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탐지기 정확도 - geojismaltamjigi jeonghwagdo

국과수 개발 ‘기억탐지기’ 체험 르포


거짓말탐지기 정확도 - geojismaltamjigi jeonghwagdo
16일 강원 원주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법심리과 검사실에서 본보 박종민 기자가 ‘기억탐지기(TF-1)’로 거짓 반응 검사를 받고 있다. 박 기자는 검사 직전 실험을 위해 옆방에 있던 ‘어떤 물건’을 몰래 주머니에 넣었다. 홍현기 국과수 법심리과 연구원은 기억탐지기를 이용해 그 물건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맞혔다. 원주=박영대 기자

16일 오후 강원 원주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4층 법심리과 연구실. 방 안엔 귀중품들이 무방비하게 놓여 있었다. 기자는 그중 하나를 서랍에서 꺼내어 슬쩍 주머니에 넣고 연구실에서 나왔다. 어떤 물건을 챙겼는지는 기자 말고는 아무도 보지 못했다. 하지만 국과수 법심리과 홍현기 연구원은 기자의 주머니를 뒤지지 않고도 어떤 물건인지 맞힐 수 있다고 자신했다. 국과수가 최근 직접 개발한 생리 심리 검사기기 ‘TF-1’, 이른바 ‘기억탐지기’를 이용해서다.

○ 국과수, 기억을 훑는 새로운 탐지기 개발

기자가 검사실 의자에 앉자 홍 연구원은 기자의 가슴과 배에 밴드를 둘렀다. 호흡의 변화를 측정하는 장비다. 오른손엔 심박과 혈류를 측정하는 장비를, 왼손엔 미세한 땀을 포착할 수 있는 금속판을 끼웠다. 온몸에 전선을 주렁주렁 두르고 있으니 마치 실험동물이 된 기분까지 들었다.

이렇게 다양한 생리 반응을 측정해 거짓말을 할 때 생기는 미세한 변화를 감지한다는 점에서 기억탐지기는 기존 거짓말탐지기와 다를 게 없다. 차이점은 질문 방식이라고 한다.

“기존 거짓말 탐지 검사는 범죄 행위 여부를 직접적으로 질문하고 그에 대한 반응을 통해 거짓말 여부를 판단하는 비교질문검사기법(CQT)을 씁니다. 반면 기억탐지기는 여러 자극 중 진범만이 알 수 있는 범죄 관련 자극을 대상자가 인지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숨김정보검사기법(CIT)’을 쓰죠.” 홍 연구원의 설명이다.

이게 무슨 말일까. 기자가 도통 알아듣지 못한 표정을 짓자 홍 연구원은 차근차근 다시 설명했다. 살인의 경우 “당신이 ○○○을 살해했느냐”는 질문에 부인할 때 거짓 반응이 나타나는지 측정하는 게 CQT 방식이다. CIT 방식은 사건에 사용된 칼을 아무 관련 없는 다른 칼들과 섞어 제시한 뒤 반응을 측정한다. 결백하다면 범행에 이용된 칼이 어느 것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생리 반응이 일정할 테지만, 진범이라면 범행에 사용된 칼을 제시했을 때만 호흡 패턴이 변하거나 땀 분비가 많아지는 등 생리 반응을 보인다는 얘기다. 기억탐지기라는 별칭이 붙은 것도 이처럼 검사 대상자의 기억을 훑는 작동 방식 때문이다.

○ ‘생사람 잡을 확률’ 0.25%로 매우 낮아

홍 연구원이 기자에게 질문했다. “당신이 가져간 물품이 지갑입니까?” 기자는 “아니요”라고 답했다. 홍 연구원은 모니터를 통해 기자의 몸에서 일어난 생리 반응을 유심히 지켜본 뒤 같은 방식으로 반지나 수표, 시계, 신용카드를 가져갔는지 물었다. 그중엔 실제로 기자가 주머니에 넣은 물건도 있었지만, 내색하지 않고 모두 부인했다. 질문과 질문 사이엔 20초의 공백을 뒀다. 앞선 질문 때 나타났던 몸의 변화가 원래대로 돌아가길 기다리는 시간이었다. 이제 끝났나 싶었는데, 홍 연구원은 같은 과정을 3차례 더 반복했다. 여러 차례 반복할수록 결과가 정확히 나온다고 한다.

