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코닉스 조직도 - ai konigseu jojigdo

비행기 조종사 고글은 썼지만 날지 못하는 펭귄 뽀로로. 아이들에게 뽀로로는 친구 그 이상이다. TV용 애니메이션으로 110개국의 아이들이 시청하고 있다. 프랑스 최대 방송사인 TF1에서 무려 47%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출판, 완구, 통장(국민은행), 케익(뚜레주르)까지 관련 상품은 600여종에 이른다. 또한 뽀로로는 배용준, 김연아와 함께 한국 방문의 해 홍보대사로 위촉됐다. 캐릭터로는 처음으로 홍보대사 임명장을 받았다.
뽀로로를 탄생시킨 (주)아이코닉스 엔터테인먼트는 애니메이션을 기획ㆍ마케팅하는 전문회사다. 60여명이 채 안되는 이 기업의 연간 매출은 300억원. 물론 뽀로로가 일등공신이다. 매출의 반 이상을 이 귀여운 펭귄이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성공을 거둔 다른 작품들도 많다. ‘태극천자문’은 지난 한 해 국내에서 가장 히트한 작품으로 미국 방영을 앞두고 있다. ‘치로와 친구들’도 일본 NHK, 영국의 채널5 등 뽀로로가 뚫지 못한 방송사에 진출했다. 아이코닉스가 세계의 동심을 사로잡은 비결은 무엇일까?

미개척 유아 애니메이션 시장에 도전

최종일(41) 대표는 “뽀로로가 첫 작품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뽀로로는 수많은 캐릭터 중 운이 좋아서, 어쩌다 성공을 거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철저한 시장조사를 통한 전략적 접근, 까다로운 마케팅 전략, 거기에 실패의 아픔까지…. 성공에 이르는 모든 일련의 과정을 겪었다. 그는 애니메이션 제작에서 스토리ㆍ캐릭터ㆍ품질 등은 계속 나아지는데 왜 성공을 하지 못하는지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결국 찾은 원인은 작품 내부에 있지 않았다.
“문제는 시장구조였습니다.” 애니메이션 최강국은 단연 미국과 일본이다. 미국은 극장용 애니메이션이, 일본은 TV용 애니메이션이 주를 이룬다. 아이코닉스도 TV용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있었던 만큼 일본과의 경쟁은 피할 수 없었다. 그런데 2001년 당시 일본에서는 연간 200편 이상의 애니메이션들이 쏟아져 나왔다. 반면 우리나라는 4~5편에 불과했다. 그래서 전략적 접근을 시도했다. 일본 애니메이션은 주로 아동ㆍ청소년ㆍ성인용이었다. 그래서 틈새시장을 노려 유아용 제작에 나섰다.
시장분석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전 세계 유아용 애니메이션을 분석했다. 유아용 애니메이션은 부모가 선택해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교육적인 작품이 많다. “우리 아이들이(당시 4세, 7세)이 애니메이션을 보는 걸 관찰했어요. 너무 직접적인 교육적 메시지가 아니라도 아이들의 이해도가 높다는 것을 알았죠.” 이에 재미의 요소를 한층 강화했다. 이렇게 한 스텝, 한 스텝을 밟아 뽀로로는 탄탄한 성공의 길을 맞이한다.
‘뽀로로 시즌 1’ 제작에 걸린 시간은 3년. 뽀로로 캐릭터 탄생에는 천장이 넘는 그림들이 밑받침됐다. 펭귄을 선택한 것은 사람일 경우, 인종ㆍ문화적 배경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리고 강아지ㆍ곰ㆍ고양이ㆍ토끼 등은 이미 유명한 캐릭터가 있었다. “당시 핑구라는 캐릭터가 있었지만 내용을 차별화하면 승산이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핑구는 펭귄가족의 이야기이지만 뽀로로는 펭귄 친구들의 이야기로ㆍ곰ㆍ여우ㆍ공룡 등이 등장한다.

2003년 EBS에서 방영된 뽀로로의 첫 시작은 좋았다. 보통 유아용 애니메이션 시청률은 1~2%만 돼도 잘 나왔다고 하는데 5%가 나왔다. 하지만 최종 성공의 여부는 사업성과 즉, 매출에 달려 있다. 뽀로로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지만 초기 사업전개는 힘들었다. 책으로 만들었지만 유통시킬 출판사를 찾지 못했다. 당시는 시청률이 잘 나와도 사업 성공은 희박하다는 의식이 팽배해 있었다. 몇 군데 출판사를 찾아갔지만 무안만 당하고 돌아왔다. 굳은 마음을 먹고, 마지막으로 한 출판사를 찾았다. ‘적자일 경우 100% 보상해주고 흑자면 50%를 주겠다’는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했고, 결국 발간 2주 만에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1위에 등극했다.

