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설교 - naneun podonamuyo neohuineun gajila seolgyo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 요15:1-11

요한복음에는 7편의 설교와 7개의 기적과 7개의 “εγω ειμι. 나는 나다.”의 말씀이 있습니다. 

“나는 생명의 떡이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는 양의 문이다.

 나는 선한 목자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그리고 본문에서 마지막으로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포도나무는! 똑바로 곧게 굵게 자라는, 보통의 나무와 같지 않습니다. 

길고 가는 덩굴나무입니다.  

포도나무는! 덩굴나무와 가지로 되어 있습니다. 

가지는 겨울 동안에 말라 죽습니다. 

봄이 되면, 나무에서 가지가 자랍니다. 

나무는 항상 있고, 가지는 매년 돋아납니다. 

포도나무를 심으면, 3년 후부터 열매가 맺힙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너희가 나를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느니라.”

가지는, 나무에 붙어 있어야 합니다. 

가지는, 나무로부터 수분과 함께 영양분을 받고

잎이 나고, 넝쿨손이 지지대를 단단히 붙잡아 강한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고

햇빛을 받으면 

포도열매가 주렁주렁 맺히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나무는 흙에서 살도록 창조하셨습니다. 

나무는 흙을 떠나서 살 수 없습니다.

화병에 꽂혀 있는 꽃이, 아무리 아름답고 싱싱하고 우아한 자태를 갖고 있을지라도, 살아 있지 않습니다.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나, 죽은 꽃입니다. 곧 시들고 마릅니다. 

하나님께서 물고기는 물에서 살도록 창조하셨습니다. 

물고기는 물을 떠나서 살 수 없습니다.  

물속이 좁다고, 물속이 답답하다가, 물 밖으로 뛰쳐나가게 되면

곧 생명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은 하나님 안에서 살도록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생명의 근원이십니다. 

하나님은 복의 근원이십니다. 

하나님을 떠나서는, 

잘 사는 것 같고, 별 일 없는 것 같고,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 같지만

흙을 떠난 나무와 같고

물을 떠난 물고기와 같고

나무를 떠난 가지와 같습니다. 

하마르티아(άμαρτια)란 “과녁을 빗나갔다.”는 뜻입니다. 

과녁을 향하여 활을 쏘았습니다. 

활시위를 떠난 화살이 과녁에 꽂혀야 하는데, 과녁과 상관 없는 곳에 꽂혔습니다. 

그러면 “하마르티아! 빗나갔다.” 말하게 되는데

신약성경에 “죄”로 기록된 단어가 “하마르티아”입니다. 

죄란 

하나님 안에 살도록 창조하셨는데, 하나님 밖에 있는 것이고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창조하셨는데,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물을 하나님이라 섬기는 것이고, 

하나님께 경배와 찬양을 돌리도록 창조하셨는데, 하나님의 자리에 앉는 것이고,

우리가 서로 사랑하도록 창조하셨는데, 서로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처음 사람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서 지으신 에덴동산에서 살았습니다. 

에덴동산은 Paradise, 낙원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참 기쁨과 평안을 누리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뱀, 사단의 유혹을 받고

하나님처럼 되려고,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선악과를 따서 먹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대신에,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서 영광을 받으려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대신에, 하나님이 되어 경배와 찬양을 받으려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죄를 짓고

에덴동산에서 추방되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누릴 수 있었던, 영원한 생명과 참평안을 잃어 버렸습니다. 

화병에 꽂혀 있는 꽃처럼

살아 있으나 살아 있는 것이 아닙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는 것처럼

태어나지만, 늙고, 병들고, 

(히 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1.

우리는 하나님에게서 꺾인 가지, 잘려나간 가지, 멀리 떠난 가지였습니다. 

살아 있지만, 말라가고 있고, 죽어가고 있고, 영원한 심판의 불에 던져지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를 택하시고, 나를 부르시고, 

진리의 성령,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게 하시고, 

의의 영이신 성령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나의 죄를 깨끗하게 씻어 주셔서 의롭게 하시고

양자의 영이신 성령 하나님께서, 나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고, 

임마누엘 성령 하나님께서, 예수님은 내 안에 나는 예수님 안에 거하게 하셨습니다. 