분석을 마친 홍 연구원이 입가에 미소를 띠며 물었다. “주머니에 있는 물건…. 반지죠?” 정답이었다. 모니터엔 기자가 질문을 받았을 때 나타난 생리 반응이 그래프로 기록돼 있었다. 반지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생리 변화 폭이 가장 컸고, 지갑이나 카드 등 다른 물건에 대한 질문에선 그래프의 변화가 거의 없었다. 홍 연구원은 “굳이 질문을 하지 않고 반지와 지갑 등의 사진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검사했어도 같은 결과가 나왔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기자는 패배(?)를 인정하며 주머니에서 반지를 꺼내 돌려줬다. 홍 연구원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거 제 결혼반지였는데 맞혀서 정말 다행입니다.”

국과수는 기억탐지기의 성능을 검증하기 위해 일반인 400명을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정확도가 93%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기존 거짓말탐지기의 정확도가 94∼95%인 점을 감안하면 실망스러울 수도 있는 결과다. 하지만 주목할 점은 위양성(僞陽性) 오류가 400명 중 1명에게서만 나타났다는 것이다. 위양성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는데도 ‘거짓말을 했다’고 잘못 판단하는 것이다. 위양성 확률이 0.25%라는 것은, 한마디로 ‘생사람 잡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의미다. 거짓말탐지기의 위양성 확률은 2.5∼3%로 알려져 있다.

○ 정확도 높여 ‘증거 능력’ 한계 극복

국내에서 거짓말탐지기가 주목받은 계기는 1955년 7월 서울 남대문로 ‘백금상회 강도 사건’이었다. 복면강도들이 털어간 귀금속 중 일부가 군 장성의 집으로 흘러 들어갔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같은 해 11월 헌병사령부가 구속 수감 중인 피의자들을 거짓말탐지기로 조사했다. 이후 거짓말탐지기는 1956년 장면 부통령 저격 사건 등 주요 사건에서 종종 등장했다.

이처럼 활발하게 활용되던 거짓말탐지기에 대법원이 제동을 건 것은 1978년 4월 ‘백화양조 여고생 살인 사건’이다. 19세 여고생이 술통에 빠져 숨진 채 발견되자 경찰은 용의자 20명에게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벌였다. 그중 백화양조 회장의 아들에게서 거짓 반응이 나왔고, 그는 범행을 자백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거짓말탐지기 검사 결과를 증거로 인정하지 않았다. 검사기기의 성능이나 절차의 적합성이 보장된 상태로 검사를 했는지 확인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이후 △거짓말을 하면 반드시 일정한 심리 상태의 변동과 생리적 반응이 일어나고 △그 반응에 따라 거짓 여부를 정확히 판정할 수 있어야만 거짓말탐지기의 증거 능력을 인정할 수 있다는 판례가 확립됐다. 국과수는 기억탐지기의 검사 결과가 이 같은 조건을 충족해 법원에서 증거로 인정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거짓말탐지기 검사는 수사 일선에선 점점 더 활발하게 활용되고 있다. 성폭행이나 아동 학대처럼 물적 증거를 찾기 어려운 사건이나 당사자끼리 진술이 엇갈리는 지능 범죄에선 거짓말탐지기가 수사 방향을 결정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는 수십 년 전 벌어진 미제 사건에서도 마찬가지다.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의 피의자 이춘재(57)는 경찰의 거짓말탐지기 조사에서 1992년 4월 충북 청주시에서 발생한 ‘청주 학천교 미제 살인 사건’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내가 하지 않았다”는 취지로 진술했지만 이는 거짓 반응으로 분석됐다.