품질 중심 라이선스 관리로 브랜드 가치 높여

이후 여러 출판사들이 줄을 섰고, 다른 라이선스 사업 제안도 물밀 듯 밀려왔다. 하지만 최 대표는 미래를 멀리 내다보았다. 쉽게 가는 법을 선택하지 않았다. “당장 매출이 오르지 않더라도 파트너회사와 시너지가 나올 수 있는지를 확인합니다.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는 것이죠.” 뽀로로는 로열티를 준다고 무조건 라이선스를 허락하지 않았다. 까다로운 품질 기준을 통과해야만 한다. 또 유아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게 아니라면 뽀로로 이름을 붙일 수 없다. 피자나 아이스크림 업체에서도 라이선스 요청이 밀려오지만 건강에 좋지 않다는 이유로 고사하고 있다.
뽀로로가 나온 이후에 국내 유아용 애니메이션은 많은 탄력을 받았다. 그는 뽀로로의 사례처럼 한국 애니메이션의 사업 전망은 밝다고 전망한다. “한국 영화의 전성기를 이끈 ‘쉬리’의 경우처럼 ‘뽀로로’가 국내 창작 애니메이션 활성화의 기점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앞으로 더 좋은 작품들이 많이 나올 것으로 확신합니다.”
(주)아이코닉스 엔터테인먼트는 출퇴근 시간이 자유롭다. 직원들은 어느 누구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 최대표는 개인비서는커녕 스케줄을 관리해주는 직원도 없다. “우리 직원들 제 출퇴근에 관심이 없습니다” (웃음). 그는 이 일은 단지 직업이 아니라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 해야 버틸 수 있고 효율도 높아진다고 말한다. “정말 열심히 일을 하는 사람도 그 일을 즐기는 사람만큼의 성과를 거두진 못합니다.” 그는 또한 모든 직원들에게 최고가 돼야 함을 강조한다. “국내 애니메이션 회사들이 아닌 세계적인 회사와 경쟁하기 위해서는 최고의 전문가가 돼야 합니다. 우리는 첫출발이 늦었기 때문에 더 빨리 뛰어야 합니다.”
2008년 한국문화진흥원에서는 뽀로로 캐릭터의 브랜드 가치가 헬로 키티(4천억원)와 푸우(3400억원)에 맞먹는 3700억원 정도라고 발표했다.
최 대표는 “뽀로로를 얼마나 오랫동안 살릴 수 있는지가 앞으로의 숙제”라고 말한다. 그는 뽀로로의 성공으로 다른 애니메이션 개발에 새로운 부담을 가지고 있지만 이것이 또 다른 도전의 이유라고 말한다.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것 이상으로 큰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는 문화상품이기 때문이죠.” 현재 아이코닉스는 ‘뽀로로 시즌 4’를 준비하고 있으며, 유아용 외의 아동용, 가정용 애니메이션 제작도 준비하고 있다. 또한 콘텐츠 사업 경험을 바탕으로 국내외를 포괄하는 강력한 글로벌 비즈니스 네트워크를 구축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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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로로 탄생 이전과 이후의 한국 애니메이션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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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뽀로로다! 노는 게 제일 좋아~♬” <뽀롱뽀롱 뽀로로> 오프닝 곡이 들리면 울던 아이는 울음을 멈추고, 떼쓰던 아이가 순식간에 얌전해진다. 일명 '뽀로로 효과’를 톡톡히 본 부모들은 '육아의 절반은 부모가 하고, 나머지 반은 뽀로로가 한다’는 말에 크게 공감하게 된다. 가정 평화에 기여한 바가 크니 노벨평화상을 주자는 우스개 소리가 있을 정도다. 2003년 탄생한 이후 뽀로로는 아이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아이들의 대통령으로 군림을 하고 있다.

