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이 곧 국가다 뜻 - jim-i god guggada tteus

역사적으로 국가의 최고 통치자가 국민을 섬기기보다 국민 위에 군림하는 것을 당연시하던 때가 있었다.

왕권신수설을 신봉했던 시대에 통치자는  신으로부터 지배권을 부여받은 자로서 국민이 신처럼 섬기는 것을 강요했다. 당시 그려진 미술작품 중 절대 권력자의 모습을 담은 초상화를 통해 왕이 어떤 존재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절대 권력의 왕을 묘사한 초상화 중 ‘영국의 찰스 1세’와 ‘프랑스의 루이 14세’를 그린 그림은 왕권신수설을 주창한 공통점을 지닌 통치자들의 모습이다. 안토니 반 다이크(Anthony van Dyck, 1599-1641)가 그린 <사냥터의 찰스 1세>와 이아생트 리고(Hyacinthe Rigaud, 1659~1743)가 그린 <루이 14세의 초상화>는 왕의 초상화를 넘어 17세기 왕에 대한 시대인식을 읽을 수 있는 시각자료로서 흥미롭다.

왕권신수설의 신봉자 : 찰스 1세와 루이 14세

안토니 반 다이크의 <사냥터의 찰스 1세>는 17세기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화가 안토니 반 다이크의 탁월한 화풍(그의 초상화에서 볼 수 있는 컬러와 옷의 장식은 ‘반다이크양식’이라 불림)에 반한 찰스 1세가 그를 영국으로 초청하여 그리게 한 그림이다.

반 다이크는 찰스 1세의 절대후원으로 화가로서 누릴 수 있는 부와 명예(기사작위까지 받음)를 누리며, 찰스 1세의 초상화를 여러 점 남겼다. <사냥터의 찰스 1세>와 <말위의 찰스 1세>가 대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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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 반 다이크<사냥터의 찰스 1세> 1635, Oil on canvas, 266 x 207 cm, MuséeduLouvre,Paris / 이아생트 리고<루이 14세 초상화> 1701, Oil on canvas, 277x194cm, Musée du Louvre, Paris
 

이아생트 리고가 1701년에 제작한 <루이 14세의 초상화>는 사실 화가보다 그림이 더 유명하다. 이아생트 리고는 루이 14세의 화가라 일컬어질 만큼 왕의 절대적 신임을 받으며 왕을 비롯해 당대에 많은 귀족의 초상화를 그렸다.

<루이 14세의 초상화>는 루이 14세가 예순 세 살일 때 그린 것으로 원래는 손자인 펠리페 5세(스페인 국왕)를 위해 제작했는데 작품에 관해 극찬이 쏟아지고, 자신도 만족감이 높아 손자에게 주지 않고 본인이 소유한 그림이다.

두 초상화를 보면 오른손에 지팡이를 짚고, 왼손은 엉덩이에 살짝 걸치고, 앞을 응시하는 자세가 비슷하다. 반면, 찰스 1세는 자연과 동물을 배경으로, 루이 14세는 실내를 배경으로 한 점이 다르다.

외모상으로 볼 때 루이 14세가 찰스 1세보다 훨씬 당당하고 위엄이 느껴진다. 머리모양에서 몸에 걸친 과도한 대관식 의상(겉옷)과 아래를 내려다보며 거만하면서도 자신만만하게 서있는 위세가 위압감을 준다.

왕으로 즉위한지 58년 된 위엄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통치자란 신분에 어울리는 호화로운 빨간색과 금색의 커튼, 거대한 기둥은 위엄을 상징하고, 부르봉 왕가의 골든 백합문장이 장식된 푸른빛 벨벳 천이 망토는 물론 왕좌와 탁자까지 폭 넓게 반복되어 절대왕권의 주인공임을 드러내고 있다.

어릴 적부터 발레를 좋아했던 그의 취향이 초상화에 발레무용수복장(스타킹)을 하고 있는 모습으로 반영되었다.

루이 14세는 비슷한 자세에 전체적 색감분위기만 다른 초상화를 다수 제작했다. 무엇보다 통치자 초상화의 전형적인 자세(한 손으로 지팡이를 짚고 한 손은 엉덩이 쪽에 올리고, 서 있는 모습)를 취하고 있다. 이러한 자세는 1694년과 1701년에 제작한 다른 초상화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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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생트 리고<루이 14세 초상화> 1694, Oil on canvas, 277 x 194 cm, Musée du Louvre, Paris / , 1701, Oil on canvas, 238 x 149 cm, Museo del Prado, Madrid / 1701, Oil on canvas, 279 x 190cm, Musée du Louvre, Paris
 

이에 견주어 찰스 1세의 초상화는 말과 마부, 시종과 함께 그려져 위풍당당하게 혼자 그려진 루이 14세 초상화보다 덜 위압적이다. 한마디로 왕의 초상화하면 떠오르는 왕관이나 왕홀(지휘봉), 화려한 망토가 등장하는 신분과시용 초상화와는 다른 분위기라는 점에서 새로운 유형이다.

찰스 1세 초상화의 한 가지 특징은 왕을 독립적 대상으로 집중하면서도 혈통 좋은 말과 함께 그림으로서 왕족의 뛰어난 혈통을 지닌 사람이라는 것을 은연중 드러낸다. 거대한 영토와 좋은 혈통은 신이 왕에게만 내리는 특권이라는 왕권신수설을 관람자가 인식할 수 있도록 알려준다.

