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손님과 어머니 교과서 - salangsonnimgwa eomeoni gyogwaseo

 안녕하세요~ 여러분들은 사랑 손님과 어머니라는 소설을 읽어보셨나요?

저는 이것을 학교 다니던 시절에 교과서에서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전부를 읽진 않았고 이야기의 하이라이트인 절정 부분만 교과서에 있었지만 그 몇 페이지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 걸로 보아선 꽤나 강렬했나 봅니다.

자 그러면 오늘도 사랑손님과 어머니를 쓰신 주요섭 작가님에 대해 먼저 알아보고 글 속으로 들어가 봅시다.

 

 

 주요섭은 평양에서 팔 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습니다. 평양의 숭덕 소학교를 거쳐 1918년 숭실중학교 3학년 때 아버지를 따라 일본으로 건너가서 아오야마학원 중학부 3학년에 편입을 합니다.

3.1 운동이 일어나자 서울로 돌아와 지하신문을 발간하다가 출판법 위반으로 10개월 형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후 중국으로 건너가서 1927년에 호강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 스탠퍼드 대학원에서 교육 심리를 공부했습니다.

동아일보사에 입사하여 일하다가 중국의 보인 대학에 교수로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일본의 대륙침략에 협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추방되어 중국에서 귀국했습니다.

그 후 경희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면서 국제 팬클럽 한국 본부 사무총장 및 위원장으로 지냅니다.

<깨어진 항아리>를 매일신보에 발표하면서 등단했습니다.

이후 40편의 단편소설과 4편의 장편 소설과 2편의 중편소설을 남겼습니다.

 

사회 고발에서 애정의 시계로의 승화

 주요섭의 작품 세계는 총 4단계로 나눠 살펴볼 수 있습니다.

<추운 밤>, <인력거꾼>, <살인>, <개밥> 등은 주로 하층민의 가난한 생활과 반항 의식을 그리고 있는데 이 시기의 작품은 당시 유행한 신경향파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중국 상해를 배경으로 노동자를 비롯한 하층 계급의 비참한 생활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했으며, 그 밑바탕에는 강한 휴머니즘이 깔려있습니다.

이후 이 소설을 비롯해 <추물> 등을 발표하면서 문단의 주목을 받게 됩니다.

이 시기에는 주로 여성의 심리를 탁월하게 묘사한 소설을 많이 썼습니다. 기존의 윤리나 외모, 또는 배신으로 인한 사랑의 좌절이나 향수 등을 통해 진정한 삶의 의미를 추구했습니다.

 

사회적 혼란 속에서 인간의 본질에 대한 탐구

 1946년에서 1958년까지 주요섭은 <입을 열어 말하라>, <망국 노군상> 등을 발표했습니다. 

이 작품들에서는 광복 후의 무질서와 혼란을 고발하고 비판했습니다.

마지막으로 1960년부터 70년까지는 <죽고 싶어 하는 여인>, <여대생과 밍크코트>등을 발표했습니다.

이 작품들에서는 삶과 죽음의 문제, 인간다운 삶의 문제 등을 다루었습니다.

 

 

 

<사랑 손님과 어머니>의 내용에 대해 알아봅시다.

사랑손님과 어머니 교과서 - salangsonnimgwa eomeoni gyogwaseo

 1인칭 시점으로 '나'인 옥희가 등장합니다. 여섯 살인 옥희는 과부인 어머니와 중학교에 다니는 외삼촌과 삽니다.

어느 날 사랑채에 아버지의 친구가 큰 외삼촌의 소개로 하숙을 들게 됩니다.

옥희는 아저씨가 집에 오면서 달걀도 실컷 먹을 수 있고 아저씨 방에도 자주 놀러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옥희는 어머니한테 잘못한 것을 사과하려고 몰래 꽃을 유치원에서 가져와서는 그만 아저씨가 주었다고 거짓말을 하게 됩니다.

어머니는 지금까지 한 번도 타지 않던 풍금을 연주하면서 눈물을 흘리십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아저씨에게 손수건을 갖다 드리라고 했는데 그 속에 무슨 종이가 들어있습니다.

그런데 아저씨는 그것을 보고는 얼굴이 파래지고 그 순간 구슬픈 곡조의 풍금 소리가 들려옵니다.

이후 아저씨는 다시 돌아올 것이냐는 옥희의 물음에 답하지 않은 채 짐을 챙겨 떠나고 어머니는 있던 달걀을 모두 삶아서 아저씨에게 갖다 드리라고 합니다. 어머니는 산에 올라가 아저씨가 탄 기차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바라봅니다. 산에게 내려온 후 어머니는 지금까지 열어 둔 풍금을 닫아 쇠를 채우고 찬송가 책에 끼워 두었던 마른 꽃송이를 꺼내 옥희에게 주면서 버리라고 합니다.

