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 마츠 죽음 - kala macheu jug-eum

“오늘은 기대하는 바가 있어 들뜬 것이 티가 났는지 조금 의심받는 것 같았지만, 이 얼굴을 보곤 결국 내 뜻대로 따라줬지. 나이스 미들까지 어김없이 반해버리는 나는 역시 죄 많은 길트 가이인가.”

 

거실 미닫이문을 열고 성큼성큼 코타츠로 걸어온 카라마츠는 그 위로 손에 들고 있던 흰 봉투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차가운 코타츠에 다리를 집어넣고 건너편을 보며 웃었다.

 

“…조금 오래 걸렸다.”

 

바깥 어딘가에서 매미 우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겁이 너무 많아서, 너무 오래 걸려서 미안하다. 만화나 영화와는 달리 좀처럼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라서 말이지.”

 

오소마츠의 만화 잡지를 보며 웃는 얼굴이 보였다.

카라마츠는 마주 웃어주며 코타츠의 전원을 켰다.

 

쵸로마츠가 잡지를 보는 모습이 보였다.

카라마츠는 주전자에 담긴 미지근한 물을 따르며 그 모습을 봤다.

 

이치마츠가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미소 짓는 것이 보였다.

카라마츠는 코타츠 위의 흰 봉투들을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열어 내용물을 한데 모았다.

 

쥬시마츠가 야구 배트를 휘두르는 것이 보였다.

카라마츠는 한데 모인 내용물을 전부 그러모아 손 위에 올렸다. 지난 몇 달을 모은 것 치곤 봉투를 푸니 양은 너무 적었다. 좀 더 모아야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더는 자신이 못 버틸 것 같았다.

 

토도마츠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웃는 모습이 보였다.

 

막내의 모습까지 눈에 아로 새기며 카라마츠는 망설임 없이 모아온 것을 입안으로 털어 넣었다. 그리고 컵에 따라놓은 물까지 입에 머금고 단숨에 몸 안으로 그것들을 밀어 넣었다. 한 컵, 두 컵, 세 컵. 그것도 부족해 주전자의 물을 전부 다 마시고 나서야 모아온 것들은 전부 몸 안으로 들어가 그제야 젖혔던 고개를 바로 한 카라마츠는 사진 속에서 거울만 보며 웃고 있는 카라마츠, 자신의 모습도 보며 결국 눈물을 흘렸다.

그 날은 보름달이 휘영청 밝은 날이였다. 밤임에도 불구하고 밝은 달빛에 몸을 뒤척이며 잠을 자지 못했던 때였다. 마침 잠에 들려던 새벽 2시에 밖에서 외치는 치비타의 목소리가 몹시도 짜증스러웠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우리의 설움이 시끄럽게 외치던 치비타가 아닌 기둥에 묶여 옴짝달싹하지 못했던 카라마츠를 향하고선 우리는 다시금 잠에 들었다. 그리고 그날은 몹시도 이상한 꿈을 꾸었다.

북적거리는 부엌에서의 소음이 잠에 빠진 나의 귓가를 간질였다. 맛있는 된장국 냄새가 이불 사이로 스며들어 오는것 같았다. 기분좋은 아침햇살을 맞이하며 조심스레  눈을 떠본다. 기지개를 하면서 주위를 둘러보니 아직도 동생들은 꿈나라인 모양이다.

그러나 허전한 빈자리가 하나.
있어야할 형제가 없는것에 의아함을 가졌다. 카라마츠 녀석 벌써 내려간건가.

아직 자고 있는 동생들은 깨우지 않게 조심스레 자리에서 일어난다. 방문을 닫고 계단을 사뿐히 밞아본다. 카라마츠는 워낙 성실한 녀석이였으니 가끔씩이라도 엄마의 아침준비를 돕곤 했었다. 별로 도와주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지난밤의 일이 마음에 걸려 카라마츠의 안위를 확인하고 싶었을 따름이였다.

[어머. 오소마츠 일찍 일어났네. 일어났으면 반찬 좀 옮겨다 주렴.]

부엌 어디에도 카라마츠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거실에 몸을 살짝 기울여봐도 카라마츠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에. 카라마츠는?]

분명 엄마의 상차림을 도와주고 있었을 거란 내 예상이 빗나가자 불안감이 엄습했다.

[카라마츠 2층에 없니? 여긴 안 내려왔단다.]

엄습해오는 불안감 속에 어제의 일을 떠올렸다. 우리가 잠결에 심한 짓을 했지만 집에 들어오지 않다니 무슨일이 생긴게...

곱씹어보는 지난날의 행동을 후회하던 차에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젯밤 일로 카라마츠의 머리에서는 피가 흘렀고 어딘가 창백해보이는 표정의 카라마츠가 들어왔다.

