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여러분들은 사랑 손님과 어머니라는 소설을 읽어보셨나요? 저는 이것을 학교 다니던 시절에 교과서에서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전부를 읽진 않았고 이야기의 하이라이트인 절정 부분만 교과서에 있었지만 그 몇 페이지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 걸로 보아선 꽤나 강렬했나 봅니다. 자 그러면 오늘도 사랑손님과 어머니를 쓰신 주요섭 작가님에 대해 먼저 알아보고 글 속으로 들어가 봅시다.
주요섭은 평양에서 팔 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습니다. 평양의 숭덕 소학교를 거쳐 1918년 숭실중학교 3학년 때 아버지를 따라 일본으로 건너가서 아오야마학원 중학부 3학년에 편입을 합니다. 3.1 운동이 일어나자 서울로 돌아와 지하신문을 발간하다가 출판법 위반으로 10개월 형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후 중국으로 건너가서 1927년에 호강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 스탠퍼드 대학원에서 교육 심리를 공부했습니다. 동아일보사에 입사하여 일하다가 중국의 보인 대학에 교수로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일본의 대륙침략에 협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추방되어 중국에서 귀국했습니다. 그 후 경희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면서 국제 팬클럽 한국 본부 사무총장 및 위원장으로 지냅니다. <깨어진 항아리>를 매일신보에 발표하면서 등단했습니다. 이후 40편의 단편소설과 4편의 장편 소설과 2편의 중편소설을 남겼습니다.
사회 고발에서 애정의 시계로의 승화 주요섭의 작품 세계는 총 4단계로 나눠 살펴볼 수 있습니다. <추운 밤>, <인력거꾼>, <살인>, <개밥> 등은 주로 하층민의 가난한 생활과 반항 의식을 그리고 있는데 이 시기의 작품은 당시 유행한 신경향파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중국 상해를 배경으로 노동자를 비롯한 하층 계급의 비참한 생활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했으며, 그 밑바탕에는 강한 휴머니즘이 깔려있습니다. 이후 이 소설을 비롯해 <추물> 등을 발표하면서 문단의 주목을 받게 됩니다. 이 시기에는 주로 여성의 심리를 탁월하게 묘사한 소설을 많이 썼습니다. 기존의 윤리나 외모, 또는 배신으로 인한 사랑의 좌절이나 향수 등을 통해 진정한 삶의 의미를 추구했습니다.
사회적 혼란 속에서 인간의 본질에 대한 탐구 1946년에서 1958년까지 주요섭은 <입을 열어 말하라>, <망국 노군상> 등을 발표했습니다. 이 작품들에서는 광복 후의 무질서와 혼란을 고발하고 비판했습니다. 마지막으로 1960년부터 70년까지는 <죽고 싶어 하는 여인>, <여대생과 밍크코트>등을 발표했습니다. 이 작품들에서는 삶과 죽음의 문제, 인간다운 삶의 문제 등을 다루었습니다.
<사랑 손님과 어머니>의 내용에 대해 알아봅시다. 1인칭 시점으로 '나'인 옥희가 등장합니다. 여섯 살인 옥희는 과부인 어머니와 중학교에 다니는 외삼촌과 삽니다. 어느 날 사랑채에 아버지의 친구가 큰 외삼촌의 소개로 하숙을 들게 됩니다. 옥희는 아저씨가 집에 오면서 달걀도 실컷 먹을 수 있고 아저씨 방에도 자주 놀러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옥희는 어머니한테 잘못한 것을 사과하려고 몰래 꽃을 유치원에서 가져와서는 그만 아저씨가 주었다고 거짓말을 하게 됩니다. 어머니는 지금까지 한 번도 타지 않던 풍금을 연주하면서 눈물을 흘리십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아저씨에게 손수건을 갖다 드리라고 했는데 그 속에 무슨 종이가 들어있습니다. 그런데 아저씨는 그것을 보고는 얼굴이 파래지고 그 순간 구슬픈 곡조의 풍금 소리가 들려옵니다. 이후 아저씨는 다시 돌아올 것이냐는 옥희의 물음에 답하지 않은 채 짐을 챙겨 떠나고 어머니는 있던 달걀을 모두 삶아서 아저씨에게 갖다 드리라고 합니다. 어머니는 산에 올라가 아저씨가 탄 기차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바라봅니다. 산에게 내려온 후 어머니는 지금까지 열어 둔 풍금을 닫아 쇠를 채우고 찬송가 책에 끼워 두었던 마른 꽃송이를 꺼내 옥희에게 주면서 버리라고 합니다.