 

 

 

작품 해설

어머니와 사랑 손님의 관계를 누가 관찰하고 있는가?-옥희의 시점과 그 효과

 이 작품은 여섯 살인 옥희의 눈을 통해 과부가 된 어머니와 사랑에 하숙하게 되는 젊은 교사 사이에 발생하는 미묘한 애정의 세계를 섬세하게 포착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어린아이가 화자로 나오는 독특한 효과 때문이었는데요. 사랑의 의미조차 알지 못하는 어린아이의 눈을 통해 성인의 감정이 묘사되었기 때문에 작품의 주제는 깊이를 얻기가 어렵지만 다른 한편으로 성인의 심리적 과정을 객관화하여 형상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얻게 된 것입니다.

대체로 어린이의 시선은 사물이나 사건에 대해 객관적인 가치 판단이나 이해가 부족하는 것이 특징인데 이 특징으로 인해 어머니와 아저씨 사이의 미묘한 검정의 흐름이 존재해도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옥희의 눈이나 입을 통해서 그 징표들만이 독자들에게 전달되지요.

즉 연애 감정이 싹트는 것은 분명한데 옥희가 이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독자들은 어머니와 아저씨의 관계에서 보이는 섬세한 감정을 해석하지 않은 채로 읽어 나가며 그들의 관계를 더욱 안타깝게 느끼는 것입니다.

'내외'란 '조선시대 남녀간의 자유스러운 접촉을 금하였던 관습 및 제도'예요. 주로 여자의 행실을 규제하기 위함이었죠. 내외법이라고도 하는 이 규제의 대표격이라 할 수 있는 것은 '부부유별'이에요. 내외법에 따르면 아내는 안채에 거주하고, 남편은 사랑채에 거주해요. 여성은 '내사=집안 일' 를 담당하며, 남성은 '외사'를 담당해요. '외사'란 학문참여와 정치참여를 말하고요. 조선의 여성이 학문 참여와 정치 참여를 하지 못하게 된 것은 이 내외법 때문이었어요. 그러므로 내외 관습이 깨졌다는 것은 '요새 세상'이 근대라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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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어원을 알고 있나요? '안 + 해'예요. '집안에 있는 여자'라는 뜻이죠. 아내와 짝을 이루는 어휘는 '바깥양반'이고요. '아내'와 '바깥양반'은 모두 내외법을 상기시키는 가부장 문화의 어휘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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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손님'을 데려온 것은 큰오빠였어요. 그러니까 옥희의 외삼촌요. 여동생이 청상과부 6년째니 곁에서 보기 안스러웠겠지요. 큰오빠, 사랑손님, 경선은 친구였죠. 공부 같이 한 남자들이죠. 이 시절 공부란 '신학문'을 가리키고요. 공부한 곳을 가리키는 '어디 먼데'는 외국이겠지요. 사랑손님은 외국 유학 다녀왔나봐요. 어쩌면 '경선'도요. '경선'이 누구냐고요? 옥희 아빠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는 옥희가 이야기해주는 1인칭 관찰자 시점이다. 옥희이 어머니는 과부이다. 그러던 어느날 아버지의 옛날 친구이던 아저씨가 사랑방에 살게된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서로를 사랑하게 된다. 물론 이 책에서는 옥희가 어리기 때문에 정확히 '어머니와 아저씨는 서로 사랑한다'라고 써 있는게 아니라 어머니와 아저씨의 행동을 관찰하면서 매개자 역할을 하며 독자에게 알려준다. 이렇게 옥희가 이야기를 전개하면 아이의 시각을 통해 좀 더 순수하게 표현하고, 독자에게 상상하는 즐거움을 준다. 옥희는 유치원 선생님 책상에 있는 꽃을 가져다 어머니께 '아저씨가 주래'라고 하면서 어머니의 미묘한 감정을 확인시켜주고 갈등을 고조시키게 한다. 그리고 어머니가 옥희의 유치원 선생님이 치던 풍금과 같은게 있는걸 보고 이야기를 꺼내자, 그 풍금은 아버지가 주신 것 이다. 이 풍금은 아버지의 그리움을 나타내고, 아저씨 때문에 흔들리는 마음속의 갈등을 나타내는 소재이다. 그리고 아저씨가 떠나기 전에, 아저씨는 돈과 함게 편지를 보낸다. 어머니는 그 편지에 대한 답으로 흰색 손수건을 갖다드리는데, 흰색 손수건은 거절의 의미이고, 그것을 통해 아저씨가 자신의 마음을 표시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요즘 세상은 이혼을 하고 바로 결혼을 하는등, 재혼에 대한 거리낌이 없다. 하지만 이 당시에는 아직 재혼을 하면 사람들의 시선이 부정적이였고, 어머니는 옥희가 커서 피해가 갈까봐 재혼을 못 한다.  

