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는 하고 싶은 일부터 하면 된다 - eotteohge haeya halji moleul ttaeneun hago sip-eun ilbuteo hamyeon doenda

환자분으로부터 인상적인 표현을 들었다. 생각으로 머리가 마치 풍선처럼 부푸는 느낌이라고 했다. 직장에서의 스트레스로 인해 우울과 불안이 찾아온 분이었는데, 끊임없이 부정적인 생각이 떠오르고 또 곱씹는 것으로 인한 고통을 이야기하셨다. 단어와 단어가 넘칠 듯이 차올라서, 심할 때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를 정도로 고통스럽다고 하였다. 

부풀어 오른 풍선에서 바람이 새어 나오듯, 환자분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시작은 프로젝트를 망쳐서 윗사람에게 크게 혼났을 때부터였어요. 질책하는 말들을 곱씹으면서 생각을 이어가다 보면 나는 왜 이렇게 무능할까, 왜 이것밖에 못 할까 에서부터 매일 일을 망치기만 하는데 이런 내가 행복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으로 이어졌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결론이 나지 않더라고요. 그런 생각들은 또 어차피 행복하지 못할 인생이라면 왜 이렇게까지 열심히, 고통을 받으면서 살아야 하는 걸까?라는 생각으로 이어져요... 

... 그냥 숨 쉬는 걸 유지하기에도 하루하루가 이렇게 힘들 거라면, 적어도 왜 이렇게 힘들게라도 살아가야 하는지 그 답이라도 알고 살고 싶은 건데 아무리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도 답은 내릴 수 없었어요. 그럴수록 마음은 더 지치고 부정적인 생각에 빠져들게 되고요. 심지어는 차라리 죽으면 이 생각의 고리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그런 생각마저 들어요. 선생님 도대체 인생의 답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왜 살아야 할까요? “ 

풍선의 바람이 빠져서 떨어지듯, 반 시간 이상 이야기를 이어가던 환자의 이야기는 삶을 이어가는 것에 대한 고민, 죽음에 대한 고민으로 힘없이 끝을 맺었다. 그는 나에게 답을 원하고 있었다. 수개월, 심지어 수년 이상을 매일같이 매달려 고민해도 도달할 수 없었던, 이 고단한 삶을 어째서 이어가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는 하고 싶은 일부터 하면 된다 - eotteohge haeya halji moleul ttaeneun hago sip-eun ilbuteo hamyeon doenda
사진_freepik

 

이에 대해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시작해 보았다.     

“그러셨군요. 저도 종종 생각에 빠질 때가 많고, 특히나 사는 게 힘들다고 느껴질 때일수록 그런 경우가 많았어요. 말씀 주신 머리가 생각으로 가득 차서 풍선처럼 부푸는 느낌도 어떤 느낌인지 정말 와 닿네요.”      

“이야기하신 생각들에 대해서 객관적인 답이 존재할 수 있을까를 우선 생각해 봅니다. 개인의 삶과 가치관에 따라 답이 달라지는 주관적인 영역일 것 같고, 한 사람 안에서도 시점에 따라 늘 답이 달라질 것 같거든요.” 

“그런데 저는 조금은 다른 관점으로 접근을 해 보고 싶어요. 물론 그러한 생각들에 답은 무엇일까를 고민하는 건 이상한 일도 아니고, 이 힘든 삶을 이어가다 보면 당연히 들 수밖에 없는 의문일 것 같습니다. 그럴수록 그래서, '그 답을 고민하는 것이 지금의 내 삶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가'를 함께 한번 짚어보면 어떨까 해요.” 

 

삶은 우리에게 답을 찾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학교에서는 시험 문제에 대한 답을 가르치고, 회사에서는 성과를 낼 수 있는 방법을 찾으라 요구한다. 그러한 삶의 경험을 반복하며 우리는, 고민이나 의문에 대해서는 나름대로의 답을 찾아내는 것이 마음의 안식과 행복을 위한 유일한 방법이라는 강한 확신을 가지게 된다. 살아가며 가지게 되는 의문들에 대해서는 반드시 답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끊임없이 학습하고 내재화한다. 그렇게 우리의 마음에는 한 가지 원칙이 생긴다. 그것은 '마음에 떠오르는 의문에 대해서 답을 달 수 있어야 하며, 그래야 마음이 편안해지고 행복해진다.'라는 원칙이다. 

그러나 시험 문제에 대한 답은 정해져 있지만, 삶의 답은 정해져 있지 않다. 아니, 인생의 답이 존재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모호하다. 누군가가 이야기하는 삶의 의미란, 그 시점의 그 사람에게만 국한되는 매우 주관적인 담론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토록 답을 내릴 수 없는 생각에 몰두하게 되는 이유를 조금 더 세밀하게 살펴보면, 이는 모호하고 현학적인 생각에 몰두하며 당면한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감당하기 어려운 실제 고민들을 잊으려는 시도일 수도 있다. 또는 불확실한 삶으로 인한 불안이 심한 나머지 생각 속에서라도 삶을 온전히 통제하고 싶은 욕구일 수도 있고, 생각이 정리되고 명확히 답을 내릴 수 있어야만 내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란 원칙이 마음 깊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떤 이유에서든, 중요한 것은 그 이유보다 그렇게 생각에 몰두하는 것이 실제로 내 삶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이다. 생각에 몰두하는 일종의 행동이자 방법은 대개 우리가 기대했던 행복이나 평안을 주기보다는 오히려 불안을 가중시키고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듯 답을 찾기 힘든 생각 속으로 우리를 빠뜨리곤 한다. 답을 내릴 수 없는 생각, 답이 정해져 있지 않은 삶에 대해서 어떻게든 생각을 통해 답을 정의 내리려 몰두하다 보면 하루가 현실 속에서의 삶이 아닌 내 마음, 생각 속에 갇혀 버리게 된다. 집을 나서서 지나치는 풍경, 만나는 사람들과의 대화, 좋아하는 취미를 이어갈 여력 같은 것들에는 마음의 시선을 전혀 두지 못한 채, 오로지 생각과 씨름하다 하루를 모두 보내게 되기 쉽다. 

