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도 씨름 추론 - gimhongdo ssileum chulon

김홍도 씨름 추론 - gimhongdo ssileum chulon

해학과 풍자의 대가 김홍도...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 중의 하나인 씨름도를 보면

그가 얼마나 유머와 재치에 탁월한 사람이었는가를 금방 깨닫게 된다.

김홍도 씨름 추론 - gimhongdo ssileum chulon

씨름, 

김홍도가 살았던 그 시대에도 우리나라 어르신들은 씨름구경을 썩 즐겼었나 보다.

화면 가운데에 안간힘을 쓰며 씨름을 하는 두 씨름꾼을 자세히 보면

왼발을 든 쪽이 어쩐지 위태위태하다.

그림 아래쪽과 오른편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이제 승리는 따논 당상이라는 듯 몸을 뒤로 젖인채 입이 귀에 걸렸고,

그림 왼쪽편에서 응원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씨무 룩하고 안타까운 표정으로 허탈하게 앉아있다.

그림의 아래쪽 부분에는 씨름의 승패에 전혀 무관심한 표정으로

두 씨름꾼들에게 등을 돌린채 엿을 팔고있는 엿장수가 보이고

씨름꾼의 경기상황에 따라 울고 웃는 관객들의 엇갈린 반응이

마치 마당놀이 한 대목을 화폭 안에 그대로 옮겨다 놓은 듯 긴장감 넘친 다.

또한 그림의 오른편 아래쪽에 앉아있는 남자의 오른손과 왼손의 위치가 어쩐지 불 안전하다.

자세히 살펴보니 그 남자의 오른손과 왼손이 뒤바뀌어 있는 것이 아닌가?

이렇듯 김홍도는 자기가 그린 그림속 인물들의 손이나 발 모양을 종종 바꿔 그리곤 했다 는데

이는 바로 자신의 그림을 보는 사람들에게 숨은 그림찾기처럼 즐거움을 주기 위해서 였다고 한다.

본래 이 씨름도는 스물 하고도 다섯 장으로 된 '풍속화첩'에 들어있는 그림 중의 하나로

김홍도는 이 화첩 속의 다른 그림에서도 사람들의 손이나 발을 가끔씩 바꿔 그리면서,

뒤바뀐 손과 발의 위치를 어렵게 찾아내곤 환호성을 지르며

즐거워할 사람들의 환한 얼굴을 떠올리며 홀로 미소 지었으리라.

김홍도의 풍속화를 보면 마치 플롯이 잘 짜여진 연극 한 편을 직접 본듯 하다.

등장인물의 표정과 감정이 생생하게 살아있을 뿐 아니라

주변 상황과도 긴밀하게 연결돼 연극을 감상하는 우리 스스로가

어느새 그림 속의 배경이 되어있음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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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당, 이 서당도는 훈장님 앞에서 우는 아이를 중심으로

그 아이를 바라보는 학동들과 훈장님의 각기 다른 표정과 몸짓이 압권이라 할 수 있겠다.

훈장님께서 회초리를 들지 않으셨는 데도 무엇이 저리 서러워 아이는 눈물을 훔치고 있는 것일까?

아홉명 학동들의 표정은 물론 머리 모습까지도

한 명 한 명 세밀하게 담아낸 화가의 재능과 재치가 정말 놀라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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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막, 가슴을 다 드러내 놓고 일하는 여인과 아이를 업은채 음식을 담는 여인,

그릇을 기우뚱 기울여 가며 바닥에 있는 음식을 싹싹 쓸어먹고 있는

장사꾼의 모습이 왠지 고단하고 서글프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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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터, 예나 지금에나 여인네들의 벗은 몸을 몰래 훔쳐보는 본능은 남자들만의 전유물이었나 보다.

빨래를 하면서 혹여 물에 옷이라도 젖을까 싶어 거리낌 없이 윗옷 훌훌 벗어던지고

자유롭게 빨래를 하고 있는 여인네들을 남몰래 훔쳐보는 저 한량(?)좀 보시게나...

부채로 그 얼굴 가린 다고 어찌 음흉한 속마음까지 가릴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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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쌈, 그림 위쪽을 보면 여자가 쪼그리고 앉아 무언가 열심히 바르고 있다,

풀이다, 실이 엉기지 않게 풀을 먹인 뒤 숯불로 말린다,

이렇게 풀을 먹이는 것을 베매기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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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상, 남편은 등짐을 지고, 아내는 바구니를 머리에 이고

각각 다른 곳으로 장사를 나가는 중인가 보다.