우리 어머니는, 그야말로 세상에서 둘도 없이 곱게 생긴 우리 어머니는, 금년 나이 스물네 살인데 과부랍니다. 과부가 무엇인지 나는 잘 몰라도, 하여튼 동리 사람들이 나더러 '과부 딸'이라고들 부르니까, 우리 어머니가 과부인 줄 알지요. 남들은 다 아버지가 있는데, 나만은 아버지가 없지요. 아버지가 없다고 아마 '과부 딸'이라나 봐요.

라는 대사를 옥희가 하는데, 이는 과부라는 단어를 잘 모르는 옥희의 천진난만함을 강조하는 의미로 쓰였다는 의견이 대다수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어린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보며 말하기 때문에 저렇듯 냉소적인 말을 할 수 있다.'고 하기도 한다. 비록 옥희가 손님과 어머니에 시점을 맞추어 서술하기는 하지만, 간간히 드러나는 심정 묘사에서 '아버지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끔 하는 심리 서술들이 보이기 때문.

TV문학관에서 당 소설을 각색하여 다룬 내용에 따르면, 과부의 딸이라는 것 때문에 주변 아이에게 놀림받는 묘사가 등장하기도 한다. 소설에는 나오지 않는 내용이지만, 이 소설의 시점에서 서술되는 시대적 분위기상 충분히 가능한 묘사.

결국 어머니가 사랑 손님의 쪽지를 거절하는 이유는 옥희의 출생에 관련해서도 불륜의 사생아로 의심할 사회의 시선에 굴복하고 만 것이며, 때문에 옥희의 '우리 가족 같다.'라는 이야기를 적극 부정하기도 한다.

당시 재혼이 불가능하진 않았다. 여성은 기존 결혼의 해소나 취소일로부터 6개월이 경과하지 않은 경우에는 재혼할 수 없다는 단서만이 있었을 뿐이다.[2] 이는 재혼 후 태어난 아이가 누구의 친자인지 구별하기 위해 붙어있었던 것이지, 여성의 재혼 자체를 제약을 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사별이나 이혼 후 바로 출산을 한 경우에는 6개월의 제약없이 재혼이 가능했다.

또한 사랑 손님은 큰오빠의 친구이자 죽은 남편과도 친구였다. 즉, 옥희 어머니 입장에서 사랑 손님은 자기 오빠와 사별한 남편의 친구로, 소설의 묘사를 봐도 이미 큰오빠가 자주 집에 데려온 적이 있어 안면이 있는 사이였다.

그러나, 사랑 손님과 어머니의 공간적 배경은 지극히 폐쇄적인 분위기의 시골 마을이었다. 요즘에도 남편이 죽고 남편의 친구와 바로 재혼을 한다면 호사가들에 의해 "남편이 죽기 전부터 정을 통하던 사이가 아니냐?"라고 불륜을 의심받는 상황이다. 더구나 일제강점기만 해도 여성의 개가(재혼)는 치부이며 과부는 응당 수절해야만 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여전히 만연했다.

애초에 소설의 묘사를 보면 사랑 손님은 옥희 어머니를 짝사랑하는 것으로 나오며, 그 이전부터 짝사랑한 것으로 암시된다. 옥희 어머니의 남동생이자 옥희의 작은외삼촌은 신식교육을 받은 학생으로, 자기 누나와 사랑 손님에게 "내외하느냐", "진작 마음이 있지 않느냐"고 재혼을 종용하여, 사랑 손님과 옥희 어머니가 화를 내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동시에 옥희 어머니는 남편이 죽은 이래 남편의 친구인 사랑 손님과 이성으로 서로 호감을 느끼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옥희의 작은외삼촌과도 친분이 있을 정도로, 사랑 손님과 옥희 외가와는 상당히 왕래가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소설에서는 옥희의 큰외삼촌, 옥희 아빠, 사랑 손님은 친구 사이이다. 정확히 옥희의 큰외삼촌과 사랑 손님이 먼저 친구 사이였고, 이후 옥희의 큰외삼촌이 옥희 아빠와 친구 사이가 돼서 사랑 손님과 옥희 아빠가 친구 사이가 된 것이다. 또한 사랑 손님이 옥희 아빠보다 옥희 어머니를 먼저 알게된 것으로 나온다. 실제로 옥희 어머니는 큰오빠의 친구라서 사랑 손님을 알게 되었고, 이후 남편의 친구라서 왕래가 있었던 것으로 나온다.