왕을 명마와 함께 그리는 것은 자칫 왜소해 보일 수 있는 왕의 모습을 존귀하고 위엄있게 보이도록 하는 역할도 한다. 이는 <사냥터의 찰스 1세>와 같은 해에 제작된 <말 위의 찰스1세>를 보면 더 명확하게 드러난다.

 명마를 타고 있는 왕의 모습은 제왕적 위세를 표현하는 전형적 이미지이다. 그리니치가 만든 갑옷을 착용하고, 지휘봉을 잡고 말에 올라타 있는 모습을 통해 관람객이 왕을 우러러 보도록 유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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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 반 다이크 <말 위의 찰스 1세> c. 1635, Oil on canvas, 365x 289cm, NationalGallery, London

두 초상화의 차이는 두 왕의 실제 성격과도 연관 지을 만하다. 찰스 1세는 왕으로서 강인한 리더십이 부족했고, 예민하고 내성적인 성격에 육체적으로도 강건하지 않았다.

대신 왕권신수설을 신봉했기 때문에 자신의 말이나 행동을 세세하게 설명하거나 설득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고 본인의 판단으로 정치를 했다. 그러나 정치적, 정책적 판단이 뛰어나지 못해 국익에 별반 도움이 되지 못하는 정책으로 국민에게 신뢰를 잃었다.

반면, 루이 14세는 ‘짐이 곧 국가다’라는 말로 자신의 절대 권력을 강조하고 실질적으로 그에 맞는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태양왕이란 별칭도 태양신 아폴론의 역할을 했던 경험과 천계의 중심이 태양이듯 자신이 모든 것의 중심이라는 의미에서 자신을 태양과 동일시하려는 상징적 의미가 담겨있다. 실제 그는 프랑스 역사상 가장 강력한 왕권을 휘두르며, 자신의 위상을 세우는 데 주력했다.

예컨대 화려한 궁전의 대명사인 베르사유궁전을 설립하여 왕권의 힘을 과시했다. 웅장하고 역동적이며, 남성적인 바로크 미술로 시작하여 여성적이고 장식적인 로코코의 미술로 발달하게 된 표본이 된 것이 베르사유궁전이다.

여기에 루이 14세는 왕립아카데미를 통해서 미술, 음악, 무용, 발레 등 다양한 예술분야를 국가 주도하에 끌어갈 수 있는 기틀도 마련했다. 프랑스인과 프랑스영토에 공존하는 다민족 모두를 프랑스 국민으로 인식하며 펼친 루이 14세의 통치력은 국가의 수장으로서 갖는 절대 권력의 힘을 보여준 셈이다.

다른 운명, 같은 결과

찰스 1세와 루이 14세는 그림 속 모습처럼 언제나 왕으로 칭송받고 변함없는 절대 권력을 유지하는 모습을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사냥터의 찰스 1세>가 그려진 지 14년 후인 1649년 청교도 혁명 때, 찰스 1세는 가난한 귀족출신 올리버 크롬웰에 의해 ‘국민의 적’으로 재판받아 처형당한다.(반다이크 화가는 1년 전쯤 먼저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왕의 비극을 직접 보지는 못했다.)

찰스 1세 이후 명예혁명으로 영국의 공동왕으로 등극한 메리 2세와 윌리엄 3세 부부는 의회중심으로 입헌정치를 도입하여 시민사회로 전환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비롯된다고 여겼다. “왕은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라는 원칙이 세워져 지금까지 이어져온 계기가 되었다.

한편, 루이 14세가 누렸던 절대권력은 그의 사후에 등극한 후손들에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루이 15세를 거치며 국가 재정은 흔들리고, 사치와 향락은 극에 달했고, 급기야 1789년 시민 혁명이 일어나 후손인 루이 16세가 단두대에서 처형되면서 부르봉 왕조가 막을 내리고 만다.

부르봉 왕조의 멸망은 시민이 주인이라는 새로운 시대적 열망을 여는 시작점이 되었지만, 생전에 절대왕정을 강조했던 루이 14세의 시각에서 보면 통곡할 일이다.

찰스 1세는 죽음과 동시에 국민의 중요성을 절감하는 시대가 열렸고, 루이 14세는 사후 후손이 비극적 죽음으로 왕조가 끝나면서 시민의 힘이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될 수 있음을 알게 해줬다. 결국에 왕권신수설을 주창했던 두 왕은 시민위에 군림하며 누렸던 절대 권력이 영원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4세기 전에 일어난 영국과 프랑스의 절대왕정 붕괴는 국가를 형성하고 국가를 운영하는데 국민이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를 알려준 역사 교육으로 의미 있는 사례이다. 흔히 ‘역사는 반복 된다’는 말을 한다. 좋은 역사의 반복이야 반길만한 일이지만, 나쁜 역사의 반복은 비극이며 불행일 뿐이다.  

*참고문헌 및 추천도서: 이진숙 지음『시대를 훔친 미술』민음사,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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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종필 미술평론가

문학박사로 2008년 미술평론가협회 미술평론공모 당선, 200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부문에 당선됐다. 경희대 국제캠퍼스 객원교수, 박물관·미술관국고사업평가위원(2008~2016), ANCI연구소 부소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관장으로 재직 중이며 미술평론가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