아이들이 국내 애니메이션을 보며 자라게 된 것은 뽀로로가 탄생한 후에 가능해진 일이다. 1990년대 까지만 해도 미국과 일본의 애니메이션이 주를 이뤘다. 1990년대 아이들의 주말 아침 늦잠 잘 권리를 뺏아간 <디즈니 만화동산>이 대표적이다. 당시 아이들은 “디즈니 만화동산 시작한다!”는 말 한마디면 일요일 아침 8시에 눈이 번쩍 떠지는 경험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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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이후 한국은 미국, 일본 다음으로 세계 3위의 애니메이션 생산국이었으나 이렇다 할 대표 상품이 없었다. 애니메이션을 기획하는 미국, 일본과는 달리 뛰어난 기술과 저렴한 인건비 덕에 미국의 디즈니나 일본의 도에이 애니메이션 등으로부터 하청을 받아 그림을 색칠하고, 촬영하는 등의 OEM(Order Equipment Manufacturing) 사업만을 하는 국가였기 때문이다.

물론 1976년 <로보트 태권V>(김청기 감독)을 시작으로 아기공룡 둘리, 천방지축 하니, 머털도사, 두치와 뿌꾸 등 많은 국산 애니메이션들이 제작됐지만 디즈니의 애니메이션만큼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었다. 독창성과 작품성 측면에서 미국, 일본을 따라갈 수 없었으며 세계 시장을 고려하고 만든 캐릭터는 전무했다. 1980년대 가장 잘 나가던 '아기 공룡 둘리’는 국내에서만 큰 인기를 끌었으며 브랜드 총 매출은 2,486억 원, 총이익은 497억 원에 그친다. 세계적으로 성공한 브랜드인 키티는 총 매출 9,010억 원에 총 이익은 1,802억 원, 곰돌이 푸우는 8,029억에 1,606억 원으로 둘리와는 큰 차이를 보인다.

경쟁자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다

보통 애니메이션 산업은 프리프로덕션 [Pre-Production: 기획, 캐릭터 개발, 시나리오] - 프로덕션[Production: 색칠, 촬영] - 포스트 프로덕션[Post-Production: 녹음, 효과음, 음악]의 단계를 거친다. 또 제작된 이후에는 배급과 캐릭터 산업이라는 단계를 거치게 된다. 1990년대 까지 한국이 주로 담당했던 프로덕션에 투자되는 예산은 전체의 30~40%에 불과했다.

뽀로로를 기획한 최종일 아이코닉스 대표는 “왜 우리는 미국과 일본처럼 못하지?”라는 문제의식을 갖기 시작했다. 인건비가 오르면서 하청제작 국가로서의 입지가 위협받자 다른 업체들은 애니메이션 산업이 사양산업이라고 판단하고 시장을 떠났다. 그러나 최종일 대표는 프리프로덕션에서 새로운 시장을 보았다.  

아이코닉스라는 애니메이션 기획 회사를 만들고 시장에 내놓을 캐릭터 개발에 착수했다. 우선 경쟁국인 일본의 성공사례를 분석했다. 일본의 경우 아동, 청소년,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애니메이션이 대부분이며, 유아용 애니메이션이 거의 없었다. 또한 대부분 오락성이 강해 폭력적이고 선정적이라 7세 미만이 시청하기 적합하지 않았다. 최종일 대표는 이 점에 주목하여 경쟁자들이 시도하지 않은 유아물로 목표를 정했다.

철저한 시장분석과 체계적인 기획을 거쳐 탄생한 뽀로로

캐릭터 기획 단계부터 세계 시장으로의 수출을 고려했다. 따라서 피부색, 행동, 매너 등 지역적, 문화적 특성을 드러내지 않는 동물을 주인공으로 설정했다. 주인공을 강아지로 하자니 스누피가 시장을 꽉 잡고 있었고, 고양이는 톰이나 가필드가, 토끼는 피터래빗, 미피가, 곰은 푸우가 대표적인 캐릭터로 자리 잡고 있는 상태였다. 최종일 대표는 펭귄을 떠올렸다. 새이면서 날지 못하는데, 뒤뚱뒤뚱 걷는 특징이 있어 아이들의 호감을 살 수 있을 것이라 예측했다. 머리가 큰 유아의 특징을 살려 머리가 크고 몸이 작은 2등신 펭귄을 캐릭터로 선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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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미 시장에 나와 있는 펭귄 캐릭터에 대해 분석했다. 가장 유명한 펭귄 캐릭터는 영국 히트엔터테인먼트에서 배급하여 세계 60여 개국에 수출된 <꼬마펭귄 핑구>였다. 경쟁 캐릭터인 핑구의 디자인, 스토리, 연출, 제작방식, 마케팅, 수출전략 및 강점과 약점을 파악했다. 핑구가 펭귄가족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다 보니 흰색과 검은색을 많이 사용하고 있었다. 뽀로로는 핑구와 차별화를 위해 다양한 색상과 다양한 동물들을 등장시켰다. 뽀로로의 친구들로 곰, 비버, 공룡, 사막여우 등이 선택되었다.

