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니시 도루 나무위키 - mulanisi dolu namuwiki

무라니시 도루(예명, 일본어: 村西とおる)는 일본의 AV 감독이다.

전과

하와이 체포

1986년 말 하와이에서 로케이션 촬영 중 FBI, 하와이 주 경찰, 호놀룰루 시 경찰, 입국관리사무소에 의해 스태프 15명과 함께 체포되어 징역 370년을 구형받았다.[1] 무라니시의 2014년 인터뷰에 따르면 16명의 피의자에 대해 변호사도 7명 정도를 선임하여 변호비용으로 5천만 엔 정도를 사용하였고, 벌금 2천만엔 정도를 지불하여 기타 비용을 모두 합하여 총 1억 엔 정도가 소요되었다고 한다.[1] 인터뷰에서는 그저 미국의 자존심을 건드려 생긴 해프닝 정도로 해석하고 범죄 내용이나 재판 과정에 대한 언급은 하고 있지 않다.

전과 7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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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

'위안부' 관련 인식

무라니시 트위터에서 '위안부' 검색 결과

트위터에서 '위안부'에 관한 언급을 꾸준히 하고 있는데 이를 종합해 보았을 때 무라니시의 인식은, '위안부는 다만 한국의 매춘부들이었으며 아사히신문이 이들을 "종군 위안부"로 포장하여 반일·반정부 운동을 야기하고 수익을 내고 있다'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방점이 찍혀있는 것은 주로 아사히신문으로, 무라니시는 '위안부'를 단지 아사히 신문이 만든 수 많은 가짜뉴스 중의 한 예시로 애용하는 것 같다.

기타

사실 확인 필요 아래는 인터넷에서 논란들으로 검색되는 내용들로 사실 확인이 되어 있지 않으니 열람에 주의 및 수정이 필요합니다.

  • 지명 수배 후 체포, 징역 1년 5개월
  • 일본 최초 스토커 범죄 (당시 스토킹 관련 법률이 없었다고 함)
  • 배우의 자살 미수
  • 미성년자 출연
  • 배우의 개런티 3000억 엔을 떼어 먹음
  • 소속을 옮기려던 배우의 학력을 폭로
  • 출판이 허용되지 않은 사진을 배우의 은퇴를 막기 위해 무단으로 잡지에 투고

생애

1948년 후쿠시마현 출생, 영어 회화 세트 판매 세일즈와 비디오게임 수리업을 거쳐 AV 감독이 되었고, 3000편 이상의 AV를 제작하였다.[2][1]

기타

  • 페미니즘, 페미니스트에 대하여 좋은 발언을 하지 않는다. "페미니스트를 닥치게 한 일화" 따위를 자랑스레 말하고 다니는 것으로 보인다. 다음은 무라니시의 발언. “한 페미니스트가 약은 얼굴을 한 채로 물어보길, “무라니시 씨, 그렇게 말하지만 만약 당신의 딸이 AV배우라고 해도 허락할 것입니까?”, “멍청한 소리 하지 마. 내 와이프가 AV배우 출신이라구” 했더니 조용해지더라(웃음)”[3]
  • "전과 7범 50억(엔) 빛(前科7犯・借金50億円)"으로 유명하다. 이것이 일종의 수식어가 되어 있어서, 무라니시는 자신의 트위터 소개란에도 이 말을 적어 두었다.
  • 온라인 매체들의 소개에 따르면 거유, 붓카케, 혼반(本番), 하메토리 등의 용어를 정착시켰다고 한다.[2]

링크

  • 村西とおる - 트위터

같이 보기

  • 살색의 감독 무라니시 - 넷플릭스 재팬의 오리지널 시리즈.

출처

  1. ↑ 1.0 1.1 1.2 “伝説のAV監督・村西とおる氏、ろくでなし子事件を語る”. 2014년 10월 1일.
  2. ↑ 2.0 2.1 “帝王・村西とおるが語るAV業界の本音「嘘でなければ真実を描けない世界」”. 2019년 8월 19일.
  3. https://www.news-postseven.com/archives/20160819_43801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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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에 최근 공개되 주목 받고 있는 야마다 타카유키 주연 일본 드라마 <살색의 감독 무라니시>의 실제 주인공

'무라니시 도루'에 관한 일본 위키백과 정보들을 요약해봤습니다.

https://ja.wikipedia.org/wiki/%E6%9D%91%E8%A5%BF%E3%81%A8%E3%81%8A%E3%82%8B

실제 인물의 삶을 드라마가 극적으로 각색을 많이한 것 같습니다.