(롬 11:19) “꺾인 가지들이 접붙임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 없이 살던 꺾인 가지였지만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은혜와

성령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통하여

구원을 받았습니다. 

꺾인 가지인 우리가 포도나무인 예수님께 접붙임을 받습니다. 

예수님께 접붙임을 받아, 예수님의 가지 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가운데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가지가, 나무에서 물과 양분을 받아 살아나게 되는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아

잎이 푸르고, 열매가 맺히고, 열매가 알알이 영글어 가는 것입니다. 

엘리야 선지자가 갈멜산에서 바알 아세라 선지자와 대결을 할 때에 백성들에게 외치게 됩니다. 

(왕상 18:21)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마 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예수님은 포도나무, 나는 가지

가지인 우리가 포도나무인 예수님을 아주 멀리 떠나 있는 것은 아닙니까?

가지인 우리가 포도나무인 예수님께 접붙임을 받았지만!

예수님과 온전히 하나가 되지 못하고

예수님은 내 안에, 나는 예수님 안에 거하여야 하는데

예수님과 세상에 함께 거하고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도 사랑하고 세상도 사랑하고 있지 않습니까?

본문 :7-8)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예수님과 세상을 함께 사랑하고

예수님께도 속하고, 세상에도 속하려 하면

결코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기도해도 응답 받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어는 여 집사님은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폐병으로 고생하던 17살 되는 딸을 하나님께로 보냈습니다. 

남편은 오래 전에 다른 여자와 딴살림을 차리며 살다가, 폐인이 된 뒤에 집에 와 있습니다. 생활은 무척이나 어렵습니다. 

그 후 그 집사님은 어느 집회에 참석하였는데, 30년 전의 일이 생각났습니다. 

30년 전 성경학교를 졸업하고, 여전도사로 두 교회를 섬겼습니다. 

그런데 결혼을 한 후에는, 남편의 반대에 부딪혀, 사역은 물론이고, 신앙생활을 쉬다시피 하였습니다. 

“바로 이것이구나!” 하는 생각과 동시에, 

“하나님 잘못 했습니다. 30년 동안 주님 안에서 주님의 일만 하였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러나 이런 꼴로 이제라도 불러 주시니 감사합니다. 남은 삶은 예수님의 일만 하다가 죽겠습니다.” 회개하며 결단하였습니다. 

우리의 사업이 중요합니다. 장사가 중요합니다. 직장이 중요합니다. 친목회가 중요합니다. 공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 안에 있는 것은 더 중요합니다. 

예수님을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 없이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아시아 최고의 부자는? S 그룹의 회장입니다. 

최첨단 시설이 갖춰진, 최고로 화려한 곳에,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누워 있습니다. 

꺼져가는 목숨을 최첨단 현대 의학으로 붙잡고 있습니다. 

건강할 때에, 그 분은 돈이면 다 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돈으로 많은 일들을 하였습니다. 

안 되는 것도 되게 하고

못 하는 것도 하게 하고

불가능한 것도 가능케 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가 소망할 수 있는 일은? 

마지막 심판대 앞에서, 심판주 되시는 예수님으로부터

“내가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불법을 행한 자여, 내게서 물러가라.”

세상에서는 최고의 부자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최고로 가난한 사람의 모습니다. 

세상에서는 최고로 가난하였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최고의 부자인 사도 바울의 고백입니다. 

(딤후 4:6-8) “내가 세상을 떠날 때가 되었습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습니다. 나뿐 아니라, 주님을 사모하는 모든 사람에게도 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 우리의 삶에 가장 중요한 것은

포도나무 가지인 우리가, 포도나무인 예수님께 붙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내 안에, 나는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2. 

