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 신불 - jeug sinbul

필자는 고등학교 시절에 김동리의 소설 ‘등신불’을 읽었다. 그때는 등신불이 과연 있을 법한 일인가 생각이 들었었다.

그런데 필자의 나이 70을 넘기면서 다시 등신불이 머리에 떠올랐다. 필자의 고향 사람으로 1년 후배인 윤 호진스님을 만난 것이 계기였다.

우리나라 사람으로서 ‘등신불’이라하면 신라의 왕자 김교각 ‘지장왕보살’을 들고 있다.

그는 중국 안휘성 구화산 화성사에 24세 때 가부좌(跏趺坐)를 틀었는데 그 후 75년만인 99세에 열반하면서 ‘등신불’이 되었다고 전한다.

지금도 화성사 육신전에 생불(生佛)로 모셔져 있다니 자연과학도로서는 그저 의아할 따름이다.

구화산지(誌)에 의하면 김교각 스님은 죽고 나서 3년 후에도 얼굴이 마치 살아 있는 듯이 신체에 아무 변화도 없었다고 한다.

불경에 김교각 스님이 지장보살의 전생이라 기록되어 있으므로, 그의 제자들은 삼중의 석탑을 짓고 그 등신불을 석탑 안에 안치했었다.

중국의 안휘성의 구화산 화성사에만 현재 15존(尊)의 ‘육신불’이 금분(金粉)이 입혀져 안치되어 있다니 참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중국 최고의 육신불은 김교각 ‘지장왕보살’(등신불)보다 약 15년 전에 열반한 중국 광동성, 남화선사의 선(禪)불교의 창시자 혜능대사의 육신불을 꼽는다.

왜, 어떻게 이러한 등신불(육신불)이 생길 수 있는지, 현대의 자연과학으로는 아직 합리적인 설명을 할 수 없다.

다만 말할 수 있는 것은, 장시간에 걸쳐 돈독하게 수행을 쌓은 사람은 그 신체에 확실히 어떠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등신불과는 약간 다른 ‘즉신불’(卽身佛)이라는 것이 있다. ‘즉신불’이란 승려가 즉신불이 되려고 토굴(土窟)에 일부러 들어가 명상하다가, 그대로 미이라가 된 것을 말한다.

즉신불은 불교의 수행 중에서도 가장 가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배경에 있는 것은 입정(入定)이라는 개념이다.

본래는 깨달음을 얻는 것이지만, 죽지 않고 영원의 생명을 얻으려는 생각이 짙다. ‘즉신불’ 자체가 신앙의 대상이 되기도 했으니 말이다.

즉신불이 되기 위해서 어떤 입정승려는 신체의 수분을 줄이기 위해 옻나무로 만든 차를 마시거나 비소가 함유한 물을 마신다.

신체에 수분이 50%이하로 감소하면 잘 부패하지 않는다. 사람이 살아있을 때 거의 먹지 않고 기아상태로 오래 계속하면 죽어도 미이라화 되기 쉽다.

현재 일본에서의 18존(尊)의 즉신불은, 대개 이 방법에 따르는 것이다.

이것은 죽음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참을 수 없는 고행이어서 도중에 단념한 승려도 상당히 있다고 한다.

또, 사후(死後)에 시체가 부패하여 즉신불이 되지못한 승려도 많다.

오늘날 일본에서는 즉신불이 되려면 반드시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래서 입정을 금지하는 규정을 정하고, 또 입정을 돕는 행위가 형법 202조의 자살방조죄에 해당 돼 금지되고 있다.

즉 일본승려는 즉신불이 되기도 어렵게 되었다.