가급적 드라마 보신 분들이 읽어보시길 바라고요.

일본 AV(포르노)에 대한 이야기라서 읽는 사람에 따라 불쾌한 내용일 수 있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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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니시 도루(1948년 9월9일 출생)

일본의 AV(어덜트 비디오) 감독. 본명은 쿠사노 히로미

후쿠시마현 이와키시 출신, ‘※하메도리의 제왕’이라는 별명으로 유명

(※ハメ撮り: 본인이 카메라를 들고 직접 섹스를 하면서 촬영하는 포르노)

고교 졸업 후 상경해 물장사 등을 하다가 영어회화 교재, 백과사전의 세일즈맨이 되어, 능숙한 화술로 한달에 40세트의 판매고를 기록하는 등 우수한 실적을 거둠.

1970년대 후반 <인베이더> 게임 붐이 일었을 때는 게임기 설치, 판매로 재산을 모았는데, 신형 게임기 발표회를 보러 도쿄에 왔을 때 신주쿠 가부키초에서 ‘비닐본(비닐 포장된 에로 잡지)’를 접하고, 이것을 계기로 ‘우라본’(성기 부분을 모자이크 처리하지 않은 무수정 에로 잡지. 일본에서 불법) 제작 판매업으로 전환. 총 48개 점포를 거느린 ‘후쿠다이 칸다 서점 그룹’의 회장이 된다.

본인이 직접 모델로 참여한 ‘과격한 내용물’이 호평을 얻으면서 ‘비닐본의 제왕’이라 불릴 정도로 업계를 선도하는 존재가 된다. 전성기에는 일부러 삿포로 지역의 경찰서 부근에 점포를 내기도 했다.

1983년, 우라본을 통해 얻은 막대한 이익과 유통망을 통해 주간지도 창간하지만 자금 악화로 10호만에 폐간. 무라니시 본인도 외설 사진 판매 혐의로 지명 수배되었고, 1984년 체포된다. (징역 1년 5개월, 집행유예 4년). 이로 인해 후쿠다이 칸다 서점 그룹은 해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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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V 업계에서의 영광과 좌절

1984년 가을에 석방된 후 ‘무라니시 도루’라는 예명의 AV 감독으로 진출한다. ‘무라니시(村西)’는 당시 소속된 ‘크리스탈 영상’의 사장 니시무라(西村) 사장의 이름 한자를 뒤집은 것이고, ‘도루(とおる)’는 빚과 전과가 있는 본인이 다시금 세상에서 통(通る)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생각에서 지은 것이었다.

연출한 초기 작품들은 혹평을 받았지만, 1985년 11월에 발매한 다큐멘터리 형식의 ‘타치카와 히로미’ 주연 <치욕의 여자>가 전문잡지 ‘비디오 더 월드’의 호평으로 그해 1위를 획득한 것을 계기로 자신감을 얻었고, 시행착오 끝에 본인이 직접 감독, 남자 배우, 카메라맨을 겸해 실제로 섹스를 하는 ‘하메도리’와 “나이스하네요”, “고져스하시군요”, “에로티시즘과 아름다움의 콘트라스트로군요” 등 특유의 ‘무라니시 토크’(세일즈맨 시절의 경험을 통해 체득한 것)를 비롯해...

여배우의 얼굴에 사정함으로써 실제 섹스를 했다는 것을 어필하는 ‘안면 샤워’, 기차역 도시락(에키벤)을 파는 듯한 태세로 여배우를 안고서 행위를 하는 ‘에키벤 fuck’, 세라복과 스타킹을 거칠게 찢는 등 자신만의 스타일을 확립해 업계에서 지명도를 높여간다. 

여기에 1986년 취업안정법/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로 체포(17세 소녀를 출연시켰다는 혐의였는데, 나중에 보류 처분되어 석방)된 일로 일반인들에게도 유명해지게 됐고, 이후 매년 그의 체포를 둘러싼 보도가 이어지면서 매스컴에 이름이 자주 오르내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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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에서 모리타 미사토가 연기하는 '구로키 가오루'

야마타 타카유키가 연기한 '무라니시 도루'

무라니시의 작품이 폭발적인 지명도를 얻고, 그가 ‘어덜트 비디오의 제왕’으로 불리게 된 계기는 1986년 10월에 발매된 ‘구로키 가오루’의 <SM스러운 게 좋아>(SMぽいの好き)였다.