작품 해설 어머니와 사랑 손님의 관계를 누가 관찰하고 있는가?-옥희의 시점과 그 효과 이 작품은 여섯 살인 옥희의 눈을 통해 과부가 된 어머니와 사랑에 하숙하게 되는 젊은 교사 사이에 발생하는 미묘한 애정의 세계를 섬세하게 포착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어린아이가 화자로 나오는 독특한 효과 때문이었는데요. 사랑의 의미조차 알지 못하는 어린아이의 눈을 통해 성인의 감정이 묘사되었기 때문에 작품의 주제는 깊이를 얻기가 어렵지만 다른 한편으로 성인의 심리적 과정을 객관화하여 형상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얻게 된 것입니다. 대체로 어린이의 시선은 사물이나 사건에 대해 객관적인 가치 판단이나 이해가 부족하는 것이 특징인데 이 특징으로 인해 어머니와 아저씨 사이의 미묘한 검정의 흐름이 존재해도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옥희의 눈이나 입을 통해서 그 징표들만이 독자들에게 전달되지요. 즉 연애 감정이 싹트는 것은 분명한데 옥희가 이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독자들은 어머니와 아저씨의 관계에서 보이는 섬세한 감정을 해석하지 않은 채로 읽어 나가며 그들의 관계를 더욱 안타깝게 느끼는 것입니다. '내외'란 '조선시대 남녀간의 자유스러운 접촉을 금하였던 관습 및 제도'예요. 주로 여자의 행실을 규제하기 위함이었죠. 내외법이라고도 하는 이 규제의 대표격이라 할 수 있는 것은 '부부유별'이에요. 내외법에 따르면 아내는 안채에 거주하고, 남편은 사랑채에 거주해요. 여성은 '내사=집안 일' 를 담당하며, 남성은 '외사'를 담당해요. '외사'란 학문참여와 정치참여를 말하고요. 조선의 여성이 학문 참여와 정치 참여를 하지 못하게 된 것은 이 내외법 때문이었어요. 그러므로 내외 관습이 깨졌다는 것은 '요새 세상'이 근대라는 거죠. 7 '아내'의 어원을 알고 있나요? '안 + 해'예요. '집안에 있는 여자'라는 뜻이죠. 아내와 짝을 이루는 어휘는 '바깥양반'이고요. '아내'와 '바깥양반'은 모두 내외법을 상기시키는 가부장 문화의 어휘였어요. 8 '사랑손님'을 데려온 것은 큰오빠였어요. 그러니까 옥희의 외삼촌요. 여동생이 청상과부 6년째니 곁에서 보기 안스러웠겠지요. 큰오빠, 사랑손님, 경선은 친구였죠. 공부 같이 한 남자들이죠. 이 시절 공부란 '신학문'을 가리키고요. 공부한 곳을 가리키는 '어디 먼데'는 외국이겠지요. 사랑손님은 외국 유학 다녀왔나봐요. 어쩌면 '경선'도요. '경선'이 누구냐고요? 옥희 아빠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는 옥희가 이야기해주는 1인칭 관찰자 시점이다. 옥희이 어머니는 과부이다. 그러던 어느날 아버지의 옛날 친구이던 아저씨가 사랑방에 살게된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서로를 사랑하게 된다. 물론 이 책에서는 옥희가 어리기 때문에 정확히 '어머니와 아저씨는 서로 사랑한다'라고 써 있는게 아니라 어머니와 아저씨의 행동을 관찰하면서 매개자 역할을 하며 독자에게 알려준다. 이렇게 옥희가 이야기를 전개하면 아이의 시각을 통해 좀 더 순수하게 표현하고, 독자에게 상상하는 즐거움을 준다. 옥희는 유치원 선생님 책상에 있는 꽃을 가져다 어머니께 '아저씨가 주래'라고 하면서 어머니의 미묘한 감정을 확인시켜주고 갈등을 고조시키게 한다. 그리고 어머니가 옥희의 유치원 선생님이 치던 풍금과 같은게 있는걸 보고 이야기를 꺼내자, 그 풍금은 아버지가 주신 것 이다. 이 풍금은 아버지의 그리움을 나타내고, 아저씨 때문에 흔들리는 마음속의 갈등을 나타내는 소재이다. 그리고 아저씨가 떠나기 전에, 아저씨는 돈과 함게 편지를 보낸다. 어머니는 그 편지에 대한 답으로 흰색 손수건을 갖다드리는데, 흰색 손수건은 거절의 의미이고, 그것을 통해 아저씨가 자신의 마음을 표시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요즘 세상은 이혼을 하고 바로 결혼을 하는등, 재혼에 대한 거리낌이 없다. 하지만 이 당시에는 아직 재혼을 하면 사람들의 시선이 부정적이였고, 어머니는 옥희가 커서 피해가 갈까봐 재혼을 못 한다. 우리 어머니는, 그야말로 세상에서 둘도 없이 곱게 생긴 우리 어머니는, 금년 나이 스물네 살인데 과부랍니다. 