 그녀가, 내심의 두려움을 극복하고 말을 한다.
태연을 가장한 그 목소리는 팽팽했다.
요코「그 마음을 굳이 언어로 표현할 필요는 없어」
요코「좋아하고, 사랑해」
요코「두 사람은 일심동체. 끊어질 수 없는 인연」
요코「그걸로 좋다고 생각해」
타이치「난 그렇게는 생각 못하겠는데」
타이치「넌……누구든 상관없었어」
타이치「아군이고 유능하다면, 누구든」
타이치「선택? 아냐. 자동이었지. 나밖에 없었으니까」
타이치「그 결과, 어떻게 됐지?」
타이치「넌 자립하지 못하게 됐고, 난……괴물이 되었어」
타이치「그리고―――」
요코「……그만!」
처음으로.
그녀는 감정을 나타냈다.
그건 공포라고 부르는 거야, 요코―――
타이치「사실이야」
타이치「난 하루도 잊은 적이 없어. 그게 내 뿌리니까」
타이치「일심동체. 분명히 그런 약속을 했었지」
타이치「……일심동체란 건 말야, 서로를 완전히 긍정하는 거야」
한 발짝, 뒷걸음질치는 요코.
타이치「그 날」
타이치「너하고 내가, 손을 잡은 날」
타이치「치밀하게 계획하고……준비해서, 신카와 녀석들을 몰살시키려 한 날」
타이치「복수의 날!」
타이치「넌 말했지」
타이치「네가 하려고 했던 일이잖아?」
타이치「원래의 요코라면, 혼자서 해치우려고 했을 거야!」
타이치「하지만 넌 나한테 의지했어!」
타이치「그리고―――」
요코「……아냐, 아냐아냐!」
요코「그게……아냐……」
타이치「맞아」
고르고 고른 말이, 장전된다.
짐승을 맞추기 위한 필살의 탄환.
나를 위해. 내가 나로 있기 위해. 내일을 위해. 다음주를 위해. 다음주 월요일에 여러가지 일을 후회하거나, 다음주 토요일에 그리운 추억에 잠기기 위해. 그리고. 나와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나와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로 남을 수 있기 위해.
생애 최후의 교차를 위해.
난 방아쇠를 당겼다―――
타이치「넌 그날, 단 한 명도 죽이지 않았으니까」
하세쿠라 요코가 수천개로 갈라졌다.
타이치「……전부, 내가 죽였어」
타이치「함정과, 불과, 칼로」
타이치「전부 내가 죽였잖아」
타이치「넌 아무것도 안 했잖아!」
요코「……싫어!」
외친다.
외칠 뿐, 움직이지 못한다.
그 때, 죽인 건 나뿐이었다―――
100%, 그녀를 위해 죽였던 것이다.
타이치「……떨었을 뿐이지」
타이치「그뿐이라면……차라리 나았어」
타이치「난 네가 해방되고, 원래대로 돌아오기만 하면 만족했어」
타이치「……모든 것을 마치고……돌아온 나를 보고……」
타이치「넌, 두려워, 했었잖아」
유일한 감정의 응어리.
나의 원체험.
트라우마.
요코「……으……」
타이치「뭐가 일심동체야」
타이치「뭐가, 내 전부야」
타이치「넌 배신자야. 미미 선배하고는 비교가 안되지」
타이치「내가 몇십명이나 죽이고 나서, 돌이킬 수 없는 영역에 발을 들이고 나서, 내가 망가져버리고 나서……유일한 아군이었던 반신에게……거절당한 거라고!」
요코「…………아……냐……」
타이치「그 순간, 내 가치관은 붕괴했어」
타이치「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어」
타이치「마음이, 인간의 마음과 동떨어졌어」
타이치「……그 후로……날 다시 키워준 건 감사하고 있어……」
타이치「덕분에 인간의 흉내는 낼 수 있게 됐어」
타이치「좋아해, 사랑해. 서류상으론」
타이치「그런데, 왜 넌 날 그 자리에 두고 오지 않은 거야?」
타이치「그거 하나가 정말로 궁금해」
그녀의 눈동자에 의문이 머문다.
타이치「일이 끝났으니까, 볼장은 없잖아?」
요코「그건……타이치를……좋아하게 됐으니까……」
타이치「너같이 인간의 정점에 달한 존재의, 퇴화한 사랑따위 받고 싶지 않아」
요코「……!?」
타이치「그대로 버리고 갔으면, 넌 분명 대단한 존재가 되었을 텐데. 바보같긴」
타이치「긴 시간을 투자해, 날 키우고……」
타이치「내가 어떻게 해야 속이 시원한데」
타이치「우리들은 네 말처럼 일심동체가 아냐」
타이치「난 너를 모든 것을 버려가면서까지 필요로 하지 않아. 그리고 너도―――」
요코「……그만!」
타이치「너도, 날 필요로 하지는 않아」
타이치「그 사건의 여파로, 타성적으로 그렇게 됐어」
타이치「그리고 넌, 그런 초보적인 눈속임을 눈치채지 못한 척할 뿐」
타이치「……용서? 그건, 너 자신을 용서하는 행위야?」
타이치「하세쿠라 요코는 그걸로 용서받는 거야?」
타이치「네가 머물고 있는 이 공간은, 절망의 밑바닥이잖아」
타이치「……내가 알고 있는 요코가, 그걸 용납하리라곤 생각하지 않는데」
요코「……타이치, 그만……부탁이니까……」
타이치「넌 나를 이용하려 했고, 다치게 했어」
타이치「자기 마음이 치유될 때까지, 무조건 아군으로 있어 준 존재인 나를」
타이치「편리한 도구로써의, 정밀한 나를」
타이치「그리고 이 눈」
타이치「너에게 그 환경에서의 선택은 하나밖에 없었어」
타이치「어른은 안됐지. 들통나기 쉬우니까」
타이치「하지만 어린애라면」
타이치「……어린애가 몇십 명이나 되는 사람을 죽일 리는 없다, 이렇게 생각하지」
타이치「나라는 선택. 이건 완벽한 정답이었지?」
타이치「일심동체, 마음에 새기는 계약」
타이치「암시 그 자체지」
타이치「강박관념과 쾌락으로 말야」
타이치「……네가, 설마 뒷걸음질칠 줄이야」
타이치「내가 첫번째 사람을 죽였을 때, 바닥이 뇌수하고 피하고 위액 투성이가 되고, 단지 그것만으로……넌」
타이치「넌 손끝 하나 움직이지 못했어」
타이치「……그렇게 멈춘 너는, 그대로 계속 멈춰 있었지」
요코「……그……만……」
타이치「난 계속 움직였어. 대조적으로」
타이치「난……널 숭배하고 있었으니까」
타이치「노력했어. 미쳐버릴 정도로」
타이치「그리고 이것도 단정할 수 있어」
타이치「넌 날 좋아하는 게 아냐」
타이치「……두려워하고 있어」
요코「…………읏」
타이치「두렵다면, 선택지는 두 개밖에 없지」
타이치「없애버리거나, 동화하거나」
타이치「그것은 마음의 시스템이고, 요청사항이야」
타이치「한때의 기분과는 달리, 보전되는 시스템이야」
타이치「넌 예전의 자신을 파괴시키고, 나를 파괴하고, 현상을 원했어」
타이치「이만, 돌아가지?」
부드럽게 말했다.
요코「…………싫어……싫어……머」
요코「가고 싶지 않아. 같이 있을래」
타이치「우수하고 강한 정신력을 가지고 있어서, 한 번 정한 관념을 거스를 수 없지」
타이치「수동적으로 되는 거야」
타이치「자기 자신에게 지배당하면 어쩌자는 거야?」
타이치「과학으로 만들어진 괴수같잖아, 그건」
타이치「쇠사슬을 풀어」
요코는 움직이지 않는다.
타이치「풀라고 말했어」
방을 나가, 열쇠를 가져온다.
떨리는 손이, 쇠사슬을 풀었다.
해방된다.
타이치「……난 살겠어. 지금 이대로」
타이치「힘으로 말려볼래? 지금이라면 질 것 같진 않지만」
요코「……타이치한테, 저항하고 싶지 않아」
타이치「그럼 강제로 송환되고 싶어? 아니면, 스스로 끝내고 싶어?」
요코「그치만……타이치가 없는 세계로 돌아가도……」
타이치「전자를 선택한 경우, 난 너를 강제송환해」
타이치「그리고, 마음 속으로 절교하겠어」
요코「아아아……」
타이치「후자라면, 그러지는 않아」
요코「……둘 다……싫어……」
요코「난, 그래도 타이치를―――」
타이치「자기 마음에 다른 사람 핑계를 대지 마!」
고함을 치자, 요코는 움찔 떨었다.
그 어깨에 손을 올려놓는다.
타이치「죽을 때까지 혼자 지내 봐」
부드럽게 말했다.
타이치「인간은 다들 그래」
요코「…………」
그 자리에 주저앉는다.
얼굴을 가리고, 한숨을 쉰다.
목소리는 나오지 않는다. 조용했다.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눈시울을 누른다.
울고 있는지, 아닌지.
가만히 얼굴을 가리고 있는 하세쿠라 요코.
그것은 그녀의, 절규였던 것이다.

그리고―――
혼이 빠진 듯한 그녀를, 사당으로 데려왔다.
타이치「마지막으로, 이것만은 말해두겠는데」
타이치「난 정말로 널 좋아했어」
요코「……타이치」
타이치「쭉 보아왔으니까 말야」
요코「하나, 질문할게」
타이치「응?」
요코「……누구든지, 많든 적든 자연스럽게 사람을 좋아하게 돼」
요코「그럼……어떻게 해야, 올바르게 좋아할 수 있는 거야?」
타이치「대가를 요구하지 않는다. 그것뿐이면 돼」
요코「…………!」
타이치「대가를 요구한 순간, 그것은 거래가 되어버려」
타이치「교환, 트레이드」
타이치「자신에게 좋은 것을 전달해 주는 행위」
타이치「말을 바꾸면, 외부와의 교역을 전제로 한 자기애지」
타이치「그런 행위를 부정하는 건 아니야」
타이치「다만, 그렇게 사람과 이어지기엔……난 괴물이니까」
쓴웃음짓는다.
타이치「대가를 요구하지 않는 건 우정만이 아냐」
타이치「대답은 가까이에 있던 거지」
요코「어쩔 수, 없었던 거야?」
요코「내가 타이치를 부수어버려서……」
타이치「만약 너하고 일심동체가 되지 않았다 해도……난 분명 널 도왔을 거야」
타이치「그리고 비슷한 전개로 흘러겠겠지」
요코「뭐야……」
조금 쓸쓸한 미소를 짓는다.
요코「그럼……그냥 공주님으로 있으면, 좋았을 걸……」
타이치「그렇지」
타이치「하지만 당시의 넌, 생존을 위해 순수한 존재를 필요로 하고 있었으니까……」
타이치「어쨌든, 가까이 있던 날 이용할 가능성은 높았어」
타이치「이용한 다음에 버렸으면 좋았을 걸」
타이치「그래도, 난 널 계속 좋아했을 테니까」
요코「그러면 외롭지 않아?」
요코「상대한테서 아무것도 받지 못하면……외로워지지 않아?」
타이치「……아름다운 것을 보는 게 좋아」
타이치「오래 전부터 그래왔어. 쭉 옛날부터」
타이치「그 마음이, 내 첫 감정이었어」
타이치「그러니까, 괜찮아」
요코「……만약……타이치가 다시 저쪽으로 돌아오면……」
요코「나, 재도전할래」
타이치「응」
타이치「그 무렵에는 일본 국왕 정도는 되어 있어야 돼, 요코」
요코「……그건 좀 힘들어」
요코「천황 제도를 바꿔야 되니까」
타이치「그렇겠지」
웃는다.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였다.
타이치「안녕, 하세쿠라 요코」
타이치「고고한 공주―――」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자.
요코「……안……녕……」
우는 얼굴이 보였다.
나는 그걸로 한번에 만족해버리고.
눈을 감았다.

