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주 4일 - peulangseu ju 4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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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공약으로 떠오른 '주 4일 근로제'…도입 가능한 상황인가

대통령선거가 다가오면서 후보들이 선심성 공약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다. 주목할 만한 현상은 미래에 대한 각오나 허리띠 죄기, ‘더 열심히, 더 노력하자’는 종류의 공약은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주 4일 근로제’ 공약도 그런 과정에서 나온 선거 담론이다. 가장 강한 목소리로 공약 삼은 것은 심상정 정의당 후보다. 그는 ‘주 4일제 로드맵’까지 제시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도 가세했다. 국민의힘 등 야권에서는 “수적으로 많은 근로자 표를 얻기 위한 인기영합책”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주 4일 근로제 도입, 가능한 상황인가. [찬성] 일과 삶의 균형이 최고의 복지…소비 늘고 일자리 나누기도 기대주 4일제는 언젠가는 달성하고 정착시켜야 할 목표다. 근로자의 노동 복지 가운데 최고의 복지다. 교통지원비, 야근수당 이런 게 다 필요없다. 주 4일 근로만으로 최근 정착되고 있는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수준을 크게 높일 수 있다. 일과 삶의 균형, 돈을 버는 생업과 여가·휴식을 보장받는 개인 삶의 균형을 맞추는 게 행복이다. 그런 게 가능할 때 선진사회, 선진국이다.일을 적게 하면 생산성이 떨어진다고 하지만 그렇게만 볼 일도 아니다. 근로시간이 줄어든 만큼 일에 집중하게 되면서 업무 효율은 오히려 올라갈 것이다. 충분한 휴식이 업무 집중도를 높일 수 있다. 이미 시행 중인 선진국들을 보면서 보완할 게 있으면 하면 된다. 프랑스에 이어 미국에서도 주 4일 근로제 논의가 일고 있고, 영국에선 기업에 따라 시행을 결정한 곳도 없지 않다.휴일이 늘어나면 소비가 증대된다는 것도 장점이다. 현대 경제는 ‘소비경제’

[뉴스토마토 조승진 기자] 해외 주요 국가에서 주 4일 근무제 도입에 나서는 가운데 우리나라 기업들도 관련 제도 도입에 잰걸음을 보이고 있다. 10년 전 주 5일 근무제 도입 당시 "나라가 망한다"며 난색이던 분위기와 사뭇 다르다. 차기 대통령 선거 후보자들도 주 4일제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해외에서는 주 4일제 도입에 적극 나서고 있다. 유럽에서는 프랑스와 덴마크, 네덜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영국, 독일, 아이슬란드 등이 주당 35∼37시간 내외의 주4일제를 시행 중이다.

미국의 경우에도 주4일제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민주당 소속 마크 타카노 하원의원은 같은 당 의원 13명과 ‘주 32시간 근무법’를 발의한 바 있다. 이 법안은 미 의회 진보코커스의 지지를 받으면서 의회 통과에 힘을 받고 있다.

현재 미국은 주 40시간 근무를 법으로 제한하고 있는데, 32시간 초과 근무에 대해선 수당을 지급하자는 방식이다. 미국 민간 기업의 25% 이상은 이미 주4일제와 유사한 방식의 근무제를 시행하고 있다.

이웃나라 일본 역시 집권당인 자민당이 ‘선택적 주4일제’ 추진을 공식화한 바 있다. 희망 직원에 한해 주중 4일 근무를 허용하면서 급여를 10~20% 가량 삭감하는 방식이다. 일본경제단체연합회(게이단렌)는 가이드라인까지 마련하며 주4일제 시행을 적극 반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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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정의당 심상정 대통령 후보가 주 4일 근무제를 시행하고 있는 에듀윌을 방문해 임직원 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우리나라도 일부 기업을 중심으로 주 4.5일제 또는 주 4일제가 시행 중이다. 종합교육기업 에듀윌은 주4일 근무제를 운영하는 대표적인 국내 기업이다. 지난 2019년 6월 주4일 근무제를 도입한 이후 현재까지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성공적으로 운영하며 주4일 근무제를 정착시켰다. 에듀윌 임직원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중 하루를 ‘드림데이’로 지정해 자유롭게 쉴 수 있다. 임직원들의 임금은 기존과 동일하게 유지된다.

배달플랫폼 '배달의 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과 숙박플랫폼 '여기어때'를 운영하는 여기어때컴퍼니는 월요일 오후에 출근하는 주4.5일제를 시행하고 있다. 모바일게임업체인 카카오게임즈는 지난 4월부터 격주로 주 4일제를 시도하고 있다. 은행권에서는 신한은행 노조가 주 4.5일제를 공약으로 내세웠다.일주일에 4일 출근하고 3일 쉬는 ‘주 4일제’ 도입에 앞서 주 4.5일제를 먼저 시행하자는 것이다. 

경영계 전반에 주 4일제를 도입하기는 난관이 많다. 경영자총협회 등 재계에서는 주 4일제 전면 시행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 근로시간이 단축돼 비용 부담을 발생시키고, 고용 창출로 연계되지 않을 가능성 있다는 것이다. 주 52시간 제도가 제대로 정착되지 않은 상황에서 주4일제 도입 논의는 시기상조라는 주장도 있다.