[다녀왔어.]

묘하게 분위기가 바뀐 채 생기가 돌지않는 얼굴에 소름이 돋아났다.

[카라마츠 괜찮아?]

내 얼굴을 보니 잠깐 흠칫하더니 아무렇지 않은 척 대답한다.

[아아. 괜찮아.]

씩 웃는 표정에 왠지모를 이질감이 느껴졌다.

카라마츠가 맞아...?

「쵸로마츠」

아침에 일어나니 지난 밤 거하게 거사를 치른 카라마츠가 붕대를 감고선 나를 반겨주었다.

[일어났어?]

눈동자는 빛을 잃었고 창백한 얼굴의 카라마츠가 눈에 들어왔다.

[뭐야 너 얼마나 아픈거야. 얼굴이 새하얗네.]

쓰다듬으려는 손길이 허우적대며 카라마츠의 얼굴에 닿지 못했다.

[아프니까 만지지말아줘.]

가뜩이나 창백해 보이는 얼굴에 싸늘한 표정이 드리우자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아...응..미안..]

뭔가 이상함을 감지했지만 그게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그러니까..이름이..?]

카라마츠가 이상한 질문을 던져온다. 설마 나까지 다 까먹은건가?

[카라마츠 내 얼굴도 잊어버린거야? 쵸로마츠잖아. 아무리 얼굴이 같은 애들이 여섯명씩이나 있어도 형제 이름도 까먹는건 좀 너무하다고.]

카라마츠의 이상함이 느껴져도 그저 기분탓이길 바라며 평소와 같은 어조로 카라마츠와 대화를 이어간다.

[에..여섯..? 그럼 육쌍둥이?]

기억이라도 잃은 것인지 마치 처음 듣는 다는 듯한 반응이 점점 더 위화감이 들었다.

[너 머리맞아서 기억이라도 잃은거 아냐..?]

몸을 감싸는 위화감을 애써 무시하곤 카라마츠에게 질문을 던진다.

[아아. 그럴지도 모르겠다.]

마치 정답을 찾은 듯한 카라마츠의 표정이 기분이 나빴다. 환하게 웃는 표정이 꼭 다른 사람 같았다.

너 카라마츠야...?

「이치마츠」

쿠소마츠는 원래 이상했지만 오늘의 카라마츠는 더더욱 이상했다.

[에. 너가 그러니까 쥬시마츠?]

2n년을 살면서 외부의 사람들이 우리를 헷갈린적은 비일비재했어도 가족 그것도 같은 얼굴을 한 형제가 몰라본다고 하니 얼마나 이상하지 않을수 없는가.

[뭐? 너 드디어 머리가 어떻게 된거 아냐?]

짜증스러운 말로 대꾸하니 카라마츠는 잠시 골똘히 생각하는것 같았다.

[그럼 오소마츠?]

아무리 멍청하더라도 형제의 이름까지 까먹는건 좀 너무하지 않나.

[하? 이치마츠라고 이름하나도 몰라서 알려줘야겠냐?]

쏘아대는 말에도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상한 말을 지껄인다.

[다 똑같이 생겨서 구분하기 힘드네.]

이상한 말을 지껄이는 쿠소마츠에 묘한 위화감이 들어  그대로 두고 집을 나와버렸다. 마치 쿠소마츠가 아닌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는 기분이였다.

저녁이 되어 길을 가던 냥코와 같이 귀가를 했다. 워낙 자유로운 고양이지만 이렇게 가끔씩 우리집에 놀러오기도 한다.

집에 도착하니 아무도 없어 맥이 빠진다. 거실에서 낮잠이나 잘까.

졸리네. 지금 자면 밤에 잠 안오는데...

[캬!!]

잠에 빠져드려는 순간 안고 있던 냥코가 문쪽을 향해 샤우팅을 해댄다. 원채 사납게 굴지 않는 고양이라 같이 있던 내가 더 당황스러웠다.

[냥코 왜그래?]

곧이어 들어오는 카라마츠의 모습에 냥코는 사납게 울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싸늘한 표정의 뛰쳐나가던 냥코를 쳐다보더니 씩 웃는 모습에 공포감이 일렁였다. 엄슴하는 불안감이 드디어 무엇인지 알 수 있을것 같았다. 저 녀석은 카라마츠가 아니야.

[너...누구야...]

씩웃던 카라마츠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카라마츠잖아?]

뭐가 재밌는지 낄낄대는 카라마츠가 곧이어 말을 이었다.

[정말이지 안쓰러워 죽겠어.]

낄낄대며 쳐다보는 카라마츠의 모습에 몸이 떨렸다.