요코「…………」
요코「…………」
요코「…………」
요코「…………아」
요코「……가슴, 아프구나……실연이란 거……」
요코「몰랐어……」

타이치「…………」
잠시 동안, 난 우뚝 멈춰서 있었다.
달성감.
상실감.
모든 것들이 뒤섞여, 꼼짝할 수 없었다.
잠시 후―――
타이치「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하늘에 외친다.
의미는 없다.
감정을 털어냈을 뿐.
타이치「끝났다」
모든 것이.
세계에는, 나 혼자.
있어야 할 곳.
내 성역이 되었다.
나나카「……열심히 했네」
타이치「너냐」
얼마동안 안 보이더니.
나나카「어부바해 줄까?」
타이치「그러고 싶지만……됐어」
타이치「이번주는 요코를 위한 주니까」
나나카「……그래」
내 눈은, 아마 이걸로 마지막일 것이다.
망막의 반짝임이 사라져가고 있다……고 할까나.
게이트의 존재가, 이전보다 희미하게 보인다.
눈의 기능이 정상화되면, 관측은 불가능해질 것이다.
리셋을 하면 모를까.
하지만, 그러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나나카「슬슬 시작하겠네」
타이치「응, 슬슬」
나나카「수고했어」
타이치「응……고마워, 엄마」
나나카「니하하」
나나카「그럼 다음주에 봐」
나나카는 사라졌다. 눈 깜짝할 사이에.
난 눈치챘다.
타이치「……엄마, 라고?」
그리고, 세계는 저물었다―――

사쿠라바「어이, 타이치」
어라, 사쿠라바?
사쿠라바「자, 원고다」
원고라니, 무슨?
사쿠라바「……DJ잖냐?」
DJ, 내가?
그랬던 것 같기도 한데.
미키「선배 DJ, 좀 기대되네요―」
좀밖에 안 되냐.
키리「전 선배가 쪽팔려할 게 기대돼요」
쪽팔리는 거 확정이냐.
사쿠라바「원고, 어때?」
나쁘진 않다, 뭐 그 정도려나.
내용은……잘 모르겠다. 읽을 수는 있는데, 이해가 되지 않는다.
토오코「잠깐, 왜 멍하게 있어? 정신 좀 차려」
토오코…….
토오코「뭐야 그 표정. 기합이 부족해 보이는데?」
미키「그러면서, 러브러브―」
키리「러브러브―」
토오코「지금 뭐라고 했니 1학년들~」
미키「아무 말도요―!」
키리「러브러브라고 안했어요」
토오코「베어버릴까?」
미키「아하하, 위험. 선배 살려줘요, 베이겠어요」
키리「선배니까 좀 도와 주세요」
어이어이……사이 좋은데.
토오코「잠깐, 누구 편이야, 타이치?」
토모키「좋아, 다됐다! 하아, 위험했어……」
사쿠라바「원인은 뭐였나? 접촉불량?」
토모키「아니, 단선. 그러니까 케이블 좀 바꾸랬잖아」
미사토「그러면 우리들의 외식값이 없어지잖아」
토모키「어느 쪽이 우선인 거야, 누나는」
하하, 누나?
누님이 아니라?
토모키「시끄러, 이젠 자립할 때라고. 쳇」
따뜻하다.
따뜻한 세계다.
유사「선배, 전 아무것도 못하지만 응원할게요」
유사.
방송부였나?
요코「……타이치, 교복이 흐트러졌어」
요코「=마음도 흐트러졌어」
요코…….
요코「자, 다듬어 줄게. 무츠미 아줌마한테 혼나기 싫으니까」
뭐랄까, 그리운 감각이다.
하지만.
충분히, 따스하다.
충분히, 갖춰져 있다.
사쿠라바「갑자기 여행을 떠나고 싶어졌다. 가 볼까」
토모키「가지 마……」
미키「항상 생각하는 건데요, 여행비 같은 건 어떻게 하세요?」
사쿠라바「소지금만으로 생활하는 것이 바로 민완 여행가」
미키「월급 3000엔인 저한텐 상상이 안되네요―」
토오코「속으면 안돼. 사쿠라바네 집은 엄청난 과보호니까. 소지금이란 게 아마 몇십만은 될 걸」
미키「꾸엑」
키리「몇십만?」
미사토「사쿠라바군 정학」
사쿠라바「어째서……」
토오코「여행가서 호텔에 잘 정도라니까」
미사토「아, 페케군 시간이에요. 각오는 됐어요?」
미키「자―, 첫 DJ, 과연 어떻게 삑사리날까」
키리「어떻게 망가질까」
토모키「나쁜 꼴밖에 안 나는 거냐」
토오코「뭐―, 열심히 해 봐」
사쿠라바「힘내라」
유사「기대돼요」
요코「긴장을 풀어」
아아―――
이거 좋은데.
채워지고 있어.
너무 좋아서 약간은 불안하다. 하지만.
이렇게 행복한데 뭐 어때.
있잖아, 다들.
재밌게 놀아보자고?


CROSS†CHANNEL


그리고 눈을 뜨자, 이미 완연한 낮이었다.
타이치「응……」
또 학교에서 자버렸다.
사람다운 생활을 위해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하지만 혼자서 준비하는 게 꽤 힘들다.
선배는 참 대단했다.
타이치「자―그럼, 오늘도 힘내볼까」
의식적으로 소리를 질러본다.
그렇게 안하면, 말을 잊어버릴 것 같아서.
작업 개시.
…………………….
작업 중지.
타이치「공복」
요코가 만들어주던 도시락도, 이젠 없다.
모두 자력 조달.
교내에는 맛없는 카레빵 말고도, 고로케빵이 있다.
거리에까지 나가면, 뭐 먹을 건 많이 있겠지.
주위를 둘러본다.
……카레빵 봉지가 흩어져 있다.
맛있는 고로케빵도, 그다지 먹고 싶지가 않았다.
조용한 복도.
조용한 부활동.
조용한 나날.
바라오던 것.
마음은, 편안.
아무도 상처입히지 않는 세상.
내가 잘못 만들어졌다고 느낄 이유가 없는 세상.
고칠 필요가 없는 순수한 나로서 있을 수 있는 세상.
순수한 나로 있을 수 있다는 것.
친구와 청춘을 보내며 살아가는 것.
이 두 가지는 주로 세트로 사용되는 개념인데, 내 경우엔 나뉘어져 있다.
어딘가 뒤틀어질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예를 들면 내가 쓰던 MMORPG의 캐릭터는, 지성과 민첩만이 99였다.
나머진 1.
그래도 강했다.
밸런스 또한 은근히 무너져서, 뭐가 제대로 된 건지 알 수가 없어졌다.
……나처럼.
하지만 여기라면.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다.
타이치「……추억은, 잔뜩 있으니까」
교실을 훔쳐본다.
볼일은 없다.
미키「―――」
키리「―――」
미키「―――」
키리「―――」
두 사람의 대화.
항상 함께 있으면서, 공존할 수는 없었던 두 사람.
한쪽은 예전에 가졌던 것의 대신을 요구하며.
다른 한쪽은 그런 소녀를 가지고 노는.
잔인한 구도.
그 극한.
두 사람은 약간은 접해 있었다.
행복한 접점의 발견.
하지만……돌아간 두 사람이 그걸 다시 찾을 수 있을까?
미키가 키리를 소중히 여기려면, 막대한 경험이 필요하고.
키리가 죄책감에서 풀려나려면, 시간이 상당히 걸리고.
타이치「……」
관두자.
아무리 고민해 봐도, 이제 두 사람에게 접할 방법은 없다.
교차할 일은 없다.
모든 통신은 차단되어 있다.
그 때.
두 사람이 이쪽으로 달려왔다.
타이치「……」
사이좋게 떠들며 내 양 옆으로 달려나간다.
소녀의 바람이, 내 코 끝을 간지럽혔다. 잔향처럼.
착각이지만.