주요 소비자들인 3세 이하 유아의 특성을 파악해 이들을 사로잡을 매우 섬세한 시나리오를 만들었다. 유아가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는 시간이 7분이라는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애니메이션의 분량을 5분으로 제한했다. 또한 3세 무렵의 아이들은 막 사회생활을 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친구들과 놀이하며 서로를 이해하는 이야기를 주로 다뤘다. 뽀로로 뿐만 아니라 여러 캐릭터들이 돌아가며 각 에피소드의 주인공을 맡았고, 나쁜 악당이 등장해 누구는 착하고, 누구는 나쁘니 착하게 행동하라는 교훈적 의미는 담지 않았다.

뽀로로의 성공 비결은 철저한 시장분석과 체계적인 기획을 통해 숨겨진 시장을 찾은 데에 있다. 경쟁 상대가 진출하지 않은 유아 애니메이션 시장에, 이렇다 할 적수가 없는 펭귄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소비자의 눈높이에 맞는 이야기를 풀어나갔기 때문에 가능했다.

아이디어로 부가가치를 창출하다 : One Source Multi-Use

최종일 대표는 애니메이션 사업이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0%에 불과하고, 나머지 90%는 부가 영역인 캐릭터 사업에서 나온다는 점에 주목했다. 따라서 뽀로로는 초기 아이디어 단계부터 캐릭터 사업에 진출할 것을 염두에 두고 제작되었다. 이른바 One Source Multi Use 전략이다.

보통 캐릭터들은 눈을 강조하는 특징이 있는데  뽀로로의 눈은 까만 바둑돌 같이 투박한 느낌이다. 일러스트레이터들은 성의 없어 보인다고 반대했지만 최종일 대표는 해외 아이들에게 이질감이 들지 않으며 봉재완구 제작하기 편안한 눈이어야 한다는 주장을 관철시켰다. 또한 조심성 없이 덜렁대는 크롱 캐릭터는 <조심해, 크롱!>와 같은 단행본을 만들기 위해 기획되었다. 날지 못하는 펭귄을 특징을 살린 <하늘을 날고 싶어요>는 출간 2주 만에 베스트셀러 대열에 오르기도 했다.

최종일 대표는 뽀로로라는 브랜드 관리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철저한 품질관리 기준을 통과한 제품에만 라이센싱을 줬다. 뽀로로 캐릭터가 들어간 상품은 조금 비싸더라도 기존 상품과는 차별화된 제품이어야 했다. 종이컵의 경우 홀로그램을 넣거나, 향균 기능을 넣는 등 소비자들에게 뽀로로가 들어간 제품은 다른 제품보다 좀 더 좋은 제품이라는 인식을 주도록 했다. 또한 패스트푸드나 아이스크림, 무기류 등 유아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것들은 라이선스에서 제외했다. 이러한 엄격한 브랜드와 품질 관리 덕에 '뽀로로 프리미엄'이라는 것도 생겨났다.

뽀로로, 국산 캐릭터 세계화 시대의 막을 열다

2003년 처음 세상에 나온 이래 뽀로로가 만들어내는 경제적 효과는 5조 7000억 원, 브랜드 가치는 8000억 원으로 추정된다. EBS에서 시청률 5%로 시작한 뽀로로는 이후 전 세계 100여 개국으로 수출되어 프랑스에서는 4~7세 대상 평균 시청률이 47%를 기록하기도 했다. 영국, 인도, 멕시코 등 세계 110여 개국에 수출되고 있으며, 최근에는 중국, 네덜란드까지 확장되며 새로운 '한류 붐’을 일으키고 있다.

외국 아이들 사이에서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명보다도 뽀로로의 나라가 더 익숙하다. 일례로 이탈리아에 이민을 간 부부의 아들이 친구들에게 동양인이라고 놀림을 받다가 '뽀로로의 나라에서 왔다'고 하니 갑자기 학교에서 인기 있는 인물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을 정도다. 이런 유명세 덕에 뽀로로는 2014 한·아세안 특별 정상회의의 어린이 홍보대사로 위촉되는 등 대한민국 대표 캐릭터로 외교적 역할까지 하고 있다.