서울지방경찰청 폴리그래프(거짓말탐지기) 검사팀 유지현 검사관(경위)은 “최근엔 성범죄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를 입증하기 위해 검사를 자진하는 경우도 많다”라며 “검사관의 전문성과 기기의 정확도가 점차 높아지고 있는 만큼 앞으로도 거짓말탐지기의 활용도는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원주=박종민 / 조건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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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얼마나 자주 거짓말을 할까? 미국 미시간주립대 프랭클린 보스터 교수와 그의 동료들에 따르면, 인간은 1주일에 평균 10번, 1년에 약 500여건의 거짓말을 한다. 친구들과 만날 때면, 거짓말을 하지 않고서는 10분도 대화가 어렵다는 사람이 무려 60%나 된다. 인간의 언어는 진실을 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거짓말을 하기 위해 발달하게 됐다는 가설이 나올 정도로 인간의 거짓말은 보편적이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고, 나를 좀더 근사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욕구가 과장과 왜곡, 거짓말을 만들어낸다. “너 왜 이렇게 예뻐졌니!” “제가 브이아이피(VIP)를 좀 압니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상대방의 거짓말을 알아채고 싶은 욕구’ 또한 커질 수밖에 없다. 맞벌이 부부가 집에 들어와 가족들 앞에서 하는 ‘회사에서 겪는 무용담’이 얼마나 진실인지, 아이들이 손 내밀며 필요하다고 말하는 학습지가 얼마나 필요한지, 거짓말 탐지기가 필요할 때가 종종 있다.

친숙한 것과 생경한 것에 대한 반응

범죄를 저지른 상황이라면, 거짓말은 그 어느 때보다도 유용한 전략일 수밖에 없다. 범죄자는 자신의 범행을 부인하고, 검찰은 용의자가 하는 말 중에 거짓이 무엇인지 가려내는 신문의 과정에서, 거짓말 탐지기는 꼭 필요하다. 미국의 심리학자 윌리엄 마스턴이 혈압 변화를 이용해 처음으로 현대적인 거짓말 탐지기를 고안해 낸 것이 1915년이니, 거짓말 탐지기의 역사는 무려 100년이나 된다.(윌리엄 마스턴은 필명 찰스 몰턴으로 ‘원더 우먼’을 그린 만화가이기도 하다!)

생리학 박사를 받고 캘리포니아 경찰이 된 존 라슨은 마스턴의 논문을 읽고 이를 발전시켜 혈압, 맥박, 호흡 등을 동시에 자동적으로 기록하는 폴리그래프를 만들게 됐고, 그의 동료인 레오나르드 킬러는 여기에 땀에 의한 피부 전도도를 추가해 거짓말 탐지기를 업그레이드하기도 했다.

생리반응 측정 거짓말 탐지기는 한때 각광받기는 했으나, 널리 활용되지는 못했다. 진위 여부를 떠나, 신문의 상황에서 비정상적인 반응이 나오는 확률이 너무 높았기 때문이다. 또 개인 편차가 심해 심약한 사람들에게 이상 반응이 나오는 경우가 많아 법정에서 증거로 채택되지 못했다.

윌리엄 마스턴이 혈압 변화로
거짓말 탐지기 고안한 게 1915년
존 라슨과 레오나르드 킬러는
맥박·호흡과 피부 전도도 추가
20세기 후반부터는 뇌 반응 주목 뇌활동 기반 거짓말 탐지기는
법정에서 증거로 채택될 만큼
충분히 신뢰되고 있지는 않지만
미 연방정부 직원 채용 테스트 등
일반적 상황에서는 널리 사용추세

1923년, 강도 및 살인으로 기소된 19살 소년의 재판 과정에서 거짓말 탐지기 자료가 법원에 제출됐고, 법원은 이를 증거로 채택할지 말지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법원은 ‘거짓말 탐지기가 학계에서 충분히 신뢰성이 높다고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는 이유로, 결국 이를 증거로 채택하는 것을 거부했다.

이 판례는 그 후 ‘프라이 원칙’으로 불리면서, 특정 기술을 활용해 얻은 데이터가 법정에서 증거 능력을 갖기 위해서는 충분히 신뢰성을 갖고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기준을 제공하게 된다.

20세기 후반 들어 뇌활동을 측정해 거짓말을 가려내는 거짓말 탐지기의 가능성이 탐구되었다. 거짓말을 할 때 땀 분비가 늘어난다거나 심장박동이 빨라진다든가 하는 생리적 반응은 간접적인 반응이다. 신경범죄학의 권위자 에이드리언 레인 박사는 “범죄자는 정상인들과는 달리 위험 상황에 처해도 두려움을 거의 느끼지 않으며 범죄를 저지르는 동안 태연하게 식은땀 한 방울 흘리지 않는다. 이들은 전전두엽 피질, 편도체, 해마, 각회 등 뇌의 특정 영역 기능이 일반인보다 현저히 떨어져 있기 때문에, 뇌활동 자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거짓말을 만들어내는 뇌의 활동을 직접 측정할 수 있다면, 좀더 높은 신뢰도를 가진 증거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뇌활동을 측정하는 거짓말 탐지기 중에서 가장 간단한 형태는 ‘친숙한 것과 생경한 것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다르다’는 사실을 이용하는 방법이다. 기존의 다양한 범죄 현장 사진들 사이에 특정 사건 현장 사진을 섞어 용의자에게 보여주면, 용의자가 범죄 현장에 있지 않았다면 무심히 지나치겠지만,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익숙한 현장이라면 다른 반응을 보일 것이다. 용의자의 뇌활동이 범죄 현장을 알아보는 반응을 보인다면 이는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