문은 열려 있다.
이제 닫을 필요는 없다.
상처입는 사람이 없는 세상이니까.
물론, 수업 시간에 탈출해도 검문당할 일은 없다.
타이치「……」
여기에 왔다.
단골 가게니까.
적당히 먹을 것들을 챙긴다.
왜인지 이 세계에서는, 부패라는 현상이 일어나지 않는다.
타이치「……」
벽에 메모를 붙였다.
매번 그래왔듯이.
『X월 ○일 크림빵 110엔+컵라면 180엔+녹차왕 110엔』
무의미한 행위.
하지만 식료품을 얻기 위한 약간의 고생은 필요하다.
그것마저 없으면, 꼼짝없이 죽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어느 쪽이든, 꿈꾸는 듯한 이 상황은 변하지 않겠지만.
얄궂다.
내 교실에서 먹기로 했다.
토오코는 언제나 앉아 있었다.
거기에 있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등을 쭉 펴고, 턱을 괴고.
당당히 걷고 있었다.
하지만 한 번 손을 뻗치자, 익숙하지 못했던 탓인지 바로 타락해버렸다.
녹아버린 토오코는 위태로웠다.
부드럽게 대한 것만으로도, 벽이 무너져버렸다.
그것이 대인관계의 서투름을 말해주고 있었다.
아무리 신뢰할 수 있는 상대라도, 적당한 거리는 두어야 한다.
의존해버리게 된다면, 여러모로 괴롭다.
공멸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괜찮은 사람이라면, 의존해도 좋다.
난 그러고 싶지 않다.
요코의 영향도 있지만.
아무래도 난, 아름다운 것을 바라보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
미술품을 관상하는 것처럼.
그 녀석은 그 세계에서 울고 있을까.
의지할 사람도 없이.
결국, 난 토오코를 두 번이나 배신했다.
……과연 견딜 수 있을까?
무거운 한숨이 흘러나왔다.
토오코「――――」
그런 나를 욕하는, 짧은 혀에서 나오는 고압적인 말이 들렸다.
귀 안쪽에서.
부실.
휴게실이었던 곳.
그 녀석들의 모습은, 당연히 없다.
우리들 세 명의 관계는, 뭐 건전하다 할 수 있었다.
흔히 볼 수 있는 관계. 에 가까웠다.
그러므로, 나에겐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타이치「……」
할 말은 없다.
그저 내가 놓쳐버린 그 눈부심이, 절실하게 오는 가슴의 쓰라림이 목을 메이게 할 뿐이었다.
멍하게 우뚝 서 있었다.
다시 부활동.
어느 정도 해야 완성되려나.
페이스 배분을 해야 한다.
진짜로 마음만 먹으면, 3일만에 끝나버린다.
몇 번이나 해 왔던 일이다.
지식도 쌓였다.
순서도 외웠다.
그래서 일부러 시간을 들이기로 햇다.
빙 돌아가면서.
선배와는 다른 방식으로.
어느 의미론 그녀가 하고 있던 일도 우회였다.
가끔 생각한다.
효율을 무시하고, 쓸데없는 순서를 이행하며.
계속 혼자서 부를 지탱해왔던 선배가, 기본을 모를 리는 없다.
가족의 도랑.
그리고 사람들의 소멸.
선배에게도 토모키에게도, 도피하기엔 충분한 이유였다.
타이치「열심히 부활동에 힘써보자」
그렇게 소리를 내며.
오늘도 또, 노동에 해는 저문다.
타이치「저녁인가……」
석양.
지표면의 생명활동은 얼어 있었다.
그런데도 하늘은 아직도, 꿋꿋이 뜨고 있었다.
거울 속에 잊혀진 채로 남은, 가짜 여름처럼.
진짜 여름에 밀려 빛의 빠르기로 사라진다.
지금은 짧은 시간.
우주사의 한순간, 인간에게는 X주간.
타이치「……집에나 가자」
비가 안 내린다는 건 알고 있지만, 기재와 공구를 텐트에 집어넣었다.
타이치「수고!」
아무도 없는 장소에 인사하고, 돌아간다.
돌아가는 길, 슈퍼에 들러 식료품을 매입한다.
타이치「헤……」
집에 오니, 안심이 된다.
이것은 사람이 있든 없든 변함은 없다.
느긋하게 취사.
밥은 정원에서 짓는다.
간단히 조리하고, 음식물 쓰레기는 봉지에 분리해 버린다.
쓰레기를 버릴 필요는 없다.
일주일치 쓰레기 봉지만 있으면 충분하다.
저녁바람이 탄내를 실어온다.
타이치「이런!」
다급히 정원으로.
타이치「……우와―, 새카맣네」
아무래도 못 먹겠다.
다시 짓기로 한다.
언젠가, 집을 태워버렸던 적이 있었다.
그 때는 꽤 힘들었다.
다른 사람 집에서 자는 건 왠지 모르게 불안해서, 그냥 부실에서 잤다.
정신 차리자.
실수로 날 구워버리면 의미가 없다.
…………………….
늦은 저녁밥.
다 먹을 무렵엔, 이미 밤.
타이치「……응」
마음에 응어리 비슷한 것이 느껴진다.
오늘밤 쯤에 오려나.
정신 바싹 차려야지.
그런 연유로 일기를 쓰기로 했다.
손을 움직이는 건 중요하다.
작은 마음이 부풀어 터져버릴 것 같은 때엔, 특히나.
타이치「으―음, 오늘 있었던 일은……음」
부활동 내용을 적는다.
타이치「그리고, 다른 건」
거기서 펜이 멈춘다.
아무것도 없다.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가능성조차 없다.
타이치「……그러니까」
그러니까?
왜 일기를 쓴 거지, 난.
덮는다. 쓰기 싫어졌다.
할 일을 찾는다.
양초에 불을 붙여, 책을 읽어 본다.
바로 마음이 복잡해진다.
이 만화책도, 다음 편을 읽을 수는 없다.
기분이 무거워진다.
이런.
내일은 책방에 가서, 완결난 만화책들을 찾아보자.
타이치「아―, 자자!」
침대에 뛰어들었다.
타이치「잔다―!」
날뛰어 본다.
타이치「하―후! 하―후!」
헤엄쳐 본다.
타이치「……하아하아」
지쳤다.
바람이 불어온다.
벌레도 없으니 열어놔도 괜찮다.
시원한 여름.
지금은 고맙다.
타이치「이 피로를 이용해, 단번에 잠에 빠지자」
양을 세 보자.
타이치「희생양 한 마리, 희생양 두 마리……」
그냥은 평범해서 옵션을 추가했다.
어쩐지 다른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효과는 만점인 것 같았다.

타이치「……」
말을 거는 사람은 없고, 거기에서 느껴지는 포근한 호의도 없다.
하지만 조금은 기대해버리는 내가 있었다.
그녀의 전능함에.
한심하다.
미련을 떨쳐버리기 위해, 활기차게 걸어나간다.
학교로.
타이치「~♪」
휘파람도, 오늘 아침엔 몇 번이나 끊어졌다.
타이치「오늘도 휘청휘청 가 볼까」
그렇게 선언하고, 바로 작업에 착수한다.
텐트에 처박았던 공구들을 꺼내, 적당한 자리에 늘어놓는다.
타이치「……후우」
내부적으로는 일단락 지어졌다.
텐트 밑, 그늘로 들어간다.
잠은 안 잔다.
그저 잠시 누울 뿐.
타이치「쿠울」
…………………….
타이치「……우옷!?」
푹 자버렸다!
하루종일 아무것도 안 할 순 없는데, 어쩌지.
고민 5회전.
급히 작업을 재개한다.
타이치「아얏!」
손가락을 다쳤다.
타이치「상처는 안돼―! 안되는데―!」
의사는 없다.
치료불능인 병에 걸리면……어쩔 수가 없다.
타이치「으―」
귀찮아졌다.
물총을 꺼내, 펜스 바깥으로 쏜다.
타이치「퓽―」
뿜어진 물줄기는 금세 바람에 휩싸여 안개로 변한다.
타이치「아, 무지개다」
작은 일곱빛깔 다리.
황혼을 눈부시게 장식했다.
타이치「호―」
조금 기분이 풀렸다.
통학고개.
떠오르는 것
유타카와, 나나카.
특히.
타이치「나나카」
그 이름을 말하자, 심장이 꾹 조여오는 것 같다.
그녀는 왜 마지막까지 내 편으로 남아주었을까.
마지막?
아직 확실히 그런 건 아니다.
단지……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을 뿐은 아닐까.
나나카의 성격이라면, 이별은 깔끔하게 할 것 같았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상대를 날려버리며 고백할 게 틀림없다.
점이건 좀 아닌가.
타이치「어―이, 나나카―!」
불러 본다.
고개 저편에서, 자전거가 빼꼼히 올라올 것 같은.
그런 기분도 들었다.
타이치「하하하」
독서.
하지만 만화.
시간은 한가롭게 지나갔다.
난 앞으로, 느긋하게 살아가야 한다.
인생을 서두를 필요는 없다.
서두르면, 바로 터져버린다.
타이치「하하하……」
만화는 재미있다.
불만이 있다고 하면, 내용이 너무 떠들썩하달까.
사람들이 잔뜩 나온다.
지금은 그것이 견디기 힘들었다.

타이치「사이타마의~, 깊은 산 속에서~」
타이치「조난~♪」
즉흥으로 노래를 지어부르며, 작업을 진행했다.
모르는 건 바로 찾아본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부실과 도서실에서 가져온 책으로, 옥상은 금세 가득 찼다.
반납하는 게 귀찮아, 시간나는 대로 텐트 속에 처박아두었다.
타이치「……근데, 진짜로 SOS를 할 거면 좀 더 효율 좋은 방법도 있었을 텐데」
전파가 없다면, 핸디기로 적당한 곳을 찾아보는 게 확실히 빨랐을 텐데.
선배는 알고 있었다.
사람따윈 생존해 있지 않았다는 걸.
그래서 결과적으론 부활동은 올바른 행위였고, 부활동인 이상 어느 정도의 삽질을 포함하고 있어야 했던 것이다.
타이치「후우」
정신을 차리자 상점가까지 와 있었다.
타이치「후―」
달밤의 산책을 해버린 꼴이다.
게다가 정신을 차리자, 란 건 정확한 표현이 아니고.
타이치「가자」
빙 돌아다녀서 지쳤다.
타이치「안녕히 주무세요」
나에게 인사.
이불에서 뒹군다.
타이치「……」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옥상에서 세계를 바라보고 있다.
오색가지 지붕 밑에 깔린 무수한 일상.
그리고 산. 또는 바다.
그 끝에 어떤 광경이 이어져 있을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이따금 느껴지던『도회』의 숨결.
잊혀지고, 줄어들고.
그것은 분명히, 의지할 수 있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내 눈은, 언제나 사람들을 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타이치「자자, 자자, 자자」
타이치「자자, 자자, 자자」
타이치「자자, 자자, 자자」
타이치「자자, 자자, 자자」
타이치「자자, 자자, 자자, 자자, 자자, 자자, 자자, 자자, 자자, 자자, 자자, 자자, 자자, 자자, 자자, 자자, 자자, 자자……」

