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트밀 불리는 시간 - oteumil bullineun sigan

두 번째로 빨리 익는 ‘퀵 오트 (quick oat)’도 인스턴트와 별 차이는 없다. 아니, 그냥 뜨거운 물을 붓는 것만으로는 충분히 익지 않아 손수 끓여야 하므로 어쩌면 인스턴트 오트보다 더 불편한 식재료일 수도 있다.

오트밀과 물을 1:2의 비율로 냄비에 담아 중불에 올린 뒤, 부글부글 끓기 시작하면 약불로 줄이고 저어가며 부드러워질 때까지 1분 정도 더 익힌다. 맛을 보면 ‘전생에 내가 당나귀였던가?’라는 의구심이 들더라도 너무 괘념치 말자. 고생해서 끓여도 원래 그런 맛이니까.

당나귀가 된 듯한 기분은 한 단계 위의 제품인 ‘올드 패션드 오트(Old Fashioned Oat)’로 업그레이드 시킨다고 해서 크게 바뀌지 않는다. 심지어 ‘올드 패션드’라는 이름마저 시사하는 바가 있다. 예전에는 이처럼 알곡을 납작하게 누르는 수준에서 귀리 가공을 끝냈다.

이만하면 충분히 가공을 했다고 믿었고 심지어 조리도 5분 정도 밖에 걸리지 않는다. 그러나 인류, 아니 서양인들의 성질이 점점 더 급해지다 보니 귀리를 좀 더 가공했고 그나마 멀쩡한 것에 ‘구식(Old Fashioned)’이라는 딱지를 붙였다.

5분도 시간을 들여 조리할 의향이 없어 적절한 음식으로서 기준 미달인 수준으로 가공했다면 아침 끼니를 위한 식재료로는 엄밀히 말해 자격이 없는 것 아닐까.

맛을 볼모로 편리함만을 좇는 귀리의 세계에 환멸을 느낀다면 다음 단계의 가공품인 ‘스틸 컷 오트(Steel Cut Oat)’로 자신의 인내심을 시험해 볼 수 있다. 스틸 컷 오트는 귀리의 알곡을 누르는 대신 이름처럼 철제 칼날로 토막을 내 조리 시간을 줄인다.

아일랜드에서 유래한 가공법이라 ‘아이리시 오트’라고도 불리는 스틸 컷은 조리 시간을 알곡에 비해 획기적인 수준인 10~20분으로 줄이면서도 질감과 맛을 최대한 살렸다.

덕분에 슈퍼 푸드에 걸맞은 음식을 만들어 낼 수 있지만 ‘획기적’으로 조리 시간을 줄여도 10분은 걸린다는 말이니, 출퇴근하느라 바빠 아침을 거르며 사는 직장인의 주중 아침 메뉴로는 적합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오트밀 불리는 시간 - oteumil bullineun sigan

▲ 귀리를 끓여 만든 오트밀에 메이플시럽, 사과잼, 각종 견과류 등을 함께 곁들이면 더 맛있게 즐길 수 있다. 

 

미리 끓여 시럽과 잼에 곁들여

그래도 적절한 오트밀의 맛을 보고 싶다면? 다음의 조리법을 따라 끓여보자. 굉장히 간단하지만 반전은 있으니, 먹기 전날 밤 미리 준비해 귀리를 불려 줘야 한다. 일단 스틸 컷 오트와 물을 1:4의 비율로 준비한다.

참고로 스틸 컷 오트 1컵은 170g이며, 여기에 4배의 물을 더해 끓이면 4인분의 오트밀이 된다. 일단 물 3컵을 냄비에 담고 중불에 올려 끓으면 귀리와 소금 1자밤을 더해 잘 휘저어 섞고 뚜껑을 덮어 그대로 밤새 둔다.

아침에 남은 물 1컵을 더해 불은 귀리를 중간 센불에서 원하는 정도로 익을 때까지 4~6분 익힌다. 말이 좋아 오트밀이고 사실 귀리죽이므로 눌어 붙거나 타지 않도록 끓이는 동안 계속 저어준다. 뜸들이듯 불을 끄고 5분간 두었다가 먹는다.

참고로 이처럼 미리 밤새 불리지 않을 경우 스틸 컷 오트 또한 길게는 40분까지 끓여야 먹을 수 있다. 인터넷 오픈마켓에서 ‘스틸 컷 오트’로 검색하면 해외 직구를 포함해 높은 가격의 수입품이 대부분인데, 검색 옵션을 조정 해 이들을 모두 치우고 나면 부담 없는 가격의 국내 가공품이 모습을 드러내니 현명한 소비를 위해 참고하자.

