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파는지가 아닌 어떻게 파는지 - mwolpaneunjiga anin eotteohge paneunji

아래 글은 브런치에 연재한 마케팅 인사이트 연재 중 일부입니다. 다른 글을 보시려면 오른쪽 방문해 주세요.  (요즘마케팅연구소의  글  보러가기).           

혹시 '광고회사의 광고' 보신 적이 있나요? 플랫폼 기업 광고는 꽤 많죠. 네이버나 카카오, 구글 광고를 많이 보셨을 것 같은데, 대부분 브랜드 광고라기보다는 상품 광고가 많습니다. 웹툰이라던가, 커머스, 앱스토어 같은..  제가 여기서 말씀 드리는 ‘광고회사’는 광고 대행사를 말합니다. 

저는 광고 회사에 다니며 참 의아했던 점이 있었는데요. 왜 광고 전문가들이 광고나 마케팅이 아닌, 맨투맨 방식의 영업에 의존하는 걸까? 하는 점이었죠.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속담도 있지만 남의 마케팅을 대신하는 걸 업으로 삼는 회사가 정작 자사의 마케팅은 왜 못할까 싶었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글의 끝 부분에 다시 이야기할게요) 

요즘엔 소셜미디어가 활성화되어 예전보다는 광고회사 역시 자사 마케팅에 적극적입니다. 하지만 홍보 영상이나 사이트가 있다 해도 보통 자화자찬이나, 레퍼런스의 나열인 경우가 많은데요. 이 얘기를 꺼낸 이유는 최고의 전문가라는 광고회사도 이런 상황이니, 일반 회사, 특히 작은 브랜드나 신생 기업들은 자사의 브랜드를 얼마나 잘 전달하고 있을까 싶어서입니다. 

우리 회사 마케팅을 기본부터 점검해 보려고 한다면, 가장 먼저 생각해봐야 할 것은 바로 나(우리 회사, 브랜드)는 누구인가? 하는 부분입니다. 흔히 브랜드 아이덴티티라고 부르죠. 

브랜드 아이덴티티 : 고객에게 건네는 첫인사 

흔히 '브랜딩'에 대해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 중 하나가, 브랜드 아이덴티티에 대한 것입니다. 보통 떠올리는 브랜드 아이덴티티의 개념은 굉장히 추상적이거든요.  

생활문화기업 / 건강, 라이브, 편리를 주는 미래 라이프스타일 기업 / Expanding Human Reach / Think Different / Just Do It 

각각 LG생활건강, CJ, 현대자동차, 애플, 나이키의 대표적인 슬로건이나 브랜드 소개에 등장하는 말들입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브랜드 아이덴티티는 저런 것들로 생각하죠. 하지만 생각해둬야 할 게 있어요. 이런 표어는 브랜드가 알려진 뒤 정체성을 명확히 하기 위해 등장했다는 점이죠. 한마디로 그 브랜드의 첫인사가 아닌 셈입니다. 

이게 왜 중요할까요? 만약 우리가 이미 자리를 잡은 브랜드라면 모를까, 우리가 궁금한 것은 누군가 성공한 후에 어떻게 변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성공했느냐하는 걸겁니다.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브랜드가 이런 '모호(?)'하고 '있어빌리티'한 정체성과 멋진 영상으로 승부하려고 한다면 (물론 대행사에서는 이런 것들을 들고 오겠지만요) 거의 실패할 가능성이 높은 거죠. 

사실 많은 마케팅 서적과 기사들이, 어떤 브랜드의 진짜 성공한 이유 보다는 각 브랜드들이 내세우고 싶은 이야기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케이스 스터디를 할 때 주의해야 하는 부분이죠 

1984년 맥킨토시 화면에 등장한 'hello'. 인간과 컴퓨터의 대화가 시작된다는 '정체성'을 상징하는 문구입니다. (©️미 의회도서관)

그럼 첫인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요새 치킨값이 워낙 비싸지다 보니, 마트에서 판매하는 치킨이 유행인데, 그 원조는 롯데마트의 '통큰치킨'입니다. 2010년에 나왔다가 오래전 사라진 브랜드지만, 여전히 '통큰치킨'은 가격파괴 치킨의 대명사로 소환되고 있죠. 워낙 강력한 기억이 있으니까요. 

