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1987 다시 보기 - nae chinguui jib-eun eodiinga 1987 dasi bogi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1987년작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입니다.

기존에 있던 자막을 최근에 나온 블루레이립에 맞춰 싱크만 조절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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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서 감상

작품 정보

1989년 로카르노 영화제에서 청동표범상 수상.
이란 코케 마을의 한 초등학교. 신나게 떠들던 아이들은 선생님의 출현으로 일순간 긴장에 휩싸인다. 바로 공포의 숙제 검사 시간이다. 숙제를 공책에 하지 못한 네마자데는 선생님으로부터 심한 꾸중을 듣고 울음을 터트리고, 옆에서 짝꿍 아마드는 그를 애처롭게 바라본다. 집에 돌아온 아마드는 숙제를 하기 위해 공책을 펼치다가 실수로 네마자데의 공책까지 가져온 사실을 알게 된다. 곧 아마드의 눈앞에 네마자데의 우는 모습이 어른거리기 시작한다. 한 번 더 숙제를 안해오면 퇴학시키겠다던 선생님의 엄포에 생각이 미친 아마드는 친구의 공책을 집어들고 집을 나선다. 네마자데가 산다는 마을 포시테를 향해.
집집마다 헤매고, 지나가는 사람에게도 물어보지만 아무도 네마자데가 누군지 모른다. 터벅터벅 길을 걷던 아마드 앞에 다행히 같은반 친구가 나타나지만, 그 애 역시 네마자데의 집은 알지 못하고 아마드는 점점 초초해진다. 마을로 다시 돌아온 아마드. 엄마의 심부름을 할 새도 없이 이번엔 할아버지의 담배 심부름에 바쁘기만 하다. 이 때 우연히 발견한 네마자데의 아버지. 반가운 마음에 아마드는 포쉬테 마을로 돌아가는 그를 쫓아 다시 달린다. 그러나 어렵사리 따라가 도착한 그의 집에는 네마자데가 살지 않았다. 그 동네엔 네마자데라는 이름이 한둘이 아니라나.
벌써 골목길에는 어스름이 잦아들기 시작하고, 친구의 공책을 품에 안고 달리던 아마드는 힘없이 집으로 돌아간다. 결국 밤 새워 친구의 숙제까지 대신하는 아마드. 다음날, 선생님은 어김없이 숙제 검사를 시작하고, 네마자데는 하얗게 질린 채 초초하게 차례를 기다린다. 그 때 뒤늦게 교실에 들어선 아마드는 활짝 읏으며 친구에게 공책을 건넨다. 선생님이 펴든 네마자데의 공책에는 작은 꽃잎이 꽂혀있다.


감독/출연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1987 다시 보기 - nae chinguui jib-eun eodiinga 1987 dasi bogi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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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다시보기: 스트리밍, 다운로드(구매, 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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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 친구가 머무는 곳

키아로스타미는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를 통해 이란의 위대한 시인인 故 소흐랍 세페리(Sohrab Sepehri)에게 경의를 표하고자 했다.
그의 영화에 영감을 불어넣은 세페리의 시 <친구가 머무는 곳>은 이렇게 시작된다.

친구가 머무는 곳(La Demeure de l’Ami)

“친구가 머무는 곳은 어디인가?”
기병의 목소리가 새벽에 울려 퍼진다.
방금 하늘이 멈춰서고,
사막의 어둠을 향해 행인은 손을 내민다.
빛나는 종려나무 가지를 입술 안에 머금고,
그리곤 은백양나무를 가리키며 말한다:

“이 나무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숲이 우거진 오솔길이 있지.
신의 환영보다 더욱 푸른 곳,
그곳의 사랑은 진실의 깃털만큼이나 푸르구나.
너는 이 작은 길의 깊숙한 곳까지 가 보렴.
길의 저편에서 청춘이 시작되리니.
그러면 너는 고독의 향기를 향해 몸을 돌리겠지.
향기를 향해 두 걸음을 옮기곤, 너는 멈춰 설지도 몰라.
네가 선 곳은 그 땅의 신화가 용솟음치는 샘, 그 언저리.
그곳에서 너는 투명한 공포에 떨게 되겠지;
이 신성한 공간에서 친한 이와 너울대며
너는 듣게 되리라, 무언가 희미한 소리를:
너는 보게 되리라, 흐드러지게 늘어진 소나무 위에 앉아
빛의 보금자리에 사는 아이들의 넋을 빼앗으려 하는 한 아이를.
그리고 너는 그에게 묻겠지:
친구가 머무는 곳은 어디인가?

