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학점제 반대 반박 - gogyohagjeomje bandae banbag

교육부와 국가교육회의는 고교학점제 도입을 위한 교육과정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고교학점제는 한국의 중등교육을 전면적으로 바꾸는 것임에도 고교학점제에 대한 근본적인 논의는 하지도 않은 채, 고교학점제 도입을 전제로 고교학점제 연착륙을 위한 기술적 방안만 논의하고 있다.

고교학점제의 일방적 추진을 중단하고, 고교학점제가 과연 한국교육의 개혁방안 될 수 있는지 원점에 재논의되어야 한다.

우리는 고교학점제가 한국 교육의 개혁이 아니라 개악을 초래할 것으로 확신한다. 교육부가 추진하고 있는 진로교육을 위한 고교학점제는 시대의 흐름에 맞지 않고, 한국의 교육현실에도 적합하지 않다,

첫째, 고등학교 교육은 진로교육이 아니라 보편교양교육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사회는 점차 복잡해지고, 사회위기는 첨예해지고 있다. 인류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생태 위기는 나날이 심각해지고 있다. 사회적 불평등과 양극화는 확대되고 세습되고 있다. 삶의 불안과 생존의 위기가 심화하면서 사회적 차별과 혐오가 독버섯처럼 번지고 있다.

공교육으로서 학교 교육은 우리 사회가 공통으로 안고 있는 이런 첨예한 사회 문제들을 해결할 건강한 사회적 주체를 키우는 교육을 기본으로 해야 한다. 고등학교 시기는 지적 성장을 바탕으로 정체성이 분명해지고 세계관이 형성되는 시기이다. 따라서 고등학교 교육은 진로교육에 앞서, 인간-사회-자연에 대한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학습을 통해 건강한 사회적 주체로 성장할 수 있는 보편교양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

하지만 정부와 교육부는 학생과 학부모에게 불안을 부추기면서 생존의 문제에만 몰두할 것을 강요하고 있다. 고교학점제는 빨리 진로를 결정하고 진로준비를 위한 교육에 몰입하여 각자도생하라는 정언명령에 불과하다. 각자도생을 통해서는 결코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각자의 생존도 제대로 보장받을 수 없다. 사회구성원들의 연대와 협력을 통해서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며, 이를 위해 필요한 교육은 세계에 대한 합리적 이해와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의 윤리성을 키울 보편교양교육이다.

둘째, 학점제를 통한 조기 진로교육은 기술과 직업의 관점에서도 옳지 않다.

기술과 직업의 변화가 빠를수록 이른 시기에 특정한 진로를 준비하는 것은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이 크다. 오히려 여러 기술이나 직업에 두루 활용할 수 있는 기본지식이나 범용적인 능력을 배워야 한다. 응용지식보다 기본지식을, 전이성이 약한 특수한 지식보다 전이성이 강한 보편적 지식을, 생명력이 짧은 지식보다 긴 지식을 공부해야 한다.

또한, 알아야 할 것이 많은 복잡한 세상에서 고등학교 1학년 1학기에 진로를 결정하는 것은 무리이다. 사회가 복잡하고 변화가 빠를수록 충분한 진로 탐색의 기회가 필요하다. 대학도 복수전공이나 전과를 허용하여 충분한 진로탐색의 기회를 주는데, 고등학교에서 조기 진로 선택을 강요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대학진학률이 70%가 넘고 평생교육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고등학교 교육은 기본교육을 충실히 하면서 충분한 진로탐색 기회를 제공하는 중요하다. 구체적인 진로준비나 직업교육은 대학과 평생교육기관에서 담당해야 한다.

셋째, 고교학점제는 교육불평등을 확대하고, 입시경쟁 교육을 강화할 것이다.

고교학점제는 학생들에게 선택권을 준다는 면에서 좋은 제도로 보인다. 하지만 선택은 불평등을 수반하고, 불평등의 책임을 선택한 주체에게 떠넘길 가능성이 크다. 가정의 지원이 충분한 학생들은 대학입시나 이후 사회진출에 유리한 방향으로 과목을 선택하는 반면, 그렇지 못한 학생들은 많은 혼란과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사회를 운영하고 첨단 기술을 익히는데 필요한 기본 학문을 배우는 교육과정과 당장의 생존에 필요한 실용적인 지식을 배우는 교육과정으로 분리될 것이다. 교육의 결과가 아니라 시작부터 가정환경이나 문화 환경에 따라 불평등이 발생하지만, 불평등의 책임은 선택의 자유를 누린 학생과 학부모가 온전히 감당해야 할 것이다.

지역별-학교별 교육과정 불평등도 발생할 것이다. 농어촌지역이나 소규모 도시 지역은 다양한 과목개설이 어려울 것이며, 대학들이 선호하는 이른바 고급과목 개설은 엄두도 내지 못할 것이다. 반면에 부유한 대도시의 학교들은 다양한 전문 강사를 고용하여 대학의 입맛에 맞는 과목들을 개설할 것이다. 이미 학생부 종합전형에서도 학생들의 스펙을 만들어주는 능력에서 지역별-학교별 차이가 매우 크게 벌어졌는데, 고교학점제에서는 스펙을 넘어 정규 교육과정에서 불평등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또한, 과목 선택권의 확대는 입시경쟁교육의 강화로 귀결될 것이 뻔하다. 문재인 정부는 수능중심의 정시를 확대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수능을 겨냥하는 학생들은 국영수 등 수능 중심과목을 집중적으로 들을 것이다. 수시를 겨냥하는 학생들은 대학이 선호하거나 내신성적을 따기 좋은 과목을 주로 선택할 것이다. 한국의 입시경쟁 현실에서 선택권의 확대는 교육부의 선전처럼 학생의 자유, 적성, 개성의 신장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입시경쟁의 강화로 귀결될 뿐이다.