용의자에게 수많은 얼굴 사진을 보여주면서 그 가운데 누가 공범인지, 피해자인지를 가려낼 수도 있다. 용의자의 뇌활동은 그가 어느 얼굴 사진을 익숙하게 여기는지 알려준다. 이런 변화는 빠른 측정이 용이한 뇌파(EEG)로도 검출가능하며, 자기공명 뇌영상촬영기법(fMRI)을 활용할 수도 있다.

‘프라이 원칙’ 대신 ‘도버트 원칙’

“사건 당일, 범행 추정 시간에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범인이 아니라면 이런 질문에 대해 뇌는 당시 기억을 더듬는 과정을 수행하겠지만, 범인이라면 진실이 떠오르는 걸 억제하고 새로운 알리바이를 만들어내는 창작 활동이 필요하다. 영국 셰필드대학교 정신과 숀 스펜스 교수는 거짓말을 하는 용의자의 뇌 중 복외측 전전두피질이 진실을 억제하고 새로운 알리바이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활성화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2007년에는 이를 이용해, 자신의 딸을 독극물을 먹여 죽였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한 여성의 뇌를 스캔해 그가 현재 진실을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 일약 스타가 되었다. 이 실험 과정이 영국 텔레비전에 방영돼 이 방송 자체가 한동안 화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20세기 후반까지는 주로 뇌파나 특정 활동 관련 전위(Event-related potential)를 이용한 거짓말 탐지기가 주로 활용되었다가, 21세기 들어서면서 좀더 정교한 에프엠아르아이 장치를 이용한 거짓말 탐지기 결과가 법정에 제출되었다.

거짓말 탐지기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도 생겼다. 가장 유명한 회사로서, 미국 매사추세츠주에 위치한 ‘세포스’와 캘리포니아주에 위치한 ‘노 라이 엠아르아이’(No Lie MRI)는 에프엠아르아이를 이용해 진실을 찾아내고 법정 증거로 제출해주는 서비스 사업을 하고 있다.

실례로, 2009년 샌디에이고에서 에프엠아르아이를 이용한 거짓말 탐지기 결과가 처음으로 법정에 제출됐다. 자식을 성적으로 학대했다는 혐의로 고소된 아버지가 자신의 결백을 입증하기 위해 ‘노 라이 엠아르아이’사에 뇌 스캔을 의뢰했고, 회사는 아버지가 결백하다는 증거를 법원에 제출했다. 그렇지만 법원은 ‘에프엠아르아이 거짓말 탐지기 결과가 증거로서 아직은 충분한 신뢰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이유로 증거로서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이 거짓말 탐지기 결과를 증거로 채택하느냐에 대해서는 현재 프라이 원칙 대신, ‘도버트 원칙’에 비추어 판단하고 있다. 1993년 연방대법원은 어떤 약물의 유해성을 주장하는 재판에서 역학 연구자의 증언과 관련된 도버트 사건을 통해 과학적 증거의 허용에 대한 새로운 요건들을 제시했다.

도버트 원칙의 새로운 요건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검증이 가능한가? 가능하다면 실제로 검증을 했는가? 둘째, 저널에 제출돼 동료들의 리뷰를 충분히 받은 바 있는가? 셋째, 그 방식에 대해 널리 알려져 있어 잠재적인 오류의 발생률은 계산할 수 있는가? 오류 가능성이 계산 가능하다면 어느 정도 되는가? 넷째, 누구에게나 재현 가능하도록 실험 과정에 대한 표준이 제공돼 있는가? 다섯째, 관련 분야에서 전문가들에게 폭넓게 받아들여지고 있는가?