그럴수록 마음이 답답하고, 초조해진다. 힘들수록 답을 내리려 하는 것이 나의 습관이자 마음의 패턴이었다면, 이런 마음이 찾아올 때 더욱 생각에 몰두하게 될 것이다. 악순환은 끝없이 이어진다. 

그래서 나는 환자분에게, 그가 찾는 답을 알려드리진 못할 것이란 이야기를 솔직히 드렸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에 몰두하는 대신 '답을 내리고 싶은 마음'과, '답이 내려지지 않아 불편한 마음'과 친해지는 연습을 하면 어떨까, 제안했다. 

 

삶의 의미란 무엇일까란 의문들에 대해 답을 달고 결론을 내려야 한다는 생각은 오히려 우리의 마음을 옭아맴으로써, 어쩌면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그 답을 떠올릴 수 있을 때까지 우리의 일상을 멈춘다.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기, 글쓰기, 신작 영화를 보기, 공부하기, 요리해보기 같은 일상 속 좋아하는 일, 혹은 해야 할 일들은 모두 이러한 생각이 결론이 날 때까지 실행이 유예된다. 마치 자율주행 차량처럼 몸이 일상의 일을 이어가더라도, 마음은 늘 답이 없는 생각들 주위만을 맴돌기도 한다. ‘생각을 통해 살아갈 방법과 방향이 정리되어야지만 그 정답대로 살아가기 시작할 수 있어’라는 생각을 하다 보면 무엇이 정답인지, 지금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혼란으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삶이 이어지곤 한다. 

반면 마음에 떠오른 생각들, 의문들에 대해 모두 답을 내린다는 것은 본디 힘든 일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그간 잘 보이지 않았던 지금 할 일, 혹은 하고 싶은 일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마음속에 떠올린 인생에 대한 정답을 따라 비로소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해야 할 일, 때로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그냥’ 하루를 살아보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있다고 느끼는 순간은 대단한 철학적 결론에 도달했을 때가 아니라 결혼식 사회를 봐준 친구를 식 이후 몇 달 만에 처음 만나 친구의 신혼 이야기에 빠져들 때다. 금요일 밤 퇴근 후 불 끄고 영화를 틀어놓은 후 방금 냉장고에서 꺼내 표면에 얼음이 살짝 맺힌 맥주의 첫 모금을 들이키며 절로 ‘이게 인생이지’ 감탄할 때와 같이, 그저 지금 여기의 순간에 빠져들 때 우리는 살아있다고 느낀다. 그런다고 해서 ‘이렇게 사는 것이 삶의 의미구나.’라는 멋진 의미가 갑자기 떠오르지는 않을지라도 ‘나는 지금, 이렇게 살아있구나’라는 선명한 느낌은 전해질지도 모른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는 하고 싶은 일부터 하면 된다 - eotteohge haeya halji moleul ttaeneun hago sip-eun ilbuteo hamyeon doenda
사진_freepik

 

신중하게 생각을 하고 삶에 대해 깊이 성찰하는 것은 분명 우리의 삶을 더욱 깊게 하고 원하는 삶을 이어가도록 도와주기도 할 것이다. 다만 그러한 생각들이 과도하면 오히려 우리를 스스로의 삶과 현실로부터 멀어진 채 생각에만 매달리게 하기도 한다. 만약 당신이 인생의 답을 내리기 위해 과도하게 생각에 몰두하는 것이 고민이라면 답이 내려지지 않는 그 불편함을 마음의 일부로 안은 채 ‘그냥’ 삶을 이어간다는 낯선 관점을 시도해 보기를 권하고 싶다. 결론을 내리지 않아도 괜찮다기보다, 그러한 결론은 본디 잘 내려지지 않음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마음이다. 

환자는 요즘 풍선에 바람이 많이 빠졌다는 이야기를 전해온다. 여전히 왜 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좀 괜찮은 하루가 이어진다고 했다. 처방한 우울증 약과 항불안제의 효과였을지, 우리가 연습하기로 한 새로운 시도 덕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첫 방문 당시의 증상 정도를 미루어 보았을 때 그의 호전은 물론 약물의 효과를 빼고서는 온전히 설명하기는 힘들 것이다. 아무렴 어떤가. 우리에게 중요했던 것은 그가, 구해지지 않는 답만을 찾아 헤매던 예전의 일상보다, 답이 나오지 않는 불편함과 친해지려 노력하며 살아가는 하루를 더 마음에 들어한다는 사실이었다. 

제일 좋은 것은 편해진 마음만큼 여유가 생겨서 강아지와 산책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라고 했다. 사랑하는 강아지가 즐거워하는 모습이 예뻐서 돌아다니다 보니 새삼스레 바깥공기가 상쾌하고 좋았고, 집에 돌아와 강아지의 발을 씻기고 아주 약간 땀이 난 몸으로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고는 뽀송한 느낌으로 소파에 누워 유튜브를 보는 느낌이 참 좋다고 했다. 사실 그에게 필요했던 것은 막연한 삶의 의미 같은 것보다는, 딱 그 정도의 소소한 소중함이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