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 없는 사회 - gaeseong eobsneun sahoe

“누가 가져가면 누구는 잃어야 하는 제로 섬 게임이 개성은 아니다. 오히려 개성은 다양함 때문에 합계가 늘어나는 플러스 섬 게임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개성은 무조건 앞을 따라가는 양떼처럼 집단적이고 천편

이니, 황보, 려원, 은. 옷집이나 음식점, 혹은 무협지의 인물들 이름이 아니다. 요즘 인기 있는 여성 그룹 샤크라의 멤버들 이름이다. 나는 이 중에서 은이 좋다. 가수는 노래를 잘해야 한다는 나름의 기준에 맞기 때문이다. 더구나 청순미까지 있으니 금상첨화이다. 다른 사람들은 중성적 매력을 지닌 이니, 섹시 걸 황보, 지성파 려원을 그런 이유로 좋아한다.

그룹 S.E.S.에서도 나는 깜찍한 유진이나 하늘거리는 슈보다 리드 보컬을 맡고 있는 바다를 용감하게 좋아했다. 핑클에서도 다른 사람들이 미인인 효리나 공주 같은 유리, 세련된 진을 좋아할 때 가창력 있는 옥주현을 외롭게 좋아했다. 남성 그룹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다양한 캐릭터를 구비한 후 팬들의 낙점(落點)을 기다린다. 그토록 각양각색인 멤버들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것이 신기하다. 계획에 따라 결성된 프로젝트 그룹이기 때문일까.

너무 다양해서 색깔이 없는 문화

그러나 여기서 우리 문화의 부정적인 면이 보인다. 과격한 비유이지만 이들을 보면 ‘모듬회’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한꺼번에 여러 가지 회를 맛볼 수 있는 것, 그러나 진짜 회를 좋아하는 사람은 절대로 시키지 않는 것, 무난한 취향을 나타내거나 취향 간의 갈등을 원천 봉쇄하는 것, 그런 것에 어울리는 모듬회 말이다. 그들은 너무 다양해서 오히려 색깔이 없다. 종합 선물 세트처럼. 심지어 다른 그룹에도 있고, 다른 누구와 너무 흡사하다.

머리 염색과 청바지도 마찬가지이다. 처음에 금발로 염색한 사람을 보았을 때는 세 번쯤 쳐다보았다. 그러나 이제는 그냥 머리처럼 익숙해져서 이런 ‘노랑머리’들을 한 번만 쳐다본다. 또 올해에는 구슬을 달거나 다른 천을 덧댄 7부 나팔 청바지가 유행이다. 그래서 오랜 옛날도 아닌 지난해에 입었던 짙은 청색의 스판 청바지를 입고 나가면 졸지에 ‘북한 패션’이 된다.

이처럼 튀게 사는 것이 과연 시대를 앞서가는 전위일까. 아니면 시대에 처지지 않겠다는 처절한 몸부림일까. 이렇게 유행을 추종하는 데 아웃사이더 포비아, 즉 아웃사이더가 될까 봐 겁내는 공포증을 읽어내기도 한다. 남들처럼 하지 않으면 도태될 것 같은 두려움, 고지식한 원시인으로 취급될 것 같은 강박증 때문에 김남주 시계나 황신혜 헤어핀, 박원숙 가발을 산다는 것이다.

언뜻 1974년에 발표되었던 박완서의 단편소설 <닮은 방들>이 떠오른다. 여주인공이 살고 있는 18평 아파트는 평수와 가구 배치나 커튼 색깔, 식단과 요리법, 가족 간에 나누는 유머까지 똑같다. 노이로제에 시달리거나 다이어트하는 것도 동일하다. 최후의 수단으로 샌님 같은 자신의 남편과 짐승 같다는 앞집의 남편을 바꿔 보지만 결과는 허망하다. 포마드 냄새 나는 머리, 담배 냄새에 전 입, 쇠붙이 냄새가 나는 속살까지 자신의 남편과 일치한다. 그래서 간음한다는 쾌락이나 죄책감조차 들지 않는다. 박완서는 이를 통해 현대 사회의 획일성과 자본주의의 세속화를 고발했다.

2000년도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인 이만교의 <결혼은, 미친 짓이다>에서도 이런 국화빵 문화를 꼬집는다. 연애나 결혼조차 내부는 같고 위치만 다른 ‘체인점’ 같다는 것이다. 이럴 때 개성이란 ‘리어카에서 구입한 귀고리’에 불과하게 된다. ‘골목마다 같은 귀고리를 하고 같은 대사를 외우는 리어카 숫자만큼의 아가씨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미지의 시뮬레이션이 제공하는 구조적 모델이 개인을 비슷하게 만든다.

개성(個性)은 개성(皆性)이 아니다. 남들과 엇비슷한 것이 개성은 아니니까. 또 비슷한 것은 가짜이니까. 누가 가져가면 누구는 잃어야 하는 제로 섬(zero sum) 게임이 개성은 아니다. 오히려 개성은 다양함 때문에 합계가 늘어나는 플러스 섬(plus sum) 게임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개성은 무조건 앞을 따라가는 양떼처럼 집단적이고 천편일률적이다. 정해진 가이드 라인과 모방심리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일본 문화 확대 개방을 눈앞에 둔 지금 ‘나만의 것’이나 ‘우리만의 것’은 더욱 소중하다. 그래서 일본에 수출하기 위해서는 ‘일본에 없는 것을 가져오라’고 한 일본의 요구에 더욱 부끄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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