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새인 사두개인 차이 - balisaein sadugaein chai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세례 베푸는 데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마 3:7)

바리새 파와 사두개 파는 예수님 당시에 열심당파와 함께 유대주의의 주류를 이루었던 활동적인 그룹이었다. 두 파의 기원에 괜해서는 잘 알려지고 있지 않다. 바리새 파는 아마도 경건한 자나 성도를 의미하는 하시딕의 계승자들이었을 것이다. 이 파는 마카비의 반역 기간이나 그 전에서까지도 헬라의 문화와 관습을 반대하였다. 마카비의 혁명은 이들의 지원을 받은 신앙적인 원리들에 동기가 되었다. 바리새인이란 말은 분리주의자란 뜻으로 그들의 기원에 잘 어울리며 다른 이름 아래 하시딤을 개혁했거나 재조직을 하였을 것이다. 그들은 이교도에게서만 아니라 세리나 죄인들에게서 자신들을 구별했을 뿐 아니라 율법을 모르는 유대인 군중들에게서까지도 분리하였다(요 7:49). 그들은 의식적으로 부정한 사람이나 사물과 일체의 접촉을 피하였다.
사두개인들은 여러 면에서 바리새인과는 대조적이었다. 그들은 타협자들이어서 하나님의 율법에 집착하는 사람들과도 어울렸고 헬라화의 확산에도 적대적이지 않았다. 그들은 제사장파여서 일반적으로 대제사장은 이 파에 속했다. 두개파는 사독에게서부터 온 것으로 이 사독은 다윗통치시에 아비아달과 더불어 대제사장직을 분담했었다(삼상 8:17; 15:24; 왕상 1:35). 그리고 솔로몬에 의해서 홀로 대제사장이 되었으며다(왕상 2:35) 마카비시대까지도 이 전통은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두 파는 여러 면에서 달랐다.
우선 신앙에서 사두개인들은 부활이나 천사나 영을 믿지 않은데 비해 바리새파는 그 모두를 믿었다. 조세프스에 의하면 사두개 파는 몸의 부활과 함께 영혼의 불멸을 부인하였다. 그들은 몸이 죽을 때 영혼은 파멸된다고 하였다. 역시 정경에서도 달랐다. 바리새인들은 교리와 권징을 위해 두 개의 표준을 인식하였다. 구약성경과 구전들이다. 그러나 사두개인들은 정경으로 모세의 오경만을 받아들였다. 더 나아가서 바리새인들은 사람의 자유와 그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과 함께 하나님의 작정을 믿었으나 사두개인들은 작정을 배격하였다. 그러나 두 파가 모두 그들 자신의 노력에 의해 구원을 얻는데서는 같았다. 사두개인들은 현실주의자여서 죽기 전 이 세상에서의 소유를 중시했다. 토지의 소유자로 무역을 통한 재산증식이나 성전세 등에 관심이 컸다. 물질의 소유로 안전을 추구한 것이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그들과는 달랐으나 역시 그들의 노력이나 선행을 통한 구원과 안전을 꾀하였다. 이들은 모두 어떤 표준에 대한 자기 노력을 통해서 안전을 추구한데서는 외적으로 흡사했다. 역시 이들은 예수님을 반대하며 그를 십자가에 사형시키는데 서로 협력했으며(16:1,6,11; 22:15,23; 26:3,4,59; 27:20) 후에는 부활의 증거를 저지시키는데 하나가 되었다(27:62).1)
바리새인들은 회당과 제휴한 유대인의 중류계급인데 비해 사두개인들은 제사장적 귀족계급이었으며 성전과 제휴하고 있었다. 예수님 당시에 그들은 권력과 돈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던 지도계급이었다.
조세프스는 바리새인들은 서로 사랑했고 공동체와 조화스런 관계를 창출해 냈으나 사두개인들은 그들의 행동에서 야비했으며 그들의 동료와의 대화에서 외국인에게 하듯이 무례했다고 하였다(War 2.166).

1) William Hendriksen, Matthew(Edinburgh:Banner, 1973), pp.201-203

✍️바리새인, 사두개인, 에세네파

AD 1세기 유대교는 바리새파, 사두개파, 에세네파로 나뉘어 있었다. 에세네파는 쿰란동굴을 중심으로 공동체를 이루며 금욕생활을 했기 때문에 성경에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은 여러 번 언급되고 있다. 사도행전 23장은 바울을 고소하던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자중지란을 보여 주고 있다.(행 23:1~10)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은 한목소리로 고성을 지르며 금방이라도 바울을 집어삼킬 것 같았다. 그러나 바울이 던진 한마디로 인해 바울에게 향하던 비난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급반전됐다.(행 23:9) 바울은 자신이 바리새인인 것과 자기가 신문을 받는 이유가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 때문이라고 말한다.(행 23:6) 이 말을 들은 바리새인들이 갑자기 바울을 옹호하기 시작했고, 이 과정에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사이에 큰 분쟁이 일어났다. 이런 반전이 일어난 이유는 오랜 세월 동안 이어져 온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갈등 때문이었다.