그래 봐야 더도 덜도 아닌, 그저 토막 낸 통귀리를 무작정 비싸게 살 이유는 없다. 오트밀은 물 대신 우유로 끓여도 좋고(다만 물보다 빨리 끓으니 타지 않도록 주의한다), 메이플 시럽이나 계피 가루, 사과잼 등이 특히 잘 어울린다.

토막을 낸 귀리도 이처럼 품을 들여야 제대로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통귀리는 아침 메뉴로 권하고 싶지 않다. 대신 우리에게는 밥이 있다. 보리처럼 쌀과 귀리를 9:1의 비율로 섞으면 요즘과 같은 압력 전기 밥솥의 시대에 고소함와 질감이 색다른 별미 밥을 지어 먹을 수 있다.

아니면 요거트 등에 섞어 먹을 수 있는 구운 통귀리도 있다. 오븐에 구워 고소한 귀리의 맛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데, 대체로 괜찮은 가운데 종종 딱딱한 알곡이 도사리고 있어 이가 약한 이들은 조심하는 게 좋다.

 

귀리를 밥에 두어 먹는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면 또 다시 회의하게 된다. 이럴 거라면 대체 보리는 왜 식탁에서 사라져야만 했을까? 귀리는 분명히 맛있는 곡식이지만 지금껏 살펴보았듯 조리의 편의를 위해 가공한 제품이 대세인지라 제대로 음미하기가 어렵다.

다만 서양의 아침 메뉴로 오랫동안 자리를 지켜 왔기에 우리에게 새롭게 보일 가능성이 있을 뿐, 소위 ‘본연의 맛’을 찾아 통곡식으로 거슬러 올라오면 존재의 의미가 크게 두드러져야 할 이유가 없다.

귀리 자체로는 물론이거니와 보리와 비교해서도 그렇다, 오트밀이 결국은 빻은 귀리에 물을 붓고 끓인 죽에 불과하다면 왜 보리로는 비슷한 제품을 만들어 낼 수 없을까? ‘오트밀’은 그럴싸해 보여도 ‘보리죽’은 그렇지 않은, 일종의 이미지 문제가 있기 때문일까? 맥주나 일본의 도라야키를 닮은 빵 외의 활로를 보리에게 찾아줄 필요가 있고, 열쇠의 한 조각은 보리를 몰아낸 귀리가 가지고 있다.

                                                                         

[끝]

오트밀 불리는 시간 - oteumil bullineun sigan

추천 1 비추천 0

  • 오트밀 불리는 시간 - oteumil bullineun sigan

  • 오트밀 불리는 시간 - oteumil bullineun sigan

댓글을 달아주세요

댓글운영원칙

'댓글'은 기사 및 게시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온라인 독자들이 있어 건전한 인터넷 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 원칙을 적용합니다.

귀리는 타임지가 선정한 10대 슈퍼푸드 중 하나다. 귀리가 함유한 단백질은 쌀의 2배 정도이며, 칼슘은 현미의 4배가 넘는다. 또한 라이신 등의 필수 아미노산이 많고, 수용성 섬유질이 풍부해 콜레스테롤을 감소시킨다고 알려져 있다. 다이어트에도 효과적이다. 귀리의 베타글루칸 성분이 몸속 숙변을 제거하고 장 내 노폐물을 배출하는 효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귀리를 즐길 방법은 다양하다. 가장 친숙한 방법은 밥을 지을 때 넣어 먹는 것이다. 쌀과 함께 씻어 30분~1시간 정도 불린 뒤 물의 양을 조금 늘려 밥을 지으면 된다. 쌀과 귀리의 비율은 7:3 정도가 적당하지만, 기호에 따라 조절해서 먹으면 된다.

귀리를 분말 형식으로 만든 귀리 선식을 섭취하는 방법도 있다. 귀리의 효능이 입소문을 타면서 다양한 선식 제품이 등장했다. 다른 곡류와 귀리 분말이 섞여 있는 제품부터 다른 영양성분을 첨가한 제품까지 다양하다. 우유에 귀리 선식을 타 먹으면 간편하고 포만감도 좋아 아침 식사 대용이나 다이어트 간식으로 제격이다.

귀리를 접하는 가장 대중적인 방법은 오트밀(oatmeal)을 먹는 것이다. 오트밀이란, 볶은 귀리를 거칠게 부수거나 납작하게 눌러서 먹기 편한 형태로 가공한 음식을 말한다. 일반 귀리는 식감이 거칠고, 단단하며 조리에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일반 가정에서는 오트밀을 애용하는 편이다.