즉, 옥희의 작은외삼촌은 별 생각없이 "두 사람은 매형이 죽은 이래로 친분이 있었고, 내가 보기에 속으로 좋아하는 감정도 있으니, 재혼해도 되지 않느냐?"라는 것인데, 구식 결혼관에선 동의하기 어려운 일이다. 남편과 결혼하기 전에 이미 서로 이성으로 좋아하고 있었다면, 옥희의 아버지가 과연 누구이냐는 불륜의 사생아 논란까지 불거질 수 있기 때문. 옥희 어머니는 남동생의 말에 화를 내고 방으로 들어가, 죽은 남편의 영정 사진을 끌어안고 펑펑 운다. 그리고 결정타는 옥희의 말[3]로, 이 말 때문에 옥희 어머니는 사랑 손님에게 나가달라고 하고, 옥희 어머니가 죽은 친구를 여전히 사랑하고 있음을 아는 사랑 손님이 떠나는 결말로 이어진다.

물론, 손님이 어머니와 옥희를 데리고 서울이나 도시로 이주하면 그만이지만, 결국 어머니는 사랑 손님을 떠나보내는 쪽을 택했다. 결말은 사랑 손님이 떠나고 옥희네 집을 방문한 계란 장수에게, 어머니가 "이제 저희 집에는 계란을 먹는 사람이 없어요"라고 하자, 계란을 좋아하는 옥희는 심통이 나서 떼를 쓰려다가 어머니의 파래진 얼굴에 걱정돼서 떼를 쓰지 못하고, 어머니가 아플까봐 걱정한다. 예전에는 '옥희가 과부의 딸이라는 멍에를 벗어날 수 없는 결말'이라고 아는 이들이 있는데 이는 소설의 내용이 아니라 TV문학관에서 각색한 내용이다. TV문학관에서는 옥희의 작은외삼촌이 말하던 '큰형의 친구라서 오래 전부터 둘이 아는 사이고, 그때부터 호감이 있어 보이던데'라는 내용은 모두 삭제되었다. 이걸 다 넣으면 남편보다 남편의 친구를 먼저 알고 마음이 있는 것처럼 묘사돼서, 옥희 어머니가 남편을 사랑하지 않고 실제로 남편의 친구인 사랑 손님을 사랑한 것으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단, 원작 소설이나 TV문학관이나 옥희 어머니가 사랑한 남자는 죽은 자기 남편이다. 원작에서 옥희 어머니가 남동생의 말에 자기 남편의 사진을 끌아안고 우는 걸 봐도, 남편을 사랑했지 사랑 손님을 사랑한 것은 아니며, 단지 오빠의 친구라서 남편보다 먼저 알았고 호감이 있는 정도였다가 남편이 죽고 하숙하게되고 자주 마주치면서 점차 발전된 상황이지 사랑으로 볼 수는 없다. TV문학관에서는 남편의 친구라서 알게된 것으로 각색되지만 역시 남편을 사랑한 것은 변함이 없다. 하지만 옥희 어머니의 파래진 모습의 결말을 보면, 옥희 어머니가 아직 사랑의 단계는 아닐지언정 점차 사랑 손님에게 마음이 기울어가고 있는 것은 명백하기에, 소설의 첫머리에 등장하는 옥희의 저 이야기는 참 가슴 아픈 말이라 생각하게 된다. 자기 남동생 말대로 옥희 어머니가 사랑 손님에게 마음을 품은 것은 사실로 보는 것이 타당하지만, 남편이 죽은지 얼마 안 된 상황과 남편보다 사랑 손님과 먼저 알고 지냈던 상황을 보면, 이렇게 헤어지는 게 가장 무난한 결말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옥희 어머니는 교회에 다니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매일 기도를 외우고 십계명을 암송한다. 당장에 옥희를 안고 자면서 기도를 하면서 '악에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해달라'고 한다. 이 악의 유혹이란 사랑 손님 그 자체와 사랑 손님에게 점차 자신의 마음이 기우는 것에 자신을 다독이는 것이다. 당시 시대적인 문제를 떠나 사별한 전남편을 잊지 않으려는 몸부림으로 보이기도 하는데, 사별한 남편과는 연애결혼이었다. 오빠의 친구인 남편의 구애를 받아 결혼한 것이기 때문. 그런데 남편 친구와 재혼하면 남편의 시가와는 남이 되고, 남편과의 추억도 모두 정리해야 하기 때문에 자신을 다독이는 것이다. 옥희는 이때 자신에게 입 맞춰준 엄마의 입술이 '불같이 뜨겁다'라고 하는데, 보통 문학에서 성인 여성의 입술이 '불같이 뜨겁다'라는 표현은 '남자가 필요하다'라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옥희 어머니의 육신은 남자를 갈망하지만 남편에 대한 애정을 고수하기 위해 기도문을 외우며 버티는 것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게다가 사랑손님의 경우에도 지금 플래그가 서서 당장 좋은 마음에 결혼할 수도 있지만, 서울이나 그 근교로 가서 그들끼리 완전히 잘 살기만 한다는 보장이 있는것도 아니며 과부와 결혼하려 한다는 것에 대해 자기 집안에서 질책할 경우[4] 이에 굴복해 옥희 모녀와 헤어질 가능성도 있다. 결국 사랑손님 역시 옥희 모녀에게 안정된 가정을 제공해줄 수 있는 구성원이 되리라곤 확신할 수 없는 존재였으므로, 옥희 어머니가 사랑손님을 거절했을 수도 있다.