About the Movie

“이제까지의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풍경. 한 마디로 무구한 인간의 마음으로 잡아낸 풍경 같다. 가장 소박한 형식. 그러나 아무나 흉내낼 수 있는 경지는 아니다.” - 씨네 21

어린이에 관한, 어른들의 이야기

청소년지능개발연구소에서 처음으로 만들기 시작한 키아로스타미의 대부분의 작품은 어린이에 관한 소재를 담고 있다. 그렇지만 일반적인 아동용 영화와는 그 성격을 달리한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아동용(for kid)이 아닌 어린이에 관한(about kid) 영화이다. 그의 영화에는 어린이가 처한 상황을 통해 어른과의 관계와 또한 이란의 현실이 잔잔히 흐르고 있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는 집안일을 돌보고 또 숙제도 해야 하는 아이들의 딜레마, 예전의 방식대로 아이들을 다루려는 어른들의 고집, 또 모든 것이 변해 가는 세태에서 옛 것을 간직하는 어려움 등이 묘사되고 있다. 물론 이 작품은 세대간의 문제나 이란의 현실을 교훈조로 강변하지 않는다. 대신 재치와 유머를 통해 관객들에게 웃음을 머금게 하고 그런가 하면 어느새 진지한 인생의 화두와 대면하도록 만든다. 영화의 후반부, 전통식으로 문을 만드는 할아버지와 친구의 집을 찾다 지친 아마드가 어스름한 골목길을 나란히 걷고 있는 훈훈한 모습과 그들이 나누는 대화는 사람들이 짊어진 문제와 함께 그 사람간의 관계를 중시하는 감독의 따뜻한 시선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아름다운 유년과 우정에 관한 한 편의 동화

“아마드는 계속 달린다. 아마드가 달리는 두 마을 사이에 언덕이 있고 그 언덕 위에 나무가 있다. 이란의 문학에서 나무는 우정을 상징한다. 아마드의 끊임없는 달리기 끝에는 우정이 있다.” - 키아로스타미

어린 시절 책갈피 사이에 나뭇잎이나 꽃잎을 끼워 넣던 시절을 기억하는가? 그리고 그 시절의 아름답던 우정과 정감 어린 동네의 풍경도...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는 우리 삶의 갈피에 낀 꽃잎 같은 영화다. 가끔 유년의 시절을 회상하면 떠오르는 풍경이 이 영화에 담겨 있다. 비록 우리와 문화와 풍습이 다른 아랍의 농촌 풍경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옛 정서를 환기시킨다. 까까머리 아이들의 맑은 눈동자와 허름한 교실, 어머니가 빨아 놓은 마당의 옷가지들, 그리고 구불구불 이어진 동네 골목의 어스름한 저녁 풍경에서 우리는 왠지 뚝배기 된장국과 밥 뜸드는 내음을 맡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다. 학교가 파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네마자데가 넘어지자 아마드는 친구를 수도가로 데려가 다친 무릎을 물로 닦아준다. 누구나의 기억에 자리 잡고 있을, 너무나 아름다워 이제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우리 유년의 풍경이다.

“이 영화는 보석처럼 빛나는 시이며 그림이고 한 편의 동화이다.” - 키노

아이들의 연기는 작은 신비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가 보석 같은 영화라면 그것은 아마드와 네마자데의 해맑은 눈빛을 통해 빛을 발하고 있다. 선생님에게 꾸중을 듣고 울음을 터트리는 네마자데, 네마자데의 공책을 발견하고 친구를 걱정하는 아마드의 표정은 어느 영화의 직업 배우에게서 볼 수 없었던 살아 있는 이미지이다. 흥미로운 것은 아이들의 생생한 연기가 키아로스타미의 독특한 연출 방식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예를 들면 선생님에게 야단맞는 네마자데는 촬영 전날 제일 아끼는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망가뜨린 일을 회상하면서 울었다. 또한 친구를 걱정하는 아마드의 표정은 숫자를 주고 암산을 하라는 키아로스타미의 주문을 통해 만들어진 모습이다. 키아로스타미는 정해진 시나리오 안에서 대사를 주고 기계적으로 연기를 요구하는 대신 아이들이 카메라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때까지 기다리며 자신들의 경험에서 감정과 캐릭터를 스스로 만들어 내도록 환경을 만들어 준다.
기다림의 미학! 카메라의 눈 높이를 대상에 맞추는 창작자의 겸양의 태도가 바로 인물들을 자신의 현장에서 살아 있는 존재로 만든 것이다.

현실의 영상 / 꿈의 이미지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가 담아내는 이미지들은 대단히 사실적이지만 영화적으로는 낯설게 느껴진다. 그것은 그 동안 영화 예술이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져 자기만의 폐쇄적인 세계에 갇혀 있었는지 말해 준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는 어린이들의 아름다운 영혼과 우정, 그리고 사람들이 관계맺어 가는 현실을 잔잔히 포착한다. 인물들의 자연스런 연기와 꾸밈없는 스타일은,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영화(스타일) 자체가 아니라 바로 내용”이라는 감독의 모토를 체현하며 관객을 현실로 이끈다. 그러나 이 영화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한 영화가 아니다. 여기에는 인물과 사건에 서정적인 기운을 불어넣는 감독의 탁월한 조율이 있으며 그것으로 현실은 마치 꿈과 같이 표현되고 있다. 언덕길을 올라 푸른 올리브 숲을 가로지르는 아마드의 뜀박질, 아름다운 창 무늬가 비치는 저녁의 골목길을 함께 걷는 아마드와 할아버지, 그리고 아마드가 건넨 네마자데의 공책 갈피에 끼인 꽃 한 송이는 현실이면서 동시에 몽환적인 꿈의 이미지이다.

“영화는 초라한 삶의 꿈을 향한 창문이다. 꿈의 출발은 삶의 현실이다. 모든 것은 현실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창공에 날리는 연과 같이. 그러나 손에서 끈을 놓지 않는 한 그 끈은 우리를 현실로 안내한다. 우리는 꿈 속으로 스며들고 그래서 우리는 다시 삶으로 되돌아오게 된다.” - 키아로스타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