일어나자, 혼자다.
고독하다.
사람은 본질적으로 혼자라고, 어디선가 읽었다.
어떤 생물이든 그렇다.
하지만, 그걸 자각하는 건 인간뿐.
생물로서는 곤충이 완성도가 높은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한다.
타이치「응―」
수면부족.
그래도 학교엔 가야 한다.
여기서 나태해져버리면, 앞으로가 괴롭다.
고독에 대해 덧붙이자면.
사람은 언제나 주변에서, 타인의 압력을 느끼고 있다.
가금씩 해방될 때 기분이 좋다.
억압이 지나치면 마음이 비뚤어진다.
하지만 아예 없다면, 인간은 무한히 확산될 수 있다.
하지만 그 정도의 농도를 가진 인간은 없다.
한없이 희석되고 나면, 없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상상할 수 없다.
세상과 동화된 인간.
외롭지 않을까?
세상과 동일해진 인간은, 자신이 존재해 왔던 작은 육체를 잊어버리는 걸까?
애초에, 왜 마음 같은 게 사람한테 있는 걸까――――
타이치「……」
타이치「……」
타이치「……」
학교에 들어가려고 하자, 아팠다.
마음이 아팠다.
텅 빈 상자이기 때문이다.
예전엔 깜짝 상자였는데.
지금은 아무도 없다.
허무의 상자.
오히려 무섭다.
그런 느낌이다.
왜냐면 이전엔, 접하면 반응이 있는 가까운 누군가가 있었으니까.
억지로 들어간다.
아핫!
목소리를 내기가 힘들다.
말을 지어내기가 힘들다.
타이치「……자……그럼……」
안돼, 뻑뻑하다.
발성은 참 힘들구나.
의식하고 나니, 의외로 힘들다.
그러니까 주관적 시점으로 한번 희노애락 표현.
(웃음)
이런 느낌으로.
(눈물)
이라던가.
(화남)
이라던가.
(†)
아―, 뭔지 알겠다, 그거.
중세 십자군 같기도 하다.
마침 머리 색소도 빠졌고.
내 안에 있는 살인 기술도 일주일 정도만에 완성했고 말야.
수학 잘하는 사람이 들으면 굉장히 마리ㆍ앙뜨와네뜨 같을 거 같아!
※신기술 리얼타임 모노로그 사용중
어린 시절에, 마리안ㆍ뜨와네뜨인 줄 알았어.
앙코르ㆍ와트도, 앙코ㆍ르와트인 줄 알았다.
터틀넥은 토탈넥인 줄 알았고.
큰 나라들의 신석기 시대의 중심지는 큰 나라들의 신석기 시대의 중심지라는 유구한 쓰임새가 있었지.
아무렴 어때, 그런 거.
유.
어쨌든 복도다.
아무도 없다.
아무것도 없다.
움직이는 것이 없다.
고양이는, 움직이는 것에 민감하지.
어라 신기하네.
그리고 나도 신기.
사실『동○신기』란 그룹명은『똥광 쓸기』란 표현에서 유래되었다.
똥광을 먹음과 함께 싹쓸이가 되었다는 의미다.
이렇게 말하면, 토모키가『빠○이들이 믿을 듯한 구라 까지 마』하고 태클을 걸 것 같다.
토모키는 좋은 녀석이다.
난 부활동이 무지 좋았다.
가서 오늘도 압도적인 전능감에 휩싸여 줘야지.
토모키의 기억은 얼마든지 있다.
두 사람은, 사쿠라바를 포함해 세 사람은, 언제든지 즐거웠던 시스템을 구비하고 있던 겁니다요 (†)
타이치「……」
타이치「…………」
타이치「……………………아―――」
『그것』이 폭발할 것 같았다.
『그것』은『그것』이라고밖에 묘사할 수 없는『거시기』한『이것』이다.
『그것』은『그것』,『이것』은『이것』인 것이다.
그러니까 삼킨다.
삼킨다. 삼킨다.
일곱 번 정도 삼켰다.
그리고 삼킨다.
잘먹었습니다.
마음으로 외친다.
만복이다.
내 안에 있는 것은, 바닥에 수북히 깔려 나오지 않았다.
바쁜가 보다.
부활동은 점점 늦춰지고.
벌써 금요일.
너ㆍ무ㆍ놀ㆍ았ㆍ다.
그래서 난 일하기로 했다.
신인류 캠페인의 일환으로서.
타이치「우오―」
5분 후, 세세한 걸 생각하는 것이 귀찮아져서 그만두었다.
일환의 종료였다.
괜찮아. 2권이 있다.
일환이 끝나도, 2권이 있다.
어라?
1환하고 2권은 안 이어지잖아.
이상한 말이네.
물보라가 하늘에 걸려 있는 오렌지빛의 구체를 쏘아맞춘다.
아니, 구체는 아니다.
녀석은 원형일지도 모른다.
태양평면설.
움직이지 않는 세계는 괴롭다. 아무거나 움직여라.
태양만이 천천히 움직이고 있지만, 부족하다.
가질 수 없으니까.
블랙홀도 못 되는 라이트급 천체고.
패배한 듯한 느낌.
전갈자리 V861별이라도 본받아라.
좀 더 찐―하게 왔으면 좋겠는데.
그리고 백색 위성이 보고 싶다.
분명 사쿠라바가.
역부족을 느낀 범인이 표적을 얻은 느낌.
주어진 필드에 불만을 가진 사상범이 노릴 만한 목표를 손에 넣었다.
나를 봐 줘.
아, 밧줄, 밧줄을!
밧줄을―! 밧줄을―!
펜스를 파괴했다.
가공의 밧줄이 나타났다!
안 보여!
굉장해! 완벽하다!
그리고 내려왔다!
가공의 밧줄을 지면으로 끌어당기는 힘……당기는 힘이다!
펜스는 공업용 거대 펜치처럼 붕괴했다.
인력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이것은 대발견.
대항해시대의 시작과 끝.
절단된 펜스가, 꼴사납게 활공한다.
무수한 말.
뇌를 헤엄친다.
시냅스 도약을 한다.
싫어―싫어―.
토오코가 공격해 왔다.
만남 헤어짐 그리고 재화라는 감동에 빠질 여지 없이.
어머니도 못 찾고.
내가 찾고 싶은 건 *********.
****…….
*******?
**!
**************************************************************.
*.
그리고 물리쳤다.
미안 토오코!
욱씬, 하고 마음이 저린다.
피를 느꼈다.
해방이 필요하다.
내 힘으로 찾아야 한다.
오명을 만회하기 위해, 난 키리를 설득했다.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장황하게 설득한다.
계속 설득한다.
소리높여 설득한다.
꼴사나운 헌팅.
하지만 원하는 대답은 얻지 못했다.
왜지?
그것은 키리가 빨갛기 때문입니다.
후회한다.
제길, 제길!
안 하고 후회하는 것보다, 하고 후회하는 게 나은데!
혼자서는 조정이 불가능한데.
자 키리, 내 마음을 받아 줘!
모노로그를 구사해 나는 고백했다.
모노로그는 독백이란 의미지만, TV 게임 문법에서는 지문이라는 뉘앙스로 이용되기 때문에 굳이 태클을 걸고 싶은 사람을 그쪽을 공격하면 된다.
실은 고백이란 말이 싫다.
불완전해 보인달까.
개런두로 바꾸자.
응, 그러자.
그럼그럼.
모노로그를 구사해 나는 개런두.
좋다.
갤럭시란 은하를 나타내는 말과 어감이 비슷한 것도 좋다.
안 비슷하네유.
유.
굳이 말하자면『유』.
『겨』보다는.
그래, 키리, 어쩔래?
키리는 진지하게 말했다.
키리「……프라이드 치킨의 성별을 신경쓰나요?」
아―, 맞아, 말 된다 그거!
그럼 어쩔 수 없지.
수류탄이 폭발했습니다.
우리들은 죽었다.
당신은 무기를 들고 잘 싸웠지만, 전갈의 숫자는 많고, 날카롭게 다가오는 독침 모두를 막는 것은 불가능했다. 잠시 후 의식이 멀어지고, 쓰러지자, 전갈들은 오랜만의 맛있는 인육에 환희하며 당신의 몸을 먹어치웠다. 당신의 모험은 끝났다.
워록ㆍ마록의 사악한 계획을 저지하려면, 패러그래프 1로 돌아가 모험을 다시 해야 한다. 당신의 다음 모험에, 여신의 가호가 있기를―――
왜인지 옛날에 읽은 책하고 내용이 비슷한 건 사과할게.
역시 무리였다, 혼자서는.
여기서 요코 특파원에게 카메라를!
오옷, 나타났습니다.
빤히 보고 있다아아아앗!
역시 정식 훈련을 받은 이치하라군요.
역시 다릅니다.
꽤나 다릅니다.
이질적입니다.
으―음, 무쟈게 우수하단 느낌으로 이질적입니다.
실수가 없는 인간이란, 어떤 걸까요?
실패하는 확율이 극단적으로 낮은 인간, 말로 하면 간단합니다만.
보통 사람이 백 번 죽을 때 이백 번 생존해버리는 거죠.
그건 거의 ! 헐리우드의 1시간 45분 시점의 주인공 성능이에요
라스트 10분 전이 가장 성능이 높은 거죠.
거기서 생각한 안티 영화.
라스트 10분 전까지 낮잠을 자고, 마지막에 초인 모드가 되어 적을 쓰러뜨리는 스토리.
그리고 전혀 맥락없이 한가지 더 생각했다.
인류멸망에서 시작하는 스토리.
이거 좋고.
완전히 나다.
자기찬미가.
사람을 깎아내리는 것으로 자신을 드높이는 행위와 비교하면 어떤 쪽이 추악할까?
어떻게 되는 거지?
나는 물어보았다.
요코「결혼식 공주님 안기」
무지 철학적. GG다. 못 이기겠다다.
제길, 카메라 돌려!
누구하고 놀지?
그럼, 미미 선배.
자고 있어!
깼다!?
미사토「도덕성의 결여, 지나친 이기적 개인주의, 자신의 나태한 생활을 위해 이용되는 기본적 인권, 이러한 위기들로 인해 오염되고 있는 현대 사회에―――」
미사토「우리 젊은이는 서로간의 건전한 교우관계를 쌓아올릴 수 있는 것일까요? 우리 군죠학원 방송부는, 이 의문에 대해 만족할 만한 대답을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헥!
크게 나오시네.
역시 미미미 선배.
이 사람의 약한 면은, 어쩐지 가슴의 감촉과 비슷하다.
그래서 좋다는 게 본심이다.
싫은 좋고 아니고도 없다.
좋아하게 된다는 설정을 정했을 뿐이다.
미안해요.
자포자기해 버렸다!!
그렇게『미미미』란 별명이 싫은 거냐!
무지 귀여운데.
쳇.
그러면 미키겠네.
날 위로해 줘.
어이어이!
어이어이!
다중방송이 되어버린 나였다.
모노로그로지만.
그건 그렇고, 무지 서비스 정신이 투철하네.
괜찮냐?
허용된 거냐?
인증받은 거냐?
어덜트ㆍ카테고리에 들어간 거냐?
미키 「그르릉 냐―옹」
고양이어냐!
곤란한데, 그건 못 익혔는데.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다.
속옷만 계속 봐버릴 것 같다.
뭐 어때.
난 대략 14시간 동안, 속옷을 바라보았다.
시간으로 치면 4초 정도의 사건이었다.
고마워 미키.
굿 나잇.
놀이 뒤는 레크리에이션.
부활동에 정력을 쏟는다.
엎치락뒤치락.
자동적으로 움직인다.
사람은 누구든지 자동적이다.
그게 왜 나뻐?
미키「따분해서 미칠 것 같던데요?」
어?
유사「아, 안돼, 안돼요!」
안된다니, 뭐가?
하늘.
그리고.
땅. 아득한 밑쪽.
그 순간.
파열―――
타이치「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어구의 이음새가 빗나가 있던 언어의 바다로, 난 손을 뻗었다.
잡을 지푸라기도 없었다.
의식을 빙글 반전시켜 (붕어빵처럼) 현세로 돌아온다.
의식이 현세를 관측해간다.
타이치「하아, 하아, 하아……」
난 내가 파괴한 펜스로 몸을 내밀려 하고 있었다.
긴장한 손가락이, 좌우 철망을 잡고 있었다.
아슬아슬했다.
펜스는 큼지막한 구멍이 뚫려 있었다.
내가 했다. 그 기억은 있다.
기억을 한 시점에서, 다른 언어에 섞여 조각조각 잘라저셔 판단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손가락이 석고처럼 하얗다.
힘을 계속 주고 있던 탓인가.
몸의 힘을 등 뒤로 모았다.
이걸로 안전. 떨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펜스에 깊숙히 박혀 있는 손가락. 천천히 빼낸다.
가벼운 고통.
손가락을 보자, 선명한 그물 모양을 따라 피가 맺혀 있었다.
타이치「난……」
자살하려고 했던 것이, 믿기지 않는다.
죽을 순 없다.
많은 사람을 죽이고 살아남았으니까.
타이치「그치……요코?」
불러도, 그녀는 나타나지 않는다.
내 몸을 감싼다.
춥다.
점차 참기 힘들어진다.
뛴다.
교내로.
타이치「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뛴다.
사람!
사람!
아무데나 사람!
타이치「미키, 키리!」
없다.
책상을 넘어뜨린다.
계속 넘어뜨린다.
교과서가 바닥으로 떨어진다.
두 사람은 없다.
공포.
이 공간에는 아무도 없다.
도망친다.
길고 좁은 공간.
협공을 받으면 살아남기 힘들 것 같은 위화감.
적은 허무.
녀석들은 어디에든 있다.
벌써 나를 포위하고 있다.
이대로는 난 확산해, 희박해져버린다.
계단을 지나가, 2학년 교실.
토오코의 자리.
주위와 단절된 작은 요새였다.
하지만 주인이 없다.
굳센 의지와 함께 송환되었다.
잠깐 정도는 있어 줘도 될 것을.
타이치「아아아아아악, 아아아아아아아악!!」
비틀거리며 문을 지난다.
난 거리를 방황.
생존자를 찾아서.
애초에 교차세계의 잔재에 지나지 않는 이곳에, 생존자 같은 게 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찾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다.
사람을 요구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다.
타이치「아……하아, 하아……」
한채 한채, 집들을 확인한다.
광란의 반나절.
나는 계속 찾아 헤맸다.
문 앞에서, 쓰러진다.
타이치「……제기랄……한 명도 없잖아―」
아무리 찾아도.
이젠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피로로 인해, 조금 차분해졌다.
격렬한 운동에 뇌가 이용되었기 때문일까?
타이치「아」
맞다.
순간 자리를 박차고, 산으로.
눈을 의심했다.
아무것도 없어?
그 흐릿한 불확정 이해불능 공간은, 말끔히 사라져 있었다.
타이치「……뭐야」
몇천 주 동안 존재해 온 거잖아?
아니, 만일지도 모르고.
타이치「왜 사라진 거야」
분노.
절망.
형용할 수 없는 감정.
고통.
마음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들에 속박되어, 난 그저 멍하게 서 있었다.
타이치「왜……」
도망치고 싶다.
당연한 감정.
필사적으로 키워온, 내 작은 마음에도 그 감정은 존재했다.
미미 선배, 토모키, 키리, 미키, 요코…….
모두를 다시 한번 보고 싶다.
하지만 게이트는 이제 없다.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다.
그 길인『어긋남』은 사라진 것이다.
혼자.
교차한 세계.
교차한 한 점에서.
각자의 흐름은 계속 이어진다.
타이치「아아……그래」
내가 있는 이 허무의 거리는……이미―――
교차점을 지난 것이다.
『X』라는 글자를 상상해보면 안다.
두 개의 직선. 각자의 흐름.
순간의 교차. 하지만 흐름은 멈추지 않는다.
난 이미 하나의 흐름에 흘러가버린 걸까?
아니……아니다.
지금 이 거리는, 잔해다.
흘러가는 두 개의 잔상의 교차점.
『실제』가 지나가고『허상』이 된 크로스포인트.
타이치「……하하」
타이치「하하하」
타이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핫」
이 웃음은.
축복.
게이트가 사라진 이후로,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났는지는 모른다.
꽤 빨랐던 건지도.
아득한 세월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나는 참고 견뎠다.
도망칠 곳이 사라질 때까지의 시간을, 싸워온 것이다.
이겼다.
그것만은 확실하다.
타이치「도망칠 곳이 없으면……살 수밖에……없잖아……」
이걸로 됐어.
타이치「어디 방해해봐」
내 안의 나, 어디 방해해 봐.
넌(난) 여기서 죽을 때까지 사는 거야.
타이치「…………하하」
가슴 속에, 무수한 감정이 교차해 십자를 그린다.
잘 짜여진 가공의 태피스트리.
그것은 눈부신 감정의 반짝임.
타이치「아, 아……」
타이치「아―――」
타이치「――――――――――――」
외친다.
목이 터져라.
성대를 진동시켜, 하늘을 찢어버릴 정도로.
그것은 이미 목소리가 아니었다.
소리.
현상이며 고유존재이기도 한 나의, 물리적인 저항밖에 되지 않았다.
시야가 이펙트로 메워진다.
내 의식을 이루고 있는 환각.
드레스처럼 아름답지만, 두려울 정도의 원념으로 이루어져 있는.
흔들리면 틈새가 보이는 불순한 황야.
이것이……나인가…….
눈이 불가시감에 휩싸여 있다.
환상이라고 생각한 반면, 진실이란 것도 파악하고 있었다.
아아, 이건.
변성의식(Aletered sta)이다.
트랜스. 반짝임. 깨달음. 신내림. 신비체험.
그렇게 불리는 것.
무한히 펼처진 정신, 그 표층과 잠재의식이 접촉하는 현상.
난 코너에 몰렸다.
스트레스에 의해.
응―――?
전기를 맞은 듯 우뚝 멈춰선 나의 의식 측면이 저렸다.
측면에 있는 것.
그것은 뒤얽힌 감정과 거리를 둔, 차분한 지식의 층.
해박한 지식이 말했다.
아니다. 라고.
인식이 휙 반전되었다.
아니다.
난 변성의식 상태에 빠진 것이 아니다.
지식: 현상태에서 뇌활동은 그 정도로 혼란되어 있지 않다. 몇 가지 기능에 대한 반응으로 보아, 상황에 적응한 흔적이 있다.
즉?
지식: 변성의식. 이상정신상태. 심장기능 내부에 위치한 자율적인 사고나 감정이 표출되는 현상, 기이한 언동을 나타내는 등 여러가지 예가 발견된다. 압도적인 전능감을 느끼거나, 심령 체험에 가까운 환상을 보는 일도 있다. 종교체험 트립트런스……등.
순간 이해했다.
압력은 거의 물리현상에 가까워져, 나를 압박했다.
수수께끼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간다.
하나의 선으로.
시작과 마지막이 연결되어, 원형으로 변한다.
원형으로.
이해의 원.
내 의식은.
처음부터 변성된 상태였던 것이다.
그 날.
난 변질되어 버렸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계속.
언제 폭발할지도 모르는, 심층의 우회도로.
상시 접촉.
마음의 진폭을 제어할 수 없다.
마구 솟구치는 본능.
이성이 미친다.
허무한 대화와 사고는, 이성으로 변해 의식을 유지시켰다.
뿜어나오는 오수가, 흙탕물에 덮이듯이.
주위에 펼쳐진 이성세계에 도태되지 않도록.
그리고.
가장 오래된 기억이, 차가운 심층 속에 스며들어 있었다.
그것은 의식 변성이 일어나기 훨씬 이전의 이야기이다.