그렇다면, 뇌활동을 기반으로 한 거짓말 탐지기는 도버트 원칙에 부합돼 법정에서 증거 능력을 갖추고 있을까? 2010년, 피고인 론 셈로는 의료보험 부정 청구 사기죄로 기소되었는데, 사기 행위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피고인이 의도적으로 법을 위반했다는 고의의 증명이 있어야 했다. 셈로는 ‘의료보험 청구의 사실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내가 의도적으로 부정 청구를 한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으며, 이를 입증하는 증거 자료로 이러한 진술을 할 때 그가 진실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에프엠아르아이 거짓말 탐지기 결과를 제출했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피고인이 제출한 에프엠아르아이 결과의 신뢰성을 평가하기 위해 도버트 원칙을 적용했고, 다음과 같은 결론을 맺었다.

법원은 에프엠아르아이 거짓말 탐지기의 원리가 충분히 검증되었고, 이미 여러 편의 논문이 출간된, 검증된 사실이라는 데에는 이견을 달지 않았다. 그러나 사용된 방법과 기술 운영을 통제하는 표준은 아직 제시되지 않았으며, 일반적으로 학계에서 뇌활동을 기반으로 한 거짓말 탐지기의 신뢰성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건 아니라는 것에 주목했다. 다시 말해, 아직은 법정에서 증거로 채택될 만큼 충분히 신뢰되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2007년까지 19개 주에서 거짓말 탐지기의 결과를 법정에서 증거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좀더 널리 사용되고 있는 추세다. 예를 들어, 미국은 연방정부에서 일하는 직원을 뽑을 때 매년 약 7만명의 지원자에 대해 거짓말 탐지기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증인이 만약 잘못된 기억을 신뢰한다면?

아직은 뇌활동에 기반을 둔 거짓말 탐지기에는 허점이 많다. 무엇보다도, 거짓말과 거짓 기억을 구분해내지 못한다. 다시 말해, 본인 스스로 잘못된 기억을 진짜 기억이라고 믿는다면 거짓을 말할 의도가 없다 하더라도 구분할 수 없다. 증인의 증언을 매우 중요한 증거로 채택하고 있는 현재의 양형제도에서 증인의 잘못된 기억을 신뢰하는 것은 과연 옳을까? 이것은 거짓말 탐지기의 한계를 넘어, 현재 증인의 증언을 신뢰하는 법정 양형 제도의 한계이면서, 더 나아가 ‘인간의 기억은 과연 얼마나 신뢰할 만한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한 가지 희소식은 얼마 전 미국신경과학저널에 가짜 기억을 토대로 한 거짓 증언까지 구별해 내는 것이 가능함을 시사하는 논문이 실려 주목받고 있다. 연구진이 발견한 것은 진짜 기억을 회상할 때와 가짜 기억을 회상할 때 뇌의 전혀 다른 부위가 활성화된다는 사실이다. 진짜 기억을 회상할 때는 뇌에서 기억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잘 알려진 ‘해마’ 부위가 활성화되지만, 가짜 기억을 회상할 때는 전두엽 일부와 두정엽 일부가 함께 활성화된다는 것이다. 이를 이용하면 의도하지 않은 거짓말까지 찾아낼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역사가 가장 오래된 법심리학 장치 중 하나인 거짓말 탐지기에 에프엠아르아이를 이용하면 정확도는 85%까지 높아질 수 있다. ‘뇌지문감식’이라 불리는 뇌파검사기법은 용의자가 알리바이·사건 순서의 세부사항 등을 정확히 알고 있는지에 대한 지식 여부를 평가하는 데 향후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내 의식이 말은 통제할 수 있지만 뇌반응까지는 통제할 수 없다’는 명제가 법의학을 구원할 날을 기대해 본다.

정재승 교수

▶ 정재승 카이스트(KAIST·한국과학기술원)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카이스트 물리학과에서 학부를 졸업하고 박사를 받은 뒤 예일대 정신과 연구원, 컬럼비아의대 정신과 조교수 등을 거쳤다. <정재승의 과학콘서트>, <물리학자는 영화에서 과학을 본다>, <크로스>(공저) 등의 책을 냈다. 신경과학적인 관점에서 인간과 사회의 행동을 탐구하는 연구를 해오고 있다. 이 연재물은 영혼을 조종하는 뇌의 탐구를 통해 자연과학과 공학·인문학·사회과학이 어떻게 만날 수 있는가를 모색하려는 시도다. 격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