예수님 포도나무에 붙어 가지 된 나는,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나무에는 건축자재나 가구를 만들기 위한 목재용 나무가 있습니다. 

포도나무는 결코 목재용으로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나무에는 관상용 나무가 있습니다. 

아름답고 우아한 자태가 있어서, 정원이나 화분에 심습니다. 

포도나무는 관상용 나무가 아닙니다. 보기에 아름답지도 우아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목재로 관상용으로 부적합한 포도나무를, 아까운 땅을 허비해 가며 심는 것은 오직 하나! 열매를 따기 위함입니다. 

열매를 얻기 위하여, 심고 정성을 다하여 가꾸었는데, 

만약에 열매를 맺지 않는다면

찍어, 불에 던집니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은 감람나무로 혹은 포도나무로 비유됩니다. 

이사야 5장에 “내가 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렸거늘 들포도를 맺힘은 어쩜인고? 내가 그것을 황무케 하리라.”

예레미야 2:21에 “내가 너를 순전한 참 종자 곧 귀한 포도나무로 심었거늘 내게 대하여 이방포도나무의 악한 가지가 됨은 어쩜이뇨?”

예수님은 포도나무, 우리는 가지

가지인 우리는 마땅히 열매를 맺어야 하지만, 열매를 맺지 못하면, 찍혀 불에 던져집니다. 

열매를 맺지 않고 살지만, 아무 일도 없는 것은! 

하나님이 안 계셔서 아니라, 

(벧후 3:9)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이 세상에서 제일 정직한 것이 농사입니다.

농사는 심는 대로 거둡니다. 

콩을 심으면 콩을 거두고, 팥을 심으면 팥을 거둡니다.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두고,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둡니다. 

정성으로 가꾸면 많이 거두고, 정성 없이 가꾸면 적게 거둡니다. 

요사이 같은 가뭄에는, 물을 주어야 자라고, 물을 주지 않으면 말라 버립니다. 

영적인 농사에 있어서도 

육을 따라 살면, 반드시 육의 것을 거두고

성령을 따라 살면, 반드시 성령의 것을 거둡니다. 

갈5장을 보면

:19-21)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22-23)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으면 반드시 열매를 맺습니다.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 가지인 우리들이 붙어 있으면

예수님은 내 안에, 나는 예수님 안에 있으면

반드시, 틀림없이, 성령의 열매가 맺힙니다. 

성령의 열매를 맺지 못하게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한국교회 130년 역사에 오랫동안 기억될 ‘백선행’이란 여집사님이 있습니다. 

경기도 수원에서 장녀로 출생하였고, 어려서 평양으로 이사하였고, 7세에 부친을 여의었으며, 편모 슬하에서 자라며 효행이 남다른 가운데, 14세 때에 결혼을 하였으나, 2년 만에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친정으로 돌아와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았습니다. 

청상과부로 전도를 받고 교회에 나갔고, 신앙이 돈독해졌고, 천국 소망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마당에 꽃을 재배하여 팔고, 삯바느질을 하고, 안 먹고, 안 쓰며 푼돈을 모았습니다. 

그 돈으로 재봉틀을 사서 열심히 일했습니다. 

열심히 모든 돈이 200냥이었습니다. 

당시 쌀 1섬이 5냥이었다고 합니다. 

쌀 40섬에 해당하는 200냥으로, 시아버지와 남편을 양지바른 좋은 곳에 묻어 드려야 겠다고 생각한 백집사님은, 먼 친척 되는 사람에게 돈을 맡겨, 대동강 변에 있는 산을 구입하였습니다. 

산의 문서를 받아 쥔 어린 과부 백집사님은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남편의 무덤을 이장하려고 산에 가보니, 이것은 산이 아니라 나무 하나 살 수 없는 바위산이었습니다. 먼 친척에게 속은 것입니다.

그 산의 이름은 만달산(晩達山)입니다.

백집사님은 크게 실망을 하였지만,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다른 사람이 이 산을 샀더라면 그가 망할 것인데, 이 손해를 나에게 돌리셨습니다.” 