남편은 애를 등에 업고 무거운 바구니에 머리가 어깨까지 파묻히는

아내를 보면서 얼마나 가슴 찢어졌을까?

저 부부가 하루라도 빨리 저 빈한하고 궁핍한 삶을 청산하고

보다 인간답고 풍요로운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바램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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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누놀이, 고누놀이는 땅바닥에 말판을 그리고 돌이나 나무로 말을 써서

서로 상대편 말을 따먹거나 집을 차지하는 놀이라고 한다.

산으로 나무를 하러갔던 더벅머리 총각들이 자신의 키보다 높게 쌓은 나무를 지고 내려오다가

숨을 돌릴겸 나무짐을 부려놓고 커다란 나무 그늘에 앉아 고누놀이 판을 벌였다.

웃통을 벗어제낀 두 사람과 저고리 앞섶을 풀어헤친 또 한 사람은 놀이에 열중이고,

두 발을 얌전하게 모은 총각과 긴 곰방대를 입에 문 상투 튼 어른은

이들의 고누놀이를 물끄러미 구경하고 있는 정겹 고도 그리운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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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동, 단원 김홍도의 '풍속화첩' 중 으뜸으로 뽑히는 이 춤추는 소년은

풍속화적 성격이나 구성, 필력, 음악적 요소 등,

어느 것 하나 부족함이 없는 최고의 걸작으로 알려져 있다.

풍각장이들의 섬세한 움직임과 표정 묘사는 얼쑤 얼쑤 어깨를 들썩이게 하고,

춤을 추는 소년의 춤사위는 금방이라도 하늘을 향해 날아오를 듯 흥겹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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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짜기,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 하는 성실한 한 가족의 삶이 엿보이는 작품이다.

아버지는 자리를 짜고 어머니는 물레를 돌려 실을 뽑고

아이는 구석진 자리에서 막대기 를 짚어가며 열심히 글공부를 하고 있다.

살림살이가 어지간만 했어도 아이에게 공부방 하나 내주는 게 별로 어렵지 않았을텐데

오죽했으면 단칸방에서 세 식구가 한방에 모여 각자의 일을 하고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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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와 연꽃.
수묵화로 빠른 시간 안에 즉흥적으로 그렸다. 그림의 크기는 10호 정도이다.

연꽃을 먼저 그리고 그 다음은 게, 갈대 순으로 그렸다.

갈대가 연꽃의 줄기의 앞으로 겹쳐져 있다.

이런 순서의 추론은 게의 어두운 발 부분을 남겨놓고

연 줄기를 그리는 것은 불필요하게 어렵기 때문이다.

연꽃으로 큰 구도를 잡은 다음 연 줄기 사이로 짙은 먹으로 게를 그리고

그 다음 엷은 붓질로 갈대를 그려야 편리하다.

아마 과거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아들을 둔 친구의 부탁으로 즉석에서 그렸거나

주문을 받아 판매용으로 그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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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힘겨운 노동 후의 점심은 비록 찬이 변변치 못하다 해도

진수성찬이 부럽지 않는 꿀맛이었으리라.

등에 아이를 업은 채 부지런히 음식을 만들어 들판으로 점심을 내왔을 아낙은

가슴을 풀어 헤쳐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엄마를 따라온 큰아이는 엄마의 밥그릇을 통째 붙들고 마냥 즐겁기만 하다.

얼마나 덥고 힘들었으면 저리 윗통들을 훌훌 다 벗어던졌을까?

문득 옛 어르신들께서 하시던 말씀이 생각난다.

"몸이 엄청 고단할 땐 막걸리 한 사발 주욱 들이키고서 그 술기운에 나머지 일을 다 끝내곤 했었다"

요약 한국적 풍속화로 조선 시대 4대 화가에 꼽히는 화가로 호는 단원. 본관은 김해, 자는 사능이며 어려서 경기도 안산에서 당대 최고의 문인화가, 이론가인 강세황의 문하에서 그림을 배웠다. 28세 때인 1773년에는 어용화사로 발탁되어 영조어진과 왕세자의 초상을 그렸다. 1781년에는 정조어진 익선관본 도사의 동참화사로 활약했으며, 이 무렵 명나라 문인화가 이유방의 호를 따라 자신의 호를 '단원'이라 지었다. 그의 화풍은 조선 후기 화단에 큰 영향을 끼쳤다 < 다음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