나나카「미안해, 타이치」
왜 그녀가?
그녀와는 루프 시작과 동시에 만났다.
왜 그녀가 오래된 기억에 있지?
난 기억을 잃어버린 적 따위는―――
나나카「타이치, 네 이름이야」
나나카「미안해……내가 무계획한 애라서」
나나카「네 아빠를 좋아하게 되어버려서……」
나나카「필사적으로 살아오셨어, 아빠」
나나카「짧은 인생이란 걸 알면서도, 필사적으로……」
나나카「그래서 말야」
나나카「나도 오래 못 버틴대」
나나카「미안해……」
나나카「타이치는 이제부터, 많이 고생할 거야」
나나카「나도, 지금은 없는 아빠도, 네 편이 못 되어줘」
나나카「그래도 말야」
나나카「사랑해, 타이치」
나나카「무척, 무척 사랑해. 낳길 잘했다고 생각해」
나나카「만약 다시 태어나도, 또 낳아주고 싶을 정도야」
나나카「그 정도로, 사랑해」
나나카「미안해……그런 거밖에 못 남겨줘서……」

타이치「――――――――――――」
울고 있다.
내가, 울고 있다.
하염없이.
아플 정도로, 눈물샘을 쥐어짜내서.
이건.
태어난 순간의, 기억.
내가, 태어난, 순간의, 기억이다.
기억하고 있었다.
사람은, 그런 것까지 기억할 수 있었다.
나나카「미안해……그런 거밖에 못 남겨줘서……」
나나카「미안해……그런 거밖에 못 남겨줘서……」
나나카「미안해……그런 거밖에 못 남겨줘서……」
기억할 수 있던 것이다.
타이치「엄, 마……」
얼굴을 감싼다.
희노애락, 그 무엇에도 속하지 않는 감정.
어린아이의, 정.
타이치「나, 기억하고 있었어……엄마에 대해……」
작다고 생각했던 내 마음에, 가장 커다란 것이 숨겨져 있던 것이다.
사람을 찾기 위한 기나긴 여행에 완전히 지쳐 쓰러진 때, 뒤를 돌아보자 찾던 사람이 말없이 서 있어, 생긋 미소를 지어주는 듯한.
모든 것을 무조건 긍정할 수 있을 것 같은.
현기증.
기억은 또 하나 있다.
또 하나의, 추억을 건져낸다.
어둠.
내 유아기는, 어둠과 함께했다.
나나카는……어머니는, 날 안고 암흑 속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대화는 없다.
어머니와 아이는 어둠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는 모른다.
긴 시간.
어머니는 슬픔에 떨고 있는 것 같았다.
난 그걸 감지했다.
아버지는 없었다.
죽었겠지.
난 그것을 왠지 모르게 이해하고 있었다.
위로할 말을 배우지 않았다는 것을 눈치챔과 함께.
어머니는 날 안고 있다.
의지할 사람 없는 소녀.
자신 안의 공포와 어둠과 싸우는.
두 사람 다, 울지도 못하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난 어둠 속에서도 어머니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생후 수개월, 중뇌 피질에서 시각 피질로 신경계가 구성되어, 바깥 세계에 적응하기 위한 말초 기능이 발달하는 시기.
난 어둠 속에서, 말없이 어머니를 계속 요구했다.
그것은 육체의 변화를 가져왔다.
어머니는 젊고 두려움에 빠져 있어, 필요한 지식을 가지지 못했다.
최적화되어야 하는 간상 세포와 원추 세포는, 이 시기에 숙주를 야행성이라 인식했다.
간상 세포가 늘어나, 점점 분화해갔다.
망막 주변의 미분화 세포가, 이질적인 반사층을 형성했다.
에러의 중복일까, 수정체와 동화하려고 투명도를 싫어버린 세포들일까.
그것은 모른다.
결과적으로, 눈동자에 들어온 빛을 반사해, 세포로 두 번 전달하는 구조를 가지게 되었다.
구조적으로는 고양이나 개와 비슷하다.
또 이 눈은, 정지해 있는 것보다 움직이는 것에 민감했다.
고양이가 작은 벌레를 가지고 놀듯이, 나 역시…….
어둠 속, 어머니는 나에게 몇 번이나 키스했다.
난 어떤 영향을 받았을까?
잠재의식의 검은 물줄기에서 추출된 기억은, 그것뿐이었다.
그래.
어머니는 죽었다.
그 이후, 죽었을 것이다.
그래서 난 하세쿠라에 맡겨졌다.
……지금으로 이어진다.
그럼……내가 본 그 나나카는?
설마―――
……그만두자.
나나카는 무조건 내 편이 되어 주었다.
언제나 항상, 기억 속에서 날 지켜봐 주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진실은, 세계만 알고 있으면 된다.
내가 알 필요는 없다.
사랑해 준 것만으로도, 나에겐―――충분하다.
눈물을 흘리자, 다음은 의식이 돌아왔다.
사람은 그저, 있어 주기만 하면 된다.
장소도, 성격도, 성별도 관계없다.
있어 주기를 바란다.
사람은 사람이 있어 주기를 바란다.
보다 가깝게, 느끼고 싶어한다.
손을 뻗은 곳에, 누군가가 있다는 안심.
그것을 얻고 싶어한다.
그래서 사람은 서로를 부른다.
전화로. 말로. 편지로. 태도로.
……무선으로.
어디선가 누군가가 들어주기를.
그것을 바라며.
미미 선배는 옳았다.
도피였지만 옳았다.
난 사람이다.
아아.
믿기지 않는다.
깊은 의식에 교란당해, 무의식적으로 사람을 파괴해버리는 나다.
도움을 충동적으로 거부하는 존재니까, 당연하다.
하지만 난, 사람이었던 것이다.
살 수 된다.
그 충족감으로, 난 살아갈 수 있다.
게이트가 사라져, 세계는 변해갈지도 모른다.
여기는 교차점.
지나쳐버리면, 잔상만이 아름답게 남는다.
환상이 되어 사라져야 하는 때가 오는 것이다.
그것은 앞으로 얼마 정도 남았을까?
다음주일까?
다다음주일까?
내년일까?
……내가 죽는 것하고, 어느 쪽이 빠를까?
죽을 수는 없다.
죽으면 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기분은, 사라져버리니까.
타이치「……살아주겠어」
살아남자.
최후의 날까지.
그리고 기도한다.
내가 고유의 수명을 끝내기 전까지, 부디.
이 하늘이 사라지기를.
나나카가 미소짓고 있다.
나나카「미안해……그런 거밖에 못 남겨줘서……」
나나카가 남겨준 것은, 세상에서 가장 진부한 부류에 속하는 단어 하나와, 일생동안 흔히 느끼는 사람에 대한 갈망이었다.
나는 말했다.
타이치「고마워. 이제 괜찮아」
나나카는 대답했다.
나나카「……응!」
만면에 지어진, 축복의 미소였다.
그리고 나나카를 정확하게 인식함과 동시에.
마음은 초월적인 평온을 얻었다.
타이치「……」
혼자, 서 있다.
숲 속에, 나라는 존재가 홀로 서 있다.
조용했다.
지금까지 체험하지 못한 정도로.
타이치「……충동이……사라졌어……?」
날 제어불능에 빠지게 하는 강렬한 마음의 움직임이, 사라져 있었다.
지나치게 조용해 몸 속의 소리마저 들릴 듯하다.
불안해진다.
지금까지 무자비한 폭군이었던, 강렬한 에고가 느껴지지 않는다.
정말로 평온이 찾아온 걸까.
한때의 꿈인 걸까.
불안하다.
그래도, 이게 보통인 것이다.
여기에 사람은, 정서를 키워간다.
가슴에 손을 얹는다.
꾹.
감싼다.
지금이 몇 주째인지는 모른다.
몇십 주, 또는 몇만 주인지는.
그러니까 기념할 만한 X주라고 부르기로 하자.
이제 단검이 아니다.
이렇게 난, 마침내 사람이 되었던 것이다.
너무 뒤늦어, 무의미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눈동자에서는, 눈물이 나왔다.
슬퍼서.
기뻐서.
양쪽 모두를 섞은 이 감정을, 형용할 말은 없었다.
타이치「하하하……하하……」
웃고, 울었다.
타이치「이얏호―!」