▶ 12년 만에 ‘제 2차 통큰치킨’ 전쟁… 그때와 다른 점은?

작은 브랜드, 내지는 아직 인지도가 약한 제품에 있어서의 브랜딩, 그리고 커뮤니케이션은 선명해야 합니다. 고객이 원하는 Benefit 부분이 명료하게 전달되어야 하죠. 네이밍, 이미지, 커뮤니케이션 등 모든 부분에서.. 

우리 브랜드는 첫인사부터 그림이 그려지는 무언가가 있을까요? 

정체성은 관계 맺기의 첫걸음. 

브랜드 아이덴티티는 우리 브랜드를 더 멋지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중구난방인 걸 그럴듯한 말로 하나인 것처럼 묶어주는 역할도 아닙니다 (큰 브랜드에겐 보통 그렇죠). 뭘 파는지가 명확하고, 우리 브랜드와 제품에 관심이 있을 만한 고객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역할을 해야 하는 겁니다. 

한 권의 책이 될 정도로 원고가 두둑하게 쌓였을 때쯤 부모님께 고백했다. 나 강남언니 다닌다고.. 이 회사에 다닌 지 2년이 지나서야 말이다. (중략) 부모님께 이직 사실을, 더 정확히는 지금 다니는 회사를 말하지 못한 이유는 간단했다. '강남언니'라는 문제적 이름 때문이었다. 

그 회사의 브랜딩, 황조은 지음

성형, 피부 시술 정보 앱인 '강남언니' 커뮤니케이션 리더의 말입니다. 서비스를 시작하며 많고 많은 뷰티 관련 서비스 중 두각을 나타내려면 어떤 이름이 좋을지, 어떻게 커뮤니케이션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겠죠. 선명한 정체성을 전달하기 위해 때론 이렇게 (부모님께도 말 못 할) '문제적' 선택을 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당근마켓은 시종일관 '당신 근처의 마켓'으로 커뮤니케이션합니다. 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중고 거래부터 동네 정보까지, 이웃과 함께해요. 가깝고 따뜻한 당신의 근처를 만들어요'라고 나오죠. '당근'은 기존 중고거래 서비스들과의 핵심 차별점이자 네이밍입니다. 

그에 반해, 오늘의 집은 '라이프 스타일 슈퍼앱'이라고 소개되어 있고, 야놀자는 '누구나 마음 편히 놀 수 있게'라는 다소 추상적인 문구가 등장합니다. 이들은 기존 정체성에서 탈피해 확장을 꾀하는 중이기 때문인데요. 앞서 말했듯 아직 인지도나 점유율 등의 면에서 초기 상태인 브랜드가 이런 브랜드의 커뮤니케이션을 벤치마킹해서는 곤란해지는 이유입니다. 

지금 우리 회사의 브랜드를 가장 잘 설명해줄 수 있는 정체성은 무엇일까요? 혹시 지금 우리 브랜드에 '라이프 스타일' '가장 좋은 제품과 서비스로..' '진심을 다해..' '고객의 건강' 같은 문구가 등장하고 있진 않나요? 포괄적인 문구와 개념으로는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합니다. 

회사 내에 다양한 정체성이 존재한다면? 

위의 예시들을 보고, 저건 서비스 기업들 아닌가, 타깃도 다양하고, 품목도 다양한 회사들은 어쩌라는 건가?라는 의문을 제기하는 분들이 계실 듯합니다. 

블랭크 코퍼레이션의 예를 한번 보시죠. 블랭크는 웹사이트에 공식적으로 올라온 브랜드만 20개입니다. 대표적으로 퓨어썸 샤워기와 마약베개로 유명한 'BodyLuv'가 있고, 소소생활, 아르르, 공백 등이 있죠. 다 성공한 브랜드라고 볼 순 없지만, 각 브랜드는 지향하는 제품이나 타깃 면에서 명확한 정체성을 갖고 있습니다.

