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선택 게임 추천 - seutoli seontaeg geim chucheon

라는 존 카멕의 말은 두고두고 회자될 정도로 수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킨 말이고, 해당 발언을 지지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으로 나뉘어 공방을 벌이는 모습은 오늘날에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게임에는 스토리가 굉장히 중요한 부분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스토리가 긍정적인 효과를 줄 수 있는 게임들과 그렇지 않은 게임이 모두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본 시리즈에서는 전자의 경우,

즉 "스토리가 중요한 영향을 줄 수 있는 게임들"에 한해 이야기를 한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싶습니다.

서론이 길었네요, 바로 시작해볼까요?

 

 

 


 

 

 

스토리 선택 게임 추천 - seutoli seontaeg geim chucheon
<위쳐 시리즈, 그중에서도 위쳐3: 와일드 헌트는 상업성과 작품성 모두에서 성공했다. 위쳐는 이러한 성공에 힘입어 드라마화되기도 했다.>

 

게임과 영화의 가장 큰 차이점이 무엇일까요?

 

영화는 일방적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단방향 매체이고,

게임은 사용자와 상호작용을 주고받는 양방향 매체라는 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러한 차이점은 게임 속에 스토리가 담겨 있을 때 더욱 두드러집니다.

누군가의 시야로 이야기를 바라보는 영화와 달리,

내가 주체가 되어 이야기를 이끌어 나갈 수 있다는 점이

스토리가 있는 게임들이 가진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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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과 영화, 영화와 게임 간의 거리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인터랙티브 무비(Interactive movie)와 같이 시청자가 선택을 할 수 있는 영상 매체들이 등장하기도 하고, 그래픽 없이 영상만으로 게임을 만드는 경우도 등장하고 있다. 사진: 넷플릭스가 2017년 제작한 인터랙티브 무비 "블랙 미러 밴더스내치"의 한 장면>

 

이러한 양방향 상호작용을 하기 위한 가장 대표적인 수단이 바로 "선택지"입니다.

선택지는 단순히 대화창에서 어떤 답변을 고르는가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플레이어가 어떤 아이템을 언제 사용할 지, 적을 얼만큼 어떻게 죽일 지 등 게임플레이 전반에서 플레이어가 내리는 사소한 판단 하나하나가 모두 선택지라고 볼 수 있습니다.

 

때문에 선택지가 부족하면 플레이어는 자신의 행동이 제약받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고,

때문에 우리는 통상적으로 선택지가 많은 게임을 좋은 게임으로 여기곤 합니다.

 

그러나 게임 속에 많은 선택지가 존재함에도 우리는 때때로

"부자연스럽다", 혹은 "작위적이다"라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반면 적은 수의 선택지를 가지고 있지만 흡입력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게임들도 존재합니다.

 

대체 무엇이 다른 걸까요?

 

 

 


 

 

선택과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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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테일 사의 게임 워킹데드 시리즈(The Walking Dead)는 플레이어에게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하고, 이러한 선택들이 게임에 영향을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플레이어의 선택은 게임 내에 거의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이와 관련된 내용을 다루는 칼럼: https://www.denofgeek.com/games/the-walking-dead-false-promises-telltale/>

 

Q) 혹시 텔테일 사의 워킹 데드 시리즈를 플레이 해보신 적 있으신가요?

  • A. 해본 적 있다.
  • B. 스트리밍이나 유튜브 영상으로는 본 적이 있다.
  • C. 처음 들어본다.

 

그렇군요,

사실 여러분이 어떻게 대답하던 글의 내용은 변하지 않습니다.

게임 "워킹 데드"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워킹 데드 시리즈는 2012년 경 텔테일 사에서 제작한 게임으로, 현재까지 총 3개의 시즌이 제작되었으며,

동명의 드라마 시리즈 "워킹 데드"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진행되는 게임입니다.

 

이 게임은 발매 초반만 해도 훌륭한 연출, 나쁘지 않은 스토리, 다양한 대사 선택 등 호평을 받았던 게임이었지만,

플레이어가 어떤 선택을 내리던지 게임의 스토리가 똑같게 진행된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게 되자

많은 논란에 휩싸이게 되었습니다.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텔테일 사는 2018년 경 매출 부진으로 인한 폐사를 선언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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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측면에서 큰 호평을 받는 바이오쇼크(Bioshock)의 엔딩은 게임 초반부 플레이어의 Yes or No 선택에 의해 결정지어진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플레이어의 선택과 관계없이 이야기가 흘러가는 게임들은 이전에도 여럿 존재했습니다.