다음날. 옥상. 부활동.
타이치「좋아, 힘내자!」
어쩐지 오브제 같은 모양이 되어버렸지만…….
하루만 열심히 하면, 어떻게든 되겠지.
일요일.
타이치「……다 됐다」
어떻게든 시간에 맞췄다.
안심했다.
일요일은 실질적으로 반나절도 안 되니까, 시간이 별로 없는 것이다.
일단은 완성.
달성감에 빠진다.
타이치「건전 건전」
하늘을 본다.
타이치「……그런 거죠, 선배?」
태양을 바라보자 자고 싶어진다.
하지만, 여기서 자면 일난다.
빨리 방송을 하자.
자리에 앉는다.
꿈꾸어왔었다.
이런 평범한 부활동, 보통의 학생다운 일상을.
추억이 있다면, 난 그걸로 좋다.
만족한다―――
숨을 들이쉰다.
여름의 향기를 머금은 저녁 바람이, 못된 장난을 치듯 그것을 가로챘다.
자 방송이다.
타이치「여기는 군죠학원 방송부」
비록 소용없는 짓이라 하더라도.
끈질기게 살아가겠다.
힘차게 말을 내뱉었다.
타이치「살아있는 분, 계십니까?」
타이치「만약 계시다면 들어주세요」
타이치「지금 당신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전 모릅니다」
타이치「절망하고 있을지도 모르고」
타이치「괴로워하고 있을지도 모르고」
타이치「어쩌면……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을지도 모르죠」
타이치「그런 모든 분들께, 전 말씀드리겠습니다」
타이치「……살아주세요」
타이치「그냥, 살아주세요」
타이치「계속 살아주시면 안되겠습니까?」
타이치「이것은 단순한 제 부탁입니다만」
타이치「만약 이 목소리를 듣고 계신 분이 있다면, 제가 외톨이는 아니라는 뜻이니까」
타이치「듣고 있는 분이 존재하는 그 순간, 비록 느끼지는 못해도, 저와 당신이 연결된다는 뜻이니까요」
타이치「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타이치「사람은 혼자서 태어나, 혼자서 죽습니다」
타이치「다른 사람과 친해져도, 본질적으로는 혼자입니다」
타이치「서로 마음이 통해도, 모든 것을 공유하는 것은 아닙니다」
타이치「삶이란 건, 외로운 일입니다」
타이치「외로움을 어떻게 달래느냐는……중요한 일이죠」
타이치「그것을 위해……타인이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타이치「당신에게는 누군가와의 추억이 있나요?」
타이치「그것은 귀중한 것입니다」
타이치「결코 잊지 말아주세요」
타이치「고독과 싸우는 사람의, 유일한 버팀목이니까요」
타이치「제가 바라는 것은, 가까이 있어주는 누군가」
타이치「하지만 지금은, 그런 당연한 일마저 보증할 수 없습니다」
타이치「그래도……전 여기에 있습니다」
타이치「당신이 거기에 있는 것처럼요」
눈을 감는다.
만감의 교차를 담아.
타이치「여기는 군죠학원 방송부」
타이치「살아있는 분, 계십니까?」
기도했다―――
타이치「그럼 다음주에 보죠」
방송을 마쳤다.
자리에서 일어나, 전원을 끈다.
정리하고 있을 시간은 없다.
사당에 가야만 한다.
다시 반복하는 거다.
허무한 행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계속 외치겠다.
일시의 교차를 가슴에, 순간의 교차를 바라며.
무수한 일주일을 넘어서.
다음주에 보자고 말하기 위해.

˝CROSS†CHANNEL˝

(c) 2003 FlyingShine

ThemeSong -「CROSSING」

작사 : 다나카 로미오
작곡 : Funczion
노래 : Marica

絶望でよかった 虛無だけを望んだ
절망해서 다행이야, 허무만을 바래왔어

約束と絆と 思い出と時間と
약속과 인연과 추억과 시간...

それだけが乾く命を潤す
그것들만이 내 메마른 생명을 적셔주고

きしむ心を優しく 包みこむ
삐걱이는 마음을 상냥하게 감싸안아줘

世界と自身とを わかつ壁は
세상과 나를 가로막는 벽은

人をかたどり閉じこめる檻
사람이란 모습의 감옥

そしていつかは寂しさから手を伸ばし
그리고 언젠가는 외로움에서 손을 뻗어서

優しく傷つけあって
다정하게 서로를 상처입히겠지

消えてゆく世界を ただ眺め續けた
사라져가는 세계를 그저 바라보면서

吐き出した惡意が 空に引き裂かれた
토해낸 악의들이 하늘에 흩어졌어

いつまでも續く每日夢見て
영원히 계속되는 매일을 꿈꾸며

いたむ心を抱えてさ迷った
괴로운 마음을 안고서 헤매왔어

たとえば孤獨なら 傷つくのは
만약에 고독하다면 상처입는 것은

ひとりぼっちの自分だけだと
외토리인 나뿐일 거야

そしていつかは寂しさから手を伸ばし
그리고 언젠가는 외로움에서 손을 뻗어서

甘美な回顧に搖れて
감미로운 추억 속에 잠기겠지

ざわめく人の記憶
떠들썩한 사람들의 기억

この空がなくなる その日までは
이 하늘이 사라지는 그날까지는

生きていこう
살아가겠어

世界と自身とを 交差させる
세상과 나를 교차시키는

言葉 傳えるためのチャンネル
말을 전달하기 위한 CHANNEL

そしていつかは寂しさから兩手廣げ
그리고 언젠가는 외로움에서 두손을 펼쳐서

さびつく世界を抱いて
녹슨 세계를 품에 안겠어

하세쿠라 요코는 방으로 돌아왔다.
요코「……」
자신의 영역으로 돌아왔다고 해서,
산더미처럼 쌓인 서적의 탑을 빠져나가, 가방을 침대 위로 던지며 컴퓨터의 전원을 넣었다.
책상 위에는 세 대의 컴퓨터와 액정 모니터가 있다.
방을 따라 L자로 놓여진 그 장소는, 척 보기에도 비좁다.
만전의 도촬을 하려면 세 대를 모두 이용하지만, 지금은 인터넷 전용기라고도 할 수 있는 한 대를 제외한 나머지를 쓰는 일은 거의 없다.
도촬할 상대가 없기 때문이다.
천장까지 둘러차 있는 책장에는, 각종 전문서적이 꽃혀 있다.
일본어뿐만이 아니라 영어와 독일어까지 섞여 있어, 어수선했다.
읽을 수만 있다면, 언어별로 구분할 필요는 없다.
책은 책장으로도 모자라, 바닥에 수십 개의 기둥을 세우고 있었다.
최근에는 손을 댄 적도 없는지, 어떤 기둥에도 얉은 먼지가 쌓여 있다.
그 외에는 공구류나 하이테크 관련 기재가 눈에 띈다.
물건은 많지만, 근본적으로는 간소한 방이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방.
오락이라 부르는 것은, 단 하나를 제외하고 존재하지 않는다.
지식과 기술로 가득찬 방.
그 방에 요코는 있었다.
의자에 앉아 일과를 보낸다.
메일을 확인하고, 뉴스를 읽는다.
정치가의 파면.
소년범죄.
의료 미스의 은폐.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
자살자도 순조롭게 증가하고 있다.
그 자살에 관련된 페이지에 달린 흔한 게시판에, 요코의 눈은 멈췄다.
라디오, 란 단어가 보였기 때문이다.
사이트의 내용은, 시시한 오컬트였다.
라디오에서 유령 목소리가 들린다거나, 신의 목소리가 들린다거나.
그것을 들으면 자살을 안 하게 된다고 한다.
바로 흥미를 잃는다.
투자의 동향을 조사하기 위해, 외국 사이트를 몇 군데 체크한다.
여기까지는 기계적이다.
평소엔, 필요에 의해 독서를 하거나 기재를 만진다.
하지만 오늘은 그럴 예정도 없다.
요 몇일, 신경이 쓰이는 움직임을 보인 종목을 온라인 트레이드로 조정한다.
자금은 있으면 좋다.
만약의 경우에 도움이 된다.
체력도 그렇다.
오늘도 트레이닝만은 하고 왔다.
이런 것들을 자동적으로 소화하는 기능은, 요코의 유지에 공헌해 왔다.
예전에는 목적이 있었다.
자신을 계발해 밖으로 나간다.
하세쿠라 저택에 있던 무렵에는,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해 왔다.
그를 위한 연구.
하지만 목적은 순간 바뀌어버렸다.
반신의 설정과, 동기.
미숙한 반려자를 지키기 위해, 능력은 갈고 닦아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사라졌다.
지표마저 사라졌다.
그래도 여전히 움직이는 자신의 기계적인 면을, 요코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무표정한 얼굴에서는,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었다.
컴퓨터의 전원을 끈다.
방은 단숨에 어두워진다.
요코는 의자에 계속 앉아있다.
할당량은 끝났다.
이제 할 일은 없다.
시계를 본다. 자기에는 너무 이르다.
문득.
벽에 걸린, 방에 있는 유일한 오락품에 눈길이 간다.
얇은 카드형 라디오다.
스위치는 켜져 있는 채로다.
그 주파수가, 무언가를 전달한 적은 없다.
때때로, 먼 지방의 방송이 잡힌 적은 있다.
그것뿐이다.
요코「…………」
요코는 한숨을 쉬고, 무료한 시간에 몸을 맡겼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살며시 잠들어 있던 요코는, 순간적으로 눈을 떴다.
라디오를 바라본다.
심호흡이 들리는 것 같았다.
그리운 독특한 기척과 함께.
타이치「……여기는……군죠학원 방송부……」
충격이 요코를 감쌌다.
라디오를 손에 든다.
그것밖에 불가능했다.
녹음한다는 생각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타이치「살아있는 분, 계십니까?」
라디오가 말했다.
틀림없다.
요코「……타이……치?」
타이치「만약 계시다면, 들어주세요」
요코「타이치」
하지만 이쪽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방송에 귀를 기울인다.
요코「…………」
입을 딱 벌리고, 영혼이 빠진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타이치의 목소리. 숨결.
방송은 순식간에 끝났다.
목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요코는, 쭉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좋아했다.
좋아했었다.
이성이었다.
타이치의 말대로, 요코의 마음은 불순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목적을 위한 이용을, 요코는 지나치게 추구했다.
그런 사랑의 형태는, 추악하게 보일 때도 있다.
그래도……호의는 진실했다.
유일하게, 타이치만이 요코의 마음을 흔들게 했다.
자신도 완벽하진 않다.
요코는 알고 있었다.
유년기의 일.
자신에게 동경의 시선을 가지고 있던 소년을 이용해, 그 정신을 비뚤게 만들어버린 책임.
살육의 날, 누구 하나 죽이지 않았던 약함.
칼을 손에 들고, 시체들 속에서, 그저 우뚝 서 있던 자신이었다.
흥미가 없었던 타인들이 파괴되는 것을 보는 것도 처음이어서.
세계의 추악함에, 전율할 뿐인 존재였다.
공존자가 아닌, 일방적인 인연.
어떻게 해야 좋았던 걸까?
어떻게 해야, 타이치와 함께 갈 수 있었을까?
흔들림 없는 냉정한 사고.
그것이 지금은, 무력한 어린아이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요코「으으으……」
오열.
실수했다.
실수했다 실수했다 실수했다.
타이치「……다음주에 보죠」
방송이 끝났다.
동시에, 쓰러져 울었다.
요코「으으으으으, 으으으으으으으……」
그것은 한없는 후회였다.
요코에게는 태어나서 처음 가진 감정이다.
통렬한 쓰라림.
마음 속으로, 생각했다.
좀 더 잘할 수 있었는데―――