3. 등장인물[편집]

  • 박옥희
    이 이야기의 서술자.[5] 여섯살 남짓의 순진무구한 여자아이로 이제 막 유치원에 입학했다. 과부 어머니와 두 외삼촌, 외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6] 아버지는 자신이 태어나기 한달 전 사망해 유복녀이다.
    사랑손님과 어머니의 관계를 눈치채지 못하며 나이에 걸맞게 순진하여(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성이 났다고 생각한다든지) 이후 어머니와 계란 장수의 대화에서 사랑 손님이 선물해준 인형에게 "어머니가 왜 이제 계란을 안 사는지 이해를 못하겠다"며 얘기를 나눈다. 어린이답게 매우 순진하고 천진난만해서, 어른들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생각나는 대로 설명해준다.

  • 어머니
    이야기의 주인공. 스물네살의 젊은 나이에 과부로 살고 있다. 1930년대답게 어린 나이에 시집왔는데, 옥희가 여섯살이고 얘가 태어나기 1달 전 남편과 사별했다고 하니 결혼한 나이는 열여덟살이나 그 이전, 그리고 열아홉이라는 젊다못해 어린 나이에 그야말로 청상과부가 된 셈이다. 오빠와 죽은 남편의 지인인 사랑손님과 약간의 플래그가 있었지만 현재의 가치관에 수긍하고 사랑 손님과 헤어진다. 이후 계란 장수가 계란을 팔러 오자 더 이상 계란을 팔지 않아도 된다고 하며 사랑손님을 잊으려고 노력한다.
    소설은 어린 옥희의 관점에서 진행하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나타나지 않지만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되어서인지 집안은 썩 넉넉하지 않은 모습이 나온다. 죽은 남편이 물려준 땅이 조금 있지만 그것만으론 생계를 꾸려나가기 힘들어서 삯바느질을 한다고. 사랑손님이 온 이유도 하숙을 받아서 생계에 보태려고 한 것이다.[7]

  • 아버지
    옥희의 아버지. 옥희가 태어나기 한달 전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작중 시점에서는 이미 고인이다. 옥희의 큰외삼촌의 친구이자 사랑 손님의 지인이기도 하다. 사망 원인이 작품에서 명확하게 나오지 않아서 병사와 사고사도 거론되지만 작중에 옥희의 아버지는 문인이었다고 나오며 친구 사이인 큰외삼촌과 사랑 손님 모두 당대 지식인으로 나오며 작가인 주요섭이 독립운동가에 문인이었다는 점으로 독립운동을 해서 사망했을 것으로 보는 평가도 있다.

  • 사랑 손님
    옥희의 아버지· 큰외삼촌과 친구이다. 교사로 발령받은 동네에 있는 옥희의 집 윗사랑에서 하숙을 하게 된다. 옥희의 말에 따르면 삶은달걀을 좋아한다고 한다. 옥희 어머니를 사랑하게 됐지만 옥희 어머니의 거절로 결국 마음을 접고 방학을 맞아 다시 서울로 떠난다. 이때 옥희에게 마지막 선물로 인형을 준다. 죽은 친구의 아내를 짝사랑했지만 사회적 인습을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사랑을 포기한, 전통적인 윤리에 순응하는 소극적 성격이다.