바리새인은 ‘분리된 자’란 의미인 히브리어 페루쉼(perushim)에서 유래되었다. 이들은 모세오경 외에 선지서와 장로들의 유전까지 받아들여 율법을 철저히 지키려고 했다. 바리새파에는 제사장뿐만 아니라 중산층까지 넓은 부류의 사람이 속해 있었다. 요세푸스에 의하면 1세기 예루살렘의 인구는 2만5000~3만명 정도다. 그런데 그 당시 바리새인의 수가 약 6000명에 이르렀으니 그 세력을 짐작할 수 있다. 이에 반해 사두개인은 모세오경만을 받아들였으며 정치적인 세력으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들은 당시 유대인의 사법기구인 산헤드린의 요직을 차지하며 정치, 종교, 경제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던 지식층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사두개인과 바리새인은 결코 접점을 찾을 수 없는 교리적인 차이를 갖고 있었다. 바리새인은 천사와 영의 존재, 부활까지 믿고 있었으나 현세주의적이었던 사두개인은 부활과 영적인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다.(막 12:18, 눅 20:27, 행 23:8)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은 율법을 신봉하며 하나님을 믿고 있었지만 율법의 완성자인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했다. 또 복음과 선교를 방해하던 세력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상윤 목사(영국 버밍엄대 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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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교회 세우신 예수님 핍박하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하나님을 누구보다 사랑한다던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에게
침례 요한은 왜 저주를 퍼부었을까.


성경에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첫 등장은 침례 요한이 요단강에서 침례를 베푼 현장이었다. 요한은 침례를 받기 위해 몰려드는 그들에게 돌연 납득하기 어려운 말을 내뱉는다.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침례 요한은 누구보다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자부하며 열심히 신앙했던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에게 왜 이러한 저주를 퍼부었을까.

바리새인(Pharisees)

‘분리주의자’라는 뜻으로, B.C. 150년경 유대교 안에서 발생한 바리새파를 추종하던 사람들을 일컫는다. 바리새인들은 A.D. 1세기까지 사두개인들과 함께 정치•종교적으로 유대사회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밤에 예수님을 찾아갔던 유대인의 관원 니고데모, 사도들이 박해를 당할 때 입바른 소리를 했던 교법사 가말리엘, 후에 개종하여 사도가 된 바울이 바리새파 출신이다(요한복음 3:1~21, 사도행전 5:33~39, 빌립보서 3:5).


교리적으로는 부활과 천사의 존재를 믿었고, 유대교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율법, 특히 모세오경에 기록된 관습이나 전통들을 엄격히 지켰다. 금식, 십일조에 관한 규범도 철저히 지켰다. 그들의 치명적 실수는 예수님과 제자들의 새 언약의 도에 입각한 행위를 비난하고 공격했다는 것이다. 형식에 집착한 나머지, 예수님과 제자들의 일련의 행위가 민족적 관습과 전통에 반하는 행위로 비쳐졌기 때문이다. 다음은 바리새인들의 오류에 대한 성경의 기록이다.


바리새인들과 또 서기관 중 몇이 예루살렘에서 와서 예수께 모였다가 그의 제자 중 몇 사람의 부정한 손 곧 씻지 아니한 손으로 떡 먹는 것을 보았더라 … 이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께 묻되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들의 유전을 준행치 아니하고 부정한 손으로 떡을 먹나이까 (마가복음 7:1~5)


바리새인들은 정결예식의 일부로 손 씻는 일을 매우 엄격하게 준수했다. 손을 씻지 않으면 먹지 않았으며 밖에 나갔다가 들어올 때에도 손 씻는 것을 철저히 지켰다. 식기류도 청결하게 유지했다. 이런 행위 자체가 의롭지 못한 것은 아니다. 문제는 성경(구약)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사람의 유전을 마치 하나님께서 명하신 규례처럼 지키기를 강요한다는 것이었다. 더욱이 자신들의 잣대로 하나님을 판단하며 조롱하고 멸시했으니 이 얼마나 가증한 행위인가. 이에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시며 바리새인들의 가증한 가면을 벗기고 패역함을 드러내셨다.


그의 집에 앉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와 그 제자들과 함께 앉았으니 이는 저희가 많이 있어서 예수를 좇음이러라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죄인과 세리들과 함께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 (마가복음 2:13~16)


바리새인들은 음식을 먹는 것에 관해서도 자신들이 정해놓은 특별한 규칙이 있었다. 규칙을 조금이라도 어기는 자는 멸시했고 상종조차 하지 않았다. 당시 세리와 죄인들은 식사 예절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기에 바리새인들은 그들과 함께 식사하는 것을 혐오스럽게 여겼다. 그런 가운데 예수님이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으니 그들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죄인들을 구원하러 이 땅에 오셨다. 예수님의 보혈을 덧입지 않고는 아무도 의인이라 칭할 수 없다. 모두가 죄인인 것이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하신 대답은 그들 역시 죄인이라는 것을 확실히 일깨워주고 계신다.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그야말로 우문현답이다.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이 금식하고 있는지라 혹이 예수께 와서 말하되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의 제자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마가복음 2:18)