토모키「……누나, 물 받아놨어」
시마 토모키는 어머니쪽 집에서 동거하게 된 누나ㆍ미사토의, 아직 정리가 덜 된 방을 향해 외쳤다.
미사토「고마워」
문은 열려 있었다.
어중간한 폭의 시야에, 미사토가 무릎을 꿇은 자세로 굳어 있었다.
토모키「…………」
그 모습이, 조금 신경쓰였다.
상반신만 방 안에 들이밀어, 바라본다.
지금까지는 창고처럼 쓰이고 있었다.
먼지투성이의 방이었다.
그런데 여자가 몇일 잔 것만으로도, 이렇게 향기로웠다.
그것이 토모키는 신기했다.
누나의 어긋난 이성을, 토모키는 옛날부터 의식하고 있었다.
그래도 비뚤어지지 않은 것은……충동을 뛰어넘는 두려움 때문에, 이것은 남매에게 공통된 특성이었다.
지금은 여자친구도 있는 토모키의 근원 충동이라 할 수 있는 감정은, 많이 희석되어 있었다.
미사토「……무슨 일이야?」
잠시 후 미사토가 정신을 차린다.
토모키도 누나가 바라보고 있던 것을 본다.
토모키「그 라디오 말야……혹시?」
미사토「아아, 이거?」
보여준다.
미사토「응, 맞아……그 때의……」
쓴웃음짓는다.
토모키「……」
이전에, 두 사람에겐 친구가 있었다.
괴짜들 투성이인 군죠에서도, 특히 유별난 인물.
군죠에서 가장 중증이라 불리던 소년.
항상 떠들썩하고, 자주 사람들한테 터무니없는 장난을 치는.
하지만 미사토는 알고 있었다.
가끔씩 놀래켜주려고 살며시 엿보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감정이 없는 표정을 짓고 있는……그런 소년이었다.
미사토의 존재를 눈치채면, 눈동자의 초점이 서서히 모이고, 그리고 천천히 미소를 만든다.
그래, 만든다.
의식적으로 미소를 지어낸다.
본질적으로, 그는 사람이란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가 사람의 흉내를 내고 있을 뿐이란 것을 안 건, 알고 나서 상당한 시간이 지난 뒤의 일이다.
하세쿠라 요코에게, 한 번 경고를 받았다.
친구가 되는 것은 상관없다. 하지만, 그 이상 다가가면―――
그렇게 무서운 소년이었나?
분명히, 묘하게 위험한 면도 있었지만.
아직도 미사토는 고민하고 있다.
갑자기, 라디오가 울렸다.
토모키「……방금?」
미사토「쉿」
귀를 기울인다.
두 사람의 희미한 기대는, 공통적인 것이었다.
하나로 모인 긴장이 가득찬다.
잠시 후, 라디오는 작은 소리를 냈다.
타이치「……이 방송……듣고 있는……분……계십니까?」
타이치의 목소리.
토모키「……이, 이건……?」
미사토「페케군……」
튜너를 돌리자, 소리가 안정되었다.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인다.
타이치「여기는 군죠학원 방송부」
타이치「이번주도 갑니다―」
타이치「제 몇회였더라, 뭐 아무렴 어때」
타이치「제 5회 아니면 6회입니다, 아마도」
어안이 벙벙해질 정도로, 넉살좋은 목소리였다.
타이치「별탈없이 살아 계십니까? 건강하십니까?」
타이치「전 건강합니다」
타이치「……잘 먹고, 잘 살아있습니다」
미사토「……」
토모키「……」
타이치「뭐랄까……실은 필사적으로 살고 있습니다」
소년은 코를 훌쩍거렸다.
타이치「최근에는 여러가지를 알게 되고……」
타이치「옛날에 알고 싶어했던 것이, 점점 이해할 수 있게 되어서」
타이치「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그럽니다」
타이치「……」
타이치「최근 생각한 것 중에, 이런 게 있습니다」
타이치「조건없이 사람을 좋아하게 됐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겁니다」
타이치「그것이 중요하단 것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하게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타이치「머리로는 알고 있어도, 마음으로는 납득하지 못하는 것처럼……」
타이치「전 주변 사람들을 무가치한 걸로 취급하고, 쭉 깔보아 왔습니다」
타이치「거리를 두고, 대화하지 않고, 혼자 지냈습니다」
타이치「흥미가 없는 것처럼」
타이치「하지만, 실제로는 아니었습니다」
타이치「사람을 사랑하는 법을, 몰랐던 것뿐이지……바라고 있었습니다」
타이치「그것을, 어떤 사람들이 가르쳐 주었습니다」
타이치「자신을 위해, 누군가를 좋아한다」
타이치「그걸로 괜찮다면서」
타이치「그 다음은, 생각하지 않아도 괜찮다면서」
타이치「그러지 않으면……당연한 듯이 곁에 있는 상대를, 가족이나 형제를, 그런 이유를 달아야만 좋아하게 될 테니까요」
미사토는 생각한다.
사람을 좋아하게 된다.
그것을 위해, 타이치는 어느 정도의 고생을 해 왔을까.
토모키는 생각한다.
자신은 타이치에게, 친구라 부를 수 있는 존재였을까.
타이치「그것을 이해한 순간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타이치「그래서 전, 이렇게 계속 말을 걸고 있습니다」
타이치「대답은 없어도 됩니다. 들어만 주신다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타이치「그러므로……전 여기에 있습니다」
타이치「건너편에 있는 당신이, 설령 그 누구라 해도」
타이치「전, 분명히 있습니다」
타이치「다음주에 보죠」
뚝, 목소리가 끊어졌다.
라디오는 이제 언어를 전해주지 않는다.
남매는 눈을 마주쳤다.
미사토「그 애야……」
토모키는 끄덕인다.
토모키「……타이치」
두 사람은 가만히, 어슴푸레한 방 안에 멈춰서 있었다.
할 말은 없다.
그저 조용히 있을 뿐이었다.
미사토는 라디오를 끌어안았다.
차가운 플라스틱에 소년의 자취는 없지만.
떠올리는 것은 가능했다.
피부의 감촉. 머리카락의 향기. 귓전에 멤도는 숨결.
몸을 섞으면서, 알아낸 것이 하나 있다.
떠들고 있을 때의 광소적인 그 태도는, 필사적으로 사람과 접하려 하는 타이치의 오열이었다는 것을.

