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카모토 사토시 사망 - nakamoto satosi samang

2013년 사망한 클라이먼의 유족
“라이트와 공동창시… 절반 달라”

나카모토 사토시 사망 - nakamoto satosi samang

최고가 행진을 연일 이어가고 있는 가상화폐 비트코인의 창시자 ‘사토시 나카모토’의 정체가 밝혀질 가능성이 큰 재판이 1일부터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시작돼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이 13일 보도했다.

2013년 46세로 사망한 미국 컴퓨터 보안 전문가 데이비드 클라이먼의 유족들은 이 재판에서 “클라이먼과 호주 출신의 컴퓨터 공학자 크레이그 라이트(51) 2명이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가명을 사용한 비트코인의 공동 창시자”라며 라이트를 상대로 사토시 나카모토의 몫으로 배정된 비트코인 100만 개의 소유권 중 절반을 요구했다. 100만 개의 비트코인은 현재 가치로 약 640억 달러(약 75조 원)인데 그 절반인 320억 달러를 요구한 셈이다.

소송에서 클라이먼의 유족들은 라이트와 클라이먼 두 사람이 처음부터 비트코인 개발에 관여했고 함께 일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를 제시할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클라이먼이 사망한 후 라이트가 각종 서류를 위조하고 허위 자료를 취합해 두 사람 몫이었던 비트코인을 혼자 몫으로 가로챘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라이트 측은 클라이먼이 친구였지만 동업자는 아니었다며 “둘이 동업 관계가 아니었음을 밝혀낼 것”이라고 했다.

비트코인을 누가 처음 만들었는지는 가상화폐 업계의 최대 의문으로 남아 있다. 2014년 뉴스위크가 일본계 미국인 도리언 나카모토를 사토시라고 지목한 적이 있지만 사토시 측이 부인했다. 이후 2015년 미국 정보기술(IT) 전문매체 기즈모도는 익명의 제보를 통해 라이트가 진짜 사토시라고 주장했다.

김민 기자

사토시의 비트코인 76조원 소유권 놓고 플로리다서 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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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화폐 비트코인 모형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뉴욕=연합뉴스) 강건택 특파원 =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진행 중인 재판을 통해 가상화폐 비트코인의 창시자인 '사토시 나카모토'의 정체가 드러날지 관심을 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문제의 재판은 지난 2013년 4월 사망한 데이비드 클라이먼의 유족이 동업자인 크레이그 라이트(51)를 상대로 약 100만 개의 비트코인 소유권을 놓고 제기한 소송에서 비롯됐다. 현재 시세로 640억 달러(약 75조5천억원)에 해당한다.

클라이먼과 라이트가 모두 사토시이고, 따라서 사토시 소유의 비트코인 100만여 개 가운데 절반은 유족의 몫이란 주장이다.

호주 출신의 프로그래머로 현재 영국 런던에 거주하는 라이트는 지난 2016년부터 자신이 비트코인을 처음 만들었다고 주장했으나, 가상화폐 업계에서는 그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가 우세하다.

클라이먼의 유족도 라이트와 클라이먼이 초기에 비트코인 100만 개를 공동 채굴했다며, 유족이 절반인 50만 개의 비트코인을 가져갈 자격이 있다고 반박했다.

원고 측은 두 사람이 초창기부터 비트코인 개발에 함께 관여하면서 협력한 증거를 제출할 계획이다.

나카모토 사토시 사망 - nakamoto satosi samang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세워진 '사토시 나카모토' 조각상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유족을 대리하는 티보 나기 변호사는 WSJ에 "동반자 관계인 두 친구가 있었는데, 한 명이 세상을 떠난 뒤 나머지 한 명이 어떻게 모든 것을 독차지하려 했는지에 관한 재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라이트 측은 그가 비트코인의 단독 창시자이고 클라이먼의 역할은 없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를 갖고 있다고 밝혔다.

비트코인이 처음 등장한 것은 지난 2008년 10월 31일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누군가가 인터넷에 비트코인 시스템을 설명하는 9장짜리 백서를 올리면서부터다.

유족들은 2008년 초 라이트가 클라이먼에게 이 백서 작성과 관련해 도움을 요청했다고 주장한다. 이들이 협업해 함께 백서를 쓰고 비트코인을 개발했다는 것이다.

인터넷 공간에서 활동하던 사토시는 지난 2010년 12월을 끝으로 자취를 감췄다가 2014년 도리안 나카모토라는 인물이 진짜 사토시라는 뉴스위크의 보도에 "나는 도리안 나카모토가 아니다"라는 반박문을 올린 뒤 다시 사라졌다.

이어 라이트가 2016년 5월 자신이 비트코인의 창시자라고 주장했다가 거센 비판에 직면하자 사흘 뒤 사과문을 올리면서 자신의 주장을 철회했다. 그러나 이후 자신이 사토시가 맞는다며 말을 다시 바꿨다.

라이트에 대해선 해커이자 사기꾼에 불과하다는 평가가 많지만, 클라이먼의 경우에는 그의 컴퓨터 지식을 고려할 때 정말로 비트코인을 창시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전문가 평가가 나온다고 WSJ은 전했다.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21/11/14 07:11 송고

[사진]할 피니–위키피디아

[블록미디어 프로메타연구소장 최창환] 비트코인 커뮤니티가 나가모토 사토시의 협력자인 할 피니(Harold Thomas Finney. 5.4, 1956 – 8.28, 2014)의 사망 7주년을 애도했다.

Seven years ago today, Hal Finney left us.

Rest in peace to the husband, father, and cypherpunk who contributed to #Bitcoin in ways we’ll all never forget. 🙏 pic.twitter.com/beXhCkPFH4

— Documenting Bitcoin 📄 (@DocumentingBTC) August 28, 2021

할 피니는 초기에 다수(Adventures of Tron, Armor Ambush, Astrosmash and Space Attack)의 게임 제작을 이끌었던 컴퓨터 과학자다.

사이퍼펑크(cypherpunk)인 그는 나카모토 사토시와 협력해 비트코인을 개발했다. 사이퍼펑크는 암호를 이용해 사이버 공간에서 정부 간섭으로부터 개인의 자유를 지키자는 수학자와 컴퓨터 공학자들의 철학적 운동 그룹을 말한다.

아담 백, 닉 자보, 할 페니 등 다수가 비트코인 개발에 협력해 나카모토 사토시로 지목되기도 한다. 또 이들 모두가 나카모토 사토시라는 추측도 있다. 그토록 큰 족적을 한 사람이 남기기도 쉽지 않고, 또 흔적 없이 사라지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얼굴 없는 화가 뱅크시도 여러 사람의 협력이라는 설이 나오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할 피니는 이들의 삶과 비트코인의 역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뱅킹 온 비트코인’에서 자신이 사토시라는 설을 부인했다. 사토시로부터 메일을 받으면서 작업을 하고 그를 도왔다고 설명했다. 지병으로 사망한 그는 이 때도 건강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비트코인 역사는 할 피니를 사토시로부터 처음으로 비트코인을 받은 사람으로 기록하고 있다. 2009년 1월 사토시는 본인의 개인 컴퓨터(PC)를 이용하여 50 비트코인을 채굴한 뒤, 그에게 10 비트코인을 송금했다.

이후 할 피니는 본인의 PC에서 비트코인을 채굴했는데, 당시 블록 번호가 70번대였다. 창시자를 제외하고는 최초의 비트코인 채굴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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