바리새인들은 사람의 유전을 따라 주 2회 금식함으로 의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의 행위는 정작 하나님의 가르침이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위배되는 것이었다. 예수님께서는 금식기도를 형식적으로 하지 말고 자원하여 하되 금식을 규례로 명하신 날은 신랑을 빼앗기는 날이었다(마태복음 6:16~18, 마가복음 2:19~20).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실새 그 제자들이 길을 열며 이삭을 자르니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말하되 보시오 저희가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다윗이 자기와 및 함께한 자들이 핍절되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가 아비아달 대제사장 때에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먹지 못하는 진설병을 먹고 함께한 자들에게도 주지 아니하였느냐 또 가라사대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마가복음 2:23~28)


안식일을 구약의 율법대로 철저하게 지켰던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에 이삭을 자르는 일을 한 예수님의 제자들을 비판했다. 그러나 모세의 율법을 그리스도의 율법으로, 옛 언약을 새 언약으로 완성하신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의 참된 의미는 망각한 채 형식에만 치우친 바리새인들을 공박하셨다(사무엘상 21:1~6).


모세오경과 더불어 사람의 전통과 관습들을 고집스럽게 지키며 세력을 확장했던 바리새인들에게 예수님은 눈엣가시와도 같았다. 유대 회당을 장악하며 백성들로부터 추대를 받다가 예수님의 등장과 동시에 많은 성도들이 자신들의 교리에서 벗어나 새 언약의 도를 따르자 시기가 났기 때문이다.


이후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에서 흠을 찾아 무너뜨리려고 했지만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악이 극에 달한 바리새인들은 급기야 예수님을 어떻게 하면 죽일까 전전긍긍하다 결국 자신들을 구원하러 오신 메시아를 십자가에 못박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일찍이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의 실체를 알려주셨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 (마태복음 23:13~36)

사두개인(Sadducees)

사두개인은 B.C. 2세기경부터 A.D. 70년경까지 유대사회에서 활동했던 사두개파에 속한 사람들을 말한다. 예루살렘 멸망 후 근거지를 잃고 완전히 몰락했다. 사두개인의 교리적 특징은 오직 모세오경만 신앙의 기준으로 삼고, 부활을 믿지 않고, 천사와 영혼의 존재도 부인한 것을 들 수 있다. 한마디로 지극히 현실에 기반을 둔 사상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사두개인은 존립 당시, 대제사장을 지지하며 성전을 장악했을 뿐만 아니라 율법 해석에 있어서도 제사장의 견해를 따랐다. 지식층이 주류를 이루었기 때문에 유대의 의회 겸 법원인 산헤드린의 요직을 차지하며 다양한 혜택을 누리기도 했다. 그와 동시에 로마제국에 우호적인 태도를 취하여 정치, 경제, 사회, 종교적으로 이익을 꾀할 수 있었다.


바리새인과는 교리, 생활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차이가 있었기 때문에 자주 마찰을 빚었다. 모세오경 외에 율법, 선지서, 조상들의 유전, 전승들을 따랐던 바리새인과 달리, 사두개인은 오직 모세오경만을 신봉했고, 바리새인은 유대교의 정통성을 주장하며 절제된 생활을 했던 반면, 사두개인은 그리스문화를 받아들여 세속적인 생활을 했다.


사두개인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과 사도들의 박해에 중추적 역할을 했다.


사도들이 백성에게 말할 때에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와 사두개인들이 이르러 백성을 가르침과 예수를 들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는 도 전함을 싫어하여 저희를 잡으매 날이 이미 저문 고로 이튿날까지 가두었으나 (사도행전 4:1~3)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 즉 사두개인의 당파가 다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여 일어나서 사도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었더니 (사도행전 5:17~18)


무엇보다 그들의 크나큰 악행은 모세오경을 근거로 예수님을 시험했다는 점이다.


사두개인들이 와서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서 오는 표적 보이기를 청하니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 너희가 천기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여줄 표적이 없느니라 하시고 저희를 떠나가시다 (마태복음 16:1~4)


부활이 없다 하는 사두개인들이 예수께 와서 물어 가로되 선생님이여 모세가 우리에게 써주기를…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므로 오해함이 아니냐 …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 너희가 크게 오해하였도다 하시니라 (마가복음 12:18~27)


예수님의 흠을 잡기 위해 모세오경을 운운한 사두개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한다고 일침을 가하셨다. 사두개인들은 정작 그들의 유일한 경전인 모세오경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고 믿지 않았던 것이다. 그날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한마디 대꾸도 하지 못하고 물러났다. 그러나 이후에도 계속해서 예수님을 훼방하다가 결국 멸망을 당하고 말았다.

출처: 하나님의교회 패스티브닷컴