  • 외삼촌 2명[8]
    옥희의 큰외삼촌[9]과 작은외삼촌[10]으로 큰외삼촌은 대학생으로 서울에서 지내서 비중이 매우 적고 친구인 사랑손님에게 조카 옥희를 소개하는 것으로 잠시 등장하며, 작은외삼촌은 근처 중학교에 다니는 중학생이다. 여기서 큰외삼촌의 지인[11]인 사랑 손님이 주역으로 등장한다.

  • 외할머니
    작품 내 위치는 공기. 옥희의 아버지가 옥희의 탄생 1달 전에 사망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주는 정도가 등장의 전부인데, 하술하는 박형서의 작품에서는 결론을 내는데 중요한 소재로 사용된다.

4. 기타[편집]

  • '사랑 손님'의 사랑은 사랑방을 의미한다. 중의적인 의미로 채택한 제목일지도. 아울러 서울 사투리를 엿볼 수 있는 독특한 문학 작품 중의 하나다. 그런데 교과서에는 현대 표준어로 바꿔서 실을 때도 많다. ex) 참말로 훌륭한 얼굴이야요. → 참말로 훌륭한 얼굴이에요. 그러나 "과연 서울 사투리일까?"라고 의문을 품는 측도 존재한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작가 주요섭의 고향은 김일성의 고향인 평안남도 대동군이고, 소설 속 옥희의 집은 서울이 아닌 시골이므로 서울 사투리가 사용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평안도 사투리가 서울 사투리와 비슷하다고 주장하기에 나오는 주장이다.

  • 그러나 이 소설에 나오는 사투리는 진남포 지역의 말투보다 서울말에 가깝다. (평안남도 민속놀이 기록) 진남포, 평양 등 서울에 가까운 평안도 조차 전주 쯤의 거리와 비슷하니 구분되는 사투리가 있다. 훨씬 가까운 남한의 강화도, 교동도도 사투리가 있다. 안창호도 진남포 옆 강서 출신이지만 서울말과 사투리를 섞어 말한다는 것이 구분될 정도다. 북한 표준어인 문화어가 차용한[12] 평안도 사투리인 '-라요', 김일성도 쓴 '-이가' 같은 어미가 등장하지 않고, 봉산 같은 더 가까운 황해도에서 쓰이는[13] '기래'라는 말은 옥희는 아예 '그래'라고 한다. 그나마 평안도의 특징이라 볼 수 있는 말투는 경기도의 사투리와도 겹친다. 더군다나 서북 방언 문서에서 보듯 실향민끼리는 진남포 옆 평양도 사투리가 나름 심하다고 본다. 가장 결정적인 것은 형인 주요한 스스로 사투리를 싫어했다는 것이다. “평양은 문화적으로 뒤떨어지는 곳…이기 때문에 평양 출신의 문화인이나 예술가는 평양보다는 경성(서울)을 무대로 하고 활약해야 할 줄 압니다.”라고 주장하던 인물이었다. # 일제가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표준어를 강요해서 방언을 쓰던 사람들은 지역에 무관하게 그 말투를 낮게 보는 인식이 있었다. 채만식의 소설 등에도 묘사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 앞 부분이 번역되어서 1980년대(4차 교육과정) 고등학교 중국어 교과서에 실린 적이 있다.

4.1. 대중문화에서의 등장[편집]

  • 영화로도 1961년, 1978년 2차례 제작되었으며 영화 제목은 모두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진지하게 소설의 내용을 영화로 옮겼다. 자칫 1인칭 관찰자 시점이 흐트러져 평범한 B급 영화가 될 위험성이 있는 작품에도 불구하고 적절한 옥희의 시점과 전체시점을 번갈아가며 묘사하여 명작으로 끝마친다. 1961년 작품은 유튜브에도 올라와 있는데 시간나면 봐도 좋다. 계란장수의 '당신 눈까리엔 계란 껍질이 붙었소?'란 일침이 인상적이다 덧붙이면 패러디 작품으로는 정준호, 김원희 주연의 사랑방 선수와 어머니도 있다. 여기서 옥희 역은 고은아. 망한 영화지만 고은아는 볼만 했다 카더라

  • 1981년 KBS <TV 문학관>에서 단막극으로 드라마화도 되었다. 옥희 역에 아역배우 최문선, 어머니 역에 윤미라, 사랑 손님 역은 노주현이 연기했다.

  • 만화에선 기선이 <게임방 손님과 어머니>라는 작품으로 이 작품을 패러디했다. 이 작품은 서울문화사의 윙크에도 연재되었다.