주 4일제에 앞서 10년 전 5일제 근무제 도입 당시에도 재계의 반대는 강렬했다. 주 5일 제 법안이 2003년 통과되고도 2011년 시행되기 까지 무려 8년이 소요됐다. 당시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5개 경제단체는 ‘삶의 질 높이려다 삶의 터전 잃습니다’라는 광고를 일간지에 게재하기도 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주 4일제 논의와 관련해 “주6일제에서 주5일제로 오는 데도 10여년이 걸렸다. 잘 안착하려면 충분한 공감대가 먼저인 것 같다”며 “논의 과정이 막 시작 단계가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오는 대선을 앞두고 일부 후보는 주 4일제를 주요 공약으로 내걸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일부 선진국들은 주 27시간을 추진할 정도로, 노동시간 단축은 언젠가는 미래에 우리가 가야 할 길"이라고 했다. 다만 이 후보가 주 4일제를 정식 대선 공약으로 택한 것은 아니다.

정의당의 심상정 후보는 대선 공약으로 ‘주 4일 근무제’를 1호 공약으로 내세웠다. 심 후보는 "(대통령이 되면) 분야별, 노동 형태별로 대표 사업장을 지정해 1년6개월 동안 주4일제를 시범 적용하겠다”고 했다. 또 주 4일제 시행을 준비하기 위해 대기업과 중소기업, 자영업자, 양대 노총,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 특수고용직 등이 모두 참여하는 시민본부를 대통령 직속으로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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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광화문역 인근에서 직장인들이 출근중이다. 사진/뉴시스

조승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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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4일제는 불가능한가. 허황되고, 현실성 없는 주장으로 들릴 듯도 하다. 하지만 불과 15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토요일까지 일하고, 학교 가는 게 일상이었다. 당연히 주 5일제 반대도 많았다. 당시 경영계와 보수언론의 반응은 협박에 가까울 정도로 소름 끼친다. “삶의 질을 높이려다, 삶의 터전을 잃습니다”라는 신문 광고와 “주 5일제 시행하면 경제가 죽는다”는 기사들이었다. 기억을 되짚어 보면 혼란은 발생하지 않았고, 경제가 죽지도 않았다. 오히려 대기업 납품단가 후려치기 횡포나 분식회계 같은 위법한 행태들이 경제악화의 주요 요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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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

노동시간 단축은 노동의 역사와 맥을 같이한다. 1919년 국제노동기구(ILO)의 1호 협약은 ‘하루 8시간 노동’이었고, 1939년 47호 협약은 ‘주 40시간 근로제’ 결의였다. 1962년 주 40시간 근무를 ‘사회적으로 달성해야 할 기준’으로 선언한 것도 60년이 되어 간다. 유럽연합(EU)은 1993년 건강 및 안전 조치 일환으로 ‘주 35시간제’를 채택했다. 일자리 창출이 목적이 아니라, 일하는 사람의 권리에서 접근했다. 산업화 이후 그 어떤 나라에서도 노동시간 단축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연장근로 규제 한도(한국 52시간, 프랑스 48시간)부터 법정 연차휴가(한국 15일, 프랑스 30일)와 일과 삶의 균형 지수(한국 4.1점, 프랑스 8.4점)의 차이는 어떻게 봐야 할까.

1936년 2주 연속 휴가사용을 법제화한 프랑스(1402시간)에 비해 한국(1908시간)의 노동현실이 암울한 것은 제도의 차이에 기반한다. 특히 최근 4년 동안 주 4일제를 시행한 아이슬란드의 결과에 여러 나라들이 주목하고 있다. 전 국민 취업자 1%를 대상으로 주 4일제를 실험한 것이다. 시행 결과 직원의 신체와 정신적 고통이 해소되고, 이직·병가 감소와 같은 긍정성이 확인되었다. 결국 건강과 안전을 촉진하고 노동자에게 선택권이 부여된 괜찮은 노동시간은 다양한 측면에서 이익인 것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핀란드(1990년)와 스웨덴(2005년)은 다양한 노동시간 단축을 실험한 바 있다.

물론 주 4일제와 32시간제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산업화 시기 파괴적 성장의 한계를 극복하고, 지속 가능한 사회를 위해서라도 이제는 시간의 정치를 고민할 시점이다. 산업구조와 일하는 방식이 변화하고 있다면 노동시간 규율도 달라야 한다. 탄소배출량 감소와 맞물린 정의로운 전환의 핵심 중 하나도 노동시간 단축이다. 평생학습 사회를 준비해야 하는 시점에서 생애주기 노동시간을 모색해야 한다. 주 4일제로 주어진 하루 8시간은 지역 커뮤니티와 공동체 활성화의 촉매가 될 수 있다. 생산성과 별개로 여러 쟁점도 있다. 모두를 위한 해법은 아니더라도 저임금·중소기업은 사회보장과 돌봄 및 교육훈련 등 이전소득과 세제 지원 등의 다양한 방법을 찾아봄 직하다.

최근 정의당 심상정 의원은 대선 공약으로, 시대전환 조정훈 의원은 3년간 주 4일제 실험을 제안했다. 스페인은 주 4일제 계획을, 영국 노동당은 향후 10년 이내 주 32시간 공약을 발표했다. 독일 금속노조는 코로나19 시기 경기부양 프로그램 개선과 주 4일제 단체협약 계획을 밝힌 바 있다. 현재 영국, 아이슬란드 주 4일제 홈페이지에서는 국제청원운동까지 진행하고 있다. 어느덧 주 4일제 논의가 실험과 정책의 가시화로까지 진전되고 있다.

“4일만 일하면 경제는 어떻게”라는 사고와 “3일의 휴식과 재충전이 필요해”라는 접근은 서로 다른 철학에서 출발한다. 그러기에 1966년 국제인권규약의 노동기본권의 제정 이후 정책의 상상력은 입법의 틀과 경제 문제에 항상 가로막혀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일이 삶을 압도한 사회를 벗어나, 일과 삶의 조화가 가능한 사회를 모색할 시점이다. 주 4일제가 정착된 어느 날 “그땐 주 5일 어떻게 일했지”라는 회상을 할 시기가 머지않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