비슷한 예로.. 최근 출판사들을 보면, '임프린트'를 많이 활용하는데요. 임프린트란 하나의 회사 내에 브랜드를 아예 따로 만들고 사내 벤처처럼 운영하는 것을 말합니다. 민음사는 황금가지(장르), 비룡소(아동), 사이언스북스(과학) 등의 임프린트를 활용하고 있고, 문학동네에는 글항아리(인문), 엘릭시르(장르), 애니북스(만화) 등의 전문 브랜드가 있습니다. 

출판사 문학동네의 다양한 임프린트 브랜드들, 총 26개에 달한다 (©️문학동네)

아니, 브랜드를 많으면 그만큼 알리기도 어렵고, 힘이 분산되는 거 아냐? 생각하실 수 있겠네요. 하지만 지금 전 국민이 알고 있는 '카카오톡'의 경우, 처음 시작할 때는 '아이위랩'이라는 회사의 여러 서비스 중 하나였죠. 때론 대박 난 서브 브랜드가 기업 브랜드나 마더 브랜드를 대체할 수도 있습니다. 

99개의 실패를 1개의 성공이 모두 뛰어넘을 수도 있습니다. 그 1개의 성공을 위해 필요한 것은 그 1개의 명확한 정체성이지, 나머지 99개와 적당히 묶일 수 있는 개념이 아닌 거죠. 

그렇다고 브랜드는 다다익선이니 하나만 걸려라 시그로 최대한 많은 브랜드와 제품을 만들자는 말씀을 드리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급적 명확한 정체성을 가진 브랜드 하나로 승부를 거는 것이 좋지만, 기왕 다양한 제품군을 보유하고 있다면 억지로 하나의 바구니(생활문화? 라이프스타일?) 안에 넣지 않는 게 좋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은 거죠. 

정리를 해볼게요. 처음 얘기했던 광고회사가 왜 자사 광고는 잘 못 만들까? 하는 부분에 대한 제 생각 몇 가지를 얘기해보자면.. 

첫째로는, 다양한 시장을 커버하고 싶어서입니다. 아이덴티티를 명확히 하면 시장이 좁아질 수 있다는 걱정이 있기 때문이죠. 종종 색깔이 명확한 대행사들을 보면 부띠끄 같은 형태가 많아요. 난 한놈만 패.. 하는 거죠. 재미있는 영상을 만드는 곳이나  대형화될수록 명확한 아이덴티티를 잡기 어려워집니다. 

둘째로는, 비용 대비 효과가 불명확해서입니다. 비용과 시간을 들여 영상이나 어떤 마케팅 콘텐츠를 제작한다 해도, 확산이 되도록 하려면 미디어 집행도 해야 하고, 꾸준히 관리할 인력도 필요하죠. 그런 비용 들인다고 해서 매출이 증가할까?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소극적이 되는 거구요. 

이걸 뒤집어 얘기하면, 명확한 '상품'이 없기 때문입니다. 고객의 니즈에 최대한 맞춰준다는 것이 상품이니, 모두에게 공감 갈 수 있는 게 만들긴 어렵죠. 사실 위의 두 가지는 광고회사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브랜딩에 대한 보편적인 우려죠. 

지금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의 회사는 어떤가요? 광고회사는 아닐 가능성이 높지만, 우리 상품은 고객에게 어떤 가치를 제공하나요? 그리고 우리 브랜드는 그 가치를 잘 담고 있나요?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은 그 가치를 공유하기 위한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나요? 

작은 브랜드에 있어 상품과 브랜드는 별개일 수 없습니다. 브랜드와 타깃도 따로 생각할 수 없죠. '상품은 아는데 브랜드는 잘 모르겠다'라던가, '브랜드는 알지만 뭐하는 곳인지 정확하게 모르겠다'라는 반응이 많다면 실패한 겁니다. 

이 관계를 먼저 명확히 수립해 두지 않으면 어떤 최신 마케팅 기법을 가져와도 효과와 효율은 떨어질 수밖에 없죠. 가장 먼저 우리 브랜드의 정체성은 무엇인가에 대해 조직 내의 공감을 확보하는 것부터 시작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