/ 임자 건강과학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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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신불 「고우치 호인 유테이」(아사카와 마치)

고우치 호인 유테이는 1591년 이즈모노쿠니 마쓰에에서 태어나 1614년 23세에 사누키노쿠니 중산 마쓰오지의 유테이스님 밑에서 출가하여 유테이의 이름을 얻어 불문 수행의 몸이 되었습니다.스승이 죽으면 수행지를 찾아 홀로 여러나라에 행각을 떠납니다. 데와삼산과 호쿠리쿠를 둘러싸고 고야산에서는 곤고산마이원에서 진언 밀교를 수학해 고승도의 지위를 얻었습니다.그 후 다시 수련의 땅을 찾아 마지막 신앙의 땅이 된 오누키 히가시나가야마 관음사의 주지가 되고 1683년 유테이가 92세 때 당시 유행하던 전염병으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고자 마을 사람들에게 약사여래의 12대원을 설파한 뒤 결의하고 석관에 입정하여 즉신불이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현재는 후쿠시마 현 이시카와 군 아사카와마치의 간슈지에 안치되어 있습니다. 2011년의 동일본 대지진으로 칸슈사도 피해를 입어 즉신불의 안치소도 대파되어 버렸습니다만 칸슈사의 주지, 오누키즉신불 보존회를 중심으로 한 아사카와마치 주민과 동사무소의 노력에 의해 안치소는 약사당으로 복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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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주소 福島県浅川町大字小貫字宿ノ内요금어른 300엔
중고생 200엔
초등학생 100엔영업시간연중 9:00 ~ 16:00휴업일무휴(방문시에는 사전연락이 필요합니다)길안내JR 수이군선 이와키 아사카와 역에서 차로 약 5분
도호쿠 자동차도 시라카와 IC에서 차로 약 30분
스카가와 IC에서 차로 약 40분공식 사이트조동종 간슈지 즉신불 고우치호인 유테이 - 아사카와마치 동사무소 공식 홈페이지

문의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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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생불사] 즉신불 살아 부처님 되기 

인간의 영원에 대한 갈망은 때론 도가 지나쳐 스스로 자해하는 수준까지 이른다.

이른 바 일본의 '즉신불' 살아 부처님 되기 수련인데.... 이런 극단은 정통에서 금하는 방식이다.

일반적으로 존경받는 양식은 스스로 살만큼 산다음 죽을 때가 가까워지면 남모르게 산속 깊은 곳에 가서

스스로 굶어 죽는다는 것, 이런 분들도 시체가 썩지않고 그대로 보존되기도 해, 부처님으로 존경받기도 한다.

법정 스님이 예전에 말한 '천화'란 죽음의 방식이다. 

살만큼 살고, 늙어 죽는다면 이런 죽음방식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연우

[깨달음 직전의 부처 고행상. 수많은 수행자들이

깨달음을 위해 부처님의 고행을 따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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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즉신불 -일본 번역괴담

2018. 3. 16. 18:30

"즉신불"을 알고 있습니까?

식사를 끊고 산 채로 미라가 되는 것. 이것은 어릴 때 증조부로부터 들었던 이야기 입니다.

증조부의 집 근처에는 "고승 산"이라 불리는 산이 있다. 거기에는 "고승 동"이라는 작은 동굴이 있고, 지금도 독실한 노인은 제물을 바치고 있다.

증조부도 그런 노인들 중 한 명으로, 매월 "고승 동"에 가서 고구마를 올리고 있었다.

어느 날, 증조부가 "고승 동"에 함께 가자고 했다. 초여름의 푸른 하늘이 눈부셔서 산책하기에 매우 기분이 좋은 날이었다.

"고승 동"이라는 곳으로 가는 것도 처음이고 아직 아이였던 나는 들뜬 마음에 따라갔다.

"고승 동"은 산기슭에서 걸어서 한 시간 정도의 거리에 있었다. 의외로 경치가 좋은 장소였다.

나무를 베어낸 다다미 8장 정도의 빈 터의 산등성이에, 아이가 겨우 들어갈 정도의 구멍이 있었고, 금줄이 걸려있다.

증조부는 그 앞의 평평한 돌에 고구마를 공양하고 열심히 기도했다. 그리고 조용히 돌아보면서,

"여기가 어떤 장소인지 알고 있니?"

하며 나에게 물어보셨다.

"여기는 할아버지가 사람을 죽인 곳이야"

증조부는 말했다.

나는 깜짝놀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옛날 여기에 한 스님이 와서···"

담담한 어조로, 증조부는 말하기 시작했다.

······

증조부가 어릴 적에 젊은 스님이 마을에 와서 촌장에게 이렇게 말했다.