넷째, 비정규직 교원을 대량으로 양산하고 고등학교 교육을 더욱 피폐하게 만들 것이다.

고등학교는 대학보다 규모가 훨씬 작다. 작은 규모의 학교에서 다양한 과목을 개설하려면 많은 교원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정부와 여당은 이미 비정규 시간강사와 교원자격증이 없는 기간제 교원을 대거 채용할 계획을 발표하고 이를 위한 법안을 발의하였다. 학생들의 선택에 따라 매년 과목 구성이 바뀔 것이고, 이들은 극심한 고용 불안정에 시달릴 것이다. 대학에 이어 고등학교도 단기 채용의 비정규 교원이 대량으로 양산될 것이다. 비정규 교원 채용이 일상화되면, 정규 교원을 채용할 자리에도 저비용의 비정규 교원을 채용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 현재 중등 교사 노동 시장에서 공급이 수요보다 압도적으로 많아 정부와 교육부는 값싸게 교원을 수급하려 할 것이다. 다수의 교원이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열악한 처우에 고통받는 상황에서 학교의 교육력이 높아지길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입시경쟁교육으로 피폐해진 고등학교 교육은 학점제로 더욱 폐허가 될 것이다.

고교학점제의 장점을 찾아보기 힘들다. 고교학점제는 한국 교육을 개선하기보다 더욱 큰 수렁으로 몰아넣을 것이 분명하다. 교육부와 국가교육회는 고교학점제 추진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 입시중심의 교육체제를 개혁하고, 나날이 첨예해지고 있는 사회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한국 교육을 어떻게 개편할지 원점에서 재논의해야 한다. 고교학점제 시행을 전제로 한 형식적인 의견수렴과정을 중단하고 한국교육의 대개혁을 위한 사회적 논의를 다시 시작하기를 강력하게 요구한다.

2021. 08.

-유·초·중·고 교사 8431명 설문조사 결과
-"내신·대입평가 방식 변화시키기 어려워"
-반면 정시 확대 방안에는 63%가 찬성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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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DB

국내 교사 10명 중 8명은 고교학점제 전면 도입을 반대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대입 정시 확대는 63.6%가 찬성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는 11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교육정책에 대한 교원 인식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조사는 지난달 29일부터 이달 6일까지, 전국 유·초·중·고교 교사 8431명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교사들은 설문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교육정책 추진과 관련한 입장을 드러냈다. 우선 오는 2025년 고교학점제 전면 도입에 대해서는 응답자의 85%가 반대한다고 답했다. 이들은 ‘여건을 마련한 후 도입 시기를 재논의해야 한다(38%)’고 했다. 또 ‘교육 현실과 괴리가 크므로 일시 유예해야 한다(31.4%)’ ‘제도 자체에 문제가 있다(15.9%)’ 등의 이유를 꼽았다. 

반면 고교학점제 도입을 찬성한다는 의견은 14.8%에 머물렀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기 전인 지난 3일 당시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고교학점제를 점검·보완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설문 결과, 현장에서 근무하는 교사들은 냉담한 반응이다.

이들에게 고교학점제의 문제점을 물어봤다. 반대 의사를 낸 응답자 가운데 40.9%는 ‘내신과 대입의 평가 방식을 당장 변화시키기 어렵다’고 대답했다. 이외에도 ‘다양한 과목 개설을 지원할 인력 부족(27%)’ ‘지역·학교별 교육격차 심화(13.3%)’를 지적한 의견도 있었다.

교총은 이번 설문을 통해 2022 개정 교육과정 추진에 대한 현장의 의견을 공개했다. 그 결과, 반대하는 비율은 31.5%로 찬성 비율인 27.6% 보다 3.9% 높은 수준으로 집계됐다. ‘잘 모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40.9%였다. 교총은 “제도가 현장의 논의없이 추진되고 있고, 보완할 부분이 있다 보니 부정적인 의견이 많았다”며 “일선에 있는 교사와 실질적인 방안을 논의해 전면 개정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교사들은 윤석열 대통령의 정시 확대 기조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응답자의 63.6%가 찬성했고, 반대는 22.7%에 그친 것으로 파악됐다. 찬성 이유로는 ‘입시 공정성 확보(60.8%)’가 가장 많았다. 학교급별로는 초등교사의 찬성률이 68.7로 가장 높았고, 고등교사는 54.3%로 가장 낮은 찬성률을 보였다. 

한편 학생들의 기초학력 문제를 묻는 질문에는 62.5%가 심각하다고 답했다. 하지만 응답자의 일부는 ‘코로나19 상황이 정상화되면, 쉽게 극복할 것(12.4%)’이라고 했다.

임운영 교총 회장 직무대행은 “지속가능한 교육정책은 학교 현실과 현장과의 소통을 기준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점을 정부는 분명히 인지해야 한다”면서 “교사들이 학생 교육활동에 함께 협력할 수 있도록 교육여건 조성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