과부가 무엇인지 나는 잘 몰라도, 하여튼 동리 사람들이 나더러 '과부 딸'이라고들 부르니까, 우리 어머니가 과부인 줄 알지요. 남들은 다 아버지가 있는데, 나만은 아버지가 없지요. 아버지가 없다고 아마 '과부 딸'이라나 봐요. 라는 대사를 옥희가 하는데, 이는 과부라는 단어를 잘 모르는 옥희의 천진난만함을 강조하는 의미로 쓰였다는 의견이 대다수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어린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보며 말하기 때문에 저렇듯 냉소적인 말을 할 수 있다.'고 하기도 한다. 비록 옥희가 손님과 어머니에 시점을 맞추어 서술하기는 하지만, 간간히 드러나는 심정 묘사에서 '아버지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끔 하는 심리 서술들이 보이기 때문. 3. 등장인물[편집]
4. 기타[편집]
4.1. 대중문화에서의 등장[편집]
4.2. 패러디 작품[편집]
[1] 신빙성 없는 화자의 또 다른 예로는 채만식의 《치숙》이 있다. 이 경우는 마르크스주의(공산당!)에 빠진 고모부를 디스하는 철없는 화자를 통해 친일파를 에둘러 깐다. 이와 동시에 경제력이 부족함에도 가족에 얹혀살고 있는 고모부를 디스하기도 한다.[2] 일본 민법 제733조. 우리나라에서는 광복 이후 민법 제811조로 계수되었다가 헌법재판소에서 위헌결정을 받고 2005년에 폐지되었다. (일본 민법733조와 마찬가지로 태어난 아이가 누구인지 판단하기 위한 취지였기 때문에, 바로 아이를 출산한 경우에는 6개월의 경과없이 재혼이 가능하도록 단서 조항이 붙어 있었다.) 일본의 경우 2015년에 최고재판소에서 일부위헌 결정을 받고 100일로 단축되어 시행중이다. 6개월 재혼 금지 조항은 일본 메이지시대인 제정된 조항으로, 여성이 바로 재혼해 아이가 태어날 경우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임신 여부를 판별할 수 있는 기간을 6개월로 정한 것이다.[3] 아저씨가 아빠였으면 좋겠다.[4] 요새는 재혼가정이 많긴 하나 당시만 해도 과부가 재혼하면 좋지 않은 평가를 받았으니, 과부와 재혼하려는 남자 집에서도 당연히 아이까지 있는 과부가 자기 가족 안으로 들어오는 것에 질색했을 가능성이 높다. 요새도 애딸린 편부/편모와 재혼하는 것에 거부감을 가지는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당시에는 오죽했을까 싶다. 이 작품보다 한세대 뒤에(1948년 작) 나온 최인욱 작가의 <개나리>를 보면, 과부가 재혼하는 것까지는 완화됐지만 아이까지 딸린 과부가 주인공이라 그녀와 재혼하는 남자가 "아이는 친정집에 놓고 오라"고 강요하는 장면이 있다. 결국 여주인공은 갈등하지만 자신의 사랑을 위해 비정하게 아들의 곁을 떠나게 된다.[5] 서술자일 뿐이지 주인공은 아니다.[6] 정확히는 작은외삼촌과 외할머니는 옆집에 사시는 것이다.[7] 다만 일제강점기에 자녀를 유치원에 보낸다는 생각을 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그 지역에서는 먹고 살 만하며 교육 받은 집에 속한다. 실제로 극중에서도 옥희가 말하기를 당장 먹고 사는 데에는 지장이 없지만 삯바느질과 하숙비는 부식거리, 간식거리, 옷 등 부가적인 지출, 즉 그때 그때 필요한 현금을 마련하기 위해 하는 거라고 나왔다.[8] 사랑 손님은 아버지와 큰외삼촌과의 지인이고, 옥희 집에는 아직 중학생인 작은외삼촌이 같이 살고 있다.[9] 옥희 어머니의 오빠.[10] 옥희 어머니의 남동생.[11] 옥희의 아버지의 지인이기도 하다.[12] 일반적인 단어는 물론 어미의 가장 많은 부분을 서울말에서 빌려왔으나 북한에서는 이것을 평양말이라고 주장한다. 정치적 성격의 주장이라 이에 반하는 주장을 북한이 싫어한다. 이것 때문에 서울말과 평양말이라는 문화어가 비슷하다는 주장과 방언 차로 표준어와 문화어가 차이가 심하다는 모순된 주장이 돌고 있다.[13] 김동엽(1938) 문서 참조. 황해도 봉산 출신 야구 감독이다.[14] 한국군이 겨울에 눈 맞아가며 싸웠던 전투는 1950년 말에서 51년 초, 중공군의 참전으로 인한 후퇴 및 반격기, 그리고 그 이후의 지리멸렬한 고지전 가운데 겨울 시즌이 최근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