"지금 세상에는 고통이 너무 많습니다. 나는 즉신불이 되어 민중을 고통에서 구원하고 싶습니다"

스님은 마을 근처의 동굴에서 바로 즉신불이 되기 위한 고행을 할 것이니, 반드시 마을에서 협조 해달라고 당부했다.

즉신불이 되기 위해 식사를 끊고 산 채로 미라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일체의 음식을 입에 대지 않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수행을 하면서 매일 조금씩 식사량을 줄여간다. 이윽고 물만 마시게 되고, 마지막에는 물도 입에 대지 않는다. 그리하여 마침내 산 채로 미이라가 되어, 즉 "즉신불"이 될 수있는 것이라고 한다.

젊은 스님은 자신이 즉신불이 될 때까지 식사와 물을 동굴까지 가져와 달라고 말했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것을 부탁했다.

"즉신불로 정화되는 수행은 매우 어려운 것입니다. 만약 만일 내가 정신없이 도망치려고 한다면 이 동굴에 가두세요."

촌장은 스님의 제안을 이해하고 동굴 근처의 마을 몇 명에게 교대로 식사를 나르는 것을 명령했다.

즉신불의 고행이 시작되고 꽤 시간이 흐른 어느 날.

증조부는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동굴에 물을 전달하도록 분부받았다. 아버지는 일 때문에 시내까지 나갈 일이 있었으므로, 열살을 넘긴 장남인 증조부에게 대신 시켰던 것이다.

증조부가 물을 가지고 동굴까지 가자, 스님은 피골이 상접한 모습으로 동굴 바깥에 누워 있었다. 물을 내밀자 스님은 기쁜 듯이 그것을 마셨다. 아직 아이였던 증조부는 너무나도 앙상한 스님이 걱정되어서,

"먹을 것을 갖다 드릴까요?"

라고 얘기했다.

스님은 누운 채로 조금 웃었다.

증조부는 서둘러 집에 가서 어머니가 찐 고구마를 품에 안고 스님에게 가져가려고 했다.

그러다가 어머니에게 발견되어 버린 것이다.

어머니는 고구마를 어디로 가져가는지 물었다. 증조부가 정직하게 대답하자 어머니는 서둘러 인근 남정네를 모아 산쪽으로 걸어갔다.

증조부는 자신이 터무니없이 나쁜 짓을 한 것 같은 기분이되어 집에 남아 있었다.

스님은 즉신불의 수행이 너무 힘들어서 동굴에서 기어나오던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스님을 동굴에 가두어 나오지 못하게 돌을 쌓아 가두어 버렸다.

그것이 스님과의 약속 이었기 때문.

며칠 동안 동굴에서 경을 주창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그 목소리도 점점 작아져서 결국 아무것도 들리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여러 해가 지나 마을 사람들이 동굴의 돌을 치워보니, 훌륭한 즉신불이 된 스님의 모습이 있었다.

좁은 동굴 속에 늠름한 좌선을 이룬 모습으로 앉아있는 미이라를 보고, 증조부는 왠지 고구마를 떠올렸다고 한다.

그때, 스님은 분명 고구마를 먹고 싶었을 것이다.

자신이 스님에 대해서 어머니에게 말하지 않았다면, 그 스님은 산을 내려가 지금도 살아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죽을 때까지 이렇게 고구마를 보내는 거야"

증조부는 조용히 그렇게 말했다.

즉신불이 된 스님의 시신은 어느 절에 지금도 모셔져 있다고 한다.

-출처;

https://dsuplex.tistory.com/709

[일본 괴담 번역이라고 하는데, 이토준치 작품에도 나와있는 소재이다.

이런 억지 득도방법은 지금은 사라졌지만, 영원에의 갈망의 한 단면을 보는 듯해 웬지 가슴이 아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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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신불 -스스로 미라되기

일본에서 유래된 즉신불은 자진해서 미라가 되기를 선택하는 승려들을 말한다.

미라가 되려면 1단계는 천일동안 음식물이라고는 오직 곡물과 호두만 먹으며 몸을 최대한 많이 사용한다.