한국 애니메이션은 뽀로로의 탄생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뽀로로의 탄생은 대한민국이 애니메이션 하청국가에서 애니메이션의 수출국가로 발돋움했음을 의미한다. 뽀로로의 성공을 발판으로 꼬마버스 타요, 코코몽, 로보카 폴리, 라바 등의 다양한 국산 캐릭터들이 제작되었으며 해외로 수출되고 있다. 현재 국내 애니메이션 시장에서 외국 캐릭터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국내 캐릭터들의 전성시대를 맞고 있다.

최종일 대표, 애니메이션 산업화를 이끌다

TV가 흔하지 않던 시절, 친구 집에서 애니메이션을 보고 집에 돌아와서 등장 캐릭터를 그리는 일을 취미로 삼았던 최종일 대표는 성균관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광고회사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우연한 기회에 자신이 몸담았던 금강기획 애니메이션팀에 배치되면서 학창시절 좋아했던 애니메이션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하는 일을 직업으로 꿈꾸게 되었다. 그는 10년간 근무했던 메이저 회사를 과감히 그만두고 아이코닉스를 설립해 애니메이션 시장에 뛰어들었다.

뽀로로의 성공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최종일 대표는 <녹색 전차 해모수>나 <수호요정 미셸>과 같은 다양한 애니메이션을 제작했으나 숱하게 실패했다. 끝없는 실패 덕에 한때 그의 별명은 '마이너스의 손’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최 대표는 실패했다고 좌절하기보다 실패의 노하우를 쌓았다.

그는 기획자로서의 자신감이 부족해 예술성을 강조하는 작가와 적당히 타협하면서 시장에서 실패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소비자인 아이들은 재미를 위해 애니메이션을 본다는 점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애니메이션에 예술성을 '가미’해야지, 예술 '그 자체’를 하려고 하면 안된다는 기업가로서의 소신을 갖게 되었다. 또한 그는 애니메이션은 단순히 제작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을 분석, 기획과 마케팅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믿게 되었다.

애니메이션에 기획이라는 분야가 전무하며 제작만이 존재하던 시절이었으므로 자신의 예술 영역을 침범하지 말라는 작가, 애니메이터, 감독과 끊임없이 부딪혔다. 심지어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에 아이코닉스를 벤처기업으로 등록하려고 하자 애니메이터도 없는 회사가 무슨 애니메이션 회사냐며 인증을 거부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모두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방법을 따라하기를 과감히 거부했고 애니메이션을 예술의 영역에서 산업의 영역으로 끌어냈다.

경쟁은 아이코닉스의 힘

최종일 대표는 경쟁을 통해 개인도 회사도, 산업도 발전할 수 있다는 철학을 갖고 있다. 그는 기업 내부의 경쟁을 강화하는 인사고과 제도를 만들어 직원들 간의 무한경쟁을 가능하게 했다. 또한 직원들에게도 '최고’, '1등’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자주 하고 있다. 아이코닉스가 업계 선두를 달리고 있기 때문에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음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그는 다른 기업과의 경쟁도 즐길 준비를 하고 있다. 대기업의 자본이 투자되어야 다양한 콘텐츠들이 제작될 것이고 경쟁을 통해 산업 전체가 발전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자본력이 큰 대기업의 진출이 아이코닉스에게는 위협이 될 수도 있지만 그는 경쟁상대 없는 1위 보다는 경쟁을 통한 발전이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

이러한 최종일 대표의 기업가 정신은 (주)아이코닉스의 성공의 원동력이다. '뽀롱뽀롱 뽀로로’뿐만 아니라 '꼬마버스 타요', ’로보카 폴리', '치로와 친구들', '태극천자문’, '제트레인저’ 등 지속적으로 국내 창작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고 수출하고 있다.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기반으로 출판, 완구, 음악, 공연, 테마파크, 라이선스, 어플리케이션, 뉴미디어 등의 다양한 사업을 하면서 한국 애니메이션 산업의 세계화를 주도하고 있다.

최종일 대표의 아이코닉스는 해외시장에서도 어느 정도의 성공을 거두었지만 여전히 미국의 디즈니나 일본의 헬로키티를 상대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늘 언급하는 '붉은 여왕 이론’처럼 오늘도 변화하는 시장에서 경쟁자를 앞서기 위해 남들보다 2배 이상의 노력을 기울이며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고 있다.

* 참고문헌: 최종일, 김용섭, <집요한 상상>, 쌤앤파커스

곽은경 (자유경제원 시장경제실 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