설사 플레이어의 행동에 의해 이야기가 바뀐다고 하더라도 대부분은 이야기의 결말 부분만 약간 바뀔 뿐이고,

그마저도 플레이어의 행동 전반이 아닌 아주 단순한 조건 한 두가지에 의해 결정지어지는 게임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유독 워킹 데드에 대해 분노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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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보다는 게임플레이에 중심을 둔 핫라인 마이애미(Hotline Miami)는 오직 하나의 결말만이 존재하지만 이에 대해 불만을 품는 사람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이는 워킹 데드가 "엘리자베스는 당신의 행동을 기억할 것 입니다." 와 같은 대사를 통해,

마치 플레이어의 선택들이 이야기 상 의미가 있는 것처럼 교묘한 눈속임을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행동 하나하나에 신중을 가한 플레이어들은 이러한 사실을 깨닫고는 큰 배신감을 느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이유는, 바로 워킹데드가 "스토리가 중요한 게임"이었기 때문입니다.

워킹데드는 게임 전체를 통틀어 "게임플레이" 라고 부를 만한 것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게임의 90% 이상이 인물 간의 대화와 스토리의 진행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워킹데드의 스토리 중심적인 게임의 구조나, 스토리 자체는 비판받을 수준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오히려 워킹데드는 플레이어를 작품 속의 세계관으로 몰입시키는 것에서는 다른 게임들보다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오히려 이처럼 스토리의 연출과 몰입감이 뛰어났기 때문에,
스토리에 깊게 몰입했던 사람들이 자신들의 선택이 무의미했다는 사실에 대해 더 큰 배신감을 느꼈다고 생각합니다.

"이야기를 주도적으로 이끌어나가는 재미"를 위해 게임을 플레이하던 사람들이,
어느새 이야기의 주체가 자신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죠.

 

이러한 워킹데드의 사례를 통해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스토리가 중요한 게임에서는 많은 선택지를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플레이어의 선택이 실제로 스토리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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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테일(Undertale)은 인디게임의 역사에 길이 남을 작품이다. 작품성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의견이 다양하지만 대체적으로 호평을 받는 게임이다. 또한 이 작품이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고, 또 그러한 성공에는 플레이어의 선택이 스토리에 영향을 주는 게임 구조가 큰 역할을 했다는 점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플레이어의 선택이 실제로 스토리에 영향을 주는 게임"의 좋은 사례로

토비 폭스의 언더테일(Undertale)을 꼽을 수 있습니다.

 

언더테일의 선풍적인 인기의 비결에는 잘 만든 음악, 독특한 캐릭터 디자인들도 포함되겠지만, 앞서 말한

"플레이어의 선택이 실제로 영향을 주는 점"이 가장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언더테일에서는 플레이어가 통상적인 적 살상에 더해 "몬스터를 죽이지 않는 선택"을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선택은 단순히 몬스터와 맞서는 또 하나의 방법을 제공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스토리 전체의 진행과 결말에 영향을 주게 됩니다.

 

무엇보다 이러한 선택은 스토리적으로 중요한 캐릭터들에게도 적용되고, 실제로 플레이어가 캐릭터를 죽이거나 살리는 것으로 스토리는 크게 변화합니다. 바로 이러한 점이 언더테일을 여타 다른 게임들에 차별성을 갖게 만들었고, 여러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수작으로 꼽히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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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트로이트 비컴 휴먼(Detroit become human)은 각본 완성에만 2년이 걸렸다고 한다. 그만큼 플레이어에게 다양하고 선택지를 주고, 그 선택지가 스토리에 영향을 주도록 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은 더 나아가 이야기의 진행 흐름마저도 플레이어의 선택에 영향을 받도록 만들었습니다. 

 

결말 부분만이 아니라 이야기의 과정 또한 플레이어의 선택에 영향을 받게 하려면
게임 제작에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소모되기 때문에 이는 게임에 자주 사용되는 방식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을 채택한다면 플레이어는 자신이 이야기의 주체가 되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을 수 있으며,
선택 하나하나를 신중히 내리기 위해 고민합니다.

 

이는 결과적으로 게임 속 스토리에 더 깊은 몰입감을 제공하는 역할을 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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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탈출 9시간 9명 9의 문(Nine hours, nine persons, nine doors)에서는 플레이어가 선택한 문의 번호에 따라 결말이 크게 달라진다. 그러나 플레이어에게는 어떤 문을 선택해야 이야기가 어떻게 달라질 지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거의 무작위에 가까운 선택을 내리게 된다. 이는 게임의 스토리적인 측면에서 결코 좋은 방식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저는 개연성을 해치면서까지 다양한 결말, 다양한 루트를 억지로 늘리는 것은 게임을 해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자칫 각 루트(route)의 서사적 완성도를 낮출 수도 있고,
플레이어의 선택과 각각의 루트로 이어지는 과정을 부자연스럽게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시를 들어보겠습니다.

플레이어의 사소한 선택 하나하나까지 전부 이야기에 반영하는 게임이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게임이 플레이어에게
커피를 마실 지 쥬스를 마실 지 물어보았습니다.

 

만약 커피를 선택하면 플레이어에게 돌연 교통사고가 발생해 게임이 배드엔딩으로 끝나고,

쥬스를 선택하면 아무 일 없이 이야기가 진행된다면,

이는 분명 플레이어의 사소한 선택까지도 스토리에 어떻게든 결과로 반영되는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플레이어가 과연 자신이 커피를 마셨기 때문에 교통사고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까요?