  • 김은정의 아스피린에서도 권말에 잠시 패러디한 적이 있다.

  • 오늘은 좋은 날에서도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라는 꼭지로 선보였다. 옥희(여기서는 언년이) 역은 전미선, 어머니 역은 이영자, 사랑 손님 역은 이휘재.

  • 2006년에는 이 작품의 일부 설정과 제목을 패러디한 사랑방 선수와 어머니라는 코메디 영화가 나온 바 있다. 옥희 역은 고은아, 어머니 역은 김원희, 사랑 손님 역은 정준호.

  • 컬투의 김태균이 정립시킨 옥희 성대모사는 "아즈씨 아즈씨, 아즈씨는 삶은 달걀 좋아하우?"와 그 기괴한 웃음(…)을 통해 하나의 컬쳐 소스로 이 작품을 정립시켰다. 손호영, 홍경민 등은 이 김태균을 또 성대모사했다 SNL Korea에서도 패러디되었다.


2019년 여름 KT에서 5G 광고를 위해 패러디 광고를 제작했다. 역시 컬투 김태균의 성대모사가 일품. 원작과는 달리 여기서는 해피엔딩

  • 네이버 웹툰의 고시생툰 26화 겸 A양 특별편(바로가기)에서 패러디되었다.

  • 네이버 웹툰 실질객관동화 19화에서 패러디되었다. 아저씨에게 엄마가 보낸 편지에서 드러나듯, 사실은 엄마가 아저씨에게 푹 빠져서 딸내미고 뭐고 야반도주하려고 했지만, 그때는 원작과 달리 하드보일드(...)한 옥희가 이미 아저씨에게 재테크를 포함한 자산상황 및 은퇴 후 미래 계획을 물어본 뒤였다. 이 과정에서 옥희는 아저씨의 변변찮은 대답을 듣고는 "이 남자는 엄마의 남편감으로는 글렀다"라고 결론을 내린다. 결국 엄마의 편지를 전달하는 도중에 글씨를 베껴서 아저씨의 제안을 거절하는 것처럼 위조한다. 그래서 스토리는 원작대로 흘러가고, 옥희는 좌절하는 엄마를 현실적인 관점에서 위로하는 것으로 끝난다. 그러나 막상 옥희는 후일담에서 "엄마, 나 세탁소 오빠랑 살 거예요. 사랑에 조건이 있나요!"라고 쪽지를 남기고 가출한다. 이때 엄마 왈. "왜 이렇게 억울하지?"

  • 네이버 웹툰 계룡선녀전 22화에서 패러디되었다. 삶은 달걀 부분과, 옥희와 대비되는 불손한 점순이의 모습이 압권이다.

4.2. 패러디 작품[편집]

  • 이 작품에 대한 가장 파격적인 마개조로 박형서란 작가가 쓴 《'사랑 손님과 어머니'의 음란성 연구》라는, 논문의 형식을 빌린 패러디 작품(2006년, 단편집 "자정의 픽션"에 수록)이 있다. 이 작품에서는 21회나 등장하는 삶은 달걀을 검열삭제(…)의 상징으로 해석했다. 아즈씨는 삶은 달걀 좋아하우? 나두 삶은 달걀 좋아한다 옥희는 사실 6살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게 프로이트류의 심리 메타포까지 드립치면서 이 이야기 자체가 손님과 모계로 이루어진 회귀 과정(…)이라는 결말로 달려갔다. 작가의 후기에서는 '이런 실험적 방식의 글쓰기를 할 때 나는 극단을 추구한다. 쉽게 말해 갈 데까지 가보는 것이다. 내 글을 읽고 설득당한 내 멍청한 친구 몇이, 사랑 손님과 어머니를 음란 소설로 규정하자 기분이 좋았다'라고 표현한다. 작가가 처음부터 노렸다는 얘기다.

  • 전형섭 시인의 '소녀는 배가 불룩했습니다' 및 학도병 이슈와 함께 크로스오버 마개조를 당한 만화가 루리웹에 올라와 화제가 된 적 있다. 해당 페이지 내용인 즉슨, 소녀는 소년과 사랑에 빠지면서 검열삭제를 한 결과 소녀는 임신을 하게 되는데, 태기가 드러나기 전 소년은 학도병으로 참전, 겨울에 전사하게 되고,[14] 이후 그렇게 낳은 아기가 바로 이 소설의 박옥희라는 것. 물론 소설 시기상으로는 맞지 않지만 굉장히 절묘하게 구성된 작품으로 나오고 나서 명작 평가를 받게 되었다.