드넓은 자신의 방에서, 토오코는 책상에 푹 엎어져 있었다.
평온한 나날로 귀환하고 나서, 토오코는 우울해 있을 뿐이었다.
또 혼자.
타이치와 친해지기 전과 다름없다.
원래 고립적인 성격이었다.
반면에, 일단 친해지면 끝없이 의존했다.
상대에게 다가가기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고 프라이드도 버린다.
위험한 면이었다.
그런 토오코가 여학교에 있던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몇년 전 친구를 둘러싸고 반 친구들과의 대립이 일어났다.
의존은 남녀를 가리지 않았다.
토오코가 본질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것은, 자신에게 종속적인 타인이다.
상대에게 상처를 입힌 것을 계기로, 토오코는 악명 높은 국가시험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군죠행.
친구들은, 그 사실만으로 자취를 감췄다.
모든 연락이 끊어졌다.
그것은, 토오코를 더욱 더 외골수로 만들었다.
집을 연이어 옮긴 토오코 부모님의 사랑은, 왜인지 그녀를 달래주지 못했다.
타인이 필요했던 것이다.
부모님은 당연한 듯이 자신을 사랑한다.
비록 토오코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라 해도.
다른 누군가가, 토오코 자신의 가치를 찾아주길 바랬다.
고압적인 태도는 그것을 위한 행위였다.
죽을 정도로 갈망하고 있었기에, 채워질 때의 만족은 더했다.
긍지마저도 모두 내던진다.
……그것이 가장 소중한 것이란 것을 모른 채.
문이 울리고, 말소리가 들린다.
가정부가 토오코를 위해 저녁식사를 가져온 것이다.
토오코「……아아, 거기에 두고 가」
가정부는 가끔씩은 밖에도 나가면 좋겠다느니, 계속 풀이 죽어 있어도 어쩔 수 없다느니 등의 말을 했다.
토오코「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가정부는 물러서지 않는다.
형식상의 걱정을 나타낸다.
토오코「……알고 있어」
기운없이 되돌려보내고, 다시 책상에 누웠다.
밥벌레가 울렸다.
토오코「……………………」
육체는 항상, 토오코를 배신한다.
문을 열고 식사를 안으로 들였다.
고뇌와 식욕의 어긋난 균형에 울상을 지으며 식사를 하고 있는데, 라디오가 울렸다.
타이치「맛있는 밥들 들고 계십니까, 군죠학원 방송부입니다」
맛있는 밥을 뱉어버렸다.
기침을 한다.
토오코「!?」
라디오의 볼륨을 높인다.
타이치「순조롭게 생존중. 사람은 혼자서도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토오코「타이치……?」
타이치「살아 계십니까?」
갑자기 그런 말을 했다.
타이치「……마음에 대해, 자주 생각합니다」
타이치「마음은 살아가기 위한 기능」
타이치「스스로 노력하지 않으면, 마음의 영역은 결코 넓어지지 않죠」
타이치「그래서 사람은, 혼자서 살아갑니다」
타이치「그래서 사람과 사람은, 거리를 두고 태어납니다」
타이치「타인을 이용하는 건 괜찮습니다. 충실하게 살기 위해서, 누군가와 인연을 맺는 것은 괜찮습니다」
타이치「하지만……타인과 동화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타이치「지금 이 방송을 듣고 계신 당신과 제가 접할 수 없는 것처럼요」
타이치「하지만 약한 마음은, 그 사실을 믿지 못합니다」
타이치「겹쳐지려 합니다」
타이치「의존하거나, 예속되거나」
타이치「여러가지 방법으로, 자신과 타인의 사이에 접점을 만들려 합니다」
타이치「그래도 말이죠, 그거 불가능합니다」
타이치「사람은 혼자서 태어나, 죽을 때까지 혼자니까요」
타이치「그 단절감은, 절망적인 거리로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타이치「견디기 힘들지도 모릅니다」
타이치「그래도, 전 여기에 있습니다」
타이치「다음주에 또, 이렇게 방송하려고 합니다」
타이치「그 다음주도, 또 그 다음주도」
타이치「죽을 때까지」
타이치「제가 여기에 있는 것처럼, 당신이 거기에 있어 준다면……전 기쁠 겁니다」
타이치「삶의 보람이 되니까요」
타이치「그럼, 다음주에 보죠―――」
방송이 끊어진다.
토오코는 라디오가 부러질 정도의 힘으로, 꾹 잡고 있었다.
그 얼굴은, 무척 일그러져 있었다.
토오코「삶이라니……뭐야……산다는 게……?」
토오코「나……혼자서 살아야 되는 거야?」
타이치에게 인정받지 못한 채로, 쭉.
마음을 고백하는 일조차 하지 못한 채.
거기에 있는 것만으로, 만족하라고 한다.
가능할 리가 없었다.
자신의 약한 마음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면 어쩌지?
다른 누군가를 좋아할까?
타이치는 그걸 바랄까?
토오코의 마음은 산산히 조각난다.
토오코「다른 사람따위, 못 찾을걸……바보」
토오코「머리가 이상한 여자따위, 아무도 안 좋아할 거 아냐……」
자신에게 말을 걸어주는 사람은 없다.
타이치밖에 없었던 것이다.
토오코「보고 싶어……타이치……」
투명한 눈물을 흘린다.
무릎을 꿇고, 천천히 자신의 몸을 숙여가며……바닥에 이마를 찧었다.
등이 그리는 호가,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다.
응석부리고 싶다.
약하니까.
사람과 접하고 싶다.
미숙하니까.
혼자서 일어난다.
그것을 이루기까지, 얼마만큼의 시간이 필요한 걸까.
지금의 토오코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꽃밭에서 따온 듯한 화려한 분위기가, 낡은 가게 앞에 감돈다.
작은 소녀 2인조.
키리와 미키.
군것질을 하고 있었다.
미키「하아―, 키리찡하고 이렇게 군것질하는 것도 마지막이구나」
얄궂다.
키리는 어색한 웃음으로 대할 수밖에 없었다.
키리「자주 놀러 올게. 그러면 되잖아, 응?」
아직 여름은 끝나지 않고 있었다.
두 사람이 먹는 바닐라 바의 표면은, 벌써 녹아가고 있었다.
미키「좋겠네―. 보통 학교. 좋겠네」
비난하는 듯한 어조로, 연이어 투덜댔다.
키리는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미안한 마음은 들기 때문이다.
사쿠라 키리는 이번에 상태 회복이 확인되어, 군죠학원을 나오게 되었다.
사회에 적응할 수 있게 되었다고 인정받은 것이다.
물론, 차별은 있을 것이다.
한 번 낙인이 찍혔으니까.
하지만 키리는 가기로 했다.
마음 속의 응어리를, 지워낸 것은 아니다.
지금의 자신을 긍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가겠다고 했다.
그것을 미키는 이해할 수 없었다.
싸우기도 했다.
첫 싸움이었다.
하지만 키리는 간다.
FLOWER'S, 해산의 위기였다.
미키는 계속 우울한 기분이었다.
키리는 계속 난처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 등교일이 되었다.
키리「미키도 열심히 하면, 금방 나올 수 있을 거야」
미키「으―음, 내 건 마음의 상처라기 보단, 가지고 태어난 거니까―」
미키「쭉 가지고 살 수밖에 없지―」
아이스크림을 깨문다. 공격적으로.
미키가 무섭다.
키리는 떨렸다. 마지막인데도.
미키도 군죠를 나가고 싶어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키리가 나가는 것이, 왠지 모르게 싫었던 것이다.
키리의 위로의 말.
미키의 본심.
그것이 미묘하게 엇갈리고 있었다.
키리「미키……」
그만 주저해버린다.
여러가지 변명이 스쳐지나간다.
여행은 나에게 꼭 필요한 일로 미키와의 우정보다 소중하다거나 그런 건 아니고 비교할 수도 없는 거지만 그래도 중요한 일이라서 물론 언제까지나 콤비로 있고 싶지만 나 또한 거리와는 관계없이 앞으로 나아가야만 해서――
여러모로 고민해 봤지만 결론이 나지 않은 채로 이대로 정체하고 있는 것보다는 전진하고 싶어졌다는 것을 어떻게 미키에게 알기 쉽게 설명해야 좋을지 고민되는 상황.
등등, 비지땀을 흘리면서 아이스 바로 지면에 양초 유사 플레이를 해버리는 미키.
실은 울 것 같았다.
그런 상대의 얼굴을 보고, 미키는 살짝 웃었다.
미키「그래도 뭐, 키리찡의 출발은 축하해야지」
키리「!!」
미키의 갑작스런 태도에, 키리는 당황했다.
뭔가 어울리는 대답을 해줘야 되는데.
하지만 머리는 새하얗고.
드라마처럼 술술 나오지는 않았다.
간신히 생각을 압축했다.
키리「……우린 쭉 콤비니까」
최선의 말이었다.
키리「떨어져 있어도」
미키「……응, 알고 있어」
그리고 턱으로, 키리의 아이스크림을 가리켰다.
순간, 녹은 아이스크림이 막대에서 빠져나와 지면으로 풀썩 떨어졌다.
미키「……」
키리「……」
맥빠진 분위기.
그리고, 그때.
타이치「……군죠……방송부……」
라디오는, 미키의 가슴 주머니에 있었다.
당황해하며 꺼낸다.
소문의 방송이 온 것이다.
미키는 이어폰을 끼우고, 한쪽을 키리에게 건넸다.
키리「이건……?」
미키「응, 선배야」
수수께끼의 라디오 방송.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기 시작해, 지금은 여러가지 도시전설을 만들며 전 일본을 들썩이게 하고 있다.
타이치「오늘은 옛날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쿠로스 타이치.
타이치「예전에 얘기한 적이 있을 지도 모르지만, 기억이 안 나서……」
틀림없다.
방송부원들의 마음에, 기묘한 추억만을 남기고 사라진.
타이치「그래도 분명히, 전 이 일을 얘기한 적이 있었을 겁니다」
실종하지도 소멸하지도 않았다.
타이치「예전에, 전 죄를 저질렀습니다―――」
그 누구도, 진상을 아는 사람은 없다.
환상과 같았던, 한 명의 소년.
키리「살아있어……아니……어딘가에 있는 거겠지? 그런데 어떻게?」
미키「방송……하고 있는 거야」
유령방송.
실제로 들은 것은, 두 사람 다 처음이다.
타이치「친구를, 죽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타이치는 말했다.
그것은 친구의 이야기.
타이치가 죽음에 이르게 만들어버린, 소년의 이야기.
키리「……」
미키「……」
두 사람은 방송이 끝날 때까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윽고 노이즈가, 소년의 목소리를 지워버렸다.
두 사람은 주박에서 풀려난 것처럼, 동시에 한숨을 쉬었다.
키리「……이건?」
미키「응……틀림없어. 분명……부활동일 거야」
키리「그……아무도 없는 마을에서?」
미키「아마도……」
키리「혼자서?」
미키「아마도……응」
키리「그럴 수……있을까?」
미키「선배는 바래왔을 거야. 혼자가 되는 걸」
키리「그렇다고! 그렇다고 해서……」
미키「목소만 들리는구나……어쩐지 선배답네. 그치?」
건너편의 세계와, 이쪽 세계.
타이치는 어떠한 방법으로, 두 사람을 이쪽으로 돌려보냈다.
그리고 혼자서, 부활동을 하고 있다.
키리「……응」
미키「쓸쓸하네」
키리「응. 그리고, 슬퍼」
미키「보고 싶어」
키리「보고 싶어……」
친구끼리의 이별의 날.
두 사람은, 과거의 이별과도 마주치게 된 셈이다.

타이치「그럼, 다음주에 보죠―――」
방송은, 그 말로 매듭이 지어졌다.
사쿠라바「……호오」
산간 도로.
자전거를 세우고 쉬고 있던 사쿠라바는, 살짝 웃었다.
사쿠라바「오랜만이다, 친구」
말이 들릴 리는 없다.
그래도 사쿠라바는 말한다.
사람을 곤란하게 만들지 않는 한도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마음에 든 녀석과 어울린다.
타이치는 사라져 버렸다고 생각해 왔었다.
하지만 오늘, 목소리를 들었다.
어딘가에서 살아 있구나, 하고 사쿠라바는 생각했다.
그의 마음은 그걸로 채워져, 행복을 느꼈다.

타이치「쿠울」
타이치「쿠우울」
타이치「음냐음냐……」
미사토(페케군, 자고 있네요)
사쿠라바(자고 있군)
미키(자는 얼굴, 귀엽네요)
키리(잘 때만……이지만)
토오코(확 깨워버릴까?)
토모키(그 정도의 권리는 있을려나……우리들이 당했던 짓을 생각하면)
토오코(맨날 깜짝 놀란단 말야……정말)
미키(피―투―성―이―)
키리(철퍽)
사쿠라바(피투성이 철퍽)
토모키(……그게 그거잖아)
토오코(타이치도 우리들 쪽으로 데려오고 싶은데)
미사토(그거……죽여버린단 뜻 아닌가요?)
요코(……안돼)
토오코(하세쿠라 선배의 과보호가 시작됐습니다)
요코(안돼는 건 안돼)
토오코(으―)
요코(으―)
미키(배틀 개시)
미사토(어머어머, 좋네요)
요코(조용히 해 줘, 깨겠어……)
키리(편애……편애야)
미키(키리찡은 내가 편애해 줄게)
토오코(거기 레즈 콤비, 적당히 하시지―)
미키(꺅―)
토모키(결국 떠들고 있잖아……)
사쿠라바(그래도 괜찮아 보인다)
미사토(……페케군, 푹 자고 있네요)
키리(무슨 꿈이라고 꾸고 있을까요?)
미키(웃고 있네)
토오코(응, 즐거워 보여……잘됐네요, 하세쿠라 선배)
요코(……응……)
미사토(작별인사, 하고 싶은데……아마 안 들리겠지요, 우리들 말)
사쿠라바(안녕이다)
토모키(바이바이)
토오코(남자들 뭐야 갑자기! 정말―……그럼 안녕, 타이치)
미사토(건강하게 지내요)
미키(안녕히 계세염)
키리(잘 지내세요)
요코(……훌쩍)
미사토(우, 울지 마세요)
사쿠라바(잘 부탁한다)
토오코(잘 부탁해서 어쩌려는 건데!)
미키(뒤를 잘 부탁한다는 거 아닐까요)
키리(……억지야)
타이치「……응?」
몸을 일으킨다.
묘한 기척이 느껴졌는데.
타이치「모두의……목소리가……들린 거 같은……」
옥상에는 아무런 기척도 없다.
쥐죽은 듯 조용하다.
요정의 속삭임?
들렸다기 보다는, 느꼈다는 게 옳을까.
타이치「음―???」
꿈 꾼 걸까.
타이치「뭐 어때」
다시 눕는다.
타이치「쿠울」
타이치「……」
타이치「…………」
타이치「……………………」
타이치「……하하」
타이치「뭐야……다들 모여서……」
타이치「…………나……졸려……」
타이치「나중에 보자……」
타이치「……………………나중에……」
타이치「………………………………………………………………」
타이치「………………………………………………………………………………………………………………………………」


이 하늘이 사라지는 그날까지...


the end CROSS†CHANNEL


번역: 청명은령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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