과연 플레이어가 "아, 이번에는 커피를 마셔서 교통사고가 났으니 다음 번 플레이 할때는 쥬스를 마셔야겠다"
라고 자연스럽게 생각할 수 있을까요?

애초에 커피를 마시는 행위와 교통사고가 발생하는 사건이 서사적으로 부드럽게 이어질 수 있을까요?

 

이처럼 선택과 결과 사이의 개연성이 떨어지고,
플레이어가 "자신의 선택이 영향을 주었다"는 것을 느낄 수 없다면,
이는 단순히 주사위를 굴려 이야기를 결정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이상적이지 않은 게임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예외적인 경우도 존재합니다, 더보기 참조)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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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일은 유명해(Kyle is Famous)는 텍스트 기반의 어드벤쳐 게임이다. 스팀에서 무료로 플레이해볼 수 있다.>

 

 

플레이어의 선택이 아무런 개연성 없이 게임에 영향을 주지만,
그 자체가 하나의 코믹한 요소로 작용하는 게임도 있습니다.

"Kyle is Famous"라는 인디 어드벤처 게임은 무려 21개의 기상천외한 엔딩을 가지고 있으며,
이 때 플레이어의 선택은 전혀 말이 안되거나,

어떠한 개연성도 없이 이야기에 영향을 줍니다.

(플레이어는 돌연 귀신으로 변해  문을 관통할 수도 있고, 옆집 이웃을 잡아먹을 수도 있으며, 그 밖에도 수많은 말도 안되는 선택지들이 존재합니다)

 

그렇지만 이 게임은 오히려 이런 개연성 없는 선택지를 통해 플레이어에게 예상치 못한 이야기를 전달함으로써
특유의 코믹한 분위기를 연출해 낼 수 있었고, 이는 스토리 중심적인 게임이 일반적으로 지향해야 하는 바를 거부함으로써 신선함을 준 경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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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리 패러블(The Stanly parable), 다양한 엔딩을 가진 어드벤처 게임이다.>

또 플레이어의 선택이 아무런 개연성 없이 게임에 영향을 주지만
게임 자체의 완성도가 뛰어난 경우도 있습니다. 

"스탠리 패러블"이 이러한 게임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물론 스탠리 패러블은 플레이어의 몰입이 중요한 어떠한 서사구조를 따라 이야기가 전개되는 게임이라기보다는, 기존의 게임 구조를 탈피하려는 실험적인 성격이 강한 게임이지만, 그래도 반드시 개연성있는 전개만이 좋은 게임을 만드는 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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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아너드(Dishonored)에서는 플레이어는 적들을 죽일지 기절시켜 무력화시킬 지 선택할 수 있다. 적들은 도시의 치안을 지키는 일종의 경찰과도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에, 만약 플레이어가 너무 많은 적들을 죽이게 되면 도시의 치안이 엉망이 되는 좋지 못한 결말을 얻게 되고, 적들을 살린다면 좋은 결말을 얻게 된다. 디스아너드는 암살과 은신에 초점을 둔 게임인 만큼, 게임의 의도대로 플레이한 이들에게 일종의 보상을 주는 셈이다.>

 

정리하면, 플레이어가 원하는 것은 단순히 과정과 결말이 다양한 게임이 아니라,

자신의 행동과 게임 속 세계가 상호작용하는 것을 체감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결단이 긍정적이던지 부정적이던지 게임의 서사 내에서 개연성이 있는 형태로 나타날 때,
플레이어는 비로소 자신이 게임 속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음을 체감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음을 체감할 때, 플레이어는 비로소 게임 속의 이야기에 깊게 몰입할 수 있게 됩니다.

 

즉 게임 속에 아무리 선택지가 많더라도, 선택과 결과의 개연성이 떨어진다면
그 게임은 단순한 직선형 서사구조를 가진 게임과 크게 다를 것 없는 체험을 제공하는 것에 그칠 것이고,
플레이어는 누워서 영화를 감상하는 것과 크게 다를 것 없는 감상을 받게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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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갇혀버린 사람을 구하기 위해 플레이어는 다양한 방식을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방식을 선택하더라도 갇힌 사람을 구한다는 결말은 대체적으로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과정상의 사소한 차이가 플레이어에게 이야기의 주도권을 가지고 있다고 믿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너무 많은 선택지를 제공하는게 무조건 게임을 해치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선택지가 다양하더라도 그 선택지가 이야기의 개연성을 해치지 않는다면

필요 이상으로 다양한 선택지를 마련해두는 것이 오히려 플레이어의 몰입에 도움이 될 때도 있습니다.

플레이어가 실제로 가진 주도권보다 더 많은 주도권을 가지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게임 내의 서사적 장치

들이 그러한 예시입니다.

 

위쳐 3에서는 하나의 미션을 완료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이 존재합니다. 플레이어가 어떤 방법을 선택하던 그 결과는 대체적으로 유사한 형태로 나타납니다. 즉, 이러한 선택지는 스토리 상 "있으나 마나"한 선택지인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