저건 카라마츠가 아니야.

「쥬시마츠」

[너는 쵸로마츠?]

이상하다.
카라마츠형이 나를 몰라본다. 어젯밤 일때문인걸까? 근대 뭔가 이상해.

[쥬시마츠입니다!]

[아. 미안 다 같은 얼굴이라 구분이 힘드네.]

어깨를 토닥거리고 지나가려는 카라마츠형에게서 뭔가 이상한 기운을 감지했다. 그러고는 곧바로 카라마츠형의  팔을 붙잡는다. 카라마츠형이 아니네.

[너 누구야. 카라마츠형은 어디간거야.]

느리게 눈을 감았다 뜨는 카라마츠로 보이는 이 사람의 눈에는 빛이 없었다. 분명 냄새도 얼굴도 다 카라마츠형이지만 안에는 마치 다른 사람이 들어있는 것 같아.

[무슨소리인지 모르겠네. 내가 카라마츠잖아?]

잡은 손목에 힘을 주어본다.

[거짓말 하지마. 카라마츠형이 아니잖아 너.]

눈을 굴리는 표정마저 느리게 느껴지는 이 순간.
침을 삼키는것 마저도 조심스러워진다. 카라마츠형인 척하는 이 녀석을 어쩌면 좋을까.

[그걸 어떻게 확신하지?]

살며시 웃는 모습이 누가봐도 카라마츠형이다. 하지만 아니야. 카라마츠형이 아니라구.

[느낌이 달라. 넌 대체 누구야.]

잡고 있던 손목을 카라마츠형이 팔을 비틀어 빼낸다. 손목을 쓰다듬으며 말하는 이질적인 카라마츠형. 대체 카라마츠형은 어디간걸까.

[벌써 들키면 재미없는데. 조금만 조용히 해줄래 그러니까...쥬시마츠?]

입가에 가져대는 손가락을 쳐다보며 나는 경악을 금치않을 수 없었다.

잡은 손목은 너무나 차가웠었는데 내가 잡은 팔에는 내 손자국대로 눌려있었다.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다시 복구됐어야 할 자국이 마치 내가 지금도 잡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정도로 눌려있었다.

[이게...무슨...]

덜덜 떨리는 손가락이 카라마츠형의 팔목을 가리키자 카라마츠형은 약간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밀했다.

[아아. 너가 세게 잡으니까 이러잖아.]

대체 그 몸은 어떻게 된거야. 넌 누구야.

카라마츠형은 어딨어?

「토도마츠」

[그러니까...토도마츠?]

2층에서 나갈 채비를 마치던 차에 카라마츠형이 불러왔다.

[왜? 뭔일 있어?]

부름에 응답하자 안심하는 표정의 카라마츠형은 어딘가 조금 이상했다.

[아니야. 아무일도 없어.]

빙그레 웃는 카라마츠형의 말에 별다른 신경은 쓰지않았다.

[어제는 너무 심했지 미안. 잠결이라 심한 짓을 했네.]

뭐 사과는 미리 해놓는게 좋으니까. 찜찜한 기분을 청산하고 싶은 마음에 뱉어내는 말은 어딘가 딱딱했다.

[미안. 그 사과는 받아줄수 없어.]

[하?]

아무리 진심으로 내뱉은 말이 아니였어도 카라마츠형은 이런 사과에도 기쁜듯이 사과를 받아주곤 했다. 그런데 사과를 받아줄 수 없다니.

[우리가 너무 하긴 했지만 사람이 사과하는데 받아주는게 예의아니야?]

거절받은 사과에 괜히 화를 내본다.

[이미 늦었는걸.]

짧게 미소짓는 카라마츠형의 모습이 어딘가 섬뜩했다. 마치 경고하는 듯한 말투에 몸을 조금 움츠렸다. 카라마츠형은 자신이 할말만 해대고는 그대로 계단을 내려가 밖으로 향했다.

[뭐...뭐야..? 카라마츠형 왜저래?]

평소와는 다른 카라마츠형의 모습에 이질감이 들었다. 카라마츠형 뭔가 이상해. 던지는 물음에 나는 아무런 해답도 찾을 수 없었다. 느껴지는 불안감이 대체 어떠한 이유때문인지 아무리 곱씹어봐도 해결이 나지 않았다. 복잡한 마음을 가지고 나는 집을 나섰다.

그리고 그날 밤 새벽까지 카라마츠형은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새벽 4시쯤 울리는 전화소리에 모두들 한껏 짜증이 났다. 곧바로 들려오는 아빠의 외침소리에 우리들은 계단을 구르듯이 내려갔다. 아빠가 전하는 소식은 어느새 잠마저 다 내쫓아버리고 모두들 얼어붙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