요코하마 국립대학에서 이탈리아 미술을 전공하던 양가집 아가씨이면서 변태스런 소리들을 내뱉고, 16살 이후로는 깎은 적이 없다는 겨드랑이 털을 당당히 노출한 구로키 가오루.

그리고 그녀에게 무라니시가 “느꼈을 때 한 번, 다시 또 느꼈을 때 두 번, 아 안 돼! 가버릴 것 같아! 할 때는 3번 불어달라”라며 건네준 조개 모양의 피리를 이용한 참신한 연출이 당시에 큰 화제를 불러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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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공중파 방송 출연 중 겨드랑이 털을 당당히 노출한 구로키 가오루

1986년 12월에는 하와이에서 로케이션 촬영을 하던 중(세스나기로 진주만 상공을 비행하면서 스카이 섹스 촬영) 무라니시의 동향을 감시하던 FBI 특별조사팀에 의해 ‘여권법 위반’ 혐의로 체포됐고, 징역 370년형을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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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반년 이상 현지 감옥에 수감된 뒤, 1억 엔 이상의 변호사비를 내고 법정 투쟁을 벌였는데, 이로 인해 아이러니하게도 무라니시의 유명세는 더욱 높아지게 된다. 무라니시가 당시 소니의 베타캠 카메라를 들고서 하얀 가운에 팬티만 입은 상태로 ‘하메도리’를 하던 강렬한 모습은, 일본 버라이어티쇼에서 개그맨들에 의해 패러디되었는데, 덕분에 무라니시의 존재는 당시 아이들과 주부들까지 알 정도가 되었다.

무라니시 본인의 독특한 말투도 화제가 되어, 시대의 총아로서 사업가, 평론가라는 타이틀을 달고 심야 방송, 성인잡지에 출연하며 매스미디어를 석권하는 존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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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4월에는 17세 소녀를 AV에 출연시킨 것이 적발돼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로 체포. 벌금 30만 엔의 유죄 판결을 받는다. 그리고 그해 7월에는 참의원 선거 출마를 선언. 9월에 ‘전일본 나이스당’을 세우고 대중매체 앞에서 하얀 가운에 팬티만 입은 모습으로 일장 연설을 한 것이 큰 주목을 받았지만, 결당식 다음날 16살 소녀를 AV에 출연시킨 것이 또다시 적발돼 징역 1년, 집행유예 5년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그 소녀는 성인이 된 언니의 신분증을 사용해 연령을 속이고 출연했다고 한다.

구로키 가오루는 이 사건에 대해서 “언제나 삽입하는 쪽이었던 무라니시 감독이 이번에는 삽입당했다(‘함정에 빠졌다’와 같은 발음)”고 발언했다.

1988년 9월에는 크리스탈 영상에서 나와 다이아몬드 영상을 설립. 당시 개통된 지 얼마 안 된 ‘요코하마 베이브리지’를 ‘에키벤 fuck’을 하며 질주하는 <요코하마 베이브리지의 여자>, 영화 <남자는 괴로워> 시리즈로 잘 알려진 시바마타를 배경으로 한 <카츠시카시바마타의 여자> 등이 호평을 얻었고 마츠자카 키미코를 발굴해 유행시킨 ‘거유 붐’을 통해 AV 업계에서 큰 성공.

다이아몬드 영상 본사에서 스탭과 10명 이상의 전속 여배우들과 공동생활을 한다. 여배우들에게 500~800만 엔의 고액 개런티와 명품 옷을 제공하고, 사진 촬영을 명목으로 해외여행에 데리고 다니는 등 무라니시는 방탕한 생활을 즐긴다.

하지만 비디오 영화들이 쇠퇴하고 부동산투자 실패, 통신위성사업권 투자 실패 등으로 다이아몬드 영상은 1992년에 약 50억 엔의 부채를 안고 도산한다.

1994년에 ‘돌아온 하메도리의 제왕’으로서 다시 AV 히트작을 내기도 했고, 1996년에 AV 업계에선 선구적으로 DVD를 판매하기도 했지만, 더 이상 예전 같은 위치에 오르지는 못하고 현재는 과거의 히트작들을 다시 판매하는 정도로 활동 중. 

아내는 전직 AV 배우 노기 마리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