이 '몸 만들기'가 끝나면 체내에 최소한의 지방만 남게되며, 따라서 부패를 일으키는 주요성분이 제거된다.

2단계. 이어지는 천일동안은 엄격하게 나무껍질과 뿌리로만 구성된 식단으로 연명하다가 천일이 끝나갈 무렵 독성이 매우 강하며 일반적으로 옻칠용 물감으로 사용되는 옻나무 수액으로 끓인 차와 유도노 산에서 내려오는 샘물을 마신다. 오늘날 이 물의 비소농도가 비정상적으로 높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런 물이 옻나무 수액과 결합하면, 체내는 당연히 높은 독성으로 멸균상태가 되며 따라서 사망후 박테리아나 곤충 들에 의해 부패가 일어날 위험이 최소화된다.

마지막 단계에 승려들은 아주 좁은 지하 토굴로 들어간다. 가부자 자세로 꼼짝도 하지않고 명상만 할 정도로 좁은 방에 들어간 승려는 호흡을 위한 대롱과 자신이 아직 살아있음을 알리는 종만이 외부 세계로 이어지는 유일한 통로가 된다.

이 종이 침묵하면 그로부터 천일동안 무덤은 봉해진다. 그후 시체를 꺼내게 되는데, 시신이 부패하지 않은 승려는 부처 대우를 받게 된다. 

오늘날에도 일본의 일부 절에서는 이 즉신불을 볼 수 있다. 240. 

-삶을 위한 죽음 오디세이  궁리간/ 리사르 드니 쟁그라저 2013년. 중에서

---한국식 산채로 부처가 되는 의식은 예전에 올린 글을 참고하세요.

교과서에 나왔던 김동리의 등신불'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신비] 등신불 [ 等身佛 ] 산채로 몸을 바쳐 이룬 소망

https://blog.naver.com/jscho7942/220903239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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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소쿠신부츠

2017-12-26 18:23:27CulzineMarster

세계의 기이한 풍습 -일본의 소쿠신부츠

일본의 절에는 ‘소쿠신부츠’라 불려지는 미이라가 있다. 한자로는 即身仏(즉신불)로 죽은 부처를 뜻하며 쇼코신부츠가 되기로 결정한 승려는 죽음이 멀지 않았을 때 스스로 소쿠신부츠가 되기 위한 준비를 한다. 이를 행하는 승려나, 그 승려를 존경하며 따르는 모든 이들은 이 관행을 자살 행위로 보지 않고, 도리어 부처에 가까워 지는 수련과정으로 여긴다고 한다. 

일종의 불교의 금욕주의 관행과 연관이 있고, 이는 주로 신성시 여기는 깊은 골짜기와 산속에서 수련한다고 한다. 이 수행에 들어간 승려들은 스스로를 미라화 하기 위해 철저히 고기 등의 지방의 섭취를 금하고, 오로지 산에서 찾을 수 있는 솔잎이나 나무 껍질 등 곡식으로 연명한다.

지방이 제거된 상태에서 금식과 명상으로 하루 하루를 보내고 이는 기아로 이어진다, 천천히 액체 섭취까지 줄여 몸을 건조 시키고 장기를 수축시킨다. 이렇게 미라화 된 승려들은 부식없이 피부와 치아가 자연적으로 보존, 소쿠신부츠가 되며 많은 이들로부터 숭배 받는다.

이는 일본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인도의 히말라야 지역에도 존재 한다고 한다. 종파에 따라 다르겠지만 열반에 오르는 수행 방법 중 하나이며, 기적으로 받들어진다.자신의 숭고한 죽음으로 평생 믿어온 본인의 종교를 증명하는 방법 이지만, 수 백명의 승려가 시도 하여 지금껏 24구의 소쿠신부츠만 발견 된 것을 보면 쉬운 일이 아님이 분명하다

글 - 태기지 (太記紙 : take it easy)

참조 - Wikipedia / Wikimedia

-출처;

http://culzine.com/paper/view/1112

---[보충: 일본 만화. 이토준치의 즉신불 소재를 다룬 공포물, 시선'

부정적 시각에서 신흥종교처럼 다룬듯 보인다.

몇 페이지만 발체해 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