평양에는 백 과부가 망했다는 소문이 퍼졌습니다. 

그 후에, 일본인들이 대동강에 다리를 놓으려고 계획하고, 시멘트 공장을 세우려고 석회암 지질조사를 하던 중 대동강에 있는 석회암산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백선행 집사님의 산이었습니다.

기업주 ‘오노다(小野田)’는 중개인을 통하여 그 산을 300냥에 팔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백선행 집사는 그 산은 팔지 않는다고 거절하였습니다. 

오노다(小野田)는 거절하는 이유가 돈을 더 받으려는 속셈이라고 생각하여 이번에는 1,000냥을 준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거절하자 다시 5,000냥을 준다고 했는데 또 거절했습니다. 

그러면서 백집사님은 “이 산은 절대로 팔 수 없으니 절대로 오지 마시오!” 말했습니다. 

그 산을 사려는 오노다(小野田)는 백과부가 석회암이라는 것을 알고 배짱을 부리고 있다는 생각에, 이번에는 산을 구매했을 때의 100배인 20.000냥을 준다고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이번에도 또 거절했습니다. 

오노다는 백 과부가 교회의 충성 된 집사로, 

목사님의 말씀은 잘 듣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도지사를 동원하여 백과부가 출석하는 교회 목사님에게 설득하도록 부탁하였습니다. 

목사님이 심방을 하여, 산을 팔지 않는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백 집사님은, 

“목사님

 제가 아무것도 모르고 200냥에 이 산을 샀더니, 사람들이 나더러 망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산을 20,000냥에 사간다면, 산 사람은 크게 망할게 뻔한데, 어떻게 망하라고 팔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을 믿는 내 신앙 양심으로는, 나 혼자 망하고 말지, 다른 사람도 망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목사님으로부터, 이 산은 석회암 산으로, 제 값을 받고 파는 것이라는 설명을 듣고, 20,000냥에 산을 팔았습니다.

백집사님은 그 돈으로 대동강에 “백선교”를 세우고, 

평양에 3층 규모의 공공회관을 건립하고, 

이어 평양 광선학교, 창덕학교에도 토지를 기부하였습니다. 

미국 선교사 사무엘 마펫이 세운 ‘평양 장로회 신학교’와 ‘숭실 학교(현 숭실대학교의 전신)’ 설립에, 토지를 희사해, 한국 기독교 인재 양성에 큰 헌신을 했습니다. 

1925년 모든 재산을 빈민구제 단체에 기부해, 당시 총독부가 표창을 수여하려 했지만, 

이를 거절해, 지금까지 북한에서는 ‘민족자본가’로 평가 하고 있습니다. 

2006년, 북한의 관영 매체들은 

“백 여사의 기념비를 새로 발굴, 김정일의 특별지시에 따라 이 기념비를 '백선행기념관' 구내에 복원시켰다.”고 보도하였습니다. 

외국 선교단체의 지원이지만, 북한에서 영화를 제작하였는데,

시나리오에는 

“내가 오늘 하나님 앞에서 속죄를 했다. 나만 잘 살겠다고 욕심을 부렸던 것이 제일 죄스럽다.” 등 기독교적인 장면과 대사가 다수 포함되었습니다. 

여전에 여인들은 이름이 없었습니다. 

수원댁, 백과부, 백집사로 불렀는데

백집사님의 선행에 감동하여, 세상 사람들이 백선행 여사, 교회에서는 백선행 집사로 불렀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사회사업가인 백선행 집사가 86세의 나이로 이 세상을 떠날 때, 여성 최초의 사회장을 거행되었습니다. 

교우 여러분!

성령 하나님께서는 들 포도 순인 우리를, 참포도나무인 예수님께 접붙이셨습니다. 

좋은 포도나무 가지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좋은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좋은 열매를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좋은 열매를 보고,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고

예수님은 내 안에, 나는 예수님 안에 있고

예수님과 동행함으로

귀한 열매를 맺어, 귀한 열매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