오트밀의 종류는 분쇄와 압착 정도에 따라 다르다. 종류에 따라 식감과 조리 방법이 달라지기 때문에 알아둘 필요가 있다. ‘스틸컷 오트밀(Steel cut oatmeal)’은 알곡 상태의 귀리를 2~3등분해 자른 것을 말한다. 귀리 알갱이보다는 입자가 작고, 쫄깃한 식감이 특징이다. 귀리를 돌날로 갈아 만든 오트밀은 ‘스코티쉬 오트밀(Scottish oatmeal)’이라 불린다. 돌날로 갈아 크기와 모양이 제각각이며, 스틸컷 오트밀보다 부드러운 편이다.

대중적으로 상용되는 오트밀은 압착 방식을 거친다. ‘롤드 오트밀(Rolled oatmeal)’은 롤러로 누르고 익히는 과정을 거쳐 납작하게 가공한 오트밀을 말한다. 요리 시간을 단축할 수 있고, 쫀득한 식감이다. ‘퀵 오트밀(Quick oatmeal)’은 롤드 오트밀보다 더 얇고 입자가 작아 부드럽고, 빠르게 조리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국내에서 가장 찾기 쉬운 형태이다.

서양에서는 오트밀을 아침 식사로 자주 먹는다. ‘귀리 죽’이라는 뜻의 ‘오트밀 포리지(oatmeal porridge)’는 부드럽고 따뜻해 아침 식사로 딱 좋다. 롤드 오트밀이나 퀵 오트밀에 물을 부어 저어가며 죽처럼 끓인 후, 따뜻한 우유를 넣어 먹는 음식이다. 설탕이나 소금으로 간을 맞추고, 시나몬 파우더를 뿌리거나 과일을 얹어 함께 먹는다.

오트밀을 차갑게 먹는 방법도 있다. ‘오버나이트 오트밀(over night oatmeal)’은 이름처럼 하룻밤, 혹은 몇 시간을 기다려서 먹어야 하지만, 만드는 방법은 매우 간단하다. 오버나이트 오트밀은 오트밀에 우유를 부어 냉장고에 하룻밤 재워 두고, 다음 날 아침에 꺼내 먹는 음식을 말한다. 불을 사용할 필요가 없는 대신 오랜 시간 우유에 재워 둬 오트밀이 불어나도록 기다리는 것이다.

오버나이트 오트밀 레시피는 다이어트에 관심이 많은 2~30대 사이에서 인기 있는 만큼 ‘오나오’라는 줄임말로 불리며 SNS상에서 활발히 공유되고 있다. 작은 병에 그릭요거트와 그래놀라, 오버나이트 오트밀을 차례로 쌓아 올린 후 블루베리, 바나나, 딸기와 같은 과일을 장식해 나만의 홈 카페를 만들기도 한다. 체중 조절을 하고 싶다면 우유 대신 아몬드 음료나 두유를 사용해 만들 수도 있다. 견과류나 그래놀라를 곁들여 먹으면 바삭한 식감이 더해져 더욱더 맛있다. 코코아 파우더를 섞고, 땅콩버터를 얹어 먹으면 달콤한 맛을 즐길 수 있다.

좀 더 다양하게 오트밀을 활용하고 싶다면, 밀가루 대신 오트밀을 넣은 비건 빵을 만들어보자. 퀵 오트밀을 믹서기로 곱게 갈아 가루를 낸 후, 두유와 코코넛오일, 알룰로스에 베이킹파우더를 조금 넣어 모두 섞는다. 빵틀에 넣고 에어프라이어나 오븐을 이용해 구우면 된다.

오트밀에 올리고당과 올리브유를 넣어 버무리고 에어프라이어에 여러 번 구우면 그래놀라가 된다. 기호에 따라 좋아하는 견과류를 가득 넣고, 크랜베리나 건포도를 넣어 맛을 더한다. 그릭요거트와 함께 먹어도 맛있고, 여러 가지로 활용이 가능한 영양 간식이 만들어진다.

오트밀 포리지에 우유를 넣지 않고 양파나 당근, 참치 등 원하는 재료를 넣어 끓이면 한국식 죽이 된다. 우유가 들어가지 않아 한국인의 입맛에 잘 맞고, 일반 죽과 맛에 큰 차이가 없지만 비교적 탄수화물을 적게 섭취할 수 있기 때문에 다이어트에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