  • SBS 웃음을 찾는 사람들 초창기에 진행된 코너 라디오 극장에서는 컬투 사단이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를 패러디했다. 정찬우가 아저씨, 김태균이 옥희, 서동균(→강성범)이 해설, 서훈이 부엉이, 리마리오가 느끼한 손님, 전금선이 옥희 엄마를 맡았다. 이 코너가 히트친 후 김태균은 여러 코너에서 옥희 캐릭터를 다시 보이곤 했다. 안타까운 얘기가 있다면 학업과 코미디 활동을 병행하던 전금선의 언니가 살인사건에 휘말린 것, 범인은 그 정남규였다.


[1] 신빙성 없는 화자의 또 다른 예로는 채만식의 《치숙》이 있다. 이 경우는 마르크스주의(공산당!)에 빠진 고모부를 디스하는 철없는 화자를 통해 친일파를 에둘러 깐다. 이와 동시에 경제력이 부족함에도 가족에 얹혀살고 있는 고모부를 디스하기도 한다.[2] 일본 민법 제733조. 우리나라에서는 광복 이후 민법 제811조로 계수되었다가 헌법재판소에서 위헌결정을 받고 2005년에 폐지되었다. (일본 민법733조와 마찬가지로 태어난 아이가 누구인지 판단하기 위한 취지였기 때문에, 바로 아이를 출산한 경우에는 6개월의 경과없이 재혼이 가능하도록 단서 조항이 붙어 있었다.) 일본의 경우 2015년에 최고재판소에서 일부위헌 결정을 받고 100일로 단축되어 시행중이다. 6개월 재혼 금지 조항은 일본 메이지시대인 제정된 조항으로, 여성이 바로 재혼해 아이가 태어날 경우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임신 여부를 판별할 수 있는 기간을 6개월로 정한 것이다.[3] 아저씨가 아빠였으면 좋겠다.[4] 요새는 재혼가정이 많긴 하나 당시만 해도 과부가 재혼하면 좋지 않은 평가를 받았으니, 과부와 재혼하려는 남자 집에서도 당연히 아이까지 있는 과부가 자기 가족 안으로 들어오는 것에 질색했을 가능성이 높다. 요새도 애딸린 편부/편모와 재혼하는 것에 거부감을 가지는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당시에는 오죽했을까 싶다. 이 작품보다 한세대 뒤에(1948년 작) 나온 최인욱 작가의 <개나리>를 보면, 과부가 재혼하는 것까지는 완화됐지만 아이까지 딸린 과부가 주인공이라 그녀와 재혼하는 남자가 "아이는 친정집에 놓고 오라"고 강요하는 장면이 있다. 결국 여주인공은 갈등하지만 자신의 사랑을 위해 비정하게 아들의 곁을 떠나게 된다.[5] 서술자일 뿐이지 주인공은 아니다.[6] 정확히는 작은외삼촌과 외할머니는 옆집에 사시는 것이다.[7] 다만 일제강점기에 자녀를 유치원에 보낸다는 생각을 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그 지역에서는 먹고 살 만하며 교육 받은 집에 속한다. 실제로 극중에서도 옥희가 말하기를 당장 먹고 사는 데에는 지장이 없지만 삯바느질과 하숙비는 부식거리, 간식거리, 옷 등 부가적인 지출, 즉 그때 그때 필요한 현금을 마련하기 위해 하는 거라고 나왔다.[8] 사랑 손님은 아버지와 큰외삼촌과의 지인이고, 옥희 집에는 아직 중학생인 작은외삼촌이 같이 살고 있다.[9] 옥희 어머니의 오빠.[10] 옥희 어머니의 남동생.[11] 옥희의 아버지의 지인이기도 하다.[12] 일반적인 단어는 물론 어미의 가장 많은 부분을 서울말에서 빌려왔으나 북한에서는 이것을 평양말이라고 주장한다. 정치적 성격의 주장이라 이에 반하는 주장을 북한이 싫어한다. 이것 때문에 서울말과 평양말이라는 문화어가 비슷하다는 주장과 방언 차로 표준어와 문화어가 차이가 심하다는 모순된 주장이 돌고 있다.[13] 김동엽(1938) 문서 참조. 황해도 봉산 출신 야구 감독이다.[14] 한국군이 겨울에 눈 맞아가며 싸웠던 전투는 1950년 말에서 51년 초, 중공군의 참전으로 인한 후퇴 및 반격기, 그리고 그 이후의 지리멸렬한 고지전 가운데 겨울 시즌이 최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